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트럼프·김정은 친서외교 재개와 오슬로 구상을 주목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다시 친서를 보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혔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 내용이 “아름답고 따뜻하다”며 “아주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한 것이다. 마침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을 향해 남북 주민들의 피부에 닿는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오슬로 구상’을 밝혔다. 싱가포르 회담 1주년을 맞아 남·북·미 간 협상 분위기를 돋우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북·미 협상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지지부진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도 지난 1월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이번 친서도 하노이 회담 이후 협상이 장기 교착되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이 오슬로에서 밝힌 대북 제의 역시 남북 간 대화와 교류를 폭넓게 확대·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과거 동·서독이 접경지역에서 화재, 홍수, 산사태나 전염병, 병충해, 수자원 오염 문제에 공동 대응한 것처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을 하자는 것이다. 대북 국제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각도로 협력을 모색하자는 제안은 시의적절하다. 북한이 판문점을 통해 조화와 조전을 보냄으로써 최근 별세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조의를 표한 것도 긍정적이다. 직접 조문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북·미 양측은 그동안 제재 강화와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기싸움을 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3차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3차 북·미 정상회담은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명분을 주는 모양새다. 이에 따른 북·미 간 실무접촉도 기대할 만하다. 남측은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뜻을 사전에 파악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면 북·미 간 협상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북·미 간 실무접촉과 남북 간 대화가 재개돼 북·미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근본 문제 ‘대만’까지, 위험 수위 육박한 미·중 갈등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분류한 전략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이 지난 40년간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최대 금기’를 건드리면서 무역 분야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정치·군사를 포함한 전방위로 확대되는 형국이다.

미 국방부는 최근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주변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기존 동맹국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대만, 뉴질랜드, 싱가포르, 몽골 등 ‘4개 국가(Four Countries)’를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할 우방으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4개 국가’가 “전 세계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고, 자유롭고 공개된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 행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일 이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사실상 폐기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중국의 정부는 오직 하나라는 원칙을 수용해 대만과 단교했으며 이 원칙은 그간 대중국 외교의 근간을 이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고서는 미·중관계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의 격한 반발과 함께 미·중 갈등이 정치·군사적 차원으로 옮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들 이번 보고서 파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1979년 수교 이후 대만 총통과 접촉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해 중국의 반발을 샀다. 최근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만 안보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났다. 미국은 또 대만에 수십억달러의 무기를 판매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 공식문서를 통해 대만을 국가로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근본 문제’에 해당한다. 중국으로서는 ‘준비된 도발’로 간주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 초 연설에서 대만을 향해 “무력사용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신년사에서 대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자 무력통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어떤 나라나 기업, 단체와도 절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할 정도로 대만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 왔다. 미국과의 무력충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나올 수 있다. 1995~1996년 대만해협 위기 같은 군사적 긴장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산될 경우 한반도 정세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화웨이 협력은 물론 북핵 문제와 이란 등 국제현안에서의 공조를 다짐했다. 한반도 주변에서 신냉전의 골이 더 깊게 파이는 흐름이다. 한국도 갈수록 선택의 기로에 몰릴 수 있다. 이미 화웨이 제재 문제를 두고 미·중 양측의 압박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에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을 찾아내는 고도의 전략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5·18 39돌, 아직도 미완인 오월의 진실과 정의

‘80년 5월 광주’가 돌팔매질당하고 있다. 그날의 희생자를 ‘폭도’로 매도하고, ‘세금 축내는 괴물’이라며 “색출하자”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맞장구치는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고, 변절자까지 가세했다.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인 당사자는 자신을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 우겨댄다. 그가 만든 정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 대표는 ‘80년 광주’를 발판 삼아 보수 결집을 도모하려 한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시민 투쟁의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다 직접 또는 후유장애로 500여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과 고문 피해를 당한 피의 현장이다. 시신조차 확인 안된 수백 원혼이 떠도는 곳이다. 지금의 민주·인권·자유·평화라는 시민의식이 뿌리내린 곳이다. ‘80년 5월의 광주’가 없었으면 1987년 6월 항쟁도, 2017년 촛불혁명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완전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특별법도 제정했다. 그런데 정작 조사에 나서야 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의 ‘방해’ 탓이다. 올해는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언·증거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의 광주시민 유혈진압 증좌들, 시민군 공작활동을 위한 ‘편의대’ 활동, 헬기 기총사격 흔적 등이다. 피해자에게만 머물던 역사 증언 대열에 가해자까지 나서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 대한 진상규명은 국민의 상처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국가는 물론 국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렇다면 한국당은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 후보를 당장 재추천해야 한다. ‘5·18’을 폄훼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징계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황교안 대표도 39주년 기념식 행사 참석을 통한 ‘피해자 코스프레’ 기도를 멈춰야 한다.

39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역사적 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망언과 궤변이 난무하는 것은 역사를 비틀어서라도 뭔가를 챙기려는 자들이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 그대로 두면 역사는 왜곡되고, 그 부담은 후손들이 지게 된다. 한국의 정치사회가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실규명·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미완으로 남은 ‘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진실을 드러내 단죄할 때 피해자는 용서할 수 있고, 가해자도 참회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9년이 되는 오늘,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경향 사설]경색되는 한반도 정세, 외교적 해법 놓으면 안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일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장거리 타격수단을 동원한 화력타격 훈련을 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나라의 진정한 평화와 안전은 자기의 자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이날도 최근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개훈련을 비난하며 자위적 군사력 강화를 강조했다.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날 강경화 외교장관과 면담하면서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문이 여전히 열려 있다”고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협상하길 원하지만,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속도조절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도 대화기조는 유지하겠지만 비핵화 협상 문턱을 낮출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앞으로도 한·미 군사훈련 대응을 명분으로 타격 훈련을 강화하며 긴장 수위를 높여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공식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발사를 함으로써 인도적 지원이나 제재 해제가 아니라 체제안전과 군사적 위협해소가 본령이라는 메시지도 던져놨다. 북·미 협상을 ‘비핵화-제재완화’에서 ‘비핵화-체제안전’ 구도로 바꾸겠다는 북한의 국면전환 시도에 한·미 양국이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어떤 요구가 됐건 결국은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히 대화에 복귀할 것을 당부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난감하게 된 대북 식량 지원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원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여야 대표 간의 회동을 제안한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인도적 지원은 정세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이번에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정세 변화에 지나치게 좌우된다면 한국 정부의 운신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야당도 이번 제안을 대북정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경향 사설] 빛바랜 판문점선언 1주년, 남북 초심으로 돌아가야

지난해 4월27일 전 세계의 시선이 온통 판문점에 쏠렸다. 판문점의 콘크리트 경계석 앞에 마주 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은 ‘한반도의 봄’을 알리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이날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채택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선언은 점차 빛이 바래가고 있다. 북한과 미국 간에는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극명한 입장차를 보이며 협상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도 소강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간 소장회의가 9주째 열리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25일 한·미 연합공중훈련이 남북 간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 행위’가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남북관계 복원 이후 조평통 명의의 대남비판은 처음이어서 당혹스럽다.

