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북핵·동맹·평창 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이상한 시선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수상쩍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7일 “미국은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도 “아직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미국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고대한다”고 해명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민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 내 논란은 결국 참가로 귀결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헤일리 대사 등의 발언은 이미 두 달 전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공식 발표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미 올림픽위원회는 이번 사태 후에도 성명을 내 기존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창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고위대표단 파견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으니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다.

궁금한 것은 왜 갑자기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가이다. 물론 미국 정부에 미국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 보호는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가 국제체육행사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 행정부 고위인사 3명이 동시에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새로운 변수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올림픽을 치르기 힘들 만큼 불안하다고 보는 건지 묻고 싶다.

헤일리 대사 등은 자신들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이 참석을 유보할 정도로 불안한 올림픽이라면 다른 나라 선수인들 오려고 하겠는가. 동맹국 잔치에 재를 뿌리려고 작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며 사드를 배치해놓고, 한반도가 불안하다며 평창 올림픽 불참을 시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뜩이나 평창 올림픽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참가 불허 조치로 먹구름이 낀 상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안될 말이다. 동맹이자 북핵 위기의 한쪽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도 안전한 평창 올림픽 개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향 사설] 미국, 북한 미사일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에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금명간 발표할 미국 독자제재로는 북한 선박 등을 겨냥한 해상봉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도 추가적 제재결의를 논의 중이다. 대북 추가 제재는 북한이 도발했으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은 현재도 최고 수준이다. 올 들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3차례 발효됐고, 미국 독자제재안도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압박이 북핵 개발 저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계적으로 제재 가짓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인들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공급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압박 수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벼랑으로 모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설령 중국이 원유공급을 전면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원유수입선을 러시아로 돌리는 길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인도주의적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한 대북 접근을 놓고 시시비비할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북핵은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문제다.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핵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북핵 위기가 고조돼 온 데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스스로도 미국의 역대 정부가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여러 차례 확언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대화의 여지를 제공한다.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두 달 이상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화의 격과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북 특사든, 뉴욕 접촉이든 마다해서는 안된다. 과거 북·미 협상은 언제나 낮은 단계의 소통과 접촉에서 발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지만 그동안은 압박 일색이었다. 이제는 ‘최대의 관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경향 사설] 미·일동맹 강화가 한반도에 퍼뜨리는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문명 세계와 국제 평화 및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전략으로, 트럼프는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아베는 “북한이 정책을 바꿀 테니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두 나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한 군비증강도 논의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길 바란다”면서 “이 장비로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안보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나아가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간접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다”고 호응했다. 일본 방문 직전 트럼프가 지난 8~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은 요격했어야 했다”면서 “무사의 나라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드러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주권국가들은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백악관이 밝힌 트럼프 순방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연대해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이다. 이 구상은 중국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허용해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북 공조를 빌미로 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미·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다. 이를 재확인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 기조에 기초해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전략에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길로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갈등이 수습되기를 기대한다.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여는 데도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사드 포대를 배치한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점을 인정하되, 그 문제로 갈등하기보다 협력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전략이다.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과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 입장을, 한국은 기존 입장을 각각 합의문에 명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핵과 미·중 대결로 동북아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2기 체제를 정비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을 유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중 간의 사드 문제 처리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다시는 사드와 같은 미·중 갈등 이슈가 한·중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이번 합의의 전제나 다름없는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MD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미·일 3국 간 군사동맹 반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미동맹을 넘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왔고 실제 사드 갈등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만 추종할 경우 중국과 큰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일 북핵 대응 방침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균형 외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만큼 양국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경일변도 북핵 대응 기조를 압박과 대화의 병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미동맹 강화와 제로섬 게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요하다.

한·중 양국의 합의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의 상호 인식이 악화된 것이 큰 문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당국 못지않게 민간 사이의 다양한 교류채널 확대가 시급하다. 교류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위한 제도화·규범화도 뒤따라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당, 박근혜 탈당 권유로 과거 청산 어림없다

자유한국당이 어제 윤리위원회를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박 전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응하지 않으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자동 제명된다. 윤리위는 또 당내 친박근혜 그룹의 대표 인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도 탈당을 권유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윤리위의 결정이 나온 뒤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선언했다.

공당이 해당 행위를 이유로 정식 징계절차를 밟아 전직 대통령을 당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징계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후 7개월여 만에, 그리고 당 혁신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탈당을 권고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가까스로 결의한 것이다. 미룰 대로 미루다 마지못해 내린 뒷북 대응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서·최 의원의 탈당 권유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적 제스처다. 두 사람은 윤리위 결정을 정치적 패륜행위라고 반발하며 당내에 남아 싸우겠다고 했다. 이들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친박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은 권력인 박 전 대통령만 버리고 이들은 그대로 눌러앉는 결과가 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 10여명을 불러들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두 당을 합쳐 기득권을 되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내린 조치일 뿐이다. 윤리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한 행위’를 이유로 탈당을 권유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 석방과 무죄를 주장하는 자기 분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 지지도는 10%대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채 수구적 행태로 일관해 온 탓이다.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혁신에 나서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상처 봉합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사실 한국당의 문제는 친박세력만이 아니다. 친박세력 청산을 넘어 낡은 이념과 노선을 쇄신해도 회생이 가능할까말까 한 상황인데,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집단에 시민들이 신뢰를 보낼 리가 없다. 한국당은 아직도 멀었다.


