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6.15기념식에서 북측에 민족화해 메시지를 던져라

민간 차원의 6.15공동선언 17주년 기념 민족공동행사가 남북.해외에서 각각 분산개최 되게 되었습니다. 6.15행사가 9년 만에 남북.해외 공동행사로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너무 촉박한 기일 탓일까요, 일단 다음 기회로 넘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용했으며, 특히 6.15남측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정부가 북한주민접촉신청을 수리하자 곧바로 북측 개성에서 6.15공동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이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연기한데 이어 6.15남측위원회의 6.15공동행사 ‘개성’ 개최 제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곧이어 남북은 6.15공동행사의 ‘평양’ 개최를 시도했으나 무산돼 결국 분산개최로 가닥을 잡은 것입니다.
북측이 민간단체의 방북을 연기시키고 또 남북이 6.15공동행사 개성이나 평양 개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 최근 북측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지난 6월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를 결의하자 이에 남측 정부가 지지한 것에 대한 불만 탓으로 보는데 이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이 6월 6일 정세론 해설에서 “문제는 누가 집권하였는가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다”며 “북남관계 파국의 근원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신문은 민간단체들의 방북 거부와 관련 “민간단체들 사이의 협력과 내왕을 재개하는 것은 전면폐쇄 상태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되살리는데 필요한 것”이라면서도 “북남관계 파국의 근원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사실상 6.15선언과 10.4선언 존중과 이행을 거듭 강조한 것입니다.

6.15선언과 10.4선언 존중?이행은 백번 옳지만, 우리가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봅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지지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세부적으로는 새 정부가 아직 초기단계이고, 북측도 6.15공동행사 준비가 필요해 보이는 등 현실적 여건부족이 작용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북측의 오랜 대외?대남 관계의 핵심은 이니셔티브 문제입니다. 즉, 북측은 자신이 주도권을 가져야 대화를 시작하고 또 진전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으로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에서는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전체적인 대북정책 기조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곧바로 ‘선심 쓰듯’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용하고 또 6.15공동행사 개최를 허가한 것에 대해 북측은 이니셔티브 문제와 관련 한번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을 듯싶습니다. 북측으로서는 남북교류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선수를 빼앗겨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했겠지요. 최소한의 기싸움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북측이 남북대화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공개적으로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마침 그 기회가 왔습니다. 6.15선언 17주년을 맞아 김대중 도서관에서 오는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기념식’을 갖는데, 여기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대북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주요 내용은 당연히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 이행하자는 것이지요.

게다가 요즘 문 대통령의 연설문이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며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 현충일 기념사 그리고 6월 민주항쟁 기념사 등이 국민들에게 회자되면서 강한 감동의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6.15공동선언 기념식에서 북측에 강한 민족화해 메시지를 던진다면 국민에 ‘또 한 번의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북측도 긍정적으로 화답해 올 것입니다.

민족화해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국민들은 진정으로 정권교체가 됐음을, 새 정부가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정권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정권이 바뀌긴 바뀌었나 봅니다. 다름 아닌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광경 때문입니다. 이날 여러 인상적인 광경이 많았지만 백미는 단연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였습니다.
물론 정권이 교체돼 새 정부가 들어선지 1주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검찰 개혁 등 적폐청산 및 개혁의지’, ‘주요국 정상들과 통화 및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신속한 대응’,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지시 등 사회 통합적 결정’, ‘일자리위원회 설치 등 민생경제 회복 의지’. ‘커피 산책 등 파격 소통 행보’ 등 눈부신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 정부와 비교해 상전벽해(桑田碧海)와도 같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 같은 개혁과 소통 행보로 정권 초 허니문 기간이라고 해도 문재인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80%를 전후할 정도로 높아 국민적 기대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 같은 문재인정부 출범 1주일간의 변화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울은 소쩍새’마냥 이날 5.18 기념식을 위한 것이었나 봅니다. 그럴 정도로 5.18 기념식과 기념사는 파격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면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며 새 정부의 위상을 명확히 천명했습니다.
아울러,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과 관련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했으며,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며 재천명하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기념사를 낭독하는 동안 여러 차례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특히 광주 5.18 정신의 의의와 진상규명 의지를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박수와 함께 환호의 함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식후 행사 마지막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부활됐습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자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라고 말했는데, 적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1997년부터 12년간 5.18 기념식장에서 ‘제창’됐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으로 격하됐으니, 그 의미를 아는 국민들은 얼마나 많은 분노와 한을 삭여야 했을까요.

문 대통령의 놀라운 기념사,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부활 등, 이 자체만으로도 정권교체가 됐다는 것, 그것도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바뀌었다는 게 실감날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아직 남은 게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남북관계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문재인정부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정부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맥을 잇는 여러 징표들이 있겠지만 그 으뜸은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일 것입니다. 새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확실히 정권교체가 되었음을 거듭 실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강릉과 평양에서의 의미 있는 남북 스포츠 교류

남과 북이 오랜만에 대결했습니다. 아니 만났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전과 여자 축구 남북전. 각각 남측과 북측에서 열렸습니다.
하나는 6일 오후 남측 강원도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 4차전 경기. 이 경기에서는 남측이 3-0으로 이겼습니다.
다른 하나는 7일 오후 북측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 B조 2차전 경기. 이 경기에서는 남과 북이 1-1로 비겼습니다.

남북전은 시합도 중요하지만 격식도 중요합니다. 강릉의 경기장에서는 북측 ‘공화국기’가 펄럭이고 애국가가 연주됐으며, 평양 경기장에서도 남측 태극기가 날리고 애국가가 울렸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건 응원입니다. 남측 ‘국민’과 북측 ‘인민’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릉아이스하키센터에서의 남북전에는 5천 8백여 명의 관중들이 너나할 것 없이 양팀을 응원했으며, 특히 6백여 명의 남북공동응원단이 “우리는 하나다”를 연호하며 경기장을 울렸다고 합니다. 평양에서의 축구 남북전에서는 김일성경기장을 꽉 메운 5만 명의 북측 응원단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댔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두 개의 남북전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여에 걸쳐 남북 간에 아무런 실질적인 대화가 없다가 박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스포츠를 통해서나마 남북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대결과 반목의 악순환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트럼프-시진핑 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데, 이 회담에서 북측의 핵문제와 남측의 사드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라 합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강대국에 맡기는 모양인데, 이 시점에 스포츠 대결이긴 하지만 남북이 만나는 게 그나마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상황이 이러니 오죽하면 스포츠 대결인데도 스포츠 만남, 나아가 남북의 만남으로 표현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교류. 5월 9일에 치러질 남측에서의 대통령선거 결과에 이어 남북관계 개선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박근혜 구속, 그 죄와 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구속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지난 21일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법원은 이날 새벽 3시 넘어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국정농단 사건의 사실상 몸통임을 지목한 것이며, 또한 그가 받는 범죄 혐의가 대부분 사실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에 이어 헌재 탄핵인용을 거쳐 마침내 구속에 이르는 대장정을 주도하면서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두고 촛불의 승리이자 국민의 승리라고 말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나아가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상식과 법치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그리고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특권과 불법이 판을 치고 주인 행세를 해 왔고 또 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구속이 그러한 반칙 행위에 대해 일정 제동을 걸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 자신입니다. 그는 게이트가 발생하고 구속되는 모든 과정에 걸쳐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해 ‘모른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잘못이 없다’며 강변해 왔습니다. 시쳇말로 그의 죄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건만 당사자만 모른다고 하니 아연할 따름입니다. 그의 범죄 행위가 차고도 넘치건만 부정만 해 왔으니 참담할 따름입니다. 이 정도의 인식력밖에 안 되는 인물이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에 있었으니, 촛불시위에서 주요하게 나왔던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이 적확할 따름입니다. 오죽하면 그의 결백 주장에 헌재가 “헌법수호의지가 없다”고 지적했으며, 검찰도 구속영장청구서에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표현했겠습니까. 뻔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개전의 정도 안 보이니 한마디로 ‘날 잡아 줍쇼’라는 말밖에는 안 되니, 구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그에게 국정운용 등등을 따지는 건 무리이며, 다만 한 인간이 감방에서 교정을 거쳐 갱생의 길로 들어서길 바랄 뿐입니다.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한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됐슴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정치를 하게 된 동기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고 했으며, 실제로 대통령이 되자 박정희 시대를 연상하는 사업들을 많이 추진했으며, 급기야 사실상 박정희 복원을 위한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사업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18년의 장기집권이 끝난 듯하다가 한 세대를 지나 박근혜에서 다시 이어졌으니 한국사회는 줄곧 유신시대의 그늘에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박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유신시대의 망령이 사라지고 구시대가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 계기가 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마침 촛불은 그 모든 것을 통틀어 ‘적폐청산’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폐청산이란 이번 ‘박근혜 구속’처럼 죄지은 자를 마땅히 벌 받게 하는 것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외과수술식 타격

경북 성주에 배치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 중국의 반발 분위기가 급등하는 가운데 급기야 중국의 한 예비역 장성이 사드에 대한 ‘외과수술식 타격’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중국 군사과학원 국가고급학술위원회 위원으로 있다는 중국군 소장 출신인 그 예비역 장성은 2일 <환구시보>에 기고한 ‘사드 10책’이라는 글을 통해 롯데 골프장에 배치되는 사드 진지를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는 고위험 지구로 선포하고 필요할 경우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해 손 쓸 수 없는 마비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 어디서 많이 듣던 용어입니다. 그렇습니다. 1994년 ‘1차 북핵위기’때 나온 용어입니다. 당시 이른바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만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정밀 폭격’을 준비했습니다. 마치 인체의 환부(患部)만을 도려내듯이 핵시설만 정밀 타격해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제타격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북한을 예방적 차원에서 타격해 핵시설을 제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미국은 북한을 외과수술식 정밀 폭격으로 선제타격해 핵시설을 무력화시키는 과업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북한이 보복대응에 나설 경우 휴전선 부근에 있는 대량의 장사정포를 서울로 발사할 것이며, 이는 전면전을 촉발해 승리하기가 쉽지 않으며 설사 이겨도 이겼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피해가 막심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선제타격과 외과수술식 폭격 의지를 밝혔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1994년에 비해 지금은 핵시설이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는 데다 핵물질 은닉장소도 파악이 안 되며 게다가 핵무기 운반도 비교적 자유로워 군사적 공격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력도 비할 바 없이 강화돼 “다종화, 다양화된 핵타격 수단”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중국이 남한에서 사드가 배치될 성주지역을 향해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하겠다고 하니, 아무리 퇴역한 강경파 예비역 장성의 으름장이라고 해도 괘씸하다 못해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조치로 그동안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등을 민간 차원에서 암암리에 해 왔는데,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한국 관광상품 판매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러니 성주 사드 시설에 대한 중국의 외과수술식 타격 언명도 빈말로 치부하기에는 꺼림칙합니다.

북한의 핵문제를 두고 미국에서 나왔던 외과수술식 타격이 이제 한국의 사드문제를 두고 중국에서도 똑같이 외과수술식 타격이란 말이 나오니, 남과 북 우리 민족이 주변 강대국의 노리개이자 먹잇감으로 전락되는 것 같아 영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타격에 맞서 핵과 미사일로 대응하겠다고 맞짱이라도 뜨는데, 남한도 중국에 대응해 군사전략을 세워야 할 판인데 이게 가능할른지요.