비핵화 협상이 풀리지 않자 트럼프 행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 바람에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에 포함된 남북합의의 상당수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에 구속된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키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남북 간 신뢰가 훼손되면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은 1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판문점선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했다. 다행히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확고하다.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해 정부는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인도적 지원과 남북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남북이 꾸준히 만나고 오가야 신뢰가 두터워질 수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해치는 불필요한 언동을 삼가야 할 것이고,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상호존중의 태도 없이는 신뢰도 쌓이지 않는다.


[경향 사설] 북·러, 중·러, 미·일 정상회담 개최, 주변국 관리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해외 방문을 대내외에 사전 예고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북·러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번주에는 북·러뿐 아니라 중·러, 미·일 간에도 정상회담이 예고돼 있는 등 동북아 외교가 바쁘게 전개된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한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 워싱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할 예정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화되던 1년 전 세계의 시선이 판문점에 쏠렸던 것과 비교해 보면 착잡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북·미 간에는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입장 차가 확연한 상황이고, 남북관계도 소강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을 지렛대로 북·미관계를 추동하는 외교전략이 먹혀들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는 27일 4·27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에 북한은 여태껏 참석 여부를 밝히지 않아 빛바랜 행사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 1주년을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복기하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남북, 북·미 관계에 외교자산을 집중하느라 주변국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일본은 이날 한·일관계가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외교청서를 확정했다. ‘한국 탓’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정세 진단은 틀리지 않다. 대중국 관계도 매끄럽다고 할 수는 없다. 한반도 평화구축에 우군이 돼야 할 일본·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악의 한·일관계부터 손 대야 한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이낙연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6개월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공식 외교라인의 접촉도 중요하지만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도 정상회담에만 힘을 쏟을 일이 아니다. 당국 간 관계가 소강상태라면 민간교류 활성화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 국내 대형교회 4곳이 북한에 모내기용 비닐박막을 지원키로 했다는 경향신문 보도는 이런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경향 사설] 3차 회담 의지 밝힌 북·미 정상, 창의적 중재가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제3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하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지도자로서는 29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육성 연설을 통해 미국과 협상할 뜻을 표명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며 “3차 정상회담이 좋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지난 2월 말 ‘노딜’로 끝난 하노이 회담 후 두 정상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3차 회담에 대한 의지를 밝혀 다행스럽다.

문제는 두 정상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으며, 그것도 연말까지만 기다리겠다고 압박했다.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 해법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아가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전도 불사할 의지까지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빅딜’을 통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최종단계를 명확히 하면서 로드맵을 설정한 뒤 협상하자는 요구를 재확인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김 위원장은 남측과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김 위원장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를 받아들일지도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태도가 강경하다.

중재역을 맡은 문 대통령의 어깨가 다시 무거워졌다. 문 대통령이 북·미 두 정상 간 신뢰와 톱다운 협상의 이점을 활용하면서 북·미 간 입장 차를 좁혀야 한다. 희망적인 것은 빅딜을 원칙으로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도 단계적 해법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여지를 활용하면서 양측을 설득해낼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연말까지 남은 8개월간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비핵화 방안을 중심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중재가 성공하려면 북측의 호응이 절대적이다. 북측은 현실적인 비핵화 해법을 위해 기존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 이외에 추가 조치 등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문 대통령이 15일 발표하는 대북특사와 4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9·19 군사합의 이행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한·미 국방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이 1일 워싱턴에서 회담을 열고 양국이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 국방장관들은 9·19 군사합의의 이행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 간 신뢰구축에 기여했다고 평가한 뒤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했다. 두 장관은 특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연합준비태세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핵협상과 남북군사합의 이행이 소강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양국 국방장관이 이렇게 합의한 것은 의미가 크다.

지난해까지 9·19 군사합의에 적극 호응하던 북한은 올 들어 남북군사회담 제의에 응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달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하기로 한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유해발굴 사업도 사실상 중단했다. 이런 차에 한·미 국방장관이 남북군사합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의의가 있다. 우선 남북군사합의 이행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북핵협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하노이 협상 결과에 실망한 북한을 향해 비핵화 노선에서 탈선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9·19 군사합의에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도 평가할 대목이다. 9·19 군사합의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한·미 연합 대비태세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준비의 첫 조치로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평가할 ‘특별상설군사위원회’를 가동한 것 역시 핵협상 타결 후 새로운 한·미동맹을 상정한 조치이다.

한·미 국방장관이 9·19 군사합의 이행에 대한 지원을 재확인한 만큼 남북은 후속 조치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남북군사회의를 열어 DMZ 내 모든 GP 철수,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와 평화수역 조성 등을 논의해야 한다. 최근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남측의 무기 도입을 비판했지만 이는 과도한 주장이다. 한·미 양국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폐기한 데 이어 오는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도 축소 실시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북한은 하노이 협상 실패 이후의 실망감을 ‘새로운 길’ 선언으로 이어가는 일부터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한·미 양국 국방당국의 결단을 존중함으로써 북·미 핵협상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군사합의 이행에 북측이 적극 호응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4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 비핵화 협상 재개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10~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청와대가 29일 밝혔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한·미동맹 강화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 공조방안을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이다. 지난달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대화 모멘텀이 약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잡힌 것은 바람직하다.

하노이 담판 이후 미국은 ‘빅딜식 일괄타결론’으로 입장을 정리한 반면,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며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양측이 접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특히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 기자회견 발언문을 통해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을 전제로 하는 제재 완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북한이 이런 논의가 오간 사실을 공개한 것은, 스냅백 조건부 제재 완화를 수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행정부의 추가 대북 제재 철회를 지시하면서 강경파들의 대북 압박기조에 제동을 건 것은 협상 재개를 위한 ‘기지개 켜기’로 볼 수 있다.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를 입증하는 데 실패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강화된 것도 긍정적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 ‘톱다운 외교’가 앞으로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한 것은 이런 미국 내 기류 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비핵화의 포괄적 로드맵을 합의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절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절충안에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협상의 전도는 밝아질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불거져온 한·미동맹 이상설도 이번 기회에 불식되기를 희망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촉진자 외교’가 확실한 성과를 거두려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뒤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의 내달 방미 전에 남북 정상이 원포인트 회담을 판문점에서 여는 방안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북한도 이번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북·미, 남북관계 상황관리 중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한 재무부의 추가 제재 계획을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강경파가 주도해온 대북 압박흐름에 일단 제동을 걸어 북한이 협상 국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라는 액션을 취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대응으로 받지 않고 자제력을 보인 것은 바람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는 북·미 협상구도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며 이러한 제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북한 역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일방 철수하면서도 남측 인원의 잔류를 허용하는 등 수위를 조절한 흔적이 엿보인다. 전날 추가 제재 등 미국의 대북압박 강화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정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북한도 협상의 파국을 원치 않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물론 하노이 회담 결렬의 파장이 워낙 큰 만큼 북·미가 당장 대화를 재개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좀 더 정세를 분석하고 대응방향을 숙고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화 모멘텀이 유지될 수 있도록 남·북·미 모두 상황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한 만큼 당분간 대북 추가 제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철수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미 협상이 올 상반기 중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면 미국의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할 때 협상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도 대북 제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하노이 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의 포괄적 로드맵을 합의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현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의지가 있다면 대화 복귀를 준비하면서 이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협상 중단 고려’ 북 메시지, 미국의 진지한 대응 필요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평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과 핵·미사일 시험유예를 계속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상은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면서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보름 만에 협상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북·미가 다시 ‘강 대 강’의 대치상태로 회귀하는 듯한 상황전개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 부상의 회견은 북·미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11일 “우리는 토털 솔루션(일괄해결)을 원한다”며 북한에 ‘일괄타결식 빅딜’을 요구한 것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하노이 회담 이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연일 대북강경론을 설파하더니 협상파인 비건 특별대표마저 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협상 구도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으로 후퇴한 것에 대한 허탈감과 회의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번 발언이 북한 정부기관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외신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빌렸다는 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관계는 여전히 좋다고 한 점을 보면 미국의 반응을 지켜본 뒤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판을 깨겠다는 경고라기보다는 협상이 진지하게 이뤄지도록 여건을 조성하라는 요구에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메시지를 다각도로 읽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간의 협상 태도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최 부상이 “미국은 정치적 이해를 추구하느라 바빴지 결과를 내기 위한 진실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 것은 협상을 국내 정치의 종속변수로 여기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기이한 협상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거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보좌관이 적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협상을 방해했다”고 한 점도 새겨봐야 한다. ‘대화 상대로 진지하게 대우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부당한 것이 아니다.

