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남·북·미 정상, 비핵화 협상 성공 위한 결단 필요하다

11일 평양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가 개막하고, 12일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분수령이 될 정치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 것이다.

우리의 국회격인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국가기관 인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직 재추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보다 주목되는 건 김 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일 것이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북·미 협상을 되돌아보고 향후 전략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은 시간상으로 최고인민회의 직후에 개최되는 만큼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하노이 이후 기로에 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프로세스의 향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정세는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에도 ‘노란불’이 켜진 상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이후에도 비핵화 문제를 직접 풀겠다는 ‘톱다운 해결’ 의지를 보이면서 대북 추가 제재를 철회하는 등 유화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미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의 대화의지를 재천명함으로써 북한에 협상 복귀의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비핵화 방법론의 차이다. 미국의 ‘일괄타결식 빅딜론’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론’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포괄적 비핵화 합의와 단계적 동시 이행’이라는 절충안을 마련해 두고 있다. 이 방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을 이끌어내게 된다면 회담은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비핵화 완료 시까지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한국 정부도 동조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중차대한 국면에서 남·북·미 정상은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재강조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내부적으로 일고 있는 대미협상 무용론을 불식하고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천명함으로써 한·미 정상회담에 탄력을 부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북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올 오어 나싱(전부 아니면 전무)’식 태도를 버리고 실사구시적인 대북 태도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특히 ‘제재만능론’에서 벗어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해제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대북정책의 발언권을 복원해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비핵화에 보조를 맞춰야 하며 한국도 대북 압박에 동참하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문대로만 움직이게 된다면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비핵화 절충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 변화도 이끌어낼 것을 희망한다.


[경향 사설] 미국, 아직도 시대착오적 리비아식 북핵 해법 고집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및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 그리고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해체를 요구한 것으로 외신이 보도했다. 또 핵 프로그램의 포괄적 신고 및 미국과 국제사찰단의 완전한 접근 허용, 핵 관련 모든 활동 중지와 새 시설물 건축 중단, 모든 핵 인프라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과 과학자 및 기술자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이런 안을 협상의 최대 목표로 제시해 본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관철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핵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채 원점으로 되돌아갈 상황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과 핵물질·핵무기의 미국 반출은 이른바 ‘리비아 방식’과 유사하다. 하지만 리비아와 북한은 핵개발의 동기나 수준이 엄연히 다르다. 북한을 향해 핵탄두를 미국으로 보내라는 것은 항복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된다. 거기에 그동안 거론하지 않던 생화학무기까지 폐기 대상 목록에 넣었다. 비핵화를 수용하면 어떤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물론 상황이 여기에 이른 데는 북한의 책임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면서도 어떻게 비핵화할지, 그리고 이미 확보한 핵무기는 어떻게 할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니 미국이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 등 상응조치 없이 리비아식 해법만을 제시했다면 북한이 수용할 리가 없다. 북한과 대화를 진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북·미 간 대화 재개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역할은 더욱 긴요해졌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다. 문 대통령은 1일 “북·미 대화 재개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 간 공조 방안에 대해 깊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강조해온 대로 북핵은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 방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보상책도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미국에 실망감을 느낀 북한이 북·미 협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비무장지대 내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1일 남측 단독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9·19 남북군사합의 등은 지속적으로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갈수록 심해지는 교과서 왜곡, 일본을 규탄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6일 발표한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 교과서 12종 검정 결과 ‘독도왜곡’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간 우호적 교류에 관한 기술은 줄어든 반면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과오는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등 한·일관계 기술이 전반적으로 퇴행했다. 갈수록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이 어린 학생들에게 영토왜곡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커진 것이다. 강력히 규탄한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은 한층 강화됐다. 도쿄서적 5학년 교과서에는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에 ‘이에 대해 일본이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독도의 전경사진을 게재한 교과서도 늘어났다.

한국에 관한 서술이 퇴행하고 있는 점도 당혹스럽다. 니혼분쿄출판 교과서에는 ‘도래인이 대륙으로부터 문화와 기술을 전해줬다’ 등 한반도 출신 도래인에 대한 서술이 삭제됐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2002년에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전 서술에서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표현도 빠졌다. 미래 세대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선린우호 역사까지 지워버리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침략전쟁에 대한 기술은 미화와 왜곡 투성이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침략전쟁’이란 말을 빼고 ‘명을 정복하려고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고 한 교과서도 있었다. 한국을 함부로 군대를 보내도 되는 나라로 인식하도록 하는 무례한 기술이다. 러일전쟁에 대해 일본의 승리로 ‘구미 제국의 진출과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자각과 희망을 주었다’고 한 서술(니혼분쿄출판)은 일본 우익들의 사관 그대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교과서는 단 1개뿐이었다.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 정권의 목표를 청소년들에게 은연중 주입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다. 일본의 미래 세대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반한 영토관념을 받아들여 한국을 ‘불법을 자행하는 국가’로 여기게 된다면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관계는 여러 이유로 악화돼 있지만, 백년대계인 교육에까지 이를 반영하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경향 사설] 새 ‘비핵화 해법’ 마련한 정부, 북·미 설득해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7일 북·미 협상과 관련해 “포괄적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하도록 견인해내고, 그 바탕 위에서 ‘스몰딜’을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한 수준의 거래)’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한두번의 연속적인 ‘조기수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중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청와대가 북·미 절충에 나설 의지를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

