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심상치 않은 북·미 움직임, 대화 해결의 원칙 이어가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영국을 방문하는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라고 거듭 강조한 뒤에 한 말이지만 지금껏 북한을 두둔해오던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 위원장을 조롱하듯 불렀던 ‘로켓맨’이라는 말도 2년 만에 다시 입에 올렸다. 그런가 하면 북한 매체들은 4일 김 위원장이 군 고위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장면을 보도했다. 중대 사안을 결정한다며 노동당 중앙당 전원회의도 소집했다. 전날에는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연말까지 새 협상안을 내놓으라며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재개를 시사했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북·미 대화를 둘러싼 난기류가 심상치 않다.

최근 북·미 간 신경전은 2년 전 상황을 상기시킨다. 북한이 2017년 7월4일 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에 이어 ‘완전한 파괴’를 위협했다. 이후 전략무기 전개 등이 이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때처럼 ‘연말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북·미 양측의 군사대응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4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북한이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맞서 미군도 연일 한반도 상공에 최첨단 정찰기들을 띄워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지금 북·미가 쏟아내는 강경 메시지는 일종의 협상 전술로 보인다. 하지만 대화 분위기는 한번 흐트러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북한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만약 트럼프의 ‘무력 사용’ 언급이 북한에 대한 엄포를 넘어 재선을 위한 대응책의 시작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자칫 협상판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

물론 북·미가 아직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김 위원장을 좋아한다”고 했고, 북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할지는 미국에 달렸다”고 했다. 북·미 양측은 이대로 극한 대치로 치달아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우선 군사대결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 마침 북·미 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달 중순 방한한다. 북·미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 유일한 답이라는 점을 확인, 연말까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 양측이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경향 사설] 또 ‘군함도 보고서’에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 뺀 일본

일본이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두번째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에도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지난 2일 게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보고서’는 일본이 2017년 처음 제출했던 보고서와 달라진 내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2015년 7월 하시마(군함도) 탄광 등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에 포함된 야하타제철소, 미이케 탄광, 하시마 탄광은 조선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일본은 일부 시설에서 한국인 등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한 점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 제출한 첫 이행경과보고서에서 일본은 ‘강제(forced)’라는 표현 없이 “2차 세계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일본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했을 뿐이다. 정보센터도 나가사키현 현지가 아니라 1000㎞ 넘게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기로 했다. 이번 보고서도 2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2001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 산업단지에는 “강제 노역은 독일 최대 제조업 공장 안에서 특히 잔인하게 이뤄졌다. 루르 공업 단지에서는 6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해됐다”고 쓰여있다. 독일의 이런 솔직한 고백 덕에 이 시설은 등재 결정도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잘못된 과거라 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모범답안이다.

지난달 22일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조건부로 유예하고, 일본도 수출규제를 풀기 위한 협의에 나서기로 하면서 한·일관계는 최악의 단계를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감정의 앙금이 두꺼워 언제든 양국관계가 파탄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다. 이런 시점에 일본이 반성 없는 보고서로 한국인들을 자극한 것은 유감천만이다. 일본은 약속한 대로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한다. 세계유산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주요 당사국인 한국과의 대화에도 나서야 한다. 과거사만 나오면 지우고 감추려드는 태도로는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없다.


[경향 사설] 나경원의 ‘북·미 정상회담 자제’ 요청, 제정신인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 정부 측에 내년 4월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지난 20일 방미 때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총선이 있는 내년 4월 전후로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내년 총선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국당이 선거에서 불리하니 이를 연기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했다는 얘기다. 방위비 협상과 관련, 초당적 외교를 하러 간 자리에서 미국 당국자들에게 한국당 선거를 도와달라고 매달린 셈이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선거 이해득실 때문에 ‘한반도 평화’마저 미국 측에 거래하고 공작하려 했다니, 참담하기 짝이 없다.

