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포괄 합의·단계적 비핵화’ 방안 추진해볼 만하다

청와대가 17일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북-미 대치를 풀어낼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전체 과정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이룸과 동시에 그 틀 안에서 단계적 비핵화를 해 나가자는 제안이다. 비핵화 해법을 놓고 북-미 기싸움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하는 청와대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대안은 북-미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현실을 인정한 가운데 가능한 해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 작지 않다. 이 관계자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일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전부 아니면 전무’ 식 비핵화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유연한 대응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강경론 득세가 협상 여지를 오히려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말을 한 것이라고 본다.

북-미 대치의 핵심은 비핵화 방법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하노이 결렬’ 이후 앞다퉈 ‘일괄타결식 빅딜 해법’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방식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둘 사이 간극이 큰 상황이다. 결국 양쪽의 요구를 수용해 제3의 방식으로 절충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비핵화의 최종 목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합의’를 하되, 단계를 최소화해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하면 미국의 빅딜 해법이 목표로 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이 추구하는 ‘체제 불안정 해소’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미는 기싸움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은 접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치가 길어지면 협상 동력이 유실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접점을 찾고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가 모두 먼저 나서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 돌파구를 마련할 시점이다. 우선은 북한의 의중을 파악해 절충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 특사 파견을 포함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비핵화 해법만 놓고 집중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일본기업 자산 압류하면 보복하겠다’는 아소의 협박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12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에 대응한 보복 조치로 “한국상품 관세 인상과 송금 및 비자 발급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법원의 배상 명령을 거부한 신일철주금 등에 대한 자산압류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입장을 묻는 일본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총리까지 지낸 일본 고위인사가 한국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에 경제 보복까지 거론한 건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적반하장의 태도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의 판단은 당시 강제징용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일철주금 등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처음부터 변론에 참여했다가 패소했다. 그래 놓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승복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아소 부총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만2천여명을 강제노역으로 부린 악명 높은 ‘아소 탄광’ 사장의 아들이다. 개인사로 보더라도 자숙해도 모자랄 사람이 태연히 ‘보복’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얼마 전엔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100여가지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한국에 ‘과거사 굴종’을 강요하겠다는 것으로 비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여기에 부총리란 사람이 의회에서 구체적인 ‘경제 보복’까지 공식 거론하는 건 지금의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까지 보인다. 일본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한-일 관계의 추락을 방치하고 부추길 셈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한겨레 사설] 해외주둔 미군을 ‘돈벌이 용병’ 삼겠다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국외주둔 미군의 주둔비용을 모두 물리는 것도 모자라, 여기에 50%의 금액을 더 요구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은 지금보다 3배 정도 늘어난 3조원가량이 된다.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 끝에 지난달 전년도보다 크게 늘어난 1조389억원에 합의됐다. 하지만 이 합의는 올해만 유효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번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애초 3~5년이던 합의안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해 관철했다. 당시 “1년 단위로 매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는데, <워싱턴 포스트> 보도로 그런 의구심이 단순한 억측이 아님이 드러난 셈이다. 60년 넘게 유지해온 한-미 동맹의 가치를 단지 금전적 이해관계로만 환원하는 트럼프의 ‘장삿속’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동맹국의 미군 주둔비용 지원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호혜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는 비중은 우리 쪽 계산으론 주둔비의 60~70% 이상이고, 미국 쪽 계산으로도 40~50% 수준이다. 이를 3배나 더 내라는 건 해외주둔 미군을 돈벌이 ‘용병’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협상용 엄포’라고 해도 트럼프의 태도는 나라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의 ‘키리졸브·독수리훈련’ 종료 환영한다

한국과 미국이 해마다 실시해온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올해 종료하기로 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2일 전화통화를 하고 두 훈련을 종료한 뒤 새 이름으로 축소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국방부가 3일 밝혔다. 지난달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양국이 신속히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매우 고무적이다. 북-미 간 기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의 외교 노력이 지속될 것이란 점을 명확히 표명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미묘한 정세 속에서 주도적으로 나서 공세적·대결적 군사훈련을 자제하기로 한 건 의미가 매우 크다. 키리졸브는 1976년 시작된 ‘팀스피릿 훈련’이 시초로 그동안 독수리훈련과 통합돼 실시해왔는데, 매번 북한의 반발을 샀다. 양국은 키리졸브는 ‘동맹’이란 이름으로 대체해 일정을 대폭 줄였고, 독수리 훈련은 명칭 없이 대대급 규모로 연중 실시하기로 했다.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도 계속 중단될 전망이라고 한다. 군사적 대비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적절한 조처로 평가된다. 다만, 한-미 연합방위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할 필요는 있다.

이번 결정은 미국이 하노이 회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영구 중단 용의를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 재개에 대해 “오래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대화 유지의 기본 토대라는 두 정상의 인식이 이번 조처로 거듭 확인된 셈이다.

