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남북 철길 연결의 대장정, 기적이 울렸다

남북한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할 남측 열차가 30일 오전 북쪽으로 떠났다. ‘서울↔신의주’를 아로새긴 열차는 이날 서울역에서 출발, 도라산역에서 환송 행사를 마친 뒤 북녘땅을 향해 기적을 울리며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을 주 5회 오가던 화물열차가 2008년 11월28일 운행이 중단된 지 꼭 10년 만에 남북 철도가 다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 보름 남짓 남북의 철도 전문가들은 북측 기관차가 이끄는 열차에 함께 타고 경의선 개성∼신의주 약 400㎞ 구간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약 800㎞ 구간 등 총 2600여㎞에 이르는 북한 철로를 누비며 조사한다. 특히 남측 열차가 동해선을 통해 두만강까지 운행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철도 통일’ 대장정의 시작을 온 겨레와 함께 뜨겁게 축하한다.

남북 철도 연결은 남북의 인적·물적 교류를 하나로 잇는 필수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철도 연결이 전제되지 않는 한 본격적인 남북 경협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남북 철도의 연결은 단순히 분단된 철길을 잇는 것이 아니다. 바로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그 길이 복원되는 것이다. 섬처럼 갇혀있던 한반도 경제영토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 대륙과 해양 양쪽으로 뻗어 나갈 인프라를 마련하게 된다. ‘철의 실크로드’ 완성으로 중국, 러시아, 유럽 등과 육로 교역이 가능해지면서 세계 GDP의 60%를 차지하는 유라시아 경제권에 편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동해선, 경원선이 복원되면 군사적 긴장 완화는 물론 금강산과 설악산 연계 관광을 촉진해 동해권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부산과 광양항까지 철도로 이으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공동조사 열차의 출발은 철도 연결의 시작일 뿐이다. 노후화한 북한 철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등 현대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철로 전체를 교체하고 전기 공급방식도 통일해야 한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데다 새로 공사할 때마다 추가로 유엔의 제재에서 예외로 인정받아야 한다. 남북 경협의 기초를 탄탄하게 깔기 위해서는 이런 난관을 다 넘고 도로까지 연결해야 한다. 정부는 연내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와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남북이 총칼을 겨누던 최전방 GP 시범철거와 지뢰 제거 작업도 이날 완료됐다. 이날 출발한 공동조사 열차가 남북 철도 연결을 넘어 공동번영의 혈맥을 뚫고 이 땅에 평화가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질주해나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경향 사설] 남·북·미의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제도화로 이어져야

남북 군사당국이 22일 유해공동발굴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을 잇는 도로를 개설했다. 도로는 길이가 북측 1.3㎞, 남측 1.7㎞ 등 총 3㎞가량이며, 폭은 최대 12m이다. 2004년 12월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해 동해선 도로를 개통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정중앙인 철원지역에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남북은 DMZ에서 각각 GP 10개를 시범적으로 철거하기로 하고, 지난 20일 북한이 먼저 폭파방법으로 작업을 완료했다. 북한의 선제적 GP 철거는 남북군사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남북의 GP 철거와 DMZ 내 전술도로 연결은 남북 간 군사 분야 신뢰구축의 실질적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곳에서 지뢰를 걷어내고 도로를 연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앞서 남북의 군인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남북이 합의대로 연말까지 GP 철거에 대한 상호 검증을 완료하고, 내년 4월부터 유해공동발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 간 비무장지대를 통한 왕래는 더욱 활발해진다. 이런 차에 내년 봄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을 축소하겠다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밝혔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함으로써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남·북·미의 잇단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탄력이 붙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남북 간 관계 개선은 과거와 달리 경제가 아닌 군사 분야가 선도하고 있다. 이것이 가져오는 남북 간 긴장완화 효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직접적이고 다대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일은 아니다. 군사 분야 외에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 합의가 신속히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남북 간 합의 이행이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일상화·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 간 관계 진전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든다. 마침 미국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철도 연결이 남북 간 경제 분야 협력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제자본의 북한 투자가 성사된다면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위협은 무의미해진다. 북한의 비핵화를 가장 견실하게 담보하는 방안은 결국 북한이 경제개발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문턱 낮춘 미국, 한국의 중재자 역할 커졌다

미국이 북한과의 2차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5일(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뜻을 나타냈다고 미 NBC 뉴스가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개발 장소를 확인하고 관련 장소를 사찰할 수 있는 계획, 또 핵무기 폐기 계획이 나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도 북한이 꺼려온 ‘핵목록 신고’에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상회담의 문턱을 낮췄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북·미 협상과 관련해 이전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정상 대 정상’ 협상을 하고 있다며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켰다.

국무부와 펜스 부통령의 발언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미 협상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중간선거 이후 미국 조야에서 커지고 있는 대북 회의론을 정면돌파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간선거로 변화된 정치지형에도 흔들림 없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제를 달성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평가한다.

물론 디테일로 들어가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뉴욕 북·미 고위급회담이 전격 연기된 이후 양측은 실무 접촉도 중단한 채 기싸움 중이다. 북한 매체들은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 시험장에서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대북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이 아시아 방문 과정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유지·강화를 강조해온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저강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양측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필요성엔 동의하고 있되 ‘비핵화-상응조치’에 대한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기싸움만 가열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은 문재인 정부가 다시 나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쪽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한국 정부의 중재가 긴요한 국면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굴러갈 수 없다. 양쪽을 만족시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조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중간선거 이후에도 ‘비핵화 협상’ 의지 확인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북·미 고위급회담의 연기가 단순한 일정 조율의 문제라며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중간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회담 연기는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다.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데 대한 의구심을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 불식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후에도 계속 외교적인 북핵 해법을 추구한다는 신호다.

북측의 연기 사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미 양측 간 심각한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부는 회담 연기가 제재 해제와 관련돼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우리는 꽤 좋은 상황에 있다”고 단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며 “양측이 회담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북한이 먼저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인데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북한이 회담을 연기한 것은 미국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제재 완화와 핵리스트 신고의 선후를 둘러싸고 북·미 간 이견은 있는 듯하다. 북한이 조기 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제재를 없애고 싶지만 그들(북한) 역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담 연기는 결정적 갈등이 아니라 북·미가 핵 협상에 앞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일정을 놓고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모두 역지사지의 태도로 대화를 진척시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하면 공격지점을 다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미국도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이 잡히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미 워킹그룹 합의, 비핵화 공조 강화의 계기 되기를

한·미가 대북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킹그룹(실무협의체)’을 운영하기로 했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대북 제재 이행, 남북 협력에서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 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 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간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워킹그룹 설치가 합의됐지만 한국 측이 먼저 제의했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은 이달 출범한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차를 감안하면 워킹그룹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비핵화 동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정부는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등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려는 산림청과 그룹 총수가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들과 접촉, 대북 사업 계획을 탐문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내 7개 국책·시중 은행과 접촉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미 이견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보수세력은 이를 한·미 사이의 중대 갈등으로 몰고가며 정부를 공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워킹그룹 신설에 합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우선 한·미 간 이견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작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더 긴밀하고 빈번하게 소통할 필요도 있다. 다만 한·미 양국 모두 이 워킹그룹이 부정적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간섭하고 제동을 거는 통로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핵 해법을 놓고 한·미 간 입장이 항상 100%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견이 장시간 조정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오는 6일 치러지는 미국의 중간선거 직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는 등 북핵 해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어느 때보다 양국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 워킹그룹을 통해 양국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평양선언 비준 문제, 법적 다툼 아니라 대화로 풀어야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초헌법적 행위’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4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판문점선언이 아직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없다는 건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법원에 두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계획도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국회 동의가 없는 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관계를 오인한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격화하는 남남갈등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법률만으로 평가·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때로는 법률의 한계를 벗어난 담대한 접근으로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 간 합의를 법리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한국당의 태도는 지극히 유감스럽다. 한국당은 헌법 60조(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를 근거로 평양선언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북한과의 합의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조약’으로 보기 어렵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남북합의서를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의 합의로 보고 헌법상 조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고 남북합의서를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법리 오인이자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대한 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태도이다. 판문점선언을 꼼꼼히 따져보고 비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 이런 식이라면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법원과 헌재가 한국당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그 역시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의심과 낡은 대북관부터 버려야 한다. 판문점선언을 막아서기만 할 게 아니라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해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이 선언되면 한국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판문점선언 비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만큼이나 야당 설득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부 지지 없이는 결코 외치에 성공할 수 없다.


