범민련 공동사무국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의 활로를 힘차게 열어나가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 공동성명-

해내외의 온 겨레가 자주통일과 민족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장엄한 대진군을 힘차게 다그치고 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우리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26돌을 맞이하고 있다.

범민련의 결성은 조국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통일운동을 전민족적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는데서 획기적 의의를 가지는 일대 사변이었다.
범민련이 결성됨으로써 해내외의 애국 역량을 하나로 묶어세울 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가 마련되었으며 조국통일운동을 보다 조직적인 운동으로,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강화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되였다.

지금 내외반통일세력이 사대매국적인 외세추종정책에 매달리면서 동족대결과 전쟁도발에 피눈이 되어 날뛰고 있지만 그것은 운명의 시각을 앞둔 단말마적 발악에 불과하다.
민족의 자주적 존엄을 수호하고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애국애족의 불길은 지금 활화산마냥 거세차게 타오르고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는 자주통일의 선봉대, 민족대단합의 기수답게 뜨겁게 분출하는 겨레의 통일애국의 마음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평화와 자주통일의 활로를 앞장에서 열어나갈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며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1. 범민련은 조국통일3대원칙과 남북공동선언들을 통일운동의 생명선으로 더욱 높이 추켜들고 나갈 것이다.

조국통일3대원칙과 남북선언들은 민족의 총의가 집대성되어 있으며 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 통일이정표이다.
남과 북이 합의하고 온 세상에 선포한 민족공동의 합의들이 정세가 달라지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여 백지화된다면 우리 민족은 언제가도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

조국강토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우리 민족이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에 범민련은 남북합의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그 실천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범민련은 해내외의 각계각층과 굳게 손잡고 조국통일3대원칙과 남북선언들을 존중하고 그 이행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겨레의 가슴마다에 민족자주,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을 깊이 심어주고 6.15의 소중한 모든 결실들을 하루빨리 복원하며 제2의 6.15자주통일시대를 힘차게 열어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내부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외세의 간섭과 전횡을 철저히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적 존엄과 이익을 팔아먹는 온갖 매국 배족행위를 저지시키기 위한 전 민족적 운동을 앞장에서 추동해나갈 것이다.

2. 범민련은 내외반통일세력의 무분별한 전쟁대결책동을 단호히 저지시켜나갈 것이다.

평화와 안전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며 조국통일의 필수적 전제이다.
겨레의 삶의 터전이 외세와 그 추종세력의 전쟁대결책동에 의해 핵전쟁마당으로 변하고 우리 민족이 그 희생물로 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민족성원 모두의 일치한 주장이며 꺾을 수 없는 의지이다.

범민련은 우리 겨레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저들의 침략적, 패권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외세가 강행하는 각종 핵전쟁장비의 반입을 저지시키며 한 몸을 내대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광란적인 침략전쟁연습을 단호히 저지시켜나갈 것이다.
우리 겨레와 주변 나라들의 한결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반도 남측지역에《사드》배치를 강박하며 시시각각 핵전쟁위험을 몰아오고 있는 미국의 극악한 군사적 망동을 짓부시고 이 땅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투쟁에로 온 민족을 힘차게 불러일으켜나갈 것이다.

범민련은 남측의 현 보수정권이 최악의 통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로를 군사적 긴장조성과 전쟁도발에서 찾으려는데 대해 각성을 높이며 외세와의《군사동맹》강화와 굴욕적인《협정》체결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과감히 벌여나갈 것이다.

3. 범민련은 전 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기어이 성사시켜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하여 앞장에서 노력할 것이다.

남과 북, 해외의 제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폭넓게 참가하는 전 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개최하여 민족의 총의를 모아 오늘의 첨예한 전쟁국면을 가시고 조국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것이 온 겨레의 한결같은 요구이다.

우리 겨레가 한자리에 모이면 조국통일의 좋은 방도가 나오고 해내외의 온 겨레가 힘을 합치면 못해낼 일도 없다.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 실현을 위해 투쟁해온 범민련이기에 우리는 전 민족적인 통일대회합 개최를 반드시 성사시켜나갈 것이다.

당면하여 범민련 남측본부는 북과 해외에서 전 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위한 준비위원회들이 나온데 맞게 남측에서 각계각층을 폭넓게 망라한 준비위원회를 조속히 내오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남북관계 개선과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해내외의 각 정당, 단체, 인사들이 민족사의 장엄한 새 시대를 열어놓게 될 전 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의 성사를 위해 한사람같이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평양, 서울, 도쿄
2016년 11월 20일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강토에서 미제침략군을 몰아내고 민족의 완전한 자주권과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북,해외본부 공동결의문

미제침략군이 ‘해방자’의 탈을 쓰고 신성한 우리 조국 남녘땅에 들어온 때로부터 장장 71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군의 이남강점은 한반도를 통채로 집어삼켜 아시아와 세계재패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흉악한 목적 밑에 감행된 불법무도한 날강도적인 침략행위이다.

전범국도 전패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40년간에 걸친 강도 일제의 식민지 억압통치에 이어 또 다시 미국양키들의 더러운 침략의 군홧발에 짓밟혀 세기와 연대를 넘어오며 민족분열의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미제의 불법적인 이남강점으로 하여 반만년의 오랜 기간 한 핏줄을 잇고 하나의 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 반세기이상 둘로 갈라져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항시적인 전쟁위험 속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엄중히 침해당하고 있다.

이 가증스러운 침략의 무리들이 오늘은 우리 민족과 조국강토에 핵참화까지 들씌우려고 광분하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강렬한 통일열망에 역행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자주통일을 악랄하게 가로막아나서고 있다.

미제는 한반도와 그 주변에 핵전쟁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북침합동군사연습을 매일같이 벌려놓으면서 전쟁위기를 격화시키고 있으며 내외의 한결같은 반대배격에도 불구하고 이남에 사드를 끝끝내 끌어들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을 핵전쟁대결장으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다.
미제침략군이 이남을 강점하고 있는 한 언제가도 이 땅에는 평화가 깃들 수 없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핵전쟁위기를 몰아낼 수 없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는 민족분열의 원흉이고 통일의 최대장애물이며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요인인 미제침략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나라의 자주통일과 민족번영의 새 시대를 앞장에서 열어나갈 드높은 의지를 안고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범민련은 삼천리 조국강토에서 하루빨리 미군을 몰아내고 민족의 완전한 자주권과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다.

미국이 우리 민족을 우롱하고 침략과 약탈, 강권과 전횡을 일삼던 시대는 영영 지나갔다.
민족자주, 반전평화의 성전에 떨쳐나선 온 겨레의 도도한 기상 앞에 날로 비참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추악한 몰골이다.
해내외의 온 겨레가 하나로 굳게 뭉쳐 반미항전에 떨쳐나설 때 미군은 신성한 조국강토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며 우리 겨레가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자주통일의 새아침은 반드시 밝아오게 될 것이다.

범민련은 미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천추에 용납못할 대학살만행과 반인륜적 범죄를 낱낱이 폭로하고 이 땅에서 감행한 침략과 전쟁의 피 묻은 죄악의 역사를 고발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나갈 것이다.
미국과의 불공평하고 굴욕적인 모든 ‘조약’과 ‘협정’을 배격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투쟁을 앞장에서 선도해나갈 것이다.
우리 겨레가 사는 모든 곳에서 미군철수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 올릴 것이다.

2. 범민련은 내외반통일세력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짓부셔 나갈 것이다.

평화를 수호하고 민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전쟁연습에 미쳐 날뛰는 미군장갑차를 한 몸으로 막아 나선 범민련의 희생적인 투쟁은 오늘도 온 겨레를 반미, 반전평화투쟁에로 힘 있게 고무추동하고 있다.
범민련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고 동족대결을 부추기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각종 명목의 합동군사연습과 핵전쟁장비의 반입을 비롯한 무력증강책동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열강들의 힘의 대결장, 핵전쟁터로 만들려는 미국의 강압적인 사드배치를 단호히 저지시키며 이를 반대하는 각 정당,단체,인사들과의 연대활동을 보다 과감히 벌려나갈 것이다.
우리 조국 남녘땅에 도사리고 있는 가증스러운 미군기지들과 전쟁장비들을 모두 철거시키고 각종 생화학무기의 반입과 시험으로 겨레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킨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릴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북침전쟁책동에 적극 추종하면서 동족대결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민족내부의 반통일보수세력의 극악한 친미사대와 전쟁도발책동을 단죄규탄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려나갈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계속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다.

3. 범민련은 온 민족의 대단합, 대단결을 힘있게 추동해나갈 것이다.

민족의 단합된 힘은 이 땅에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가장 위력한 무기이며 자주통일운동의 원동력이다.
지금처럼 남북사이의 반목과 질시, 불신과 대결이 심화된다면 남북관계는 더욱더 악화되고 전쟁기운은 날로 높아가게 될 것이며 이것은 침략적인 미국에 간섭과 전횡의 구실만을 주게 될 것이다.

범민련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문제 해결의 주인인 우리 민족이 단합하면 이 땅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과 낙관, 든든한 배짱과 자신감을 가지고 해내외 각계각층과의 폭넓은 연대와 단합을 적극 실현해나갈 것이다.

역사적인 조국통일3대헌장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불변의 기치로 높이 들고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하루빨리 개최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려나갈 것이다.
민족내부문제, 통일문제에 끼어들고 남북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키면서 저들의 불순한 침략적 목적을 이루어보려는 미국의 교활한 분열이간 책동에 더욱 각성을 높이고 단호히 짓부셔버릴 것이다.

범민련은 해내외의 온 겨레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굳게 단결하여 조국강토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거족적인 반미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한다.

2016년 9월 8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기고> 동족 대결과 체제 전복 노리는 ‘북한인권법안’-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최근 언론들에서 자주 다루는 기사에 ‘대통령 관심법안’이란 말이 있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게 국회에 대고 법안 처리를 재촉하는가 하면 입법부의 수장에게까지 ‘직권상정’을 강압하고 있는 법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여당지도부를 불러 세우고선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느냐”며 “뭘 했느냐! 도대체!”라고 따져댔고, 분명 야당을 겨냥해선 (일도 하지 않고) 립 서비스만 하는 “위선”이라고 몰아세웠다.

‘관심법안’이라는 이름의 박 대통령의 끝없는 집착

마침내는 정무수석을 국회의장에게 보내어 “선거법만 처리한다는 것은 국회의원들 밥그릇에만 관심 있는 것 아니냐”며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고’‘아주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 않게’삼권분립의 한축인 입법부 수장을 심하게 모독, 압박했다.
국회의장에겐 특별한 법률안에 대한 직권상정 할 권한이 있지만(국회법 85조), 그 권한 행사를 하기 위해선 ‘국회선진화법’에서 규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바로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그리고 각 교섭단체들과의 합의를 했을 경우이다.

국회의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니 그래서 분명히 밝혔다.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막무가내였다. 대통령은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아 ‘잠을 못 잔다’고 했고, 새누리당은 의원총회 결의로 직권상정을 촉구했다. 어떤 대통령 충직의원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으면 ‘불신임안’을 내겠다 했으며,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발동설까지 내왔다.

대통령이 얼마나 이른바 ‘관심법안’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의도 쪽 풍경들이다. 그렇다. 언론에서 ‘관심법안’이라고 붙인 말은 오히려 얌전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잘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제 구실을 하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테러 위험이 놓여 있으며, ‘북한주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법안만 통과시키면 경제는 활성화될 수 있고, 테러위험도 ‘북한주민’의 인권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노동5법’이고 ‘테러방지법’이며, ‘북한인권법’이다. 그밖에 서비스 산업발전 기본법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도 있다.

법을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정말 국민의 입장에서 아주 절박한 법률안을 늦추고만 있다면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법률안은 그것에 제정, 개정, 폐기시켜서 좋을 수도 있는 반면 더 나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처럼 한쪽이 이로운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관계법은 노·사·정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심의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법안이다. 특히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쉬운 해고’‘임금 삭감’‘비정규직 전면화’등 우려로 노동단체들의 거센 반대, 바로 지난 11.14 민중 총궐기 대회의 주요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또한 테러방지법은 대선개입, 내란음모조작, 간첩사건 조작 등 권력 남용과 인권침해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더 강화시켜 준다는 사회 각계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인권법’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 때문에 시민사회가 반대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온 새누리당

여기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이 집착하고 있는 법안 가운데 이른바 ‘북한인권법안’만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왜 폐기처분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지난 12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3+3) 회동을 갖고 위에서 말한 법안들을 19대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아니면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연내 합의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인권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합의후 처리’의 의미는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김영우 의원 대표발의)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심재권 의원 대표발의) 등 두 법안을 하나로 조율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두 법안은 이름과 내용이 다르지만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법으로 만들어 그 어떤 영향력을 노린다는 점에서 내정 간섭이고 주권침해이며 다른 나라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발의자들이 그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법안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김영우 의원 대표 발의 ‘북한인권법’안을 다루기로 한다.

오늘의 새누리당이 이른바 ‘북한인권법’에 집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해 온 미국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대북 압살정책 말고도 2004년엔 인권을 빌미로 한 체제 붕괴를 노린 이른바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Act of 2004)을 만들자 곧 이어 일본이 뒤따랐고(2006년 제정), 이에 뒤질세라 2005년, 17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등 29명 이름으로 똑같은 ‘북한인권법’을 발의했었다. 이 대결법안은 끝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황우여 의원 등 23명이 낸 ‘북한 인권법안’(2008.7.4)을 비롯하여 황진하 의원 등의 ‘북한인권 증진법’(2008.7.21), 홍익표 의원 등의 ‘북한인권재단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2008.11.11), 윤상현 의원 등의 ‘북한 인권법안’(2008.11.12) 등이 잇달아 발의되어, 국회외교통상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들 법안 역시 발의시효가 지나자 새누리당의 윤상현 의원(2012년 6월), 황진하 의원(2012년 6월), 이인제 의원(2012년 8월), 조명철 의원(2012년 9월) 등이 잇달아 ‘북한인권법안’을 대표발의했고, 2013년 3월 29일 심윤조 의원이 16명 다른 의원과 함께 같은 법안을 발의했었다. 그리고 2014년 11월 21일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34명이 함께 하여 위 다섯 개 법안을 하나로 묶어 ‘북한인권법안’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회부시켰다.

이처럼 오늘의 새누리당은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왔다. 그리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북한 주민 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토론회’(2005.5.12)에서 “악화되고 있는 북한 인권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당시엔 남북 사이 화해와 단합 행사가 이어지고 교류, 협력 등 한 해 동안 수십 만 명이 남북으로 오고갈 때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북한인권법’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미 다른 나라들은 제정이 됐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10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며 “관련 부처에서는 앞으로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해 주시고,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북한인권조사 위원회 권고사항 등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미·일 등의 주권 침해, 내정간섭, 체제 붕괴 행패를 따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이며, 외세 동조, 동족대결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66돌 기념 영상에서는 “북한 인권이 표현 못할 만큼 열악하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들

이처럼 대통령이 법 제정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인권법’(김영우 의원 발의)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그 문제점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북한 인권재단 설립’이다. 이는 이른바 ‘북한 인권증진’을 명분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을 규정하면서 ‘북한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바로 대북비방 전단살포 등 반북단체들에 나라의 세금을 주어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한 문제점이다. 이 법안과 관련 향후 5년간 전체 예산 1361억 원 가운데 ‘인권재단’의 예산만 131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관련자들이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반북단체 지원비로 지출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에서 북측의 체제 붕괴를 노린 반북단체들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범죄 행패를 원용한 모습이다.

다음으로 ‘북한 인권기록 보존소 설치’문제이다. 이는 ‘북한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관련자료를 수집, 기록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이 법안 발의자가 강조했듯이 ‘북한의 과거 청산’‘북한인권 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체제붕괴를 대비한 전형적인 대결정책 조항이다. 특히 새누리당에서 ‘기록’보존소를 법무부에 설치하려는 데서 더욱 분명하다. 미국이 저들의 민주주의 방식, 저들의 가치관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나라와 정부에게 ‘인권’을 명분으로 파상 공격하여 정권을 붕괴시켰던 또 다른 사례의 우려 사항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북한 인권 대외직명대사’를 설치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른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 협력’등 명분이지만, 이 또한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서 국무부에 그 무슨 ‘대북인권특사’라는 것을 임명하고 대북인권공세의 국제여론조장, 반북단체 지원, 탈북자 보호, 북에 외부정보 유입을 위한 <자유아시아방송>(RFA) 지원 등을 주도해 오고 있음을 연상시킨다.

비록 오늘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 속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통일되어 함께 살아갈 한겨레이다. 북에 대한 인권대사를 두어 국제사회와 협의 협력한다는 자체가 동족에 대한 존엄성의 모독이다.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체제 전복을 노린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도구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판 인권특사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법’에는 대북인도적 지원이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에서 강조한 ‘대북 인도적지원’을 받아 안은 모양새지만, 이 또한 실제로는 인도적 지원의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바로 인도적 지원이란 이름 아래 ‘전달’, ‘분배’등을 감시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협력사업이 전달, 분배 등 까다로운 모니터링을 요청하고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을 알아보았다. 법안 발의자들을 비롯한 정부, 여당 인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일찍이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시행(대북인권 공세)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왜 미루어지고 있는가’라고 불평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났듯이, 이 법의 전체 흐름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대북체제 전환 시도의 한국적 반영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인도적 개입입법’이라고 하지만, 인권 개념 또는 구성원들의 인식 범주는 나라와 민족마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편차가 있음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 침해의 가장 큰 범죄 행위는 대량살육의 전쟁 행위이고, 합법적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전복과 주권 침탈행위이다. 수십만, 수백만 명에 대한 살육과 파괴가 뒤따르고, 수백만 명의 전쟁고아 난민이 발생하며 나라를 잃어 식민지 지배를 받거나 나라 밖을 떠돌면서 온갖 고통과 설움을 겪게 된다. 일제 강도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가 그 사례이다. 따라서 나라의 주권, 바로 자주권 없는 인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특정 국가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데는 현지 조사에 의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입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인권 문제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인권 차원에서 국제 전문기구가 조사연구하여 제도말살 같은 공격이 아닌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권고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예로써,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의 조사연구 권고가 그렇고,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직접 현지를 방문조사하여 문제점의 해결책을 권고하는 사례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남의 나라 인권 문제를 어떤 특정인의 편향된 증언만으로 상대를 악마화시켜 특정국가 이름을 가진 법을 만들어 체제 전복 시도 등 공격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고 주권 침해 행위이다.

1, 2차 제국주의 전쟁을 겪은 세계는 그 대량살육과 파괴의 참상을 반성하며 ‘국제연합’기구를 만들었고, 잇달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절대성을 공유하며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오늘 세계는 국제사회의 정의 평화를 위하여 국경과 인종, 체제와 제도의 차이를 넘어 인권의 보편가치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오늘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독립된 나라들이 있다.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 국가도 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도 있다. 전근대적 입헌군주제 국가와 종교적 교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때문에 각기 정치 형태나 제도,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상대 체제를 공격 말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인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사유와 국가의 정체, 신앙과 양심의 자유 등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

순수 인권만을 따진다 해도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떤 나라는 이른바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임하며 세계의 모든 문제를 간섭하고 있다.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국가의 제도와 가치만을 절대시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악마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정신과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왜곡,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정의·평화·인권의 이름으로 묻게 된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칭해온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의 하는 일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한국은 인권문제에서 얼마나 떳떳한가? 말을 넘어 간섭과 제도 전복을 시도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미국은 수천만 원주민을 학살하고 수천만 노예무역과 살인적 강제 노동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고 수백만 명에게 불치의 상처를 입혔다. 수많은 진보적이고 합법적인 민주정부를 뒤엎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 등을 침략하여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다치게 했으며,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게 했다. 전쟁포로에 대한 잔혹한 고문과 학대가 이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 총기난사, 빈부격차가 격심했다. 한국전쟁에서 정전협정이 된지 6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전쟁종식의 평화협정을 거부하며 살인, 강도 폭력 등 미군 범죄에 한국인은 치를 떨고 있다.

굳이 법을 만들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야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는 노동관련법 개악반대, 농민들의 쌀값 생산비 보장,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보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공안당국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수백 대의 차량으로 차벽을 쌓았으며, 집회장소를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고압물대포를 직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쓰러진 사람에게도 계속 물대포를 쏘아대어 백남기 농민은 혼절하여 오늘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공안권력은 적반하장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폭력시위 주동자로 구속기소하면서 소요죄까지 적용하는가 하면, 집회 참가 1200 여명을 구속 또는 소환조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이른바 ‘이석기내란음모사건’조작을 비롯하여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전국 규모 대탄압, 코리아연대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과 회원들 구속 기소, 성직자·노동자 간첩조작 시도, 수많은 사이버공간에서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견 제시를 이적 동조로 몰아 탄압했다. 2015년에만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등으로 80명이 넘게 구속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적용 구속자만도 20명이 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압수수색당하고 소환조사 받았으며,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법정에 세워졌다. 개인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위하여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이 같은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국제인권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권(정치적·시민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사례라면 사회권(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상황은 어떠했나.
우선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다. 김낙연 교수의 ‘한국소득집중 추이와 국제비교’(2012년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소득 상위 0.01%(3895명)의 평균소득은 27억 3084만원으로 전체주민(20살 이상 성인) 평균소득 1639만 원의 167배였다. 20세 이상 인구 3797명 중 상위 10%의 총소득이 48.05%이고 상위 20%의 총소득은 69.29%였다.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은 12.97%이다. 반면에 최하위층 40%의 총소득은 2.05%였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소득불평등이 격심한 상태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날(영국) 발표 녟. 세계노인복지 지표’에 따르면 OECD회원국 65세 이상 인구 빈곤율에서 한국은 48.6%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19.4%, 미국이 19%로 그 뒤를 따랐다.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868만 명(임금노동자의 45%)이었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서는 이보다 10%가 넘는다고 했다. 바로 ‘비정규직규모와 실체’에서 김유선 소장은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되고 특수고용이 자영업자로 역시 잘못 분류되었기 때문이며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어설 것 ”이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빈부격차, 사회양극화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은 규범으로서의 타당성과 사실상의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집행의 주체자와 대상자 사이의 문제나 목적에서 전혀 타당성이 없고 당연히 실효성도 없다. 따라서 동족으로서의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할 상대에 대해 인권문제를 비롯한 어떤 현안이 있다 해도 최근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인권대화’등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 없는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인도적 지원에 마음이 있다면, 적십자사를 통해 이제까지 있어왔던 경로를 실천할 수 있다. 굳이 법을 만들고 국제협력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대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기고> 정통성 의문, 박근혜 정부 2년의 종북·공안몰이 실태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통일운동을 압살하는 국가보안법 체계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확인, 올바른 국민주권행사 다시 해야
‘국정원 조직적 대선개입, 원세훈 법정구속’


놀랍거나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이미 유권자들은 국정원의 국기문란 범죄행패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촛불시민들이 외치지 않았던가. '국정원 해체, 대통령 책임'을. 비록 서울중앙지법 원심에서 국정원법 위반만 인정하고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엔 무죄판결을 했지만 이 권력 눈치보기 판결을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같은 사법동료인 수원지법 김동진 부장판사가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고권력자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황교안 법무장관 등 극단세력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혐의를 지우는데 혼신을 다 했었다. 국정원의 국기문란범죄 실상을 파헤치는데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던 검찰총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말라' '국정원장 구속하지 말라'고 지위를 악용한 부당한 압박을 가했고 끝내는 검찰총장을 쫓아내지 않았던가. 조영곤 서울지검장도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에 '수사축소'를 지시했고 결국 직무배제조치 했었다.

그러나 진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는 9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70여명에게 인터넷에 정치·선거개입글을 올리도록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 공직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소된 혐의를 인정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고 이를 원 전원장이 지시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정당이나 정치인 반대활동에 활용했다"며 "국가기관이 사이버공론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 국민인양 선거쟁점에 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 조직규모를 확대 강화하고 그 활동을 독려했다는 점에서 궁극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사건 자체의 엄중함에 비례하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준엄하게 심판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촛불의 외침은 빈 소리가 아니었다.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의 사법윤리를 거역하지 않는 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다지만, 정작 자유민주주의 핵심가치를 훼손한 것이 명백'하고 '(대선개입을 통해) 국민의 의사형성을 왜곡하며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부여한 자유경쟁의 기회를 침해'하여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기문란 범죄행위는 그 관련자 몇 사람의 사법심판 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바로 18대 대선자체의 유효성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국민들(유권자들)은 5년 만에 겨우 한 표의 투표권을 통해 헌법상 주어진 국민참정권을 행사한다. 그 소중한 권리행사가 짓밟힌 것이다. 그것도 국정원 뿐만 아니라 이미 밝혀졌듯이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으로 대선의 불공정성이 확인되었다. 반드시 올바른 국민주권행사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 같은 18대 대선의 불공정성·유효성 여부·정권의 정통성 여부 등 반드시 짚고 갈 근본문제와는 별도로 대선 이후 민주적 정통성이 의심받고 있는 떳떳하지 못한 권력이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권, 자주통일운동까지 철저하게 압살하고 있는 현 정권 2년의 국가보안법 적용 종북·공안몰이 실태를 알아보기로 한다.

