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환영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 위원장의 특사임을 밝히고 친서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된다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연내 방북한다면 11년 만에 남북 최고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게 된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물론 문 대통령의 방북에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에만 온기가 돌기 시작할 뿐 북·미간 긴장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가 움직이지 않은 채 남북관계만 속도를 낸다면, 남북관계조차 고무줄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 구도가 구동해야 한반도 평화구도가 견고하게 정착될 수 있음은 북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림픽 축하 리셉션에 불참하고, 반북 캠페인만 벌인 뒤 한국을 떠난 일을 상기한다면 모처럼의 북한 제의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정세와 정부의 입장을 북한에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남북 공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으로서는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넘어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선제 발표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1999년 9월 북한은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대북공조가 원활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2000년은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본질적으로 동일했던 시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초기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벗어나면서 성사됐다. 이런 전례를 돌아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공조를 긴밀하게 유지하되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렛대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켰다. 남북관계 회복의 물꼬를 틔운 지금까지의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기된 한·미 훈련의 재개가 첫 장애물일 것이다. 용기와 지혜, 상상력을 발휘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북한은 건군절 열병식을 조용하게 치른 데 이어 권력 2인자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해 올림픽 개최를 축하했다. 이를 ‘매력공세’나 ‘위장 평화공세’로 간주해 버린다면 대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상을 전환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경향 사설] 규모 축소한 북한 열병식이 보내는 신호

북한이 8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 행사를 했다. 열병식은 행사시간이 지난해보다 단축됐고, 규모도 축소됐다. 북한은 또 외국 언론을 초청하지 않았고, TV 방영은 생중계 대신 녹화 화면을 중계했다. 지난해 김일성 주석 105번째 생일인 4월15일에 개최한 열병식에 외신기자 130여명을 초청하고, 조선중앙TV가 생중계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공개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도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터라 내부에 확인시키기 위해 공개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열병식이 양면성을 띠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외공개를 자제한 흔적이 뚜렷한 만큼 국제사회를 향해 ‘무력시위’를 벌였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이처럼 열병식을 예년에 비해 소리 나지 않게 치른 것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평창 올림픽 개최기간 중 휴전을 결의했고, 한·미가 합동훈련을 연기한 것에 대해 나름의 성의표시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도록 한 데 이어 열병식을 비교적 ‘조용하게’ 치른 것이 국제사회에 주는 신호는 명확해 보인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협력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9일 항공기편으로 내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을 접견하기로 했다. 김여정의 방남으로 남북대화와 관계 복원의 계기가 마련되면서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 상황에 전기를 마련할 시·공간의 성격을 띠게 됐다. 북한이 이를 최대한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미관계에서도 모멘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 외무성 국장이 8일 “북측 대표단이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북한에 이롭지 않다. 한국 정부도 북·미 양측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북 김영남 방남, 미국은 대화의 계기 놓치지 말아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이끌고 남한을 방문한다. 이미 방한이 확정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동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이 김 위원장을 고위급대표단장으로 임명한 의도는 분명하다.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북·미대화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재 대상이 아닌 데다 헌법상 북한의 국가 수반이어서 펜스 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북측 인사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김 위원장과 펜스 부통령이 공개 회동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 9일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 한 차례밖에 없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의지에 따라 비공개 회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미 양측은 어렵게 마련된 북핵 대화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대화 의지를 좀 더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북·미대화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대표단장이 된 이후 연일 대북 강경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대북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평창에 간다”고 하더니 4일에는 “평창 올림픽에서 북한 선전전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김 위원장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섣불리 북·미대화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태도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려는 한국의 의도와 배치된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이 아닌, 북핵 문제 해결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서는 안될 것이다. 설령 이번에 공식 대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향후 대화의 모멘텀이 되는 단초라도 마련하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미국, 한국의 동맹이 맞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아그레망(임명동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승인까지 한 상태에서 내정 철회가 이뤄졌다면 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의 30일(현지시간) 보도를 보면 차 내정자는 대북정책과 한·미 통상 이슈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정밀타격인 ‘코피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반대했다고 한다.