[통일뉴스 데스크] 박 대통령의 편지와 그 진실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당시 김정일 북측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돼 화제입니다. <주간경향>이 지난 17일 공개한 이 편지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7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김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내용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지금 SNS 상에서는 이 편지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쓴 것으로 둔갑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카페에 올려졌다가, 폭발적 반응과 함께 온갖 견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관심은 그보다는 편지의 내용과 표현에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편지이지만 몇 가지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편지에서 김 국방위원장과 과거 약속했던 사업들에 대한 성과와 함께, 앞으로 보완해야 할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 국방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으니 정치적으로는 쪼그라들었을 때입니다. 북측은 이런 처지의 박 대통령을 불러 ‘박근혜 녀사’라는 존칭과 함께 극진한 대접을 해줍니다. 이때 ‘박근혜-김정일’ 회동에서 합의했던 내용들의 이행 문제와 관련해 3년이 지난 2005년에 편지로 북측에 전한 것입니다.

편지는 모두에 “더운 날씨에도 위원장님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요?”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계속 ‘위원장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고 있어 정중하고도 겸손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나라한테도 그렇지만 북측의 최고지도자에게도 이 같은 존칭을 쓰는 건 당연합니다. 그 지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일종의 배려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2002년 북남 통일축구경기”와 “북남이 하나되어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수 있도록 저와 유럽-코리아재단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에서 보이듯 ‘북남’이라는 표현입니다. 통상 남측에서는 ‘남북’으로, 북측에서는 ‘북남’으로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 굳이 남측에서 ‘북남’이라고 전도된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주체 91년’이라는 북한식 연도 표기법인 주체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저자세를 두고 박 대통령이 철저히 김 국방위원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는 과한 정도가 아니라 금도를 넘은 것입니다. 그냥 ‘남북’이라 하고, 또 ‘주체 91년’을 빼고 그냥 ‘2005년’이라 해도 북측에 대한 충분한 배려인 동시에 남측의 주체적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SNS 상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종북으로 몰릴 수 있는 사안’, ‘자기는 해도 되고 남이 하면 종북이라는 이중잣대’,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죄’ 등등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역으로 어느 진보적인 인사가 ‘북남’, ‘주체 91년’이라는 표현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면 답이 금방 나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탄핵 국면에 이 편지의 공개로 박 대통령이 더욱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헌재 탄핵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불리한 자료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 편지가 탄핵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가 아니더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숱하게 드러났듯이, 박 대통령이 헌재에서 탄핵 결정을 받을 내용이 차고도 넘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의 표현이 아무리 금도를 넘었다 해도 박 대통령의 한없는 저자세를 △2005년 참여정부에서의 민족화해 분위기, △2002년 ‘박근혜-김정일’ 회동의 여운, 그리고 △민족문제를 잘 풀고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말의 충정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랬던 박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이 되자 과거 북측의 은혜(?)는 내팽개치고 ‘남북 대결론’과 ‘북 붕괴론’에 입각해 북측을 무릎 꿇게 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겉과 속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한 인간의 운명을 봅니다.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아 탄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편지의 진실은 박 대통령의 대북 저자세가 아니라 민족과 북측을 기망했다는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촛불이 횃불 되고, ‘퇴진’에서 ‘체포’로 진화하다

26일 열린 ‘박근혜 즉각 퇴진을 위한 5차 범국민대회’는 몇 가지 점에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참가자 수입니다. 이날 서울 광화문 일대 150만 명을 비롯해 부산, 광주 등 지방 40만 명을 더해 전국적으로 총 190만 명이 모여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참가자 수만 강조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눈비가 내리는 비교적 추운 날씨에 운집했다는 점입니다.

서울 광화문 집회만 일별해 봅시다. 오후 6시경까지만 해도 촛불 군중이 세종대로는 꽉 채웠지만 서울시청 광장까지는 다소 듬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6시가 넘으면서 군중들이 그야말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순간 거리가 꽉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추위를 이겼을까요. 몇 명이 거리에 있으면 춥겠지만, 100만 명 이상이 모이자 그 100만 명의 체온 때문인지 거짓말같이 거리가 금세 따뜻해졌습니다. 게다가 100만 명 이상이 손에 든 촛불도 다소 온기를 보태주었습니다. 촛불 군중들은 혼자 있으면 추위를 못 견딜 텐데 150만 개의 촛불이 있으니 견딜만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촛불이 횃불로 발전한 것입니다.

또한, 촛불 군중의 구호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4차 범국민대회까지는 주로 ‘박근혜 하야’와 ‘박근혜 퇴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날부터는 ‘박근혜 체포’와 ‘박근혜 구속’으로 구호가 진화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후 8시에는 집회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도 집이나 사무실 등에서 불을 꺼 집회 취지에 동참하는 ‘1분 소등’ 행사에 호응했고, 운전자들도 경적을 울리며 동참했습니다.

이렇듯 참가자 수와 구호가 발전.진화하고 있습니다. 보다 놀라운 건 이러한 열기와 요구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몇 개의 장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촛불을 꼭 쥐어주며 민주주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은 3분 연설대에 올라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웅변으로 실천합니다. 아마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찍었을 법한 나이 지긋한 분들은 자책감이라 할까요, 거리에 나와 새삼 민주주의의 위력을 느낍니다.

이들 참가자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과 ‘박근혜 구속’을 외칠 때 이는 엄청난 무게와 진심으로 와 닿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정부 관료들이나, 이른바 ‘친박’ 정치인들이 잠행해 집회장에 나왔다면 이 놀라운 광경에 혼을 빼앗겼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특검 수사, 국정조사 청문회 그리고 탄핵 표결 등의 정치 일정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속된 말로 박 대통령에게는 ‘맞고 쫓겨나는 일’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괴로울 뿐입니다. ‘식물’ 상태에서 ‘화석’으로 퇴행할 것입니다. 정치 일정에 관계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만이 그나마 국민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차리는 게 될 것입니다.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져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횃불이 된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퇴진’에서 ‘체포’로 진화한 구호가 거둬지기는커녕 그 이상의 구호로 진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국민의 편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주목되는 북미 쿠알라룸푸르 회동

북한과 미국이 21~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비공식 대화를 가져 주목됩니다. 이번에 북한 현직 관료와 미국 전직 관료가 만난 이른바 반관반민(1.5트랙) 회동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기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은 한편으로 유엔 대북 제재와 선제타격론 등 미국의 거듭되는 대북 압박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 대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이뤄졌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사전에 의미 없는 시도는 없습니다. 이번 접촉은 넓은 의미에서 경색화되고 고착화된 북미관계의 ‘출구전략’을 위한 탐색의 성격이 짙습니다. 북미 모두 미국 대선 이후 차기 행정부에서의 대화 가능성을 타진해 봤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접촉 참가자들의 면면입니다. 북한에서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 5명이 참석했습니다. 한 부상은 오랫동안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를 역임하면서 북한의 대미 협상 창구로 활동해왔고 미국 내 인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통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전직 관료인 미국 측 인사들입니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 토니 남궁 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 등 4명이 참석했습니다.

알다시피 갈루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디트라니 역시 2005년 9·19공동성명 당시 미국 측 차석대표로 참석했던 북핵 전문가입니다. 시걸은 1차 북핵 위기를 다룬 명저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에서 1994년 6월 북미 간 일촉즉발의 전시 상황이 민간외교를 통해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그래서 제목 그대로 미국 당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항상 이 문제의 쟁점은 ‘북핵 폐기 대 북미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당연히 북한은 ‘선(先) 평화협정’을, 반면에 미국은 ‘선 핵폐기’ 또는 ‘선 핵동결’을 주장했을 터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측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특히 대화파들의 경우 다음 대화의 지속성을 위해 뭔가 필요한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회동 후, 시걸 국장이 “개인적 견해로는 ‘일부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힌 점이 그것입니다. 이들 미국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채널을 유지하며 북측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이들은 이번 접촉을 통해 확인된 북측 입장을 토대로 대북정책 보고서를 작성해 차기 행정부에 정책제언 형식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일부 진전’의 내용이 포함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번 북미 접촉에 대해 “미국 정부의 의지와 무관한 민간 접촉”이라며 평가절하 했습니다. 대북 압박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인데, 문제는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이번 접촉에서처럼 ‘포스트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진 예가 왕왕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핵은 핵이고 수해는 수해다

북측의 홍수 피해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2일까지 강타한 태풍 ‘라이언록’이 북측 함경북도를 휩쓸었습니다. 두만강 유역에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려 두만강이 범람해 회령시, 무산군, 연사군, 온성군, 경원군, 경흥군, 나선시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인명 피해는 수백 명에 달하며 약 7만 명이 한지에 나앉았다고 합니다. 북측은 이번 홍수 피해에 대해 “해방 후 처음으로 되는 대재앙”이라 표현했으며, 평양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국제기구들도 피해 현장을 방문조사한 후 50~60년 이내 최대 피해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김정은 시대 사회주의강국의 면모를 과시하려 진행된 ‘200일 전투’가 그 목표를 수해복구로 변경할 정도였겠습니까. 이에 따라 평양 려명거리 건설을 비롯해 200일 전투에 전념한 주요 군 부대들이 모두 함경북도 수해복구 현장으로 급파됐다고 합니다.

국제기구가 대북지원에 나섰습니다. 세계식량기구는 북측 수해 주민을 대상으로 긴급구호에 착수했으며, 국제적십자사는 수해복구 특별지원금을 투입했습니다. 유엔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북측 수재민 지원 모금을 호소했습니다.

문제는 동족인 남측입니다. 정부당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는 가운데 대북 인도지원 민간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며 수해지원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당국이 민간단체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북측 핵실험에 대한 제재가 진중 중인 상황인데 수해로 인해 대북지원이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난처함과 조급함이 묻어납니다.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북지원 불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측당국이 주민들을 돌보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 왔기에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북측 정권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못하겠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한의 5차 핵실험 문제를 연계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해지원을 하면 북핵에 대한 국제공조와 대북제재가 흔들려 북측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호라니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런 규정을 하는 정부가 이상할 따름입니다.

남측당국의 오류는 핵과 수해, 제재와 지원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핵과 수해를 분리해야 합니다. 핵은 핵이고 수해는 수해입니다. 또한 제재는 제재이고 지원은 지원일 뿐입니다.

중국이 남측의 사드 배치 결정과 북측의 핵실험을 분리 대응하는 것에서 시사를 받아야 합니다. 중국은 남측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남측에 대해 제재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측이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사드 배치를 우선시해 북핵 실험에 대해 모르쇠하지도 않습니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찬성을 하고 있지 않은가요. 사드는 사드고 핵은 핵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이 비슷한 군사적 문제들조차 분리 대응하고 있는데 반해 남측은 전혀 성격이 다른 인도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결부하다니 어리석고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재할 것은 제재하되 지원할 것은 지원합시다. 제재와 지원은 모양은 다르지만 그 끝은 대화와 협상이 되어야 합니다.