최 부상의 입장발표가 미국의 강경대응으로 이어져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한반도 정세가 긴장으로 치닫는 상황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북·미 양측 모두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조속한 대화 재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미 비건 대표의 비핵화 구상 발표, 북한도 심사숙고하길

북·미 실무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 좌담회에서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토털 솔루션(일괄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대북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빅딜(일괄타결)’ 목청을 높이더니 ‘협상파’로 분류되던 비건 특별대표마저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가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책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일괄타결 원칙이 트럼프 행정부의 ‘포스트 하노이’ 전략으로 공식화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31일 스탠퍼드대학 강연에서 ‘동시적·병행적’ 기조를 강조했고, 핵신고에 대해서도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등 단계적 접근법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그마저 ‘일괄타결’ 원칙으로 후퇴한 것은 적어도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등을 떼어내 단계별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북한식 접근법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괄타결 방침을 공식화함으로써 북·미 협상 구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협상하려면 북한이 태도를 완전히 바꾸고 들어오라는 고압적인 태도도 걱정스럽다. 그나마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협상전략을 정리하며 채비를 갖추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12일 대외선전 매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면서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제사회가 동창리 위성 발사장 등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바람직하다.

양측 간 입장차가 크지만 절충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핵화 눈높이’가 자신들과 현격히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핵화의 범위와 최종목표가 분명히 드러나는 포괄적인 로드맵 마련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미국도 북한이 제안한 영변 핵단지 전체 폐기의 무게감을 다시 잴 필요가 있다. 하노이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양측이 한 걸음 다가서려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양측 입장에서 접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그럴수록 중재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경향 사설] 3·1운동 100년, 기념을 넘어 친일잔재 청산해야

1일 전국에서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주요 도시에서는 태극기의 행렬이 이어졌다. 100년 전 외침 그대로였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3·1절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민족대표 33인을 대신한 국민대표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독립지사 334명이 새로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57년 전 3등급 훈장을 받은 유관순 열사에게는 대한민국장이 다시 수여됐다. 이날 행사는 100년 전 자유와 평화, 정의를 외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3·1정신은 근대 역사를 열어젖힌 봉화였다. 그 불은 독립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식민지배, 분단과 냉전, 군사독재는 3·1정신을 왜곡하고 배반했다. 뒤틀린 역사의 바닥에 친일 잔재가 켜켜이 남아있다. 한 세기가 지나도록 떨쳐내지 못한 역사의 찌꺼기다. 지난달 서울의 한 지자체는 도로명 ‘인촌로’를 ‘고려대로’로 바꿨다. 친일 청산의 일환이었다. 도로뿐 아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친일파 묘소 28기가 버티고 있다. 많은 학교에서는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들이 여전히 불리고 있다. 색깔론, 간첩조작, 5·18망언, 갑질과 같은 인습·관행은 더 무서운 친일잔재다. 그것은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며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청산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잘못된 과거를 성찰할 때 우리는 함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며 “친일잔재 청산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또 친일 청산을 통해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친일잔재 청산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안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민 80.1%가 친일잔재 청산 필요성을 느끼며, 국민 10명 중 3명은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친일잔재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과거를 청산한 적이 없다. 3·1운동 이후의 지난 100년이 분단과 독재, 부정부패로 점철된 것은 역사의 과오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3·1운동 100년 이후 새로운 100년은 유·무형의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경향 사설] 3·1운동 100년, 연대와 통합, 평화의 정신으로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7대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을 휩쓸고, 5월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됐다. 참가자 200여만명.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고종의 죽음은 3·1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는 군주가 아닌 조선인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못 박았다.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군주는 잊혔다. 복벽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는 의정원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임시정부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 제국의 시대가 가고 민주공화국 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민주공화국은 확고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3·1운동과 이어지는 독립운동은 자율, 독립, 배려, 평화, 연대 정신을 싹틔웠다. 한국인들은 근대에 눈을 떴다. 민주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은 주권 회복운동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출발지점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일제의 강압통치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짓밟으며 식민지 근대를 이식했다. 타율성, 의존성,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그것이다. 해방 이후의 민족분단은 식민지성을 고착화시켰다.

100년이 흘렀다. 정부는 일찌감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독립운동가 사전과 열전을 발간하고 3·1운동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이다. 여성 독립지사 등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발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임시정부100주년기념관이 건립되고 임정수립일(4·11)의 임시공휴일 지정도 검토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의미 있는 사업들이 착수 중이다. 그러나 기념사업이 과거 사건에 대한 재현과 학습에 그쳐서는 안된다. 진정한 기억과 기념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는 일이다.

100년을 맞아 3·1운동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한다. 100년 전 싹튼 한국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친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갑질, 폭력, 무사안일, 타율성은 떨쳐야 할 식민 잔재이다. 분단은 여전하고 냉전의 기류도 걷히지 않았다. 내부의 이념적 분열은 미래 발전을 거부한다. 3·1정신으로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청산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이 깨어나고 세계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역사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100년 전 연대와 통합,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3·1운동이 근대의 시작이었다면, 100년은 근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전망 밝히는 폼페이오의 제재완화 발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협상과 관련해 “제재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또 14일에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의제와 관련해 “비핵화뿐 아니라 한반도에 안보 메커니즘, 평화 메커니즘을 창설하는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협상의 사령탑이 ‘제재완화’와 ‘안보·평화 메커니즘’을 거론한 것은 주목된다.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제재완화를 해줄 수 있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그만큼 밝아지기 때문이다.

