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이제 북한을 대화로 이끌 선제적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CBS방송, 워싱턴포스트 신문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접근방안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고, 먼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이어 완전한 핵폐기를 이루는 단계적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과거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어 새로울 게 없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침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핵을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대규모 파괴와 인명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의미가 없다. 또한 제재·압박에 대화를 병행하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북핵 해법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방안 공개는 다음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 측에 이를 미리 알리고, 회담에도 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접근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한·미 일각의 우려를 씻으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구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여’ 정책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정상회담을 앞둔 한·미 지도자 사이에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중요하다. 문제는 외교·안보 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환경영향평가 문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발언 논란이 불거진 데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이라는 새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여론이 싸늘해지고 이를 반영하듯 미국 행정부는 대북 대화 조건을 비핵화로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군사적 조치를 운운하던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평화적인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문 대통령의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으로 한·미 간에 큰 균열이라도 발생한 것인 양 소란스러운 보수세력도 경시할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이념공세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자칫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건강한 논의를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북 구상을 제시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된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 선제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핵보유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기왕의 대북 지원 차원을 넘어서는 담대한 제안이 요구된다. 실효성 있는 선제적 조치를 마련한다면 미국은 물론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에게 핵폭탄 된 코미 전 FBI 국장 증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미 전 FBI 국장은 8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트럼프가 자신에게 충성을 요구하며 이같이 압박했다고 증언했다. 코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제기돼온 수사 중단 압력 의혹을 ‘가짜뉴스’라며 책임을 회피해온 트럼프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특히 수사 중단 압력이 사법방해에 해당한다면 트럼프는 탄핵 소추 등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러시아 게이트 수사 방해와 그의 해임을 둘러싼 사태의 전모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회유책을 먼저 썼다.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뒤인 지난 1월27일 백악관에서 코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미는 대통령이 “모종의 후원 관계를 만들려”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트럼프의 제왕적 대통령관을 드러낸 것으로, FBI 독립을 훼손하는 행위다. 회유에 실패한 트럼프는 수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 트럼프는 지난 2월14일 코미를 백악관에서 만나 러시아와 내통한 의혹을 받고 있는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수사에 대해 “나는 플린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코미는 “대통령이 플린 수사를 멈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토로했다. 특히 트럼프는 코미와 단둘이 대화하려고 다른 참석자들을 내보냈다. 지난 3월30일에는 코미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구름’이라며 “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물었고,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회유와 압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트럼프는 지난 5월9일 코미를 전격 해임했다.

코미의 증언에서 탄핵 소추의 사유가 되는 사법방해에 해당할 수 있는 대목은 2월14일 대화와 3월30일 전화 통화다. 트럼프의 행위가 사법방해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법방해로 탄핵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집권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탄핵은 쉽지 않다. 코미의 증언으로 트럼프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리스크’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중동의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열흘여 남은 한·미 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열릴지 걱정된다.


[경향 사설] 사드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사드 맹신주의의 위험성

보수 세력이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철수하면 큰일 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덕 더빈 미국 상원의원이 사드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까지 일제히 나서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한국에서 사드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사드를 철수하고, 최종적으로 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드 보고 누락에 대한 진상규명이 사드 철수론을 부추긴다는 이들의 주장은, 사드를 지키면 나라를 지키고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해괴한 백치 논리에 불과하다.

사드는 실효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미군 최고지휘부도 성능을 자신하지 못하는 무기이다. 요격 시험에 11번 모두 성공했다지만 이는 미사일 표적 정보를 사전에 입력해놓고 쏘아 맞힌, 이른바 맞춤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다. 실전에서도 똑같이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게다가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방어할 수 없다. 서울 이남의 미군과 시설을 보호하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드가 있으면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종교적 믿음에 가깝다. 전자제품 제조사의 홍보문구 같은 사드의 명중률 주장에 안보를 맡기자는 건 ‘사드 만능론’ 또는 ‘사드 맹신론’이다. 이런 주장에는 교묘한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배치가 시작된 사드를 지키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라는 프레임을 설치해놓고 여당을 몰아넣자는 것이다. 겉은 안보 걱정이지만 실은 당리당략이다.

사드는 단순한 미사일이 아니라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는 미국의 전략무기다. 중국이 한국에 보복 조치를 가동해 한국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무기를 들여오면서 정부와 군은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는커녕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총리와 안보실장이 알박기하듯 발사대를 추가로 들여다놓고 새 정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 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시민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드 배치 과정 전반을 짚은 뒤 사실에 입각해 국익의 관점에서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이런 당연한 절차와 합리적인 논쟁을 막으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경향 사설] 대통령도 모르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가능한 일인가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의 국내 추가 반입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를 국내에 추가로 반입한 사실을 지난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때 누락했다. 군이 중대한 안보 사안을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모르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철저 조사를 지시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청와대는 25일 업무보고에서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의 반입만 보고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방부는 다음날인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4기의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전했지만,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규명해야겠지만 국방부가 업무보고에서 추가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간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국방부의 행태는 국민주권에 대한 폭거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부터 시민사회와 야권의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를 묵살한 채 밀어붙이더니 탄핵 이후에도 군사작전을 하듯이 야밤에 사드 장비 국내 반입, 경북 성주 배치 등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부재 중에 중대 안보 사안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정부 시기가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문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해 전 정부와 달리 국회 비준 등 재검토 방안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보고를 누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드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고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을 고려하면 보고 누락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설령 단순 실수라 해도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의 기강 해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실수를 가장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군 통수권자에게 항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제 문제이자 민감한 국내 쟁점이기도 하다. 외교, 안보, 경제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남북, 한·중, 한·미 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당연히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과도 연계해야 한다. 결코 소수의 군인들이 좌우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이 무겁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사드 기습 배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문재인 정부에 던진 과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거세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주는 타격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 노력을 공언해왔지만 북한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대화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문제 정책적 공간과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왔다”고 공언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핵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 등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4강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이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접근법에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제재에만 의존한 북핵 폐기 입장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어떤 대안이나 비전 제시도 없이 대결적 이념공방만 되풀이하는 국내의 낡은 풍토도 바꿔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하던 ‘진짜 안보’를 구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 보호 방침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한·미 공조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도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핵 문제 접근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지만 한국만의 주체적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과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그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더 두고 볼 수 없는 홍준표 후보의 막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막말 퍼레이드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에서 겁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대통령 안 시키려고 온갖 지랄을 다한다”고 했다. “나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도록 조작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도둑놈 새끼들이다. 반드시 응징하겠다” “종편 허가권이 정부에 있으니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절반으로 확 줄여버릴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론조작이나 편파 보도 운운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대지 못했다.

홍 후보는 유세 때마다 이런 막말에 색깔론,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더하고 있다. 최근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이 극도로 나쁘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 애들이 문재인 눈치 보면서 병원으로 데려가는 걸 안 해주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건강 문제는 그의 변호인조차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홍 후보는 아무렇지 않게 아니면 말고 식 발언으로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도저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언행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그의 막말은 이제 듣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주요 후보 5명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게 나온 것도 이상하지 않다. 홍 후보는 정상적 방법으론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고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수표를 묶어 대선에서 살아남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5·9 대선은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초유의 안보·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래 비전과 정책 현안에 대해선 뚜렷한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TV토론에서 공정위·재벌 개혁 방안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겠다. 어떻게 개혁해야 하느냐” “그건 아직 공부가 덜 됐다”고 비켜 나갔다. 갈 데까지 간 홍 후보의 언행은 보수 정당의 품격과 신뢰를 추락시킬 뿐 아니라 보수의 희망과도 거리가 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유세에서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면 극우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오십보백보다. 증오와 편 가르기로 표를 얻으리란 생각은 유권자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이런 저질 막말과 비방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유권자들이 가려 듣고 표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경향 사설] 미국의 대북 압박과 대화 천명을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은 먼저 한반도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경제·외교적 압박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북한을 향해 협상의 문이 열려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북핵 문제에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던 트럼프 정부가 대화 가능성을 천명한 것은 다행이다. 지난 3개월 동안 한반도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최첨단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조성된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화론은 반길 일이다. 북핵 문제에서 압박과 대화의 병행 접근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북·미 및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핵개발 속도를 늦추거나 동결한 적이 많았다. 반면 대화가 끊기고 일방적 제재가 이뤄지는 기간에는 어김없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를 하고 핵능력을 고도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발표에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았다는 원칙만 제시했을 뿐 북한을 대화로 유도할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현재 가시적인 것은 오직 대북 압박뿐이다. 이런 식이면 대화의 문을 열기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북핵 능력 고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북한이 대화의 무대로 나오기를 마냥 앉아서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공조 강화는 필수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원칙을 천명해왔기 때문에 공조를 위한 환경은 마련된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라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는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과 공조하겠다면서 중국을 자극하는 사드를 끝까지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향 사설] 항모와 미사일이 트럼프의 북핵 해법인가

북한이 그제 김일성 탄생 10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두 종의 전략미사일을 공개했다. 어제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했다. 미사일 시험발사는 실패했지만,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무력시위는 다 한 셈이다. 미국 역시 군사적 압박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항모 칼빈슨호와 로널드 레이건호에 이어 니미츠호까지 서태평양 해역으로 추가 투입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이어 북한의 ICBM을 요격하기 위해 SM-3 대공미사일을 한반도 해역에 실전배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면 한반도 주변에 미 항모 3척과 SM-3 미사일 등 첨단무기가 한꺼번에 배치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다.

북한의 이번 태양절 도발은 예상보다 강도가 낮았다. 6차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 대형 도발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신형 미사일을 공개하는 선에서 멈췄다. 미국에 대한 항전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과 중국을 통한 우회 압박이 먹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연일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라고 촉구하고, 실제 중국은 그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다. 중국의 국적항공사가 베이징~평양 노선 운항을 잠정 중단한 데 이어 중국 여행사들이 북한 관광을 전면 중단한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군사적 압박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20년 넘게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어온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외부 위협에 굴복해 하루아침에 폐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북핵 폐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양쪽 모두 무력 시위는 충분히 했다. 북한이 오는 25일 인민군 창건일에 즈음해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 전략적 도발에 나서면 이후 상황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강도 높은 대북·대중 압박이 다소 효과를 발휘한다고 이를 새로운 북핵 해법이라도 되는 양 착각해선 안된다. 미국의 SM-3 미사일 배치는 역설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미사일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대북 선제타격 대신 외교를 통한 해법을 권고했다. 오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회담도 대화를 통한 해법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한국이 중심 잡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의 대 한반도 외교안보 정책과 그 집행 과정을 종잡을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동안 한반도 정책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지만 그 내용은 오리무중이다. 트럼프가 최우선 과제로 꼽은 북핵 문제를 놓고 미·중 정상이 마주 앉았는데도 정리된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집행하는 팀은 엉망진창 그 자체다. 외교사령탑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실세 측근들에게 밀려 존재감조차 없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낙마했고, 어제는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도 자리를 내놨다. 불확실성이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있자 호주로 향하던 미 핵항모 칼빈슨호의 항로를 한반도로 돌리고 전략자산을 잇따라 투입하고 있다. 군사 행동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라는 트럼프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 등을 강행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한국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주요 당사자로 지칭한 적이 없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일본 하고만 상의했다.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전화로 “사드에 대한 미국 입장을 중국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에 안도하는 눈치다. 그러나 20분간 통화하면서 얼마나 밀도 있는 협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할 채널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트럼프의 외교안보 정책이 안갯속일수록 한국이 중심을 잡고 대응을 주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 편승할 생각은 그만두고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대북 압박과 함께 북한과의 대화도 촉구해야 한다.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이라면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북한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선후보들도 안보불안을 씻을 수 있는 외교·안보 구상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국과 중국을 향해 할 말을 하면서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방안을 내놓을 때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향 사설] 안철수 후보가 넘어야 할 산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당 경선에서 최종 75%를 얻어 19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안 후보는 지역별 경선 압승에 따른 컨벤션 효과와 자강론에 힘입어 경쟁자인 손학규·박주선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낙승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일약 여론조사 지지율 2위로 수직상승하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안 후보는 2012년 대권에 처음 도전했으나 완주하지 못했다. 그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저 안철수, 2012년보다 100만배 강해졌다”고 했다. 안 후보는 연설 곳곳에서 꿈과 미래를 강조했다. “미래를 여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확실히 과거보다 권력의지가 단단해진 게 느껴진다. 그러나 미래 대통령을 꿈꾸는 안 후보에겐 현재 놓인 난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수구보수와 개혁 사이 모호한 정체성을 지적받고 있다. 보수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보수층은 안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선지 안 후보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남북 문제 등 여러 현안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선에선 통했을지 모르지만 본선에선 이런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양쪽 모두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은 문재인 후보와의 맞대결”이라고 했다. 지금 국민의당은 39석으로 원내 3당에 불과하다. 민주당(120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당세다. 설사 집권을 하더라도 제대로 국정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3당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호남당의 외연을 어떻게 확장시킬지 궁금하다.

안 후보는 새 정치를 표방하며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켰지만 시민들이 바라는 새 정치를 실천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 20대 지지율은 11%, 30대는 13%에 불과했다. 문 후보의 20대(40%), 30대(44%) 지지율 3분의 1도 안된다. 정치 입문 당시 열성적이었던 20~30대 민심 이반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그를 돕던 주변 인물들이 상당수 떠난 것도 포용력 부족 때문이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그동안 안 후보는 누구를 반대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연대에 일관되게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박지원 대표 등 당내 일각에선 연대론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며 엇갈린 행보를 걷고 있다. 그래서 안 후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당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안 후보는 이런 의문에 대해 단순히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이란 점을 보여줘야 한다.