남북한과 미국은 앞으로 대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하노이 회담은 실패가 아니라며 “우리는 지난 며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고, 북한 <노동신문>은 “서로 지혜와 인내를 발휘한다면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김 위원장 말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하노이 회담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남북한과 미국이 하노이의 실패를 교훈 삼아 좀더 밀도있는 협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폼페이오 ‘제재 완화’ 카드, 후속 협상서 결실 맺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제재 완화’를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3일(현지시각) 언론 인터뷰에서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며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두고 미국 행정부 고위인사가 공개적으로 ‘제재 완화’ 의향을 내비친 것이어서 북-미 협상 전망에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동안 미국의 원칙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완화나 해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제재와 관계 개선은 양립할 수 없다’며 제재 완화를 촉구해왔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제재 완화라는 상응조처 없이는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인 ‘비핵화 실행조처와 상응조처’를 놓고 계속돼온 북-미 간 힘겨루기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관건은 어느 선에서 비핵화 조처와 상응조처가 교환될 수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8일 평양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의 실무협상에서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요구사항을 모두 펼쳐놓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대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대가로 미국에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미국 쪽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더해 ‘추가적 조처’를 할 경우 제재 완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의 뜻을 좀 더 분명히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와 제재 완화가 교환된다면 그것만으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작지 않은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비핵화-상응조처 시간표’ 작성에 합의한다면 결과는 더욱 알찬 것이 될 수 있다.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어내겠다는 북-미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의 ‘제재 완화’ 발언은 이 의지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음주 2차 실무회담이 열리는 만큼, 이 자리에서 북-미 사이 ‘통 큰 주고받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비핵화-관계개선’ 분명한 진전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밝혔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의 1차 정상회담에 이어 260일 만에 열리는 2차 회담에 쏠리는 관심은 각별하다. 역사적인 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뚜렷한 이정표를 세우길 기대한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합의에 그쳤던 점에 비춰보면, 2차 정상회담에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전세계에 내보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협상을 통한 비핵화’에 대한 일부의 강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에 북한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이 중지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엔진발사장을 폐쇄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비핵화 진전은 이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제한적 조처에 상응하는 미국의 의미 있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베트남 2차 정상회담에선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뛰어넘는 북한의 주요 핵시설 폐기·검증 약속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과감한 관계 개선 노력을 서로 주고받는 게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 맞춰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실무협상에 나선 건 눈여겨볼 만하다. 2차 정상회담 합의문의 기조를 평양에서 직접 조율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응하는 미국 조처로는 연락사무소 개설이나 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이 거론되는데, 이 중 핵심은 경제제재 완화로 보인다. 북한은 비핵화 완료 전이라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미국도 최근 이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만큼, 비건 대표의 방북 기간에 대략적인 의견 조율을 이루길 바란다.

2차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정상회담 날짜를 공개한 점과 회담 장소가 베트남인 점은 그런 징표로 읽힌다. 새해 국정연설에서 정상회담 날짜와 개최국을 공개한 건,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대외정책의 핵심 현안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번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려 노력할 것으로 보여 긍정적이다.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것도 상징적이다. 두 나라가 증오를 딛고 국교 정상화를 했듯이, 한국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 역시 ‘화해와 평화공존’으로 나갈 것이란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진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의 비전을 사회주의 베트남에서 직접 받을 수도 있을 터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여정은 이미 역사의 레일 위에 올라섰다. 이 열차가 빨리 달릴 수 있게 2차 정상회담에선 가시적이고 뚜렷한 성과를 내길 간절히 바란다.


[한겨레 사설] ‘악화일로’ 한-일 관계,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을

일본 해상초계기의 초근접 위협비행으로 촉발한 갈등 국면이 이어지며 한-일 관계가 전례없는 냉각기로 접어들고 있다. 국방부는 24일 오후 우리 해군 구축함에서 촬영한 일본 초계기의 근접비행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25일엔 “(일본이 근접비행을 부인하는데) 그에 걸맞은 자료를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증거 자료를 내놓지는 못하면서도 한국이 공개한 초계기의 비행고도 수치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의 오랜 과거사 갈등이 요즘 들어선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인데,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초계기 근접비행 논란은 누가 봐도 일본의 의도적 도발 측면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그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는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의 한-일 갈등을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게 필요하리라 본다.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의 요인은 단순하지가 않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논란과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로 촉발됐지만, 여기엔 동북아 지역의 구조적인 안보환경 변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선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면서 최근 한반도 정세는 대결에서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일본은 그동안 중국 부상과 북한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3각 안보협력과 재무장화에 적극 나섰는데, 이제 이런 프레임이 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 역시 남북관계 복원으로 한반도 상황이 안정되면서, 국민 정서를 거스르면서까지 일본에 군사정보 등 협력의 손을 내밀 필요는 없게 됐다.

이렇듯 최근 상황이 동북아 정세 변화와 연결된 중층적인 것이라, 단기적으로 해법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우선은,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한·일 두 나라 정부 모두 좀더 냉정해져야 한다. 서로를 자극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 초계기 사건만 하더라도 한·일 정부는 의사소통 창구를 가동해 일본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방위비분담금 1700억원 더 내라는 트럼프의 ‘억지’

미국이 올해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10억달러(1조1335억원)를 내라고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담금 유효기간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해 낸 방위비분담금 9602억원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례 없는 과도한 증액 요구다.

방위비분담금은 1991년 도입 이래 매년 한자릿수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한-미는 5년 전인 2014년 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도 전년보다 5.8% 증액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분담금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하되 증액은 4% 이내로 제한됐다. 갑작스럽게 대폭 증액된 액수를 요구하는 건 이제까지의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다. 이에 한국 정부는 ‘분담금 1조원 이상’도 검토하는 대신 협정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주한미군의 주둔비가 크게 증가할 사유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터무니없는 증액을 요구하는 건 동맹의 신뢰를 해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미는 지난해 10차례나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진행했지만 타결에 실패했다. 한-미 협상팀이 이견을 좁히는 와중이었는데 막판에 미국 쪽이 돌연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평소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증액을 압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경화 장관이 직접 국회를 찾아 설명회를 연 데서 정부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엿보인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는 몫은 실제 겉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5월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2%를 부담한다’고 밝히지만, 한국이 무상 제공하는 서울 용산 노른자위 땅의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실제 부담은 80%까지 올라간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지나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 돼선 안 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동맹의 의미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과도한 요구로 한-미 관계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트럼프 ‘고립주의’, 한반도 영향 잘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시리아 파병 미군의 전면 철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시리아 내전을 이유로 지상군을 파견한 이후 3년여 만의 철군이다. 현재 미군은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2천여 병력을 파병해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현지 반군세력 ‘시리아민주군’(SDF)을 지원해왔다.