올 들어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제재완화’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지난달 25일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에 대한 의미 있는 신호”라며 “이러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 제재해제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31일 “우리는 ‘당신(북한)이 모든 걸 다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종전 태도에서 동시행동에 기반한 단계적 비핵화로 노선을 변경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이번에는 미국 외교수장이 직접 제재완화를 거론함으로써 무게감을 더욱 높였다. 북·미가 서로 통 큰 결단으로 비핵화와 제재완화를 맞바꿀 수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폼페이오가 언급한 ‘안보·평화 메커니즘’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짙다. 1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2항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는 의미도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트랙이 구체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총론 합의에 머물렀던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미국이 이달 말 2차 회담을 앞두고 구체적인 성과도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를 공개한 것에서 보듯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대외정책의 핵심 현안으로 내걸었다. 게다가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제재완화 카드까지 꺼낸 참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비핵화를 향한 과감하고 통 큰 결단력을 보여줄 시기가 오고 있다.


[경향 사설] 대북 투자 의향 밝힌 짐 로저스의 방북을 주목한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다음달 북한을 방문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대해 “로저스 회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받았고 미국 정부도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월27~28일) 직후 로저스를 북한으로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개방과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와 함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저스 회장의 방북이 대북 투자의 마중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로저스 회장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인물로, 전부터 북한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달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을 1980년대 중국에 비교하며 “북한에 정말 투자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년 CNN 인터뷰 때도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수년째 대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로저스는 지난해 12월 금강산에 골프리조트를 보유한 리조트 개발업체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투자처가 북한 관광산업이라고 본 것이다. 서방 자본의 대북 선도 투자가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베트남식 또는 중국식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 하노이를 선택한 것은 그 현장을 보기 위함이다. 김 위원장이 로저스를 초청한 데는 대북 국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로저스의 방북은 대북 투자에 앞서 비핵화 협상의 보험이자 촉진제 성격을 갖는다.

북·미 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대북 제재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는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착해 큰 수익을 거둔 로저스의 통찰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낙관하며 북한에 대한 민간 투자를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로저스가 남북한 경제발전을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남한의 자본과 경영기술,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 발전론의 핵심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국내 기업도 차근차근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경향 사설]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 윤곽 나온 북·미 정상회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 스탠퍼드대 연구소 북한 관련 토론회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윤곽을 제시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시설 폐기 및 파기를 약속했다”고 전하고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에 대량파괴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포괄적 신고’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은 또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야 할 시간임을 확신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비건의 발언은 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가 큰 거래를 벌이는 ‘빅딜’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다. 특히 미국의 초기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카드를 거론한 것은 기대감을 키운다. 비핵화 완료 전까지 대북 제재는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양측에 신뢰를 가져다줄 많은 행동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거나 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 ‘동시적·병행적’으로 추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은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비건이 김 위원장의 ‘핵시설 폐기·파기’ 발언을 공개하고 ‘포괄적 신고’를 강조한 것은 비핵화 회의론이나 협상무용론을 차단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미국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핵신고를 압박하면서 상응조치에는 입을 다물어온 것과 비교하면 비건의 발언에서는 동시적·단계적 조치를 실현 가능한 수준부터 해 나가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을 되게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다. 때 맞춰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날짜를 다음주에 발표하겠다면서 장소가 베트남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북·미 간 세기의 빅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랜 우여곡절을 거쳐 이뤄지게 되는 북·미 최고지도자의 2차 대좌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작을 체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양측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도 회담 성공을 위해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가 왔다.


[경향 사설] 비핵화협상 중인데 핵개발하자는 한국당 당권주자들

자유한국당 당권 도전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핵개발 논의를 촉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오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북핵 의원모임이 지난 23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핵개발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되면 미국과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외교적 부담이 되는 것을 알지만 야당발로 시작됐다는 점만으로 전략적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뜬금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비핵화에 뜻을 모으고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차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제1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인사가 핵개발을 주장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더구나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시점 아닌가.

한국의 핵개발은 명분도, 현실성도, 실익도 없다. 당장 북한 비핵화를 주장할 명분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이 제재를 받게 되면 경제가 쓰나미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 방지’를 한국이 거스르게 된다면 한국당이 그토록 중시하는 한·미동맹도 파탄을 맞을 수 있다.

오 전 시장은 “외교안보에 전략적 도움이 되는 선택지”라고 했지만,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에 비춰 본다면 너무도 순진한 주장일 뿐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핵개발’ 주장을 하루속히 거둬들이는 것이 온당한 처사다.


[경향 사설] 일본 초계기 또 위협비행 도발, 저의를 묻고 싶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P-3 초계기가 23일 오후 2시쯤 남해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작전 중인 한국 구축함에 접근해 위협비행했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일 초계기는 해군함정을 명확하게 식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면서 “이를 명백한 도발행위로 간주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또다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이 지난달 20일 동해에서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를 쐈다고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또다시 저공비행 도발을 가해온 것이다.

이어도 인근 해역은 한·일 양국 해군의 작전수역이 겹치는 곳이다. 비록 양국의 영해 밖이라 하더라도 함정에 지나치게 근접비행하는 것은 위협이다. 일본은 이날 광개토대왕함에 150m까지 근접한 것보다 더 낮은 60~70m 고도까지 초근접비행을 했다. 초계기는 20여차례의 경고 통신도 무시한 채 공격모의 비행까지 했다. 더구나 이런 저고도 위협비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4번째다. 저공비행이 의도적인 행위임을 뒷받침한다. 합참이 이날 “일본 정부에 재발방지를 요청하였음에도 또다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라고 평가한 것은 온당하다. 일본은 지난 21일 레이더 논란에 대한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한·미·일 3국 간 군사협조는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 놓고 이틀 뒤 저공비행으로 도발한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날은 한·일 외교장관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어디까지 가자는 심산인지 일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 후 일본이 대응기조를 바꾼 듯하다. 하지만 징용자 배상 판결은 과거 한일협정이 개인의 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법원의 독립적인 판단이다.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국가의 정부라면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일본은 추가 도발을 멈추고 레이더 발사 사실 확인에 진지하게 응해야 한다. 일본의 자중을 요구한다. 군은 일본의 도발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사법부 치욕의 날, 끝내 책임 회피한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에 나왔다.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의 전직 수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본인은 물론 사법부 전체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사법에 대한 신뢰가 현대 민주·법치국가의 주요 존립기반이라는 점에서도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출석 직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하는 오만한 행태를 보였다. 그는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면서도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이 기대했던 진정한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도 사법농단의 실체를 부정하며 재판개입·법관사찰 등 주요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에서 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40여개 범죄사실이 기재된 공소장에는 ‘양승태’라는 이름이 168회나 등장한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개입한 정황은 명백하다. 그는 피해자들이 승소한 대법원 소부 판결을 뒤집으려 전원합의체 회부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검찰은 외교부 문건과 김앤장 압수수색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사법농단의 단초가 드러나고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23개월이 걸렸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은 이탄희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저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사의를 표명한 게 시작이다. 경향신문 보도로 쟁점화한 사건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명명되었고, 법원의 수차례 조사 끝에 재판거래 의혹 문건들이 발견되며 파장이 커졌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권의 ‘로펌’ 노릇을 한 정황이 드러나자 시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지난해 6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핵심 실무자인 임 전 차장을 재판에 넘겼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음에도 그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재판에 넘겨진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의 기소 역시 기정사실이다. 검찰은 그를 몇 차례 더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처리 방향도 관심사이나, 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헌정을 문란케 한 사법농단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남김없이 묻는 일이다. 잇단 영장 기각 등 그간 법원의 행태에 비춰볼 때 남은 수사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치밀한 수사가 절실하다.