북측의 남측에 대한 공식적인 수해지원 요청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더 잘됐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북측에 먼저 손을 내밀면 그 효과는 몇 배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정부당국이 그동안 북측에 대해 쏟아놓은 말이 너무 험하고 심해 당장 나서기가 어렵다면 일단 민간단체가 나서도록 허용해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정부가 나서도 됩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북은 왜 계속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3일 아침 황해남도 은율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했습니다. 최대 1,300km를 날아갈 수 있는 노동미사일이라고 합니다. 이 노동미사일은 1천km가량 비행해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쪽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북한이 1998년 인공위성 광명성 1호(서방에선 대포동 1호 미사일)를 발사했을 때 일본 열도를 넘어간 적은 있지만, 북한 미사일이 동해 쪽 일본 EEZ 내에 낙하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본열도와 주일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일본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합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연 뒤 “일본의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용서하기 어려운 폭거”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노동미사일이 일본 열도 앞바다에 떨어진 것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것에 당혹해하고도 있습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 6월 22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0’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때 북한은 ‘화성-10’이 고각(高角)발사 되어 최대정점고도 1,413.6㎞까지 상승비행하여 400㎞ 전방의 예정된 목표수역에 정확히 낙탄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성-10’을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궤도로 발사했다면, 최대 비행거리가 3500km로 예상돼 태평양 괌의 미군기지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으로서는 끔찍한 일입니다.

또한, 지난달 19일에는 북한이 황해북도 황주에서 동해상으로 남한 전 지역을 사정권으로 둔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을 3발 발사했습니다. 이때도 고각으로 발사해 사거리를 크게 줄여 500-600㎞까지만 비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는 유사시 미군의 남한 진입 관문인 부산항 등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을 타격권 안에 뒀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괌의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도 있고, 주일 미군기지를 때릴 수도 있으며, 또한 남한 미군기지 내 사드도 무력화할 수도 있다고 시위를 한 셈입니다. 북한은 마치 먹잇감을 놓고 고각발사든 최대사거리 발사든 성공할 때까지 숱한 실험을 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북한의 기류를 대변하는 재일 <조선신보>는 지난 1일 북한의 고각발사는 미국의 전쟁도발을 제압하기 위한 전법이라면서 “사거리가 각이한 타격수단과 사격각도를 변경한 타격전법의 조합은 수없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의 도발에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는 호기입니다.

이번에도 북한은 한편으로는 남한 내 사드 배치로 인해 미.중간 갈등이 있는 틈새를 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달 22일 시작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일본을 향해 과감하게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의 수읽기는 치밀합니다. 맞춤형 타격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잘 봅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단순히 ‘도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판단은 너무 진부합니다. 북한의 문법에 충실합시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입니다. 북한이 도발을 하고 싶다면 탄도미사일을 마구 발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비밀병기나 특수무기도 노출하지 않고 감추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에서 사드를 배치하면 그에 대응하는 무기를 선보이고 무력화할 수 있는 전법을 공개합니다. 이는 도발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화 요구로 봐야 합니다. 문제는 남한이 올해 초 규정한 ‘북한의 4차 핵실험 국면’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화성-10’ 발사 성공, 북의 다음 수순은?

결국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제까지 외부에서 불러온 ‘무수단’과 같은 것인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IRBM ‘화성-10’의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2일 오전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화성-10’ 2발을 발사했는데 그 중 두 번째 발사가 성공한 것입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하루 늦은 23일발에서 “‘화성-10’ 시험발사는 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를 모의하여 고각발사체제로 진행되었다”면서 “탄도로켓은 예정비행궤도를 따라 최대정점고도 1,413.6㎞까지 상승비행하여 400㎞ 전방의 예정된 목표수역에 정확히 낙탄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5전6기를 한 것입니다. 이날 통신도 “국방과학자, 기술자, 일꾼들은 수차례나 실패를 거듭하면서 완성시켜온 탄도로켓 개발”이라고 표현해, 그동안 다섯 번의 실패 후 이번 여섯 번 만에 성공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화성-10’ 발사를 현지에서 지도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발사의 의도와 목적에 관해 “적들은 물론 전 세계가 이번 탄도로켓의 비행궤적만 보고도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켓의 능력을 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태평양작전지대 안의 미국놈들을 전면적이고 현실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유사시에 출동하는 전략 자산들이 주둔하고 있는 괌을 시사한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고각(高角)발사’입니다. 통상 중장거리 미사일은 45도보다 다소 낮은 각도로 쏘는 것이 가장 멀리 날아가는데, 이번 ‘화성-10’은 직각에 가까운 83도로 날아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직각에 가깝게 해 발사했다면 사거리는 당연히 짧아질 것입니다. 즉 사거리를 줄이고 고도를 최대로 높였다는 것입니다.

‘화성-10’의 고각발사와 관련 대개의 군사전문가들은 대략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거리를 줄였다는 것은 일본과 미국 등 주변 국가의 안전과 ‘북한위협론’을 고려했다는 것이고, 또 고도를 최대로 높였다는 것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탄두 대기권 재진입을 시험해봤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통신에서 전자와 관련 “시험발사는 주변국가의 안전에 사소한 영향도 주지 않고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밝혔으며, 후자와 관련 “재돌입 구간에서의 전투부 열견딤 특성과 비행안정성도 검증되었다”고 밝혀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을 시험했음을 시사했습니다.

‘화성-10’을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궤도로 발사했다면, 최대 비행거리가 3500km로 예상돼 태평양 괌의 미군기지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으로서는 끔찍한 일입니다. 나아가, 북한이 ‘화성-10’의 발사 성공으로 2020년대 초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ICBM의 실전 배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성급한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선 악몽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이번 ‘화성-10’ 발사 성공은 지난 3월 11일 김 제1위원장이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과 핵공격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필요한 시험들을 계속해나가라”고 독려한 이후 △소형화된 핵탄두,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시험발사 등에 이은 작품입니다. 북한이 지난 5월 당 제7차 대회에서 다시금 천명한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힘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로써 북한은 모처럼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에 새로운 카드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벌써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마무리했기에 ‘모라토리엄 카드’로 국면 전환 시도, △북한 내부 정책에서 ‘안보에서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미사일 실험 후 핵실험이기에 ‘핵실험 유예’를 지렛대로 한 북.중 정상회담 추진 등의 관측이 나올 정도입니다.

‘전략의 나라’ 북한의 ‘화성-10’ 발사 성공 이후 수순은 무엇일까요. 침착합시다. 오는 29일 개최되는 제13기 제4차 최고인민회의를 주목해봅시다.


[통일뉴스 데스크] 북 비핵화, 언제까지 기우제 지낼 것인가

북측의 7차 당대회를 보는 외부세계의 시선이 아주 차가웠습니다. 남측은 차갑다 못해 냉기가 느껴질 정도인데, 특히 북측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정도가 아니라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민감할 뿐만 아니라 지어 신경질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북측의 당대회에서 남측은 통일문제나 북의 대남 대화 제의보다는 오직 하나 핵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주시했습니다. 당연히 북측이 비핵화를 언급하길 바랐겠지요. 실제로 최근 남측 정부의 북측에 대한 관심은 오직 하나 ‘북한 비핵화’에 쏠려 있습니다.

북측이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했기에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남측의 이중플레이가 나옵니다. 북측더러 한편 비핵화를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 핵실험을 촉구하는 듯한 그런 이중플레이 말입니다.

남측 당국은 4.13총선에서 참패하자 곧바로 북측이 당대회를 열기 전 핵실험 가능성을 유포하다가 막상 당대회가 시작되니까 대회 진행 중에도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다가 이제는 당대회 후에도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가히 병적인 북핵 실험 조르기입니다.

북측 당대회에서는 비핵화 선언이 나오길 바라면서도 북측더러 아무 때고 핵실험을 해달라는 이 기막힌 광경. 그런데 이 기막힌 광경은 북측이 핵실험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핵보유국 선언을 하자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대회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 및 항구적인 병진노선 추구 입장을 밝히자 남측은 아예 까무러칠 정도로 자지러졌습니다. 중요하게는 김 위원장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있지만 오직 핵문제에만 초점을 맞췄기에 이는 아예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입니다.

당장 외교부는 당대회가 폐막된 다음날인 10일 북측의 핵보유국과 병진노선 주장에 대해 “북한이 핵 개발의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도록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으며, 통일부도 “긴밀한 국제공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제재·압박을 지속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및 독자제재의 차질 없는 이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직 하나, 대북 제재와 압박뿐입니다.

남측 정부는 북측의 대북정책 전환 요구에 대해 “통일전선 차원에서의 대남 평화공세”라며 평가절하 했으며, 특히 군사회담 필요성 제기에 대해서는 “진정성 없는 선전공세”라고 일축했습니다. 나아가 북측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을 제시하자 “과거 당대회에서 발표한 경제계획을 모방”했다고 폄하했으며, 새로운 속도전인 ‘만리마운동’을 제시하자 “날림공사가 될 것”이라고 혹평했습니다. 북측이 비핵화 언급을 안 하니 북측이 하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미운 모양입니다.

북측의 당대회가 끝났습니다. 이제 차분히 현실로 돌아와 북측이 당대회에서 밝힌 내용들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북측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렇다고 남측이 북측의 핵개발을 막을 현실적 방법을 갖고 있지도 못합니다. 북측의 핵개발은 외부 세계의 적대와 압박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면이 강합니다. 이제 대북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보아야 합니다. 북측더러 비핵화를 하라고 언제까지 기우제를 지낼 작정입니까.


[통일뉴스 데스크] ‘북한판 순국선열들’에 대한 묵념

어느 나라든 국가적 행사나 공공기관 행사에서 그 첫머리에 순국선열들을 위한 묵념을 하는 것은 역사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세리머니인 듯싶습니다. 북측도 예외는 아닙니다.

6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제1비서는 개회사 발표 도중에 ‘북한판 순국선열들’이라 할 수 있는 ‘혁명열사들’과 ‘애국열사들’의 이름을 호명하고는 묵상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러자 4.25문화회관에 참석한 5천 50여 명의 대표자들과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 숙여 묵념을 했으며, 묵념 후 개회사가 이어졌습니다.

김 제1비서는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이날 7차 당대회 때까지의 36년을 ‘총결기간’이라 부르고, 이 기간 중에 세상을 뜬 ‘열사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눠 호명했습니다.
먼저, ‘김일 동지, 최현 동지, 오백룡 동지, 오진우 동지, 최광 동지, 림춘추 동지, 박성철 동지, 전문섭 동지, 리을설 동지’ 등을 ‘항일혁명투사’라 부르고는 “자기 대열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을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의 먼 길을 걸어오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했다고 기렸습니다.

‘허담 동지, 연형묵 동지, 김중린 동지, 허정숙 동지, 김국태 동지, 김용순 동지, 김양건 동지, 전병호 동지, 박송봉 동지, 리찬선 동지, 리제강 동지, 리용철 동지, 강량욱 동지, 리종옥 동지, 김락희 동지, 안달수 동지’ 등을 ‘혁명동지’라 부르고는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했다고 기렸습니다.

‘조명록 동지, 김광진 동지, 김두남 동지, 전재선 동지, 윤치호 동지, 리동춘 동지, 김하규 동지, 리진수 동지, 심창완 동지’ 등을 ‘선군혁명전우’라 부르고는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웠다고 기렸습니다.

