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국민과 법치주의 모독한 박근혜씨의 정치보복론

재판이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발언이 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사죄는커녕 그 흔한 반성이나 참회의 말 한마디 없다. 오로지 재판 공정성을 트집 잡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미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법정투쟁이 불리해지니 ‘정치투쟁’으로 지지층을 결집해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의도 아닌가 싶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참담하고 비통한 노릇이다.

그의 변호인 전원이 사임하겠다고 밝힌 건 사실상 재판을 보이콧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국선 변호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재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판 절차에 흠집을 내려는 무책임한 행동일뿐더러 사실상 ‘사법 방해’에 가깝다. 시정잡배라면 몰라도 전직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 운운하는 건 범죄 피고인인 스스로를 정치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속셈일 뿐이다. 재판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증언과 증거가 제시됐는데 이제 와서 ‘희생양 코스프레’를 하는 건 사법부와 국민에 대한 모독이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정치 보복이라면 자신이 속했던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탄핵소추에 찬성하고 나선 것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재판에 넘긴 검찰과 특검도 박근혜씨 자신이 대통령 시절 임명했던 사람들이다. 굳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려면, 재판에 성실히 임해 증거를 내놓고 법 절차에 따라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절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을 거론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기 짝이 없다. 동정론을 유발하고 지지층을 자극해 장외투쟁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한마디도 않다가 구속기간이 연장되고 나서야 뒤늦게 ‘역사적 멍에·책임’을 거론하고 나선 것도 비겁하다. 부끄러움을 모른 채 끝없이 추락하는 전직 대통령의 구차스러운 모습에 서글픔을 떨칠 길 없다.
이런 행위가 법정에서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으리란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법적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정치 선동’에 나선 건 재판 이외의 요소를 통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행태로 비친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법리에 따라 유무죄를 가리는 절차에 협조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한겨레 사설] 미국은 “북한과 대화채널 있다”는데 한국은 어떤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0일 중국을 방문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2~3개 정도의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본 원칙은 평화적 해결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당면한 행동은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으로 당장 북-미 간 대결 구도가 대화 국면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차분히 북핵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될 수는 있어 보인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대북 창구는 기존 뉴욕 북-미 채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 뒤 청와대나 미 국무부 쪽은 “북한이 진지한 대화에 아무런 관심을 표명해 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 발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의중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 발언은 북핵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강 대 강’으로 맞붙는 상황이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선 막후 채널이 필요하며 협상을 통한 타결 가능성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들이 지난 27일 청와대 회동 뒤 합의문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가 불가피하다. 강력한 압박과 제재도 결국은 대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미국도 유지하고 있다는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간 보수 야당이나 보수 언론은 우리 당국자가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면 비난하기 일쑤였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이야기하면 순진하고, 미국이 그렇게 하면 전략적 고려라는 식의 발상은 사려깊지 못하다.

그간 최악으로 치닫던 한반도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한·중·일 순방,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조심스레 긴장 완화 국면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순방을 계기로 한-미, 미-중 간에 북핵 해법이 심도있게 모색될 수 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 축소 또는 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긴장 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을 멈춰야 한다. 한반도 위기가 더 이상 고조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이제는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긴장 완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평화’ 내던지고 ‘호전성’만 드러낸 최악의 유엔 연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totally destroy)하겠다는 호전적이고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말폭탄을 퍼부었다. 미국 대통령이 ‘평화의 전당’인 유엔 무대에서 이처럼 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비난을 퍼부은 건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뿐 아니라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을 싸잡아 ‘불량국가’(rogue nation)라고 공격했다.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맹비난한 발언을 연상시킨다. 그래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국정연설이라는 국내 무대에서 나왔다. 국가원수 90여명을 포함해 전세계 193개 회원국이 모인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이런 식의 발언을 내뱉은 건 국제사회엔 충격적인 일이다. 오죽하면 <워싱턴 포스트>가 “깡패 두목처럼 들린 연설”이라 평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 북한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로켓맨’이 자신과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등 자극적 용어만 사용했을 뿐이다. 북핵 문제를 풀어낼 어떤 현실적인 해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발언이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핵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작동할까 국제사회는 우려한다. 특히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말은 김정은 정권뿐 아니라 2500만 북한 주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들린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

김정은 정권은 트럼프 발언을 주민 결집용으로 이용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김정은을 돕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국내 지지층을 향해 강경 목소리를 내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제협력의 장인 유엔 총회장에서 “그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거침없이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트럼프 연설은 국제사회 불안을 고조하고 한반도 정세에도 불확실성을 더할 게 분명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되며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고삐 풀린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정책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조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회원국들 앞에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이민자 청년 내쫓아 지지층 굳히는 비열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불법체류(서류미비)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다카란, 어린 시절 불법체류 신분의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2세들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으로,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결정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다카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이 혜택을 받고 있는 청년들 80만명이 미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들은 서류상에서만 제외하고 모든 방식에서 미국인이다.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라며 격정과 안타까움에 찬 장문의 글을 올렸다.

대선 기간 다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는 “관대함을 보여줄 것”이라며 유지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스캔들’ 의혹 확산과 인종주의적 발언 등으로 국정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지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이민 정책’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장 취약한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비열한 행동이다. 이들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16살 이전에 미국에 들어와 학교를 다녔고, 일부는 부모 나라와 아무 연고가 없고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이들의 삶을 뿌리째 뽑아 내팽개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권 측면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 오로지 미국 내 지지층의 ‘구애’에만 급급한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도 불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언급한다든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핵 대응 통화 뒤 ‘한국이 수십억달러 상당의 미 군사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합의 안 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것 등도 철저히 국내정치적 지지층만 바라본 편협한 행동이다.
다카 폐지는 우리에게도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폐지가 현실화하면, 한인 청년 7000~1만명이 추방 대상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는 한인 청년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미 정부와 의회에 우리 입장을 분명히 알리는 등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트럼프의 ‘FTA 폐기’ 발언 유감, 정부 당당히 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검토 중이고 이르면 이번주 절차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양국이 공동위원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일방적 발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핵을 둘러싼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에프티에이 폐기가 경제 분야를 넘어서는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정부는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이번 발언이 실제 폐기 수순으로 이어질지, 단순한 협상용 압박 카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에프티에이 공동위원회 첫 특별회기에서 양국은 팽팽히 맞섰다. 한국 쪽은 에프티에이 효과에 대한 공동 조사·분석·평가를 제안했지만 미국 쪽은 답변 시한도 밝히지 않았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에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고 서면으로 통보하면 180일 뒤 폐기된다. 30일 이내 상대국이 ‘협의’를 요청할 순 있지만 이를 무시해도 그만인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나 의회, 산업계 분위기로 미뤄 볼 땐, 트럼프 대통령이 섣불리 폐기 수순을 밟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당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온건파뿐 아니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폐기에 반대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전미제조업협회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보도되자, 회원사들에 긴급 이메일을 보내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접촉해 에프티에이 폐기 중단을 설득하라고 독려했다.

미국 쪽은 2012년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 이후 무역적자가 2배로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분석은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상대국 것을 빼앗아야 하는 18세기 ‘제로섬’식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아니다. 분야에 따라 이득이 있고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한-미 동맹 관계에 따른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보복’에 가까운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이런 점들을 부각시키며 한국 정부는 당당하게 국 쪽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이재용 유죄, 추악한 정경유착 근절의 전환점 되길

법원이 25일 뇌물공여와 횡령·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 등 삼성 간부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 뇌물공여 등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도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밝혔듯이 ‘우리나라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패한 정경유착 병폐’에 법적 단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과 동전의 양면처럼 엮여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죄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 다소 미흡한 대목이 없지 않으나 ‘적폐 청산’을 요구해온 1600만 촛불시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사필귀정의 판결로 평가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쪽 사이에 몇몇 쟁점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법정에 선 삼성 전·현직 임원들은 증언 거부와 진술 번복 등 ‘사법농단’에 가까울 정도의 강력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의 존재를 한참 뒤에야 알았고 말 지원도, 합병 작업도 미래전략실에서 했을 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와 공정거래위원회 외압 일지를 비롯한 물증과 정유라씨 증언 등 숱한 증거 앞에 삼성 쪽 변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부회장 스스로 국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혀놓고도 뒤늦게 법정에서 미래전략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위치였던 것처럼 주장한 것이야말로 삼성 쪽이 얼마나 변명을 급조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재판부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무렵엔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언론보도 등으로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정유라와 관련 있음을 이 부회장이 알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엄청난 손실을 끼쳐놓고도 최후진술에서까지 “제가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운운하며 끝까지 발뺌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용서받기 힘들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알고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히는 등 ‘뇌물’을 준 사람뿐 아니라 받은 사람 역시 유죄라는 취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이 단독면담 때부터 승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지원이 미흡하면 삼성을 질책하는가 하면 최순실로부터 승마 상황을 계속 전달받는 등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보았다. 재판부가 다르긴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판결을 앞두고 상당수 언론이 삼성 쪽에 편향적인 기사·칼럼을 대대적으로 내보낸 점은 우려할 만하다.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여럿인데도 ‘스모킹건이 없다’거나 ‘청와대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여론몰이를 한다’는 등 적반하장의 주장으로 재판을 흔들려고 한 것은 언론의 정도를 한참 벗어났다. 향후 재판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자성을 촉구한다.


