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북, 대화 버리고 남측과 대결하자는 건가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1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격렬히 비난한 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저들이 북남협력을 통한 평화경제를 건설하며 조선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데, 삶은 소대가리도 양천대소할 노릇”이라는 말도 했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고 경축사를 ‘망발’이라고 하는 등 도를 한참 넘는 험담을 했다. 또 북한은 이날 오전 8시쯤 강원도 통천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발도 쐈다. 최근 북한의 도발 중 가장 수위가 높았다.

북한이 이렇게 남측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개성공단 재개 노력 등을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한 실망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남측과 인접한 통천 지역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데는 주초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 발표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다. 내부적으로는 미사일 실험 등을 통해 군부세력 등을 달래며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기대했던 대북 제재 완화가 없는 만큼 대외 긴장 조성이 필요했을 터이다. 또 이날 담화는 남측을 향해 “조미(북·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고 목을 빼들고 기웃거리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남측은 무시하겠다는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의 강화를 시사했다.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한국을 비판함으로써 북핵 실무회담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면서 남측에도 중재 역할을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두루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도발은 도를 넘었다. 남남갈등이 촉발되리라는 점을 알면서도 온갖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동원하며 문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태도가 아니다. 이는 남북정상이 합의한 판문점·평양 공동선언 정신에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북측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난은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남측의 최고지도자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명백한 이율배반이다. 이는 남측 시민 전체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측은 9·19 평양공동선언 등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오히려 북측이 남북공동지뢰제거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 등에서 약속을 어기고 있다. 남측은 더 이상 북측의 도발에 인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들어섰다. 지금 북한에 유일하게 열려 있는 길은 남측과의 대화·협력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북한의 무력 및 언어 도발은 대화 국면을 대결 국면으로 돌리는 위험천만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경향 사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 여행 어렵도록 하겠다’는 미국


2011년 3월 이후 한 번이라도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앞으로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이 기간 중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을 다녀온 3만7000여명은 ‘최대 90일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별도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1년 3월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여행객이 ESTA를 통해 미국에 무비자 입국하는 것을 이날부터 금지한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ESTA는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전자여행승인제도’인데 한국은 2008년 VWP 가입국이 되면서 지금까지는 온라인으로 ESTA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테러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조치라고 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등 7개국을 방문·체류했다면 ESTA 발급이 불가능한데, 여기에 북한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 국민 중 북한 방문 경험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남북경협을 옥죄려는 것’이라는 일각의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시점인 만큼 ‘하필 왜 이때’라는 찜찜함은 남는다. 이번 조치가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20개월여 만에 나온 것은 미국 관련부처의 실무준비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꼭 이 시점을 택했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38개국에 똑같이 적용된다지만 관련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에 가기 어려워지도록 하겠다’는 이 조치가 앞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런 중대한 조치가 시행 당일에야 발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방북 경험자 중 금명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은 급히 서류를 꾸며 제출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영어 인터뷰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긴급할 경우 대사관의 ‘긴급예약신청’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지만 방문 예정일 이전에 비자를 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이런 방침을 한국에 알려온 것은 약 한 달 전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면 각별히 보안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3만명이 넘는 시민의 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끼칠 행정적 변화라면 정부가 사전예고하고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민다.


[경향 사설] 미국 중재와 한·일 외교장관 회담, 파국 막는 전기 되길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일정 기간 분쟁을 멈추는 ‘현상유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난 뒤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그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우리가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돌파구를 찾도록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에 대해 관망 자세를 보이던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추가 행동을 멈추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면서 외교장관 간 대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 갈등이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공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이 격화될 경우 동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큰 데다 불똥이 미국 기업으로까지 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미국의 이번 중재가 갈등을 완전히 가라앉힐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일단 싸움을 멈추고 타협을 시도하는 기회가 제공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 파국을 막고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움직임과 별개로 한·일 양국 간 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의원단이 31일 일본의 주요 정계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방일했다. 지난 5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을 냉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해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주요 여야 의원들이 망라됐다. 1일에는 ARF 회의가 개최되는 태국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처음으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게 된다. ‘파국’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마련된 이번 대화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서청원 의원은 누카가 회장 등과의 오찬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양국 의원들이 “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공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국 국민 대다수의 심정이 그 말 그대로일 것이다.