빅터 차가 낙마했다면 1년 공석 중인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채워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핵심 소통채널이 장기공백 상태에 빠진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시급한 당면과제라며 연일 대북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이 문제의 당사국이자 동맹국인 한국과는 소통창구도 완비하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미국은 이에 대한 입장을 한국 측에 성실하게 설명하고, 조속한 시일 내 후속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등과 함께 적으로 규정하면서 최고의 대북압박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연설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고강도의 대북 표현이 새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양보 없는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했다. 국정연설만 보면 트럼프의 대북인식은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던 지난해 11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올 들어 2년 만에 재개되고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동맹국의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이래서는 비핵화를 위한 한·미 공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한국을 동맹국으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 지지율 최저가 의미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주 연속 떨어지며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64%로, 지난주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상으로는 취임 후 최저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날 공개한 지지율은 이보다 더 낮은 59.8%였다. 하락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양 조사기관 모두 불과 2주 만에 9~10%포인트가 떨어졌다. 취임 후 지난 8개월 동안 줄곧 70% 안팎의 고공 지지율을 달려온 정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국정 지지율이 급속히 추락한 요인은 복합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모든 지지 정당과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하락한 것을 한 가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가상통화 규제와 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 강남 부동산 대책 논란 등 주요 민생 현안에서 정책 혼선과 미숙한 대처가 있었다. 이로 인한 실망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2030세대의 반발과 이탈이 상대적으로 컸다. 2주일 사이 20대는 13%포인트, 30대는 8%포인트나 지지율이 떨어졌다. 갤럽은 부정적인 평가 1위로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꼽았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30세대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피해자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뭐가 다르냐”는 청년들의 반응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는 지금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되묻고 있다. 젊은이들이 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엊그제 청년일자리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각 부처가 청년일자리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시민의 성원과 지지는 정부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런 면에서 핵심 지지층의 이반은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지율 하락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여러 정책을 수정·보완하면서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이 국정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지율의 일시적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국정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차제에 국정 전반을 되돌아보며 점검·평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를 국정개혁의 동반자로 이끌어내는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야 3당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정치적 현실을 방치할 경우 지지율 하락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정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젠 야당과의 실질적 협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집권 2년차부터는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고 국정운영의 성과물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상충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대책을 내놓았다가 취소·유보하는 시행착오는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책의 결과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현장 반응은 어떨지, 후유증은 없는지 세심하고 신중하게 살피는 노력이 없다면, 비전은 있되 실체는 없는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민심은 냉정하다. 민심의 지지가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최저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강요 있었는지 확인해야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때 단체로 남한에 온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송환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5일 “북측이 기존 입장을 저희에게 다시 얘기하는 정도”였다며 확인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공개된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출’만큼 의혹투성이인 사건도 드물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의 여종업원 12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3명은 2016년 4월5일 돌연 식당을 벗어나 상하이 푸둥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이틀 만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하루 뒤인 4월8일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여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입국 직후부터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한 달 넘게 걸리는 점에 비춰 단 이틀 만에 입국함으로써 국가정보원의 간여를 짐작하게 했다. 정부가 사진까지 공개하며 입국 사실을 발표한 것도 고위급 인사가 아닌 한 신분과 탈북경로를 공개하지 않는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의혹은 총선 승리를 위한 ‘북풍공작’이라는 의심을 키웠다. 입국 이후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여종업원들은 정보당국의 특별관리를 받으며 사회와 격리돼 왔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해 7월 민변 변호사들과의 면담에서 “여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은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한정되는데 여종업원들이 그럴 대상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여종업원 중 일부는 강제로 입국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인권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출석해 “일부 종업원은 집단탈출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진술이 있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탈북을 함으로써 가족과 생이별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및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물론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인권 규범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파장이 워낙 커 다루지 않는 듯하지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는 문제다. 여종업원들 모두 자기 뜻으로 탈북했는지, 자의에 반하는데도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고, 남북대화가 성사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달라”며 “미국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평창 올림픽 기간에 가족을 포함한 고위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약속도 재확인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제안에 대해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다”며 시큰둥해하던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것은 남북대화의 재개가 결국은 미국에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의 접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대화의 촉매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했을 수 있다.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는 5일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로 북한이 남북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가 마련됐고,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 동결을 거론할 명분도 생겼다. 그러나 미국 내에는 북한의 대화모드를 ‘위장평화’ 공세라고 경계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과속하면서 한·미 공조와 대북압박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백악관이 양국 정상의 통화내용을 발표하면서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한 것에서 이런 기류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국면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결국은 양측이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미는 막후 접촉도 해봤지만 대화 재개에 실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선택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면 이번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대화 속도와 방향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일지 않도록 면밀한 공조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북대화가 북·미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경향 사설] 남북관계 개선의 첫 신호 보낸 북 조평통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오후 판문점 연락채널을 다시 개통했다. 연락채널은 북측 연락관이 먼저 남북직통 전화를 걸어오면서 복구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데도 비상 연락망마저 2년 가까이 끊긴 ‘비정상’이 해소된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에 나와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방침을 전하면서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로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리 위원장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 차례 거명했고,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직접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에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또 대화에 나설 북측 기관으로 노동당 통일전선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지정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남북대화 복원과 북한의 올림픽 참가방침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에 조응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은 이번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의 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기관명의의 성명 발표와 같은 예전 방식과 달리 조평통 위원장이 직접 방송을 통해 발표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입장문에서 “북남관계 개선 문제가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해결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남당국이 어떻게 다뤄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 것도 ‘남측 정부가 하기에 달렸다’며 책임을 떠넘기곤 하던 종전과 다르다.