청와대의 ‘조기수확론’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고 있는 ‘빅딜식 일괄타결론’이 북·미 간 ‘강 대 강’ 대치만을 초래할 뿐 현실적인 접근법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절충안이다. 미국의 ‘빅딜식 일괄타결론’은 ‘나쁜 거래보다는 거래하지 않는 게 좋다’는 식으로 변주되면서 대북 협상 회의론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이런 태도로는 북·미 협상이 장기 교착을 벗어날 수 없고, 협상 동력마저 소진시키며 한반도 위기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한반도 상황을 위해서는 조그마한 거래라도 성사시키려는 능동적 태도가 필요하다. 합의된 거래를 성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쌓여 더 큰 거래를 해나갈 수 있다. 청와대가 ‘한·미 공조 균열’로 비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은 미국의 ‘빅딜식 일괄타결론’이 국제사회의 대북 접근법으로 굳어져가는 상황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고민이 반영돼 있다. ‘조기수확론’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해 가다듬은 현실성 높은 방안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의 입장에 기울어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단계적인 스몰딜에 앞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마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북·미 양측의 입장을 균형있게 절충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 시일 내 북·미 양측을 만나 이번 절충안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야당과 보수세력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뜻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대북협상 회의론을 퍼뜨리는가 하면 시대착오적인 ‘핵무장론’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분별한 정치공세는 자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주한미군사령관은 “남북군사합의 지지한다”는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9·19 남북군사합의에 어떤 의문도 없다”고 밝혔다.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남북군사합의에 주한미군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보수세력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최근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을 폐지하고 다른 훈련으로 대체한 것을 놓고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고 하자 단호한 어조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한·미 간 현안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불식시킨, 인상 깊은 인터뷰였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인터뷰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미군은 전적으로 한국과 입장이 같으며, 한·미 연합방위태세에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문가가 아니라는 표현까지 쓰며 반박했다. 잘 모르면서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달 12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당시 발언의 맥락이 잘못 전달됐다”며 “주한미군의 주둔은 (한·미)동맹의 결정으로, 향후 체결 가능성이 있는 평화협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입맛대로 해석해 보도한 언론과 이를 그대로 받아 한·미동맹 균열을 주장한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남북군사합의서 이행을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 간 물자 수송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가진 유엔군사령관으로서 향후 남북철도 연결 등에 협력한다는 뜻이다. 전폭적으로 이 발언을 환영한다.

이제 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한·미 간 균열은 근거 없는 주장임이 확인됐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군인 명문가 출신에 소신파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의 견해는 미군의 공식 입장이다. 보수파들은 더 이상 남북군사합의가 북한을 이롭게 했느니 마느니 시비 걸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날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부의 과속과 맹신으로 안보체제는 무너지고 한·미동맹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건전한 비판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정치적 이해에 매몰된 색깔론은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미국이 비공식적으로는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기 바란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말대로 유엔군의 지원 아래 남북군사합의가 착착 이행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북·미 협상 궤도 이탈 방지 위한 비상한 노력 기울여야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과 관련해 “우리는 북·미 회담이 종국적으로 타결될 것으로 믿지만 오랜 대화교착을 바라지 않는다”며 “양 정상이 빠른 시일 내 만나 타결을 이뤄내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역할도 다시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북·미가 협상동력 유지를 위해 조속히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가 중재 역할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단돼서는 안되며 중재자이자 당사자인 한국 정부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점을 평가한다. 이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가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유일하고도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양측의 입장 차를 정확히 확인하고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면서 “북·미 실무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서도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양측의 입장 차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케 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외에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비핵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비핵화 대상에 포함시키며 북한을 사실상 압박했다는 뜻이다. 볼턴의 말대로라면 실무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던 미국이 정작 정상회담 테이블에서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식 태도로 돌변한 셈이다. 단계적 비핵화 해법은 70년간 적대하며 신뢰가 부족한 북·미 사이를 감안한 현실적인 방식으로, 한국 정부도 동의해왔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배경에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현 국면에서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 남북, 한·미 간 접촉을 통해 ‘하노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북특사를 조기에 보내는 방안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충격이 큰 북한이 당분간 ‘장고’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수록 대화의 모멘텀이 사라질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길 바란다”며 남북협력 사업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당부한 점도 바람직하다. 북한도 남북관계가 정세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 가동되는 것이 북·미 협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신한반도체제’ 선언 문 대통령, 북·미 중재 역할 더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100주년을 맞은 3·1절 기념식에서 “이제 새로운 100년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100년이 될 것”이라며 “ ‘신(新)한반도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라며 “한결같은 의지와 긴밀한 한·미공조, 북·미대화 타결과 국제사회 지지를 토대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올해를 원년으로 새로운 100년을 남북이 함께하는 신한반도체제로 일궈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전날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더라면 더욱 가슴 뛰는 기념사가 됐을 것이다. 문 대통령도, 시민들도 합의 무산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낙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합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전날 기자회견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악수를 했고, 따뜻함을 공유했다”고 했다. 합의 무산 직후임에도 양측의 태도는 눈에 띄게 우호적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제재의 전면 해제를 원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면서도 시종 절제된 톤을 유지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이라고 했다. 양측의 기자회견을 종합해 보면 영변 핵시설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가 합의 무산의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핵심시설인 만큼 민생 관련 제재 해제와의 교환을 ‘등가교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미국은 북한 경제에 크게 숨통이 트이는 민생 관련 제재 해제를 주는 것은 ‘부등가 교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얼핏 보면 인식의 간극이 작지 않은 듯 하지만 절충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 간극을 메우고 북·미가 조속히 후속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도록 문재인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날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해 그 결과를 알려달라”며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을 요청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하노이 협상에 대해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미국·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했다. 합의 무산이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여정에서 숱하게 잠복해 있는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며, 우리의 능동적인 자세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의지를 조속히 실천에 옮겨야 한다. 협상 모멘텀을 살려 나가기 위해 남북·한미 간 조율을 서둘러야 한다. 대북특사를 보내거나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회담과정을 공유하고 중재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미 정상회담도 곧바로 개최해야 한다.
북·미 간 빅딜은 신한반도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고, 이를 중재하는 것은 새로운 100년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열어나갈 기회이기도 하다.


