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추석의 ‘한-미 정상회담’, 북-미 협상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초미의 관심사는 24일(현지시각)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비핵화 문제,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주요 의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북 설명을 듣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은 급진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조속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밝힌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 등이 미국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핵 폐기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등 대북 적대관계 종식으로 나가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20일 평양 정상회담 귀국 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며 “미국이 북한의 이런 의지를 역지사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2차 북-미 정상회담→연내 종전선언→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추가 핵 폐기 및 한·미의 추가 상응 조치’를 비핵화 프로세스로 제시한 셈이다.

회담의 성패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중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핵 리스트 신고’나 ‘사찰 수용’에 대해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상당히 전향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만큼 미국도 평양 공동선언과 김 위원장 메시지를 긍정 평가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서 미국과 협의한 메시지를 전하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선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잘 설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다시 적극 나서는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평양공동선언, ‘되돌릴 수 없는 평화’ 이정표 세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둘째 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 선언의 의미를 밝혔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의 ‘종전선언’이라 할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해 항구적 평화의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평양공동선언의 의의는 배가됐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이나 성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상회담 결과는 지난번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육성으로 밝힌 것은 이번 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대한 결심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군사분야 합의다.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국방 수장이 서명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종식에 결정적인 한발을 내디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가기로 했다. 두 정상이 보증한 부속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이어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여러 층위에서 심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속합의서에서 남북이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이 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한걸음 더 전진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번에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방지의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진전이다. 군사공동위원회를 띄우게 되면 상시적으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실태를 점검할 수 있고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방지를 위한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할 수 있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비핵화’ 문제다. 이 분야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뛰어넘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비핵화 초기 조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언급했다. 정상선언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이고 조속한 진전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명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그동안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해체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관련국 전문가들의 참관이 없다는 이유로 ‘보여주기식 폐기’라는 말이 많았다. 이번 합의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쪽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조처는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응답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이런 제안에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적은 여러 차례지만,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말한 데 주목한다. 어쨌든 발표된 내용만 보면 애초 미국이 기대했던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점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5일 미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의 방미 전에 특사나 외교 당국자를 보내 정상회담 내용을 상세히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선언은 여러 면에서 판문점선언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을 뛰어넘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마지막날인 20일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찾기로 했다. 두 정상이 함께 남북 모두의 상징과도 같은 백두산을 오르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 깊고 신실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미 교착’ 돌파구 찾아내야 할 대북특사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특사단을 5일 평양에 보내기로 했다. 북한도 문 대통령의 제안을 즉각 수용해 특사단이 평양으로 갈 것이 확실해졌다. 북-미 협상 교착상태 지속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진 상태인 만큼, 특사단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집중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정세가 지난 일주일 사이에 급변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는지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시점이다. 따라서 특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9월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다. 또 가능하면 정상회담을 앞당기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북-미 사이 중재자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애초 기대했던 대로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3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경협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이 최대의 의제가 될 참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비중이 급속히 커진 상태다. 이렇게 된 이상, 3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북-미 협상 공전 국면을 돌파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사단은 이 문제에서 교착상태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경제건설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중재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북-미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3차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9월 말 유엔총회에서 남-북-미-중이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이 완전히 무산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이 비핵화 조처에 앞서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협상이란 게 상대가 있고 미국이 ‘선 비핵화 조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 부분에서 일부 양보하는 안을 제시해 미국과 타협을 이루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특사단이 이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한다면, 북-미가 종전선언에 타협할 중재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방북할 특사단은 3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교착을 뚫는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신속한 후속협의 필요한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

남북이 13일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 안에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장소는 평양으로 고정됐지만, 날짜는 ‘9월 안’이라고만 두루뭉술하게 잡았다. 애초 남쪽은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을 고려해 이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초에는 정상회담이 열리기를 희망했고, 전날까지만 해도 이 시기에 정상회담을 여는 데 남북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절반의 확정’에 그친 느낌이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가을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게 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일정이 예상보다 미뤄진 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상회담 날짜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은 것이 단순히 북쪽의 내부 사정 때문인지, 지금의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와의 연관성 때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 정부수립 70돌인 9월9일을 앞두고 또다른 큰 행사를 벌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면 향후 외교 일정상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협상 진전에 동력을 제공하려면 9월18일 시작되는 유엔 총회 전에 열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9월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하는 종전선언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유엔 총회 이후로 미뤄진다면, 현재의 교착 국면을 선도적으로 뚫고 나가는 돌파구로서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북은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9월 안’이라고만 돼 있는 정상회담 일정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 의제에는 남북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정하는 것 말고도 판문점선언 이행 점검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동안 북쪽에서는 북-미 관계 진척과는 별도로 남북관계 발전, 특히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을 요구해왔는데, 이 부분에서 남북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북쪽 회담 대표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남북 회담 등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정에 오른 의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한 것이 걸린다.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협력 의제들에 진척을 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부는 좀더 소상하게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9월 중순 이후로 미뤄진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도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상회담이 한달 이상 남은 상황이어서 정상회담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정상회담대로 준비하되, 현재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찾아내 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미 교착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남-북-미 어느 쪽에도 좋을 것이 없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일정과는 별도로 북-미 사이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 종전선언 디딤돌 되길

정전협정 65돌인 27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이날 오전 미군 수송기가 북한 원산에 들어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경기 평택 오산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2007년 이래 11년 만의 미군 유해 송환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인 유해 송환이 이뤄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동창리 위성발사장의 일부 시설 해체와 함께 6·12 공동성명 이행을 본격화하는 행보로 읽힌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공동성명 4항에 미군 유해 송환을 명시했다. 유해 송환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본안은 아니지만, 북한이 성의있는 조처를 함으로써 신뢰구축을 통한 분위기 개선에는 상당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정전협정일에 맞춰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거듭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인 지난 7일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을 외면하는 미국에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일을 맞아 한국전쟁 중 전사한 마오쩌둥 장남의 묘를 찾은 것은 중국까지를 포함한 종전선언에 무게를 둔 행보로 읽힌다.
백악관은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지만, 미국이 이를 계기로 곧바로 북-미 관계에 어떤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최근 이례적으로 대북제재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25일 대북 주무부처 장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통화한 것이나, 26일 마크 램버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서울에서 남북경협 관계자들을 만난 것은 모두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이 채찍을 드는 모양새인 셈이다.

최근 북-미 간 기류는 제대로 된 협상은 못하면서 서로 엇박자만 내는 형국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북한이 강경 목소리를 내다가 최근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북한 반발에 자극받아 북한을 옥죄는 행보를 하고 있다. 북한이 동창리 시설 일부를 자진 해체하고 미군 유해를 송환했지만, 실질 협상을 통해 나온 조처들이 아니다. 미국 역시 종전선언 문제 등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제재 고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북-미가 지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려면 진지한 자세로 실질 협상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공식·비공식 협상 테이블을 최대한 원활히 가동해야 한다. 북한은 협상의 진전을 위해 상호 확인 가능한 비핵화 조처들을 내놓고, 미국도 안전보장에 대한 북한의 요구를 성의있게 경청해야 한다. 그렇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65년간이나 지속된 한반도의 정전 상태에 마침표를 찍는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국정원’ 탈북공작을 현 정부가 왜 감싸나

중국 저장성에 있던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이 과연 자의에 의해 탈북한 것인가. 지난 10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밝힌 데 이어 15일 식당 지배인이던 허아무개씨가 다시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나섰다. 지난 2016년 4월 사건 직후부터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데다 최근 당사자들까지 비슷한 주장을 하고 나서 더는 진상을 덮어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발 사건을 맡은 검찰은 더이상 의혹이 남지 않도록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

허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원래 나는 국정원 협력자였고 정보도 가져다줬다”며 “그 사람들이 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한 뒤 동남아에 국정원 아지트로 쓸 수 있는 식당을 차려주겠다고 꼬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종업원들에 대해 “대다수가 동남아에 가서 식당을 영업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허씨는 애초 자신의 국정원 협조 사실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우리 쪽에 먼저 귀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를 부인하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여종업원들의 ‘자의 탈북’ 여부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여전히 자의에 의한 탈북이란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제이티비시> 인터뷰에 응한 일부 여종업원들은 당시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뒤 한국 대사관에 들어서기 직전에야 한국행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대사관 앞에서 머뭇거리자 허씨가 ‘(북으로 돌아가겠다면) 한국 드라마 본 것을 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대사관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이들을 이틀 만에 입국시킨 뒤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공개했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 이후 북한 식당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4·13 총선 5일 전 일인데다 여러 정황상 총선용 기획으로 보인다. 사기극에 가까운 기획 탈북으로 여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진실을 다시 덮는다면 새 적폐를 쌓는 일이다. 북송 여부는 차후에 따지더라도 우선 진실부터 투명하게 밝혀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끝내 ‘미-중 무역전쟁’ 터뜨린 트럼프의 무모함

