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일방적 전쟁위기 조성 미국, 이게 한·미 공조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한반도를 안보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한·미 양국은 공식적으로는 공조가 완벽하며 신뢰관계 역시 튼튼하다고 강조한다. 어제 내한한 조지프 던퍼드 미 합참의장은 “중국보다 최우방국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며 한국을 존중한다는 태도를 부각했다. 한국 국방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긴급 현안보고를 통해 미국이 양국 안보당국 간 협의에서 투명한 공조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리대사 또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 한·미 간에 100% 협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언급 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국의 입장이 간과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도발적 자세를 버리지 않는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군사적 대응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동맹국으로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 전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고위 당국자들은 이를 주워담으면서도 군사적 공격을 할 것처럼 위협하는 등 계속 긴장을 높여가고 있다. 동맹국 시민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이다.

아무리 미국 우선주의가 트럼프의 정책 기조라 해도 이런 동맹국 무시는 지나친 것이다. 미국 행정부의 태도는 한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들은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한·미동맹을 한반도 안보의 만능 열쇠인 양 여기는 야당들도 문제지만, 한·미 간 조율되지도 않은 전쟁 운운 발언으로 동맹국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미국의 태도 또한 유감스럽다. 결국 어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반도 위기가 잘 관리되고 있다”며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공조를 잘 지키고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발언이다.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놓고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미 행정부의 입장에 차이가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양국이 조율하면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일방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이라면 이제부터라도 한국 정부와 한국민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지금처럼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속된다면 한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와 동맹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경향 사설] 괌 타격한다는 북과 화염 운운하는 미의 거친 입

북한과 미국이 ‘괌 타격’ ‘화염과 분노’라는 험악한 언사를 주고받으며 한반도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전략군사령부는 9일 성명을 통해 “괌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을 단행하기 위한 작전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최선일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성 경고를 보냈다.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은 미국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예방전쟁”을 거론하자 “전면전쟁 대응과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맞섰다. 말로만 보면 거의 전쟁 일보 직전이다.

북한과 미국이 거친 언사를 주고받은 것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2371호 채택 후 그 수위가 급격히 올라가 우려된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특정 지역을 지목하며 구체적인 군사행동을 예고한 것은 심상치 않다. 괌은 유사시 한반도에 미군 전력을 파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군사 거점이다. 북한은 미군의 아·태 지역 최후 방어선을 공격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이 발끈할 수밖에 없다.

도를 넘은 북·미 간 설전에 미국 대통령이 끼어든 것은 신중치 못한 태도이다. 양국이 거친 말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도발적 언어가 우발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미 북·미는 위험한 군사적 행동을 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미국 정보당국이 결론을 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이제 대기권 재진입만 남은 셈이다. 미국도 9일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했다. 북한의 도발적 태도에 맞선 대응이지만 북한에 추가 도발의 빌미를 제공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달 하순에는 한국과 미국의 대규모 연합훈련도 예정돼 있다.

북한과 미국은 도발적 언사와 군사적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계속하다간 북핵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한반도 정세를 벼랑 끝으로 몰고갈 수 있다. 정부는 방관하지 말고 북·미 대치상황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


[경향 사설] 평화를 위한 베를린 선언, 선언 넘어 실천 강령돼야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핵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일관성 있는 비정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며 추석 이산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상호 중단 등을 제안했다. 남북정상회담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판 ‘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은 새 정부의 한반도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을 밝힌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이 크지만, 그럴수록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화가 절실하다. 위중한 정세를 고려하면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핵문제 등 모든 한반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다. 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여는 것이 맞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종식시킬 수도 있는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자칫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평화로운 한반도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당사국의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구상이 빈말과 겉치레가 아니라면, 지속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에 앞서 역대 대통령들도 독일에서 대북구상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 대결로 귀결되었다. 구상을 실천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화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긴장이 높아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대화다.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회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북한이라는 문도 열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우리 모두의 실천 강령이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민주화 30년, 여전한 야당의 대결정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공직후보자 3명에 대한 인준이 점점 더 꼬여가고 있다. 여야는 어제도 이들의 적격 여부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3명의 사퇴를 관철한다며 청문보고서 채택에 불응한 것은 물론 이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 자체도 보이콧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주로 제안한 국회 상임위원장들과의 오찬 회동도 거부했다. 여야 협치는 고사하고 새 정부가 한 달 넘게 내각의 진용조차 짜지 못하고 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어제 당 소속 상임위원장 모두 문 대통령의 오찬 초청에 응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전했다. 청문회 정국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는데 식탁에 마주 앉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대화 거부와 인사 반대가 과연 시민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인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가 능사는 아니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80%를 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또 새 정부의 인사 준비 부족을 비판했는데 지난 대선 때 “정권을 다 잡은 듯 행세하고 있다”며 예비내각 인선 등을 비판한 게 바로 한국당이다. 게다가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강 후보자가 외교부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안보정당을 자임하고, 코앞에 닥친 한·미 정상회담을 걱정한다면서 결정적인 흠결이 없는 외교장관 후보자 인준을 거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 출발이 여느 경우와 다르다. 6월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시민들이 30년 만에 다시 촛불을 들고 일어나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결과 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 내각 구성에 대한 한국당의 지나친 반대는 촛불혁명의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당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면서도 여당을 향해 확전을 시도하고 있다. 어제는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응할 TF를 만들겠다고 했다. 국영·공영 방송을 자기 입맛대로 주물러놓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조치에 언론장악이라며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부족한 명백한 국민 우롱이다.

정부·여당은 야당과 더 소통하고 인사 검증을 엄격히 해야 한다. 민주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권력을 탈권위적으로 행사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앞서 통합과 협치를 말하면서 사사건건 여당의 발목을 잡는 한국당은 과거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당한 비판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구분 못할 시민은 없다. 촛불시민이 한 세대 만에 다시 요구한 민주주의의 제도화, 민주주의 완성에 정치권이 부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취임 한 달, 출발도 못한 외교안보라인

청와대가 일주일째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의원 출신 장관 인선을 발표한 게 끝이다. 최근 인사 관련 잡음과 의혹이 잇따르자 내부 검증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와 다른 잣대, 다른 눈높이로 바라보고 있어 인사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크고 작은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엊그제는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임명된 지 12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연세대 교수 시절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여성단체의 제보와 항의가 잇따랐다고 한다. 안보실 2차장은 외교·통일 분야를 전담하는 자리다. 앞서 고용 문제를 담당할 일자리수석도 내정 단계에서 철회됐다. 비서관·행정관 중에서도 구설에 오르는 인사가 있다. 다른 국무위원 후보 몇 명도 문제가 발견돼 재검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자리에 합당한 후보인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본다는 데야 뭐라 할 수는 없다. 걱정스러운 건 인사 지연으로 인한 업무 차질과 공직사회 동요다. 특히 국방·통일부 장관이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다 되도록 취임은커녕 내정자 발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실 내 외교정책, 통일정책비서관 등 1급 비서관 7명 중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외교안보 환경은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이다. 당장 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에 대한 협상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만반의 대비를 해도 무슨 변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은 전·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어정쩡하게 동거하면서 지뢰밭을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다. 업무 혼란이 커지고 위기 대응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국방부의 사드 보고 누락 파문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조차 없이 출범해 충분히 검증할 시간을 갖지 못한 고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부실 검증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검증은 철저히 하되 안보 분야의 인적 구성은 한시바삐 서둘러야 한다. 야당 역시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사소한 꼬투리 잡기 등으로 국정 발목 잡기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경향 사설] 대통령도 모르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가능한 일인가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의 국내 추가 반입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를 국내에 추가로 반입한 사실을 지난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때 누락했다. 군이 중대한 안보 사안을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모르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철저 조사를 지시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청와대는 25일 업무보고에서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의 반입만 보고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방부는 다음날인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4기의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전했지만,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규명해야겠지만 국방부가 업무보고에서 추가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간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국방부의 행태는 국민주권에 대한 폭거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부터 시민사회와 야권의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를 묵살한 채 밀어붙이더니 탄핵 이후에도 군사작전을 하듯이 야밤에 사드 장비 국내 반입, 경북 성주 배치 등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부재 중에 중대 안보 사안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정부 시기가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문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해 전 정부와 달리 국회 비준 등 재검토 방안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보고를 누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드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고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을 고려하면 보고 누락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설령 단순 실수라 해도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의 기강 해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실수를 가장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군 통수권자에게 항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제 문제이자 민감한 국내 쟁점이기도 하다. 외교, 안보, 경제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남북, 한·중, 한·미 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당연히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과도 연계해야 한다. 결코 소수의 군인들이 좌우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이 무겁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사드 기습 배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꼬이는 총리 인준 문제, 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위장전입 문제를 둘러싼 야당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인준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어제 공직자에 대한 새로운 검증 기준을 여야가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서도 야당은 당장 새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문재인 정부의 첫 총리 인준과 조각이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이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위장전입에 대한 야당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첫 인선에서부터 원칙을 어긴 점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은 총리 인준 및 조각과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이번 위장전입을 과거 사례와 똑같이 간주해 이 총리 후보자 인준을 지연하려는 야당의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전에 없이 조기에 공직 후보자의 인선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했으면 야당은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우 원내대표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주당이 청문회에서 과도하게 공격했다고 자성까지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사과했음에도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 공세를 펴는 것은 과도하다.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공직자들의 검증 기준을 여야가 함께 마련하자는 제안을 외면하는 태도도 인준 지연의 저의를 의심케 한다. 이 후보자 부인이 학교 배정의 편의를 위해 위장전입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재산상의 이익을 노린 위장전입과는 성격이 다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해외연수 등에 따른 것이어서 통상적인 위장전입으로 보기 어렵다. 시민의 시각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 총리 후보자의 인준이 지연되면서 후속 장차관 인선까지 늦춘다고 한다. 새 정부가 조각에서부터 삐걱대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답답하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해 총리 인준 문제를 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각당 대표에게 연락해 직접 총리 인준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 같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야당이 과거 자신들이 한 일은 까맣게 잊고 청문회 인준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인사청문의 기준을 세우는 데 즉각 동참해야 한다. 여야 모두 협치를 기대하는 시민들을 생각해야 한다.


[경향 사설] 홍준표의 친박 사면·일괄 복당은 악마의 거래다

자유한국당이 결국 탈당파의 복당과 친박계 핵심 인사들의 징계를 해제했다. 친박계가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을 반대하고 나서자 이들을 달래기 위해 친박계 실세 사면과 탈당파 복당을 맞바꾼 것이다. 이철우 사무총장은 “홍준표 후보의 특별지시에 따라 한국당의 대선 승리와 보수대통합을 위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상황에서 어떻게든 보수를 결집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하지만, 원칙과 명분은 물론 기본적인 염치와 체면조차 내동댕이쳤다고밖에 할 수 없다. 친박계는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이 한국당에 돌아오려 하자 “벼룩도 낯짝이 있어야지”라며 반발해 왔다. 탈당파들은 불과 석달 전 “이 당에선 친박계 청산을 기대할 수 없다”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당에 복귀하는 대가로 죽었던 친박계를 다시 살려낸 격이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우리 선거 사상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번 사례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추악한 ‘악마의 거래’로 기록될 것이다.

친박계 사면은 홍준표 후보가 지난 4일 경북 안동 유세 중 “국정농단 문제가 있었던 친박들을 다 용서하자. 모두 하나가 돼서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한국당은 이런 조치를 취하면서 당내 최고의결기구인 비상대책위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 이철우 사무총장은 “대선후보의 지시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과 같다. 선거에 도움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천박함에 기가 막힐 뿐이다. 홍 후보는 그동안 친박계 의원들에 대해 “양아치 같은 친박”이라며 독설을 퍼부은 바 있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막말이건 색깔론이건 가리지 않는 홍 후보지만 스스로 ‘양아치’에게 손을 내민 데 대해서는 뭐라 둘러댈 말이 있을까 싶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에 분당까지 겪자 외부에서 비대위원장을 영입하고 친박계 실세들을 징계했다. 보수의 가치를 담아내는 정당이 되겠다며 당명도 바꾸었다. 하지만 지금껏 간판을 바꿔 단 것이 전부였다. 친박계는 국정농단에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더 당당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도로 친박당’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당의 집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친박세력의 부활은 선거 이후 우리 정치에 심각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 추종 세력이 새 정부 개혁작업을 순순히 놔둘 리 없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경향 사설] 사드 도둑 배치하고 10억달러 내라는 트럼프의 적반하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배치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비용 10억달러(1조1300억원)를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미 이런 의사를 통보했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또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크게 나고 있다며 “끔찍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미국과 사드 배치 합의를 발표하면서 “사드 전개와 운용 유지 비용은 미군이 부담하고, 우리나라는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은 사드 배치의 전제인 미국 부담 원칙을 아무런 설명 없이 뒤집는 것이다. 또 한·미 FTA에 대해 재협상을 넘어 폐기까지 거론했다는 점은 충격이다.