[경향 사설] 갈지자 행보 계속하는 트럼프, 이래서야 북핵 해결할 수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어제 트위터에서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린 글에서는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느냐”고 했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북한과 2~3개 정도 채널을 열어두고 대화하고 있다”며 북·미 간 막후 접촉 사실을 밝힌 지 하루 만에 그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이 과거 정부와 같은 유화적인 북핵 해법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협상에 나선 틸러슨과 역할을 분담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등을 향해 대북 압박과 제재라는 해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미화할 수 없을 만큼 부적절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는 국무부와 틸러슨 장관을 공개 조롱했다.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하루 만에 면박당하는 장관의 말을 어느 나라가 의미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틸러슨의 해임 또는 사임설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불신과 실망감을 안겼다. 자신은 멋대로 발언하면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동맹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상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다르고, 대통령 자신의 말이 오락가락하는데 협상이 제대로 성사될 리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데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방침으로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고 나올 수 없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폄훼한 트럼프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트위터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적 시각을 보인 점은 분명하다. 한·미 당국은 트럼프의 발언으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미 간 대화 채널 유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적 오판을 막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대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돌출발언을 멈추어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 뺀 미 전략폭격기 단독 작전,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6대가 지난 23일 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동해 공해상에서 3시간가량 날았다. 강원도 고성 동쪽 200여㎞ 떨어진, 말 그대로 북한의 코앞까지 근접해 비행했다. 미 전략폭격기가 1953년 휴전 후 처음 NLL을 넘은 가장 공세적 위협작전이었다.

이번 비행은 미군의 대응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특별한 도발이 없는데도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면서, 군사적 옵션이 말뿐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작전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반도에 출격한 미 전략무기는 한국군과 연합해 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았다. 공중급유기를 동원해 자체 급유까지 했다. 한국군과 한반도 내 미 공군기지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때도 미국은 장거리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함께 출동시켰다. 유사시 한국군과 한국 내 기지의 도움 없이 작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어제 “전폭기 출격은 한·미 간 충분한 사전조율이 있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은 단독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군 폭격기가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지 말도록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군 단독 작전의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유화적이라는 불만의 표시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미군의 작전에 북한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에 반해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을 상대로 단독 작전에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자극받아 맞대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해상과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이 심각한 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국군 개입 없이 미 전략무기가 한반도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두 번 다시 허용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북핵 대응 위해 핵잠수함 도입한다니, 황당한 발상이다

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전략 부재로 중심 잃더니 기어코 사드 배치 강행한 정부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경향 사설] 전술핵 거론 어물쩍 넘길 일 아니다, 진상을 밝혀라

송영무 국방장관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차례로 나서서 송 장관의 발언 경위와 전술핵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지만 시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를 틈탄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러다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송 장관이 전술핵을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전술핵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너무 안일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 송 장관 발언 사태의 본질은 국방장관이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민감한 이슈를 의제로 제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국방부가 먼저 송 장관 발언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의도를 갖고 사전에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발뺌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정부의 해명만으로는 왜 송 장관이 돌출발언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야당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미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한 자유한국당은 그제 전술핵 재배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 결의안을 발의했다. 바른정당은 한국에 핵을 배치한 뒤 한·미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핵공유’ 방안을 제기했다. 송 장관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북핵 정책이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위험한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송 장관 발언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송 장관이 개인 소신으로 한 발언인지,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정부의 북핵 정책 변경에 앞선 여론 떠보기인지 규명해야 한다. 그냥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송 장관 발언과 정부의 대응 문제는 단순히 불안감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안보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향 사설] 권력·자본의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에 내려진 사법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센 재벌 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박영수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경제 위기설 등을 들고나온 재계와 보수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의거해 판단한 결과라고 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했으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고 범죄수익 은닉에 나아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자본권력은 최고 정치권력에 뇌물을 줘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행정을 이끌어 내겠다고 생각하고, 정치권력은 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권력이 자본권력에 의해 동원되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재판부도 “박근혜는 국정 최고책임자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차원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인식했다”며 “박근혜는 최순실과 공모해 세 차례 단독 면담을 통해 이재용에게 정유라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유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각 계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너무나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이번 일은 오로지 제 짧은 생각과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독선에, 법에 대한 무지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이건희 회장 대신 죄를 덮어쓰려 했던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의 복사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을 통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총수 개인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계는 삼성 총수가 구속되면 삼성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국가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전파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 초 180만원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현재 235만1000원을 기록했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오히려 이 부회장과 그룹 수뇌부였던 셈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봐준 덕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두 차례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특검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모두 솜방망이였다. 이런 관행이 한국의 재벌에 총수 1인체제의 후진적 지배·경영 구조를 온존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 부회장이 이렇게 무모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오늘날과 같은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박영수 특검의 수사로 시작된 삼성 사건은 1심 재판으로 일단락됐다. 다만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국정원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있다. 삼성 측은 항소의 뜻을 밝혔다. 특검은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일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 재판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박 전 대통령 공판에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향 사설] 남북 간 레드라인은 없다, 소모적 논쟁 그만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레드라인(금지선) 발언에 대해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일제히 공격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북핵 레드라인은 미국 기준이며,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이 이미 레드라인을 넘었는데 안일하게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인식과 평가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은 미국 기준일 뿐이라는 인식부터 문제가 있다. 한·미동맹 관계를 고려할 때 북핵이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는데, 그것이 한국과 무관할 수는 없다. 비록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위협은 될 수 없겠지만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미사일이 완성단계로 가면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야권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레드라인은 한국의 레드라인이 아닐 수 없다.

