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종전선언에서 비핵화로 가는 길 열렸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지난주 방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비핵화 등 핵심 의제를 조율하는 수준까지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역시 열흘 앞으로 다가온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룰 핵심 의제에 관해 적지 않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국이 서로 교감하면서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남북한)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한반도 안보 상황을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실질적인 비핵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결정이다.

남북은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일시 중지한 상태이다. 항구적으로 전쟁을 중단하고 북한이 주변국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에 이어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북·미 수교를 하기 위한 법률적·현실적 여건이 마련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논의 지지발언은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 정도의 반대급부는 줄 수 있다고 제안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만 요구해왔을 뿐 그에 따른 보상조치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일방적인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협상에 북한이 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사하고 회담 개최 자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체제보장에 관한 우려를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전 문제를 해결하려면 휴전협정의 또 다른 당사국인 중국의 참여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18일 공개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계획 소식이 주목된다. 비핵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발전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길잡이 역할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도출하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실천을 촉진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박근혜 징역 24년, 역사의 심판이다

“박근혜 피고인을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 6일 오후 3시50분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세윤 부장판사가 판결 주문(主文)을 낭독한 순간,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는 다시 새로운 장(章)을 열어젖혔다. 법원은 1심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인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나이(66세)를 고려할 때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중형이다. 신임해준 주권자를 배신하고, 헌법이 명시한 원칙과 가치를 유린하고, 국가 기강을 문란케 한 데 합당한 심판으로 평가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비롯한 대다수 공범들이 앞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이 된 미르·K스포츠 재단 후원금 출연 압박(직권남용·강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훈련비를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 핵심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문화예술계 특정 인사들을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 및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부당인사도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4년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30년보다 낮지만 최순실씨에게 선고된 징역 20년보다는 높다.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청렴성과 도덕성을 훼손한 만큼 사인(私人)인 최씨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이나 공천 불법개입 혐의 공판이 남아 있는 만큼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국민 전체의 자유와 행복, 복리 증진을 위해 행사할 의무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자신과 오랜 사적 친분을 유지해온 최서원(최순실)과 공모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질서가 큰 혼란에 빠지고 결국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있다”면서 “다시는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는 태도를 보인 점도 양형 사유에 포함시켰다.

유감스러운 점은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이다. 지난해 10월 구속기간이 연장된 이후 재판을 거부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건강상 이유’를 대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TV 생중계로 온 나라가 지켜본 선고공판마저 궐석재판으로 진행되는 파행이 빚어졌다. 대통령 재임 중 그토록 법치를 강조하던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자 법치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쪽으로 돌변했다. 국가 형사사법 절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만한 태도는 공소사실과 별개로 비판받고 응징되어야 마땅하다. 박 전 대통령이 향후 상급심에서도 이 같은 태도로 일관할 경우, 심리를 맡게 될 재판부는 강제구인 절차를 통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법 앞의 평등’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이 유죄 선고로 끝나면서 길었던 국정농단 사건은 이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방조한 정치인과 검찰 등에 대한 심판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명박)이 조만간 구속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그들 개인과 일가를 형사처벌하는 차원에 머물러선 안된다. ‘이명박근혜 9년’의 종언을 넘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촛불’을 통해 불의한 권력을 합법적·평화적으로 끌어내린 시민들은 과거에서 탈피한, 완전히 다른 공동체를 갈망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나라, 부와 힘과 명예가 특정 계층·세력에게 독점되지 않는 나라를 바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벌개혁을 통한 정경유착의 근절,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의 환골탈태, 직장·학교·가정 등 일상공간에서의 민주화를 요구한다. 위정자들은 이러한 시민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담아낼지 숙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권자의 상처가 서서히 치유될 것이다.


[경향 사설] 단계적 조치하면 비핵화 해결된다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경향 사설] 미국 안보사령탑이 존 볼턴이라는 나쁜 소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네오콘의 대표적 인물이자 비이성적이라고 할 만큼 대북 강경 태도를 갖고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임명했다. 이로써 미국의 외교안보라인은 지난주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볼턴 등 대북 강경파로 채워지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 제2기 외교안보팀이 출범한 셈이지만 신뢰보다 우려가 앞선다.

트럼프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두 달여밖에 안 남은 시점에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한 것 자체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통상의 경우라면 지금쯤 북·미 양쪽은 특사를 교환하고 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하는 데 골몰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기는커녕 북한과 접촉하면서 회담 실무를 책임질 인사들을 대북 강경파들로 바꾸고 있으니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안보사령탑을 교체하는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짚이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와 뜻이 맞는 인사들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힘 있는 미국 인사들과 협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대북압박에서 대화로 국면이 전환되는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미국 보수층을 의식한 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볼턴을 등판시킨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볼턴이 대북 군사적 옵션 지지자라는 점이 걸린다. 군사적 옵션은 곧바로 한반도 재앙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북핵 해결을 위해서라고 해도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카드이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볼턴이 참모일 뿐이므로 그가 대북 강경파라는 사실을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을 모르지 않는다. 볼턴도 안보사령탑 발탁 소식을 들은 뒤 “과거 발언들은 다 지나간 일이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미관계는 70년 넘게 쌓아온 불신과 적대의 관계다. 사소한 발언 하나로도 대화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 볼턴은 2003년 북핵 협상 미국 대표단에 포함됐으면서도 무분별한 대북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가 결국 협상대표단에서 제외된 전례가 있다. 그가 한반도 운명이 걸린 북·미 정상회담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향 사설] 북·미 정상회담 성공하려면 중·일·러의 협력도 중요하다