사드를 기습 배치한 트럼프 정부가 이제는 사드 비용도 한국이 대라며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의 주권과 한국인의 자존심을 침해하고 무시하는 언동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후임을 뽑는 대선이 10여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사드 발언이 대선의 변수가 될 게 분명한데도 트럼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선 국면을 활용해 차기 정부를 압박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한국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무신경이 놀랍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이 한국을 속국인 것처럼 언급했다고 공개하는 무지를 보인 바도 있다. 한국을 존중하는 뜻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오만한 태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해칠 자유는 없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보호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고 한국의 사드 배치 비용 부담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독한 사실 왜곡이다. 그의 언급이 한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받아내거나 앞으로 있을지 모를 한·미 FTA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그래도 트럼프의 말은 부적절하다. 한·미 FTA는 한쪽 당사국이 다른 당사국에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한 날부터 180일 후에 종료되게 돼 있다. 협정을 종료하든 개정하든 절차에 따르면 될 일이다. 양국 정부가 합의하고 의회가 비준한 국가 간 합의를 폐기하겠다며 엄포를 놓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한국인들의 안보 불안을 이용하여 협상에서 더 얻어내겠다는 발상이라면 천박한 장사꾼의 수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파견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 것도 한국에서 돈을 뜯어내기 위한 쇼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동맹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장사로 이문을 남기려는 것은 동맹국을 대하는 정상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의 사드 비용 부담 전가 발언은 양국 간 이면합의 가능성을 포함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사드에 대한 합의 내용에 변함이 없다”면서 부인만 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 비용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언제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 다 밝혀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정부 때문에 사드 배치를 위해 한국이 무엇을 더 감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사드 언급으로 차기 정부가 사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사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전제 조건이 깨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에 앞서 차기 정부와 국회는 편법과 거짓으로 얼룩진 박 전 대통령과 황 권한대행의 사드 배치 경위를 규명하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핵 문제의 중심, 사드에서 평화적 해법으로

방한 중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어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면담한 뒤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적으로 달성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대해서는 배치 시점을 구체적으로 못 박지 않은 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 발언 모두 시사점이 크다.

펜스 부통령의 발언으로 미뤄 미국이 현시점에서 군사적 선택을 제외하겠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는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대북정책에서 제재와 압박 외에도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는 당장 북핵 문제의 해결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북한의 대응 수위를 낮출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대단히 중요하다. 평화적 방식이 아니라 대규모 파괴와 희생을 전제로 북핵을 해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국이 북핵 해결의 원칙으로 돌아온 것은 두 손 모아 환영할 일이다. 펜스 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언급도 눈길을 끈다. 최근 미국 일각에서 불거진 한국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 내 독자 핵개발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셈이다.

펜스 부통령이 사드 배치 방침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한 것은 “사드를 조속히 배치, 운영하기로 했다”는 황 대행의 발언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국 측을 배려해 두루뭉술하게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이지만 사드 조기 배치라는 미국의 입장이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한국 내 사드 신봉론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군사적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방어무기인 사드를 마치 북핵·미사일 해법의 전부인 것처럼 몰고가는 바람에 빚어진 소모적 사드 논란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1차적으로 북핵 위기 속에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무모한 도발을 중단하도록 경고하는 목적도 있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근 마무리한 대북정책의 기조를 한국에 통보하는 기회도 됐다. 정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맞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제재와 압박 기조만 고집할 게 아니라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접근방식과 세부적인 시행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경향 사설] 한반도 위기설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한반도 위기설까지 나돌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4월전쟁설’이나 ‘4월27일 북한 선제타격설’이 확산되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김정은 망명설’이 떠돌고 있다. 그제 금융가에서는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이 대피 계획을 가동했다’는 루머가 돌아 확인소동이 벌어졌다. 외신들도 위기설에 가담했다. 미국 NBC방송 <나이틀리 뉴스>의 간판 앵커인 레스터 홀트가 이달 초 비무장지대(DMZ) 등에서 생방송한 것이 위기감을 부추겼고, 중국과 영국 언론들은 북한 정권교체설을 흘리고 있다.

위기설 여파는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해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주가가 떨어졌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나라 전체가 심각한 상황으로 몰려갈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잠재울 필요가 있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시중에 나도는 위기설은 대부분 근거 없는 가짜뉴스들이다. 오는 27일 미국이 스텔스기를 보내 북한을 폭격한다는 4월전쟁설만 해도 일본의 한 블로거가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짜깁기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사전에 구체적인 폭격 일정을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김정은 망명설 역시 황당무계하다. 선제타격설의 진원지인 미국 칼빈슨함의 한반도 배치는 수리 중인 로널드레이건 항공모함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가짜뉴스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 탓이다. 북핵 문제를 담판 짓겠다던 미·중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짜뉴스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진원인 북·미 갈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손 놓고 있는 듯한 정부의 태도다. 폭주하는 위기설 속에서 국민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그 흔한 대국민담화 하나 내놓지 않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루머들이 불거질 때 그저 부인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짜뉴스들을 확실히 잠재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치권도 가만있을 때가 아니다. 국정공백 상태에서 황 대행 체제가 힘 있게 국정을 추진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안한 ‘5+5긴급안보비상회의’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제의한 ‘초당적 평화외교’를 주목한다. 또한 정치권은 위기설을 내세워 안보 불안 심리를 부추겨 대선에 악용하려는 움직임도 단호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문·안 헐뜯기 중단하고, 비전과 정책을 두고 토론하라

원내 5당의 대선후보가 모두 확정돼 대선 본선이 시작되자마자 각당과 후보들이 서로 헐뜯기 바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강 구도로 선거판이 재편되면서 상대방 공격이 부쩍 늘었다. 국민의당은 아침 회의 때마다 문 후보를 공격해 ‘문모닝’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어제는 안 후보의 조직폭력배 연루설이 제기됐다. 대선판이 헐뜯기 경연장인지, 국가의 미래를 이끌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장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후보들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 검증은 필수다. 최근 문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은 철저히 검증돼야 하며, 문 후보 측은 성실하게 해명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유력후보들에게는 권력의지만 있을 뿐 국가를 어떻게 이끌고 시민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담은 비전과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 대결은 제쳐두고 상대방 공격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북핵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한 대책은 분명하지 않고, 미래산업이라는 4차 산업혁명은 그 실천 방안이 모호하다. 어제 문 후보는 광양제철소와 목포신항, 광주 5·18민주묘역에 이어 목포대를 방문, 청년 일자리 해결 대책을 밝혔다. 안 후보는 그제 아침 지하철에서 출근길 시민을 만난 뒤 일산 킨텍스에서 전기차를 시승하며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언급했다. 이벤트성으로 시민을 향해 몇 마디 던지는 것이 정책 대결인 양 치부되고 있다. 정의당을 제외하고 각당과 후보 대변인이 하는 논평은 아예 상대방 비난 일색이다.

이번 대선은 다른 어느 때보다 정책 토론이 중요하다. 외교 안보와 경제, 민생 현안은 많은데 시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시민의 기대는 높은데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정치 지형에서 현안을 마주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펴나갈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토론을 통해 다져지고 검증된 정책이 없으면 곧바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 후보가 문 후보를 향해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노동·복지·생태·평화 세력의 정치연합을 제의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유권자를 자극하는 헐뜯기가 아닌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급조된 정책이 아니라 오랜 검토 끝에 마련한 지속가능한 정책을 놓고 유권자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후보들의 일방적인 정책 발표가 아니라 후보들이 내용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경쟁이 돼야 한다. 대선판을 주도하는 문·안 두 후보가 이런 정책 대결에 앞장서야 한다.


[경향 사설] ‘작계 5027’까지 해킹당한 군의 안보 무능

지난해 12월 군 전산망 해킹사건 이후 군 당국이 수사를 진행한 결과, 1급 군사기밀인 ‘작전계획 5027’도 함께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그젯밤 작계 5027이 해킹당했다는 KBS 보도가 나간 후 입장자료를 내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광범위하게 수사 중이며, 수사가 끝나는 대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작계는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전시 군사작전 계획이다. 여기에는 국면별, 상황별 한·미 양국의 군사 대응뿐 아니라 양국군 부대의 배치와 진격 경로 등 극비 정보가 들어있다. 일부만 적에 유출돼도 군 작전의 근간을 바꿔야 하는 군사 기밀자료가 실제로 유출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창군 이래 초유의 정보 유출을 대하는 국방부의 대응이 영 이상하다. 국방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미 양국군의 전쟁 계획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정보유출을 확인하고, 수사가 막바지라면서도 유출된 자료가 무엇인지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기밀 유출을 시인하면 북한이 작계 등 기밀자료를 확보했을 경우 그 내용이 진짜 기밀이라는 점을 확인해주는 셈이 된다는 이유도 댔다. 기밀이 유출된 것도 황당한데 북한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국방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당혹스럽다.

군 당국은 지난해 9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시도를 처음 발견해놓고도 한 달 반 동안 기밀 유출 사실을 인지하지조차 못했다. 군 당국은 군 전산망이 내·외부망으로 엄격히 분리돼 있기 때문에 작계 등이 들어있는 내부망은 안전하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군의 안보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국방부는 안보 현실이 엄중하다며 시민이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서두르면서 정작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1급 기밀도 지키지 못했다. 군의 무사안일과 직무태만, 비밀주의 등을 더 이상 방치·허용해서는 안된다.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방부는 반년 이상 수사를 진행해놓고도 해킹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이런 국방부의 능력과 의지로는 사이버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 국회나 다른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이달 6~7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두 정상 간 첫 대면인 만큼 글로벌·지역·양국 간 현안에 대한 해결책 모색에 관심이 쏠린다. 회담 테이블에는 북핵 문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화, 사이버안보 등 안보 현안과 미국의 중국 무역적자 해소,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국의 인프라 투자, 위안화 안정 등 경제 현안들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어느 것 하나 난제가 아닌 게 없다.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달 중순 중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대결보다는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상생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적 수사이긴 하지만 시 주석의 외교전략인 ‘신형대국관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회담을 낙관하는 관측도 있다. 경제 현안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변화가 그 근거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때 밝힌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중국 상품에 대한 45% 고율 관세 부과는 언급하지 않는 대신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나 위안화 안정에 대한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대신 트럼프의 미국 내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대한 약속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해온 만큼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양국은 북핵과 사드 문제 해법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왔다. 중국의 북핵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보여온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 가능성으로 중국을 압박했고, 중국은 사드 배치가 중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 위협 중단을 요구했다.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우리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번 회담이 트럼프 행정부 4년을 넘어 향후 50년간 미·중 관계를 결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을에는 지도체제 개편이 예정된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있어 국내 안정이 필수적이다. 미국으로서는 국내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국의 지원이 절실하다. 미래를 위해 양국 모두 타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회담이 플로리다의 태양이 작열하는 트럼프 소유 리조트에서 열리는 만큼 두 정상이 갈등 현안을 대화로 풀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경향 사설] 법과 원칙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라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신중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결정이 너무 늦어지면 불필요한 억측과 오해를 살 수 있다. 통상 피의자 소환은 수사의 마지막 단계에 이뤄지고, 소환 조사 뒤 2~3일 안에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처리가 결정된다. 박 전 대통령이 일반인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검찰이 그를 특별 대우할 이유는 없다.

일부 친박세력은 도주 우려가 없으므로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같은 재벌 총수나 고위 공직자처럼 신분이 확실하고 주거지가 일정한 사람은 죄를 저질러도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친박세력은 전직 대통령 구속으로 인한 국격 훼손을 우려한다. 하지만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헌법 절차에 따라 파면되고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평화적으로 비리 정권을 퇴출시킨 한국의 촛불집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무엇보다 특검과 검찰 수사에서 뇌물 수수와 직권남용, 강요 등의 범죄 증거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증거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검찰에 출석해서도 모든 책임을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피해자라고 강변했다. 게다가 안 전 수석이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그의 지시를 받아 범죄를 저지른 부하들은 이미 구속됐다. 종범이 구속됐는데 주범을 구속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헌재의 파면 결정도 승복하지 않고 지금껏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다.

파면 이후 일반인 신분임에도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지나친 예우를 해줬다. 자택 압수수색을 하지 않고, 그에게 굳이 신문 과정을 녹화해도 되느냐고 물었다가 거절당하자 녹화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앞으로 다른 범죄자들도 이런 식으로 조사할 것인지 묻고 싶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검찰은 그를 구속한 뒤 최씨나 안 전 수석 등과의 대질 등 강도 높은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박근혜 게이트’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자유한국당, 막말과 색깔론 아니면 대선 경쟁 안되나

자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눈뜨고 못 볼 지경으로 흐르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그제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어 자격 논란이 있다’는 지적에 “0.1%도 가능성이 없지만, 유죄가 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말로 한 게 아니라 세 차례나 같은 말을 했다. 그런가 하면 당내 1차 예비경선에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후보들이 다수 컷오프를 통과했다. 지지율 낮은 후보들의 출마로 선거판을 희화화한 것도 모자라 막말과 색깔론이 난무하는 막장 수준의 경선으로 시민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있다.

