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한반도 평화’ 일깨운 에티오피아 총리의 노벨 평화상

사상 100번째 노벨 평화상의 영광은 집권 후 평화와 화해,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의 갈등을 종식한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43)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아비 총리를 선정하면서 “평화와 국제협력을 위한 노력, 특히 이웃 에리트레아와의 국경분쟁 해소를 위해 결단력있는 이니셔티브를 발휘했다”고 밝혔다.

군 장교 출신의 젊은 정치인인 아비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따른 총리 사퇴, 국가비상사태 등으로 정국혼란이 지속되던 지난해 4월 총리가 된 뒤 군부 출신 인사들을 권력에서 배제하고 다당제를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언론통제를 풀고,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민주화 조치를 신속·과감하게 추진했다. 특히 오랜 분쟁상태였던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의 종전을 선언하고 지난해 9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에리트레아는 1952년 에티오피아에 합병됐다가 30년에 걸친 독립투쟁 끝에 1993년 독립했으나 에티오피아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1998~2000년 두 나라 간 전쟁으로 7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노벨위원회는 아비 총리가 오랜 싸움을 끝내고 아프리카에 평화의 희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터키군이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시리아 북동부에 대한 침공을 개시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쟁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멀쩡한 건물들을 파괴하며 무수한 난민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약자들인 어린이와 여성들이 전쟁으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평화의 가장 적극적인 구현이고, 그런 의미에서 피로 얼룩졌던 ‘아프리카의 뿔’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준 아비 총리는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

아비 총리의 수상은 남북의 70년 분단이 종식되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아비 총리가 이뤄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우리 귀에 익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 과제들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은 ‘아프리카의 뿔’에 비해 ‘평화 만들기’가 한층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비 총리의 수상은 한반도 평화가 남북한뿐 아니라 인류가 달성해야 할 공동목표임을 일깨운다.


[경향 사설] “일본, 식민주의 맞서 인종평등 내걸었다”는 아베의 궤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국회 연설에서 “일본이 100년 전 세계의 식민지 지배 흐름에 맞서 국제무대인 국제연맹에서 ‘인종평등’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된 일본 대사 마키노 노부아키가 국제연맹 규약에 ‘인종적 차별 폐지’를 반영하자고 주장한 것을 언급한 것인데,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었던 일본이 마치 식민지배에 맞선 것처럼 분식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이율배반적 주장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아베의 망언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아베 총리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마키노의 국제연맹 발언은 당시 일본 내에서도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받았다. 아베 발언이 더욱 더 위험한 것은 일본이 위안부 동원과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일제를 미화하는 데로까지 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의 이날 발언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도 우려된다. 아베는 이날 일본의 (인종평등) 제안은 강한 반대를 받았지만 마키노는 당당하게 맞섰다며 지금 일본도 개헌을 위해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하면서도 국제법에 따라 국가 간 약속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3권분립의 원칙을 존중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한일청구권협정의 맹점을 보완한 새로운 판결의 가치를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 아베 내각 주요 당국자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일본 기업이 추가 부담을 져야 할 의무는 법적으로 전혀 없다며 현금화가 현실화할 경우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최근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등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아베 정권의 주류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아베 내각의 이런 인식이 유지되는 한 한·일관계는 절대 개선될 수 없다. 한국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토대 위에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아베 내각이 진정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자신들의 그릇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한국 대표가 참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향 사설] 검찰, 대통령의 개혁 지시 즉시 이행이 국민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검찰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조국 법무장관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발언은 검찰개혁을 요구한 100만 촛불집회 이후 나온 것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민의 외침, 공감에 대통령이 ‘검찰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되어 방안을 만들라’고 주문한 것이다. 요체는 이를 지금 당장 이행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안 마련은 ‘조국 수사’와 별개로 검찰이 이행할 수 있으며 이행해야 한다.

대통령의 검찰 수사관행 개선 주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종의 경고였다. 당시 검찰은 “헌법 정신에 입각,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촛불집회 이후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충실히 받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경고, 국민의 요구에 대해 ‘모양은 갖추면서 변화는 없는’ 원칙적인 답변으로 응수한 셈이다. 이에 대통령은 “수사권 독립은 대폭 강화됐으나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관행,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부족하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발언의 무게는 사흘 전과 다르다. 법무장관을 통한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 최후통첩인 것이다. 검찰은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다.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분산 없이는 검찰이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검경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은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는 정치권이 책임질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검찰이 할 수 있는 개혁을 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면서 개혁안 시행은 조국 가족비리 의혹 수사 뒤로 미루라고 했다. 수사압력으로 해석될 것을 경계한 것이다. 당연한 조치다.

이날 출범한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비입법 개혁방안을 우선 추진한다고 한다. 피의사실 공표·인사·조직문화 등 세부적인 개혁안을 마련해 검찰의 권력화를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적폐청산 때는 무한 신뢰를 보내더니 ‘내 편’에 칼이 들어오니 수사관행을 바꾸라 한다” 등 비판의 글들이 게시됐다고 한다. 이는 윤 총장의 다짐과는 상충한다. 검찰의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사관행의 잘못을 개혁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문제와는 별개의 일로 국민에 대한 검찰의 책무다.


[경향 사설] 방위비 분담금 5배 올리라는 미국의 갑질

한국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첫 회의가 25일 서울에서 열렸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1년 단위로 결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내년에 적용할 새 협상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분담금 협상은 어느 때보다 난항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틈만 나면 분담금 증액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사정은 듣지 않는 우격다짐식 요구에 일일이 항변하기도 지친다.

