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한·중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국이 해야 할 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4~5일 한국을 방문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정세와 양국관계를 두루 논의했다. 양국은 차관급 인문교류촉진위원회, 차관급 전략대화 등 소통채널을 재개키로 하는 등 완전한 관계 정상화에 공감을 이뤘다고 한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서울에서 열린 것은 약 5년 만이다. 이번 방한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의 앙금해소와 양국관계 복원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양국관계 정상화 과정의 종점은 아무래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일 것이다. 시 주석의 방한은 한·중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에서 갖는 함의가 작지 않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이후 한국을 찾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방중했지만 답방을 미뤄왔다. 문 대통령은 5일 청와대를 예방한 왕 부장에게 “핵 없고 평화로운 한반도시대가 열릴 때까지 중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주길 당부한다”면서 “시진핑 주석과 곧 만나게 될 것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내년 한국 방문을 기대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국은 한국행 단체관광 제한조치나 한류금지 등 한한령(限韓令)도 철폐해야 한다. 때맞춰 한류스타의 내년 중국 공연 추진 소문이 돌고 있는데, 성사되기를 희망한다. 중국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방한에서 왕 부장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여러 차례 비판했는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 한국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동북아 배치 추진과 관련해 “한국 본토에 배치한다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을 불쾌하게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한·중관계의 정상화는 상호존중과 호혜의 정신에 바탕을 둬야 한다.


[경향 사설] 한 달도 안 남은 북·미 협상 시한, 이대로 흘려보낼 건가

북·미 협상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북한담당 부상은 3일 담화를 발표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면서 “연말 (북·미 협상) 시한부가 다가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새로운 해법’을 들고 오라고 한 시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결단을 압박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이날 또다시 E-8C 조인트 스타즈와 RC-135U 컴뱃 센트 등 최첨단 정찰기 2대를 동시에 한반도 상공에 띄워놓고 대북 감시 활동을 벌였다.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동향을 집중 감시하는 것으로, 최첨단 정찰기 2대가 동시 출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협상 분위기는커녕 북·미 간 긴장만 고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연내 북·미 협상이 무산될 경우 벌어질 상황은 심각하다. 리 부상이 언급한 ‘선제적 중대조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동안 유예해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재개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이를 선언할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2일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중대 결심을 할 때마다 찾는 북한 혁명의 발상지 격인 삼지연군을 방문한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이 지난여름부터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올려놓는 콘크리트 토대를 전국 수십곳에서 증설하고 있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도 있다. 만약 김 위원장이 강경 대응을 한다면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 대화는 물 건너간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앞서 1차적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첨단무기 도입에 반발해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오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내년 상반기 또는 하반기까지 잠정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연결됐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직 서로에 대해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남은 한 달 동안 북·미 양측은 보다 유연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미국은 실효성 있는 협상 카드를 보여야 하며, 북한 또한 핵무기와 중장거리미사일 시험만은 계속 유예해야 한다.


[경향 사설] 자유한국당은 국민을 공격했다

김민식군(9)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과속 차량에 치여 숨졌다. 그래서 만든 게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에 안전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민식이법’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9일 본회의에 상정될 법안 198건에 대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신청했다.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서다. 말만 토론일 뿐, 사실상 정기국회를 올스톱시키겠다는 속셈이다.

이 바람에 데이터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데이터 3법’, 대체복무제 관련 법 등 다수의 민생·경제법안 처리가 모두 무산됐다. 이 중 76개는 여야가 해당 상임위에서 합의해 올라온 이른바 무쟁점 법안이다. 26개 법안은 한국당 의원이 먼저 발의한 것들이다. 한국당은 이마저도 전부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초대형 입법 방해다. 민식이 부모 등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가족들은 “아이들 생명을 지켜달라는 게 협상 카드냐.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했다.