당내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홍 지사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1심에서 유죄, 2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은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유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선에 도전한 것 자체가 논란거리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의 죽음까지 조롱하며 표를 얻으려 하다니 그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비난이 커지자 어제는 “노 전 대통령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고, 저는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이라고 변명했다. 끝없는 궤변으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다른 후보와 당 역시 퇴행적 주장으로 선거판을 흐리기는 매한가지다. 비현실적이고도 위험천만한 핵무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가 하면 ‘충청 대망론’으로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색깔론 제기는 더 심해졌다. 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그제 논평에서 “민주당이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펼치고 있다”며 “친김정은 정책을 즉각 포기하라”고 주장했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대북 정책을 촉구하자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시민들이 정책 경쟁을 하기는커녕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경선을 주목할 리 없다.

대선은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를 맡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이다. ‘계엄령을 선포하라’거나 ‘군대는 일어나라’는 시대착오적 구호가 당내 선거판을 주도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이러니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장단을 맞춘 전직 국정원장까지 보수의 대표 후보를 자임하며 출마를 선언하는 촌극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세력이 보수의 본류를 자처하는 한 희망이 없다. 향후 보름간의 경선이 각당 대선후보를 결정한다. 보수진영은 합리적 보수세력을 바라는 시민의 뜻을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경향 사설] 북핵 포기해야 대화한다는 틸러슨 장관의 위험한 생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제 방한한 그는 기자회견에서 “20년간 북한과의 대화는 실패로 끝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핵포기 의지가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선 핵포기 후 대화’ 방침은 대화를 거부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화와 협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노력에 대한 틸러슨 장관의 인식과 평가는 위험하다. 과거 북·미 대화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나 6자회담에서의 9·19 성명 등 대화와 협상을 통해 여러 차례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맞은 바 있다. 이는 대화로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북·미 양측의 불성실한 합의 이행 태도, 미국의 반북 정권 등장으로 일을 그르쳤을 뿐 대화의 효율성은 충분히 확인됐다. 오히려 대화가 없는 기간에 북한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됐다. 전임 오바마 정부 역시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문제를 키웠다. 틸러슨 장관이 한국의 차기 정권이 대화를 중시하는 야권에서 나올 것으로 보고 사전에 대못을 박으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미국은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지만 대화를 포기하면 중국의 협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을 중시한다.

틸러슨 장관은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고 대북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힘으로 북한을 억눌러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로서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의 발언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과거 정책에 대한 성찰과 주변국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틸러슨 장관의 방한이 처음인 데다 트럼프 정부가 대북정책을 확정하지 않았고, 한국은 최고 리더십이 공백인 상태여서 그의 방한에도 불구하고 현안에 대한 속깊은 얘기를 나누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의 일본·한국·중국 순방은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틸러슨 장관의 방한이 실현가능하고 생산적인 북핵 해결책 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양국 관계와 북핵 해결 노력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향 사설] 친박은 시민을 섬길 것인가, 범죄 피의자를 섬길 것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선 친박계 인사들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서청원·최경환(총괄), 윤상현·조원진·이우현(정무), 김진태(법률), 민경욱(언론), 박대출(수행) 의원 등 8명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역할 분담까지 마쳤다. 친박계 의원들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일당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밑동부터 썩어가고 있는 동안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며 온갖 권세를 누려왔던 세력이다. 국정의 주축이었던 이들만 정신차렸더라도 작금의 국정 붕괴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뼈저린 반성과 참회는커녕 법치를 부정하며 대결과 갈등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들 중 김진태 의원은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14일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아예 대놓고 헌법과 민주주의, 시민을 조롱한 격이다.

이들은 과거 당 안팎의 숱한 친박계 청산 요구 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과 골수 지지층을 등에 업고 ‘좀비’처럼 살아남은 바 있다. 이번에도 박 전 대통령을 여왕처럼 받들고 빌붙는 것은 그의 한 줌 영향력에 기대 끝까지 정치생명을 연장해보겠다는 의도가 뻔하다. 나라가 어찌 되든 나부터 살고 보겠다는 심사다. 이런 작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지도부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쇄신쇼’나 벌이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세금으로 녹을 받는 의원이 섬겨야 하는 대상은 시민이지 파면당한 대통령이 아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헌법이 파면한 중대 범죄 피의자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것이야말로 국기문란이다. 삼성동 보좌팀을 구성한 의원 8명은 모두 지역구 출신이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 86%는 헌재 결정이 옳다고 했고, 92%는 그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인가. 이제는 그 지역 주민들이 따져 물어야 한다.


[경향 사설] 이 와중에 사드 배치로 ‘안보 장사’ 나선 보수·여당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범여권이 연일 안보 이슈를 내세우며 야권,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엊그제는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50여명의 의원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모호한 입장 문재인 대선후보 자격 없다’는 등의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참으로 낯뜨겁다.

사드 부지인 성주 골프장은 철조망만 쳐놓았을 뿐 부지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은 맨땅 상태다. 그런데도 한·미 군당국은 기습적으로 사드 장비를 들여왔다. 집을 짓기도 전에 가구부터 들여온 격이다. 사드는 수송기로 하루면 옮겨올 수 있는 장비다. 굳이 배치 몇 달 전부터 창고에 갖다 놓을 이유가 없다. 애초 올해 12월로 예상됐던 사드 배치를 급작스럽게 앞당긴 것은 누가 봐도 수상하다. 이렇게 서두른 속셈은 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것이요, 조기 대선을 앞에 두고 정략적으로 활용해보겠다는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시민 안전과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이렇게 함부로 다뤄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세력은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북한과 중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고 보고 문 전 대표에게 ‘친북·친중’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인용되더라도 안보 이슈로 마지막 뒤집기를 시도해보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보수세력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안보 장사를 펼쳐왔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북대치와 긴장은 수구세력을 지탱해온 오랜 버팀목이었다. 과거 선거 때마다 시민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여론을 호도하고 국면을 뒤집으려 했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보수세력이 북한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며 노골적인 안보 프레임 짜기에 나선 것을 보면 또 못된 병이 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외교·안보 난국은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중국의 보복조치가 노골화되는 시점에 사드 기습 배치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한국 기업이 사드 보복 조치로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별 무대책이다.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이런 판국에 집권당이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무슨 경사라도 난 양 안보를 끌어들여 상대 후보 공격의 소재로 삼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향 사설] 대통령 탄핵 이유 분명하게 드러낸 특검 수사 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등 5개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이 밝힌 기존 8개 혐의를 더하면 총 13개에 이른다.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그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훼손 등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특검 수사의 최대 성과는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특검은 433억원의 성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공권력과 국가 기구를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원활한 합병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대가라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핵심인 이동흡 변호사는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법원은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대통령 등이 시킨 대로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을 동원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뇌물죄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죄를 훨씬 무겁게 묻는다. 박 대통령은 삼성 뇌물만으로 탄핵감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연설문이나 인사 자료를 유출해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검 수사로 더 많은 범죄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의 마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외교부까지 뻗쳤다. 최씨는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내정된 인사까지 밀어내고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와 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을 앉혔다. 청와대 의료시스템이 붕괴 상태였던 것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최씨 소개로 불법 의료업자들로부터 시술을 받고 공식 자문의가 아닌 김영재씨로부터 ‘비선 진료’를 받았다. 일급 기밀인 대통령의 혈액 등 건강 관련 정보가 새나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관여하고, 최씨 민원을 받아 KEB하나은행의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도 확인됐다. 청와대 지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극우 단체에 지원해 ‘관제 데모’를 유도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이렇게 남용했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민낯도 드러났다. 황 대행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이 이뤄지도록 특검팀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거꾸로 나왔다. 특검의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를 공표해야 했다. 그래야 특검이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행은 알량한 법 지식을 이용해 결정을 미루면서 국회와 특검을 능멸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황 대행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특검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주말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덕분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을 뿌리뽑지 않고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특검 수사팀의 의지도 작용했다. 청와대는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의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헌재가 판단할 일이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어제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75.7%와 73.3%다. 탄핵심판 선고가 일주일 안으로 다가왔다. 헌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주기 바란다.


[경향 사설] 중국은 사드 보복 몰아치는데 정부는 무엇 하고 있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 확정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직접적 압박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가 한국 관광상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관련 기업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껑충 뛰면서 금융시장까지 휘청였다.

중국 정부의 도를 넘은 보복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드 배치가 몰고 올 경제적 파장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수방관해온 한국 정부의 태도도 납득하기 힘들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제 파장이 커지자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대책을 적시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그렇지 사실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대응은 사드 배치 결정단계에서부터 안일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중국이 경제보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자 “몇가지 경우에 대해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롯데의 중국 사업장이 세무조사를 받고, 한국산 화장품이 수입 불허되고, 한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을 때도 “사드 보복으로 보기 어렵다”며 애써 눈을 감아왔다.

보복이 첨예화된 지금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비상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소통으로 제재를 약화시키겠다는 발상도 순진한 생각이다. 중국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비관세장벽으로 상대국을 괴롭혀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나마 대기업은 버틸 체력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계약 파기, 통관 지연 등으로 쓰러진 중소기업이 부지기수이다. 중국의 관광 중단 조치가 가시화되면 항공·여행·면세점 등 관련 업계 피해가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기업들은 사드 배치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부담을 떠넘겼으면 외풍을 막아주고 위험요인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저 참고 견디는 방법 외엔 없다는 태도는 기업과 시민들에게 안보의 희생양이 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사드 후폭풍이 더 커진 데에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가 큰 탓도 있지만 산업 다변화를 제대로 추진 못한 정부 책임도 크다. 피해 최소화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경향 사설] 위안부 피해자 두고 3·1절 기념사 할 자격있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는 데 연설의 3분의 1 가량을 할애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언급은 두 문장밖에 없었다. 황 권한대행은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며 “피해자 분들이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고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언급은 일절 없었다. 특히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 사항을 실천하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황 권한대행의 연설은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법적 책임을 요구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또 다른 굴욕과 상처를 안길 수도 있다. 이처럼 얕은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앞에서 3·1절 기념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며 위로금 1억원 수령을 종용한 것밖에 없다. 그나마도 화해·치유재단은 한국 정부가 “전액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쓰겠다”고 공언했던 일본 정부의 출연금(10억엔·약 107억원)에서 재단 운영비를 사용하기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화해·치유재단 이사회는 올해 필요한 재단 운영비 5억3500만원을 일본 정부 출연금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국회가 재단을 청산하라는 취지에서 재단 운영비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이사회를 열어 일본 정부 출연금에서 운영비를 사용하기로 의결했다니 어이가 없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에서 운영비를 빼쓰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화해·치유재단은 청산돼야 마땅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통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밖에 없다.


[경향 사설] 헌재도 특검도 안 나가겠다니 이 나라 대통령 맞나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 최종변론에 출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대리인단이 헌재에 박 대통령이 나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면서 “대리인단도 기자회견 같은 것을 할 예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다. 결국 박 대통령에게 헌재 출석 카드는 탄핵심판의 시간을 끌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헌재는 물론 시민과 국회도 박 대통령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셈이다.

헌재 불출석 방침으로 유추해보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켕기는 게 많은 모양이다. 떳떳하다면 헌재 재판관들과 국회 소추위원 측의 질문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헌재 변론은 말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헌재 법정에 나와 최후진술만 하고 퇴장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하고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법에 명시된 대로 ‘출석 시 질문을 피해갈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순실씨 공범으로 뇌물수수 피의자인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도 거부했다. 지난해 11월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눈물로 대국민사과를 했지만 검찰 수사가 예상 밖으로 강도 높게 진행되자 곧바로 검찰을 비난하며 말을 바꿨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대면조사 일정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받지 않았다. 최씨와 무자격 의료진에게는 무시로 개방한 청와대를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특검 수사진은 물리력까지 동원해 막았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이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수사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특검 수사는 내일로 끝이다. 연장 지지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결정권을 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금까지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국정농단의 부역자인 황 대행이 수사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박 대통령과 황 대행 등은 일말의 책임감이나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 국정공백 장기화로 한국 사회 전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정농단 세력을 단죄하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민주주의를 구할 곳은 헌재밖에 없다. 헌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해주기 바란다.


[경향 사설] 탄핵 직전 사퇴설 흘리며 막장극 펼치는 박 대통령·여당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막장극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종 변론기일이 27일로 확정되면서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오자 박 대통령 측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도 헌재에 직접 출석할지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박 대통령은 헌재에서 발언만 하고 심문에는 응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다. 헌재에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는 싶은데 공개 석상에서 홀로 소추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할 자신이 없으니 그런 상황을 피해보려는 것이다. 특별검사의 수사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탄핵심판에서까지 특권을 요구하며 끝까지 책임을 모면할 틈을 노리고 있다. 이건 대통령의 대응이라고 할 수 없는 떼쓰기다.