박근혜 정부 2년의 종북공안몰이 실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했다. 그랬다. 애초부터 군부독재의 유전자를 지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정치집단이었고 특히 위에서 보았듯이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이란 있을 수 없는 흠결을 이고 있는 정권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정권은 그 무슨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지킨다며 잇단 공안몰이 굿판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십 년 동안 독재와 맞서 피 흘려 일궈온 민주주의와 인권,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자주적 평화통일 열망까지 마구 짓밟고 아예 뿌리째 흔들고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 뜻에 따라 결성되었고 6.15공동선언 이행 등, 자주통일운동에 헌신해 왔던 범민련 남측본부의 지도부와 활동가 등 80살이 훨씬 넘은 노인에서 불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구속·기소하여 법정에 세우고 있었다.

또한 국정원 대선개입 등 국기문란 범죄행위를 규탄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에 앞장 서 왔던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이 이어졌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론에서, 이석기의원 등에 대한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고 마지막엔 진보당을 아예 없애려고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내란음모’와 ‘지하혁명조직(RO)’은 대법원 최종판단에서 ‘무죄’와 ‘실재하지 않음’으로 확정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나들이를 하는 한밤중에 전자결재로 정당해산을 서둘렀던 그 집념대로 권력의 시녀로 전락된 헌법재판소와 청구인(법무부장관)은 변절자와 프락치 등을 증언대에 세워 진보당의 정체성을 왜곡·모함케 하는가 하면 이미 고법에서 ‘내란음모’ 무죄, ‘지하혁명조직’ 없음으로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당의 ‘주도세력’(지하혁명조직)이 ‘숨은 목적’(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을 이루기 위해 내란을 음모하여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며 진보당해산을 결정하고 법적 권한도 없으면서 소속정당 국회의원에 대한 의원직을 박탈했다. 정당해산 신청 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최후변론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고 대법원의 확정판결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이같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스스로 허물고 있었다. 그렇게 서둘러 결정하다 보니 헌법가치 수호의 최후보루인 헌재에서 정당해산을 하는 주요문서에 사실관계 오류 등 8곳이나 되는 상처투성이 결정문을 발표했고, 전 진보당 해당 관련자의 항의를 받고서야 40일 만에 결정문을 경정하는 웃지못할 결정을 다시 했다.

그뿐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 온 겨레가 환영하고 열광했으며 전 세계가 기립박수로 지지했던 남북합의를 무시·외면하고 남북사이 일체의 교류·협력이 차단되고, 불신과 대결양상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남북관계를 염려하는 마음은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외동포로서 북녘을 다녀왔던 신은미 교수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가 남북관계의 이해의 폭을 넓히려 ‘통일토크콘서트’를 진행하였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종북콘서트’라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공안당국에 수사지침이 되는 발언을 했었다. 결국 신은미 교수는 강제출국당하고 황선대표는 북을 찬양·고무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한 동족대결의 비극을 막고 특히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기봉 등탑 점등을 반대해 왔던 민통선 평화교회의 이적 목사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교회 예배당 강대상을 해체하고 십자가를 훼손했으며 아이들의 공부방 아동센터까지 장도리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과 공책, 휴게실 장난감까지 어지럽히는 소동을 벌렸다. 이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며 감행된 민주주의와 인권, 종교활동을 짓밟는 선무당의 행패였다.

이처럼 범민련 남측본부 등 통일운동단체 해산시도, 진보당 말살행패 통일콘서트에 대한 종북몰이, 평화교회 침탈과 뒤에 밝힐 자주민보 등록취소를 비롯한 수많은 양심적 활동에 대한 압수수색, 소환조사, 구속·기소 등은 박근혜 정부의 외세공조 동족대결 정책의 반영으로 나타난 국가보안법 체계의 종북몰이·공안탄압이었다. 이 같은 국가보안법 체계는 사상·양심의 자유,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 종교적 신념 그리고 민족문제에 대한 민족구성원으로서의 민족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팟쇼적 폭압체계이고 맹목적인 반북대결체계였다.

이제 지난 18대 대선에서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대선개입 의혹 속에 떳떳하지 못한 대통령 당선이 발표되고 대통령 인수위가 가동되고 있던 2013년 1월부터 최근까지 과연 공안칼날이 어떻게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자체를 짓밟고 자주통일운동을 탄압했는지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그 실태를 시기별·사안별로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구속·기소된 황선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을 통해 공안당국의 상투적인 냉전논리와 공안시각의 반인권 반통일성을 고발하기로 한다.

필지는 이미 ‘되살아나고 있는 유신망령’(2013.5.17. 통일뉴스)과 ‘세계인권선언 65돌을 맞는 박근혜 정부의 반인권실태’(통일뉴스 2013.12.17)에서 공안탄압실태를 밝힌 바 있지만, 박근혜 정부 2년의 국가보안법 관련 공안탄압을 총정리하는 과정에서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국가보안법 적용 공안칼날은 2013년 새해 벽두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오랫동안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벌려온 바 있는 통일원로 안재구 교수와 <민족21> 안영민 편집주간을 이른바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찬양·고무 혐의로 불구속기소(2013.1.2) 했고 1심을 거쳐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 및 탈출과 간첩 등 혐의로 화교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체포·구속했다.(2013.1.20) 이 사건의 핵심증인은 피의자의 누이동생이었고 국정원은 그 누이동생을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6개월간 불법감금한 채 폭행과 회유, 협박을 하여 오빠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했다. 서울지검은 구속·기소(2013.2월)하여 간첩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동생에 대한 거짓 증언 강제 말고도 유우성씨가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하기 위해 중국의 공문서까지 위조한 것이 드러났고, 1,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2013.8.22, 2014.4.25) 국정원이 간첩을 잡는 곳이 아니라 간첩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랫동안 해외망명생활을 하다 귀국한 조영삼 씨를 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고(2013.1.25) 청주지방법원 항소2부는 자폐증 등 장애 어린 딸을 두고 있는 신정모라 작가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한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해 헌신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에 대한 정보기관의 장기간에 걸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이메일 압수수색을 자행한 사실도 밝혀졌다.(2013.1.28)

2월 들어서 인터넷 신문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고(2013.2.1) 같은 해 5월 9일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자주민보와 관련해선 이창기 대표 말고도 편집기자인 권말선 시인이 인터넷 기사 등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법정에 세워져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고(2013.2.6) 이 사건과 관련 수원지법은 국가보안법 7조5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신청을 하기도 했다.(2013.8.9) 또한 자주민보 기고자인 정설교 농민시인의 현장고발성 시와 그림을 문제삼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법정구속했고(2013.6.26) 이후 풀려났으나 추가기속 등으로 2013년 9월 9일, 2014년 3월 29일 재수감당했다. 정설교 시인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탄압은 전형적인 필화사건이기도 했다. 양심에 따른 신념에 따른 사회현상을 고발한 문학작품과 회화를 문제 삼아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정 시인의 옥중시중에는 이런 작품이 있다.

국정원이 한번 다녀간 이후 / 동리사람들 조차 쉬쉬하며 외면하고
뜸한 발걸음조차 곁눈치로 조심스럽다 / 왜정때 칼 찬 순사를 보듯
국가보안법에 걸려들면 친구도 도망가고 / 이웃도 기피한다. (‘대역죄’)

자주민보 이창기 대표의 형 확정으로 대표직을 새로 맡고 있는 이정섭 기자의 형님이자 인터넷 기고가이고 시인인 이윤섭씨가 인터넷 공간에 자주통일과 관련 의견 개진을 한 이유로 구속되었고(2013.5.8) 이정섭 대표 또한 같은 혐의로 압수수색(2013.7.5) 소환조사를 거쳐 오늘 항소심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대표의 다른 형님인 역사연구가 이원섭 님도 같은 날 압수수색을 당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자주민보 대표와 기자, 기고가 등에 대한 공안탄압에 그치지 않고 이 인터넷신문을 아주 없애려 하고 있었다. 보수단체의 자주민보 폐간요구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등의 거듭된 요청으로 서울시는 자주민보에 대한 등록취소 행정심판을 법원에 내어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원고승소판결을 했고(2014.6.13) 항소심인 서울고법 민사25부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며 항소를 기각, 현재는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는 형식상 서울시의 등록취소심판청구였지만 보수세력과 새누리당이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대한 자주민보의 사실보도 등을 눈엣가시로 여겨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사례가 되고 있었다.

위에서 짧게 언급된 바 있지만, 이미 ‘이적단체’로 규정받아 계속하여 탄압을 받아오던(1995.11.29 전국범위 대탄압으로 강희남 의장 등 29명이 무더기 구속·기소와 2009년 5.7 이규재 의장 등 16명과 9곳 압수수색 9명의 지도부가 구속) 범민련 남측본부에 또 다시 전국규모 대탄압이 감행되었다. 2013년 6월 26일 본부사무실과 수도권, 대경연합, 부경연합 등 사무실과 지도부, 활동가들 집을 압수수색했고 김성일 사무처장과 이창호 대외협력국장을 체포(6.26) 구속기소했고 이어 김세창 조직위원(7.17), 김을수 의장권한대행(7.19), 정봉곤 대외협력국장(8.14), 하성원 부경연합 의장(12.9)을 체포·구속기소했다. 또한 80살이 훨씬 넘은 한기명 대경연합의장, 이성근 전 감사, 나창순 전 의장, 김영승 고문 등을 압수수색·법정에 세우고 있다. 현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 조의방북했던 노수희 부의장이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2013.2.8)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고 이규재 의장 등 대탄압 시기 구속기소되었던 이경원 전 사무처장이 4년 언도를 받아 안동교도소에 갇혀 있으며 80살이 다 된 이규재 의장은 3년6월 만기를 다 채우고야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국정원과 검찰 등의 무리한 공안몰이로 인권침해와 평화와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내의 의견그룹인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새시대 교육운동)’와 관련 박미자 전 수석부위원장 등 4명에 대한 이적단체구성 혐의로 불구속기소(2013.2.21) 법정에 세웠으나 서울지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2015.2.21) 국정원과 검찰은 ‘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사람들’의 오혜란 사무처장과 김종일 공동대표 등 집과 사무실 등 수십 곳을 압수수색하고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2013.2.26) 법정에 세웠으나 오혜란 전 사무처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선고를 받았고(2014.10.2) 김종일 대표도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2014.10.14) 공안당국은 평통사에 이적단체구성 혐의를 씌우려 했었다.

또한 압수수색과정의 불법성, 증거능력 부재, 비공개재판, 국정원 수사과정에서의 각종인권침해 등, 국정원조작사건으로 불리였던 이른바 ‘왕재산사건’의 김덕용 씨 등 관련자들이 최고 7년에서 5년, 4년까지의 중형이 선고되었고(2013.2.8) 같은 해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이밖에 자주통일과 관련 단체활동과 인터넷 공간에서의 의견개진을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활동가들이 압수수색, 소환조사,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어 법정에 세워졌다.

서울북부지법은 민권연대 이희철 사무부총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5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으며(2013.2.22) 청년단체 ‘청춘’ 윤여창 대표에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했다.(2013.2.1) 서울경찰청 보안2과는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를 옛 실천연대에 가입·활동했다며 압수수색했으며(2013.4.2) 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대표이며 자주역사신보 조종원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하고(2013.4.8) 소환조사를 거쳐 구속했다.(2013.6.26) 경찰청 보안3과는 한양대 학생들의 공개적인 서클운동 ‘우리단위’의 배후조종혐의로 압수수색하고(2013.4.4) 소환조사를 거쳐 구속·기소했다.(2013.10.8)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양심수후원회원으로 오랫동안 양심수 석방과 후원 등 인권활동을 해온 소수영 씨가 인터넷 공간에 통일과 관련 의견을 개진한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압수수색하고(2013.4.25.), 소환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동생집을 압수수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2013.7.5) 인천지검 공안부는 인천지역 통일운동단체인 ‘통일아침’ 사무국장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2013.5.27)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이미 인터넷공간에 의견개진이 국가보안법 위반 했다며 구속·재판을 받은 바 있는 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 박창숙 총무집을 같은 혐의로 압수수색했다.(2013.8.28)

또한 이른바 ‘일심회사건’으로 7년 만기를 채운 장민호 씨가 미국시민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80살 노모조차 만나지도 못한 채 출소하자마자 강제출국당했다.(2013.10월)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청년모임 ‘소풍’ 관련자 9명을 이적단체혐의로 불구속기소했으며(2013.10.15)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철도노조 현장활동가조직인 ‘한길자주노동자회’ 조직원 5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2013.10.16) 또한 국정원 등 공안기구는 한국진보연대 전 문예위원장인 민족춤패 ‘출’의 전식렬 전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2013.11.29)

또한 경찰청보안과는 양심수 석방과 후원 등 정의·평화·인권운동을 해오고 있는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에 대해 범민련 행사 참여, 통일뉴스 기고문 등을 문제 삼아 압수수색을 했으며(2014.12.3) 서울경찰청은 통일토크콘서트 진행과 관련 재미동포 신은미 교수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 집을 압수수색하고(2014.12.11) 신 교수를 강제출국(2015.1.10)시키고 황선 대표를 구속했으며(2015.1.14), 황선 대표의 남편 윤기진 민권연대 공동대표를 단체활동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소환조사했다.(2015.1.22) 또한 서울경찰청은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집과 교회 등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압수수색하고(2014.12.22) 자주통일운동에 헌신해 오고 있는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 이상준 공동대표 등 11명의 집과 사무실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2014.12.22)

마지막으로 위에서도 말한 바 있는, 박근혜 정부의 노골적인 정치보복행패이며 헌정사상 최대의 민주주의 말살과 인권침해사건이기도 했던 이른바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조작사건과 진보당 강제해산 만행이다.

국가정보원은 이석기의원실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주요 간부와 활동가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자행하고(2013.8.28)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수원의료협동조합 이사장을 구속하고(2013.8.30) 국회에서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 돼 국정원에 의한 강제구인·구속했다.(2013.9.5) 이어 김홍렬 경기도당 위원장과 김근래 도당 부위원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이 구속되었다.(2013.10.1) 박근혜 정부는 진보당 강제해산을 헌재에 청구했다.(2013.11.5) 수원지법은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12년 자격정기 10년의 장기형을 선고했으며(관련자 생략) 서울고법은 내란음모사건에서 원심과는 달리 ‘내란음모’ 무죄 ‘지하혁명조직 없음’을 선고했으며 대법원은 이 같은 고법판결을 확정선고했다.(2015.1.22) 이어 헌재는 진보당해산과 소속정당의원 5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2014.12.19) 이같은 헌재결정은 대법원 확정판결에 배치되는 사법체계의 파괴이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헌정사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헌재결정은 있지도 않는 ‘내란음모’와 ‘지하혁명조직’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원천무효돼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정통성 의문 박근혜 정부 2년의 종북공안몰이 실태를 알아보았다. 여기에는 국정원 등 공안기관이 이른바 ‘탈북자간첩사건’ 등 공개하지 않고 체포 구속·기소하는 사례들과 그 밖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국가보안법 피해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예외로 남겨둔다.

황선 대표에 대한 공안당국의 상투적인 냉전논리와 반통일성

끝으로, 위에서 밝힌 대로 황선 대표에 대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 체포영장을 점검, 그 부당성을 밝히려 한다.

먼저 공안당국은 황선 대표에게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를 씌우기 위해 ‘맹목적 종북사상’을 지녔다고 학생운동과 통일운동 전력을 왜곡·모독하고 있으며 이른바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 ‘범청학련 및 범청학련 남측본부’ ‘실천연대’ ‘청학연대’ ‘한총련’ 등의 이적단체성을 게시하고 ‘6.15TV’와 ‘주권방송’의 이적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공안기관이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서 상투적으로 써 먹는 냉전논리이고 공안시각으로 수없이 이에 대해 논박했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음 구체적 혐의점으로
1. 실천연대 제6기 대의원대회(2008)에 참가. 새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거나, 2009년 ‘한대련 통일학교’에 참가했고 2010년 청학연대의 ‘2010 여름 6.15통일캠프’ 참가하여 활동한 것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했다고 모함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통일운동단체이고 그 활동내용도 공동선언이행 등 자주통일운동일뿐 이적동조라 할 수 없다.

2. 이적표현물 제작반포·취득·소지혐의로, 황선 대표의 시화집, ‘끝을 알지’를 펴냈거나, 인터넷 블로그 등에 자작시를 게시하고 ‘통일뉴스’가 보도한 내용 일부를 인터넷 블로그의 <언론돋보기>에 게시한 것을 찬양·고무 동조했다고 모함했다. 그러나 이 또한 자작시 또는 언론보도 부분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하는 양심에 따른 표현의 자유 행동일 뿐 그 누구를 찬양·고무 동조했다는 것은 냉전·공안시각일 뿐이다.

3. 이메일을 이용한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혐의로, 자신의 이메일 계정에 <한국학생운동사> 등을 저장한 것을 역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 동조했다고 혐의를 씌웠다. 터무니없는 모함이다.

4. 윤기진 옥중작성 이적표현물 인터넷 이메일 반포 등 혐의로, 이는 윤기진 전 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이 옥중에서 황선 대표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자신이 가입 사용 중인 인터넷 홈페이지 또한 인터넷 카페 ‘통일파랑새’ 등에 게시한 것으로, 이와 관련 윤기진의 옥중서신과 관련 이적표현물 혐의는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으며 개인의 사생활과 그의 내면의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뿐이다.

5. 인터넷 ‘6.15TV’, 통일카페 이용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혐의와

6. 인터넷 및 ‘채널6.15’를 이용한 이적표현물 반포 등 혐의는 황선 대표가 인터넷 대중매체인 <자주시대의 진보의 눈 6.15TV>내 ‘황선의 통일카페’로 활동하면서 사회현상과 통일정세 등 각계인사와 대담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한 것으로 이를 문제 삼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가로 막는 반인권, 반통일 행위이다.

7. 주거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황선대표의 옥중수기를 북에서 출판한 ‘고난 속에서도 웃음은 넘쳐’와 남편 윤기진 씨의 옥중수기를 가지고 있었다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를 묻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토크콘서트를 개최하여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를 씌웠지만 실제 콘서트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이 전혀 없어, 공안당국은 위와 같이 10년 15년 전의 활동이나 일기, 시집 등을 문제 삼고 있었다.

통일콘서트에서 황선 대표가 말했다는 공안기구가 제시하는 내용을 다 인정한다 해도, 왜 그런 말이 반국가단체를 찬양하는 것인지, 종북공안몰이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로써, 북에서는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돌보아준다’거나 ‘평양산원이 고위급 인사만 가는 곳이 아니라 평양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용한다’거나 ‘인민대학습당에 어떤 강좌가 몇 시에 있는지 그런 광고를 하더라’ 그런 광고들에서 ‘대동강맥주, 맛있는 맥주를 먹으면 지상낙원같이 느껴진다. 그런 묘사를 할 때 독일이 지상낙원이겠죠. 우리말대로 하면 지상낙원같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일까요. 피지섬이나 이런 데를 가면 지상낙원으로 느껴질 거예요.’

이러한 말들이 어떻게 ‘의도적으로 연출된 북한사회의 상황을 북한사회 일반의 상황인 것처럼 전달함으로써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것으로 될 수 있나! 참으로 동족대결정권의 냉전논리와 공안시각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죽했으면 우방이라는 미국조차 국무부 대변인이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하며 미국시민권자(신은미)의 인권침해를 우려했겠는가. 또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매체들이 ‘통일콘서트’에 대한 종북몰이와 정당해산 등 권력남용을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황선 대표는 무죄석방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정통성이 의문 받는 떳떳하지 못한 정권이면서 지난 2년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하고 분단으로 고통 받고 있는 온 겨레의 통일열망까지 짓밟고 있었다. 정당해산 이유로 댄 ‘북한공산집단의 위협과 도발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냉엄한 안보현실’을 강조했듯이 함께 자주통일을 해야 할 상대의 존재를 통일운동 탄압의 빌미로 삼고 있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 체계는 분단과정의 산물이면서 동족대결의 수단이며 종북·공안몰이 칼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주장한다. 반인권,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고 이 악법으로 구속된 모든 양심수는 조건 없이 석방되어야 한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이 사법적으로 확인된 이상 18대 대선의 유효성 여부를 유권자의 참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한 ‘내란음모’ ‘지하혁명조직’이 무죄이고 없었던 것으로 최종 사법판단된 이상 진보당 해산결정은 무효화해야 한다.


<기고> 남북 합의정신으로 오욕의 분단70년을 끝장내자-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미국은 더 이상 남북대화에 재를 뿌리지 마라

‘삼천만 형제·자매여! 조선이 있고야 조선사람이 있고 조선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무슨 단체도 있는 것이다. ...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해방공간에서 미군정과 이승만의 ‘남조선단독정부수립’ 집착을 반대하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삼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고함’이란 성명(1948.2.10.)의 한토막이다. 한 평생을 항일광복투쟁에 온몸 바쳐 온 김구 선생이, 해방된 조국이 다시 남북으로 갈라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외친 절규였다.

이어 성명에서는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순탄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 협력하지 않겠다”고 결연한 다짐을 했다. 그러나 노투사의 애국충정과는 달리 단선·단정은 착착 진행되었고 이를 막아보려 38선을 넘나들며 혼신분투하던 선생은 독재자의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통일된 자주정부를 세우려다 희생된 통한의 비극이었다.

분단 70년을 맞는 오늘의 남북관계

이러한 통한의 역사를 지닌 오욕의 분단 70년을 맞게 되었다. 강도 일제의 식민지지배보다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침략자 일제는 같은 처지의 독일처럼 전승국으로부터 분할점령을 당하지도 않은 반면 식민지지배에 맞서 항일독립투쟁에 승리한 우리 민족은 오히려 강대국의 패권전략에 밀려 원하지 않는 분할점령을 당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소 양군의 남·북 점령은 그 자체로 민족분단의 단초가 되었고 우리 민족의 의사에 관계없이 전후세계의 냉전체제에 강제편입 되어 동포·형제끼리 겨루어야 했으며 끝내는 동족상잔이란 씻을 수 없는 비극마저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남북 사이에 극도의 불신과 대결, 증오와 말살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물론 남북 사이에는 불신과 대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떠안게 된 수치스런 응보와 민족적 고통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되었고 그러한 민족적 각성의 토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7.4남북공동성명이었고 남북기본합의서였으며 6.15남북공동선언, 10.4평화번영선언 등이었다.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란 조국통일3대원칙을 합의했고, 남과 북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떠한 외세의 간섭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평화적인 통일을 연합·연방제를 통해 이루어내며 다방면적인 교류협력으로 공동번영을 하자고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는 남북의 최고수뇌들이 직접 서명하거나 그 위임을 받은 고위당국자가 서명을 한, 국제관례로 보자면 조약에 해당되고, 그 보다 우리 민족끼리 합의라는 데서 외국과의 조약을 뛰어 넘는 절대적 이행의무를 지녔다 할 터이었다.

이 가운데 민주정부 시기에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선언만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곧바로 이행에 들어갔고 눈부신 실천효과를 내고 있었다. 남북의 최고수뇌회담을 비롯하여 총리급, 부총리급, 장관급(국방장관 포함), 장성급 회담 등 당국자회담이 이어졌고 수많은 정치·경제·군사·문화에 관한 의제들을 협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한 남북기업들 사이의 경제협력사업이 북녘내부 깊숙이까지 파고들었으며 금강산·개성관광에 200만 명이 넘게 다녀오기도 했다. 개성공단에서는 남·북의 노동자들이 제품을 생산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었다. 분단으로 가장 고통을 안고 살아오던 이산가족들의 회한도 풀 수 있었다. 그 밖에 민간 부문에서의 사회문화교류사업, 인도주의협력사업도 정부의 지원 아래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8.15광복절, 3.1절행사, 6.15민족공동행사 등을 남과 북으로 오가며 진행되었다.

이렇게 한 해 동안 수십만 명이 남북을 오갔으며 생산된 제품 지원물자들이 오고 갔었다. 그 만큼 얼어붙었던 불신의 벽을 허물며 신뢰를 쌓아갔고 오랜 분단으로 이질화된 상대를 이해하며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남북사이의 화해·협력과 평화와 통일로 갈 수도 있을 희망적 상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남북사이 합의이행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차이 때문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에서 말했던 남북합의들은 철저히 외면·무시되었다. 숱한 과정들은 생략하기로 하고 우선 이른바 ‘박광자 피격사건’을 빌미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었고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한 5.24조치로 남북사이 모든 인적·물적 교류·교역이 완전 단절되고 말았다. 개성공단만이 겨우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당국사이 대화가 끊기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지 못하니 또다시 분단의 벽은 두터워지면서 불신과 대결도 심화되었다. 특히 군사적 대치는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남과 북은 경제건설과 복지부분에 써야 할 엄청난 국력(재정)을 동족을 죽이는 군사부분에 돌렸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쟁연습은 자칫 전면전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분단 70년을 맞는 오늘의 남북관계이다.

