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도대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비위에 연루된 직원이 여러 명이라거나 평일 근무시간 골프설에 이어 현직 장관이 문제의 특감반원에게 자리를 약속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특별감찰반 전원을 교체한 뒤 검찰·경찰의 조사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했으나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의 태도다. 청와대는 쏟아지는 의혹에 속시원히 해명하기는커녕 함구에 급급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실 업무 원칙상,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하고, 김의겸 대변인은 “비위로 보도된 사안은 감찰사안으로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시하고 감찰하는 곳이다. 그런 특감반원 전체가 교체되고, 온갖 부패 소문이 떠도는데도 가타부타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 핵심부에서 비위가 일어났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조 수석은 “비위와 무관한 특감반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넘어갔다. 국민적 의혹을 밝히는 게 왜 비위와 무관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한다는 건지 설득력이 없지만,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보다 특감반원 보호를 앞세우는 안이한 인식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에 주력해왔다. 그런 정부에서 부패를 감시하는 직원들이 되레 부패에 휘말려 들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특감반원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고도 쉬쉬하다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뒷북 대응을 했다. 최근 청와대 직원들의 음주운전, 폭행사건 등 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른 것도 이런 온정적인 ‘제 식구 감싸기’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 지휘선상의 비서관부터 민정수석, 비서실장까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페이스북에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믿어주시기 바란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썼다. 잘못은 드러내고 일벌백계해야만 되풀이되지 않는 법이다. 여당 내에서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청와대 참모들을 전면 교체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한·미 정상회담, 비핵화 협상 활성화의 모멘텀 돼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3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하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다고 양국이 28일 발표했다. 회담의 시간·장소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북·미대화 중재가 긴요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최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큼 지지부진하다. 이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지 않은 데 이어 다음달 중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회담까지 사실상 무산됐다. 이런 상태로 올해를 넘기면 북·미대화의 동력이 약화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면 전환이 시급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북·미 모두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차기 대선 등 국내 정치 측면에서 북한과의 협상은 버리기 어려운 카드이다. 북한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며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미 국무부가 이날 북·미 고위급대화를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북한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당장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묘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마침 미국이 결정한 유엔의 대북 제재 면제조치로 남북의 철도연결을 위한 공동조사가 30일 시작된다. 남쪽의 열차가 신의주와 두만강까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설명함으로써 대북 제재완화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낸다면 상당한 소득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북한의 핵시설 폐기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중재도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북·미 고위급회담 성사 단계에서부터 주요한 동력을 제공해왔다. 정상들이 이끌어가는 톱다운 방식의 북·미 간 대화는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급격히 추동력이 약화되는 허점을 드러내왔다.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할 때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고위급회담, 실무회담이 속속 열리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미 워킹그룹 논의로 ‘남북철도 연결’ 탄력받게 됐지만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워킹그룹 첫번째 회의를 마친 뒤 “미국 측이 남북철도 공동조사 사업에 대해 강력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남북철도 공동조사 사업은 미국이 탐탁지 않아 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지연돼 왔다. 지난 8월 진행하려던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는 막판에 유엔사가 군사분계선(MDL) 통과를 승인해 주지 않아 제동이 걸렸고, 이후 협의에서도 매듭짓지 못했다. 공동조사를 위한 장비와 연료의 대북 반출도 미국의 대북 제재 예외인정이 필요한데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이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게 된 셈이다. 한·미 간의 견해차가 뒤늦게나마 조정된 것은 다행스럽다.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물꼬가 트인 것도 긍정적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제재이행, 남북협력 방안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를 위한 양국 당국자 간 협의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남북관계 상황의 세부 내용을 전달받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고, 한국은 북·미 협상에 의견을 반영시킬 여지가 넓어졌다. 비핵화와 남북교류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회의에서 철도 연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것도 의미가 크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워킹그룹의 목적에 대해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상대가 모르거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선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폼페이오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증진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밝혔다”고도 했다.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조화롭게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북정책에서 한·미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동맹국이자 주권국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은 지나치다. 한반도 정세 전환 과정에서 남북이 반발 앞선 행보로 북·미 협상을 추동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이런 역할마저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줘 씁쓸하다. 워킹그룹이 대북정책에서 자칫 ‘상위동맹’인 미국의 입장만 관철되는 창구로 변질돼선 안된다. 워킹그룹에 기대만큼 우려도 적지 않음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하루 만의 ‘북한미사일 소동’이 전하는 교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전날 공개한 북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충분히 인지한 내용이며, 새로운 것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CSIS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서도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국가정보원도 14일 북한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이미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히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새로울 것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북한 미신고 미사일 기지’ 의혹은 하루 만에 진화되는 양상이다.

CSIS의 보고서는 처음부터 부정확한 사실과 이미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미국 조야와 한국의 반북세력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개발을 멈추거나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보수세력들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실확인 차원의 설명을 하자 “북 대변인 행태”라고 공격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와 언론이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분석과 전망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NYT가 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뜻밖이다. 부디 팩트 체크가 부족해 벌어진 실수였을 뿐, 정치적 저의가 없었기를 바란다.

그간에도 미국의 싱크탱크나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보고서나 보도로 북·미 협상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그런 만큼 중간선거로 민주당이 미 하원을 장악한 정국구도 변화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 작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신속히 진화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대북 회의론은 앞으로도 북·미 협상 과정의 틈새를 꾸준히 노릴 것이다. 이번 해프닝도 북·미 협상의 교착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이 커진 시기에 불거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로 목표를 세운 이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집중력 있게 협상을 이끌어나갈 것을 주문한다.


[경향 사설] 남북 군사합의 공개 지지한 미 국방장관 발언의 의미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남북 군사합의서를 전적으로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북이 합의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비준으로 발효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매티스 장관은 이어 “(북한의 군사적) 역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분명히 상당히 감소했다”고 평가한 뒤 “한·미 양국군 당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 속에서 모든 이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상황 변화를 긍정 평가하면서 한·미 간 공조도 견실하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매티스 장관 발언은 의미가 크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번 제50차 SCM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에 공감하는 전략 문서에 서명했다. 현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 연합사 체제에 대해서도 한국군이 주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전작권 이양의 시기는 못 박지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할 토대를 마련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라 두 차례나 미뤄진 전작권 환수에 상당한 추진력을 붙인, 의미 있는 성과다.