트럼프의 이번 결정은 핵심 외교·안보 참모들의 반대를 누르고 이뤄졌다고 한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이 결정에 항의해 곧바로 사의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마저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세계의 경찰’ 구실을 포기하고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한-미 동맹을 한반도 안정의 축으로 삼고 있는 우리로선 트럼프식 고립주의가 동북아에 어떤 파장을 끼칠지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에서의 갑작스러운 미군 철수로 미국-러시아 간, 정부군과 반군 간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무너져 중동 정세 전반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럼에도 미군의 시리아 철군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본격화는 우리에겐 꼭 불리한 쪽으로 작용하리라 단정하긴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남북 간 군비통제 노력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당장은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 태도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 외교의 변화 흐름을 잘 읽고 대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중동에서의 미군 철수가 곧바로 동북아 주한미군의 재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입장에선 북-미 비핵화 협상이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에 새 변수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가시화할수록,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 논의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가 마냥 지속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 한-미 간 연합훈련, 방위비 분담금 조정 문제 등에서 훨씬 세심하고 전향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터무니없는 트럼프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부터 적용될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현재의 1.5~2배로 올리길 바라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올 한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부담한 방위비분담금은 9602억원이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한국에 한해 방위비분담금을 1조4400억~1조9200억원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터무니없이 지나친 요구다.

한-미는 2014년 1월 제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전년보다 5.8% 증액된 금액에 합의했다. 그런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5년 만에 갑작스레 50~100%나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이 계획대로 2020년 완료되면, 추가적인 군사 건설비용 소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올해 들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크게 감소하면서, 주한미군이 긴급 상황을 상정한 군사 운용을 할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주둔 비용이 늘어나기보다 줄어들 요인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이런 점을 적극 설명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부담해온 방위비분담금도 사실 적은 게 아니다. 미국은 한국의 분담금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남짓 된다고 평가하지만, 국내 시민단체들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이외에 토지와 시설, 각종 수수료 감면과 세제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5% 이상을 부담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주일미군 지원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분담금은 일본보다 총액에서는 적지만, 미군 1인당 지원액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원액으로 보면 1.5~2.6배나 더 많다. 연초부터 진행중인 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협상팀은 자국 대통령이 직접 대폭 증액을 지시했기 때문인지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대북 억제만을 위한 군사력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 더는 ‘붙박이군’도 아니다.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 안정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크게 기여한다.

대북 억제력의 많은 부분을 미군에 의존한다는 걸 지렛대로 한국에 과도한 증액을 요구하는 건,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답방·북-미 정상회담 ‘선순환’을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내가 이뤄주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당부까지 했다. 두 정상이 김 위원장의 답방 추진에 인식을 같이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통해 몇달째 제자리걸음인 북-미 협상에 돌파구가 열리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다.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올해 안”이라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성사를 위해 줄곧 노력해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연내에 서울을 찾는 결단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애초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뒤 서울 답방’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북-미 협상을 통해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교환한 뒤 이를 토대로 남북 교류·협력에 시동을 건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북-미 고위급회담이 거듭 연기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약속도 유동적인 상황으로 변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에 우선순위를 두는 건 이해 못할 게 아니다.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 교류와 협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도 몇차례 연기한 끝에 유엔이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게 현실이다. 북한으로선 미국과 담판해서 대북 제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서울에 가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만난 직후 “1월이나 2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다”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그럼에도 북-미 협상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와 북한의 ‘상응 조치’ 요구가 맞서 한 치도 못 나가고 있다. 이번에도 한-미 두 정상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제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중요한 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특히 북한 지도자의 첫 서울 방문은 전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비핵화 협상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답방은 그 자체로 “세계에 보내는 평화 메시지이자 비핵화 의지, 남북관계 발전 의지”를 담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서울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 국제여론이 움직일 수 있고, 이것은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현실화해 내년 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공적으로 추동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연내 답방으로 ‘북-미 교착’ 뚫어야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을 거론했다. 조 장관은 15일(현지시각) ‘한반도 국제포럼’에 참석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답방이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 이후 길어지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 상황을 돌파할 의미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 장관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은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뜻을 모은 사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와 연동돼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것이 사실이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날짜가 확정된 뒤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미 협상 진전만 마냥 기다리다가는 김 위원장 답방이 해를 넘기거나 더 늦어질 수도 있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김 위원장 답방과 4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협상을 촉진한다는 역발상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번 고위급회담 연기 이후 북-미 사이엔 회담 조건을 놓고 기싸움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한 뒤 내년 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의 사찰과 폐기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하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다. 이에 맞서듯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공식적인 무기개발 현지지도는 지난해 11월 이후 1년 만이다. 미국이 압박만 계속한다면 북한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다. 북-미의 이런 기싸움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까지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남북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신뢰를 쌓고 돌파구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지금의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 답방이 약속대로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 발전의 도약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적극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한겨레 사설] DMZ 감시초소 철수, 군사적 신뢰 높이는 계기로