또한, ‘리승기 선생, 임록재 선생, 천세봉 선생, 백인준 선생, 유원준 동지, 리상벽 동지, 박영순 동지’ 등과 ‘한덕수 동지, 최덕신 선생, 리인모 동지, 림헌식 동지, 김광택 동지’ 등을 ‘혁명동지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 제1비서는 이들을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 세계자주화 위업을 위한 투쟁에 고귀한 생을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애국열사들, 잊지 못할 우리 당의 혁명전우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평했습니다. 대략 네 그룹으로 나눈 것 같습니다.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1987년 6월항쟁 승리의 소용돌이 속에 7월 9일 연세대에서 거행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입니다. 당시 문익환 목사는 추도사에서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민주화의 길에서 사라진 열사들 26명의 이름을 한 명씩 목놓아 소리쳐 불렀습니다. 문 목사의 절절하고 장엄한 울음소리가 교정을 울리자 식장은 온통 오열과 통곡의 바다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측에는 이렇게 목놓아 부를 ‘애국열사’들이 합의돼 있지 못합니다. 친일파와 반민족주의자가 종종 ‘애국열사’로 둔갑해 있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죽은자들’에 대한 평가가 시기와 정권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친일문제가 청산되지 못했고 오랜 기간 반민주적인 군부독재시대를 거쳤으며 또한 아직 분단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측은 조선노동당이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에 ‘열사들’을 ‘항일혁명투사들’, ‘애국열사들’, ‘혁명전우들’,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있지만, 남측은 아직 ‘열사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기에 국가적 행사나 공공기관 행사 때 ‘호국영령’ ‘순국선열’ ‘전몰장병’이라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폭넓은 이름으로 묵념을 하는가 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북한에게 제발 핵실험하라고 고사 지내는 박 정부

4.13총선에서 참패한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총선 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이는 곧 정책 전환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총선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총선을 통해 표출된 민심은 박 대통령에게 일방통행의 국정운영을 중단하고 국정기조를 바꾸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지 거의 20일이 되도록 박 정부는 국민적 정권 심판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변화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은 민생 파탄과 민주주의 파괴, 그리고 남북관계 완전 결딴 등으로 모아집니다. 남북관계로 한정해 보면, 국민은 박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시킨 것과 또 선거 직전 터트린 북측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북이라는 북풍몰이에도 엄중한 심판을 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대화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도, 3월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수소탄 실험 및 위성 발사와 관련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한지 1달쯤 지난 4월 초부터 잇따른 대외 유화 제스처를 보낸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박 정부는 북측에 호응하지 않음은 물론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와도 반해 선거 전 대북정책보다 더 강경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총선 후 박 정부가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북한이 어서 빨리 핵실험을 하라고 재촉하는 것뿐입니다.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닷새 만에 가진 지난 달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에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상황도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적 심판에 대한 사과는커녕 ‘북풍’ 타령만을 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북핵 실험 준비 발언이 나온 바로 그날, 통일·외교·안보 라인에서 기다렸다는 듯 북핵 관련 발언이 쏟아져 나옵니다. 국방부는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풍계리 일대에 대해서 면밀하게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도 “지금 5차 핵실험 등 여러 가지 도발 가능성 등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띄었습니다.

그러다가 통일부가 아예 분위기 확산의 선봉장으로 나섰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21일 통일부 출입 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전방위적 압박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남북간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재개 등 가능성을 일절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화’의 ‘대’자도 꺼내지 말라며 출구론에 대해 완전히 선을 그은 것입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지난 달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선언문이 채택된 데 대해 “북한이 국제사회서 완전히 고립되고 버림받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외교부의 업무가 북한문제에 한정돼 있고 그 목표도 북한의 고립에 있는 듯싶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라면 박 대통령을 비롯해 통일부·외교부·국방부가 북한을 향해 제발 핵실험을 하라고, 그것도 당대회인 5월 6일 이전에 해달라고, 정한수를 떠놓고 빌거나 아예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박 정부가 북한더러 핵실험을 해달라고 부채춤을 추는 이유는 뻔합니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다면, 박 정부는 이를 빌미로 북한을 무차별적으로 때리면서 선거 참패의 국면에서 벗어나 국정 현안의 잘못을 북핵 탓으로 돌리면서 조기 레임덕을 차단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는 또 하나의 새로운 북풍몰이가 될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4.13총선에 면면히 흐른 4월혁명 정신

4월혁명 56주년을 맞이합니다. 수유리 4.19탑에서 북한산 대동문에 오르는 진달래능선에는 지금쯤 56년 전 그날을 말해주듯 변함없이 붉은 진달래꽃이 만개해 있겠지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4월혁명은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와 독재에 대항한 민주주의 쟁취투쟁이었으며, 주체 세력이 초기에는 대학생들에 의해 일어났다가 점차 일반 시민, 민중들로까지 나아간 민중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혁명의 열린 공간에서 진보세력이 등장하면서 점차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차원으로 나아갔기에 민족주의적 요소도 결정적으로 가미되었습니다. 사실 4.19공간은 엄청난 열기로 가득 찬 민족통일운동의 장(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통상 4월혁명의 정신을 ‘민중.민주.민족’ 혁명의 정신이라고 평가해도 그리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당시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고 아직 혁명완수를 향해 진행하는 과정에 있기에 4월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나라 역사에서 4월혁명의 정신은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면면히 이어왔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그랬고 1987년 6월항쟁이 그러했습니다. 모두 민중과 시민이 나서 불의와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거한 것입니다.
이번 4.13총선에서도 4월혁명의 정신이 관통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은커녕 더불어민주당에도 패배해 원내 2당으로 밀렸는데, 그 패인의 핵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 대통령은 3년간 국정을 오만과 독선 속에 실정에 실정을 거듭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형태가 민생을 파탄 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그리고 남북관계를 결딴내는 데까지 나아갔으니까요.

구체적으로 청년들은 ‘흙수저’와 ‘헬조선’을 말하고, 노동자들은 항시 비정규직으로 밀려날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2년이 지나도록 세월호 참사는 그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수가 반대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사죄도 없이 10억 엔에 팔아먹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을 폐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니 사회적 불평등이 불가역적으로 심화됐고, 민주주의는 유신독재정권 시절로 역주행 했으며, 남북관계는 7.4공동성명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같이 박근혜 정부 3년간 온갖 나쁜 요소들이 켜켜이 쌓였고, 참다 참다 못한 국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그 적폐를 일소하는 표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국민들이, 민중을 신민(臣民) 정도로 여기고, 반민주적이고 민족대결적인 행태를 보여준 박근혜 정부에 대항한 것은 ‘민중.민주.민족’라는 4월혁명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징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소니 픽처스 해킹 진범? 아직 北은 아니다

한국 주요 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미국 영화사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와 주목됩니다. 노베타(Novetta) 등 사이버보안 기업 3사는 지난 2월 24일 발간한 ‘오퍼레이션 블록버스터’(블랙버스터 작전) 보고서에서 이 같이 밝히고는, 해킹조직으로 ‘나자로 그룹(Lazarus Group)’을 지목했습니다.

여기서 한국 주요 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란 2009년 7월 7일과 2011년 3월 4일에 일어난 이른바 7.7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과 3.4 디도스 공격 그리고 2013년 3월 20일에 발생한 전산망 마비 등을 말합니다. 당시 정부기관, 은행, 방송사 등의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되면서 커다란 차질을 빚었습니다.

소니 픽처스 해킹은 2014년 11월에 발생했습니다. 소니 픽처스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해 2014년 크리스마스 날인 12월 25일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영화 개봉 전 사이버공격을 받아 사내 PC가 다운되고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기업 기밀을 해킹당해 온라인상에 유출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이버보안업계 따르면, ‘나자로 그룹’은 지난 2009년부터 활동해 왔는데 한국과 미국을 집중 공격 대상 국가로 삼고 있으며, 주요 기반시설과 미디어, 국방, 항공, 금융 등 다양한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사이버 공격을 벌인다고 합니다.

문제는 당시 이들 사이버 공격과 해킹이 일어났을 때 그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수사당국은 7.7 디도스, 3.4 디도스, 3.20 공격 등을 모두 북한이 했으며, 구체적으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 산하 사이버테러 부대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역시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했었습니다. 특히,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로 2015년 1월 행정명령 13687호를 발표, 북한 정부와 노동당 관리, 산하 단체·기관들을 포괄적으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사이버 공격·위협 등을 제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나자로 그룹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공식화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주요 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미국 영화사 소니 픽처스에 대한 해킹이 북한의 소행이 아닐 공산이 있으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북한이 <노동신문> 21일자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우리에 대한 ‘추가제재’를 발동한 대통령행정명령을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며, 게다가 남측을 향해서는 “동족압살 흉계에 사로잡혀 상전의 장단에 춤을 추며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국가정보원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의 해킹’ 공격을 언급하며 줄기차게 사이버테러방지법 처리를 국회에 요청하고 있어 그 의도에 불순함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북한의 이의 제기에 남측은 늘상 하던 대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기겠지만,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나 주시해 봅시다.


[통일뉴스 데스크] 북.미가 비밀리에 평화협정 논의를 했다고?

지난달 6일 북한의 수소탄 시험 전에 북한과 미국이 비밀리에 평화협정 논의를 진행했다는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미국 고위급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핵실험 며칠 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이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협정을 논의하는 데 비밀리에 동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WSJ에 따르면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에 미국은 협상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중단을 함께 논의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인해 이 같은 외교적 논의가 중단됐다고 합니다.

다 알다시피, 6자회담이 중지된 이후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 회담을 하자고 주장해 왔고 미국은 비핵화 회담을, 보다 정확하게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평화협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기에, 양자는 줄곧 평행선을 그어 왔습니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귀결된 이후부터 불안한 평화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사실 평화협정 문제는 북한이 보다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지난해 10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에 응해 나설 때가 되었다”라고 공식 제안했으며, 같은 달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도 “하루빨리 낡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하는 등, 본격적인 평화협정 공세를 펼쳐왔습니다.

지난 17일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반도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병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해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 이후 대북 성토와 ‘북한 비핵화’ 일색에서 평화협정을 꺼낸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WSJ 보도를 보면서도 몇 가지 의미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미국의 선(先)비핵화 입장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선 비핵화를 수용하면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 비록 북한에 의해 거부되긴 했지만 이번에 평화협정 논의 안에 비핵화가 포함되면 괜찮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는 미국이 비핵화라는 전제조건에 얽매지 않고 조건이 충족되면 북한과의 평화협정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기에, 미국이 기존 대북 정책 기조에서 한 발 물러선 것입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점은 그동안 북한과 미국 간에 물밑 대화가 지속돼 왔으며, 그 내용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과 미국이 ‘뉴욕채널’이든 아니면 중국 등 제3국에서든 비공식 회담을 해왔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번 북.미 간의 소통은 북한의 유엔대표부와 미 국무부 사이의 뉴욕채널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핵심은 한국전쟁 종식 논의까지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전쟁 종식이란 곧 북.미관계 정상화로 이어지고 북.미관계 정상화는 평화협정의 전단계로 되기에, 한국전쟁 종식 논의란 평화협정을 향한 매우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출발점이 되는 셈입니다.