미-중 무역전쟁이 끝내 발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했던 대로 6일 0시1분(한국시각 오후 1시1분)부터 818개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의 고율관세 부과를 발동했다. 금액으로 340억달러(약 38조원)어치다. 중국도 “미국이 역사상 유례없는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며 바로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통한 타결을 바랐던 국제사회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미-중의 무역전쟁은 확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 방침을 정한 500억달러어치 가운데 나머지 160억달러어치에 대해서도 2주 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중국이 보복하면 추가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보복과 재보복이 이어지는 ‘치킨 게임’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은 좌충우돌이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캐나다,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품목도 무차별적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에까지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을 통해 미국의 일자리를 늘리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착각일 뿐이다.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 침체를 불러올 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연합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오토바이 업체인 할리데이비드슨이 생산시설 일부를 국외로 옮기기로 했다. 보호무역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결속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선거 승리를 위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삼는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중국에 대한 자본재와 중간재 수출이 많아 미국의 중국 제재는 우리 수출에 바로 영향을 준다.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정부와 수출 기업들이 힘을 모아 총력 대응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또 수출에만 목매지 않도록 내수를 확대하는 등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중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에 건설적 기여 하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3월25일 이후 3개월 사이에 벌써 세 번째다. 그 사이 두 차례 남북 정상이 만났고 지난 12일에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북-미 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3월 이후 무려 여섯 차례나 정상외교에 나선 것은 동북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주는 행보라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우선 미국과 중국 사이 북한식 균형외교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3월 북-미 정상회담 결정 뒤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4·27 남북정상회담 뒤에도 다롄에서 다시 북-중 정상회담을 한 것을 보면, 국제관계에서 나름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방중도 그런 차원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비핵화-체제보장’ 담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삼음으로써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비핵화 이후의 북한 체제보장을 확실히 하려면 중국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북-중 관계 강화를 원하는 중국으로서도 김 위원장의 방중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이 보증인이자 중개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결코 해로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북-미 대결이 격해지던 시기에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을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지난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19일 프리덤가디언 훈련 중단 결정으로 중국이 주장해온 해법이 현실성이 있음이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상, 여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또 북한도 중국이라는 우호세력이 버텨줄 때 안심하고 비핵화 과정에 나설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중국이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미-중 힘겨루기를 가져오면서 북-미 협상을 꼬이게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다롄 회담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 바 있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건설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주변국들의 이런 우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한-중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중국이 북-미 평화 과정의 적극적인 중개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나아가 미-중 사이에 불거질 수도 있는 갈등을 예방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 종전선언’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주목할 만한 발언을 여럿 내놓았다. 이 가운데 “우리는 한국전쟁 종전에 대한 합의(agreement)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은 특히 눈길을 끈다. 물론 이 발언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이 무엇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싱가포르에서 종전과 관련해 모종의 합의를 한 뒤 추후 회담에서 공식 선언을 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후자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어떤 경우가 됐든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상징적·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안이지만, 지금 국면에서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의미가 큰 만큼 빨리하면 빨리할수록 좋다. 그래야 북한도 체제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면서 실질적인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현재까지 흐름으로 보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하는 종전선언을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차, 3차 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상, 다음 정상회담에서라도 3자가 종전선언을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종전선언을 앞당길수록 북한이 비핵화 속도를 내기 쉽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잘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한다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는 것이어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향한 또한번의 도약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북-미 국교 정상화를 원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필요한 조처를 완료하면’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으로 국교 정상화 발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싱가포르 회담이 실질적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준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여러 차례 회담을 통한 ‘단계적 비핵화’로 강조점이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그만큼 현실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과정을 밟더라도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속도가 늦춰져선 안 되며, 그러려면 미국의 체제보장 조처가 적극 병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회담’ 돌파구 연 2차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의 원상회복을 위한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남북 정상의 신속한 만남과 적극적인 대응이 위기에 봉착한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살려낸 것을 높이 평가한다. 이로써 북-미 관계의 길잡이로서 우리 정부의 입지도 더욱 단단해졌다고 할 것이다.

지난 며칠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요동쳤다. 절정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통보였다. 다행히 북한이 곧바로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환영하면서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이어 남북 정상이 사전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2차 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회담 추진의 확고한 뜻을 밝힘으로써 결정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린다는 공식 확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회담 개최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소득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이지만, 더 큰 의미는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 위기에 빠뜨린 근본 원인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미국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이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결말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 반해, 북한은 미국의 일괄타결식 해법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지 못할까 걱정해 왔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함과 동시에, 김 위원장으로부터는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약받은 것은 큰 성과다. 특히 문 대통령이 ‘미국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가 김위원장의 걱정’이라고 밝힌 대목은 사태의 핵심을 보여준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미국도 이미 공유해 북-미 사이 쟁점과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한층 또렷하게 알게 됐으니만큼, 북-미는 남은 시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법을 도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해법’을 부인한 이상, 접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알려진 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도 북-미 정상회담의 복원과 성공에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뉴욕 타임스>의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 불가능’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더 나아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 검토는 변하지 않았다”고 밝혀 ‘6월12일 정상회담’ 복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백악관이 북-미 정상회담 사전준비팀이 27일 싱가포르로 떠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개최 시기와 형식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 돼 이루어졌다는 점, 격식을 차리지 않고 회담 제의 하루 만에 신속하게 열렸다는 점,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문제 해결형 회담이었다는 점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남북 정상의 만남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난관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실용적이고 격의 없는 만남을 활용한다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남-북-미가 함께하는 종전선언’ 추진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되면 좋겠다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남-북-미의 종전선언은 북한의 체제 보장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필요하다면 북-미 정상회담이 연장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이 만나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을 우리 정부는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남북대화를 재가동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남북관계는 북-미 관계와 연동돼 있고 북-미 관계가 뚫리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에 장애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북이 남북관계를 자주적으로 풀어감으로써 북-미 관계 진전의 동력을 키운다는 발상도 필요하다. 남북은 국면이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만날 필요가 있다.

북-미 협상 교착 국면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을 보여준 뜻깊은 사건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다. 남북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말고 북-미 회담 성공이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한국 수준 번영”, 주목되는 북한 비핵화 청사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각) “북한이 빠른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처를 하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신속하고 과감한 비핵화 조처를 조건으로 미국이 큰 폭의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화답하듯 오는 23~25일 외국 언론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행사를 한다고 12일 밝혔다.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쪽이 긍정적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회담 전망을 한층 밝히는 형국이다.

북한이 빠른 비핵화를 할 경우 한국 수준의 번영을 약속한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은 비핵화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이른바 ‘북한 비핵화 청사진’이라 할 만하다. 북한에 요구한 ‘빠른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처’는 종전과는 다른 조처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속한 비핵화를 강조함으로써 북-미가 속전속결식 일괄타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경우에 따라선 비핵화 시점이 훨씬 당겨지고, 그 방식도 앞뒤가 뒤섞이거나 동시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검증장치가 작동될 전망이다. 비핵화를 잘게 나누어 보상하는 과거 방식의 맹점을 극복함으로써 성공 전망을 한층 높일 것으로 평가된다.

폼페이오 장관 발언이 지난 9일 두번째 평양 방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난 뒤 나온 것이란 점에서 북한과도 어느 정도 조율을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신속하고 과감하게 비핵화를 하면 그에 상응해 제재 해제, 체제 안전보장은 물론 큰 폭의 경제지원까지 제공하는 포괄적인 프로세스를 북-미가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국 수준으로 번영하는 것은 비핵화 로드맵, 더 나아가 남북관계를 일궈나가는 데 있어서 큰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번영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와 일치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불량국가로 남아 있는 한 한국의 미래도, 동북아의 미래도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이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일정을 공표한 것은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남북 정상 합의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이 최소한 ‘미래 핵’은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일부에선 과거 영변 냉각탑 폭파와 같은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일련의 비핵화 과정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쯤 앞두고 북핵 문제는 과거와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전향적이고 과감한 조처들을 잇달아 내놓음으로써 성공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미를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창조적이고 과감한 조처들을 조율하고 실천함으로써 동북아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판문점의 봄, 평화·번영의 시대 열다

한반도 평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27일, 마침내 분단 70년의 질곡을 딛고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환한 얼굴로 마주 보며 첫 악수를 나누었다. 두 정상은 분단의 선을 손잡고 함께 넘고 다시 넘었다.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정에 없던 퍼포먼스를 통해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는 남북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을 화해의 상징으로 바꾸는 뜻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감격 어린 만남 속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천명했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해온 8000만 겨레와 함께 축하할 민족사적 사건이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11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반도 평화정착에 극적인 전환점이 될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옴으로써 정전협정 이래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북쪽 최고지도자가 됐다. 김 위원장은 북쪽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 최고지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하는 일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만찬에서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한 것도 정상국가화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솔직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문 대통령과 만나는 순간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든 것부터가 파격이었다. 김 위원장이 북쪽의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북쪽 내부의 문제나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관행’을 깨뜨린 것이다. 허장성세 없이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모습은 그만큼 신뢰를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거짓 없는 만남만큼 상대를 안심시키는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직접 기자들 앞에 나와 판문점 선언의 의의와 내용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개방적인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는 전쟁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자는 남북의 의지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반도 비핵화 의제에서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 선언문에 비핵화가 명시됐다는 점에서 이 선언은 그간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킨다고 할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나머지 다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핵심 고리에 해당한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번 선언을 통해 이런 의구심은 확실히 불식하게 됐다.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담판을 지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남북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비핵화 선언을 함으로써 나머지 문제를 풀어가기가 그만큼 쉬워졌다.

이번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 가을 방북이 이루어지면 한해에 두 차례나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동안 남쪽에서 추진해온 정상회담 정례화가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긴장완화 및 남북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물론이다. 회담 중에도 남북 정상은 ‘수시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는데, 이로 미루어보건대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전통 의장대와 행렬하던 중 김 위원장에게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하자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가겠다”고 한 것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뒤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올 것인지는 비핵화 다음으로 관심이 큰 의제였다. 특히 종전선언 문제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느냐가 관심사였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천명했다. 물론 종전선언은 남북 두 당사자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당사국이 함께 참여해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언문에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것이다. 이 선언으로 미루어보건대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한 뒤에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 만나 종전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은 평화체제 정착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두 정상이 서로 어떤 무력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이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합의한 내용들도 관심을 끈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로 상태를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앞으로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한 것은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위한 조처로 평가할 만하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한 것도 기대를 모은다. 앞으로 열릴 군사당국회담에서 이 합의를 구체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시종 ‘이행 의지’를 강조한 것도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정상 간 합의를 스스로 먼저 이행할 뜻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약속대로 합의를 이행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남북 사이에, 또 북-미 사이에 여러 차례 중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중간에 휴짓조각이 되거나 무용지물이 된 것은 북쪽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보수 정권 아래서 남북 합의들이 이행되지 않은 것도 여러 건이고 북-미 사이에도 미국 쪽의 합의 불이행으로 관계가 틀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남과 북이 이 점을 유념해 이번에 만들어낸 합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낸다는 각오로 착실히 실행해 서로 믿음을 쌓아올려야 한다.

한달여 뒤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해야 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밝힘에 따라 북-미 양국을 중재하기에 훨씬 좋은 위치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회담 성과를 가지고 다음달 중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율해야 한다. 미국은 두 정상이 첫 대면을 한 직후에 성명을 내 남북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 전체를 위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진전을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끌어낸 판문점 선언이 북-미 ‘빅딜’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
남북 정상이 다짐한 대로 이제 우리에겐 평화와 번영의 길을 달리는 일이 남았다. 한반도 비핵화가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 남북이 협력하고 상생하는 새 시대를 만들어가길 기원하며, 정상회담의 큰 성취를 온 겨레와 함께 축하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중형, 국민의 심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법원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해온 그에게 내려진 법의 단죄다. 66살의 그에게는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형량이긴 하나 죗값에 비하면 결코 무겁다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도 남아 있다. 형량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이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까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그가 자초한 자업자득임은 물론이다. 이날 선고로 국정농단 1심 선고가 마무리됨으로써 1400만 촛불시민의 힘으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도 한 단계 진전을 이루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18개 범죄사실 대부분에 유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박영수 특별검사와 검찰의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펴며 국정농단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 재판 과정과 판결을 통해 현직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눈” 국정농단의 구체적인 범죄사실들이 증거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대부분 유죄로 인정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취임사 작성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개최에 이르기까지 국정에 일일이 개입했고 이를 위해 청와대 기밀문서까지 멋대로 받아 본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 압수수색 절차상 문제 때문에 기소된 47건 문서 가운데 14건만 유죄 판단을 받긴 했으나 국정농단의 실체가 그대로 공인된 셈이다.