남북이 26일 판문점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어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 합의서인 ‘군사분야 합의서’의 차질없는 진행과 철저한 이행을 재확인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 유해발굴 작업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했다. 또 이미 합의한 대로 새달 1일부터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남북 군 당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긴장완화 방안의 이행 과정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점검한 것이어서, 군사적 상호 신뢰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11곳의 시범 철수를 상호 검증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로 한 대목은 특히 눈에 띈다. 11월까지 철수하고 연말까지 서로 검증하기로 구체적 일정을 확정한 건 그만큼 합의 이행의 신뢰성을 높이는 조처다. 남북은 시범 철수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북쪽 160여곳, 남쪽 60여곳 등 나머지 초소도 모두 철수시킨다는 목표를 확인했다.
이와 함께 11월 초 한강 하구의 수로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사전 조처이면서 장기적으로는 남북 공동개발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이번에 출범시키지 못하고 ‘조속히 구성한다’는 선에 그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간 긴장 완화와 무력충돌 방지 임무를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 위임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군사공동위를 구성하지 못한 건, 공동위원장의 격을 어떻게 맞출지 등 구체적인 방법에서 이견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군사공동위 구성과 관련해선, 1992년에 차관급 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부위원장 1명, 위원 5명씩으로 구성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 양쪽은 남북 군통신선을 이용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향후 협의를 계속해 군사공동위 구성을 마무리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1992년의 전례에 따라서 작은 이견을 뛰어넘길 바란다. 그래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의 평화수역 설정 등 추가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협력이 가속화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추석의 ‘한-미 정상회담’, 북-미 협상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초미의 관심사는 24일(현지시각)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비핵화 문제,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주요 의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북 설명을 듣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은 급진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조속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밝힌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 등이 미국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핵 폐기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등 대북 적대관계 종식으로 나가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20일 평양 정상회담 귀국 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며 “미국이 북한의 이런 의지를 역지사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2차 북-미 정상회담→연내 종전선언→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추가 핵 폐기 및 한·미의 추가 상응 조치’를 비핵화 프로세스로 제시한 셈이다.

회담의 성패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중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핵 리스트 신고’나 ‘사찰 수용’에 대해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상당히 전향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만큼 미국도 평양 공동선언과 김 위원장 메시지를 긍정 평가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서 미국과 협의한 메시지를 전하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선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잘 설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다시 적극 나서는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평양공동선언, ‘되돌릴 수 없는 평화’ 이정표 세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둘째 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 선언의 의미를 밝혔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의 ‘종전선언’이라 할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해 항구적 평화의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평양공동선언의 의의는 배가됐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이나 성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상회담 결과는 지난번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육성으로 밝힌 것은 이번 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대한 결심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군사분야 합의다.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국방 수장이 서명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종식에 결정적인 한발을 내디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가기로 했다. 두 정상이 보증한 부속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이어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여러 층위에서 심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속합의서에서 남북이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이 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한걸음 더 전진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번에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방지의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진전이다. 군사공동위원회를 띄우게 되면 상시적으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실태를 점검할 수 있고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방지를 위한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할 수 있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비핵화’ 문제다. 이 분야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뛰어넘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비핵화 초기 조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언급했다. 정상선언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이고 조속한 진전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명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그동안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해체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관련국 전문가들의 참관이 없다는 이유로 ‘보여주기식 폐기’라는 말이 많았다. 이번 합의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쪽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조처는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응답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이런 제안에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적은 여러 차례지만,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말한 데 주목한다. 어쨌든 발표된 내용만 보면 애초 미국이 기대했던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점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5일 미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의 방미 전에 특사나 외교 당국자를 보내 정상회담 내용을 상세히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선언은 여러 면에서 판문점선언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을 뛰어넘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마지막날인 20일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찾기로 했다. 두 정상이 함께 남북 모두의 상징과도 같은 백두산을 오르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 깊고 신실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미 교착’ 돌파구 찾아내야 할 대북특사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특사단을 5일 평양에 보내기로 했다. 북한도 문 대통령의 제안을 즉각 수용해 특사단이 평양으로 갈 것이 확실해졌다. 북-미 협상 교착상태 지속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진 상태인 만큼, 특사단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집중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정세가 지난 일주일 사이에 급변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는지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시점이다. 따라서 특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9월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다. 또 가능하면 정상회담을 앞당기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북-미 사이 중재자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애초 기대했던 대로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3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경협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이 최대의 의제가 될 참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비중이 급속히 커진 상태다. 이렇게 된 이상, 3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북-미 협상 공전 국면을 돌파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사단은 이 문제에서 교착상태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경제건설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중재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북-미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3차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9월 말 유엔총회에서 남-북-미-중이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이 완전히 무산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이 비핵화 조처에 앞서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협상이란 게 상대가 있고 미국이 ‘선 비핵화 조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 부분에서 일부 양보하는 안을 제시해 미국과 타협을 이루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특사단이 이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한다면, 북-미가 종전선언에 타협할 중재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방북할 특사단은 3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교착을 뚫는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신속한 후속협의 필요한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

남북이 13일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 안에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장소는 평양으로 고정됐지만, 날짜는 ‘9월 안’이라고만 두루뭉술하게 잡았다. 애초 남쪽은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을 고려해 이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초에는 정상회담이 열리기를 희망했고, 전날까지만 해도 이 시기에 정상회담을 여는 데 남북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절반의 확정’에 그친 느낌이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가을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게 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일정이 예상보다 미뤄진 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상회담 날짜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은 것이 단순히 북쪽의 내부 사정 때문인지, 지금의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와의 연관성 때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 정부수립 70돌인 9월9일을 앞두고 또다른 큰 행사를 벌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면 향후 외교 일정상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협상 진전에 동력을 제공하려면 9월18일 시작되는 유엔 총회 전에 열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9월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하는 종전선언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유엔 총회 이후로 미뤄진다면, 현재의 교착 국면을 선도적으로 뚫고 나가는 돌파구로서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북은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9월 안’이라고만 돼 있는 정상회담 일정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 의제에는 남북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정하는 것 말고도 판문점선언 이행 점검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동안 북쪽에서는 북-미 관계 진척과는 별도로 남북관계 발전, 특히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을 요구해왔는데, 이 부분에서 남북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북쪽 회담 대표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남북 회담 등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정에 오른 의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한 것이 걸린다.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협력 의제들에 진척을 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부는 좀더 소상하게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9월 중순 이후로 미뤄진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도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상회담이 한달 이상 남은 상황이어서 정상회담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정상회담대로 준비하되, 현재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찾아내 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미 교착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남-북-미 어느 쪽에도 좋을 것이 없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일정과는 별도로 북-미 사이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 종전선언 디딤돌 되길