나 원내대표는 논란이 일자 입장문을 내고 “금년 방한한 미 당국자에게 지난해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제1차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이 다음 정상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정상회담의 취지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방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날 때부터 일관되게 미국 측에 이런 요청을 했다고 시인한 셈이다. 지방선거 참패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문이라는 인식부터 지독한 민심 오독이지만, 선거에 눈이 멀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마저 반대하다니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1997년 대선 당시 북측에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 사건’을 비롯해 선거 때마다 ‘북풍’을 획책해온 DNA가 한국당과 나 원내대표에게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이다. 이제 북한에는 안되니 동맹인 미국을 통해서라도 한반도 국면을 어렵게 만들어 총선에 활용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일본에는 총선 전까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풀지 말아 달라’ 하고, 기업들을 만나서는 ‘투자를 하지 말라’고 요청할 판이다. 북·미 대화가 파탄나 한반도 위기가 증폭되고, 경제는 나빠져 민생 불안이 커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이라면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김세연 의원 불출마 선언문)다. ‘매국 정치’로 국익을 위협하고 국민에 모욕감을 준 나 원내대표는 구차한 변명 늘어놓지 말고 당장 통렬히 사죄하고,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경향 사설] ‘일본 책임’은 빠진 미국의 GSOMIA 압박, 너무 지나치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15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유지를 재차 촉구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종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GSOMIA에 대해 “한·미·일이 효과적, 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중요하다”면서 “만료되도록 방치한다면 효과성이 약화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양측의 이견들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GSOMIA의 만료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고도 했다. 에스퍼 장관은 그러나 GSOMIA 종료 결정의 원인인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GSOMIA 시한 종료를 일주일 앞둔 이날 에스퍼 장관은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GSOMIA 유지를 촉구했다.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안보차관보, 마크 밀리 합참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등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을 대동한 채 총공세를 편 셈이지만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문 대통령은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요구는 ‘고장난 축음기’처럼 하등 달라진 게 없을 뿐 아니라, 설득력은커녕 성의조차 없어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 “일본에도 노력해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했다지만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GSOMIA 종료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에는 별다른 요구 없이 한국만 과도하게 압박해왔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한국을 안보 불신국으로 지목하면서 군사정보는 받아내겠다는 일본의 태도에 미국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묻고 싶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외교당국 간 협상에 대해 미 국방장관이 나서 증액을 공개 요구하며 압박한 것이다. 이날 여야 의원 47명이 성명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은 주한미군 숫자조차 한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은 채 ‘묻지마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기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행태는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민들의 피로감을 키울 뿐이다.

한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일본이 태도 변화를 보인다면 한국 정부도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움직이지 않는 한 한국이 물러설 수는 없다. 미국이 GSOMIA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경향 사설] 미 합참의장의 경솔한 ‘주한미군 비용’ 발언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보통의 미국인들은 주한·주일미군을 보며 ‘왜 그들이 거기에 필요한가. 얼마나 드는가. 한국, 일본은 아주 부자 나라인데 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것은 ‘정치인의 화법’이라고 쳐도, 미군의 군령권자가 비용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언급한 것은 예사로이 넘길 일이 아니다.

밀리 의장의 발언이 “미군이 동북아에서 안정화 역할을 하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이어진 것을 보면 동북아에서 미군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거론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려는 차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합참의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에 어울리지 않는 경솔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한·미 간에 방위비 분담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문제가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당국자들이 한국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밀리 의장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경고로 위협할 가능성을 예고한 것으로 읽힌다. ‘주한미군 카드’를 흔드는 것으로 국내 보수세력을 자극해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여론 분열을 꾀하려는 노림도 있어 보인다.