파문이 일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일 당장에라도 국회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을 비롯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법을 지연시키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보장하라고 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민생·경제법안을 우선 처리하는 원포인트 본회의 소집을 제안했다. 그렇게라도 어린이·청년·소상공인·포항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들이 처리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당이 선거법·공수처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뭐라 할 게 못된다. 그건 국회법에 보장된 합법적 수단이고 자유다. 여당도 그것까지 막겠다고 하면 지나치다. 민주당도 2016년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9일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 한국당의 행태는 국회의원의 의무인 입법활동을 스스로 방해했다는 점에서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20대 국회는 지난 3년 반 동안 단 한번도 시민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없다. 내리막 경제를 되살리고 민생을 북돋울 조치를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제1야당은 사회와 산업의 미래를 바꿀 법안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당은 정치를 포기하고 국민을 공격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전략을 인질극에 빗대 ‘법질극’이라 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야당의 이런 극한투쟁 방식은 우리 정치가 왜 개혁되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향 사설] 도 넘은 방위비 압박, 한·미동맹 근간 흔든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던 미국의 제임스 드하트 수석대표가 지난 19일 회의 시작 80여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드하트 대표는 “한국 측 제안이 공정, 공평한 분담을 바라는 자국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한국 측에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찍 나왔다”고 했다. 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7일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관저로 초청해 ‘분담금 50억달러 인상’을 20회 이상 직설적 화법으로 언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비상식적인 압박과 외교적 결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내 한국인 고용원의 임금과 군사 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주한미군의 주둔에 필요한 경비 일부를 분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 28년간 양국이 견지해온 이런 원칙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미군의 인건비,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까지 포함해 기존의 5배를 넘는 ‘5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제시한 ‘분담금 50억달러’는 아무 근거도 논리도 없어 미 행정부 관리들이 억지로 액수를 짜맞춘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이미 충분하다. 2018년 한국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6%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기준인 2%나 독일 1.2%, 일본 0.9%보다 높다. 평택 기지 건설비용 110억달러의 약 90%를 한국이 부담했다. 한국은 또한 지난 10년간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3번째 나라다. 미국은 이 분담금을 다 쓰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50억달러를 내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며 한국의 재정능력의 한계도 넘어선다.

위험한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을 협상 카드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주둔비용을 언급하며 “미국의 유권자들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고 하더니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도 19일 방위비 협상 결렬 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측하지 않겠다”고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동맹국으로서의 기본 자세를 의심케 하는 처사이다. 동맹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동맹이라면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로 부담 액수를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이 지금처럼 비상식적인 증액을 계속 요구한다면 한국인들의 반미 정서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부담을 제시하기 전에는 한국은 절대 굴복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방위비 인상을 위해 동맹을 흔들면 안된다. 미국은 소탐대실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경향 사설] ‘위안부 손배소’ 첫 재판, 일본은 돈보다 공식 사과로 답해야

일제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와 유가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 심리로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로서는 근 80년 만에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준 가해자 일본에 사법적 책임을 묻는 재판이 한국 땅에서 처음 열린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재판에서 “곱게 키워질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애먼 고문을 당했다” “일본은 한 번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 “너무너무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법원은 조속한 판결로 ‘피고 일본’의 잘못을 가리고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날은 2016년 12월 제기된 이 소송의 첫 변론기일이다. 일본이 “주권 또는 안보를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규정한 헤이그협약을 빌미로 송달된 소장을 거부하며 3년이나 시간을 끈 때문이다. 일본은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합의를 통해 해결됐으며 소송은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자국법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각하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날 재판에도 일본은 출석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일제의 강제에 따른 반인권·반인륜 범죄’라는 사실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역사적 진실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가 이미 파기한 바 있다. 주권면제 원칙 역시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청구권은 주권면제, 청구권협정, 시효 등의 절차적 이유로 제한될 수 없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도 협약 등의 뒤에 숨어 재판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정상국가의 태도가 아니다. 일본이 그렇게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는 것이 맞다.

법원은 이번 재판의 심리와 판결에 있어서 어떤 정치적 고려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증거와 법리로만 판결해야 한다. 사실 일본 사법부는 하급심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1998년 시모노세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성적 강제는 여성차별·민족차별이며 피해를 방치했다”고 판결했다. 비록 항소심 및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로 바뀌었지만 이야말로 일본이 가해국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식이다.
현재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0명뿐이다. 고령인 이들의 삶은 기약하기 어렵다. 일본이 이들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도모할 시간은 많지 않다.