[경향 사설] 안타까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협상 모멘텀은 살아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28일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메트로폴호텔에서 확대정상회담을 열었으나 오찬과 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한 채 회담을 종료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을 위한 주춧돌이 놓일 것을 기대하던 국제사회는 갑작스러운 반전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회담 성공을 간절히 바라온 남북의 많은 이들이 낙담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 회담 결렬의 직접 원인은 제재 완화와 비핵화 조치의 범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추정된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제재가 쟁점이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우리에게 줘야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추가 핵시설의 존재를 거론한 것도 분위기를 냉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시설이 있었다”면서 “미사일도, 핵탄두도 빠져 있었고, 핵 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즉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제재 완화를 요구한 북한에 대해 미국은 더 많은 비핵화 조치 요구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이 돌출적으로 거론되면서 합의불능의 흐름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옛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미국 국회에서 트럼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으로 미국 정계가 들썩거린 것이 트럼프의 대북 태도를 강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연치 않은 점은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핵시설을 거론했고, 이에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는 트럼프의 발언이다. 그 정도로 중대한 핵시설이라면 미국이 왜 그간 거론하지 않다가 정상회담에서 불쑥 꺼냈는지 의문이다. ‘딜브레이커’가 될 정도로 중대 시설인지,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 수준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협상을 교착시키는 악재가 돼서는 곤란하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만에 열린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대전환의 여정에 제동이 걸린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섣부른 비관은 금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도 “앞으로 몇 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비친 점을 봐도 그렇다.

북한과 미국 간의 핵협상은 이미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실패와 우여곡절로 점철돼온 과정이었다. 이번 회담 결렬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난함을 다시 일깨우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북·미가 후유증을 훌훌 털고 조속한 시일 내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려는 중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망발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그것은 올라가야 한다. 몇 년 동안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지난 10일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합의안에 가서명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내년 분담금 인상을 거론한 것이다.

트럼프가 이날 쏟아낸 발언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실에 맞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 분담금 5억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가 한국에서 쓰는 비용은 50억달러이며 한국은 약 5억달러를 지불해왔다”고도 했다. 한국이 분담금 5억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는 말은 합의안과 명백히 다르다. 합의안에는 한국의 분담금이 지난해보다 8.2%, 즉 787억원 오른 1조389억원으로 돼 있다. 트럼프가 수치를 착각했거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부풀렸을 수 있다. 주한미군이 50억달러를 쓴다는 것도 터무니없다. 한국의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남짓으로 평가된다. 한국이 지난해 9억달러를 지불했으니 미국이 쓴 비용도 그 언저리일 것이다. 게다가 “전화 몇 통 걸었더니 5억달러가 나왔다”는 발언에선 모욕감마저 느껴진다. ‘약자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내는 불량배’를 떠올리며 분개한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트럼프가 과장과 자기 과시가 섞인 특유의 어법을 구사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각료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던진 동맹국을 향한 망발마저 그대로 넘겨선 안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합의한 액수는 분명히 1조389억원”이라고 반박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말고, 공식 외교경로를 통해 발언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발언은 다음번 협상에서도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 측은 이번에 합의한 협정에서 종전 다년이던 유효기간을 1년으로 바꾸는 안을 관철해 매년 분담금을 인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국은 안보의 상당 부분을 주한미군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군의 한국 주둔은 미국의 패권과 동북아 전략적 이익에도 기여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미국의 합리적이지 못한 분담금 인상 압박은 동맹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 한국만이 수혜자라는 식의 ‘안보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돈을 더 받아내려는 대국답지 못한 행동에 진저리 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음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 베트남서 2차 회담, ‘비핵화-평화체제’ 결실 맺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2차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밝혔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 와 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날 미군기를 이용, 평양으로 직행해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정상회담 합의문 조율 등 실무협상에 나섰다.