[경향 사설]대북 제재는 비핵화의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단계적 제재 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구상은 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에 비해 반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당시 발언에 비해 이번 구상은 적절한 시기의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북·미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조금만 진지하게 그려본다면 문 대통령의 구상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입구’부터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정도로 비핵화가 진척된 단계에 이르러 ‘당근’을 주자는 구상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문 대통령의 능동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일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경우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선적인 사고다. 북한은 오랜 제재 속에서도 나름의 체제 내구성을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북한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제재의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대해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비핵화의 수단에 불과한 대북 제재를 불변의 목표로 간주하는 듯한 ‘가치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를 앞두고 제재 문제에서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은 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구상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오랜 관성에 길들여진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공론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동맹을 무시하는 듯한 트럼프의 부적절한 언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비핵화 담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재 완화 기류를 견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approval)’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한 것은 지나치다. ‘approval’은 승인 또는 허락, 일상적으로는 재가라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어 주권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쓰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5·24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독자적 조치다. 북핵 문제와 무관한 만큼 미국이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 5·24조치를 해제한다고 해도 해당 사업들이 대부분 유엔 안보리의 제재대상인 만큼 당장 실행할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동맹국을 경시한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의 취지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번 불상사는 강경화 장관의 미숙한 국회 답변이 원인을 제공했다.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금강산관광은 5·24조치 때문에 못 가는 것 아니냐. 5·24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에 강 장관이 “관계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한 것이다. 5·24조치는 금강산관광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숙지하지 못한 답변이다. 강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 후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남북군사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느냐’는 질의에도 “맞다. 충분한 브리핑을 못 받은 상황에서 여러 질문이 있었다”고 했다. 마치 한·미 간에 큰 이견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답변도 ‘몇 차례 통화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하는 게 사실에 부합한다. 문제의 통화가 남북정상회담 전에 이뤄졌다는 사실도 강 장관은 알지 못한 듯하다. 이 모두 강 장관의 정무적 판단과 업무파악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하는 장면이다. 남북관계·외교 현안은 답변의 뉘앙스에 따라 오해를 부르고 파장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3자회담을 열어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남북도 경협 재개를 위해 부분적인 제재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제재 해제를 뒤로 미루며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일 개연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럴수록 한·미 간에 더 밀도 있는 협의를 하되 상호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외교적 품위를 잃는 행동은 비핵화에도 도움이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정간섭성 발언을 삼가고, 정부 당국자들은 언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경향 사설] 폼페이오 방북, 선 비핵화 논란 넘어 빅딜 계기 마련하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7일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라고 미 국무부가 발표했다. 이번 방북의 핵심 예상 의제는 비핵화와 상응조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일정 및 의제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을 당일치기로 방문한 뒤 서울로 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일정이 확정됨으로써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시기는 당초 관측보다 앞당겨졌다. 그만큼 성과를 내려는 북·미 간 의지가 강해 보인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우리가 북한행 비행기를 타고 대화를 지속할 만큼 자신감을 느낀다”고 한 것은 미국의 기대감을 엿보게 한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이 사전에 정해진 점도 양측이 물밑 대화에서 상당한 정도로 의견을 접근시켰으리라는 관측을 낳는다. 폼페이오는 지난 7월 3차 방북 때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했다. 8월에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 계획이 아예 없었으며 결국은 방북 계획 자체가 취소됐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을 전후해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관련국들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수준의 중대 의제가 논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 참관하에 영구 폐기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미국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과 영변 핵시설 폐기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희망하는 일부 핵무기의 조기 폐기 방안이 협의될 가능성도 있다. 그에 대한 상응조치로 북한이 요구해온 종전선언과 제재완화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 대화가 교착된 이후 미국과 북한은 각기 상대방의 요구와 기대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비핵화가 ‘일방주의’식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고, 북한도 핵문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체감했을 것이다. 북·미 협상 2라운드는 보다 현실적으로 상호 간의 요구를 거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선(先) 비핵화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압박적 태도를 풀고, 북한도 국제사회를 납득할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제시함으로써 실효성 있는 ‘빅딜’을 이뤄내야 한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성과를 내고,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의 로드맵을 마련하는 역사를 쓰게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임박, 한반도 대전환 이정표 완성해야

추석연휴 기간 쏟아진 미국 뉴욕발 뉴스들은 한가위 선물만큼이나 풍성하고 희망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2차 정상회담의 최종 준비를 하기 위해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며 실무 준비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경고하던 1년 전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으로 ‘톱다운’ 방식의 새 합의를 도출해 비핵화를 이끌어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의 흐름은 지난 몇달간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 대전환 여정의 힘찬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대전환의 밑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대북 제재 계속’을 거듭 확인한 점을 보면 성급한 낙관론은 경계할 일이다. 청와대도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선에서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많다. 폼페이오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것 이상의 비핵화 추가조치들이 꽤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뉴욕회동’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올릴 ‘빅딜’ 메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는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듯한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일정도 미뤄지는 등 남북·북미 관계 모두 난관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김정은이 ‘친서외교’로 소통을 유지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살려낸 덕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남북 및 북·미 3각 채널이 앞으로도 작동될 것이란 점이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미국 외교협회 등 주최로 열린 연설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 방안도 예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재완화를 한 뒤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며 미국이 제재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종전선언 하나에도 인색했던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지원, 예술단 교류 같은 목록을 꺼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통 큰’ 상응조치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외교협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려면 남·북·미 모두 양보와 상응조치로 ‘윈윈’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평양선언으로 재가동한 북·미 협상, 이번엔 성과 내기를

미국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비핵화와 관련해 2021년 1월 북한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이른 시일 안에 북·미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자고 전격 제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평양 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미국은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리용호 외무상을 다음주 뉴욕에서 만나자고 초청했다”고 밝혔다. 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속히 만날 것을 북한에 요청했다”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빈과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동시 협상을 벌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적극 평가하면서 즉각적인 북·미 협상 재개 방침을 제시한 것을 환영한다.

정상회담 당일까지도 대북 제재 이행을 외치며 대북 압박에 나서던 미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평가한 결과이다. 나아가 모종의 비핵화 추가 계획을 전달받았고, 그 내용이 전향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폼페이오는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IAEA 사찰단 참관’이란 표현은 평양공동선언에도, 공동 기자회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 줄곧 강조해온 검증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북한이 남한 측 혹은 별도 채널을 통해 미국에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성립한다. ‘영변의 모든 시설’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흑연감속로와 고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가리킨다. 북핵 생산시설을 국제사회의 검증하에 영구 폐기하겠다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김 위원장이 결단하고, 그 진정성을 미국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폼페이오 성명은 시사하고 있다.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노심초사해온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이룬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빈 채널’에 대해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비핵화 과정을 통해 북·미관계를 변화시키는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1월은 김 위원장이 지난 5일 대북특사단에 제시한 ‘트럼프 임기 내’라는 비핵화 시간표와 일치한다. 이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물밑조율 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한 미국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과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완결짓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자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라도 미국은 협상에 집중력을 발휘할 것이고, 이는 협상 전체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나선 북·미가 이번에야말로 25년간의 협상 실패 역사를 떨치고 한반도 정세 대전환을 이뤄내길 희망한다.


[경향 사설] 김정은 서울 방문·전면 ‘무력’ 금지, 불가역한 남북관계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 군사력 감축까지 포함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즉각 실천에 옮길 조치에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남북은 또 올 연말까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고, 이산가족들이 상시로 만나는 상설면회소도 설치하기로 했다. 하나같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보다 더 큰 한가위 선물이 있을 수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공식화이다. 분단 이래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이 성사되면 남북 정상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정상회담 정례화가 가시화된다. 한반도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 의지를 담보하는 효과도 있다. 남측 내 반대 여론과 경호 우려를 뛰어넘은 김 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진전을 이룬 것은 군사분야 합의다. 남북이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남북 간 종전합의이자 불가침선언이다. 남북은 이번 합의로 육·해·공 전 공간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이는 군사분계선 5㎞ 이내 지역과 서해 5도 및 북방한계선(NLL) 내 훈련 등을 금지함으로써 군사 긴장을 결정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다. 군사분계선 1㎞ 이내 GP 11개를 각각 철수하고 JSA 내 지뢰제거, 초소 내 인원·화력 철수 등 합의도 한반도 평화를 추동할 실천적 조치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 만에 처음으로 군비축소가 시작되는 셈이다. 합의대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핵무기에 의한 위협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로 인한 군사적 긴장까지 해소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더 이상 남북 군사대결로 치르는 비용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남북 간 도로와 철도 연결은 한반도 경제지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되면 남북 간 사회간접자본 건설 협력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국토교통부 등은 반드시 연내 착공을 성사시켜야 한다. 대북 제재와 무관한 남측 구간부터 공사한 뒤 북한과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상봉 정례화를 실현한 뒤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과 편지 교환까지 성공한다면 이산가족의 염원은 상당 부분 풀린다고 볼 수 있다. 다방면에 걸쳐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 이번 평양공동선언의 의미다.

하지만 가야 할 길도 멀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동·서해 경제·관광특구 조성과 한강하구 골재채취 등은 대북 제재가 해결되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에 앞서 남측 내 여론도 정리해야 한다. 후속 조치가 내실있게 진행돼야 남북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불가역적 상태로 돌입한다. 각계각층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들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를 두고 “북한은 달라지지 않는데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꼴”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상호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상호주의를 어기는 자가당착적 행태다. 뜨거운 여름을 나는 과정에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없을 리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 천둥과 벼락 안에서 한반도평화가 영글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비핵화-평화’ 빅딜을 기대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다고 백악관이 10일(현지시간) 밝혔다. 백악관은 2차 정상회담에 열려 있고, 이미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혀 양측이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교착상태인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6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두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의 목표에 합의했으나 이후 석달간의 후속 협상은 ‘디테일의 악마’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예정된 방북일정을 취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양측은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가졌다.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이 탐색전의 결과로 양측이 주고받을 현실적인 타협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거나, 그럴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협상교착의 원인인 ‘핵신고-종전선언’ 대립이라는 난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정상들이 만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다시 만나야 할 필요성은 일찌감치 거론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 협상에서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한 만큼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 북·미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 가면서 외부투자와 지원을 받아내 경제성장의 마중물로 활용하려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2차 정상회담 추진은 지난 5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이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두 정상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다. 실무협상이 난항에 빠진 가운데서도 상호 존중심을 잃지 않고 친서외교로 신뢰를 쌓아온 것이 정상회담의 추진 동력이 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정상 간의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때 엇박자 평가를 받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의 궤도로 복귀하게 된 것도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출해야 할 ‘빅딜’을 위해 남북이 지혜를 모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사단 파견을 시작으로 중재역에 다시 시동을 건 문재인 정부의 분발을 당부한다.


[경향 사설] 야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동행 불참 결정 안타깝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1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9명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 대표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바람에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도 방북하지 않기로 했다. 야당 대표들이 한반도 정세의 고빗길에서 열리는 중요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포기한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번 초청 대상에는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보수야당 인사들이 포함됐다. 임종석 실장은 “저희가 초청하는 분들이 일정의 어려움도, 정치적 부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남북 간 새 장이 열리는 순간이며 특히 비핵화 문제도 매우 중대한 시점인 이 순간에 대승적으로 동행해주길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남북관계 발전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뒷받침해야 안정화될 수 있다. 그래야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대북정책이 ‘급변침’하지 않고 일관성이 유지된다. 일관성은 남북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신뢰구축을 위해서도 긴요한 덕목이다. 옛 서독이 동방정책을 부침 없이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당들 간 합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한국당 김병준 위원장은 “비핵화 조치에 대한 어떤 진전도 없기 때문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손 대표는 “당 대표들이 지금 나서봤자 들러리밖에 안된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11일 국회를 찾아 대상자들에게 직접 초청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지만 결정이 번복될 여지는 많지 않다. 청와대가 공개 초청에 앞서 충분한 사전 설득 노력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문시해온 야당이 이번 기회를 포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진정성이 있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 아닌가.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국면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태도라면 앞으로 ‘의원외교’는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김병준 위원장과 손학규 대표는 평소 한반도 평화협력을 강조해 왔음을 시민들은 기억한다. 이제 두 사람은 ‘한반도 대전환’의 중대 국면에서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어깃장만 놨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경향 사설] ‘적폐청산’,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첫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2기 개각과 민주당 지도부 교체 등 여권이 새로운 진용을 갖춘 것을 계기로 국정운영에 대한 기조와 의지를 재확인했다. 적폐청산을 둘러싼 상황이 엄중하다고 보고 당·정·청이 다시 한번 힘을 실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이 지났지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촛불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연일 드러나고 있는 대법원의 사법농단이나 국군기무사령부의 불법행위만 봐도 공권력의 적폐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일부 대기업과 경제적 강자들이 힘으로 약자를 핍박한 사례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폐의 전모조차 밝히기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적폐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대변인은 “국민경제 파탄으로 (문재인) 정부에 쏟아지는 비난을 적폐청산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라며 “임기 내내 적폐청산만 할 것이냐”고 논평했다. 바른미래당도 여권이 일자리 대책을 논의하지 않은 채 적폐청산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적폐청산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간주하면서 개혁에 대한 피로감을 자극한 것이다.