[경향 사설]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는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


자유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이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러시아의 한국 영공 침범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언급하며 핵무기 도입을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며 “미국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즉각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틈만 나면 나오는 한국당의 전술핵 배치 주장에 어이가 없다.

조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리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다. 조 최고위원은 “언제까지 북한의 웃음거리, 조롱거리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며 “대한민국이 핵무기로 무장돼 있다면 일본, 러시아, 북한, 중국이 이렇게 얕잡아 보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동북아지역이 핵 도미노에 빠져 핵위협이 더 커지게 된다. 그전에 핵무장 시도만으로도 국제사회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당의 이런 주장에 이미 여러 차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더구나 과거 한국에 배치됐던 미국의 전술핵에 한국군은 접근도 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고 관여는 더더욱 할 수 없는 핵무기를 다시 들이자는 게 제정신에서 하는 소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회성이 아니다. 당내 북핵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인 원유철 의원도 전날 핵무장론을 언급했다. 과거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한 바 있다.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주장을 조장하는 당의 풍토이다. 황교안 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이 북한 편에 서 있으면 이 나라와 국민은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라며 9·19 남북군사 합의 폐기를 주장했다. 지난 27일엔 “우리가 이겨야 할 상대방은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믿기지 않는 위험천만한 인식이다. 과거 새누리당 집권 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위기를 유발해놓고 허둥댄 것은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런 때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것은 안보위기를 조장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안보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국당이 진정 안보정당을 표방한다면 최소한의 합리성은 담보해야 한다. 허황된 핵무장론을 배척하지 못하는 한 한국당은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


[경향 사설] ‘중재위’ 시한 만료, 이제 한·일 모두 협상에 나서 풀어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17일(현지시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원 외교위는 ‘공동의 이익 추구를 위한 한미·미일 간, 그리고 3국 간 협력의 중요성과 활력에 관한 하원의 인식’에 대한 결의를 전체회의에서 가결했다. 엘리엇 엥걸 위원장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이 결의안이 이 시점에서 통과된 것은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최근 상황을 우려하는 미 의회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갈등이 수위를 넘어설 경우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17일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엿보인다. 그는 “미국은 가까운 동맹인 한국·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해결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우려 표명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18일은 일본이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의 답변 시한이다. 청와대가 이미 수용거부 입장을 밝혔는데도 일본은 아랑곳없이 답변을 채근하고 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시한을 그어놓고 이를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중재위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쌍방 간에 분노만 키울 뿐임을 일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중재위 대신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외교협상에 나서야 한다.

일본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국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본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건설적 제안에 열려 있고 융통성을 발휘하려 한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과 물밑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할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일본은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국과의 외교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추가도발은 삼가야 한다.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폭넓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미 의회의 한국전쟁 종전촉구 결의 환영한다