[한겨레 사설] 한·미연합 훈련 축소, 대화국면 전환점 되길

21일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연습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이 지난해보다 7500명 줄었다고 한다. 고강도 위기 국면에서 미군이 병력을 증원하지 않고 오히려 줄인 것은 훈련 규모 축소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 계획을 잠정 연기하고 추가 도발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미국이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훈련 축소가 아니라고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상황을 지혜롭게 관리해 한반도 ‘긴장모드’를 ‘평화모드’로 바꾸는 전환점으로 적극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는 동맹 차원의 연례적 방어훈련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발해 왔다.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때마다 도발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렸다. 지난해 을지훈련 기간에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수십년째 되풀이돼온 양상이다. 이번 훈련은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위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국면에서 진행된다. 한·미가 공격적 훈련을 진행하고 여기에 북한이 도발로 맞선다면 어떤 파국으로 흐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한·미가 훈련 규모를 축소하고 이에 맞춰 북한도 도발을 자제한다면 대치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바꾸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미가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면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처는 최대한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군이 이번 훈련 기간에는 B-1B 폭격기 등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해온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충분히 검토할 만한 조처다. 우발적,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이 상존하는 위기 국면에서 굳이 한반도 상공에 위협적 무기를 전개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의 훈련 축소가 평화의 징검다리로 작용한 전례도 있다. 남북은 1991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북한도 무모한 무력 도발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군사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며 위협했는데, 다른 해보다 강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북한은 모처럼 마련된 해빙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대북 압박’에 치우친 한·미 정상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대북 제재 강화 등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평화적·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이다. 최근 ‘군사적 대응’까지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전쟁은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체적인 대화 내용을 보면, 강경 대응 일변도로 흐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하거나 포기할 때까진 제재와 압박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 핵폐기-후 대화’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앞서 북한에 남북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자회담을 제의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핵 해결 주체는 미국 중심 국제사회이고, 남북관계 등 인도적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화’를 2개로 분리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결국 ‘반쪽짜리 대화’만을 목표로 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를 언급하며, “빠른 시간 내에 (반대 주민들 및 중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로 이해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의 방위력 향상을 위해 핵 추진 잠수함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전혀 ‘평화적·외교적’ 방법이 아닐뿐더러, 이런 방식의 군비 증강이 과연 한반도 문제 해결과 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고삐 풀린 듯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경 분위기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남북 평화 기조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존 입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북한은 늘 도발적이고 비협조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중심을 잃지 말고, 보수 정부와는 다른 한반도 해법과 평화 기조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핵 해법 이견 드러낸 G20, 우리가 돌파구 열어야

문재인 대통령의 첫 다자외교 무대이자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주목됐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8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애초 경제 문제가 중심인 만큼 공동성명에는 북한 관련 언급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의장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에서 정상들의 비공개 세션을 전하면서 북핵 문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우리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제재와 대화 양쪽 모두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이번 회의를 통해 반년 이상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던 한국 외교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문 대통령은 다자회의뿐 아니라 13차례의 정상급 양자회담을 하며 4강 외교, 다자외교를 복원시켰다. 특히 북한의 대륙간탄도급 미사일 발사라는 중대한 상황 변화에도, 한국의 한반도 문제 주도권 및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우리 정책 기조에 대해 각국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반면 이번 회의는 북핵 해법을 둘러싼 각국의 이견 또한 드러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은 회담 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동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주고받는 이른바 중국의 ‘쌍중단’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혀 평행선을 달렸다. 미-러 정상회담은 ‘긍정적 케미스트리’를 확인했다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고 했다. 이에 반해 한·미·일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감내할 수 없는 제재와 압박”에 뜻을 같이하며 공동성명까지 냈다.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적 구도 부활 아니냐는 지적마저 일각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폭은 좁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북-미 관계의 직접 당사자이자 사드 배치를 강행한 미국의 책임있는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새 대북정책을 천명하고도 ‘중국 역할론’만 강조하고 있다. 사드를 최대의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 앞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미국의 태도는 되레 중국의 반발을 불러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중국 또한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간 제재 일변도 정책이 북한을 막지 못했고 지금은 그 제재마저 국제사회의 일사불란한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변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 돌파구 마련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 영유아 영양실조 문제를 언급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뜻을 밝힌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이산가족, 인도적 지원 등을 매개로 한 남북대화 채널 복원 요구부터 응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대북 4노 원칙’ 바탕으로 북한 문제 주도적으로 풀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나, 그에 못지않은 상당한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핵 폐기를 무력이 아닌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뜻을 한·미가 분명히 밝혔다. 최근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 등으로 미국민들의 대북 정서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공동성명에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명시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국의 주도성’에 대한 미국 쪽 합의를 끌어낸 점은, 새로운 대북 정책 로드맵을 구축하고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주요한 발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대북 4노(No) 원칙’을 밝혔다. 북한도 한·미의 전향적 자세에 발맞춰 하루속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자국 지지층을 의식한 ‘국내정치용’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방위비 협상에서 강한 압박이 예상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내년 말부터 시작될 방위비 협상에 대비해 미리부터 치밀한 준비와 대응 논리를 갖춰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환경영향평가 실시가 사드 철회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호성을 유지했지만, 미국 쪽으로선 ‘환경영향평가 실시 뒤 사드 배치’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에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가 과제로 남았다. 당장 이번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한다. 미국과 중국,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사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번 회담 성과인 ‘한국의 주도성’ 또한, 선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뤄나가느냐에 달렸기에 이 역시 이제 시작인 셈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회담, 당당하되 전략적 접근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오는 29~30일 워싱턴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 모두에게 첫 한-미 정상회담이다. 두 나라 모두 정권이 교체된 상태로 아직 세부 외교기조가 마련되지 않아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북핵 폐기를 위한 한-미 공조 선언 및 정상간 유대 강화만으로도 애초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하겠다.

이번 회담은 문재인-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조율하는 중요한 자리다. 첫 만남인 만큼 큰 틀에서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미세한 이견 조정은 실무 차원 협상으로 미뤄도 된다. 더욱이 현재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으로 인해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다. 26일 문 대통령을 만난 전직 주미 대사들도 “구체적 현안 논의보다 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각하는 큰 틀의 공조 기반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견을 피하기 위해 섣불리 ‘미국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옳지 않다. 자칫 나중에 국내에서 일이 꼬여 더 큰 논란으로 비화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사드 배치 문제에선, 우선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 절차적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짚어둘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민감한 이슈를 회담장에서 불쑥 끄집어낼 가능성도 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때엔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 양반)이라고 지칭해서 논란을 빚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노 대통령에게 ‘이지 맨’(easy man)이라는 표현을 써 또 한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보다 더 돌발적인 성격이라 자칫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외교팀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란 정상끼리 각국의 이해를 말로써 관철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굳건해지려면 양국이 지속가능하고 수평적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한 만큼, 전략적이되 당당하게 회담에 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겨레 사설] 6월항쟁 30돌, 진정한 ‘시민권력 시대’ 열어야

1987년 폭압적인 군부독재에 맞서 도도한 민주화의 길을 열어젖힌 6월항쟁이 10일로 30돌을 맞았다.
30년 전 오늘, 전국 주요 도시의 중심가에 나온 수백만 시민·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전투경찰에 맞서 싸우며 한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민주화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6월항쟁 이후에도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온전한 민주정부가 들어선 건 10년이 더 지난 1997년 12월 대선을 통해서였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권 10년 이후엔 다시 반동이 찾아왔다.

반동의 정점은 사상 유례없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6월항쟁 정신은 퇴행적인 박근혜 정권에 맞선 촛불시민혁명으로 타올랐고, 5월9일 새로운 민주정부의 탄생으로 열매를 맺었다. “박종철, 이한열 그런 선배들의 투쟁이 결코 사그라든 게 아니라, 씨앗이 되어 촛불집회로 되살아난 게 아닐까, 그런 자부심이 있다”는 어느 6월항쟁 세대의 회고처럼, 지난해 광장을 수놓은 촛불혁명은 30년 전의 6월항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한 세대가 걸렸지만, 길게 보면 지나온 질곡의 과정이 꼭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6월항쟁 주역들이 주축이 된 ‘민주정부’가 지금 성공적으로 첫발을 떼고 있는 건 의미심장하다. 숱한 굴곡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전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6월항쟁의 기억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 문재인 민주정부의 출범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6월항쟁의 현대사적 의미는 효율과 차별로 상징되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를 뛰어넘어 인권과 탈냉전, 시민사회, 시장경제라는 ‘민주화 시대’로 우리 사회가 접어들었다는 데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개막한 정치·사회 체제를 흔히 ‘87년 체제’라고 한다. ‘87년 체제’는 민주주의 진전 등 수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외면한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 경제 양극화의 심화, 진영논리와 이념갈등의 격화 등 짙은 그늘을 남겼다.