정치보복을 위한 적폐청산은 안된다. 적폐는 가리지 않고 엄정하고 공정하게 청산해야 한다. 여권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드러난 적폐까지 덮고 갈 수는 없다. 헌정과 시장의 질서를 무시한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적폐이다. 적폐청산과 일자리 대책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적폐를 걷어내는 것과 민생을 활성화하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강자를 비호하는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을 걷어내야 시장이 공평해지고 경쟁이 공정해진다. 적폐를 청산해야 바람직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는 상식조차 외면하는 태도가 유감스럽다.

적폐를 방치하면 재생산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과거 적폐에 대한 불철저한 규명과 처벌이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질식할 것 같은 적폐에 절망해 일어난 것이 촛불혁명이다. 왜곡된 국가권력과 시장권력 등 적폐를 바로잡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다음으로 미뤄도 그만인 사안이 아니다. 적폐는 하루아침에 해소할 수 없다. 당·정·청은 빈틈없는 공조로 적폐청산을 힘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 종전선언 서명한다고 약속했는지 밝혀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종전선언 서명을 약속했으나 이후 입장을 바꿨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미 인터넷 언론 ‘복스’는 2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종전선언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태도를 바꿔 종전선언 전에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폐기할 것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미 후속협상이 왜 답보하고 있는지 비로소 설명된다.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느낌이다.

돌이켜 보자. 북·미 고위급회담을 위해 7월6~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갔다. 북한은 그 직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내고 미국이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비난했다. 특히 종전선언에 대해 “조·미 수뇌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열의를 보였던 문제”라며 미국이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 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고 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 언론들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짐 매티스 국방장관이 종전선언에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종전선언 후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당치 않다. 종전선언은 전쟁상태를 끝내자는 정치적 선언으로 구속력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1992년부터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전해왔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한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터무니없다.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지도 모르니 약속을 깨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애초부터 협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백악관은 ‘트럼프 종전선언 서명 약속’ 보도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미 국무부도 즉답을 회피했다. 그러나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약속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지키는 게 맞다.


[경향 사설]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발언을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추가 회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고 시기와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임박한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폼페이오가 지난 12일 “머지않아 큰 도약을 만들어내길 희망한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최근 미 행정부 안팎에선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된다. 폼페이오의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양측 간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핵리스트 제출 등 비핵화 초기 조치에 나서고 미국은 북한이 희망하는 종전선언을 수용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기대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의 방북으로 북·미 협상이 타결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설사 폼페이오의 방북 성과가 미흡하다고 해도 정상 간의 ‘큰 거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 들어 본격화된 북·미대화가 ‘톱다운’ 방식으로 움직여온 데다 실무협상의 교착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은 ‘친서외교’를 통해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정상외교가 교착국면을 해소하고 실무협상에 추동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어떤 맥락에서건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꼬인 매듭을 풀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힘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발언은 9월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외교가 다시 한번 숨가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읽힌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정상외교 시즌2’가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9월 중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도 예상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핵신고·종전선언 교환’이 타결되고, 시진핑 주석의 방북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시나리오도 예상해볼 수 있다. 하반기 정상외교가 ‘종전선언’으로 귀결된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크게 진전하게 된다. 폼페이오 방북이 성과를 내 하반기 정상외교의 시동이 힘차게 걸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비핵화·종전선언 위한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다음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며 북·미 간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구상도 밝혀 경기·강원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연내에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동북아 6개국에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도 제안했다. 북·미 양측을 향해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달라고 촉구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청사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 선언은 최근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흐름과 맞물려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북·미 양측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체제안전 보장 등 상응하는 조처를 먼저 하라는 북한의 요구가 팽팽히 맞서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최근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북·미 양측이 실무회담을 통해 핵무기 리스트 제공과 종전선언의 맞교환을 논의하는 단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달 말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4번째 북한을 방문해 비핵화 협상을 하게 돼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15일 “(이번 방북에서)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9월 중순쯤에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이 촉진자 역할을 자임한 것은 비핵화 이행을 북·미 정상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결정적인 중재 역할에 나선다는 뜻이다.

향후 한 달 남짓,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리스트 제출과 미국의 종전선언 맞교환을 견인해내야 한다. 미국의 진전된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북·미 양측 간 협상에 획기적 진전이 없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위해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남북경협 구상은 북한을 향한 제안이기도 하다.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성공을 거둬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의 획기적 조치가 선포되기를 고대한다.


[경향 사설] 조속한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협상 돌파구 마련하기를

남북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오는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했다. 북측은 9일 오전 통지문을 통해 판문점선언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남북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하자고 제의했고, 정부가 이에 즉각 동의해 회담이 성사됐다. 정부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구성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조속히 개최돼 북·미 간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북·미 간 북핵 협상은 교착국면이 길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리스트 제출 등을 압박하는 미국에 맞서 제재 완화 및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동력이 없으면 헤쳐나가기 어려울 만큼 협상이 수렁에 빠져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북한이 유엔 제재를 교묘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제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교환하며 대화의 끈을 유지했지만 불안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계획을 앞당겨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면 북·미대화의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오는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가 협상을 진척시킬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먼저 제안한 점이 특히 주목된다. 그만큼 북·미 간 중재가 절실하며, 따라서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할 의지가 강하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속도감 있게 이행하면서 연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남북정상회담은 절실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에 성실히 임할 뿐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의전을 갖춘 평양 방문이 아니라 실무형 판문점 회담도 좋다. 문 대통령의 이번 중재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미 양측을 모두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종전선언과 핵무기 리스트 제출을 동시에 하는 방안도 제안해봄 직하다.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고, 궁극적으로 북·미 양국 정상이 담대한 결정을 주고받는 장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경향 사설] 문재인 정부, 지식인들의 ‘개혁 후퇴’ 고언 새겨 들어야

진보성향 교수·학자들이 18일 문재인 정부가 재벌·부동산 개혁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다며 과감한 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한다. 정부의 재벌·부동산·노동 정책을 비판하고 사회경제 개혁의 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현 정부 들어 지식인들이 단체로 정부 비판 성명을 내기는 처음이다.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촛불정부’를 향한 고언이자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은 선언문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확립하겠다는 정부의 경제기조가 시민에게는 공허한 수사로 느껴지고 재벌·부동산·노동·세제 분야의 개혁은 지지부진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개혁의 실패는 민심 이반과 개혁 동력 상실로 이어져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다시 담대한 개혁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과 요구에 공감한다.

진보지식인들이 ‘선언’에 나선 것은 최근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흡한 종합부동산세 조정과 금융종합과세 포기, 최저임금 1만원 목표 달성 차질 등 최근 일련의 조치가 정의롭고 윤택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당초 약속과 달라 크게 실망하는 분위기다. 지식인들은 특히 청와대 경제수석 경질, 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간 만남, 일부 경제 관료의 대기업 친화적인 언행 등이 국민의 재벌개혁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이들이 재벌권력 즉각 회수, 내각·청와대의 반개혁적 인물 교체 등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언문에 서명한 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위원회 등을 통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경제 관료 등의 반발로 실적이 없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벌·부동산 개혁에서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지식인들이 선언문에 밝힌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특권과 반칙, 갑질을 저지하고 약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또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 등 사회의 ‘을’들과 대기업이 상생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주기를 기대한다. 정규직 채용 원칙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고 여성, 노년, 장애인 등 취약집단의 노동권을 보호하라는 요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선언에 참여한 지식인은 모두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지지하는 인사들이다. 정부는 이들의 진정 어린 고언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개혁의 고삐를 다잡고 공정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김정은 친서’ 공개로 확인된 북·미의 대화 의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북·미 사이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나와 대통령 각하의 확고한 의지와 진지한 노력은 반드시 훌륭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며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 주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북·미 간 협상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까지 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아주 멋진 편지”라며 “아주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친서 공개는 외교 결례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여러 당사국을 흡족하게 하고 있다.

이번 친서 공개는 북·미 대화에 대한 미국 내 회의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북·미 비핵화 대화처럼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서는 정상들의 의지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친서 공개로 드러난 두 정상의 비핵화 의지는 대화에 힘을 싣기에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친서 내용까지 공개된 마당에 김 위원장이 협상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대화 의지는 미군 유해송환 협상에서도 확인된다. 북한은 12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유해송환 실무회담에 불응했다가 13일 장성급 회담으로 격을 높여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유해송환을 넘어 정전체제 종식 등 다른 군사 현안까지 논의하자는 뜻이다.

미국의 여론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북한의 대화 의지를 의심했다. 하지만 실상은 폼페이오 장관이 체제안전 보장은 없이 북핵 폐기만 언급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맞았던 셈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인하면서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태도가 아니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자발적으로 모든 핵무기를 폐기할 때만 가능해진다. 어떤 핵무기도 숨길 필요가 없을 만큼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이 장성급으로 대표의 격을 높여 유해송환을 협상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무엇보다 상호 신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한 북·미 대화 진전으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양국 간 관계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북·미의 비핵화 이견, 후속협상에서 해소하면 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향 사설] 재개된 북·미대화, 차곡차곡 진전시켜야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3주 만에 재개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북측 인사가 지난 1일부터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후속 조치들을 협의하고 있다. 오는 6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였던 북·미대화가 재가동된 것이다. 지난 20일간의 북·미대화 공백은 비핵화 협상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비핵화 대화가 끊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북·미 사이에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이 진행되고,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개최 합의 등 4·27 판문점선언이 이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이 북한 핵프로그램을 1년 내에 해체하는 방안을 고안했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의심이 간다. 볼턴은 리비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폐기 작업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리비아의 무조건적인 핵폐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몰아붙이는 태도가 걱정스럽다. 그의 발언은 미국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2020년까지 비핵화 완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가 최근 구체적인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북한에 대해 강온병행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율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된 이상 굳이 이런 자세를 드러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북·미 사이에는 무엇보다 일관된 입장과 언행일치의 태도가 요구된다.