미국 의회에서 의미 깊은 결의가 지난주에 채택됐다. 미국의 내년 국방예산안인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외교를 통한 대북 문제 해결과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가 포함된 것이다. 이 조항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하원 전체회의의 구두표결로 가결됐다. 미 연방의회가 한국전쟁의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를 의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결의에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과 북한과의 군사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북한 억지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고 69년간 지속한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지속적이고 신뢰할 만한 외교적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의회의 인식’이라는 단서가 붙어 구속력은 없지만 미국의 법안에 삽입된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이번 결의의 가결은 미 의회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의회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립각을 세워온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미 의회의 이번 결의는 북·미 실무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보장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공개리에 언급한 것은 미 의회의 결의와도 부합하는 취지여서 주목된다. 북한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제재 해제보다 체제안전보장을 더 강조해온 만큼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대화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북측에 실무협상을 이번주에 열자고 제의했지만 북한은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첫걸음을 어떻게 뗄지를 놓고 전략을 가다듬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월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내실 있게 진행되려면 늦어도 다음주에는 실무협상이 열려야 한다. 북·미 정상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회동을 통해 하노이 이후 교착상태를 해소한 만큼 실무협상도 속도감 있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 의회까지 가세해 마련된 대화동력을 살려나가려면 북한은 실무협상 제의에 조속히 응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미국의 ‘한·일 갈등’ 중재 역할 주목한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양국 간 갈등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11일 “미국과 국무부는 (한·미·일) 3국의 양자 간, 3자 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나 막후에서나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방미 중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나 “한·미·일 3국 접촉을 추진 중인데 일본이 소극적”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한·일 양국 간 갈등에 간섭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태도를 바꿔 중재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는 한·일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을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행위이다. 일본의 보복은 단순히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체계를 교란, 미국 기업과 세계 무역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이 다음달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법(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시행할 경우, 이는 한국을 ‘적성 국가’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바로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 체제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오게 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통화에서 “한·미·일 3국의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감한 것은 이 점을 말하고 있다. 미국 당국자들이 긴급히 중재에 나서는 것도 이런 위험성과 일본 측의 의도를 간파한 결과로 보인다. 청와대가 1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름으로 한국이 불화수소를 북한으로 밀반출했는지 국제기구를 통해 상호 검증하자고 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완강하다. 일본 측은 12일 도쿄에서 개최된 양국 실무자 회동에서 냉랭한 태도로 자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초래할 파장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해 미국의 중재에 응해야 한다. 미국은 스틸웰 차관보가 곧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 3국 간 접촉을 시도하는 데 이어 다음달 초 방콕 아시아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연쇄접촉을 계기로 한·미·일 3국 간 고위급 채널이 복원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판문점 회동’ 후속 북미협상 내실있게 준비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동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후 “북·미는 각각 대표를 지정해 포괄적 협상을 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협상 시점이) 7월 중순 정도가 될 것”이라고 구체화했다. 북한 매체들도 1일 회담 결과에 만족을 표시하며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화를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이달 중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끄는 미국팀과 북한의 새로운 협상라인 간에 실무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개월 동안 교착에 빠져 있던 북·미 협상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북·미 양측은 연내 합의를 목표로 실무합의가 이뤄지면 3차 정상회담을 열어 협상을 최종 마무리하기로 했다.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한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양측은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교환 등을 규정한 싱가포르 합의 이행 방안과 인식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신뢰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후 평화체제 논의, 그리고 비핵화 순서로 가는 이른바 ‘단계적·동시적 이행방식’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입체적으로 추진(동시적·병행적 이행)할 것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실무협의 성패의 관건은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북핵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 차가 내포돼 있다. 미국의 대선이 코앞에 닥친 것도 장애물이다. 북·미 모두 국내 요인을 감안할 때 대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이번 판문점 회동을 만들어낸 것은 양측이 인정한 ‘유연한 접근’이다. 북·미 모두 자기 방식만 고집한다면 협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북·미 실무협상팀은 유연한 태도로 양측 간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 북·미가 이른 시일 내에 협상을 재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실 있게 협상을 준비하는 일이다. 정상들이 어렵사리 살려낸 회담의 동력을 꺼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북·미 간에는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협상이 하루아침에 깨질 수 있다. ‘하노이 담판’ 때처럼 또다시 본회담에서 뒷걸음질 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북·미 협상에서 칼날을 잡은 쪽은 역시 북한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제안에 전격적으로 응한 것은 협상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북한이 과거 벼랑 끝 전술과 다른 셈법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접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미 모두 냉철한 자세로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담대한 접근과 창의적인 발상으로 양측의 실무협상을 추동해야 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의 ‘영변 전면폐기’ 비핵화 구상을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북·미 간에는 3차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북·미 협상 재개를 통해 다음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며 이제 그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합뉴스 등 국내외 6개 통신사와의 합동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전부가 검증하에서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과정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면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도 탄력을 받을 것이며 국제사회도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그간 관측 수준에 머물던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대화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의미가 있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4개월 만에 북·미 ‘톱다운 외교’가 재시동을 걸기 시작했으며 이를 공개해도 좋을 정도로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상황인식하에서 문 대통령이 북·미 양측을 향해 비핵화 협상 방안을 제시한 것은 주목할 가치가 크다. 문 대통령은 이전에도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번엔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핵시설 전부’ 등으로 더욱 구체화했다. 이를 검증하에서 폐기한다면 비핵화가 불가역적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고 한 것은 북·미 간 눈높이를 조율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기의 무게감을 미국이 재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에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검증하의 폐기’라는 조건을 부과한 셈이다. 이 과정이 진전을 거두면 제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하노이 결렬 이후 정부는 ‘굿 이너프 딜’ 등 비핵화 중재안을 내놓긴 했지만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번 제안은 하노이 결렬에 대한 충분한 복기와 성찰을 바탕으로 한 데다 28~29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주변국들 간의 연쇄 정상회담이 예고된 가운데 나온 만큼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뜻을 내비치면서 한국의 역할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능동적 의지를 밝힌 것도 긍정적이다. 비핵화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미 양측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토대로 조속히 협상에 나설 것을 당부한다. 우선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실무협상이 성사되기를 희망한다.