신년 초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표명한 반가운 소식

그런데 새해 들어 조심스럽지만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남과 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신년사’,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70년 분단의 벽을 허물고 평화통일의 문을 열어나가자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들에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 안고 후하게 평가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 있었는지 그 요지를 짚어보고 그 말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와 원칙, 실천을 해야 할 것인지 앞에서 보았던 이미 합의된 공동성명, 공동선언 등을 대입시켜 알아보기로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 남북관계 부문 요지

먼저, 새해 1월 1일 북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육성 ‘신년사’가 발표됐다. 신년사 중 통일부문과 관련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분열된 때로부터 70년 세월이 흘렀다’(경칭 생략)로 시작하여 <조국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 ‘이것이 전체 조선민족이 들고나가야 할 투쟁구호’라고 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북과 남은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절대시하면서 체제대결을 추구하지 말며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민족의 대단합,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통일 문제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순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남조선 당국은 북남 사이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두어야 한다.’

‘북과 남은 이미 합의한대로 조국통일 문제를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여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 와야 한다.’
‘북과 남이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 통일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것은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북과 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뜻과 힘을 합친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북과 남은 이미 통일의 길에서 7.4공동성명과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10.4선언과 같은 통일헌장, 통일대강을 마련하여 민족의 통일의지와 기개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화,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전체 조선민족은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거족적 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올해를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 놓는 일대 전환의 해로 빛내어야 한다.’(이하 생략)라고 했다.

이러한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평가는 위에서 밝힌 대로이다. 그리고 정치권과 언론들은 신년사에서 밝힌 ‘최고위급회담’ 거론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통일 부문 요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1월 12일에 있었다. 통일 부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70년 전, 광복을 기다리던 그 때의 간절함으로 이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길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로 시작,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국민들의 저력을 바탕으로 조국의 광복을 이루었다.(존칭생략) 이제 국민들의 그 힘이 한반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통일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일의 비전과 방향에 대해 국민의 마음과 뜻을 모으고, 범국민적, 초당적 합의를 이루어내서 평화통일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대화에 응해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부터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민족 동질성 회복 작업 등에 남북한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여 함께 통일의 문을 열어가길 바란다.’

‘정부는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해 민간차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특히 이산가족문제는 생존해 계신 분들의 연세를 고려할 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번 설을 전후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이 열린 마음으로 응해 줄 것을 기대한다.’

‘또한 올해 광복절 7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공동 행사를 남북이 함께 만들어가길 바란다.’
‘올해는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롭고 자유로이 왕래하고, 유라시아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길에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

이상이 기자회견문 내용이다. 특별한 대북제안이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특이사항이 없었다.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고위급회담 제기와 관련한 질문) “그 (분단)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 평화통일을 열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서 “남북간에 정상회담이라도 그런데 (분단고통 해소)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걸 (정상회담) 하는데 있어서 전제조건은 없다”면서도 “이런 대화를 통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어떤 진정성 있는 그런 자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제조건은 아니지만 이것이 (북의 비핵화 문제) 해결이 전혀 안 되는데 평화통일을 이야기할 수 없다”며 “남북간 또는 다자 협의를 통해서 대화로 이 문제도 풀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사실상의 조건을 제시했다.

또한 5.24 조치 해제와 관련 질문에 “5.24 조치가 사실은 남북 교류협력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이런 조치가 생긴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보상이라는 그런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시켜야 한다하는 차원에서 이 조치가 유지되어 온 것”이라며 “5.24 조치 문제도 남북이 어쨌든 당국자 간에 만나서 서로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고 ‘대화’를 해결방법으로 제시했다.

인용문이 길어졌다. 분단 70년을 맞아 남북 최고지도자들이 밝힌,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실천의지가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표현한 그대로를 한눈에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고 평화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정상회담(최고위급회담)도 피하지 않겠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들에서 평가했듯이 분단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온 겨레들에게 뜻있는 새해 선물이 될 수가 있었다.

대화에 임하는 남과 북이 되새겨야할 몇 가지 원칙적 문제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비록 오늘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있지만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확신이 서 있다면 언 땅을 녹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바로 이미 남북이 합의한 공동선언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반드시 있어야 할 남북대화에 임하는 몇 가지 원칙적 문제들을 합의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남북대화에 임하는 자세 문제이다.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남북기본합의서) 남과 북에서 우려하고 있는 이른바 ‘적화통일’ ‘흡수통일’을 불식시킬 수 있다. 체제의 우열을 따지며 상대체제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필연적으로 체제대결로 이어지고 끝내는 분쟁(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불신과 대결관계를 신뢰를 쌓고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관계 개선에서부터 평화와 통일로 가는 과정의 원칙적 문제이다. 이 답안 역시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이 최선의 교본이다. 남북관계, 민족문제, 통일문제 등은 다 같은 주제의 다른 표현들이다. 모든 사물에서 적용되듯이 당사자 해결원칙이어야 한다. 우리 민족문제는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주변국이라 해도 조언은 들을지언정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우리민족끼리 해결해야 한다. 바로 자주의 원칙이다.

또한, 남북은 대화에서 화해·협력·통일세상으로 가는 과정의 수많은 난관과 험로가 있을 수 있지만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평화적 방법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남북 기본합의서에서의 불가침의 원칙 7.4성명에서의 평화통일 원칙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쟁은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살육과 파괴행위이다. 하물며 동족사이에서야!

다음으로, 대화분위기 조성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 장애로 되고 있는, 상대를 자극하는 어떠한 형태의 비방 중상이나 군사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또한 기본합의서에서의 내정 불간섭과 비방 중상 중지에 해당하고 공동성명의 평화통일지향 과정의 필수적 책무이다. ‘비례의 원칙’이란 말이 있다. 상대를 자극하는 비방이나 군사행동으로 얻는 손·익과 하지 않아서 얻는 손·익을 민족전체의 존엄과 이익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스스로 밝힌 통일지향 의지와 배치되는 통일운동에 대한 공안탄압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란 가상의 적을 만들어 통일운동은 물론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산시키고 강제출국 시키며 감옥에 보내는 반인권·반민주·반통일적 공안몰이를 끝내야 한다. 6.15공동선언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없애기로 했다. 세계의 유력언론들과 특히 미국 국무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남북 대화분위기에 재를 뿌리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미국은 남북 대화분위기에 재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말과 새해 초에 남북사이 대화분위기가 일고 있을 때 미국은 또다시 제국주의 본성을 드러내 대북제재를 감행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일 이른바 ‘소니영화사 해킹’ 사건과 관련 명확한 증거도 없이 북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이른바 ‘대통령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는 시작일 뿐 추가적인 제재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오늘 현재까지 미 행정부와 의회에서는 테러지원국 재지정, 금융제재 등 강력한 추가조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유력한 언론들과 사이버 보안업체들은 ‘소니영화사 해킹’이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했으며 오히려 ‘소니’사 내부의 전·현직 직원들의 소행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남북사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자칫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는 한미연합 전쟁연습을 중지해야 한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기 전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팀스피리트연습을 중단시킨 사례가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면 반드시 북을 자극하는 전쟁연습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반세기가 넘게 그 어떤 침략의 위협 속에 살아오고 있었다. 따라서 그 침략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국력의 상당부분을 방위비로 쓰고 있었다. 가령 남북이 화해하고 단합하여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 나간다면 그 엄청난 국방비들을 줄일 수 있고 경제발전과 복지부문에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동족을 겨냥한 외세와의 공조라는 이율배반도 없었을 터이었다. 답은 뻔하지 않는가. 화해하고 협력해야 하며 공동번영하고 끝내는 자주적 평화통일로 가야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분단 70년의 오욕의 역사를 끝장내고 남과 북 해외 온 겨레가 떳떳한 민족적 자긍심으로 세계 앞에 우뚝 서야 하지 않겠는가.


<기고> 비전향장기수의 조건 없는 2차 송환을 촉구한다-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가득 찬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오곡이 무르익는 풍요의 계절을 두고 한 말이다.
이러한 추석연휴가 끝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민족 최대 명절이 ‘민족대이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 만큼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햇곡으로 음식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고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 고향사람들을 만나 푸짐한 음식과 끈적한 정을 나누는 명절이기도 하다.

명절이 더욱 고통스러운 이산가족들과 비전향장기수들

그러나 이러한 추석명절이 되어도 찾을 곳도 만날 사람이 없어, 오히려 명절이 더욱 고통스럽기만 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남과 북으로 갈리어 흩어져 살며 수십 년간 오갈 수도 만날 수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산가족들이고, 분단으로 인해 본의 아닌 동족상잔을 직접 겪으며 수십 년을 감옥을 살았던 비전향장기수들이다. 이들은 다 같이 6.15공동선언에서 천명된 인도주의문제 해결의 대상자들이었지만 분단장벽과 이를 더욱 견고히 하는 동족대결정책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바로 불신과 대결을 끝내고 화해와 단합, 나아가 자주적 평화통일을 약속한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6.15, 10.4선언을 매몰차게 짓밟고 있는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외세공조, 동족대결정책으로 온 겨레가 즐기는 민족 최대명절마저도 아픔을 안고 지내야 했다.

우리 민족은 강도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맞서 민족해방투쟁을 벌여 조국광복을 이뤄냈지만 새로운 외세는 우리 민족의 의지에 반해 이 땅을 남북으로 가르고 민족분열을 강제하였다. 외세의 이 같은 반민족적 범행이 이 땅에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 첫 번째 사유가 되었다. 그리고 동·서 냉전에 강제 편입된, 남과 북은 본의 아닌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전쟁와중에 미국의 원자탄투하 공갈(1950.11.30 트루먼 미대통령의 기자회견)로 수백만이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가족·친척들이 남북으로 흩어져 살게 된 두 번째 이유였고 주된 사유로 되고 있다.

이렇게 가족과 고향을 떠난 이산가족·피난민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통상 ‘천만이산가족’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50여년이 지난 1998년에 실시된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는 12만9천575명이었고 2014년 8월 31일 현재 46.5%인 6만312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통일부 발표) 2013년 말까지 5만7천784명이던 이산가족 사망자수가 8개월 만에 2천528명이나 늘어난 셈이다. 이산가족 상봉대기중인 생존자 가운데 90세 이상이 10.4%이고 80대가 41.3%, 70대가 29.1%를 점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점쳐진다.

남북으로 흩어져 사는 가족·친척들의 상봉사업은 1985년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1984년 남쪽에 큰 수해가 있자 북측 조선적십자회가 남측의 수해·이재민을 위한 구호품 제공제의(1984.9.8)가 성사된 일(쌀 5만석, 천 50만미터, 시멘트 10만톤 외, 9.29-10.4일까지 인수완료)을 계기로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합의한 ‘이산가족 방문단 및 예술단 상호 교환문제’에 따라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남북에서 모두 65명이 92명의 가족·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뒤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적십자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방문단교환, 생사 및 주소 확인, 서신교환 등이 이뤄지게 되었다. 2000년 8.15~18일까지 1차 상봉(1,172명)을 시작으로 2014년 2월 20~25일(723명)까지 19차례에 걸쳐 1만9000여명의 상봉이 있었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7차례 557가족 3,748명이 화상상봉을 했으며 2003년까지만 실시된, 4회에 걸친 679명의 서신교환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산가족상봉사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매해 2회 이상 실시되고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단 2회(2009.9.26-10.1 2010.10.30-11.5) 뿐이었고 박근혜정부에서는 2014년 2.20-25일까지 단 한번만 이루어졌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6.15, 10.4선언 등 남북사이 합의를 공식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상대를 화해와 단합, 교류·협력, 평화와 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불신과 대결, 더 나아가 정권붕괴를 바라며 흡수통일망상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남북사이 모든 교역·교류 차단 등 5.24조치, 금강산관광 중단에서 인도주의사업마저 제동을 걸었다. 반면에 한미동맹(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한·미연합 북침전쟁연습 감행 등 정치·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대북 고립압살정책을 일관해 오고 있다.

1차 송환으로 끝난 게 아닌 비전향장기수 문제

6.15시대에 반하는 또 다른 대결정책의 피해자가 위에서 말했던 2차 송환 희망 비전향장기수들이다. 비전향장기수란 분단으로 인해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왔던 장기복역 양심수들이다. 이들의 존재자체는 분단과 동족상잔, 냉전과 대결시대의 산물이었다.

6.15공동선언 제3항에서 밝힌 인도적 문제 해결의 핵심중의 하나는 바로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였다. 작게는 45년까지 0.75평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 온갖 잔혹한 전향공작에서도 자주통일에 대한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그들이 그리운 가족이 있는 신념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남북이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인정하여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9월 2일 신청자 95명 중 9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1차 송환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1차 송환대상자로서 통보받지 못한 분들이 있었고,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며 전향무효선언을 하면서 2차 송환을 적극 희망하는 분들이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9.2송환(1차 송환)으로 남겨진 가족들의 재결합(추가송환)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정순택·정순덕 노인을 비롯한 33명의 장기복역 양심수들이 2001년 2월 6일 ‘장기구금양심수 전향무효선언과 북녘고향으로의 송환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추가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따라 1차 송환사업을 주도했던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는 통일부에 2차 송환 희망자 명단을 제출하고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인도주의 실천과 동포애 정신으로 빠른 시일 안에 2차 송환이 이뤄질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1차 송환이 끝난 뒤 통일부의 자세는 1차 송환 과정의 입장과 많이 달랐다. 비전향장기수문제(6.15합의)는 1차 송환으로 끝났고 더 이상 송환대상자가 없다(전향장기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는 것이고 2차 송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납북자, 군국포로와 상호교환해야 한다는 ‘상호주의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2차 송환의 발목을 잡고 있던 통일부의 이 같은 주장도 6.15합의정신과 인권 그리고 법리논쟁 등을 거쳐 ‘전향’ 문제는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고 ‘상호주의론’도 그 기세가 꺾인 상태였다. 그 과정을 잠시 짚어본다.

2차 송환의 걸림돌, ‘전향문제’와 ‘상호주의론’

먼저 전향문제이다.

전향제도는 그 자체가 일제의 사상탄압수단의 유제로 사상·양심의 자유에 배치되는 반인권 반인륜제도였다.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출소한 이른바 좌익수들을 다시 잡아들여 감호처분했던 사회안전법(1975년 제정)이 기본권침해의 위헌성으로 폐기되었고(1989년), 사상전향제도 자체가 폐기되었으며(1998년), 사상전향제도의 대체입법이었던 준법서약서(1998년)마저 2003년에 폐기되었다. 전향자체가 무효화된 셈이다. 특히 온갖 잔혹한 고문 등 전향공작으로 강제전향한 것은 당연히 무효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가기관인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의문사 진상규명 진정을 조사하면서 ‘잔혹한 고문 등 강제전향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것을 확인하고(1974~76년 사이 대전, 대구교도소에서 최석기, 박융서, 손윤구 씨 등 강제전향과정에서 사망, 1980년 7월 11일 청주감호소에서 변형만, 김용성 씨 등 사회안전법과 감호처분에 항의 단식중 강제급식으로 사망) 사상전향제도의 위헌성과 강제전향공작의 위법성을 밝혀냈으며 이들 희생자들은 잘못된 법과 제도에 항의하다 희생된 민주화운동에 기여했고 국가는 이들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의문사진상규명위 1기 2002년과 2기 2004년에 각기 결정)

사상전향문제가 중요한 인권침해문제로서 유엔인권이사회도 이 제도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된다고 78차 회의에서 결의했었다. 바로 세계인권선언 18조 등 사상·양심의 자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6조 평등권과 18조 1항 사상·양심의 자유, 19조 1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등 관련 단체와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는 2001년 2월 6일 2차송환촉구기자회견이 있은 이후 통일부의 ‘전향문제’ 제동에 맞서 기자회견과 공청회, 토론회 9.2 송환기념 및 2차 송환 결의대회, 통일부장관·적십자사총재 면담, 각종 언론 인터뷰와 기고문 등을 통해 6.15공동선언 정신에 입각, 인권과 인도주의 차원에서 잔혹한 고문 등 전향공작의 범죄성을 고발하며 적극 대응하여 마침내 2004년경부터 통일부당국에서도 2차 송환 희망자들을 ‘비전향장기수’로 정리하게 되었고 송환요건의 자격문제는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다음으로 이른바 ‘상호주의론’이었다.

이는 비전향장기수 송환(2차 송환) 문제를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와 연계시켜 상호교환하겠다는 통일부의 일방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 문제’로 이산가족문제에 포함시키기로 합의된 사항이다.(2006년 2월 23일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

이 문제는 남북이 함께 안고 있는 인도주의 문제로써 생사확인사업과 상봉사업이 수차례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 또한 분단과 냉전시대의 산물로서 남북사이 신뢰구축과 함께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인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연계시킬 사안이 전혀 아니다. 어쨌든 이 문제는 통일부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기에 더 이상 2차 송환을 발목 잡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비전향장기수송환운동은 사실상 2001~2005년 기간에는 앞에 말한 ‘자격문제’와 ‘상호주의론’ 등 부당한 억지논리에 맞서 싸우는 일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하반기에 들어서 2차 송환에 서광이 비치게 되었다.

잠깐 서광이 비쳤다 얼어붙은 2차 송환

2005년 9월 2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전향장기수 북송 가능성을 묻는 여·야의원(신기남, 박성범)들에게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인도주의적’, ‘인권’, ‘인도적 조치’ 차원에서 검토할 용의가 있다며 “상호주의 원칙을 굳이 적용하지는 않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같은 해 9월 30일 2차 송환 희망자 고 정순택 노인이 세상을 떠나자 비록 생전에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유해송환’이란 이름으로 북녘 가족에 유해를 인도했었다. 당국에서 ‘송환’이란 말을 쓴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했다. 바로 비전향장기수 송환의 당위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1993년 인민군 종군기자 리인모 노인 송환 때도, 2000년 1차 송환 시기에도 ‘북한방문’이란 형식을 갖추었을 뿐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2차 송환이 임박했다며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와의 인터뷰 요청이 줄 잇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 말께부터 송환관련 분위기는 갑자기 얼어붙고 있었다. 여기에는 맥아더동상철거투쟁(9.11)에 대한 보수세력의 고소·고발 사태와 공안탄압, 강정구 교수의 ‘통일내전론’을 둘러싼 이념대립, 파주 보광사 비전향장기수묘역에 대한 보수단체의 패륜행패(12.5), 보수단체 회원들의 통일운동가 김남식 묘소 훼손과 전국연합 사무실 앞 시위소동(2006.1.15) 등 당시 보수야당(현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화해협력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보수단체들의 고소·고발 시위소동에다 공안탄압 등이 작용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2005년 12월말 2차 송환에 매우 긍정적이었던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사임이 겹쳐지고 있었다.

이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평화번영선언으로 지지부진하던 남북관계는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총리급 회담, 경제부총리급 회담, 국방장관 회담 등 고위당국자 회담을 비롯하여 경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사업, 인도주의협력사업이 활발해지고 있었지만 곧 이어 실시된 17대 대선 패배로 남북사이 화해·협력관계는 그 동력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동선언 외면·무시와 강화된 외세공조 동족대결정책으로 ‘송환’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남북관계가 파탄 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2001년 2차 송환을 희망했던 비전향장기수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03년 김경선 노인(함남·신포)으로부터 2013년 고성화 노인(제주)까지 14명이 꿈에도 잊지 못할 가족과 신념의 고향을 찾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이 기간 2000년 1차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33명과 1993년 송환된 리인모 인민군 종군기자까지 34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음.)

그리하여 2014년 9월 15일 현재 김기찬(함북·청진-95세) 노인 등 22명(2001년 이후 새로 희망한 분까지 포함)만 생존해 있다. 90세 이상이 5명이고 80세 이상이 16명이다. 대부분이 고령에다 오랜 옥고의 후유증과 난치성을 비롯한 각종 질환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2차 송환 희망자 가운데는 앞에서 거론된 ‘전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쟁포로 출신들이 있다. 전쟁포로는 생명 및 신체에 대한 폭행, 상해, 학대, 고문을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욕적이고 치욕적인(전향 강요도 포함) 대우와 부당한 재판형의 집행도 당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 또한 적대행위가 끝난(정전협정) 60일 이내에 송환되어야 했던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로수용소에 수용했다가 재판에 회부해 수십 년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를 송두리째 박탈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고 있었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인도주의사업이자 인류양심의 문제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에서 합의된 인도주의사업이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도 될 수 있는 화해협력사업이기도 하다. 원적지 회복원칙과 거주이전의 자유 등 인권문제이기도 하고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과의 만남이란 인륜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주통일에 대한 신념을 지켜온 평생의 염원이 이뤄져야 할 인류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 비전향장기수 송환에는 정부의 6.15, 10.4선언 이행의지가 필수적이다.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10.4선언 등을 합의한 상대의 실체를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동족사이 대결자세를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대결은 끝내 전쟁을 불러오게 되고 우리 민족은 잘못하면 절멸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어리석은 짓은 거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박근혜 정부는 남북이 합의한 공동선언 이행에 당장 나서야 하고 외세공조 동족대결이란 반민족 반통일 정책을 그만두어야 하며 비전향장기수의 조건 없는 2차 송환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시국 논평] 불청객 오바마는 3각 군사동맹 집착을 버려라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70년 강점 미군은 아메리카로,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오는 4월 25일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울에 온다. 지난 3월 헤이그 한미일정상회담에서 오바마가 제기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4.7 워싱턴)와 한·미·일 안보회의(DTT : Defense Trilateral Talks)(4.17-18 워싱턴)에 이은 이른바 북핵문제 해결과 3국간 안보협력 차원의 한·일 등 아시아 순방 일정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의 방한을 두고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5일 '한·미간 포괄적 전략동맹발전방안' '북한·북핵문제 관련 한·미공조' '동북아정세 및 범세계문제 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도 18일(현지시각)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일정을 설명하면서 이번 한·일방문이 지난달 한·미·일 3자 정상회담 성과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이번 양국방문을 계기로 한·미·일 3국간 안보협력을 폭넓게 진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언론들은 이번 오바마의 한·일방문이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MD(미사일 방어)체계 편입과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불청객 오바마의 방한

어느 것이든 우리 민족 감정으로는 오바마의 방한은 불청객일 뿐이다. 미국(또는 일본) 이익이 우리(민족) 이익과 일치될 수 없고 동족을 겨냥한 외세와의 공조는 우리 민족이성이 결코 허용할 수 없으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 등 과거 범죄청산 없는 일본과의 억지악수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대북압살공조 압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지향하는 이른바 '아태지역 재균형전략'과 무관치 않다. 오바마 정부는 2009년 태평양지역에서 외교·군사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했고, 2011년엔 경제·군사적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 강화를 위해 '아태재균형전략(Rebalancing forward the Asia·Pacific)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여 '신국방전략지침'(2012.1.5)에 반영시키면서 미국의 국가안보 및 세계의 안보에 대해 부정적인 대상으로 북, 중국, 이란을 거명하기도 했다.