[경향 사설]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정의의 출발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사필귀정이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나타났듯이 국정농단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는 불가피하다. 일부 친박 세력은 불구속을 주장했지만, 14개의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수사 방해와 증거인멸에 골몰하는 피의자에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고 수백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현대차 등 재벌로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으로 774억원을 강제로 모금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했다. 최씨 딸 정유라씨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사직을 강요하고, 포스코나 KT 등에 압력을 넣어 사익을 챙겼다. 삼성 외 SK·롯데·CJ 총수들과도 사면 등을 대가로 검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6초간 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한 29자 발언이 전부였다.

검찰의 영장 청구는 안타깝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2년여 전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영장 청구를 계기로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신뢰를 받는 공권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농단을 비호하고 검찰을 사유화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검찰 내 ‘우병우 라인’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

공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다. 영장을 심사하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나 특정 세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 바란다. 참담하고 착잡하지만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21일 검찰에 소환되는 박근혜, 진실 밝힐 마지막 기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늘 검찰 조사를 받는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 네 번째다.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 죄를 지었으면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은 사필귀정이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전직 국가원수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의 죄는 무겁기 그지없다. 적용 혐의만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비밀누설 등 14가지에 이른다. 검찰은 그가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강요 등을 공모했다고 보고 9가지 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그에게 뇌물수수 등 5개 혐의를 추가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은 ‘박근혜 게이트’다. 박 전 대통령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신성한 권한을 일개 민간인에게 넘겨 국정 문란을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불법과 비리의 정점에 그가 있다는 사실이 특검과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공범인 최씨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그의 부하들도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그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구속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지금껏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10월 언론을 통해 게이트의 일부가 드러났을 때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갑작스럽게 개헌 카드를 들고나온 바도 있다. 여론이 나빠지자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해놓고는 말을 바꾸고, 일정이 공개됐다는 이유 등을 들어 특검의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을 늦추기 위해 온갖 꼼수와 억지를 부렸으며, 한국자유총연맹 등을 통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동원을 시도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자기 한 몸 건사를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헌재는 “피청구인(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국정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가 혼란스럽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다. 헌재 결정에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알아야 한다. 피해자 행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13가지 혐의 외에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등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경향 사설] 검찰의 청와대·삼성동 압수수색 포기, 납득할 수 없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을 압수수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압수수색은 수사 초기 증거 수집이 목적인데 지금은 수사가 정점으로 가는 상황이라 필요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했는데 압수수색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이가 없다. 피의자가 출석하겠다고 하면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새로운 수사 방침인지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묻고 싶다.

수사가 정점이라는 설명도 이해가 안된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은 마무리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의혹, 안봉근·이재만 등 문고리 3인방의 비리 의혹 등 특검법에 적시된 대부분의 사건은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 청와대 지시와 재벌의 자금 지원으로 진행된 극우 보수단체의 ‘관제데모’ 등 특검 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그의 공범들은 이미 많은 범죄증거를 없앴을 것이다. 이영선 전 행정관 등이 개통한 수십대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은 대부분 폐기되거나 내부 자료가 삭제됐다. 특검이 확보한 우 전 수석의 휴대폰도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 등이 지워진 깡통폰이었다. 청와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된 지난해 9월 이후 문서파쇄기 26대를 구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압수수색은 지금도 유효하다. ‘수첩 공주’로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은 평소 기록을 꼼꼼하게 하기로 정평이 났다. 어딘가에 박 전 대통령의 개인 자료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청와대 공식 회의자료나 보고자료도 게이트 진상을 밝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특검이 수사 종료 직전까지 청와대 압수수색을 하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 포기는 청와대에 수사 기밀 등을 유출한 검찰 수뇌부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지난해 8~10월 김 총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수뇌부와 수시로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이 청와대와 우 전 수석을 수사하던 시점이다. 피의자가 검사와 내통한 셈이니 수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검찰이 청와대와 박 전 대통령 집을 압수수색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이번 수사는 결격이다. 또다시 특검을 출범시키는 수밖에 없다.


[경향 사설] 불확실성 걷어낸 5월9일 대선, 이젠 비전과 정책 경쟁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어제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선 날짜를 5월9일로 확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불거진 국정 불확실성이 황 권한대행의 결정으로 상당 부분 걷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황 권한대행은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재의 국가위기 대처와 안정적 국정관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정 안정과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제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 표명은 정치적 도의와 세간 평가를 두루 살핀 것으로 보인다.

그간 황 권한대행은 구 여권 인사 가운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낙마 이후 대권 지지율 1위를 유지해왔다. 구 여당 자유한국당은 마지막 여론조사 시작 전까지 후보 추가 등록을 허용하는 경선 특례 조항을 신설, 황 권한대행에게 ‘새치기’ 출마 길을 열어줬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의 출마를 옳지 않게 보는 시각이 엄존했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토록 돼 있다. 황 권한대행이 대통령 탄핵의 책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이유다. 또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국정을 차질없이 운영할 책무가 있다. 특히 대선이라는 게임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그가 선수로 뛰어드는 것에 유권자들이 거부감을 표명해오던 터다.

황 권한대행은 공정한 대선 관리에 진력해야 한다. 정권교체기 공직 기강 해이나 유력 주자 캠프 줄서기 같은 폐해도 막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고 상황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쳐야 함은 물론이다. 그의 역할은 파면된 대통령의 권한대행, 즉 파산 관재인 정도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대선 일자가 확정되고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안갯속 같던 정치 일정도 명확해졌다. 이제 시민의 시선은 더욱더 정당에 몰리게 됐다. 명운을 걸고 집권을 도모하는 것이야 제 정당의 목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공작, 흑색선전과 명분 없는 짝짓기, 인신공격, 가짜뉴스 배포나 댓글조작 같은 민심 왜곡의 구태가 재연돼서는 안된다. 인물에 대한 선호에만 의존한 ‘묻지마 지지’가 불러온 불행한 사태는 이미 겪어본 바다. 후보자들은 청와대 입성을 원한다면 마땅히 정책과 비전을 내세우고 자신과 세력의 실력을 유권자들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경향 사설] 새로운 나라를 향해 대장정을 시작하자

2017년 3월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는 새 장을 열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다. 시민들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 절차에 따라 무너뜨렸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숭고하고 준엄한 헌법 가치를 확인했다.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혁명을 이뤄냈다. 최고 권력자의 헌법 위반이란 비정상적인 상황을 헌법 질서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했음을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정의의 승리이고, 위대한 시민의 승리다.

헌재는 “피청구인(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고 판시했다. 재판관 8명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 파면 의견에 동참했다. 헌재는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이권 추구를 도우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면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위배를 적시했다. 헌재는 누구도 헌법과 법률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추상(秋霜)같은 논고로 헌법 수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가적 불행이자 비극이다. 하지만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그는 헌법을 위반했고, 법률을 어겼고, 주권자를 배신했다.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방치하고 국가기관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 그런데도 진솔한 사과나 반성 없이 변명과 꼼수로 끝까지 시민과 맞서 싸우겠다는 오기를 부렸다. 지난 4개월여간 대국민 약속을 밥먹듯 뒤집고 궁지를 모면하기에 급급한 모습은 차마 국가 지도자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헌재는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그 죄상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했다. 역사상 최초로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림으로써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요,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역진 불가능한 단계에 올라섰음을 온 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역사적 결정을 끌어낸 주역은 촛불이다. 남녀, 세대, 지역, 계층을 초월한 수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여 국정 문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4·19혁명부터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어떤 독재에도 굴하지 않고 이 나라를 되살려왔다. 시민들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찬란한 시민주권시대를 열었다.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하고 명예로운 시민혁명을 선보였다.
박근혜 정권의 퇴장으로 지난 50여년간 한국 보수의 기반이었던 ‘박정희 패러다임’도 함께 종언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보수세력은 박정희·박근혜로 대표되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적폐를 버리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안개처럼 자욱했던 정국의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60일 이내 치를 차기 대통령 선거는 국가 시스템 전반을 개조할 새로운 리더십 창출이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새 리더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적폐를 일소하고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적폐는 단지 박근혜 정권 때의 실정으로 쌓인 것만은 아니다. 길게는 분단 이후 지속된 결과이기도 하다. 임기응변이나 임시변통으로 해소할 일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민 다수의 의지를 모으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손잡고, 정당 간 협력과 협치를 통해 근본을 바로 세운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이게 나라냐’는 촛불의 울분에 ‘이것이 나라다’라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구체제 청산의 출발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기 위한 재벌개혁, 국정농단을 방임하고 은폐한 검찰, 정치개입을 일삼았던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개혁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좋은 정치를 위한 정당개혁과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선거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소득 불평등,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정권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언론개혁도 미룰 수 없다. 대통령직의 상실로 여당과 야당의 구분은 사라졌다. 정치권은 국가 개조를 위한 개혁과제를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책무를 나눠 져야 한다.

탄핵 이후 나라를 걱정하는 모든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누구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승복 외에는 다른 어떤 길도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의 최종 결정은 갈등의 끝이 되어야 한다. 탄핵 결정에 상심하고 분개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이들의 상실감은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은 ‘대선주자·당 대표 연석회의’를 열어 탄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시민통합을 선언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한·일 갈등과 같은 전대미문의 외교·안보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경제 환경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나라 안팎의 심각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셈법을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 위기 때마다 단합된 힘을 보였다. 다시 한번 ‘질서 있는 수습’을 통해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탄핵 전과 후는 달라져야 한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완성해 우리의 삶을 바꿔내야 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요, 시민의 명령이다. 우리 모두 새로운 나라를 향해 대장정(大長征)을 시작하자.


[경향 사설] 탄핵정권이 도둑처럼 사드 배치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이 기어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를 시작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그제 사드 미사일 발사대 2기 등 일부 장비를 국내에 반입했다. 당초의 하반기 배치 방침을 전격적으로 앞당긴 것이다.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 방침을 일절 비밀에 부쳤다.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 골프장은 부지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도 한 적이 없다. 배치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덜컥 장비부터 도입한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뒤집을 수 없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사드 배치는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시민 사이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다. 정상적인 정부라도 밀어붙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탄핵당한 정권의 과도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지도 않고 국회와 정당에도 비밀에 부친 채 도둑처럼 일을 처리했다. 박근혜 정권의 못된 습관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풀이한 것이다. 이런 사드 배치는 과도 정부의 월권이자 용납할 수 없는 폭거다.

정부는 사드 조기 배치가 국가의 안전과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가속화돼 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드가 군사적 실효성이 있을 때나 성립되는 말이다. 사드 미사일 48기로 1000기가 넘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설사 막을 수 있게 됐다 해도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방어망에서 벗어나 있다.

사드는 오히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사드 기지에 대한 군사 타격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 여행 전면 제한과 롯데의 중국 사업장 영업정지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과 관광업계는 경제적 손실로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거주 한국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미의 사드 배치 착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우리는 한·미 사드 배치를 결연히 반대하며 필요한 조치를 결연히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반발의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사드 배치 작업 착수 사실을 중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사드가 주변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만 늘어 놓고 있다. 그런 행동으로는 중국의 불만과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진 사드 배치 시점도 의심스럽다. 정부는 오로지 국가 안보 차원의 결정일 뿐 절대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사드가 주요 안보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그걸 모르지 않을 정부가 배치를 강행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해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드 도입은 단순한 미사일 방어 무기 하나 들여오는 일이 아니다. 미·중 대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북·미 갈등 등 종횡으로 대립하는 동북아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중대한 행위이다. 탄핵정국에서 안정적 관리에 집중해야 할 황 대행이 함부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안보 상황에 적절한 대안을 찾지도 못한 채 몰래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경향 사설] 대통령 집 사준 최순실, 이래도 ‘경제 공동체’ 부인할 텐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를 최순실씨가 사준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특검은 최근 최씨를 추가 기소하면서 최씨가 어머니 임선이씨(2003년 사망)와 함께 1990년 삼성동 주택 매매계약을 10억5000만원에 체결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공직자 재산 공개 때 기준으로 하면 삼성동 집 가격은 25억3000만원이다. 박 대통령의 삼성동 주택 매입 자금 출처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 살던 집을 판 돈으로 샀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직전까지 살았던 서울 장충동 집은 당시 6억원이었고, 삼성동 집값을 지불했던 1990년 7월에는 아직 장충동 집이 팔리지 않은 상태였다. 특검팀은 당시 삼성동 주택 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 업자로부터 최씨 등이 모든 계약을 진행했다는 증언과 대금 지급 방법 등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박 대통령 옷값도 댔다. 2014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최씨가 마련해준 의상과 액세서리 값은 3억원이 넘지만 박 대통령이 지불했다는 증거는 없다.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집과 옷을 사준 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경제적 공동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박 대통령은 최씨를 “과거 오랫동안 옷가지, 생필품 등 소소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라고 했지만 수십억원짜리 집과 수억원대의 의상은 결코 ‘소소한 것’이 될 수 없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매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장기간 호의를 베풀기는 어렵다. 최씨가 강원도 평창에 박 대통령 퇴임 뒤 거처를 준비한 정황도 있다. ‘모두 최씨에게 속았다’는 게 박 대통령 주장이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한 몸처럼 얽혀 있다면 최씨가 삼성 등 재벌·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은 박 대통령에게 간 것이나 다름없다.