[경향 사설]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 강행, 인류에 대한 범죄다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 탈퇴를 끝내 강행했다.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약 탈퇴를 선언한 지 2년5개월 만에 탈퇴 공식절차에 돌입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미국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시작했다”며 “미국은 공식 탈퇴 통보를 유엔에 전달했다. 탈퇴는 통보로부터 1년이 지나야 효력이 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 납세자에게 지워지는 불공정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파리협약 탈퇴 결정을 내렸다”면서 미국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시민의 에너지 접근을 보장하면서도 모든 종류의 배출을 줄여왔다고 강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술 더 떠 이날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두 가지 규제까지 풀어줬다. 환경정책의 초침을 거꾸로 돌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파리협약은 2015년 기후변화 대응에 전 세계가 동참한 역사적 합의다. 이제는 변화를 넘어 ‘재앙’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매년 폭염과 홍수, 태풍과 한파가 지구를 휩쓸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15~2019 기후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올해까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장 높았다고 분석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알프스 산맥 등 각지의 빙하가 사라져가고, 남태평양 섬나라들은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형태로 자연이 반격해올지 상상하기도 두렵다. 그레타 툰베리가 경고한 대로 인류는 이미 대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 모른다. 파리협약의 합의대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발을 빼는 것은 지구에 대한 폭거이자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다. 미국이 탈퇴하게 되면 중국·인도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 의지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파리협약체제가 형해화될 우려도 크다.

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의 합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지구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 사정만 앞세워 파리협약 탈퇴를 강행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규탄한다. 미국이 탈퇴절차에 들어갔지만 최종 탈퇴는 1년 뒤인 내년 11월3일에 이뤄지므로 돌이킬 시간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라도 협약 탈퇴를 철회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온실가스 감축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경향 사설] ‘미국 유사시’ 한국 참전 요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한·미 군당국이 전시작전지휘권 전환에 맞춰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새로운 제안을 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한미연합사의 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규정하고 있는 이 각서의 문구를 ‘한반도 및 미국의 유사시’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 미국이 문구 변경을 제의한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미국 유사시’라는 표현이 들어가도 일각에서 우려하듯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해외 지역에까지 한국군을 자동 파병하는 것은 아니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 요구에 이은 미국의 뜬금없는 제안이 당혹스럽다.

한미상호방위조약(3조)은 한미연합사 작전 지역을 ‘태평양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의 제안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한국 측이 문구를 변경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이 중동이나 남중국해 등에 파병할 경우 미·중의 패권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빌미도 제공해서는 안된다. 미국 측은 전작권 이후 한·미 공동 대응을 더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이 맡아도 지금처럼 주한미군을 철저히 지키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으로 발사했을 때를 고려해 ‘미국 유사시’라고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면 새로 ‘미국 유사시’란 표현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유사시 양국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개입하도록 돼 있다. 미국이 이 문구를 고집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위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군 당국은 이번 각서 개정을 협의한 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SCM) 때 양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다고 한다. 국방부는 기존 각서의 틀을 견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이유로 한국군이 태평양 이외 지역으로 자동 파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안보 정책을 둘러싸고 상궤에서 벗어나는 제안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데 당국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무슨 제안을 하는지 시민에게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존 안보 정책의 틀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동맹의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에 일깨워야 한다.


[경향 사설] 촛불 3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2016년 10월29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에 3만개의 촛불이 켜졌다. 닷새 전 최순실이 태블릿PC로 국가기밀인 대통령 연설문 44건을 주고받은 게 공개되고,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을 시인하며 대국민사과를 한 뒤 성난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퇴근길 시민들이 가세하고, ‘대통령 탄핵’ 구호가 시작된 날이다. 주말마다 전국을 밝힌 촛불은 11월12일 100만명을 넘었고, 국회 탄핵소추를 앞둔 12월3일엔 232만명에 달했다. 광장엔 세월호 참사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 차별과 교육 특혜까지 온갖 적폐들이 쏟아졌다. 정치권력을 바꾸고, 미생(未生)이 없는 ‘나라다운 나라’를 꿈꾸며, 평화롭게 행진한 촛불은 다음해 4월29일까지 23차례 이어졌다. 독일 에버트재단은 2017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인권상을 주며 “가혹한 겨울 날씨에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와 헌신을 모범적으로 드러냈다”고 반추했다.