[경향 사설] G20 앞둔 시진핑 방북,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기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북은 2005년 후진타오 전 주석 방북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처음인 데다 북·중 수교 70년을 계기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의미가 작지 않다. 또한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4차례 방중하면서 시작된 북·중관계 복원 작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는 셈이다.

주목되는 것은 방북 시점이다.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이달 말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벌어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담판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으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년을 맞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친서외교’가 재개되면서 장기 교착 중이던 북·미 협상에 모종의 변화가 감지되던 참이다. 그런 만큼 시 주석의 방북에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북·중 결속을 과시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시 주석의 방북이 북·미 협상 재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에도 복잡함이 감지된다. G20에서 시 주석을 압박해 미국에 유리한 무역합의를 이끌려는 구상에 ‘방북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17일(현지시간) 시 주석의 방북에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달성”이라는 원론적인 논평을 하는 데 그친 것도 이런 속사정 탓일 것이다. 정부는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17일 방북 발표가 나온 뒤 “시 주석의 방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조기 재개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시 주석의 방북이 문재인 정부와 긴밀한 협의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언급도 나온다.

시 주석의 방북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미·중 패권 경쟁을 위한 지렛대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미·중 갈등에 휩쓸려 좌초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받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문제만큼은 미·중이 갈등을 멈추고 협력할 것을 당부한다.