지난겨울의 촛불시민혁명은 87년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린 데 맞선 ‘민주주의 회복 투쟁’인 동시에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외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 정신은 촛불혁명과 뒤이은 민주정부의 탄생을 통해 비로소 완전히 구현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은 단지 국회에서 논의하는 개헌 작업만으론 이뤄질 수 없다. 정부의 의지와 함께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가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실현해내는 데 긴요할 것이다.

‘87년 체제’의 막내이자 새 시대의 맏형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과제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반독재 민주주의 정신’에 기반한 정권일 뿐 아니라, 복지와 평등·행복을 앞세우는 사람 중심 사회를 구현할 책임을 지고 있다.
6월항쟁과 촛불혁명이 지닌 공통의 가치는,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 아래 평화적으로 목표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걸 마음에 새기며 ‘개혁과 통합’의 기치를 새 정부는 놓지 않기를 바란다. 항상 국민 편에서 국민 눈높이로 사안을 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임을 잊지 않는 게 ‘6월 정신’을 새기는 길이다.


[한겨레 사설] 오월의 아픔 어루만진 새 대통령의 품격

어제 열린 37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가슴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유가족들을 성심껏 위로하고, 5·18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어느 5·18 기념식보다 성대하고 뜻깊게 치러졌다. 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보수정권 9년 동안 제창이 금지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행사의 백미였다.

문 대통령이 기념공연 행사에 나온 ‘5·18둥이’ 김소형씨를 끌어안고 눈물짓는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김씨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1980년 5월18일 태어난 딸을 보러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편지를 듣던 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고, 퇴장하는 김씨를 뒤따라가 한동안 끌어안고 위로했다. 김씨는 연신 흐느꼈고 이를 전하는 텔레비전 수화통역자도 눈시울을 적셨다. 보통사람들처럼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새 정부의 가치와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낸 것이 새 정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고, 이것이 국정운영 기조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며 “새 정부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특히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넣는 건 시대정신을 적절히 헌법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87년 개정한 지금 헌법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4·19 혁명 이외에 5·18 민주화운동이나 6월항쟁 등을 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또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세력이 5·18을 폄훼·왜곡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거짓 주장까지 내놓는 상황에선 진상 규명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실효성 있게 5·18의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정부와 관련기관이 적극 노력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광주시민들에게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달라”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다. 광주의 아픔을 마음속 깊이 껴안고 이를 통해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5·18 기념식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한겨레 사설] 국정농단 재조사, 특검이 정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참모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특검 시한 연장 불발로 인한 국정농단 수사 미진, 세월호 특조위 중단 등에 대한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은 12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관천 전 경정과 수사검사 등을 불러 진상을 가리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징계 사안은 징계하고 심각한 비리나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이 발생했다면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며 형사처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이른 국정농단의 시발점이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 가운데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농단에 대한 수사는 박영수 특검에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지적은 옳다. 어떤 형태로든 진상을 다시 밝혀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건 촛불 시민의 요청이기도 하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때부터 박관천 전 경정이 “최순실씨가 권력서열 1위”라며 국정농단을 밝힐 단초를 제공했으나 검찰은 ‘사설정보지를 짜깁기한 문건’으로 사건을 뒤집었다. 의혹의 몸통은 밝히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조사한 공무원을 처벌했다. 조사를 받았던 최아무개 경위는 목숨을 끊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 수사팀은 물론 검찰 고위층의 진상 은폐 여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농단 사례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해경 간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게 해 결국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는 직권남용 혐의가 짙은데도 검찰은 덮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전 총리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 사안을 민정수석실 자체 조사나 법무부 감사로 파헤치는 건 역부족이다. 제대로 밝혀내려면 결국 특검이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발언을 보면 치밀한 준비를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투명성 못지않게 결과물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결단과 함께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당’ 부활시킨 홍준표와 탈당파의 야합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2일 집단 탈당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한다면서 “중차대한 상황에서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 여망을 외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탈당으로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고 사실상 분당 수순을 밟게 됐다.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어떻게든 보수를 결집하려는 막판 몸부림인 셈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한국 보수의 얼굴에 먹칠하는 퇴행적 정치행태일 뿐이다.

탈당파들의 자유한국당 복당 선언은 선거철이면 으레 출몰하는 명분 없는 철새 정치인의 행각에 다름 아니다. ‘개혁 보수’를 하겠다고 새 당을 만들었다가 세 불리하니 안면 몰수하고 원래의 ‘수구보수’ 정당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고 ‘친박 청산’을 소리 높이 외치며 당을 만든 게 불과 100여일 전이다. 13명의 탈당 의원들은 바른정당 창당 과정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선 이들이라니 정치를 이리해도 되나 싶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선거 끝나고 추운 데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자리 보전이라도 하겠다는 잔꾀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이 밀겠다는 이가 홍준표 후보라니 어이가 없다. 홍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갈 데까지 가는 ‘막장 보수’ 행태를 보여왔다.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내세웠던 혁신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보수의 퇴행을 불러온 후보다. 홍 후보는 1일 밤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내답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정당을 무슨 삥이나 뜯어 나눠먹는 조폭 조직으로 아는 게 아닌가 싶다. 홍 후보가 저질 색깔론과 막말로 표를 결집하고 있다지만, 그의 품위 없는 행태는 길게 보면 보수의 존립 기반을 갉아먹을 것이다.

바른정당 탈당파의 자유한국당 합류로 대선 국면이 이른바 ‘청산되어야 할 정당’의 부활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는 점도 우려스럽다. 수백만 촛불 시민이 추운 겨울 ‘적폐 청산’을 그토록 외쳤건만, 그 적폐의 본산인 정당이 선거 와중에 다시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다. 홍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홍준표가 되면 박근혜가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 공정하게 재판하면 무죄가 된다”고 노골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편들고 나섰다. 친박근혜 세력, 탄핵 반대세력의 부활은 설사 집권까진 하지 못하더라도 대선 이후 우리 정치에 심각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 추종 세력이 강력한 야당으로 자리잡으면, 많은 국민이 바라는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후보의 부상과 바른정당 탈당파의 백기투항은 한국 보수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박근혜 정부의 파탄을 보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보수 정치세력의 천박함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한겨레 사설] ‘사드 장단’에 놀아난 정부, 책임 규명해야

사드 비용을 내라는 미국의 밀어붙이기가 거세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사드 비용 재협상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맥매스터와 통화한 뒤 내놓은 공식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뒤통수를 맞고도 미국에 코가 꿰인 듯 제대로 대처도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마치 허수아비가 추는 춤을 보는 것 같다. 청와대는 ‘한-미 간 기존 합의는 유효하다’고 했지만 이런 판국에 청와대 말을 순수히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미국에 약점 잡힌 게 아니라면 이렇게 끌려다닐 수는 없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어쩌다가 우리 정부가 이렇게 우습고 한심한 모양새가 된 것인지 분통이 터진다. 임기를 며칠 남겨두지도 않은 황교안 총리 정부가 대선이 끝나기 전에 ‘사드 대못 박기’를 하려고 서두르다가 이 꼴이 된 것이라면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4월16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대선 전에 사드 배치는 어렵다’는 입장을 비쳤다. 그러나 그 뒤 열흘도 안 돼 사드 장비가 전격적으로 배치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직후 잇달아 ‘한국이 사드 비용 1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황 총리 정부가 미국에 사드 배치를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드 조기 배치에 대한 보답으로 상응하는 부담을 지겠다는 얘기가 한-미 간에 오갔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드 배치에 목을 매다시피 한 국내 보수세력과 황 총리 정부의 저자세가 ‘사드 전격 배치’에 더해 ‘사드 비용 재협상’이라는 외교적 참사를 불러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려는 의도 아래 사드 비용 재협상 전략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드 비용을 직접 걷어가든 방위비 분담금 형태로 우회적으로 가져가든 미국에 휘둘리면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빠져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국정조사를 통해 사드 배치 전 과정을 철저히 파헤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드 핵심 장비가 들어왔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닌 만큼 사드 배치 원점 재검토를 포함한 전면적인 대안 찾기가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협상의 문’ 연 미국, 우리도 북한과 대화 준비해야

북핵 위기를 포함한 한반도 상황이 기로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상원의원 전원을 상대로 비공개 대북정책 설명회를 열었다. 뒤이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3부 장관이 합동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긴급한 국가안보 위협이며,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밝혔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대북정책 발표에 함께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기조는 ‘최고의 압박과 관여’로 요약된다. 북핵 프로그램 해체를 목표로, 최대한 북한을 압박해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북 군사적 압박도 이를 위한 수단이란 게 미 행정부의 설명이다. 성명에서 ‘평화로운 방식’을 강조하고,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 시비를 불렀던 ‘모든 옵션’이라는 표현이 빠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따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재진입과 북한의 핵공격 엄포 등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군사적 대립 국면은 어느 순간 ‘대화 국면’으로 급격하게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 많다. 그러나 정권이양기에 있는 한국으로선 우려되는 점 또한 적지 않다.

