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 보이는 북·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언론사 사장단 오찬간담회에서 “북한은 대북 적대시정책의 종식, 그다음에 자신에 대한 안전보장, 그것을 말할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저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나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의 경제 발전 지원 등에 대해 큰 틀의 원론적인 합의는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남·북·미가 비핵화와 북 체제보장에 접점을 찾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거론했지만 회의적인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동결이나 핵확산 금지를 제시하는 선에서 협상하려 할 것이라는 의심이 제기됐다. 북한의 절대적인 핵 의존성을 고려할 때 핵포기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방안에 대한 인식 차도 관건이었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의미하는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비핵화 소요 시간도 1년 안팎의 단기간으로 잡고 있는 미국의 복안을 북한이 수용할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전언대로라면 비핵화를 둘러싼 이런 우려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핵개발의 명분으로 삼아왔고, 그 핵심으로 주한미군을 지목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 견제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다. 따라서 비핵화가 이뤄진다해도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 변화는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과거에도 남북 및 북·미 간에는 어렵게 합의해놓고 이행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 합의 자체가 틀어진 경우가 허다했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대가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현실적인 세부 방안들을 마련하고 긴밀히 조율하는 작업도 긴요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비무장지대를 비무장지대로

정부가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때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과 중화기를 철수하는 등 실질적인 비무장화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DMZ의 실질적인 비무장화도 관심사인데 실무회담에서 결론 내기 어렵다”고 밝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비무장지대 중화기 및 병력 철수방안이 합의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게 된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를 예비하는 토대가 구축되는 의미도 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 이내 구역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해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를 금지했다. 비무장지대 출입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 목적으로 한정했고, 출입자는 각각 100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협정에도 아랑곳없이 남북이 진지와 초소, 철책 등을 구축하고 중화기를 반입하면서 ‘중무장지대’가 됐다. 남북은 요소요소에 전방감시 초소(GP)를 설치하고 수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반입무기는 유사시 방호를 위한 개인화기로 한정돼 있음에도 남북은 박격포와 고사총, 중기관총 등 각종 중화기를 배치해 놓고 있다. 게다가 비무장지대에는 100만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인·대전차 지뢰가 매설돼 있다. 2015년 8월에는 추진철책 통로에 매설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육군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기도 했다.

남북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군사적 신뢰조성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원칙에 합의했지만 병력과 중화기 철수 등은 논의하지 못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당시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방안을 제안했지만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다만 개성공단 조성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면서 해당 구역 비무장지대의 일부 구간에서 남북이 병력과 중화기를 동시철수한 전례가 있다.


[경향 사설] 일본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진전되고 있지만 일본의 처신은 탐탁지 않다.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이른바 ‘재팬패싱’ 우려가 커지면서 아베 신조 총리 등이 전방위 외교에 나섰지만 무리한 요구와 부적절한 언동으로 되레 반감만 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전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답이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불과 3주일여 남은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은 외교 무례에 가깝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언동도 문제다. 그는 지난달 31일 “북한이 새 핵실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은 거짓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38노스’가 “그런 움직임은 없다”고 발표하자 “북한에 대해 공개된 정보를 보면 핵실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며 물러섰다. 증거도 없이 북핵 우려를 키우는 무책임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중거리미사일 포기 약속을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이나 무작정 북한에 북·일 정상회담을 타진한 것도 정상적인 외교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한반도 주변국으로서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하지만 실제 처신을 보면 그 반대로 보인다. 이런 행태는 일본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팬패싱만 해도 아베 정권이 국내 ‘극우정치’에 북핵 문제를 활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다 남북 및 북·미관계 급진전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성찰하지 않고서는 재팬패싱 현상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중시하는 납치 문제도 비핵화의 진전 여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침 고노 외무상이 다음주 한국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고노 외무상은 서울에 와서 한반도 평화가 일본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깨닫기 바란다.


[경향 사설] 북 최고위급의 중국 방문을 주목한다

북한 최고위급이 27일 중국을 방문했다. 최고위급이 누군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의 철저한 보안과 경호로 미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추정된다. 누가 됐든 역사적인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최고위급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중 사이의 관계개선이 이뤄지는 것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인 신호다.

한반도 정세 진전을 위해서는 주변국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특히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환영했으나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이 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상황의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관계 개선은 이런 중국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고 한반도 정세 진전 작업의 협조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북·중관계는 김정일 시기까지는 혈맹 수준이었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계속 악화돼 왔다.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는 중국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이 핵개발에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 적극 가담하면서 사이가 더 벌어졌다. 양국은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방하더니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북한과 중국 모두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고강도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 상황이 악화된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지원은 절실하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담판을 앞둔 김 위원장에게 중국만 한 버팀목도 없다. 중국 역시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동북아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북·중관계 개선의 여건도 조성된 상태다. 이는 시 주석이 지금까지 내건 북·중관계 복원의 조건에 부합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혹은 측근을 통해 시 주석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면 북·중 정상회담 개최의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은 단 한 번의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담이 성공적이었다 해도 평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의 협조도 필요하다. 북·중관계 개선 움직임이 북·일, 북·러 관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은 베트남인 학살 사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2~24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이번 방문에서 문 대통령은 쩐 다이 꽝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주요 지도자들과 만나 수교 25주년을 맞은 양국의 발전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아세안 10개국 중 교역·투자, 개발협력 1위 국가이자, 신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 국가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불행한 과거사가 놓여 있다. 베트남 전쟁기간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2만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그만큼 한국군의 피해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도 컸다. 참전단체들은 학살 자체를 부인하거나 작전수행 중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지만 1968년 3월 하미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의 경우 희생된 135명 중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다. 갓난아이까지 무참하게 희생됐다면 정당한 작전수행이라고 볼 수 없다.

역대 정부는 간접적인 사과 혹은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2004년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영상축사에서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사과 발언을 하지도 않았다.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역사의 가해자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마주하기 싫은 과거이지만 ‘뚜껑을 덮어둔 채’ 외면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문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군 장성 출신인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20일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면서 “부끄러운 민낯이라도 떳떳하게 밝히고 사과·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베트남 학살 문제를 외면한 채 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


[경향 사설] 미국은 북한과 진지한 대화할 준비됐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가능성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표명 등 한국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 트위터로 이 같은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우리는 뭔가를 할 것”이라며 “필요한 어떤 길이라도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북특사단 합의에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다. 머지않아 북·미대화가 열릴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북·미대화의 환경은 최근 한 달여 사이에 확 바뀌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강경대치가 이어져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서 기류가 달라지더니 대북특사단을 만난 김 위원장의 대담하고 전향적인 입장 선회로 외견상 대화의 걸림돌은 제거된 상태다.