박 대통령의 막무가내 대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헌재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장외에서 여론전을 펴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자유한국당과 함께 자진사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말이 돈다. 이대로 탄핵당할 바에야 자진사퇴할 테니 탄핵은 각하하고 형사책임은 면제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는 자진사퇴설을 부인했다. 책임의식도, 자존심도 없는 비열한 행동이다.

자유한국당과 박 대통령 법률 대리인들의 행태는 막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박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는 그제 헌재 변론에서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하지 않으면 시가전이 벌어지고,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일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을 위해 이토록 비이성적·반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데 경악할 뿐이다. 어제는 김진태·곽상도 등 법률가 출신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재판이 박 대통령 측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탄핵심판 결과 불복을 시사했다. 지지자들의 맹목적 충성을 자기 보신에 이용하는 박 대통령의 행태에 할 말이 없다.

박 대통령 측의 대응을 보면 헌재 결정이 나오는 순간까지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혼란과 국가 분열을 부추기는 한이 있더라도 탄핵을 모면하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하지만 탄핵열차는 멈출 수 없다. 탄핵 전 자진사퇴도 명분이 없다. 박 대통령의 태도로 볼 때 자진사퇴의 길을 터주면 죄가 없다고 주장할 게 틀림없다. 탄핵 후 사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일말의 책임의식이라도 남아 있다면 시민 앞에 단 한번이라도 진실한 모습을 보이라. 박 대통령을 뽑은 시민들이 더 이상 자괴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겠나.


[경향 사설] 헌재의 박 대통령 측 생떼 차단, 이젠 조기 탄핵만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을 늦추기 위해 온갖 꼼수와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헌재는 3월13일 이전 선고 방침을 재확인했다. 법과 원칙에 따른 당연한 판단이다. 헌재는 어제 열린 15차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이 요구한 고영태씨 녹취파일 증거 채택 등을 거부하고, 박 대통령의 최후진술 여부를 22일 전까지 확정하라고 했다. 또 박 대통령이 출석할 경우 재판관이나 국회 소추위원 측이 신문할 수 있고, 박 대통령 출석도 헌재가 정한 날짜에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탄핵심판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어떤 관계인가가 핵심인데 고씨 녹취파일은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녹취파일에는 오히려 박 대통령이 무능했고 최씨의 국정농단이 비일비재했다는 정황이 생생하게 담겨 박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그런데도 이를 증거로 채택해 법정에서 공개하려고 하는 이유는 시간을 끌고 논점을 흐리겠다는 것 외에는 없다. 박 대통령의 헌재 출석도 오는 24일로 정해진 최종변론 일정을 미뤄 선고를 늦추겠다는 불순한 의도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출석하겠다면 말릴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재판관들이나 국회 소추위원들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끝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법 49조는 “소추위원은 심판의 변론에서 피청구인을 신문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유불리를 떠나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고 최종변론을 3월로 연기해 달라는 등 생떼를 썼다. 자진해서 받겠다고 했던 특검 조사도 응하지 않았다. 국정 공백 장기화로 혼란이 커지고 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린 지 오래다. 오로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퇴임하는 3월13일 이후로 선고 시점을 늦춤으로써 ‘재판관 7인 체제’를 핑계 삼아 헌재를 무력화할 궁리만 하고 있다. 법정에서 태극기를 흔들어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려는 속셈을 드러낸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 선고 전에 ‘전원 사퇴’ 같은 꼼수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 헌재의 공정성이나 객관성,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은 이미 충분히 확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론은 총 7회에 불과했지만 어제까지 15차례 변론을 진행했다. 박 대통령이 신청한 증인도 대부분 받아줬다. 헌재는 선고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겨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정리해주기 바란다.


[경향 사설] 특검 연장·구체제 청산 위한 야 4당의 공조 주목한다

야 4당 원내대표가 19일 특검 연장과 개혁법안의 2월 국회 처리에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 삼성 이외 다른 대기업 수사,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법처리 등을 감안하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은 당연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끝내 특검 연장을 거부한다면 법 개정을 해서라도 수사가 중단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야당은 또 2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환경노동위원장의 납득할 만한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국회를 보이콧한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받아들여 오늘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국회가 재개된 것은 다행이다. 이날 야 4당 회동은 바른정당이 여당에서 갈라져 나온 이후 야당 공조 대열에 처음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른정당은 그간 선거연령 18세 하향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개혁법안들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여 실망을 안겨준 바 있다. 이제라도 개혁입법에 의지를 보인 것은 반가운 일이다.

2월 국회도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되면 3월부터는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 차분하게 개혁법안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처리하지 못하면 상당 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 촛불민심은 대통령 책임을 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국회에서 법과 제도로 완성할 수밖에 없다.

우려스러운 쪽은 여당이다. 친박계만 남은 자유한국당은 반성은커녕 새 출발을 다짐하고도 개혁입법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특검 수사기간 연장에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문제가 다시 열기로 한 2월 국회에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국가 리더십은 4개월 이상 공백상태다. 걸핏하면 민생, 안보위기를 외치면서 정작 민생·개혁 국회를 외면하는 건 집권여당의 태도라 할 수 없다. 이제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야 3당(172석)에 바른정당이 힘을 합하면 의원 200명 이상으로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없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여야 합의 없이도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야 4당은 대승적 입법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구체적인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경향 사설] 삼성 이대로 갈 것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수사에 재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큰 부담”(경총)이라고 했다. “국내 최고 기업의 리더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에 상실감을 느낀다” “맥빠지는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재계의 이런 반응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정경유착 근절과 재계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 다수의 생각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뇌물·횡령 등 이 부회장의 혐의가 말해주듯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삼성과 권력 간 정경유착에 기인한 것이다. 삼성은 권력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넸다고 하지만 특검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등 경영권 승계 전반에 걸쳐 이 부회장이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3대째 경영세습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차례 불법 의혹이 제기됐지만 한번도 총수가 구속된 적이 없었다. 권력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문제를 덮어주고, 기득권 집단이 이를 비호해 온 결과였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추상같던 법이 삼성에만은 예외였던 셈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수사는 이 같은 비정상이 묵인해줄 수 있는 한계점에 다다랐고, 따라서 삼성도 법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삼성은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각에서 경영위기론이 나오는 모양이지만 이는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속으로 일시적 혼란은 있겠지만 경영 마비 운운하는 것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그동안 총수 구속으로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거나 총수 석방으로 경제가 회생한 전례도 없다. 총수 유고로 삼성의 쇄신작업은 물론 인사·채용도 멈출 것이라는 얘기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부회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최순실 일당에 대한 지원이 이 부회장의 승인 아래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특검 조사를 통해 몇몇 재벌들은 출연 등의 대가로 사면 또는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물증과 진술들이 나온 터다. 이 부회장 구속수사는 총수들에 대한 과잉보호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뜯어고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재벌을 둘러싼 기득권 집단의 공고한 카르텔도 무너져야 한다.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국 경제도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 사설] 일본, 한·일관계 끝을 보려고 하는가

일본 문부과학성이 어제 일본의 독도 영유권 교육을 의무화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극우·보수화로 치닫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초·중학생들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영토 왜곡 교육을 대폭 강화키로 한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망언이다.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문부성이 고시한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은 소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과목에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현행 지도요령은 쿠릴 열도 등 일본의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도록 하고 있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학습지도요령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학교교육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반드시 교과서에 담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의 미래 세대 전체가 왜곡된 교육으로 인해 독도에 대한 터무니없는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게 됐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개정안 고시가 탄핵 정국과 북핵 문제의 중첩으로 곤경을 겪는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둔 치밀하고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점에서 더욱 괘씸하다. 사안의 심각성은 물론 상대국가의 어려운 처지를 틈타 밀린 숙제 하듯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는 일본 특유의 약삭빠른 처신에 분노가 치민다. 이러고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일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반발해 지난달 귀국한 주한 일본대사가 한 달 넘게 귀임하지 않으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양국관계는 당분간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일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한·미·일 공조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틀림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제재 체제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모두 일본의 책임이다.

외교부의 소극적 대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변인 성명이 아닌 논평을 낸 점이나, 즉각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주일 한국대사 귀국 등 강경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사안의 심각성과 국내 여론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악화된 경제 사정으로 인해 일본과의 안보 및 경제협력이 절실한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독도 분쟁화’를 노리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영토의 문제는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위험수위 가짜뉴스 생산·소비 모두 제재해야

대통령 탄핵심판 국면에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탄핵심판과 관련된 인사를 겨냥해 출처도 없이 만들어지는 가짜뉴스가 대량 유통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급속하게 전파되는 위력 때문에 그 폐해는 과거 은밀하게 나돌던 유언비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 서석구 변호사는 지난달 5일 헌법재판소 변론에서 북한 노동신문 기사를 근거로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에 놀아났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기사는 가짜뉴스였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1999년 여기자를 성추행해 징계처분을 받았다거나, 중국이 한국 내 유학생 6만명을 촛불집회에 몰래 참여시켰다는 뉴스도 있다. 시몬 라트나 미국 라칸 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이 “한국의 탄핵 흐름이 괴이하고 음험하다”고 말했다거나, 영국 아우구스트그라드 대학교 아크튜러스 멩스크 교수가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비판했다는 소식도 있다. 시몬은 일본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 아크튜러스는 게임 ‘스타크래프트’ 등장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비자금이 1경원이 넘는다거나 금괴 200t을 가졌다는 뉴스가 확산되고 있다.

상식에 비춰보면 허무맹랑하지만, 가짜뉴스가 겨냥한 인사를 미워하려는 이들에게는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해 가짜뉴스를 활용하는 세력도 엄존한다. ‘친박근혜’ 성향의 단체들과 온라인 사이트가 근원이다. 최근 서울광장에서 열린 탄핵반대 집회에 살포된 ‘노컷일베’라는 인쇄물에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탄핵반대 집회 사진 위에 “서울시장의 탄식, ‘차라리 관광명소인 스케이트장이나 개장할 걸…’ ”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나, 박원순 시장은 이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가짜뉴스는 더욱 그럴듯한 형식과 내용으로 나돌며 여론을 왜곡할 것으로 보인다. 그 위력은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어제 “악의를 띠고 특정 개인에 대해 의도적·반복적으로 가짜뉴스를 올리는 행위는 내사, 수사 대상”이라며 “그런 정도가 아니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선거관리위원회와 협의해 차단·삭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황 대행, 불출마 선언 못하는 합당한 이유 대보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어제도 국회에서 난타당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로부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무수한 질문을 받았다. 황 대행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공직자로서, 국정의 조기 안정화를 위해,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국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회가 도와달라”는 것이다. 뻔하고 진부한 답변에 농락당하는 것 같아 모욕감을 느낀다는 시민도 많다.

황 대행의 답변 태도를 보면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동문서답이나 미꾸라지식 답변은 보통이다. 어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면제에 대해 물으려는 이상돈 의원의 질문을 지레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착각해 “저에게 질문할 게 있으면 곧바로 질문하라. 내가 군대에 안 간 게 아니고 아파서 못 갔다”고 화를 내 과잉대응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대독 총리나 의전 총리가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온다. 답변 내용은 갈수록 상식과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황 대행은 보수단체들의 관제 데모 의혹에 대한 질문에 “내가 아는 한 관제 데모는 없다”고 대답했다. 특검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범법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특검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특검 기간 연장에 대한 답변 도중 “특검은 (수사 기간 연장에 앞서) 남은 기간 수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20여일 남았는데 미리 연장을 주장하는 것은) 앞으로 열심히 수사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그가 할 말이 아니다.

황 대행은 “ ‘대통령 코스프레’라는 말씀은 정말 유감스럽고 안타까운 말씀”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그의 의도를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출마하겠다는 속셈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시민에게 불편을 끼칠 정도로 자신에 대한 의전은 강화하면서 복지시설 방문 행사 등은 빼놓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도 대선 행보가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국민 통합의 자세로 나서도 국정을 안정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처신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는 게 진정 사심 없는 국정 챙기기인지 황 대행은 자문해야 한다. 이젠 국민 앞에 출마 여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경향 사설] 용납 못할 박근혜·새누리·수구집단의 음모론과 생떼쓰기

박근혜 대통령과 박사모 등 친박, 수구 단체들이 연일 촛불집회 폄훼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추가 증인을 채택, 2월 내 탄핵 결정이 사실상 무산되자 이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과 추종자들은 케케묵은 종북몰이에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앞세워 촛불민심을 뒤집으려 애쓰고 있다. 박 대통령을 전제군주 떠받들 듯 추종하는 모습은 민주시민의 태도와도 거리가 멀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만큼 비상식적인 주장은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지연 몽니와 수사 방해도 도를 넘었다. 국정이 불법, 편법으로 얼룩진 증거가 특검과 헌재에서 쏟아지고 있는데도 오불관언이다. 그래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등 핵심 측근의 입을 통해 혐의가 드러나자 이제는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특검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수도 없이 공언해놓고 어제는 수사 일정이 알려졌다는 것을 핑계 삼아 합의한 대면조사 일정도 취소했다.
반면 탄핵심판과 특검 수사과정에서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변변한 해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친박세력의 보호를 받지 못할까봐 새누리당 탈당도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행동 가운데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자격 미달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게 하나도 없다.