정전협정 65돌인 27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이날 오전 미군 수송기가 북한 원산에 들어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경기 평택 오산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2007년 이래 11년 만의 미군 유해 송환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인 유해 송환이 이뤄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동창리 위성발사장의 일부 시설 해체와 함께 6·12 공동성명 이행을 본격화하는 행보로 읽힌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공동성명 4항에 미군 유해 송환을 명시했다. 유해 송환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본안은 아니지만, 북한이 성의있는 조처를 함으로써 신뢰구축을 통한 분위기 개선에는 상당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정전협정일에 맞춰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거듭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인 지난 7일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을 외면하는 미국에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일을 맞아 한국전쟁 중 전사한 마오쩌둥 장남의 묘를 찾은 것은 중국까지를 포함한 종전선언에 무게를 둔 행보로 읽힌다.
백악관은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지만, 미국이 이를 계기로 곧바로 북-미 관계에 어떤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최근 이례적으로 대북제재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25일 대북 주무부처 장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통화한 것이나, 26일 마크 램버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서울에서 남북경협 관계자들을 만난 것은 모두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이 채찍을 드는 모양새인 셈이다.

최근 북-미 간 기류는 제대로 된 협상은 못하면서 서로 엇박자만 내는 형국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북한이 강경 목소리를 내다가 최근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북한 반발에 자극받아 북한을 옥죄는 행보를 하고 있다. 북한이 동창리 시설 일부를 자진 해체하고 미군 유해를 송환했지만, 실질 협상을 통해 나온 조처들이 아니다. 미국 역시 종전선언 문제 등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제재 고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북-미가 지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려면 진지한 자세로 실질 협상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공식·비공식 협상 테이블을 최대한 원활히 가동해야 한다. 북한은 협상의 진전을 위해 상호 확인 가능한 비핵화 조처들을 내놓고, 미국도 안전보장에 대한 북한의 요구를 성의있게 경청해야 한다. 그렇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65년간이나 지속된 한반도의 정전 상태에 마침표를 찍는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국정원’ 탈북공작을 현 정부가 왜 감싸나

중국 저장성에 있던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이 과연 자의에 의해 탈북한 것인가. 지난 10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밝힌 데 이어 15일 식당 지배인이던 허아무개씨가 다시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나섰다. 지난 2016년 4월 사건 직후부터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데다 최근 당사자들까지 비슷한 주장을 하고 나서 더는 진상을 덮어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발 사건을 맡은 검찰은 더이상 의혹이 남지 않도록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

허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원래 나는 국정원 협력자였고 정보도 가져다줬다”며 “그 사람들이 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한 뒤 동남아에 국정원 아지트로 쓸 수 있는 식당을 차려주겠다고 꼬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종업원들에 대해 “대다수가 동남아에 가서 식당을 영업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허씨는 애초 자신의 국정원 협조 사실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우리 쪽에 먼저 귀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를 부인하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여종업원들의 ‘자의 탈북’ 여부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여전히 자의에 의한 탈북이란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제이티비시> 인터뷰에 응한 일부 여종업원들은 당시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뒤 한국 대사관에 들어서기 직전에야 한국행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대사관 앞에서 머뭇거리자 허씨가 ‘(북으로 돌아가겠다면) 한국 드라마 본 것을 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대사관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이들을 이틀 만에 입국시킨 뒤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공개했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 이후 북한 식당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4·13 총선 5일 전 일인데다 여러 정황상 총선용 기획으로 보인다. 사기극에 가까운 기획 탈북으로 여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진실을 다시 덮는다면 새 적폐를 쌓는 일이다. 북송 여부는 차후에 따지더라도 우선 진실부터 투명하게 밝혀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끝내 ‘미-중 무역전쟁’ 터뜨린 트럼프의 무모함