최순실씨 개인 재산이 220억원이 넘고, 최씨 언니 등까지 합쳐 최씨 일가 재산이 2000억원에 이른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운영 외에는 특별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던 최씨가 어떻게 이 같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 보다 엄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최씨 아버지 고 최태민씨가 1970년대 새마음봉사단 활동 등을 하며 빼돌린 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특검이 최씨 재산에 추징보전을 청구한 것은 당연하다. 범죄로 얻은 수익이라면 모두 환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히고 석고대죄하는 것이 그나마 죗값을 줄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중국은 사드 보복 몰아치는데 정부는 무엇 하고 있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 확정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대한 직접적 압박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가 한국 관광상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관련 기업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껑충 뛰면서 금융시장까지 휘청였다.
중국 정부의 도를 넘은 보복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드 배치가 몰고 올 경제적 파장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수방관해온 한국 정부의 태도도 납득하기 힘들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제 파장이 커지자 “중국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대책을 적시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그렇지 사실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대응은 사드 배치 결정단계에서부터 안일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중국이 경제보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자 “몇가지 경우에 대해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롯데의 중국 사업장이 세무조사를 받고, 한국산 화장품이 수입 불허되고, 한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이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을 때도 “사드 보복으로 보기 어렵다”며 애써 눈을 감아왔다.

보복이 첨예화된 지금도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비상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소통으로 제재를 약화시키겠다는 발상도 순진한 생각이다. 중국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비관세장벽으로 상대국을 괴롭혀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나마 대기업은 버틸 체력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계약 파기, 통관 지연 등으로 쓰러진 중소기업이 부지기수이다. 중국의 관광 중단 조치가 가시화되면 항공·여행·면세점 등 관련 업계 피해가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기업들은 사드 배치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부담을 떠넘겼으면 외풍을 막아주고 위험요인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저 참고 견디는 방법 외엔 없다는 태도는 기업과 시민들에게 안보의 희생양이 되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사드 후폭풍이 더 커진 데에는 한국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가 큰 탓도 있지만 산업 다변화를 제대로 추진 못한 정부 책임도 크다. 피해 최소화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경향 사설] 탄핵 사유 하나도 없다는 박 대통령의 기막힌 최후변명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온 시민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박 대통령은 27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서 의견서를 통해 “단 한 번도 사익을 위해, 또는 특정 개인의 이익 추구를 도와주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탄핵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모금, 인사 개입,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그동안 특검 수사에서 증거와 증언으로 확인된 사실도 모두 부정하며 억지와 궤변만 늘어놓았다. 최후진술서는 박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그의 어처구니없는 상황 인식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최순실씨가 연설문을 수정한 것은 “보통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표현에 대해 조언을 들었을 뿐”이라고 예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을 시켜 대기업에 최씨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납품받도록 강요한 것은 “중소기업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둘러댔다. 참으로 뻔뻔하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대통령이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구조작업에 방해만 된다고 판단해 진척된 보고를 기다렸다”고 변명한 것은 궤변의 극치다. 관저에서, 머리 손질을 받으며 ‘비정상 근무’를 한 그가 정상적으로 보고받고 지시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책임과 비인간적 태도에 다시 한번 몸이 떨린다.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답변만으로도 그가 탄핵당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동안 특검·헌재의 출석 요구에 한 번도 응하지 않다가 헌재 변론 마지막 날 억지 주장을 펼친 노림수는 분명하다. ‘불쌍한 대통령 코스프레’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헌재를 압박해보려는 얄팍한 술수다. 이에 발맞춰 대리인단은 이날도 국회와 특검, 언론, 촛불을 싸잡아 비난하며 막말을 이어나갔다. 국정 농단에 이어 헌재 농단이다. 이제 이런 꼴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


[경향 사설] 외교부가 할 일은 부산 소녀상 이전이 아니다

외교부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소녀상 위치가 국제 관행상 바람직하지 않으니 적절한 장소로 옮겨달라는 공문을 부산 동구청 등에 보낸 것이다. 외교부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외교부는 부산 소녀상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일본에 끌려다녔다. 처음에는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하더니 일본이 주한대사를 소환하자 “국제 예양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번 소녀상 이전 요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 측에 계속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겠다”며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서고 있다. 가해국 일본은 큰소리치고 피해국인 한국은 내부 갈등을 겪는 본말전도의 현실이 참담하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는 부산 소녀상 설치를 금지하는 내용이 없다. ‘소녀상이 해결되도록 적절히 노력한다’는 조항은 있지만 그 대상은 서울 소재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다. 일본은 상대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지킬 책무를 규정한 ‘빈 조약’ 22조를 근거로 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격한 시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조약을 토대로 부산 소녀상 설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일본의 주장일 뿐이다. 부산 소녀상의 도로교통법 위반 여부는 엄연히 한국 소관이지 일본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이 위안부 문제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 등 지도자들이 입만 열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런 적반하장식 행태를 지적하지 못하고 쩔쩔 매기만 하는 외교부의 태도다. 오만한 일본, 저자세 한국의 구도는 이면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외교부의 소녀상 공문은 외교적 제스처의 성격도 띠고 있다. 실제로 이것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독일 뮌헨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이 노력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됐다. 국가관계에서 때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원칙마저 양보해서는 안된다.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근원인 위안부 문제 합의를 손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지금 외교부가 할 일은 부산 소녀상 이전이 아니다.


[경향 사설] 재판관 모독한 박 대통령 대리인의 행태, 도를 넘었다

탄핵심판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16차 변론에서는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모독하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는 막장극을 벌였다. 강 재판관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질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탄핵 위기에 몰렸다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들까지 무더기로 신청을 한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 측이다. 증인들이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거짓 가능성이 높은 발언을 하면 재판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최종 선고에서 강 재판관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뻔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은 이날 또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 정세균 국회의장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억지를 부렸다. 일부 대리인은 신성한 법정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언하는 등 무례의 극치를 보였다. 이 같은 행동이 헌재 재판관들을 자극해 대리인단 전원 사퇴 명분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보조를 맞추려는 듯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검 수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기간 연장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과 알량한 법 지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고 시민과 국회를 능멸해온 우 전 수석은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모든 것을 박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다. 묵인·방조 수준을 넘어 국정농단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한두 건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찍어내기’ 인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방해, 개인비리 의혹 등 그의 혐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 전 수석 비리 규명은 특검 수사의 곁가지가 아닌 본류다. 황 대행은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하고, 특검은 보강 수사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경향 사설] 김정남 살해 배후 북한, 억지부릴 생각 마라

말레이시아 경찰이 어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 사건 배후에 북한이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 경찰부청장은 사건 발생 후 처음 연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연루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범행 후 출국한 4명의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용의자들이 북한 정보국 소속인지 여부, 용의자들의 행방은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검거한 리정철과 출국한 4명 외에 다른 북한 국적자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암살이 북한의 소행임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통일부도 “김정남 피살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다고 본다”며 “무모하고 잔학한 암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논평했다.

이번 암살은 당초 베트남·인도네시아인 등이 연루된 청부살인이어서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 가까운 말레이시아 당국조차 덮을 수 없을 만큼 북한의 개입이 충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는 말레이 당국에 대해 시신 인도를 요구하며 부검에 반대하는 등 진실 규명을 방해했다.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한국 등 적대세력과 결탁했다며 말레이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억지까지 썼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보여야 할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저버림으로써 북한의 궁박한 처지만 확인한 꼴이다.

북한은 그동안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 아래 핵개발 등 모험적 행동과 대남 군사도발을 감행해왔다. 인권 무시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부정해왔다. 그러나 이번 김정남 암살로 이런 명분과 주장이 모두 허구임이 드러났다.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독극물로 최고 지도자의 혈육을 살해하는 무도한 깡패국가임을 자인했다.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이 같은 테러를 저지르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당장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을 테러국으로 재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진실이 드러난 만큼 북한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 상무부는 그제 유엔 대북 제재 결의의 이행을 위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친중파인 김정남 살해에 대한 대응 조치로, 우방인 중국의 인내심마저 고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3대 세습과 지속적인 숙청, 공포정치는 정상 국가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번 암살은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김정남 암살을 시인·사과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경향 사설] 이재용 구속이 의미하는 것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센 재벌 총수라고 해도 죄가 무겁고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으면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은 당연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지난달 법원의 1차 영장 기각에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성역 없이 수사를 진행한 덕분이다. 한정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 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제 위기설 등을 들고나온 재계와 보수 언론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특검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대가를 바라고 자발적으로 박 대통령과 최씨 측에 호의를 베풀었다. 지난해 10월 독일에 있는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20억원이 넘는 ‘블라디미르’라는 명마를 제공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최씨의 비위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씨 강요가 있었다면 삼성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8월 최씨가 세운 독일 유령회사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도 재벌 중에서 가장 많은 204억원을 냈다. 특검은 이 모두를 이 부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 대통령 등에게 건넨 뇌물로 판단했다.

뇌물은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죄가 훨씬 무겁다. 뇌물 공여 피의자인 이 부회장 구속으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더욱 뚜렷해졌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중대 변수가 생겼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동흡 변호사는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자충수가 됐다.

그러나 아직 특검이 갈 길은 멀다. 청와대가 재벌의 돈을 뜯어 극우·보수단체에 지원해 벌인 ‘관제데모’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수사는 손도 못 댔다. 박근혜 정권과 SK·롯데·CJ 등 다른 재벌의 유착도 파헤쳐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남은 기간은 10일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최장 구속 수사 기간인 20일에도 못 미친다. 시민들은 특검이 국정농단 세력을 단죄하고 사회 적폐를 해소하기를 바라고 있다. 수사 기간 연장 승인권을 갖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주권자인 시민들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경향 사설] 미국의 북 선제타격론에 편승하는 게 북핵 해결책인가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 이후 미국의 대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는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을 직접 거론,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한반도에서 실시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데 양국이 합의했다. 북한도 연일 초강경 대응을 공언하고 있다. 협상 한 번 없이 북·미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그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발언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윤 장관은 “(대북 선제타격론이) 과거보다 미 의회, 학계 등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고 일부 행정부 내에서도 그런 데 대한 검토나 분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어제 “미국 조야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선제타격을 거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국방장관회담을 포함해 양국 간 이야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 행정부 외교안보 담당자들의 언행은 대북 강경 분위기를 반영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은 그제 “(미국이) 곧 다른 신호를 북한에 보낼 것”이라며 “상상을 뛰어넘어 의심의 여지 없는 수준의 군사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도 “북한의 위협을 단념시키고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선제타격이 눈앞에 있지 않다고 해도 윤, 한 두 장관의 처신은 주무장관답지 않다. 북한과 미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여과없이 선제타격론을 전하는 것은 혼란과 불안을 낳을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과장하며 상황을 위기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오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조기 배치 명분을 찾기 위해 상황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북한을 상대로 한 선제타격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인들의 명운이 걸린 사안을 마치 남 얘기하듯이 말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에 편승하는 외교안보정책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북 압박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미국을 향해 한국의 의사에 반하는 대북 정책, 특히 북한에 대한 예방적 선제타격은 절대 안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경향 사설] 탄핵반대 관제데모 총동원령 박 대통령 지시인가

정부 지원을 받는 한국자유총연맹이 오는 3·1절에 회원 10만명을 서울에 집결시키려는 계획이 들통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에 참가자를 동원하기 위한, 전형적인 ‘관제 데모’ 시도로 보인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자유총연맹 본부는 전국 시·도지부에 “다음달 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구국기도회에 회원 10만명을 동원할 예정”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구국기도회는 극우단체인 애국단체총연맹이 주관하는 행사다. 자유총연맹은 이전에도 세월호 진상조사 반대 집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에 회원들을 불러모아 물의를 빚었다. 여론을 조작하고 민의를 왜곡하는 이런 행위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이자 중대 범죄이다.

자유총연맹 관제 데모의 배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 철새’ 김경재 회장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관변단체에 권력자의 하수인을 앉히고 이를 통해 정권에 우호적인 여론을 퍼뜨리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이 상용하던 수법이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극우 성향 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추운 날씨에 계속 나오시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고생을 무릅쓰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지만 ‘그분들’ 상당수는 동원됐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관제 데모’는 청와대가 지시하면 재벌이 돈을 대고 극우·보수단체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 3년간 삼성·현대차·LG·SK 등 4대 재벌에서만 극우·보수단체에 70억원가량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2015년 하반기에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연락한 정황도 확보했다. 박 대통령 탄핵 관련 가짜 뉴스도 극우·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김경재 회장은 “정통한 정보에 의하면 헌법재판관 두 명의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한다”며 탄핵 기각설을 퍼뜨리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헌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질러 탄핵당할 처지에 놓인 권력자를 도우라고 있는 단체가 아니다. 자유총연맹의 관제 데모는 그 자체로 위법 소지가 있다. 자유총연맹은 관련 법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고 있다. 올해 국고 지원액만 2억5000만원이다.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감독 당국은 자유총연맹에 대한 조사를 벌여 지원금 반환 조치 등을 취해야 한다.


[경향 사설] 국정공백은 국회 탓이고, 특검 거부했어야 했다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제는 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특검 조사를 거부하더니 어제는 ‘국정 공백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원인이고, 특검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발언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이제 주권자와 전면전을 선포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5000만명이 시위를 해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던 김종필 전 총리의 예언이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손범규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자기들(국회)이 탄핵을 해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정 마비를 일으켰다. 제대로 된 증거와 확실한 혐의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야당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탄핵부터 감행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혼란이 박 대통령의 비리와 헌법 위반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주권자의 뜻을 받들어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지금도 절대 다수의 시민이 헌재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바라고 있다.

손 변호사는 “탄핵을 위한 자료 수집 의미를 갖는 특검을 야당이 통과시킨 것이라 처음부터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도 했다.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반헌법적·반민주적 발상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했다. 특검 수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박 대통령이 자청한 일이다. 특검법안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다수가 지지해 78%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박 대통령은 탄핵 결정을 지연시키겠다는 의도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손 변호사는 탄핵심판에 참여 중인 대통령 대리인단 전원 사퇴와 대통령의 최후 변론 출석에 관해 “배제할 이유가 없다. 가능하다”고 말했다.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탄핵심판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계산이다. 다행히 어제 열린 12차 변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 측의 불필요한 증인 신문을 적극 제지하며 신속한 재판 진행 의지를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이상 법을 바꿔서라도 특검 수사 기간은 연장돼야 한다.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주권자에 도전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들을 응징하고, 헌재는 박한철 전 소장이 밝힌 대로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3월13일) 전 선고가 이뤄지도록 재판을 이끌어야 한다.