북·미가 평양에서 실무협상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신경전을 벌이던 과거와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양측 간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앞서 비건 대표는 최근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공개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인정했다. 또 미측은 완강한 ‘선비핵화’에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의 ‘동시적·병행적’ 이행으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이견을 보여온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양측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해 미국이 취할 조치이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이외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의 재개가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당초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로 출발한 만큼 개성공단을 국제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명분은 충분하다. 미국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허용으로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다자협의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평화체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안전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난다. 북·미, 미·중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논의의 물꼬를 트고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미·중 정상이 종전을 선언한다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에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및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초점을 맞췄다면 2차 회담의 목표는 그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북·미 정상이 2차 회담의 일정을 1박2일간으로 잡은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두 정상은 역지사지의 태도와 담대한 결단으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의 빅딜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도 회담의 촉진자 역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야 한다.


[경향 사설] 방위비 분담금 협상, 북·미 정상회담 전 끝내야 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협상이 늦어지면서 한·미 양국 간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한국 내에서 팽배하다. 25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12억달러(1조3554억원)를 요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에 대해 언급한 바는 있으나 금액은 거론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런 보도는 자칫 모독이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할 정도로 이 사안이 민감해졌다는 뜻이다.

분담금 협상의 쟁점은 한국이 부담할 금액과 협정이 적용되는 유효 기간이다. 미국은 지난해 9600여억원이었던 분담금을 1조1300여억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1조원 이상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협정 유효 기간도 한국은 5년으로 유지하자는 데 비해 미국은 1년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큰 폭의 증액 요구는 트럼프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과 ‘미국 우선주의’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한국의 방위비 분담은 다른 나라보다 결코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은 0.068%로 일본의 0.064%보다 높다. 직접 분담금 외에 간접 지원비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더 커진다. 미군은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해 해마다 남기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 비용의 90%를 한국이 부담했다는 셈도 여기서 나왔다. 주한미군은 한국만을 위해 주둔하는 게 아니다. 동맹의 이익을 한국만 얻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한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더구나 미측은 분담금 계약 기간을 ‘5년’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가 돌연 1년으로 하자고 한 사실이 최근 공개됐다. 동맹을 상대하는 협상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의 관건이 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말로 예정돼 있다. 양국은 모든 역량을 여기에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북·미 협상과 연계할 것이라는 분석이 심심찮게 나온다. 둘은 연계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북·미 회담에 앞서 분담금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실무진들이 충분히 협의해온 만큼 이제는 최고위급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이다. 양국은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조속히 협상을 타결지어야 한다.


[경향 사설] 양승태 구속, 사법부 치욕 딛고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수감됐다. 사법부의 전직 수장이 구속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부끄럽고 참담하나, 당연한 귀결이다. 법원은 사법농단의 ‘주범’을 제 손으로 구치소에 보냄으로써 법의 엄중함을 보였다. ‘방탄 판사단’이라 비판받아온 법원도 헌정질서를 뒤흔든 사법농단의 중대성을 외면하기 어려웠으리라 본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정의 실현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진전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24일 영장을 발부하며 밝힌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혐의가 소명되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한 증거들이 제출된 데 따른 판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서 주심 대법관에게 “국제법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를 직접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에 대법원장 지시를 뜻하는 ‘대(大)’자가 적힌 점 등도 영장 발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줄곧 “기억이 안 난다”거나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지난 23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는 후배 판사들이 모함했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앞 기자회견을 강행하는 등 오만하고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인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법하다. 최고의 심판자에서 ‘미결 수용자’로 전락한 양 전 대법원장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털어놓고 사죄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끝이 아니다. 진정한 단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검찰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길 때까지 치밀한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전·현직 법관들이 기소되면 공정한 재판이 과제로 대두할 것이다. 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특별재판부 구성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현직에 남아 있는 법관들이 법대에 다시 서지 못하도록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재판청탁’에 연루된 정당들은 소속 전·현직 의원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옳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시 한번 송구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저의 마음과 각오를 밝힐 수 있을지 (드릴 말씀을) 찾을 수도 없다”고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의 사과가 진심일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만신창이가 된 사법부를 폐허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대법원장이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하고 사법을 사유화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관료적 사법행정 체계를 개편하는 일이 급선무다. 법원 주도하에 외부위원을 포함시키는 ‘사법행정회의’ 수준으로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법관들이 ‘좋은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면적 개혁에 나설 때다.