현직 대통령이 40년 지기의 이권을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을 협박·강요해 돈을 뜯어내고,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이나 사기업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혐의도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최씨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 납품계약을 위해 대기업을 협박하고, 최씨 회사를 위해 공기업에 광고·인사를 청탁한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개인 비리뿐만이 아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단체·인사들의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차단한 데 대해, 법원은 “평등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못박았다.

특검 수사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이 보여온 태도도 중형 선고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잘못된 국정 운영과 개인 비리로 청와대 참모는 물론 장차관들까지 줄줄이 수감 중인데도 그는 여전히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방해하더니,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노골적으로 재판 진행을 방해해왔다. 검찰이 내놓은 대부분의 증거 채택을 거부해 100명 이상의 증인을 일일이 법정에 불러야 했다. 그 바람에 재판이 늦어져 구속영장을 재발부하자 ‘불구속 원칙’을 내세우며 재판을 거부했고 선고 날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놓고 재판부의 생중계 방침에는 ‘무죄추정 원칙’을 내세우며 두차례 이의신청에 이어 헌법소원 제기 방침까지 밝혔다. 법 위에 군림하며 사법농단을 자행하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법에도 눈이 있고 감정이 있다.

국정원 특활비 재판도 거부하고 있는 그가 중형 선고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생때같은 목숨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절체절명의 시각에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보고 시각까지 조작했다면 사법적 단죄 차원을 넘어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것이다.
고건 전 총리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라 아버지 추모사업이나 했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능력이 의심스러운 이가 대통령이 되고 비선 실세에 기대어 국정을 농단하기까지 20여년을 온 국민이 속았다. 언론을 포함해 검찰과 국회 등 모두 성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이들이 그를 감싸며 발뺌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겨레 사설] “4·3 완전한 해결” 천명한 문 대통령의 단호한 과거사 행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70년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12년 만이다. 2014년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지만 그늘에 묻힌 부분이 적잖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명확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4·3은 새 전기를 맞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70년 전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4·3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예술인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했다. 무장세력 수백명을 이유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 희생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국가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못박았다. 문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유해 발굴, 배상·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뒤를 이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시절인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됐고, 2003년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55년 만에 4·3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후 보수 정권 9년간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한 차례도 없었고 명예회복도 진전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4·3 추념식을 두고 “좌익 폭동에 희생된 양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말했다. 4·3이 이념 문제가 아니라 무자비한 국가폭력의 문제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제1야당 대표가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되풀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문 대통령은 5·18, 4·3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해 정권교체 이후 첫 5·18 기념식에 참석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약속했다. 이번에 4·3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진일보한 태도를 보였다. ‘촛불 정권’의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5·18과 4·3 등 아픈 과거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는 시효가 없다. 늦었더라도 잘못됐다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4·3 70년을 맞아 제주에도 ‘온전한 봄’이 오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정치보복’ 말한 MB, 정치적 고려 없이 단죄해야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맥락상 전직 대통령 검찰 소환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생각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이 각종 혐의를 부끄러워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치보복론을 내세우는 것에 허탈함을 감추기 어렵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에 대해 “나와 무관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횡령, 다스 소송비용을 재벌에 떠넘긴 혐의 등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혐의를 극구 부인하면서 교묘하게 정치보복론으로 방패막이 삼는 건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퇴임 5년이 지나 이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은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이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 태도는 1월에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 강변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정치보복 국면이 아니라, 오랜 세월 제기된 숱한 의혹의 진실을 규명하는 시간이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진실을 역사와 국민 앞에 털어놓아야 한다. 최소한 정치보복 운운하며 잔꾀를 부린다는 인상을 주진 말아야 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전 대통령 출석을 두고 “복수의 일념으로 전전 대통령의 개인 비리를 집요하게 들춰내야만 했을까. 모든 정치 현안을 6·13 지방선거용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한심하다. 홍 대표야말로 모든 사안을 정략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검찰 수사는 정치보복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등은 단순히 ‘개인 비리’의 차원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계속되는 수난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형사처벌될 가능성도 제법 높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순 없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범죄의 경중에 따라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하다. 고통스럽더라도 이 길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대장정 시작됐다

한반도 정세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특사단이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함과 동시에, 오는 5월 안에 만나겠다는 뜻을 즉각 표명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단계 예비 과정을 거치리라는 예상을 깨고 전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합의다. 지난번 대북 특사단의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이어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면,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적대로 일관해온 북-미 관계는 이로써 한반도 평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고 극적인 정상화로 나아갈 돌파구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특사단이 전달한 메시지를 통해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지난번 대북 특사단에 밝힌 것보다 한층 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초청에 트럼프 대통령은 ‘4월에 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으면서 북-미 대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핵단추 설전’을 벌이며 대결 구도로 일관했던 북-미 관계에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적인 전환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받아온 북한과,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내부 악재를 돌파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미 사이에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빅딜’ 과정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주도하면서 결단을 내리는 두 정상의 공통된 스타일로 보건대 관계 정상화가 의외로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북-미 관계의 대전환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들인 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 이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조심스럽고도 끈질기게 노력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북-미 사이 다리를 놓는 외교적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한달 사이에 남북 고위급 특사단 왕래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룬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 약속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한국이 주도한 ‘북-미 중재’의 쾌거라고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 결과이기도 하다.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4월 말 열릴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가능성을 예고함과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회담의 성격까지 띠게 됐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초청 수락을 알리면서 동시에 ‘비핵화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충분히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만큼 북-미 사이에 변수가 끼어들지 않도록 우리 정부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우선 한반도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은 북-미 합의를 ‘대사건’이라고 환영하고 있지만, 일본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북-미 관계의 진전 국면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사단이 돌아오는 대로 중·일·러 세 나라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결과를 소상히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협상 라인이 공석이라는 사실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조셉 윤 국무부 특별대표가 빠진 뒤로 대북 실무 접촉을 이끌고 북-미 간 의견을 전달할 대북 전문가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교섭에 뜻하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 정상회담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무산된 것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최종 목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흔들리지 않는 초석을 세우는 데 일대 전환점이 되기를 국민과 더불어 바라 마지않는다.


[한겨레 사설] 정의용·서훈 특사, 한반도 정세전환 첫단추 끼우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참여한 대북특별사절단(특사단)이 5일과 6일 북한을 방문한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외에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인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동행한다. 특사단의 의미는 북한이 김여정 특사를 보낸 데 대한 단순한 답방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두껍게 얼어붙은 ‘한반도 빙벽’을 녹여내고 평화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 중차대한 임무가 자신들의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음을 특사단 모두 깊이 새겨야 한다.

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이 동시에 특사단으로 나설 줄은 전문가들도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장관급 2명 이상이 동시에 대북특사로 나선 전례도 없다. 그만큼 이번 특사단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기대가 크다는 걸 보여준다. 남북대화 경험이 풍부한 서훈 국정원장에 더해 미국 안보라인과 호흡을 맞춰온 정의용 안보실장이 수석으로 나섬에 따라 남북 협상을 진행하면서 미국과 긴밀히 조율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사절단의 핵심 임무가 ‘남북대화를 통한 북-미 대화 중재’라는 점에 비춰 보면 매우 적절한 인선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청와대는 특사단이 논의할 의제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여건 조성’과 ‘남북교류 활성화 등 남북관계 개선 문제’를 적시했다. 비핵화 문제를 굳이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설득해 ‘북-미 대화’의 실마리라도 끌어내는 게 사절단의 핵심 임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사단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선 북-미 대화라는 ‘여건’이 필요한데, 미국은 비핵화 논의가 빠진 대화에 응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끈질기게 설득해내야 한다. 만약 사절단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렵게 살린 평화의 불씨가 다시 사그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란 ‘숭늉’을 마시려면 조급해하지 말고 실행 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는 게 첫걸음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선언하고, 한·미가 군사훈련에서 융통성을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북한도 지금이야말로 대북사절단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이정표를 당장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비핵화 의지’라도 밝힌다면 이를 동력으로 삼아 대화를 이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김정은 위원장 ‘선대의 유훈’이니 이를 강조하는 형태의 언급도 대화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비핵화 아니면 대화 중단’이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수구·냉전적 태도는 합리적이지도 않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자유한국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게 뻔하다는 이유로 대북특사 파견을 비판했는데, 전형적인 ‘묻지마 반대’다. 특사단 명단이 나온 뒤에도 ‘서훈 국정원장 특사 불가론’을 되풀이 제기한 것도 정략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절단이 한반도 정세를 위기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첫 단추를 끼우고 돌아오기를 온 국민이 소망하고 있다.


[한겨레 사설] 대북 특사, 북-미 ‘대화의 문’ 열어야 한다

청와대가 대북 특사 파견을 공식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조만간 대북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김여정 특사를 보냈기에, 우리가 답방 형식의 대북 특사를 보내는 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또 평창 겨울패럴림픽이 끝나면 4월 초에는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기에, 이달 안에 대북 특사를 보내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는 건 절실한 일이다. 북한이 김여정 특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한 터라, 이번에 파견되는 대북 특사는 이에 대한 화답과 동시에 ‘북-미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북-미 대화를 제쳐둔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입장은 완강하다. 비핵화를 의제로 삼지 않는 한, 북-미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미국 쪽에 먼저 접촉을 제안한 바 있다. 안보와 경제 위협을 동시에 느끼는 북한으로서는 남북 및 북-미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듯하다. 그렇다면, 북-미가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접점이라도 찾아야 한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말 스스로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좀 더 명시적으로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잠정 중단한다’는 등의 성의 표시라도 적극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대북 특사는 이런 방향으로 북한 당국을 설득해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비핵화’와 ‘안보 위협’을 맞바꾸자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오랫동안 북한을 향해 얘기해온 것이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체제 위협’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지, 특사 파견 이전부터 미국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진지한 협의를 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대북 특사는 비밀리에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서로 믿지 못하는 북한과 미국, 양쪽을 오가며 중재해야 하는 우리로선 공개적인 특사 파견이 오히려 투명한 논의 진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한-미 간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하고,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 활성화에도 나서야 한다. 대북 특사가 평창 겨울올림픽이 가져다준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계속 살리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또 터진 ‘검사 비리’, 이래도 검찰개혁 미적댈 건가

잊을 만하니 또 검찰 비리 사건이 터졌다. 지난달 비위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던 지청장이 자살을 시도하더니 이번에는 현직 검사 2명이 수사 기록을 수사 대상인 변호사에게 넘겨준 혐의가 드러났다. 수사에 관한 모든 권한을 독점한 비대한 검찰 권력의 문제점과 함께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서울고검 감찰부(부장 이성희)는 100억원대 국가보상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던 최아무개 변호사에게 수사 기록을 유출한 혐의로 추아무개 검사와 최아무개 검사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추 검사는 2014년 서울서부지검에 근무할 당시 자신이 담당한 사건의 수사 자료와 개인정보를 최 변호사 쪽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최 변호사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구치소 접견 녹음파일과 전과조회서 등 수사 관계자가 아니면 확보할 수 없는 자료를 확인하고 유출 경위를 추적해왔다고 한다.