‘대화’를 목표로 한다고는 하나 ‘압박’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또 미·중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듯 보이지만,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중국이 대북 압박에 어디까지 얼마나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미국이 군사행동을 일단 배제하고 ‘협상’ 카드를 빼든 이상, 지금의 위기 단계는 삽시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한반도 정세가 과거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무엇보다 당사국인 우리 정부의 역할과 의지가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도록 하고, 남북대화를 통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조정자 구실을 해야 한다.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런데 2주 남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과도정부와 미국 국방부가 기습적인 ‘사드 알박기’를 강행했다. 또한 곧바로 실전 운용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건 차기 정부의 선택지를 좁히는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26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실전 운용’ 방침을 밝힌 뒤에야 우리 국방부가 뒤늦게 이를 확인해준 것도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미국의 뒤만 따라가는 식으로는 설령 ‘협상 국면’이 열리더라도 한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나름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발표를 계기로 우리도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낼 구체적인 준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겨레 사설] 또다시 ‘북풍’으로 대선을 어지럽힐 셈인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참여정부의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논란과 관련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송 전 장관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불거졌던 논란이 선거를 보름 남짓 앞두고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주적 논란에 이어 대통령선거전이 소모적이고 과거 회귀적인 ‘북한 이슈’로 덮이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논란의 핵심은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한국이 찬성하느냐 기권하느냐 하는 논의를 둘러싼 해석 차이다. 송 전 장관이 제시한 문건은 11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이 건넸다는 것인데, 남한 정부가 결의안에 찬성할 경우 ‘위태로운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북한이 경고하는 내용이다. 결국 북한 의사를 타진한 뒤 그날 우리 정부가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문 후보는 “11월16일 기권 방침이 정해진 후 이를 북한에 통보했고 북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며 “제2의 북풍으로 선거를 좌우하려는 비열한 색깔론”이라고 맞받아쳤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문건이 공개되자 문 후보를 겨냥해 “거짓말하는 분”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본다”고 비난했다.

송 전 장관이 공개한 자료는 그간 논란의 방향을 틀 정도로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북한 입장을 확인했다는 정황증거 정도지 이를 토대로 기권 결정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송 장관이 기권 방침에 반발하자 노 대통령이 이를 무마하려 북한 입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자료를 공개한 건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의 처신으론 부적절하다. 대선 때마다 대북정책의 방향이 아닌, 진위 확인이 어려운 과거의 세부 사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건 불행한 일이다.
2012년 대선 때의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얼마나 정략적으로 끝났는지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더욱이 참여정부 인사들끼리의 진위 논란은 창피한 일이다. 수구세력이 색깔론을 제기하고 안보장사를 할 빌미를 제공한다. 북핵 위기가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이다. 논쟁을 하려면 지금의 북핵 위기와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놓고 싸우는 게 훨씬 건설적이고 중요하다. 10년 전의 일을 갖고 한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건 이제 끝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반성커녕 책임 돌리기 급급한 박근혜와 참모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곧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치소로 찾아가 두번째 출장조사를 벌인 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공판도 열렸다. 박 전 대통령과 참모들은 검찰과 법원에서 혐의를 일제히 부인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추태를 보였다. 말로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법적 책임을 모면하려 상관이던 당시 대통령이나 부하였던 옛 참모들에게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니 권력무상의 ‘막장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2차에 걸친 검찰의 출장조사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억지 주장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변호인 교체설과 함께 혐의를 시인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여전히 증거가 드러난 혐의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자신의 말을 낱낱이 받아 적은 수첩 내용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듣고 적은 것’이라거나 ‘내 지시를 확대해석한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당사자인 안 전 수석은 물론 수첩에 등장하는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대부분 혐의에 대한 증언과 증거가 수집됐음에도 사실상 참모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파렴치의 극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판단을 못하는 것은 물론, 법적·정치적 조언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참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쪽은 자신을 “여론재판과 표적수사의 희생양”이라며 “대통령의 의사와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거나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우병우 전 수석도 박 전 대통령의 심부름 역할에 불과했다는 종전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이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오만함이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을 구속하기로 방침을 세웠으나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 농단을 충분히 수사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재수사나 재특검을 부르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통합’과 ‘적폐 청산’ 동시에 떠안은 문재인 후보

문재인 전 대표가 3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이날 열린 수도권·강원·제주 경선까지 4연승을 거둔 문 후보는 전체 합산 57%의 득표율로 원내 제1당의 대선후보에 올랐다. 2012년에 이은 두번째 도전이다. 문 후보가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고 결선투표 없이 승리한 것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준다.
문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대립과 갈등, 분열의 이분법을 쓰레기통에 보내자.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그가 ‘통합’을 첫손가락에 꼽은 건 의미심장하다. 특정인을 반대하는 연대란 아무 명분이 없는데도, 정치권에선 ‘반문재인 연대’를 꾀하는 움직임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이는 문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거부 정서가 여전히 상당하다는 걸 시사한다. 문 후보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의원이 말했듯이,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과한 행동이 오히려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문 후보가 ‘통합’을 내세운 건 앞으로 이런 부분을 뛰어넘어 더욱 많은 국민을 끌어안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누가 뭐래도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통령후보다. 그런 만큼 그를 향한 후보 검증의 칼날은 앞으로 더욱 날카로워질 게 분명하다. 검증의 파도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문 후보 아들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은 이미 10년 전에 불거진 사안이고 딱히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것도 아니니 문 후보로선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와 관련해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더욱 분명하게 밝히고 자세하게 설명해서 국민 이해를 구하는 게 대통령후보의 자세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는 곧 후보 검증의 실패였다고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다는 점을 문재인 후보와 캠프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국민이 문 후보에게 ‘정권 교체’의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전반에서 개혁과 혁신을 분명하게 추구해 나가라는 뜻일 것이다. 전국의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리라 본다. 문 후보가 이 기대를 충족하려면, 대선 본선에서 정권교체 당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어떤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 것인지,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갈 방책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내보여야 한다. ‘통합’과 ‘적폐 청산’, 이 두 가지 임무를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느냐에 문재인 후보의 정치적 앞날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단죄’로 박정희-박근혜 시대를 매듭짓자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세번째 구속영장 청구다. 정치적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드러난 국정농단의 파렴치한 사례들과 박 전 대통령이 취해온 오만불손한 태도에 비춰보면, 법리적으론 매우 당연한 귀결이자 ‘사필귀정’이요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헌정사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적 말로는 유별날 것도 없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기괴하고도 황당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수사로 드러난 사실만 봐도 그는 겉으로는 청렴하고 원칙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듯이 행세했으나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다. 뒤로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재벌의 돈을 뜯어내서 측근과 공유하는 정경유착의 가장 추악한 범죄자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온 국민이 언론의 발굴취재와 세차례의 수사를 통해서 박 전 대통령의 죄악과 위선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혼자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적용한 혐의의 가장 중요한 고발자이자 증인은 바로 그가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 칙어 받아적듯 깨알같이 메모한 업무수첩,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녹음한 녹취파일이 그를 옭아맨 결정적 물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스스로 국정농단의 물증을 간직하라고 독촉한 꼴이니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구속영장은 ‘인과응보’

검찰은 이날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에서 금품을 받도록 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중요한 공무상 비밀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새로 확인한 5개 등 모두 13개의 혐의사실은 대부분 완벽한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측근과 참모들이 여럿 구속돼 있는데도 끝까지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며 자기만 빠져나가려 발뺌한 것은, 대통령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패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인사들은 “사익은 추구하지 않았다”거나 “옷 한벌 얻어입은 것밖에 없다”(홍준표)며 그를 옹호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울 삼성동 집값을 최씨 쪽에서 지불하는 등 경제활동을 함께 해온 증거가 여럿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최순실씨 회사 광고물량을 챙겨주고, 기업과 은행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것은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면 납득이 가질 않는다. 최씨 일가가 보유한 수천억원대 재산과 해외 재산 등의 실소유주 의혹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밝혔듯이,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초기부터 진정한 참회와 반성을 하기는커녕 꼬리자르기와 은폐·조작으로 일관했다. 물증으로 드러난 혐의를 “엮었다”고 발뺌하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특권을 박탈당한 뒤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나오면서도 끝까지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70% 이상의 압도적 여론이 그를 구속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이유다. 일부에서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불구속 등 선처를 주장하지만 어디에도 정상을 참작해줄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과 은폐로 일관, ‘선처’ 여지 없어

박 전 대통령이 혐의 부인을 넘어 공작정치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 것은 매우 악질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무수석실을 통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극단세력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걷은 돈을 쥐여주며 돌격대로 동원했다. 검찰은 그 진상 역시 철저히 밝혀 엄히 처벌해야 한다. ‘마마’를 입에 올리며 ‘야구방망이’로 민주 절차를 위협하는 세력은 보수도 시민단체도 아니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 통합이니 화합·포용을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박근혜 단죄’를 계기로 극단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수구의 껍질을 벗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마침 세월호가 수면으로 올라온 다음날 그 생때같은 생명들을 방치한 책임자가 법적 처단의 기로에 선 것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결정문 보충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당일 오전 10시에 집무실에 나와 정상근무를 했다면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도 절체절명의 7시간을 허비한 지도자가 제 한 몸 살겠다고 자기 조서는 7시간이나 밤새워 꼼꼼히 읽었다니 국민과 유족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탄핵으로 파면한 박 전 대통령을 법적으로 엄히 단죄함으로써 그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고 ‘박정희-박근혜 시대’를 매듭짓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검찰 조사’, 만인평등의 법치 보여줘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의 전직 대통령 조사는 이번이 네번째다. 대통령의 범죄가 이제 다시 없도록 하려면, 저질러진 잘못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훼손된 헌정 질서가 회복될 수 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수사로 주어진 소명을 다해야 한다.