특히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2014.3.4)를 통해 2020년까지 해군전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배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는 핵항공모함 10대중(1대 수리) 6대와 핵잠수함 60%를 아태지역에 배치한다고 했다. 이 같은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는 중국견제 목적도 있지만 70년 가까이 자행하고 있는 대북 적대정책과,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어 북을 고립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적 침략목표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중국견제와 대북 고립압살정책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려면 세계에서 미국만을 믿고 따르는 유일한 나라들, 바로 한국과 일본과의 3각 군사동맹체가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었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존재하지만 한·일관계가 원만치 않아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의 수단이 될 수 있는 한·미·일 동맹체 구성에 절름발이가 되고 있었다.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간에는 미국의 희망과는 달리 쉽게 손잡을 수 없는 과거사문제와 영토문제, 역사인식의 건너기 힘든 강이 있다. 특히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식민지지배 등 과거범죄와 일본군위안부 강제징집 등의 부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주장, 독도 재침략 책동, 역사교과서 문제, 전범 유골이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군국주의 부활책동 등 우리 민족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정적 요인들이 쌓여 있다. 따라서 일본의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 재범방지에 대한 확고한 약속이 없고서는 관계개선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미국의 한·일관계 개선 집착

마침내 미국이 이처럼 겹겹으로 얽혀진 난제들을 외면한 채 한·일관계 개선에 발 벗고 나섰다. 2013년 12월 6일 서울에 온 조셉 바이든 미 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청와대 면담에서 "한·일 양국이 각각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라며 "한·일관계 장애요소들이 조속히 해소되어 원만한 관계개선"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또한 "미국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며 한·중관계 회복을 경계하는 외교적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현재 한·일관계는 한·미·일 3각 동맹에 파열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이를 언론들은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주장을 지지한데 대해 한국은 이해해야 된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같은 날 연세대에서의 정책연설에서도 "역내의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확대한다면 더 안정적인 지역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오늘날까지 아직도 미국인들은 수십억 불을 들여 불평 않고 한국을 지원하고 있다. 2만 8,500명의 미 장병들은 한국군 장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보초서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한국을 돕고 있으니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한·일관계 개선에 군말 없이 나서라는 망발이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잇따라 2014년 2월 13일 서울에 왔다. 그는 한미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일) 두 동맹국이 서로서로 과거문제는 조금 젖혀두고 양자간, 3자간의 협력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주제넘게 말했다. 이 자는 또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안보문제"라며 "현재 모든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시피 한 이런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과거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사실상 대북 안보협력체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미국정부가 센카쿠(댜오위타이)열도는 미·일방위조약의 대상이라는 입장을 표명해 온 데 반해 독도의 경우 한·미방위조약의 대상인지를 표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요지의 기자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하고 있었다. 바로 미국의 음흉한 얼굴이 드러나고 있었다. 한국(또는 우리민족)에 대한 일본의 과거범죄나 영토주장 따위는 한·미·일동맹체 유지에 문제될 게 없다는 제국주의적 식민지 논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바마가 나섰다. 위에서 말했듯이 헤이그에서의 이른바 3차 핵안보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한·미·일 정상회담을 주선한 것이다. 당시 세 사람의 일그러진 모습만으로도 이들 만남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억지악수인지를 짐작케 했다. 오바마가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다"면서 "한·미·일의 긴밀한 공조로 북한의 도발은 단합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미국의 한국 및 일본에 대한 공약은 확고하다. 금번 회담을 통해 다가오는 본인의 아시아순방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것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나 미사일방어 등을 포함해 외교적 군사적 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3국정상은 회담의 거의 대부분을 북핵문제에 할애했다"면서 "현재 북핵과 관련된 현상을 평가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3자 차원의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으며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회담결과나 군사분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들은 "미국은 한·미·일간 합동군사훈련과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는 4월 오바마의 한·일 순방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미국은 한·일간의 쌓여진 과거청산문제나 영토문제 등 주요 현안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중국포위와 대북 고립압살공조에만 집착하여 3각 군사동맹체 강화와 특히 동북아에서의 신냉전체제를 획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미국이 종용

미국의 한·미·일 3각 군사동맹과 관련 미국 고위 관리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다니엘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는 2014년 3월 4일(현지시각) 미 상원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제시했다. 그는 "현재의 정책"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북한이 미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일본은 MD용 요격미사일을 사용해 북한의 미사일을 파괴할 수 없다"며 "올해 안에 집단적 자위권을 명시하는 등 미·일안보가이드라인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미국이 종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발언이다.

그는 또한 "분명한 사실은 한·미·일 3자간의 전략적 협력은 동북아에서 안보질서를 발전시키는데 본질적인 사안에 해당된다. 누구도 역사문제의 부담으로 인해 우리가 안전한 미래를 건설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마치 한국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순방을 계기로 우리의 노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히 식민지 종주국을 자처하는 모습이었다.

데이비드 헬비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역시 같은 날 한미동맹의 최우선 순위로 MD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사일 위협을 탐지·방어·분쇄·파괴할 수 있는 '동맹의 포괄적인 미사일 대응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우선순위"라며, 이를 위해서는 "지휘통제통신컴퓨터(C4)뿐만 아니라 정보감시정찰(IRS)과 MD의 상호운용성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3자 안보협력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억제의 핵심적인 요소"라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세 나라가 군사훈련에 참가하고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협력과 대화와 투명성을 제고하는 틀로서 3국 국방회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3자 국방회담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 만들어진 핵심적인 3자 대화틀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가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전문을 폭로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3국 국방장관회담은 한마디로 3각 동맹체로 가는 수단이었다.

미국은 우방인가 적인가

이처럼 대통령으로부터 고위정책입안자들까지, 우리(민족)에게는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식민지배 침략자였으며 그 과거범죄에 대해 사죄도 배상도 재발방지의 진정성도 보이지 않고 있는 일본을 미국은 저들의 제국주의 패권야망과 배타적 자기이익만을 위해 전범국가의 과거범죄를 눈감으며 군대도, 교전권도 부정되는 평화헌법을 무시한 채, 재무장의 길을 터주고 군사대국화와 군사동맹체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의 호혜평등이나, 우애와 정의를 외면한 미국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다. 과연 이러한 미국이 우리에게 친선·우호관계의 우방인지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과 이익에 반하는 적인지를 이제는 냉정하게 민족적 이성으로 판단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에 매달리고 있지만 지난 역사에서 미국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은 우리의 분노를 사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로 미국은 일제의 조선침략에 편승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의 주권을 유린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나고도 전범국이며 패전국인 일본은 분할점령 등을 하지 않으면서 피침략국이며 대일항전 전승국인 조선은 미국주도로 남북으로 갈리게 되었다.

또한 인류에게(특히 아시아에서) 용서할 수 없는 재앙을 안겨주었던 제국주의 전쟁의 주역인 일본이 다시는 군사대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주도로 평화헌법을 만들었지만 미국 스스로 이를 허물어버렸다. 바로 위에서 말했던 군대를 보유하거나 교전권을 허용치 않았고 동맹국과의 공동무력대응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일체 못하게 했었다. 그러나 미군은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에 경찰예비대 창설을 지시하여 군대를 가질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함께 '미·일안전보장조약' 체결(1952년 발효)과 이 조약의 몇 번에 걸친 개정으로 미군의 일본주둔과 자위대 창설 및 공동군사 대응기반을 마련했다. 1970년부터 자동 연장되고 있는 '안보조약'은 1978년 '미·일방위지침'(옛 가이드라인)으로 발전한다. 내용은 일본영토에 외부 무력공격이 있을 때 군사적 대처, 자위대 활동 영역은 '일본유사'시에만 자국방위에 한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 4월 미·일은 이른바 '신가이드라인'을 선언하고 이의 실효성을 법률적으로 받침하기 위한 관련법으로 '주변사태법' '자위대법 개정안' '미·일 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 등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주변사태법'이다. 일본주변의 유사시에 자위대가 '새로운 임무'로써 미군을 후방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일본이 미군의 전쟁수행에 국가총동원체제로 협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은 현행 일본의 평화헌법에 반하고 '신가이드라인'에도 없는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고(미·일 외교·국방회담(2+2) 2013.10.3) 다시 이를 합법화하기 위해 '미·일안보가이드라인'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1차 대상은 바로 북이다. 일본 자위대는 일본 본토와 자위대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공격이 없어도 미군에 대한 공격이 있으면 북한군과 북영토를 공격할 수 있으며 한반도 유사시 미군지원을 명분으로 남한에 들어올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승인은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고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묵인하겠다는 속셈이다. 미국의 이 같은 행패는 우리민족에게는 또 다른 가쓰라-태프트 밀약 재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과거범죄, 독도재침야욕, 일본군'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전범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 우리민족으로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본을 상대로 미국이 억지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를 강화하려는 단면을 알아보았다. 또한 그 3각 동맹이란 것이 70년 가까이 대북 적대정책을 감행하면서 고립 압살시키기 위한 바로 우리 동족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우리를 격분케 한다.

MD 편입 안 된다

이제 일본을 거쳐 3일 후 오바마가 이 땅에 온다. 이미 언론들에서 지적했듯이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에는 도움이 되지도 않고 엄청난 비용만 드는 미사일방어체제(MD) 편입강요와 이명박 정부 때 몰래 체결하려다 들통이 나 잠잠해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으로 미국이 끼어든 형식으로 체결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박근혜 정부가 말해오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는 문제 등도 회담 탁자에 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문제이다. 오바마는 함부로 우리의 고유한 민족 권리를 침해하는 역사의 범죄를 져서는 안 된다.

70년 강점 끝내고 제 고향으로 가라

우리는 또한 이미 7.4남북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통해서 어떠한 외세의 간섭 없는 우리민족끼리 평화적 통일을 선언했고 온 겨레와 전 세계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예산자동삭감문제가 미국인이 해야 할 문제라면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할 것이다. 정전협정이 규정한대로 유엔헌장 정신으로 인류가 지향해 온 정의와 평화 정신으로 이제 미국은 이 땅 70여년 강점 끝내고 명예스럽게 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정원 해체, 남재준 구속수사가 정답이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간첩조작범죄는 대결시대 절대 권력의 필연적 산물

간첩은 공안권력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원 주도하에 그들이 고용한 협조자로부터 해외총영사관까지, 심지어 이 사건 공소검찰조차 사실상 관여되고 있었다. 간첩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권유린에서부터 사법체계 파괴, 외국의 공문서 위조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이 반북대결, 종북몰이 그리고 집권정당에 정치공학적 이익이 된다면 어떠한 인륜도덕이나 외교적 무례까지도 개의치 않았다.

2013년 1월 21일 <동아일보>는 ‘탈북자 1만 명 정보 통째로 북한에 넘긴 정황’이란 제목의 이른바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서울시공무원’으로 강조된 피의자 유우성씨는 2013년 1월 10일 국정원에 의해 체포되었고 2월 23일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유우성씨의 간첩혐의는 공교롭게도 여동생의 진술 “오빠는 간첩”이란 말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판과정에서 여동생은 국정원에서의 진술을 뒤집었다. 국정원 등에서 운영하는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감금된 채 강압수사와 가혹행위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했다고 법정진술 했다. 어떤 탈북자도 합동심문센터를 거치게 되며 “잠재적 간첩”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 피의자의 여동생은 중국국적을 가졌기에 합동심문센터의 수용대상이 아니었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지난 시기 수많은 조작간첩사건에서 보아 왔듯이 장기간 불법감금상태에서의 고문과 협박 등 강압수사를 이겨낸 사례는 많지 않았다. 중국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변호사의 접견도 허용되지 않았다. 삼엄한 공포분위기 속에서 수사관들이 말하는 대로 자백(진술)을 하면 오빠와 함께 관용을 베풀 것이란 종용에 따라 허위자백을 했다고 털어놨다.

2013년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이 사건 선고공판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동생의 진술이 (유씨) 간첩혐의의 거의 유일하고 중요한 증거이므로 여동생 진술의 신빙성을 특히 신중하게 판단했다. 여동생이 수사기관에서 진술내용 중 일부는 객관적 증거와 명확히 모순되고 진술의 일관성 및 객관적 합리성이 없는 부분을 인정한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간첩이 만들어지고 있던 때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박정희 유신독재시대가 그러했고 전·노 신군부 독재시기에 극심했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또 다시 간첩사건이 조작되고 있는 것일까. 그랬다. 바로 유신독재부활의 또 다른 현상이었다. 오죽했으면 KBS 2TV ‘추적 60분’에서 ‘서울시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을 방영하려 했겠는가.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8월 31일 방송보류판정을 받았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사건을 거론하며 “예민한 시기에 악용당할 수 있다”는 보류판정 이유였다. 내란음모사건도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과 다름없는 공안기구에 의한 조작사건임을 암묵적으로 말해주는 판정보류였다. 제작진과 전국언론노조 KBS지부는 제작자율권 침해라며 방영강행을 주장했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권력집단의 압력을 받고 있을 방송사의 억지를 꺾지 못했다.

사법정의란 말이 있다. 법을 통한 정의구현을 말한다. 그 수단으로 공개재판제도가 있다. 바로 법을 어긴 이에게는 응당한 죄를 묻고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을 벗겨주는 사법제도이다. 철저한 증거주의와 공판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유·무죄를 가리게 된다.

서울시공무원간첩사건은 일단 원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항소심, 상고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원심의 판단이유처럼 간첩혐의의 유일한 증거가 강압수사의 허위자백인 것으로 드러났기에 사실상 이 사건은 끝난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항소를 한다 해도 그것은 소송당사자로서의 원심패배에 대한 통상적인 절차가 아니겠는가라고 가볍게 보았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적 전망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원심판결이 결코 ‘한 여름 밤의 꿈’이 아니었다.

검찰은 즉시 항소했다. 그리고 기어이 유죄입증을 하겠다는 집요함을 보여주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간첩혐의의 결정적 증거라며 유우성 씨가 북의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되어 간첩지령을 받았다는 시기에 북·중을 오간 ‘출입경 기록’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2013.11.1) 기록에 따르면 유우성씨가 2006년 5월 27일 오전 10시 24분 중국 용정시 삼합변방검사참(중국·조선 국경지대의 중국쪽 세관)을 통해 북한 회령시에서 나온 뒤 1시간도 안 돼 오전 11시 16분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2006년 6월 10일 오후 3시 17분 역시 삼합변방검사창을 통해 북한에서 나오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사실은 1심 재판 진행 중인 지난해 6월 검찰은 대검을 통해 중국 선양주재 한국영사관에 유 씨의 출입경 기록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중국 측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출입경 기록’을 제출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유우성 씨가 2006년 5월 27일 이후 다시 북에 간적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라며 이 기간에 북의 보위부로부터 간첩지령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검찰은 심양영사관을 거쳐 허룽시 공안당국에 해당기록을 발급한 일이 있는지 사실조회 요청을 했고, 발급한 사실이 있다는 회신을 받아 3차 공판이 열린 지난해 12월 6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한편 유우성씨의 변호인 측은 별도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당국에 유 씨의 북·중출입경 기록을 요청하여 발급받았고 이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변호인 쪽에서 낸 출입경 기록은 검찰(국정원)쪽에서 제출된 기록과 달랐다.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변호인 쪽 제출기록에는 유씨가 2006년 5월 27일 북에서 중국으로 나온 이후로는 다시 북으로 들어간 일이 없는 것으로 돼 있었다. 또한 검찰 쪽 기록에는 유 씨의 여권기록과 맞지 않았지만 변호인 쪽이 낸 기록에는 유 씨의 여권기록과 일치했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밝혀졌지만 항소심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국가정보원·검찰 쪽 문서와 유우성 씨 변호인 쪽에서 낸 문서에 찍힌 중국발급기관의 도장이 서로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느 쪽 증거문건이 진짜일까. 마침내 판정이 내려졌다. 이 사건 항소심재판부(서울고법 형사7부)는 검찰이 낸 출입경 기록 등 중국 관계당국 공문서에 대한 사실조회를 중국영사부에 요청했는데 그 답변이 온 것이다. 바로 2월 1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보도자료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 기록 조회결과’와 ‘유 씨의 출입경기록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 그리고 ‘화룡시 공안국이 심양주재 대한민국 영사관에 발송한 공문’ 등이 모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국주재 중국여사부의 ‘사실조회회신서’를 공개했다. 줄여 말하면 국정원과 검찰은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유 씨가 특정시기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드나든 것을 중국 관계당국이 확인한 것처럼 중국의 공문서를 위조했고 이 ‘출입경 기록’ 발급을 해줬다는 또 다른 가짜문건을 위조했으며 변호인 쪽이 낸 ‘출입경 기록’조차 반박하는 또 다른 중국공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이렇게 간첩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국은 이처럼 ‘사실조회회신서’를 통해 검찰·국정원이 낸 자국의 공문서가 ‘위조’라고 확인하면서 이 같은 공문서를 위조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겠다며 관련자료를 요청했다. 나라 안에서는 ‘간첩조작범죄’를 범하고 나라밖으로는 ‘외교적 책임’까지 받아 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실관계가 백일하에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2월 14일, 국정원은 ‘문서를 입수한 절차와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잡아떼었다. 또한 “서울고법에 제출한 (피고인 유우성 씨의) 북한출입내용은 중국 선양주재 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으로 사실과 부합하며 항소심재판에서 출입내용이 사실임을 자세히 입증할 것”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의 문서감정을 통해 국정원이 입수한 중국 삼합변방검사참(세관) 발급문서의 도장이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2.28) 불구하고 국정원은 “문서감정결과를 못 믿겠다”느니 “중국은 관공서 안에서도 복수의 도장을 사용하거나 같은 인장도 찍을 때 힘의 강약, 인주상태 등에 따라 글자 굵기 등이 달라져 정밀감정시 완벽하게 일치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중국 공문서위조 사실을 잡아떼기는 국정원뿐이 아니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와 “정식외교경로를 경유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으며 윤병세 외교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외교경로를 거쳤다”고 답변했다.(2.18) 후안무치의 극치였다.

중국의 ‘사실조회회신서’가 보내지면서 검찰은 별도의 진상조사팀을 구성하고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팀장을 맡았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공문서 위조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데서 터져 나왔다.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사건에서 위조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공문서의 입수 및 전달과정에 관여한 국정원 협력자 김 아무개 씨가 검찰 진상조사팀의 조사를 받은 뒤 자살을 기도하면서 남긴 유서 때문이었다.(3월 5일)

김 아무개 씨는 청와대와 검찰, 야당, 자신의 아들에게 각각 유서를 남겼다. 줄여 말하면 청와대(박대통령)에는 “국정원 개혁보다 바꾸시는 것이 좋겠네요.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입니다. 이름을 ‘국민생활보호원’ ‘국보원’이라든가 이름을 바꾸고 거기에 맞게 운영하세요”라 했고, 아들에게는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며 “2개월 봉급 600만원,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 그리고 수고비(!)”라고 했다. 바로 중국공문서 위조는 국정원 주도하에 자신이 제작했고 그 가짜서류 제작비와 밀린 봉투 두 달치 그 외 수고비를 받으라는 내용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은 3월 14일 자살기도를 했던 김 아무개 씨를 중국공문서를 위조해 국가정보원에 전달한 혐의(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로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연히 국가보안법상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고 또는 위증을 한 거나 증거를 날조’한 혐의 바로 12조의 무조·날조죄를 적용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이 사건은 검찰이 아니라 특검을 통해 진상을 밝혀야할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이미 이 사건에서 ‘간첩조작’의 공모혐의를 벗을 수 없었다. 검찰은 국정원으로부터 위조된 출입경 기록과 위조되기 전의 출입경 기록을 받았지만 위조된 기록만을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중국정부에 정식으로 출입경 기록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마치 정식요청에 따라 중국정부가 출입경 기록을 발급한 것처럼 법원과 변호인을 속였다. 변호인들이 문서의 위조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검증을 거치라고 하였음에도 “중국에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발급받았다”며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었다.

옛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 오늘의 국가정보원까지 수 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이 같은 간첩만들기는 이 기구의 조직특성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대통령 소속 정보·수사기관이다.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 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와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그리고 군을 포함한 각 부처의 정보수집활동에 대한 조정감독 등 막강한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통령의 지시·감독만을 받고 있는 조직특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에 부당한 정치개입과 인권침해 직권남용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잘 알려진 사건만 해도 동백림사건(1968년), 최종길 교수 간첩조작의문사사건(1973년) 이른바 인혁당재건위사건(1974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0년), 수지 킴 간첩조작사건(1987년) 등에서부터 최근의 이른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에까지 이 정보·수사기관이 관여한 사건은 부지기수이다.

특히, 국정원을 비롯한 (옛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포함) 공안기구에 의한 간첩조작사건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재심을 통해 2007년 2월 함주명 간첩조작사건에서부터 2012년 1월 29일 재일동포 유학생간첩사건까지 28건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데서도 그 심각했음을 알게 된다.

국가정보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마침내 집권여당의 일각에서도 국정원의 철저한 개혁과 남재준 원장의 해임을 말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미 지난해에 해체되었어야할 국헌문란의 범죄를 저질렀다. 대선개입 등 정치공작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국정원 대선개입수사방해,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한 통일운동단체 공안탄압,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조작사건을 주도 했었다.

국정원법에 반하는 정치관여, 직권남용 그리고 인권침해 범죄를 되풀이 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원 해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셀프개혁을 말했지만 오히려 더욱 오만방자, 무소불위의 이른바 ‘국정원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사권 전면 삭제, 해외정보기관으로, 정보 및 보안업무의 조정권한폐지, 국회에 의한 실효성 있는 통제를 전제로 존속을 용인하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럴 정도가 아니게 되었다.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외국공문서까지 위조하는 이 같은 국가기관을 국민세금으로 더 이상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답은 국정원 해체이고 그 수장인 남재준 원장을 구속수사하여 이 엄청난 국헌문란, 사법체계 파괴 범죄를 철저히 물어야 한다. 따라서 공안기구의 종북몰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폐지하고 이 악법으로 구속된 통일애국인사들을 당장 석방해야 한다. 또한 이른바 이석기내란음모사건을 공소취하하고 관련자들을 석방해야 한다.


<기고> 국정원은 왜 해체되어야 하는가-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정보기관의 정치관여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3자회담에서의 야당대표 요구사항은 하나같이 무시 외면당했고 또 다른 야당은 3년이 넘게 사찰당하고 있었다.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려던 검찰총수는 임기를 못 채운 채 쫓겨났고, 사실보도, 공동보도를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은 권력집단의 공보기구로 추락되고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중단되고 ‘자본주의 바로알기’ 강의도 국정원에 제보되고 있었다. 극우이념이 역사교과서를 장식하고, 이승만찬가의 저자가 국사편찬위원장이 되고 있다. 통일운동단체들은 상시적 사찰과 압수수색 소환조사, 구속 기소되어 차례로 법정에 세워지고 있다. 마침내 공무원노조에 이어 교직원노조마저 설립취소 위협 속에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와 평화, 사회진보와 민중생존권, 자주와 통일을 위한 활동은 감시의 대상이고 마녀사냥터가 되고 있다. 오직 청와대의 뜻만이 정답이고 원칙인 것으로 강제되고 있다. 바로 긴급조치시대 유신망령이 부활하고 있다.

민주주의 뿌리를 흔드는 범죄, 국정원과 경찰의 대선개입

이렇게 최근 민주주의가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는 데는 18대 대선과정이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정치공작이 그것이다. 정보기구의 특수조직을 이용한 불법적인 대선여론조작이 감행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국정원(댓글녀)의 대선여론조작의 증거를 확보하고도 거짓수사결과를 발표한 경찰 또한 여당후보를 당선케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이 두 막강한 국가권력기관의 대선개입과 축소은폐조작은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 뿌리를 흔드는 범죄였다.

마침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들이 불구속으로 기소된 것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했다.(촛불시위 등) 그런데 이나마 선거법위반혐의를 지킨 것만도 어찌 보면 검찰의 수사독립성 의지 때문이었다. 당시 법무장관은 선거법이 아닌 국정원법 등 위반을 고집하고 있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한편 국회에서는 ‘국정원 댓글사건 진상규명 국회특위 청문회’가 열렸다. 그런데 원세훈, 김용판 두 사람은 국기문란의 범죄를 부끄러워 용서를 빌기는커녕 그들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청문회선서를 거부했고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불법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여당 청문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발뺌을 두둔하고 있었다. 잘못된 일을 숨기거나 아니라고 편들어 주는 행위도 범죄가 되고 있음을 그들은 모를 리 없었다. 이 또한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패였다.

이렇게 범법자들이 청문회 선서를 거부하고 대선개입과 은폐조작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어지고 있는 선거법위반 법정에서 검찰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들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었고 증인심문을 통해서도 이를 받침하고 있었다. 경찰의 은폐조작은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일선경찰간부가 직접 증언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유권자의 힘은 이렇게 만만치 않았다. 이미 3.15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와 이어진 4.19혁명에서 보여주었듯이 대학가에서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분노의 촛불은 들불이 되어 전국으로 번졌고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꼬리를 물었다. 분노의 대상은 대선개입 정치공작만이 아니었다.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여 여당후보를 이롭게 했고 ‘대화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을 포기했다’는 유권해석(?)까지 하며 주제넘게 정치관여를 하고 있는 국정원에 대한 분노였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18대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이를 은폐 조작 발표하여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임명한 국정원장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그런 불법행위자에 대해 뒤늦게 ‘국정원 셀프개혁’을 요구했다. 대선개입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과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때 그 ‘잇단 불법행위자’에게 스스로 개혁하라고 한 것이다. 촛불시민을 분노케 한 또 하나의 오만과 독선이었다. 촛불은 무섭게 번져갔다. ‘국정원 해체’ ‘대통령 책임’의 함성이 하늘에 사무쳤다. 제1야당이 광장에서 노숙하며 촛불대열에 합류했다. ‘해체수준의 국정원 개혁’을 외쳤다. 그런 때였다.

국면전환용 공안카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기구 자체의 존립마저 위기에 몰린 국정원이 또 다른 민주주의 압살카드를 꺼내들었다. 분노의 촛불을 잠재우고 조직자체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국면전환용 공안카드였다. 바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이른바 ‘내란음모’조작 칼날이었다. 옛 이름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등이 정권의 위기상황 때마다 써먹던 반대세력 죽이기였다.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사건’ ‘인혁당재건위사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은 다 같이 그런 정권위기 때의 국면전환용으로 자행되었다.