최 검사 역시 2016년 서울남부지검에서 최 변호사의 주가조작 혐의를 내사할 당시 진술조서 등 수사 자료를 유출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사고 있다. 최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별개의 두 사건 관련 검사들이 그에게 수사 자료를 넘겨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진경준 검사장과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 등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이번에는 소장 검사들까지 수사 기밀을 유출했다니 검찰의 도덕성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검찰이 개혁 요구에 얼마나 둔감한 조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최 변호사 사건은 대형 게이트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의 사업 파트너였다가 사이가 틀어진 ㄱ씨가 2015년 2월 최 변호사의 횡령·탈세 혐의를 서울서부지검에 제보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최 변호사가 군 비행장 소음피해 사건을 변론하면서 승소해 받은 보상금을 빼돌린 사실이 확인됐으나, 검찰은 횡령액을 축소하고 탈세 혐의를 빼놓은 채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최 변호사가 검찰·국세청 등에 로비한 흔적이 드러나 있다. 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수사검사 ‘윗선’의 개입 가능성도 짙다. 특히 박근혜 정부 고위층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성역 없는 수사와 함께 검찰개혁 작업을 더이상 미적대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한겨레 사설] 감동과 울림 준 단일팀, ‘평화’란 이런 것이다

사상 최초의 올림픽 남북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세계인들 앞에 큰 감동을 전해주며 20일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스웨덴과의 7~8위 결정전에서 단일팀은 14일 일본전에 이어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막판까지 최선을 다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북쪽 황충금 선수가 남쪽 최지연 선수에게 달려가 포옹했다. 관중석엔 한반도기가 나부꼈다. 선수들은 링크 중앙에 함께 둘러서 “하나 둘 셋, 팀 코리아”라는 구호를 외치며, 짧았지만 큰 울림을 준 ‘팀 코리아’ 일정을 모두 마쳤다. 돌아보면, 숨가쁜 순간의 연속이었다. 대회를 한 달 남겨두고 급작스레 단일팀이 결정돼 선수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여론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러나 남북 선수들은 함께 훈련하며 금세 ‘언니, 동생’이 되어 서로 돕고 감싸안았다. ‘승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질주하며 울고 웃었다. 여기에는 세라 머리 감독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논란 초반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한편, “선수를 고르는 건 내 권한”이라며 중심을 잡아 남북 선수들이 모두 믿고 따를 수 있게끔 했다.

단일팀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외침 속에 ‘작은 통일’의 감격을 누렸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하나 되어 땀 흘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앞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다시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다. 애초 단일팀을 제안했던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회장은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단일팀이 출전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2021년 겨울 아시아경기대회의 남북 공동개최가 성사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단일팀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면, 이번 사례를 본보기 삼아 관계 당사자들과 일찍부터 깊이 있게 논의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 ‘팀 코리아’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들이 안긴 감동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남북정상회담, 이젠 정말 한국이 한반도 ‘운전석’에 앉을 때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주말 청와대 오찬에서, 북쪽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과 방북 초청이 이뤄졌다. 김정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내려올 때부터 북한 최고지도자 메시지를 갖고 올 거란 추측은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빠른 상황 진전이다. 여러 논란과 우려가 있음에도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제안을 환영한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남북한 그리고 미국·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북쪽 제안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화답했다. ‘조건부 수락’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여건’이란, 유엔의 대북 제재와 ‘코피 전략’까지 운운하는 미국의 강경 일변도 정책의 변화를 뜻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이런 국제 정세를 무시하고 열리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 답변은 신중하지만 현실적이다. 그 여건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남북이 함께 해나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모처럼 맞은 해빙의 기회를 잘 살려나갈 무거운 책임을 안게 됐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보여준 행동은 몹시 실망스럽고 우려스러웠다. 북한이 예상 밖의 고위급 대표단을 보낸 건, 기회가 되면 미국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은 개막식 리셉션에서 북한 대표단과 아예 인사조차 나누질 않고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외교적 결례일 뿐 아니라 올림픽을 축하하러 동맹국을 방문한 인사의 행동으론 무례하기 짝이 없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여건을 만들자’는 단서를 단 건, 누가 봐도 미국을 고려한 대답이다. 한국 정부는 그렇게 미국을 배려하며 북한을 대하는데 정작 미국은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정서는 아랑곳없이 행동한다면 동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북-미 관계 진전을 북쪽에 제시했으니, 이제 미국이 그 단초를 열려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비핵화’는 결국 북-미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다는 걸 트럼프 행정부는 인정해야 한다.

미국, 펜스의 무례한 행동 돌아봐야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전에 ‘비핵화 약속’까진 아니더라도 ‘추가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같은 전향적인 행보를 보여주길 바란다. 북-미 관계 개선 없이 남북관계만 멀리 갈 수 없다는 걸 북한 당국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결국 미국과 북한을 한발짝씩 물러서게 해서 돌파구를 열어낼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 문 대통령이 누누이 말했듯이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을 때다. 평창올림픽으로 조성된 화해 기류를 북-미 대화로 이어서, 가까운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꼭 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기를 종식하고 도도한 평화의 길을 열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다.


[한겨레 사설] 평창 너머 ‘평화의 길’ 여는 올림픽 되길

평창 겨울올림픽이 9일 드디어 막을 올린다. 지난달 초 북한의 참가가 전격 결정된 뒤, 남북 회담이 열리고, 남북 단일팀 구성과 공동입장이 결정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참석이 발표되기까지 한달여 동안 숨 쉴 틈 없는 파격이 이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평창의 힘’으로 끌어온 것이다. 이제 ‘평창’은 여느 올림픽과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지만, 지금 평창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좁게는 동북아시아, 넓게는 지구촌 전체의 안전과 평화가 평창 올림픽과 직결돼 있다. 너무나 쉽게 한반도에서의 ‘군사옵션’ ‘선제타격’ 등의 말이 터져나오는 터라, 평창 겨울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 해소의 발판이 되는 건 국제사회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그렇게 한발짝 ‘평화’로 나아가는 것이 본래의 올림픽 정신과도 부합한다.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남 위원장의 10일 청와대 방문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의 솔직하고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 그 결과에 따라서 다음엔 우리가 답방 형식으로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신뢰를 쌓으며, ‘평창’을 통해 마련된 남북관계 개선의 불씨를 지펴 나가야 한다.

북한대표단 방남, ‘북-미 대화’ 단초 열어야

아쉽고 불안한 것은 미국의 태도다. 평창 올림픽을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북한 쪽과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등 지금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말만 반복하고 있다. 북한이 김여정까지 파견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상황 변화를 강하게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일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 애초 초청했던 외신기자들을 물리고 예년처럼 실황중계를 하지 않은 점에서도 북한 나름의 성의 있는 행동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외면해 한반도가 다시 첨예한 긴장 속으로 빠져든다면, 미국은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평창 올림픽이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외교’뿐 아니라, 북-미 대화를 위한 ‘중재 외교’에서까지 성과를 내야 할 것이다.

일부 보수층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자체를 ‘체제선전 공세’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북한의 ‘체제선전’에 넋이 팔려 무방비 태세가 될까 우려하는 건 기우에 불과하다. 지난 6일 북한 예술단을 태운 만경봉호가 도착할 때 묵호항에 나가 인공기와 한반도기, 김정은 위원장 사진을 불태우며 소동을 벌인 일부 보수단체들의 추태에 참다못한 강원도민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평창 평화올림픽을 방해하는 세력은 청정 강원도를 당장 떠나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자유한국당 등이 평창 올림픽 동안 ‘평양 올림픽’ 공세를 계속 이어나가는 건 아무런 명분이 없다.

세계가 축하하는 행사, ‘갈등 조장’은 그만

북한 예술단이 숙소가 여의치 않아 만경봉호로 방남하자, 보수 언론은 5·24조치 위반이라 트집을 잡았다. 또 북한 쪽이 물과 연료 제공을 요구하자 ‘유엔 제재 위반’이라 비난했고, 북한 대표단에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 포함되자 ‘여행금지 대상’이라며 유엔 제재를 허물어뜨리려는 의도라 공격했다. 그러나 정작 유엔 안보리는 최휘 위원장의 방남 발표 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적절한 고려에 따라” 예외를 적용했다면서 그의 남한 방문을 승인했다. 국제사회는 이렇게 남북이 하나되는 평창 올림픽을 축하하고 잘되기를 바라는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 사소한 시빗거리를 끝없이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일 북한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를 두고 “한반도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평창에서 불어오는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로, 올림픽 너머까지 이어지길 전세계인과 함께 간절히 기원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 압박하려’ 올림픽 온다는 펜스 부통령의 무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친과 함께 오겠다고 5일(현지시각) 밝혔다. 또 한국에서 탈북자들과도 만난다고 한다. 미 언론 보도를 보면,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을 축하하러 오는 게 아니라, ‘대북 압박’과 ‘북한이 올림픽 메시지를 납치(hijacking)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방한하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올림픽 정신에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개최국인 한국에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역시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 단일팀 성사에 힘을 쏟았다. 북한은 예술단과 응원단도 보낸다. 북한 입장에선 이번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체제가 굳건하다는 걸 알리고 싶을 테고, 꽉 막힌 국제사회와 소통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국과 미국의 어느 누가 북한 선전공세에 혹하겠는가.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고, 북한 실상을 전세계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만 북한이 남쪽에서 활개 치면 올림픽이 온통 북한 차지가 될까봐 지레 겁먹고 야단법석을 벌이는 듯하다. 올림픽을 주최하는 한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면 이럴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북한 인권문제는 심각한 사안이고, 웜비어 억류와 사망에 대해선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얼마든지 북한에 항의할 수 있다. 변명할 여지 없이 명백히 북한이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남의 나라 행사에 와서 손님에게 시비를 걸려는 모양새는, 행사를 주최한 쪽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 정신과도 어긋난다. 미국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활용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외교적 노력을 하는 등 세계 강국에 걸맞은 여유로운 풍모를 보여주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판결 빌미로 청와대와 뒷거래한 ‘양승태 대법원’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22일 그간 조사 결과를 공개한 걸 보면 법원이 이렇게까지 타락했나 싶을 정도로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방침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한 것도 그렇거니와 특정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뒷거래하다시피 한 정황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컴퓨터를 조사해 달라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를 극구 거부한 이유도 이제야 알 만하다.