북한이 1일 신년사에 이어 3일 입장문 발표,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 및 통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 복원에 이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화를 앞두고 기싸움을 하려 들거나 불투명한 태도로 일관하던 과거 행태가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새해 들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이 대남비난을 중단한 것도 좋은 신호다.
물론 며칠간의 태도만으로 대화의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관계개선의 첫 단추가 순조롭게 끼워지는 흐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모처럼 마련된 대화 모멘텀을 살려 남북이 성의 있는 자세로 관계복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경향 사설] 위안부 합의 당사자 윤병세와 아베의 적반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검토 태스크포스(TF)’의 보고서에 적반하장식 반응을 내놓았다.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외교장관이던 윤 전 장관은 이면합의를 했으며 이를 은폐했다는 지적에 “비공개 부분을 대외발표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계기에 국회, 언론 등에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이면합의 의혹이 쏟아질 때 자신을 포함한 정부 전체가 “절대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나. 그는 “특히 소녀상 문제에 대한 이면합의는 없다”고 다짐했다.

위안부 합의에 ‘최종적·불가역적’이란 표현이 들어간 데 대한 해석도 가관이다. 그는 “외교적 합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으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합의와 불가역이 동일시된다면 왜 불필요하게 그런 표현을 합의문에 명기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일본이 사죄할 경우 돌이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한국 측이 먼저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제안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더욱 공허해진다.

위안부 합의의 일본 쪽 당사자인 아베 총리는 TF 보고서가 발표되자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이 추가 조치를 요구하더라도 일절 응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지만 무례한 발언이다. 지난해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를 쓰는 문제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응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일본 입장에서는 일단 합의한 내용을 재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합의 이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합의가 잘못되었음이 역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합의 하루 뒤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위안부 합의를 돈 주고 산 면죄부로 여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20여일 뒤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거가 없다”며 합의 사항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합의는 ‘(일본)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남긴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1월에는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10억엔을 줬으니 한국 측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정성이 없는 거짓 사죄로 책임만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속내가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다. 관련 당사자들 누구라도 피해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누구보다 자숙해야 할 윤 전 장관과 아베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유감스럽다.