미국이 분담금으로 50억달러(약 6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 마무리한 제10차 협상에서 한국 측 분담금을 1조389억원으로 결정했다. 전년도 9602억원에서 8.2% 증액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이 너무 적게 부담하고 있다며 5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으로 전개하는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 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담금의 당초 취지에 어긋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한국은 시설과 부지만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나머지 주한미군 유지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다. 그런데 1991년부터 ‘특별협정’을 맺어 주한미군 유지비 중 일부(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과 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비, 용역 및 물자지원 등)를 한국이 부담하게 했다. 미국이 이제 와서 과거에 없는 항목에 대해서까지 돈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이 내는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한다. 남은 돈을 은행에 쌓아둔 채 이자까지 받고 있다.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최대 무기구매국”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리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더욱 유감스러운 일은 미국이 한국을 분담금 인상의 ‘시범 케이스’로 여기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먼저 협상을 마무리한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일본 등에 이 모델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다. 동맹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셈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이 과도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동맹을 해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약속했다. 이 정신을 미국도 존중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북핵 협상 ‘새로운 방식’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북·미 협상과 관련해 “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지난 20일 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북한이 호응하면서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하고 나면 미국이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방식으로,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말은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중대한 방향전환으로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재개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선 핵폐기’에 집착하면서 답보를 면치 못했다. 북한은 양측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핵을 폐기하라는 것은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 왔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시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부연하지 않았다. 다만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이 아니라면 ‘동시적 접근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적·단계적’ 접근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초기 행동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절충 가능성은 작지 않다. 비건 대표는 지난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음을 선언할 중대 조치에 신속히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북·미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셈이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의기투합한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로드맵)에 합의하면서 1단계로 실천 가능한 ‘주고받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와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이뤄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이번 실무협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미 정상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향 사설] 극우 일색의 아베 내각 교체 우려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개각을 단행했다. 2012년 이후 최대 규모로 정치적인 색채도 분명히 드러냈다. 각료 19명 가운데 17명을 교체하면서 극우 성향의 측근들로 자리를 채운 것이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위한 개헌드라이브의 포석으로 보인다. 새 내각은 아베 주변 인사 및 영토 문제 등과 관련한 망언과 억지주장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향후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를 흔드는 아베 정권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 내각에는 건전한 우파를 넘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많다. 문부과학상에 기용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베 총리를 대신해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전달한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폄훼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일본 교과서 등에서 역사왜곡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시 총무상에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극우 인사다. 아베 총리가 대표적인 반한 강경 인사인 고노 다로 외무상을 방위상에 임명한 것은 한국에 ‘결전’의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고노 신임 방위상은 한국 대사를 부른 자리에서 수차례 말을 끊고, 장관급 인사로서 국가 원수인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릇된 역사인식으로 비난받은 바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고노가 교체될 경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방위상으로 보직 이동시켰다. 한·일 갈등을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시사한 것이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갈등에서 출발해 경제, 안보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에서 한국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WTO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조치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명분 없는 수출규제로 문제를 촉발시킨 일본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맞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우익 일색의 내각 개편으로 그럴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 역시 아베 정권이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조국 장관 임명, 개혁과 대결정국 해결이 관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줬다. 온 나라의 눈이 찬·반으로 나뉘어 주시하는 청와대에서 사흘 장고 끝에 임명을 선택했다. 대통령 메시지는 “송구스럽다”로 시작해 “무거운 마음”으로 갈음됐다. 막다른 길에서 속고민이 깊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짐작 못할 바도 아니다. 조 장관은 숱한 의혹과 부인이 기소된 속에서 임명된 첫 장관이다. 대통령 인사권을 두고 국론이 이토록 분열된 적이 없고, 검찰의 ‘정치 개입’ 시비가 이렇게 톺아진 전례도 없었다. 공정·정의와 검찰개혁이 시대정신으로 굳어지고, ‘꼭 조국뿐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나왔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 모두를 선택지에 올려놓고, 책임도 져야 할 ‘정치적 결단’을 한 셈이다. 그 화두 역시 조 장관의 발탁 이유로 삼은 권력기관 개혁이었다. 목적지를 분명히 하되, 조국의 허물과 의혹을 대통령이 품고 동행하는 틀이 됐다. 8·9 개각 후 한달 만에 내려진 대통령의 재가지만, 여론과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는 안갯속이다. ‘논란의 종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고 갈 길도 멀다. 누구도 아닌 문 대통령과 조 장관이 풀어야 한다.

정치의 격랑은 높아지고 있다. 당장 한국당은 “정권에 조종(弔鐘)이 울렸다”며 국정조사·특검을 거론하고, 추석 뒤 국정감사도 ‘조국 국감으로 치르겠다’며 벼르고 있다. 일정도 다 잡지 못한 정기국회에 ‘조국 2라운드’의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여야가 책임 소재를 다투기 시작했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무역 전쟁이 얹어진 경제는 성장률·물가가 함께 내리막이고, 민생의 주름살은 커지고, 남북관계·외교도 전도가 불투명한 중차대한 국면이다. 대통령 인사권 행사를 놓고 전례 없이 바로 해임안 카드로 충돌하거나, 가뜩이나 할 일 많은 정기국회가 파국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달간의 ‘조국대전’ 끝 여론조사는 여야 모두 지지율이 답보하고 변화의 진폭이 작았음을 정치권은 성찰해야 한다. 그 책임을 안에서부터 돌아보고, 총선 때 평가받는다는 긴 호흡으로 임하길 기대한다.

눈은 서초동 검찰과 과천 법무부로 향한다. 조 장관은 취임식에서 “검찰의 논리와 인적 네트워크로 움직여온 법무부”를 바꾸고, “민주적 통제를 잃은 검찰”을 누구도 되돌릴 수 없게 개혁하겠다고 했다. “부족하지만, 검찰개혁을 마지막 소명으로 삼겠다”던 ‘조국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시선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조 장관은 “가족 수사는 일체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청문회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검찰의 길과 법무부의 길이 다르다고 했던 개혁의 꿈도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몸소 세워야 한발이라도 나갈 수 있을 터다. 검찰도 성찰할 게 조 장관 못지않다. 왜 ‘정치 개입’ 시비가 계속됐는지, 또 피의사실 유포 지적이 나오는지 돌아볼 일이다.

문 대통령은 달리는 호랑이 두 마리의 등에 올라탔다. 법·제도를 개혁할 법무장관과, 그의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이다. 개혁이 삐걱거려도, 처벌 받을 ‘위법’ 사안이 나와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와 레임덕에 맞닥뜨릴 수 있다.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갈라진 국론에 다가가야 한다. 젊은 세대와는 정의·공정사회의 꿈과 길도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구체적 그림과 시간표가 받쳐줘야 한다.


[경향 사설] 우려스러운 북·미 간 ‘협상 교착’ 책임 떠넘기기

북한과 미국이 북핵 해결을 위한 실무협상을 두고 두 달째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31일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 정제유 제품의 불법 환적 등에 연루됐다며 대만인 2명과 대만 및 홍콩 해운사 3곳에 대한 제재를 추가로 시행했다. 한·미 연합훈련만 끝나면 곧바로 북·미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과 전혀 딴판이다.

북·미가 최근 주고받은 발언을 보면 이것을 과연 실무협상을 앞둔 기싸움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북한은 외교수장 리용호 외무상에 이어 대미 협상 실무 총책인 최선희 제1부상까지 나서 미국을 비난했다. 최고위 협상가들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 또한 대북 제재를 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30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약점인 인권문제까지 건드렸다. 북·미가 이렇게 신경전만 벌이는 것은 북핵 문제 해법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서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체제 안전보장 등 카드를 제시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식이다. 북·미 모두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만 북한이 대미협상의 시한으로 설정한 연말까지 양측이 만날지조차 장담하기 쉽지 않다.

북·미가 당장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의 오는 9월 유엔 총회 참석을 취소했다고 한다. 북·미 외교수장이 만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 북·미 간에 시급한 것은 실무협상을 조기에 개최하는 것이다. 만약 북·미 실무협상 개최가 미뤄지거나 열려도 아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북·미관계는 언제든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의 대선이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다. 서로 대화 의지를 버리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남아 있는 동안 북·미는 협상을 시작해야 북핵 협상의 결정적 해법을 낼 수 있다. 북·미는 당장 소모적인 신경전을 중단하고 속히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동맹이라면서 잇따라 지나친 청구서 내미는 미국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서울 국방부에서 회담을 열어 안보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 회의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에 부담스러운 의제들이 줄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군불을 땠다. 앞서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한·일 갈등, 북핵 문제 등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을 공략해 방위비를 올리도록 한 뒤 여타 동맹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태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당혹스럽다. 미국은 한국이 기왕에 제공한 방위비분담금도 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을 ‘돈벌이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싶다.