우리는 온갖 고통과 핍박 속에서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헌신해온 법관들을 기억하려 한다. 2017년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업무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로 저항했던 이탄희 판사의 용기가 없었다면 사법농단은 아직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판사처럼 소신 있고 양심적인 법관들이 적지 않기에, 사법부가 오늘의 치욕을 딛고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경향 사설] 미 국무장관의 “미 국민 안전 우선” 발언 우려할 일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협상에 대해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한 지난 11일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국내 보수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초점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로 옮아가는 징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협상 성과에 급급해 미국에 대한 실질적 위협인 ICBM 생산 중단과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재개를 교환하는 ‘스몰딜’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억측도 나온다. 게다가 주일미군이 홈페이지에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북아에서 핵보유를 선언한 국가라고 언급한 영상을 공개하자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뜻을 비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김정은 정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보수세력은 걱정한다. 아무리 우려라지만 도가 지나치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하다. 어떤 대외 협상도 궁극적으로는 자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목표 아닌가. 폼페이오는 이 발언 뒤에 “최종적이고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 핵심명제는 전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의 ‘미국민 안전’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뒤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는 미국 언론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를 풀 가능성을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것이다. 최종적인 비핵화로 이르는 도중에 북한과의 ‘주고받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며 이 과정의 어떠한 거래도 미국인 안전에는 영향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발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한반도 비핵화가 신뢰구축과 병행해야 하는 과정임을 트럼프 행정부가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 이미 담겨 있다. 공동성명에는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선 신뢰구축-후 핵신고’의 비핵화 로드맵에도 접근한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 해제는 없다”던 트럼프 행정부의 비현실적 대북정책이 뒤늦게나마 현실감각을 찾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불필요한 기우에 사로잡힐 것 없이 곧 시작될 북·미 고위급회담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중국 방문 끝낸 김정은, 북·미 정상회담에 전념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3박4일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두 정상이 ‘한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하는 방안’을 깊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이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조율, 공동보조를 약속했음을 시사한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회담과 오·만찬 행사에서 전에 없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도약’과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시 주석도 북한의 미국을 향한 ‘응당한 요구’에 공감하는 한편 중국을 북한의 ‘믿음직한 후방’ 등으로 표현하며 역할을 약속했다. 또 김 위원장의 공식 방북 초청에 구체적인 방문 계획을 통보하며 화답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지원을 확보했으며, 향후 북·미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에서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 위원장은 또 방중 기간 “북한은 비핵화 입장을 계속해서 견지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유관국이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중시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한반도 문제의 전면 해결을 함께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보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호응이 절실하다.

사전 정지작업을 마무리한 김 위원장이 지금부터 할 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을 카드를 가다듬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다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을 유의해야 한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등 남측의 선제적 조치도 먼저 국제 제재가 풀린다는 보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열리고 그것이 서울 답방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미 주류사회 설득 위한 ‘비핵화’ 공공외교 본격화해야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에 내정된 엘리엇 엥걸 의원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외교위에 불러 북한과의 협상 상황을 청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엥걸 의원은 “소속 위원들이 북한과 관련해 명백히 진전이 부족한 데 대해 분명히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미 칼럼니스트 제니퍼 루빈이 2일자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소개했다.

지난해 중간선거 결과 미국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식 북·미 협상에 대해 향후 검증과 견제를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미 의회가 행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런 미국 정치시스템에 이의를 달 이유도 없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국 의회의 이런 움직임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기도 어렵다.

미국 조야는 대북 불신이 강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의회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태도에 대해서도 반감이 크다. 게다가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 재선 전략의 하나로 북한 비핵화를 외교 성과로 쌓으려는 것에 대한 견제심리도 강하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성향이라는 점에서 큰 틀의 대북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하원 의장으로 선출된 낸시 펠로시 의원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라는 점은 걸리는 대목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도 제임스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과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이 모두 대북 강경파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향후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 리스크’가 커질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한국도 적극 벌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입안자나 싱크탱크, 의회 의원들은 평소에 북한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와 인식이 다르거나, 이해가 부족한 면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만나 설명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를 푸는 일은 예상외로 효과가 크다.