북핵이 남한의 레드라인을 넘었는데도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물론 단거리 미사일을 활용한 북한의 남한 핵공격 능력이 완성단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핵공격 못지않은 중대한 피해를 입힐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북핵만 강조할 수는 없다. 재래식이든 핵이든 북한의 다양한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면 야권이 미국의 의지와 능력을 의심한다는 말이 된다. 대안 제시도 없이 비판만 하는 것은 위기를 가중시키는 무책임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관계에서 레드라인을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동안 남북 사이에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을 겪으면서 언제든 작은 충돌 하나가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지난 70여년간 남북은 언제나 레드라인을 넘어선 상태였다. 법적으로도 남북은 아직 전쟁 상태에 있다. 남북 사이에 레드라인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북핵 레드라인 개념 자체는 남북관계가 아닌 북·미관계에서 발원한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이 완성단계에 이르면서 미국 본토 공격 능력이 커지는 등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하며 현재의 위기가 중첩되고 있는 현실을 왜곡해선 안된다. 야권은 현실을 바로 보고 자중해야 한다.


[경향 사설] 문재인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레드라인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금지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는 것은 외부세계가 북한의 도발을 더 이상 허용치 않고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행동에 나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핵에 대한 레드라인이 초기에는 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에 이어 핵실험이 되었다가 핵실험 이후에는 핵확산 행위가 다시 레드라인으로 설정됐다. 가변적이며, 모호하게 표현함으로써 적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정치 용어가 레드라인인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명확히 그은 취지는 이해한다. 이 선을 넘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실험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미 당국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개발해놓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ICBM 기술도 완성단계 직전에 있다는 게 상식이다.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문 대통령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개발을 강행, 머지않아 핵탄두를 장착한 ICBM 개발에 성공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못 박은 것은 신중하지 못한 일이다. 레드라인을 고정함으로써 협상의 유연성이 사라지게 됐다. 핵무기와 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확인되는 순간 선택은 논리적으로 전쟁밖에 없다. 군 통수권자와 국방장관의 견해가 다른 것도 문제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미국은)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했다”며 “레드라인은 우리가 설정한 것이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수사로 쓴다”고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이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협의한 결과인지도 불확실하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언급은 핵동결을 전제로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한다는, 정부의 2단계 북핵 해법과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이 핵 개발에 성공했다 해도 동결이 가능하다면 협상을 통해 비핵화 단계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당국자들은 “북한의 위협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부연했다. 시민들이 안보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나 중요하다. 말을 함부로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조차 레드라인을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밝힌 것은 부적절했다.


[경향 사설]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를 진지하게 논의해보자

북한과 미국의 극한 대치로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반도 긴장수위는 이달 하순 한·미 합동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정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도 “을지연습 진행 시 한반도 정세가 파국적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면한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극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정권 안정과 체제 유지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인식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요하게 한·미 군사훈련을 비난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의 명분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에서 찾고 있다. 군사훈련에 핵폭격 모의훈련이 포함된 사실을 내세우며 실질적인 핵 위협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군사훈련 중단 요구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군사동맹 약화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 분석에 따르더라도 군사훈련 중단이 한·미에 대한 북한의 주요한 요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장 설득력있는 대북 협상카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한 스스로 핵 문제 해법으로 주장해온 방안인 만큼 이를 묵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카드는 제재나 군사적 압박과 달리 주변국의 지지와 협조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이 지금껏 북핵 해법으로 주장해온 ‘쌍중단’과 똑같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괌 포위 사격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을지연습의 규모 축소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군사훈련 중단에 대한 한·미 보수층의 부정적 인식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하고,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노출될 것으로 우려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북핵·미사일 동결과 군사훈련 잠정중단 협상’ 주장 때도 그런 견해를 강력히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 군사훈련이 성역은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 일부 축소할 수 있다. 남북 총리급회담이 활발하게 열리던 노태우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으로 화해 분위기에 일조한 바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괌 포위공격 작전시점을 이달 중순으로 못 박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을지연습을 앞두고 미국에 대화 제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미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대화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말이 아님을 입증하기 바란다. 시간이 많지 않다.


[경향 사설] 삼성 경영권 승계에 우병우와 국정원까지 개입됐다니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캐비닛에서 뒤늦게 발견된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로 작성됐다는 현직 검사의 증언이 나왔다. 이른바 ‘캐비닛 문건’을 모른다는 우병우 전 수석의 발언과 배치된다. 25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영상 검사(대검 범죄정보1담당관)는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던 2014년 7~9월 당시 민정비서관인 우 전 수석의 지시로 삼성 관련 문건, 메모,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이 검사는 “민정비서관이 최종적으로 기조를 결정하고 보고서를 승인한 것이 맞냐”는 특검의 질문에 “그렇다. 제가 임의로 혼자서 작성한 것은 없다”고 답했다. 공판에서는 이 검사가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남긴 메모도 공개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 → 기회로 활용. ‘삼성의 당면과제는 이재용 체제 안착. 윈윈 추구할 수밖에 없음’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우 전 수석의 음험한 손길이 민정 업무와 거리가 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까지 뻗쳤다니 놀랍다. 작성 시점과 내용으로 추정컨대 민정비서관실의 삼성 보고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돼 국정농단 세력이 범죄를 모의하는 데 활용됐을 수 있다. 정권과 삼성이 뇌물을 주고받으며 윈윈하자는 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기본 구조다. 그런데도 우 전 수석은 보고서 내용은커녕 존재조차 모른다고 잡아뗐으니 그 뻔뻔함에 기가 찬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청사에서 열린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다 ‘캐비닛 문건의 존재를 아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언론 보도를 봤지만, 무슨 상황인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고 답했다. ‘법 미꾸라지’인 우 전 수석이 후배 검사의 법정 증언까지 나온 상황에서 어떤 해괴한 논리와 변명을 들이댈지 궁금하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는 국정원도 동원됐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은 당시 이헌수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삼성물산의 대주주이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건네받았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예산과 인사, 기획 등을 담당하는 핵심 보직이다. 특검에 따르면 이 실장은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 한국 관련 (상황을) 관리하고, 내부 상황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다른 친구를 통해 더 알아보겠다. 추가 내용은 다음에”라는 내용의 문자도 장 전 사장에게 전송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정원이 흥신소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과거사 청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국정원은 국정농단 부역자들의 비리도 철저히 밝혀 엄벌해야 한다.