미국은 또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부담스러운 요구들을 이번 회담에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긴장은 이란 핵 합의를 미국이 일방 파기하면서 촉발된 것이고, 유조선 피격사건도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에 한국군이 참여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 자칫 이란과의 관계 파탄은 물론 친이란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수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로 인해 한국이 미·중 간 군비경쟁에 휘말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중국은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며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반발해 북핵 문제 해결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천명해야 한다.

미국은 2011년 3월 이후 북한 방문 경험자의 미국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기로 했다. 테러방지법에 따른 행정절차라고는 하지만 그 대상에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축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동맹의 처지를 배려하기는커녕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미국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무엇을 위한 동맹’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경향 사설] 한·일 군사협정 파기까지 거론되는 현실과 미국의 침묵

정부 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정부는 (그동안) 내부적으로 GSOMIA를 연장하는 것으로 검토해 왔지만,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파기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한 뒤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GSOMIA 폐기’를 언급한 이후 정부 내에서 파기론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에서도 GSOMIA 파기를 선언하라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오는 24일이 재연장 시한이어서 협정 파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무리스럽지는 않다.

한국 측에서 협정 파기를 거론할 이유와 논리는 충분하다. 일본이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를 믿지 못하겠다며 경제 제재를 시작한 만큼 안보에 가장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하는 게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 협정을 체결한 뒤 한·일 양국 간 26건의 정보교류가 있었지만 계속 줄어 올 들어서는 단 3건의 정보 교환이 있었다. 정보 교류에 대한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폐기에 대한 부담이 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7일 이후 고시 결과를 통해 또다시 한국에 추가 보복조치를 내리면 국내 여론과 정부의 판단은 GSOMIA 파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GSOMIA를 파기하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협정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국 간 핵심적 이해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민감한 연결고리이다. 미국의 중재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로서는 유용하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위험하다.

이렇게 한·일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방관자적 태도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은 한·일 양국 갈등의 중재나 조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일본의 조치로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에도 문제가 생겨 미국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GSOMIA를 유지할 책임의 상당 부분도 미국에 있다. 이 협정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도 미국이 추구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본의 공격을 방관하는 처사는 실망스럽다. 미국은 한국의 GSOMIA 폐기를 만류하기에 앞서 일본을 향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이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미국에도 돌아가게 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명분도 없고 국익에도 안 맞는 호르무즈해협 파병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29일 일부 관련 보도에 대해 “현재 ‘청해부대의 파병’과 같은 보도가 있었는데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우리 선박의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호르무즈 파병은 지난 24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이 자리에서 파병 요청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호르무즈해협의 ‘민간선박 공동호위 연합체’ 결성에 참여하도록 설명회를 열었다. 이 호위 연합체에 청해부대를 파견하자는 방안이 파병안의 개요다. 아덴만에서 한국 선박 호송 등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확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전구역 확대는 신규 파병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 호르무즈해협은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80%가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이 지역의 안정은 한국의 경제적 이해에도 직결돼 있다.

하지만 파병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호르무즈 긴장, 즉 미·이란 간 갈등이 왜 벌어졌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공동으로 타결한 ‘이란 핵협정’에서 지난해 5월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봉쇄하면서 긴장을 키웠고, 지난 5~6월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피격사건이 잇따르자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연합군 결성에 나선 것이다.

요컨대 호르무즈 긴장은 미국의 일방통행식 합의 파기에서 촉발됐다. 게다가 유조선 피격사건은 경위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은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만 격화시킬 뿐이다. 한국의 파병은 명분도 없는 데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크다. 이란과의 관계파탄은 물론 중동 일원의 친이란 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최우방을 자처하는 일본조차 파병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동맹국이자 한반도 평화를 좌우할 힘을 가진 미국의 요청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는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면 다른 지역의 분쟁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은 그 원칙에 어긋난다.


[경향 사설] 아베, ‘경제보복’이 자유무역 해친다는 NYT 보도 새겨야

미국의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NYT)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세계무역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일본이 도널드 트럼프를 따라 하며, 한국에 대해 무역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통해 일본이 확실하지도 않은 국가안보상의 우려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가했다고 보도했다. 또 아베 신조 총리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상대국에 관세폭탄을 안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모방하고 있다는 표현도 썼다.

NYT의 이 보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조치가 자유무역이라는 오랜 가치와 모순된다고 지적한 점이다. NYT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말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주최국 의장으로서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는 글로벌 평화와 번영의 근간”이라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해놓고 이틀 뒤에 한국을 상대로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런 조치로) 아베가 자유무역에 타격을 가한 가장 최근의 세계 지도자가 됐다”고 일침을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이 제3자의 시각에서 하는 비판을 일본과 아베 총리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이 신문은 일본이 ‘한국과의 신뢰 관계’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 등을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도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정치와 무역 등 경제 활동은 분리하는 것이 지난 수십년간 국제 경제를 발전시켜온 근간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일본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안보를 무역에 연관시켜 보복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일본은 핵·화학 무기 제조에 쓰이는 불화수소를 몰래 북한으로 밀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슬며시 거둬들였다. 일본이 억지 논리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시각임을 이번 보도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측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16일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을 매각하면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다음 조치로 한국과 산업 기술교류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이기면 더 공세를 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지금 할 일은 추가 대응이 아니다. NYT 보도 같은 국제사회의 객관적인 지적을 새기는 것이다.


[경향 사설] 일본, 말바꾸기와 억지 그만하고 한국과 협상 나서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이유와 관련해 말바꾸기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 등에 따른 ‘양국 간 신뢰훼손’ 때문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가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등 ‘안보 우려’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거꾸로 일본이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 전력이 드러나자 ‘안보 우려’ 주장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도쿄신문은 지난 12일 열린 한·일 양자 실무회의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이유로 제기한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 “북한 등으로의 물자 유출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고 13일 보도했다.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으로 유출할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공세를 펴다가 거꾸로 일본이 북한 유출 혐의를 받게 되자 ‘꼬리를 내린’ 셈이다. 수출규제 이유가 애초에 정당했고, 자신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스텝이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말바꾸기 행각이 안쓰러울 정도다.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관리에 허술했던 정황은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 10건을 분석한 결과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들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수출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14일 보도했다. 품목 중에는 레이더, 기중기, RC수신기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중 레이더는 대함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춘 군함에 장착돼 있었고, 기중기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BRM) ‘화성-12호’를 발사대로 옮기는 데 사용됐다. 무인기에 쓰인 부품들도 여럿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공개한 일본 산케이신문 2009년 3월21일자 기사가 ‘일본이 북한 핵물자를 대주는 짐꾼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일본 내에서도 이런 우려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가장 호들갑을 떨던 일본이 정작 자국 기업들의 ‘뒷거래’는 방치해왔던 것이다. 그래놓고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넘겨온 듯한 의혹제기를 하다니 이런 적반하장도 없다.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나 적절한 국제기구에 한·일 양국의 4대 수출통제체제 위반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국제기구 검증을 통해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자는 이번 제안에 일본 정부는 성실히 응해야 한다. 아니면 그간의 근거 없는 의혹제기에 대해 정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입장이 궁해지니 억지주장까지 펴며 대화를 기피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도쿄의 양자 실무협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부터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철회’라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일본 보복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일본까지 찾아간 한국 정부 대표가 철회 요구를 하지 않았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속기록에 ‘철회’라는 글자가 없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듣고 싶은 것만 기록한 모양이다.