[경향 사설]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야당의 분별력 잃은 비방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외교를 야당들이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15일에는 “국격을 훼손한 구걸외교이자 유례가 없는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삼전도의 굴욕’(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방일 중인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황제 취임식에 조공 외교를 하러 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폄훼했다. 정상외교에 대한 진지한 평가라기보다 정치공세에 가깝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과 전쟁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진정 야당들이 외교의 성공을 바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성을 잃은, 묻지마 공격이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방중을 비판하는 데 이유가 없지는 않다. 국빈방문에 걸맞지 않은 중국 당국과 언론의 홀대·무례에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수행 기자 폭행까지 겹쳤으니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벌어진 한·중 간 거리를 다소나마 좁힌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외교참사라 하고 무엇하러 갔느냐거나 주중대사·외교장관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냉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홍 대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만난 후 “자유한국당과 미국 공화당 주류들, 일본 자민당 주류들, 아베 총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미·일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북핵 문제에 한목소리로 대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야당이라 해도 나라 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를 두고 자국 정부를 제쳐놓고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추겠다니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야당도 엄연히 국정의 한 축이다. 외교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이지만 야당이라고 책임이 없지 않다. 더구나 작금의 대중 외교 난맥상은 박근혜 정부와 그를 떠받친 한국당, 바른정당이 밀어붙인 사드 배치가 시발점이다. 원인 제공자가 남 말 하는 처사에 어이가 없다. 동맹 만능을 외치며 중국 배척을 주장한 야당으로서는 중국의 환대를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환대 안 했다는 이유로 비난하다니 이런 자가당착과 무도함이 어디 있나. 정상이 해외 순방 시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관례이다. 초당적 외교는 못해도 대통령 등 뒤에서 화살을 쏘는 행태만은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핵·동맹·평창 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이상한 시선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수상쩍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7일 “미국은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도 “아직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미국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고대한다”고 해명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민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 내 논란은 결국 참가로 귀결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헤일리 대사 등의 발언은 이미 두 달 전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공식 발표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미 올림픽위원회는 이번 사태 후에도 성명을 내 기존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창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고위대표단 파견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으니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다.

궁금한 것은 왜 갑자기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가이다. 물론 미국 정부에 미국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 보호는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가 국제체육행사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 행정부 고위인사 3명이 동시에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새로운 변수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올림픽을 치르기 힘들 만큼 불안하다고 보는 건지 묻고 싶다.

헤일리 대사 등은 자신들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이 참석을 유보할 정도로 불안한 올림픽이라면 다른 나라 선수인들 오려고 하겠는가. 동맹국 잔치에 재를 뿌리려고 작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며 사드를 배치해놓고, 한반도가 불안하다며 평창 올림픽 불참을 시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뜩이나 평창 올림픽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참가 불허 조치로 먹구름이 낀 상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안될 말이다. 동맹이자 북핵 위기의 한쪽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도 안전한 평창 올림픽 개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향 사설] 미국, 북한 미사일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에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금명간 발표할 미국 독자제재로는 북한 선박 등을 겨냥한 해상봉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도 추가적 제재결의를 논의 중이다. 대북 추가 제재는 북한이 도발했으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은 현재도 최고 수준이다. 올 들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3차례 발효됐고, 미국 독자제재안도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압박이 북핵 개발 저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계적으로 제재 가짓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인들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공급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압박 수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벼랑으로 모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설령 중국이 원유공급을 전면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원유수입선을 러시아로 돌리는 길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인도주의적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한 대북 접근을 놓고 시시비비할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북핵은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문제다.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핵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북핵 위기가 고조돼 온 데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스스로도 미국의 역대 정부가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여러 차례 확언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대화의 여지를 제공한다.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두 달 이상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화의 격과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북 특사든, 뉴욕 접촉이든 마다해서는 안된다. 과거 북·미 협상은 언제나 낮은 단계의 소통과 접촉에서 발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지만 그동안은 압박 일색이었다. 이제는 ‘최대의 관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경향 사설] 미·일동맹 강화가 한반도에 퍼뜨리는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문명 세계와 국제 평화 및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전략으로, 트럼프는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아베는 “북한이 정책을 바꿀 테니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두 나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한 군비증강도 논의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길 바란다”면서 “이 장비로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안보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나아가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간접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다”고 호응했다. 일본 방문 직전 트럼프가 지난 8~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은 요격했어야 했다”면서 “무사의 나라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드러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주권국가들은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백악관이 밝힌 트럼프 순방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연대해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이다. 이 구상은 중국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허용해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북 공조를 빌미로 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미·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다. 이를 재확인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 기조에 기초해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전략에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길로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갈등이 수습되기를 기대한다.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여는 데도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사드 포대를 배치한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점을 인정하되, 그 문제로 갈등하기보다 협력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전략이다.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과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 입장을, 한국은 기존 입장을 각각 합의문에 명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핵과 미·중 대결로 동북아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2기 체제를 정비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을 유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중 간의 사드 문제 처리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다시는 사드와 같은 미·중 갈등 이슈가 한·중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이번 합의의 전제나 다름없는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MD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미·일 3국 간 군사동맹 반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미동맹을 넘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왔고 실제 사드 갈등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만 추종할 경우 중국과 큰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일 북핵 대응 방침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균형 외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만큼 양국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경일변도 북핵 대응 기조를 압박과 대화의 병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미동맹 강화와 제로섬 게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요하다.