정부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12일부터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파견해 방북 및 방미 결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은 12~13일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차례로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면담할 계획이다. 서훈 국정원장도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회담 성사 경과를 설명한다. 정 실장이 중·러 두 정상을 면담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들과 전화 통화한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한반도 정세 진전에는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적인 만큼 이들 국가에 정상회담 성사 경위와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중국의 입장이 특히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 및 북·미 간 정상회담 성사에 환영을 표시했으나 내심 불만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제재에 동참했는데도 북한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미국이 중국을 건너뛰어 직접 북한을 상대하겠다고 나섰으니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법하다. 이런 중국의 우려가 불식되지 않으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면서 북한을 완충지대로 여기는 중국이 북·미 간 접근에 불안해한다면 양측 간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중 두 나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는 해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내건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적 보상도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 또한 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되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는 자신을 배제하고 북·미가 정치적 타협을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 일본이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의 당사국인 러시아 역시 한반도 정세 진전에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로 한반도 상황이 급진전하고 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어떤 돌발변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국제적 협력의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북·미 및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주변 강국의 협력은 향후 북한의 정상국가화 작업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작업에도 필수적이다. 정 실장과 서 원장 등 특사는 지난 5일부터 숨가쁘게 이어진 강행군에 피로가 누적됐겠지만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쌓는다는 각오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정의용·서훈 대북 특사를 맞이하는 북한의 자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북특사단이 5일 특별기편으로 북한에 파견된다고 청와대가 4일 밝혔다. 특사단은 1박2일간 머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북·미대화 여건 조성,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장관급 인사 2명이 함께 대북 특사로 파견되는 것은 전례없는 일로, 이는 문재인 정부가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번 특사의 우선 목표가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북·미관계 중재에 있는 만큼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대표를 맡는 것은 바람직하다. 서훈 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협상 전문가인 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대면한 베테랑이어서 특사로 제격이다. 특사단은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을 전달하고 김 위원장의 견해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 들어 남북대화를 재개하면서 북·미대화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북핵 문제에는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방남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했지만 비핵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조건’하에서만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했고, 백악관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CVID)’라는 가장 엄격한 비핵화 요건을 끄집어냈다. 북한이 대화 의지를 내비치자 오히려 문턱을 높이려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대북 불신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불신과 의구심을 돌파하고 북·미대화를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북한은 현재의 국면이 한반도 상황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분수령임을 인식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 특사단 방북이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과거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재확인하고 우선 핵·미사일 실험의 잠정중단 의지를 비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대북 강경 입장인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북·미가 진지한 협상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결코 이번 국면 전환의 계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실험 중단 의사 표명만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경향 사설] ‘역사의 진실’ 마주하라는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이 99돌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와 건국절 논란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반인륜적 인권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면서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통렬한 지적이다. 올해 3·1절 기념식은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일본 만행의 상징적 장소인 서대문형무소에서 거행됐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남녀 독립투사 17인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기도 했다. 장소나 내용이나 역대 대통령 중 일본을 향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일본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해 과거사 문제 해결과 한·일 협력을 분리·병행하는 ‘투트랙’ 전략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문 대통령 기념사가 나오자마자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밀실합의가 얼마나 큰 잘못이요, 족쇄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국민들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고, 피해국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나라는 선진국은커녕 정상국가라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내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임을 분명히 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 ‘이승만 미화’가 깔려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이제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고, 독립운동가를 평가절하하는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내겠다고 밝힌 것도 의미가 깊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번째인 이번 3·1절 행사에서 여러 가지 쟁점과 논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입장을 내놓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속이 시원했다”는 반응이 많은 걸 보면 그만큼 역사 바로 세우기에 갈증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했다. 내년 100번째 3·1절은 이런 꿈들이 모두 이뤄진 기념식이 되기를 바란다.


[경향 사설] 북 김영철의 북·미대화 용의 표명을 주목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경의선 육로로 방남해 2박3일 일정에 들어갔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이날 평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한 자리에서 “북·미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면서 북한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또 “남북관계가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된 김영철 부위원장의 발언은 원론적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적극 표명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북한 대표단은 27일까지의 체류기간 동안 문재인 정부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북·미대화의 밑그림을 그려나갈 것을 희망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표단의 구성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단에 포함된 북한 외무성 최강일 부국장은 과거 6자회담에 참여한 바 있고, 핵 문제와 대미협상에 정통한 인물이다. 지원인원에는 통역사까지 포함돼 미국과의 대화에 대비했음을 짐작게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 특사의 방남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향후 북남관계 개선 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울 데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했다고 한다. ‘강령적 지시’는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를 뜻한다. ‘강령적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 구성된 이번 대표단에 외무성 당국자가 포함된 것은 북한이 북핵 문제에 대한 모종의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김여정 특사를 통해 제안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한 바 있다. 그 여건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북핵 문제의 진전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북·미대화 및 북핵 문제의 진전이 동반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북한이 답을 내놔야 할 차례이기도 하다.