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을 통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며 이는 변함이 없다”면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온 미국의 입장에 부합한다. 김 위원장은 또 대화가 지속되는 한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포함한 전략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역시 ‘북한이 일정기간 동안 전략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이를 실천하면 대화한다’는 미국의 대화 조건에 들어맞는다.

여기에 대북특사단은 “김 위원장이 미국에만 전달해달라는 입장이 더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북·미대화는 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 큰 결단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 없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할 준비가 됐느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대화를 할 만한 인적·물적 여건이 구비돼 있지 않다.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대북접촉 경험과 안목을 갖춘 인물들은 실무에서 배제되거나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오랫동안 대북접촉을 해온 조지프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마저 최근 사임했다. 더구나 북·미 간 오랜 강경대치로 불신이 가득하고 6자회담 같은 대화틀도 마련돼 있지 않다. 대화준비를 가장 서둘러야 할 쪽은 미국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의 최고 당사국 가운데 하나다. 남북이 어렵게 만들어준 떡을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는 나라가 아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도 미국은 북·미대화의 여건을 조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특사단의 김 위원장 면담 결과에 대해 남의 일처럼 논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공은 미국에 넘어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공허한 원칙론에서 벗어나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구체적인 북핵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대화 돌파구 여는 대북특사를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곧 대북특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김여정 특사의 답방 형식을 빌려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시기에 논의했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 카드는 시의적절해 보인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 북한과 미국의 북핵 대화 의지는 확인됐지만 양측이 대화의 조건을 두고 다투는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이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대화여야 한다고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이에 반대하는 상황이 길어질 경우 자칫 대화 모멘텀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북·미 양측의 의견이 정반대로 엇갈리는 한·미 군사훈련 문제도 만만찮은 장애 요인이다. 평창 패럴림픽이 끝나는 오는 18일까지 의미있는 북·미대화가 열리지 않는다면 북핵 정세는 ‘평창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북특사는 남북 교류의 확대·심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남북이 합의했으나 열리지 않고 있는 군사당국회담부터 열고, 당국 간 교류뿐만 아니라 민간 교류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의 추동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권은 대북특사보다 대미특사를 먼저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중요한데 양국 사이에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 이견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대통령 간 자주 통화하고 참모들이 수시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굳이 대미특사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 대북특사의 역할은 막중하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문 대통령의 복안과 미국 조야의 입장 및 분위기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견해를 듣는 것이 특사의 일차적인 임무가 될 터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한반도 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결단을 내리도록 김 위원장을 설득하거나 담판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런 점들을 세심하게 고려해 대북특사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대화의 돌파구를 여는 대북특사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평화올림픽 끝나지 않았다, 북·미는 대화의 장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정작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25일 성명을 내 “우리는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길을 따르는 첫걸음을 의미하는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미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미국 입장을 전한 것이다. 미국이 김영철의 발언에 즉각 반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의 발언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의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과 백악관이 문 대통령을 매개로 높은 수준의 간접 대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북·미 양측이 간접 대화를 통해 대화의 필요성과 상대의 대화 의사를 확인했으니 이제 직접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아직 대화의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 대화한다고 고집하고,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의 의중을 타진하는 탐색적 대화조차 성사되기 어렵다. 북·미는 평창 올림픽이 마련한 대화의 동력을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한다면 상황은 ‘평창 이전’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미 사이에 대화 분위기 외에 초강경 대치 국면도 엄존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이 최근 해상차단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독자제재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자제재 발표 후 “만약 북한이 비핵화로 가지 않으면 매우 거친 2단계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은 “어떤 봉쇄도 전쟁으로 간주하겠다”고 맞섰다. 대결이냐, 대화냐 중대 기로에 선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대결을 피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북핵 당사국들의 과제이자 의무다.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 마주 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대화도 하기 전에 최대 목표치를 성급히 내세우며 상대를 물러서게 해서는 안된다. 한국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닿지 않는 손을 내밀면서 서로에게 더 다가오라고 주문만 하는 것은 문제를 풀려는 자세가 아니다. 북·미 모두 지금보다 서로에게 더 적극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26일 밝힌 대로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한국도 북·미 양측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수준으로 입장을 좁힐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은 끝났지만 평화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향 사설] 북 김영철·리선권 방남, 평창 이후를 준비해야

북한이 오는 25일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를 파견키로 한 바 있어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이어 폐회식에도 북·미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하게 됐다. 북한의 김 부장 파견은 남북관계 소통채널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김 부장은 남한의 국가정보원장에 해당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표단에 자신의 측근을 낙점한 것은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 대표단을 폐회식과 별도로 회동하는 등 최소한 2차례 이상 만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북 대표단은 김 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거듭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대표단에 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포함됨에 따라 남북이 군사당국회담 개최 문제는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 교류에 대한 실무 논의가 가능해졌다. 북한이 2차례나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한이 답방 형식의 고위급 대표단이나 대북특사를 파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점도 고무적이다.

다만 북 대표단이 방남 기간 동안 미국 대표단과 접촉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김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은 모두 대남통인 데다 이방카와 격도 맞지 않다. 청와대도 이를 의식한 듯 “폐회식을 계기로 북·미가 접촉할 계획이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북·미 접촉이 불가능해졌다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이방카의 방한을 수행하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담당관이 2014년 케네스 배 구출을 위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과 접촉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조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하는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지난 10일 김여정-마이크 펜스 회동을 한국이 주선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은 힘을 합쳐 ‘평창 이후’에도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다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이라는 대결 구도가 재연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경향 사설] 아이스하키 단일팀, 당신들은 이미 승자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선수들이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예선이 14일 일본전을 끝으로 예선리그를 마무리지었다. 앞으로 5~8위 결정전 2경기가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만으로도 잘해냈다고 손뼉 쳐줄 만하다. 국가 간 실력차가 큰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세계 3~4부 리그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은 스위스와 스웨덴 등 세계 톱클래스팀과도 용기있게 싸웠고, 일본전에서는 역사적인 골까지 넣었다.