한·중 양국의 합의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의 상호 인식이 악화된 것이 큰 문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당국 못지않게 민간 사이의 다양한 교류채널 확대가 시급하다. 교류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위한 제도화·규범화도 뒤따라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당, 박근혜 탈당 권유로 과거 청산 어림없다

자유한국당이 어제 윤리위원회를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박 전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응하지 않으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자동 제명된다. 윤리위는 또 당내 친박근혜 그룹의 대표 인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도 탈당을 권유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윤리위의 결정이 나온 뒤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선언했다.

공당이 해당 행위를 이유로 정식 징계절차를 밟아 전직 대통령을 당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징계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후 7개월여 만에, 그리고 당 혁신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탈당을 권고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가까스로 결의한 것이다. 미룰 대로 미루다 마지못해 내린 뒷북 대응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서·최 의원의 탈당 권유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적 제스처다. 두 사람은 윤리위 결정을 정치적 패륜행위라고 반발하며 당내에 남아 싸우겠다고 했다. 이들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친박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은 권력인 박 전 대통령만 버리고 이들은 그대로 눌러앉는 결과가 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 10여명을 불러들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두 당을 합쳐 기득권을 되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내린 조치일 뿐이다. 윤리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한 행위’를 이유로 탈당을 권유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 석방과 무죄를 주장하는 자기 분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 지지도는 10%대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채 수구적 행태로 일관해 온 탓이다.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혁신에 나서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상처 봉합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사실 한국당의 문제는 친박세력만이 아니다. 친박세력 청산을 넘어 낡은 이념과 노선을 쇄신해도 회생이 가능할까말까 한 상황인데,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집단에 시민들이 신뢰를 보낼 리가 없다. 한국당은 아직도 멀었다.


[경향 사설] 갈지자 행보 계속하는 트럼프, 이래서야 북핵 해결할 수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어제 트위터에서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린 글에서는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느냐”고 했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북한과 2~3개 정도 채널을 열어두고 대화하고 있다”며 북·미 간 막후 접촉 사실을 밝힌 지 하루 만에 그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이 과거 정부와 같은 유화적인 북핵 해법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협상에 나선 틸러슨과 역할을 분담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등을 향해 대북 압박과 제재라는 해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미화할 수 없을 만큼 부적절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는 국무부와 틸러슨 장관을 공개 조롱했다.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하루 만에 면박당하는 장관의 말을 어느 나라가 의미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틸러슨의 해임 또는 사임설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불신과 실망감을 안겼다. 자신은 멋대로 발언하면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동맹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상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다르고, 대통령 자신의 말이 오락가락하는데 협상이 제대로 성사될 리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데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방침으로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고 나올 수 없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폄훼한 트럼프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트위터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적 시각을 보인 점은 분명하다. 한·미 당국은 트럼프의 발언으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미 간 대화 채널 유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적 오판을 막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대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돌출발언을 멈추어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 뺀 미 전략폭격기 단독 작전,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6대가 지난 23일 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동해 공해상에서 3시간가량 날았다. 강원도 고성 동쪽 200여㎞ 떨어진, 말 그대로 북한의 코앞까지 근접해 비행했다. 미 전략폭격기가 1953년 휴전 후 처음 NLL을 넘은 가장 공세적 위협작전이었다.