[경향 사설] 이제 북한을 대화로 이끌 선제적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CBS방송, 워싱턴포스트 신문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접근방안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고, 먼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이어 완전한 핵폐기를 이루는 단계적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과거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어 새로울 게 없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침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핵을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대규모 파괴와 인명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의미가 없다. 또한 제재·압박에 대화를 병행하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북핵 해법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방안 공개는 다음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 측에 이를 미리 알리고, 회담에도 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접근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한·미 일각의 우려를 씻으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구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여’ 정책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상회담을 앞둔 한·미 지도자 사이에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중요하다. 문제는 외교·안보 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환경영향평가 문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발언 논란이 불거진 데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이라는 새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여론이 싸늘해지고 이를 반영하듯 미국 행정부는 대북 대화 조건을 비핵화로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군사적 조치를 운운하던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평화적인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문 대통령의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으로 한·미 간에 큰 균열이라도 발생한 것인 양 소란스러운 보수세력도 경시할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이념공세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자칫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건강한 논의를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북 구상을 제시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된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 선제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핵보유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기왕의 대북 지원 차원을 넘어서는 담대한 제안이 요구된다. 실효성 있는 선제적 조치를 마련한다면 미국은 물론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에게 핵폭탄 된 코미 전 FBI 국장 증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미 전 FBI 국장은 8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트럼프가 자신에게 충성을 요구하며 이같이 압박했다고 증언했다. 코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제기돼온 수사 중단 압력 의혹을 ‘가짜뉴스’라며 책임을 회피해온 트럼프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특히 수사 중단 압력이 사법방해에 해당한다면 트럼프는 탄핵 소추 등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러시아 게이트 수사 방해와 그의 해임을 둘러싼 사태의 전모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회유책을 먼저 썼다.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뒤인 지난 1월27일 백악관에서 코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미는 대통령이 “모종의 후원 관계를 만들려”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트럼프의 제왕적 대통령관을 드러낸 것으로, FBI 독립을 훼손하는 행위다. 회유에 실패한 트럼프는 수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 트럼프는 지난 2월14일 코미를 백악관에서 만나 러시아와 내통한 의혹을 받고 있는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수사에 대해 “나는 플린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코미는 “대통령이 플린 수사를 멈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트럼프는 코미와 단둘이 대화하려고 다른 참석자들을 내보냈다. 지난 3월30일에는 코미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구름’이라며 “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물었고,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회유와 압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트럼프는 지난 5월9일 코미를 전격 해임했다.

코미의 증언에서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되는 사법방해에 해당할 수 있는 대목은 2월14일 대화와 3월30일 전화 통화다. 트럼프의 행위가 사법방해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법방해로 탄핵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집권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탄핵은 쉽지 않다. 코미의 증언으로 트럼프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리스크’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중동의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열흘여 남은 한·미 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열릴지 걱정된다.


[경향 사설] 사드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사드 맹신주의의 위험성

보수 세력이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철수하면 큰일 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덕 더빈 미국 상원의원이 사드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까지 일제히 나서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한국에서 사드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사드를 철수하고, 최종적으로 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 보고 누락에 대한 진상규명이 사드 철수론을 부추긴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드를 지키면 나라를 지키고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해괴한 백치 논리에 불과하다.

사드는 실효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미군 최고지휘부도 성능을 자신하지 못하는 무기이다. 요격 시험에 11번 모두 성공했다지만 이는 미사일 표적 정보를 사전에 입력해놓고 쏘아 맞힌, 이른바 맞춤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다. 실전에서도 똑같이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게다가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방어할 수 없다. 서울 이남의 미군과 시설을 보호하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드가 있으면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 전자제품 제조사의 홍보문구 같은 사드의 명중률 주장에 안보를 맡기자는 건 ‘사드 만능론’ 또는 ‘사드 맹신론’이다. 이런 주장에는 교묘한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배치가 시작된 사드를 지키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라는 프레임을 설치해놓고 여당을 몰아넣자는 것이다. 겉은 안보 걱정이지만 실은 당리당략이다.