이번 단일팀은 얼어붙어 있던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최종 결정(1월20일)과 북한 선수 12명의 합류(25일) 등 일사천리로 단일팀이 구성되자 20~30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 여론은 싸늘해졌다. 북한 선수들을 다 차려낸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온 불청객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알고 있던 북측 선수들도 세라 머리 단일팀 감독과 남측 선수단의 눈치를 몹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감독이 ‘원팀’을 강조하면서 차별 없이 합동훈련을 하고, 따로따로 설치했던 라커룸도 함께 쓰도록 했다. 양측의 임원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남북 선수들 역시 서로 생일잔치를 해주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선수들끼리 경포대 해변을 거닐고, 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았다. 남북한 코치들은 3쪽짜리 아이스하키 용어집을 만들어 소통했다. 혹여 선수단 화합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돌출되면 앞다퉈 한목소리로 지켜주었다. 머리 감독의 말마따나 선수들을 끈적끈적하게 결합하는 ‘팀본딩’을 이룬 것이다. 남북한 응원단도 힘을 보탰다. 우려 속에 출발한 단일팀이 단 20여일 만에 이룩해낸 작은 통일이다. 외신들도 스위스·스웨덴 등 강호와 맞선 단일팀에 ‘경기는 졌지만 평화가 이겼다’는 평가를 내렸다. 안젤라 루기에로 IOC 위원(미국)은 “단일팀 선수들은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한국 갤럽 조사에서 단일팀 구성에 40% 대 50%로 부정적이던 여론도 경향신문의 설특집 여론조사 결과 긍정적(56.8% 대 38.7%)으로 바뀌었다. 타의로 만들어진 단일팀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한데 모은 ‘선수들의 단일팀’이 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은 1991년 지바 탁구선수권대회 때의 단일팀이 46일간이나 한솥밥을 먹고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당시 현정화 선수는 ‘이 기분 뭐지.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지’ 하는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남북 간 상황은 그때보다 열악하다. 더 이상 단일팀 구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남북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평축구 재개’를 이야기했다니 무척 고무적이다. 아이스하키의 경우도 남북한 정기합동훈련이나 교류전 등으로 모처럼 조성된 단일팀 분위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한 자매처럼 지냈다가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감정적 단절을 더 이상 선수들에게 안겨줘서는 안된다.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돌발변수의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핑퐁외교가 중국과 미국 관계를 풀어줬듯이 남북 스포츠 교류 역시 한반도 긴장을 녹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문재인·김여정 면담, 대화의 문 활짝 열어야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9일 남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은 김 제1부부장 외에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용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KTX를 이용해 평창으로 이동,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여동생이자 권력실세인 김 제1부부장을 보낸 것은 현실적으로 동원 가능한 최대의 카드를 던진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은 사실상 김 위원장의 특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방문은 평창 올림픽의 평화올림픽 성공 개최에 도움을 주고,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미국 등 대외관계 개선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 참석을 계기로 큰 틀의 국면전환을 시도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남한 보수층이 주장하는 대로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고 한·미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김 제1부부장까지 보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김 제1부부장 일행은 11일까지 남한에 머물며 각종 행사를 소화한다. 특히 10일 문재인 대통령 주최 오찬, 북한 예술단 서울공연 관람 등 문 대통령과 적어도 두 차례 이상 만난다. 이 과정에서 김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친서나 구두메시지를 전할 가능성도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또한 문 대통령의 생각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남북 정상이 김 제1부부장을 매개로 간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핵 위기 속에서 이 같은 남북 정상 간 소통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한반도 정세의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평소 소통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고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는다면 최소한 군사적 돌발상황의 예방이 가능해진다. 상호 불신이 깊은 미국과 북한 간 대화를 중재할 수도 있다. 김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간 메신저라면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김정은 위원장 간 메신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단단히 다져놔야 한다. 다시는 외부 변수에 의해 남북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이번에 마련된 남북 정상 간 소통 채널을 유지·발전시키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반북한 이벤트 집중하는 펜스, 평창에는 왜 오나

평창 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8일 한국을 방문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 일정이 북한압박에 집중돼 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친을 초청해 올림픽 개회식에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방한 중에는 천안함기념관을 방문하고, 서울에서 탈북자들과의 간담회를 연다. CNN은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기간 중 북한이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막아내며 김정은을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펜스의 방한은 미국을 대표해 올림픽을 축하하러 오는 게 아니라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유도하려는 정치 이벤트를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웜비어 부친의 개회식 참석은 그 자체로 정치적 시위나 다름없다. ‘어떠한 시위 또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전도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금지된다’는 올림픽 헌장 50조에도 어긋난다. 미국 청년 웜비어를 불법 감금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의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하지만 이를 굳이 올림픽 현장에서 부각하려는 것이 온당한 처사일까.

국제사회는 지난해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전후로 적대행위를 하지 말자는 유엔 결의를 채택했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합동훈련을 중단하기로 것도 이 결의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 적대행위는 계속하겠다는 태세다. 주최국인 한국으로서도 불편하고 불쾌하다. 이미 북한은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아왔고, 미국이 부과하는 별도의 독자제재까지 받고 있다. 올림픽 기간에 특별히 더 북한을 압박하고 자극할 이유가 있는가.

미국은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고,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매력공세’에 빠져 대북 제재 고삐가 헐거워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 이상으로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서 보듯 평균적인 한국민의 대북감정도 썩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와 전쟁방지를 위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통해 남북과 북·미가 대화에 나서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지가 있다면 펜스는 올림픽 기간 중 자극적 언행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기 바란다.