딱한 건 우리 정부입니다. 정부 당국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비핵화 논의가 우선”이라면서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이 주도적으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라고 밝혔지만 왠지 공허해 보입니다. 북한과 미국 간에 비밀리에 대화를 하고 있는데, 남북 간 연락채널이 모두 끊긴 지금 우리 정부는 미국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 딱해도 이만저만 딱한 처지가 아닙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달랐다니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사태를 두고 남북관계가 김대중 정부 시기인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갔다느니,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88년 7.7선언 이전으로 회귀했다느니 하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전으로 역주행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남북관계가 경색기로 들어간 게 아니라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로 접어든 것입니다.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로켓(위성) 발사 두 방으로 박근혜 정부가 취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재, 사드 도입 그리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으로 급기야 한반도에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사실 대북 강경론자인 이명박 정부 때도 개성공단만은 건재했습니다. 당시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가 있었으며, 특히 천안함 사건이 발생해 5.24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면서도 개성공단만은 예외로 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두고 4월 총선을 앞둔 북풍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개성공단이 어찌해서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는가요? 개성공단의 폐쇄 과정을 목도하면서 왜 이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크게는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과 북의 시각차에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남측 각 정부에서의 시각차 때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이자 경제협력의 주요 사업으로 시작돼,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12월에 첫 제품이 생산됐고 이후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개성공단이 평화의 지대이자 남북 경협의 현주소였던 셈입니다.

북측의 경우,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전략적 군사요충지인 이 지역의 부대를 뒤로 물러서게 할 정도였으니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도 비슷합니다.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1일 성명에서 남측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 “북남관계의 마지막 명줄을 끊어놓는 파탄선언이고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전면 부정이며 조선반도 정세를 대결과 전쟁의 최극단으로 몰아가는 위험천만한 선전포고”라고 주장했으니까요.

문제는 남측에 민족화해 정부가 아닌 민족대결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시 북측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 그리고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도 그나마 개성공단만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경제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래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애환을 알아서인지 개성공단만은 노터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은 인정사정없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하면서 그 이유로 개성공단 자금을 북측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제조에 들어가는 ‘돈줄’로 파악한 것입니다. 개성공단을 남북화해의 상징이 아닌 북측의 돈줄이라는 일방적이고도 천박한 인식을 한 것입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면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와 관련된 이제까지의 모든 언사들은 재고돼야 마땅합니다. 박 대통령은 2013년에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제1항에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했음에도 이번에 이를 어겼기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그 정체를 드러냈으며, 남북관계의 완전 단절을 자초했기에 ‘통일 대박론’은 ‘통일 쪽박론’으로 전변되었습니다.

엄중한 것은 박 대통령의 그간 언사 중에 바뀌어 질 게 아직 많다는 점보다는, 이는 이제 사소한 게 되었기에 그보다는 한반도가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었고 남북관계가 40여 년 전인 박 대통령의 부친 시대로 회귀했기에 남북대결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위성 발사.. 발 뻗는 북한, 매 든 국제사회’

결국 북한이 7일 오전 9시 30분경 위성을 발사했습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이날 “새로 연구개발한 지구관측위성 광명성 4호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완전성공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우주개발국의 발표문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에 발사한 운반로켓을 ‘광명성호’, 궤도에 진입한 지구관측위성을 ‘광명성 4호’라고 각각 명명했습니다.

앞서 북한이 지난 2012년 12월 12일에 발사해 목표 궤도 진입에 성공한 위성이 ‘광명성 3호 2호기’이고 운반로켓이 ‘은하 3호’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 위성은 ‘광명성 3호 2호기’에서 ‘광명성 4호’로 버전업이 됐고 운반로켓은 ‘은하 3호’에서 ‘광명성호’로 아예 명칭 변경이 됐습니다. 북한의 위성 발사 기술수준이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광명성 4’호 발사의 완전성공은 위대한 조선노동당의 과학기술중시 정책의 자랑찬 결실”이라며 “자주적인 평화적 우주이용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여 나라의 과학기술과 경제, 국방력을 발전시켜나가는데서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북한의 이날 위성 발사는 하루 전인 6일 국제해사기구(IMO)에 광명성 발사 일정을 8-25일 사이에서 7-14일로 앞당긴다고 통보했을 때 이미 예견됐습니다. 북한이 발사 일정을 앞당긴 이유는,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16일 ‘광명성절’에 맞춰 그 이전에 축포용으로 발사하고, 둘째 발사하기 좋은 기상조건의 날짜를 빨리 잡겠다는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발사 성공 후 북한이 “광명성절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2월의 맑고 푸른 봄하늘가에 새겨진 주체위성의 황홀한 비행운은 우리 우주과학자, 기술자들이 위대한 김정은 동지와 존엄 높은 우리 당, 우리 국가와 인민에게 드리는 가장 깨끗한 충정의 선물”이라고 강조한 데서도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번 위성 발사는, 북한이 지난 1월 6일 수소탄 시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의식하거나 또는 외부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보다는 자체 내 계획과 일정에 따라 특히 성공적 발사에 초점을 맞췄음을 보여 줍니다.

북한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할 일은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위력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핵시험이든 위성 발사든 뭐든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할 일을 다 한 셈입니다. 한 달여 사이에 전략적 노선인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에 속하는 수소탄을 시험하고 지구관측위성을 발사해 모두 성공했으니 이젠 발 뻗고 쉬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국제사회의 매를 맞아도 안 아플까요.

결국 문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입니다. 한국과 미국을 위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수소탄 시험에 대한 제재를 정하기도 전에 북한의 위성 발사를 맞이했으니 두 배로 제재에 나서야 할 판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대북 제재에 흔쾌히 나설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또한 북한에 ‘혹독한 대가’를 안겨줄 제재 내용이 무엇인지 가늠이 안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했다며 한국과 국제사회는 매를 들고 응징하겠다며 한잠 못자고 벼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며 북한은 다리 펴고 한 숨 잘 태세일 듯싶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이리 다른 모습이 벌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통일뉴스 데스크] 김영철 신임 대남총책의 등장

북측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이라면 지난 연말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비서 겸 통전부장의 뒤를 고스란히 잇는 것으로 명실공히 새로운 대남총책이 등장한 것입니다.

김영철 신임 비서 겸 통전부장의 등장은 두 가지 점에서 다소 의외입니다. 하나는 김양건 사후 누가 대남담당 비서와 통전부장을 맡을지 관심사였는데, 북측의 대남관계 인재 풀로 봐서 통전부장은 시급히 내세우겠지만 대남담당 비서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참고로 노동당 비서는 전문부서의 부장보다 높은 직책으로 사실상 총비서인 김정은 제1비서를 직접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전부장 후보로 통전부 부부장인 원동연과 맹경일 또는 조국전선 서기국장인 김완수 등이 거론됐으며, 대남담당 비서로는 그 무게감과 전문성에 비쳐 역대 비서인 허담, 윤기복, 김용순, 김양건 등에 비견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놀라움은 앞의 역대 대남담당 비서들처럼 외교분야나 국제문제에서 커온 게 아니라 군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영철이 대남담당 비서와 통전부장 자리를 꿰찬 점입니다. 군 출신이 당 비서로 임명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게다가 남측은 김영철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그리고 지난해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군부 출신에다가 호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대남총책에 앉으니 남측 일각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북측의 대남사업이 남북대화보다는 대남공작과 남남갈등 유도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우려 말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드러난 경력을 보면,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남북대화에 관여한 군부 내 대표적인 대남통이기도 합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남북총리를 단장으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 때 북측 대표단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남북 화해시기인 2006~2007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때 북측대표로, 2007년 남북 국방장관회담 때 북측 대표단 등을 맡아 남북대화에 관여했습니다. 그리고 남북 대립시기인 2009년에 대남공작 사령탑인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남북대화 본격화 시기부터 시작해 화해시기와 대립시기를 거치며 25년 넘게 협상과 공작을 해 왔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군사문제에 정통한 대남전문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남북관계의 근본문제는 군사문제이며, 대개의 현안들도 군사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습니다. 따라서 김영철의 등장은 북측이 향후 대남사업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예고이기도 합니다. 남북간 교류 협력도 하겠지만 그와 아울러 군사적 긴장해소도 병행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무엇보다 북측 당국이 김양건 사후 비교적 빠른 시일에, 그것도 수소탄 시험 후 곧바로 대남총책을 새로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남북관계를 조속히 회복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분명 북측은 5월에 있을 노동당 7차 대회를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치르고 싶진 않을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아깝다’, 김양건 비서 급서

북한의 대남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습니다.

어떤 죽음을 접해 이는 마음이 있다면, 이 경우는 “아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다른 뜻이 아닙니다. 고인이 유능한 대남사업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남측으로서는 훌륭한 대화 파트너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북관계에서 해결사 역할을 했음은 그의 경력이 말해줍니다.

2003년인가요, 당시 직책이 같은 전임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같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한동안 대남담당 실세로 누가 나올까 궁금해 했는데 다름 아닌 김양건 비서였습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때 김용순 비서가 동석했듯이,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때 김양건 비서가 동석했던 게 아직 눈에 선합니다.

2013년 봄 한반도 위기 과정에서 그 유탄을 맞고 개성공단이 가동 10년 만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4월 초순경, 김양건 비서가 개성공단에 나타나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밝힌 ‘개성공단 인질사태’, ‘군사적 조치’를 빌미삼아 개성공단 잠정 중단과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를 선언해 강골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비서는 대화와 해결사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김 비서는 지난해 10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와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전격 방남해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등과의 남북 고위급 대표단 회담에서 그동안 남측이 제안했던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한 바 있으며, 지난 8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이른바 ‘2+2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북측 내에서도 김 비서의 비중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북측은 부고에서 김 비서에 대해 “김정은 동지의 가장 가까운 전우, 견실한 혁명동지”라면서 “우리 당의 자주적인 조국통일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고 기렸습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30일 고인의 빈소를 찾아 “함께 손잡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야속하게 떠나갔다”고는 “금시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일어날 것만 같다”고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런 김양건 비서 급서에 즈음해 우리 정부가 30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의 전통문으로 조의를 표명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홍 장관이 북측 당 통일전선부 앞으로 “지난 8월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함께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낸 김양건 당 비서 및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내용의 전통문을 발송했다고 합니다.

남측과 관계를 맺었던 북측 인사의 부고에 우리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는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2003년 10월 김용순 노동당 비서에 이어, 2005년 10월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06년 8월 림동옥 통일전선부장, 2007년 1월 백남순 외무상 그리고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시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의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김양건 비서가 급서함에 따라 대남정책에 미칠 영향과 후임자 인선입니다. 대남정책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후임자가 당장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북이 만나다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풀 수 있는 해결사가 자꾸 세상을 뜬다는 게 영 안타깝고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결렬된 남북 당국회담, 소진되는 8.25합의 동력

결국 남북 당국회담이 결렬됐습니다. 남측 황부기 통일부 차관과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을 수석대표와 단장으로 한 이번 차관(부상)급 남북 당국회담이 11일 오전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1박 2일에 걸쳐 진행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남북은 합의사항이 담긴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지 못한 것은 물론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습니다. ‘결렬’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습니다. 이번 회담이 8년 만에 열린 남북 당국회담이자, 8.25합의 후속조치 성격인 첫 당국회담이었던 만큼 ‘결렬’이 주는 아쉬움과 당혹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12월 11일 회담에서의 결렬 이유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동시에 이는 이미 예상된 것이기도 합니다. 결렬 이유는 한마디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였습니다.
앞선 지난 11월 26일 남북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도 드러났듯이 남과 북이 관계개선을 위한 ‘첫수’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남측에서의 ‘금강산 관광 재개 불가’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감지되던 참입니다.