[경향 사설] 최순실을 평범한 가정주부로 알았다는 박근혜표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거짓말을 감추려면 다른 거짓말을 더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악순환에 빠졌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낸 ‘소추 사유에 대한 피청구인의 입장’이라는 의견서에서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각했고 그녀가 여러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음”이라고 적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등이 최씨에게 속아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40년 지기인 최씨를 작년까지 평범한 가정주부로 알고 있었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어이가 없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설립과 모금에 대한 세부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하는 등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범이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기밀 유출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부하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탓으로 돌렸다. 박 대통령은 의견서에 “(정 전 비서관에게)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어서 참고하라고 한 것”이라며 “연설문, 말씀 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들을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거짓말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문서를 전달한 것은 박 대통령 지시였다고 이미 검찰에서 자백하고 법정에서도 진술했다. 헌재 재판관들이 박 대통령 주장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박 대통령은 언론 취재와 특검·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에도 ‘오리발’을 내밀었다. 지난달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와 극우 성향 언론인과의 인터뷰 등에서는 “완전히 엮은 것”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 내용도 지키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해놓고는 거부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압수수색 불가 방침으로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말도 뒤집었다. 박 대통령의 파렴치 행태는 끝이 없다. 특검이 어제 수사 기간 연장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검법상 1차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까지인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결정으로 한 달간 연장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거짓 증언과 수사 방해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은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특검은 수사 강도를 더욱 높여 박 대통령의 증거 은폐 의혹까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미 상원에서 나온 대북 선제 타격론을 경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에서 선제타격론 등 대북 강경론이 나오고 있다. 밥 코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그제 외교위원회 주최로 열린 청문회에서 “제재만으로는 북한의 핵 개발을 포기시킬 수 없다”며 “미국이 발사대에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격할 준비를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비군사적 수단을 이용한 정권교체 모색’도 거론했다.
코커 위원장의 선제타격 공언은 북한을 보는 미국 내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담당자들의 발언에서도 이런 흐름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6자회담을 통한 협상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핵 시설을 재래식 무기로 격퇴할 방안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북한 잠수함의 격침 등 군사적 대응 카드를 언급했다.

외교적 수단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즈음해 대북 선제타격 논의와 구상이 부상하는 현상은 분명 주목되는 일이다.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을 준비했던 1차 북핵 위기 때와 달리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현실화하고 탄두 소형화 및 운반체 개발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시점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 징후가 명확하면 선제타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 능력을 예방 차원에서 제거한다는 개념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위험천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결코 전쟁을 촉발하는 그런 무모한 모험에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고 동의가 없는 한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포기해야 한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결정한 만큼 당분간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기만 한다면 북한의 핵 개발 필요성과 정당성만을 강화해줄 것이다. 또한 한반도 긴장을 조성, 안보와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유엔 결의안의 취지는 북한을 압박하면서 대화도 병행하라는 것이다. 압박의 목적은 대화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강압적 수단만 동원한 미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경향 사설] 설 민심 왜곡하려는 박근혜의 황당한 음모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극우 논객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누군가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고 주장했다.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라고도 했다. 지난 1일 새해 첫날 기습 기자간담회에서 최순실씨 국정농락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음모론까지 더했다.

인터뷰는 질문도 답변도 황당했다. 탄핵 본질과는 무관한 ‘청와대 굿’ ‘정윤회 밀회’ ‘정유라 딸’ 같은 시중 루머에 대한 문답이 대부분이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전직 대통령비서실장과 두 명의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차관이 줄줄이 구속되고 문체부 간부들은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해 “뇌물죄도 아닌데 구속은 과하다”며 감쌌다. 최순실씨 국정농단에 대해서는 “말이 안된다”며 그동안 확인된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서는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그런 비하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뜬금없이 여성혐오론을 들고나왔다.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아직도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다. 기자회견도, 인터뷰도 해서는 안된다. 우스꽝스럽게도 박 대통령이 국내 언론과 단독 인터뷰를 한 것은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탄핵 유폐 중 보수 성향의 인터넷 방송을 콕 집어 자기 변호를 늘어놓은 이유는 자명하다. 설 연휴를 활용해 악화된 민심을 돌려놓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때를 맞춰 최씨는 역공에 나서고,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중대 결심 운운하며 전원 사퇴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박 대통령 지지모임인 ‘박사모’는 탄핵의 부당성을 알린다는 유인물 300만부를 찍어 귀성객들에게 배포한다고 한다. 특검 수사를 흔들고 헌재의 탄핵 심리를 지연시키기 위해 관련된 인물과 단체가 조직적 반격에 나선 공모의 냄새가 짙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농단을 파헤치는 검찰 수사나 헌재의 출석 요구에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뒤로는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펼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대통령 자리를 끝까지 못 내놓겠다는 오기로밖에 볼 수 없다. 그에겐 이제 더 기대할 것도 없다. 할 말이 있다면 특검과 헌재에 나가 당당히 입장을 밝히란 주문도 무의미하다. 헌재는 남은 심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이런 해괴한 꼴을 더는 보지 않도록 종결시켜 주기 바란다.


[경향 사설] TPP 탈퇴로 보호주의 실행한 트럼프의 모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의 본색을 예상보다 빨리, 더 강력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무역협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걷어찬 것이다. 전날 백악관 참모진 시무식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추진을 밝힌 데 이어 자국 위주의 보호무역주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로 강력하게 보호무역주의를 드러낼지 대부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이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발을 빼고 보호무역주의로 나가면서 세계무역 질서는 대격변의 전환기를 맞게 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세계시장의 위축, 미·중 간 주도권 경쟁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외국의 싼 제품이 물 밀듯 들어와 미국의 일자리 감소, 부채 증가, 중산층 붕괴를 일으켰다고 본다. 따라서 공장을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고 이를 통해 성장, 궁극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한다. 언제든 주먹을 휘두를 준비도 돼 있다는 뜻이다. 조약이나 협상을 무효화하거나 재협상을 벌여 유리하게 바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물려 굴복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명목상 ‘미국 우선주의’이지만 힘의 우위를 통해 패권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무역협정을 거부하고, 미국에 해가 되는 국가에는 철퇴를 내릴 것”이라는 백악관의 경고는 노골적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의 간판을 내건 이상 한국에 닥칠 위협은 시간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선기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 내 일자리 10만개가 줄어들고 무역적자도 두 배로 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3.4%,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23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재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을 중국 등과 함께 환율조작국으로 몰아갈 우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룰 브레이크’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기업들은 앞으로 보호무역주의의 높은 장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향 사설] 지연책 쓰는 박근혜, ‘빠른 탄핵’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향 사설] 납득할 수 없는 이재용 영장 기각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 법원에서 기각됐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지금까지의 특검 수사 결과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요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이다.

사법부 판단은 존중하지만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인신 구속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법원은 수사에 미진한 점이 있고 의심이 들면 마땅히 구속영장을 기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다. 수십명의 전관 변호사를 병풍처럼 세운 재벌 총수가 아닌 일반인이었어도 법원이 이처럼 결정했을까. 23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법은 평등하지 않았고 상식은 또 한번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경제 위기론과 재계 및 보수세력의 압박에 법원이 무릎을 꿇었다는 지적도 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본다.

이 부회장의 핵심 혐의는 박 대통령 등에게 뇌물을 줬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 측에 건넨 433억원의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냈다는 이른바 ‘피해자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당시 경영권 승계가 걸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박 대통령과 정부 도움이 절실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부정한 방법으로 국민연금공단의 지원이 이뤄진 정황이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뇌물의 대가로 박 대통령에게 경영권의 안정적 승계라는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규정했다. 특검은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2015년 6월 말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성사될 수 있게 잘 챙겨보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법원도 이를 인정해 문 이사장의 구속영장을 지난달 발부했다. 그래놓고도 이 부회장의 청탁과 이 부회장이 건넨 돈의 대가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 판단대로라면 일련의 사건이 모두 독립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 출연 외에도 최씨 모녀를 직접 지원했다. 재단 출연이야 다른 재벌·대기업도 했다지만 삼성은 승마 유망주 육성 명목으로 2015년 8월 최씨가 세운 독일의 페이퍼컴퍼니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송금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최씨를 콕 집어서 지원한 것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도 부정한 청탁이 없다고 봤다.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 자신의 영장이 청구됐다는 점도 호소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뇌물 수수자보다 뇌물 공여자를 먼저 구속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종 타깃이 박 대통령인 만큼 특검 입장에서는 이 부회장 신병 확보가 절실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고 해서 이 부회장이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검도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의지를 밝혔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매우 유감이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특검은 추가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SK·롯데·CJ 등 다른 재벌 총수의 뇌물 공여 의혹 수사도 계속돼야 한다. 특검의 분발을 촉구한다.


[경향 사설] 박 대통령, 기자간담회 접고 헌재 나가라

박근혜 대통령이 설 전에 또 기자간담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청와대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열되, 장소 사용료 등을 박 대통령 사비로 낼 것이란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자숙은커녕 변명만 늘어놓을 궁리를 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 정지 상태다. 기자회견도 해서는 안된다. 지난 1일의 기자간담회도 불법이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식 회견이 아닌 간담회 형식을 취했지만 홍보수석 등 청와대 공조직이 동원되고 청와대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고도 기자들에게 촬영과 녹음 등을 금지한 채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냈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공언한 검찰 수사를 편파적이라며 거부했다. 탄핵 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 조사와 재판 출석을 거부하고 언론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강변하는 피의자를 본 적이 있는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헌재의 증인 신문에 불응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사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영선·윤전추 행정관은 서로 짠 듯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며 나라와 시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하루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과 관련해 헌재에 답변서를 제출했지만 내용이 부실해 퇴짜를 맞았다. 게다가 특검 수사와 최순실씨 재판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사건에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이 회의에 박 대통령도 참석한 정황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 매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 결정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속셈이다. 공범들과 말 맞추기를 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강제 모금 의혹에 대해서는 “선의의 통치 행위일 뿐, 사익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특검 조사에서 자신이 이같이 말하겠다는 것을 최순실씨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꼼수는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헌재에 출석해 의혹에 관해 사실대로 밝히고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경향 사설] 동생·조카 부패혐의 몰랐다는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하기 전날인 어제 그의 친동생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는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초고층빌딩 ‘랜드마크 72’의 매각을 위해 중동 관료들에게 50만달러의 뇌물을 주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이들의 범죄를 매우 무겁게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반 전 총장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동생·조카 문제는 이미 알려진 사건으로, 반 전 총장의 연루설이 계속 제기돼왔다. 2013년 자금 압박에 몰린 경남기업이 회사고문인 반기상씨와 미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그 아들 주현씨에게 랜드마크 72의 매입자 알선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카타르 관료의 가짜 대리인에게 속아 돈만 날렸다. 이 과정에서 주현씨가 경남기업에 제시한 카타르 투자청 명의의 인수의향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매각이 무산되자 경남기업은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국내법원에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6억5000만원을 배상받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은 바로 반 전 총장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인물이다. 2015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반 전 총장을 후원한 것 때문에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관계인 만큼 경남기업과 기상씨 간 계약 체결이 반 전 총장과 무관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주현씨가 큰아버지인 반 전 총장과 카타르 국왕 간 면담을 주선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이 이들이 기소되는 것 자체를 몰랐다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정치 신인이지만 그의 출발이 신선하지는 않다. 비전·정책은 따지지도 않고 충청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지역주의는 구태일 뿐이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지지단체들의 모습에서도 신선함을 찾을 수 없다. 반 전 총장은 에둘러 말하는 애매한 화법으로 비판받아왔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일성으로 박연차씨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되어야 한다. 동생의 기소를 마치 남의 일로 치부하듯 해명한다면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의 산뜻한 출발을 기대한다.


[경향 사설] 대결과 편중에서 평화와 균형 외교로

구체제 청산을 위한 7대 과제

박근혜 정부 4년의 외교는 끝없이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역대 최상이라고 자랑하다 얼마 안 가 배신감을 표명한 한·중관계가 대표 사례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의심을 사면서 톈안먼 성루에 올랐지만 이것이 균형외교 차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겨우 한 달 뒤 미국을 방문해 중국 견제 발언을 했던 것이다. ‘시계추 외교’ ‘미국 편중 외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위안부 문제의 진전없는 관계 개선은 불가하다고 큰소리치다 돌연 위안부 합의로 돌아섰다.

이런 오락가락 외교는 북핵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핵 해결에 외교 역량을 집중한다던 정부는 대북 대결적 태도로 일관했다. 다양한 접근 방식을 버린 채 ‘선 핵포기 후 지원’ 원칙을 내세워 대북 제재·압박만 고집했다. 북핵과 북한 문제를 분리 접근해야 한다는 투트랙 대응 전략의 필요성도 무시했다. 4차 북 핵실험 후엔 개성공단 문을 닫았고, 대북채널을 모두 끊었다. 북핵 해법이 아니라 북한 고사작전이었다.