보수세력들은 김영철 부위원장을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라 몰아붙이며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미국은 북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기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독자제재를 지난주 발표하는 등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논란을 뚫고 어렵게 내려온 만큼 북한이 북핵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는 대담한 메시지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아쉬운 펜스-김여정 만남 불발, 하지만 기회는 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회동하려다 무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사람이 올림픽 개회식 다음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회담 두 시간 전 북한이 취소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했지만, 백악관 부통령실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펜스-김여정 회담이 불발된 것은 대단히 아쉽다.

궁금한 대목은 북한이 왜 약속을 갑자기 취소했는가 하는 점이다.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기념관 방문과 탈북자 면담 등 반북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미리부터 예고해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회담을 추진했다가 취소한 것이어서 궁금증이 증폭된다. 미국 측은 회담 불발에 대해 펜스가 김여정을 만난 자리에서도 반북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을 예상해 북한이 만나기를 꺼렸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평창 올림픽 리셉션과 개회식이 열린 9일 펜스가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 펜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것을 꺼려 리셉션에 불참했다. 뒤늦게 도착해 잠깐 리셉션장에 들어왔지만 김영남과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북한 대표단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펜스와 대화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펜스-김여정 회담 불발은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그만큼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준다. 정부와 북한이 회동 불발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백악관이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한 것도 뒷맛이 좋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것은 성과이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 어떻게 분위기를 조성할지가 관건이고, 양쪽을 중재해야 하는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물론 중요하지만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23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다. 정부는 내주쯤 고위급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한·미 간 조율에 나선다. 평창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향 사설]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환영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0일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자신이 김 위원장의 특사임을 밝히고 친서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된다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연내 방북한다면 11년 만에 남북 최고지도자가 머리를 맞대게 된다.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정착,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물론 문 대통령의 방북에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에만 온기가 돌기 시작할 뿐 북·미간 긴장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가 움직이지 않은 채 남북관계만 속도를 낸다면, 남북관계조차 고무줄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추동하는 선순환 구도가 구동해야 한반도 평화구도가 견고하게 정착될 수 있음은 북한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펜스 미국 부통령이 올림픽 축하 리셉션에 불참하고, 반북 캠페인만 벌인 뒤 한국을 떠난 일을 상기한다면 모처럼의 북한 제의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정세와 정부의 입장을 북한에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은 남북 공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으로서는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넘어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선제 발표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 1999년 9월 북한은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는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대북공조가 원활했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2000년은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본질적으로 동일했던 시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초기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벗어나면서 성사됐다. 이런 전례를 돌아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한·미 공조를 긴밀하게 유지하되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렛대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성사시켰다. 남북관계 회복의 물꼬를 틔운 지금까지의 과정이 결코 녹록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의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기된 한·미 훈련의 재개가 첫 장애물일 것이다. 용기와 지혜, 상상력을 발휘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미국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태도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 북한은 건군절 열병식을 조용하게 치른 데 이어 권력 2인자인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해 올림픽 개최를 축하했다. 이를 ‘매력공세’나 ‘위장 평화공세’로 간주해 버린다면 대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상을 전환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낸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


[경향 사설] 규모 축소한 북한 열병식이 보내는 신호

북한이 8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군절’ 70주년 열병식 행사를 했다. 열병식은 행사시간이 지난해보다 단축됐고, 규모도 축소됐다. 북한은 또 외국 언론을 초청하지 않았고, TV 방영은 생중계 대신 녹화 화면을 중계했다. 지난해 김일성 주석 105번째 생일인 4월15일에 개최한 열병식에 외신기자 130여명을 초청하고, 조선중앙TV가 생중계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을 공개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도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터라 내부에 확인시키기 위해 공개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열병식이 양면성을 띠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외공개를 자제한 흔적이 뚜렷한 만큼 국제사회를 향해 ‘무력시위’를 벌였다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이처럼 열병식을 예년에 비해 소리 나지 않게 치른 것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엔이 평창 올림픽 개최기간 중 휴전을 결의했고, 한·미가 합동훈련을 연기한 것에 대해 나름의 성의표시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도록 한 데 이어 열병식을 비교적 ‘조용하게’ 치른 것이 국제사회에 주는 신호는 명확해 보인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되도록 협력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9일 항공기편으로 내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을 접견하기로 했다. 김여정의 방남으로 남북대화와 관계 복원의 계기가 마련되면서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 상황에 전기를 마련할 시·공간의 성격을 띠게 됐다. 북한이 이를 최대한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미관계에서도 모멘텀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한 외무성 국장이 8일 “북측 대표단이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북한에 이롭지 않다. 한국 정부도 북·미 양측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북 김영남 방남, 미국은 대화의 계기 놓치지 말아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하는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이끌고 남한을 방문한다. 이미 방한이 확정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동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이 김 위원장을 고위급대표단장으로 임명한 의도는 분명하다. 남북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북·미대화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재 대상이 아닌 데다 헌법상 북한의 국가 수반이어서 펜스 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북측 인사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김 위원장과 펜스 부통령이 공개 회동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 9일 열리는 올림픽 개회식 한 차례밖에 없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의지에 따라 비공개 회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미 양측은 어렵게 마련된 북핵 대화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대화 의지를 좀 더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북·미대화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대표단장이 된 이후 연일 대북 강경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대북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평창에 간다”고 하더니 4일에는 “평창 올림픽에서 북한 선전전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김 위원장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이 섣불리 북·미대화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태도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려는 한국의 의도와 배치된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이 아닌, 북핵 문제 해결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모처럼 찾아온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서는 안될 것이다. 설령 이번에 공식 대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향후 대화의 모멘텀이 되는 단초라도 마련하도록 관련 당사국 모두 노력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미국, 한국의 동맹이 맞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아그레망(임명동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승인까지 한 상태에서 내정 철회가 이뤄졌다면 극히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의 30일(현지시간) 보도를 보면 차 내정자는 대북정책과 한·미 통상 이슈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정밀타격인 ‘코피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반대했다고 한다.