사드는 단순한 미사일이 아니라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미국의 전략무기다. 중국이 한국에 보복 조치를 가동해 한국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무기를 들여오면서 정부와 군은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총리와 안보실장이 알박기하듯 발사대를 추가로 들여다놓고 새 정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 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시민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드 배치 과정 전반을 짚은 뒤 사실에 입각해 국익의 관점에서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이런 당연한 절차와 합리적인 논쟁을 막으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경향 사설] 대통령도 모르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가능한 일인가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의 국내 추가 반입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를 국내에 추가로 반입한 사실을 지난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때 누락했다. 군이 중대한 안보 사안을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모르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철저 조사를 지시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청와대는 25일 업무보고에서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의 반입만 보고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방부는 다음날인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4기의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전했지만,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규명해야겠지만 국방부가 업무보고에서 추가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간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국방부의 행태는 국민주권에 대한 폭거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부터 시민사회와 야권의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를 묵살한 채 밀어붙이더니 탄핵 이후에도 군사작전을 하듯이 야밤에 사드 장비 국내 반입, 경북 성주 배치 등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부재 중에 중대 안보 사안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정부 시기가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문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해 전 정부와 달리 국회 비준 등 재검토 방안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보고를 누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드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고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을 고려하면 보고 누락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설령 단순 실수라 해도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의 기강 해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실수를 가장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군 통수권자에게 항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제 문제이자 민감한 국내 쟁점이기도 하다. 외교, 안보, 경제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남북, 한·중, 한·미 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당연히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과도 연계해야 한다. 결코 소수의 군인들이 좌우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이 무겁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사드 기습 배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문재인 정부에 던진 과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거세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주는 타격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 노력을 공언해왔지만 북한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대화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문제 정책적 공간과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왔다”고 공언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핵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 등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4강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이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접근법에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제재에만 의존한 북핵 폐기 입장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어떤 대안이나 비전 제시도 없이 대결적 이념공방만 되풀이하는 국내의 낡은 풍토도 바꿔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하던 ‘진짜 안보’를 구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 보호 방침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한·미 공조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도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핵 문제 접근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지만 한국만의 주체적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과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그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더 두고 볼 수 없는 홍준표 후보의 막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막말 퍼레이드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에서 겁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대통령 안 시키려고 온갖 지랄을 다한다”고 했다. “나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도록 조작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도둑놈 새끼들이다. 반드시 응징하겠다” “종편 허가권이 정부에 있으니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절반으로 확 줄여버릴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론조작이나 편파 보도 운운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대지 못했다.

홍 후보는 유세 때마다 이런 막말에 색깔론,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더하고 있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이 극도로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 애들이 문재인 눈치 보면서 병원으로 데려가는 걸 안 해주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건강 문제는 그의 변호인조차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홍 후보는 아무렇지 않게 아니면 말고 식 발언으로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도저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언행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그의 막말은 이제 듣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주요 후보 5명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하지 않다. 홍 후보는 정상적 방법으론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고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수표를 묶어 대선에서 살아남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5·9 대선은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초유의 안보·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래 비전과 정책 현안에 대해선 뚜렷한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TV토론에서 공정위·재벌 개혁 방안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겠다. 어떻게 개혁해야 하느냐” “그건 아직 공부가 덜 됐다”고 비켜 나갔다. 갈 데까지 간 홍 후보의 언행은 보수 정당의 품격과 신뢰를 추락시킬 뿐 아니라 보수의 희망과도 거리가 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유세에서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면 극우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오십보백보다. 증오와 편 가르기로 표를 얻으리란 생각은 유권자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이런 저질 막말과 비방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유권자들이 가려 듣고 표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경향 사설] 미국의 대북 압박과 대화 천명을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은 먼저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경제·외교적 압박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해 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북핵 문제에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던 트럼프 정부가 대화 가능성을 천명한 것은 다행이다. 지난 3개월 동안 한반도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최첨단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된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화론은 반길 일이다. 북핵 문제에서 압박과 대화의 병행 접근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북·미 및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핵개발 속도를 늦추거나 동결한 적이 많았다. 반면 대화가 끊기고 일방적 제재가 이뤄지는 기간에는 어김없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하고 핵능력을 고도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발표에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는 원칙만 제시했을 뿐 북한을 대화로 유도할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현재 가시적인 것은 오직 대북 압박뿐이다. 이런 식이면 대화의 문을 열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북핵 능력 고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북한이 대화의 무대로 나오기를 마냥 앉아서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공조 강화는 필수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원칙을 천명해왔기 때문에 공조를 위한 환경은 마련된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라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는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과 공조하겠다면서 중국을 자극하는 사드를 끝까지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향 사설] 항모와 미사일이 트럼프의 북핵 해법인가