남북 군사당국은 1일부터 지·해·공중 완충구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했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동시에 군사분계선 일대와 동·서해 완충구역 내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우는 실질적인 군사긴장완화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때에 매티스 장관이 모든 남북군사 합의가 한·미 간 신뢰와 공조 속에 이행되고 있으며, 북한 위협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지지가 될 것이다. 중장기 의제는 물론 단기 현안에 대해서도 견해를 같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 정착과 전작권 이양까지는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 정부는 미국과 간극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조를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은 그동안 남북 군사합의가 남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으며 미국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발언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밝혀졌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은 이제 안보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 북 군사합의서 세부 시간표 합의, 차질없이 이행해야

남북은 26일 열린 제10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시범철수 대상인 남북 각각 11개의 전방 감시초소(GP)를 다음달 말까지 완전히 파괴하기로 합의했다. 또 ‘9·19 군사합의서’에 따른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 행위 중지를 다음달부터 차질없이 이행하고,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을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기로 했다. 남북은 한강 하구에서 민간선박의 자유항행 보장을 위한 사전조치로 11월 초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한 9·19 군사합의서의 세부 시간표이자 남북이 군사적 신뢰구축에 한발짝 더 다가서기 위한 약속이다. 특히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남북 민간선박의 자유항행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GP 시범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도 마찬가지로 남북 간 긴장으로 유명무실화됐던 정전협정을 정상화하는 조치들이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 대해서는 1992년 5월 남북이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준용해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군사공동위는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등 굵직한 의제들을 다루는 군사적 신뢰구축의 사령탑이다. 남북이 1992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군사공동위 구성에 합의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날 매듭짓지 못한 사항들을 남북이 추가 협의해 구성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날 회담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측 대표단은 도보로 이동하던 과거와 달리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JSA 북측지역까지 이동했고, 북측은 남측 대표단 차량을 회담장인 통일각 앞까지 차량으로 에스코트했다. 남측 대표단이 우천 속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걱정한 북측의 배려가 돋보였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JSA가 평화의 기점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광경이다. 북측 수석대표가 종결 발언에서 “오늘처럼 속도감 있게 제기된 문제들을 심도 있고 폭넓게 협의하고 견해를 일치시킨 적은 없다”고 한 데서도 분위기가 짐작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비핵화만이 아니라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다. 남북 접경지역의 긴장완화는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는 촉매가 될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발전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유엔사령부도 군사합의서 이행에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실질적 종전선언 격인 군사합의서를 차질없이 이행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남북과 긴밀히 협의해 “군사합의 이행” 천명한 유엔사

주한유엔군사령부는 19일 “한국 합동참모본부와 긴밀히 공조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내용)’의 하나로 그동안 판문점에서 이뤄진 지뢰제거 작업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말한 뒤 “군사합의서의 추가적 실질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간의 다음 단계를 지원한다”고 했다. 나아가 “유엔군사령부는 남북과 긴밀히 협의하여 합의사항의 이행을 함께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지난달 19일 남북 간 체결된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작업과 공동경비구역(JSA) 병력 철수 조치가 예정대로 진행됐음을 관할부대인 유엔사가 공식 확인한 것이다. 남북 군사합의의 첫 조치가 한·미 양국 군의 공조로 일단락된 것을 환영한다.

유엔사는 이날 ‘긴밀히 공조, 협조, 판문점선언 이행’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한·미 양국 군이 이 문제에 대해 원활히 공조하고 있다는 점을 전에 없이 명확한 용어로 강조한 것이다. 합참도 “한·미 군 당국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을 위한 모든 과정에서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은 특히 남북 군사합의서의 ‘군사분계선 상공 비행금지구역’에 대해 미군이 항의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한·미 양국 군이 회의 등 내부 토의를 통해 공군 연합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 공역을 사전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간 균열이 있는 조짐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과 보수 일각에서 남북 군사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한·미 간 큰 마찰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남측이 지나치게 북측에 양보를 많이 하는 바람에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과 대북 정찰 활동에 큰 지장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서도 남측이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미 군 당국의 해명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조그만 이견이나 문제를 침소봉대해 안보의 결정적 위협이나 되는 양 주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다음주 JSA 초소·병력·화기 철수작업이 시작된다. 다음달 말에는 남북의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이 열린다. 남북 간 군사합의에 의해 군사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는 공조체제를 더욱 긴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도 안보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으로 한·미 간의 틈을 벌리는 것은 소위 ‘안보정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이 전한 ‘북한의 현재 핵 제거 약속’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며 이는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구체적 프로세스를 논의한 적은 없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핵개발뿐 아니라 이미 보유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 등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라고 문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공언했지만 폐기할 핵무기의 범위가 모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북한이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는 큰 의미가 없으며, 정작 문제가 되는 기존에 만들어진 핵탄두·미사일 폐기는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때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핵 폐기의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그 내용을 미국과 공유해왔다. 북한이 평양선언으로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듯 문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핵무기 폐기의 범위도 조만간 직접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북핵 폐기 프로세스는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 해제 시점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핵 포기를 선언한 후 경제개발과 국제사회를 향한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곧 러시아를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평양에서 만난다. 문 대통령을 통해 교황의 방북까지 초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럽 순방에서 국제사회에 북핵 폐기에 상응하는 대북 제재 완화 등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무조건 믿어서도 안되지만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도 협상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핵 폐기가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들면 대북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김정은 방러·시진핑 방북, 한반도 평화 구축에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전망”이라며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저는 그 모든 과정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또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전망하면서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한다.

북·미관계가 중대한 진전을 보이고 있음은 속속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시험장을 곧 미국 사찰단이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2차 정상회담도 세부사항 합의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며 회담 개최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제는 김 위원장이 뒷걸음질치기 불가능할 정도로 비핵화를 통한 경제건설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는 게 상식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선 폼페이오가 방북 직전 북한의 비핵화 후 일정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중국의 참여를 언급했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아가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최근 악화된 미·중관계를 접어둘 정도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러·일의 움직임도 드러났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북한이 정상국가의 길을 완성했다는 의미도 된다. 거기에 북·일이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셈이다. 동북아 세력균형 틀이 달라지게 된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일·러의 입장이 한국이나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북·중·러 3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 냉전대결 구도를 종식하려면 관련국들의 협조와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특히 중국을 평화협정에 참여시켜 한반도 합의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비핵화뿐 아니라 이후 한반도 안보구도에서도 중요하다. 러시아도 안전판으로 들어와야 하고, 북·일 간 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 정부는 북·미 협상 촉진자로서의 역할 외에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판문점·평양선언 이행, 비핵화협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청와대는 28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회의를 열고 동·서해선 철도연결을 위한 남북 공동 현지조사를 10월 중 착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지 공동조사를 위해 유엔사와의 협의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공동 유치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는 한편, 남북이 2020년 도쿄 올림픽 예선전부터 함께 참가하는 방안을 북한과 협의하기로 했다. 10월 중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운영 및 화상상봉 방안을 협의하는 계획도 세웠다.