대미 외교를 청와대나 외교당국에만 맡겨둘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올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해 의원외교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겠다”고 한 것을 환영한다.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 언론으로도 폭을 넓혀 전방위적 비핵화 공공외교를 벌일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평화와 비핵화 의지 재확인한 김정은 친서를 환영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내년에도 문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뜻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A4 용지 2장 분량의 친서에서 2018년을 마감하는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내년에도 두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나가자는 뜻을 전했다. 또 두 정상이 올해 세번씩이나 만나며 남북 간 대결구도를 뛰어넘는 과감한 조처를 이뤄냈고, 우리 민족을 군사적 긴장과 전쟁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한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또 두 정상이 평양 합의대로 올해 서울 방문이 실현되기를 고대했으나 이뤄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으며 앞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특히 내년에도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북·미 협상이 장기 교착되고, 서울 답방 무산으로 아쉬움을 남긴 채 저물어가는 세밑에 북에서 날아온 친서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 획기적 관계 진전을 이뤄낸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유종의 미’가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 이상으로 북한도 남북관계 발전을 중시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남측과 적극 협력해 나가겠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는, 남측 국민을 향한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간에는 북·미 협상에서 비핵화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협상이 반년 넘도록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북·미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의 장래에도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무산된 것이 이런 심리를 키운 면도 있었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이런 남측 내부의 의심과 불안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번 친서는 이틀 뒤인 새해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할 신년사 메시지를 어느 정도 예고하는 듯하다. 최근 미국이 미국인의 방북 허용 검토 등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비핵화 요구 수준도 ‘단계적 해법’으로 옮겨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북·미 협상 재개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며 비핵화 의지를 언급한 것은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는 신년사에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김 위원장이 친서에 밝힌 대로 2019년에도 남북이 굳게 협력해 ‘한반도 대전환’이 본격화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경향 사설] 비핵화 교착 속 미국의 잇단 국면전환 의지 주목한다

한·미 양국이 21일 제2차 워킹그룹 회의에서 남북관계 주요 사업들과 관련한 대북 제재 걸림돌을 해소했다. 이에 따라 오는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과 내년 4월부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남북 공동발굴 사업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 있게 됐다.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리는 철도 연결사업 착공식과 유해발굴 사업은 그 자체로는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이를 위해 북으로 반출할 물품과 장비에 대해 대북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이날 회의를 통해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대북 지원이 가능해졌고, 한국 정부의 800만달러 규모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기왕의 부정적 기류가 엷어졌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과 이번 워킹그룹 회의를 지켜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태도가 눈에 띄게 유연해지고 있다고 평가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비건 대표는 회의 참석차 지난 19일 방한하자마자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미국인 북한 여행 금지’를 해제할 방침을 시사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의 21일 면담에서 “남측 철도가 북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설렜다”고 한 것도 유화 메시지로 읽힌다.

미국은 이번 워킹그룹을 통해 적어도 대북 인도적 지원, 남북관계 행사가 대북 제재 기조 때문에 차질을 빚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대북 인도적 지원의 물꼬가 트이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비건 대표는 북·미대화 진전을 위해 대북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양자 및 독자 제재를 완화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양국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신뢰구축을 위한 새로운 후속조치를 시사하는 발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새해 첫날부터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열리기를 기대한다”며 조기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 것도 미국의 국면전환 의지를 드러낸다. 미 국무부 라인이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당장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미 중간선거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발언하면서 북핵 문제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스멀거리던 참이었다. 미 조야에서는 북·미 2차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북·미 협상에 집중할 것임을 예고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한도 미국의 이번 대북 메시지를 전향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비건이 대북 제재 유지 방침을 분명히 한 점이 북한으로서는 아쉬운 대목이겠지만 이 문제는 협상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풀 방법이 없다. 북·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서라도 실무회담을 조속히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해가 열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화답 신호를 보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경향 사설] 한·일관계 이렇게 손놓고 있어도 되나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한일·일한의원연맹 총회 참석차 방한한 일본 의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부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해법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은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일본은 외무상이 한국 비판의 전면에 나설 정도로 반발하고 있고, 일본 내 ‘혐한’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이낙연 총리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해법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사법부 판단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늦어질 경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정부, 청구권 자금을 받은 한국 기업, 강제노동을 시킨 일본 기업 등 3자가 기금을 마련하거나 재단을 구성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딱히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 만큼 정부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정부가 피해자들의 의견을 해법에 반영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피해자와의 긴밀한 소통이 없을 경우 ‘한·일 위안부 합의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

한·일관계는 수년째 냉랭한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사 문제 해결과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은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과거사가 미래지향적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사 문제에 퇴행적인 아베 정권의 책임이 크지만,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도 능동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강제징용 문제만 보더라도 대법원 판결이 가져올 파장을 미리 가늠하고 대응책을 준비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오부치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관계 개선의전기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는 대일 외교정책에 대한 새판짜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대일 외교는 양자 차원을 넘어 대미·대중 관계,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전략적 구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안정적 한·일관계를 바탕으로 일본의 전폭적인 협력 속에 추진됐다는 점도 상기해야 할 대목이다.


[경향 사설] 남북 철길 연결의 대장정, 기적이 울렸다

남북한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할 남측 열차가 30일 오전 북쪽으로 떠났다. ‘서울↔신의주’를 아로새긴 열차는 이날 서울역에서 출발, 도라산역에서 환송 행사를 마친 뒤 북녘땅을 향해 기적을 울리며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남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을 주 5회 오가던 화물열차가 2008년 11월28일 운행이 중단된 지 꼭 10년 만에 남북 철도가 다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 보름 남짓 남북의 철도 전문가들은 북측 기관차가 이끄는 열차에 함께 타고 경의선 개성∼신의주 약 400㎞ 구간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약 800㎞ 구간 등 총 2600여㎞에 이르는 북한 철로를 누비며 조사한다. 특히 남측 열차가 동해선을 통해 두만강까지 운행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철도 통일’ 대장정의 시작을 온 겨레와 함께 뜨겁게 축하한다.