미-중 무역전쟁이 끝내 발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했던 대로 6일 0시1분(한국시각 오후 1시1분)부터 818개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의 고율관세 부과를 발동했다. 금액으로 340억달러(약 38조원)어치다. 중국도 “미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며 바로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통한 타결을 바랐던 국제사회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미-중의 무역전쟁은 확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 방침을 정한 500억달러어치 가운데 나머지 160억달러어치에 대해서도 2주 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중국이 보복하면 추가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보복과 재보복이 이어지는 ‘치킨 게임’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은 좌충우돌이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품목도 무차별적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에까지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을 통해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착각일 뿐이다.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 침체를 불러올 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연합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오토바이 업체인 할리데이비드슨이 생산시설 일부를 국외로 옮기기로 했다. 보호무역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결속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선거 승리를 위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삼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중국에 대한 자본재와 중간재 수출이 많아 미국의 중국 제재는 우리 수출에 바로 영향을 준다.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정부와 수출 기업들이 힘을 모아 총력 대응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또 수출에만 목매지 않도록 내수를 확대하는 등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중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에 건설적 기여 하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3월25일 이후 3개월 사이에 벌써 세 번째다. 그 사이 두 차례 남북 정상이 만났고 지난 12일에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북-미 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3월 이후 무려 여섯 차례나 정상외교에 나선 것은 동북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주는 행보라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우선 미국과 중국 사이 북한식 균형외교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3월 북-미 정상회담 결정 뒤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4·27 남북정상회담 뒤에도 다롄에서 다시 북-중 정상회담을 한 것을 보면, 국제관계에서 나름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방중도 그런 차원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비핵화-체제보장’ 담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삼음으로써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비핵화 이후의 북한 체제보장을 확실히 하려면 중국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북-중 관계 강화를 원하는 중국으로서도 김 위원장의 방중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이 보증인이자 중개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북-미 대결이 격해지던 시기에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을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지난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19일 프리덤가디언 훈련 중단 결정으로 중국이 주장해온 해법이 현실성이 있음이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상, 여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또 북한도 중국이라는 우호세력이 버텨줄 때 안심하고 비핵화 과정에 나설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중국이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미-중 힘겨루기를 가져오면서 북-미 협상을 꼬이게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다롄 회담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 바 있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건설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주변국들의 이런 우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한-중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중국이 북-미 평화 과정의 적극적인 중개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아가 미-중 사이에 불거질 수도 있는 갈등을 예방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 종전선언’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주목할 만한 발언을 여럿 내놓았다. 이 가운데 “우리는 한국전쟁 종전에 대한 합의(agreement)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은 특히 눈길을 끈다. 물론 이 발언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싱가포르에서 종전과 관련해 모종의 합의를 한 뒤 추후 회담에서 공식 선언을 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어떤 경우가 됐든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상징적·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안이지만, 지금 국면에서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의미가 큰 만큼 빨리하면 빨리할수록 좋다. 그래야 북한도 체제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면서 실질적인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현재까지 흐름으로 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하는 종전선언을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차, 3차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상, 다음 정상회담에서라도 3자가 종전선언을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종전선언을 앞당길수록 북한이 비핵화 속도를 내기 쉽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잘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한다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는 것이어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향한 또한번의 도약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북-미 국교 정상화를 원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필요한 조처를 완료하면’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으로 국교 정상화 발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싱가포르 회담이 실질적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준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한 ‘단계적 비핵화’로 강조점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그만큼 현실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과정을 밟더라도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속도가 늦춰져선 안 되며, 그러려면 미국의 체제보장 조처가 적극 병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회담’ 돌파구 연 2차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의 원상회복을 위한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남북 정상의 신속한 만남과 적극적인 대응이 위기에 봉착한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살려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 이로써 북-미 관계의 길잡이로서 우리 정부의 입지도 더욱 단단해졌다고 할 것이다.

지난 며칠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요동쳤다. 절정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통보였다. 다행히 북한이 곧바로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환영하면서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이어 남북 정상이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2차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 추진의 확고한 뜻을 밝힘으로써 결정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린다는 공식 확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회담 개최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소득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이지만, 더 큰 의미는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미국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이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 반해, 북한은 미국의 일괄타결식 해법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지 못할까 걱정해 왔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함과 동시에, 김 위원장으로부터는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약받은 것은 큰 성과다. 특히 문 대통령이 ‘미국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가 김위원장의 걱정’이라고 밝힌 대목은 사태의 핵심을 보여준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미국도 이미 공유해 북-미 사이 쟁점과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한층 또렷하게 알게 됐으니만큼, 북-미는 남은 시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법을 도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해법’을 부인한 이상, 접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알려진 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도 북-미 정상회담의 복원과 성공에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뉴욕 타임스>의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불가능’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더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검토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혀 ‘6월12일 정상회담’ 복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백악관이 북-미 정상회담 사전준비팀이 27일 싱가포르로 떠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개최 시기와 형식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 돼 이루어졌다는 점, 격식을 차리지 않고 회담 제의 하루 만에 신속하게 열렸다는 점,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문제 해결형 회담이었다는 점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남북 정상의 만남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난관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실용적이고 격의 없는 만남을 활용한다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남-북-미가 함께하는 종전선언’ 추진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되면 좋겠다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남-북-미의 종전선언은 북한의 체제 보장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필요하다면 북-미 정상회담이 연장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이 만나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우리 정부는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남북대화를 재가동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남북관계는 북-미 관계와 연동돼 있고 북-미 관계가 뚫리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에 장애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북이 남북관계를 자주적으로 풀어감으로써 북-미 관계 진전의 동력을 키운다는 발상도 필요하다. 남북은 국면이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만날 필요가 있다.

북-미 협상 교착 국면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을 보여준 뜻깊은 사건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다. 남북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말고 북-미 회담 성공이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한국 수준 번영”, 주목되는 북한 비핵화 청사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각) “북한이 빠른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처를 하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신속하고 과감한 비핵화 조처를 조건으로 미국이 큰 폭의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화답하듯 오는 23~25일 외국 언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행사를 한다고 12일 밝혔다.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쪽이 긍정적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회담 전망을 한층 밝히는 형국이다.

북한이 빠른 비핵화를 할 경우 한국 수준의 번영을 약속한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은 비핵화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이른바 ‘북한 비핵화 청사진’이라 할 만하다. 북한에 요구한 ‘빠른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처’는 종전과는 다른 조처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속한 비핵화를 강조함으로써 북-미가 속전속결식 일괄타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경우에 따라선 비핵화 시점이 훨씬 당겨지고, 그 방식도 앞뒤가 뒤섞이거나 동시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검증장치가 작동될 전망이다. 비핵화를 잘게 나누어 보상하는 과거 방식의 맹점을 극복함으로써 성공 전망을 한층 높일 것으로 평가된다.