남북은 이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제2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열어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를 10월4~6일 평양에서 개최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내달 1일에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첫 조치인 비무장지대 내 지뢰 제거 작업이 실시된다. 남북이 이렇게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도 조속히 가동돼야 한다. 미군 헬기가 군사분계선 10㎞ 이내로 비행할 경우 등 예외에 해당되는 조항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보호 및 복원을 위한 환경협력,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이나 인도지원도 남북협력의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한반도 정세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다음달 초 4차 방북하기로 하면서 북·미 협상이 재가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시간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2년이든, 3년이든, 5개월이든 문제가 안된다”며 종전과 달리 비핵화에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한 것은 걸리는 대목이다. 협상을 앞둔 압박용 발언일 수도 있지만 비핵화가 장기 과정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남북관계는 ‘북·미 기상도’에 영향받는 천수답(天水畓)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북·미 협상의 경과를 지켜보며 손놓고 있는다면 남북관계가 다시 불신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는 이런 과거와 결별하자는 의지도 담겨 있다. 남북이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면서 상호 신뢰를 두텁게 하고, 남북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두 선언의 취지이다. 국내외 일각의 대북 제재 위배 우려를 모르지 않지만 그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합의 이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향 사설] 격화되는 미·중 무역갈등 대비하고 있나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관세전쟁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은 지난 24일 2000억달러(약 224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 5745개 품목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추가 관세를 물린 것을 더하면 총 2500억달러 규모다. 이에 맞서 중국도 이날 600억달러 상당의 상품에 5~10%의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중국 측은 “대규모 무역 제한 조처는 칼을 들고 다른 이의 목에 댄 격”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미 재무장관과의 협상도 취소했다. 양측이 정면충돌로 맞서면서 G2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국은 미·중 두 나라 수출의존도가 높아 양국 수출환경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수출액을 보면 중국과 미국의 비중은 각각 27%, 12%로 전체의 40%에 가깝다. 중국은 한국 등에서 중간재를 공급받아 완성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인데,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그 파장이 한국에 미칠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취약한 주요 국가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5000종이 넘는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대규모로 추가관세를 물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피해를 산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정부는 미·중 간 무역갈등은 단기간·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고, 파장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향후 20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역갈등의 배경에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양국 간 갈등구조가 금세 끝날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신경제 냉전’의 시대에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업체(93.0%)가 ‘별도로 대응방안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기업도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자세로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을 수는 없다. 정부는 차제에 수출국 다변화, 수출산업 경쟁력 강화, 신산업 발굴 등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도 혁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향 사설]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중재자 역할 화룡점정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 등을 통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 정부의 비전과 정책노력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21일 밝혔다. 물론 뉴욕 방문의 핵심 일정은 24일(현지시간)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다.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한 한반도 정세 돌파구 해법을 미국과 공유하고 답보상태인 북·미 협상을 본격 가동시키는 모멘텀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 조치를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북핵 협상 25년 사상 처음 내놓은 제안이다. 영변 핵시설은 흑연감속로, 연료봉 재처리시설,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밀집한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로, 이 시설들을 영구 폐기하는 것은 북한 핵능력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의 ‘플러스알파’ 조치를 취할 용의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서울 귀환 후 대국민보고에서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들도 있다”며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회담을 하면 상세한 내용을 전해줄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이 정도의 비핵화 의지라면 미국이 ‘종전선언’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면서 조속한 북·미 협상 재개 방침을 밝혔지만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에 대해서는 ‘비핵화가 먼저’라는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핵신고가 이뤄져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종전의 입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바뀌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2박3일간 17시간여를 김 위원장과 동행하면서 그의 비핵화 의지를 읽고 또 확인했을 것이다. 그 의중을 온전히 전달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내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 숨가빴던 방북 일정의 여독을 풀기도 전에 뉴욕으로 떠나야 하는 ‘강행군’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중재자 역할의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만큼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줄 것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육성 비핵화 약속·‘영변’ 폐기 발언을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 세부조치로 북한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또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처음 육성으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가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육성이 갖는 권위와 무게감을 감안하면 이만큼 확고한 비핵화 의지도 드물 터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환영한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것에 비하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발 더 들어가 실질적인 세부조치를 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북·미 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비핵화 방안을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비핵화를 공식 의제로 삼고 실천 방안까지 도출함으로써 남북대화가 북·미관계를 이끌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해도 어색하지 않다.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폐기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국제사회의 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핵시설이 아닌 운반체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향후 북·미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핵시설 검증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추가조치에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협상 과정에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이 조건 없이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미국과의 협상에서나 사용할 카드를 남북대화에서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두 정상이) 공동선언 내용 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에 공개된 것 외에 비핵화 조치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정상이 이틀간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북·미대화에 탄력을 부여할 다양한 방안을 깊숙이 논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약속도 비핵화와 관련지어 비상하게 음미해볼 대목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다.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 현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하기 전까지 비핵화와 관련한 신뢰를 쌓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서울방문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를 비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비핵화 실천 의지를 밝힘으로써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트위터에서 “매우 흥분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조치 용의를 분명히 밝힌 점,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약한 것을 미국이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석달간 멈춰 있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움직이는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북이 13~14일 열린 군사실무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전방감시 초소(GP)의 시범철수와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군사협력 방안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각각 10여개의 GP를 시범 철수해 문제점을 확인한 뒤 점차 DMZ 내 모든 GP의 철수로 확대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또 남측 철원과 김화, 북측 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공동발굴하는 데도 의견 접근을 이뤘다. JSA에서는 남북 경계병력이 권총 등으로 무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JSA 내에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에 양측이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어느 것도 획기적이지 않은 게 없다. 군사분계선 남북 2㎞ 구간은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해 비무장지대로 설정됐음에도 남북이 진지와 초소, 철책을 구축하고 중화기를 반입하면서 중무장화됐고,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수십년간 지속돼 왔다. 중무장의 거점인 GP가 철수된다면 비무장지대는 그 이름에 걸맞은 평화지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계기로 남북이 분단된 JSA 내에서 ‘비무장 자유왕래’가 실현된다면 자체의 긴장완화는 물론 판문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평화를 체감하는 효과도 작지 않을 것이다. 공동유해발굴도 65년 전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램으로써 진정한 화해를 도모하는 뜻깊은 작업이다.

남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평화수역 방안에 대해서는 기준선 설정이 문제가 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건은 급하게 처리하기보다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충안을 찾아낼 필요도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13일 정상회담 원로자문단 간담회에서 제안한 것처럼 백령도와 북한 황해남도 장산곶 사이의 14㎞ 구간을 ‘미니 평화수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지혜를 모아 합의안을 도출하길 당부한다.