빅터 차가 낙마했다면 1년 공석 중인 주한 미국대사 자리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채워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핵심 소통채널이 장기공백 상태에 빠진 것은 양국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시급한 당면과제라며 연일 대북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이 문제의 당사국이자 동맹국인 한국과는 소통창구도 완비하지 못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미국은 이에 대한 입장을 한국 측에 성실하게 설명하고, 조속한 시일 내 후속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날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쿠바 등과 함께 적으로 규정하면서 최고의 대북압박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연설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고강도의 대북 표현이 새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양보 없는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했다. 국정연설만 보면 트럼프의 대북인식은 북한이 ‘화성-15형’을 발사했던 지난해 11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올 들어 2년 만에 재개되고 있는 남북대화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동맹국의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인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이래서는 비핵화를 위한 한·미 공조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한국을 동맹국으로서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 지지율 최저가 의미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주 연속 떨어지며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64%로, 지난주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상으로는 취임 후 최저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날 공개한 지지율은 이보다 더 낮은 59.8%였다. 하락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양 조사기관 모두 불과 2주 만에 9~10%포인트가 떨어졌다. 취임 후 지난 8개월 동안 줄곧 70% 안팎의 고공 지지율을 달려온 정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국정 지지율이 급속히 추락한 요인은 복합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모든 지지 정당과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하락한 것을 한 가지 이유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가상통화 규제와 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 강남 부동산 대책 논란 등 주요 민생 현안에서 정책 혼선과 미숙한 대처가 있었다. 이로 인한 실망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2030세대의 반발과 이탈이 상대적으로 컸다. 2주일 사이 20대는 13%포인트, 30대는 8%포인트나 지지율이 떨어졌다. 갤럽은 부정적인 평가 1위로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꼽았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30세대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피해자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뭐가 다르냐”는 청년들의 반응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는 지금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되묻고 있다. 젊은이들이 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공정과 정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엊그제 청년일자리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각 부처가 청년일자리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질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여소야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시민의 성원과 지지는 정부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런 면에서 핵심 지지층의 이반은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지율 하락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여러 정책을 수정·보완하면서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이 국정 수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지율의 일시적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높은 지지율에 안주해 국정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는 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차제에 국정 전반을 되돌아보며 점검·평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를 국정개혁의 동반자로 이끌어내는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야 3당이 무조건 반대만 외치는 정치적 현실을 방치할 경우 지지율 하락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정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젠 야당과의 실질적 협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집권 2년차부터는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고 국정운영의 성과물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상충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대책을 내놓았다가 취소·유보하는 시행착오는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책의 결과를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현장 반응은 어떨지, 후유증은 없는지 세심하고 신중하게 살피는 노력이 없다면, 비전은 있되 실체는 없는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민심은 냉정하다. 민심의 지지가 있어야 개혁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최저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북, 강요 있었는지 확인해야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때 단체로 남한에 온 북한식당 여종업원의 송환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5일 “북측이 기존 입장을 저희에게 다시 얘기하는 정도”였다며 확인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두고 공개된 ‘북한식당 여종업원 집단탈출’만큼 의혹투성이인 사건도 드물다. 중국 저장성 닝보에 있는 북한식당 ‘류경’의 여종업원 12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3명은 2016년 4월5일 돌연 식당을 벗어나 상하이 푸둥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이틀 만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하루 뒤인 4월8일 통일부 대변인이 긴급 브리핑을 통해 여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입국 직후부터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우선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한 달 넘게 걸리는 점에 비춰 단 이틀 만에 입국함으로써 국가정보원의 간여를 짐작하게 했다. 정부가 사진까지 공개하며 입국 사실을 발표한 것도 고위급 인사가 아닌 한 신분과 탈북경로를 공개하지 않는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의혹은 총선 승리를 위한 ‘북풍공작’이라는 의심을 키웠다. 입국 이후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여종업원들은 정보당국의 특별관리를 받으며 사회와 격리돼 왔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해 7월 민변 변호사들과의 면담에서 “여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은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한정되는데 여종업원들이 그럴 대상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이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걸림돌이 될 우려가 크다. 여종업원 중 일부는 강제로 입국했다는 관측도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인권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출석해 “일부 종업원은 집단탈출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진술이 있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 탈북을 함으로써 가족과 생이별한, 새로운 이산가족이 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및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물론 단 한 사람의 인권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보편적 인권 규범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파장이 워낙 커 다루지 않는 듯하지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는 없는 문제다. 여종업원들 모두 자기 뜻으로 탈북했는지, 자의에 반하는데도 왔는지 확인해야 한다.