시 주석의 방북을 시작으로 28~29일 일본 오사카 G20까지 열흘간 북·중, 미·중, 한·중, 한·미가 연쇄 정상회담을 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외교가 숨가쁘게 전개된다. 그 결과에 따라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이 가려질 것이다. 한동안 작동을 멈췄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도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에 ‘완전한 핵 폐기와 대화 결단’ 촉구한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스웨덴 의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이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스웨덴이 핵 기술을 보유하면서도 핵무기 제조를 포기한 사례를 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핵 폐기를 선언하라’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을 향해 두 정상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완전한 핵 폐기를 직설적으로 촉구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이 국제적인 연설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핵무장 우려를 먼저 해소하라고 촉구한 것을 북한으로서는 압박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더구나 북한은 하노이 핵 담판이 성과 없이 끝난 후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 메시지는 분명하다.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북 간 세 가지 신뢰가 필요하다며 남북 국민 간 신뢰, 대화에 대한 신뢰, 그리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차례로 제안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남북 국민들에게는 이미 비핵화를 선언한 만큼 이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핵 포기를 선언하라는 것이다. 또 남측과 관계개선을 계속하고 대화하는 동안 평화는 유지되니, 그것을 믿고 핵 포기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선언하라는 제안이다. 북한의 점진적 북핵 해법과 미국의 일괄타결식 해법이 끝없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불신이 있으면 북핵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는 함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사흘간 연속으로 김 위원장을 향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으로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보낸 친서에 “흥미있는 내용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의 충격을 딛고 미국을 상대할 방안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제안은 북한을 향해 핵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기보다 남측을 믿고 대화에 나서라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하라는 문 대통령의 간곡한 호소에 호응해야 한다. 이달 말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야 한다. 북한은 현 상황을 냉정하게 보아야 하며, 비핵화 대화의 모멘텀을 절대 놓치면 안된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1년, 미국 ‘전략적 인내’로 돌아갔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만남’을 가진 지 12일로 1년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인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들은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미군 유해송환 등을 담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70년 적대관계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를 담은 합의가 채택되자 국제사회는 열렬히 환영했다.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열린 것에 가슴 뛰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담긴 합의 중 실제로 진전된 것은 미군 유해송환뿐이었다. 북·미는 후속 협상에서 비핵화를 놓고 옥신각신하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불신은 미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합의는 제쳐 둔 채 비핵화에만 집착했고, 금방 이뤄질 것 같던 종전선언도 무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비핵화가 20% 정도 진행된다면 제재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가 ‘완전한 비핵화 없이 대북 제재 해제는 없다’고 태도가 돌변했다. 부실한 준비 끝에 모호한 합의문을 작성했다가 국내 보수세력들이 반발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북한도 비핵화의 정의와 전체 그림을 만들지 않는 등 치밀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은 예고된 참사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현 상황을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는 없다. 두 정상이 서로 신뢰하고 있고, 공히 정세관리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기도 쉽지 않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완전한 비핵화’만을 되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따라하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북한의 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이 유지된다면 외교업적으로 충분하다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식의 태도가 지난 30년간 북·미 협상을 실패로 이끌어왔음을 잊어선 안된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는 서로 속내를 파악했을 것이고, 과거로의 회귀는 안된다는 점도 공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6월 중 남북 정상이 만나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을 필요가 있다. 6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협상 모멘텀을 살려낼 수 있다. 정부가 양측이 귀 기울일 만한 정교한 중재안을 가다듬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 ‘북한과 대화’ 말만 하지 말고 유인책 내놔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거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북한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2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을 면전에서 반박했다. 그 전날에는 트윗을 통해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지만 나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도 정면으로 뒤집었다. 최근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대북 유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제스처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측면이 보인다. 2020년 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자신의 외교 치적으로 자랑해온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타격받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정상회담 후 북·미 대화가 석달째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의사를 견지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이처럼 견고한 대화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북한과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년간 핵실험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의 표현도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 대한 동력을 유지하면서 대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략적이다. 협상 전문가답게 북한과 대화하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일본과 한국 내 보수세력은 트럼프의 이런 현실감각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 국면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외교적 성과로 공인받으려면 이 정도로는 안된다. 트럼프는 이날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면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엄청난 제재가 북한에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압박을 유지하면서 기다리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이 아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역시 트럼프의 대화 의지에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중재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여러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가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경향 사설] 한·미 정상회담 6월 개최, 북·미 협상 환경조성 긴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다음달 한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고 한·미 양국 정부가 발표했다.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만으로, 두 정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설명했다.

트럼프의 방한 결정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미 협상이 자칫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을 방지하는 한편 협상재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한 시기는 미국 민주당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 토론회를 시작하는 때와 겹쳐 있다. 북한의 무력시위가 이어지면서 ‘북한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를 차단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교 분야의 치적으로 내세워 온 북·미 협상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던 북핵 문제를 우선 과제로 복귀시킨 셈이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반도 정세 전환의 모멘텀을 새로 확보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에 앞서 비핵화 방법론의 북·미 간 입장차를 좁힌 절충안을 가다듬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소강국면인 남북대화의 활성화가 필수다. 대북특사 파견 혹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원포인트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한다.

북한도 시급히 대화에 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편에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뒤 비핵화 방법론을 한국과 숙의하는 게 교착국면 해소의 답이다. 한·미 정상회담까지 남은 기간은 40일 정도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미국의 협상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은 협상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남북 간에는 대북 식량지원이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정부는 식량지원의 시기와 방식, 규모 등에 대한 의견수렴 작업을 앞으로 1~2주 더 진행하겠다고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 여론이 나빠진 만큼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정세와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 식량 지원은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점을 감안해 서둘러 결정할 것을 당부한다. 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북한 식량난은 7~9월에 가장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직접적 식량지원의 경우도 1~2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북한도 자존심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경향 사설] 남북관계 더욱 다지고 외교 지평도 넓혀야

문재인 정부 2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한반도에는 북한이 지난 4일 쏜 발사체가 날린 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미사일 도발”이라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비판하며 무력시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우려했다. 한반도 정세의 시계가 2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형국이다.