조사위가 행정처 심의관이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확보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행정처와 청와대 사이에 오간 뒷거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심 선고 다음날인 2015년 2월9일치 문건엔 청와대가 선고 전 ‘무죄’를 기대하며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고 선고 뒤엔 ‘우병우 민정수석이 큰 불만을 표시하며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고심 절차를 신속하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고 돼 있다. ‘향후 대응 방향’으로 ‘상고심 판단이 남아 있어…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다’며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재판부 의중을 파악’해 알려주는 것도 문제지만 사건을 이용해 상고법원을 관철해보자는 건 판결을 미끼로 한 뒷거래나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 추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법원…길들이도록(상고법원)’이라고 적힌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처럼 청와대도 상고법원으로 거래하려 했던 것 같다. 대법원이 원세훈 사건을 이례적으로 전원합의체에 넘겨 주요 댓글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만장일치 판결까지 내렸으니 의심은 더 커진다.

행정처는 대법원장에 비판적이란 이유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해 ‘중복가입 해소 조처’나 예산 삭감 방안을 논의하고, 판사들의 온라인 모임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고 무마책도 꾸몄다. 사법행정위원회 구성 과정에선 판사들의 ‘진보·보수’ 성향을 분석한 자료까지 제공했으니 분명한 사찰·탄압이 아닐 수 없다.
재판의 독립, 판사의 독립을 위해 애써야 할 행정처가 거꾸로 ‘사법부의 국정원’처럼 사찰과 뒷거래를 시도했다면 정확한 진상 규명과 법적·행정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새로운 차원의 수사와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겨레 사설] ‘군사훈련 연기’가 남북회담 성공으로 이어지길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밤 전화통화를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에 전격 합의했다. 곧이어 북한은 5일 남쪽이 제안한 ‘9일 판문점 남북 고위급회담’을 받아들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걸 시작으로 23개월 만의 판문점 연락채널 복원,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거쳐 불과 4일 만에 ‘남북 대화’가 가시화했다. 현 정부 들어 처음이자, 2015년 12월 이후 2년여 만에 열리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이다.

이번 회담은 한달 남짓 남은 평창올림픽 참가 논의만으로도 만만치가 않다. 참가 규모, 응원단이나 예술단 파견, 입국 방식과 경로, 숙소 및 안전보장, 개·폐회식 공동 입장과 남북 단일팀 구성 여부까지 포함하면, 숨가쁜 일정이다. 물론 회담 의제가 올림픽 참가 논의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상당한 의미와 성과는 있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포함해 향후 지속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할 전환점으로 삼는 게 긴요할 것이다.

회담에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기보다, 남북 간 접촉면을 늘리고 상시 대화가 가능하도록 틀을 짜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 이는 이후 북한과 미국의 대화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 연기는 북한에 평창올림픽 참가뿐 아니라, ‘북-미 대화 테이블’에 나올 명분을 던져준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1992년 이후 처음인 미국의 한-미 군사훈련 연기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훈련 연기뿐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하는 남북 대화 전반에서도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적극 지지하길 바란다.

우려되는 건, 유엔 대북 제재 등을 북한의 올림픽 참가 과정에 도식적으로 무리하게 적용하면 예상치 못한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북한 선수단이나 응원단 참가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소동이 빚어진 적이 왕왕 있었다. 남북이 자주 만나지 못했던 탓이 클 것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지혜를 발휘해, 한반도 평화 증진과 긴장 완화라는 큰 틀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줄 것을 기대한다.

최근 국내 보수층 일각에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가시화하자 ‘한-미 동맹 균열’ ‘유엔의 대북 제재 위반’ ‘대북 군사억지력 위축’ 등 온갖 우려를 쏟아낸다. 북한의 의도나 미 행정부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보수층 일각의 주장은 공연한 트집잡기이자 사소한 걸 침소봉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군사훈련 연기에 합의하며 “대화는 좋은 것, 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입만 열면 ‘안보’를 부르짖는 보수 인사들이 한반도가 ‘대화’ 국면으로 가는 걸 불안해하고 조바심치는 듯한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남북 대화 진행 과정에 괜한 훼방을 놓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파격적인 북한 신년사, ‘평화’ 돌파구 여는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고 이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에 미국을 향해선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위협했다. 핵 문제에서 여전히 도발적이지만, 전체적으론 전향적이고 구체적인 제안을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새해 들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시사한 걸 환영한다. 정부는 이를 실질적인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관해 기존의 모험적이고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건 위협이 아닌 현실이다”라고 미국과 전세계를 겁박했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궁극적으로 보장해줄 수 없다는 걸 김 위원장은 알아야 한다. 핵 개발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과 ‘인민의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이제라도 깨닫길 바란다.

핵 위협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남북문제에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비롯해 관계개선 의지를 내비친 점은 긍정적이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진영은 이를 한-미 사이를 이간질하며 동맹에 균열을 내려는 술책으로 폄하하는 듯하다. 하지만, 설령 그런 의도가 있더라도 북한의 이번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를 여는 계기로 삼는 건 긴요하다. 궁극적으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여지를 넓혀 나가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북한 의도에 너무 골몰하기보다, 우리가 먼저 자신감을 갖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활용하고 유도해 나가려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는 사전 협의를 잘 해서 불필요한 갈등이 나오는 걸 피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엔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평창올림픽 참가에 적극적인 건, 남북 대화를 고리로 해서 강경한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의 문을 열어 나가겠다는 뜻이 담긴 걸로 봐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의 문을 열어 나가겠다는 걸 미국이 반대할 명분은 없다. 오히려 지지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동맹의 가치에 부합한다.

북의 ‘평창’ 참가 위한 당국 간 협의 시작해야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당국 간 만남을 시사한 이상, 정부는 실무적 협의가 조속히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미국에 ‘올림픽 기간 중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빨리 한-미가 의견을 조율해 북한대표단 참가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이뤄내고,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 토대를 쌓는 게 우리 정부의 역할이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부합한다.


[한겨레 사설] 국민 속이고 역사 앞에 죄지은 ‘위안부 합의’

지난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당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27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관련 단체 설득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관련 노력 △제3국 ‘위안부’ 기림비 설치 미지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 등의 내용을 비공개로 일본 쪽과 합의했다. 논란이 된 합의 문구 중 하나인 ‘불가역적 해결’ 표현도 애초 한국 정부가 ‘되돌릴 수 없는 사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으나, 일본은 이를 뒤집어 적반하장 격으로 ‘다시 재론하지 말라’는 의미로 성격을 바꿔버렸다.

일본은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사과를 했나?

이런 합의를 해놓고도, 입만 열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일본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떠벌렸다. 일본의 어떤 ‘사과’를 누가, 어떻게 받았나. ‘위안부’ 합의 직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 뜻을 대신 전한 게 전부다. 박 전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인가. 당시 정부는 △아베 총리의 서면 사과 △주한 일본대사의 ‘위안부’ 피해자 직접 사과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및 ‘위안부’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과 형식의 피해자 지원 등을 일본에 요구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오히려 지난해 10월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사죄 편지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는 부산 ‘위안부’ 소녀상에 항의해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게다가 정부는 “이면합의는 전혀 없다”며 금세 탄로 날 ‘거짓말’을 밥 먹듯 했다.

문제가 이리된 데에는 박 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위안부’ 문제와 한-일 간의 모든 문제를 연동시키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관계 개선 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여, 3년 반 동안 정상회담도 않는 등 자충수를 둔 탓이 크다. 그러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과 국내 여론이 맞물리자, 갑자기 입장을 바꿔 ‘연내 타결’을 압박한 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도, 역사의식도, 외교 감각도, 최소한의 정무적 판단력도 마비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원칙과 기조 확립하되, 방식은 지혜롭게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관련자 상당수가 다른 사안으로 현재 감옥에 있다. 이들을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것과 별도로, 이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가 오롯이 남았다. 일본 정부 입장에선 정부 간 외교 합의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비공개’로 한 것을 ‘공개’할 수 있느냐는 항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안을 돌아보면, 애초 그 ‘비공개’ 사안이 과연 ‘비공개’로 할 사안인지 근본적 의구심이 든다. 국가 간 협상에서 국민의 안보와 생명과 관련된 긴밀한 사안을 ‘비공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소녀상’, ‘기림비’에 대한 정부 대응, ‘위안부’ 명칭 언급 등을 과연 양국 정부가 ‘비공개’로 할 사안인지,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애초 ‘비공개’로 할 수 없는 사안들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를 숨기자고 서로 짬짜미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합의 변경 요구가 있어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 관계가 관리 불가능하게 된다”고 윽박질렀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바꾸려면 변경해야 하는 사유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다만, 외교란 상대방이 있다. 원칙과 기조를 내부적으로 정립하되, 그 방식에선 최대한 지혜로워야 한다. 정부는 과거 ‘위안부’ 문제와 한-일 관계 전부를 연계해 스스로 올무에 묶인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역사 문제에 대한 협의와 동시에 한-일 관계 개선에도 노력하는, 어찌 보면 모순적이지만 정상적인 행보를 걸어나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 ‘방중’ 둘러싼 논란과 비난, 지나치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성과를 놓고 국내 일부의 비판이 거세다. 방중 전부터 ‘공동발표문이 없다’ ‘공항 영접을 차관보급이 했다’ 등의 지적을 하더니, 14일 정상회담 이후엔 ‘새로운 게 없다’ ‘중국이 사드 문제를 또 꺼냈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혼밥’을 했다’ 등의 공격을 가했다. 심지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시진핑을 알현하러 갔다”고까지 말했다.
도를 넘는 비난이다. 방중 성과에 대한 지나친 평가절하이자,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도한 공세를 퍼붓는 것이다. 대통령의 정상외교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방중을 돌아보면,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전쟁 불가와 한반도 비핵화 등 ‘한반도 평화 4원칙’에 합의하고, 정상 간 핫라인 구축 및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다짐하고, 리커창 총리는 한·중 경제·무역부처 채널 재가동을 선언하는 등 높게 평가할 대목도 적지 않다. 또 시 주석이 ‘사드’와 ‘3불’ 등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문 대통령도 ‘북한 원유공급 중단’ 등의 요구를 하지 않는 등 서로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되돌아보면, 이번 방중은 1년6개월간의 ‘사드 갈등’ 이후 한국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이다. 그동안 정부뿐 아니라, 두 나라 국민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더구나 사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며, 한·중 모두 미완인 채로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두 나라 정상이 한자리에 마주 앉아 협력을 다짐한 것만으로도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두 나라 갈등이 한-중 수교 25주년인 올해를 넘기지 않고 매듭지어진 점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쪽 환대가 다소 소홀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방중에서 언급한 ‘역지사지’ 자세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이 몇번이고 ‘사드는 중국 핵심이익’이라 했는데, 지금 사드는 한국에 계속 배치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 관계가 최상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상정하고 모든 사안을 바라보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중 관계가 다시 정상화로 가는 첫걸음일 뿐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는 중국에도 필요하다. 중국은 사드 갈등을 접고 한국과 우호 관계를 회복하는 게 국익과 동북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매우 절실한 일일 것이다. 특히 한국 기자 폭행 건에 대해서 중국 정부가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됨을 알아야 한다.
배경과 의미를 무시한 채, 세부 사안 하나하나의 잘잘못을 짚으며 방중 성과 깎아내리기에 골몰하는 듯한 국내 일부 시각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알 수 없다.