[경향 사설] 트럼프,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했고, 남북대화가 성사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남북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달라”며 “미국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평창 올림픽 기간에 가족을 포함한 고위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약속도 재확인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제안에 대해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다”며 시큰둥해하던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것은 남북대화의 재개가 결국은 미국에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북한과 대화의 접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대화의 촉매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했을 수 있다.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는 5일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로 북한이 남북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분위기가 마련됐고, 문재인 정부가 남북대화에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 동결을 거론할 명분도 생겼다. 그러나 미국 내에는 북한의 대화모드를 ‘위장평화’ 공세라고 경계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과속하면서 한·미 공조와 대북압박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백악관이 양국 정상의 통화내용을 발표하면서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한 것에서 이런 기류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국면을 능동적으로 활용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결국은 양측이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미는 막후 접촉도 해봤지만 대화 재개에 실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라는 선택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면 이번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입구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대화 속도와 방향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일지 않도록 면밀한 공조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북대화가 북·미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경향 사설] 남북관계 개선의 첫 신호 보낸 북 조평통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오후 판문점 연락채널을 다시 개통했다. 연락채널은 북측 연락관이 먼저 남북직통 전화를 걸어오면서 복구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데도 비상 연락망마저 2년 가까이 끊긴 ‘비정상’이 해소된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리선권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에 나와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방침을 전하면서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로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리 위원장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 차례 거명했고,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신년사에 대해 직접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에 환영의사를 나타냈다. 또 대화에 나설 북측 기관으로 노동당 통일전선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지정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남북대화 복원과 북한의 올림픽 참가방침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에 조응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 최고지도자들이 직접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은 이번 남북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의 회담제의에 대한 응답을 기관명의의 성명 발표와 같은 예전 방식과 달리 조평통 위원장이 직접 방송을 통해 발표한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입장문에서 “북남관계 개선 문제가 온 민족의 기대와 염원에 맞게 해결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남당국이 어떻게 다뤄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 것도 ‘남측 정부가 하기에 달렸다’며 책임을 떠넘기곤 하던 종전과 다르다.

북한이 1일 신년사에 이어 3일 입장문 발표, 판문점 연락채널 개통 및 통화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남북관계 복원에 이례적으로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화를 앞두고 기싸움을 하려 들거나 불투명한 태도로 일관하던 과거 행태가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다. 새해 들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이 대남비난을 중단한 것도 좋은 신호다.
물론 며칠간의 태도만으로 대화의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관계개선의 첫 단추가 순조롭게 끼워지는 흐름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모처럼 마련된 대화 모멘텀을 살려 남북이 성의 있는 자세로 관계복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바란다.


[경향 사설] 위안부 합의 당사자 윤병세와 아베의 적반하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검토 태스크포스(TF)’의 보고서에 적반하장식 반응을 내놓았다.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외교장관이던 윤 전 장관은 이면합의를 했으며 이를 은폐했다는 지적에 “비공개 부분을 대외발표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계기에 국회, 언론 등에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이면합의 의혹이 쏟아질 때 자신을 포함한 정부 전체가 “절대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나. 그는 “특히 소녀상 문제에 대한 이면합의는 없다”고 다짐했다.

위안부 합의에 ‘최종적·불가역적’이란 표현이 들어간 데 대한 해석도 가관이다. 그는 “외교적 합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으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다. 외교적 합의와 불가역이 동일시된다면 왜 불필요하게 그런 표현을 합의문에 명기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일본이 사죄할 경우 돌이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한국 측이 먼저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제안한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더욱 공허해진다.

위안부 합의의 일본 쪽 당사자인 아베 총리는 TF 보고서가 발표되자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이 추가 조치를 요구하더라도 일절 응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지만 무례한 발언이다. 지난해 일본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를 쓰는 문제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응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일본 입장에서는 일단 합의한 내용을 재협상하려는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합의 이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합의가 잘못되었음이 역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합의 하루 뒤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위안부 합의를 돈 주고 산 면죄부로 여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20여일 뒤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거가 없다”며 합의 사항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합의는 ‘(일본)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남긴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1월에는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10억엔을 줬으니 한국 측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정성이 없는 거짓 사죄로 책임만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속내가 드러난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이다. 관련 당사자들 누구라도 피해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누구보다 자숙해야 할 윤 전 장관과 아베 총리의 부적절한 처신이 유감스럽다.


[경향 사설]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야당의 분별력 잃은 비방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외교를 야당들이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15일에는 “국격을 훼손한 구걸외교이자 유례가 없는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삼전도의 굴욕’(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방일 중인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황제 취임식에 조공 외교를 하러 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폄훼했다. 정상외교에 대한 진지한 평가라기보다 정치공세에 가깝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과 전쟁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진정 야당들이 외교의 성공을 바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성을 잃은, 묻지마 공격이다.