외교적 갈등이 발생하면 대립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내 설득과 지지 획득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모두를 외면했다. 외부의 경제 제재와 압박만으로 안보 정책을 포기한 역사적 사례는 없다. 오히려 안보 심리를 자극해 핵 개발 등을 통해 안보 강화에 더욱 매달리게 할 뿐이다. 북한 역시 지난 7년 동안 핵능력을 고도화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달라지지 않는다. 외교부는 올 업무보고에서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압박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원칙도 철학도 일관성도 없는 박근혜 정부 외교는 파산 직전이다. 줄 것 다 줬지만 얻은 것은 기대 이하다. 대통령은 열심히 중국과 미국, 일본을 오갔지만 외교적 지렛대만 잃었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이후 연일 경제적 보복조치로 압박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위안부 합의에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체결해줬지만 양국 관계가 발전하기는커녕 부산 소녀상 문제로 더 악화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화해와 교류협력 대신 불신과 대결로 치닫고 있다. 남북간 군사적 충돌과 전쟁 위험을 걱정할 단계까지 와 있다. 이 때문에 지금 한반도는 최악의 안보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고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기여한 것도 아니다. 갈수록 발전하는 미·일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한 한·미동맹은 동북아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로 재편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견국가로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한껏 좁아졌다.

어디 한두 군데만 손보는 것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한국 외교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대결과 편중 외교를 평화·균형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들, 동북아 안정을 해치는 행태를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좋다.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안정 구축은 북핵 해결과도 연결된다. 북핵은 근본적으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외교 기조를 바꿔야 할 절박한 이유는 또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달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올해 집권 2기에 들어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도 하기 전에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해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흔들었다. 힘을 앞세운 두 지도자의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굴기’ 정책은 한반도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올해 한반도는 두 사람을 포함해 ‘정상국가’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강한 러시아’ 정책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4명의 ‘스트롱맨’이 각축전을 치열하게 전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히 역내 정세 불안정을 초래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제질서 변환과 동북아 역학관계 재편을 예고하는 전환기적 도전이다.

그렇다고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의 비개입주의는 한국이 자율성을 갖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외개입을 줄이고 국내 문제에 집중한다면 한·미동맹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한국에 자주외교의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이런 외부 여건이 아니더라도 중견국가의 위상과 지정학적 배경을 토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더 이상 국제정세의 종속변수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북핵 문제다. 한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미래가 좌우된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북·미 간 적대관계도 해소해야 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비용 부담 축소를 공약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야말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남북관계부터 복원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이야말로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미관계,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지렛대다.


[경향 사설] 아베의 진주만 위로는 뭐고, 방위상의 신사 참배는 뭔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공습한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했다. 사죄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일본의 총리로서는 처음 애리조나 함상 추도시설을 찾아 희생자들을 위로함으로써 미국에 사과하는 모양을 갖췄다. 그런데 어제 하와이를 함께 방문한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전날 부흥상의 참배에 뒤이은 것이자, 현직 방위상으로서는 첫 야스쿠니 참배였다. 아베 총리가 아시아 국가를 제쳐놓고 미국에 대해서만 사과한 것도 부족한데 바로 다음날 방위상이 보란 듯이 전범들을 찬양하고 나선 것이다.

두 장면은 자민당 정권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베는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했지만 아베의 일본은 쉴 새 없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치닫고 있다. 말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부전(不戰) 맹세’를 준수한다면서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는 사과하는 척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사죄는 철저히 거부하는 것 역시 진지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고도 모자라 방위상 등 각료들로 하여금 야스쿠니를 참배하도록 한 것은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농락하는 행위다. 하와이를 방문한 데 대한 국내 극우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일본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는 상대국들의 선의를 우롱한 이율배반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되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일본의 태도 못지않게 한국 정부의 대응도 유감스럽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어제 성명과 함께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와 무관을 각각 불러 항의했다. 외교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조치일지 몰라도 시민의 눈에는 공허하기만 하다. 더구나 일본의 도발을 우려해 신중을 기하자는 여론을 물리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북한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언제까지 이렇게 농락만 당하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계속되는 대일 외교 실패와 무능이 절망스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출범에 즈음해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외교안보 당국의 각성과 날로 강화되는 일본의 도발적 행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경향 사설] 프랑크푸르트 활보하는 정유라, 재산 빼돌린 최순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지명수배된 정유라씨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목격됐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정씨는 현지 교민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탑승해 도심 번화가에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국정농단의 최대 수혜자이자 핵심 피의자인 정씨가 수배 중에도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고 공권력이 직접 미치지 않는다고 당국은 수수방관하는 것인가. 항간에는 정씨 뒤를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봐주고 있으며 정씨가 스위스로 망명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정씨는 이화여대 부정 입학으로 한국 사회 최후의 보루인 입시 공정성을 뒤흔들었다. 그래놓고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올려 또래들을 멸시하고 세상을 조롱했다. 철이 덜 들었다고 치부하기엔 죄가 너무 무겁다. 입시 부정뿐 아니라 이를 매개로 이뤄진 대학과 정권 간의 부정한 거래, 정권 실세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특혜를 베푼 대학교수들의 일탈을 밝히기 위해서도 정씨에 대한 수사는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영수 특검팀이 “정씨에게 국내외 도피 등 편의를 제공하거나 증거인멸을 시도할 경우 형법상 범인 도피 및 은닉, 또는 증거인멸에 해당한다”고 비호 세력에 경고를 보낸 것은 당연하다.

최씨의 수감에도 정씨가 독일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이들 모녀가 외국으로 빼돌린 비자금과 삼성의 승마 지원금 등이 도피 용도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독일에 여러 개의 수상한 사업체와 비밀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확인한 ‘비덱’과 ‘더블루K’만 해도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페이퍼 컴퍼니인 이들 회사는 이름만 다를 뿐 사업 목적이나 정관 등이 완전히 똑같다. 한 회사로 충분한 것을 굳이 두 곳으로 쪼개 놓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씨는 독일에 부동산도 많이 소유하고 있다. 언론이 확인한 것만 호텔 1채와 주택 3채이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씨의 해외 재산 규모가 8000억원에서 최대 10조원에 이르며, 이 같은 재산 형성 과정에 최씨의 아버지인 고 최태민씨가 관련됐다는 설도 있다.

최씨 모녀가 국내 재산을 적법한 절차 없이 해외로 빼돌렸다면 불법이다. 신고하지 않고 외국의 부동산을 취득했다면 몰수나 추징이 가능하고, 반출된 재산이 국내에서 최초 신고된 흔적이 없다면 탈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특검은 독일과의 긴밀한 사법 공조로 정씨의 신병을 조속히 확보하고, 최씨의 재산 형성 과정과 해외 은닉 재산에 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경향 사설] 탄핵 가결 열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시민들은 박 대통령 퇴진이 헌법과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당·정·청은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되레 탄핵민심을 짓밟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헌법 위반 5건, 법률 위반 8건의 탄핵 사유를 모두 부정했다. 나아가 “최순실 등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헌재는 충분히 사실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탄핵심판 진행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헌재가 검찰과 특검에 수사자료를 요청하자 곧바로 이의신청을 낸 것 역시 명백한 지연 전략이다. 그러면서 “최순실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측근비리가 발생한 역대 대통령도 모두 탄핵 대상”이라는 따위의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왔다. 정유라 친구 아버지의 현대차 납품 특혜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터무니없는 변명 일색이고 시민 상식과 거리가 먼 억지 주장이다.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란 주장에 이르러선 차라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수차례 대국민담화를 통해 울먹이며 시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위선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살고 보겠다는 ‘막가파’식 태도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원내대표에 이어 비상대책위까지 접수하려는 ‘도로 친박당’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 중이다. 친박계 추대와 지지로 뽑힌 신임 정우택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내년에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또 좌파, 색깔론 타령이다. 어제는 비대위원장을 놓고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유승민 불가론’을 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 위반과 범죄행위의 실질적 공범이고 부역자 집단이다. 대통령과 함께 친박도 탄핵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석고대죄하기는커녕 여전히 대통령을 감싸며 한 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니 아예 민심과 담을 쌓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정당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마찬가지다. 황 대행은 연일 지위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보를 하고 있다. 황 대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고, 임시로 과도기를 이끄는 탄핵 시기 국정의 관리자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동반퇴진해야 할 총리가 속죄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마치 선출된 대통령이나 된 듯한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늦게나마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여권의 일사불란한 일련의 행태는 당·정·청이 합심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계속 정권을 끌고 가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보인다. 촛불민심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반격이 가능했던 데는 야당의 책임도 크다. 야당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국정농단 세력의 발호 움직임에도 우물쭈물하며 허송세월했던 게 사실이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져 시민들을 답답하게 한 바 있다.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다. 시민의 뜻은 신속하게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경향 사설] 세월호 7시간 밝혀야 할 이유 더 분명해졌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기 위해 국회 청문회가 열렸지만 궁금증 해소는커녕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국가 안보 실무 책임자로 대통령에게 24시간 보고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은 박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서면보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어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당시 대통령의 위치를 알지 못한 탓에 집무실과 관저 두 곳에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서면보고를 올렸다고 진술했다. 중대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의 소재를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서면보고를 수령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반 기업의 말단 사원이라도 일을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와대 보고 체계가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앞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박 대통령의 소재를 몰랐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에도 근무 시간에 대통령의 소재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니 참모들의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안된다.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은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제외하면 숙소가 있는 관저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 오전 신보라 전 청와대 의무실 간호장교는 박 대통령에게 가글액과 안약을 갖다주기 위해 관저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전 청와대 조리장도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혼자 점심과 저녁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오후 3시쯤 전속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한 것은 이미 확인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남은 시간 뭘 했는지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성형시술 등을 받았다는 의혹에 최순실씨 단골 성형외과 원장 김영재씨나 전 대통령 자문의인 김상만씨, 전·현직 대통령 주치의, 청와대 의무실장 등은 하나같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일정과 동선을 꿰뚫고 있는 윤전추·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은 아예 청문회장에 나오지 않았다. 핵심 증인인 의무실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도 미국 연수를 이유로 불출석했다. 국정조사 특위는 두 행정관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이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명령장 수령을 피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썼던 수법이다.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7시간의 의혹을 밝히려는 국회의 노력에 청와대가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의혹을 밝혀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해진다. 7시간 행적은 물론 청와대의 방해 공작까지 특검이 적극 수사하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법 등 청문회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경향 사설] 대통령 행세하려는 황교안 대행, 본분에 충실하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를 두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지난 9일 권한대행이 된 이후 그의 자세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고건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하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분을 넘어 대통령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그제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을 국회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황 대행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국회)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흘리는데, 대통령 된 게 아니다”라고 꼬집은 것은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어제 보수 일색의 학계·언론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참석자를 밝히지 않다가 뒤늦게야 마지못해 공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권한대행답지 않은 비밀주의에 ‘반쪽 소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황 대행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국정을 이끄는 것을 넘어 정치적 위상 강화 등 또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황 권한대행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비상시국에서 관리형 통치권자에 머물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권한대행은 국정의 틀을 새로 짜고, 방향을 정할 권한이 없다. 행정부 수반의 자리에 있지만 시민에 의해 직접 뽑힌 권력이 아니라서 권리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유일한 대의기구인 국회의 의사를 물으며 국정을 관리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황 대행 체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와 대외정책의 안정적 관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은 절대 해서 안된다.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해 박 대통령 정책도 탄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 대행은 보수정권의 취지를 이어간다는 이름 아래 박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집행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같은 논란이 큰 사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지지 않도록 다잡으며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정운영의 방법에서도 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정치권과 소통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세균 국회의장 및 야당과의 의견 조율이 특히 긴요하다. 유 부총리 유임도 국회와 야당을 찾아 의사를 타진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전을 요구하듯 국회 출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국회에 나가 국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혹여 야당과 대립하면서 보수의 대표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버려야 한다. 어제 야 3당이 요구한 대로 정당 대표들과 만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이 있다.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 댓글 개입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이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표적감찰로 압박해 물러나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법적 처벌을 추진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공안적 시각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독주를 뒷받침해온 주요 인물이었으니 촛불시민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황 대행은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여당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고 돌변해 논란이 있는 정책에까지 손을 댄다면 대행의 지위를 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개월간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모든 현안이 분출할 것이다. 이럴 때 황 권한대행이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곧 국회의 의사를 받드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은 금물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도기에 국정을 떠맡은 황 대행이 자신의 문제로 새로운 갈등을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자중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당 망친 친박의 적반하장, 박 대통령과 함께 퇴진하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후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내부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친박계는 그제 심야에 급히 모여 ‘혁신과 통합보수연합’ 모임을 결성하더니 연일 비박계를 공격하고 있다. 어제는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이 나서 김무성·유승민 의원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 인신공격을 했다. “배신과 배반의 아이콘인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적반하장·후안무치”라고 말했다. 온갖 전횡으로 당을 망쳐놓고도 도리어 큰소리를 치니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박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친박이나 비박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 무게로 따지자면 친박의 책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무겁다. 친박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이다. 사전에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으면 사후 시정에라도 적극 나섰어야 하지만 오히려 덮고 비호하는 데 급급해 오늘의 사태를 빚었다.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다 참패를 자초한 것도 친박세력이었다. 거기에 대통령 탄핵까지 초래했으면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무슨 낯으로 남을 향해 배신자 운운하는지 알 수 없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행태다.

국회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박 대통령을 탄핵결의했으면 그 책임을 친박이 앞장서 지는 게 당연하다. 지도부가 총사퇴함으로써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면모를 일신해 다시 시민의 지지를 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그런데 친박은 이런 정치의 기본조차 무시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켜 놓았다는 점만 믿고 버티기로 작정한 것이다. 친박의 이 같은 행태는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폐족이 되어 물러서면 재기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대 다수 시민을 얕잡아보는 자세다. 박 대통령이 탄핵에서 벗어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망발이다. 대통령의 실정을 무조건 추종하다 탄핵을 불러놓고도 같은 잘못을 계속하겠다는 발상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혁신’과 ‘통합’을 표방하는 건 시민을 바보로 아는 게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친박세력은 겉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외치고 있지만 속으론 친박이라는 정치적 파벌의 이득만 취하고 있다. 500억원이 넘는 당 재산과 보수 기득권을 지키는 게 목표이다. 알량한 의리로 포장해 파벌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박의 못된 행태를 시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여전히 큰소리치는 오만방자하고 탐욕스러운 친박세력의 존재는 보수의 수치다.