1700만 촛불의 함성이 터진 지 3년. 시민들은 답답하고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국정농단·정경유착·사법농단 세력의 ‘당연한 단죄’를 넘어 세상과 삶이 달라지길 바랐던 그 겨울의 꿈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첫 지향점인 공정과 정의는 ‘조국 사태’라는 돌부리에 걸렸고,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적잖은 정책들은 유실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했던 정부에서 비정규직 제로-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은 궤도를 벗어났다. 산재 악몽은 끊어지지 않고,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아직도 겉돌고 있다. 촛불광장에서는 6가지 민생 요구가 있었다. 교육비·주거비·의료비·통신비·교통비·이자비용 인하였다. 정부가 답을 주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일수록 이 땅에서의 삶이 버거워질 문제들이다. 민주주의 확장도, 뒤늦게 시동 걸린 검찰개혁과 선거개혁도 민생의 첫 단추를 끼울 때만 공고히 나아갈 수 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28일 3년 전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광장에서 “반민주 반민생 반평화 적폐들을 일소하고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게 촛불이었다”며 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촛불 민의 실현이 지체되고, 역주행 조짐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 깜빡이’를 켜고 우왕좌왕하고, ‘큰 개혁’을 하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호루라기를 분 셈이다. 촛불의 분열과 위기는 초심에서 멀어진 정부가 자초했다. 주도면밀한 개혁을 못했다는 각성, 벼랑 위에 섰다는 비상한 각오가 없다면 ‘촛불개혁’과 ‘촛불정부’를 명예롭게 쓸 수 있는 시효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40%선 무너진 국정지지율, 민생·경제 전력하라는 경고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처음 30%대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보다 4%포인트 낮은 39%로 나타났다. 청와대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며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말대로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을 섣불리 볼 것은 아니다. 한국갤럽은 이번 지지율 하락에 ‘조국 사퇴’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반영된 결과로 분석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 조사(17일)에서는 긍정평가가 전주보다 4%포인트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 중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25%)’을 꼽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인사 문제(17%)’나 국정 운영이 ‘독단·일방·편파적(13%)’이라는 응답보다 훨씬 많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끝나자마자 시민들이 민생·경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다. 검찰개혁과 국회 혁신도 중요하지만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낮은 경제성장률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의 불평등을 우선 해소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시민들은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겪는 고통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청년 취업난에 자영업 불황 등으로 시민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이다. 최근에는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이른바 ‘디플레이션의 전조’까지 운위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사회개혁의 진전에도 불구, 경제·민생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지금 우리는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기업 현장을 방문하는 등 경제 행보도 부쩍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권의 정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겉으로는 경제와 민생을 외치지만 정작 내년 총선 등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유리한 사안에 치중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경제 활성화와 민생 현안 해결 등 12개항에 합의했지만 전혀 진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부·여당의 정책을 비판만 하는 야당도 문제이다. 하지만 야당 핑계를 대며 경제 회복과 민생 문제 해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집권당의 자세가 아니다. ‘조국 정국’이 끝난 만큼 이제 여야는 고단한 민생과 경제에 진력해야 한다. 특히 청와대는 결과로 국정 수행 능력을 입증하겠다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경향 사설] ‘한반도 평화’ 일깨운 에티오피아 총리의 노벨 평화상

사상 100번째 노벨 평화상의 영광은 집권 후 평화와 화해,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의 갈등을 종식한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43)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아비 총리를 선정하면서 “평화와 국제협력을 위한 노력, 특히 이웃 에리트레아와의 국경분쟁 해소를 위해 결단력있는 이니셔티브를 발휘했다”고 밝혔다.