[경향 사설] 코피 터뜨려 북핵 해결한다는 황당한 미국 구상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지명철회를 계기로 ‘코피(bloody nose) 전략’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핵시설 등을 제한적으로 정밀 타격하되 동시에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집결시켜 ‘북한이 보복하면 완전히 섬멸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북한의 대응을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먹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한 방 쳐 코피를 터뜨리면 전의를 상실할 것이라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빅터 차 석좌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구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우려를 표명했다가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신보도들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담당자들이 빅터 차 석좌에게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대피를 도울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질의하자 그가 군사공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빅터 차는 북한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어서 엄청난 재앙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빅터 차는 워싱턴포스트 지난달 30일자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대북 공격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핵 프로그램을 지연시킬 뿐 위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알려진 것 이상으로 대북 군사공격을 검토해 왔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북 강경파로 손꼽히는 빅터 차도 반대할 정도로 무모한 전략이 미국 수뇌부에서 논의돼 온 것이다. 제한적 정밀 타격인 ‘코피 전략’은 북핵 시설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일시적으로 핵개발을 막을 수 있다 해도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침략을 막는 길은 핵무장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해 핵무장을 더욱 촉진하는 효과를 낸다.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겁을 먹고 얌전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한반도 전역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을 전면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동맹국인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도박을 미국이 구상해 왔다는 점은 섬뜩하다.

한국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대화보다는 군사모험주의에 경도돼 있다. 미국 고위인사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올림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다. 이 엄중한 시기에 주한 미국대사라는 한·미 간 핵심 소통채널의 단절도 방치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설마 코피 전략이 미국의 안보를 더 크게 위협하는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코피 전략을 즉각 폐기하고 대화를 준비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검찰의 낡은 조직 문화가 낳은 성추행과 집단 침묵

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고위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모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서 검사는 이를 검찰 내부망에 실명으로 올린 데 이어 TV 뉴스에 직접 출연해서 공개했다. 서 검사는 이후 소속 검찰청 간부를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어떤 사과도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2014년 사무감사에서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2015년에는 원치 않는 지방발령을 받았다고 했다. 서 검사는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앞장서 덮었다”고도 했다. 시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정의 구현을 사명으로 하는 검찰 내에서 성범죄가 자행되고, 이를 덮기 위해 인사권까지 부당하게 행사했다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사자인 안 전 국장은 “오래전 일이고 문상 전에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고 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케케묵은 변명 수법이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가 지금 가당키나 한 태도인가. 최교일 의원은 “성추행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고, 덮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과연 그런지 두고 볼 일이다. 파문이 커지자 법무부와 검찰은 30일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하 권력관계에서 일어난 명백한 권력형 성범죄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검찰 내 성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후배 여성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면직처분됐고, 2015년 서울북부지검에서도 부장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껴안았다가 징계를 받았다. 2014년에는 목포지청 검사가 동료 여검사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의 성추행으로, 2011년에는 현장 실무교육 중이던 여성 사법연수생을 성추행한 검사들이 대거 징계를 받았다.

검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검사 신분이 곧 권력이라는 그릇된 인식에다 과거 접대관행에서 비롯된 술자리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주요인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검찰은 적격심사와 감찰을 강화하겠다거나 무슨 개혁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검찰 내부 비판을 계속해온 임은정 검사는 “괴물 잡겠다고 검사가 됐는데, 우리(검찰)가 괴물이더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말 성폭력 피해자의 연대를 뜻하는 ‘미투(Me too)’ 캠페인이 전 세계로 번져갔다. 강력한 남성 중심 권력구조 탓에 숨죽여왔던 이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잇따라 나선 것은 성폭력 문제는 공론화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 검사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8년간 침묵을 지켜야 했다. 다른 여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서 검사는 “우리 스스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된다면 하는 소망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용기에 찬사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그의 용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성폭력과 성희롱을 뿌리 뽑는 데 큰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경향 사설] 북한 평창 참가 방법 확정, 냉전 보수에 고함

남북은 17일 고위급 실무회담을 열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 규모를 확정했다. 남북은 개회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데 합의했다. 북측은 회담에서 패럴림픽에도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알려왔다. 이로써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위한 협의가 모두 마무리됐다. 지난 17일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실무접촉-고위급 실무회담의 숨가쁜 일정을 진행하면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한 계획을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남쪽 내부다. 냉전 보수세력의 트집 잡기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기 사용에서부터 남북 단일팀 구성, 예술단 공연, 북한 선수단 체류비용 부담 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한국의 정체성을 이유로 한반도기 사용을 문제 삼고, 예술단 공연을 두고는 북한의 체제 선전장이 될 수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 하나같이 사실과 다르거나 냉전시대의 대결논리를 따르는 것들이다. 예컨대 한반도기는 국제체육행사에서 10차례 넘게 사용돼 남북화해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평창 올림픽에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평화올림픽의 의미를 살려줄 것이다. 특히 남북이 공동입장하는 데 모두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나 다름없다. 북한 예술단의 남한 내 공연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과거 경험을 활용하면 문제될 게 없다.

보수세력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절됐던 남북교류와 관계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핵 대화로 발전할 수도 있다. 정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깃장을 놓는 대신 환영하고 협력하는 게 맞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한반도 평화의 행사를 대결과 반목의 무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반평화, 반통일 집단을 넘어 북핵 해결 반대 집단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경향 사설] 민주화의 완성을 위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날은 31년 전 22살 청년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날이다. 그는 영장 없이 불법체포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수배 중인 선배 은신처를 대라는 추궁과 함께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당시 검찰과 경찰, 안기부는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영화 <1987>에 나온 내용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가 박종철군 31주기에 맞춰 그간 정권의 도구 노릇을 했던 국가 권력기관을 시민을 위한 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개혁방안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조 수석은 “민주화시대가 열린 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다”며 “촛불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말했다.

개혁안은 권력기관이 갖고 있던 기존 권한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 방안대로라면 최대 수혜자는 경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기존 조직과 권한은 그대로 둔 채 수사권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게 된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공룡기관이 탄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올 만하다. 청와대가 밝힌 자치경찰제 도입과 수사·행정경찰 분리, 경찰위원회 실질화 등 권한 분산과 견제장치 외에도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의 큰 줄기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담긴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공수처 신설 전까지는 경찰이 검사를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2차·보충적 수사권을 갖게 되며 직접 수사는 경제범죄 등으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경찰개혁위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보완수사 요청 등 사후통제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앞으로 보다 정밀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정원은 국내정치·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시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수준의 전문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새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비로소 권력기관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종합 청사진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청와대 개혁안은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사항이 대부분이다. 이를 주도할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여야 간 견해차가 큰 탓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공수처에 대해 ‘옥상옥’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도 안보수사 역량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의 반대가 거듭되면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다. 사개특위는 6월 말이 활동 시한이다. 정치권이 조만간 6월 지방선거 정국으로 빨려 들어갈 경우 정상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제는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권력기관의 기본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기관을 정치와 단절시키고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것은 온 시민의 염원이다. 민주화 30년이 지나도록 이를 완수하지 못한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권력기관 개혁이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렵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협치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야당은 시민 다수가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무작정 반대는 시대착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권과 편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사안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개혁을 이뤄낼 힘은 시민에 있다.