남북 철도 연결은 남북의 인적·물적 교류를 하나로 잇는 필수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철도 연결이 전제되지 않는 한 본격적인 남북 경협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남북 철도의 연결은 단순히 분단된 철길을 잇는 것이 아니다. 바로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륙을 건너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그 길이 복원되는 것이다. 섬처럼 갇혀있던 한반도 경제영토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 대륙과 해양 양쪽으로 뻗어 나갈 인프라를 마련하게 된다. ‘철의 실크로드’ 완성으로 중국, 러시아, 유럽 등과 육로 교역이 가능해지면서 세계 GDP의 60%를 차지하는 유라시아 경제권에 편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동해선, 경원선이 복원되면 군사적 긴장 완화는 물론 금강산과 설악산 연계 관광을 촉진해 동해권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부산과 광양항까지 철도로 이으면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공동조사 열차의 출발은 철도 연결의 시작일 뿐이다. 노후화한 북한 철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등 현대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철로 전체를 교체하고 전기 공급방식도 통일해야 한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데다 새로 공사할 때마다 추가로 유엔의 제재에서 예외로 인정받아야 한다. 남북 경협의 기초를 탄탄하게 깔기 위해서는 이런 난관을 다 넘고 도로까지 연결해야 한다. 정부는 연내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와 노력을 다해야 한다. 남북이 총칼을 겨누던 최전방 GP 시범철거와 지뢰 제거 작업도 이날 완료됐다. 이날 출발한 공동조사 열차가 남북 철도 연결을 넘어 공동번영의 혈맥을 뚫고 이 땅에 평화가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질주해나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경향 사설] 남·북·미의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제도화로 이어져야

남북 군사당국이 22일 유해공동발굴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이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을 잇는 도로를 개설했다. 도로는 길이가 북측 1.3㎞, 남측 1.7㎞ 등 총 3㎞가량이며, 폭은 최대 12m이다. 2004년 12월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해 동해선 도로를 개통한 적이 있지만, 한반도 정중앙인 철원지역에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남북은 DMZ에서 각각 GP 10개를 시범적으로 철거하기로 하고, 지난 20일 북한이 먼저 폭파방법으로 작업을 완료했다. 북한의 선제적 GP 철거는 남북군사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

남북의 GP 철거와 DMZ 내 전술도로 연결은 남북 간 군사 분야 신뢰구축의 실질적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곳에서 지뢰를 걷어내고 도로를 연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앞서 남북의 군인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남북이 합의대로 연말까지 GP 철거에 대한 상호 검증을 완료하고, 내년 4월부터 유해공동발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 간 비무장지대를 통한 왕래는 더욱 활발해진다. 이런 차에 내년 봄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을 축소하겠다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밝혔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함으로써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남·북·미의 잇단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탄력이 붙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남북 간 관계 개선은 과거와 달리 경제가 아닌 군사 분야가 선도하고 있다. 이것이 가져오는 남북 간 긴장완화 효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직접적이고 다대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일은 아니다. 군사 분야 외에 철도·도로 연결, 산림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 합의가 신속히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남북 간 합의 이행이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일상화·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 간 관계 진전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불가역적인 단계로 접어든다. 마침 미국이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철도 연결이 남북 간 경제 분야 협력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제자본의 북한 투자가 성사된다면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위협은 무의미해진다. 북한의 비핵화를 가장 견실하게 담보하는 방안은 결국 북한이 경제개발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문턱 낮춘 미국, 한국의 중재자 역할 커졌다

미국이 북한과의 2차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5일(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핵·미사일 시설 목록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뜻을 나타냈다고 미 NBC 뉴스가 보도했다. 펜스 부통령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개발 장소를 확인하고 관련 장소를 사찰할 수 있는 계획, 또 핵무기 폐기 계획이 나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면서도 북한이 꺼려온 ‘핵목록 신고’에 유연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상회담의 문턱을 낮췄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북·미 협상과 관련해 이전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정상 대 정상’ 협상을 하고 있다며 2차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회의론을 불식시켰다.

국무부와 펜스 부통령의 발언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미 협상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중간선거 이후 미국 조야에서 커지고 있는 대북 회의론을 정면돌파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중간선거로 변화된 정치지형에도 흔들림 없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제를 달성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평가한다.