13개에 이르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선 검찰과 특별검사팀 수사를 거치면서 숱한 증거와 증언이 확보된 상태다. 부인하더라도 본인 진술만 더하면 당장 기소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관련자 대부분이 이미 기소된 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조사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갖추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은 그동안 혐의를 전면 부인해온 박 전 대통령의 억지와 허위를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이권 챙기기에 나선 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이 대통령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수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되레 권력을 동원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주도했다. 기업을 압박하거나 편의를 약속해 돈을 받아내는 수법도 ‘선의’나 ‘통치행위’, ‘국정 수행’ 따위로 포장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인 ‘정경유착’일 뿐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턱없는 변명을 그저 들어주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조사의 핵심은 뇌물죄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는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과 박 전 대통령, 최씨 사이에 오간 부정한 청탁과 대가 관계를 따져 물어야 한다. 법리도 분명하다. 국정 수행에서 대통령이 지닌 포괄적 지위와 권한에 비춰보면 기업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제공한 금품은 명백한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갖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강요나 협박으로 뇌물이 오간 것 역시 뇌물 수수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기도 하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박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성싶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성찰하고 뉘우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이 국민의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검찰 조사에서까지 또다시 뻔한 거짓말과 억지를 계속한다면 구속과 중벌을 피하기 어렵다. 그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은 더 커진 터다.


[한겨레 사설] 대화·협상 비중 키워야 할 ‘새 대북 접근’

한·중·일을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북 전략적 인내는 이제 끝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제까지보다 강경한 쪽으로 가려는 듯하다. 하지만 세부 정책을 어떻게 조합하든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접근법은 실패했다’는 틸러슨 장관의 판단은 타당한 점이 있다. 북한이 다섯 차례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할 정도로 핵 역량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접근법들을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며, 과거와 전혀 다른 접근법이 얼마나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정부 안에서 거론되는 내용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실패한 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북 선제타격 등 전혀 현실성이 없는 군사조처 정도가 추가로 제기됐을 뿐이다.

과거 경험을 보면 대북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적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가 억제됐다.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니라 대화를 지속적이고 깊이있게 추진하지 않은 데 있다. 과거보다 북한 태도가 더 경색된 건 사실이지만 대화는 여전히 유용하다. 지금 한·미의 주된 정책 기조인 대북 제재·압박 강화와 중국 역할론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대중국 대결을 강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주한미군 배치와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려면 한·미·일과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관련국의 접근 방식이 잘 조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타협과 우리 정부의 의지다.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는 대결을 멈추고 협력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면서 핵 해법 동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최근 최대 현안이 된 사드 갈등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시야가 좁고 무리한 대북 정책을 추구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악화시켰다. 지금의 대행 정부는 이런 정책에서 손을 떼고 정세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중국 등과 협력해 실질적 대북 대화·협상이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곧 출범할 다음 정부의 몫이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대선 날짜 확정 미적대는 모습 꼴사납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대선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자치부 등 선거 실무 부처들이 사실상 5월9일로 대선 날짜를 정했는데도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황 총리가 본인의 대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느라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마땅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개인 문제로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호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선 날짜 확정은 한시가 급한 과제다. 조기 대선 실시로 시일이 촉박해진 상황에서 선거일 확정이 지연될수록 정치적 불확실성과 혼란만 커진다. 대선 후보 검증도 그만큼 소홀해져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도 방해받게 된다. 중앙선관위도 “대선일이 빨리 확정돼야 선거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운동경기의 심판을 맡을 사람이 선수로 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난센스지만, 황 총리가 대선 출마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박근혜 정권 아래서 승승장구한 그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과 동반 퇴진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는 두드러기라는 터무니없는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병역기피 의혹자’다. 그런 인물이 국군통수권자가 될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수치다.

황 총리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기상천외한 상황까지 벌어진다. 누가 봐도 황 총리의 책무는 안정적인 국정 관리와 공정한 대선 관리에 힘을 쏟는 일이며, 그것이 그나마 그동안의 잘못을 씻고 나라에 봉사하는 길이다. 보수세력 안에서 아무리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다고 해도 황 총리를 거론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황 총리가 한광옥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의 사표를 모두 반려한 것도 온당치 않다. 백보를 양보해 경제나 외교·안보 분야 참모 등은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그냥 유임시킨다 해도, 정무·민정 등은 청와대에 남아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총리실과의 업무 중복 등을 고려하면 청와대 참모들이 황 총리를 보좌해야 한다는 것도 한낱 구실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파면된 이상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정치적 도의에도 합당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한광옥 비서실장은 도대체 누구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며, 박흥렬 경호실장은 누구를 경호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일하지 않고 빈둥대면서 월급이나 타겠다는 속셈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염치없는 행동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사표 제출-반려라는 보여주기 쇼를 걷어치우고 한시바삐 청와대를 떠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승복과 통합’ 대신 ‘갈등과 대결’ 택한 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사흘째인 12일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삼성동 옛집으로 돌아갔다. 탄핵이 결정된 3월10일 이후 그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었으니 즉시 청와대 관저에서 나왔어야 했다. 뒤늦게라도 청와대를 비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난 이날까지도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았다. 그는 옛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악수를 했다. 탄핵 결정을 존중하고 승복한다거나 국민 통합을 당부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대변인을 통해 대신 발표한 입장에선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지만 “믿고 성원해준 국민께 감사한다”고 말해, 온 국민이 아니라 지지층을 향해서만 호소했다. 승복과 통합 대신 갈등과 분열의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불길한 메시지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매우 실망스럽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때 국가 지도자였다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승복과 통합을 밝혀야 했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시위가 폭력화해 사람이 죽고 다치는데도 ‘불복’의 메시지로 반발을 ‘선동’하고 지지자들을 계속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헌법 수호의 의지는커녕, 헌정 체제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반헌법적 행위다. 헌정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는지 짐작 못할 바 아니다. 정치적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혹은 당장 눈앞에 닥친 검찰 수사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지지세력을 ‘방파제’로 삼으려는 것이겠다. 나라야 어찌 되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는 몰염치가 가증스럽다. 그런 시도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 쪽은 ‘불복’을 거론하지만, 헌재 결정에 불복할 방법은 전혀 없다. 헌재는 단심이고 최종심이어서, 그 결정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종국적 결정이다. 재심 사유가 있을 수도 없거니와, 파면 결정의 중대성과 파장 때문에라도 재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박근혜씨와 그 주변은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만의 억지가 과연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한겨레 사설] 민주주의 이정표 새로 세운 시민혁명의 승리

어리석고 무도한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사필귀정. 국민을 업신여기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든 죄업에 대한 당연한 인과응보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썩고 병든 가지는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의 외적 형식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지만, 실제적 내용은 상식과 순리의 승리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이념과 계급의 문제도 아니다. 겨우내 광장에 타오른 촛불은 ‘법치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었고, 헌재는 ‘전원일치 찬성 파면’으로 이에 응답했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며 “대통령 파면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헌재의 결정은 간결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촛불이 흘린 눈물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했고, 불꽃에 깃든 생명력은 나라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힘차게 꿈틀대고 있다.

법치주의는 통치자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는 데서 시작한다. 헌법의 헌(憲)은 누구도 사회 구성원에게 해로운 일(害)을 하지 못하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철저히 감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합리적 법의 지배 대신 권력자의 제멋대로 지배가 횡행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방약무인한 자의적 통치에 쐐기를 박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 최고권력자를 엄히 징치함으로써 법치주의의 대의를 다시 우뚝 세웠다.