비핵화 대화의 왕도는 없다. 하지만 합의 번복이나 무산의 경험이 많은 북·미 사이에는 합의 이행은 물론 후속 협상의 속도와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상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동력이 약화되고, 반대로 너무 서둘러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서로 동시적·단계적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차곡차곡 진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 방러, 남·북·러 3각 협력의 발판 삼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러시아를 2박4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에 이뤄진 이번 국빈 방문 기간 중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의 공조방안을 논의한다. 방문 첫날인 21일에는 뱌체슬라프 빅토로비치 블로딘 하원의장과 주요 정당 대표들을 면담한 데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 의회에서 연설했다.

이번 방문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 국면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올 들어 세 차례나 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보를 꾀하고 있고, 일본도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나섰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으며 이 자리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전환은 한국에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향상시킬 기회가 된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그간 줄곧 구상에만 머물러 있던 남·북·러 경제협력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하원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다지고 보장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도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북아 평화안보 협력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러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20일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시베리아 철도와도 연결되면 유럽까지 철도로 물류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듯이 러시아는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창(窓)이다. 70년 가까이 닫혀 있던 이 창이 열리려는 시점에 와 있다. 양국관계가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평화번영 체제를 이루는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훈련 중단과 비핵화의 선순환을 기대한다

한국과 미국은 오는 8월 실시 예정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유예하기로 했다. 유예기간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훈련이 재개될 것 같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 후속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북한은 연합군사훈련을 대표적인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간주한다. 지난달 한·미 공군 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예정일 새벽에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였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연합훈련 유예 조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 조치의 진전을 대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비핵화가 체제 보장에 기여하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연합훈련 중단은 일시적이나마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 역할을 해왔다.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때 북한은 핵물질을 자진신고했고, 지난 3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상호신뢰를 쌓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군사훈련 중단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북한에 상응하는 조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거론했다고 전했다.

한·미가 북·미 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하기 전에 훈련 유예를 결정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 전 북한이 실시한 핵·미사일 실험중단, 핵실험장 폐기 등 선제 조치에 호응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이런 조치들을 주고받는 것은 상호신뢰를 쌓고 정상회담 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을 담보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른 시일 내 훈련중단에 값하는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미 일각에서 비핵화 조치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은 길고 험난한 길인 만큼 이해당사자들의 지원과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주목을 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정상적인 외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석달 새 3번이나 방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얼어붙은 북·중관계 복원의 필요성이나 한반도 급변정세를 감안하면 크게 이상할 게 없다. 다만 김 위원장은 미국이 자신의 잦은 중국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외면하면 안된다. 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김 위원장의 방중 모두 비핵화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 냉전구조 해체의 위대한 출발선에 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세기의 만남’이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다. 북·미 두 정상이 성공적인 합의를 이뤄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전기가 마련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남은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위대한 출발선에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게 된다. 70년간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온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변적 의미가 있다. 이미 두 정상이 이틀 전인 10일 싱가포르 현지에 입국해 리셴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등 사전 일정을 시작한 것은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북한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체제안전 보장 및 제재해제가 어떤 수준에서 거래되느냐일 것이다. 두 정상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전체 일정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되 그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 단계적·동시적으로 이행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비핵화-체제 보장의 초기 조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아낼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북한이 통 크게 비핵화 초기 조치를 이행하고, 미국도 종전합의는 물론 외교관계 수립 일정을 합의문에 명시하는 방안이 합의될 수도 있다.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에는 눈에 띄는 점들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러·몽골이 아닌 제3국을 정식 방문한 것은 1984년 김일성 주석의 동유럽 순방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미 합중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상봉과 회담을 위해 중국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와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이라고 회담의제를 공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외국 방문을 귀국 전에 보도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타국 항공기 편을 이용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공개한 것도 파격이다. 체면과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이 반영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회담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북한의 각오도 엿보인다.

미국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오찬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내일 아주 흥미로운 회담을 하게 된다. 아주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발신해온 메시지는 가변적이지만 이제는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 출발에 앞서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단 한번의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회담을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북한과 관계 맺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회담에 그치지 않고 워싱턴 혹은 평양에서 후속 회담을 이어가며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최종목표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 엿보인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북·미 정상회담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 위에 두 사람이 서게 될 줄은 반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양측 당국자들의 성의있고 진지한 노력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더해져 비로소 열린 길이다.

70년에 걸친 뿌리 깊은 적대관계와 북핵 문제가 한 차례 회담으로 일거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로 가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기를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도 바라고 있다.


[경향 사설] 시간·장소 확정된 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아직 회담 의제와 실무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회담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이제 회담의 성패는 온전히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으로 미뤄 이번 회담은 며칠 동안 열릴 공산이 없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협상이 매우 잘되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한 며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이 여러 날에 걸쳐 열리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다. 선언적인 입장 표명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종전선언 및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에서 북한과의 만남이 큰일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과 달리 북한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이후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일정이야 보안관계상 공개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의 침묵은 미국에 대한 압박수단이 되겠지만 회담이 임박한 지금에 와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여러 난관을 뚫고 회담이 성사된 것을 보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는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회담 성공은 의지만으로 이뤄질 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비핵화-체제안전 보장의 병행 원칙이다. 이번 회담은 비핵화를 위한 것이지만 비핵화라는 동전의 뒷면은 체제 보장임을 명심해야 한다. 비핵화만 요구하거나 비핵화를 먼저 하라고 고집한다면 회담은 깨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상호 존중의 원칙이다. 역대 북·미대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진지한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사상 처음으로 양측 최고지도자가 나선 만큼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이를 통해 두 사람이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회담은 절반 이상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역사적 대업을 완수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남북관계 도약의 기대감을 심어준 남북 고위급회담

남북이 1일 고위급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논의할 적십자회담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협의할 장성급 군사회담, 아시안게임 공동참가를 협의할 체육회담 등의 일정을 확정했다. 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가까운 시일에 개성공단에 개설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당초 지난달 16일 열려다 취소된 뒤 보름 만에 재개된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이 순조롭게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이는 4·27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내용 각각에 대한 실무회담 일정이 잡히면서 판문점선언 이행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합의를 보면 장성급 군사회담이 14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18일에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체육회담이, 22일에는 금강산에서 적십자회담이 열리는 등 이달에 4일 간격으로 남북이 만난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정까지 감안하면 강행군이나 다름없는 일정이지만 그만큼 북한의 남북대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장성급 회담은 2007년 12월 이후 10년 반 만에 성사되는 것이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2015년 10월 이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은 이번 8·15 행사가 정례화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 당국자가 상시 접촉할 수 있어 남북 교류협력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6·15 공동행사는 이번에 개최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향후 문서교환 방식으로 논의를 하기로 했지만, 시간이 촉박한 데다 장소 문제에 관한 이견 때문에 다음해로 넘기게 됐다.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의 연결과 현대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철도 및 도로 협력 분과회의 등의 개최 날짜와 장소도 차후 문서교환을 통해 확정하기로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고려, 이 정도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회담 모두에서 가벼운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는 다시 신뢰회복을 이뤄냈으며 도약의 발판도 마련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선언을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북한의 태도가 오는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바란다.


[경향 사설] 북핵 폐기 촉진 위해 종전선언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 구상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27일 5·26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28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체제안전 보장 문제 가운데 하나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도 싱가포르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연동된 문제”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북·미 실무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다음달 12일 열리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자리에 문 대통령이 합류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비핵화 여정에 가볍게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과도기적 안전보장’ 방안이다. 비핵화가 진행되는 동안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주고, 비핵화가 마무리될 시점에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로 항구적인 안전보장을 한다면 북한도 안심하고 핵폐기를 결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조성됐던 난기류도 따지고 보면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불가역적인’ 체제안전 보장을 받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5·26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를 할 경우 미국에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교체되더라도 후퇴하지 않을 체제안전 보장 없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선뜻 나서기 힘들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 ‘리비아 모델’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변수는 중국의 태도다. 종전선언에 중국을 포함한 4개국이 참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만 현실 여건상 어렵다면 정부가 충분히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불필요한 신경전으로 번지게 되면 종전선언의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이 된다.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채 ‘정전’상태가 더 이상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연내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종전선언을 지렛대로 북한이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기왕에 공론화된 구상인 만큼 이번 기회를 반드시 살려 한반도의 전쟁종식을 세계에 선언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트럼프는 회담장에 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럼에도 북·미는 흔들리는 회담의 불씨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5일 회담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의 모멘텀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양측이 회담의 판을 완전히 깨지 않고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김 제1부상은 이날 개인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 밝힌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에도 강력한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자신이 미국 고위 인사들을 비난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의 일환이었으며 결코 회담을 깨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 제1부상이 담화에 ‘위임에 따라’라고 명기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도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북·미 정상회담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김 제1부상은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며 전에 없던 신속한 대응을 했다. 과거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면 오히려 더 강경하게 맞받아치던 것과 비교하면 자세를 낮췄다는 인상이 들 정도다. 이로 미뤄 북한의 비핵화 정책이 대북 제재 회피를 위한 기만전술이 아니라 정상국가로 가기 위한 전략적 결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미국이 호응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내민 손을 맞잡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에 대한 의지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25일 “기존의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거나, 정상회담이 나중에 열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이런 태도를 보면 도대체 왜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되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양국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이토록 강하다면 합의한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과 불가측성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개최 예정일이 20일도 채 남지 않은 회담을 취소한 행위 자체부터 이해할 수 없다. 회담 취소 이유로 북한 고위 인사들의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든 것은 황당하다. 만일 그런 표현이 문제라면 북한에 모욕적인 언사를 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쪽 인사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시험발사 6개월째 중지, 억류 미국인 3명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등 선제적 조치로 미국에 성의를 보일 만큼 보였다. 단 한 번도 이에 호응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없는 미국이 북측 인사들의 발언을 탓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국제사회와 합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북·미 정상회담을 혼자만의 판단으로 무산시킨 것은 미국의 지도자답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협의한 지 하루도 안돼 취소 발표를 한 것은 외교 결례이자 동맹 정신을 훼손하는 행태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발표 직전에야 일방 통보했다. 회담이 교착상태에 이를 때마다 거친 언사로 상대를 비방하는 구태의연한 외교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북한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했던 북·미 실무대화에 응하지 않고 연락조차 끊은 것은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복원하는 길은 북·미 양국이 서로를 진지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소통 방식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신뢰 구축은 회담 개최를 넘어 성공의 기본 전제다. 불신 때문에 대화를 중단할 게 아니라 불신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체제안전에 대한 이견 해소는 그다음 일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회담 당사국들이 회담의 동력이 끊어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북·미 양측의 신중한 처신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회담으로 가는 길을 먼저 벗어난 쪽이 미국이므로 애초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일 책무가 있다. 북한 역시 공을 던져놓은 채 마냥 기다리면 안된다.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대화 성사를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진정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는 방안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마침 트럼프도 그 길을 열어놓은 상태다. 한국 정부 역시 북·미대화의 끈이 다시 연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소통 채널을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은 문 대통령밖에 없다. 인내심 하나로 끌고 온 한반도 평화의 여정을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의 희망은 남아 있다.