흔히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로 비핵화만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북 접경지역의 긴장완화는 남북 주민 모두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핵심과제다. 일각에선 북한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군축합의가 우려된다고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에 안심하고 나서도록 하는 촉매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경향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비핵화-평화’ 빅딜을 기대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백악관이 10일(현지시간) 밝혔다. 백악관은 2차 정상회담에 열려 있고, 이미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혀 양측이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교착상태인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목표에 합의했으나 이후 석달간의 후속 협상은 ‘디테일의 악마’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예정된 방북일정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양측은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가졌다.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이 탐색전의 결과로 양측이 주고받을 현실적인 타협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거나, 그럴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협상교착의 원인인 ‘핵신고-종전선언’ 대립이라는 난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정상들이 만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다시 만나야 할 필요성은 일찌감치 거론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 협상에서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한 만큼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북·미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 가면서 외부투자와 지원을 받아내 경제성장의 마중물로 활용하려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지난 5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이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두 정상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실무협상이 난항에 빠진 가운데서도 상호 존중심을 잃지 않고 친서외교로 신뢰를 쌓아온 것이 정상회담의 추진 동력이 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정상 간의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때 엇박자 평가를 받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의 궤도로 복귀하게 된 것도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해야 할 ‘빅딜’을 위해 남북이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사단 파견을 시작으로 중재역에 다시 시동을 건 문재인 정부의 분발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ICBM 없는 북 9·9절 열병식, 미국은 기다리기만 할 건가

북한이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지난 2월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형’과 ‘화성15형’ 등 ICBM이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열병식에서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번엔 연설하지 않았다. 대신 연설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제적 목표를 강조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북한이 지난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노선전환을 채택했던 점에 비춰보면 9·9절의 ‘조용한’ 열병식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열병식을 통해 북한은 대내외에 약속한 노선전환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대화기조를 9월 이후에도 살려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밝힌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때마침 평양 인근에 세워졌던 ICBM 조립시설이 완전히 해체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북한이 자제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9·9절 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대신 국가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을 보내는 등 ‘로키(low-key)’로 임했다. 중국의 대북접근 강화를 껄끄러워하는 미국을 의식해 중국 스스로가 북·미 협상의 ‘중국변수’ 가능성을 낮춘 셈이다.

이로써 9월 한반도 정세는 순탄한 흐름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가 다시 대좌할 환경이 최적화됐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사단 방북과 9·9절 열병식에서 드러난 북한의 대화 의지를 미국은 전향적으로 수용해 북·미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희망한다. 양측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 재개를 위해 각고의 노력에 나서줄 것을 바란다.


[경향 사설]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 속 대북특사 파견을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5일 평양에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인 개최 일정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 등을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아무래도 중요한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만큼 남북이 긴밀하게, 농도있는 회담을 하기 위해 특사가 평양에 가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대북특사 파견은 난기류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결정으로 평가한다.

이번 대북특사는 9월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의 일정 협의뿐 아니라 난관에 처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게 된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정점으로 한반도 정세는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비핵화·체제보장 협상에서 북·미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예정된 방북을 취소하는 사태로 치달았다. 미국은 중단됐던 한·미 연합훈련의 재개 방침을 시사하는가 하면 미국인의 북한 여행금지를 1년 연장하는 등 대북 압박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판문점선언에 따라 추진돼온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을 위한 현지 공동조사가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도 제동이 걸려 있다. 북·미 서로가 판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지만 답보상태에서 추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사단은 이번 방북에서 현재 조성된 국면에 대해 북측 최고지도부와 허심탄회하고 심도있는 협의를 통해 북·미 협상 모멘텀을 살려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도 남북관계 발전에 그치지 않고, 북·미 협상을 견인하는 성과로 이어지도록 긴밀하게 조율할 것을 당부한다. 그래야 유엔총회를 비롯해 한반도 관련 정상외교가 벌어질 9월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호기로 삼을 수 있다.

북측도 상황타개를 위해 특사단의 방북을 최대한 지혜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특사단을 만나 ‘비핵화 및 평화정착’ 의지를 재확인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게 되면 북·미 협상에 새로운 동력이 부여될 수 있다. 지난 3월 특사단의 방북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듯이 이번 대북특사도 일시 정체된 ‘한반도 대전환’ 여정을 본격화하는 성과를 거둘 것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폼페이오 4차 방북, 이번엔 비핵화·종전선언 결론 내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주에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점에 떠날 것”이라고 말해 방북 시점이 주초가 될 것임을 확인했다. 이번 방북에는 이날 새로 임명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동행한다. 지난 6월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후 두 달 넘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양측이 협상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담판에 들어가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합의한 것을 보면 북·미 양측이 물밑 조율에서 비핵화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 같다. 향후 미국의 대북 협상을 진두지휘할 비건 특별대표가 동행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북 협상의 실무책임자를 대동함으로써 합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느냐이다. 미국은 북한에 핵활동 중단 및 핵시설 리스트 제출 등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을 향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왜 못하느냐고 재촉하고 있다. 이 선후 관계를 어떻게 조정·합의하느냐가 이번 담판의 관건인 것이다. 북·미 양측이 진정 비핵화와 관계개선 의지가 있다면 기싸움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은 핵시설에 대한 신고·검증을 허용하는 등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한발 더 나서야 한다. 동시에 미국이 북한 체제보장의 첫 단계인 종전선언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양측이 서로 현실을 인정하고 진전된 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달 3차 방북 때처럼 폼페이오 장관이 빈손으로 귀환하는 것만은 안된다. 이번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미국 내 대북 강경론이 대두하고 북·미 협상 자체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일부 핵 리스트를 신고하고 미국이 조건부로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절충도 생각해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과 3차 남북정상회담 등이 예고돼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협상이 성공하면 북·미 두 정상이 다음달 유엔총회를 전후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를 견인할 일련의 중대 외교 행사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다음주 평양발 낭보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남북연락사무소, 대북 제재 위반 아니고 돼서도 안된다

청와대가 20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 쪽과 긴밀한 협의하에서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설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사업이며, 남북 간 상시적인 소통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고 했다. 대북 제재 이유가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며, 연락사무소 설치도 동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우리 정부의 활동과 편의를 위한 목적에만 사무소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며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남북연락사무소는 4·27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고 그 내용이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도 포괄적으로 계승돼 있다”며 “제재 위반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료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가 대북 제재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한 국내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미 넉달 전 판문점선언에서 합의된 사항인 데다 북측과의 협의를 거쳐 개소식 날짜와 운영방안 등이 거의 타결된 이 시점에 청와대가 대북 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청와대의 설명 외에 추가로 강조돼야 할 점이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 27항은 대북 제재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른 외교활동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는 주권국가의 외교활동에 해당된다. 따라서 사무소 설치·운영에 필요한 유류·발전시설 공급 등 외교활동에 필요한 행위도 유엔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며 제재 예외를 인정받아야 할 사항도 아니다. 미국의 독자제재도 안보리의 제재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미측 인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비핵화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국이자 동맹국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비핵화 이전까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대북 압박만 해야 한다는 건지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런 시각을 가진 미국 내 관료들이 한·미 공조를 균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경향 사설] 평양 남북정상회담 확정, 비핵화 추동력 되찾아야

남북은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회담에서 쌍방은 판문점선언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했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가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날짜가 공동보도문에 담기지 않은 것은 심각한 이견이라기보다는 미세 조정이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판문점선언에도 담겨있는 ‘가을, 평양 정상회담’을 남북이 차질 없이 이행키로 한 것을 환영한다.