사법부도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해 깊이 자성해야 마땅하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법농단은 어물쩍 봉합될 사태가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혁파할 발본적 사법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미 국회에 제출한 ‘무늬만 개혁’안으로는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


[경향 사설] 김정은 4번째 방중, 북·미 협상 진전 디딤돌 되기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베이징에 도착, 10일까지 3박4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북·미 협상이 더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4번째 방중은 의미가 있다. 미국 측도 북·미 간 협상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새해 벽두에 이뤄진 김 위원장의 방중이 북·미 핵협상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주목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갔다는 신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도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롄을 급거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번에도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아놓고 우방인 중국과 전략을 조율하기 위해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국임을 강조해온 만큼 김 위원장의 방중이 반가울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협상을 제안한 만큼 이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중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품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덜어내기를 희망한다. 만에 하나라도 중국의 개입이 부정적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또다시 ‘중국 배후론’을 제기하며 북·미 간 회담을 틀어버리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김 위원장의 4차 방중은 그의 해외방문이 일상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번 방중에는 북한 경제전략의 핵심인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이 수행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개발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추진되고 있다. 북한의 정상국가화 및 개혁·개방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한 정보를 중국 및 북한 측과 사전에 공유해왔다고 밝혔다. 남·북·미에 이어 남·북·중 3국 간 북핵 협상을 둘러싼 협력이 선순환 구조로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굳건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정부도 남북·북중·북미 간 교류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추진되도록 중재자, 촉진자의 역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남·북·미·중의 평화협정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경향 사설] 완전한 비핵화와 대미관계 진전 의지 밝힌 김정은 신년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북·미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의 주동적, 선제적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 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북·미관계가) 빠른 속도로 전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경제발전 기조를 분명히 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환영한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그해 북한의 국정 방향과 외교의 기조를 밝히는 절대 지침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신년사에서 확고한 비핵화 의지와 함께 북·미관계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밝혔다. 핵무기의 시험, 생산, 사용, 전파 등 ‘핵 4불 원칙’까지 언급하면서 북한 내부를 향해 비핵화를 통해 경제개발에 치중하겠다는 국정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핵 문제를 풀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남측에 대해서도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상당히 덜어낸 만큼 남북경협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이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으로 평가하면서 평화체제 전환을 본격 추진하자고 밝힌 것도 같은 흐름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접견실의 낮은 소파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30여분에 걸쳐 차분하게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 측근들과 함께 입장하는 등 종전과 다른 파격적인 모습으로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북·미 양측이 어떻게 교착 상태에 있는 협상의 물꼬를 트고, 올 상반기 중으로 비핵화 조치의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느냐는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만큼 미국이 응답할 차례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만 할 게 아니라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한다. 최근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조야는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초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여전히 긴요하다. 북한이 경제개발에 나서려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가 전제 조건이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언급한 것은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해 제재를 풀라고 촉구한 것이다.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남북 간 군사긴장 완화 조치를 착실히 추진해 나가면서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대화 뒷받침 등 할 일이 많다. 북·미 고위급 협상과 2차 북·미 정상회담,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 등 일련의 과정이 올 상반기 중에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모처럼 맞은 기회를 남·북·미 모두 놓치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남북 철도연결 착공식, 공동번영의 이정표 되기를

남북 철도와 도로를 잇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26일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양측과 중국·러시아·몽골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남북의 철길을 이음으로써 북한을 통해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드 구축이 시작된 것이다. 남북이 군사합의 이행과 더불어 평양공동선언에서 천명한 철도 연결사업의 연내 착공을 실현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정착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이날 착공식은 70년 동안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남북의 철도가 완전히 연결되면 대한민국의 경제영토를 육상을 통해서도 대륙으로 확장할 수 있다. 남북의 공동번영과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정착의 길이 활짝 열리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는 ‘착공식’보다는 ‘착수식’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실제 공사를 하려면 여러 단계를 더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로 철도 연결에 필요한 자재와 공사 기기의 반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금처럼 북으로 장비를 보낼 때마다 한·미가 만나 제재 위반 여부를 따지는 방식으로는 공사가 제대로 진척될 수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연결공사 설계에만 1~2년이 걸린다”고 했듯 공사를 위해 세부적으로 준비해야 할 일도 많다. 한마디로 철도·도로 공사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와 함께 제재를 풀어 철도 연결을 남북경협으로, 궁극적으로는 북·미관계 개선으로 이어가는 지난한 과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착공식 불참은 매우 유감스럽다. 한국당은 이번 행사를 두고 “기약 없는 착공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위해 하는 가불 착공식”(김병준 비대위원장), “문 대통령의 여론조작용 착공식”(나경원 원내대표)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나 원내대표는 정부가 착공식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민족의 염원을 담은 남북 철도 연결에까지 당리당략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당의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 북한 관련 보고를 받은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당은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 북측 또한 비핵화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한반도 남쪽 끝에서 출발해 북녘 땅과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 유럽까지 거침없이 내달리는 평화와 번영의 열차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고대한다.


[경향 사설] 방위비 분담금 막무가내 인상 요구, 미국 동맹 맞나

한국과 미국이 내년부터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13일 서울에서 열린 마지막 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에서도 타결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내년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최대 쟁점은 한국이 분담할 방위비 총액과 연 증가율, 유효기간인데 이에 대한 양측 간 입장차가 크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당장 새 협정에 합의해도 국회 비준 등 절차를 거쳐야 내년부터 적용하는데 아직도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협상이 더딘 이유는 미국이 한국 정부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7일 미국이 약 50% 올린 12억달러(약 1조3600억원)를 분담금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분담금을 두 배로 올려야 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임은 물론이다. 한국의 올해 방위비 분담금은 9602억원으로, 2005년 6804억원에서 13년 동안 41.1% 증가했다. 1991년 이래 인상폭은 2.5~25.7%였고, 2014년에 합의된 종전 분담금도 전년 대비 5.8% 증액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13년치 인상분보다 더 많은 액수를 한꺼번에 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은 미군이 한국에서 고용하는 근로자의 인건비(40%), 군사건설 및 연합방위 증강사업(40%), 군수지원비(20%) 등 지원 명목이 분명히 제한돼 있다. 따라서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의해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면서 그 비용을 한국이 내라고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더구나 미국은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해 해마다 이월하고 있다. 이러고도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려받겠다고 하니 누가 그 주장을 이해할 수 있겠나.