일본은 한국이 제안한 추가 실무협의 요청도,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제안한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응하지 않을 태세다. 이런 식의 태도는 일본의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일본은 당장이라도 한국과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경향 사설] 일본의 유엔사 참여를 용납할 수 없다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유사시 전력과 장비를 지원받을 ‘전력 제공국’에 일본을 추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듯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주한미군이 최근 발간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를 통해 “위기 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빌미가 됐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안보 책임을 일본과 분담하기 위해 일본의 역할을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군 측은 “미국이 일본에 7군데 후방기지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연례적으로 발간하는 문서에 처음으로 이런 문구를 넣은데다 지난해 한국 몰래 독일을 전력 지원국에 넣으려고 한 사실이 있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유엔사 18개 회원국 중 전력 제공국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사에 전력을 제공한 국가 중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반도 전쟁 재발 시 재참전을 결의한 전투부대 파견 16개국이다. 따라서 참전국이 아닌 일본은 원칙적으로 전력 제공국이 될 수 없다. 국방부는 언론 보도 후 즉각 “일본은 6·25전쟁 참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 제공국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 지원국으로 인정된 독일이 유엔사에 연락장교를 파견하려다 무산된 사례도 있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서조차 진솔하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식민지배 과정에서 침탈했던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해상자위대 함정은 틈만 나면 독도 주변의 한국 영해를 침범한다. 지난해 말에는 동해에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해군 함정을 초계기로 위협하는 적대행위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한 이후 일본은 급속도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줄달음질치고 있다. 이런 일본 군대를 한국 영토에 발을 들여놓게 한다는 것은 한국민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은 유엔사 전력 제공국에 일본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한국의 뜻을 무시하고 유엔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 일각에서는 미국이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겨준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작전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시작전권 이양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도 한국민의 이런 생각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이런 일로 한·미 양국 관계가 불편해지면 안된다. 정부도 혹여 이런 논의가 나오지 않게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의 ‘비핵화·대화 의지’, 트럼프의 DMZ 메시지 기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변함이 없다”며 “김 위원장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싶다고 밝혔다”고 했다. 지난주 시 주석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한 것이다. 시 주석이 전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경제를 위해 외부 환경이 개선되고 조속히 합리적인 (비핵화) 방안이 모색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에서의 대화 추세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측과도 화해·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1주일 전 시 주석 방북 시 “인내를 갖고 대화하겠다”고 한 것보다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보다 구체적이고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메시지는 시 주석을 통해 비핵화 및 대화 의사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실패 후 미국을 향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며 연말까지만 기다리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신형 단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분명하게 대화 의지를 잇달아 밝힌 것은 상당한 변화다. 하노이 회담 충격에서 벗어나 미국을 상대할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친서를 주고받으며 내린 결론이다. 경제개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미 대화를 촉진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3차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내외 7개 통신사 합동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전부를 완전 폐기하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핵을 둘러싼 미국의 일괄 타결과 북한의 점진적 타결 방식 간 절충을 제안한 것이다. 북·미 양측이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언급도 나왔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해 북·미 협상에 대한 한·미 간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 북·미 협상 재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출발 전 김 위원장과의 회동 가능성은 부인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그와 이야기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한·미 정상회담 후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북한을 향해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마지막 관문을 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향적인 대북 제안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반도 문제 전면에 나선 중국 역할을 주목한다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4년 만에 북한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조선 및 관련국들과 협력을 강화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과 지역의 장기 안정에서 적극적이고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조선이 자신의 합리적 안보 및 발전에 관한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도 했다. 북핵 문제의 정치적 타결과 지속적인 대화를 강조하면서 중국이 북·미 협상을 적극 중재하겠다는 뜻이다. 이로 미뤄 시 주석의 방북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전면에 나설 것임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과하지 않을 듯싶다.

북한은 시 주석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예우함으로써 긴밀한 북·중관계를 과시하는 한편 중국의 역할에 기대감을 표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은 인내심을 유지할 것”이라며 “유관국이 조선 쪽과 마주 보고 서로의 관심사를 해결해 성과가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 “계속 중국과 소통·협력해서 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 진전을 거두겠다”고 했다. 당분간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자제하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시 주석과 힘을 모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다시 밝힌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중국은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인 만큼 한반도 문제 개입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문제 해결을 앞당길 수도 있다. 오는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 협상의 물꼬를 틔우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한반도 정세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개입은 북·미 협상을 촉진시킬 수도 있지만 한반도 문제가 자칫 미·중 갈등의 격랑에 휩쓸리는 사태를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와 미·중 갈등을 명확히 분리해 대응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를 바란다.

정부로서는 남·북·미 3자가 주축이 돼온 한반도 문제 해결구도가 남·북·미·중 4자로 바뀌게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중국의 개입이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다각적인 외교노력이 필요하다. 그 첫 시험대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하는 G20 정상회의가 될 것이다.


[경향 사설] 남북 및 북·미 대화의 좋은 기회, 김정은 결단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16일로 북유럽 3개국 국빈방문을 마무리했다. 이 기간 중 문 대통령은 오슬로포럼, 한·노르웨이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스웨덴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사흘 연속으로 대북 메시지를 발신했다. ‘하노이’ 이후 교착된 북·미 협상과 남북대화의 복원을 위해 담아둔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이며 북한의 화답을 촉구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그간 추진해온 대북 정책의 본뜻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보인다. “평화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당장 실행 가능한 실천적·적극적 평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남북대화, 북·미 협상이 결국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성찰해 보자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게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화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상호 이해와 신뢰라는 기본 태도를 강조한 것은 북·미 양측 모두 귀담아야 할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면서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연일 강한 톤으로 대북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미국의 대선국면이 임박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플로리다에서 2020년 대선 출정식을 열고 재선 도전을 공식화한다.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계기를 살리지 못할 경우 북·미 협상 교착이 상당 기간 이어질 우려가 있다. 대선기간 중 협상이 재개된다고 해도 득표전략과 연계되는 만큼 북한의 운신 폭이 좁아질 가능성도 크다.