[경향 사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오늘 국회에서 처리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축출 여부를 결정할 의원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역사의 한 장을 마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나은 국가를 향해 행진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배반하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갈 것인가. 시민의 뜻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새로운 질서를 세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적 질서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시민 전체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시민이 위임해준 권력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최순실 일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최씨의 국정농단 실태는 그제 국회 국정조사에 나온 최씨의 측근들을 통해 다시 입증됐다.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최씨와 함께 국정을 주무른 차은택씨는 “최씨와 박 대통령이 동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최 공동정권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때 최씨를 도왔던 고영태씨도 “최씨가 김종 전 문화부 차관을 수행비서쯤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는 사실 앞에 시민들은 분노와 참담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특검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의 박 대통령 행적이 드러나면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해놓고 한 달 넘게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어 재벌들로부터 돈을 내도록 한 것이 국가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거짓말과 꼼수로 시민을 우롱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회에 두 번씩이나 거취를 정해달라며 공을 던져놓고 정치적 혼란을 부추기며 연명을 꾀했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과거 정윤회씨 문건 유출이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사 때 “국기를 흔드는 행위”라고 딱 잡아떼며 보호막을 쳤다. 국정농단의 주범이 자신이면서 끝까지 시민을 속이고 정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가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 당사를 도청한 사건으로 물러난 게 아니다. 사건 발생 후 대응과정에서 거짓말한 사실이 밝혀졌고 그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리자 스스로 사임했다. 닉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헌법을 유린하고 시민에게 거짓말을 반복한 박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한다면 누구를 탄핵한단 말인가.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권력 유지를 위한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지금도 시민의 뜻에 저항하고 있다. 탄핵이 가결되어도 물러나지 않고 헌법재판소에서 법리 다툼을 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보수 일색으로 짜놓은 헌법재판관 진용을 믿고 있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라는 원칙 하나에 의존해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는 대통령에게는 탄핵으로 응징하는 것 이외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이미 80%의 시민이 박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지지하는 이는 100명 중 5명이다. 선거부정을 저질러 축출된 초대 대통령도, 유혈 진압으로 집권한 군인 대통령도 이렇게 배척받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을 뽑았던 시민들이 더 실망하고 분개하는 이유가 뭔지 더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품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소추안을 가결해야 한다. 최고권력자도 법 앞에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임을 입증하기 위해, 민주적 질서의 수호를 위해 국회는 그를 탄핵해야 한다. 헌법, 민주주의, 시민 주권, 정치적 책임성, 반부패라는 대의 앞에 여당과 야당, 친박계와 비박계,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시민의 대표권을 상실했다. 그렇다면 시민을 대표하는 유일한 제도로 남은 국회가 할 일은 그의 대표권을 회수하는 것이다. 국회는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


[경향 사설] 재벌총수들의 반성 없는 변명, 뻔뻔한 동문서답·모르쇠

이재용(삼성), 정몽구(현대차), 최태원(SK), 구본무(LG) 등 재벌 총수 9명이 어제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 총수들이 한꺼번에 불려 나온 것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이후 28년 만이다. 대내외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 총수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청문회장에 나온 것은 본인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시민들이 청문회를 주시한 것은 국정농단 의혹을 소상히 밝히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정경유착을 단절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런 기대는 몇 시간 만에 여지없이 배신당했다. 의원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묻고, 총수들은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공허한 질문에, 공허한 답변이었다. 총수들은 동문서답·모르쇠·변명으로 핵심을 피해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에 대해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허창수 전경련 회장)며 강제성은 시인했지만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 대가성 의혹은 부인했다.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할당받은 만큼 냈다.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갖고 출연한 적이 없다”(최태원 SK 회장), “면세점 추가 입찰이나 수사 관련 로비와는 관계없다”(신동빈 롯데 회장)고 주장했다.

총수들의 이런 답변은 국회에 사전 제출한 자료와도 거리가 있다. 총수들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 때 “글로벌비즈니스센터 조기 착공 협조”(현대차),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우려”(롯데) 등 민원을 요청한 것이 확인된 터다. 이러고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것은 뻔뻔한 얘기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 외에 정유라의 승마 지원에 별도로 100여억원을 지원한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의 대가라는 의혹에 대해 “지원은 실무자들이 결정한 것. 합병은 승계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합병은 승계의 디딤돌”(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합병에 찬성해달라는 압력이 있었다”(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는 증언과도 배치된다. 이 부회장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반복된 모르쇠에 “기억력이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야 하지 않나”라고 되묻자 “언제든지 훌륭한 분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수들의 이런 태도는 건강한 재계 생태계 구축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계는 총수를 청문회장에 불러내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말하지만 무성의한 답변이 되레 기업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회장 등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모금창구인 전경련 해체를 시사했지만 유착의 근절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민심의 분노는 국정농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재확인된 특권 세습, 불평등, 부정 부패,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재벌이 있다. 5공비리 청문회 때 재벌 총수들은 정경유착의 단절을 선언하고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냈지만 뒷거래는 계속됐다. 2002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 820억원을 트럭째 받은 차떼기 사건은 기억에도 새롭다.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기부금 명목으로 모금행위는 단절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특히 삼성에 의구심을 갖는 것은 총수 일가를 위해 국민연금이 시민 자산에 손실까지 입혀가며 지원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밑바닥에는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0억원을 종잣돈으로 주식 편법 운용 등을 통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8조원대의 부를 움켜쥔 금수저의 수법에 대한 좌절감이 깔려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총수 중심의 황제적 경영관행에서 기인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재단 출연금 역시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따지고 보면 권력에 대한 기부금의 최종 수혜자는 재벌총수와 권력에 기댄 비선 실세이다. 지금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평등하게 권리를 갖고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다. 시민들은 결코 재벌을 권력에 자릿세 뜯긴 노점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인식을 깰지는 재벌의 의지에 달려있다. 회피할 경우 촛불은 재벌을 향할 것이다.


[경향 사설] 대통령에 놀아난 야당, 분노한 민심 두렵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뻔한 잔수에 야당이 걸려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퇴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는 이간책에 주도권을 다투는 형국이다. 무능에 욕심이 더해진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대통령 임기 단축 협상 불가,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등을 합의한 바 있다. 합의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불협화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어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만나 박 대통령 사퇴 문제를 논의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 말, 김 전 대표는 4월30일 퇴진을 각각 주장했다. 양자 회동 소식이 전해지자 공동보조를 맞춰온 국민의당이 반발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탄핵을 발의하자고 주장하던 추 대표가 내년 1월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왜 이렇게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요구에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비박의 협력이 먼저”라며 거부했다.

야당은 시민이 경계했던 바대로 행보하고 있다. 탄핵이냐 퇴진이냐, 언제 시행하나, 거국내각 구성과 개헌은 어떻게 하느냐 등으로 여야, 야야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였다. 추 대표는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및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추진하는 등 돌출 행동으로 ‘추키호테(추미애 + 돈키호테)’라는 별칭을 얻은 터다. 이번에도 ‘탄핵 연대’에 상처를 주면서 “추미애판 최순실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당 반응도 문제 해결보다는 제1야당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국 야당 이견으로 2일 탄핵안 처리는 불발되고 마침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만일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서 내년 4월 퇴진과 개헌을 천명하면, 탄핵 결의는 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한 게 뭐냐”고 비난받아왔다. 언론과 시민이 차려놓은 ‘국정농단 사건’ 밥상에 수저만 들고와 배를 불렸기 때문이다. 탄핵이라는 설거지라도 제대로 하라는 게 시민 요구인데, 그조차 못하고 있다.

이제 야당은 다른 일체의 행동을 멈추고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할 일은 단 하나, 빈틈없는 공조다. 그래야만 새누리당 ‘비박’도 탄핵 대오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이것조차 못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청와대 앞이 아니라 야당 당사 앞에 켜질 것이다.


[경향 사설]국회는 한 점 흔들림 없이 탄핵에 매진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후 탄핵 처리 기류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야 3당 대표는 어제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을 거부하고, 탄핵안을 예정대로 2일 또는 9일에 처리하기로 재확인했다. 그러나 탄핵안 처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내 비박근혜계 일부가 탄핵에서 돌아서는 등 내부에서 견해가 갈리고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여야 협상을 지켜본 뒤 9일 탄핵 처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2일 탄핵안 처리는 어려워지고 일부에선 9일 탄핵안 가결마저 장담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교묘한 사퇴 선언으로 탄핵 대오 흔들기를 시도했지만, 절대다수 시민의 탄핵 민심은 미동도 없다. 박 대통령의 꼼수 정치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오히려 평일 촛불집회 참석자가 늘었다. 여야는 시민들의 확고한 의지를 대표해 탄핵안을 가결해야 마땅하다. 특히 야 3당은 탄탄한 공조로 탄핵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꾀하는 여당 지도부에 여당 의원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령 세월호 침몰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은 탄핵 사유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될 것이다. 7시간의 진상은 향후 국정조사나 특별검사 수사를 통해서도 밝힐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탄핵 사유와 논리를 세우고 후속 일정까지 짜는 등 빈틈없는 탄핵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탄핵의 가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새누리당 의원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박 대통령의 자진 퇴진 의사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여기서 탄핵 대오에서 이탈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박 대통령은 민주국가의 기본 질서를 파괴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계속 거짓 변명과 꼼수로 난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 비주류가 그동안의 실책도 모자라 또다시 박 대통령과 친박 주류의 설득에 놀아난다면 시민의 매서운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지금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막지 못한 채 수구의 길을 걸어온 새누리당이 과연 건강한 보수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탄핵안 처리에 비주류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달려 있다.


[경향 사설] 친박의 퇴진 건의, 이젠 대통령의 조건 없는 사임만 남았다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경향 사설] 추미애는 국정·탄핵 주도할 당대표로 자격이 있는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일 설화(舌禍)를 일으키고 있다. 현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제1야당 대표의 미확인 주장·자극적 발언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다. 추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국민주권운동본부 발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주사가 더 좋고 정신이 몽롱해 국정을 못하거든 그냥 내려오라”고 비꼬며 인신공격을 했다.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최종적으로는 계엄령까지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 근거는 대지 못했다.

2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국민주권운동본부 광주·전남 공동출정식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와대에 식수를 끊겠다고 할지 모르겠다”며 “박 대통령이 미용을 위해 2000억원 이상을 썼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후 2000억원을 2000만원으로 바로잡았다. 추 대표는 국회에서 탄핵 추진을 놓고 “새누리당에 구걸해서 표가 적당히 모였다고 덜컥 하면 안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부역자 집단의 당 대표를 지낸 분”이라고 말했다. 어쩌다 한 번 실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연일 자극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 대표가 이러니 양향자 최고위원 같은 이도 덩달아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왼손은 야권과 잡고 있지만 오른손은 박근혜 정권 부역자들과 잡고 싶은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분열의 언어를 쏟아내는 것이다.

청와대는 탄핵에 맞서 농성 중이고, 여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정국 조타수가 될 책무가 바로 제1야당 대표에게 있다.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칼날 섞은 말을 던지는 것보다 90%가 넘는 탄핵 민심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정국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생겨나는 내분과 갈등을 봉합하고 이를 문제 해결의 에너지로 모아 국정 마비와 정국 혼란 상황을 책임 있게 극복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좌충우돌할 게 아니라, 범의 눈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직시하고 소의 걸음으로 끈질기게 가는 게 지금 추 대표가 할 일이다.


[경향 사설] 법무장관·민정수석 사표, 이젠 대통령만 남았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표를 냈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표를 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수용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지금 대통령이 사의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정부와 청와대 내 대통령 법률 참모로서 권력 유지의 양 축이다. 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대통령 곁을 떠나겠다는 것은 대통령직을 버티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야당에선 “사정 라인의 두 축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침몰하는 난파선에서 선원들이 하나둘씩 탈출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했다. 어떻게 묘사하든 대통령을 비호해온 둑에 구멍이 뚫린 것이요, 내부 붕괴를 보여주는 징조가 분명하다.

김 장관은 지난 7월 진경준 전 검사장 비리 때 사표를 냈으나 반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 책임지고 물러났어야 했다. 이제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가 된 상황에서 사표를 냈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없다. 최 수석은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5일 만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습하고 무너진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 온 민정수석이 임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만둔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의 막가파식 대응이 법률가의 양심과 동떨어진 데다 더 이상 합리적인 설득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민정수석실이 본연의 ‘대통령 직무 보좌’가 아닌 대통령 개인을 위한 비리 변론 지원기관으로 전락한 데 대한 자탄의 성격도 짙다.

이제 관심은 다른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의 사퇴가 이어질지 여부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사연(私緣)에 얽혀 국기를 문란하게 한 것도 모자라 공권력인 검찰권까지 부정했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을 국정 고비마다 활용해왔던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에선 불공정 운운하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이러니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누군들 옆에 더 붙어 있고 싶겠는가. 이대로는 탄핵 정국을 끌고 가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위임 받은 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고 헌법을 유린했다. 4·19혁명 당시 허정 외무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충언했고, 이 대통령은 다음날 전격 하야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의 이탈 행렬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저지른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최순실이 국정에 손댄 흔적을 보면 청와대와 공직자가 수족처럼 움직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헌정 문란의 공범이자 방관자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그동안의 과오를 뉘우치고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랄 처지다. 그런데도 한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한국사 국정교과서 강행 등 국정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촛불민심도, 시민들의 분노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판국에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두 손 들고 무릎을 꿇은 격이니 도대체 어느 나라 관리인지 할 말을 잃게 한다. 국정 최고 책임자부터 국가 기강을 흔들고 자기 안위만 챙기고 있는데 고위 공직자라도 정신 차려서 국정을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일도 무리다.