13일 방한한 밀리 의장은 14일 한·미 군사위원회(MCM) 회의에 참석한다. 지난 8월 시행한 전작권 전환을 위한 기본운영능력(IOC) 검증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주된 의제이지만, GSOMIA 연장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거론할 것이 확실하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14일 한국에 도착해 15일 제5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 참석한다. 미국 안보 수뇌부가 총출동해 GSOMIA 복원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중심을 단단히 잡고 대응해야 한다. 안보불안을 자극하면서까지 방위비 분담금의 턱없는 인상을 이끌어내려는 미국에 당당하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액은 하등의 논리적 근거가 없다. 국방력 증강에 매년 그토록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다고 여기는 ‘대미의존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매년 똑같은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경향 사설] 피해자 권리 무시되고 한·일 갈등 심화된 징용 판결 1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한 지 30일로 1주년을 맞았다. 당시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11 대 2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며 도리어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을 강행했다. 이후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한 한·일관계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1년이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신일본제철의 반인도적 행위로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피해자들은 60년 넘게 기다린 끝에 2005년 한국 법원에 첫 소송을 제기했고, 13년여 만에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사이 원고 4명 중 이춘식씨 혼자 생존해 있다. 1년이 되도록 법적으로 인정받은 권리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게다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 절차가 중단된 상태이다. 자산 매각을 위해서는 일본 기업에 압류명령서를 보내야 하는데 일본 외무성이 특별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이를 반송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행위나 다름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일본 정부의 비상식적인 입장 탓이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국제인권법의 기본을 무시하고 있다. 1991년 야나이 슌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등도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금 현금화 조치가 연말이나 내년 초에 마무리될 수 있다. 일본 기업의 자산 강제 매각이 현실화하면 한·일 갈등은 한층 더 격화된다. 그런 상황에 이르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난 24일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평행선을 달리던 양국 관계가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신조 총리 회담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실적인 방법은 한국 정부가 제시한 ‘1+1’(한·일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위자료 지급)안을 토대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양쪽 입장을 절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일본 정부가 한국이 먼저 입장을 달리해야 한다는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 12월에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양국은 갈등 해결의 접점을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경향 사설] 미국의 잇단 GSOMIA 복원 압박, 부당하다


미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놓고 한국 정부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2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GSOMIA는 미국과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도 유익하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GSOMIA 종료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틸웰 차관보는 또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도 “한국이 GSOMIA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달 23일 효력이 종료되는 GSOMIA를 유지하라고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스틸웰 차관보의 발언을 보면 미국의 GSOMIA 복원 의지는 상당히 굳다. 그는 “GSOMIA가 종료돼도 한·미·일 방위기밀정보공유 각서(TISA)를 통해 군사정보를 계속 공유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보 공유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GSOMIA 종료는 당초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서자 한국 측이 어쩔 수 없이 택한 대응책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국을 향해서만 GSOMIA 종료를 철회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미측은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로 비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한국의 안보 규정을 문제 삼아 경제보복을 가한 것은 바로 일본이다. 한국 측의 사정은 무시한 채 자국과 일본의 입장만 내세우는 태도가 실망스럽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더 공평한 몫을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노골적으로 증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략무기 전개비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위배된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는 GSOMIA를 존속하기 어렵다. 아무리 미국이 원한다고 해도 이는 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다. 한국인들은 GSOMIA 종료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미국이 압박을 계속한다면 이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일임을 미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금강산관광의 문 닫혀선 안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남측 시설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면서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됐다면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금강산관광을 추진했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금강산이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지시는 한마디로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것이어서 충격과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고 한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에도 어긋난다. 북한은 평양공동선언 이후 남측에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해왔고, 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대가 없는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를 의식한 남측 정부가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금강산에서 남북협력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을 해온 셈이다.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봐온 김 위원장은 남한이 앞으로도 한·미 공조의 틀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굳힌 것 같다. 북·미 협상으로 비핵화가 진전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의 표출로도 보인다. 그러나 어떤 명분으로도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금강산관광 사업을 ‘남북관계 파탄의 상징’이 되도록 해선 안된다. 남북 합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에 거액을 투자했던 현대아산의 손실도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북측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정부는 남북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에 함몰돼 대북 제재의 예외항목인 관광사업을 재개할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설득력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는 선순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나치게 북·미 협상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시설 철거를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한 만큼 대화의 계기는 일단 마련됐다. 하지만 북측의 연락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곤란하다. 선제적 대화 제의와 해법 제시 등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금강산의 문이 닫히는 걸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경향 사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빈곤 퇴치 연구의 교훈


에스테르 뒤플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 부부와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연구해온 개발경제학자들이다. 주목할 것은 수상 이유가 빈곤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현장 실험을 통해 빈곤 퇴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빈곤 퇴치를 위한)확실한 결론을 이끄는 것은 경험적 접근”이라고 밝혔다.