국가정보원이 꺼내든 이른바 내란음모(형법90조)혐의는 형법 87조 내란과 88조의 내란목적살인범죄를 예비 또는 음모했음을 말한다. 합법정당의 현직 국회의원에게 적용된 참으로 충격적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촛불을 잠재우는 수단으로서는 그 혐의의 엄중성에 정치권은 갑자기 얼어붙고 있었다. 바로 국정원이 기대했던 결과였을 터이었다. 이후 이석기 의원 등의 구속과 국정원-검찰 조사(수사)를 거쳐 기소되기까지 불법적인 피의사실유포와 이를 각색하여 도배질한 방송·언론들로 이미 이들은 반역집단으로 여론재판되고 있었다. 실제로 새누리당에서는 이석기 의원의 의원직 제명안,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윤리위 자격심사안, 통합진보당의 해체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의 승계불가론 등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또한 국정원이 바라던 대로였다. 위에서 말한 내란음모조작사건들이 하나같이 재심에서 무죄판결 받았듯이 이후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무죄판결이 있다 해도 오늘 당장 여론재판만으로도 국정원은 촛불을 약화시키고 기구해체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꼼수였을 터이었다.(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망상일 뿐이다)

그리하여 검찰은 9월 25일과 26일에 걸쳐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이른바 형법상 내란음모와 선동,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동조(7조 1항, 5항)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회에 요청했던 체포동의안에서 제시됐던 혐의 그대로였다. 언론에 떠들던 그 무슨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여적죄’나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은 없었다. 한 달 동안 국정원과 검찰의 추가수사에서도 있지 않은 새로운 혐의를 찾을 수가 없을 터이었다.

이제 국정원이 3년 넘게 내사했다며 드러낸 이 내란음모조작사건의 압수수색과 체포, 구속·기소까지의 공안조성과정과 이들에게 들씌운 혐의내용의 부당성을 알아보고 정치관여·직권남용·인권침해로 악명 떨친 국정원이 왜 해체되어야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국정원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

국정원은 지난 8월 28일(29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국회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한 것을 비롯하여, 우위영 이석기 의원 수석보좌관, 김홍렬 경기도당위원장, 김근래, 홍순석 경기도당부위원장,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협의회 의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한동근 수원의료협동조합 이사장, 박민정 통합진보당 전 중앙당 청년위원장 등의 집과 사무실을 이른바 내란음모 혐의로 압수수색하고 홍순석 부위원장과 이상호 고문, 한동근 이사장을 같은 혐의로 체포하고 강제 연행했다. 이어 이들 압수수색 대상자 전원에 출국금지 조치를 감행했다. 이 같은 압수수색과정은 언론들이 다투어 현장취재하며 ‘내란음모’ ‘좌경종북집단’으로 선정 보도하고 있었다. 이어 8월 30일 홍순석, 이상호, 한동근 세 사람이 영장실질심사에서 같은 혐의로 구속 확정되었고 9월 2일엔 황교안 법무부장관, 정홍원 국무총리, 박근혜 대통령의 연서로 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리고 9월 4일 국회는 28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으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야당조차도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방관한 셈이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곧바로 강제 구인했고 9월 5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9월 13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한편 국정원은 9월 17일 홍성규 대변인과 통합진보당의 김양현 평택을지역위원장의 자활사업장 등 사무실 2곳을 이른바 지하혁명조직원 혐의로 압수수색하고 김석용 안산 상록갑 지역위원장, 윤용배 당 대외협력위원, 최진선 화성을지역부위원장 등의 집과 사무실을 같은 혐의로 압수수색했다.(2차 압수수색) 이어 9월 24일 통합진보당 소속 안소희 파주시의원의 집과 시의회사무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3차)

이처럼 통합진보당을 난도질하고 마녀사냥하는 동안 국정원은 이른바 ‘녹취록’이란 것을 언론에 흘리어 지하혁명조직(RO=Revolution Organization)을 근간으로 내란을 음모하고 선동했으며 ‘유류시설 폭파’ ‘국가기간시설 습격’을 모의했다는 피의사실을 무차별적으로 흘리어 여론재판을 유도했다. 이밖에 ‘이석기 의원의 변장도주’ 이석기 의원 밀입북설, 당선축하편지를 ‘충성맹세편지’로 ‘압수한 RO조직원 PC에서 폭탄제조법 파일 발견’ ‘RO조직원 공중전화기에서 미국과 중국을 통해 북과 통화’ 등 이석기죽이기의 온갖 억측보도들이 난무했다.

수원지방검찰청(수원지검)은 9월 25-26일에 걸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을 이른바 내란음모, 내란선동(형법 제90조 제1,2항)과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국가보안법 7조 1,5항)한 혐의로 공소제기했다. 앞에서 밝힌 대로 그 부당성을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이른바 ‘녹취록’의 증거가치문제이다.

검찰이 공소제기한 이른바 내란음모 등의 혐의는 대부분 2013년 5월 12일 마포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당에서 있었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이 주관한 이석기 의원 초청강연과 여기에 참가한 경기도당 당원들의 분반토론에서의 ‘녹취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녹취록은 강연주최측이 녹취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불법으로 몰래 녹취했거나 (통신제한조치연장은 2010년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7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단에 반한다) 통합진보당에서 주장하듯이 국정원의 매수자가 몰래 녹취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

다음으로, 만에 하나 ‘녹취록’이 증거로 채택된다 하더라도 ‘내란음모’나 ‘내란선동’ 죄가 성립될 수 없다. 바로 국토참절과 국헌문란 목적 실현의 실질적 위험성(실현가능성)이 녹취록에 있는 내용만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내란을 실행할 주체가 특정되지 않고 있으며 내란의 수단·방법·시기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김대중내란음모재심판결에서는 ‘내란음모가 성립되려면 내란의 수단·방법·시기 등이 특정돼야 한다’고 제시했음) 따라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서 폭동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합의도 녹취록에조차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른바 ‘RO’(혁명조직)에 대한 실체규명이 전혀 없다. 혁명조직의 구체적 이름도 조직구성도 없는 국정원의 작명일 뿐이다. 지속적인 모임과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5월 12일 모임은 급변정세에 따른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위원장이 임원들과 협의해 마련한 정세관련 강연회를 한 일회성 모임일 뿐이었다.

다음으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이른바 ‘내란선동’ 혐의의 부당성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5월 12일 모임은 경기도당위원장이 주관한 정세강연회에 초청되어 당시 긴박하게 돌아가던 북·미간 전쟁촉발의 위험성에 대한 당원들에 대한 강연이었을 뿐이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홍성규 당대변인이 밝힌 강연요지는 ‘북미간 대결이 그 어느 때보다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아주 높다’며 ‘이에 대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 온 우리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등 정세 강연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토론과정에서 일부 급진파가 의견을 냈고 온건파가 제재하는 토의에 불과했다’고 한겨레신문도 보도했다.(9월28일)

이밖에 유죄입증을 위한 북에 대한 반국가단체성, 이른바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한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등 혐의를 씌우고 있지만 내용자체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해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이처럼 국정원은 조직자체의 존립위기를 맞아 국면전환용으로 이른바 내란음모라는 충격요법을 감행하였다. 진보정당을 죽이고 특수권력기구로 살아남겠다는 또 하나의 정치공작이었다. 이 같은 내란음모 정치공작은 비단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안탄압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사회진보와 민중생존권에 대한, 그리고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대통령과 독대하는 권력기구, 대통령의 지시만을 맡고 있는 특수정보기밀수사기구로서의 국정원은 옛 이름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때부터 정치관여·직권남용·인권침해의 대명사가 되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특수권력을 이용한 조직적인 대선개입 국가기밀인 대화록 공개 등은 이러한 특별권력기구만이 감행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불법을 용인해선 안 된다. 분노한 촛불시민이 외치듯, 국정원은 이제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 대상이다. 특히 유신망령 부활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원은 온 국민의 요구로 해체해야 한다.
다만 지구촌으로 불리는 오늘의 정세에 맞게 해외정보기구로만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받는 새로운 별도의 정보기구는 필요할 것이다.


한평생 을 오로지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 위업을 위해 바쳐오신
서상권 전 부의장님의 영전에 삼가 드립니다

범민련 남측본부 전 상임부의장이시며 부산경남연합 명예의장이신 서상권 선생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뜻 밖의 비보에 접하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와 해외본부는 큰 슬픔을 금치 못하며 애통한 심정을 누룰 수가 없으며 범민련 남측본부와 부산경남연합, 그리고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서상권 전 부의장님은 한 평생을 조국의 자주독립과 사회의 민주화, 조국통일위업 성취를 위해 생의 모든 것을 깡그리 바쳐오신 열렬한 통일애국열사이시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청년시절에 사회혁명활동에 몸담았으며 조국통일운동의 구심인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을 위해 온갖 열과 성을 바쳤으며 범민련 부산경남연합 의장의 중책을 오래 동안 맡았으며 남측본부 상임부의장, 부산경남연합 명예의장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번영과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서상권 전 부의장님께서는 범민련이 애로와 고초를 겪던 어려운 시절이나 두 번에 걸친 옥고를 치른 나날에도 통일에 대한 강한 신념과 의지로 언제나 선봉에서 투쟁해 오신 열렬한 활동가, 통일원로이십니다.

자주와 통일에 투철한 서상권 전 부의장님을 잃은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됩니다.
전 부의장님께서 비록 우리 곁을 떠나셨으나 열렬한 통일운동가로서의 선생의 넋과 통일애국의 길에 남기신 공적은 온 겨레의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며 선생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통일조국은 반드시 이룩되고야 말 것입니다.

이제 못다 이루신 통일조국의 꿈,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맡기시고 고이 잠드시옵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3년 5월 17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공동사무국



범민련 결성 22돌 축하 연대사

오늘 우리는 긴장된 정세와 내외 반통일 세력들의 최후발악 속에 범민련 결성 22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범민련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해내외의 각계 통일운동단체들과 광범한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자주통일위업의 실현을 고무 추동하는 범민족적인 통일애국운동 조직으로 출범했습니다.

범민련은 통일애국을 지향하는 남과 북, 해외의 각계 단체들과 광범한 동포들을 망라하고 민족성원들의 통일열의를 적극 불러일으켜 통일운동을 추동하는 전 민족적인 통일운동조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범민련이 결성되던 1990년 11월 20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범민련이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자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범민련이 걸어온 지난 22년간의 노정은 반통일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통일을 지향하는 해내외 모든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세워 조국통일의 주체를 강화하고 통일애국운동을 전 민족적 범위에로 강화 발전시킴으로써 민족대단결의 긍지로운 역사를 창조해온 보람찬 투쟁의 길이였습니다.

오늘 6.15시대 우리민족끼리의 시대에 범민련의 정당성은 더욱 뚜렷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우리민족끼리 이념으로 단결하는 우리민족의 자주통일 위업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그 투쟁에서 범민련은 언제나 선봉에 설 것이며 조국통일의 서광이 비치는 조국의 품에서 범민련의 이름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범민련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앞당겨 이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언제나 앞장서나가리라는 것을 범민련 결성 22돌을 기념하며 굳게 다짐합니다.
해내외 우리 겨레의 기대와 적극적인 지지성원 밑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대단결, 조국통일의 길로 힘차게 전진하는 범민련의 애국위업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온 민족의 신뢰를 받는 범민련의 성스러운 통일애국위업은 언제나 필승불패입니다.

지금 세계는 변화의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위기는 곧 기회로 될 수 있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의 간고하고 헌신적인 투쟁은 마침내 하나 된 조국을 앞당겨 오는 영광스런 민족사의 증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범민련의 숭고한 민족대단결 사상은 6.15통일시대의 <우리민족끼리>로 이어진 투쟁승리의 열쇠입니다. 분단 민족사의 필연으로 등장한 범민련의 결성과 그 동안의 성과를 남북해외 3자 연대 이름으로 다 시 한번 축하합니다.

2012년 11월 17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공동사무국
일본 도쿄



<기고> 10.4선언 5주년을 맞이하며 -동족 대결 5년 심판하여 10.4선언 되살리자 -권오헌

한계령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밀리미터의 차이로 동해와 서해로 흐르는 것은 자연 세계의 법칙성 때문이다. 그러나 5년 전, 남북사이 화해 협력 10년을 뒤집고 동족대결 5년을 자초한 것은 잘못된 선택의 유권자 의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평화 통일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외세 공조와 반북 대결을 이어가며 자칫 끔찍한 동족상잔의 되풀이를 감당할 것인지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 바로 돌아오는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어떠한 참정권 행사를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되새겨보는 10?4 선언의 의의

이러한 역사적 판단을 눈앞에 두고 다시 10?4 평화 번영 선언 5돌을 맞게 되었다.
7천만 온 겨레에게 벅찬 감격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전 세계가 기립박수로 지지 환영했던, 그리하여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위험성은 가시고 평화와 통일로의 민족적 슬기와 자긍심을 갖게 했던 합의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와 동족 대결정책에 깔려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아니 10.4 선언이 있기까지의 선행합의들이었던 7.4 남북공동성명도 남북기본합의서도 6.15 남북공동선언도 하나같이 갈갈이 찢겨 내팽개쳐졌다.

10?4 선언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조국통일 3대원칙과 상대의 제도와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약속 그리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연합?연방제’로, 평화적 통일을 하기로 한 앞서의 통일 대강에 대한 실천강령이었다. 남북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없애고, 우발적 충돌조차 미리 막으며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구체적 기구와 실천방안들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또 다시 서해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대결이 이어지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우발적 충돌조차 대결국면에서는 전면전으로 당겨질 수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 들어 대청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이 있었다. 또한 천안함 침몰사건을 과학적 또는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북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있는가 하면 양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이 겹쳐지고 있으며 첨단무기의 집중배치와 새로운 전투부대 창설 등으로 서해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고 있다.

10?4 선언의 합의 가운데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합의가 실행되었다면, 서해5도 주민들뿐만 아니라 온 겨레가 가슴 쓸어내리는 전쟁의 위험성은 영원히 사라졌을 터였다.

그러나 앞서의 모든 남북합의와 함께 10.4 선언이 동족대결의 보수 집단에 의해 잠시 빛을 잃고 있을 뿐, 민족의 존엄과 이익,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민중들의 가슴속에서는 더욱 굳건히 더욱 깊숙이 뿌리를 내렸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오는 대통령선거의 참정권 행사에서는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반동의 시대를 준엄하게 심판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으로 가는 실천강령으로 이 선언을 다시 8천만 온 겨레 앞에 우뚝 세워야 할 것이다.

10.4 선언의 주요 내용과 실천 과정

이제 이 역사적 선언에 대해 이미 다 알려졌지만 반드시 되살려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요약하여 점검하고 그 진행과정을 알아보며 평화통일 지향의 차기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몇 가지 과제(현안)를 짚어보기로 한다.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 선언(10.4 선언)’은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남북 최고 수뇌가 합의한 8개 항목과 별항으로 되어 있다.

8개 기본항목은 △6?15공동선언 구현과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상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통일지향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 정비, △불가침 의무 준수―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추진―11월 중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 추진, △현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3자 혹은 4자(국) 정상들의 종전 선언 추진,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와 각종 경제협력 사업 추진, 남북(북남) 경제협력 추진위원회를 남북(북남)경제협력 공동위원회로 격상, △사회문화분야의 교류 협력―백두산 관광과 백두산 직항로 개설, △인도주의 협력사업 적극추진과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 확대(금강산 면회소에서의 상시 면회), 자연 재해 등에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 원칙에서 적극 협력,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존엄과 이익, 해외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별항에서는 남과 북(북과 남)이 이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남북(북남) 총리 회담(1차)을 11월 중 서울에서 갖기로 했고, 남북(북남) 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했다.

이러한 합의는 곧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2007년 11월 14일 서울에서는 ‘남북(북남, 이하 남북으로) 총리 회담’이 열려 ‘남북관계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합의서’를 채택했다. 8개조 48항에 이르는 각종합의에는 6?15를 민족공동기념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 2008년중 공동어로 사업 실시, 해주 경제특구 건설,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착수, 남포와 안변의 배수리공장 설비 현대화기술 협력사업, 2008년 안에 개성공단 2단계 공사 착공,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열차 운행에 관한 기본합의서 채택, 개성공단 3통문제 해결, 단천지구 광산 등 지하자원 개발협력 사업추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채택,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사회문화 협력추진위원회 구성, 금강산 면회소 준공, 2008년 새해를 맞아 흩어진 가족?친척 영상편지 시범적으로 교환 등을 합의했다.

또한 2007년 11월 27~29일까지 평양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열고, 7개조 21항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장관급회담합의서’를 채택했다. 바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긴장완화 평화 보장을 위한 실제적 조치, △전쟁 반대―불가침의무 준수를 위한 조치, △서해 해상충돌방지 평화보장을 위한 실제적 대책, △현 정권체제 종식―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군사적 상호협력, 남북교류협력사업 군사적 보장조치 등이다.

이밖에도 2007년 12월 4~6일까지 서울에서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열고 ‘남북 경제협력 공동위원회 1차 회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9조 17개 항으로 된 합의 내용에는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 적극 추진, △안변, 남포지역 조선협력단 건설―해주직항로 적극 협력, △개성공단 활성화 추진, △자원개발 협력사업, △농업, 수산업 협력사업, △보건?의료?환경 분야 협력사업, △수출 및 투자확대를 위한 다양한 협력 방안 등의 세부 사항을 합의했다.

또한 2007년 12월 29일 남북은 개성에서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추진위원회’제1차 회의를 갖고 5조 12항으로 된 합의서를 채택했다. 여기서는 △해주특구 건설, △해주항의 민족공동이익에 맞게 공동개발,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 문제, △한강 하구 단계적 개발 공동이용문제의 세부사항과 해주특구 해주항 개발협력, △한강하구 협력, 공동어로 협력 등 각분과위를 구성했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으로 활짝 열릴 남북사이 화해와 단합, 교류 협력 사업은 10?4 선언으로 더욱 구체화되면서 총리급 회담을 비롯한 부총리급, 장관급 등 고위 당국자 대화가 이어졌으며, 당국 차원의 위에서 밝힌 각종 협력 사업이 봇물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민간부문의 경제협력사업, 6?15 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를 축으로 한 각 부문단체 등 사회문화 교류사업과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실천되고 있었으며, 금강산?개성관광이 활성화되고 개성공단에서 남과 북 근로자들이 만든 제품이 서울에서 불티나게 팔리곤 했다. 한 해 동안에만 수십만 명이 북과 남으로 오가는 가운데 불신의 벽은 깨어지고 동포애 넘치는 신뢰가 쌓여지며, 같은 피와 문화로 수천 년을 살아왔던 민족 고유의 동질성도 회복되고 있었다. 사실상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의 자주통일 염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10년 공든 탑 무너뜨린 이명박 정부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10년간 쌓아온 교류 협력의 공든 탑이 무너지게 되었다. 6.15, 10.4 선언을 전면 부정 백지화시켰고, 당국간 대화가 끊겨졌다. 남북사이 모든 합의는 차례로 파기되었으며 민간 부문의 경제협력사업, 사회문화교류사업, 인도적 협력사업조차 제동이 걸렸다. 금강산?개성관광길이 끊겼고, 남북으로 흩어져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친척들의 상봉사업도 금강산 면회소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 때부터 통일부를 아예 없애려다 사회여론에 못 이겨 겨우 존속을 시켰지만, 반통일대결부 역할을 하게 하였다. 한 예로써, 2008년 2월 5일 대통령직 인수위가 이명박 당선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3차 국정과제 보고에서 국정과제의 핵심 10개 항목의 첫째가 북핵폐기의 우선과제였고, 둘째는 비핵-개방 3000구상이었으며, 셋째는 한미동맹 강화였다.

이처럼 이명박 한나라당(새누리당도 같음)은 ‘비핵.개방.300구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 ‘기다리는 것도 전략’,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말하면서 앞선 정권의 남북합의를 짓뭉개면서 반북대결 정책으로 집권 5년을 일관했다.

그 정도만이 아니었다. 입만 열면 북의 변화를 말하고, 급기야는 북정권 붕괴와 비상통치계획인 ‘부흥’, 북의 급변사태를 상정한 ‘통일대비 탐색연구’, ‘남북공동체 기반조성 사업’, ‘통일세’, ‘통일대비교육’ 등 노골적인 흡수 통일 망상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경제적으로 압살하기 위해 금강산 관광과 경제협력 차단, 인도적 협력사업과 일체의 식량지원을 끊었다. 군사적 압박으로는 작전계획 5027, 5029 등 북정권 붕괴를 노린 외세와의 공조 속에 북침전쟁 연습을 쉴 새 없이 감행했다. 이전 정권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배치된다 하여 유보하고 있었던 국제무대에서 북인권 문제를 공동제안하고,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직접 참여 주도하기까지 했다. 대북체제 비방방송과 삐라 살포 등으로 남북사이 합의를 깨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 같은 동족대결정책은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에 대한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을 짓밟은 반민족 범죄 행위이면서 남북 모두에게 엄청난 대결비용을 떠안게 했다. 특히 5?24 조치 이후 남북 사이의 모든 교류와 교역이 차단되면서, 북측뿐만 아니라 남측의 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남북경제협력 연합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남측의 경제손실액이 82억7026만 달러라고 했으며(2012년 8월1일), 5?24 조치 이후 지금까지 800여개의 경협업체가 도산했거나 폐업위기에 몰려있다고 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4년 동안 현대아산은 5천600억 원 협력업체는, 2천200억 원, 고성지역경제는 1400억 원의 총손실을 보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이처럼 남북합의를 무시, 외면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 낸 이명박-새누리당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유권자의 올바른 참정권 행사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세공조, 동족대결의 사대매국정권이 아니라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지향하는 통일대통령을 반드시 뽑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역사의 반동을 허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평화통일 지향 정권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몇 가지 과제

다만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차기정권이 들어서고, 남북사이의 모든 합의를 이어간다 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현안)를 염두에 두고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10?4 선언 둘째 항목에서도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기로 했다. 말할 것도 없이 상대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지적한 것이다.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수많은 통일애국인사들을 사법살인하고, 감옥에 보내며, 자주통일운동 자체를 탄압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 그리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예술?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한국진보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평화와 통일운동 단체에 대한 공안탄압이 이어졌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통일의지를 표현한 수많은 사람들이 법정에 세워졌다. 6?15 공동선언을 지키기 위해 방북했던 한상렬 목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조의방북했던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도 철창 속에 갇혀있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자주통일도 민주주의 발전도 인권개선도 바랄 수 없다.

다음으로 서해 해상 경계선 확정 문제이다.

남북사이 화해 협력 관계가 이어진다 해도 분단 상태로 있는 이상 서로 다른 해상 경계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까지 보아왔듯이 분쟁의 소지가 남게 된다. 10?4 선언에 따라 어로공동수역과 평화수역 등,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가 설정된다 해도 기본적인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서해에는 1953년 8월 30일 당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남측 선박의 북으로의 항해를 제한하기 위해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 연안을 따라 일방적으로 그은 이른바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ed Line)이 있고 북측이 주장해온 ‘서해5도통행질서’에 따른 임진강 하구를 기점으로 북측의 등산곶과 남측의 굴업도, 북측의 옹도와 남측의 서격결비도, 서엽도 사이의 등거리 점을 선으로 그은 서해 해상경계선이 있다. 이 같은 서로 다른 주장은 두 번에 걸친 연평대전(1999년과 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 그리고 연평포격전(2010년)이 벌어지게 했다. 남북은 앞으로 있어야 할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정과정(또는 그 이전에) 서로의 주장점과 국제해양법 등을 참고한 평화와 통일 지향의 슬기를 모아 해상경계선을 확장하여 더 이상 서해에서의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핵문제 해결방식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5년 동안 단 한 차례의 남북당국사이 대화를 못한 것은 이른바 ‘북핵폐기 우선과제’란 비현실적인 고집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의 핵문제의 본질은 핵을 가진 미국의 핵을 갖지 않은 이북에 대한 핵공격 위협에 맞서 방어적 핵 억제력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전쟁 시기부터 핵공격 위협을 했고(맥아더 회고록), 1958년에는 정전 협정을 어기고 휴전선 남쪽에 핵무기를 배치했으며, 1987년 이후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는가 하면, 팀스피리트 등 잇단 핵선제공격 연습을 해왔다.

특히 부시 정부는 북을 ‘악의 축’이라며 핵공격 계획을 세웠고(2002년 - 핵태세검토보고서 : NPR), ‘핵없는 세계’를 주장해온 오바마조차 2010년 4월 6일 NPR 보고서를 다시 발표하면서 유독 이북과 이란 만을 핵무기 불사용 대상국에서 제외시켰다.