새누리당 남경필 지사·김용태 의원 탈당에 이어 법무장관·민정수석 사표, 김무성 전 대표의 탄핵 선언 등 당·정·청에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여권 내부에서 금이 가고 바닥이 꺼지는 균열의 본격화라고 할 수 있다. 총리도 부총리도 짐 보따리를 싸놓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소송을 대표하는 법무장관까지 가세했으니 사실상 멈춰 선 정부가 됐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29일까지 대면조사를 받으라고 최후 통첩을 보낸 상태다. 이번엔 또 무슨 궤변으로 검찰 수사를 거부할지 모를 일이다. 그럴수록 설 곳이 없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사상누각’이라고 했지만 되레 청와대가 ‘모래 위의 성’이 돼 가고 있다. 이제 대통령만 남았다.


[경향 사설] 제 발로 못 나가니 쫓아낼 테면 쫓아내보라는 건가

시민에 의해 포위된 청와대에서 홀로 웅크린 채 거짓 해명에 억지 부리기, 버티기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야금야금 국정 복귀의 기회만 노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억지다 싶으면 찔끔 물러서가며 오로지 대통령 자리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시민에 맞서고 있다. 최순실씨 등 3인의 공소장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그동안 나돈 이야기로 어느 정도 단련된 시민조차 깜짝 놀라게 하는 것들이었다.

정권 초기에 잠시 연설문 등의 표현에서 최씨의 조언을 받았다고 한 박 대통령의 말은 온통 거짓이었다. 지난 4월까지 외교문서는 물론 장차관 인선 검토 자료까지 줄기차게 최씨에게 넘기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미르재단 등의 설립과 모금 전 과정을 깨알같이 지시한 것도 모자라 재벌 총수에게 최씨의 납품 청탁까지 챙겨준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KD코퍼레이션이라는 업체로부터 현대자동차에 원동기용 흡착제를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최씨는 이를 박 대통령에게 전했고 박 대통령은 정몽구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를 관철했다.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대통령이 한 것이다.

그래 놓고 검찰 조사 내용은 상상과 추측에 불과하며, 수사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말 잘 듣던 검찰이 하루아침에 변해 없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는, 삼척동자도 코웃음 칠 억지주장이다. 어제는 돌연 국회가 추천해주는 총리를 임명해 내치를 맡기겠다는 자신의 제안까지 거둬들였다. “(야당이 제시하는)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야당 핑계를 댔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주말 즈음에는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자숙하는 체하다 지나가면 다시 배짱을 부리는 것도 오직 한 가지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검찰을 종처럼 부릴 수도 없고, 재벌 총수를 불러 돈을 뜯을 수도 없는 자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도 주재할 엄두를 못 내는 그 자리의 쓸모는 오직 하나, 당분간 수사를 피하는 것이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든 지금 그에게 중요한 일은 대통령이라는 석자가 붙은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그것을 위해 박 대통령은 저잣거리 사람들도 하지 않는 막무가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절대 제 발로 나가지 않을 테니, 나를 끌어내릴 수 있으면 해보라’며 생떼를 부리고 있다. 지금 이 장면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중·고등학생도 주시하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대통령이 국가를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보수 재결집 꾀하는 박 대통령, 한국의 보수를 우습게 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재장악을 위한 반격에 나서자마자 그 첫 번째 방책으로 보수 결집을 획책하고 있다. 5%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숨은 보수파를 결집시키기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은 청와대에서 장기농성을 하면서 바깥에서 보수 구원병을 조직해 난국을 돌파하는 전술인 셈이다. 제 살길을 찾자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시민을 분열시키는 막장 승부수까지 던지는 대통령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보수와 진보진영 간 대결 조장도 불사하겠다는 뜻이 역력하다.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은 하나같이 보수와 진보 간 견해가 다른 것들이다. 그제 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장소인 성주 롯데골프장과 남양주시 퇴계원 군용지를 맞바꾸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유보해야 마땅한 사업에 도리어 속도를 높이고 있다. 4년 동안 가만히 두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갑자기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일 협상 재개 선언에서부터 14일 가서명까지 초고속으로 진행했다.

이는 국내 정치 상황과 별도로 외교안보 현안은 지속추진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여론을 등에 업고 지지층을 규합하겠다는 의도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도 보수 결집용으로 동원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교육단체인 교총까지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도 강행하고 있다. 퇴진 압력에 물러나기 일보 직전에 몰린 대통령이 국가의 중대사를 서둘러 결정하는 것은 고금을 둘러봐도 상식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철도파업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은 다 제쳐두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책만 추진하는 저의는 보수층 결집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다. 다음 정권이 짊어질 부담을 배가시키는 대통령이 밤잠을 설치며 나라 걱정을 한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박 인사들의 억지춘향식 박 대통령 옹호작전도 시작됐다. 어제는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뜬금없이 박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추궁해선 안된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사퇴 요구를 마녀사냥으로 폄훼했다. 대통령이 비선 실세에 의지해 국정을 농단하는데도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한마디 못한 사람이 무슨 염치로 나서는지 모르겠다. 당내 친박 인사들도 일제히 박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불순 세력이 있다”는 등 막말까지 하면서 지지세력을 모으려 갖은 애를 썼다.

박 대통령의 보수 결집은 국정을 망치는 행위이자 이 땅의 보수세력을 모욕하는 일이다. 국정농단과 보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시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이념의 차이나 정책의 선호 때문이 아니다. 보편적 가치,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비선에게 특권을 주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 것이야말로 명예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런 일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보수 결집을 시도하는 것은 보수층의 양식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제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500여 보수단체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 거리로 나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해체와 건전 보수당 재창당을 주장했다. 이것이 진정한 보수의 목소리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하는 일은 국가가 망가지든 말든 나 혼자 살겠다는 행태다. 부패는 진보·보수를 떠나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국가 위기 상황에서 반성은커녕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국가 행위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지금 박 대통령을 따를 수도 없고, 따라서도 안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숨어 분열 책동으로 연명을 꾀하는 일을 중지해야 한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고개 숙였던 사람이 잘못이 없다며 다시 고개를 든다면 현실을 매우 잘못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농단과 권력남용, 부패를 위해 박 대통령을 지켜줄 보수는 없다. 박 대통령, 정신 차리라.


[경향 사설] 이 상태로는 수사 못 받겠다는 박 대통령, 제정신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이 어제 밝힌 검찰 수사에 임하는 입장은 귀를 의심할 만큼 믿기지 않을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조사 시기는 ‘대통령 관련 의혹 사안이 모두 정리된 뒤에’, 조사 방법은 ‘서면조사’를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구속된 최순실·안종범·정호성·차은택씨는 물론 이제 막 시작된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들에 대한 수사까지 모두 완료된 시점에야 조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변호인으로서 사건을 검토하고 변론 준비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누가 봐도 시간 끌기요, 검찰 수사를 가로막겠다는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사 시기와 방법을 입맛대로 고르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혐의의 중대성을 고려해도,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비춰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대국민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눈물을 비치며 한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분노한 민심에 고개를 수그리기는커녕 뒤통수를 치고 농락한 꼴이다.

변호인의 입장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현재 대통령 심정이라며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도 했다. 변호인의 입을 빌려 3차 대국민담화를 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으로는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정작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외면하고, 한술 더 떠 이젠 ‘여성’을 내세워 뒤로 숨으려 드는 그 뻔뻔함에 더 할 말이 없다.

구속된 측근들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된 의혹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몸통이자 주범이다. 이들이 온갖 분야의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이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를 받겠다고 하고, 진솔한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그런데도 자기 한 몸 지키겠다고 현직 대통령이란 지위를 울타리 삼아 버티고 있다. 비선 실세에게 정부를 헌납한 대통령이 수사를 자청하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 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정혼란을 막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 대통령 퇴진 요구는 세대와 지역, 이념을 초월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다가는 불행한 말로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한반도 평화를 트럼프에게 맡길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반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기존 한·미동맹과 대북정책 기조를 흔드는 발언을 거듭해왔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단순한 궤도 수정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질서를 뿌리째 흔들 만큼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작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상을 밝힌 적이 없다. 그의 한반도 관련 언급들도 확정된 정책으로 간주하기에는 단편적이고 논리적으로 허술하다. 대외정책 방향이나 외교 역량을 가늠할 만한 자료나 근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이익 우선주의다. 그는 한·미동맹도 이 원칙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은 철수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문제라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면 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반도 안보질서는 물론 지구적 핵확산방지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발상이다. 핵확산방지체제를 미국이 주도해온 것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며 기존 정책과 다르지 않은 주장을 했지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과거엔 북한 원자로 정밀 타격을 주장한 적도 있다. 극단을 오가는 그의 대북 발언으로는 그 방향과 내용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위해 도 넘는 발언을 했을 뿐 실제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는 합리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도 당선 직후 “미국을 우선하지만 모든 국가를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유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모순적인 언급을 한 것을 고려하면 이 발언 역시 믿을 만한지 두고 봐야 한다.

한국은 이 예측 불가능성이란 새로운 도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의 등장은 한반도 안보를 미국의 대북정책에 종속시키고 미·중 갈등의 하위 변수로 전락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실책을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 주변국을 설득하는 주도적 역할은 바로 한국이 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마비 상태지만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적극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한반도 평화를 맡길 수는 없다.


[경향 사설]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박근혜·최순실 국정문란 사태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에는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사과 발표보다 일부 진전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대목이 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 사과,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하지 못한 거짓 해명, 궁색한 변명과 회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번 담화문에서는 국정문란 사태가 “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준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잘못과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또 “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강조했다. 특별검사의 수사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여전히 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 국정문란 사태가 단지 자신의 선의가 잘못 전달된 결과,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을 위해 쓰여져야 할 국가권력을 개인의 재산 축적을 위해 동원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도록 맡겨진 국가관료 조직을 사병처럼 부리고, 기업과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함부로 훼손한 행위는 선의였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의라는 것도 과연 존재했는지 믿기 어렵다. 장관 및 참모들과는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재벌 총수와 만나서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일군 기업의 부를 자신의 측근을 위해 쓰도록 강요한 일은 결코 선의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라를 파탄 지경으로 만든 사람을 한 명만 고른다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최순실씨를 사법처리해서 국정에 간여하지 못하게 막는다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이 모든 것을 최씨 개인 비리로 치부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계속 국정을 이끌 수 있겠다고 믿어서 그런 것 같다. 만일 이번 사태가 박 대통령의 선의와 다른 것이었거나, 불가피한 실수였다면 박 대통령 기대대로 그런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문란은 우발적인 것도, 남의 잘못인데 대통령이 뒤집어쓰게 된 것도, 예외적인 현상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를 마다하고, 집권당과의 협력도 포기한 채 1인 통치, 그것도 최씨의 조언과 지침에 충실히 의존한 1인 통치를 했다. 그 결과 정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경제는 바닥에서 헤매고,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안보는 불안해지고, 시민의 삶은 어려워졌다. 박 대통령의 3년9개월 재임 기간은 시민, 지식인, 언론, 시민단체, 정치인들이 이런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국정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호소하고 건의하고 항의한 세월이기도 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이런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으면 대통령은 국정 전환의 기회, 성공적 국정의 계기로 삼을 만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일방통행을 계속함으로써 기회를 잃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시민들이 집권당에 큰 패배를 안겨주는 것으로 박 대통령에게 경고하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 시민들은 야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면서 이 두 번째 기회도 놓쳤다. 시민과 야당이 반대하는 갈등 현안을 그대로 밀어붙이며 대화 정치를 거부했다.

지난달 최씨 국정농단이 처음 드러났을 때도 박 대통령은 그것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때 진정한 사과, 즉 자신의 잘못을 소상히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서 근본 대책을 세우고 대화정치 전환, 국정 쇄신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개헌 제안으로 시민의 시선을 딴 데로 돌려놓으려는 정치적 기교를 부렸다. 세 번째 기회를 버린 것이다. 그런 권모술수는 결국 역풍을 불러왔다. 이럴 때는 더 이상 상황을 호도하는 잔재주를 부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거짓 해명과 성의 없는 의례적 사과로 대응했다. 네 번째 기회를 찬 것이다. 이제는 시민과 야당,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까지 그런 접근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국면이면, 대통령은 국정 일선에서 물러나고 국회에 내각 구성을 위임하라는 다수의 의사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홀로 살면서”와 같은 동정여론을 자극하는 말로 여전히 본질을 가리려 했고, 자신의 거취, 향후 국정 안정화 방안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이런 위험한 통치는 사실 취임 이후 일관된 것이었다. 이번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일시 조성된 난국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닥친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닌, 3년9개월간 축적된 결과이자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미끼를 던져 시민이 물어주기를 바라는, 모욕적인 수법을 구사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해왔는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으리라 믿을 근거가 없다.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더 기회를 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할때 고려해야 할 것은 최근 두드러진 박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다. 그는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 위기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며 난국은 계속될 것이다. 나아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시민들의 안전과 삶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정당들, 정치인, 대선주자들은 이 길을 피하고 싶어 했다. 박 대통령도 이 길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옳고 그름을 말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중대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검찰의 수사 대상자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는 대통령 탄핵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탄핵이 어느 정파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떠나 그는 이제 탄핵 대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주권자인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재충전하고 복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통치의 원천이 고갈되었고 대통령은 권력을 행사할 정당성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가기를 시민이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중요하다. 그는 여야, 국회, 시민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상실했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도덕적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통치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태를 1년3개월 지속하겠다는 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책임을 맡는다는 전제하의 막후 통치, 수렴청정, 총리 내치·대통령 외치의 실험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누굴 내세우든 대통령 대리인에 불과하고 대리인으로는 국정을 책임 있게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여 즉시 사임을 선언해야 한다.