‘정상외교의 계절’인 9월에 남북이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은 답보 중인 한반도 정세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9월에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9월11~13일), 유엔총회(9월18일~10월1일) 등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많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 정상들이 어느 자리에서든 만나 협의를 벌일 개연성이 높다. 9월9일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

상반기 숨 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정세는 하반기 들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하면서 북·미관계의 틀을 바꿔놨음에도 과거 관성이 남아 후속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의 첫 조처로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을 먼저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지켜볼 일이다. 북·미 협상의 교착이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면서 판문점선언의 이행도 차질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관건은 북·미 협상의 의미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이를 북·미 양측에만 맡겨서는 개선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착국면이 장기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때보다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남북 정상은 5월26일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좌초위기에 빠진 북·미 정상회담을 살려낸 바 있다. 이번에도 남북 정상이 지혜와 의지를 모아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비핵화협상의 추동력을 살려낼 것을 기대한다.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일정에 오른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느라 남북관계 개선작업이 겉돌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통일부는 2년반째 가동중단 중인 개성공단의 설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입주기업인들의 방북조차 막고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차제에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ARF에서 드러난 북·미 간 이견, 새로운 동력 필요하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5일 종료됐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중국과 상당한 협의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찬 회동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으며, 판문점선언을 외교무대에서 실현하기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리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은 없었다. 강 장관과 리 외무상의 공식 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남·북·미 3국 외교장관들은 회담장 안팎에서 각자 입장만 폈다. 이번 ARF에서 북한의 비핵화 및 한반도 종전선언의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북·미 대표단 모두 내내 미소는 띠었지만 양국 간 입장차는 작지 않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와 종전선언 협상의 더딘 진척에 불만을 제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를 엄격하게 이행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법인 등을 제재 리스트에 새로 추가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대북 제재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지난한 길임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신뢰를 확인하고 있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ARF 개회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 미측이 ARF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답신을 북한에 전달했다. 양 정상이 모두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협상에서 정상 간 신뢰와 유대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이제 북핵 문제가 실무선의 협상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새로운 협상 동력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는 것이다. 다음달 말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양측을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더욱 필요해졌다.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발사장치 해체 등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도 설득해야 한다.


[경향 사설] 주춤대는 북·미 협상, 한국의 ‘촉진자’ 역할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 연설에서 “한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게 될 것이고,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며 비핵화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만에 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에서 문 대통령이 ‘포스트 비핵화’의 비전을 제시하며 강한 어조로 추진의지를 내비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연설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려면 대북 제재 해제가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비핵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핵화 의지를 독려하는 의미가 있다. 북·미 간 후속 협상이 속도를 내도록 한국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행보에서도 엿보인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목표”라고 한 것은 종전선언에 소극적인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확실히 완화됐지만, 최근 북·미의 태도는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핵화와 관련해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협상의 장기화는 북·미 양측에 득이 될 게 없을 뿐 아니라 신속한 비핵화를 기반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려는 한국으로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이완되고 있는 북·미 협상을 바짝 죄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싱가포르 렉처’ 연설 후 문답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북·미를 압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북·미가 협상 모멘텀을 확보하도록 남북, 한·미 간 소통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한 달, ‘비핵화’하려면 종전선언 필요하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경향 사설] 기어코 미·중 관세 전쟁의 방아쇠 당긴 트럼프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6일(현지시간) 전면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미국이 이날 동부시간 기준으로 0시1분을 기해 중국에서 수입하는 34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미 무역대표부가 지난달 확정한 산업부품·설비 기계·차량·화학제품 등 818개 품목이다. 미국이 먼저 방아쇠를 당기자 중국도 농산품, 자동차, 수산물을 포함한 340억달러 규모의 545개 품목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반격했다. 중국 상무부는 6일 낮 12시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했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면서 “국가 핵심이익과 국민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응인 셈이다. 미국은 지난 2일 국가 안보위협을 이유로 차이나모바일의 미국 시장 진입을 불허했고, 중국도 다음날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26종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법원 명령으로 즉각 반격했다. 이 충돌로 무역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형국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마찰이 장기 국제통상질서 개편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구조적인 갈등인 만큼 무역전쟁이 조만간 봉합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불똥이 세계 경제는 물론 미·중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도 지속적으로 튈 수밖에 없다. 미·중 수출의존도는 2010년 35.7%에서 지난해 36.7%로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분석기관 ‘픽셋에셋매니지먼트’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대중국 수입이 10%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30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걱정이 태산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을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의 전기로 삼는 능동적인 발상이 필요한 시기다.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기간에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미국·중국 의존도를 점차로 낮추기 위한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정책과 북방 경제에 더욱 힘을 넣고, 신북방 경제협력이 조기에 실현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에 나서야 한다. 내수를 키워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다. 한국 경제가 언제까지 미·중 고래 대결에 노심초사해야 하는 새우 신세여야 하는가.


[경향 사설] 세계 경제 위협하는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미국이 동맹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오는 11월4일까지 이란산 원유의 전면 수입 중단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유럽연합(EU)·중국·캐나다 등을 상대로 무역보복 조치를 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명분으로 세계 경제를 또다시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 원유 수입의 13.2%를 이란산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26일(현지시간) “동맹국들과 세계 각국은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제로(0)’ 수준으로 줄여야 하며, 어떤 면제 조치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고, 예외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이란 핵합의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2015년 7월 협정 타결 이후 해제됐던 경제 제재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란에 대한 귀금속·여객기 거래 등 3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뒀던 제재는 8월6일부터 시작되고, 원유를 비롯한 나머지 부문 제재는 11월5일부터 복원될 예정이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방침을 발표하면서 국제유가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2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2.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국제유가 급등세가 지속되면 한국 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이 0.96%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가계소비 위축과 기업의 투자 축소, 생산비용 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이란산 원유 말고도 상품·금융 등 다른 부문 제재를 동맹국들에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40억2100만달러에 달한다. 주력 수출제품은 자동차·디스플레이·철강 등이다. 특히 미국이 이란과 달러나 유로화 결제를 금지하는 제재조치를 내리면 한국의 이란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 면제국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중국·인도·EU 등 이란산 원유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들과 공조체제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정유업계도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경향 사설] 미국의 유엔인권이사회 탈퇴는 국제규범에 대한 도전