폼페이오 장관 발언이 지난 9일 두번째 평양 방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난 뒤 나온 것이란 점에서 북한과도 어느 정도 조율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비핵화를 하면 그에 상응해 제재 해제, 체제 안전보장은 물론 큰 폭의 경제지원까지 제공하는 포괄적인 프로세스를 북-미가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국 수준으로 번영하는 것은 비핵화 로드맵, 더 나아가 남북관계를 일궈나가는 데 있어서 큰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번영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와 일치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불량국가로 남아 있는 한 한국의 미래도, 동북아의 미래도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이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일정을 공표한 것은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남북 정상 합의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이 최소한 ‘미래 핵’은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일부에선 과거 영변 냉각탑 폭파와 같은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일련의 비핵화 과정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쯤 앞두고 북핵 문제는 과거와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전향적이고 과감한 조처들을 잇달아 내놓음으로써 성공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미를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창조적이고 과감한 조처들을 조율하고 실천함으로써 동북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판문점의 봄, 평화·번영의 시대 열다

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27일, 마침내 분단 70년의 질곡을 딛고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환한 얼굴로 마주 보며 첫 악수를 나누었다. 두 정상은 분단의 선을 손잡고 함께 넘고 다시 넘었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정에 없던 퍼포먼스를 통해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는 남북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을 화해의 상징으로 바꾸는 뜻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감격 어린 만남 속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해온 8000만 겨레와 함께 축하할 민족사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11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반도 평화정착에 극적인 전환점이 될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옴으로써 정전협정 이래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북쪽 최고지도자가 됐다. 김 위원장은 북쪽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 최고지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만찬에서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한 것도 정상국가화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솔직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문 대통령과 만나는 순간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든 것부터가 파격이었다. 김 위원장이 북쪽의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북쪽 내부의 문제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허장성세 없이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모습은 그만큼 신뢰를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거짓 없는 만남만큼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직접 기자들 앞에 나와 판문점 선언의 의의와 내용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개방적인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는 전쟁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자는 남북의 의지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반도 비핵화 의제에서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 비핵화가 명시됐다는 점에서 이 선언은 그간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킨다고 할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나머지 다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핵심 고리에 해당한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번 선언을 통해 이런 의구심은 확실히 불식하게 됐다.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남북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비핵화 선언을 함으로써 나머지 문제를 풀어가기가 그만큼 쉬워졌다.

이번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 가을 방북이 이루어지면 한해에 두 차례나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동안 남쪽에서 추진해온 정상회담 정례화가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긴장완화 및 남북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물론이다. 회담 중에도 남북 정상은 ‘수시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는데, 이로 미루어보건대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전통 의장대와 행렬하던 중 김 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하자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가겠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뒤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올 것인지는 비핵화 다음으로 관심이 큰 의제였다. 특히 종전선언 문제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느냐가 관심사였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천명했다. 물론 종전선언은 남북 두 당사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당사국이 함께 참여해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언문에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이다. 이 선언으로 미루어보건대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한 뒤에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 만나 종전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은 평화체제 정착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두 정상이 서로 어떤 무력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합의한 내용들도 관심을 끈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상태를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앞으로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한 것은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위한 조처로 평가할 만하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한 것도 기대를 모은다. 앞으로 열릴 군사당국회담에서 이 합의를 구체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시종 ‘이행 의지’를 강조한 것도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상 간 합의를 스스로 먼저 이행할 뜻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약속대로 합의를 이행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남북 사이에, 또 북-미 사이에 여러 차례 중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중간에 휴짓조각이 되거나 무용지물이 된 것은 북쪽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보수 정권 아래서 남북 합의들이 이행되지 않은 것도 여러 건이고 북-미 사이에도 미국 쪽의 합의 불이행으로 관계가 틀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남과 북이 이 점을 유념해 이번에 만들어낸 합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낸다는 각오로 착실히 실행해 서로 믿음을 쌓아올려야 한다.

한달여 뒤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해야 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밝힘에 따라 북-미 양국을 중재하기에 훨씬 좋은 위치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회담 성과를 가지고 다음달 중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율해야 한다. 미국은 두 정상이 첫 대면을 한 직후에 성명을 내 남북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 전체를 위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끌어낸 판문점 선언이 북-미 ‘빅딜’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남북 정상이 다짐한 대로 이제 우리에겐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달리는 일이 남았다.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 남북이 협력하고 상생하는 새 시대를 만들어가길 기원하며, 정상회담의 큰 성취를 온 겨레와 함께 축하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중형, 국민의 심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법원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해온 그에게 내려진 법의 단죄다. 66살의 그에게는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형량이긴 하나 죗값에 비하면 결코 무겁다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도 남아 있다. 형량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이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까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그가 자초한 자업자득임은 물론이다. 이날 선고로 국정농단 1심 선고가 마무리됨으로써 1400만 촛불시민의 힘으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도 한 단계 진전을 이루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18개 범죄사실 대부분에 유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박영수 특별검사와 검찰의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펴며 국정농단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 재판 과정과 판결을 통해 현직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눈” 국정농단의 구체적인 범죄사실들이 증거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대부분 유죄로 인정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취임사 작성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개최에 이르기까지 국정에 일일이 개입했고 이를 위해 청와대 기밀문서까지 멋대로 받아 본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 압수수색 절차상 문제 때문에 기소된 47건 문서 가운데 14건만 유죄 판단을 받긴 했으나 국정농단의 실체가 그대로 공인된 셈이다.

현직 대통령이 40년 지기의 이권을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을 협박·강요해 돈을 뜯어내고,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이나 사기업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혐의도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최씨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 납품계약을 위해 대기업을 협박하고, 최씨 회사를 위해 공기업에 광고·인사를 청탁한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개인 비리뿐만이 아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단체·인사들의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차단한 데 대해, 법원은 “평등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못박았다.