반면에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북측의 집념은 익히 예상됐습니다. 북측은 8.25합의 이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물론 신계사 복원 8주년 남북 합동법회와 7대종단 수장이 참석한 남북 종교인모임 등을 잇따라 개최하면서 이른바 ‘적공’(積功)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12월 11일 당국회담에서도 이 점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남측은 “전면적 생사확인, 서신교환 등 이산가족 문제 근본적 해결”을 제기했으며,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니 이전과는 다른 전술을 갖고 나와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적어도 문제를 풀겠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북측은 금강산 관광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서 이산가족 문제와 연계시켜 동시 이행을 주장했습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와 이산가족 문제를 함께 풀자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남측은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그 성격이 다른 사안임으로 둘을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양측의 결정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 고수라는 예전의 입장을 그대로 들고 나왔지만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 상봉을 맞바꿀 수 있다는 변화된 방법을 갖고 나온 점입니다.

어느 쪽이 옳으냐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 쪽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남측이 기존 입장을 그대로 들고 나온 이유 중에 하나는 명확합니다. 앞서 미국 행정부가 8일 북한 전략로켓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대북 제재 목록에 추가했기에, 남측 당국이 이 흐름을 역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12월 11일 남북 당국회담이 결렬됨으로써 8.25합의의 동력이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습니다. 올해 2015년은 분단 70년 광복 70년입니다. 올 초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 운운했던 호시절이 있기도 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지금 남과 북은 2015년에 정상회담 개최는커녕 가장 기본적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금강산 관광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시론> 김정은의 철학 ‘애민주의’

10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연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김 제1비서가 대중과 외신 앞에서 육성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12년 4월 15일인 이른바 ‘태양절’인데, 이때는 조부인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이자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서한지 시일이 많이 지나지 않은 터라 ‘선대 수령들’의 치적을 알리는데 할애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김 제1비서가 자신의 집권 안정성과 무엇보다도 통치철학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의 연설의 키워드는 ‘인민’이었다. 25분 정도 진행된 연설에서 그는 ‘인민대중’을 포함해 ‘인민’이란 단어를 90여회나 사용했다.

연설은 모두에서 “인민에 대한 고마움에 지금 이 시각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의 정겨운 눈빛들을 마주하게 됩니다”로 시작해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 나아갑시다!”고 끝맺는다. 인민으로 시작해서 인민으로 끝난 것이다. 연설은 처음부터 당이 곧 인민임을 선언한다. 즉 “우리 당의 역사는 곧 인민이 걸어온 길이고, 우리 당의 힘은 곧 인민의 힘이며 우리 당의 위대함은 곧 인민의 위대함이고 우리 당이 이룩한 승리는 위대한 우리 인민의 승리”라는 것이다. 결국 ‘당=인민’은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이익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습니다”며 ‘인민대중제일주의’로 나아간다.

연설은 크게 ‘인민’, ‘군대’, ‘청년’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김 제1비서는 각각의 사안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3대전략인 것이다. 그는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에 혁명적 당의 생명이 있고 힘이 있으며 양양한 전도가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당 70년사의 고귀한 총화”라면서 “우리 당은 앞으로도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의 3대전략을 제일가는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매진할 것이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할 것입니다”고 선언한다. 김정은 시대의 3대전략으로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를 제시하면서 그 첫 자리에 ‘인민중시’를 놓은 것이다. 인민중시란 곧 ‘인민사랑’일 텐데 이는 자신의 철학인 ‘애민주의’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창건 70주년을 맞아 조선노동당이 ‘김일성-김정일 당’에서 ‘김정은 당’으로 세대교체를 이뤘음을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정치인에 있어 ‘인민사랑’이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인민의 다른 이름인 국민, 공민, 민중, 민초 등을 들먹이며 애민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조금도 새삼스럽지 않다. 링컨의 저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도 애민주의의 한 전형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의 경우도 그렇다. 북한에 있어 인민사랑의 원조는 김일성 주석이다. 알다시피 김 주석의 좌우명이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가. 연설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제일주의이며 우리 당의 존재방식은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라며, 애민주의의 뿌리를 선대 수령들과 당에서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처럼 김 제1비서는 노동당 창건 70주년 연설을 통해 ‘인민’을 강조하고 또한 통치철학으로 ‘인민사랑’, 즉 애민주의를 밝혔다. 김 제1비서가 연설에서 ‘당=인민’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정작 외부세계가 궁금해 하는 다른 사안들은 깃들 여지가 없었다. 연설에서는 핵무기의 ‘핵’자도 나오지 않았고, 남조선의 ‘남’자도 안 나왔다. 기존의 ‘경제건설-핵무력 병진노선’이 ‘경제국방 병진노선’으로 가볍게 표현됐고 대남문제와 관련해서도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이라는 원론적 표현으로 그쳤다. 대미문제와 관련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 수 있다”는 표현도 ‘북한의 혁명적 무장력’을 자랑하는 설명에서 부산물로 나온 정도다. 주요 고리인 ‘인민’을 앞세우면 핵보유 문제와 통일문제, 평화문제 등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셈법이다. 많고 많은 애민주의 중에서도 김 제1비서의 애민주의는 어떻게 나타날까? 그의 철학은 현실에서 북한의 전략노선인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고 성과다. 김 제1비서의 ‘인민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 세계의 ‘인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통일뉴스 데스크] 이산가족 상봉과 북의 ‘위성’ 발사 여부

남과 북은 7~8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다음달 20~26일 금강산에서 각 100명씩 200명 규모로 진행하기로 8일 합의했습니다. 이는 지난달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이룬 8.25합의에 근거한 첫 결실입니다.

고위당국자 접촉에 이어 이번 적십자 실무접촉에서도 남북이 만나면 밤을 새더라도 합의를 내는 진풍경을 보여줘, 당사자들은 힘들었겠지만 흐뭇한 소식을 전해준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로써 남과 북은 관계개선의 도화선인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고, 8.25합의도 순항할 수 있는 탄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담의 합의가 비교적 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1박을 할 정도로 길어졌던 이유가 상봉 날짜에 대한 공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즉, 상봉 날짜를 북측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이전으로 잡느냐, 이후로 잡느냐 하고 밀당을 했는데 후자로 됐다고 합니다. 남측은 북측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한 위성 발사 가능성을 우려했는데, 이는 이산가족 상봉과 위성 발사를 연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남측 정부는 이번 실무접촉에서 다음달 10일 이전에 상봉행사 개최를 바랐겠지만, 상봉행사 준비에 소요되는 6주 정도의 기간을 감안하고 또 북측이 ‘10월의 대축전장’으로 준비하고 있는 노동당 창건일을 피해야했기에 10월 20~26일로 잡았는데, 이는 양측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남측이 우려하듯 노동당 창건일에 즈음해 북측이 위성을 발사하느냐 여부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북 제재를 가하겠다고 그물을 쳐놓은 상태입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북측의 위성 발사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는 듯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주개발은 (북한의) 국가 정책이고, 주권 사항이다”, “우주개발사업은 그 누가 반대한다고 해서 포기할 일이 아니다”, “연구 목적의 위성을 계속해서 우주로 쏘아 올릴 것이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위성 발사를 시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8.25합의로 형성된 남북 화해 분위기를 감안해 북측이 위성 발사를 포기하거나 미룰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북측이 위성을 발사할지 안 할지는 오직 북측만이 알 것입니다. 북측의 기존 행태에서 판단하자면, 북측은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일정표대로 움직이기에 노동당 창건일에 즈음해 위성을 쏠 공산이 큽니다. 2012년 북한과 미국은 어렵사리 2.29합의를 했지만 뒤이은 북한측의 로켓 발사가 빌미로 되어 파기된 바 있습니다. 이후 여태까지 양국은 아무런 접점도 못 찾고 있습니다.

북측이 위성을 발사할 경우 남북 사이에도 이 같은 상황이 재연될 소지가 큽니다. 북측이 위성 발사를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설사 한다고 해도 남측은 이를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위성 발사든 미사일 발사든 국제사회에서 해결할 여지를 남겨둡시다. 이산가족 상봉이 물거품 된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급제동이 걸리고, 8.25합의도 동력을 잃고 좌초될 것입니다. 그러면 남북관계는 다시 8.25합의 이전 상태로 돌아가 완전 단절될 것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고위급 합의로 남북관계 활력을 찾자

남북 고위급 접촉이 무박4일 43시간이란 장시간 연속 접촉을 통해 25일 새벽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이로써 일촉즉발의 남북 간 군사 대치 상태가 일단 해소됐습니다. 이번 접촉에는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참석해,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수준의 회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접촉 참가자들의 면면과 장시간 회담으로 보아 남북 양측이 빈손으로 협상장을 떠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2+2로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이 결렬됐다면 양측은 사실상 다음 수가 없기에 군사적 충돌, 나아가 전시 분위기라는 현실 속에 지난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이번 접촉에서 남과 북은 (1)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 개최 (2)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당한 것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 (3)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 중단 (4)북한군 준전시상태 해제 (5)추석 이산가족 상봉 진행 (6)남북 민간교류 활성화 등 6개 항에 합의했습니다.

이번 접촉을 앞두고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사건과 남북 포격전, 대북 확성기 심리전 방송 등 남북 사이의 긴장격화 현안들, △이산가족 상봉과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주요 현안들, 그리고 △한미합동 군사훈련 문제 등 근본문제들이 의제에 오를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전반적으로 보아 긴장완화 현안들은 (2), (3), (4)항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들은 (1), (5), (6)항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합의를 두고 일부에서 어느 쪽이 이겼고 어느 쪽이 손해를 봤다고 왈가왈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히 (2)항 ‘지뢰 폭발 사고’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한편에서는 지뢰 도발 주체를 명시하지 못하고, ‘사과’ 표명은 ‘유감’ 표명으로 대체됐으며, 재발 방지에 대한 분명한 표현을 남기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다른 한편, 북측이 부인하던 지뢰 폭발을 인정했으며, 유감이 아닌 사실상 사과이며, 게다가 ‘북측’을 주어로 해서 유감 표명을 확실하게 한 첫 번째 사례라며 승전 분위기를 띄우기도 합니다.

모두 아전인수 격인 평가입니다. 이 같은 왈가왈부는 모처럼 조성된 긴장 완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분명한 건 남북의 어떠한 개별적 이익도 군사적 충돌 방지라는 민족적 이익보다 나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어떤 합의라도 군사적 충돌을 막았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접촉을 통해 무력충돌로 치닫던 남북간 긴장을 완화시켰다는 게 중요합니다.

이제 남는 건 남북관계 개선입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하여 수시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의 협력을 촉구한다”고 강조한 것이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로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합의에 나와 있듯이 당국간 회담과 민간교류가 진행된다면 남과 북은 7년여 만에 ‘활력’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통일뉴스 통일시론] 박 대통령, 이대로 주저앉는가?