새누리당 역시 촛불민심에 반성하는 듯하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 등 징계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당 비상대책위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이인제 전 최고위원 등 당의 주요 인사들까지 수구단체의 집회에 나가 시대착오적인 대중 선동을 하고 있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새누리당이 극우단체에 기대려는 모습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전 지사는 어제 대구 기자간담회에서 “나의 태극기집회 참석은 당의 의사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추종세력, 새누리당의 생떼쓰기가 점입가경이다.

박 대통령이 헌재 심판의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으로 법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과 추종자들은 헌재 심판과 특검 수사 방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헌재는 신속한 심판과 결정으로 무너진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특검 역시 철저한 수사로 정의를 세워야 한다. 비상식은 결코 상식을 이길 수 없음을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향 사설]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휴대폰 증거인멸이 노리는 것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압수수색 불가 방침을 밝혔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등은 어제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해선 기존 관례에 따라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관례는 지난해 10월 검찰 압수수색 거부와 12월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청와대 현장조사 거부 등을 일컬은 것으로 보인다. 특검의 수사를 방해하고 지연시키겠다는 노골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의 허언과 식언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 박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압수수색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궁지에 몰린 탓인지 박 대통령은 요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고, 재판부에도 반발하는 등 막무가내로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1항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문구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다. 청와대가 보안을 요하는 장소인 것은 맞다. 그러나 특검은 청와대 내부 정보를 북한에 넘겨주는 간첩이 아니다. 최순실씨와 무자격 의료업자들은 이런 보안 시설에 지난 3년간 수시로 들락거렸다.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는 위법 소지도 있다. 같은 법 같은 조 2항은 “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는 청와대 압수수색으로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관련자들의 비리를 명확하게 밝히고, 헌재가 신속하면서도 공정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

이미 청와대는 많은 범죄 증거를 인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이영선 행정관 등은 최순실씨와 연락하기 위해 만든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폐기하거나 내부 자료를 삭제했다. 검찰이 확보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휴대폰도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이 전무한 깡통폰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복마전의 주무대인 청와대에 관한 조사는 필수적이다. 특검은 관련법에 따라 비서실장실, 민정수석실, 의무실, 경호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압수수색은 특검이 사법부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하는 정당한 법 집행이다. 만에 하나 경호실 등이 무력으로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막는다면 그 자체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경향 사설] 시대착오적인 청와대·삼성·극우단체의 3각 커넥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극우 단체 10여곳의 ‘관제 데모’에 삼성 등 재벌이 기획 단계부터 적극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의 고위 임원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마련한 회의에 직접 참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동안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댔다며 피해자를 자처했는데 이번 청와대, 극우 단체의 3각 커넥션 의혹에는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에 극우 단체들이 ‘경제 위기’ 운운하며 강하게 반발한 것도 지금 보니 이해가 된다.

특검 등에 따르면 청와대와 재벌, 극우 단체의 유착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정무수석실 주도로 관제 데모 기획 회의가 열렸다. 삼성 측은 부인하지만, 회의에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외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무 등이 참석해 집회 주제와 일시, 장소, 지원 단체, 지원 금액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에서만 70억원가량이 건네졌다. 이 돈으로 극우 단체들은 박근혜 정권을 위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과 세월호 유족 비난 집회를 열었고, 삼성 등을 위해 재벌개혁 반대와 노동법 개정 찬성 구호 등을 외쳤다. 노인을 앞세운 극우 단체 시위는 막무가내였고, 박근혜 정부하에서 불가침의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뒤를 봐주는 정권과 재벌을 믿고 그랬던 것 같다. 검찰도 손을 놨다. 작년 초 어버이연합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전경련 자금을 우회적으로 지원받아 관제 데모를 벌인 단서를 확보했지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권력과 금권을 이용한 여론 조작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역시 이들 극우 단체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 일당은 통상 2만원이지만 추운 날은 6만원,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15만원을 준다는 관계자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방패막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눈 날리고,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시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고생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좀 미어지는 심정입니다”라고 했다. 재벌 돈으로 관제 데모를 열고 이를 건전한 여론인 양 호도했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경향 사설] ‘3월 중 탄핵 결정’ 박한철 소장 발언 당연하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오는 3월13일 전까지 결론 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소장이 이달 말 물러나고, 이정미 재판관이 3월13일 퇴임 예정이므로 그 전에 탄핵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의미다. 후임 소장과 재판관을 선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박 소장이 최선의 판단을 했다고 본다. 박 소장 발언으로 대선 등 주요 정치 일정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 또는 각하하면 박 대통령은 바로 그 순간 직무에 복귀하고 대선은 기존대로 12월에 치러지게 된다. 반면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인용되면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한 헌법에 따라 늦어도 5월 초순에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

박 대통령 측은 ‘3월13일 전 결론’에 반발하고 있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 측은 박 소장 발언이 국회 권성동 소추위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말한 ‘3월 선고’와 유사하다며 “심판 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재가 국회와 짜고 3월 결론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인데, 헌재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증인 신청 등 각종 절차에서 지금까지의 재판 과정은 박 대통령 측에 유리했으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 측은 “중대 결심” 운운하며 대리인단 전원 사퇴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재판 지연을 위한 꼼수 가능성이 농후하다. 탄핵심판은 당사자들이 반드시 대리인을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 대리인단이 모두 사퇴하면 새로운 대리인단 선임까지 시간이 걸린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 소장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말이 안된다. 권한대행의 직무범위는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에 그쳐야 한다. 특히나 법무장관 등을 지낸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묵인·방조해 현재의 사태를 야기한 책임이 있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재판장을 임명하겠다는 셈인데 어디 이게 가당한 일인가.

재판의 공정성과 신속성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노력하면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권자인 시민 입장에서는 ‘3월 결론’도 늦은 감이 있다. 박 대통령 측이 협조했다면 박 소장 퇴임 전 9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여한 상태에서 결론을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음모를 분쇄하고, 국정 혼란과 헌정 중단 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주었으면 한다.


[경향 사설] 언제까지 정치공학인가, 이젠 정책 논쟁 하자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속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앞선 주자는 대세론을 주장하고, 후발 주자들은 ‘제3지대’ 연합이니 야권 공동경선 등을 제안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 등 젊은 후보들은 세대교체와 정책 중심의 경쟁을 외치지만 정국을 주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슈퍼우먼방지법’ 공약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육아휴직 3년 보장법’, 이재명 성남시장의 기본소득 정책 등도 이목은 끌었지만 의제로 떠오르진 못했다. 오히려 유력한 대선주자들일수록 특정 지역에 한정된 약속들만 내놓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해법이나 국가 미래를 좌우할 정책 제안보다는 유리한 경쟁 구도 만들기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대선은 정당과 후보들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약으로 제시해 대결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공약의 기조는 당면한 안보·경제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벌과 검찰, 언론 개혁 등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급선무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와 교육 정상화, 일자리 창출, 복지 강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해법도 필요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돌발 상황에서 치러진다. 촛불민심으로 표출된 시민들의 요구도 대통령이나 집권 정당을 바꾸자는 수준을 넘어섰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넘어설 대안을 구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한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후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 검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특정 후보가 정책 토론을 회피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이 뭔지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기표소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조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공약과 도덕성, 자질을 검증하지 못하면 또다시 실패한 정권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졸속으로 만들어 낸 공약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그 길을 피하기 어렵다. 공약 없이 이미지로 선택받겠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은 없다. 후보들 간 활발한 정책 경쟁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대통령·비서실의 대포폰, 청와대는 범죄 모의 집단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들이 불법적인 제3자 명의 휴대전화(일명 차명·대포폰)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청을 우려해서 썼다지만, 불법도 서슴지 않아야 할 정도로 뒤가 구린 내용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의혹만 확인시켜준다. 청와대가 대포폰을 사용하는 범죄 모의 집단이라는 것을 인증한 셈이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그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대통령도 차명폰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우리 정치의 좀 아픈 부분인데, 역대 정권에서 도·감청 논란이 많지 않았느냐. 대통령과 통화하고 이런 부분이 도청 위험성이 있을 수 있어 저희 이름으로 사용된 걸 통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통화할 때 업무폰과 차명폰 둘 다 썼고 그중 차명폰을 사용할 때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남의 이름을 빌린 차명폰과 명의를 도용한 대포폰을 구분하나, 모두 불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자금을 제공 또는 융통해 주는 조건으로 다른 사람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지난해 11월1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가 사용한 6대의 대포폰 중 하나를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이 대포폰을 사용했다면 국정농단을 은폐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이라고 부인했지만, 2개월여 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카카오톡 등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 및 통신감청 건수가 급증한 사실은 국정감사 등에서 수차례 드러났다. 대화 내용이 수사당국에 제출될 것을 우려한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해외 소셜 미디어 ‘텔레그램’으로 대거 망명하는 지경에 이르자 카카오톡은 2014년 10월 수사기관 감청 요청에 불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토록 통신의 자유를 억압해놓고 자신들은 조직 폭력배나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단처럼 대포폰을 사용한 것이다. 권력을 쥐고도 도청을 우려했다는 주장도 의아하지만, 백번 양보해 실제 도청을 우려했다면 도·감청 방지 기능을 갖춘 비화(秘話)폰을 사용하면 될 것이다. 청와대 사람들과 주변 인물들이 이를 마다한 것은 결국 불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범죄 모의를 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달리 할 말이 없게 됐다. 불법과 비선이 합법과 공식 시스템 위에서 작동했다는 확증이다. 이제 박근혜 정권은 5년간 위임받은 권력을 애당초 정당하게 쓸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받는 상황까지 왔다.


[경향 사설] 다보스포럼이 세계에 던진 화두 불평등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어제 스위스에서 개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각국의 지도자, 관료, 기업가 등이 참석해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주제로 인공지능의 발전 등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해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주목되는 테마는 단연 불평등이다. 포럼은 향후 10년간 지구촌을 위협할 요인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지목했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이 제출한 ‘99%를 위한 경제’ 보고서는 의미심장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우선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갑부 8명의 재산이 4260억달러(약 503조원)로, 전 세계 소득 하위 50% 인구인 36억명의 재산의 합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한국도 이건희·이재용 부자 등 갑부 18명이 소득 하위 30%와 비슷한 수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위 10%의 연간 소득 증가액은 3달러지만 상위 10%는 1만1800달러씩 불어났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 연봉은 방글라데시 노동자 1만명이 버는 것과 같다” 등 보고서 곳곳에는 불평등의 실체가 담겨 있다. 여성임금이 너무 낮아 지금 추세라면 남녀 급여가 같아지는 데 170여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익은 자본가에게 집중되고, 하위 계층에는 쥐꼬리만큼만 분배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수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 같은 성장론자들까지 성장을 위해서도 불평등 해소가 절실하다고 말해왔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된 셈이다.

글로벌 리더들이 이 시점에 불평등을 다시 거론한 것은 낙수 효과 없이 부가 극소수에 흡수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본주의가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성장론자들은 자본주의 덕분에 세계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8명 중 1명은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든다. 과실이 고루 나눠졌다면 훨씬 많은 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불평등 심화가 미래의 토대를 약화시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도한 주주자본주의, 부자 감세, 노동자 쥐어짜기 등이 불평등을 심화시킨 요인이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교육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비롯해 노동자 임금 인상, 안전망 확충 등 해법은 나와 있다. 성장의 목적은 다수의 삶의 증진이다. 한국은 노인빈곤율, 남녀 임금차,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보스가 던지는 화두를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다.


[경향 사설] 윤병세 장관의 부적절한 ‘부산 소녀상’ 발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부산 소녀상’을 둘러싼 국회 답변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윤 장관은 “국제사회에서는 외교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어떤 시설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가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소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윤 장관의 발언이 곧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시사한 것이라며 그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윤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점은 일본 측 반응에서도 알 수 있다. 일본 언론들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측 주장에 이해를 나타낸 모양새”라고 보도했다. 당장 소녀상을 치우겠다는 약속은 아닐지라도 일본의 요구를 알고 실천에 옮길 뜻은 확인했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한발 더 나아가 “윤 장관도 소녀상을 다른 곳에 설치하는 것은 문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시민단체들이 부산 외에 전국 70여곳에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소녀상들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윤 장관 발언 직후 부산 소녀상 설치에 항의 표시로 소환됐던 주한 일본 대사가 다음주 한국으로 귀임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으로부터 듣고 싶은 답변을 이끌어냈다는 뜻으로, 윤 장관의 발언이 외교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위안부 문제 협상에 대해 애초부터 할 말이 없는 처지다. 피해 당사자를 배제해놓고 협상에 나섰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합의 이후 일본으로부터 계속 무시당하고 있다. 일본이 합의 정신과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발과 망언을 자제해야 하는데 정반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지불한 것까지 거론하면서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최근엔 화해치유재단이 고령으로 의사 표현조차 힘든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수령을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어떻게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돈을 안기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는 묵과할 수 없다. 가해국 일본에 양보만 하는 모습에 “도대체 어느 나라 장관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던 위안부 협상 문서가 법원 결정에 의해 공개되면 어떤 비밀이 드러날지 모른다. 위안부 문제 합의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맞다.