세 교수 연구는 빈곤층에 대한 인식의 교정에서 출발했다. 뒤플로 교수는 “빈곤층은 모두 절박하다거나 게으르다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교수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를 진행했다. 같은 집단에 대해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실험이다. 예컨대 말라리아 예방 접종자를 늘리기 위해 단순 독려보다 콩을 제공하고, 교육 지원사업에서 교사 수를 늘리는 대신 구충제를 공급했다. ‘작은 경제적 지원’이 접종자를 늘렸고, 구충제 복용으로 질병 결석이 줄면서 학력은 물론 소득 수준도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거대한 개발원조보다는 실험을 통한 빈민층 지원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뒤플로 교수는 개도국 극빈층에 적용한 이 실험이 부유한 국가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캐리커처로 희화화 대상이 되는 게 다반사이고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조차 빈곤층 문제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국민 10명 중 1명은 아직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송파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 역시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의 ‘공공임대주택-구멍 뚫린 복지’ 기획보도도 시사적이다.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만족도는 90%를 웃돌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거주자들은 “없이 사니까” “갈 데가 없다” 등 전혀 다른 심경을 털어놓았다. 복지 정책이 현장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뒤플로 교수는 수상 인터뷰에서 “덜 부유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경향 사설] 북·미 실무협상 결렬, 조속한 시일 내 재개해야


북한과 미국이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협상이 또 결렬된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의 일방주의적 비핵화 접근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비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협상이 결렬된 것은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출발점으로 단계적 합의를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북한과, 최종단계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 차는 한 차례 실무협상에서 좁혀질 만큼 간단치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 국무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 반면 북한은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며 ‘결렬선언’까지 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서도 미리 소개했다”는 미국의 설명을 감안하면 하노이 때보다는 미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경위야 어찌 됐건 북한의 결렬선언으로 협상이 다시 고비를 맞게 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연말로 비핵화 협상시한을 제시한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미 의회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추진이 돌발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날씨마저 험한 형국이다.
물론 양측 모두 추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낙담은 이르다. 미국은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측의 초청을 수락했고, 북한에도 제안했다고 한다. 김명길 대사는 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외교협상에서 100% 완승은 있을 수 없고, 70년 적대관계를 단기간에 해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유념해야 한다. 7개월 교착 끝에 되살려낸 협상 모멘텀이 꺼지지 않도록 양측이 조속한 시일 내 협상을 속개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한다. 쌍방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면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협상 재개, 한반도 평화 대전환의 서막이기를


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일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로 끝난 지 7개월 만에 양측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비록 ‘실무’급 협상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자리가 될 것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을 좁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에 질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 순항시켜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을 섣불리 전망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접근방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왔다. 지난달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공감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선 비핵화’에 집착해온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동시적 접근법’을 ,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단계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교착 끝에 열리는 이번 실무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서막이 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조국 통화’ 부적절하나 검찰의 정치개입은 더 심각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당시 현장에 있던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놓고 파문이 커지고 있다. 조 장관은 “제 처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안 좋은 상태에서 안정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고 했다. 조 장관은 남편으로서 수사팀에 배려를 부탁한 것처럼 말하지만, 검사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다. 일반 시민이라면 자기 집에 압수수색 나온 검사와 통화라도 할 수 있겠는가.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법무장관으로서 검사와의 통화는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쪽은 검찰이다. 조 장관이 압수수색 검사와 통화한 사실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공개됐다. 압수수색 현장 상황은 검찰 지휘라인에만 보고되는 기밀 사항이다. 검찰 내 극소수만 알고 있는 수사 과정의 기밀이 유출됐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검찰은 “전화 받은 검사가 심히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검찰은 그때 바로 이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수사 외압’을 문제 삼았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야당 의원이 수사 기밀을 공개하고, 뒤늦게 맞장구치는 식의 행태는 수사 외압을 막겠다는 의도보다 정치공세의 소재로 이용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난해 검찰 간부는 세월호 수사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청와대와 해양경찰 간 통화 녹음파일을 압수수색하지 말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우 전 민정수석의 외압 의혹을 수사한 뒤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관철하는 등 원칙대로 수사해서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검찰은 11시간 동안 장관 집 안 곳곳을 뒤지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심지어 자녀의 중학교 시절 일기까지 압수하려 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과연 현장 검사들이 장관 전화를 받고 위축됐다고 할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한국당이 “명백한 수사개입이자 직권남용으로 탄핵 사유”라고 주장하는 건 지나친 정치공세다.