군 장교 출신의 젊은 정치인인 아비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따른 총리 사퇴, 국가비상사태 등으로 정국혼란이 지속되던 지난해 4월 총리가 된 뒤 군부 출신 인사들을 권력에서 배제하고 다당제를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언론통제를 풀고,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민주화 조치를 신속·과감하게 추진했다. 특히 오랜 분쟁상태였던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의 종전을 선언하고 지난해 9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에리트레아는 1952년 에티오피아에 합병됐다가 30년에 걸친 독립투쟁 끝에 1993년 독립했으나 에티오피아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1998~2000년 두 나라 간 전쟁으로 7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노벨위원회는 아비 총리가 오랜 싸움을 끝내고 아프리카에 평화의 희망을 심어줬다고 평가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터키군이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시리아 북동부에 대한 침공을 개시해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쟁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멀쩡한 건물들을 파괴하며 무수한 난민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약자들인 어린이와 여성들이 전쟁으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을 끝내는 것은 평화의 가장 적극적인 구현이고, 그런 의미에서 피로 얼룩졌던 ‘아프리카의 뿔’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준 아비 총리는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

아비 총리의 수상은 남북의 70년 분단이 종식되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안타까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아비 총리가 이뤄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우리 귀에 익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 과제들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은 ‘아프리카의 뿔’에 비해 ‘평화 만들기’가 한층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비 총리의 수상은 한반도 평화가 남북한뿐 아니라 인류가 달성해야 할 공동목표임을 일깨운다.


[경향 사설] “일본, 식민주의 맞서 인종평등 내걸었다”는 아베의 궤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국회 연설에서 “일본이 100년 전 세계의 식민지 지배 흐름에 맞서 국제무대인 국제연맹에서 ‘인종평등’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된 일본 대사 마키노 노부아키가 국제연맹 규약에 ‘인종적 차별 폐지’를 반영하자고 주장한 것을 언급한 것인데,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있었던 일본이 마치 식민지배에 맞선 것처럼 분식했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이율배반적 주장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아베의 망언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아베 총리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이다. 마키노의 국제연맹 발언은 당시 일본 내에서도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받았다. 아베 발언이 더욱 더 위험한 것은 일본이 위안부 동원과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일제를 미화하는 데로까지 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의 이날 발언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도 우려된다. 아베는 이날 일본의 (인종평등) 제안은 강한 반대를 받았지만 마키노는 당당하게 맞섰다며 지금 일본도 개헌을 위해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하면서도 국제법에 따라 국가 간 약속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3권분립의 원칙을 존중하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한일청구권협정의 맹점을 보완한 새로운 판결의 가치를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등 아베 내각 주요 당국자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일본 기업이 추가 부담을 져야 할 의무는 법적으로 전혀 없다며 현금화가 현실화할 경우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최근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등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아베 정권의 주류는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아베 내각의 이런 인식이 유지되는 한 한·일관계는 절대 개선될 수 없다. 한국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토대 위에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추진한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아베 내각이 진정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자신들의 그릇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오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한국 대표가 참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향 사설] 검찰, 대통령의 개혁 지시 즉시 이행이 국민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검찰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조국 법무장관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발언은 검찰개혁을 요구한 100만 촛불집회 이후 나온 것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민의 외침, 공감에 대통령이 ‘검찰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되어 방안을 만들라’고 주문한 것이다. 요체는 이를 지금 당장 이행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안 마련은 ‘조국 수사’와 별개로 검찰이 이행할 수 있으며 이행해야 한다.

대통령의 검찰 수사관행 개선 주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종의 경고였다. 당시 검찰은 “헌법 정신에 입각, 엄정히 수사하고 국민이 원하는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촛불집회 이후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충실히 받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경고, 국민의 요구에 대해 ‘모양은 갖추면서 변화는 없는’ 원칙적인 답변으로 응수한 셈이다. 이에 대통령은 “수사권 독립은 대폭 강화됐으나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관행,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부족하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발언의 무게는 사흘 전과 다르다. 법무장관을 통한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 최후통첩인 것이다. 검찰은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다.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분산 없이는 검찰이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검경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은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이는 정치권이 책임질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는 검찰이 할 수 있는 개혁을 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면서 개혁안 시행은 조국 가족비리 의혹 수사 뒤로 미루라고 했다. 수사압력으로 해석될 것을 경계한 것이다. 당연한 조치다.