[경향 사설]18세 투표 거부한 새누리·바른정당의 구태

18세로 투표권을 하향 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의 1월 임시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지난 11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선거연령 하향 조정 법안 처리 여부를 논의했지만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선거법 개정이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므로 별도의 정치개혁특위를 만들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은 협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정개특위 운운은 핑계일 뿐이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면 젊은 유권자 60여만명이 새로 생긴다. 야당 지지성향이 강한 젊은 유권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게 진짜 이유일 것이다.

18세 투표권은 민주주의 보장과 참정권 확대를 위한 세계적인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9세 이상만 선거권을 갖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우리는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로 선거 때마다 노년층의 목소리가 젊은이의 의견을 압도할 수밖에 없는 인구구성이다. 18세면 군 입대가 가능하고, 결혼할 수 있고, 운전면허와 8급 공무원 시험도 치를 수 있다. 그런데 선거만 ‘19금(禁)’이란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부에선 18세면 아직 고교생이므로 공부에 매진할 때이고 자칫 고3 교실이 정치판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 선진국들은 10대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19세 국회의원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의 교육 수준과 정치적 성숙도가 이들 나라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모자라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해 “18세 청소년은 이미 독자적 신념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능력과 소양을 갖췄다”며 선거연령 하향 조정 의견을 낸 바 있다.

여당 내에선 선거연령 하향을 받아들이는 대신 보수 쪽이 원하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얻어내자는 얘기가 있는 모양이다. 가당치 않은 얘기다. 선거연령 하향은 국가 미래 설계에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의 의견을 듣자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뭘 갖다 붙이거나 떼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개혁 열망이 살아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18세 투표권에 반대하는 정당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더 이상 이 문제를 상임위 차원에 맡겨둬선 안된다. 여야는 원내대표 회담을 통해 결단을 내리고 2월 임시국회에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경향 사설] 사면초가 한국 외교, 리셋해야 한다

한국의 외교안보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는 일본으로부터 공박당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의 전방위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 실패의 후과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원칙 없이 오가다 덫에 빠지고, 미래지향적 결정이라며 성급하게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대응책 하나 없이 외교 실패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제는 중국군 폭격기 6대와 조기경보기 1대, 정찰기 1대 등 군용기 10여대가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들어왔다. 2013년 말 식별구역을 발표한 이후 중국 군용기가 간간이 침범한 적은 있지만 장거리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등이 한꺼번에 4~5시간 지속적으로 우리 경계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한국군이 공군 F-15K 전투기 등 10여대로 대응 출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류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와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에 이은 외교적 보복 조치의 연장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교류와 경제 통상에 이어 군사 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의 공세는 박근혜 외교의 완벽한 실패를 증명한다. 부산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주한대사 소환과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도발도 했다. 가해자가 공세를 펴는 어이없는 상황에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의 정책도 실패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제적 신뢰를 내세워 잘못으로 드러난 정책까지 고수하겠다고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마치 남의 일처럼 한·일 양측에 경고한 것도 잘못이지만,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야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사드에 대해서도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중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만 비판했다.

실패한 박근혜 외교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이 낳은 결과이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 또 어떤 외교적 난제가 떠오를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경향 사설] 또 정치 개입한 국정원, 이번엔 확실히 손봐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국정원 정보관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과 e메일 및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가 포착됐다. e메일에는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특검팀은 국정원 직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고한 단서도 확보했다. 정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는 국정원이 여전히 불법 정치 개입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명박 정권 이후만 해도 민간인 사찰 의혹과 대선 개입 여론조작,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인 대북정보 수집에서는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 포착하지 못하거나 멀쩡하게 살아 있는 북한 고위 인사가 사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간첩조작 사건 등 인권 침해 행각도 잇따랐다.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어려운 지경이다.

국정원은 일탈 행태가 드러날 때마다 개혁을 내세웠지만 시늉만 냈을 뿐이다. 민간인 사찰 때는 정치중립 선언문을 제출하고,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때는 이른바 ‘셀프 개혁’을 했지만 탈정치, 탈권력화라는 개혁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에는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개혁 1순위 기관이 개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몸집만 불린 공룡이 되었다. 그렇다고 국정원 내부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준 적이 없다.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국정원 개혁은 필수적이다. 촛불의 힘이 작동하는 지금이 국정원을 실질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검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게이트 개입 행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겠지만 이와 별개로 근본적인 개혁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기존 제도를 인정하고 몇몇 통제장치를 만드는 정도로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우선 정치 개입의 제도적 통로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정원 정보관의 기관 출입 금지가 선행 조건이다. 또한 정보기관으로서 필요한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도록 하고, 이에 맞춰 조직과 인력, 예산과 권한을 축소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한·일 위안부 합의 1년, 무효화해야 한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어제 1년을 맞았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간 화해·치유재단 출범, 지원금 10억엔 출연 등 합의 이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어제도 변함없이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린 것이 그 증표다.

한·일 양국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의의 동기가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전쟁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일관계 개선 차원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이러니 합의의 의미나 내용보다 ‘2015년 내 타결’ 등 합의 시기를 더 중시하는 해괴한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명의로 사죄와 반성을 합의문에 담았으나 전쟁범죄나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10억엔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약속했다.

이런 위안부 문제 합의가 전쟁 시에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표준에 부합할 리가 없다. 실제로 합의는 분명한 사실 인정과 직접적 사죄 표명, 법적 배상금 지급, 재발방지 등의 국제 표준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포함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합의 도출 과정에서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었다.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을 지니는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 절차도 밟지 않았다. 합의내용이 문서화되지 않고 양국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형태로 발표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양국 정부가 이런 부실투성이 합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합의 후 고자세로 돌아서 “강제성이 없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할머니들 마음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 누가 봐도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할 수 없는 태도이다.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사업 예산을 삭감했다. 위안부 백서 발간도 백지화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개별 지급하는 것이 과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위안부 합의는 당장 무효화하는 게 맞다. 여론도 합의 무효화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국가 간 협상의 결과물이어서 되돌리기 어렵다지만 국회 비준 회부 등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전에라도 합의 무효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새누리당 33명의 탈당과 새로운 보수의 길

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뉘우치는 듯하다 틈만 보이면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막판에는 비주류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양보할 것처럼 하다가 뒤집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총선이 3년 넘게 남았고, 촛불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등에 기댄 탓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탈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유일 보수정당의 법통’ 운운한 것은 가히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그나마 시민의 질타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기득권에 젖은 비양심적 가짜 보수의 결별이다. 보수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총선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반칙 없는 세상과 더불어 책임지는 정치를 요구했다. 극우적 세계관과 영남 지역주의를 벗어난 건강한 보수, 명예와 도덕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보수 정치세력을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탈당파는 이 같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수구적 이념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보수당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앞서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까지 가세하면 신당 추진은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탈당파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면 정치권은 1990년 3당 합당 후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정책의 대결과 함께 곧 있을 대선 정국에서 정책에 따른 연대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에도 보수당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를 표방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의 혁신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을 위한 한 편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의 정책과 가치에 충실한 정당이 아니라 파벌과 이권,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탈당도 대선용, 위기모면용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당을 박차고 나간 정치세력이 성공한 예는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탈당과 신당 창당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극복과 진정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흔들림 없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한다면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막 닻을 올린 새누리당 탈당파의 실험을 주시한다.


[경향 사설] 황당한 논리로 탄핵 사유 모조리 부정한 철면피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가 공개됐다. 탄핵 사유를 반박한 박 대통령의 논리라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에 기재된 헌법 위반 혐의 자체를 모두 부인했다. 뇌물죄와 강요죄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는 ‘검사의 의견’이나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과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탄핵안의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라고 했다. 미르재단 등은 공익사업이고, 박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한 것은 아니므로 뇌물수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관련 제3자뇌물수수죄도 부인했다. 기업의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압권은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를 압박해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에 관한 답변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시야가 제한돼 있는 직업공무원들로 이뤄진 보고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한 방법으로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인정돼 왔다”고 했다. 정몽구 회장에게 KD코퍼레이션 특혜 민원을 하는 자리에 직접 동석했으면서도 이런 식이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등한시한 ‘세월호 7시간’에 관한 답변도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 등에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신속하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했다”고 했다. 집무실로 출근하지도 않고 숙소인 사저에 틀어박혀 무슨 일을 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데 정상 근무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알다시피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으로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잠긴 지 5시간, 사고 신고 8시간이 지났을 때다.

박 대통령은 19일부터 시작되는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결과 뒤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헌재의 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 혼란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집권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겠다는 뜻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시민들 가슴에 또 한 번 못질을 한 것이다.


[경향 사설] 조폭 행태 친박이 혁신과 법치주의를 부르짖다니

새누리당 친박근혜계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그 막무가내 행태를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폐족으로 자성하기는커녕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막 나가고 있다. 그제는 박 대통령을 징계하려는 당 윤리위까지 편법적으로 장악했다. 친박 일색의 최고위원회가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친박 성향 위원 8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보다 더 많은 위원을 추가 투입해 대통령 보호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래 놓고 “애초 윤리위 구성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내미는 처사에 할 말이 없다. 참다못한 이 위원장과 기존 위원들은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친박처럼 몰상식한 정치 집단은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집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의 맹목적 충성은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라는 표현이 백번 맞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강요하며 후배 정치인들을 겁박하는 서청원 의원의 조폭적 행태 역시 목불인견이다. 촛불시민의 분노를 불렀던 김진태 의원은 어제 또다시 “친박이 아무리 주홍글씨라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다. 종북 좌파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생겼다”고 했다. 국정농단 동조 세력이 순국자들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이끌었으니 탄핵으로 귀결된 것이 당연하다. 친박은 자신들의 모임 명칭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고 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정통 보수세력으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혁신과 법치주의를 표방하다니 그 뻔뻔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친박은 16일 새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밀기로 어제 집단 결의했다. 탄핵을 부른 데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오만한 행동이다. 신임 원내사령탑은 조만간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게 된다. 한 줌도 안되는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오염시키는 친박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친박을 지금 징치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불통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경향 사설] 때 이른 트럼프·중국 갈등, 불안한 한국 외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정상외교 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어제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가 무산됐다. 중국 측이 황교안 총리가 박 대통령 대신 참석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에 회의를 열겠다지만 한국의 대선으로 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잇단 ‘중국 흔들기’에 따른 미국·중국 간 갈등 역시 한국 외교가 조만간 직면할 불안 요인이다. 트럼프가 지난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통화한 사실이나 지난 12일 ‘하나의 중국’ 정책을 비판한 것 때문에 미국의 전통적인 대중외교 노선을 얼마나 이탈할지,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한국이 내달 대통령에 취임하는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제때 할 수 없게 된 것도 걱정거리다. 미국 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수립 과정에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정부의 총체적 외교 실패를 감안하면 정상 부재로 인한 외교적 불안정성을 무조건 우려할 것만은 아니다. 현재 동북아 외교·안보 환경은 북핵 문제와 파탄난 남북관계, 신냉전구도 등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 상황은 오히려 사드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나친 대미 편중 외교, 냉·온탕을 오간 대일외교 등 기존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한반도 평화·안정을 복원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경향 사설] 우리는 자랑스러운 시민이다

마침내 시민이 승리했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2016년 12월9일은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준 날로 기록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시민들은 헌법과 법률을 짓밟은 대통령에게 헌법 제1조에 따라 퇴장을 명령했다. 29년 전 6·10 민주항쟁 이후 처음으로 광장 민주주의를 통해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 절차에 따라 무너뜨렸다.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혁명을 이뤄냈다.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정부도 시민과 싸워 이길 순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만천하에 확인해주었다. 한국인이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하고 명예로운 시민혁명을 새로 썼다. 우리 모두 자랑스럽고 위대한 시민이다.