[한겨레 사설] 평창올림픽에 찬물 끼얹는 미국의 경솔한 언행

미국 행정부 관리들이 미 선수단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여부를 놓고 이해하기 힘든 발언들을 내놓았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가 6일(현지시각)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선수들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open question)라고 답변을 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아직 들은 바는 없지만’이란 단서를 달긴 했지만 “어떻게 미국인들을 보호할지에 관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북핵 위기 때문에 선수단 안전이 우려된다는 취지인데, 전세계에 ‘한국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림픽 안전을 보장해도 모자랄 상황에 오히려 ‘위기론’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미국이 진정한 동맹국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여기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올림픽 개막이 가까워지면 (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혼란을 부채질했다. 올림픽 선수단 참가는 각국 올림픽위원회가 결정하며,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이미 지난 9월에 참가를 확인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보더라도 헤일리 대사와 샌더스 대변인의 말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샌더스 대변인은 브리핑 직후 곧바로 트위터에 “미국은 한국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에 참가하길 고대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 브리핑 발언을 사실상 ‘수정’했다.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배경엔 외교관 경력이 전무한 헤일리 대사와 허커비 대변인의 자질 문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내부 인식의 한 단면을 은연중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건,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에 대한 배려가 없고 지극히 자국 중심적으로 동맹을 바라보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을 포함한 주요 부처 내부의 정책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미국 내 지적이 많은데, 이번 상황 역시 그런 점에 대한 불안감을 더한다.

국내 일부 보수진영에서 이번 사안을 두고 한반도가 정말 큰 위기에 빠진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매우 잘못된 정략적 태도다. 미국 정부 내부의 조율되지 못한 이견을 침소봉대해 근거 없는 위기론을 확산시키려는 건, 그들이 자주 말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다.


[한겨레 사설] ‘안보 적폐’ 국정원을 손대지 말라는 ‘악마의 유혹’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을 넘기고 ‘국외’와 ‘북한’ 정보만 수집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은 뒤 논란이 뜨겁다. 일부에선 ‘간첩은 누가 잡느냐’며 ‘이적행위’ 운운하는 극언까지 동원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터져나온 온갖 ‘적폐’를 고려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들이다.
국가안보에 매진해야 할 인력을 선거·정치 공작에 내몰고, 국민 혈세를 대통령과 원장 및 가족 사생활에 빼돌려 쓰는 등 숱한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는 게 국정원 실상이다. 댓글공작,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정치공작도 그렇거니와 비밀수사·공작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원장의 국외연수 준비, 부인의 사교모임용으로 썼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정권안보에 매진하느라 국가안보를 구멍 낸 전직 국정원장과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돼 국민 신뢰가 바닥인 상태에서, 마치 다른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처럼 탁상공론을 펴는 건 설득력이 없다.

대공수사 기능을 이관할 기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정원법 개정안만 먼저 제출한 건 물론 지적받을 만하다. 수사 공백이 없도록 현 정부 공약인 경찰청 보안국 신설방안을 포함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함께 정리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사권을 떼어내는 것 자체가 안보를 엄청나게 훼손할 것처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일부에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분리되면 효율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을 편다. 이미 권한을 남용·악용한 전과를 숱하게 갖고 있는 정보기관이 비대한 괴물 조직으로 그대로 남는다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고 국민 불안감을 키울 것이다. 중국·러시아 등 인권 후진국과 이스라엘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미국·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이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을 분리한 것도 권한남용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조직 분리를 통해 상호 경쟁함으로써 선진국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수십년 누적된 적폐를 이번 기회에 확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국가안보를 정치에 악용해온 사실이 속속 드러났는데도 ‘정치보복’이라며 사실상 이를 방관·비호해온 수구보수 야당·언론들이 이제 와서 ‘안보’를 내세워 국정원 개혁을 비판하는 건 일고의 가치가 없다. 국가 정보기관의 발전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 망치려는 ‘악마의 유혹’이다.


[한겨레 사설] 한-중 ‘사드 해빙’, 한반도 평화 정착의 발판 되길

사드 배치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가 풀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 외교부는 31일 “사드 갈등을 봉합하고 한-중 관계 모든 분야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올려놓겠다”는 공동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했다. 해빙 분위기는 전날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사드 추가배치 않는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3가지 입장’을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밝히고, 중국 외교부가 ‘환영’ 입장을 내놓으면서 가시화했다.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처는 우리 업계와 종사자들에게 직접적인 어려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중 교류 중단으로 양국의 미래와 협력 가능성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몰렸다. 특히 한-중 관계 복원 없이는 북핵 문제의 해결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드 문제는 미국과 북한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 나아가 글로벌 안보상황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거나 일방적인 약속을 하기 힘든 구조다. 입장이 상반된 미국과 중국 양쪽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의 양해를 구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우리 외교당국의 성과임이 분명하다. 현 상태를 계속 가져가기 힘들다는 중국의 현실적 필요가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다.
한-중 ‘사드 봉합’은 중국으로서는 현 상태를 묵시적으로 인정하되, 가장 우려하는 동북아 한·미·일 군사라인이 형성되지 않을 것을 약속받는 성격이 짙다. 한국은 교류협력 정상화라는 ‘현재의 실리’를 택했고, 중국은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받아냈다. 앞으로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함께 한·미·일 협력 구도가 유지·강화되는 와중에 한국이 어떻게 중심을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으로 남는다.


[한겨레 사설] 국민과 법치주의 모독한 박근혜씨의 정치보복론

재판이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발언이 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사죄는커녕 그 흔한 반성이나 참회의 말 한마디 없다. 오로지 재판 공정성을 트집 잡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미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법정투쟁이 불리해지니 ‘정치투쟁’으로 지지층을 결집해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의도 아닌가 싶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참담하고 비통한 노릇이다.

그의 변호인 전원이 사임하겠다고 밝힌 건 사실상 재판을 보이콧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국선 변호인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데, 재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판 절차에 흠집을 내려는 무책임한 행동일뿐더러 사실상 ‘사법 방해’에 가깝다. 시정잡배라면 몰라도 전직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 운운하는 건 범죄 피고인인 스스로를 정치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속셈일 뿐이다. 재판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증언과 증거가 제시됐는데 이제 와서 ‘희생양 코스프레’를 하는 건 사법부와 국민에 대한 모독이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정치 보복이라면 자신이 속했던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탄핵소추에 찬성하고 나선 것을 어떻게 설명할 텐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재판에 넘긴 검찰과 특검도 박근혜씨 자신이 대통령 시절 임명했던 사람들이다. 굳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려면, 재판에 성실히 임해 증거를 내놓고 법 절차에 따라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절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을 거론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기 짝이 없다. 동정론을 유발하고 지지층을 자극해 장외투쟁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한마디도 않다가 구속기간이 연장되고 나서야 뒤늦게 ‘역사적 멍에·책임’을 거론하고 나선 것도 비겁하다. 부끄러움을 모른 채 끝없이 추락하는 전직 대통령의 구차스러운 모습에 서글픔을 떨칠 길 없다.
이런 행위가 법정에서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으리란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법적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정치 선동’에 나선 건 재판 이외의 요소를 통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행태로 비친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법리에 따라 유무죄를 가리는 절차에 협조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한겨레 사설] 미국은 “북한과 대화채널 있다”는데 한국은 어떤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0일 중국을 방문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2~3개 정도의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본 원칙은 평화적 해결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당면한 행동은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으로 당장 북-미 간 대결 구도가 대화 국면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차분히 북핵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될 수는 있어 보인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대북 창구는 기존 뉴욕 북-미 채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 뒤 청와대나 미 국무부 쪽은 “북한이 진지한 대화에 아무런 관심을 표명해 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 발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의중을 얼마나 반영했는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 발언은 북핵 해법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강 대 강’으로 맞붙는 상황이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선 막후 채널이 필요하며 협상을 통한 타결 가능성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당 대표들이 지난 27일 청와대 회동 뒤 합의문에서 밝힌 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가 불가피하다. 강력한 압박과 제재도 결국은 대화를 위한 것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미국도 유지하고 있다는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간 보수 야당이나 보수 언론은 우리 당국자가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면 비난하기 일쑤였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이야기하면 순진하고, 미국이 그렇게 하면 전략적 고려라는 식의 발상은 사려깊지 못하다.