핵무기는 만들거나 그것으로 위협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이상이다. 그러나 주권국가로서 존엄성과 자주권 그리고 생존권을 지키는 것은 유엔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주권 평등의 원칙, 국가의 영토 보존이나 정치적 독립, 무력위협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정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남과 북, 미?중?러?일은 2005년 제4차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은 한반도에서의 핵문제 해결의 가장 합리적 방법이라고 평가되었다. 요약하면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 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기로 했고, 미국은 한반도에 핵을 갖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 없음을 확인했으며, 남은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북?미간 상호 주권 존중, 평화적 공존, 관계정상화를 약속했고, 북?일은 평양선언에 따라 관계정상화 조치를 약속했다. 참가국들은 북에 대해 에너지 지원, 남한은 북에 200만 kW 전력지원 등을 합의했다. 그리고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이 약속대로만 했다면, 이미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 2단계 조치를 이명박 정부와 일본이 결정적인 훼방을 한 이후, 아직도 회담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 새 정권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6자 회담을 통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 핵문제의 열쇠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관계정상화를 하는데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현안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는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동족대결정책을 엄중히 심판하고, 평화와 통일지향의 참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7.4공동성명 발표 40돌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자료모음

7.4공동성명 발표 40돌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공동결의문

오늘 해내외 온 겨레는 역사적인 7.4공동성명 발표 40돌을 맞이하고있다.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외세의 간섭이 없이 민족의 의사와 염원에 맞게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해결하는 길을 뚜렷이 밝힌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다.

조국통일 3대원칙은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하여 재확인됨으로써 그 정당성과 생활력, 불변의 진리성이 남김없이 과시되었다.
남북공동선언들의 채택과 그 이행으로 조국통일 3대원칙의 기치밑에 힘차게 전진하여 온 조국통일운동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이 힘있게 추진되고 자주통일기운은 전례 없이 높아지게 되었다.

7.4공동성명 발표 40돌기념 남, 북, 해외 공동토론회에서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힘차게 전진해 온 40년간의 통일운동을 자랑스럽게 돌이켜보면서 조국통일 3대원칙과 남북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려는 일념을 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발표한다.

1. 민족자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

민족자주는 민족문제 해결의 기본핵이며 조국통일의 근본원칙이다.
자주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민족의 존엄과 이익이 외세에게 농락당하게 되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수십년간의 조국통일운동이 남긴 역사적 교훈이다.
오늘 남북 사이에 채택된 훌륭한 합의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에 처하게 된 것도 외세의 집요한 간섭과 함께 중요하게는 반통일보수세력의 극악한 외세굴종과 사대매국책동에 그 원인이 있다.

해내외의 온 겨레는 민족자주를 통일문제 해결의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나가며 남북공동선언들에 천명된대로 우리민족끼리 힘과 지혜를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동족을 중시하고 우선시하며 민족공동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여기에 모든 것을 복종시켜나가야 한다.

우리 민족내부문제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 강권과 전횡을 단호히 반대 배격하며 외세를 우위에 놓고 거기에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를 종속시키면서 민족의 운명과 이익을 해치는 추악한 사대굴종행위를 철저히 저지시켜야 한다.
특히 남녘에서 친미보수《정권》을 연장해보려는 미국의 교활한 음모와 노골적인 《선거》개입책동에 각성을 높여 철저히 제거하여야 한다.

2. 내외 반통일세력의 전쟁대결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의 평화를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

지난 시기 남북관계가 아무리 복잡다단하였지만 지금처럼 대결의 극한점을 넘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엄중한 사태가 도래한 적은 일찌기 없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이명박 보수정권은 민족의 버림을 받아 심각하게 뒤흔들리는 극도의 통치위기에서 벗어나 보려고 동족의 최고존엄과 체제까지 악랄하게 중상모독하면서 남북관계를 최악의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고 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반전 평화의 구호를 높이 들고 반통일호전광들의 무분별한 동족대결과 전쟁도발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이 땅위에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여야 한다.
날로 노골화되는 외세와의 각종 북침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국, 일본과의 군사적 결탁과 재침책동을 반대하는 전 민족적인 연대투쟁을 보다 강력히 벌여나가야 한다.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부정하고 전쟁을 불러오는《체제통일》,《흡수통일》과 같은 반통일대결론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각종 대결조치들이 더 이상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3. 민족의 대단결로 재집권을 노리는 반통일보수세력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한다.

반통일보수세력의 악랄한 도전과 분열 이간책동을 분쇄하고 민족적화해와 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근본담보는 민족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바라는 해내외의 모든 정당, 단체, 인사들의 대단합을 이룩하는데 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당파와 소속, 주의 주장의 차이를 뒤에 미루고 대의를 앞세워 하나로 굳게 단결하며 연대단합의 위력으로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고 올해에 기어이 자주통일과 공동번영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조국통일 3대원칙과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통일애국활동을 《친북》,《이적》으로 몰아 매도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보안법》을 철폐하기 위한 전 민족적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한다.

반통일보수세력이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모면하고 재집권의 야망을 실현해보려고 《쇄신》과 《변화》를 운운하며 민심을 기만하는 한편 민족대단결에 배치되게 《종북세력 척결》소동에 매달리면서 민주개혁세력을 분열 약화시키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는데 대해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남측 보수당국은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한 진보운동세력들을 거세말살하기 위해 벌이는 악랄한 파쏘탄압을 중지하며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을 위해 헌신분투하고 있는 통일운동단체들의 정의로운 활동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7.4공동성명 발표 40돌 기념 남, 북, 해외 공동토론회에 참가한 범민련을 비롯한 각계층단체들은 조국통일 3대원칙과 남북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굳게 단결하여 통일애국의 뜨거운 열정과 광범한 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남김 없이 분출시켜 나감으로써 민족의 자주와 평화, 조국통일의 결정적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앞장에서 적극 투쟁해나갈 것이다.

7.4공동성명 발표 40돌 기념 남, 북, 해외 공동토론회
서울, 평양, 도쿄
2012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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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 7.4 남북공동성명 40돌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기념사

범민련 남측본부가 남측 통일운동권을 대신하여 이명박 정부의 탄압의 과녁으로 투옥되고 고통당해 오심을 우리 모두 가슴 아파 하며 감사드립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40돌! 남?북?해외가 이 기념행사를 함께 거행하는 오늘은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와 대단결을 다시금 세계에 선포하는 가슴 벅찬 날입니다.

실은 1972년 남북공동성명이 1945년 이래의 저의 통일의지를 새롭게 각성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974년 유럽으로 건너가, 우선 칼 마르크스의 문서들을 허겁지겁 들추면서, 북조선을 알아 볼 길도 못 찾고, 1976년에 귀국했고, 그 이후부터 남한의 철벽같은 반공?반북의 분단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시도하는 강연들을 시작하였는데, 대체로 청중들이 묵묵부답 경계하는 눈초리였습니다. 오직 신창균 장로님이 반겨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민족 분단이 그처럼 고질화된 병인 줄은 차마 몰랐습니다.

그래도 7.4남북공동성명의 출현은 감격과 용기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혜성과 같은 통일의 영원한 초석입니다. 아마도 7.4공동성명 기념행사는 우리의 통일운동 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남.북.해외 범민련에 감사드립니다.

7.4남북공동성명?6.15남북공동선언?10.4선언은 통일의 위대한 3대 이정표들입니다.

⑴ 7.4남북공동성명의 3대 원칙은 통일과 통일운동의 축으로서, 어느 분단국가의 통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업적이며, 통일과정에서 또 통일 이후에도 그 의의가 해명되고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⑵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 통일론을 포괄하는 연방제 통일국가 실현과 남북경제협력의 기본 틀을 설정했으며, 민족의 통일대업과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기본지침서입니다. 미국주도의 패권주의적 신자유주의?세계자본주의의 파탄의 징조들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고, 세계 민생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의 지식인들도 이러한 세계적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 것인지, 아직 모색하고 있는 것 같으나, 우리 민족의 통일공동체 건설은 그러한 난국을 돌파해 나가면서 우리 민족의 새 미래 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동북아-아시아-세계를 도래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⑶ 10.4선언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 체제구축과 우리 강토 내부건설기획의 기초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통일이정표들이 출현한지 몇 해 입니까.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한?미 전쟁훈련, 서해에서의 육?해?공 전쟁훈련, 당장 한국전쟁이라도 일으킬 듯한, 요란한 각종 전쟁훈련들은 반민족?반동북아?반세계적 전쟁전략아래서 대대적으로 전개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도발입니다. 동북아와 세계파멸의 위험의 불씨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 우리의 통일 3대 이정표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해소시킬 필연의 관건입니다.

북한의 핵문제는 북의 대미 양자 협상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핵 강국 미국에 의지해서 남한이 북 핵폐기를 아무리 외쳐도 공염불이며, 그것은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조장하는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도대체 역사인식의 결핍증 때문에, ‘비핵 3000’이니, 뭐니 공허한 소리를 외치며 동분서주 하다가, 이제 허탈증에 빠져들 지경에 이르러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유연한 한?미 군사동맹이니, 한?일 군사정보협정인지 한미일 군사 동맹의 틀을 획책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힙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획책은 우리 민족 파멸-동북아 파탄의 불장난입니다. 그따위 협정 따위는 차단되어야 합니다.

잠꼬대처럼 이명박과 새누리당 대표가 이제 ‘종북 몰이’로써 통합진보당을 압박하면서 합창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2012년 12월 대선을 바라보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자주파의 연대를 막으려는 획책으로, 반북논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좌파 친북몰이’, ‘종북 몰이’와 같은 비열하고 반역사적?반민족적 정치공세는 이제 그만 청산해야만 우리 민족?민생을 위한 새 정치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도 역사와 민족, 동북아와 세계의 미래를 가늠하지 못하고, ‘좌파 몰이’ ‘종북 몰이’로써 여전히 남한의 못된 정권 안보의식과 못된 버릇을 또 발동하고 있습니다.

저 통일 3대 이정표들을 좀 들여다보구려. 통일정치가 무엇인지 좀 배우라구요. 그리고 전통화된 악한 탄압의 원천을 끊어 버려요! 새로운 정치를 하려거든, 우선 반역사적?반민족적 반북주의의 고질부터 폐기해요. 그러면 저 통일 3대 이정표들의 위대한 의미를 파악하게 될 것이요.

남?북?해외 범민련은 우리의 통일 3대 이정표들을 실천 프로그램으로 우리의 정치적 실정에 따라 실천할 수 있도록 조목조목 정식화하여 소책자로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범민련이 남?북?해외 통일운동의 추동력을 발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섬주섬 7.4 남북동성명 40돌 기념사를 말씀드렸는데, 이 행사가 우리 통일운동과 통일의 성취와 더불어 동북아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 질서 창출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7월4일
박 순 경
(공동준비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학술본부 명예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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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발표문 ①] 7.4남북공동성명과 통일운동사적 의의

노 중 선(통일뉴스 상임고문, 사월혁명회 전 상임의장)

1. 들어가는 말

금년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 40주년을 맞는 해다.
되돌아 보건데 당시 남북 사이에 대화와 접촉이 철저히 단절된 숨 막힐듯한 분단구조 하에서 남북당국이 합의를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은 실로 꿈만 같은 현실이었고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를 국내외에 과시한 쾌거였다.
특히 통일3대원칙은 오매불망 민족의 평화적 자주통일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구성원에게 있어서 소중히 받들어야 할 통일 장전(章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역대 분단정권 당국자들에게서 이에 대한 실천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통일운동 과정에서는 자각된 실천적 소수 지도적 인시들만이 7.4남북공동성명의 이행 실천을 촉구하고 각종 분단구조들에 저항하며 내외적 분단 세력들의 반통일적 행태들을 규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7.4남북공동성명의 이행 실천은 단순히 남과 북의 정권 당국자들이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분단구조를 허물어가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평화적 자주통일운동의 과정으로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분단을 유지하고자 하는 내외적 냉전 세력과의 중단 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통일 3대원칙의 이행 실천은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40년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배경과 내용 및 그 의의를 다시 확인하고 통일운동의 미래와 관련하여 잠시 되돌아보고자 한다.

2. 7.4남북공동성명 이전까지의 남북관계

정확하게 말해서 1948년 남과 북에 분단 정권이 수립된 이후 1971년 8월 20일 남북의 적십자 파견원간의 판문점 첫 접촉이 이루어질 때 까지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남북간 대화나 접촉은 없었다.
이 기간 동안 남측 당국의 경우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 최두선 명의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 것이 유일한 첫 대북 제의였다. 이에 비해 북측 당국은 “분렬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화통일 제안을 내놓은 것은 무려 130여차례에 이른다”고 1973년 4월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북측은 ‘남북정당 ? 사회단체대표자협의회 소집’ 제의(1950.6.7)를 시작으로 ‘전조선입법부 구성’ 제의(1950.6.19), ‘남북체신대표회담’ 제의(1954.12.1), ‘남북보건당국자간 방역 정보교환’ 제의(1956.8.24), ‘남북연방제 창설’ 제의(1960.8.14) ‘남북작가예술교류 접촉’ 제의(1961.3.3), ‘남북정권당국간 협정 체결’ 제의(1962.6.21), ‘남북대표의 경제위원회 설치’ 제의(1963.12.10) 했다. 이외에도 이산가족문제에서부터 학생, 노동자, 기자, 과학자와의 회담 접촉, 정치협상, 군축, 경제협력, 수산당국자 회담, 전기 송전문제 회담, 구호양곡?구호물자 무상 제공, 학술 문화교류활동, 체육단일팀 구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모든 분야들에 걸쳐 각 시기마다 대남 편지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남북대화 제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남측은 이에 대해 단 한 차례도 호응하지 않은 채 ‘적화 야욕’이라거나 ‘상투적 선전 수단’이라며 철저히 외면했다.

이렇듯 분단 정권으로서의 생존요건인 적대적 대결과 대화 단절로만으로 일관했던 시기였는데 다만 1954년 4~6월 스위스 제네바회담에서 남북 대표의 조우, 제18회 국제올림픽도쿄대회 단일팀 구성문제 협의를 위한 협의를 위해 남북 양측 대표 각 5명이 1963년 1월(스위스 로잔), 5월(홍콩) 두 차례 만났던 것이 남북간의 대화와 접촉의 전부였다. 당시 제네바 회의는 정전협정 60항에 의한 6.25참전국들간의 한국문제 협의를 위한 회의에 남과 북의 대표가 각각 참가한 것이고 보면 진정한 의미의 남북대화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북측의 제의에 의해 동경올림픽 단일팀구성 참가문제 협의를 위한 남북체육대표 접촉이 이루어졌으나 성과는 없었다.

북측은 그 때까지의 대남 제의 연장선상에서 1971년 4월에도 ①주한미군 철수 ②남북의 군대 각 10만 또는 그 이하 감축 ③외국과 체결한 모든 조약 및 협정 폐기, 무효선언 ④남북총선거 실시에 의한 통일중앙정부 수립 ⑤남북총선거를 위한 정당활동 보장과 체포 투옥된 정치범 석방 ⑥과도적 남북연방제 실시 ⑦남북간 통상과 경제적 협조, 과학, 문화, 예술, 체육 등 다방면적 상호 교류와 협조, 편지거래, 인적 교류 실현 ⑧이를 위한 남북정치협상회의 개최 등 ‘8개항 평화통일 방안’을 제의했다. 이어서 같은 해 8월 6일에는 “우리는 남조선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 사회단체 및 개별 인사들과 아무 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에 1971년 8월 남측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북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고 북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1971년 8월 20일 판문점에서 양측 적십자 파견원간의 첫 접촉이 이루어졌다.

3. 1970년 전후시기의 국제정세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미국을 비롯한 동서유럽 나라들 사이에서 평화적 공존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대외 정책이 모색되는 등 냉전체제의 균열이 시작되었다.
우선 미국은 1950년대부터 베트남전쟁에 깊숙이 개입하여 장기간의 전쟁 과정에서 과도한 군비부담에서 비롯된 미국민의 반전시위 격화 등으로 베트남전쟁을 더는 지속시켜갈 수 없는 상황에서 월맹과의 정치협상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닉슨은 미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베트남전쟁의 종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게 되었고 ‘명예로운 평화’를 약속해야 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 닉슨은 1969년 7월 닉슨독트린을 발표했는데, 베트남전쟁에서처럼 우방국이 관련된 전쟁이나 분쟁에 직접 개입은 불가하고 해외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즉각적으로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철수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무장관 키진저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닉슨은 1972년 2월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그동안 소원했던 미?중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한편 중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 그때까지 외교관계가 없었던 서방 여러 나라들과 통상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들 나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마침내 1971년 10월에는 유엔에서 대만이 축출되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게 되는 등 당시 동서냉전체제가 급박하게 공존적 상황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와 같이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외세와 한 짝을 이루어 분단정권을 유지해 가야하는 집권냉전세력으로서는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 지속해오던 적대적 갈등과 대화 단절의 남북관계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정권 당국은 이 같은 국제정치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1970년 7월 국회에서 주한미군 감축 절대 반대를 내용으로한 <주한미군감축 반대에 관한 결의안>과 <주한미군감축설에 따른 건의안>을 채택하여 미군 철군을 막아보려 했던 것이 고작이었을 뿐 묘책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당시 요지부동으로 반공 적대적이었던 박정희정권은 대북 유화정책을 취해 남북관계 개선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 7.4남북공동성명의 내용

남북적십자 파견원간의 접촉 이후 5차례의 접촉과 25차례의 예비회담, 3차례의 실무접촉 후 제1차 남북적십자본회회담(1972.8.29~9.2)이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제9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1971.11.19) 과정에서 남측은 북측에 적십자회담과는 별도의 실무자간 비밀접촉을 제의했고 이를 북측이 받아들여 바로 다음날 제1차 비밀접촉이 이루어졌다.

이후 1972년 7월 1일까지 24차례의 판문점 비밀접촉과 그 사이 남북의 비밀접촉 실무담당자가 각각 한 차례씩 평양과 서울을 비밀교환 방문, 이후락과 박성철이 각각 한차례씩 평양과 서울을 비밀교환 방문하여 협의 절차를 거쳐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과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조국통일원칙 합의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
셋째, 사상과 이념 ?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

2. 상대방 대한 중상 비방 중지, 무장도발 중지, 군사적 충돌 사건 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 합의
3.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 실시 합의
4. 남북적십자회담 성사를 위한 적극 협조 합의
5.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놓기로 합의
6.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 운영 합의
7.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

이와 같이 7.4남북공동성명의 핵심은 자주 ? 평화 ?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의 합의다. 이 원칙은 우리 민족이 통일을 성취해 가는 통일운동 과정에서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통일독립국가로서 지켜 가야할 실천적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 원칙들의 실천을 위해 남북사이에 비방중상 중지 및 무장도발 금지 조치, 다방면적 교류 실시, 남북적십자회담 협조, 서울~평양 상설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운영 등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해 합의한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합의에 따라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발족에 필요한 여러 절차 문제 협의를 위한 4차례의 실무자 접촉, 3차례의 남북공동위원장 회의를 통해 남북조절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상호 비방 방송 중지 및 전단 살포 중지’ 등에 합의하여 1972년 11월 11일 0시를 기해 이를 발효시키기도 했다. 또한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의 발효와 함께 제1차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1972.11.30~12.1)를 시작으로 제2차(1973.3.14~15), 제3차 회의(1973.6.12~13)가 서울과 평양을 오고 가며 진행되었으나 더 이상 진전은 없이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7.4남북공동성명의 통일운동사적 의의

7.4남북공동성명은 그것이 단순히 오랫동안 남북간의 적대적 갈등과 대화 단절의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민족끼리의 대화와 접촉의 시작이며 화해와 단결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민족대단결에 의해 전진시켜 갈 것을 남과 북의 정권 당국이 합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할 때 남과 북의 정권 당국간의 협상에 의한 통일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고 7.4남북공동성명은 그 첫 출발의 선례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주 ? 평화 ?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분단구조의 타파를 선언한 것이고 분단구조를 허물기 위한 활동이 통일운동이라고 할 때 분단구조를 극복하고 평화적 자주통일을 이루자는 지점에서 통일운동과 7.4남북공동성명은 하나로 된다.
분단 정권의 유지 기반은 외세와 수구 냉전세력이고 이들 냉전 세력의 특징은 늘 긴장을 조성하고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기, 그리고 민족적 단합과 관련해서는 한사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 것은 곧 분단 정권의 생존 요건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단 현실에서 7.4남북공동성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우리 민족의 통일 문제는 힘있는 외세와의 예속적 관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자주가 핵심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통일의 핵심은 민족의 자주권을 확보하는 민족자주성의 문제다. 우리 민족은 불행하게도 자주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경험이 있다. 또한 지금 우리는 분단으로 말미암은 식민지적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 이 같은 경험들은 우리들 민족구성원들로 하여금 외세와의 합작에 의해 자주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자각케 하고 있다. 또한 외세와 더불어 통일문제를 해결하고자함은 곧 동족을 적으로 규정해야하기 때문에 평화적인 통일도, 자주적인 통일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는 말은 명언이다.

둘째, 우리 민족의 통일 성취의 길은 반공 적대적 대결이라는 힘으로가 아니라 반드시 민족 화해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통일은 평화적인 협상과 합의의 방법으로 진행시켜가야 하고 그렇게 하자면 접촉 대화와 교류 협력해야 함은 기본 전제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모략 중상 행위는 물론 대북 적대의식은 불식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 민족의 평화적 자주통일은 반드시 민족적 단합을 통해 외세를 포함한 대결적 냉전 세력에 맞서야만 가능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외세 강대국들간 냉전적 산물이 민족분단이라면 그 극복의 길은 당연히 민족구성원 모두의 대단결을 통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진정한 자주적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 강대국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동맹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약소국가의 내정 문제에 개입하곤 한다. 그러고는 힘의 우위를 무기로 저들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체를 만들어 관련국들에게 정치적인 예속을 강요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고 그와 같은 실상은 지금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의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다.

6. 맺음말

외세, 국가보안법, 대결적 냉전의식 등 여러 분단 유지 구조들을 허물기 위해 그동안 통일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애국자들이 투옥과 처형을 감수해야 했고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평화적 자주통일국가 건설은 그 같은 통일운동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통일운동은 각 계층 부문운동과 긴밀히 연대해야 하고, 폭넓게 다수 대중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범민족운동이어야 하며, 다수 대중의 고양된 의식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수 대중의 의식 고양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어느 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 구애되는 것이 아니라 때와 곳은 물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항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다수 대중의 의식이 고양되지 않은 조건에서는 분단구조의 변혁을 도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설혹 어떤 변혁적 계기를 맞아 진보진영에서 집권할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된다고 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분단구조에서는 다수 대중의 고양된 의식이 밑받침되지 않고는 진보정책의 실행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비록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등의 분단구조하에서도 다수 대중의 의식이 고양되어 있다면 통일3대원칙의 준수와 실천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둘째, 대중운동 과정의 선택적 결정 상황에서 원칙적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대중운동의 의견 조율 과정에서 백가쟁명식 논리가 복잡해질수록 ‘대중의 눈높이’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분단 70년이 가깝도록 파행적 분단구조에 순치된 대중들의 의식이 크게 오도되고 있다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민족구성원 대중들이 역사와 사물에 대해 올바른 자기 인식을 갖게 하는 대중들의 의식 고양 운동은 필수적이어야 한다.