집권 반을 넘는 박근혜 대통령의 심정은 어떨까?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퇴임 후 자신의 업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것이다. 정치, 경제, 외교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보자. 국내 정치는 여야가 늘 티격태격하면서 정치적 혐오를 주는 터라 누구라도 점수 따기가 쉽지 않다. 경제 경우도 창조경제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개념도 어렵고, 또 경제라는 게 글로벌화 된 현대에 있어 일국적 차원에서 부침하는 것도 아니고 성과가 빨리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는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치적을 여기에 둘 만하다. 그러나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아온 북측에 대한 강경 입장, 해외에서의 패션외교도 2년이 넘으니 약효가 떨어진 듯하다. 게다가 현실은 더 혹독하다. 한국은 세계 패권을 꿈꾸는 동북아시아의 두 강자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강요받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경우처럼, 미국이 중국 전승절 행사의 한국 참가에 반대 의사를 밝히자, 난처한 입장이 됐다. 취임 이후부터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경색돼 왔고, 미·중 사이에 채이다 보니 사면초가에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집권 초기엔 호기라도 부렸지만 이제 임기 반을 넘기니 한계를 느끼는 듯하다. 한마디로 꽉 막힌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자력으로 뚫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게 이번 광복절 70주년 8.15경축사에서 나왔다.

먼저, 8.15경축사를 앞두고 남북관계에서 현안은 남측이 지목한 ‘북측 소행의 DMZ 지뢰폭발사건’이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 남북관계 부분 모두(冒頭)에서 “지금 북한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숙청을 강행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며 평소대로 강하게 압박하면서 “북한은 우리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깨뜨리고 남북간 통합에 역행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을 북측 탓으로 돌렸다. 여기까진 상투적이라 하자. 이어 박 대통령은 “특히, 최근에는 DMZ 지뢰 도발로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다”며 현안인 지뢰폭발사건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 대응이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당연하고도 원론적인 경고에 그쳤다. 더 이상의 확전을 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어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회’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과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 연내 실현 △홍수·가뭄·전염병 등 자연재해와 안전문제 공동 대응 △민간차원의 문화와 체육교류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 등 북측에 네 가지를 제안했다. 물론 이들 제안은 대개 이전에 제시한 것들인데, 특히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관련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하여 수시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의 협력을 촉구한다”고 강조했으나 현 남북관계 상태로 보아 공허할 뿐이다.

다음으로, 한일관계에서 현안은 8.15 하루 전에 있었던 아베 신조 총리의 담화였다. 아베 담화에서의 국민적 관심사는 ‘식민지배, 침략, 반성, 사죄’ 등이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면서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식민지배’와 ‘침략’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았고, ‘반성’과 ‘사죄’도 역대 내각의 표명으로 대신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두 차례에 걸쳐 언급하면서도 ‘위안부’ 동원에 대한 주체는 명시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베의 ‘진정성’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일단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후한 평가를 하며 사실상 면죄부성 입장을 밝혔다. 아베 담화에서 ‘진정성’ 문제의 추궁을 회피한 것이다. 그러면서 방향을 돌려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며, 일본 측에 한일관계 개선의 시금석으로 줄곧 제기해온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이 촉구는 기약 없는 메아리로 비쳐질 뿐이다.

이렇듯 박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지뢰폭발사건’과 ‘아베 담화’라는 두 가지 현안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 분명 집권 상반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확전을 피한 박 대통령은 북측과 일본 측에 관계개선을 위한 두 가지 문제를 꺼냈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이 두 가지 문제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및 한일관계와 관련해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이었다. 북측에는 남북대화의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일본 측에는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위안부’ 문제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해 왔다. 이렇게 볼 때 박 대통령에겐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겠다는 강한 투쟁의식도 없고 그렇다고 단절된 두 관계를 타개하겠다는 창발적 대안도 없다. 그냥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튼 것이다. 그러기에 ‘지뢰폭발사건’과 ‘아베 담화’에 대한 추궁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대신 관계개선을 위해 북측과 일본 측에 각각 이 문제를 꺼낸 것은 일종의 양보였다. 그런데 양보를 하더라도 소위 ‘분별 있고 질서 있는 퇴각’이 필요했다. 민족적 차원에서는 배려하고 외세에는 엄격한 것 말이다. 즉 북측엔 이산가족 상봉을 제시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그에 다른 5.24조치 해제, 나아가 상호 비방 중상 금지 등 군사문제까지 일괄논의하자고 제안했어야 했다. 그리고 일본 측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에 아베 담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차별하지 못하고 뭉뚱그려 두루뭉수리 넘어갔다. 민족 문제와 외교 문제를 똑같이 취급한 것이다. 시간에 쫓겼는가? 힘에 부쳤는가? 분별없는 양보로 북측은 받기 어렵고 일본 측은 받을 수 있는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이 남북 문제와 한일 문제의 줄타기에서 스르르 주저앉는 모습이다.


[통일뉴스 통일시론] 남북 신뢰구축의 계기, 이희호 여사의 방북

‘되는 일 하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딱 이 말부터 떠오른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양측의 공방을 보다보면 기존 관계가 기초부터 무너진 기분이다. 번지수도 잘못 짚고 싸이클도 안 맞는다. 이래서야 대화는커녕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올해 6.15공동선언 15주년, 8.15광복 70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연초부터 대화를 하자며 호기를 부린 게 부끄러울 정도다. 최근 남과 북은 성명을 내보내면 상호 비방 중상하는 성명전을 벌이고, 대화를 하자고 제의하면 즉각 퇴짜나 맞고, 어쩌다 만나기라도 하면 합의는커녕 안 만나니 만 못했다며 결별한다.

성명전(戰)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동안 북측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나 국방위원회 등을 통해 남측을 비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노동자?농민 등 근로자단체,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국연합근로단체라는 신(新)병기를 앞세워 5월 17일, 7월 15일과 25일 세 차례에 걸쳐,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아 실명을 거론하면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전국연합근로단체는 박 대통령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설과 관련 ‘공포정치’라고 말하자 “구린내 나는 악담질”, “기형적인 독사”, “미친개”, “악당년” 등 비난을 쏟아냈으며, 이어 북핵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병진노선의 부당성” 등을 지적하자 “박근혜의 천하 못된 입이 다시는 놀려지지 못하게 아예 용접해버”릴 것이라고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했다.

대화를 제의해도 곧바로 거절된다. 지난 17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제헌절 경축사에서 남북 국회의장 회담을 제안했으며, 국방부도 9월 서울안보대화(SDD)에 북측 인민무력부 부부장급 인사를 초청했다. 이에 대해 북측 조평통은 19일 성명을 통해 “북남대화가 열리고 관계가 진전되자면 무엇보다 마주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두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이유는 이렇다. 국회의장 회담에 대해서는 “국회가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체모부터 갖춰야 한다”면서 북 인권법 제정 움직임을 꼽았으며, SDD에 대해서는 “그런 너절한 반공화국 대결 모의판에 그 누구를 초청한다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실로 해괴한 추태가 아닐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조평통은 남측 대북 단체의 ‘전단 살포’와 한·미 군사연습 중지를 적시했다. 그럼에도 7.27정전협정일에 보수단체가 전단을 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어렵게 만난 일도 있었는데 아무런 결실도 못 냈다. 지난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회의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지난해 6월 이후 1년여 만에 만난 것이다. 남북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45분까지 12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다음 만남도 기약하지 못했다. 쌍방은 임금문제, 3통문제, 근로요건 개선을 위한 당면 현안 문제부터 공단 국제화, 투자자산 보호 등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와 관련한 안건들에 이르기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의 분위기가 이 같은 낮은 차원의 회의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싸늘하게 된 것이다.

왜 이 지경까지 됐는가? 성명으로도 싸우고, 만나지도 못하고, 어쩌다 만나기라도 하면 얼굴 붉히는 일이 왜 일어나는가? 한마디로 상호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시대 때 일군 신뢰가 이명박 정부 때 흔들리더니 ‘박근혜-김정은’ 시대 들어와 완전 무너진 것이다. 지금 남북 양측에는 신뢰가 눈꼽만큼도 없다. 다른 수가 없다.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신뢰구축은 단순하다. 상대편이 아파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남측은 북측에 대해 ‘병진노선 부당성’ 등 총노선 문제와 ‘흡수통일’ 등 체제 문제 그리고 전단 살포를 금해야 한다. 아울러 북측은 박 대통령에 대한 험담이나 남측이 ‘외세의 꼭두각시’라며 ‘자주성’ 문제 제기를 삼가야 한다.

마침 남과 북의 신뢰 정도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다름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다음달 5~8일 방북을 둘러싼 양측의 정성과 시각이다. 알다시피 이 여사의 방북은 ‘김대중-김정일’ 두 고인(故人)을 인연으로 해 ‘이희호-김정은’, ‘이희호-박근혜’ 사이에서 약속이 성사된 것이다. 즉, 이 여사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당국이 약속을 지킨 셈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약속을 신뢰 문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북측으로 향하는 이 여사를 만나 힘을 실어줘라.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평양에 온 이 여사를 반갑게 맞이하라. 그것만으로도 남북간 신뢰구축이 가능하다. 그만큼 남북 최고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나마 구순이 넘은 노(老)여사의 마지막 역할이 있다면 무너진 남북의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는 메신저일 터다.


[통일뉴스 데스크] 남과 북의 약속, 이희호 여사의 방북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마침내 성사됐습니다. 남측 김대중평화센터와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지난 6일 개성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이 여사가 다음 달 5~8일 3박4일 동안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북하는 일정에 합의한 것입니다.

이 여사의 방북은 8.15광복 70주년을 앞둔 시기라 주목됩니다. 그렇다고 90세를 훌쩍 넘긴 노여사(老女士)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지는 맙시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최악인 현재 상태에서 자연인인 이 여사의 방북만으로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에는 힘이 부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여사의 이번 방북 성사에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 이전의 숨은 그림이 들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남과 북의 신뢰문제입니다. 언젠가부터 남북관계가 꽉 막히고 또 뚫어지지 않는 이유는 남북 사이에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한때 남북 사이에 대화 문제를 놓고 서로 ‘진정성’ 운운한 것은 그 방증입니다.