미국이 전 세계 인권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이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고질적 편견과 반감을 갖고 있다”며 탈퇴를 발표했다. 그는 “심각한 인권침해국들을 이사국으로 앉히는 등 소굴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엔 기구 탈퇴는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회원국 자격을 포기한 이후 이번이 2번째다. 유엔 창설 주도국이 스스로 만들고 주도해온 국제규범과 질서의 틀을 훼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의 탈퇴 이유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유엔인권이사회가 이스라엘을 자주 비판해왔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사회는 2006년 출범 이후 이스라엘 비판 결의안을 70회 이상 통과시켰다. 비판 결의 2위 국가인 이란보다 10배나 많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시위대 유혈진압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단순히 결의안 횟수만 갖고 따질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인권이사회의 편향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태를 지적해야 한다. 미국은 유네스코를 떠날 때도 반이스라엘 성향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물론 인권침해국들이 이사국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미국의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사회를 개혁해 인권 증진 역할을 강화해야 할 이유가 될지언정 탈퇴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유엔 내부에서는 미국이 인권이사회를 떠나면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인권 문제를 주도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인권이사회가 더 이상 세계 인권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행동이 전 지구적 인권 후퇴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주도한 파리기후변화협정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란 핵협정에서도 탈퇴한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이익을 지킨다며 주요 국가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촉발, 미국 주도의 국제 자유무역 질서도 훼손했다. 자유주의적 국제규범은 미국과 세계가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구축한 국제 평화와 안정의 기둥이다. 아무리 강대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이를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런 규범을 제정하고 그로부터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미국이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 아니라 자해 행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초기 조치 이행으로 북·미 간 신뢰 굳혀야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이르면 이번주부터 후속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미 양국은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 협상을 “가능한 한 가장 이른 시일에 개시하기로 약속한다”고 공동성명에 명기한 바 있다. 양측은 정상회담 직후에 주목할 만한 ‘초기 조치’를 공개했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폐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합의 이행의 초기 조치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초기 조치에 해당한다.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중단 계획을 발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북한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대형 미사일 엔진 실험 시설 폐기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동시 행동 원칙에 입각해 초기 조치에 나서는 것은 상호 신뢰를 쌓는 바람직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의 다음 단계 조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일부 해외반출 같은 대담한 초기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올 들어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의 선제조치를 내놨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식의 상호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로 움직여온 셈이다. 북·미 공동성명이 주고받을 목록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이런 북한의 포괄적인 의지를 미국이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북·미 간의 새로운 관계 수립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말한 대로 ‘과정의 시작’이었다. 초기 조치를 얼마나 신속하고 순조롭게 취해 나가느냐가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할 정도로 북·미관계는 탄력을 받고 있다. 이 동력을 살려 과감한 초기 조치 이행으로 북·미관계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가 밝힌 트럼프 모델이 성공하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자신의 기대와 구상을 내놓았다. 체제안전의 핵심조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등 대체로 긍정적인 기조이다. 그는 “우리는 한국전쟁 종전에 대한 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제보장의 초보적 조치로 꼽히는 종전선언에 대해 트럼프가 이처럼 의지를 보인 것은 바람직하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북핵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돼온 북·미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의미가 있다. 트럼프의 북·미관계 정상화 언급 역시 일정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가장 원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한다는 발언도 정상회담이 여러 번 열릴 수 있다는 기왕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협상 상대인 김 위원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담겼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비핵화-종전선언 및 북·미관계 정상화는 이른바 ‘트럼프 모델’의 핵심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선 비핵화, 후 체제보장’의 리비아 모델과는 다른 개념으로, 신뢰가 부족한 북·미관계를 고려할 때 현실적인 방안이다. 다만 트럼프가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국교정상화한다”고 밝힌 것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선후 문제에서 북·미 간 의견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핵화-체제보장의 단계적 이행과 단계별 조치의 동시 이행이라는 북한의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다. 북한이 아무런 보상 없이 일방적으로 핵폐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의 양보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 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 비핵화(CVID)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제 북·미 양측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배려다. 북·미 양측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큰 틀에 합의한다면, 비핵화-체제보장의 선후 과정을 고집스럽게 집착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선의를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선의를 보임으로써 상대의 신뢰를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은 김 위원장이 체제의 생존을 걸고 이번 회담에 나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트럼프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 회담 성공의 길로 가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예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선언으로 잠시 우여곡절을 겪었던 6·12 북·미 정상회담이 공식 확정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비핵화 방식에 관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과정을 시작하겠다”고 표현했다. 그는 “나는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한번에 (합의가)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했고, “우리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6·12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마침표를 찍는 합의가 나오지 않더라도 추가 회담을 열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미국은 ‘일괄타결’ 방식을 주장하면서 입장차를 드러내왔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폐기하고 단계별로 미국이 제재완화와 체제안전 보장 등 구체적인 보상조치를 동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초기에 폐기해야 체제안전, 제재해제 등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6·12를 ‘과정의 시작’으로 보고, 추가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한 방에 비핵화를 해결하겠다는 비현실적인 구상에서 벗어나 현실적 접근법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에 따라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비핵화와 북한 체제안전 보장 의제에 대해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합의를 도출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추가 정상회담을 하는 절차를 예상해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종전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6·12 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김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이 본격 시동을 거는 역사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 종전선언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과도기적 체제안전 보장의 성격을 띠고 있어 북한이 비핵화 여정에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합류해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하는 형식을 갖춘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전히 군사적으로 북과 대치하고 있는 교전 당사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종전선언이 이뤄지게 되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 프로세스에도 무게감을 싣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에 대해 제재를 해제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최대의 압박’이라는 말이 더는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북·미 간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신규 제재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년 만에 처음 이뤄진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백악관 방문에 우방국 최고위급 외교관에게 주어지는 수준의 의전을 제공했고, 김 부위원장 일행을 직접 배웅하기도 했다.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면담에 배석시키지 않은 것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배려로 읽힌다. 이런 환대는 6·12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상대로 진지하게 대우하겠다’는 메시지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것이어서 회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예단하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김 부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합의에 이르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시사했다. 양측의 간극을 좁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여러 차례 하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이 간극을 메워야 할 최종 주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다. 두 정상이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아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주고받는 세기의 담판을 성공으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두 사람은 자칫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을지도 모를 한반도 정세를 평화의 방향으로 반전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100% 굴복시키는 외교는 없으며, 대결이 아닌 협상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성을 갖는다. 8일 뒤 싱가포르에서 만난 두 정상이 현실적이고, 호혜적인 태도로 합의 도출에 성공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회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경향 사설] 김정은 친서 받은 트럼프, 탄력받는 북·미 정상회담