‘법치와 민주’ 가치 확인한 헌재 결정

대통령의 파면은 국민에게 수치이자 자랑이다. 조작된 신화와 허상에 속아 오만무도한 자격미달자를 국가 최고지도자로 뽑은 것은 돌이키기 힘든 실수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잘못을 스스로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위대한 저력을 발휘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 선현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2017년 3월10일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혁명의 값진 승리의 날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실낙원’의 슬픔을 되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4년의 세월 그에게 청와대는 마음껏 활개 치고 즐기는 낙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지옥이었다. 경제는 바닥으로 주저앉았고, 민생은 파탄 나고, 한국은 국제사회의 동네북 신세가 됐다. 온 나라를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온전한 곳이 없다. 무능한 권력자가 쫓겨나며 남긴 갖가지 불행한 유산은 고스란히 국민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반성과 참회를 하지 않는다.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온 뒤에도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이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그사이 헌재 앞 거리에서 벌어진 탄핵 반대자들의 집회는 폭력·과격으로 치달았고 두 명이 숨지는 불행한 사태가 빚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헌재 결정 직후에 곧바로 겸허히 승복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어야 옳았다. 그래서 공황 상태에 빠진 탄핵 반대자들을 달래고 이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끝까지 방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 불상사를 자신의 입지 강화에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좌에서 쫓겨난 그 앞에는 검찰 수사 등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탄핵 반대자들의 극렬시위는 자신을 보호할 좋은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여길 법도 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행보를 보면 나라야 결딴나든 말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몰염치와 꼼수의 연속이었다. ‘헌재 결정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쯤은 쉽게 걷어찰 수 있는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꼼수를 쓴다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헌재 결정에 침묵으로 버티는 의도 뭔가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제 광기의 탁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는 불빛을 향해 부질없이 달려가는 여름 벌레에 불과했음이 헌재 결정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헛된 미망과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태극기를 욕보이는 행위는 나라의 불행이자 본인들의 불행이다.
헌재는 단지 박 대통령의 탄핵 여부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그 안에는 담겨 있다. 헌재 결정은 탄핵 열차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도전을 향한 출발역이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단지 법치주의의 확립, 최고권력자의 절제 등에 그치지 않는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는 반칙과 특권,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 체계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적폐 청산이 그것이다.
헌재 결정으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5월 ‘벚꽃 대선’의 역사적 의미 역시 자명하다. 봄의 밝은 기운을 맞아 낡고 병든 가지를 모두 쳐내고 새로운 싹을 움트게 하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그 새로운 싹이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부의 무책임한 ‘사드 대못 박기’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고 7일 밝혔다. 부지가 조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비부터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섣부르고 무책임한 밀어붙이기다. 사드 배치 재검토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야권과 대한국 제재를 본격화한 중국 등을 힘으로 억누르겠다는 권위적 행태이기도 하다. 곧 있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대선 국면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도 엿보인다. 두 나라는 당장 사드 배치를 중단하기 바란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합리적 논의 과정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여서 더 부도덕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르면 4월 안에 사드 포대가 경북 성주에 배치될 것이라고 말한다. 속전속결을 시도하는 의도가 ‘다음 정부 출범 전 대못 박기’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용과 절차에서 문제가 많은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지 못하도록 선수를 치겠다는 반국민적 발상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을 이유로 들었지만 몇 달 사이에 상황이 별로 달라질 건 없다. 사드와 핵·미사일 위협 저지를 바로 연결하는 것도 근거가 취약한 ‘사드 만능론’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도 동북아 안보 질서를 뒤흔들고 북한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해왔다. 미사일방어(엠디) 통합을 통해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확실하게 편입시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핵심 아시아 전략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번 사드 대못 박기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사실상 첫 해외 군사 조처다. 외교·안보 정책 기조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이뤄진 이 조처는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사드 대못 박기의 파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중국의 강한 반발은 분명하다. 경제·외교·군사적 대응이 모두 뒤따를 것이다. 한·미 정부가 사드 문제와 관련해 진지한 대중국 협의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미국은 오히려 중국이 주장하는 전략적 이익의 침해를 자신의 전략적 이익 증가로 해석하는 듯하며,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와 중국은 무관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점이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한 한국은 계속 보복 대상이 되기 쉽다. 지금의 경제제재는 시작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대중 관계에서도, 핵 문제에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태도다.

한·미와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면 북한 핵 문제도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드 갈등은 이미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조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중국이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유인이 줄어든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사드 배치가 결국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셈이다.
사드 밀어붙이기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실패의 결정판이다. 사드 포대를 빨리 설치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부작용이 너무 크다. 이제라도 다음 정부에 결정권을 넘기는 게 순리다.


[한겨레 사설] 중국 보복의 피해, 박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박근혜 정부는 끝까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졸속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을 내릴 줄만 알았지 중국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조처에 나섰는데도 고작 “유감” “대책을 검토 중” 따위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세월호,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등 박근혜 정부 내내 계속된 우왕좌왕과 무책임이 마지막까지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보복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상태였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몇 차례씩 밝힌 이상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도 이 정부 사람들은 “중국이 쉽게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황교안 국무총리)라는 따위의 근거 없는 낙관론만 늘어놨다. 정부는 이제 와서 중국과 대화를 하겠다느니,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느니 하며 뒷북을 치고 있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도 중재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1~2년씩 걸리기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 뾰족한 수도 없이 한숨만 쉬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일부 보수신문들도 한몫 거들었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몰아붙이며 비난하기 바빴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기업 몇곳이 망하더라도 국가 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늘어놨다. 합리적인 상황 분석과 충고로 정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판단착오를 부추겼다. 그러다가 중국의 보복 움직임이 나타나자 “이러고도 대국이냐” “치졸하고 오만한 횡포”라느니 하는 볼멘소리만 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자국의 안보에 중대한 해를 끼친다고 굳게 인식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사실 사드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북핵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무능과 무식함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했다. 그리고 중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기업과 수많은 영세자영업자를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물러난다고 해도 그 짐은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한다. 잘못 뽑은 대통령 한 명이 끼친 해악이 정말 크고도 깊다.


[한겨레 사설] 극단으로 치닫는 트럼프의 ‘일방주의 통상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국제 무역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정을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2017 무역정책 어젠다와 2016 연례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가 미국의 혜택과 권리를 약화시키려 시도한다면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과 상충된다면 세계무역기구의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 등 무역 상대국에 보복을 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무역분쟁을 조정한다는 명분으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주도했다.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의 상징인 셈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를 흔드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미국우선주의’가 있다. 무역대표부는 “미국 노동자와 농부, 기업을 해하는 그 어떤 불공정 무역 행위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면서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양자 무역협정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통행식 통상정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 규정과 같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인 보복 조처를 취한다면 상대국들이 반발해 ‘무역전쟁’을 부를 수 있다. 또 보호무역 장벽은 미국 소비자들이 질 좋은 수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미국 소비자단체들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무역대표부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무역대표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행된 최대 무역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핵심 타깃이 중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라고는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경제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장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재판관 집 주소까지 공개하는 비열한 ‘테러 선동’

극우단체 대표가 인터넷 방송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 미용실까지 공개했다. 사생활 침해일뿐더러 비열한 테러 선동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경찰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타인에 대한 테러를 부추기는 이런 사람, 단체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장기정씨는 지난 27일 인터넷 라디오방송(팟캐스트)에 출연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은 강남 ○○구 △△아파트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미용실과 슈퍼에도 자주 출몰한다. 무장경찰이 서 있다니 우리 그 아파트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고 오자. 정확히 △△아파트다”라고 말했다. 직접적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정미 대행에 대한 ‘협박’이나 ‘행동’을 방송 청취자들에게 부추기는 것이다. 장씨는 24일엔 박영수 특검의 집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항의시위를 주도하며 “이제 말로 하면 안 된다. 응징할 때가 왔다”고 연설한 적이 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이정미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하고 “방문하자”고 한 건 그런 행동의 연장선에 있다. 이건 집회 발언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저열하다. 그 방송을 들은 누군가가 실제로 극단적 행동을 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씨를 포함한 일부 극우 인사들의 언행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협박·공갈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사회적 범죄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 때론 집회나 시위를 통해 그런 요구를 사회를 향해 드러낼 수 있다. 지금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촛불집회나 보수단체들의 탄핵 반대 집회가 그런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폭력을 부추겨선 안 된다. 미국이나 독일에선 ‘일부 주민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촉구하는 행위’도 ‘증오범죄’로 간주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장씨 등의 언행은 ‘표현의 자유’와는 전혀 관계없는,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반민주적 범죄일 뿐이다. 사법당국은 이런 행동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적 민감함을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 그래야 광장의 ‘자유’가 오롯이 살아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변론 마친 탄핵심판, 추태와 억지로 일관한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마쳤다. 헌재는 국회의 심판 청구 뒤 81일 동안 모두 20차례 심판정을 열어 증거를 조사하고 변론을 들었다. 이제 평의 끝에 내려질 헌재 결정을 온 국민이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번 심판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 선, 헌정사의 일대 사건이다. 헌법과 법률을 어긴 대통령을 탄핵 심판정에 세운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헌정 유린의 전말은 물론, 탄핵심판의 처음과 끝은 다시 온전히 역사의 심판에 맡겨질 것이다. 헌정과 법치가 어떻게 위협당했는지, 이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는 우리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탄핵 사유는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비선인 최순실씨 등에게 함부로 넘기고, 심지어 최씨의 사익 추구에 협조한 일은 관여한 이들의 증언과 제출된 증거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헌법상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훼손이 분명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헌법 의무 위반이다. 공무원들을 함부로 인사 조처한 임명권 남용도 분명하다. 재단 출연금이나 정유라씨 지원 등을 이유로 기업에서 돈을 거둔 것에 대해선 직권남용과 강요에 더해 뇌물 혐의까지 드러난 터다. 법 위반이 대통령직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최종변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을 다 부인했다. 지난 몇 달간의 수사와 재판, 심판을 통해 자신의 범죄 혐의와 헌정 유린의 잘못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함이 명백해졌는데도, 처음처럼 그저 “모른다” “억울하다”뿐이다. 관련자들의 자백과 증언도 아예 모른 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지도 못하니, 과오에 대한 성찰과 나라를 위한 결단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대통령 대리인단도 가관이다. 변론의 대부분을 터무니없는 억지와 정치적 선동으로 채웠다. 소추 사유의 본질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커녕 온갖 수법으로 심판을 지연시키고 핵심을 흐리는 데만 골몰했다. 재판관들까지 공격하더니, 이제는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이나 헌재 재판부의 결원을 뒤늦게 시비 걸어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을러댄다. 참으로 비열한 추태다.