이날 출범한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비입법 개혁방안을 우선 추진한다고 한다. 피의사실 공표·인사·조직문화 등 세부적인 개혁안을 마련해 검찰의 권력화를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적폐청산 때는 무한 신뢰를 보내더니 ‘내 편’에 칼이 들어오니 수사관행을 바꾸라 한다” 등 비판의 글들이 게시됐다고 한다. 이는 윤 총장의 다짐과는 상충한다. 검찰의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사관행의 잘못을 개혁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문제와는 별개의 일로 국민에 대한 검찰의 책무다.


[경향 사설] 방위비 분담금 5배 올리라는 미국의 갑질

한국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첫 회의가 25일 서울에서 열렸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1년 단위로 결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내년에 적용할 새 협상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로 11번째를 맞은 분담금 협상은 어느 때보다 난항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틈만 나면 분담금 증액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사정은 듣지 않는 우격다짐식 요구에 일일이 항변하기도 지친다.

미국이 분담금으로 50억달러(약 6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 마무리한 제10차 협상에서 한국 측 분담금을 1조389억원으로 결정했다. 전년도 9602억원에서 8.2% 증액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이 너무 적게 부담하고 있다며 5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으로 전개하는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 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담금의 당초 취지에 어긋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은 한국은 시설과 부지만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나머지 주한미군 유지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다. 그런데 1991년부터 ‘특별협정’을 맺어 주한미군 유지비 중 일부(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과 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비, 용역 및 물자지원 등)를 한국이 부담하게 했다. 미국이 이제 와서 과거에 없는 항목에 대해서까지 돈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약속 위반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이 내는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한다. 남은 돈을 은행에 쌓아둔 채 이자까지 받고 있다.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최대 무기구매국”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리라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더욱 유감스러운 일은 미국이 한국을 분담금 인상의 ‘시범 케이스’로 여기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먼저 협상을 마무리한 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일본 등에 이 모델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협상은 수용할 수 없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다. 동맹은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을 무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셈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이 과도한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동맹을 해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약속했다. 이 정신을 미국도 존중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북핵 협상 ‘새로운 방식’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북·미 협상과 관련해 “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지난 20일 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북한이 호응하면서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하고 나면 미국이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방식으로,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말은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중대한 방향전환으로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재개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선 핵폐기’에 집착하면서 답보를 면치 못했다. 북한은 양측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핵을 폐기하라는 것은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 왔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시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부연하지 않았다. 다만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이 아니라면 ‘동시적 접근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적·단계적’ 접근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초기 행동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절충 가능성은 작지 않다. 비건 대표는 지난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음을 선언할 중대 조치에 신속히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북·미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셈이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의기투합한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로드맵)에 합의하면서 1단계로 실천 가능한 ‘주고받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와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이뤄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이번 실무협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미 정상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향 사설] 극우 일색의 아베 내각 교체 우려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개각을 단행했다. 2012년 이후 최대 규모로 정치적인 색채도 분명히 드러냈다. 각료 19명 가운데 17명을 교체하면서 극우 성향의 측근들로 자리를 채운 것이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위한 개헌드라이브의 포석으로 보인다. 새 내각은 아베 주변 인사 및 영토 문제 등과 관련한 망언과 억지주장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향후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를 흔드는 아베 정권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 내각에는 건전한 우파를 넘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많다. 문부과학상에 기용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베 총리를 대신해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전달한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폄훼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일본 교과서 등에서 역사왜곡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시 총무상에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극우 인사다. 아베 총리가 대표적인 반한 강경 인사인 고노 다로 외무상을 방위상에 임명한 것은 한국에 ‘결전’의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고노 신임 방위상은 한국 대사를 부른 자리에서 수차례 말을 끊고, 장관급 인사로서 국가 원수인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릇된 역사인식으로 비난받은 바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고노가 교체될 경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방위상으로 보직 이동시켰다. 한·일 갈등을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시사한 것이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갈등에서 출발해 경제, 안보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에서 한국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WTO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조치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명분 없는 수출규제로 문제를 촉발시킨 일본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맞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우익 일색의 내각 개편으로 그럴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 역시 아베 정권이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조국 장관 임명, 개혁과 대결정국 해결이 관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줬다. 온 나라의 눈이 찬·반으로 나뉘어 주시하는 청와대에서 사흘 장고 끝에 임명을 선택했다. 대통령 메시지는 “송구스럽다”로 시작해 “무거운 마음”으로 갈음됐다. 막다른 길에서 속고민이 깊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짐작 못할 바도 아니다. 조 장관은 숱한 의혹과 부인이 기소된 속에서 임명된 첫 장관이다. 대통령 인사권을 두고 국론이 이토록 분열된 적이 없고, 검찰의 ‘정치 개입’ 시비가 이렇게 톺아진 전례도 없었다. 공정·정의와 검찰개혁이 시대정신으로 굳어지고, ‘꼭 조국뿐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나왔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 모두를 선택지에 올려놓고, 책임도 져야 할 ‘정치적 결단’을 한 셈이다. 그 화두 역시 조 장관의 발탁 이유로 삼은 권력기관 개혁이었다. 목적지를 분명히 하되, 조국의 허물과 의혹을 대통령이 품고 동행하는 틀이 됐다. 8·9 개각 후 한달 만에 내려진 대통령의 재가지만, 여론과 수사가 어디로 향할지는 안갯속이다. ‘논란의 종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고 갈 길도 멀다. 누구도 아닌 문 대통령과 조 장관이 풀어야 한다.