특검 수사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이 보여온 태도도 중형 선고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잘못된 국정 운영과 개인 비리로 청와대 참모는 물론 장차관들까지 줄줄이 수감 중인데도 그는 여전히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방해하더니,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노골적으로 재판 진행을 방해해왔다. 검찰이 내놓은 대부분의 증거 채택을 거부해 100명 이상의 증인을 일일이 법정에 불러야 했다. 그 바람에 재판이 늦어져 구속영장을 재발부하자 ‘불구속 원칙’을 내세우며 재판을 거부했고 선고 날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놓고 재판부의 생중계 방침에는 ‘무죄추정 원칙’을 내세우며 두차례 이의신청에 이어 헌법소원 제기 방침까지 밝혔다. 법 위에 군림하며 사법농단을 자행하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법에도 눈이 있고 감정이 있다.

국정원 특활비 재판도 거부하고 있는 그가 중형 선고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생때같은 목숨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절체절명의 시각에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보고 시각까지 조작했다면 사법적 단죄 차원을 넘어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것이다.
고건 전 총리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라 아버지 추모사업이나 했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능력이 의심스러운 이가 대통령이 되고 비선 실세에 기대어 국정을 농단하기까지 20여년을 온 국민이 속았다. 언론을 포함해 검찰과 국회 등 모두 성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이들이 그를 감싸며 발뺌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겨레 사설] “4·3 완전한 해결” 천명한 문 대통령의 단호한 과거사 행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70년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12년 만이다.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지만 그늘에 묻힌 부분이 적잖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명확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4·3은 새 전기를 맞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70년 전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4·3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예술인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했다. 무장세력 수백명을 이유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 희생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국가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못박았다. 문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유해 발굴, 배상·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뒤를 이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시절인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55년 만에 4·3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후 보수 정권 9년간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한 차례도 없었고 명예회복도 진전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4·3 추념식을 두고 “좌익 폭동에 희생된 양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말했다. 4·3이 이념 문제가 아니라 무자비한 국가폭력의 문제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제1야당 대표가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되풀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문 대통령은 5·18, 4·3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 첫 5·18 기념식에 참석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약속했다. 이번에 4·3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진일보한 태도를 보였다. ‘촛불 정권’의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5·18과 4·3 등 아픈 과거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는 시효가 없다. 늦었더라도 잘못됐다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4·3 70년을 맞아 제주에도 ‘온전한 봄’이 오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정치보복’ 말한 MB, 정치적 고려 없이 단죄해야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맥락상 전직 대통령 검찰 소환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생각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이 각종 혐의를 부끄러워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치보복론을 내세우는 것에 허탈함을 감추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에 대해 “나와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횡령, 다스 소송비용을 재벌에 떠넘긴 혐의 등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혐의를 극구 부인하면서 교묘하게 정치보복론으로 방패막이 삼는 건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퇴임 5년이 지나 이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은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 태도는 1월에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 강변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정치보복 국면이 아니라, 오랜 세월 제기된 숱한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시간이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진실을 역사와 국민 앞에 털어놓아야 한다. 최소한 정치보복 운운하며 잔꾀를 부린다는 인상을 주진 말아야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 출석을 두고 “복수의 일념으로 전전 대통령의 개인 비리를 집요하게 들춰내야만 했을까. 모든 정치 현안을 6·13 지방선거용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한심하다. 홍 대표야말로 모든 사안을 정략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검찰 수사는 정치보복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등은 단순히 ‘개인 비리’의 차원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계속되는 수난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형사처벌될 가능성도 제법 높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순 없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범죄의 경중에 따라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하다. 고통스럽더라도 이 길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대장정 시작됐다

한반도 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특사단이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함과 동시에,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뜻을 즉각 표명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단계 예비 과정을 거치리라는 예상을 깨고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합의다. 지난번 대북 특사단의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이어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면,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적대로 일관해온 북-미 관계는 이로써 한반도 평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고 극적인 정상화로 나아갈 돌파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특사단이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지난번 대북 특사단에 밝힌 것보다 한층 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초청에 트럼프 대통령은 ‘4월에 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으면서 북-미 대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핵단추 설전’을 벌이며 대결 구도로 일관했던 북-미 관계에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적인 전환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받아온 북한과,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부 악재를 돌파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미 사이에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빅딜’ 과정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주도하면서 결단을 내리는 두 정상의 공통된 스타일로 보건대 관계 정상화가 의외로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북-미 관계의 대전환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들인 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조심스럽고도 끈질기게 노력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북-미 사이 다리를 놓는 외교적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한달 사이에 남북 고위급 특사단 왕래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룬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 약속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한국이 주도한 ‘북-미 중재’의 쾌거라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 결과이기도 하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4월 말 열릴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가능성을 예고함과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회담의 성격까지 띠게 됐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 수락을 알리면서 동시에 ‘비핵화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충분히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북-미 사이에 변수가 끼어들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우선 한반도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은 북-미 합의를 ‘대사건’이라고 환영하고 있지만, 일본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북-미 관계의 진전 국면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사단이 돌아오는 대로 중·일·러 세 나라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결과를 소상히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협상 라인이 공석이라는 사실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조셉 윤 국무부 특별대표가 빠진 뒤로 대북 실무 접촉을 이끌고 북-미 간 의견을 전달할 대북 전문가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교섭에 뜻하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 정상회담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무산된 것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최종 목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흔들리지 않는 초석을 세우는 데 일대 전환점이 되기를 국민과 더불어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