문 대통령은 할 말을 다 했고,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문 대통령은 “시기·장소·형식을 묻지 않고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경향 사설] 트럼프·김정은 친서외교 재개와 오슬로 구상을 주목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다시 친서를 보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혔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 내용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며 “아주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 것이다. 마침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을 향해 남북 주민들의 피부에 닿는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오슬로 구상’을 밝혔다. 싱가포르 회담 1주년을 맞아 남·북·미 간 협상 분위기를 돋우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북·미 협상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지지부진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도 지난 1월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이번 친서도 하노이 회담 이후 협상이 장기 교착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이 오슬로에서 밝힌 대북 제의 역시 남북 간 대화와 교류를 폭넓게 확대·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과거 동·서독이 접경지역에서 화재, 홍수, 산사태나 전염병, 병충해, 수자원 오염 문제에 공동 대응한 것처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대북 국제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각도로 협력을 모색하자는 제안은 시의적절하다. 북한이 판문점을 통해 조화와 조전을 보냄으로써 최근 별세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조의를 표한 것도 긍정적이다. 직접 조문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북·미 양측은 그동안 제재 강화와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기싸움을 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3차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3차 북·미 정상회담은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명분을 주는 모양새다. 이에 따른 북·미 간 실무접촉도 기대할 만하다. 남측은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뜻을 사전에 파악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면 북·미 간 협상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북·미 간 실무접촉과 남북 간 대화가 재개돼 북·미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근본 문제 ‘대만’까지, 위험 수위 육박한 미·중 갈등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분류한 전략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이 지난 40년간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최대 금기’를 건드리면서 무역 분야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정치·군사를 포함한 전방위로 확대되는 형국이다.

미 국방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주변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기존 동맹국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대만, 뉴질랜드, 싱가포르, 몽골 등 ‘4개 국가(Four Countries)’를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할 우방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4개 국가’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고, 자유롭고 공개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 행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일 이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중국의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원칙을 수용해 대만과 단교했으며 이 원칙은 그간 대중국 외교의 근간을 이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고서는 미·중관계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격한 반발과 함께 미·중 갈등이 정치·군사적 차원으로 옮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이번 보고서 파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1979년 수교 이후 대만 총통과 접촉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최근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 안보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미국은 또 대만에 수십억달러의 무기를 판매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 공식문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근본 문제’에 해당한다. 중국으로서는 ‘준비된 도발’로 간주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 초 연설에서 대만을 향해 “무력사용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신년사에서 대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자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어떤 나라나 기업, 단체와도 절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할 정도로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미국과의 무력충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나올 수 있다. 1995~1996년 대만해협 위기 같은 군사적 긴장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될 경우 한반도 정세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화웨이 협력은 물론 북핵 문제와 이란 등 국제현안에서의 공조를 다짐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신냉전의 골이 더 깊게 파이는 흐름이다. 한국도 갈수록 선택의 기로에 몰릴 수 있다. 이미 화웨이 제재 문제를 두고 미·중 양측의 압박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에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을 찾아내는 고도의 전략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5·18 39돌, 아직도 미완인 오월의 진실과 정의

‘80년 5월 광주’가 돌팔매질당하고 있다. 그날의 희생자를 ‘폭도’로 매도하고, ‘세금 축내는 괴물’이라며 “색출하자”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맞장구치는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고, 변절자까지 가세했다.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인 당사자는 자신을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 우겨댄다. 그가 만든 정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대표는 ‘80년 광주’를 발판 삼아 보수 결집을 도모하려 한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시민 투쟁의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다 직접 또는 후유장애로 500여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과 고문 피해를 당한 피의 현장이다. 시신조차 확인 안된 수백 원혼이 떠도는 곳이다. 지금의 민주·인권·자유·평화라는 시민의식이 뿌리내린 곳이다. ‘80년 5월의 광주’가 없었으면 1987년 6월 항쟁도, 2017년 촛불혁명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완전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특별법도 제정했다. 그런데 정작 조사에 나서야 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방해’ 탓이다. 올해는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언·증거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의 광주시민 유혈진압 증좌들, 시민군 공작활동을 위한 ‘편의대’ 활동, 헬기 기총사격 흔적 등이다. 피해자에게만 머물던 역사 증언 대열에 가해자까지 나서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진상규명은 국민의 상처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국가는 물론 국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렇다면 한국당은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 후보를 당장 재추천해야 한다. ‘5·18’을 폄훼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황교안 대표도 39주년 기념식 행사 참석을 통한 ‘피해자 코스프레’ 기도를 멈춰야 한다.

39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역사적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망언과 궤변이 난무하는 것은 역사를 비틀어서라도 뭔가를 챙기려는 자들이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 그대로 두면 역사는 왜곡되고, 그 부담은 후손들이 지게 된다. 한국의 정치사회가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실규명·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미완으로 남은 ‘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진실을 드러내 단죄할 때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고, 가해자도 참회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9년이 되는 오늘,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경향 사설]경색되는 한반도 정세, 외교적 해법 놓으면 안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일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장거리 타격수단을 동원한 화력타격 훈련을 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나라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은 자기의 자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이날도 최근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개훈련을 비난하며 자위적 군사력 강화를 강조했다.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강경화 외교장관과 면담하면서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협상하길 원하지만,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속도조절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도 대화기조는 유지하겠지만 비핵화 협상 문턱을 낮출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으로도 한·미 군사훈련 대응을 명분으로 타격 훈련을 강화하며 긴장 수위를 높여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공식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발사를 함으로써 인도적 지원이나 제재 해제가 아니라 체제안전과 군사적 위협해소가 본령이라는 메시지도 던져놨다. 북·미 협상을 ‘비핵화-제재완화’에서 ‘비핵화-체제안전’ 구도로 바꾸겠다는 북한의 국면전환 시도에 한·미 양국이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떤 요구가 됐건 결국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히 대화에 복귀할 것을 당부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난감하게 된 대북 식량 지원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원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여야 대표 간의 회동을 제안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인도적 지원은 정세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이번에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세 변화에 지나치게 좌우된다면 한국 정부의 운신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야당도 이번 제안을 대북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경향 사설] 빛바랜 판문점선언 1주년, 남북 초심으로 돌아가야

지난해 4월27일 전 세계의 시선이 온통 판문점에 쏠렸다. 판문점의 콘크리트 경계석 앞에 마주 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은 ‘한반도의 봄’을 알리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채택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선언은 점차 빛이 바래가고 있다. 북한과 미국 간에는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며 협상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도 소강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소장회의가 9주째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25일 한·미 연합공중훈련이 남북 간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 행위’가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남북관계 복원 이후 조평통 명의의 대남비판은 처음이어서 당혹스럽다.

비핵화 협상이 풀리지 않자 트럼프 행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 바람에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에 포함된 남북합의의 상당수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에 구속된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키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남북 간 신뢰가 훼손되면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은 1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판문점선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했다. 다행히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확고하다.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해 정부는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과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남북이 꾸준히 만나고 오가야 신뢰가 두터워질 수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해치는 불필요한 언동을 삼가야 할 것이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상호존중의 태도 없이는 신뢰도 쌓이지 않는다.