국회는 어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총 투표 299명 가운데 찬성 234명, 반대 56명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당연한 결과다. 국회의원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분출된 시민의 분노를 대의(代議)하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다. 노 대통령 탄핵은 의회 다수 세력이 정략적으로 쫓아낸 폭거인 반면 박 대통령 축출은 시민의 명령이었다. 탄핵은 시민이 위임한 권한을 회수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탄핵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 정부 위에 사설 정부를 운영했다. 그는 헌법을 위반했고, 법률을 어겼고, 주권자를 배신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났을 때부터 잘못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거짓 해명과 진정성 없는 사과로 스스로 걷어찼다. 자신이 시민 앞에 한 약속을 밥 먹듯 뒤집고 궁지를 모면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차마 국가 지도자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통령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리더십은 무너졌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짐은 곧 국가’라는 통치방식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했다.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사회로 발전시키기는커녕 봉건시대만도 못한 부끄러운 나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4년 전 절반이 넘는 유권자가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건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그의 진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시민의 분노는 정당했다. 시민들은 국치(國恥) 주범들을 심판하고 단죄할 것을 촉구했다. 촛불 민심은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되살리고 시민의 명예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지난 4년간 비(非)민주주의 정부가 역사를 후퇴시키는 사이 시민들은 놀랍도록 성숙했다. 거리 곳곳에서 시민들은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얘기했다. 대구 여고생 연설을 본 어른들은 “눈물이 나도록 부끄럽다”고 했다. 젊은 부모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소중한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 시민들은 분노를 절제하고 저마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했다. 헌법 제21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의 부재(不在)’라는 해묵은 난제를 극복하고 시민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 대통령은 국가 위신을 무너뜨렸지만 성숙한 시민들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품격을 보여줬다. 시민들은 4·19혁명부터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헌정을 유린한 어떤 독재 치하에서도 이 나라를 지탱하고 되살려왔다. 시민들은 다시 한 번 민주공화국을 복원시키고 찬란한 시민 주권시대를 열었다.

촛불은 정치를 이끌어온 동력이었다. 박 대통령의 꼼수 담화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흔들린 건 정치인이었지 민심은 동요한 적이 없다. 촛불이 아니었다면 검찰이 대통령을 범죄 공모자로 규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야 3당을 탄핵 단일 대오에 세우고, 새누리당 비박계를 표결 참여로 유턴시키고, 여당 의원들을 자유투표로 내몰았다. 여기에 오기까지 정치가 앞장서 본 적은 없다. 기성 정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시민이 했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온갖 헌법적 의무 위반과 범죄행위의 실질적 공범이고 부역자 집단이다. 그런 친박계가 반성은커녕 똘똘 뭉쳐 결사 저항한 결과가 고작 반대 56표에 불과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이탈자가 있었던 것이다. 친박계는 한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추태를 더 이상 보이지 말고 박 대통령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하는 게 옳다. 야당은 언론이 찾아낸 비정(秕政)과 시민들이 댕긴 촛불에 무임승차한 객꾼에 불과했다. 여섯 번의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국정 수습의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자중지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며 시민들의 마음만 답답하게 했다. 과연 야당이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지, 시민의 뜻을 정치 현실에 구체화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면, 그것은 자업자득이다.

촛불 민심은 단지 박 대통령 탄핵만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 불공정, 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보수냐 진보냐의 논리가 아니다.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이 나라를 농락한 자들에 대한 징치(懲治)뿐 아니라 쌓이고 쌓인 한국 사회의 적폐를 도려내자는 갈망이 담겼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탄핵은 임시 극약처방일 뿐이다. 민주주의, 민생, 평화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우리는 탄핵 이후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는 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대통령의 헌정 파괴로 무너진 민주주의의 회복도 시급하다. 지금은 혼돈을 넘어 새 질서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새로운 사회적 주체를 요구하고 있다. 촛불 민심의 명령은 지역주의와 세대 분열에 기대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의 이해가 반영되고 사회적 약자가 참여하는 정치를 제도화하라는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다. 불법과 협잡이 판치는 세상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정의와 역사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박 대통령 퇴진에서 출발한 촛불의 행진은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분노를 넘어 희망을 만들어 낼 것이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경향 사설]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과 맞서겠다는 참 나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탄핵안 표결에 임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당이 요청한 ‘내년 4월 퇴진·6월 조기대선 실시’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탄핵이 아닌 자진 사퇴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탄핵이 되더라도 헌재에서 법리를 다투면서 버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두 사람이 전한 면담 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은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3차 담화에서 밝힌 ‘임기 단축을 포함한 퇴진’ 방침에서 ‘내년 4월 퇴진·6월 대선’으로 시점만 조금 더 구체화했을 뿐이다. 국정농단에 대한 잘못을 시인하는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어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초래된 국정혼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포괄적인 책임만 인정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이 정상적 국정 수행이며, 나머지는 비선인 최순실씨의 개인적인 비리라고 우겨온 태도 그대로다. 측근들이 모두 박 대통령 지시를 받고 범법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는데도 나홀로 법을 지켰다고 우기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탄핵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역풍이 무서워 국민 앞에 나서 담화를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놀라운 것은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통해 끝까지 승부를 가리겠다는 발상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탄핵이 가결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당에서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법리 다툼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검찰 수사는 왜 거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헌재에서 법리 논쟁을 벌이겠다고 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탄핵안이 가결되는 즉시 자신이 약속한 ‘4월 퇴진 수용’ 방침도 폐기하겠다는 말이다. ‘4월 퇴진’ 수용은 정말 사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탄핵을 피하려는 술책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박 대통령을 면담한 새누리당 지도부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은 마찬가지다. 역풍이 무서워 4차 대국민담화조차 직접 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대표와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 얼굴이 수척하다느니, 당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을 조장했다. 탄핵을 막지 못했다는 오명을 피하려는 여당 지도부와 여당 의원의 탄핵 참여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대통령의 합작품이 이날 면담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시종 꼼수로 대응하다 민심에 의해 이미 탄핵당하고 이제 국회에서마저 탄핵당할 차례다. 이쯤 되면 즉각 퇴진하는 게 상식인데 끝까지 반전을 꾀하고 있다. 탄핵을 앞두고 친정인 여당에 마지막 호소를 하는 자리에서까지 시민을 향해 해볼 테면 해보자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박 대통령에게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탄핵안이 가결되어도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버틸 경우 그 혼란상은 불 보듯 뻔하다. “밤낮 없이 나라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정작 나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탄핵뿐이다.


[경향 사설] 박 대통령은 더 할 말이 있나, 침묵 속에 운명을 받아들여라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금명간 4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직접 퇴진 일정을 못 박아 두면 새누리당 내 비주류 의원 일부가 탄핵에 반대할 것이라는 기대로 마지막 호소에 나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어제 박 대통령에게 ‘내년 4월 퇴진’에 대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주 3차 담화 발표 때 박 대통령이 스스로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한 바도 있어 추가로 담화를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4차 담화를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자신은 선의로 국정을 운영했을 뿐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측근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만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추가 담화를 통해 또다시 미르재단 설립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며 자신이 측근들에게 모금을 지시한 행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이는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변명을 시민이 되풀이해서 들을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를 번번이 거부해온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아전인수식 해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겠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이런 해명은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4차 담화의 주목적은 탄핵으로 기울어 있는 새누리당 내 의원들의 탄핵 표심을 흔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의 뜻은 박 대통령이 퇴진 일정을 제시한다 해도 탄핵하고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 나선들 시민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설령 박 대통령이 죄상을 다 고백하고 진솔하게 사과해도 탄핵을 되돌리기는 늦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과 사과를 함으로써 탄핵을 피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변명과 꼼수로 시민을 우롱하다 탄핵안 표결이 눈앞에 닥치자 뒤늦게 사과하겠다는 것은 정말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박 대통령을 탄핵한 만큼 이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앉아 탄핵 찬반 의원들의 리스트를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면 제발 포기하기 바란다. 9일 탄핵안 표결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그나마 대통령으로 뽑아준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마지막까지 꼼수로 권력을 유지하려다 무너졌다는 참담한 기록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향 사설] 민심 뒤집기 나선 청와대·새누리,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정치상황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후 그의 퇴진 방법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지리멸렬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며칠 전 일부 원로 정치인들이 제시한 ‘4월 말 퇴진, 6월 말 대선’을 어제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탄핵에 앞장서겠다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비박근혜계가 손바닥 뒤집듯 견해를 바꾼 것이다.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는데 굳이 탄핵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게 명분이다. 그러나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부박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다.

청와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박 대통령의 3차 담화가 퇴진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퇴진 시점을 정하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던진 뒤 벌어진 정치권의 혼란상을 즐기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안은 애초부터 빈 카드이며, 탄핵대오를 흩트러뜨려 반전의 기회를 찾기 위한 시간벌기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박 대통령 스스로 퇴진 시점을 밝히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앵무새처럼 “여야가 합의해달라”고만 했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라면 설령 협상한다 해도 청와대는 협상 결과를 꼬투리 잡아 시간을 벌 것이 뻔하다. 보수세력이 결집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비열한 꼼수이자 치사한 연명책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비박 세력 또한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새누리의 재탄생이 아니라 친박이 힘을 잃은 자리에 자신들이 들어가 낡은 새누리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기로 한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자신은 오로지 선의로 국정을 수행했다고 말해 인식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그제는 국민 대통합을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에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극우성향의 목사를 앉혔다. ‘순수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했다는 대구 서문시장 방문도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차 안에서 눈물 흘렸다는 내용까지 대변인이 브리핑하는 것을 보면 대구에서 지지여론을 불러일으켜 보겠다는 계산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이 겉으로는 국가를 위해 일한다지만 다 거짓말이고 오로지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한다는 것을 시민들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의 퇴진 약속은 허구일 뿐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행동은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시민의 시선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뛰어넘어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술책도 끝없이 타오를 촛불을 견딜 수 없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경향 사설]이런 한심한 친박이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니

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탄핵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면서 “탄핵에 들어가면 지도부는 (21일로 예정된) 사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을 개헌 정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막말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을 위해 야당이 하나가 됐고 정치 타임테이블을 설정해놨는데, (대통령 담화로)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했다. 김종태 의원은 그제 의총에서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좌파 종북 세력은 통상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로 책임자를 다 정해 나온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종됐다는 폄훼다. 실로 몰상식하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으로 세웠고, 여당을 이끌어 왔다. 국정농단을 방관·방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좋은 자리를 나눠 먹는 등 이권을 챙겨온 게 이들이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시점에서도 이간질, 범죄자 보호, 사법 방해, 위력 과시, 협박에 무고까지 하고 있다. 주먹만 안 썼을 뿐 범죄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이 당이 해체하지 않더라도 다음 21대 총선 때 선거 벽보에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붙일 후보가 몇이나 되겠나. 깊게 생각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형해나 다름없는 일부 무리가 아니라, 시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유권자의 명령이다.


[경향 사설] 최씨와 유착 의혹 김기춘을 공범으로 수사해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순실씨의 유착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씨의 동업자 격인 차은택씨 변호인 김종민 변호사는 그제 “차씨가 최순실씨 지시로 2014년 6~7월 김 전 실장을 비서실장 공관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그 자리에는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정성근 문체부 장관 내정자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최씨를 모른다. 통화하거나 만난 적도 없다”고 일관되게 얘기했지만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씨가 김 전 실장과 알지도 못하는데 양해도 없이 민간인 신분인 차씨를 비서실장 공관으로 보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종 전 차관이 검찰에서 ‘김 전 실장의 소개로 최씨를 처음 알게 됐다’ ‘차관 취임 직후 김 전 실장이 (최씨의 딸인) 정유라를 돌봐주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구체적인 정황이 제기되자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차씨가 정부의 문화융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한번 만나서 보고하라고 지시해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씨나 차씨가 비선인 줄 몰랐고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암시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사람이 비서실장이었다니 박 대통령에 연민이 생길 지경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법 미꾸라지이자 즉석 형량 계산기인 김 전 실장이 모든 것을 다 검토하고 대통령에게 혐의를 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을 감추고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김 전 실장의 말을 듣는 것도 이제는 역겹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을 당장 소환해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수사해야 한다.


[경향 사설] 버티는 대통령엔 탄핵뿐, 여야 공조로 빈틈없이 추진하라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도 차츰 끝이 보이고 있다. 검찰은 대면조사 최후통첩과 별도로 연일 수사의 강도를 높이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매일 몰아치는 대기업 수사는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정조준하고 있다. 뇌물죄가 입증되면 대통령은 퇴진 이후 사저가 아닌 감옥으로 가야 한다. 30일부터는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특검도 내달 초부터 활동에 들어간다.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200만명이 모일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대 규모다. 검찰 수사·국조·특검·촛불이란 파도가 사방에서 동시에 박 대통령을 덮치는 양상이다. 어느 것 하나도 피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이 본격적인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르면 12월2일, 늦어도 9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못 박았다. 야 3당은 각각 탄핵안 준비기구에서 탄핵안을 만들어 이달 말 공동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도 야당 발의 단계부터 동참할지, 표결에만 참여할지 아직 고심 중이나 찬성에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탄핵을 둘러싸고 불가측했던 안개가 걷힌 것은 다행이다. 이대로라면 수적으로도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필요한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한다.