조 장관 수사에서 검찰은 피의사실 공표, 정치개입, 피의자 모욕 주기, 인권침해, 여론재판 등 과거의 ‘못된 버릇’을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검찰개혁은 법·제도 개혁뿐 아니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과 수사관행 등의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지적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이럴진대 보통 시민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검찰은 조 장관 수사가 진행되는 내내 되레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싱가포르 합의’ 협상 기조 확인한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열어 북한과의 70년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내용의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북한을 상대로 무력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약속도 재확인했다. 아울러 북한의 대화의지를 긍정 평가하고 조기에 북·미 실무협상을 통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나가기로 했다.

두 정상이 지난해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정신을 복원한 것은 가장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이 합의 불발로 끝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과 다른 태도로 대북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하지만 합의 이후 미국 내 강경파의 비판에 휩싸인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선 비핵화’에 집착하는 바람에 후속 협상이 장기 교착된 것은 알려진 대로다. 불가침 약속과 싱가포르 합의를 강조한 것은 북한이 제기해온 안전보장 의제에 화답하는 성격도 있어 보인다.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 정신으로 되돌아간다면 북·미 실무협상도 긍정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방법’이 거론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리비아 모델’을 비판하면서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 모른다”고 했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유연성을 비친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번 회담에서 윤곽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돼왔던 터다. 아울러 대북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언급은 있었지만,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경협에 대해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실망할 건 없다. 임박한 협상을 앞두고 전략과 협상카드를 미리 노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북·미 실무협상이 앞으로 2~3주 안에 재개될 가능성이 크고, 합의가 도출될 경우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이날 밝혔다.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전제로 11월 부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북·미 협상이 진전될 경우 남북관계도 풀리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될 것이라는 반가운 관측이다. 이 시나리오가 성사되려면 임박한 북·미 실무협상이 성과를 내야 한다. 북·미 양측이 한 발짝씩 양보하는 태도로 천금 같은 기회를 살려나가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완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향 사설] 한·미 정상회담, 비핵화 협상 촉진하고 한·미동맹 다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석 달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우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눈앞에 두고 열리는 정상회담이라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에 눈길이 쏠린다. 또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선언과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등 한·미동맹을 둘러싼 현안도 대두돼 있다. 정상회담에 쏠리는 눈길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북한이 이달 안에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북·미 협상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2일(현지시간) “올해 안 어느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며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까지 언급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도 미국의 유연한 대응을 시사하면서 협상 전망을 밝게 한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말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양쪽 모두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 서로 입장을 절충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싼 북·미 간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북·미 간 협상을 마무리할 절호의 기회가 온 만큼 타협을 유도할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청와대의 말처럼 어떻게든 이번 북·미 간 접근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GSOMIA 종료 선언에 미국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한·미 양국 관계가 불편하다. 문 대통령은 GSOMIA 종료가 한·미동맹과 무관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동맹의 미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도 ‘미국이 부유한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방어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동맹국들이 더 나쁘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곧 시작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양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의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니다. 더구나 한·미 양국은 올해 분담금을 8.2% 증액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큰 폭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이런 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내야 한다. 북·미 협상과 한·미 현안 등 양쪽 모두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면밀하게 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경향 사설] ‘슈퍼 매파’ 볼턴의 전격 퇴장과 북·미 핵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의 경질을 알리는 트윗에서 “나는 그의 많은 제안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달리했다”고 언급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문제 등에서 이견을 노출해 왔다고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란과의 직접 협상과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 일원으로 복귀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해왔다. 특히 지난 8일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자들 간 비밀회동이 전격 취소된 것은 이에 반대하는 볼턴 측이 이를 언론에 유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군사력에 기반한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네오콘’ 출신의 볼턴은 지난해 4월 백악관에 합류한 이래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대북 강경론을 주도해왔다. 