2017년 5월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고 9월에는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북 군사행동을 시사하며 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갔다. 이런 와중에 임기를 시작한 문 대통령은 남북 화해 협력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상을 견지했다. 문 대통령의 뜻은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남북대화 복원을 거쳐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과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펼쳐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육성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는 괄목할 만한 진전도 있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문 대통령의 구상은 암초에 부딪힌 상태다.

그간의 정책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점이 적지 않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확보한 ‘대북 지렛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이 초기에는 제대로 작동했다. 북한도 남북대화에서 핵문제를 논의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한국의 중재역할에 기대를 실었다. 하지만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미국은 한국을 메신저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정세 조성의 가장 큰 이유는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고수하는 미국,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이 접점 찾기에 실패한 데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을 때 정부가 구체적인 비핵화 설계도를 만들어 북·미를 설득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비핵화의 최종단계와 로드맵을 원하는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대북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에만 신경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은 북·미 협상 교착이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뒤바뀌었다. 미국이 남북관계의 독자적 진전에 제동을 걸었던 탓도 있지만, 정부가 미국에 너무 순응하면서 스스로 자율성을 잃어버린 측면이 크다. 대북 제재하에서도 가능한 남북관계 사업들조차 미국을 의식하는 바람에 판문점선언 합의 이행이 상당부분 지체됐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북한의 신뢰저하로 이어지며 한국의 중재역량을 약화시켰다.

북핵외교 과정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소홀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중국, 일본, 러시아에도 이해관계가 지대한 사안이다. 주변국의 탄탄한 지지가 필수적인데도 정부가 북·미 외교 외길만 걸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김정은은 연말까지 미국의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했고, 미국이 대화의지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하반기에 본격화될 북·미 협상에 대비해 외교의 폭을 넓히고 주변환경을 다져야 한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한편 한·중 및 한·일 관계 진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능동적인 외교를 위한 인적쇄신도 검토해볼 만하다.


[경향 사설] 북·러 정상회담서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 강조한 푸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러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협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3시간에 걸친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만찬 연설에서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역내 핵문제뿐 아니라 여러 이슈를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유일한 효율적 해법”이라며 비핵화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조·러(북·러) 친선관계 발전과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안전 보장을 위한 문제들, 공동의 국제적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두 정상의 발언으로 볼 때 이번 회담에서는 북·미 협상 교착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비핵화 문제 및 북·러관계 발전방안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짐작된다. 러시아는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안을 지지해왔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회담에서도 이런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북한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 모두발언과 만찬 연설에서 “북남대화를 지지하고 현재 조·미(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거듭 강조한 점은 눈길이 쏠린다.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협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의 유효한 해법임을 강조한 셈이다. 푸틴은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북·미 협상에서 북한의 체제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경우 6자회담체제가 가동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북한이 북·미 협상궤도 속에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푸틴 대통령이 대국(大局)적인 견지에서 비핵화 문제에 현실성 있는 태도를 보인 것을 평가한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남북·북미 대화구도로 복귀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전통 우방국 등과의 외교다각화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비핵화를 위한 최종 담판장은 북·미 협상임을 푸틴과의 대화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4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조속히 응해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편에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경향 사설] 북·미 교착 속에 열리는 북·러 정상회담을 주목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북·러 정상회담이 이번주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자 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 문제, 지역 협력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크렘린궁은 회담이 4월 말에 열린다고만 밝혔으나 일본 언론들은 러시아 극동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4~25일 열릴 것으로 관측했다.

이번 회담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의 첫 대외행보라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북·미관계 냉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북·러 정상이 8년 만에 만나 비핵화를 논의하기로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친선과 협조의 유대를 강화 발전시켜나갈 것”이라며 외교 다변화 방침을 밝혔다. 그 첫 행보가 전통 우방국인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인 셈이다. 그런 만큼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강화를 북·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제재 완화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담을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이 내세우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지지해 왔고, 소련연방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비핵화를 이끈 경험도 있다. 미국에 맞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가 비핵화 문제에 독자적 목소리를 내며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아무쪼록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가국인 러시아가 비핵화에 적극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주변국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회담이 자칫 한반도에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은 경계한다.