[경향 사설] 북·러, 중·러, 미·일 정상회담 개최, 주변국 관리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해외 방문을 대내외에 사전 예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북·러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번주에는 북·러뿐 아니라 중·러, 미·일 간에도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는 등 동북아 외교가 바쁘게 전개된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한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 워싱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할 예정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화되던 1년 전 세계의 시선이 판문점에 쏠렸던 것과 비교해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북·미 간에는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입장 차가 확연한 상황이고, 남북관계도 소강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을 지렛대로 북·미관계를 추동하는 외교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는 27일 4·27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에 북한은 여태껏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아 빛바랜 행사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 1주년을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복기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남북, 북·미 관계에 외교자산을 집중하느라 주변국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일본은 이날 한·일관계가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외교청서를 확정했다. ‘한국 탓’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정세 진단은 틀리지 않다. 대중국 관계도 매끄럽다고 할 수는 없다. 한반도 평화구축에 우군이 돼야 할 일본·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악의 한·일관계부터 손 대야 한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6개월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공식 외교라인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도 정상회담에만 힘을 쏟을 일이 아니다. 당국 간 관계가 소강상태라면 민간교류 활성화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 국내 대형교회 4곳이 북한에 모내기용 비닐박막을 지원키로 했다는 경향신문 보도는 이런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경향 사설] 3차 회담 의지 밝힌 북·미 정상, 창의적 중재가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제3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하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지도자로서는 29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육성 연설을 통해 미국과 협상할 뜻을 표명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며 “3차 정상회담이 좋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지난 2월 말 ‘노딜’로 끝난 하노이 회담 후 두 정상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3차 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혀 다행스럽다.

문제는 두 정상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으며, 그것도 연말까지만 기다리겠다고 압박했다.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 해법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전도 불사할 의지까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빅딜’을 통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최종단계를 명확히 하면서 로드맵을 설정한 뒤 협상하자는 요구를 재확인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김 위원장은 남측과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김 위원장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받아들일지도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태도가 강경하다.

중재역을 맡은 문 대통령의 어깨가 다시 무거워졌다. 문 대통령이 북·미 두 정상 간 신뢰와 톱다운 협상의 이점을 활용하면서 북·미 간 입장 차를 좁혀야 한다. 희망적인 것은 빅딜을 원칙으로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도 단계적 해법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여지를 활용하면서 양측을 설득해낼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연말까지 남은 8개월간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비핵화 방안을 중심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중재가 성공하려면 북측의 호응이 절대적이다. 북측은 현실적인 비핵화 해법을 위해 기존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 이외에 추가 조치 등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문 대통령이 15일 발표하는 대북특사와 4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9·19 군사합의 이행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한·미 국방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이 1일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고 양국이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 국방장관들은 9·19 군사합의의 이행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간 신뢰구축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했다. 두 장관은 특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연합준비태세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핵협상과 남북군사합의 이행이 소강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이렇게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지난해까지 9·19 군사합의에 적극 호응하던 북한은 올 들어 남북군사회담 제의에 응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달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하기로 한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유해발굴 사업도 사실상 중단했다. 이런 차에 한·미 국방장관이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의의가 있다. 우선 남북군사합의 이행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북핵협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하노이 협상 결과에 실망한 북한을 향해 비핵화 노선에서 탈선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9·19 군사합의에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9·19 군사합의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한·미 연합 대비태세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준비의 첫 조치로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평가할 ‘특별상설군사위원회’를 가동한 것 역시 핵협상 타결 후 새로운 한·미동맹을 상정한 조치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9·19 군사합의 이행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한 만큼 남북은 후속 조치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남북군사회의를 열어 DMZ 내 모든 GP 철수,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와 평화수역 조성 등을 논의해야 한다. 최근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남측의 무기 도입을 비판했지만 이는 과도한 주장이다. 한·미 양국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폐기한 데 이어 오는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도 축소 실시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북한은 하노이 협상 실패 이후의 실망감을 ‘새로운 길’ 선언으로 이어가는 일부터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한·미 양국 국방당국의 결단을 존중함으로써 북·미 핵협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군사합의 이행에 북측이 적극 호응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4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 비핵화 협상 재개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10~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청와대가 29일 밝혔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한·미동맹 강화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 공조방안을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이다. 지난달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대화 모멘텀이 약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잡힌 것은 바람직하다.

하노이 담판 이후 미국은 ‘빅딜식 일괄타결론’으로 입장을 정리한 반면,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며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양측이 접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특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 기자회견 발언문을 통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을 전제로 하는 제재 완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북한이 이런 논의가 오간 사실을 공개한 것은, 스냅백 조건부 제재 완화를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행정부의 추가 대북 제재 철회를 지시하면서 강경파들의 대북 압박기조에 제동을 건 것은 협상 재개를 위한 ‘기지개 켜기’로 볼 수 있다.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강화된 것도 긍정적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 ‘톱다운 외교’가 앞으로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미국 내 기류 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비핵화의 포괄적 로드맵을 합의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절충안에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협상의 전도는 밝아질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불거져온 한·미동맹 이상설도 이번 기회에 불식되기를 희망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촉진자 외교’가 확실한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뒤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의 내달 방미 전에 남북 정상이 원포인트 회담을 판문점에서 여는 방안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북한도 이번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북·미, 남북관계 상황관리 중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한 재무부의 추가 제재 계획을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가 주도해온 대북 압박흐름에 일단 제동을 걸어 북한이 협상 국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라는 액션을 취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대응으로 받지 않고 자제력을 보인 것은 바람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북·미 협상구도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며 이러한 제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북한 역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일방 철수하면서도 남측 인원의 잔류를 허용하는 등 수위를 조절한 흔적이 엿보인다. 전날 추가 제재 등 미국의 대북압박 강화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정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북한도 협상의 파국을 원치 않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물론 하노이 회담 결렬의 파장이 워낙 큰 만큼 북·미가 당장 대화를 재개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좀 더 정세를 분석하고 대응방향을 숙고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화 모멘텀이 유지될 수 있도록 남·북·미 모두 상황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한 만큼 당분간 대북 추가 제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미 협상이 올 상반기 중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면 미국의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협상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도 대북 제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하노이 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의 포괄적 로드맵을 합의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현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의지가 있다면 대화 복귀를 준비하면서 이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협상 중단 고려’ 북 메시지, 미국의 진지한 대응 필요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평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과 핵·미사일 시험유예를 계속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상은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면서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보름 만에 협상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북·미가 다시 ‘강 대 강’의 대치상태로 회귀하는 듯한 상황전개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 부상의 회견은 북·미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11일 “우리는 토털 솔루션(일괄해결)을 원한다”며 북한에 ‘일괄타결식 빅딜’을 요구한 것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하노이 회담 이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연일 대북강경론을 설파하더니 협상파인 비건 특별대표마저 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협상 구도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으로 후퇴한 것에 대한 허탈감과 회의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번 발언이 북한 정부기관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외신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빌렸다는 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고 한 점을 보면 미국의 반응을 지켜본 뒤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판을 깨겠다는 경고라기보다는 협상이 진지하게 이뤄지도록 여건을 조성하라는 요구에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메시지를 다각도로 읽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간의 협상 태도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최 부상이 “미국은 정치적 이해를 추구하느라 바빴지 결과를 내기 위한 진실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 것은 협상을 국내 정치의 종속변수로 여기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기이한 협상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거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보좌관이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협상을 방해했다”고 한 점도 새겨봐야 한다. ‘대화 상대로 진지하게 대우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부당한 것이 아니다.