그는 ‘선 핵포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을 앞세워 북한을 줄곧 압박해 왔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북한 핵무기를 테네시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초래하면서 회담이 무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도 볼턴의 책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볼턴의 강경일변도 대북 노선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구상에 차질을 빚게 하는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할 당시 볼턴을 몽골에 보낸 것은 북한의 반감을 의식한 조치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차관이던 2002년 북·미 제네바 합의 파기에도 개입했고, 유엔 대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는 등 북한과의 ‘악연’은 뿌리가 깊다. ‘슈퍼 매파’ 볼턴의 퇴장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임박한 북·미 대화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실무협상을 할 뜻을 밝힘으로써 하노이 이후 반년 만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핵포기 의지를 의심하면서 일괄타결 방식의 ‘빅딜’을 고수해온 볼턴 보좌관의 경질은 미국이 북한에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나올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최근 대북 발언도 전향적이다. 새롭게 열린 기회를 북한이 놓쳐선 안된다. 실무협상에 능동적으로 임해 비핵화 방법론에서 양측 간 이견을 좁히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미군기지 조기 반환 요구는 한국의 당연한 권리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평택기지 등으로 이전 완료했거나 이전 예정인 총 26개 미군기지에 대한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 서울 용산기지 반환절차도 올해 안에 개시하기로 하고 이런 내용을 미국 측에 통보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을 두고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비판한 미국을 향해 맞대응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사안의 본류를 잘못 짚은, 그리고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편향적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기지 이전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미국은 반환하고 남은 26개 기지 중 19곳은 반환절차 개시를 협의 중이지만 7곳에 대해서는 반환절차 개시 협의조차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원 원주시 태장동 일대 34만4332㎡ 규모의 ‘캠프롱’은 2010년 6월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한 뒤 부지가 9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 기지는 2013년 원주시가 국방부와 토지매입 협약을 체결, 3년 뒤 665억원을 완납했음에도 토지를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미군이 50년 이상 쓴 이 기지 부지 내 토양 오염 정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놓고 미군과 환경부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부평과 동두천 등에 있는 3개 기지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자체는 외자 유치까지 해서 부지를 매입하고 환경부담금까지 물고 있는데 땅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해결해달라고 지자체가 아우성을 치는데 두고만 본다면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가 분명하다. 주한미군사령부와 미 8군사령부가 이미 용산에서 평택으로 옮겼는데도 한·미는 용산기지 반환절차 협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협의 개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미군기지 반환은 지금 시작해도 마무리되기까지 한참 걸린다. 이런 당연한 정부의 방침을 두고 한·미관계를 악화시킨다고 비판하는 주장은 과도하다. 반환이 지체되는 미군기지를 방치하는 게 옳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미국은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판국이다. 미국은 이 점을 이해하고 기지 반환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이들 기지의 오염을 먼저 해결한 뒤 그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시켜 상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향 사설] GSOMIA 종료 후폭풍, 한·미동맹 관리 만전 기하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겠다고 밝힌 후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일본의 반발은 예상한 바이지만, 미국 또한 이례적으로 강하게 유감의 뜻을 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통화한 뒤 한국의 GSOMIA 종료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도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 미 국방부의 논평을 재차 확인했다. 그동안 물밑에서 조용히 이견을 제기해온 관행을 깨고 공개적으로 미국이 불만을 표명한 것이다. 청와대는 23일 “GSOMIA 검토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했다”며 “이번 결정으로 한·미동맹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국 간 태도에는 꽤 큰 괴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이 그동안 GSOMIA 유지를 요청해온 만큼 자국의 뜻과 반대되는 이번 조치에 실망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기본적으로 한·일 간 문제일 뿐 한·미동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아무리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중요하지만 한국의 입장도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이런 사안으로 손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당국은 이런 점을 들어 한·미동맹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이번 조치가 인도·태평양전략의 중심축인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서 이탈하려는 신호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북한이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리용호 외무상 명의로 담화를 내 미국을 맹비난했다. 북한이 외무상 명의로 이렇게 입장을 밝힌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북·미 회담 전망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런 때 북·미 양국이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협상 결과를 도출하려면 한국의 중간자 역할이 필수적이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비롯해 한·미 간에는 현안이 즐비하다. 정부는 외교·국방장관 회담 등을 통해 현안을 긴밀히 논의함으로써 사전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다행히 미국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유지를 위한 긴밀한 소통을 강조했다. GSOMIA 종료로 한·미 간 정보 공유에 공백이 없도록 대비해야 한다. 한국민들은 또한 미국이 정보보호협정 종결 조치에 대한 유감을 동맹국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일을 지렛대 삼아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을 해결하려고 압박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미국도 한·일 갈등을 방치만 하지 말고 보다 적극 개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 대화 버리고 남측과 대결하자는 건가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1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격렬히 비난한 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저들이 북남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조선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데, 삶은 소대가리도 양천대소할 노릇”이라는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고 경축사를 ‘망발’이라고 하는 등 도를 한참 넘는 험담을 했다. 또 북한은 이날 오전 8시쯤 강원도 통천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발도 쐈다. 최근 북한의 도발 중 가장 수위가 높았다.