[경향 사설] “북한 번영 위해 협력할 준비 돼 있다”는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찬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을 진두 지휘해온 폼페이오가 북한에 대해 ‘번영’이란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의 방북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에 도달하면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이 북·미 간에 심도 있게 협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이 비핵화 행동에 나선 일정 단계에서 국제기구의 대북 융자나 외국기업의 대북 투자를 막아온 미국 국내법령이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한 대북 체제 보장과 평화체제 구축 방안은 자주 거론돼 왔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올 들어 조성된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핵심 쟁점은 비핵화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를 지렛대로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한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폼페이오의 ‘북한 번영을 위한 협력’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폐쇄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으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및 남한 기자들을 초청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북한은 국제 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와 기자센터를 설치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특별전용열차를 편성하는 등 취재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을 폐쇄할 때 대외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 앞두고 양측이 발신하는 긍정적 신호들은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양측의 긍정적 조치와 언급이 ‘불가역적인’ 약속으로 굳어지도록 문재인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그래서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다면 최선의 조력이 될 것이다.


[경향 사설] 북·미 난기류 조짐, 더 중요해진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일대 전기가 될 북·미 정상회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5일 이틀 연속 “회담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며 곧 공개할 것처럼 언급한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회담 개최지도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르가 유력시되고 있다. 지난 주말로 예상됐던 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의 송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미국이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관계 진전 국면과 어울리지 않는 적대적 언술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난기류가 회담 흥행을 위한 트럼프의 뜸들이기나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는 북·미 간 신경전 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도 7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성급하게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며 미국 조야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가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좀 더 확인하고 미사일 등에서 확실한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워싱턴에 팽배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은 핵폐기 원칙으로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제시하고, 생물·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영구적 폐기와 인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의 미국 비판 성명은 이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양측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조정 및 중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북한의 핵폐기와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접근해야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양측 간 신뢰를 조성하면서 북핵폐기방안에 대한 이견을 메우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핫라인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9일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모처럼 맞은 북핵 및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미국의 비핵화 구상, 북한과 절충해야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가량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비핵화 구상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9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좋은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주는 발언이자 방법론에서도 북·미 사이에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방식에서는 아직 상당한 간극이 느껴진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리비아 모델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지만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볼턴은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양보하기 전 북한이 핵무기와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완벽한 검증과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볼턴이 ‘북한은 다르다’고 말한 것은 리비아 모델이 아닌 변형된 방식을 구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리비아 모델은 핵폐기-검증-보상조치가 순서대로 이뤄지는 핵폐기 방식을 말한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포기 선언을 한 뒤 1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핵 관련 시설과 장비를 폐기했고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사찰도 받았다. 이후 2006년이 돼서야 미국과 수교하는 등 보상이 주어졌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리비아 모델은 일방적인 핵무장해제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핵폐기는 ‘현찰’로 먼저 지급하고 보상은 ‘어음’으로 받는 격이기 때문에 상당한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는 성사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북한은 리비아 모델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왔다.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핵포기를 한 탓에 정권이 무너지고 살해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핵이 없던 리비아와 달리 핵을 보유하고 운반수단인 장거리미사일까지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다. 리비아 모델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와 거리가 크다. 단계적 비핵화는 핵폐기-보상의 단계별 이행계획을 마련한 뒤 이를 단계별로 실천해나가는 방식이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방식을 제시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접촉 과정에서 의제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은 남아 있다. 남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강하고, 미국이 이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담판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경향 사설] 핵 없는 한반도와 평화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다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 남북은 또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첨예한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는 불가침 방침도 확인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가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남북은 두 정상의 결단과 합의로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합의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과 국제사회로부터 긍정 평가를 받았다.

두 정상이 함께 발표한 ‘판문점선언’은 모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해결 방안을 포괄하는 ‘한반도 평화보고서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달리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조치들을 제시한 것이 눈에 띈다.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근본적 장애를 걷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라고 못박은 것은 북한의 비핵화 언급 가운데 가장 진전된 표현이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미국의 비핵화 원칙과 유사해 보인다. 이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을 디딤돌로 해 한 달여 뒤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 논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조건으로 처음에는 체제보장 및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제시했지만 선제적인 핵실험·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및 핵실험장 폐쇄로 바뀌었고 이번에 완전한 비핵화로 갈수록 진전되는 양상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핵폐기 방법이나 시한 등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확인해야 할 문제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 등 비핵화에 상응하는 요구 사항과 함께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남북 정상 차원의 비핵화 논의는 남한이 핵 문제 당사국으로서 비핵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핵 문제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현안이고, 남한이 최대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은 남한과 양자 차원에서의 핵 문제 논의를 선언적 수준으로 제한해왔다.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은 한반도 냉전체제 마감과 평화시대 개막에 중대한 장애를 걷어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두 정상이 국제 문제이기도 한 이 문제의 해결 시한을 올해로 못박은 것은 그만큼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정상이 평화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것은 북한 체제안전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한반도 평화정착은 비핵화와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두 사안을 연동해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이 독자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해야 할 영역 또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이 불가침 확인과 함께 군사적 충돌의 근원인 적대행위를 전면중단하고,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것은 한반도 문제의 두 축인 비핵화와 군사적 대치의 동시적 해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두 정상이 차기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하고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연 것은 남북 사이에 정상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교류와 소통을 획기적으로 활성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두 정상이 민족경제 균형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기존에 합의한 모든 남북 사업과 경의선 등 철도 연결도 적극 실천하기로 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점차 풀리면 추후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일정이나 청사진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으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등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도 활발하게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8·15 광복절 계기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은 고령의 이산가족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현실에서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회담 후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자 왔다”고 밝혔다. 지금 남북은 분단과 전쟁,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뒤로한 채 평화를 향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경향 사설] 한반도 평화를 향한 4개월 여정을 돌아보며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사이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상봉하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 분계선을 넘어 남쪽 땅에 발을 디딘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뜨겁게 악수를 나눈 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정상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으로 향할 때 사람들은 ‘한반도의 봄’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일산 킨텍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는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 때의 2배가 넘는 280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등록을 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회담 사흘 전인 24일 평화의집에서 리허설을 열었다. 25일에는 북측 선발대가 내려와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된다. 이제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일만 남았다. 북한과 미국이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에서 불과 4개월 만에 이처럼 드라마틱한 전환이 이뤄지리라곤 상상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변화의 시동을 건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침과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뜻을 천명했고, 김여정 특사 파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제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 등 대담한 선제조치로 대화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수십년간 쌓여온 미국 내 대북 불신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보낸 비핵화 메시지의 진정성을 감별해내고 적극 호응하면서 대전환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면서 일관되게 ‘바닥 다지기’를 해오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의 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북핵위기가 한창일 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으로 한반도 전쟁반대를 천명하고 북한에 대화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이율배반적 처지에서도 지혜와 용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은 특정 세력의 정치이벤트가 아니다. 북한의 변화도 ‘평화공세’로 폄훼할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보수세력들도 이번 정상회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 남북관계의 큰 바퀴가 70년 만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곧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하게 될 것이다.


[경향 사설] 종전선언에서 비핵화로 가는 길 열렸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박근혜 징역 24년, 역사의 심판이다

“박근혜 피고인을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 6일 오후 3시50분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세윤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主文)을 낭독한 순간,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는 다시 새로운 장(章)을 열어젖혔다. 법원은 1심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나이(66세)를 고려할 때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신임해준 주권자를 배신하고, 헌법이 명시한 원칙과 가치를 유린하고,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한 데 합당한 심판으로 평가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롯한 대다수 공범들이 앞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미르·K스포츠 재단 후원금 출연 압박(직권남용·강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훈련비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 핵심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들을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 및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부당인사도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4년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30년보다 낮지만 최순실씨에게 선고된 징역 20년보다는 높다.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훼손한 만큼 사인(私人)인 최씨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이나 공천 불법개입 혐의 공판이 남아 있는 만큼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국민 전체의 자유와 행복, 복리 증진을 위해 행사할 의무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자신과 오랜 사적 친분을 유지해온 최서원(최순실)과 공모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질서가 큰 혼란에 빠지고 결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있다”면서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태도를 보인 점도 양형 사유에 포함시켰다.

유감스러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이다. 지난해 10월 구속기간이 연장된 이후 재판을 거부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건강상 이유’를 대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TV 생중계로 온 나라가 지켜본 선고공판마저 궐석재판으로 진행되는 파행이 빚어졌다. 대통령 재임 중 그토록 법치를 강조하던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자 법치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쪽으로 돌변했다. 국가 형사사법 절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만한 태도는 공소사실과 별개로 비판받고 응징되어야 마땅하다. 박 전 대통령이 향후 상급심에서도 이 같은 태도로 일관할 경우, 심리를 맡게 될 재판부는 강제구인 절차를 통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법 앞의 평등’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이 유죄 선고로 끝나면서 길었던 국정농단 사건은 이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방조한 정치인과 검찰 등에 대한 심판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명박)이 조만간 구속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그들 개인과 일가를 형사처벌하는 차원에 머물러선 안된다. ‘이명박근혜 9년’의 종언을 넘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촛불’을 통해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평화적으로 끌어내린 시민들은 과거에서 탈피한, 완전히 다른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나라, 부와 힘과 명예가 특정 계층·세력에게 독점되지 않는 나라를 바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벌개혁을 통한 정경유착의 근절,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환골탈태, 직장·학교·가정 등 일상공간에서의 민주화를 요구한다. 위정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담아낼지 숙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권자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될 것이다.