미국을 방문 중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예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특사인 김 부위원장을 접견하고 친서를 받은 것은 긍정적 신호다. 한때 취소 사태까지 빚었던 북·미 정상회담이 본궤도를 되찾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5월31일 김 부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뉴욕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문제를 협의했다. 회담 후 폼페이오 장관은 “실질적 진전이 이뤄졌다”면서도 “합의에 이르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의제에서 상당한 수준의 의견일치를 봤지만 막판 쟁점이 남아있으며, 김 위원장이 결단해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북·미가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에서도 관측된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면서 “단계적으로 풀어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거론한 단계적 해법은 트럼프의 일괄타결 방식과 거리가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미 양측이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방안을 일부 수정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가미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 9시간도 안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앞세워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정중한 태도로 회담 계속 의사를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북한과 미국이 어떤 의제를 놓고 의견을 다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회담 성사 의지가 강하다면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고위인사가 미국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빌 클린턴 대통령을 접견한 이후 18년 만의 일이다. 당시 조 제1부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은 상호 주권 인정과 적대관계 청산, 클린턴 대통령 방북, 평화체제 구축을 담은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채택했다. 하지만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조지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절대로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북·미가 철저히 준비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남북정상회담 개최,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을 환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번째 남북정상회담은 시의적절했다. 무산 위기에 빠진 북·미 정상회담이 복원될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열렸기 때문이다. 남북 두 정상이 북·미 정상회담의 재추진에 기여한 것은 물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을 높이 평가한다. 두 정상은 6월1일 고위급회담을 열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논의할 군사당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도 개최키로 합의했다. 남북은 지난달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실천사항을 담은 ‘판문점선언’에 합의했지만 지난 16일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무산시키면서 합의 사항 이행이 전면 중단됐다. 어떤 이유로든 남북 합의 사항의 실천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남북 모두 노력해야 한다. 문 대통령을 매개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감하는 남·북·미 삼각대화의 틀이 새롭게 형성된 것도 주목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재추진 흐름을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 의미도 각별하다. 김 위원장이 직접 육성으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 노력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가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할 의사를 내비친 것은 중요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CVID 수용 여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북·미 간 회담에 합의하고 실무협상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북한의 그런 의지를 확인한 것 아니냐”고 답했다. 미국의 일괄타결식 비핵화 방안과 북한의 단계적 방안에 괴리가 크지만 이번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재개 의지가 드러난 만큼 충분히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사흘간 북·미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싼 반전과 파격을 경험했다. 미국의 압박에 북측 고위관리들이 거칠게 반발했고,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선언으로 비핵화 정세가 벼랑 끝으로 몰렸다가 겨우 기사회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비생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만일 이런 갈등 요소를 해소하지 못한 채 회담이 열렸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게 뻔하다. 신뢰 기반이 약한 북·미관계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평화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아직은 평화보다는 전쟁, 대화보다는 대결이 더 가까이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반도 난기류는 다행히 걷혔지만 향후 여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다. 북·미 모두 실용적 접근과 진지한 자세가 북·미 정상회담 파행을 막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합의를 뒤집는 행태를 바로잡고, 미국은 대화 상대를 존중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남·북·미는 불신 털고 북·미 회담 성공에 매진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6월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북·미 간 실질적·구체적 비핵화와 체제안전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하면 정권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색된 비핵화 정세 속에서 나온 두 정상의 발언에 주목한다. 마침 북한도 태도를 바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남측 취재단의 방북을 허가했다. 이를 계기로 비핵화와 남북교류 시계가 다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우려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트럼프의 발언부터 모호하다. 회담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면서도 취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비핵화) 조건들이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체제안전 보장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CVID를 거듭 천명한 것도 거슬린다. 북한이 절대적 안보자산인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상황임을 고려하면 좀 더 진지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방안을 수용할 것처럼 시사한 것은 청신호다.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다”면서도 “한꺼번에 이뤄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여건으로 봤을 때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단시간에 거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기대와 달리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구체적 로드맵을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경색된 국면을 타개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을 되살리는 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였다. 회담 결과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는 있게 됐지만 성공적인 회담을 보장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회담 성공을 위한 남북한, 미국의 매진이 중요한 이유다. 신뢰 기반이 취약한 남북 및 북·미관계에서는 긍정적인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엇갈리는 신호들 가운데 부정적인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긍정적인 것을 적극 살리는 실용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논의되지 않았거나 미진한 대목이 있더라도 향후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낙관주의가 성공을 부른다.


[경향 사설] 불확실성 걷어낸 북·미 정상회담, 이제는 디테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10일 “(폼페이오 장관이) 조미(북·미) 수뇌회담 준비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에게 북·미 정상회담 사실을 알린 것은 좋은 신호다. 이제 북한에 정상회담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 등과 “의제로 올려놓으려는 사안들에 대해, 그리고 성공적 회담을 위한 여건들을 확실히 갖추기 위해 어떤 식으로 조율해 나갈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북·미의 이런 움직임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됐음을 시사한다. 최근 미국 측이 비핵화의 수위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인 비핵화(PVID)’로 높이는가 하면, 대량살상무기, 북한 인권 등을 새롭게 요구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생성된 난기류가 가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직전 비핵화 수위를 애초의 CVID로 낮춘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의 수준과 달성시한에 동의했고, 미국도 체제안전 보장에 대해 북한이 만족할 수준의 방안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중앙TV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관심을 보였다고 보도한 대목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7~8일 방중 과정에서 거론한 ‘대북 적대정책과 안전에 대한 위협 해소’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답안을 내놨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태까지 일방적인 비핵화만 요구하던 미국이 그 반대급부를 제시했다면 정상회담에서의 ‘빅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그동안 억류해온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해 폼페이오의 귀국길에 동행케 한 것도 호재다. 북·미 양측이 마지막까지 진지한 대화로 요구사항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은 회담 전망을 밝게 한다.

이로써 북·미 양측은 정상회담으로 가는 막바지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빅딜’의 이행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완전히 해소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동시적’ 조치에 대해 미국은 “잘게 쪼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세밀한 추가 조율이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중재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김정은의 결단을 기대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판문점이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해 다양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의집·자유의집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과도 연락했다”고도 했다. 미국과 북한이 내부 검토를 넘어 문 대통령을 매개로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는 ‘역사의 메카’가 될지 주목된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북·미 양측에 통상적인 정상회담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세계평화가 걸린 세기의 담판이기 때문이다. 양국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경호나 홍보 등 실무적인 문제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평양과 워싱턴은 일찌감치 후보지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체제에 대한 합법성 부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워싱턴에서는 경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싱가포르나 몽골은 나쁘지 않은 후보지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이다.

판문점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주는 카드가 될 수 있다. 우선 중립적 성격을 띠는 ‘제3의 공간’이기 때문에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판문점이 갖는 한반도 분단과 화해의 상징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에서 평화체제로의 대전환을 협상한다는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한군과 유엔사가 관할하기 때문에 경호가 용이하고, 서울과 개성을 베이스캠프 삼아 차량 이동도 편리하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생중계가 완벽하게 이뤄진 점은 흥행 효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도 맞을 것 같다. 판문점이 다른 해외 후보지와 달리 회담 성공에 기여할 수 있는 장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미 간 사전 협상이 잘돼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기간에 석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과 동행 귀국하는 장면은 판문점에서만 보여줄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최지를 확정하지 못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도 매우 밝아진 상황이다. 더 이상 개최 장소 문제로 소모적 논쟁을 벌일 시간도, 이유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결코 뒤돌아가지 않겠다”는 남북 정상의 불가역적 합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서 기존의 남북선언과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역대 합의처럼 시작만 된 불미스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언문에는 ‘민족경제 균형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10·4 선언 합의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0·4 선언에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합의로 해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북한 안변과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사업 등이 들어 있다. 사실 ‘판문점선언’은 ‘완전한 비핵화’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정도를 빼면 이미 남북 간에 합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이다. “아무리 좋은 합의가 나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낙심을 주지 않겠나,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합치고 의지를 가지고 나가자, 이런 생각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서 200m를 걸어왔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공식 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과의 환담 때도 이를 강조했다.