트럼프 대통령이 무임승차 운운하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한국은 해마다 미국에서 6조~7조원어치의 무기를 구입한다. 평택에 새로 마련한 미군기지 건설 비용 12조원 중 91%를 한국이 냈다. 미군의 한국 주둔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만이 그 수혜자인 양하고,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한국의 처지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것은 동맹국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시민이 납득할 합리적 수준 이상의 분담금을 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도대체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비위에 연루된 직원이 여러 명이라거나 평일 근무시간 골프설에 이어 현직 장관이 문제의 특감반원에게 자리를 약속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특별감찰반 전원을 교체한 뒤 검찰·경찰의 조사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했으나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의 태도다. 청와대는 쏟아지는 의혹에 속시원히 해명하기는커녕 함구에 급급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실 업무 원칙상,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하고, 김의겸 대변인은 “비위로 보도된 사안은 감찰사안으로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시하고 감찰하는 곳이다. 그런 특감반원 전체가 교체되고, 온갖 부패 소문이 떠도는데도 가타부타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 핵심부에서 비위가 일어났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조 수석은 “비위와 무관한 특감반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넘어갔다. 국민적 의혹을 밝히는 게 왜 비위와 무관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한다는 건지 설득력이 없지만,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보다 특감반원 보호를 앞세우는 안이한 인식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에 주력해왔다. 그런 정부에서 부패를 감시하는 직원들이 되레 부패에 휘말려 들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특감반원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고도 쉬쉬하다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뒷북 대응을 했다. 최근 청와대 직원들의 음주운전, 폭행사건 등 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른 것도 이런 온정적인 ‘제 식구 감싸기’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 지휘선상의 비서관부터 민정수석, 비서실장까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페이스북에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믿어주시기 바란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썼다. 잘못은 드러내고 일벌백계해야만 되풀이되지 않는 법이다. 여당 내에서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청와대 참모들을 전면 교체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한·미 정상회담, 비핵화 협상 활성화의 모멘텀 돼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3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막하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다고 양국이 28일 발표했다. 회담의 시간·장소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협의 중이라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북·미대화 중재가 긴요한 상황에서 시의적절하게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최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큼 지지부진하다. 이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지 않은 데 이어 다음달 중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회담까지 사실상 무산됐다. 이런 상태로 올해를 넘기면 북·미대화의 동력이 약화돼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면 전환이 시급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북·미 모두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를 내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차기 대선 등 국내 정치 측면에서 북한과의 협상은 버리기 어려운 카드이다. 북한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며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미 국무부가 이날 북·미 고위급대화를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북한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당장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묘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마침 미국이 결정한 유엔의 대북 제재 면제조치로 남북의 철도연결을 위한 공동조사가 30일 시작된다. 남쪽의 열차가 신의주와 두만강까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설명함으로써 대북 제재완화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이끌어낸다면 상당한 소득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북한의 핵시설 폐기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중재도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문 대통령은 북·미 고위급회담 성사 단계에서부터 주요한 동력을 제공해왔다. 정상들이 이끌어가는 톱다운 방식의 북·미 간 대화는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급격히 추동력이 약화되는 허점을 드러내왔다.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할 때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고위급회담, 실무회담이 속속 열리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미 워킹그룹 논의로 ‘남북철도 연결’ 탄력받게 됐지만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워킹그룹 첫번째 회의를 마친 뒤 “미국 측이 남북철도 공동조사 사업에 대해 강력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남북철도 공동조사 사업은 미국이 탐탁지 않아 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지연돼 왔다. 지난 8월 진행하려던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는 막판에 유엔사가 군사분계선(MDL) 통과를 승인해 주지 않아 제동이 걸렸고, 이후 협의에서도 매듭짓지 못했다. 공동조사를 위한 장비와 연료의 대북 반출도 미국의 대북 제재 예외인정이 필요한데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이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게 된 셈이다. 한·미 간의 견해차가 뒤늦게나마 조정된 것은 다행스럽다. 북·미 고위급회담 재개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물꼬가 트인 것도 긍정적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제재이행, 남북협력 방안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논의를 위한 양국 당국자 간 협의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남북관계 상황의 세부 내용을 전달받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됐고, 한국은 북·미 협상에 의견을 반영시킬 여지가 넓어졌다. 비핵화와 남북교류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첫 회의에서 철도 연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것도 의미가 크다.

다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워킹그룹의 목적에 대해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상대가 모르거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선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폼페이오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증진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밝혔다”고도 했다.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조화롭게 추진돼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북정책에서 한·미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동맹국이자 주권국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은 지나치다. 한반도 정세 전환 과정에서 남북이 반발 앞선 행보로 북·미 협상을 추동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이런 역할마저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줘 씁쓸하다. 워킹그룹이 대북정책에서 자칫 ‘상위동맹’인 미국의 입장만 관철되는 창구로 변질돼선 안된다. 워킹그룹에 기대만큼 우려도 적지 않음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하루 만의 ‘북한미사일 소동’이 전하는 교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전날 공개한 북한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충분히 인지한 내용이며, 새로운 것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며 CSIS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서도 “부정확하다”고 반박했다. 국가정보원도 14일 북한 삭간몰 미사일 기지와 관련해 “이미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통상적 수준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히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새로울 것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북한 미신고 미사일 기지’ 의혹은 하루 만에 진화되는 양상이다.

CSIS의 보고서는 처음부터 부정확한 사실과 이미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반감을 가진 미국 조야와 한국의 반북세력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개발을 멈추거나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국내 보수세력들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실확인 차원의 설명을 하자 “북 대변인 행태”라고 공격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와 언론이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 분석과 전망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NYT가 보고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뜻밖이다. 부디 팩트 체크가 부족해 벌어진 실수였을 뿐, 정치적 저의가 없었기를 바란다.

그간에도 미국의 싱크탱크나 언론이 대북 강경론을 부추기는 보고서나 보도로 북·미 협상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그런 만큼 중간선거로 민주당이 미 하원을 장악한 정국구도 변화를 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제동을 걸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 작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필요한 논란을 신속히 진화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대북 회의론은 앞으로도 북·미 협상 과정의 틈새를 꾸준히 노릴 것이다. 이번 해프닝도 북·미 협상의 교착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이 커진 시기에 불거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기로 목표를 세운 이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집중력 있게 협상을 이끌어나갈 것을 주문한다.


[경향 사설] 남북 군사합의 공개 지지한 미 국방장관 발언의 의미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간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남북 군사합의서를 전적으로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북이 합의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비준으로 발효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매티스 장관은 이어 “(북한의 군사적) 역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분명히 상당히 감소했다”고 평가한 뒤 “한·미 양국군 당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신뢰 속에서 모든 이슈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상황 변화를 긍정 평가하면서 한·미 간 공조도 견실하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매티스 장관 발언은 의미가 크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번 제50차 SCM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에 공감하는 전략 문서에 서명했다. 현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할 미래 연합사 체제에 대해서도 한국군이 주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전작권 이양의 시기는 못 박지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할 토대를 마련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라 두 차례나 미뤄진 전작권 환수에 상당한 추진력을 붙인, 의미 있는 성과다.