[한겨레 사설] ‘헌재 불출석’에 ‘특검 대면조사 거부’하면서 무죄라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변론이 27일 오후 열린다. 헌재는 최종변론을 끝으로 심리를 마치고 평의와 평결을 거쳐 늦어도 새달 13일까지는 탄핵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탄핵열차가 이제 종착역에 다다를 시점이 가까워졌다.
박 대통령은 헌재에 출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26일 오후 늦게야 박 대통령이 변론에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헌재에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자유의사이므로 불출석을 탓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기자간담회며 인터뷰 등으로 장외에서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더니 막상 헌재에 직접 나와 무죄를 당당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올 뿐이다. 박 대통령이 헌재 불출석을 결심한 것은 헌재 재판관들의 신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할 것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온 특검 수사 결과 등을 볼 때 박 대통령은 입이 열개가 있어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힘들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이 결국 헌재에 나오지도 않을 것이면서 뜸을 들이는 바람에 헌재 심리에 혼선만 초래했다. 거기다 박 대통령은 애초 약속과는 달리 특검의 대면조사도 거부하고 넘어갈 태세다. 참으로 염치없고 비겁한 대통령이다.

헌재 최종변론은 탄핵 인용과 기각을 놓고 국회 쪽과 대통령 쪽이 최후의 논쟁을 벌이는 자리다. 그런데 최후변론 자리가 정상적인 법리논쟁 대신 박 대통령 대리인들의 억지 논리 설파장으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인 김평우 변호사는 25일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 나와 탄핵심판을 “사기”라고 공언하며 “조선시대도 아닌데 헌재의 결정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을 공부한 변호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저질 발언이다. 이런 억지 논리로 무장해 헌재의 최후변론에 임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처사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최후변론에서도 “헌재가 9인 체제가 될 때까지 심판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탄핵심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재판 일정을 늦추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국가적 혼란사태와 대통령 궐위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현실적으로 최대다수의 재판관들이 확보된 상태’에서 심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 전에 탄핵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 있는 법조인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 대리인들은 탄핵 결정을 늦춰야 한다는 따위의 상식 이하의 주장을 접고 왜 박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하는지나 제대로 설명해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탄핵 불복 자진사퇴’ 용납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예 판을 깨버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특검의 대면 수사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박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 이후 꼼수로 일관해온 박 대통령이 ‘마지막 꼼수’를 꺼내 들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특검의 수사 결과나 헌재의 심리 과정을 살펴볼 때,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박 대통령 쪽도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박 대통령 변호인들이 막가파식 행동으로 헌재 탄핵심판정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는 ‘불공정 프레임’을 내세워 판을 엎어버리려는 정치적 노림수로 보인다. 바둑을 두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아예 바둑판을 엎어버리려는 못된 심보다.

사실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청와대도 자진사퇴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일단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파렴치한 행보를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믿을 바가 못 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탄핵을 당한 첫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직 파면 뒤 자칫 구속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꼼수로 떠오른 것이 탄핵 결정 전 자진사퇴 카드다. 자신이 물러났으니 탄핵 결정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식의 법리 논쟁으로 탄핵을 피해 보겠다는 얕은꾀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한다고 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억울하다. 하지만 헌재 심리가 불공정해서 물러간다”는 따위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공산이 크다. 국론분열 방지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 따위의 명분도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는 국가적 혼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국론분열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나라를 더 큰 혼돈에 빠뜨릴 게 분명하다.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가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될 이유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한쪽에서 “대통령이 사임하고 정치권은 사법처리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식의 제안을 내놓는 것도 어이가 없다. 애초 야권이 내놓은 대통령의 조기사퇴를 통한 정치적 해법 제안을 걷어찬 것은 바로 박 대통령 쪽이었다. 그리고 ‘탄핵소추안 발의를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배짱을 부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탄핵을 당할 것이 확실시되자 정치적 해법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다. “강력범이 도주하다가 포위망에 갇혀 붙잡힐 수밖에 없게 되자 자수하면 그것을 자수로 봐야 하느냐”는 등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이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헌법과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다. 자신이 애초 주장한 대로 탄핵심판대에 올려졌으니 이제는 헌재의 심판에 승복하는 길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을 무산시키고 계속 무죄 주장을 펼치려는 박 대통령의 의도는 단호히 저지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는 박 대통령의 몽니와 꼼수에 끌려다닐 수 없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총리, 끝내 ‘역사의 반동’에 서려는가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여부를 21일까지 분명하게 밝혀달라는 야 4당 요구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했다. 황교안 총리는 20일에 이어 21일에도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서를 승인할지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특검 연장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모는 아직 절반도 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검 활동을 종료하려는 건 특검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폭거이자 국민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황 총리는 자칫 역사의 반동으로 낙인찍히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미 ‘특검 연장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황교안 총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봐도 수사를 계속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고, 이화여대 비리의 중심인 정유라씨는 아직 덴마크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를 끝내라는 건, 황 총리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비호자임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이다.

총리실은 “통상 수사기간 만료(28일) 하루 전에 연장 여부를 결정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비비케이(BBK)나 삼성 특검 등을 보면, 수사 만료 5~7일 전에 연장을 승인한 전례가 적지 않다. 괜히 시간만 끌며 특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황 총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황 총리가 야 4당의 요구를 거부한 이상, 이젠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특검 수사를 지속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4당 대표들은 21일 회동을 하고, 특검법 개정안을 23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인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법안 의결이 쉽지가 않다.

국회의장이나 법사위원장이 법안을 본회의 또는 상임위에 직권상정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여야 합의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특검 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건 황교안 총리 탓인데, 자칫하면 야당 내부의 책임 공방과 비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야 4당은 특검 활동 연장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 황 총리를 더 거세게 압박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국민 뜻을 최우선에 두고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게 옳다. 야당의 단일한 행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레 사설] 확인된 ‘외교·안보 난국’, 핵 해법에 집중해야

주요 20개국 외교장관 회의와 뮌헨 안보회의를 계기로 16~18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열린 여러 회담에서 한반도 관련국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이 불거졌다. 특히 우리나라가 당면한 총체적 외교·안보 난국이 재확인됐다. 현안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동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18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예상대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가 이슈가 됐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중국의 보복성 조처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고, 왕이 외교부장은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며 반대 뜻을 다시 밝혔다. 같은 날 한-러 회담에서 러시아 쪽은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 때 미국 전략자산(무기) 투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17일 한-일 회담에서는 소녀상 문제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중-일 회담에서는 센카쿠열도 문제가 부각됐다. 동북아 전체가 갖가지 갈등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그 한가운데에 북한 핵 문제가 있다. 16일 한-미 및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선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결의했지만, 중국·러시아는 대화를 주장했다. 17일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미국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안정을 저해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시킬 것”을 중국에 촉구하는 등 대립 양상을 보였다. 북한 핵 문제에서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른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이런 구도의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적잖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태도가 주목된다. 왕이 부장은 17일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국이므로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정치적 결단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중국은 19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역할론을 강조하는 한·미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한반도 관련국 모두 합의할 수 있는 핵 해법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핵 해법에 대한 이견과 미-중 갈등이 상승작용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외교·안보 난국은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드 배치, 군대위안부 문제, 남북 관계와 관련한 섣부른 결정 등이 바로 그렇다. 그러면서 핵 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난국을 극복하려면 전반적 흐름을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핵 해법 모색이다.