정치의 격랑은 높아지고 있다. 당장 한국당은 “정권에 조종(弔鐘)이 울렸다”며 국정조사·특검을 거론하고, 추석 뒤 국정감사도 ‘조국 국감으로 치르겠다’며 벼르고 있다. 일정도 다 잡지 못한 정기국회에 ‘조국 2라운드’의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여야가 책임 소재를 다투기 시작했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무역 전쟁이 얹어진 경제는 성장률·물가가 함께 내리막이고, 민생의 주름살은 커지고, 남북관계·외교도 전도가 불투명한 중차대한 국면이다. 대통령 인사권 행사를 놓고 전례 없이 바로 해임안 카드로 충돌하거나, 가뜩이나 할 일 많은 정기국회가 파국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달간의 ‘조국대전’ 끝 여론조사는 여야 모두 지지율이 답보하고 변화의 진폭이 작았음을 정치권은 성찰해야 한다. 그 책임을 안에서부터 돌아보고, 총선 때 평가받는다는 긴 호흡으로 임하길 기대한다.

눈은 서초동 검찰과 과천 법무부로 향한다. 조 장관은 취임식에서 “검찰의 논리와 인적 네트워크로 움직여온 법무부”를 바꾸고, “민주적 통제를 잃은 검찰”을 누구도 되돌릴 수 없게 개혁하겠다고 했다. “부족하지만, 검찰개혁을 마지막 소명으로 삼겠다”던 ‘조국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시선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조 장관은 “가족 수사는 일체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는 청문회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검찰의 길과 법무부의 길이 다르다고 했던 개혁의 꿈도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몸소 세워야 한발이라도 나갈 수 있을 터다. 검찰도 성찰할 게 조 장관 못지않다. 왜 ‘정치 개입’ 시비가 계속됐는지, 또 피의사실 유포 지적이 나오는지 돌아볼 일이다.

문 대통령은 달리는 호랑이 두 마리의 등에 올라탔다. 법·제도를 개혁할 법무장관과, 그의 가족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이다. 개혁이 삐걱거려도, 처벌 받을 ‘위법’ 사안이 나와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와 레임덕에 맞닥뜨릴 수 있다. 겸허하고 낮은 자세로 갈라진 국론에 다가가야 한다. 젊은 세대와는 정의·공정사회의 꿈과 길도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구체적 그림과 시간표가 받쳐줘야 한다.


[경향 사설] 우려스러운 북·미 간 ‘협상 교착’ 책임 떠넘기기

북한과 미국이 북핵 해결을 위한 실무협상을 두고 두 달째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31일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 정제유 제품의 불법 환적 등에 연루됐다며 대만인 2명과 대만 및 홍콩 해운사 3곳에 대한 제재를 추가로 시행했다. 한·미 연합훈련만 끝나면 곧바로 북·미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과 전혀 딴판이다.