북한이 이렇게 남측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개성공단 재개 노력 등을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한 실망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남측과 인접한 통천 지역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데는 주초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 발표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다. 내부적으로는 미사일 실험 등을 통해 군부세력 등을 달래며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기대했던 대북 제재 완화가 없는 만큼 대외 긴장 조성이 필요했을 터이다. 또 이날 담화는 남측을 향해 “조미(북·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목을 빼들고 기웃거리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남측은 무시하겠다는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의 강화를 시사했다.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한국을 비판함으로써 북핵 실무회담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면서 남측에도 중재 역할을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두루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도발은 도를 넘었다. 남남갈등이 촉발되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온갖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동원하며 문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태도가 아니다. 이는 남북정상이 합의한 판문점·평양 공동선언 정신에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북측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난은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남측의 최고지도자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명백한 이율배반이다. 이는 남측 시민 전체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측은 9·19 평양공동선언 등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오히려 북측이 남북공동지뢰제거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등에서 약속을 어기고 있다. 남측은 더 이상 북측의 도발에 인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들어섰다. 지금 북한에 유일하게 열려 있는 길은 남측과의 대화·협력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북한의 무력 및 언어 도발은 대화 국면을 대결 국면으로 돌리는 위험천만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경향 사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 여행 어렵도록 하겠다’는 미국


2011년 3월 이후 한 번이라도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앞으로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이 기간 중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을 다녀온 3만7000여명은 ‘최대 90일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별도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1년 3월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여행객이 ESTA를 통해 미국에 무비자 입국하는 것을 이날부터 금지한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ESTA는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전자여행승인제도’인데 한국은 2008년 VWP 가입국이 되면서 지금까지는 온라인으로 ESTA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테러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조치라고 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등 7개국을 방문·체류했다면 ESTA 발급이 불가능한데, 여기에 북한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 국민 중 북한 방문 경험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남북경협을 옥죄려는 것’이라는 일각의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시점인 만큼 ‘하필 왜 이때’라는 찜찜함은 남는다. 이번 조치가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20개월여 만에 나온 것은 미국 관련부처의 실무준비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꼭 이 시점을 택했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38개국에 똑같이 적용된다지만 관련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에 가기 어려워지도록 하겠다’는 이 조치가 앞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런 중대한 조치가 시행 당일에야 발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방북 경험자 중 금명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은 급히 서류를 꾸며 제출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영어 인터뷰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긴급할 경우 대사관의 ‘긴급예약신청’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지만 방문 예정일 이전에 비자를 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이런 방침을 한국에 알려온 것은 약 한 달 전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면 각별히 보안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3만명이 넘는 시민의 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끼칠 행정적 변화라면 정부가 사전예고하고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민다.