국가적 불행이 기어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하게 된 작금의 상황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부정·거부하고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철회하는 등 대국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겼다. 그리고 되레 ‘탄핵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강경으로 돌아섰다. 박 대통령이 자진 퇴진의 기회를 걷어차고 장기 농성 태세에 들어감에 따라 탄핵 추진은 불가피한 외길이 됐다.

지금 시중에선 사람 둘만 모이면 어느 자리 할 것 없이 온통 박근혜·최순실 얘기뿐이다. 부끄러움과 한탄, 자괴감에서 비롯된 ‘박근혜 피로’가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국정공백과 혼란은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국정수행은 불가능하다.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래서도 안된다.

민심은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 3당은 촛불민심에 나타난 시민들의 분노와 기대를 모아 나라의 혼란을 서둘러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새누리당도 동참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어느 때보다 대승적으로 타협하고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향 사설] 끝내 한·일 정보협정 의결, 책임자 똑똑히 기억해 두겠다

정부는 어제 유일호 부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야당과 시민이 반대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안을 의결했다. 협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오늘 한·일 양국의 서명으로 체결·발효된다. 중대 안보 사안을 지난달 27일 국방부의 협상 재개 발표 이후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군사작전하듯 처리했다. 이런 협정안 의결은 사실상 무효다. 무엇보다 범죄 피의자로 국정 책임자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한 식물대통령과 문민통제를 거부하는 군부의 결정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대통령도 총리도 아닌 부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의 효력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단 한번의 공청회도 열지 않고 협정을 강행한 정부의 결정을 신뢰해야 할 이유도 없다. 대통령이 이 협정을 단지 외국에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한·일 간 직접적인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의 정보는 기존의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그보다는 이 협정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이 북핵 위협을 이유로 자위대의 북한 지역 접근을 시도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제어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에 대한 면밀한 고려 없이 덜컥 협정부터 맺은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북핵 대비용이라고 하지만 영토 관련 사안을 이토록 허술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중국이 협정을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 편입으로 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최근 중국의 한류 규제 강화도 보복성 조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후의 안보 지형을 감안하지 않고 협정을 체결한 것도 성급해 보인다. 협정 체결로 인한 동북아 정세의 변동성을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같은 갈등적 사안은 통치권 붕괴 상황에서 강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중단했던 협상 재개를 선언하고 기습작전하듯 처리했다. 시민 반대를 묵살한 채 밀어붙인 협정은 향후 안보의 중대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은 협정을 주도하고 동조한 모든 책임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다.


[경향 사설] 사법체계까지 거부하며 막나가는 대통령

검찰이 어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 등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과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추가 조사를 통해 내용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던 입장을 뒤집고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지휘하는 검찰에 의해 형사범죄의 피의자로 규정된 것도 초유의 일인데 사법체계마저 거부하다니 충격적이다. 국가적 비극이자 이런 막장이 따로 없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우선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추가 출연 강요, 최씨의 대기업 갈취,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사건 전반에 개입했다. 국가 비밀자료 유출도 드러난 것만 47건으로, 장차관 인선 검토 자료와 외교문서까지 포함돼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100%라고 말 못하겠지만 거의 99%는 저희들이 입증 가능한 부분만을 썼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범죄가 감출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이라고 한 것도 예우일 뿐, 실제 역할과 위상을 고려하면 주범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그동안 박 대통령 측은 범죄 연루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야당과 여론이 박 대통령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박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밝힌 만큼 이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부인하며 수사를 거부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고 인격 살인을 당하는 상황이 됐다”고 항변했다. 국정을 농단하고도 거짓말로 모면하려던 행동은 잊은 채 다시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지 않았다며 특검에서 무고함을 밝히는 한편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가리자며 탄핵절차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기 편인 줄 알고 수사를 통해 다 밝히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검찰이 공정하지 못하다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특검법이 통과됐으니 검찰 조사는 건너뛰고 특검 조사를 받겠다는 소송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왔다고 국정 최고기구인 청와대가 한순간에 말을 뒤집고 국가 시스템을 거부한 것은 막가파식 대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의도는 검찰에서 방어에 실패하자 다시 특검과 헌법재판소에서 법리 논쟁을 하며 장기간 버티겠다는 것이다. 보수 일색으로 꾸려놓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진용을 믿고 탄핵절차로 가자는 심산인데 여론을 모르는 딱한 처사다. 95%의 시민에게 이미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 법정 투쟁에 의지해 연명하려는 모습에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에 전면 복귀하더니 엊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를 신설해 여론전에까지 나섰다. 범죄적 행위와 세월호 참사 무능 대응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곁가지 해명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다.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당내 친박세력도 당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 국정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국민 여론과 맞서는 꼴이다.

어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등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만나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국회에 요청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탄핵론이 나온 만큼 박 대통령이 특검의 칼날을 벗어난다 해도 탄핵은 피하기 어렵다. 그제 4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며 휘발유를 붓고 있으니 촛불이 더 크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월호 침몰 때 사라진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까지 드러나면 여론은 더 험악해질 게 뻔하다. 그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의 버티기는 한때나마 자신을 지지한 시민과 국가에 대한 배신이자 반역이다. 박 대통령이 56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보다 못한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와 국민을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경향 사설] 민심 회초리 맞고도 교과서 국정화 강행이라니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국정 역사교과서의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학과 교수들도 그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지 않으면 ‘불복종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국정화에 찬성했던 보수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명시하려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은 어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법률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오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가족교과서 발행을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부야말로 ‘혼이 없는 비정상’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5종 가운데 교사용지도서 2종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공격하면서 정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교사용 지도서로 인해 편향적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던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교사용 지도서를 제외한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보는 책이라 사전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변명을 했다. 교육부는 또 국정 역사교과서의 의견수렴 절차를 공개토론형이 아닌 ‘비공개 접수형’으로 진행하며 반대 여론 형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교육부 장관이 고시만 개정하면 된다. 지금 당장 국정화를 철회해도 내년 3월부터 기존 검정교과서를 쓰면 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것이다. 또 주권자의 3분의 2가 반대하는 국정화 강행은 시민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강행한다면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주권을 침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 관료, 국사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이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 사설] 통치 정당성 잃은 정부의 한·일 정보보호협정 폭주

국방부가 시민과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은 어제 “일본과 협정 주요 내용에 의견일치를 봤다”며 “현재까지 합의한 문안에 대해 법제처에 사전심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협상을 시작한 지 불과 열흘여 만에 협정 초안을 만들고 사전심사에 들어간 것이다. 다음주 열리는 3차 실무회의에서는 가서명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일 양국이 2012년 협정 체결 직전까지 갔기 때문에 문안 작성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국방부는 설명한다. 하지만 최종 문안 작성 전에 사전심사를 의뢰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어수선한 정국을 틈타 협정 체결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 군사기밀을 공유하기 위한 협정이다.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가 필수적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양국이 군사기밀을 공유해도 좋을 만큼 상호 신뢰가 구축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양국은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를 했지만 거부감이 팽배하고, 영토 및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협상이 일본이 먼저 요구하고 한국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재개된 점도 석연치 않다. 한국의 국정 혼란을 틈타 국가적 숙제를 해결해 보려는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든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은 한·미·일 3국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되고, 일본이 한반도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은 곧 동북아에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체제가 구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러를 자극해 동북아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야 3당은 이를 내세워 협상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난 9일 공동발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왜 여론 수렴 없이 군사작전하듯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마비와 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이 겹쳐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안보 중대사를 신뢰 잃은 정부가, 국정 추동력을 상실한 정권이 결정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다. 국방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의 폭주를 당장 멈춰야 한다.


[경향 사설] 국회 추천 총리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후보를 추천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분명 진일보한 것이다. 국회를 향해 여야 합의 총리 추천을 요청함으로써 야당의 뜻을 수용하는 모양새는 갖췄다. 청와대는 이 제안이 곧 거국내각 구성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제안은 촛불민심은 물론 야당의 요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선다는 언명이 전혀 없었다. 거국내각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말도 정 의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애매하게 밝혔다. 총리 권한에 대한 논란이 없게 분명히 말해달라는 정 의장의 요구에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하며 얼버무린 것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며 경제와 민생을 위해 여야가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자신이 통치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발언이다. 촛불집회 전에 서둘러 야당과 정국수습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 위기를 모면하려는 꼼수라는 의심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야당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총리를 내세워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어제는 몸을 낮추고 한발 물러서는 듯했지만 권력 이양 약속은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조금씩 양보하는 ‘살라미 전술’로 동정론 확산과 지지율 반등을 기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박 대통령을 보면서 진정 국정을 농단한 책임을 느끼고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박 대통령은 어제도 야당 대표들이 만남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다급히 정 의장을 찾아와서는 10분 동안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돌아섰다. 이런 자세로는 이른바 사회·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서 의견을 들어도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국정농단의 몸통이 박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시민의 분노를 잠재우고 사태를 수습하려면 먼저 박 대통령이 퇴진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어렵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시민의 절망을 달래고 국정을 정상화할 생각이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솔하게 제의해야 한다. 질서있는 정국 수습의 첫걸음은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 떼는 것이다. 100만개의 촛불이 타오르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박 대통령, 방탄 개각 즉각 철회 않으면 퇴진 각오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국무총리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로 지명하는 등 개각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정치권이 요구하는 거국중립내각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참여정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 교수를 책임총리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개각에는 대통령이 사실상 2선 후퇴의 뜻을 담은 것”이라며 김 지명자가 내치를 맡고, 박 대통령은 외치를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시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 3당은 한목소리로 개각 철회를 요구했고, 여당 내에서조차 일방적 개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멈춰 있다. 충격적인 사실이 끝없이 드러나면서 정부 부처들까지 일손을 놓고 있다. 북한 핵개발 등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물론 조선업계의 구조조정 등 외교안보·경제·민생 등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국정 현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시민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국정 정상화 방안을 논의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자기 권력 유지에만 골몰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탄핵·퇴진을 요구하는 판국에 박 대통령이 방탄 내각을 발표한 것이다.

현 난국은 여야 합의로 구성한 거국중립내각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4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는 데다 대선이라는 변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진정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국정의 정상화를 고민했다면 독단적으로 총리를 지명하기에 앞서 여야와 함께 논의하고 합의했어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지도부도 모르는 개각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문란을 초래한 책임을 통감한다면 이같이 중차대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시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야당의 협력 없이는 국정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을 설득하기는커녕 야당에 공세를 취하며 역주행했다. 박 대통령의 불통·방탄 개각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때나 가능한 정치적 공세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증언으로 이번 사태의 몸통은 박 대통령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시민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이제는 박 대통령을 국정을 이끄는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 보통 시민으로서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염치없는 행위를 한 박 대통령을 누가 지도자로 존경하며 따를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에게 속고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시민의 다수가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고 있다. 어제 안철수·박원순 등 야당 지도자들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많은 시민들의 탄핵·퇴진 요구에도 정치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국정 불안정을 걱정해 퇴진 주장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불통 개각을 밀어붙인다면 더 이상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국정을 이끌어나갈 민주적 리더십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그가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면서 한 달이 넘도록 경제부총리를 만나지도 않고, 민생법안을 외면한다고 야당만 비판하면서 11개월 동안 정무수석비서관과 독대도 하지 않는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시민은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막다른 길에 놓여 있다. 유일한 출구는 박 대통령이 이번 개각을 즉각 철회하고, 자기가 한 일을 시민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검찰 수사를 받음으로써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하고 야당과 함께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 시민들의 바람을 그래도 저버린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불통의 자세로 권력 지키기를 위한 술수만 동원한다면 더 이상 그를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시민들은 이미 마음으로 박 대통령을 탄핵했다.


[경향 사설] 대통령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새 총리가 중립내각 이끌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어제 황교안 총리 주재로 긴급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었지만 아무런 수습책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한 축인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 퇴진론이 분출하는 속에 친박근혜 세력까지 붕괴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물음에 탄핵 또는 하야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나와 내각·청와대 인적쇄신(21.5%)으로 마무리하자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에게 90% 투표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조차 박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안보 등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문란으로 식물정권이 되어버린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청와대는 내주 중 총리와 청와대 일부 보좌진을 교체하는 방안을 거론한다고 한다. 안이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어떤 것을 들고나와도 시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이미 대학가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처하는 것이 옳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되면 어차피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박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부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탄핵과 하야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도 질서 있는 국정 수습책이지 선명성 경쟁이 아니다.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여야가 다 참여하는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야 합의로 새 총리와 주요 장관을 뽑은 뒤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내년 대선까지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도 어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 리더십으로 현 체제가 유지돼서는 안된다”면서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거국 중립내각이 구성돼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전 대표가 동의했으니 일정한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새누리당도 이 국면을 회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국정 안정화를 위해 중립내각 구성에 나서야 한다.

박 대통령도 중립내각을 수용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남은 임기 1년3개월 동안 최소한의 역할만 하겠다고 공개 선언해야 한다. 그게 박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최소한이나마 책임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