최 부상의 입장발표가 미국의 강경대응으로 이어져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 정세가 긴장으로 치닫는 상황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북·미 양측 모두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조속한 대화 재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미 비건 대표의 비핵화 구상 발표, 북한도 심사숙고하길

북·미 실무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 좌담회에서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토털 솔루션(일괄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대북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빅딜(일괄타결)’ 목청을 높이더니 ‘협상파’로 분류되던 비건 특별대표마저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가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책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일괄타결 원칙이 트럼프 행정부의 ‘포스트 하노이’ 전략으로 공식화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31일 스탠퍼드대학 강연에서 ‘동시적·병행적’ 기조를 강조했고, 핵신고에 대해서도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등 단계적 접근법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그마저 ‘일괄타결’ 원칙으로 후퇴한 것은 적어도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등을 떼어내 단계별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북한식 접근법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괄타결 방침을 공식화함으로써 북·미 협상 구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협상하려면 북한이 태도를 완전히 바꾸고 들어오라는 고압적인 태도도 걱정스럽다. 그나마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협상전략을 정리하며 채비를 갖추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12일 대외선전 매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면서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제사회가 동창리 위성 발사장 등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바람직하다.

양측 간 입장차가 크지만 절충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핵화 눈높이’가 자신들과 현격히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핵화의 범위와 최종목표가 분명히 드러나는 포괄적인 로드맵 마련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미국도 북한이 제안한 영변 핵단지 전체 폐기의 무게감을 다시 잴 필요가 있다. 하노이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양측이 한 걸음 다가서려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양측 입장에서 접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그럴수록 중재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경향 사설] 3·1운동 100년, 기념을 넘어 친일잔재 청산해야

1일 전국에서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주요 도시에서는 태극기의 행렬이 이어졌다. 100년 전 외침 그대로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3·1절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민족대표 33인을 대신한 국민대표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독립지사 334명이 새로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57년 전 3등급 훈장을 받은 유관순 열사에게는 대한민국장이 다시 수여됐다. 이날 행사는 100년 전 자유와 평화, 정의를 외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3·1정신은 근대 역사를 열어젖힌 봉화였다. 그 불은 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식민지배, 분단과 냉전, 군사독재는 3·1정신을 왜곡하고 배반했다. 뒤틀린 역사의 바닥에 친일 잔재가 켜켜이 남아있다. 한 세기가 지나도록 떨쳐내지 못한 역사의 찌꺼기다. 지난달 서울의 한 지자체는 도로명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꿨다. 친일 청산의 일환이었다. 도로뿐 아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친일파 묘소 28기가 버티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는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들이 여전히 불리고 있다. 색깔론, 간첩조작, 5·18망언, 갑질과 같은 인습·관행은 더 무서운 친일잔재다. 그것은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며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청산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잘못된 과거를 성찰할 때 우리는 함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며 “친일잔재 청산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또 친일 청산을 통해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친일잔재 청산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민 80.1%가 친일잔재 청산 필요성을 느끼며, 국민 10명 중 3명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친일잔재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과거를 청산한 적이 없다. 3·1운동 이후의 지난 100년이 분단과 독재, 부정부패로 점철된 것은 역사의 과오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3·1운동 100년 이후 새로운 100년은 유·무형의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경향 사설] 3·1운동 100년, 연대와 통합, 평화의 정신으로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7대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을 휩쓸고, 5월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됐다. 참가자 200여만명.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고종의 죽음은 3·1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는 군주가 아닌 조선인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못 박았다.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군주는 잊혔다. 복벽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는 의정원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임시정부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 제국의 시대가 가고 민주공화국 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민주공화국은 확고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3·1운동과 이어지는 독립운동은 자율, 독립, 배려, 평화, 연대 정신을 싹틔웠다. 한국인들은 근대에 눈을 떴다. 민주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은 주권 회복운동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출발지점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일제의 강압통치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짓밟으며 식민지 근대를 이식했다. 타율성, 의존성,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그것이다. 해방 이후의 민족분단은 식민지성을 고착화시켰다.

100년이 흘렀다. 정부는 일찌감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독립운동가 사전과 열전을 발간하고 3·1운동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이다. 여성 독립지사 등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발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임시정부100주년기념관이 건립되고 임정수립일(4·11)의 임시공휴일 지정도 검토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의미 있는 사업들이 착수 중이다. 그러나 기념사업이 과거 사건에 대한 재현과 학습에 그쳐서는 안된다. 진정한 기억과 기념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는 일이다.

100년을 맞아 3·1운동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한다. 100년 전 싹튼 한국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친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갑질, 폭력, 무사안일, 타율성은 떨쳐야 할 식민 잔재이다. 분단은 여전하고 냉전의 기류도 걷히지 않았다. 내부의 이념적 분열은 미래 발전을 거부한다. 3·1정신으로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청산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이 깨어나고 세계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역사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100년 전 연대와 통합,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3·1운동이 근대의 시작이었다면, 100년은 근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전망 밝히는 폼페이오의 제재완화 발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협상과 관련해 “제재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또 14일에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의제와 관련해 “비핵화뿐 아니라 한반도에 안보 메커니즘, 평화 메커니즘을 창설하는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협상의 사령탑이 ‘제재완화’와 ‘안보·평화 메커니즘’을 거론한 것은 주목된다.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제재완화를 해줄 수 있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그만큼 밝아지기 때문이다.

올 들어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제재완화’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지난달 25일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에 대한 의미 있는 신호”라며 “이러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 제재해제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31일 “우리는 ‘당신(북한)이 모든 걸 다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종전 태도에서 동시행동에 기반한 단계적 비핵화로 노선을 변경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이번에는 미국 외교수장이 직접 제재완화를 거론함으로써 무게감을 더욱 높였다. 북·미가 서로 통 큰 결단으로 비핵화와 제재완화를 맞바꿀 수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폼페이오가 언급한 ‘안보·평화 메커니즘’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1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2항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는 의미도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트랙이 구체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총론 합의에 머물렀던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미국이 이달 말 2차 회담을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도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공개한 것에서 보듯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대외정책의 핵심 현안으로 내걸었다. 게다가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제재완화 카드까지 꺼낸 참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비핵화를 향한 과감하고 통 큰 결단력을 보여줄 시기가 오고 있다.