셋째, 7.4남북공동성명의 통일3대원칙이 역대 정권당국에 의해 외면당한 것도, 강대국에 의한 인위적 민족 분단이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불행한 현실은 바로 민족구성원 다수의 의식이 고양되지 못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든가, ‘국민이 깨어야 역사가 발전한다’라는 말들은 다 그 나름으로 고심에 찬 명제였다고 생각한다.
결코 통일은 저쪽에서 이리로 그냥 걸어오는 식의 일은 아니다. 달려가 붙잡으려 해도 쉽사리 잡히지 않는 술래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구성원 대중들의 높이 고양된 의식이 가장 완벽하게 평화적 자주통일을 보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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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발표문 ②] 7.4공동성명과 현 단계에서의 반제투쟁의 과제-김승호(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1. 7.4공동성명의 현재적 의의

잘 알다시피 7.4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당시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측의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성명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원칙들을 통일의 3대 원칙으로 합의하고 공식적으로 천명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이다. 이 선언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대표들이 통일의 기본원칙에 합의했다는 데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특히 남한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외세의존적이고 남북대결적인 통일노선을 포기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식에 의거하는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주적이며 민족대단결인 방식으로 통일하겠다는 올바른 통일원칙을 북과 함께 도출하고 합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원칙이 중요한 것은 7.4공동성명 이전은 물론이고 지금 남한의 일각에서는 외세를 끌여들이고, 민족을 분열시키며, 그 위에 동족상잔의 전쟁을 통해서 국가를 통일하겠다는 반인륜적, 반민족적이고 비현실적인 움직임이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핵심적인 지점이 “자주”와 “민족대단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존해서” 나아가 “외세의 조종을 받아서” 무엇을 해 보겠다는 발상과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이 크게 문제로 되는 것은 외세의 개입과 지원이 없이는 또 다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발상, 즉 민족분열을 통해서, 그리고 민족절멸을 동반하는 전쟁을 통해서 북한을 정복, 흡수 통일하겠다는 반인륜적, 반민족적이며 비현실적인 발상 자체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분단과 전쟁상태의 지속은 한반도의 남쪽이 미 제국주의에 의존 또는 예속된 데 따르는 필연적인 귀결일 따름이다. 7.4공동성명은 남한이 “미 제국주의에 의존 또는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주’와 ‘민족대단결’을 원칙으로 천명한 것은 현실 속에서 남한의 대미 예속으로 인해 자주와 민족대단결이 부정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 잘못됨을 부정하자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작금 나타나고 있는 남북간의 대결과 전쟁을 선동하는 움직임을 제압하기 위해서도 7.4공동성명이 명시하고 있는 통일원칙, 특히 반외세, 반제국주의에 입각한 민족의 대단결과 통일이라는 원칙을 환기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세계 자본주의 현 단계와 반제투쟁의 중요성

세계는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각 나라 안에서는 노동과의 타협 대신에 노동에 대한 공격을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축적형태가 지배적으로 되었다. 또한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는 국가간의 장벽을 허물고 금융자본(주식거래, 은행대부, 헤지펀드의 외환투기 등 모든 종류에 걸쳐) 및 생산자본(상품, 서비스, 농산물 등 모든 종류에 걸쳐)의 수출이 자유롭게 그리고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세계는 어떤 중심도 없는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활개를 쳤다. 한마디로 제국주의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대신 ‘제국’이 들어섰다는 것인데, 사실 그 뜻은 개념적으로는 상당히 모호하다. 이런 논의들은 여러 제국주의들 상호간의 쟁투가 사라졌다는 초제국주의론을 함축하고 있다. 또 이런 논의들은 제국주의로부터 해방하겠다는 것은 무의미해졌다는 것, 제국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계는 여러 제국주의들의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제국이다.”라고 할 때 제국에서 벗어나서 존립할 수 있는 바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제국에 대해서는 보다 덜 착취적이고 평등한 세계를 만드는 ‘대안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자본주의가 세계대공황에 진입하고 그것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국주의 세력이 자본주의 약소국들에 대한 침략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는 데서, 그리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에 지역과 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이 전개되고 있는 데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일찍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약소민족들의 민족해방운동에 밀려서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국들의 독립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실질적인 지배를 유지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근거로 이제 제국주의는 사라졌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제국주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 식민지 지배정책이 신식민주의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도 미 제국주의의 유일 패권이 보다 분명해지기는 했지만 미국 네오콘들이 생각했듯이 “새로운 아메리카의 세기”가 도래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네오콘의 프로젝트였을 뿐 현실은 아니었다. ‘악의 축’ 같은 실패한 깡패 국가들이나 알 카에다 같은 비국가 테러세력만 제압하면 아메리카 제국의 지배가 세계에 전일적으로 관철되는 상태, 전성기의 로마제국과 같은 상태는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여전히 민족국가별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 유럽의 제국주의 나라들이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로 통합하려고 움직이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신흥 자본주의 나라들이 지역적 범위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들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국주의 나라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렇지만 현존 제국주의 질서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1) 그러므로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로마제국처럼 하나의 통합된 세계로 전환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는 여전히 제국주의 단계에 있었고, 지금 그것이 공황이라는 위기를 통해서 재확인되고 있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반제국주의 관점은 여전히 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반 자본주의 투쟁 일반에 있어서 그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신)식민지적 자본주의 나라에서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반제투쟁의 내용을 민족해방적인 차원에서만 파악하는 한계를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 나라에 있어서나 식민지?종속국에 있어서나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계급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도 그 주된 대상이 제국주의이다. 제국주의 모국의 노동자계급도 자국의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면 그 제국주의 형태를 해체시켜야 한다. 레닌이 러시아 제국주의를 해체시키기 위해 혁명적 패배주의를 취했던 데서 그 선례를 가지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일본과 미국 제국주의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투쟁을 하는 조류가 있는데, 이들의 운동은 제국주의 시대의 노동계급 해방운동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된다. 제국주의 모국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이 계속되고 있는 한 그 나라의 노동자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노동계급 해방으로 전진하기보다 노동귀족으로서 체제내화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식민지적 상태에 있는 나라의 노동계급운동 또한 그 주된 투쟁 대상을 제국주의와 국내반동으로, 특히 제국주의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제국주의가 주된 규정력을 가지고 국내반동세력을 하위 파트너로 하여 노동자?민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제국주의와 국내반동은 민족적 모순의 측면에서 투쟁의 대상일 뿐 아니라 계급적 모순의 측면에서도 투쟁의 대상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식민지적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도 제국주의와 국내반동은 민족적 모순의 측면에서 수탈과 압박의 당사자로서 타파 대상임은 물론이고(이 때 국내 독점자본과 반동세력은 매판세력으로 규정된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적인 지배, 착취와 억압의 당사자로서 타파의 대상이다.(이때 제국주의와 국내반동세력은 내외독점자본 세력이다.) 사실 제국주의 자체가 그 본질에 있어서 독점단계의 자본주의인 것이고, 제국주의 단계에서의 민족모순은 사실상 계급모순의 한 형식이다. 제국주의란 단순한 상품수출이 아니라 자본의 수출이고 자본주의 생산양식, 생산관계와 계급관계의 이식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별개로 사고하고 무엇이 우선이냐 라고 묻는 것은 자본수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현 단계 제국주의의 모순구조에 대한 몰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국주의는 민족적으로나 계급적으로나 노동자?민중이 타파해야 할 주된 대상이다. 물론 이 때 국내에 물적,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국내독점자본과 그들을 둘러싼 반동세력을 제국주의의 단순한 허수아비로 보는 편향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 단계 남한의 독점자본은 그 경제적인 힘의 규모면에서 세계 10대 강국에 속하고 있으며, 생산력의 질에 있어서도 유럽의 후진 제국주의 나라보다 앞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 독점자본은 아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점에서는 제국주의 모국의 노동계급이 혁명적 패배주의를 전략으로 삼아야 하듯이 남한 노동자계급도 남한 아제국주의에 대해 혁명적 패배주의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다.

3. 현 정세와 반제투쟁의 과제

1)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수호의 과제

제3차 세계대전 정세 속에서 한반도는 또다시 세계의 화약고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북 정책을 펼칠 것임은 예상되었지만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을 줄은 예상되지 못한 바였다. 천안함 사건은 이런 허를 찌르고 일어났는데, 이것을 이명박 정권이 저질렀다거나 반북 소동에 이용한 책임이 있다는 식의 주장이 남한 민주세력 안에서 지배적이었다. 진보운동 안에서조차 그런 입장이 대세였다. 미군이 작전을 지휘하는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 중에 일어나 사건인데 작전권이 없는 남한의 대통령이 이 사건을 일으킬 수가 있는가? 반북소동에 이용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있는가, 오바마 정부에 있는가? 진실규명을 회피하고 방해한 책임이 남한 대통령과 국방부에 있는가, 미 국방부와 미 대통령에 있는가? 그 책임이 전적으로 남한에 있다는 식이라면 최근 일어난 한일 군사협정 소동도 국무총리가 비밀 국무회의를 주재했으므로 그 책임이 국무총리에 있다고 규정해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천안함 사건은 그 긴장이 그해 연말까지 지속되다가 마침내 연평도 포격사건으로까지 격화되었다. 그 후 전쟁위기는 다소 완화된 듯이 보이지만 물밑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지금 한반도 전쟁위기는 북한을 상대로 급변사태를 일으키고 이를 계기로 침략전쟁을 벌여 정권전복(레짐 체인지)를 꾀하는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김영환 사건은 이런 움직임이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편 한반도 전쟁위기는 북한의 체제전복을 겨냥하는 것뿐 아니라 중국을 포위, 압박하는 것을 겨냥하는 것이 겹쳐 있다. 미국은 중국 주변 나라들과 군사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호주 다윈에 미 해병기지를 건설하고 있고, 필리핀에 해군 함정 방문, 미군 순환배치, 공동 군사훈련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의 캄란 만에 미 해군이 출입하여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제주에 미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런 대 중국 압박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결합되어 추진되고 있다.

이런 군사목적을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이 속도 있게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압력 하에 한일 군사협정 체결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군사협정 체결은 또 공격적인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것과 첨단무기 구입을 위한 군비지출 증대를 동반하고 있다. 또 대미 억지력으로서의 북한 핵무기 보유를 구실로 한 일본의 핵무기 보유와 헌법9조 개정 움직임, 일본 자위대의 서해 진출 기도,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에는 2차 대전 이후 강요된 분단질서가 7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차례 수백 만 명의 인명손실을 동반하는 전쟁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제3차 세계대전 정세를 맞아 또다시 전쟁을 향해, 60년 전과 마찬가지로 남북 간의 이념적 적대에 의한 전쟁과 국제적인 지역 패권쟁탈 전쟁이 중첩된 대전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이 전쟁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투쟁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제국주의와 주변 강대국이 한반도에 대한 패권추구를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 자주와 민족대단결을 이루어 외세의 개입과 지배를 유지하는 일체의 국제조약들을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일체의 외국 군대의 주둔을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입각한 통일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은 통일이냐 전쟁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2) 제국주의의 약소국들에 대한 간섭과 침략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투쟁 과제

제국주의는 제2차 세계대공황이 발발한 이래 그 동안의 테러와의 전쟁 차원을 넘어서 전방위적으로 약소국들에 대한 침략을 벌이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몇 년 전 온두라스에서 친미 쿠데타를 조종하여 관철시켰고 최근에는 파라과이에서 의회쿠데타를 일으켜 진보적 대통령을 축출했다. 이곳들은 모두 미군기지와 관련이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는 예방혁명으로서 ‘민주화 이행’ 공작을 관철시키고 있다. ‘재스민 혁명’이라고 자칭하는 이 사이비 혁명은 사실 이 지역에 오랫동안 하위 파트너 구실을 했던 독재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세속적 자유주의 세력과 체제내적 무슬림주의 세력을 포괄하여 친서구적인 부르주아 정권을 세움으로써 민중들 속에서 친서구적 요소를 강화하고 반서구적인 요소를 고립시키려는 기도를 가지고 있다.

이 재스민 혁명이 가짜라는 것은 시아파 세력이 주도하는 바레인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는 카타르와 사우디 아라비아가 무력 개입하여 짓밟는 것을 묵인 방조했던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또 이집트에서 그 동안 전투적으로 투쟁해 왔던 세력을 배제하고 무슬림 형제단과 군부가 정권을 공유하는 것을 묵인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구 독재자가 쫓겨난 튀니지와 예멘에서도 민중이 주도하는 참된 민주정부가 수립되고 있지 않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이 벨로루시의 루가셍코 대통령을 ‘유럽 최후의 독재자’로 지목하여 역시 경제재제를 가하고 있다. 이런 압박은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고 루카셍코 정권이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면서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쿠데타와 사이비 혁명 조종에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는 이 나라들에서의 독재정권의 유지를 지지해온 데 대해 사죄하고 이들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노동자?민중의 민주화 투쟁에 개입하지 못하게 반대해야 한다.

제국주의는 또한 반제 자주적이거나 진보적인 약소국에 대한 압박과 침략전쟁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부시 정권이 이른바 악의 축 나라들에 대해 무시정책을 폈다면 오바마 정권은 오히려 더 공격적인 전쟁정책으로 나서고 있다. 이같은 바깥으로부터의 침략과 안에서 내란을 부추기는 정권전복(레짐 체인지)이 결합되어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발전한 형태인데, 부시 정권의 테러와의 전쟁이 가진 헤게모니 결핍을 보완하는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세계대공황이라는 정세의 침략전쟁 요구에 부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침략전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내내 한반도를 긴장시킨 천안함 사건과 미국과 나토가 벌인 2011년의 리비아 침략전쟁이다. 그리고 지금 그 전쟁은 시리아를 대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다음 순서로 이란이 침략의 명부에 올라 있다. 이란에 대해서는 핵 시설에 대한 공습 위협과 함께 경제재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침략전쟁에 대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반대해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데도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략에 대해 전 세계 양심세력이 떨쳐나서 반대했던 것과는 달리 오바마 정권이 벌인 침략전쟁 기도 또는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침략을 선동하는 기이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개념 없는 진보’가 제국주의의 ‘자국민 보호’ 이데올로기와 미디어의 거짓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3) 제국주의 블럭과 자본주의 강대국 블럭 간의 전쟁에 반대하는 과제

세계는 지금 제2차 경제대공황과 제3차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제3차 대전은 제국주의의 약소국에 대한 재식민지화 전쟁과 더불어 제국주의와 신흥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의 패권쟁탈전의 형태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미?일?나토 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 협력기구 나라들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2) 현재의 추세대로 나간다면 이 두 세력 사이의 대규모 전쟁은 회피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쪽은 기존의 세계지배를 현상유지 하고자 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번 경제대공황이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전 지구적 세계지배를 관철하고자 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안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확대하고자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국주의 상호간의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영토재분할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향에 대해 대전의 발발을 단정짓는 것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자신들이 벌인 반인륜적 제2차 대전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투쟁과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위기와 불가분하게 맞물려 있다. 잘 알고 있다시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전쟁위험은 북한을 상대로 하는 미?일 제국주의 및 남한 반동세력의 침략 기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침략기도와 연동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을 향해 움직이는 주동인은 북한과 중?러이기보다 미?일과 남한 반동세력이다. 얼핏 보면 양비론에 빠지거나 거꾸로 북한과 중?러가 도발자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전쟁이 벌어졌을 때 누가 공격적 위치에 있을 것인지를 보면 그것이 착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자본주의 강대국 간의 전쟁위기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포위하고 공격하려고 하는 세력에게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전쟁기운을 고조시키는 데 단호히 반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 국가’임을 천명하고 군사력 배치의 중심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두기로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럽과 지중해 지역에 대해서는 유럽연합이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로 통합되어 러시아 봉쇄를 군사적으로 담당케 하자는 구상인 것이다.

4) 경제대공황 위기 전가를 위한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에 반대하는 과제

자본주의 경제는 지금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초유의 대공황에 직면해 있다. 이 공황이 대공황인 것은 기존의 자본축적 패러다임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라는 금융정책도 수조 달러의 경기부양 재정정책도 실물경제의 하락을 멈추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자본주의 나라들 가운데 실세인 제국주의 나라들은 위기를 다른 나라에 전가하여 희생시키는 것을 통해 자국 자본주의의 생존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근린궁핍화에는 다른 강대국을 희생시키는 것과 식민지?종속국을 희생시키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이웃을 희생시키는 방법으로는 경제블럭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배타적 지배영역으로 만드는 것이 고전적 수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제국주의나 강대국을 배제시키면서 그 블럭 안에 갇힌 식민지?종속국을 마음대로 착취?수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제국주의는 지금 이런 목적을 가지고 2009년 이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약(TPP)’을 추진하고 있다. 이 TPP는 아시아와 남미에서의 기왕의 경제협력의 방향을 파괴하여 이를 친미 각국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영토 재편성이다. 이 협정은 이 지역 나라들을 친미와 반미로 나누고 중국을 비롯한 반미 국가들을 배제하여 압박하는 것을 일차 목적으로 하면서, 그와 동시에 이 협정에 포함된 친미 나라들을 투자와 무역 등 제반 영역에서 ‘자유무역협정’ 이상으로 자유롭게 식민지적으로 수탈하고자 한다.

한국은 경제영토를 확장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작년 말 국회에서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시킴으로써 이 협약 체결로 나가는 길에 선두 테이프를 끊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또 중남미로 날아가서 친미국가인 한-콜롬비아 FTA 협상을 타결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FTA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하고, 언론에서는 경제영토를 확장하게 되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APEC을 대체하는 이런 거대 경제블럭 형성의 압박을 받아 일본도 이 협약의 틀 안으로 투항하고 있다.3)

이 TPP협약은 이렇게 경제적으로 중국을 배제하고 약소국들을 블록으로 묶어서 배타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동맹을 구축하여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기도와 연동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런 불순한 미 제국주의 경제블록 구축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며, 이런 맥락에서 한-미 FTA를 폐기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 경제블록 형성 기도는 총력 저지되어야 한다.

5) 세계 반제 민중투쟁 전선 구축에 복무하는 과제

2011년 여름 필리핀에서 민중투쟁 국제연맹(ILPS) 제4차 국제대회가 있었다.4) 이 총회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 중점을 두는 것이 현 단계 세계 변혁운동의 노선이 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이 반제투쟁 노선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나 제3세계 나라에서나, 저-발전된 나라에서나 덜-발전된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타당함을 분명히 했다. 이 연맹은 차베스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여 다음번 총회를 2013년에 베네수엘라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이는 아시아 지역과 중남미 지역의 반제 민중투쟁이 긴밀하게 상호 교류하고 단결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한 나라의 노동조합들이 자기나라의 총자본에 맞서 전국적으로 단결하듯이 여러 나라의 노동자?민중들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 제국주의에 맞서서 범세계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이런 단결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조합들이 전국적으로 단결을 이루는 것 자체가 투쟁이듯이 반제 민중투쟁이 세계적으로 단결하는 것이 하나의 투쟁이다. 말하자면 투쟁을 위한 투쟁이다. 이런 조직건설 투쟁은 제1인터내셔널이 없이 유럽 노동운동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듯이 이런 세계적 조직이 없이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투쟁을 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투쟁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와 같은 반제 민중투쟁 국제조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의 가장 필수적인, 그러나 방기되어 온 투쟁과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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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민중투쟁 국제연맹(ILPS) 제4차 국제대회 총화 선언

밝은 미래를 건설하자! 지구적 불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자행되고 있는 착취와 억압 그리고 국가 테러리즘과 침략전쟁을 격퇴하기 위하여 민중을 동원하자!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는 지속되고, 악화되고 있다. 광범위한 민중은 이 위기가 민중들에게 초래하고 있는 엄혹한 결과들에 대해 그리고 이 위기의 부담을 민중에게 떠넘기고 있는 정부 조치들에 대해 저항하고자 떨쳐 일어서고 있다. BR>지속되고 있는 이 위기는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파산과 부패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위기는 또한 세계 민중들에게,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들에 대한 투쟁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음과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필요가 있음을 가리켜주고 있다.

지구적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2008년에 시작한 경제위기 및 금융위기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적 불황(global depression)으로 심화되었다. 이 위기의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독점 부르주아들이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서(이른바 ‘탈규제’되어) 금융투기에 마구 탐닉한 데 있었다. 그러나 근저에 있는 원인은 자본주의 고유의 내재적 모순,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의 고도화와 사회적인 생산물의 사적인 전유 사이의 모순으로 인한 과잉생산의 위기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기가 눈앞에서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독점 부르주아지는 근로민중의 소득과 사회복지 급여를 더욱 삭감함으로써 그리고 또 금융투기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계속해서 이윤을 거둬들였다.

근로민중이 창조한 부(富)에서 뜯어낸 돈인 공적 자금은 거대 은행과 기업을 구제하는 데, 그 거대 은행과 기업들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 데, 그리고 주가를 회복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하지만 실물경제에서는 전혀 회복이 일어나지 않았다. 전반적인 추세는 생산과 고용이 침체하고 하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물경제 침체로 인해, 즉 실업, 불완전고용, 저소득, 기초 생필품과 서비스 가격의 앙등 등으로 인해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부를 창조하는 근로민중들이다.

정부는 부자감세, 독점기업들에 대한 특혜적인 보조금, 실제 이상의 비싼 값으로 매겨진 정부조달 계약, 대 부르주아지들을 위한 전례 없는 구제금융 등으로 인해 거대한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게다가 군수품 생산에 들어가는 돈과 군사개입 및 침략을 위해 들어가는 돈 또한 막대해서 이것들로 인해 재정적자와 공공부채가 눈 더미처럼 커지고 있다.

전후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진 자들은 적반하장 격으로, 공공부문 근로자들을 비롯한 전체 근로민중들이 과도한 임금인상과 복지개선을 누림으로써 물가를 급등시키고 재정적자를 급증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악의적인 비난은 가진 자들의 ‘공적자원 약탈’을 “긴축조치”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분장하여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긴축조치”라는 것은 나아가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빚어진 위기의 부담을 민중들에게 떠넘기려는 교활한 술책이다.

제3세계의 억압받고 착취 받는 민중들이 위기에 처한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의 약탈/파괴 행위에 의해 가장 심하게 고통 받고 있다. 투기자본은 지금 식품 및 연료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의 민중들을 더 깊은 가난으로 몰아넣고 있다. 초국적 기업들은 석유, 식량, 광물 및 기타 자연자원들을 더욱 많이 채굴/수출하고자 광대한 분량의 토지, 숲 및 해양자원을 미친 듯이 탈취하고 있다. 이 초국적기업들은 현지의 지주, 매판, 종속국가들과 공모하여, 소농민, 농장(farm) 노동자, 어민, 원주민, 목부(牧夫), 목농(牧農家) 및 기타 농촌-공동체들로부터 그들의 생계 수단을 폭력적으로 빼앗고 있다. 이런 약탈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 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억압받고 있는 저-개발된(under-developed) 국가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는 덜-개발된(less developed) 자본주의 국가들이 있다. 이 나라들은 경제적, 금융적으로 미-제국주의, 유럽연합-제국주의 및 일본 제국주의에 의존하고 있고 대개 이들에게 굴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제국주의 정책은 이들 나라의 근로민중, 소농민 및 소기업가들의 생계를 공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는 이 나라들에게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건들에 대한 공격과 민주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침해를 한층 더 강도 높게 실행하게끔 만들고 있다.

제국주의적 세계화는 이 중간 정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제조업, 일자리, 토착문화 등을 쓸어 없애고 있으며, 더불어 환경의 퇴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토착 농업과 식량생산은 다국적 거대 농기업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들 기업의 지구적 차원에서의 돈벌이에 보탬이 되는 방향에서 재구조화 되고 있다. 또 나라의 자원이 다국적 광산 독점체들에 의해 약탈되고 있다. 자원이 개발되어도 민중들에게는 이득 배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이들 나라들 가운데 몇몇에서는 현지의 지배계급이 제국주의의 대리인이 되어 있으며,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이 덜-개발된(less-developed) 중위의 자본주의 나라들의 근로민중의 반-제 민주주주의 투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범세계적 통일전선의 한 부분이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미제가 이끄는 제국주의 열강들로 하여금 군수품 생산을 늘리게 만들고 있으며, 침략, 점령 및 반-혁명을 위한 전쟁을 벌이도록 몰아가고 있다. 미국과 미국의 나토 동맹국들은,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및 리비아 같은 나라들에 대한 침략전쟁에서 보듯이 전쟁을 개시함에 있어서 거침없이 국제협정을 무시하고 있으며, 또 거침없이 이 나라들의 민족주권을 유린하고 있다. 그런 침략전쟁에서뿐 아니라 콜롬비아, 인도, 페루, 필리핀 및 터키 같은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혁명 캠페인에서도 - 이 나라들에서는 지금 민중이 무장 혁명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데 - 미국과 그들의 현지 꼭두각시들은 흉악한 전쟁범죄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범죄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인종청소, 체계적 고문, 핵/생물학/화학 무기를 비롯한 각종 대량살상 무기 사용, 그리고 민간인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 등.

제국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중들 및 민족적 독립을 내세우는 민족들과 나라들에 맞서서 단결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재분할을 위해 싸우게 되면서 그들은 점점 더 제국주의 상호간의 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끌고 있는 몇몇 나라들은 - 이 나라들은 지금 점점 더 뻔뻔스러워지고 있는 미-NATO 침략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 미-NATO 동맹에 맞서는 대응물로 삼고자 상하이 협력기구 및 집단안보조약기구 같은 동맹을 형성했다.

저항으로 떨쳐 일어서는 민중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는 높은 실업률, 힘겹게 쟁취한 사회보장 제도의 침식, 노동조합 활동의 권리를 비롯한 민주적 제 권리의 삭감, 그리고 근로민중에게 가장 큰 희생을 강요하는 엄격한 긴축조치 등으로 인하여 사회불안이 널리 퍼져 있다. 노동자, 청년학생, 여성, 이민자, 유색인, 기타 사회의 약자들이 대중 항의와 총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다른 한편, 독점 부르주아지는 영악스럽게 대중매체, 신흥 정보통신기술, 부르주아 정당, 교회 및 학교들을 이용하여 반공 이념과 편견을 퍼뜨려 왔으며, 쇼비니즘, 반-이민 감정,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 종교적 편협성, 전쟁 히스테리 및 파시즘을 선동해 왔다. 이는 민중을 속이고 분열시키고, 반-혁명을 진척시키며,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맞이한 위기의 진정한 근원을 은폐시키며, 나아가 세계 민중의 혁명적 투쟁에 대해 그 토대를 침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지속되고 있고, 이 위기 상황은 민중들에게 대중운동을 발전시키고 강화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위기 상황은 또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혁하는 대중투쟁을 이끌 정당들을 건설하고 강화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민중들이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세력들에 맞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투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투쟁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및 팔레스타인에서와 같이 제국주의의 침략과 점령에 맞서 무장 저항을 벌이고 있다. 인도, 필리핀, 콜롬비아, 페루, 터키 및 그 밖의 여러 곳에서도 반동적 지배체제에 맞서는 무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대중들 속에서 반제국주의 감정이 날로 높아가고 있으며, 이에 고무되어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정부의 경우에서 보듯이 여러 나라 정부들이 미 제국주의의 압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적 주권을 내세우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쿠바, 베네수엘라 및 볼리비아 민중들의 단결된 저항에 힘입어 범세계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무장혁명과 민족해방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민중들은 민중권력을 쟁취하고, 제국주의의 압박과 약탈이라는 족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주적인 특성을 가진 새 나라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난, 친미 억압적 정권들을 흔들어댄 합법적인 대중운동과 비무장의 대중봉기는, 비록 독재자 또는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것 자체만으로는 반동적인 지배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 봉기들은 노동자 정당과 진보적 대중운동이 자신의 대오 안에 혁명적 변혁의 요소들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고 있다.