[경향 사설] 단계적 조치하면 비핵화 해결된다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경향 사설] 미국 안보사령탑이 존 볼턴이라는 나쁜 소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이자 비이성적이라고 할 만큼 대북 강경 태도를 갖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임명했다. 이로써 미국의 외교안보라인은 지난주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볼턴 등 대북 강경파로 채워지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 제2기 외교안보팀이 출범한 셈이지만 신뢰보다 우려가 앞선다.

트럼프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두 달여밖에 안 남은 시점에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한 것 자체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통상의 경우라면 지금쯤 북·미 양쪽은 특사를 교환하고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하는 데 골몰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기는커녕 북한과 접촉하면서 회담 실무를 책임질 인사들을 대북 강경파들로 바꾸고 있으니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보사령탑을 교체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짚이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와 뜻이 맞는 인사들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힘 있는 미국 인사들과 협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대북압박에서 대화로 국면이 전환되는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미국 보수층을 의식한 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볼턴을 등판시킨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볼턴이 대북 군사적 옵션 지지자라는 점이 걸린다. 군사적 옵션은 곧바로 한반도 재앙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북핵 해결을 위해서라고 해도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카드이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볼턴이 참모일 뿐이므로 그가 대북 강경파라는 사실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을 모르지 않는다. 볼턴도 안보사령탑 발탁 소식을 들은 뒤 “과거 발언들은 다 지나간 일이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미관계는 70년 넘게 쌓아온 불신과 적대의 관계다. 사소한 발언 하나로도 대화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 볼턴은 2003년 북핵 협상 미국 대표단에 포함됐으면서도 무분별한 대북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가 결국 협상대표단에서 제외된 전례가 있다. 그가 한반도 운명이 걸린 북·미 정상회담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중·일·러의 협력도 중요하다

정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12일부터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파견해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은 12~13일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면담할 계획이다. 서훈 국정원장도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회담 성사 경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이 중·러 두 정상을 면담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들과 전화 통화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한반도 정세 진전에는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적인 만큼 이들 국가에 정상회담 성사 경위와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중국의 입장이 특히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 성사에 환영을 표시했으나 내심 불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에 동참했는데도 북한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미국이 중국을 건너뛰어 직접 북한을 상대하겠다고 나섰으니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법하다. 이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면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이 북·미 간 접근에 불안해한다면 양측 간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 두 나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는 해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건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적 보상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 또한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는 자신을 배제하고 북·미가 정치적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일본이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 역시 한반도 정세 진전에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하고 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어떤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국제적 협력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북·미 및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주변 강국의 협력은 향후 북한의 정상국가화 작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에도 필수적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 등 특사는 지난 5일부터 숨가쁘게 이어진 강행군에 피로가 누적됐겠지만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쌓는다는 각오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정의용·서훈 대북 특사를 맞이하는 북한의 자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북특사단이 5일 특별기편으로 북한에 파견된다고 청와대가 4일 밝혔다. 특사단은 1박2일간 머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북·미대화 여건 조성,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장관급 인사 2명이 함께 대북 특사로 파견되는 것은 전례없는 일로, 이는 문재인 정부가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번 특사의 우선 목표가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북·미관계 중재에 있는 만큼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대표를 맡는 것은 바람직하다. 서훈 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협상 전문가인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대면한 베테랑이어서 특사로 제격이다. 특사단은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전달하고 김 위원장의 견해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 들어 남북대화를 재개하면서 북·미대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북핵 문제에는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방남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했지만 비핵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조건’하에서만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했고, 백악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라는 가장 엄격한 비핵화 요건을 끄집어냈다. 북한이 대화 의지를 내비치자 오히려 문턱을 높이려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대북 불신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불신과 의구심을 돌파하고 북·미대화를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북한은 현재의 국면이 한반도 상황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분수령임을 인식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 특사단 방북이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과거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재확인하고 우선 핵·미사일 실험의 잠정중단 의지를 비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대북 강경 입장인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북·미가 진지한 협상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결코 이번 국면 전환의 계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실험 중단 의사 표명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경향 사설] ‘역사의 진실’ 마주하라는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이 99돌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와 건국절 논란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면서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통렬한 지적이다. 올해 3·1절 기념식은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일본 만행의 상징적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에서 거행됐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남녀 독립투사 17인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기도 했다. 장소나 내용이나 역대 대통령 중 일본을 향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일본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해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일 협력을 분리·병행하는 ‘투트랙’ 전략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 기념사가 나오자마자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밀실합의가 얼마나 큰 잘못이요, 족쇄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국민들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피해국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나라는 선진국은커녕 정상국가라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내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임을 분명히 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 ‘이승만 미화’가 깔려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제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고, 독립운동가를 평가절하하는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내겠다고 밝힌 것도 의미가 깊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번째인 이번 3·1절 행사에서 여러 가지 쟁점과 논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입장을 내놓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속이 시원했다”는 반응이 많은 걸 보면 그만큼 역사 바로 세우기에 갈증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했다. 내년 100번째 3·1절은 이런 꿈들이 모두 이뤄진 기념식이 되기를 바란다.


[경향 사설] 북 김영철의 북·미대화 용의 표명을 주목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경의선 육로로 방남해 2박3일 일정에 들어갔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이날 평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한 자리에서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면서 북한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또 “남북관계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된 김영철 부위원장의 발언은 원론적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적극 표명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북한 대표단은 27일까지의 체류기간 동안 문재인 정부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북·미대화의 밑그림을 그려나갈 것을 희망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표단의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단에 포함된 북한 외무성 최강일 부국장은 과거 6자회담에 참여한 바 있고, 핵 문제와 대미협상에 정통한 인물이다. 지원인원에는 통역사까지 포함돼 미국과의 대화에 대비했음을 짐작게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특사의 방남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향후 북남관계 개선 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울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했다고 한다. ‘강령적 지시’는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를 뜻한다. ‘강령적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 구성된 이번 대표단에 외무성 당국자가 포함된 것은 북한이 북핵 문제에 대한 모종의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김여정 특사를 통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한 바 있다. 그 여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북핵 문제의 진전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북·미대화 및 북핵 문제의 진전이 동반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북한이 답을 내놔야 할 차례이기도 하다.

보수세력들은 김영철 부위원장을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라 몰아붙이며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미국은 북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기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독자제재를 지난주 발표하는 등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논란을 뚫고 어렵게 내려온 만큼 북한이 북핵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는 대담한 메시지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아쉬운 펜스-김여정 만남 불발, 하지만 기회는 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회동하려다 무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사람이 올림픽 개회식 다음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회담 두 시간 전 북한이 취소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했지만, 백악관 부통령실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펜스-김여정 회담이 불발된 것은 대단히 아쉽다.

궁금한 대목은 북한이 왜 약속을 갑자기 취소했는가 하는 점이다.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기념관 방문과 탈북자 면담 등 반북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미리부터 예고해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회담을 추진했다가 취소한 것이어서 궁금증이 증폭된다. 미국 측은 회담 불발에 대해 펜스가 김여정을 만난 자리에서도 반북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을 예상해 북한이 만나기를 꺼렸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평창 올림픽 리셉션과 개회식이 열린 9일 펜스가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 펜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것을 꺼려 리셉션에 불참했다. 뒤늦게 도착해 잠깐 리셉션장에 들어왔지만 김영남과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북한 대표단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펜스와 대화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펜스-김여정 회담 불발은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그만큼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준다. 정부와 북한이 회동 불발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백악관이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한 것도 뒷맛이 좋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것은 성과이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 어떻게 분위기를 조성할지가 관건이고, 양쪽을 중재해야 하는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물론 중요하지만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23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다. 정부는 내주쯤 고위급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한·미 간 조율에 나선다. 평창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환영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 위원장의 특사임을 밝히고 친서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된다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연내 방북한다면 11년 만에 남북 최고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게 된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물론 문 대통령의 방북에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에만 온기가 돌기 시작할 뿐 북·미간 긴장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가 움직이지 않은 채 남북관계만 속도를 낸다면, 남북관계조차 고무줄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 구도가 구동해야 한반도 평화구도가 견고하게 정착될 수 있음은 북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림픽 축하 리셉션에 불참하고, 반북 캠페인만 벌인 뒤 한국을 떠난 일을 상기한다면 모처럼의 북한 제의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정세와 정부의 입장을 북한에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남북 공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으로서는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넘어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선제 발표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1999년 9월 북한은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대북공조가 원활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2000년은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본질적으로 동일했던 시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초기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벗어나면서 성사됐다. 이런 전례를 돌아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공조를 긴밀하게 유지하되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렛대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켰다. 남북관계 회복의 물꼬를 틔운 지금까지의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기된 한·미 훈련의 재개가 첫 장애물일 것이다. 용기와 지혜, 상상력을 발휘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북한은 건군절 열병식을 조용하게 치른 데 이어 권력 2인자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해 올림픽 개최를 축하했다. 이를 ‘매력공세’나 ‘위장 평화공세’로 간주해 버린다면 대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상을 전환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경향 사설] 규모 축소한 북한 열병식이 보내는 신호

북한이 8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 행사를 했다. 열병식은 행사시간이 지난해보다 단축됐고, 규모도 축소됐다. 북한은 또 외국 언론을 초청하지 않았고, TV 방영은 생중계 대신 녹화 화면을 중계했다. 지난해 김일성 주석 105번째 생일인 4월15일에 개최한 열병식에 외신기자 130여명을 초청하고, 조선중앙TV가 생중계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공개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도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터라 내부에 확인시키기 위해 공개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열병식이 양면성을 띠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외공개를 자제한 흔적이 뚜렷한 만큼 국제사회를 향해 ‘무력시위’를 벌였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이처럼 열병식을 예년에 비해 소리 나지 않게 치른 것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평창 올림픽 개최기간 중 휴전을 결의했고, 한·미가 합동훈련을 연기한 것에 대해 나름의 성의표시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도록 한 데 이어 열병식을 비교적 ‘조용하게’ 치른 것이 국제사회에 주는 신호는 명확해 보인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협력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9일 항공기편으로 내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을 접견하기로 했다. 김여정의 방남으로 남북대화와 관계 복원의 계기가 마련되면서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 상황에 전기를 마련할 시·공간의 성격을 띠게 됐다. 북한이 이를 최대한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미관계에서도 모멘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 외무성 국장이 8일 “북측 대표단이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북한에 이롭지 않다. 한국 정부도 북·미 양측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북 김영남 방남, 미국은 대화의 계기 놓치지 말아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이끌고 남한을 방문한다. 이미 방한이 확정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동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이 김 위원장을 고위급대표단장으로 임명한 의도는 분명하다.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북·미대화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재 대상이 아닌 데다 헌법상 북한의 국가 수반이어서 펜스 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북측 인사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김 위원장과 펜스 부통령이 공개 회동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 9일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 한 차례밖에 없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의지에 따라 비공개 회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미 양측은 어렵게 마련된 북핵 대화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대화 의지를 좀 더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북·미대화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대표단장이 된 이후 연일 대북 강경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대북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평창에 간다”고 하더니 4일에는 “평창 올림픽에서 북한 선전전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김 위원장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섣불리 북·미대화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태도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려는 한국의 의도와 배치된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이 아닌, 북핵 문제 해결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서는 안될 것이다. 설령 이번에 공식 대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향후 대화의 모멘텀이 되는 단초라도 마련하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미국, 한국의 동맹이 맞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아그레망(임명동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승인까지 한 상태에서 내정 철회가 이뤄졌다면 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의 30일(현지시간) 보도를 보면 차 내정자는 대북정책과 한·미 통상 이슈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정밀타격인 ‘코피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반대했다고 한다.