그간 최악으로 치닫던 한반도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한·중·일 순방,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조심스레 긴장 완화 국면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순방을 계기로 한-미, 미-중 간에 북핵 해법이 심도있게 모색될 수 있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최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 축소 또는 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긴장 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을 멈춰야 한다. 한반도 위기가 더 이상 고조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이제는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긴장 완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평화’ 내던지고 ‘호전성’만 드러낸 최악의 유엔 연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totally destroy)하겠다는 호전적이고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말폭탄을 퍼부었다. 미국 대통령이 ‘평화의 전당’인 유엔 무대에서 이처럼 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비난을 퍼부은 건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뿐 아니라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을 싸잡아 ‘불량국가’(rogue nation)라고 공격했다.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맹비난한 발언을 연상시킨다. 그래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국정연설이라는 국내 무대에서 나왔다. 국가원수 90여명을 포함해 전세계 193개 회원국이 모인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이런 식의 발언을 내뱉은 건 국제사회엔 충격적인 일이다. 오죽하면 <워싱턴 포스트>가 “깡패 두목처럼 들린 연설”이라 평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그저 북한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로켓맨’이 자신과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등 자극적 용어만 사용했을 뿐이다. 북핵 문제를 풀어낼 어떤 현실적인 해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발언이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핵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작동할까 국제사회는 우려한다. 특히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는 말은 김정은 정권뿐 아니라 2500만 북한 주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들린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

김정은 정권은 트럼프 발언을 주민 결집용으로 이용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김정은을 돕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국내 지지층을 향해 강경 목소리를 내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제협력의 장인 유엔 총회장에서 “그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거침없이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트럼프 연설은 국제사회 불안을 고조하고 한반도 정세에도 불확실성을 더할 게 분명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되며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고삐 풀린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정책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기조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회원국들 앞에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이민자 청년 내쫓아 지지층 굳히는 비열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불법체류(서류미비) 청년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다카란, 어린 시절 불법체류 신분의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2세들이 학교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추방을 유예한 행정명령으로,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결정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다카 프로그램이 폐지되면, 이 혜택을 받고 있는 청년들 80만명이 미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들은 서류상에서만 제외하고 모든 방식에서 미국인이다.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라며 격정과 안타까움에 찬 장문의 글을 올렸다.

대선 기간 다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는 “관대함을 보여줄 것”이라며 유지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스캔들’ 의혹 확산과 인종주의적 발언 등으로 국정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지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반이민 정책’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장 취약한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비열한 행동이다. 이들은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16살 이전에 미국에 들어와 학교를 다녔고, 일부는 부모 나라와 아무 연고가 없고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이들의 삶을 뿌리째 뽑아 내팽개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권 측면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보면, 오로지 미국 내 지지층의 ‘구애’에만 급급한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도 불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언급한다든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핵 대응 통화 뒤 ‘한국이 수십억달러 상당의 미 군사무기를 사기로 했다’는 합의 안 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것 등도 철저히 국내정치적 지지층만 바라본 편협한 행동이다.
다카 폐지는 우리에게도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폐지가 현실화하면, 한인 청년 7000~1만명이 추방 대상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는 한인 청년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미 정부와 의회에 우리 입장을 분명히 알리는 등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트럼프의 ‘FTA 폐기’ 발언 유감, 정부 당당히 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검토 중이고 이르면 이번주 절차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따라 양국이 공동위원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일방적 발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핵을 둘러싼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에프티에이 폐기가 경제 분야를 넘어서는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정부는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이번 발언이 실제 폐기 수순으로 이어질지, 단순한 협상용 압박 카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에프티에이 공동위원회 첫 특별회기에서 양국은 팽팽히 맞섰다. 한국 쪽은 에프티에이 효과에 대한 공동 조사·분석·평가를 제안했지만 미국 쪽은 답변 시한도 밝히지 않았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에 협정 종료를 희망한다고 서면으로 통보하면 180일 뒤 폐기된다. 30일 이내 상대국이 ‘협의’를 요청할 순 있지만 이를 무시해도 그만인 것이다. 현재 미국 정부나 의회, 산업계 분위기로 미뤄 볼 땐, 트럼프 대통령이 섣불리 폐기 수순을 밟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당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온건파뿐 아니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폐기에 반대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전미제조업협회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보도되자, 회원사들에 긴급 이메일을 보내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접촉해 에프티에이 폐기 중단을 설득하라고 독려했다.

미국 쪽은 2012년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 이후 무역적자가 2배로 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분석은 미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상대국 것을 빼앗아야 하는 18세기 ‘제로섬’식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아니다. 분야에 따라 이득이 있고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한-미 동맹 관계에 따른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보복’에 가까운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이런 점들을 부각시키며 한국 정부는 당당하게 국 쪽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이재용 유죄, 추악한 정경유착 근절의 전환점 되길

법원이 25일 뇌물공여와 횡령·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 등 삼성 간부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 뇌물공여 등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는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도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밝혔듯이 ‘우리나라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패한 정경유착 병폐’에 법적 단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과 동전의 양면처럼 엮여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죄 가능성도 매우 커졌다. 다소 미흡한 대목이 없지 않으나 ‘적폐 청산’을 요구해온 1600만 촛불시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사필귀정의 판결로 평가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쪽 사이에 몇몇 쟁점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법정에 선 삼성 전·현직 임원들은 증언 거부와 진술 번복 등 ‘사법농단’에 가까울 정도의 강력한 법정 투쟁을 벌였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의 존재를 한참 뒤에야 알았고 말 지원도, 합병 작업도 미래전략실에서 했을 뿐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와 공정거래위원회 외압 일지를 비롯한 물증과 정유라씨 증언 등 숱한 증거 앞에 삼성 쪽 변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부회장 스스로 국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밝혀놓고도 뒤늦게 법정에서 미래전략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위치였던 것처럼 주장한 것이야말로 삼성 쪽이 얼마나 변명을 급조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재판부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무렵엔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언론보도 등으로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정유라와 관련 있음을 이 부회장이 알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엄청난 손실을 끼쳐놓고도 최후진술에서까지 “제가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운운하며 끝까지 발뺌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용서받기 힘들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알고 승마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히는 등 ‘뇌물’을 준 사람뿐 아니라 받은 사람 역시 유죄라는 취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이 단독면담 때부터 승마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지원이 미흡하면 삼성을 질책하는가 하면 최순실로부터 승마 상황을 계속 전달받는 등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보았다. 재판부가 다르긴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판결을 앞두고 상당수 언론이 삼성 쪽에 편향적인 기사·칼럼을 대대적으로 내보낸 점은 우려할 만하다. 명백한 물적 증거가 여럿인데도 ‘스모킹건이 없다’거나 ‘청와대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여론몰이를 한다’는 등 적반하장의 주장으로 재판을 흔들려고 한 것은 언론의 정도를 한참 벗어났다. 향후 재판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자성을 촉구한다.


[한겨레 사설] 한·미연합 훈련 축소, 대화국면 전환점 되길

21일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연습에 참가하는 미군 병력이 지난해보다 7500명 줄었다고 한다. 고강도 위기 국면에서 미군이 병력을 증원하지 않고 오히려 줄인 것은 훈련 규모 축소로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 계획을 잠정 연기하고 추가 도발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미국이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훈련 축소가 아니라고 부인만 할 게 아니라 상황을 지혜롭게 관리해 한반도 ‘긴장모드’를 ‘평화모드’로 바꾸는 전환점으로 적극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한·미는 동맹 차원의 연례적 방어훈련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발해 왔다.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때마다 도발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렸다. 지난해 을지훈련 기간에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수십년째 되풀이돼온 양상이다. 이번 훈련은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위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국면에서 진행된다. 한·미가 공격적 훈련을 진행하고 여기에 북한이 도발로 맞선다면 어떤 파국으로 흐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한·미가 훈련 규모를 축소하고 이에 맞춰 북한도 도발을 자제한다면 대치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바꾸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미가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면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처는 최대한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군이 이번 훈련 기간에는 B-1B 폭격기 등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해온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충분히 검토할 만한 조처다. 우발적,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 위험이 상존하는 위기 국면에서 굳이 한반도 상공에 위협적 무기를 전개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의 훈련 축소가 평화의 징검다리로 작용한 전례도 있다. 남북은 1991년 팀스피릿 훈련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북한도 무모한 무력 도발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군사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며 위협했는데, 다른 해보다 강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북한은 모처럼 마련된 해빙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대북 압박’에 치우친 한·미 정상 통화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해 대북 제재 강화 등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평화적·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이다. 최근 ‘군사적 대응’까지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이 “전쟁은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체적인 대화 내용을 보면, 강경 대응 일변도로 흐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북한이 핵을 폐기하거나 포기할 때까진 제재와 압박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 핵폐기-후 대화’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앞서 북한에 남북 적십자회담과 군사당국자회담을 제의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핵 해결 주체는 미국 중심 국제사회이고, 남북관계 등 인도적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화’를 2개로 분리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 결국 ‘반쪽짜리 대화’만을 목표로 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배치를 언급하며, “빠른 시간 내에 (반대 주민들 및 중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로 이해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의 방위력 향상을 위해 핵 추진 잠수함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전혀 ‘평화적·외교적’ 방법이 아닐뿐더러, 이런 방식의 군비 증강이 과연 한반도 문제 해결과 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문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고삐 풀린 듯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경 분위기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남북 평화 기조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기존 입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북한은 늘 도발적이고 비협조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중심을 잃지 말고, 보수 정부와는 다른 한반도 해법과 평화 기조를 유지해 나가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핵 해법 이견 드러낸 G20, 우리가 돌파구 열어야