북·미가 최근 주고받은 발언을 보면 이것을 과연 실무협상을 앞둔 기싸움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북한은 외교수장 리용호 외무상에 이어 대미 협상 실무 총책인 최선희 제1부상까지 나서 미국을 비난했다. 최고위 협상가들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 또한 대북 제재를 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30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약점인 인권문제까지 건드렸다. 북·미가 이렇게 신경전만 벌이는 것은 북핵 문제 해법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서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체제 안전보장 등 카드를 제시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식이다. 북·미 모두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만 북한이 대미협상의 시한으로 설정한 연말까지 양측이 만날지조차 장담하기 쉽지 않다.

북·미가 당장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의 오는 9월 유엔 총회 참석을 취소했다고 한다. 북·미 외교수장이 만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 북·미 간에 시급한 것은 실무협상을 조기에 개최하는 것이다. 만약 북·미 실무협상 개최가 미뤄지거나 열려도 아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북·미관계는 언제든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의 대선이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다. 서로 대화 의지를 버리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남아 있는 동안 북·미는 협상을 시작해야 북핵 협상의 결정적 해법을 낼 수 있다. 북·미는 당장 소모적인 신경전을 중단하고 속히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동맹이라면서 잇따라 지나친 청구서 내미는 미국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서울 국방부에서 회담을 열어 안보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 회의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에 부담스러운 의제들이 줄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군불을 땠다. 앞서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한·일 갈등, 북핵 문제 등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을 공략해 방위비를 올리도록 한 뒤 여타 동맹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태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당혹스럽다. 미국은 한국이 기왕에 제공한 방위비분담금도 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을 ‘돈벌이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싶다.

미국은 또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부담스러운 요구들을 이번 회담에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긴장은 이란 핵 합의를 미국이 일방 파기하면서 촉발된 것이고, 유조선 피격사건도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에 한국군이 참여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 자칫 이란과의 관계 파탄은 물론 친이란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수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로 인해 한국이 미·중 간 군비경쟁에 휘말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중국은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며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반발해 북핵 문제 해결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천명해야 한다.

미국은 2011년 3월 이후 북한 방문 경험자의 미국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기로 했다. 테러방지법에 따른 행정절차라고는 하지만 그 대상에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축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동맹의 처지를 배려하기는커녕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미국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무엇을 위한 동맹’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경향 사설] 한·일 군사협정 파기까지 거론되는 현실과 미국의 침묵

정부 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정부는 (그동안) 내부적으로 GSOMIA를 연장하는 것으로 검토해 왔지만,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파기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한 뒤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GSOMIA 폐기’를 언급한 이후 정부 내에서 파기론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에서도 GSOMIA 파기를 선언하라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오는 24일이 재연장 시한이어서 협정 파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무리스럽지는 않다.

한국 측에서 협정 파기를 거론할 이유와 논리는 충분하다. 일본이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를 믿지 못하겠다며 경제 제재를 시작한 만큼 안보에 가장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하는 게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 협정을 체결한 뒤 한·일 양국 간 26건의 정보교류가 있었지만 계속 줄어 올 들어서는 단 3건의 정보 교환이 있었다. 정보 교류에 대한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폐기에 대한 부담이 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7일 이후 고시 결과를 통해 또다시 한국에 추가 보복조치를 내리면 국내 여론과 정부의 판단은 GSOMIA 파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GSOMIA를 파기하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협정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국 간 핵심적 이해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민감한 연결고리이다. 미국의 중재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로서는 유용하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위험하다.

이렇게 한·일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방관자적 태도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은 한·일 양국 갈등의 중재나 조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일본의 조치로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에도 문제가 생겨 미국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GSOMIA를 유지할 책임의 상당 부분도 미국에 있다. 이 협정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도 미국이 추구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본의 공격을 방관하는 처사는 실망스럽다. 미국은 한국의 GSOMIA 폐기를 만류하기에 앞서 일본을 향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이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미국에도 돌아가게 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