북한이 그제 김일성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두 종의 전략미사일을 공개했다. 어제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했다. 미사일 시험발사는 실패했지만,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무력시위는 다 한 셈이다. 미국 역시 군사적 압박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항모 칼빈슨호와 로널드 레이건호에 이어 니미츠호까지 서태평양 해역으로 추가 투입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이어 북한의 ICBM을 요격하기 위해 SM-3 대공미사일을 한반도 해역에 실전배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면 한반도 주변에 미 항모 3척과 SM-3 미사일 등 첨단무기가 한꺼번에 배치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의 이번 태양절 도발은 예상보다 강도가 낮았다. 6차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 대형 도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는 선에서 멈췄다. 미국에 대한 항전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중국을 통한 우회 압박이 먹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연일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라고 촉구하고, 실제 중국은 그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다. 중국의 국적항공사가 베이징~평양 노선 운항을 잠정 중단한 데 이어 중국 여행사들이 북한 관광을 전면 중단한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군사적 압박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20년 넘게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어온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외부 위협에 굴복해 하루아침에 폐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북핵 폐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양쪽 모두 무력 시위는 충분히 했다. 북한이 오는 25일 인민군 창건일에 즈음해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서면 이후 상황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강도 높은 대북·대중 압박이 다소 효과를 발휘한다고 이를 새로운 북핵 해법이라도 되는 양 착각해선 안된다. 미국의 SM-3 미사일 배치는 역설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미사일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대북 선제타격 대신 외교를 통한 해법을 권고했다. 오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회담도 대화를 통한 해법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한국이 중심 잡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의 대 한반도 외교안보 정책과 그 집행 과정을 종잡을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동안 한반도 정책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지만 그 내용은 오리무중이다. 트럼프가 최우선 과제로 꼽은 북핵 문제를 놓고 미·중 정상이 마주 앉았는데도 정리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집행하는 팀은 엉망진창 그 자체다. 외교사령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실세 측근들에게 밀려 존재감조차 없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낙마했고, 어제는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도 자리를 내놨다. 불확실성이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있자 호주로 향하던 미 핵항모 칼빈슨호의 항로를 한반도로 돌리고 전략자산을 잇따라 투입하고 있다. 군사 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라는 트럼프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 등을 강행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한국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지칭한 적이 없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일본 하고만 상의했다.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로 “사드에 대한 미국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에 안도하는 눈치다. 그러나 20분간 통화하면서 얼마나 밀도 있는 협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할 채널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 안갯속일수록 한국이 중심을 잡고 대응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 편승할 생각은 그만두고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대북 압박과 함께 북한과의 대화도 촉구해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북한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선후보들도 안보불안을 씻을 수 있는 외교·안보 구상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국과 중국을 향해 할 말을 하면서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방안을 내놓을 때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향 사설] 안철수 후보가 넘어야 할 산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당 경선에서 최종 75%를 얻어 19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안 후보는 지역별 경선 압승에 따른 컨벤션 효과와 자강론에 힘입어 경쟁자인 손학규·박주선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낙승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일약 여론조사 지지율 2위로 수직상승하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안 후보는 2012년 대권에 처음 도전했으나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저 안철수, 2012년보다 100만배 강해졌다”고 했다. 안 후보는 연설 곳곳에서 꿈과 미래를 강조했다. “미래를 여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확실히 과거보다 권력의지가 단단해진 게 느껴진다. 그러나 미래 대통령을 꿈꾸는 안 후보에겐 현재 놓인 난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수구보수와 개혁 사이 모호한 정체성을 지적받고 있다.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보수층은 안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선지 안 후보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남북 문제 등 여러 현안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선에선 통했을지 모르지만 본선에선 이런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양쪽 모두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은 문재인 후보와의 맞대결”이라고 했다. 지금 국민의당은 39석으로 원내 3당에 불과하다. 민주당(120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당세다. 설사 집권을 하더라도 제대로 국정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3당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호남당의 외연을 어떻게 확장시킬지 궁금하다.

안 후보는 새 정치를 표방하며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켰지만 시민들이 바라는 새 정치를 실천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 20대 지지율은 11%, 30대는 13%에 불과했다. 문 후보의 20대(40%), 30대(44%) 지지율 3분의 1도 안된다. 정치 입문 당시 열성적이었던 20~30대 민심 이반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그를 돕던 주변 인물들이 상당수 떠난 것도 포용력 부족 때문이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그동안 안 후보는 누구를 반대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에 일관되게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박지원 대표 등 당내 일각에선 연대론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며 엇갈린 행보를 걷고 있다. 그래서 안 후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당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안 후보는 이런 의문에 대해 단순히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란 점을 보여줘야 한다.


[경향 사설]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정의의 출발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필귀정이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나타났듯이 국정농단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는 불가피하다. 일부 친박 세력은 불구속을 주장했지만, 14개의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수사 방해와 증거인멸에 골몰하는 피의자에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수백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현대차 등 재벌로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으로 774억원을 강제로 모금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사직을 강요하고, 포스코나 KT 등에 압력을 넣어 사익을 챙겼다. 삼성 외 SK·롯데·CJ 총수들과도 사면 등을 대가로 검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6초간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한 29자 발언이 전부였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안타깝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2년여 전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영장 청구를 계기로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신뢰를 받는 공권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농단을 비호하고 검찰을 사유화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검찰 내 ‘우병우 라인’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다. 영장을 심사하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나 특정 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 바란다. 참담하고 착잡하지만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21일 검찰에 소환되는 박근혜, 진실 밝힐 마지막 기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검찰 조사를 받는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 네 번째다.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 죄를 지었으면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은 사필귀정이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전직 국가원수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의 죄는 무겁기 그지없다. 적용 혐의만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비밀누설 등 14가지에 이른다. 검찰은 그가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강요 등을 공모했다고 보고 9가지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그에게 뇌물수수 등 5개 혐의를 추가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은 ‘박근혜 게이트’다. 박 전 대통령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권한을 일개 민간인에게 넘겨 국정 문란을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불법과 비리의 정점에 그가 있다는 사실이 특검과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공범인 최씨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그의 부하들도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그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구속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지금껏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10월 언론을 통해 게이트의 일부가 드러났을 때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갑작스럽게 개헌 카드를 들고나온 바도 있다. 여론이 나빠지자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해놓고는 말을 바꾸고, 일정이 공개됐다는 이유 등을 들어 특검의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을 늦추기 위해 온갖 꼼수와 억지를 부렸으며, 한국자유총연맹 등을 통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동원을 시도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자기 한 몸 건사를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헌재는 “피청구인(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국정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가 혼란스럽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다. 헌재 결정에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알아야 한다. 피해자 행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13가지 혐의 외에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등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경향 사설] 검찰의 청와대·삼성동 압수수색 포기, 납득할 수 없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을 압수수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증거 수집이 목적인데 지금은 수사가 정점으로 가는 상황이라 필요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했는데 압수수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이가 없다. 피의자가 출석하겠다고 하면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새로운 수사 방침인지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묻고 싶다.