빅터 차가 낙마했다면 1년 공석 중인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채워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핵심 소통채널이 장기공백 상태에 빠진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시급한 당면과제라며 연일 대북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이 문제의 당사국이자 동맹국인 한국과는 소통창구도 완비하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미국은 이에 대한 입장을 한국 측에 성실하게 설명하고, 조속한 시일 내 후속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등과 함께 적으로 규정하면서 최고의 대북압박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연설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고강도의 대북 표현이 새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양보 없는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했다. 국정연설만 보면 트럼프의 대북인식은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던 지난해 11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올 들어 2년 만에 재개되고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동맹국의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이래서는 비핵화를 위한 한·미 공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한국을 동맹국으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 지지율 최저가 의미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주 연속 떨어지며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64%로, 지난주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상으로는 취임 후 최저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날 공개한 지지율은 이보다 더 낮은 59.8%였다. 하락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양 조사기관 모두 불과 2주 만에 9~10%포인트가 떨어졌다. 취임 후 지난 8개월 동안 줄곧 70% 안팎의 고공 지지율을 달려온 정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국정 지지율이 급속히 추락한 요인은 복합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모든 지지 정당과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하락한 것을 한 가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가상통화 규제와 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 강남 부동산 대책 논란 등 주요 민생 현안에서 정책 혼선과 미숙한 대처가 있었다. 이로 인한 실망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2030세대의 반발과 이탈이 상대적으로 컸다. 2주일 사이 20대는 13%포인트, 30대는 8%포인트나 지지율이 떨어졌다. 갤럽은 부정적인 평가 1위로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꼽았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30세대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피해자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뭐가 다르냐”는 청년들의 반응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는 지금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되묻고 있다. 젊은이들이 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엊그제 청년일자리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각 부처가 청년일자리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시민의 성원과 지지는 정부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런 면에서 핵심 지지층의 이반은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지율 하락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여러 정책을 수정·보완하면서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이 국정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지율의 일시적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국정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차제에 국정 전반을 되돌아보며 점검·평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를 국정개혁의 동반자로 이끌어내는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야 3당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정치적 현실을 방치할 경우 지지율 하락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정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젠 야당과의 실질적 협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집권 2년차부터는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고 국정운영의 성과물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상충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대책을 내놓았다가 취소·유보하는 시행착오는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책의 결과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현장 반응은 어떨지, 후유증은 없는지 세심하고 신중하게 살피는 노력이 없다면, 비전은 있되 실체는 없는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민심은 냉정하다. 민심의 지지가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최저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강요 있었는지 확인해야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때 단체로 남한에 온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송환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5일 “북측이 기존 입장을 저희에게 다시 얘기하는 정도”였다며 확인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공개된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출’만큼 의혹투성이인 사건도 드물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의 여종업원 12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3명은 2016년 4월5일 돌연 식당을 벗어나 상하이 푸둥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이틀 만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하루 뒤인 4월8일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여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입국 직후부터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한 달 넘게 걸리는 점에 비춰 단 이틀 만에 입국함으로써 국가정보원의 간여를 짐작하게 했다. 정부가 사진까지 공개하며 입국 사실을 발표한 것도 고위급 인사가 아닌 한 신분과 탈북경로를 공개하지 않는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의혹은 총선 승리를 위한 ‘북풍공작’이라는 의심을 키웠다. 입국 이후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여종업원들은 정보당국의 특별관리를 받으며 사회와 격리돼 왔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해 7월 민변 변호사들과의 면담에서 “여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은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한정되는데 여종업원들이 그럴 대상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여종업원 중 일부는 강제로 입국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인권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출석해 “일부 종업원은 집단탈출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진술이 있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탈북을 함으로써 가족과 생이별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및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물론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인권 규범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파장이 워낙 커 다루지 않는 듯하지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는 문제다. 여종업원들 모두 자기 뜻으로 탈북했는지, 자의에 반하는데도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고, 남북대화가 성사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달라”며 “미국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평창 올림픽 기간에 가족을 포함한 고위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약속도 재확인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제안에 대해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다”며 시큰둥해하던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것은 남북대화의 재개가 결국은 미국에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의 접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대화의 촉매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했을 수 있다.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는 5일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로 북한이 남북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가 마련됐고,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 동결을 거론할 명분도 생겼다. 그러나 미국 내에는 북한의 대화모드를 ‘위장평화’ 공세라고 경계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과속하면서 한·미 공조와 대북압박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백악관이 양국 정상의 통화내용을 발표하면서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한 것에서 이런 기류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국면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결국은 양측이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미는 막후 접촉도 해봤지만 대화 재개에 실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선택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면 이번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대화 속도와 방향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일지 않도록 면밀한 공조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북대화가 북·미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경향 사설] 남북관계 개선의 첫 신호 보낸 북 조평통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오후 판문점 연락채널을 다시 개통했다. 연락채널은 북측 연락관이 먼저 남북직통 전화를 걸어오면서 복구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데도 비상 연락망마저 2년 가까이 끊긴 ‘비정상’이 해소된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에 나와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방침을 전하면서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로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리 위원장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 차례 거명했고,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직접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에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또 대화에 나설 북측 기관으로 노동당 통일전선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지정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남북대화 복원과 북한의 올림픽 참가방침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에 조응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은 이번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의 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기관명의의 성명 발표와 같은 예전 방식과 달리 조평통 위원장이 직접 방송을 통해 발표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입장문에서 “북남관계 개선 문제가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해결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남당국이 어떻게 다뤄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 것도 ‘남측 정부가 하기에 달렸다’며 책임을 떠넘기곤 하던 종전과 다르다.

북한이 1일 신년사에 이어 3일 입장문 발표,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 및 통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 복원에 이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화를 앞두고 기싸움을 하려 들거나 불투명한 태도로 일관하던 과거 행태가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새해 들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이 대남비난을 중단한 것도 좋은 신호다.
물론 며칠간의 태도만으로 대화의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관계개선의 첫 단추가 순조롭게 끼워지는 흐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모처럼 마련된 대화 모멘텀을 살려 남북이 성의 있는 자세로 관계복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경향 사설] 위안부 합의 당사자 윤병세와 아베의 적반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검토 태스크포스(TF)’의 보고서에 적반하장식 반응을 내놓았다.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외교장관이던 윤 전 장관은 이면합의를 했으며 이를 은폐했다는 지적에 “비공개 부분을 대외발표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계기에 국회, 언론 등에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이면합의 의혹이 쏟아질 때 자신을 포함한 정부 전체가 “절대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나. 그는 “특히 소녀상 문제에 대한 이면합의는 없다”고 다짐했다.

위안부 합의에 ‘최종적·불가역적’이란 표현이 들어간 데 대한 해석도 가관이다. 그는 “외교적 합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으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합의와 불가역이 동일시된다면 왜 불필요하게 그런 표현을 합의문에 명기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일본이 사죄할 경우 돌이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한국 측이 먼저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제안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더욱 공허해진다.

위안부 합의의 일본 쪽 당사자인 아베 총리는 TF 보고서가 발표되자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이 추가 조치를 요구하더라도 일절 응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지만 무례한 발언이다. 지난해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를 쓰는 문제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응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일본 입장에서는 일단 합의한 내용을 재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합의 이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합의가 잘못되었음이 역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합의 하루 뒤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위안부 합의를 돈 주고 산 면죄부로 여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20여일 뒤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거가 없다”며 합의 사항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합의는 ‘(일본)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남긴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1월에는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10억엔을 줬으니 한국 측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정성이 없는 거짓 사죄로 책임만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속내가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다. 관련 당사자들 누구라도 피해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누구보다 자숙해야 할 윤 전 장관과 아베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유감스럽다.


[경향 사설]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야당의 분별력 잃은 비방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외교를 야당들이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15일에는 “국격을 훼손한 구걸외교이자 유례가 없는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삼전도의 굴욕’(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방일 중인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황제 취임식에 조공 외교를 하러 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폄훼했다. 정상외교에 대한 진지한 평가라기보다 정치공세에 가깝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과 전쟁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진정 야당들이 외교의 성공을 바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성을 잃은, 묻지마 공격이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방중을 비판하는 데 이유가 없지는 않다. 국빈방문에 걸맞지 않은 중국 당국과 언론의 홀대·무례에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수행 기자 폭행까지 겹쳤으니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벌어진 한·중 간 거리를 다소나마 좁힌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외교참사라 하고 무엇하러 갔느냐거나 주중대사·외교장관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냉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홍 대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만난 후 “자유한국당과 미국 공화당 주류들, 일본 자민당 주류들, 아베 총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미·일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북핵 문제에 한목소리로 대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야당이라 해도 나라 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를 두고 자국 정부를 제쳐놓고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추겠다니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야당도 엄연히 국정의 한 축이다. 외교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이지만 야당이라고 책임이 없지 않다. 더구나 작금의 대중 외교 난맥상은 박근혜 정부와 그를 떠받친 한국당, 바른정당이 밀어붙인 사드 배치가 시발점이다. 원인 제공자가 남 말 하는 처사에 어이가 없다. 동맹 만능을 외치며 중국 배척을 주장한 야당으로서는 중국의 환대를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환대 안 했다는 이유로 비난하다니 이런 자가당착과 무도함이 어디 있나. 정상이 해외 순방 시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관례이다. 초당적 외교는 못해도 대통령 등 뒤에서 화살을 쏘는 행태만은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핵·동맹·평창 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이상한 시선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수상쩍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7일 “미국은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도 “아직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미국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고대한다”고 해명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민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 내 논란은 결국 참가로 귀결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헤일리 대사 등의 발언은 이미 두 달 전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공식 발표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미 올림픽위원회는 이번 사태 후에도 성명을 내 기존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창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고위대표단 파견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으니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다.