남북 군사당국은 1일부터 지·해·공중 완충구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했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동시에 군사분계선 일대와 동·서해 완충구역 내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우는 실질적인 군사긴장완화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때에 매티스 장관이 모든 남북군사 합의가 한·미 간 신뢰와 공조 속에 이행되고 있으며, 북한 위협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지지가 될 것이다. 중장기 의제는 물론 단기 현안에 대해서도 견해를 같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 정착과 전작권 이양까지는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 정부는 미국과 간극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조를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은 그동안 남북 군사합의가 남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으며 미국도 이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티스 장관의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발언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밝혀졌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은 이제 안보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 북 군사합의서 세부 시간표 합의, 차질없이 이행해야

남북은 26일 열린 제10차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시범철수 대상인 남북 각각 11개의 전방 감시초소(GP)를 다음달 말까지 완전히 파괴하기로 합의했다. 또 ‘9·19 군사합의서’에 따른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 행위 중지를 다음달부터 차질없이 이행하고,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을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기로 했다. 남북은 한강 하구에서 민간선박의 자유항행 보장을 위한 사전조치로 11월 초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한 9·19 군사합의서의 세부 시간표이자 남북이 군사적 신뢰구축에 한발짝 더 다가서기 위한 약속이다. 특히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남북 민간선박의 자유항행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GP 시범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도 마찬가지로 남북 간 긴장으로 유명무실화됐던 정전협정을 정상화하는 조치들이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 대해서는 1992년 5월 남북이 합의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준용해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군사공동위는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등 굵직한 의제들을 다루는 군사적 신뢰구축의 사령탑이다. 남북이 1992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군사공동위 구성에 합의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날 매듭짓지 못한 사항들을 남북이 추가 협의해 구성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날 회담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측 대표단은 도보로 이동하던 과거와 달리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JSA 북측지역까지 이동했고, 북측은 남측 대표단 차량을 회담장인 통일각 앞까지 차량으로 에스코트했다. 남측 대표단이 우천 속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것을 걱정한 북측의 배려가 돋보였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JSA가 평화의 기점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광경이다. 북측 수석대표가 종결 발언에서 “오늘처럼 속도감 있게 제기된 문제들을 심도 있고 폭넓게 협의하고 견해를 일치시킨 적은 없다”고 한 데서도 분위기가 짐작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비핵화만이 아니라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다. 남북 접경지역의 긴장완화는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서도록 하는 촉매가 될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발전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유엔사령부도 군사합의서 이행에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실질적 종전선언 격인 군사합의서를 차질없이 이행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남북과 긴밀히 협의해 “군사합의 이행” 천명한 유엔사

주한유엔군사령부는 19일 “한국 합동참모본부와 긴밀히 공조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내용)’의 하나로 그동안 판문점에서 이뤄진 지뢰제거 작업을 검증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말한 뒤 “군사합의서의 추가적 실질조치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간의 다음 단계를 지원한다”고 했다. 나아가 “유엔군사령부는 남북과 긴밀히 협의하여 합의사항의 이행을 함께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지난달 19일 남북 간 체결된 군사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작업과 공동경비구역(JSA) 병력 철수 조치가 예정대로 진행됐음을 관할부대인 유엔사가 공식 확인한 것이다. 남북 군사합의의 첫 조치가 한·미 양국 군의 공조로 일단락된 것을 환영한다.

유엔사는 이날 ‘긴밀히 공조, 협조, 판문점선언 이행’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한·미 양국 군이 이 문제에 대해 원활히 공조하고 있다는 점을 전에 없이 명확한 용어로 강조한 것이다. 합참도 “한·미 군 당국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을 위한 모든 과정에서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은 특히 남북 군사합의서의 ‘군사분계선 상공 비행금지구역’에 대해 미군이 항의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한·미 양국 군이 회의 등 내부 토의를 통해 공군 연합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 공역을 사전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간 균열이 있는 조짐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과 보수 일각에서 남북 군사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한·미 간 큰 마찰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남측이 지나치게 북측에 양보를 많이 하는 바람에 군사분계선 인근 훈련과 대북 정찰 활동에 큰 지장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서도 남측이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미 군 당국의 해명으로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조그만 이견이나 문제를 침소봉대해 안보의 결정적 위협이나 되는 양 주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다음주 JSA 초소·병력·화기 철수작업이 시작된다. 다음달 말에는 남북의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이 열린다. 남북 간 군사합의에 의해 군사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는 공조체제를 더욱 긴밀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도 안보환경이 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으로 한·미 간의 틈을 벌리는 것은 소위 ‘안보정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이 전한 ‘북한의 현재 핵 제거 약속’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며 이는 “추가적인 핵실험과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서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물질들을 전부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구체적 프로세스를 논의한 적은 없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에 이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핵개발뿐 아니라 이미 보유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 등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라고 문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공언했지만 폐기할 핵무기의 범위가 모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북한이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는 큰 의미가 없으며, 정작 문제가 되는 기존에 만들어진 핵탄두·미사일 폐기는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때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핵 폐기의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그 내용을 미국과 공유해왔다. 북한이 평양선언으로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듯 문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핵무기 폐기의 범위도 조만간 직접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북핵 폐기 프로세스는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 해제 시점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핵 포기를 선언한 후 경제개발과 국제사회를 향한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곧 러시아를 방문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평양에서 만난다. 문 대통령을 통해 교황의 방북까지 초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럽 순방에서 국제사회에 북핵 폐기에 상응하는 대북 제재 완화 등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무조건 믿어서도 안되지만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도 협상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핵 폐기가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들면 대북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김정은 방러·시진핑 방북, 한반도 평화 구축에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국무회의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전망”이라며 “북·일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저는 그 모든 과정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또 도움이 되는 과정이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전망하면서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한다.

북·미관계가 중대한 진전을 보이고 있음은 속속 확인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시험장을 곧 미국 사찰단이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2차 정상회담도 세부사항 합의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며 회담 개최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제는 김 위원장이 뒷걸음질치기 불가능할 정도로 비핵화를 통한 경제건설 대열에 들어선 것으로 보는 게 상식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선 폼페이오가 방북 직전 북한의 비핵화 후 일정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중국의 참여를 언급했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아가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최근 악화된 미·중관계를 접어둘 정도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러·일의 움직임도 드러났다. 김 위원장의 방러는 경제협력뿐 아니라 북한이 정상국가의 길을 완성했다는 의미도 된다. 거기에 북·일이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그야말로 천지개벽하는 셈이다. 동북아 세력균형 틀이 달라지게 된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중·일·러의 입장이 한국이나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북·중·러 3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 냉전대결 구도를 종식하려면 관련국들의 협조와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특히 중국을 평화협정에 참여시켜 한반도 합의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비핵화뿐 아니라 이후 한반도 안보구도에서도 중요하다. 러시아도 안전판으로 들어와야 하고, 북·일 간 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 정부는 북·미 협상 촉진자로서의 역할 외에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도 강화해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판문점·평양선언 이행, 비핵화협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청와대는 28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 회의를 열고 동·서해선 철도연결을 위한 남북 공동 현지조사를 10월 중 착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지 공동조사를 위해 유엔사와의 협의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공동 유치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는 한편, 남북이 2020년 도쿄 올림픽 예선전부터 함께 참가하는 방안을 북한과 협의하기로 했다. 10월 중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면회소 상시운영 및 화상상봉 방안을 협의하는 계획도 세웠다.