이번 비행은 미군의 대응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특별한 도발이 없는데도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면서, 군사적 옵션이 말뿐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작전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반도에 출격한 미 전략무기는 한국군과 연합해 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았다. 공중급유기를 동원해 자체 급유까지 했다. 한국군과 한반도 내 미 공군기지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때도 미국은 장거리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함께 출동시켰다. 유사시 한국군과 한국 내 기지의 도움 없이 작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어제 “전폭기 출격은 한·미 간 충분한 사전조율이 있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은 단독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군 폭격기가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지 말도록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군 단독 작전의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유화적이라는 불만의 표시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미군의 작전에 북한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에 반해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을 상대로 단독 작전에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자극받아 맞대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해상과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이 심각한 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국군 개입 없이 미 전략무기가 한반도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두 번 다시 허용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북핵 대응 위해 핵잠수함 도입한다니, 황당한 발상이다

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전략 부재로 중심 잃더니 기어코 사드 배치 강행한 정부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경향 사설] 전술핵 거론 어물쩍 넘길 일 아니다, 진상을 밝혀라

송영무 국방장관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차례로 나서서 송 장관의 발언 경위와 전술핵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지만 시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를 틈탄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러다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송 장관이 전술핵을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전술핵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너무 안일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 송 장관 발언 사태의 본질은 국방장관이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민감한 이슈를 의제로 제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국방부가 먼저 송 장관 발언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의도를 갖고 사전에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발뺌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정부의 해명만으로는 왜 송 장관이 돌출발언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야당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미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한 자유한국당은 그제 전술핵 재배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 결의안을 발의했다. 바른정당은 한국에 핵을 배치한 뒤 한·미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핵공유’ 방안을 제기했다. 송 장관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북핵 정책이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위험한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송 장관 발언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송 장관이 개인 소신으로 한 발언인지,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정부의 북핵 정책 변경에 앞선 여론 떠보기인지 규명해야 한다. 그냥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송 장관 발언과 정부의 대응 문제는 단순히 불안감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안보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향 사설] 권력·자본의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에 내려진 사법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센 재벌 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박영수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경제 위기설 등을 들고나온 재계와 보수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의거해 판단한 결과라고 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했으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고 범죄수익 은닉에 나아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자본권력은 최고 정치권력에 뇌물을 줘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행정을 이끌어 내겠다고 생각하고, 정치권력은 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권력이 자본권력에 의해 동원되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재판부도 “박근혜는 국정 최고책임자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차원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인식했다”며 “박근혜는 최순실과 공모해 세 차례 단독 면담을 통해 이재용에게 정유라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유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각 계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너무나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이번 일은 오로지 제 짧은 생각과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독선에, 법에 대한 무지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이건희 회장 대신 죄를 덮어쓰려 했던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의 복사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을 통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총수 개인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계는 삼성 총수가 구속되면 삼성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국가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전파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 초 180만원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현재 235만1000원을 기록했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오히려 이 부회장과 그룹 수뇌부였던 셈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봐준 덕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두 차례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특검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모두 솜방망이였다. 이런 관행이 한국의 재벌에 총수 1인체제의 후진적 지배·경영 구조를 온존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 부회장이 이렇게 무모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오늘날과 같은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박영수 특검의 수사로 시작된 삼성 사건은 1심 재판으로 일단락됐다. 다만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국정원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있다. 삼성 측은 항소의 뜻을 밝혔다. 특검은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일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 재판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박 전 대통령 공판에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