[경향 사설] 대북 투자 의향 밝힌 짐 로저스의 방북을 주목한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다음달 북한을 방문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대해 “로저스 회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받았고 미국 정부도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월27~28일) 직후 로저스를 북한으로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개방과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와 함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저스 회장의 방북이 대북 투자의 마중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로저스 회장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인물로, 전부터 북한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달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을 1980년대 중국에 비교하며 “북한에 정말 투자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년 CNN 인터뷰 때도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수년째 대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로저스는 지난해 12월 금강산에 골프리조트를 보유한 리조트 개발업체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투자처가 북한 관광산업이라고 본 것이다. 서방 자본의 대북 선도 투자가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베트남식 또는 중국식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 하노이를 선택한 것은 그 현장을 보기 위함이다. 김 위원장이 로저스를 초청한 데는 대북 국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로저스의 방북은 대북 투자에 앞서 비핵화 협상의 보험이자 촉진제 성격을 갖는다.

북·미 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대북 제재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는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착해 큰 수익을 거둔 로저스의 통찰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낙관하며 북한에 대한 민간 투자를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로저스가 남북한 경제발전을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남한의 자본과 경영기술,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 발전론의 핵심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국내 기업도 차근차근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경향 사설]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 윤곽 나온 북·미 정상회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 스탠퍼드대 연구소 북한 관련 토론회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윤곽을 제시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시설 폐기 및 파기를 약속했다”고 전하고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에 대량파괴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포괄적 신고’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은 또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야 할 시간임을 확신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비건의 발언은 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가 큰 거래를 벌이는 ‘빅딜’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다. 특히 미국의 초기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카드를 거론한 것은 기대감을 키운다. 비핵화 완료 전까지 대북 제재는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양측에 신뢰를 가져다줄 많은 행동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거나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 ‘동시적·병행적’으로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은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비건이 김 위원장의 ‘핵시설 폐기·파기’ 발언을 공개하고 ‘포괄적 신고’를 강조한 것은 비핵화 회의론이나 협상무용론을 차단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미국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핵신고를 압박하면서 상응조치에는 입을 다물어온 것과 비교하면 비건의 발언에서는 동시적·단계적 조치를 실현 가능한 수준부터 해 나가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을 되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다. 때 맞춰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날짜를 다음주에 발표하겠다면서 장소가 베트남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북·미 간 세기의 빅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랜 우여곡절을 거쳐 이뤄지게 되는 북·미 최고지도자의 2차 대좌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을 체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양측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도 회담 성공을 위해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가 왔다.


[경향 사설] 비핵화협상 중인데 핵개발하자는 한국당 당권주자들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핵개발 논의를 촉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오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북핵 의원모임이 지난 23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핵개발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되면 미국과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외교적 부담이 되는 것을 알지만 야당발로 시작됐다는 점만으로 전략적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뜬금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비핵화에 뜻을 모으고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차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제1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인사가 핵개발을 주장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더구나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시점 아닌가.

한국의 핵개발은 명분도, 현실성도, 실익도 없다. 당장 북한 비핵화를 주장할 명분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이 제재를 받게 되면 경제가 쓰나미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 방지’를 한국이 거스르게 된다면 한국당이 그토록 중시하는 한·미동맹도 파탄을 맞을 수 있다.

오 전 시장은 “외교안보에 전략적 도움이 되는 선택지”라고 했지만,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에 비춰 본다면 너무도 순진한 주장일 뿐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핵개발’ 주장을 하루속히 거둬들이는 것이 온당한 처사다.


[경향 사설] 일본 초계기 또 위협비행 도발, 저의를 묻고 싶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P-3 초계기가 23일 오후 2시쯤 남해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작전 중인 한국 구축함에 접근해 위협비행했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일 초계기는 해군함정을 명확하게 식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면서 “이를 명백한 도발행위로 간주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또다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이 지난달 20일 동해에서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를 쐈다고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또다시 저공비행 도발을 가해온 것이다.

이어도 인근 해역은 한·일 양국 해군의 작전수역이 겹치는 곳이다. 비록 양국의 영해 밖이라 하더라도 함정에 지나치게 근접비행하는 것은 위협이다. 일본은 이날 광개토대왕함에 150m까지 근접한 것보다 더 낮은 60~70m 고도까지 초근접비행을 했다. 초계기는 20여차례의 경고 통신도 무시한 채 공격모의 비행까지 했다. 더구나 이런 저고도 위협비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4번째다. 저공비행이 의도적인 행위임을 뒷받침한다. 합참이 이날 “일본 정부에 재발방지를 요청하였음에도 또다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라고 평가한 것은 온당하다. 일본은 지난 21일 레이더 논란에 대한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한·미·일 3국 간 군사협조는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 놓고 이틀 뒤 저공비행으로 도발한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날은 한·일 외교장관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어디까지 가자는 심산인지 일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 후 일본이 대응기조를 바꾼 듯하다. 하지만 징용자 배상 판결은 과거 한일협정이 개인의 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법원의 독립적인 판단이다.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국가의 정부라면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일본은 추가 도발을 멈추고 레이더 발사 사실 확인에 진지하게 응해야 한다. 일본의 자중을 요구한다. 군은 일본의 도발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사법부 치욕의 날, 끝내 책임 회피한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에 나왔다.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의 전직 수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본인은 물론 사법부 전체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사법에 대한 신뢰가 현대 민주·법치국가의 주요 존립기반이라는 점에서도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출석 직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하는 오만한 행태를 보였다. 그는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면서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이 기대했던 진정한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도 사법농단의 실체를 부정하며 재판개입·법관사찰 등 주요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에서 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40여개 범죄사실이 기재된 공소장에는 ‘양승태’라는 이름이 168회나 등장한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한 정황은 명백하다. 그는 피해자들이 승소한 대법원 소부 판결을 뒤집으려 전원합의체 회부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검찰은 외교부 문건과 김앤장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사법농단의 단초가 드러나고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23개월이 걸렸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이탄희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저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사의를 표명한 게 시작이다. 경향신문 보도로 쟁점화한 사건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명명되었고, 법원의 수차례 조사 끝에 재판거래 의혹 문건들이 발견되며 파장이 커졌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권의 ‘로펌’ 노릇을 한 정황이 드러나자 시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지난해 6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핵심 실무자인 임 전 차장을 재판에 넘겼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그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재판에 넘겨진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의 기소 역시 기정사실이다. 검찰은 그를 몇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처리 방향도 관심사이나, 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헌정을 문란케 한 사법농단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남김없이 묻는 일이다. 잇단 영장 기각 등 그간 법원의 행태에 비춰볼 때 남은 수사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치밀한 수사가 절실하다.

사법부도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해 깊이 자성해야 마땅하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법농단은 어물쩍 봉합될 사태가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혁파할 발본적 사법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미 국회에 제출한 ‘무늬만 개혁’안으로는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