[경향 사설] 평화의 문 여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기대한다

북한이 남측 정부가 제의한 지 사흘 만에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을 수락했다. 남북은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남측의 회담 제의-남북 연락채널 재개-북측 회담 수락 등 매일 진전된 절차내용을 주고받으며 5일 만에 속전속결로 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 모두 대화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번 고위급 회담의 의미는 중대하다. 남북당국회담으로는 2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지만 본격적인 대화로 본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9년 만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가 없는 시대에 남북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신뢰를 잃고 적대감을 쌓아왔다. 그 결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급기야 전쟁위기에까지 몰렸지만 탐색적 의미의 소통조차도 불가능했다. 이번 회담은 북측과의 공식 소통 채널이 확보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이 채널은 비단 남북 간의 갈등 관리만이 아니라 향후 북·미관계,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정세의 향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회담 성사를 위해 진두지휘하다시피 하며 힘을 실어준 것도 남북대화가 한반도 평화를 좌우하는 열쇠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담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길은 무엇보다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무리하게 남북 간 현안을 일시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관계는 이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도 연계된 복잡한 문제로 변했고 그만큼 국제화되었다. 국제사회를 이해시키며 실행 가능한 것부터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평창 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 논의를 순조롭게 이끄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회담의 일차적 목표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대표단 구성 등 회담의 실무적인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자고 제의한 것이 눈에 띈다. 회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소한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평창 올림픽 참가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이산가족 상봉이나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 등 다른 상호관심사로 회담의 의제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이 반드시 후속회담으로 이어지도록 모멘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 개최로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운전석에 앉게 되었다. 김 위원장 역시 말로만 외쳐온 한반도 평화 의지를 실천할 기회가 왔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평화의 문을 여는 고위급 남북당국회담을 만들어가기 바란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남북대화 신년사를 환영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를 위해 남북이 노력해야 한다며 지난해 7월 남측이 제안한 군사당국 간 회담에 응할 가능성도 비쳤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의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겠다며 남북교류 재개 방침도 내놨다.

지난해 신년사의 남북관계 개선론이 원론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 신년사는 구체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올해부터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처럼 남북대화 의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의 대화 의사는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구상일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한·미 간 북핵공조를 흐트러뜨리려는 책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화전양면식 신년사’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남북관계는 우리의 필요와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북·미 간 긴장이 전쟁으로 치닫지 못하게 막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남북대화가 이 과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 북한에 대북 군사공격을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 때문에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자는 휴전결의를 이끌어냈고, 북한에 올림픽 참가를 제안하면서 분위기를 다져왔다. 그런 노력에 북한이 화답한 셈이고, 이제야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올라 실력을 보일 시기가 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설득해 북·미대화로 이끌어낸다면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동결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국과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동맹’이냐, ‘민족’이냐는 식의 흑백논리가 부각되면서 남남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보수정부 10년을 거치며 생긴 관성을 탈피해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디딤돌이 되도록 상상력과 지혜,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도 모처럼의 남북대화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 달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체육회담이 열려 남북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을 희망한다.


[경향 사설] 세계적 갈등 부추기는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18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질서를 흔드는 ‘수정주의 국가’라고 규정한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중국을 적극 견제함으로써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해 나가겠다는 뜻이 담긴 보고서다. 보고서는 미 본토 및 미국민 보호, 미국의 번영 증진, 힘을 통한 평화 유지,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을 4대 핵심 이익으로 꼽았다.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은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열강들 간 힘의 대결이 펼쳐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위해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읽힌다. 뉴욕타임스가 30년간 휴지기를 보낸 초강대국들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고 분석한 것은 적절한 묘사다.

트럼프의 국가안보전략은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와 확연히 다르다. 오바마 행정부는 다자주의 안보 체제와 협력을 중시하고 중국과도 파트너십을 강화하려 했던 반면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 국가로 보는 대결주의를 표방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몽’을 내세우며 서방과 체제경쟁에 나설 뜻을 밝힌 것에 영향을 받은 면도 있어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해서도 오바마 보고서의 경우 7차례 언급할 정도로 중시한 반면 트럼프 보고서는 한차례에 그쳤다. 출범 초기부터 드러났던 트럼프 행정부의 ‘갈등 유발적 독단주의’가 앞으로 국제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걱정이 앞선다.

조화와 협력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트럼프 행정부가 깨뜨린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이미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파기한 데 이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규정해 지구촌의 화약고인 중동에 기름을 부은 상태다.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된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모든 결정을 백지화하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 것도 미국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는 압도적인 힘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제할 옵션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대북압박 전략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의 해법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격돌할 장소는 아무래도 동북아시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미국은 이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두 패권국 간의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이 전략적 사고, 균형 감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 사설] 한·중 정상은 사드를 넘어 협력 강화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세번째 정상회담이 14일 열렸다. 두 사람은 한·중관계 정상화, 북한 핵문제, 경제·문화 협력 방안 등을 놓고 예정시간을 1시간여 넘기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절대 허용할 수 없으며 북핵문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또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며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등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다양한 소통수단을 활용해 ‘핫라인’을 구축해 긴밀한 소통을 해나가기로 했다. 양국 간 협력을 정치, 외교·안보, 정당 간 협력 등 분야로 확대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고위급 전략적 대화를 활성화하기로 한 것도 주목된다. 시 주석은 “지금 양국관계는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추동하고 계속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확한 발전 궤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요청했고, 시 주석은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번 회담은 사드 갈등을 계기로 바닥을 찍었던 양국관계가 복원되는 첫걸음을 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날 서민식당에서 중국식 빵과 두유인 유탸오(油條)와 더우장(豆漿)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베이징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숙 여사는 중국 전통악기 ‘얼후’ 교습 체험을 하며 중국인들에게 다가갔다. 으레 있는 외교 이벤트이지만 이런 자그마한 노력들이 상대국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이 사드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베트남 정상회담 때에 비해 비록 목소리를 낮췄지만 “지금 모두가 아는 이유로 한·중관계의 후퇴를 경험했다”며 “한국이 계속 이 문제에 대해 타당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짚고 넘어간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시 주석이 문 대통령의 중국 도착 시 베이징을 비운 데다 공항 영접에 급이 낮은 차관보를 내보낸 점, 국빈방문임에도 정상회담 공동성명은커녕 공동언론발표문조차 채택하지 않은 점은 양국관계 복원이 녹록지 않음을 일깨운다.