북한이 외교 다변화를 꾀하는 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비핵화는 북·미 협상에서 최종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넬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CNN 보도를 주목하기 바란다. 문 대통령의 4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조속히 응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남·북·미 정상, 비핵화 협상 성공 위한 결단 필요하다

11일 평양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가 개막하고, 12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분수령이 될 정치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 것이다.

우리의 국회격인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가기관 인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직 재추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보다 주목되는 건 김 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일 것이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북·미 협상을 되돌아보고 향후 전략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은 시간상으로 최고인민회의 직후에 개최되는 만큼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하노이 이후 기로에 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프로세스의 향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에도 ‘노란불’이 켜진 상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이후에도 비핵화 문제를 직접 풀겠다는 ‘톱다운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대북 추가 제재를 철회하는 등 유화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미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의 대화의지를 재천명함으로써 북한에 협상 복귀의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비핵화 방법론의 차이다.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론’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론’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포괄적 비핵화 합의와 단계적 동시 이행’이라는 절충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 방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을 이끌어내게 된다면 회담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비핵화 완료 시까지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한국 정부도 동조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중차대한 국면에서 남·북·미 정상은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재강조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내부적으로 일고 있는 대미협상 무용론을 불식하고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천명함으로써 한·미 정상회담에 탄력을 부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북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올 오어 나싱(전부 아니면 전무)’식 태도를 버리고 실사구시적인 대북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특히 ‘제재만능론’에서 벗어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해제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대북정책의 발언권을 복원해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비핵화에 보조를 맞춰야 하며 한국도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문대로만 움직이게 된다면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비핵화 절충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 변화도 이끌어낼 것을 희망한다.


[경향 사설] 미국, 아직도 시대착오적 리비아식 북핵 해법 고집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및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 그리고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해체를 요구한 것으로 외신이 보도했다. 또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신고 및 미국과 국제사찰단의 완전한 접근 허용, 핵 관련 모든 활동 중지와 새 시설물 건축 중단, 모든 핵 인프라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과 과학자 및 기술자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이런 안을 협상의 최대 목표로 제시해 본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관철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채 원점으로 되돌아갈 상황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과 핵물질·핵무기의 미국 반출은 이른바 ‘리비아 방식’과 유사하다. 하지만 리비아와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나 수준이 엄연히 다르다. 북한을 향해 핵탄두를 미국으로 보내라는 것은 항복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된다. 거기에 그동안 거론하지 않던 생화학무기까지 폐기 대상 목록에 넣었다. 비핵화를 수용하면 어떤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물론 상황이 여기에 이른 데는 북한의 책임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면서도 어떻게 비핵화할지, 그리고 이미 확보한 핵무기는 어떻게 할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니 미국이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 등 상응조치 없이 리비아식 해법만을 제시했다면 북한이 수용할 리가 없다. 북한과 대화를 진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북·미 간 대화 재개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역할은 더욱 긴요해졌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 문 대통령은 1일 “북·미 대화 재개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공조 방안에 대해 깊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강조해온 대로 북핵은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보상책도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미국에 실망감을 느낀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비무장지대 내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1일 남측 단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9·19 남북군사합의 등은 지속적으로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갈수록 심해지는 교과서 왜곡, 일본을 규탄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6일 발표한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 교과서 12종 검정 결과 ‘독도왜곡’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간 우호적 교류에 관한 기술은 줄어든 반면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과오는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등 한·일관계 기술이 전반적으로 퇴행했다. 갈수록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이 어린 학생들에게 영토왜곡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커진 것이다. 강력히 규탄한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은 한층 강화됐다. 도쿄서적 5학년 교과서에는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에 ‘이에 대해 일본이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독도의 전경사진을 게재한 교과서도 늘어났다.