물론 디테일로 들어가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뉴욕 북·미 고위급회담이 전격 연기된 이후 양측은 실무 접촉도 중단한 채 기싸움 중이다. 북한 매체들은 1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 시험장에서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대북 강경파인 펜스 부통령이 아시아 방문 과정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유지·강화를 강조해온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저강도 시위’를 벌인 것이다. 양측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필요성엔 동의하고 있되 ‘비핵화-상응조치’에 대한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기싸움만 가열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은 문재인 정부가 다시 나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쪽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해 달라”고 주문한 것도 한국 정부의 중재가 긴요한 국면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굴러갈 수 없다. 양쪽을 만족시켜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조율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중간선거 이후에도 ‘비핵화 협상’ 의지 확인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북·미 고위급회담의 연기가 단순한 일정 조율의 문제라며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중간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내년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도 회담 연기는 “순전히 일정을 다시 잡는 문제다. 일정이 허락할 때 다시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이 돌연 연기된 데 대한 의구심을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 불식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간선거 패배 후에도 계속 외교적인 북핵 해법을 추구한다는 신호다.

북측의 연기 사유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미 양측 간 심각한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국무부는 회담 연기가 제재 해제와 관련돼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우리는 꽤 좋은 상황에 있다”고 단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일정이 분주하니 연기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미국이 우리에게 설명해줬다”며 “양측이 회담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이전과 달리 북한이 먼저 회담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인데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북한이 회담을 연기한 것은 미국과의 약속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제재 완화와 핵리스트 신고의 선후를 둘러싸고 북·미 간 이견은 있는 듯하다. 북한이 조기 제재 완화 조치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제재를 없애고 싶지만 그들(북한) 역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회담 연기는 결정적 갈등이 아니라 북·미가 핵 협상에 앞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일정을 놓고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모두 역지사지의 태도로 대화를 진척시켜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하면 공격지점을 다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면 미국도 제재 완화 등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이 잡히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미 워킹그룹 합의, 비핵화 공조 강화의 계기 되기를

한·미가 대북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킹그룹(실무협의체)’을 운영하기로 했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대북 제재 이행, 남북 협력에서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 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 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간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워킹그룹 설치가 합의됐지만 한국 측이 먼저 제의했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은 이달 출범한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차를 감안하면 워킹그룹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비핵화 동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정부는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등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려는 산림청과 그룹 총수가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들과 접촉, 대북 사업 계획을 탐문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내 7개 국책·시중 은행과 접촉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미 이견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보수세력은 이를 한·미 사이의 중대 갈등으로 몰고가며 정부를 공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워킹그룹 신설에 합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우선 한·미 간 이견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작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더 긴밀하고 빈번하게 소통할 필요도 있다. 다만 한·미 양국 모두 이 워킹그룹이 부정적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간섭하고 제동을 거는 통로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핵 해법을 놓고 한·미 간 입장이 항상 100%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견이 장시간 조정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오는 6일 치러지는 미국의 중간선거 직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는 등 북핵 해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어느 때보다 양국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 워킹그룹을 통해 양국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평양선언 비준 문제, 법적 다툼 아니라 대화로 풀어야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초헌법적 행위’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4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판문점선언이 아직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없다는 건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법원에 두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계획도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국회 동의가 없는 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관계를 오인한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격화하는 남남갈등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법률만으로 평가·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때로는 법률의 한계를 벗어난 담대한 접근으로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 간 합의를 법리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한국당의 태도는 지극히 유감스럽다. 한국당은 헌법 60조(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를 근거로 평양선언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북한과의 합의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조약’으로 보기 어렵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남북합의서를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의 합의로 보고 헌법상 조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고 남북합의서를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법리 오인이자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대한 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태도이다. 판문점선언을 꼼꼼히 따져보고 비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 이런 식이라면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법원과 헌재가 한국당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그 역시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의심과 낡은 대북관부터 버려야 한다. 판문점선언을 막아서기만 할 게 아니라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해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이 선언되면 한국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판문점선언 비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만큼이나 야당 설득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부 지지 없이는 결코 외치에 성공할 수 없다.


[경향 사설]대북 제재는 비핵화의 수단이지 목표가 될 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단계적 제재 완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구상은 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에 비해 반 발짝 더 나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계속 실천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유엔 제재가 완화돼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당시 발언에 비해 이번 구상은 적절한 시기의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북·미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조금만 진지하게 그려본다면 문 대통령의 구상이 결코 과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에 대해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입구’부터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정도로 비핵화가 진척된 단계에 이르러 ‘당근’을 주자는 구상에 이의를 달 이유는 없다.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문 대통령의 능동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북 제재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여전히 완고하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일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 관련 제재 대상자 및 법인과 거래할 경우 세컨더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경우 비핵화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단선적인 사고다. 북한은 오랜 제재 속에서도 나름의 체제 내구성을 유지한 채 경제를 성장시켜왔다. 북한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견디지 못해 대화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도 오산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제재의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대해 본격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기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비핵화의 수단에 불과한 대북 제재를 불변의 목표로 간주하는 듯한 ‘가치전도’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은 북·미 비핵화 협상 2라운드를 앞두고 제재 문제에서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북한에 대해 중재안을 내놓은 셈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오는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이 구상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제재의 오랜 관성에 길들여진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공론화 작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북·미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검토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