남북은 이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제2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를 열어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를 10월4~6일 평양에서 개최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내달 1일에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첫 조치인 비무장지대 내 지뢰 제거 작업이 실시된다. 남북이 이렇게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도 조속히 가동돼야 한다. 미군 헬기가 군사분계선 10㎞ 이내로 비행할 경우 등 예외에 해당되는 조항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보호 및 복원을 위한 환경협력,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이나 인도지원도 남북협력의 체감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한반도 정세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다음달 초 4차 방북하기로 하면서 북·미 협상이 재가동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시간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2년이든, 3년이든, 5개월이든 문제가 안된다”며 종전과 달리 비핵화에 시한을 두지 않겠다고 한 것은 걸리는 대목이다. 협상을 앞둔 압박용 발언일 수도 있지만 비핵화가 장기 과정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남북관계는 ‘북·미 기상도’에 영향받는 천수답(天水畓)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북·미 협상의 경과를 지켜보며 손놓고 있는다면 남북관계가 다시 불신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는 이런 과거와 결별하자는 의지도 담겨 있다. 남북이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면서 상호 신뢰를 두텁게 하고, 남북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두 선언의 취지이다. 국내외 일각의 대북 제재 위배 우려를 모르지 않지만 그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합의 이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향 사설] 격화되는 미·중 무역갈등 대비하고 있나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관세전쟁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은 지난 24일 2000억달러(약 224조원)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 5745개 품목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추가 관세를 물린 것을 더하면 총 2500억달러 규모다. 이에 맞서 중국도 이날 600억달러 상당의 상품에 5~10%의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중국 측은 “대규모 무역 제한 조처는 칼을 들고 다른 이의 목에 댄 격”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미 재무장관과의 협상도 취소했다. 양측이 정면충돌로 맞서면서 G2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국은 미·중 두 나라 수출의존도가 높아 양국 수출환경 변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수출액을 보면 중국과 미국의 비중은 각각 27%, 12%로 전체의 40%에 가깝다. 중국은 한국 등에서 중간재를 공급받아 완성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인데,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그 파장이 한국에 미칠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취약한 주요 국가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5000종이 넘는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해 대규모로 추가관세를 물리는 상황에서 한국의 피해를 산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정부는 미·중 간 무역갈등은 단기간·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고, 파장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향후 20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무역갈등의 배경에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양국 간 갈등구조가 금세 끝날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신경제 냉전’의 시대에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업체(93.0%)가 ‘별도로 대응방안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기업도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자세로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을 수는 없다. 정부는 차제에 수출국 다변화, 수출산업 경쟁력 강화, 신산업 발굴 등 미래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업도 혁신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향 사설]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중재자 역할 화룡점정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일부터 27일까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 등을 통해 제3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 정부의 비전과 정책노력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21일 밝혔다. 물론 뉴욕 방문의 핵심 일정은 24일(현지시간)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다.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한 한반도 정세 돌파구 해법을 미국과 공유하고 답보상태인 북·미 협상을 본격 가동시키는 모멘텀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 조치를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북핵 협상 25년 사상 처음 내놓은 제안이다. 영변 핵시설은 흑연감속로, 연료봉 재처리시설,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밀집한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로, 이 시설들을 영구 폐기하는 것은 북한 핵능력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의 ‘플러스알파’ 조치를 취할 용의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서울 귀환 후 대국민보고에서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들도 있다”며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회담을 하면 상세한 내용을 전해줄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이 정도의 비핵화 의지라면 미국이 ‘종전선언’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면서 조속한 북·미 협상 재개 방침을 밝혔지만 북한의 ‘상응조치’ 요구에 대해서는 ‘비핵화가 먼저’라는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핵신고가 이뤄져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종전의 입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바뀌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2박3일간 17시간여를 김 위원장과 동행하면서 그의 비핵화 의지를 읽고 또 확인했을 것이다. 그 의중을 온전히 전달해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내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 숨가빴던 방북 일정의 여독을 풀기도 전에 뉴욕으로 떠나야 하는 ‘강행군’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중재자 역할의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만큼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줄 것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육성 비핵화 약속·‘영변’ 폐기 발언을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 세부조치로 북한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또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처음 육성으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가시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육성이 갖는 권위와 무게감을 감안하면 이만큼 확고한 비핵화 의지도 드물 터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환영한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한 것에 비하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발 더 들어가 실질적인 세부조치를 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북·미 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비핵화 방안을 남북이 처음으로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비핵화를 공식 의제로 삼고 실천 방안까지 도출함으로써 남북대화가 북·미관계를 이끌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해도 어색하지 않다.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폐기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거쳐야 할 국제사회의 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핵시설이 아닌 운반체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향후 북·미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핵시설 검증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등 추가조치에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후속협상 과정에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북한이 조건 없이 나서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미국과의 협상에서나 사용할 카드를 남북대화에서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두 정상이) 공동선언 내용 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에 공개된 것 외에 비핵화 조치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정상이 이틀간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북·미대화에 탄력을 부여할 다양한 방안을 깊숙이 논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약속도 비핵화와 관련지어 비상하게 음미해볼 대목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다. 비핵화와 남북관계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 현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을 방문하기 전까지 비핵화와 관련한 신뢰를 쌓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서울방문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그렇게 하겠다는 각오를 비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비핵화 실천 의지를 밝힘으로써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월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트위터에서 “매우 흥분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조치 용의를 분명히 밝힌 점,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약한 것을 미국이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음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석달간 멈춰 있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움직이는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북이 13~14일 열린 군사실무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전방감시 초소(GP)의 시범철수와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군사협력 방안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각각 10여개의 GP를 시범 철수해 문제점을 확인한 뒤 점차 DMZ 내 모든 GP의 철수로 확대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또 남측 철원과 김화, 북측 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공동발굴하는 데도 의견 접근을 이뤘다. JSA에서는 남북 경계병력이 권총 등으로 무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JSA 내에서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에 양측이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어느 것도 획기적이지 않은 게 없다. 군사분계선 남북 2㎞ 구간은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해 비무장지대로 설정됐음에도 남북이 진지와 초소, 철책을 구축하고 중화기를 반입하면서 중무장화됐고,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수십년간 지속돼 왔다. 중무장의 거점인 GP가 철수된다면 비무장지대는 그 이름에 걸맞은 평화지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계기로 남북이 분단된 JSA 내에서 ‘비무장 자유왕래’가 실현된다면 자체의 긴장완화는 물론 판문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평화를 체감하는 효과도 작지 않을 것이다. 공동유해발굴도 65년 전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원혼을 달램으로써 진정한 화해를 도모하는 뜻깊은 작업이다.

남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평화수역 방안에 대해서는 기준선 설정이 문제가 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건은 급하게 처리하기보다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범위에서 절충안을 찾아낼 필요도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13일 정상회담 원로자문단 간담회에서 제안한 것처럼 백령도와 북한 황해남도 장산곶 사이의 14㎞ 구간을 ‘미니 평화수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지혜를 모아 합의안을 도출하길 당부한다.

흔히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제로 비핵화만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북 접경지역의 긴장완화는 남북 주민 모두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핵심과제다. 일각에선 북한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군축합의가 우려된다고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에 안심하고 나서도록 하는 촉매가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