수사가 정점이라는 설명도 이해가 안된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은 마무리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의혹, 안봉근·이재만 등 문고리 3인방의 비리 의혹 등 특검법에 적시된 대부분의 사건은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 청와대 지시와 재벌의 자금 지원으로 진행된 극우 보수단체의 ‘관제데모’ 등 특검 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그의 공범들은 이미 많은 범죄증거를 없앴을 것이다. 이영선 전 행정관 등이 개통한 수십대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은 대부분 폐기되거나 내부 자료가 삭제됐다. 특검이 확보한 우 전 수석의 휴대폰도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이 지워진 깡통폰이었다. 청와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된 지난해 9월 이후 문서파쇄기 26대를 구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압수수색은 지금도 유효하다. ‘수첩 공주’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은 평소 기록을 꼼꼼하게 하기로 정평이 났다. 어딘가에 박 전 대통령의 개인 자료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청와대 공식 회의자료나 보고자료도 게이트 진상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특검이 수사 종료 직전까지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포기는 청와대에 수사 기밀 등을 유출한 검찰 수뇌부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지난해 8~10월 김 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와 수시로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이 청와대와 우 전 수석을 수사하던 시점이다. 피의자가 검사와 내통한 셈이니 수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집을 압수수색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이번 수사는 결격이다. 또다시 특검을 출범시키는 수밖에 없다.


[경향 사설] 불확실성 걷어낸 5월9일 대선, 이젠 비전과 정책 경쟁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어제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선 날짜를 5월9일로 확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불거진 국정 불확실성이 황 권한대행의 결정으로 상당 부분 걷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황 권한대행은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재의 국가위기 대처와 안정적 국정관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정 안정과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제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 표명은 정치적 도의와 세간 평가를 두루 살핀 것으로 보인다.

그간 황 권한대행은 구 여권 인사 가운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 이후 대권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다. 구 여당 자유한국당은 마지막 여론조사 시작 전까지 후보 추가 등록을 허용하는 경선 특례 조항을 신설, 황 권한대행에게 ‘새치기’ 출마 길을 열어줬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의 출마를 옳지 않게 보는 시각이 엄존했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토록 돼 있다.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탄핵의 책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이유다. 또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국정을 차질없이 운영할 책무가 있다. 특히 대선이라는 게임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그가 선수로 뛰어드는 것에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표명해오던 터다.

황 권한대행은 공정한 대선 관리에 진력해야 한다. 정권교체기 공직 기강 해이나 유력 주자 캠프 줄서기 같은 폐해도 막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고 상황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쳐야 함은 물론이다. 그의 역할은 파면된 대통령의 권한대행, 즉 파산 관재인 정도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대선 일자가 확정되고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안갯속 같던 정치 일정도 명확해졌다. 이제 시민의 시선은 더욱더 정당에 몰리게 됐다. 명운을 걸고 집권을 도모하는 것이야 제 정당의 목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공작, 흑색선전과 명분 없는 짝짓기, 인신공격, 가짜뉴스 배포나 댓글조작 같은 민심 왜곡의 구태가 재연돼서는 안된다. 인물에 대한 선호에만 의존한 ‘묻지마 지지’가 불러온 불행한 사태는 이미 겪어본 바다. 후보자들은 청와대 입성을 원한다면 마땅히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고 자신과 세력의 실력을 유권자들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경향 사설] 새로운 나라를 향해 대장정을 시작하자

2017년 3월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새 장을 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다. 시민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 절차에 따라 무너뜨렸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숭고하고 준엄한 헌법 가치를 확인했다.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혁명을 이뤄냈다. 최고 권력자의 헌법 위반이란 비정상적인 상황을 헌법 질서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정의의 승리이고, 위대한 시민의 승리다.

헌재는 “피청구인(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재판관 8명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 파면 의견에 동참했다. 헌재는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이권 추구를 도우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면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위배를 적시했다. 헌재는 누구도 헌법과 법률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추상(秋霜)같은 논고로 헌법 수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가적 불행이자 비극이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그는 헌법을 위반했고, 법률을 어겼고, 주권자를 배신했다.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방치하고 국가기관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 그런데도 진솔한 사과나 반성 없이 변명과 꼼수로 끝까지 시민과 맞서 싸우겠다는 오기를 부렸다. 지난 4개월여간 대국민 약속을 밥먹듯 뒤집고 궁지를 모면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차마 국가 지도자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헌재는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그 죄상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했다. 역사상 최초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림으로써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요,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역진 불가능한 단계에 올라섰음을 온 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역사적 결정을 끌어낸 주역은 촛불이다. 남녀, 세대, 지역, 계층을 초월한 수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여 국정 문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4·19혁명부터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어떤 독재에도 굴하지 않고 이 나라를 되살려왔다. 시민들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찬란한 시민주권시대를 열었다.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하고 명예로운 시민혁명을 선보였다.
박근혜 정권의 퇴장으로 지난 50여년간 한국 보수의 기반이었던 ‘박정희 패러다임’도 함께 종언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보수세력은 박정희·박근혜로 대표되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적폐를 버리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안개처럼 자욱했던 정국의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60일 이내 치를 차기 대통령 선거는 국가 시스템 전반을 개조할 새로운 리더십 창출이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새 리더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적폐를 일소하고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적폐는 단지 박근혜 정권 때의 실정으로 쌓인 것만은 아니다. 길게는 분단 이후 지속된 결과이기도 하다. 임기응변이나 임시변통으로 해소할 일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민 다수의 의지를 모으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손잡고, 정당 간 협력과 협치를 통해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울분에 ‘이것이 나라다’라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구체제 청산의 출발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기 위한 재벌개혁, 국정농단을 방임하고 은폐한 검찰, 정치개입을 일삼았던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개혁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좋은 정치를 위한 정당개혁과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소득 불평등,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언론개혁도 미룰 수 없다. 대통령직의 상실로 여당과 야당의 구분은 사라졌다. 정치권은 국가 개조를 위한 개혁과제를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책무를 나눠 져야 한다.