궁금한 것은 왜 갑자기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가이다. 물론 미국 정부에 미국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 보호는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가 국제체육행사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 행정부 고위인사 3명이 동시에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새로운 변수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올림픽을 치르기 힘들 만큼 불안하다고 보는 건지 묻고 싶다.

헤일리 대사 등은 자신들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이 참석을 유보할 정도로 불안한 올림픽이라면 다른 나라 선수인들 오려고 하겠는가. 동맹국 잔치에 재를 뿌리려고 작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며 사드를 배치해놓고, 한반도가 불안하다며 평창 올림픽 불참을 시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뜩이나 평창 올림픽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참가 불허 조치로 먹구름이 낀 상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안될 말이다. 동맹이자 북핵 위기의 한쪽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도 안전한 평창 올림픽 개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향 사설] 미국, 북한 미사일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에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금명간 발표할 미국 독자제재로는 북한 선박 등을 겨냥한 해상봉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도 추가적 제재결의를 논의 중이다. 대북 추가 제재는 북한이 도발했으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은 현재도 최고 수준이다. 올 들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3차례 발효됐고, 미국 독자제재안도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압박이 북핵 개발 저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계적으로 제재 가짓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인들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공급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압박 수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벼랑으로 모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설령 중국이 원유공급을 전면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원유수입선을 러시아로 돌리는 길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인도주의적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한 대북 접근을 놓고 시시비비할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북핵은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문제다.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핵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북핵 위기가 고조돼 온 데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스스로도 미국의 역대 정부가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여러 차례 확언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대화의 여지를 제공한다.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두 달 이상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화의 격과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북 특사든, 뉴욕 접촉이든 마다해서는 안된다. 과거 북·미 협상은 언제나 낮은 단계의 소통과 접촉에서 발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지만 그동안은 압박 일색이었다. 이제는 ‘최대의 관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경향 사설] 미·일동맹 강화가 한반도에 퍼뜨리는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문명 세계와 국제 평화 및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전략으로, 트럼프는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아베는 “북한이 정책을 바꿀 테니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두 나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한 군비증강도 논의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길 바란다”면서 “이 장비로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안보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나아가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간접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다”고 호응했다. 일본 방문 직전 트럼프가 지난 8~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은 요격했어야 했다”면서 “무사의 나라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드러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주권국가들은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백악관이 밝힌 트럼프 순방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연대해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이다. 이 구상은 중국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허용해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북 공조를 빌미로 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미·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다. 이를 재확인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 기조에 기초해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전략에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길로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갈등이 수습되기를 기대한다.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여는 데도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사드 포대를 배치한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점을 인정하되, 그 문제로 갈등하기보다 협력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전략이다.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과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 입장을, 한국은 기존 입장을 각각 합의문에 명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핵과 미·중 대결로 동북아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2기 체제를 정비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을 유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중 간의 사드 문제 처리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다시는 사드와 같은 미·중 갈등 이슈가 한·중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이번 합의의 전제나 다름없는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MD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미·일 3국 간 군사동맹 반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미동맹을 넘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왔고 실제 사드 갈등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만 추종할 경우 중국과 큰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일 북핵 대응 방침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균형 외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만큼 양국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경일변도 북핵 대응 기조를 압박과 대화의 병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미동맹 강화와 제로섬 게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요하다.

한·중 양국의 합의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의 상호 인식이 악화된 것이 큰 문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당국 못지않게 민간 사이의 다양한 교류채널 확대가 시급하다. 교류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위한 제도화·규범화도 뒤따라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당, 박근혜 탈당 권유로 과거 청산 어림없다

자유한국당이 어제 윤리위원회를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박 전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응하지 않으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자동 제명된다. 윤리위는 또 당내 친박근혜 그룹의 대표 인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도 탈당을 권유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윤리위의 결정이 나온 뒤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선언했다.

공당이 해당 행위를 이유로 정식 징계절차를 밟아 전직 대통령을 당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징계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후 7개월여 만에, 그리고 당 혁신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탈당을 권고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가까스로 결의한 것이다. 미룰 대로 미루다 마지못해 내린 뒷북 대응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서·최 의원의 탈당 권유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적 제스처다. 두 사람은 윤리위 결정을 정치적 패륜행위라고 반발하며 당내에 남아 싸우겠다고 했다. 이들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친박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은 권력인 박 전 대통령만 버리고 이들은 그대로 눌러앉는 결과가 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 10여명을 불러들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두 당을 합쳐 기득권을 되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내린 조치일 뿐이다. 윤리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한 행위’를 이유로 탈당을 권유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 석방과 무죄를 주장하는 자기 분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 지지도는 10%대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채 수구적 행태로 일관해 온 탓이다.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혁신에 나서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상처 봉합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사실 한국당의 문제는 친박세력만이 아니다. 친박세력 청산을 넘어 낡은 이념과 노선을 쇄신해도 회생이 가능할까말까 한 상황인데,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집단에 시민들이 신뢰를 보낼 리가 없다. 한국당은 아직도 멀었다.


[경향 사설] 갈지자 행보 계속하는 트럼프, 이래서야 북핵 해결할 수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어제 트위터에서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린 글에서는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느냐”고 했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북한과 2~3개 정도 채널을 열어두고 대화하고 있다”며 북·미 간 막후 접촉 사실을 밝힌 지 하루 만에 그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이 과거 정부와 같은 유화적인 북핵 해법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협상에 나선 틸러슨과 역할을 분담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등을 향해 대북 압박과 제재라는 해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미화할 수 없을 만큼 부적절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는 국무부와 틸러슨 장관을 공개 조롱했다.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하루 만에 면박당하는 장관의 말을 어느 나라가 의미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틸러슨의 해임 또는 사임설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불신과 실망감을 안겼다. 자신은 멋대로 발언하면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동맹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상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다르고, 대통령 자신의 말이 오락가락하는데 협상이 제대로 성사될 리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데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방침으로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고 나올 수 없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폄훼한 트럼프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트위터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적 시각을 보인 점은 분명하다. 한·미 당국은 트럼프의 발언으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미 간 대화 채널 유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적 오판을 막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대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돌출발언을 멈추어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 뺀 미 전략폭격기 단독 작전,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6대가 지난 23일 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동해 공해상에서 3시간가량 날았다. 강원도 고성 동쪽 200여㎞ 떨어진, 말 그대로 북한의 코앞까지 근접해 비행했다. 미 전략폭격기가 1953년 휴전 후 처음 NLL을 넘은 가장 공세적 위협작전이었다.

이번 비행은 미군의 대응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특별한 도발이 없는데도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면서, 군사적 옵션이 말뿐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작전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반도에 출격한 미 전략무기는 한국군과 연합해 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았다. 공중급유기를 동원해 자체 급유까지 했다. 한국군과 한반도 내 미 공군기지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때도 미국은 장거리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함께 출동시켰다. 유사시 한국군과 한국 내 기지의 도움 없이 작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어제 “전폭기 출격은 한·미 간 충분한 사전조율이 있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은 단독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군 폭격기가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지 말도록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군 단독 작전의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유화적이라는 불만의 표시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미군의 작전에 북한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에 반해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을 상대로 단독 작전에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자극받아 맞대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해상과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이 심각한 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국군 개입 없이 미 전략무기가 한반도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두 번 다시 허용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북핵 대응 위해 핵잠수함 도입한다니, 황당한 발상이다

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전략 부재로 중심 잃더니 기어코 사드 배치 강행한 정부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경향 사설] 전술핵 거론 어물쩍 넘길 일 아니다, 진상을 밝혀라

송영무 국방장관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차례로 나서서 송 장관의 발언 경위와 전술핵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지만 시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를 틈탄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러다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송 장관이 전술핵을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전술핵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너무 안일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 송 장관 발언 사태의 본질은 국방장관이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민감한 이슈를 의제로 제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국방부가 먼저 송 장관 발언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의도를 갖고 사전에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발뺌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정부의 해명만으로는 왜 송 장관이 돌출발언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야당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미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한 자유한국당은 그제 전술핵 재배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 결의안을 발의했다. 바른정당은 한국에 핵을 배치한 뒤 한·미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핵공유’ 방안을 제기했다. 송 장관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북핵 정책이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위험한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송 장관 발언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송 장관이 개인 소신으로 한 발언인지,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정부의 북핵 정책 변경에 앞선 여론 떠보기인지 규명해야 한다. 그냥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송 장관 발언과 정부의 대응 문제는 단순히 불안감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안보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향 사설] 권력·자본의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에 내려진 사법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센 재벌 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박영수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경제 위기설 등을 들고나온 재계와 보수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의거해 판단한 결과라고 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했으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고 범죄수익 은닉에 나아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자본권력은 최고 정치권력에 뇌물을 줘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행정을 이끌어 내겠다고 생각하고, 정치권력은 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권력이 자본권력에 의해 동원되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재판부도 “박근혜는 국정 최고책임자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차원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인식했다”며 “박근혜는 최순실과 공모해 세 차례 단독 면담을 통해 이재용에게 정유라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유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각 계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너무나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이번 일은 오로지 제 짧은 생각과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독선에, 법에 대한 무지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이건희 회장 대신 죄를 덮어쓰려 했던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의 복사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을 통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총수 개인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계는 삼성 총수가 구속되면 삼성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국가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전파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 초 180만원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현재 235만1000원을 기록했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오히려 이 부회장과 그룹 수뇌부였던 셈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봐준 덕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두 차례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특검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모두 솜방망이였다. 이런 관행이 한국의 재벌에 총수 1인체제의 후진적 지배·경영 구조를 온존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 부회장이 이렇게 무모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오늘날과 같은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박영수 특검의 수사로 시작된 삼성 사건은 1심 재판으로 일단락됐다. 다만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국정원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있다. 삼성 측은 항소의 뜻을 밝혔다. 특검은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일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 재판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박 전 대통령 공판에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