‘잃어버린 11년’은 2007년 정상회담 이후의 공백기를 가리킨다. 남북은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수많은 회담을 열었지만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가며 대결과 갈등상태가 이어졌다. 남북 간의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원인으로는 북·미관계가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지난 25년간 북·미 간에도 굵직한 합의들이 있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미국이 먼저 깨기도, 북한이 합의 취지를 어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크다. 2007년 정상회담 합의는 이듬해 들어선 이명박 정권에 의해 휴지조각이 됐고, 박근혜 정권은 개성공단마저 중단해 버렸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되풀이하던 터여서 남북관계만 진전시키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그간 행태를 보면 이런 이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두 차례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행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데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확고히 하면서 ‘미국 변수’가 줄어들었다. 합의 이행에 장애가 될 요소를 꼽으라면 한국의 보수세력과 정치권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정치세력들은 이번 합의의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정쟁에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렵사리 이룬 남북 간 합의가 정쟁 끝에 실종되는 폐단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남북관계를 훼손시키는 일은 더 없어야 한다. 합의가 불가역(不可逆)적인 것이 되려면 옛 서독처럼 정권이 바뀌더라도 합의 이행을 보장하는 구속력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두 정상이 정치권에 던진 숙제다.


[경향 사설]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 보이는 북·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언론사 사장단 오찬간담회에서 “북한은 대북 적대시정책의 종식, 그다음에 자신에 대한 안전보장, 그것을 말할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저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나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의 경제 발전 지원 등에 대해 큰 틀의 원론적인 합의는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남·북·미가 비핵화와 북 체제보장에 접점을 찾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거론했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동결이나 핵확산 금지를 제시하는 선에서 협상하려 할 것이라는 의심이 제기됐다. 북한의 절대적인 핵 의존성을 고려할 때 핵포기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방안에 대한 인식 차도 관건이었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의미하는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비핵화 소요 시간도 1년 안팎의 단기간으로 잡고 있는 미국의 복안을 북한이 수용할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언대로라면 비핵화를 둘러싼 이런 우려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아왔고, 그 핵심으로 주한미군을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 견제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다. 따라서 비핵화가 이뤄진다해도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 변화는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과거에도 남북 및 북·미 간에는 어렵게 합의해놓고 이행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합의 자체가 틀어진 경우가 허다했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대가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현실적인 세부 방안들을 마련하고 긴밀히 조율하는 작업도 긴요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비무장지대를 비무장지대로

정부가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때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과 중화기를 철수하는 등 실질적인 비무장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DMZ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도 관심사인데 실무회담에서 결론 내기 어렵다”고 밝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비무장지대 중화기 및 병력 철수방안이 합의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게 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를 예비하는 토대가 구축되는 의미도 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 이내 구역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해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를 금지했다. 비무장지대 출입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 목적으로 한정했고, 출입자는 각각 100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협정에도 아랑곳없이 남북이 진지와 초소, 철책 등을 구축하고 중화기를 반입하면서 ‘중무장지대’가 됐다. 남북은 요소요소에 전방감시 초소(GP)를 설치하고 수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반입무기는 유사시 방호를 위한 개인화기로 한정돼 있음에도 남북은 박격포와 고사총, 중기관총 등 각종 중화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게다가 비무장지대에는 100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인·대전차 지뢰가 매설돼 있다. 2015년 8월에는 추진철책 통로에 매설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다.

남북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군사적 신뢰조성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원칙에 합의했지만 병력과 중화기 철수 등은 논의하지 못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당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방안을 제안했지만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다만 개성공단 조성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면서 해당 구역 비무장지대의 일부 구간에서 남북이 병력과 중화기를 동시철수한 전례가 있다.


[경향 사설] 일본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진전되고 있지만 일본의 처신은 탐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이른바 ‘재팬패싱’ 우려가 커지면서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전방위 외교에 나섰지만 무리한 요구와 부적절한 언동으로 되레 반감만 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답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3주일여 남은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은 외교 무례에 가깝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언동도 문제다. 그는 지난달 31일 “북한이 새 핵실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은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38노스’가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발표하자 “북한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보면 핵실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물러섰다. 증거도 없이 북핵 우려를 키우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중거리미사일 포기 약속을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이나 무작정 북한에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도 정상적인 외교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주변국으로서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제 처신을 보면 그 반대로 보인다. 이런 행태는 일본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팬패싱만 해도 아베 정권이 국내 ‘극우정치’에 북핵 문제를 활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다 남북 및 북·미관계 급진전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재팬패싱 현상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중시하는 납치 문제도 비핵화의 진전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침 고노 외무상이 다음주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고노 외무상은 서울에 와서 한반도 평화가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깨닫기 바란다.


[경향 사설] 북 최고위급의 중국 방문을 주목한다

북한 최고위급이 27일 중국을 방문했다. 최고위급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의 철저한 보안과 경호로 미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추정된다. 누가 됐든 역사적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최고위급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중 사이의 관계개선이 이뤄지는 것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인 신호다.

한반도 정세 진전을 위해서는 주변국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환영했으나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이 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상황의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관계 개선은 이런 중국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고 한반도 정세 진전 작업의 협조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북·중관계는 김정일 시기까지는 혈맹 수준이었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계속 악화돼 왔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는 중국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이 핵개발에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 적극 가담하면서 사이가 더 벌어졌다. 양국은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방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북한과 중국 모두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고강도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 상황이 악화된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지원은 절실하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담판을 앞둔 김 위원장에게 중국만 한 버팀목도 없다. 중국 역시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동북아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북·중관계 개선의 여건도 조성된 상태다. 이는 시 주석이 지금까지 내건 북·중관계 복원의 조건에 부합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혹은 측근을 통해 시 주석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면 북·중 정상회담 개최의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은 단 한 번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담이 성공적이었다 해도 평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의 협조도 필요하다. 북·중관계 개선 움직임이 북·일, 북·러 관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은 베트남인 학살 사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2~24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이번 방문에서 문 대통령은 쩐 다이 꽝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주요 지도자들과 만나 수교 25주년을 맞은 양국의 발전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아세안 10개국 중 교역·투자, 개발협력 1위 국가이자,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 국가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불행한 과거사가 놓여 있다. 베트남 전쟁기간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2만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그만큼 한국군의 피해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도 컸다. 참전단체들은 학살 자체를 부인하거나 작전수행 중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지만 1968년 3월 하미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의 경우 희생된 135명 중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다. 갓난아이까지 무참하게 희생됐다면 정당한 작전수행이라고 볼 수 없다.

역대 정부는 간접적인 사과 혹은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2004년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영상축사에서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사과 발언을 하지도 않았다.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역사의 가해자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마주하기 싫은 과거이지만 ‘뚜껑을 덮어둔 채’ 외면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문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군 장성 출신인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20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면서 “부끄러운 민낯이라도 떳떳하게 밝히고 사과·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베트남 학살 문제를 외면한 채 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