정부 수립 이래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닌 상황에서 대통령 사임은 처음이라 낯설고 또한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는 차를 멈추는 일이 우선이다. 차를 멈춰 세운 다음 시민, 여야,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으면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하더라도 실제 사임은 국정 안정을 위한 과도 기간을 고려해 미뤄둘 필요가 있다. 국회가 잠정적인 기간 동안 거국적 중립내각을 구성, 대통령의 실질 권한을 위임받아 국정을 주도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어야 한다. 내각은 당연히 중립적이어야 하므로 대통령은 탈당하고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 안정을 꾀하고 공정한 대선이 이루어지도록 관리해야 한다. 중립정부는 또한 여야 간 대립하는 현안의 집행을 유보하고 여야 합의가 가능한 사항만 다뤄야 할 것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참담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정, 정치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 사설] 최씨 언니·동생·조카 등 최씨 일가가 이 나라를 뜯어먹었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이어 그 언니 최순득씨와 조카 장유진씨(장시호로 개명)도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씨 자매와 매주 만나는 한 지인은 “최순실은 최순득이 지시하면 그대로 움직이는 현장 반장이며, 최순실을 비선 실세라 하는데 최순득이 숨어있는 진짜 실세”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테러를 당한 뒤 요양했던 곳도 박 대통령의 고교동창인 최순득씨 집이라고 한다. 최순실씨의 브레인이 장유진이며, 그가 국정농단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씨 모녀의 호가호위도 모자라 일가족이 나랏일을 주무르고 있었다니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제기된 의혹을 보면 이번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태민씨 일가 국정농단’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새로 불거진 의혹은 지난 6월 설립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최씨의 조카 장씨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다. 영재센터는 1년 새 6억7000만원의 정부 예산을 챙겼고 이 과정에 장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기존 단체와 기능이 중복되는 데다 실적이 없는 단체에 이런 큰 금액이 지원된 것은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장씨는 1300억원이 투입된 강릉 빙상장의 사후 활용계획 등에 관여했다는 말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권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최순실씨의 첫째 언니의 아들 이모씨는 최씨가 쓰던 태블릿PC 명의자인 김한수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고교동창이다. 김 행정관은 최씨를 이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씨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3급이 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권력을 공유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영적 지도자였던 최태민씨의 가족은 이제 40년 가까운 박 대통령과의 친분과 배경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까지 챙겼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최씨 자매 재산의 출발점이 과거 육영재단에서 횡령된 돈이라는 의심마저 나오고 있다. 이들 가족이 13조원에 달하는 평창올림픽의 이권에 개입하려 했다니 다른 곳에서 또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 예산을 제 곳간처럼 여긴 최씨 일가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장씨가 보름 전 국가대표 출신 모씨에게 전화를 해서 (장씨가 한 일에 대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했다. 검찰은 서둘러 의혹에 연루된 최씨 가족들을 찾아 소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국정농단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경향 사설] 사과하면서도 거짓말한 박 대통령, 대통령 자격을 잃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대국민 사과에서 ‘보좌진이 완비되기 이전에, 홍보와 연설 등의 분야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조언을 구한 시기와 범위를 한정했다. 그러나 이는 수시간 만에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최씨가 외교·안보와 인사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것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시나리오에서부터 외교 사절 면담, 대통령 업무보고, 국무회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영역 구분이 없다. 어떤 폭로가 또 나올지 시민들이 걱정할 지경이다.

증언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을 과연 민주국가의 대통령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씨와 함께 일했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의 한 명인 정호성 부속비서관이 거의 매일 두께 30㎝ 분량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최씨 사무실로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 중 10%만 재단 업무였고,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 관련 사안이었다고 했다. 최씨가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국정현안을 논의한 뒤 청와대로 결과를 보내면 그 결과가 문서화되어 재단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모임에서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했으며 이런 일은 올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최씨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라는 증언까지 했다.

다른 보도에서는 최씨가 청와대 민정수석 등 인사 추천을 하고, 비밀 사항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를 한 달 전에 받아본 사실도 드러났다. 청와대 밖에 또 다른 청와대가 있었던 것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쫓겨난 박관천 전 경정이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고 한 말은 한 귀로 흘릴 일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3차례에 걸쳐 해명했지만 다 거짓으로 판명됐다. 눈시울을 붉혀가며 사과하는 자리에서까지 거짓말한 대통령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스럽다. 진실을 밝혀도 민심을 돌리기에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대응은 안이하다.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브리핑에서 “문서 유출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지켜보자”며 별일 아닌 듯 말했다. 비선조직이 일상적으로 활동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고, 최씨 행위가 국정농단이냐고 반문한 관계자도 있었다고 한다. 국정 사령탑의 현실인식이 이런 수준이다. 이제 더 이상 박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신뢰를 잃은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 자격을 잃었다는 뜻이다.


[경향 사설] 막 나가는 새누리당과 사생결단의 정치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어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게 “내일부터 국감에 임해달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관철 당원 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게 나와 새누리당의 소신”이라며 이같이 요청했다. 이 대표의 복귀 요청은 새누리당의 국회 보이콧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 여론이 커지는 것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의 뜻을 따라 국회로 돌아갔어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대표의 요청을 거부했다. 나아가 정진석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오늘부터 지도부가 단식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색 정국을 원만하게 풀기는커녕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중심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나 문제 해결보다 오기로 맞서는, 집단적 퇴행성을 보노라면 새누리당을 국정의 책임을 짊어진 집권당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는 국회 거부에 압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정세균 의장과 야당이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처리했지만, 국회법 절차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 표결을 밀어붙인 것을 정치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가 없는 한 수용하는 게 옳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깡그리 거부하며 국회를 마비시켰다. 그동안 민생을 외면한다고 야당을 비판해온 것에 비추면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이 대표는 어제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에서 “이번 단식이 정 의장이 정치생명을 잃거나 이 대표가 목숨을 잃어야 끝난다고 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어영부영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여야가 주고받으며 타협하라는 정 의장의 비공식 발언이 과연 서로 죽기 살기식으로 싸워야 할 사안인지 묻고 싶다. 극단의 정치를 넘어서자는 이야기를 한 지 꽤 오래됐다. 민생문제 하나 해결 못한 집권당 대표가 국회의장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것은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분별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자세로 어찌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며,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민생·안보 불안을 조성한 책임에 두려워해야 할 집권세력이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경향 사설]국회 무시한 대통령, 국회 포기한 여당, 국정 팽개친 정권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국회의 건의를 거부했다. 그제 장차관 워크숍에서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하더니 어제는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수용 불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대통령이 국회가 결의한 장관 해임안을 거부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정세균 국회의장을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여론 무시와 편법 국정운영, 그리고 여당의 무책임한 대야 공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암담할 뿐이다.

청와대는 김 장관에 대해 제기된 의혹이 청문회 과정에서 모두 해소된 데다 임명된 지 한 달이 안된 김 장관의 해임을 결의한 것은 정치공세라며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비상식적으로 낮은 전세와 특혜 금리 등이 드러나 고위공직자로서 결격사유가 명백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김 장관의 임명을 강행, 청문회 무용론까지 불러일으켰다. 임명장을 받은 김 장관은 대학 동문회 게시판에 지방대 출신의 ‘흙수저’여서 부당하게 비판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엉뚱한 화풀이로 장관으로서 자질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박 대통령의 여론 무시도 김 장관 해임안 통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해임안 처리 전날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를 둘러싼 야당의 의혹 제기를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라고 하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김 장관 해임안에 미온적이었던 국민의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에 자극받아 대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해임안 가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편법적인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표 수리도 야당을 자극했다. 이 감찰관은 K스포츠재단의 출연금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감찰을 벌인 일이 알려져 국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한 달 가까이 방치했던 이 감찰관의 사표를 곧바로 수리했다.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의 증인 채택은 여야 합의사항이라는 점을 악용해 그의 증언을 막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결국 이번 해임건의안은 김 장관의 개인 문제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이 결부되어 여론이 악화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위기와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국정 최고책임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므로 사과·반성하고 국정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대통령 흔들기로 보는 것은 독선이다. 문제는 이런 독선이 새누리당의 정세균 의장 고발 및 국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가 혼란과 여야 간 대립은 대통령의 독선에서 출발하고 있다. 국회의 해임건의안은 국회의 뜻이자 시민의 의사이다. 그 때문에 역대 대통령도 해임건의안을 모두 수용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집권당으로서 국회 파업이 합당한 일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집권당은 국회를 포기한다면, 과연 이들이 나라를 책임질 자격이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경향 사설] 북핵 해법 제시 못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한·미·일 외교장관이 18일 뉴욕에서 회담을 갖고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이행,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한 새로운 안보리 결의 채택, 각국의 독자적 조치를 통해 대북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이기로 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안보리 결의에 대한 북한의 노골적인 무시는 국제사회의 훨씬 더 강력한 압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대북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은 2010년 12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6년 만이다. 북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응이 될 것이란 말도 나왔다. 대북 압박 수위를 더 높여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6년 만의 공동성명임에도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어떤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단행으로 기존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거셌으나 한·미·일의 대응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 참여 없이 대북 제재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중국은 북한의 혼란을 경계하고 있으며 불안정한 북한보다 핵을 보유한 안정된 북한을 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의 섣부른 사드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 한·미 간 심리적 거리감은 더욱 멀어졌다. 중국이 유엔의 추가 대북 제재 논의에 동참할 것은 분명하지만 한·미가 원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에 대한 원유 수출 전면 금지 등 제재의 강화를 요구하는 한·미·일의 주장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자력갱생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제재에 굴복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미·일이 대북 제재의 강도를 높여도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불투명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나라는 한·미·중 3국이며 중국을 배제한 비핵화 논의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과거 주변국들이 압박과 봉쇄에 치중할수록 핵능력 고도화를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했다. 북한의 5차례 핵실험 가운데 4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 일어난 것이다. 제재는 협상으로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일단 중단시키는 것을 포함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창의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 수해 인도적 차원에서 돕는 게 맞다

북한 함경북도 지역에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 사이 태풍과 저기압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북한 매체들은 해방 후 가장 큰 재앙이라고 보도했다. 평양 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실은 사망자가 138명, 실종자는 4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재민이 무려 14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북한에서 매년 재해가 되풀이된다고 하나 피해 규모가 대단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재해복구 수단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겨울이 조만간 닥치면 주민들의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수해는 자연재해적 성격이 강하나 북한 당국이 핵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민생을 외면한 결과다. 일차적 책임은 주민을 돌보지 않은 김정은 체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수해 지원 등 긴급 구호성 인도지원에 대해 “피해 상황, 시급성, 필요성 등과 함께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요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검토해 나갈 사안”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민족적 연관이 없는 국가 간에도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인도주의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부의 인식은 실망스럽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제재와 인도적 지원은 별개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하는 게 지난 4일부터 시행 중인 북한인권법에도 부합한다. 재해를 당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 외면하면서 인권 개선을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모른 체하는 것은 북한인권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재난 물품 위주로 지원하고 민간 대북지원단체나 국제비정부기구, 유엔기구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세력은 인도주의적 지원 목소리를 종북 좌파 운운하며 배척하려 해서는 안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홍수나 가뭄 등의 반복되는 문제에 일회적 상황 관리로 대응하기보다는 남북 간 보건 의료와 안전협력체계를 구축해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보다 나은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한국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응으로 남북대화의 동력은 현재 완전히 꺼진 상황이다. 정부가 인도적 지원방침을 밝히더라도 북한이 수용할지 불확실하다. 그래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북 지원 의사를 밝히고 북한도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인도적 지원이 꾸준하게 이뤄지다 보면 남북 간에 신뢰가 조금씩 쌓이고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경향 사설] 야의 대화 병행론에 전쟁 거론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어제 청와대에서 만나 북핵 대응책 등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박 대통령과 두 야당 대표들은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안보를 해치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북한의 행동을 규탄했다. 그러나 북핵 해법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이 더욱 강력한 제재를 통한 해결을 내세운 반면 두 야당 대표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것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북핵에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합의문은 채택되지 못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 등에 대해서도 입장 차만 확인했다. 북한 핵실험을 한목소리로 규탄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나머지 쟁점에 대해 단 하나의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이나 두 야당 대표들이 2시간 동안 진지하게 서로의 생각을 듣고 설득하는 대화의 기회를 가진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북핵 해법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헤어진 것은 중대 안보 현안을 다룬 여야 대표 회담이라기엔 너무 초라한 결과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이 실패한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했지만, 전혀 달라진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사드 배치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종전 주장을 하며 여·야·정이 안보협의체를 구성해 중대 안보현안을 논의해보자는 제안도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대화를 하는 것은 북한에 시간벌기”라며 야당 입장을 강하게 반박하거나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며 위압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초당적인 자세로 협력해 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초당적인 자세를 갖추지 못한 쪽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야당의 제안을 일부라도 받아들여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우병우 수석 사퇴나 검찰 개혁도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견해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아가는 과정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핵 해법과 사드 배치, 민생현안 등에 대해 견해가 다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내부 대립으로 외부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여야가 수시로 만나 협의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하기로는 박 대통령이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북핵 해결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초당 협력으로 내부를 단합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야당이나 비판세력을 공격하는 데 힘을 낭비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