이런 현실에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양국이 꾸준히 노력하는 길이 유일한 해법이다. 문 대통령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가 됐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사드 갈등이 한 차원 성숙된 관계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경향 사설] 북핵 대화 전기 마련하는 한·중 정상회담 돼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3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방문한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현안을 논의한다. 한·중 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 해소와 경제협력 복원, 양국관계 정상화 문제 등 녹록지 않은 현안이 산적하다. 하지만 최대 현안은 북핵 문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화성-15형’ 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 후 북핵은 중대 기로에 봉착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한 채 제재와 압박 강화로 맞서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전쟁론과 선제타격론이 재등장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하루빨리 북한과 미국의 강경 대치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한·중 정상회담이 그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마침 정상회담이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 이후 열리는 만큼 그 결과를 토대로 상황을 평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 초청은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항의하는 차원도 있겠지만 외교적 고립의 탈출구를 모색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급한 것은 북핵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또다시 위기로 치닫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한·중 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정상은 우선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핵 당사국인 한·중 양국의 정상이 이를 북핵 대응의 제1원칙으로 천명하는 것은 북핵 국면 전환의 시점에서 큰 무게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다고 당장 강경 대치 국면이 대화로 바뀔 수야 없겠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두 정상의 평화적 해결 원칙 천명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기조와 충돌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중 양국의 미묘한 북핵 입장차도 정상회담의 논의 과제다. 화성-15형 발사 이후 한국이 국제사회의 압박 기조에 동조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강화 문제를 거론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로 인해 긴밀한 북핵 공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연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어느 때보다 양국 간 소통이 중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김관진·임관빈 잇단 석방, 기로에 선 적폐청산 수사

이명박 정부 당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이어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지난 24일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법원은 지난 11일 검찰이 임 전 실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나 이번 구속적부심에서는 “일부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석방했다. 법원은 또 25일 검찰이 문재인 정부 인사인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를 향하던 ‘댓글 수사’와 전 전 수석의 뇌물수사가 모두 어려움에 봉착하게 됐다.

검찰은 임 전 실장이 석방된 데 이어 전 전 수석의 영장까지 기각되자 “(법원의 판단을)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구속됐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를 구속적부심이나 영장심사 과정에서 석방하는 것은 법원의 고유 권한이다.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구속영장을 기각했거나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주었다고 해서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뿐이다. 전 전 수석의 경우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다만 이번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관련자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며칠 지나지 않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주는 것은 시민의 눈에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은 이들을 구속한 뒤 국방부 사이버사 증원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를 벌일 예정이었다. 비록 수사에 일시적으로 걸림돌을 만났지만 검찰은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치보복을 주장하는 보수 야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이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이번 수사는 적폐청산은 물론 민주주의와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공정성이나 적법성 논란이 없어야 한다. 한풀이식 수사를 벌이다 무죄로 마무리된 과거의 전 정권 비리수사와 궤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구속적부심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증거를 보강하고 법리를 구성할 기회로 삼기 바란다.


[경향 사설] 갈등 피한 미·중, 이젠 북핵 문제 진전시킬 대안 모색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위기, 무역 불균형, 미·중관계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트럼프는 양국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 “미·중 무역이 일방적이지만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 자국민들을 위해 이익을 취한다고 다른 나라를 어떻게 비난하냐”고 말했다. 그는 “시 주석과 과거 미·중 무역 상황을 토론한 적이 있으며, 절실한 행동을 취해 중국 시장 진입 문제 등 무역 왜곡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 지적재산권 보호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상부상조 관계를 부각하며 무역 갈등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 2535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제품을 구매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두 정상은 또 향후 외교·안보 대화와 전면적인 경제 대화, 법 집행 및 사이버보안 대화, 사회·인문 대화 등 4대 고위급 대화 체계를 지속하기로 하는 등 상호 협력적인 미·중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발표한 회담 내용만 보면 두 정상의 만남은 갈등보다 소통·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4월 미국 플로리다에서의 첫 만남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북핵 해법과 관련해 트럼프는 시 주석을 몰아붙이지 않았다. 시 주석을 추어올리며 은근히 중국 역할을 강조하는 접근법을 택했다. 트럼프는 “중국은 이 문제를 쉽고도 신속하게 풀 수 있다”면서 “시 주석이 그 일을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실천하는 데 동의했고, (북한이) 경솔하고 위험한 행동을 포기하도록 대북 견제와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안보리 결의를 엄격하고도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설명했다.

트럼프가 매우 부드러운 태도를 드러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중국이 2535억달러어치를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계약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당초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 대가치고는 괜찮은 거래라고 판단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일본·한국·중국을 순방한 주요 목적의 하나는 중국에 대북 제재 강화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일 미국의 압력에 중국이 소극적으로 반응할 경우 미국 독자적인 북핵 해결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중국의 미국 제품 대량 구매라는 실리를 얻는 데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대북 제재 강화 원칙에 합의하고도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 앞에서 멈춰 선 형세가 됐다.

트럼프는 동북아 3국 순방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에 의탁하거나,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만으로는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3국 순방을 정리하면서 북핵·미사일 문제의 접근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베이징 방문에도 중국의 대북 접근법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대화와 제재의 병행으로 북한의 위험한 도박을 막는 것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 방한, 전쟁 막고 평화의 길 여는 전환점 돼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광화문광장 인근에서는 트럼프를 환영하고 반대하는 여러 단체의 깃발이 벌써 나부끼기 시작했다. 경찰은 트럼프 방한 기간인 7~8일 청와대 인근 집회·시위에 금지·제한통고를 내렸다. 새 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어제는 미 전략폭격기 B-1B 편대의 한반도 출격을 미측보다 앞서 편대의 구체적인 비행경로까지 공개해가며 비난했다. 양측 간 전쟁하자는 말이 예사롭게 오가는 상황 속에 긴장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다.