야당이 문 대통령의 방중을 비판하는 데 이유가 없지는 않다. 국빈방문에 걸맞지 않은 중국 당국과 언론의 홀대·무례에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수행 기자 폭행까지 겹쳤으니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공감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안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로 벌어진 한·중 간 거리를 다소나마 좁힌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외교참사라 하고 무엇하러 갔느냐거나 주중대사·외교장관의 즉각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냉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홍 대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 만난 후 “자유한국당과 미국 공화당 주류들, 일본 자민당 주류들, 아베 총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미·일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북핵 문제에 한목소리로 대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야당이라 해도 나라 명운이 걸린 안보 문제를 두고 자국 정부를 제쳐놓고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추겠다니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

야당도 엄연히 국정의 한 축이다. 외교를 주도하는 것은 정부이지만 야당이라고 책임이 없지 않다. 더구나 작금의 대중 외교 난맥상은 박근혜 정부와 그를 떠받친 한국당, 바른정당이 밀어붙인 사드 배치가 시발점이다. 원인 제공자가 남 말 하는 처사에 어이가 없다. 동맹 만능을 외치며 중국 배척을 주장한 야당으로서는 중국의 환대를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환대 안 했다는 이유로 비난하다니 이런 자가당착과 무도함이 어디 있나. 정상이 해외 순방 시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관례이다. 초당적 외교는 못해도 대통령 등 뒤에서 화살을 쏘는 행태만은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북핵·동맹·평창 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이상한 시선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수상쩍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유엔대표부 대변인은 7일 “미국은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고대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도 “아직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미국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고대한다”고 해명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민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미국 내 논란은 결국 참가로 귀결됐지만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헤일리 대사 등의 발언은 이미 두 달 전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공식 발표한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미 올림픽위원회는 이번 사태 후에도 성명을 내 기존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평창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협력 요청에 고위대표단 파견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벌어졌으니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다.

궁금한 것은 왜 갑자기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가이다. 물론 미국 정부에 미국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 보호는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가 국제체육행사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 행정부 고위인사 3명이 동시에 나서서 문제를 제기할 만큼 새로운 변수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미국은 한국이 올림픽을 치르기 힘들 만큼 불안하다고 보는 건지 묻고 싶다.

헤일리 대사 등은 자신들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이 참석을 유보할 정도로 불안한 올림픽이라면 다른 나라 선수인들 오려고 하겠는가. 동맹국 잔치에 재를 뿌리려고 작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며 사드를 배치해놓고, 한반도가 불안하다며 평창 올림픽 불참을 시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뜩이나 평창 올림픽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참가 불허 조치로 먹구름이 낀 상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안될 말이다. 동맹이자 북핵 위기의 한쪽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도 안전한 평창 올림픽 개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향 사설] 미국, 북한 미사일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력 완성 선언에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대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금명간 발표할 미국 독자제재로는 북한 선박 등을 겨냥한 해상봉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안보리도 추가적 제재결의를 논의 중이다. 대북 추가 제재는 북한이 도발했으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은 현재도 최고 수준이다. 올 들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3차례 발효됐고, 미국 독자제재안도 7차례나 된다. 최근에는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압박이 북핵 개발 저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계적으로 제재 가짓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인들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공급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압박 수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벼랑으로 모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설령 중국이 원유공급을 전면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원유수입선을 러시아로 돌리는 길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인도주의적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한 대북 접근을 놓고 시시비비할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어야 한다. 북핵은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문제다.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핵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북핵 위기가 고조돼 온 데는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스스로도 미국의 역대 정부가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여러 차례 확언한 바 있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북핵 문제 해결의 외교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모호한 상태에서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대화의 여지를 제공한다.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은 불씨라도 살려 대화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이 두 달 이상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화의 격과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북 특사든, 뉴욕 접촉이든 마다해서는 안된다. 과거 북·미 협상은 언제나 낮은 단계의 소통과 접촉에서 발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대의 압박과 관여’지만 그동안은 압박 일색이었다. 이제는 ‘최대의 관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향 사설]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됐음을 보여주었다. 우선 순방 목표 중 달성한 게 없다.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순방이 끝나가는 지금 북핵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겠다던 다짐도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약화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고리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리더십에서 비롯된 위상 약화도 상당하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정책인 ‘미국 우선주의’는 기존 국제질서를 공격해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을 상대로 경제 실리를 챙기는 데 더 신경을 쓴 것은 사안의 경중을 못 가리는 행동이다. 경제적 이익은 얻었을지 몰라도 지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서 모순적 발언과 위협을 일삼는 트럼프의 변덕에는 북한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트럼프가 믿을 만한 협상가인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미치광이인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트럼프를 견제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의 견인차가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필리핀의 아시아 정치 전문가가 엊그제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기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십년간 유지해온 헤게모니의 급격한 쇠퇴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눈에 띄게 고립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꼽았다. 사실 트럼프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관계를 무시하면서 국제회의에서 공간을 찾으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한 국가의 위상은 경제력과 상대국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도전을 받고, 미국의 영향력은 트럼프에 의해 쇠퇴되고 있다. 미국은 점점 위대한 나라에서 멀어지고 있다.