이 여사의 이번 방북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현실적 시각보다는 남북 신뢰구축이라는 근본적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여사의 방북 건은 이 여사와 북측 당국과의 약속인 동시에 이 여사와 남측 당국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희호-김정은’, ‘이희호-박근혜’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사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입돼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공동선언에 합의했으며, 2002년에는 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도와 ‘박근혜-김정일’ 만남을 성사시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이 여사의 방북은 각 가문(家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약속 이행’이 되는 셈입니다. 한반도 현대사에서 인간적 차원에서 이보다 더한 신뢰문제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은퇴한 김대중 대통령 부부에게 틈만 있으면 휴식차 방북을 요청해 왔습니다. 양김(兩金) 사후에도 이 약속은 살아있었고, 지난해 이 여사의 방북 문제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지난해 8월 김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때 북측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조화를 전달하면서 “(이 여사 방북) 초청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밝힌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 때 이 여사가 조화를 보내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친서를 보내 사의를 표하면서 “다음해 좋은 계절에 여사께서 꼭 평양을 방문하여 휴식도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게 되시기를 기대한다”고 초청의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5주기를 맞아 이 여사가 처음으로 추모화환을 보낸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답례 차원에서 초청하자, 이 여사가 북한 방문을 요청했고 이에 박 대통령도 “언제 한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답해, 승낙을 받아놓은 터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남과 북의 세 가문이 대(代)를 잇고 유지(遺志)를 잇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이 여사의 방북인 만큼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이번 방북은 ‘김대중-김정일’ 두 고인을 인연으로 해 ‘이희호-김정은’, ‘이희호-박근혜’ 사이에서 약속이 성사된 것인 만큼, 넓게 보면 이 여사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당국이 약속을 지켜 신뢰를 구축했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여사가 방북한다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만날 확률이 큽니다. 이번 방북은 사실상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요청이자, 의리와 인연을 중시하는 북측이기에, 김 제1위원장이 이 여사를 만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도 이 여사가 방북하기에 앞서 초청해 만나야 합니다. 요즘 박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에게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을 쓰며 찍어내기를 해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배반은 흔한 일이고 특히 정치에서 배신은 다반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족문제에서 배신은 금물이고 오직 신뢰만이 관계개선의 척도입니다. 방북하는 이 여사를 만나는 게 노여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 것이고 나아가 북측에 신뢰를 보여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만남에서 박 대통령이 이 여사에게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찔러 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용감한 여성들’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약하다. 하지만 평화를 찾는 여성은 강하다’는 말도 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평화’를 찾아 한반도에 군사분계선(MDL)이 있는 사실상 중무장지대인 비무장지대(DMZ)를 도보로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24일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WCD)를 진행해 판문점 북측 지역을 거쳐 경의선 도라산 출입경사무소(CIQ)를 통해 남측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들이 애초 밝힌 대로 판문점 MDL이 아닌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국했다고 해서 이들의 의지와 용기가 폄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WCD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그리고 미국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12개국 여성 지도자와 해외동포 평화운동가 등 3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들 ‘평화 여성’들이 DMZ를 도보로 건넌다는 것은 곧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는 것으로 한마디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근본 이유는 ‘용감’이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 이유에서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 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닌 김 대통령의 ‘용기’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는 한 노르웨이 시인의 ‘마지막 한 방울’이란 시를 인용해 칭송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해 6월 평양에 온 김 대통령에게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으며”,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라고 한껏 추켜세운 바 있습니다.

이들 ‘평화 여성’들도 세 번의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들이 WCD 취지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의 분단과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잔재인, 판문점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도보”를 하겠다는 ‘창조적인 용기’를 구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날 남측에 도착한 ‘국제 반군사주의 여성 네트워크’ 창립멤버인 그웬 컬크(70세) 씨가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경에서 편도 티켓을 끊고 개성을 통해 결국 오늘 남한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밝힌 대로 ‘편도 평양행’이라는 ‘배수지진의 용기’를 보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들이 판문점을 통과해 남측 지역으로 입국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경의선 도로를 통해 입국한 ‘유연한 용기’입니다. 남측 당국과 북측 당국이 모두 이들에게 판문점 경로 대신 경의선 도로 이용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DMZ 남측 구간을 관할하는 유엔사에서 반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애초의 계획을 바꾸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들이 판문점 통과만을 고수했을 경우 유엔사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명분을 챙길 수는 있었겠지만 남측 땅을 밟는 실리를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경직된 용기’보다 ‘유연한 용기’가 나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이들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에게 ‘용감한 여성들’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하등 이상할 게 없습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반기문의 ‘개운치 않은’ 개성 방문, 북측의 ‘뒤늦은’ 철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1일 하루 일정으로 남북간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20일 북측의 방북 허가 철회로 무산됐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이뤄지는 남측 출신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라 혹여 남북관계 개선에 일말의 숨통이 트일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반 총장의 방북이라는 ‘단일 사건’만으로 그간 켜켜이 쌓인 남북간 불신의 벽이 한 순간에 제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애초부터 북측의 반 총장 방북 허용에 일말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반 총장이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바랐다면 임기 초부터 방북을 위해 부산히 움직여야 했습니다. 두 차례 유엔 사무총장직에 있다가 이제 임기 1년여를 남기고 방북을 한다는 것이 개운치 않았고, 게다가 평양도 아닌 개성을 방문한다는 게 영 미덥지 않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객관적 상황은 더 녹록치 않습니다. 개성공단 최저임금 문제를 둘러싼 남북 갈등의 고조, 북측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비난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현영철 숙청’ 발표와 그에 따른 남측 언론과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공포정치’ 부각 등이 시기적으로 반 총장의 개성 방문과는 뭔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반 총장의 방북이 북측의 전격적인 허가 철회로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일부에서 반 총장이 19일 방북 계획 발표에 앞서 가진 강연에서 북한에 “체제 내 의미 있는 개혁”을 촉구하는 발언을 한 바 있어, 북한이 반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지만 좀 빈약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국제사회로부터 ‘변덕스럽다’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방북 하루 전 불허’라는 무리수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침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그럴 듯한 이유가 나왔습니다.

20일 북측은 SLBM 발사에 대해 미국 등이 유엔 안보리 결의라는 것을 기준으로 ‘도발’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따라서 ‘유엔 안보리’에 대해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버리고) 주권존중의 원칙, 내정불간섭의 원칙들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라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유엔 안보리가 이러니 유엔 사무총장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도 왠지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지는 않습니다.

북측으로서는 뒤늦게나마 반 총장이 개성을 방문해도 남북관계 개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개성방문이 반 총장에게는 ‘이벤트’가 될 수 있고 따라서 국제사회와 남측의 대북 유화 제스처로 비쳐질 수 있지만, 사실상 지금 분위기로서는 남북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올 초부터 한목소리로 금과옥조처럼 모신 6.15공동선언 15주년, 광복 70주년이 다가오는데도 민족공동행사 개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4월 말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끝나고 6.15와 8.15를 향해 기지개를 펼 듯한 기대를 모았던 남북관계 개선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북핵 문제, ‘진지한’ 회담은 없고 몇 개냐는 ‘추측’만 난무하니

최근 이른바 ‘북핵 문제’를 놓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핵을 몇 개 보유하고 있는가하는 논란이 한창입니다. 6자회담이나 북.미 양자회담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회담은 없고 오직 북핵을 위험시하는 ‘추측성’ 주장만 난무하고 있으니, 뭔가 본말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얼마 전 중국의 핵 전문가들이 북한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핵무기 20개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혀 다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수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 수가 미국 전문가들이 추정한 10-16개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의 핵무기 수는 국제사회의 관심사였습니다. 스웨덴의 민간단체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2014년 6월 세계 핵무기 보유 현황에 관한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이 6-8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이어,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핵물리학자인 헤커 박사는 북한이 오는 2016년이면 핵무기 20개를 보유할 것으로 추정했으며,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은 올해 2월 북한이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발표는 헤커 박사의 예상보다 1-2년 앞선 것이며, 이게 타당하다면 조엘 위트 연구원의 분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예견케 해줍니다.

참고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위 연례보고서에서 세계 9개 핵보유 국가들의 핵탄두 보유량이 1만6천300개에 달한다면서 국가별로는 러시아가 8천개, 미국이 7천3백개, 프랑스 300개, 중국 250개, 영국 225개, 파키스탄 100-120개, 인도 90-110개, 이스라엘 80개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핵무기 개수에 이어 관심을 그는 것은 소형화 여부입니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 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핵탄두를 염두에 뒀음도 시사한 것입니다. 2년여가 경과한 지난 4월 7일 윌리엄 고트니 미군 북부사령관이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해 ICBM 위에 얹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나아가,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문제는 결국 그 발사체와 운반체 문제로 발전합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3월 25일 하원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의 배치 수순에 돌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알다시피, 북한은 2012년 김일성 생일 100주년 태양절 때 열병식에서 이동식 발사 차량에 탑재된 KN-08을 선보였는데, 한때 “종이로 만든 가짜”라는 견해도 있었지만 최근 “진짜 ICBM”으로 정리되고 있는 듯싶습니다.

지난 2013년 3-4월, 이른바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파다한 가운데 미국이 B-52 핵 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 그리고 F-22 전투기를 한반도에 배치하자 북한은 KN-08로 보이는 물체를 동해 쪽으로 이동시켜 맞불을 놓은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그때부터 북미간 대결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핵무기 개수에 이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 문제와 관련, 이제는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위해 플루토늄 차원을 넘어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24일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 군축담당 특보는 북한이 영변 이외 지역에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하고 있을 것으로 거의 확신한다면서, 이는 이미 공개된 영변 핵 활동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북핵 문제가 핵무기 개수에서 소형화 문제, 운반체 문제 그리고 농축우라늄 문제 등으로 비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여기에는 북한위협론을 앞세운 미국 군부의 군비 예산 확보 문제, 한국 내 사드 배치 문제 등등의 꿍꿍이속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북핵 얘기가 난무하는데도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보유국’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같은 논란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공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일뉴스 데스크] 언제고 불거질 대북전단 문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대북전단 살포를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23일 밝혔습니다. 완전 중단이 아닌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인정과 사과’라는 조건부 중단이긴 하지만 일단 한숨을 돌리게 돼 다행입니다.

박 대표는 몇몇 보수단체들과 함께 천안함 사건 5주년인 오는 26일을 전후해 대북전단 50만 장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편집분을 담은 USB와 DVD를 5천 개씩 날리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북측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북측은 22일 ‘조선인민군 전선부대들의 공개통고’를 통해 대북전단이 살포되면 “전선부대들 관하 모든 화력타격수단들은 사전경고 없이 무차별적인 기구소멸작전에 진입하게 될 것”이며 또한 “무자비한 2차, 3차 징벌타격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아울러, 남측 접경 지역 주민들의 사전 대피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도 북측의 무력대응 위협에 “만약 북측이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빌미로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도발적 행동을 감행할 경우, 우리 군은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나 하는 우려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 탈북자 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자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했으며 우리 군도 응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대북전단 살포 소동이 일단 수면 아래로 들어간 것은 다행입니다. 시기적으로도 한미연합 독수리훈련이 4월 말에 끝나면 곧바로 6.15공동선언 15주년과 8.15광복 70주년이 다가옵니다. 이른바 남북 대화의 ‘골든타임’이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이 완전 중단이 아닌 조건부 중단이기에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통일부가 23일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서 강제적으로 규제할 수 없으며, 민간이 자율적으로 추진할 사안”이라고 앵무새처럼 발언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신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첫 문제로 맞닥뜨린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이렇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홍 장관은 청문회에서 제기된 자기논문 표절 논란과 재산신고 누락 등에 대해 “반성한다”며 몸을 낮췄습니다. 잘못한 게 있어도 바로 인정을 했기에 또 결정적인 하자가 없기에 청문회를 통과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홍 장관은 자신의 개인적 잘못에 대해 사과했듯이, 이제 남북문제의 주무장관이 된 만큼 대북전단 문제와 관련 그간 정부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입장을 바꿨어야 합니다. 앓던 이를 빼지 않았으니 대북전단 문제는 언제고 불거질 것입니다. 계절적 봄은 왔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