[한겨레 사설] ‘사상 첫 총수 구속’ 삼성이 직시해야 할 것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삼성을 사실상 이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뇌물 제공 등 혐의로 구속됐다. 삼성상회 창업으로 시작된 삼성의 79년 역사에서 총수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삼성은 2015년 59개 계열사 매출액이 271조9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집단이다. 그러나 그림자 또한 매우 짙다. 성장의 밑바탕엔 권력과 깊은 유착이 있었고, 막강한 경제력은 다시 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동안 그에 얽힌 비리가 드러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계 순위 1위 삼성’의 총수들만은 구속을 면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 부회장 구속은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 비리를 더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성은 정경 유착에서도 재계의 리더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 세력이 곧바로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구속했을 때,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그는 40일 만에 입국해 한국경제인협회 창립을 이끌었다. 그렇게 정경 유착의 고리를 만들어 처벌을 면했다. 그 단체가 얼마 전까지 상성이 가장 많은 회비를 내서 지탱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도 그는 무사했다.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제공 사건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7년 말 불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의 결말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범죄 혐의가 명백한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현장에 크게 울려 퍼진 “재벌도 공범이다”란 분노의 목소리를 특검과 법원이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와 횡령, 재산 국외도피, 국회 청문회 위증 등 5가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승마 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했다. 보강수사를 거쳐 특검이 두 번째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도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했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무리하게 동원하고,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몰래 거액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건의 핵심은 이미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삼성은 ‘권력의 강요에 따른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삼성 쪽은 여전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인간의 정리로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깝다.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듯 ‘총수 구속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설파하다가 마지막엔 또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할 텐가.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도 시대의 대전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특검이 아직 수사를 못 했을 뿐 롯데, 에스케이 등의 행태도 삼성과 비슷한 범죄 혐의가 짙다. 이제라도 권력과 재벌 간 결탁으로 점철된 낡은 시대의 문을 닫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경 유착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전경련을 해체하고, 강요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강력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특검 탓’이 아니라 ‘삼성 탓’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두고 삼성이 “최순실 특검이 아니라 삼성 특검으로 변질됐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보수언론은 “특검이 촛불을 등에 업고 먼지떨이 수사를 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특검은 법원이 지난달 19일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자, 추가 수사를 거쳐 26일 만에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번에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모녀에게 433억원을 건넨 대가의 범위를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뿐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와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등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 과정 전반으로 넓혀서 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삼성에 특혜를 주도록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파악했다. 합병은 승계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특히 지주회사 전환은 합병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로,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합병 직후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안가 독대’를 앞두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준비한 ‘대통령 말씀자료’에 “우리 정부 임기 안에 삼성의 후계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 “삼성도 문화재단 후원에 적극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거액을 요구한 것이다. 또 이 부회장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해 9월 말 독일에서 최씨를 만난 뒤 작성한 “검찰 수사 개시되면 삼성 폭발적”이란 내용의 메모도 확인됐다. 이런 게 ‘먼지’라면 세상에 구속될 피의자가 누가 있겠는가.

삼성과 보수언론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경영 공백은 물론 쇄신 작업도 물 건너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길래 왜 진작 쇄신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다. 2008년 ‘삼성 특검’을 비롯해 그동안 여러 차례 쇄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총수 일가가 내팽개쳤다. ‘총수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는 한 ‘삼성의 위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재벌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희생양이 아니다. 공범이다. 태생부터 문제가 많았던 정권이지만 그 정권을 돈으로 더욱더 오염시켰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계속 피해자 행세를 한다면 돈을 앞세워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관변단체의 탄핵반대 집회 동원, 헌정 유린이다

한국자유총연맹(자총) 등 보수우익단체들이 오는 3월1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전국 각 지부에 공문까지 내려보낸 사실이 공개되자 자총은 10일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태극기 국민운동’ 행사”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맞서기 위한 사실상의 탄핵반대 집회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탄핵반대를 외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은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난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인하는 등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언급 대상으로 삼기조차 민망하다. 이들의 움직임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최근 청와대와 새누리당, 보수우익단체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반촛불’과 ‘탄핵반대’ 활동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재 티브이’ 방송을 계기로 새누리당 인사들의 태극기 집회 참석 등 국정농단 및 부화뇌동 세력들이 노골적으로 탄핵반대 궐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보수우익단체들이 청와대 지휘 아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관제시위에 나선 사실은 특검 수사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나 세력 및 야당을 제압하려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까지 만들어 우익단체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은 단순한 관제시위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다. 청와대가 삼성 등 재벌들로부터 거둔 수십억원을 지원받아온 우익단체들이 탄핵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공작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자총처럼 국고지원을 받는 법정단체가 정파성 짙은 행사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심각한 위법 행위다. 공직선거법은 자총 등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공명선거 운동조차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고 특별법으로 보호받는 단체가 헌법상의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기둥뿌리부터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을 규탄하지는 못할망정 감싸고도는 것은 조직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국민 세금을 받는 조직이 반헌법 집회에 참석한다면 즉각 해체해야 마땅하다.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공작은 헌정 유린의 위험한 불장난이다.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통령의 특검 수사 방해

박근혜 대통령이 9일로 정해졌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조사 일정이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다. 9~10일 대통령을 조사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던 터다. 그 일정이 특정돼 공개된 것이 합의된 조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괜한 트집을 잡아 핑계로 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은 당연하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한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고 말했지만, 검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 직후인 11월20일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 수사가 불리할 듯하자 약속을 뒤집은 꼴이다.

그때는 물론 그 뒤에도 박 대통령은 “특검 조사에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정작 대면조사가 코앞에 닥치자 ‘특검을 신뢰할 수 없다’며 또다시 조사를 거부했다. 특검 쪽에서 조사 일정을 흘렸다는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뇌물죄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피의자로 본 특검의 조사가 부담스럽기 때문이겠다.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를 최대한 늦추거나 아예 무산시키려 한다는 의심은 그래서 나온다.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대통령의 행태는 진작에 도를 넘었다. 청와대는 검찰과 특검의 압수수색을 모두 거부했다. 수사를 앞두고 청와대가 주요 피의자나 참고인들의 거짓 진술을 요구한 흔적도 있다. 증거인멸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대로 아무 죄가 없다면 당당히 수사에 응해 무고함을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러기는커녕 가까스로 성사된 대면조사마저 비상식적인 핑계로 거부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도 대통령 쪽은 큰 필요가 없거나 되레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까지 무더기로 신청하는 등 심판을 늦추는 데 안간힘이다. 애초 출석하지 않기로 했던 박 대통령이 변론 일정이 끝날 즈음에 뒤늦게 출석을 자청해 심판 일정을 크게 지연시키려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실제 그럴 생각이라면 참으로 비루하고 치졸하다.

대통령은 더는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임명한 특검의 조사에 당당히 응하고, 헌법기관인 헌재의 심판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이미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품격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 사설] ‘박근혜 호위무사' 본색 드러내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기로 하고 새로운 당명 후보를 3개로 압축했다고 한다.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이 최종 후보라는데, 과연 당명만 바꾼다고 국민 인식이 달라질까 궁금하다. 지난 주말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당명만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이다. 철저하게 반성·사과하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한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걸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인명진)는 5일 회의에서 새로운 당명 후보를 ‘보수의 힘’ 등 3개로 정하고 9일 전국위원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당의 로고도 태극기가 들어간 문양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인명진 위원장은 “이인제 전 의원, 원유철·안상수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새누리당이 불임 정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했다. 표면적으로는 얼굴 화장을 좀 고치고 대선 후보들도 난립하면서 당이 침체기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11차 탄핵 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엔 이인제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윤상현·조원진·김진태·전희경 의원 등 새누리당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심지어 김문수 전 지사는 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기각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당당하게 임해달라”고까지 주장했다. 혁신은커녕 대통령의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을 옹호하는 ‘박근혜-최순실 지킴이’로 거듭나려는 모양새다. 민심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고 로고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국민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새누리당은 ‘보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아무리 정치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파괴하는 걸 방임한 정당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다시 국민 지지를 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우선 박 대통령과의 관계부터 분명하게 단절해야 한다. 박 대통령을 당원으로 남겨두고 그의 열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겠다는 건 ‘국민 기만’이다.


[한겨레 사설] ‘범죄 현장’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는 ‘중대 범죄'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청와대의 거부와 저지로 무산됐다. 이달 말까지 거듭 시도할 수 있다지만 청와대 쪽이 완강하게 막으면 도리없이 갈등과 충돌만 이어지게 된다.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을 국가기관인 대통령이 거부한 것은 그 자체로 삼권분립과 영장주의 등 헌법 원칙의 훼손이다. 헌법 위반의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쪽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 혹은 ‘공무상 비밀에 관한 것’에 대한 압수수색에는 책임자의 승낙이 필요하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규정 바로 뒤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대한 국익이 침해될 일이 아니라면 압수수색을 승낙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검이 압수수색을 하려는 청와대의 여러 사무실이 얼마나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필요로 하는 장소인지는 의문이다. 설령 중대한 비밀이 있더라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협의해 선별하면 될 일이지, 청와대 진입부터 아예 막을 일은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엔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는 것 이상으로 중대한 일은 없다. 특검의 압수수색을 저지해 국정농단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국익 침해’다.

압수수색 대상인 청와대 사무실들은 하나같이 국정농단 사건의 ‘범죄 현장’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비서실장실에서 지시가 내려와 정무수석실 등에서 만들어졌고,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은 부속실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경제수석실과 정책조정수석실을 통해 실행됐다. 민정수석실은 이를 모른체하거나 되레 장애물을 치워주는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 관저와 의무실 등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헌법상 직무를 유기하고 방치한 현장이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이들 범죄의 현장 확인뿐 아니라 곧 있을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앞둔 물증 확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수사 절차다. 이를 막는 것은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다. 압수수색을 통해 대통령기록물 등 증거가 훼손된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 역시 엄하게 처벌할 일이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어깃장을 놓고 시간을 끌다가는 국민의 분노와 저항만 키우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는 특검의 협조 요청에 응해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게 그나마 파문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