[경향 사설] 미·일동맹 강화가 한반도에 퍼뜨리는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의 공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문명 세계와 국제 평화 및 안전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략적 인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외교전략으로, 트럼프는 지난 6월 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아베는 “북한이 정책을 바꿀 테니 대화하자고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두 나라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한 군비증강도 논의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길 바란다”면서 “이 장비로 상공에서 북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안보 아닌, 경제 문제로 접근하고 나아가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간접 지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는 이에 대해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다”고 호응했다. 일본 방문 직전 트럼프가 지난 8~9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은 요격했어야 했다”면서 “무사의 나라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불만을 드러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도 주목된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미·일 기업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인도·태평양의 주권국가들은 안보, 번영, 평화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구상은 백악관이 밝힌 트럼프 순방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와 연대해 태평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대중국 포위전략’이다. 이 구상은 중국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방위비 증강을 허용해 자칫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대북 공조를 빌미로 한 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미·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다. 이를 재확인한 미·일 정상회담의 결과는 7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풍향계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 기조에 기초해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세운 뒤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의 전략에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 사설]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길로

한국과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양국 관계를 조속히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어제 이런 내용을 담은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지난해 사드 배치 이후 악화일로였던 양국 갈등이 수습되기를 기대한다.

양측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또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확인했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천명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여는 데도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사드 문제에 대한 실용적 접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사드 포대를 배치한 현 상황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드 문제를 봉합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점을 인정하되, 그 문제로 갈등하기보다 협력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이른바 구동존이(求同存異) 전략이다. 미사일방어(MD)체계 구축과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려 입장을, 한국은 기존 입장을 각각 합의문에 명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핵과 미·중 대결로 동북아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드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2기 체제를 정비하면서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라 해결을 유보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중 간의 사드 문제 처리 방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만큼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감 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도 걸리는 대목이다. 다시는 사드와 같은 미·중 갈등 이슈가 한·중관계 악화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이번 합의의 전제나 다름없는 세 가지 원칙을 밝혔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MD체계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한·미·일 3국 간 군사동맹 반대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중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한·미동맹을 넘어 대중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해왔고 실제 사드 갈등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미국만 추종할 경우 중국과 큰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한·미·일 북핵 대응 방침과도 배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만큼 균형 외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한·중관계 정상화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구축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만큼 양국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강경일변도 북핵 대응 기조를 압박과 대화의 병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한·미동맹 강화와 제로섬 게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 다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에 필요하다.

한·중 양국의 합의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의 상호 인식이 악화된 것이 큰 문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당국 못지않게 민간 사이의 다양한 교류채널 확대가 시급하다. 교류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위한 제도화·규범화도 뒤따라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당, 박근혜 탈당 권유로 과거 청산 어림없다

자유한국당이 어제 윤리위원회를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권유했다. 박 전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응하지 않으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자동 제명된다. 윤리위는 또 당내 친박근혜 그룹의 대표 인사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게도 탈당을 권유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윤리위의 결정이 나온 뒤 “구체제와 단절하고 새롭게 출발하자”고 선언했다.

공당이 해당 행위를 이유로 정식 징계절차를 밟아 전직 대통령을 당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당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징계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후 7개월여 만에, 그리고 당 혁신위원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자진탈당을 권고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가까스로 결의한 것이다. 미룰 대로 미루다 마지못해 내린 뒷북 대응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서·최 의원의 탈당 권유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적 제스처다. 두 사람은 윤리위 결정을 정치적 패륜행위라고 반발하며 당내에 남아 싸우겠다고 했다. 이들을 제명하려면 의원총회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친박계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은 권력인 박 전 대통령만 버리고 이들은 그대로 눌러앉는 결과가 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 10여명을 불러들이기 위한 조치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두 당을 합쳐 기득권을 되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내린 조치일 뿐이다. 윤리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한 행위’를 이유로 탈당을 권유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 석방과 무죄를 주장하는 자기 분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 지지도는 10%대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대선 패배 후에도 반성하기는커녕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채 수구적 행태로 일관해 온 탓이다. 썩은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혁신에 나서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상처 봉합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사실 한국당의 문제는 친박세력만이 아니다. 친박세력 청산을 넘어 낡은 이념과 노선을 쇄신해도 회생이 가능할까말까 한 상황인데,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집단에 시민들이 신뢰를 보낼 리가 없다. 한국당은 아직도 멀었다.


[경향 사설] 갈지자 행보 계속하는 트럼프, 이래서야 북핵 해결할 수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트럼프는 어제 트위터에서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린 글에서는 “로켓맨을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느냐”고 했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북한과 2~3개 정도 채널을 열어두고 대화하고 있다”며 북·미 간 막후 접촉 사실을 밝힌 지 하루 만에 그를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이 과거 정부와 같은 유화적인 북핵 해법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협상에 나선 틸러슨과 역할을 분담했다는 해석도 있다. 중국 등을 향해 대북 압박과 제재라는 해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역할분담이라는 말로 미화할 수 없을 만큼 부적절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려는 국무부와 틸러슨 장관을 공개 조롱했다. 이렇게 대통령으로부터 하루 만에 면박당하는 장관의 말을 어느 나라가 의미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틸러슨의 해임 또는 사임설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또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불신과 실망감을 안겼다. 자신은 멋대로 발언하면서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동맹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협상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이 다르고, 대통령 자신의 말이 오락가락하는데 협상이 제대로 성사될 리가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데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오락가락하는 방침으로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고 나올 수 없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폄훼한 트럼프의 발언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트위터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적 시각을 보인 점은 분명하다. 한·미 당국은 트럼프의 발언으로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미 간 대화 채널 유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적 오판을 막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대화를 통해 북핵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돌출발언을 멈추어야 한다.