트럼프의 방한에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자유다. 누구도 시민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막을 이유가 없다. 경찰은 트럼프가 광화문광장 집회 현장을 지나갈 것에 대비해 광장을 에워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빈에 걸맞은 예우는 당연하다. 하지만 시민의식을 무시하는 과도한 대응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시민도 진보든 보수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급한 것은 전쟁을 막는 일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우발적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에 하나 북한이 재래식 공격을 하면 첫날 남한에서만 3만~3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미 의회조사국이 지난주 보고서에서 밝혔다. 피땀으로 일군 경제발전 성과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종교·시민사회 원로 24명이 그제 시국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호소했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하고 민간과 정부 모두가 합심해 전쟁을 막자는 원로들의 목소리를 한낱 기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미 정상이 할 일은 분명하다. 북한을 향해 강력한 군사행동 경고만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어제 “전쟁 없이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기대를 갖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6일), 한·미(7일), 미·중(8일) 등 아시아 정상들과의 연쇄회담을 통해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북핵 해결책을 만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초당적 태도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트럼프 방문을 한반도 정세의 전환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전쟁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평화의 문을 열기 위해 여야, 당파, 진보·보수를 넘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경향 사설] 촛불혁명 1년, “촛불은 계속된다”

지난해 10월29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3만여명의 시민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다.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총 23차례에 걸쳐 1700만명의 시민이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헌법과 법률을 짓밟은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헌법 제1조에 따라 퇴장을 명령했다. 세계가 경탄스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은 촛불을 주도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을 2017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재단은 “한국 촛불집회는 모범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시민의 의지와 헌신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깨어있는 시민의 각성과 촛불혁명의 시대적 열망으로 탄생했다.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넘어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 체제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미래로 가기 위한 대변혁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퇴진행동이 지난 2월 발표한 100대 촛불개혁과제 중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이재용 등 재벌총수 구속’ ‘검찰의 청와대 편법근무 방지’ 등 2개에 불과하다. 국회 입법이 필요한 69개 과제는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 교체 6개월이 지났지만 재벌·공안통치기구· 선거제도· 언론개혁·노동기본권·소수자 권리·복지 공공성 강화 등 촛불이 요구한 과제는 제자리걸음이다.

대통령 한 사람 물러났다고 해방 이후 누적된 적폐가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각 분야의 적폐청산 활동을 정치보복으로 트집 잡는 수구세력의 ‘적폐연대’는 도를 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사법절차에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수구세력은 블랙리스트·언론장악·여론조작 등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뿌리째 흔든 정치공작 실태가 구체적 물증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진상조사 활동을 정치보복으로 폄훼하고 있다. 이미 유죄판결이 난 댓글공작에 대해서도 누구 한 사람 고개 숙여 사죄한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과 실질적 공범인 친박계는 석고대죄하기는커녕 골수 지지자들을 방패 삼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아직도 역사의 물꼬를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며 촛불에 저항하고 있다. 박석운 퇴진행동기록기념위 공동대표는 “촛불정신의 핵심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 진행되지 않는 병목은 바로 국회다. 국회로 촛불이 옮겨붙어야 한다”고 했다.

새 정부 출범 반년을 돌아보면 촛불과제 중 인적청산·과거사 진상규명 등 행정부 재량으로 가능한 것은 그나마 진전이 있는 편이다. 반면 사회의 제도적 개혁은 거의 법 개정이 필요하고, 대부분 답보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의 여소야대 지형에서 여당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1700만 촛불은 지역과 이념, 남녀노소를 초월한 국민통합의 상징이었다. 변화와 개혁의 강력한 동력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개혁저항세력을 돌파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협치와 통합의 담대한 리더십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외쳤지만 제대로 된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완전히 새로 만든다)’를 주창했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과감한 도전과 실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개혁에 대한 시민의 열망으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국정 개혁에 실패, 보수정권이 역사를 후퇴시킨 쓰라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은 주말인 28일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다시 촛불을 든다. 촛불시민들은 “다시 돌아봐도 촛불을 든 내가 자랑스럽다” “또 그런 일이 있다면 똑같이 뭉칠 것”이라고 했다.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경향 사설] 한반도 불안 부추기는 트럼프에 대한 한국 시민의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이 갈수록 태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군 수뇌부와 북한·이란 문제를 논의한 직후 “(지금은) 폭풍 전야”라고 말했다. 7일에는 트위터를 통해 대북 대화 및 협상 무용론을 거론하며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위기가 가라앉을 만하면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발언을 일삼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트럼프가 언급한 ‘한 가지 방법’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대북 군사옵션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군사옵션 직전 단계로서 최대한의 대북외교·경제 압박을 의미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의 추가도발 징후에 대한 사전경고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그의 발언이 충분한 숙고 끝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툭툭 내던지는 발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거친 한마디라도 온몸으로 떠안아야 하는 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위험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3월 “매우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하더니 지난 8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후엔 “지금까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북한의 6차 핵실험 뒤인 지난달 19일 유엔 연설에서는 ‘북한 완전 파괴’ 발언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고위인사들이나 전문가들과 깊이있는 논의를 거치지 않은 즉흥적인 것이 많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발언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으로 가치도 없고 실제로 북핵 저지에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그의 발언이 하나같이 북한의 맞대응을 유발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 위기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무분별한 발언은 미국 내에서도 혼란과 분열의 핵이 되고 있다.