탄핵 이후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누구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승복 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의 최종 결정은 갈등의 끝이 되어야 한다. 탄핵 결정에 상심하고 분개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이들의 상실감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은 ‘대선주자·당 대표 연석회의’를 열어 탄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시민통합을 선언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한·일 갈등과 같은 전대미문의 외교·안보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경제 환경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나라 안팎의 심각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셈법을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 위기 때마다 단합된 힘을 보였다. 다시 한번 ‘질서 있는 수습’을 통해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져야 한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완성해 우리의 삶을 바꿔내야 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요, 시민의 명령이다. 우리 모두 새로운 나라를 향해 대장정(大長征)을 시작하자.


[경향 사설] 탄핵정권이 도둑처럼 사드 배치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이 기어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를 시작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그제 사드 미사일 발사대 2기 등 일부 장비를 국내에 반입했다. 당초의 하반기 배치 방침을 전격적으로 앞당긴 것이다.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 방침을 일절 비밀에 부쳤다.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 골프장은 부지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도 한 적이 없다. 배치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덜컥 장비부터 도입한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사드 배치는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시민 사이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도 밀어붙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탄핵당한 정권의 과도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지도 않고 국회와 정당에도 비밀에 부친 채 도둑처럼 일을 처리했다. 박근혜 정권의 못된 습관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풀이한 것이다. 이런 사드 배치는 과도 정부의 월권이자 용납할 수 없는 폭거다.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가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속화돼 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드가 군사적 실효성이 있을 때나 성립되는 말이다. 사드 미사일 48기로 1000기가 넘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설사 막을 수 있게 됐다 해도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방어망에서 벗어나 있다.

사드는 오히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사드 기지에 대한 군사 타격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 여행 전면 제한과 롯데의 중국 사업장 영업정지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과 관광업계는 경제적 손실로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거주 한국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미의 사드 배치 착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우리는 한·미 사드 배치를 결연히 반대하며 필요한 조치를 결연히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반발의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사드 배치 작업 착수 사실을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사드가 주변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만 늘어 놓고 있다. 그런 행동으로는 중국의 불만과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진 사드 배치 시점도 의심스럽다. 정부는 오로지 국가 안보 차원의 결정일 뿐 절대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사드가 주요 안보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그걸 모르지 않을 정부가 배치를 강행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해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드 도입은 단순한 미사일 방어 무기 하나 들여오는 일이 아니다. 미·중 대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북·미 갈등 등 종횡으로 대립하는 동북아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중대한 행위이다. 탄핵정국에서 안정적 관리에 집중해야 할 황 대행이 함부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안보 상황에 적절한 대안을 찾지도 못한 채 몰래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대통령 집 사준 최순실, 이래도 ‘경제 공동체’ 부인할 텐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를 최순실씨가 사준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특검은 최근 최씨를 추가 기소하면서 최씨가 어머니 임선이씨(2003년 사망)와 함께 1990년 삼성동 주택 매매계약을 10억5000만원에 체결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공직자 재산 공개 때 기준으로 하면 삼성동 집 가격은 25억3000만원이다. 박 대통령의 삼성동 주택 매입 자금 출처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 살던 집을 판 돈으로 샀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 장충동 집은 당시 6억원이었고, 삼성동 집값을 지불했던 1990년 7월에는 아직 장충동 집이 팔리지 않은 상태였다. 특검팀은 당시 삼성동 주택 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 업자로부터 최씨 등이 모든 계약을 진행했다는 증언과 대금 지급 방법 등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박 대통령 옷값도 댔다. 2014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최씨가 마련해준 의상과 액세서리 값은 3억원이 넘지만 박 대통령이 지불했다는 증거는 없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집과 옷을 사준 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경제적 공동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박 대통령은 최씨를 “과거 오랫동안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라고 했지만 수십억원짜리 집과 수억원대의 의상은 결코 ‘소소한 것’이 될 수 없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매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장기간 호의를 베풀기는 어렵다. 최씨가 강원도 평창에 박 대통령 퇴임 뒤 거처를 준비한 정황도 있다. ‘모두 최씨에게 속았다’는 게 박 대통령 주장이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한 몸처럼 얽혀 있다면 최씨가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은 박 대통령에게 간 것이나 다름없다.

최순실씨 개인 재산이 220억원이 넘고, 최씨 언니 등까지 합쳐 최씨 일가 재산이 2000억원에 이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운영 외에는 특별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던 최씨가 어떻게 이 같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 보다 엄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최씨 아버지 고 최태민씨가 1970년대 새마음봉사단 활동 등을 하며 빼돌린 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특검이 최씨 재산에 추징보전을 청구한 것은 당연하다. 범죄로 얻은 수익이라면 모두 환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히고 석고대죄하는 것이 그나마 죗값을 줄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