[경향 사설] 한국 뺀 미 전략폭격기 단독 작전, 두 번 다시 없어야 한다

미국의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F-15C 전투기 6대가 지난 23일 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한 쪽 동해 공해상에서 3시간가량 날았다. 강원도 고성 동쪽 200여㎞ 떨어진, 말 그대로 북한의 코앞까지 근접해 비행했다. 미 전략폭격기가 1953년 휴전 후 처음 NLL을 넘은 가장 공세적 위협작전이었다.

이번 비행은 미군의 대응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특별한 도발이 없는데도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뒷받침하면서, 군사적 옵션이 말뿐이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최근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작전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한반도에 출격한 미 전략무기는 한국군과 연합해 작전을 펼쳐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괌에서 출격한 전략폭격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서 이륙한 F-15C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았다. 공중급유기를 동원해 자체 급유까지 했다. 한국군과 한반도 내 미 공군기지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화성-12형 발사 때도 미국은 장거리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을 함께 출동시켰다. 유사시 한국군과 한국 내 기지의 도움 없이 작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어제 “전폭기 출격은 한·미 간 충분한 사전조율이 있었고, 긴밀한 공조하에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측은 단독 군사행동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지난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미군 폭격기가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지 말도록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군 단독 작전의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 유화적이라는 불만의 표시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미군의 작전에 북한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개최했다고 한다. 한국의 의사에 반해 미군 전략무기가 북한을 상대로 단독 작전에 나섰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자극받아 맞대응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에 하나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해상과 공중에서의 우발적인 충돌이 심각한 교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국군 개입 없이 미 전략무기가 한반도에서 단독으로 작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으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두 번 다시 허용해서는 안된다.


[경향 사설] 북핵 대응 위해 핵잠수함 도입한다니, 황당한 발상이다

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향 사설] 전략 부재로 중심 잃더니 기어코 사드 배치 강행한 정부

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경향 사설] 전술핵 거론 어물쩍 넘길 일 아니다, 진상을 밝혀라

송영무 국방장관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발언 파장이 만만찮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차례로 나서서 송 장관의 발언 경위와 전술핵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지만 시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를 틈탄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러다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송 장관이 전술핵을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전술핵과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너무 안일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 송 장관 발언 사태의 본질은 국방장관이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하는 민감한 이슈를 의제로 제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가 묻지 않았는데도 국방부가 먼저 송 장관 발언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다. 누가 보더라도 뭔가 의도를 갖고 사전에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발뺌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정부의 해명만으로는 왜 송 장관이 돌출발언을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야당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이미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한 자유한국당은 그제 전술핵 재배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부 한국당 의원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 결의안을 발의했다. 바른정당은 한국에 핵을 배치한 뒤 한·미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핵공유’ 방안을 제기했다. 송 장관의 발언이 불씨가 되어 북핵 정책이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위험한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송 장관 발언의 진상을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송 장관이 개인 소신으로 한 발언인지,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정부의 북핵 정책 변경에 앞선 여론 떠보기인지 규명해야 한다. 그냥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송 장관 발언과 정부의 대응 문제는 단순히 불안감을 키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교안보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향 사설] 권력·자본의 부도덕한 밀착 이재용에 내려진 사법정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개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도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센 재벌 총수라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에 사법부가 최초로 철퇴를 가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박영수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경제 위기설 등을 들고나온 재계와 보수언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의거해 판단한 결과라고 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정책과 관련해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에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했으며 재산을 국외로 도피하고 범죄수익 은닉에 나아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자본권력은 최고 정치권력에 뇌물을 줘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행정을 이끌어 내겠다고 생각하고, 정치권력은 이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정경유착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권력이 자본권력에 의해 동원되는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수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재판부도 “박근혜는 국정 최고책임자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차원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인식했다”며 “박근혜는 최순실과 공모해 세 차례 단독 면담을 통해 이재용에게 정유라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유죄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언거부, 입 맞추기 등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법원의 노력을 방해했다. 반성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강압과 협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시종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각 계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너무나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은 “이번 일은 오로지 제 짧은 생각과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독선에, 법에 대한 무지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 이건희 회장 대신 죄를 덮어쓰려 했던 이학수 전 삼성전략기획실장의 복사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을 통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총수 개인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계는 삼성 총수가 구속되면 삼성의 대외신인도가 추락하고 국가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전파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 초 180만원 수준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현재 235만1000원을 기록했다. 이 부회장 구속 이후 기업 실적이 더 좋아진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오히려 이 부회장과 그룹 수뇌부였던 셈이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봐준 덕분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두 차례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검찰·특검의 수사와 기소, 법원의 재판 모두 솜방망이였다. 이런 관행이 한국의 재벌에 총수 1인체제의 후진적 지배·경영 구조를 온존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 부회장이 이렇게 무모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오늘날과 같은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박영수 특검의 수사로 시작된 삼성 사건은 1심 재판으로 일단락됐다. 다만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이 많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국정원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동원됐다는 의혹도 있다. 삼성 측은 항소의 뜻을 밝혔다. 특검은 1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일부 무죄로 판단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 재판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박 전 대통령 공판에서 유죄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