한국에 관한 서술이 퇴행하고 있는 점도 당혹스럽다. 니혼분쿄출판 교과서에는 ‘도래인이 대륙으로부터 문화와 기술을 전해줬다’ 등 한반도 출신 도래인에 대한 서술이 삭제됐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2002년에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전 서술에서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표현도 빠졌다. 미래 세대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선린우호 역사까지 지워버리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침략전쟁에 대한 기술은 미화와 왜곡 투성이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침략전쟁’이란 말을 빼고 ‘명을 정복하려고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고 한 교과서도 있었다. 한국을 함부로 군대를 보내도 되는 나라로 인식하도록 하는 무례한 기술이다. 러일전쟁에 대해 일본의 승리로 ‘구미 제국의 진출과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자각과 희망을 주었다’고 한 서술(니혼분쿄출판)은 일본 우익들의 사관 그대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교과서는 단 1개뿐이었다.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 정권의 목표를 청소년들에게 은연중 주입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다. 일본의 미래 세대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반한 영토관념을 받아들여 한국을 ‘불법을 자행하는 국가’로 여기게 된다면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관계는 여러 이유로 악화돼 있지만, 백년대계인 교육에까지 이를 반영하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경향 사설] 새 ‘비핵화 해법’ 마련한 정부, 북·미 설득해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7일 북·미 협상과 관련해 “포괄적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하도록 견인해내고, 그 바탕 위에서 ‘스몰딜’을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한 수준의 거래)’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한두번의 연속적인 ‘조기수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청와대가 북·미 절충에 나설 의지를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

청와대의 ‘조기수확론’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고 있는 ‘빅딜식 일괄타결론’이 북·미 간 ‘강 대 강’ 대치만을 초래할 뿐 현실적인 접근법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절충안이다. 미국의 ‘빅딜식 일괄타결론’은 ‘나쁜 거래보다는 거래하지 않는 게 좋다’는 식으로 변주되면서 대북 협상 회의론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이런 태도로는 북·미 협상이 장기 교착을 벗어날 수 없고, 협상 동력마저 소진시키며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한반도 상황을 위해서는 조그마한 거래라도 성사시키려는 능동적 태도가 필요하다. 합의된 거래를 성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쌓여 더 큰 거래를 해나갈 수 있다. 청와대가 ‘한·미 공조 균열’로 비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은 미국의 ‘빅딜식 일괄타결론’이 국제사회의 대북 접근법으로 굳어져가는 상황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고민이 반영돼 있다. ‘조기수확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해 가다듬은 현실성 높은 방안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의 입장에 기울어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단계적인 스몰딜에 앞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마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북·미 양측의 입장을 균형있게 절충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 시일 내 북·미 양측을 만나 이번 절충안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야당과 보수세력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뜻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대북협상 회의론을 퍼뜨리는가 하면 시대착오적인 ‘핵무장론’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분별한 정치공세는 자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주한미군사령관은 “남북군사합의 지지한다”는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9·19 남북군사합의에 어떤 의문도 없다”고 밝혔다.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남북군사합의에 주한미군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보수세력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최근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을 폐지하고 다른 훈련으로 대체한 것을 놓고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하자 단호한 어조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한·미 간 현안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불식시킨, 인상 깊은 인터뷰였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인터뷰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미군은 전적으로 한국과 입장이 같으며, 한·미 연합방위태세에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문가가 아니라는 표현까지 쓰며 반박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당시 발언의 맥락이 잘못 전달됐다”며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동맹의 결정으로, 향후 체결 가능성이 있는 평화협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입맛대로 해석해 보도한 언론과 이를 그대로 받아 한·미동맹 균열을 주장한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남북군사합의서 이행을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 간 물자 수송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가진 유엔군사령관으로서 향후 남북철도 연결 등에 협력한다는 뜻이다. 전폭적으로 이 발언을 환영한다.

이제 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한·미 간 균열은 근거 없는 주장임이 확인됐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군인 명문가 출신에 소신파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의 견해는 미군의 공식 입장이다. 보수파들은 더 이상 남북군사합의가 북한을 이롭게 했느니 마느니 시비 걸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날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부의 과속과 맹신으로 안보체제는 무너지고 한·미동맹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건전한 비판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정치적 이해에 매몰된 색깔론은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미국이 비공식적으로는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기 바란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말대로 유엔군의 지원 아래 남북군사합의가 착착 이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