제국주의 위기의 지속과 제국주의 나라들 상호간의 모순의 증가는 저개발국들에 대한 제국주의의 통제를 전반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저개발된 종속국들에게 민족적 자주독립성을 주장할 여지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고, 또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대중운동이 전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이 같은 조건들은 세계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들에 맞서는 매우 광범위하고 강력한 단결을 이루어내며, 나아가 제국주의의 착취와 억압 및 전쟁이 없는 세계 - 자유, 평등, 번영, 평화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종래보다 한결 유리한 조건으로 되고 있다.

본 연맹의 항구적인 임무와 새로운 임무

제국주의 착취와 억압 체제의 계속되는 위기는 세계 민중의 반제 민주주의 세력이 자신의 투쟁을 전진시킴에 있어서 절호의 기회로 되고 있다. 민중투쟁국제연맹(ILPS)은 이 제국주의 체제의 위기를 그 자신의 힘을 확대 강화하는 기회로 움켜쥐어야 하며, 제국주의와 온갖 형태의 반동들에 맞서는 범세계적인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서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한다.

연맹의 모든 회원조직들은 연맹의 강령에 명문화되어 있는 항구적인 임무들 및 새로운 정세 하에서 제4차 국제대회에서 총화된 선언문과 각 위원회들의 결의문들에서 발표된 새로운 임무들을 지침으로 삼아야 하고 또 그 임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정치교육의 임무(생략)

조직화의 임무(생략)

대중동원의 임무(생략)

우리는 우리의 기본 문서들에 부합하게, 우리가 도달한 합의와 우리가 이 대회에서 만든 결정들에 기초하여, 부단히 공부하고, 자신을 정화하며, 우리 연맹과 운동을 강화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이번 대회는 우리가 전진해 나갈 노선과 노정을 입안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계속 전진하는 노정에서 한발을 더 내딛는 데 디딤돌이 된다.

밝은 미래

민중은 자신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세력들에 맞서 혁명투쟁을 수행하고 또 자신의 힘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그들의 삶을 파탄내고 있기에 민중은 자본의 이 위기-전가를 저지하고자 투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투쟁하는 민중 가운데 반제 민주주의 세력이 제국주의와 국내반동에 맞서 민족적 및 사회적(계급적 및 인간적)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대중적 항의와 혁명적 투쟁이 고양되도록 책임진다.

광범위한 민중이 근본적으로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해 굽힘없이 나아가고 있다. 단호하고 전투적인 투쟁을 통해서 민중은 그리고 민중만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밝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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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발표문 ③] 7.4남북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1. 7.4남북공동성명은 6.15공동선언의 씨앗

2000년 4월 남쪽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쪽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약속하면서 채택한 이른바 4.8합의문은 “남과 북은 역사적인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6.15공동선언뿐만 아니라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역시 그 전문에 7.4남북공공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7.4남북공동성명이 남북 사이 모든 대화의 출발점, 남북 간 모든 합의의 기본강령이 된 것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등 조국통일3대원칙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분단극복의 절대조건이며,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통일실현의 근본조건이기 때문이다.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과 북 당국은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한다. 외세에 의존하는 사대주의는 민족의 이익보다 외세의 이익에 종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세의 간섭을 받는 제국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외세에 침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과 북 어느 일방이라도 그렇게 할 경우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북 당국은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한다.”고 약속한다. 한반도는 남과 북의 군대, 그리고 미군까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군사력 밀집지역이며, 그들 사이의 사소한 충돌이 언제든 전면전으로 확대된다 해도 국제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가공할 위험상태, 즉 휴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일방이 무력으로 상대를 흡수하려 하는 순간, 통일이 아니라 민족 공멸을 맞는다.

남과 북 당국은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한다.”고 확인한다. 민족이 둘로 나뉘어 사상과 이념, 제도에 차이가 발생한 이상, 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앞세우면 언제까지나 하나가 될 수 없다. 그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대단결을 실현할 때에만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부터 40년 전에 남과 북 당국이 7.4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한 것도, 그 이후 모든 남북관계에 변함없는 기본원칙으로 그것을 지켜온 것도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즉 조국통일 3대 원칙이야말로 통일의 강령이며 분단 극복, 통일실현의 현실적 지침이기 때문이다. 그 씨앗이 28년을 자라 마침내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피어난 것이다.

2. 6.15공동선언은 7.4남북공동성명의 꽃

7.4남북공동성명이 통일원칙이라면 6.15공동선언은 통일의 이정표다. 이정표를 그대로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처럼 6.15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하면 머지않은 내일 우리 모두 통일조국에서 만날 수 있다.

6.15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첫째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다짐한다. 7.4남북공동성명의 재확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양 측은 둘째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선포한다.

통일이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처럼, 통일을 그 무슨 망상처럼 인식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통일을 ‘체제의 통일’로 규정하고, 교육하고 홍보한다. 남이 북을 먹거나 북이 남을 먹는 통일, 즉 체제의 통일은 전쟁과 죽음을 연상시키고, 통일 거부감, 혐오증을 유발한다. 6.15공동선언 2항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통일방도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통일을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뜻만 합치면 내일부터라도 통일의 무궁무진한 영광과 번영을 누릴 수 있음을 밝혀 주었다.

3.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웠으니 이제 열매를 거둬야

아무리 씨앗을 잘 뿌리고, 꽃을 어여삐 피워도 그 이후 농사를 멈추면 결코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를 통해 우리는 안타깝게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을 내세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면서 출발했고, 그 이후 남북관계는 7.4남북공동성명 이전으로 후퇴했다. 그리하여 남북은 전쟁전야의 긴장에 일상적으로 빠져들었으며, 우리는 경제협력의 축소, 사회문화 교류의 차단 등으로 경제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최근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 강행에서 보여지 듯 한미일 3각 군사동맹 강화를 추구하여 동북아를 긴장시키고 있다. 결론은 명백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결정책을 치유하지 못하고, 12월 대선을 통해 지금 같은 정책이 연장된다면 국민의 운명과 민족의 미래뿐 아니라 동북아의 정세도 어둡기만 하다.

12월 대선에 출마하는 모든 이들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결정책을 바로잡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특히,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새누리당은 보수의 원조, 박정희 정부가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으로 속히 돌아와야 한다. 또한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2002년 5월 방북 직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6.15공동선언도 7.4공동성명에서 그 뜻이 뿌려진 것이다. 7.4공동성명 채택 당시 씨앗이 뿌려졌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우리 세대에 결실을 보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는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여야 정당과 대선후보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결정책을 마감하고,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을 실현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국민적 검증을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7.4남북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며, 또 그렇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또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지키고 가꾸고 앞당겨 나갈 사회적 역량을 각계각층에 보다 폭넓고 강력하게 구축해 나감으로써 다시는 이명박 정부 같은 역주행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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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본부 발표문] 범민련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고수리행해나갈데 대하여

나라의 평화와 조국통일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안고 《7.4공동성명발표 40돐기념 북,남,해외공동토론회》를 성대히 개최한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냅니다.
아울러 토론회에 참가한 남녘의 각계 인사들에게 따뜻한 동포애적인사를 보냅니다.

조국통일의 앞길에 커다란 장애가 가로놓여있는속에 개최된 이번 공동토론회는 온 겨레의 가슴속에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의 력사적의의와 정당성을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 해내외의 온 겨레를 자주통일운동에서 힘차게 추동하는 뜻깊은 계기로 될것입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7.4공동성명은 나라의 통일을 외세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평화적방법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이룩할데 대한 문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1970년대초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세력은 세계도처에서 강력한 반미반전투쟁에 부딪쳐 수습할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되였으며 내외정세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겨레의 투쟁에 유리하게 발전하고있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급변하는 내외정세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데 기초하시여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폭넓은 북남협상방침을 천명하신데 이어 1972년 5월 3일에는 북남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남측대표를 만나시고 통일문제해결의 기초로 되는 조국통일3대원칙을 천명하시였습니다.

조국통일 3대원칙에서 밝힌 자주의 원칙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이며 통일문제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한 통일운동의 출발점입니다.
평화통일원칙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과 요구에 맞게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방도입니다.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북남사이에 존재하는 사상과 리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해내외의 온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행동지침입니다.

남측대표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께서 제시하신 통일원칙에 전적인 지지를 표시하였으며 당시 남측집권자도 북남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간 우리 대표에게 조국통일 3대원칙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72년 7월 4일 조국통일 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공동성명이 세상에 발표되게 되였습니다.

7.4공동성명의 발표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일대 민족사적사변이였습니다.
유엔총회 제28차회의와 제30차회의, 쁠럭불가담국가수뇌자회의와 외무상회의들에서도 조국통일 3대원칙을 지지하는 결의와 문건들이 채택되게 되였습니다.
조국통일 3대원칙이 7.4공동성명을 통하여 내외에 엄숙히 선포됨으로써 우리 겨레는 조국통일문제를 자기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는 민족공동의 투쟁강령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또한 안팎의 분렬주의세력에게는 심대한 타격을 주고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겨레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새로운 력사적계기를 열어놓았습니다. 특히 조국통일 3대원칙은 새천년대가 시작되는 2000년 6월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을 통하여 재확인됨으로써 그 정당성과 생활력, 불변의 진리성과 거대한 견인력이 더욱 과시되였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를 기본핵으로 하는 6.15북남공동선언은 조국통일3대원칙의 매 조항들과 내용들이 그대로 맥박치고있는 민족자주선언, 평화통일선언, 민족대단결선언이며 새 세기 조국통일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통일리정표입니다.
북남선언들의 채택과 그 리행으로 조국통일 3대원칙의 기치밑에 힘차게 전진하여온 조국통일운동은 새로운 력사적단계에 들어서게 되였으며 민족적화해와 단합이 힘있게 추진되고 전민족적범위에서 자주통일기운은 전례없이 높아지게 되였습니다.

온 겨레는 조국통일의 진로를 밝혀주고 평화번영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준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들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그 리행에 한사람같이 떨쳐 나서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는것입니다.

력사적교훈은 북남사이에 아무리 좋은 합의들이 채택되였다 하더라도 그에 역행하여 외세에 추종하고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외세와의 관계속에 종속시키려 하여서는 언제가도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수 없다는것입니다.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가 최근 몇년째 완전히 파탄되고 최악의 대결국면으로 치닿고있는것도 전적으로 현남측보수당국이 북남공동선언들을 전면부정하고 외세와 결탁하여 동족대결정책을 악랄하게 추구해온것과 관련됩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외세의 간섭과 전횡을 철저히 반대배격하여야 합니다.
특히 친미보수《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남측에서의 《대선》을 앞두고 더욱 로골화되고있는 미국의 교활한 음모와 《선거》개입책동에 각성을 높이고 단호히 분쇄해버려야 합니다.

온 겨레는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대결을 조장하는 외세와의 《동맹》관계를 우선시하면서 외세의 대조선침략책동에 적극 동조하여 대결을 추구하는 반통일세력의 매국배족적인 사대굴종행위를 단호히 저지시켜야 합니다.

통일문제해결의 주인은 다름아닌 우리 민족자신이라는 높은 자각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갈때 조국통일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가 통일문제해결을 위해 마음과 뜻을 합쳐나가야 합니다.
반통일세력의 동족대결과 전쟁책동을 짓부시는것은 현시기 겨레의 안녕과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선차적요구입니다.

지난시기 북남관계가 아무리 복잡다단하였지만 지금처럼 대결의 극한점을 넘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엄중한 사태가 도래한적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민족의 버림을 받아 더러운 숨통이 꺼져가는 지금 이 시각에도 반통일보수세력은 동족의 최고존엄과 체제를 계속 심히 중상모독하면서 반북모략과 전쟁대결책동에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습니다.

이것은 친미사대와 북남관계파탄, 반인민적악정과 부정부패 등으로 높아가는 각계층의 분노의 이목을 딴데로 돌리고 극도의 통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로를 다름아닌 북침전쟁도발에서 찾으려 한다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운명과 조국통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반인민적통치체제유지와 재집권야망실현을 위해서라면 북침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다는것도 서슴치 않는 반통일호전세력의 무분별한 책동을 저지시키기 위한 반전평화운동을 힘차게 벌려나가야 합니다.

외세와의 각종 북침합동군사연습들과 무력증강책동, 일본과의 《군사협정》체결을 비롯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미국, 일본과의 군사적결탁책동을 반대하는 전민족적련대투쟁을 보다 강력히 벌려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친미사대, 반통일세력과의 첨예한 대결전에서 승리의 근본담보는 온 민족의 대단합을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건 사상과 리념, 당파와 소속의 차이를 뒤로 미루고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합니다.
북남 계층별, 부문별 단체들사이의 래왕과 접촉을 활성화하고 민족적화합과 단결을 추동하는 다양한 련대운동과 공동투쟁을 더욱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남측의 극우보수패당이 악랄하게 벌리고있는 《종북세력척결》소동과 《색갈론》공세에 각성을 높이고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교활한 분렬리간책동과 희세의 정치테로행위에 단호한 반격을 가하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동족사이의 적대와 대결을 고취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보안법》을 비롯한 온갖 제도적,물리적장치들을 제거하기 위한 대중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합니다.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조국통일의 한대오에서 함께 손잡고 나가려는것은 우리의 일관한 립장입니다.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 탄생 100돐 경축행사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에서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것이라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천명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들을 지지하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해내외의 모든 정당들과 각계층 단체, 인사들과 접촉과 대화를 발전시키고 조국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갈것입니다.

여러분!

조국통일위업실현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과 장애가 가로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범민련이 그 어떤 역풍에도 흔드림없이 통일위업의 기수,선구자가 되여 힘차게 나간다면 자주통일과 민족번영의 새 시대는 앞당겨지게 될것입니다.
우리 모두 비상한 각오와 열정으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과 북남공동선언실천에 한사람같이 떨쳐 일어나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애국의 더운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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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본부 발표문] 7.4 공동성명과 6.15시대의 실천과제

올해가 7.4 공동성명 발표 40돌이 되는 해이다.
7.4 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남과 북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발표한 공동성명이다. 1972년 박정희의 지시로 이후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파견되어 김일성 주석과 만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합의 발표하였다.

당시 국제적 데탕트(화해)분위기와 주한미군 철수선언, 군비경쟁 축소를 위해 3대 통일원칙이 제정되었으나 이후 통일논의를 통해 남북 양측이 자국 권력기반 강화를 위해 이용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남(한)의 경우 당시 제3공화국의 정치적 위기가 가장 큰 배경이었으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등 대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조선)의 경우 ‘남(한)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아무 때나 접촉할 용의’를 표명했는데 이는 미국과 중국의 화해무드를 등에 업은 것이라고 관측되었다.

당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해가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1972년에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중화인민공화국 수상 저우언라이가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남(한)에 대한 지지와 남(한)정부의 한반도 긴장 완화, 교류증진에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과 중국의 북한의 평화통일 8개항 방안과 언커크(UNCURK,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해체 요구입장의 지지를 주 내용으로 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대외적 상황을 배경으로 둔 북(조선)의 남북회담 제안에 남(한) 정부가 부응함으로써 1971년 9월 20일 비밀리에 남북 적십자 회담이 개최될 수 있었다. 이후 서울과 평양 간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협의를 위한 여러 회담들이 진행되면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회담들에서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쌍방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보지 못한 결과로 생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에 완전한 견해의 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7.4공동성명은 남북의 평화적인 그리고 상호주체적인 통일을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통일방안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었다.
마치 냉전적 대립처럼 그리고 미. 소 대립처럼 1대1 대립관계, 적대적 관계를 유지시키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방안이 곧 7.4공동성명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양 정권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최초의 합의로서 의의를 가진다. 또한 기존의 외세 의존적이고 대결지향적인 통일노선을 거부하고 올바른 통일의 원칙을 도출해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나아가 이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으로 이어져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계승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6.15시대의 실천과제

- 6.15통일 시대를 진정한 6.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 이념으로 뿌리 내리는 작업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최근 남북 간의 긴장과 대립의 격화, 그리고 높아지는 전쟁위기를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냉철한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6.15공동선언’을 지키고 실천하는 6.15시대에 안주하다 뼛속까지 친일. 친미인 “21세기 유신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겨 국권마저 찬탈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안타까운 모습이다.
하여 우리는 6.15시대를 새롭게 꾸려갈 준비에 나서야 하며, 진정 6.15공동선언을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으로 뿌리 내리는 문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남(한)에서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하면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남(한)의 “종북세력”이 북과의 정치흥정 정도로 매도되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마치도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성명을 구실삼아 남(한)은 10월 유신을 발표하여 헌법을 이용한 독재를 선포한 반시대적, 반민족적 그리고 반통일적 “21세기 유신독재”를 능가하고 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6.15주도세력”의 냉정한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6.15공동선언의 핵심인 “우리민족끼리”는 간데없고 흡수통일의 다른 표현인 “햇볕정책”의 관철이라고 선전해 왔다. 이게 반북 수구보수 세력에게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두리 뭉실 “6.15공동선언은 종북선언”이라고 억측을 부려도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는 실정을 자초한건 아닌지 자기 점검이 필요하리라 본다.

조국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좀 더 깊은 접근이 없고서는 당면하여 더 나은 민주주의와 더 높은 경제 성장도 기약할 수 없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조국반도에서 평화를 지키고 조국의 통일을 불러오는 길은 바로 6.15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길이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자는 이 사상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당연한 이치이고 새로운 통일이념인 것이다.
온 겨레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밑에 단결하고 또 단결하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이 땅에서 6.15자주통일의 도도한 흐름이 세차게 굽이치게 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4선언은 정세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해도 조국통일 위업수행에서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가장 정당한 지침이다.
이들 공동선언들은 그 이행과정에서 자기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남김없이 과시된 민족공동의 투쟁 강령이다.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적극 지지하고 이행하려는 분위기가 온 강토에 차 넘치게 하여 6.15통일시대 흐름을 다시 잇게 해야 한다.

- 다음으로 민족의 자주권을 유린하는 외세의 간섭과 삼천리강산에 전쟁위험을 몰아오는 전쟁 대결 소동을 저지시키고 조국반도에 평화를 안아 와야 한다.

격변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와 우리 민족이 처한 환경은 21세기에 들어선 오늘까지 미국의 예속 밑에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며 남(한)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미국의 지배와 예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오늘 미국의 세계일극화야망은 헛된 꿈이 된지 오래고 동북아시아나라들의 국력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동북아시아나라들과 미국사이의 대결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이때 미군의 남(한)주둔이 지속되고 보수 세력의 친미일변도정책이 지속된다면 남(한)은 열강들의 틈에 끼워 더욱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빠져들게 된다. 나아가 그것이 남(한)은 물론 조국반도를 또다시 20세기 초와 같이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만들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약소국의 아픔 중에 가장 뼈저린 아픔은 강대국을 추종하여 개인의 안락과 치부만 탐하는 사대매국세력들이 백성의 안위 운운하며 민족의 자주권과 이익을 통째로 강대국 외세에 팔아치우는 일이 대대로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친미 보수 세력을 떠나 남(한)에 대한 통치를 유지할 수 없고 보수 세력은 미국을 떠나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다. 이 때문에 과거와 마찬가지로 보수 세력은 그 우두머리가 누가 되든 관계없이 친미일변도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보수 세력의 친미일변도정책이 과연 오늘 남(한)의 민심에 맞는가, 그리고 이러한 친미사대정책이 남(한) 민중들의 내일의 운명에 어떤 후과를 가져오겠는가 하는 것이다.
온 민족은 남, 미, 일의 군사적 결탁의 위험성에 각성을 높이고 동족인 북을 반대하는 무모한 군사적 도발과 무력증강, 전쟁연습을 단호히 거부하며 조국반도에서 평화보장의 기본 장애물인 미군을 남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 줄기차게 벌려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권은 임기 전 기간을 또 다른 전쟁에 불을 붙이기 위해 반북대결정책을 벌이면서 외세의 하수인이 되어 북녘의 최고 존엄까지 헐뜯으며 무모한 호전적 추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남과 북, 해외동포들은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 신앙이나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임기 내내 반민족 행보로 일관해 온 이명박 정권을 반드시 청산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외세와 사대매국세력은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연장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보개혁세력을 파괴하려고 최후 발악을 하고 있다.
하여 이명박 정권과 이를 추종하는 새누리당을 기필코 청산해야 한다. 그러자면 진보당세력과 개혁지향 세력은 그들의 분열책동에 말려들지 말고 반드시 힘을 합쳐 외세와 사대매국세력을 매장시켜 벌여야 한다.

-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에 도전하는 온갖 반통일 책동을 분쇄하고 접촉과 교류, 대화와 협력을 하루 빨리 재개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남측 정부당국자들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적이며 대결주의적인 대북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남측정부당국자들의 시대착오적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실천하려는 태도와 의지의 결여 문제이다.
모든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집약된 이상 6.15공동선언, 10.4선언이행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이란 있을 수 없다.

7.4공동성명에 명시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은 이 땅에 사는 당대인들의 당면 최고 이념이요 최고 가치이다. 이 세 가지가 다 담겨 있는 것이 6.15 공동선언이고, 그 실천을 한 걸음 더 내디딘 것이 10.4 선언이다. 이 두 가지 커다란 민족행동강령을 바로 우리의 행동지침으로 삼자는 것이 화두인 ‘우리’의 의미요 주장이다.
우리가 정말 ‘우리’다우면, 우리 앞에 닥친 어떤 난관도 다 극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밝은 내일도 기약할 수 있다.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 10.4선언은 우리 민족을 자주에 살게 하고 평화에 살게 하며 통일을 앞당겨오는 조국통일의 이정표이고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선언이다.
6.15시대와 더불어 줄기차게 전진하여온 조국통일운동은 6.15의 흐름을 줄기차게 이어나가는 속에 조국반도의 평화도 지켜지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도 도모되며 통일강국건설의 밝은 미래도 담보된다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다.
내외 분열주의세력의 악랄한 도전으로 조국통일운동이 시련을 겪고 있고 남북관계가 날로 첨예화되고 있는 속에 전쟁위험이 더욱 격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또한 6.15시대의 소중함을 새겨주며 온 겨레를 자주통일대행진에로 힘 있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운동이 심화 발전되고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과 더불어 전진하는 6.15통일시대가 펼쳐진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또한 상설적인 전 민족적 통일운동연대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되어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냉전이 종식 된지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수평관계가 아니라 수직관계이며 자주적 관계가 아니라 종속관계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까지 미국의 예속에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며 남(한)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도 미국의 지배와 예속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난 4년 반의 극우보수 세력의 행적이야말로 시대와 민심을 대변할 수 없는 역사의 반동임을 보여주었다.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뼛속까지 친일. 친미인 수구보수 세력을 청산하고 6.15통일시대를 거듭나게 하는 것이 6.15시대에 사는 우리의 실천과제이다.


재독 신옥자 선생님의 영전에 맹세 다짐니다

재독 신옥자 선생께서 18일 뇌출혈로 71세의 나이로 애석하게도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부고에 접하고 범민련 공동사무국은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면서 가족 분들과 유럽주변의 동지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지난 4월 태양절에 평양에서 건강하시며 환한 웃음을 보이신 여사께서 이렇게 갑자기 운명하실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만사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낭만적이시며 성실한 생활로 어려움을 당하는 주위 운동가들을 보살피시는 선량한 삶을 살아오신 선생님.
조직내부의 서로 다른 의견이 생기면 항상 중도를 택하신 전형적인 화합형의 모범이시었습니다. 복잡한 통일운동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으로 동지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의 구심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된 이후 오늘까지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헌신해 오신 숨은 애국자이시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이익 보다 분단된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로 하나 되기를 소원 하셨습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12돌을 맞이한 오늘 조국통일의 앞길에 여전히 커다란 장애가 가로놓여 있는 때에 선생님을 잃은 것은 범민련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됩니다.

고 신옥자 여사께서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나셨으나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바치신 고결한 여사의 애국애족의 넋은 범민련과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사께서 못다 이루신 꿈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부디 평화와 통일을 마음껏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웃음을 가득하신 얼굴을 간직하신 채 고이 잠드소서.

2012년 5월 20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공동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