[경향 사설] 미국 중재와 한·일 외교장관 회담, 파국 막는 전기 되길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일정 기간 분쟁을 멈추는 ‘현상유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난 뒤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그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우리가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돌파구를 찾도록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에 대해 관망 자세를 보이던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추가 행동을 멈추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면서 외교장관 간 대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 갈등이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공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이 격화될 경우 동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큰 데다 불똥이 미국 기업으로까지 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미국의 이번 중재가 갈등을 완전히 가라앉힐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일단 싸움을 멈추고 타협을 시도하는 기회가 제공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 파국을 막고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움직임과 별개로 한·일 양국 간 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의원단이 31일 일본의 주요 정계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방일했다. 지난 5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을 냉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해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주요 여야 의원들이 망라됐다. 1일에는 ARF 회의가 개최되는 태국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처음으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게 된다. ‘파국’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마련된 이번 대화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서청원 의원은 누카가 회장 등과의 오찬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양국 의원들이 “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공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국 국민 대다수의 심정이 그 말 그대로일 것이다.


[경향 사설]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


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범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핵무기 도입을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즉각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틈만 나면 나오는 한국당의 전술핵 배치 주장에 어이가 없다.

조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다. 조 최고위원은 “언제까지 북한의 웃음거리, 조롱거리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며 “대한민국이 핵무기로 무장돼 있다면 일본, 러시아, 북한, 중국이 이렇게 얕잡아 보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동북아지역이 핵 도미노에 빠져 핵위협이 더 커지게 된다. 그전에 핵무장 시도만으로도 국제사회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당의 이런 주장에 이미 여러 차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더구나 과거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에 한국군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고 관여는 더더욱 할 수 없는 핵무기를 다시 들이자는 게 제정신에서 하는 소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회성이 아니다. 당내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인 원유철 의원도 전날 핵무장론을 언급했다. 과거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한 바 있다.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을 조장하는 당의 풍토이다. 황교안 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이 북한 편에 서 있으면 이 나라와 국민은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라며 9·19 남북군사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지난 27일엔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방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믿기지 않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과거 새누리당 집권 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위기를 유발해놓고 허둥댄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은 안보위기를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당이 진정 안보정당을 표방한다면 최소한의 합리성은 담보해야 한다. 허황된 핵무장론을 배척하지 못하는 한 한국당은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경향 사설] ‘중재위’ 시한 만료, 이제 한·일 모두 협상에 나서 풀어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17일(현지시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원 외교위는 ‘공동의 이익 추구를 위한 한미·미일 간, 그리고 3국 간 협력의 중요성과 활력에 관한 하원의 인식’에 대한 결의를 전체회의에서 가결했다. 엘리엇 엥걸 위원장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이 결의안이 이 시점에서 통과된 것은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최근 상황을 우려하는 미 의회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갈등이 수위를 넘어설 경우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17일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엿보인다. 그는 “미국은 가까운 동맹인 한국·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해결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우려 표명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18일은 일본이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의 답변 시한이다. 청와대가 이미 수용거부 입장을 밝혔는데도 일본은 아랑곳없이 답변을 채근하고 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시한을 그어놓고 이를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중재위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쌍방 간에 분노만 키울 뿐임을 일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중재위 대신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외교협상에 나서야 한다.

일본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국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본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건설적 제안에 열려 있고 융통성을 발휘하려 한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과 물밑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할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일본은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국과의 외교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추가도발은 삼가야 한다.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폭넓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