한반도 위기의 1차적 책임은 북한 김정은에게 있다. 하지만 트럼프 역시 그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 더구나 지금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 상태에 있다. 한국인으로서 트럼프의 혼란스러운 발언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이유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트럼프에게 신중하게 발언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경향 사설] 충격적인 이명박 정부의 적폐 실상

이명박 정부가 자행한 공작정치의 증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 규모와 내용이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을 동원해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사찰하고,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동태를 감시했다. 총선에 불법 개입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보고를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이 어려운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전임 정권 적폐청산 작업은 “퇴행적 시도”라고 규정하고,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뻔뻔함에 소름이 돋는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공개한 문건 중 국정원 작품으로 보이는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 보고서를 보면 8개 광역 시·도지사와 23개 구청장 등의 신상과 동향이 자세히 적혀 있다. 예컨대 안희정 충남지사에 관해서는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 활동을 주도하고,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사업 반대해 찬반주민의 갈등 격화를 초래했다”고 적혀 있다. 문건은 기획재정부와 감사원 등을 통해 불이익을 줘서 안 지사 같은 지자체장을 제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2011년 9월27일에 작성된 ‘KBS 관련 검토사항’ 보고서에는 김인규 당시 KBS 사장 등의 교체를 검토하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나하나가 형사처벌감이다.

2012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친이명박 체제’를 꾸리기 위해 관권이 동원된 정황도 있다. 2011년 12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대통령실 전출자 총선출마 준비 관련 동향’ 문서를 보면 “대통령실 전출자 11명이 내년 총선 출마 준비 중이다. 이들에 대한 동향파악 및 지역 민원과 애로사항을 취합·청취할 대통령실 내 지원창구를 설치해 총선 전까지 한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대통령실 전출자’ 중 한 명이 당시 정무수석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최근 정 의원이 ‘댓글정치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라며 이명박 정부 방어에 적극 나서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국정원과 사이버사 댓글작업 등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에 관해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비위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범죄 증거가 나온 이상 검찰 수사 확대는 필수적이다. 검찰은 좌고우면할 것 없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우롱한 이명박 정부 공작정치의 진상을 규명하고 엄벌해야 한다. 이 전 대통령도 국민에게 죄상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을 위한 길이다.


[경향 사설] 깡패 두목 같은 유엔 연설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섬뜩한 경고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트럼프는 그제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비하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자살 임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연설 내용만 봐서는 세계 지도자가 아니라 깡패 두목을 방불케 한다. 북핵 문제가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2500만명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지도자들과 언론이 일제히 비판과 우려의 반응을 내놓았다. 당연한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키는 트럼프의 도발적 언어에 동조할 사람은 없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화염과 분노”처럼 트위터를 통해 위협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전에 준비했고, 유엔 190여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들 앞에서 한 공식 연설이며 유엔 데뷔 무대였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가 걸린 문제를 놓고 마치 누가 더 거칠고 위협적인지 김정은과 경쟁하는 듯한 트럼프의 경망스러운 행태는 특히 한국인의 걱정을 자아낸다.

극한적 용어와 초강경 태도는 트럼프식 과장법일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쟁 말고 선택지가 없겠지만, 실제 그런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연설 어디에서도 세계가 직면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대안과 숙고가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대책 없이 막말을 쏟아내고 돌아설 뿐이다. 국제사회를 이끌 책임을 진 지도자의 자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유엔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기구다. 이 때문에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유엔에서 평화 회복을 호소하며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세계 각국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인 자리를 전쟁 위협 무대로 활용함으로써 유엔을 모욕했다.

세계의 지도자라면 북핵 해결 전략을 제시하고 국제사회의 결속과 동참을 호소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미국은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렇게 하는 대신 마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눈앞에 둔 지도자처럼 극단적인 적대감만 표출했다. 미국 내에서 그가 유엔 연설을 자극적이고 강경한 수사를 통해 국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기회로 활용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북핵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선동적이고 무책임한 협박만 일삼는 트럼프에게 세계의 지도자라는 호칭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이 남긴 것은 김정은 못지않게 세계 평화에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뿐이다.


[경향 사설] 또 미사일 도발한 북한, 제재만 반복하는 국제사회

북한이 어제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비행거리 3700㎞인 중·장거리 미사일로, 평양~괌의 거리를 감안하면 괌 타격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7번째다. 핵탄두를 장착하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력을 완성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번에도 북한의 도발을 막지 못했다. 유엔 안보리는 불과 사흘 전 결의안 2375호를 채택했지만 제대로 실행도 하기 전에 공격을 당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결의안이 실행됐다고 해도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2006년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2호 발사 이후 지금까지 10건의 유엔 결의가 있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3건이다. 하지만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한 북한은 핵보유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제재에만 매달리고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규탄성명을 내고 안보리를 열어 결의안을 채택하는 식이다. 북한의 도발에 관성적으로 대응하기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규탄성명을 내고 대북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은 이제 의례적인 절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비난 발언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게 변화라면 변화다.

북한의 도발-제재라는 악순환의 폐해는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위기상황을 관리할 아무런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경우 심각한 군사적 대립과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 한시바삐 대북 대화 창구 등 소통 채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 개별 국가의 대북제재 역시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북한이 도발을 강화하는 명분을 제공할 뿐이다.

강한 대북제재로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압박과 제재를 해왔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더 빠르게 발전했다는 엄연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북핵을 억지하려면 국제사회와 한국의 대응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압박과 제재 외에 실질적인 북핵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한·미 FTA 폐기 발언, 동맹균열로 가자는 건가

미국 정부가 이르면 이번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미국 언론이 2일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중단하고 곧바로 폐기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한·미 FTA에 대해 참모와 논의하겠다”고 밝혀 모종의 변화를 시사했다. 다만 백악관이 정말로 협정 폐기를 고려하는 것인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엄포용’인지는 불분명하다.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한 협상이 단 한 차례 열렸는데 협정 폐기를 운운하는 것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22일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미국은 협정 발효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며 조속한 개정협상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한·미 FTA가 미국의 적자 원인이 아니므로 양측의 전문가들을 구성해 객관적으로 평가·조사하자고 요구했다. 첫 회의가 불만족스럽다고 곧바로 협상테이블을 걷어차는 미국의 태도는 애초부터 협상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게 할 뿐이다. 한·미 FTA가 미국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많다. 미 국제무역위원회는 한·미 FTA가 미국 무역수지 적자 완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협정체결 이후 미국의 한국시장 점유율도 8.5%에서 10.6%로 높아졌다. 또 한국의 대미 자본투자는 48억달러에서 129억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올 들어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작금의 한반도 주변상황은 더욱 공고한 한·미관계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방적인 한·미 FTA 폐기 카드는 양국 간 통상마찰과 동맹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한·미 FTA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논의가 경제를 포함한 양국 관계 전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한국 정부도 미국의 요구에 따른 대응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