문재인 대통령의 첫 다자외교 무대이자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주목됐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8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애초 경제 문제가 중심인 만큼 공동성명에는 북한 관련 언급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의장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에서 정상들의 비공개 세션을 전하면서 북핵 문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우리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제재와 대화 양쪽 모두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이번 회의를 통해 반년 이상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던 한국 외교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른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문 대통령은 다자회의뿐 아니라 13차례의 정상급 양자회담을 하며 4강 외교, 다자외교를 복원시켰다. 특히 북한의 대륙간탄도급 미사일 발사라는 중대한 상황 변화에도, 한국의 한반도 문제 주도권 및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우리 정책 기조에 대해 각국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반면 이번 회의는 북핵 해법을 둘러싼 각국의 이견 또한 드러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은 회담 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동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주고받는 이른바 중국의 ‘쌍중단’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밝혀 평행선을 달렸다. 미-러 정상회담은 ‘긍정적 케미스트리’를 확인했다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고 했다. 이에 반해 한·미·일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감내할 수 없는 제재와 압박”에 뜻을 같이하며 공동성명까지 냈다.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냉전적 구도 부활 아니냐는 지적마저 일각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폭은 좁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북-미 관계의 직접 당사자이자 사드 배치를 강행한 미국의 책임있는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새 대북정책을 천명하고도 ‘중국 역할론’만 강조하고 있다. 사드를 최대의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 앞에서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미국의 태도는 되레 중국의 반발을 불러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결 구도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중국 또한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간 제재 일변도 정책이 북한을 막지 못했고 지금은 그 제재마저 국제사회의 일사불란한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변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 돌파구 마련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 영유아 영양실조 문제를 언급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뜻을 밝힌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북한은 한국 정부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이산가족, 인도적 지원 등을 매개로 한 남북대화 채널 복원 요구부터 응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대북 4노 원칙’ 바탕으로 북한 문제 주도적으로 풀어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나, 그에 못지않은 상당한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을 보면, 북한의 핵 폐기를 무력이 아닌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비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뜻을 한·미가 분명히 밝혔다. 최근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 등으로 미국민들의 대북 정서가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공동성명에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명시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국의 주도성’에 대한 미국 쪽 합의를 끌어낸 점은, 새로운 대북 정책 로드맵을 구축하고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주요한 발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대북 4노(No) 원칙’을 밝혔다. 북한도 한·미의 전향적 자세에 발맞춰 하루속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자국 지지층을 의식한 ‘국내정치용’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방위비 협상에서 강한 압박이 예상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내년 말부터 시작될 방위비 협상에 대비해 미리부터 치밀한 준비와 대응 논리를 갖춰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환경영향평가 실시가 사드 철회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호성을 유지했지만, 미국 쪽으로선 ‘환경영향평가 실시 뒤 사드 배치’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에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가 과제로 남았다. 당장 이번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주한다. 미국과 중국,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사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숙제일 수밖에 없다. 이번 회담 성과인 ‘한국의 주도성’ 또한, 선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뤄나가느냐에 달렸기에 이 역시 이제 시작인 셈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회담, 당당하되 전략적 접근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오는 29~30일 워싱턴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 모두에게 첫 한-미 정상회담이다. 두 나라 모두 정권이 교체된 상태로 아직 세부 외교기조가 마련되지 않아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북핵 폐기를 위한 한-미 공조 선언 및 정상간 유대 강화만으로도 애초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하겠다.

이번 회담은 문재인-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조율하는 중요한 자리다. 첫 만남인 만큼 큰 틀에서 공통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미세한 이견 조정은 실무 차원 협상으로 미뤄도 된다. 더욱이 현재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으로 인해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다. 26일 문 대통령을 만난 전직 주미 대사들도 “구체적 현안 논의보다 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각하는 큰 틀의 공조 기반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견을 피하기 위해 섣불리 ‘미국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옳지 않다. 자칫 나중에 국내에서 일이 꼬여 더 큰 논란으로 비화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사드 배치 문제에선, 우선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 절차적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짚어둘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민감한 이슈를 회담장에서 불쑥 끄집어낼 가능성도 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때엔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 양반)이라고 지칭해서 논란을 빚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에선 노 대통령에게 ‘이지 맨’(easy man)이라는 표현을 써 또 한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보다 더 돌발적인 성격이라 자칫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외교팀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이란 정상끼리 각국의 이해를 말로써 관철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굳건해지려면 양국이 지속가능하고 수평적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한 만큼, 전략적이되 당당하게 회담에 임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겨레 사설] 6월항쟁 30돌, 진정한 ‘시민권력 시대’ 열어야

1987년 폭압적인 군부독재에 맞서 도도한 민주화의 길을 열어젖힌 6월항쟁이 10일로 30돌을 맞았다.
30년 전 오늘, 전국 주요 도시의 중심가에 나온 수백만 시민·학생들은 맨주먹으로 전투경찰에 맞서 싸우며 한국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민주화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6월항쟁 이후에도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온전한 민주정부가 들어선 건 10년이 더 지난 1997년 12월 대선을 통해서였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정권 10년 이후엔 다시 반동이 찾아왔다.

반동의 정점은 사상 유례없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6월항쟁 정신은 퇴행적인 박근혜 정권에 맞선 촛불시민혁명으로 타올랐고, 5월9일 새로운 민주정부의 탄생으로 열매를 맺었다. “박종철, 이한열 그런 선배들의 투쟁이 결코 사그라든 게 아니라, 씨앗이 되어 촛불집회로 되살아난 게 아닐까, 그런 자부심이 있다”는 어느 6월항쟁 세대의 회고처럼, 지난해 광장을 수놓은 촛불혁명은 30년 전의 6월항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한 세대가 걸렸지만, 길게 보면 지나온 질곡의 과정이 꼭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6월항쟁 주역들이 주축이 된 ‘민주정부’가 지금 성공적으로 첫발을 떼고 있는 건 의미심장하다. 숱한 굴곡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전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6월항쟁의 기억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 문재인 민주정부의 출범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6월항쟁의 현대사적 의미는 효율과 차별로 상징되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를 뛰어넘어 인권과 탈냉전, 시민사회, 시장경제라는 ‘민주화 시대’로 우리 사회가 접어들었다는 데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개막한 정치·사회 체제를 흔히 ‘87년 체제’라고 한다. ‘87년 체제’는 민주주의 진전 등 수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외면한 정치와 제왕적 대통령제, 경제 양극화의 심화, 진영논리와 이념갈등의 격화 등 짙은 그늘을 남겼다.

지난겨울의 촛불시민혁명은 87년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린 데 맞선 ‘민주주의 회복 투쟁’인 동시에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외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 정신은 촛불혁명과 뒤이은 민주정부의 탄생을 통해 비로소 완전히 구현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은 단지 국회에서 논의하는 개헌 작업만으론 이뤄질 수 없다. 정부의 의지와 함께 시민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가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실현해내는 데 긴요할 것이다.

‘87년 체제’의 막내이자 새 시대의 맏형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과제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반독재 민주주의 정신’에 기반한 정권일 뿐 아니라, 복지와 평등·행복을 앞세우는 사람 중심 사회를 구현할 책임을 지고 있다.
6월항쟁과 촛불혁명이 지닌 공통의 가치는,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 아래 평화적으로 목표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이걸 마음에 새기며 ‘개혁과 통합’의 기치를 새 정부는 놓지 않기를 바란다. 항상 국민 편에서 국민 눈높이로 사안을 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임을 잊지 않는 게 ‘6월 정신’을 새기는 길이다.


[한겨레 사설] 오월의 아픔 어루만진 새 대통령의 품격

어제 열린 37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가슴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유가족들을 성심껏 위로하고, 5·18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어느 5·18 기념식보다 성대하고 뜻깊게 치러졌다. 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보수정권 9년 동안 제창이 금지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는 모습은 행사의 백미였다.

문 대통령이 기념공연 행사에 나온 ‘5·18둥이’ 김소형씨를 끌어안고 눈물짓는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김씨는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1980년 5월18일 태어난 딸을 보러 광주로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편지를 듣던 문 대통령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고, 퇴장하는 김씨를 뒤따라가 한동안 끌어안고 위로했다. 김씨는 연신 흐느꼈고 이를 전하는 텔레비전 수화통역자도 눈시울을 적셨다. 보통사람들처럼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새 정부의 가치와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낸 것이 새 정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고, 이것이 국정운영 기조가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며 “새 정부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특히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넣는 건 시대정신을 적절히 헌법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87년 개정한 지금 헌법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4·19 혁명 이외에 5·18 민주화운동이나 6월항쟁 등을 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또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세력이 5·18을 폄훼·왜곡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거짓 주장까지 내놓는 상황에선 진상 규명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실효성 있게 5·18의 진실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정부와 관련기관이 적극 노력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광주시민들에게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달라”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다. 광주의 아픔을 마음속 깊이 껴안고 이를 통해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5·18 기념식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한겨레 사설] 국정농단 재조사, 특검이 정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참모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특검 시한 연장 불발로 인한 국정농단 수사 미진, 세월호 특조위 중단 등에 대한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은 12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관천 전 경정과 수사검사 등을 불러 진상을 가리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징계 사안은 징계하고 심각한 비리나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이 발생했다면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며 형사처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이른 국정농단의 시발점이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 가운데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농단에 대한 수사는 박영수 특검에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지적은 옳다. 어떤 형태로든 진상을 다시 밝혀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건 촛불 시민의 요청이기도 하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때부터 박관천 전 경정이 “최순실씨가 권력서열 1위”라며 국정농단을 밝힐 단초를 제공했으나 검찰은 ‘사설정보지를 짜깁기한 문건’으로 사건을 뒤집었다. 의혹의 몸통은 밝히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조사한 공무원을 처벌했다. 조사를 받았던 최아무개 경위는 목숨을 끊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검찰 수사팀은 물론 검찰 고위층의 진상 은폐 여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한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농단 사례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해경 간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게 해 결국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는 직권남용 혐의가 짙은데도 검찰은 덮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전 총리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 사안을 민정수석실 자체 조사나 법무부 감사로 파헤치는 건 역부족이다. 제대로 밝혀내려면 결국 특검이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의 발언을 보면 치밀한 준비를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투명성 못지않게 결과물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결단과 함께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당’ 부활시킨 홍준표와 탈당파의 야합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2일 집단 탈당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한다면서 “중차대한 상황에서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 여망을 외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탈당으로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고 사실상 분당 수순을 밟게 됐다. 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어떻게든 보수를 결집하려는 막판 몸부림인 셈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한국 보수의 얼굴에 먹칠하는 퇴행적 정치행태일 뿐이다.

탈당파들의 자유한국당 복당 선언은 선거철이면 으레 출몰하는 명분 없는 철새 정치인의 행각에 다름 아니다. ‘개혁 보수’를 하겠다고 새 당을 만들었다가 세 불리하니 안면 몰수하고 원래의 ‘수구보수’ 정당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고 ‘친박 청산’을 소리 높이 외치며 당을 만든 게 불과 100여일 전이다. 13명의 탈당 의원들은 바른정당 창당 과정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선 이들이라니 정치를 이리해도 되나 싶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선거 끝나고 추운 데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자리 보전이라도 하겠다는 잔꾀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들이 밀겠다는 이가 홍준표 후보라니 어이가 없다. 홍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갈 데까지 가는 ‘막장 보수’ 행태를 보여왔다. 바른정당 탈당파들이 내세웠던 혁신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보수의 퇴행을 불러온 후보다. 홍 후보는 1일 밤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내답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정당을 무슨 삥이나 뜯어 나눠먹는 조폭 조직으로 아는 게 아닌가 싶다. 홍 후보가 저질 색깔론과 막말로 표를 결집하고 있다지만, 그의 품위 없는 행태는 길게 보면 보수의 존립 기반을 갉아먹을 것이다.

바른정당 탈당파의 자유한국당 합류로 대선 국면이 이른바 ‘청산되어야 할 정당’의 부활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는 점도 우려스럽다. 수백만 촛불 시민이 추운 겨울 ‘적폐 청산’을 그토록 외쳤건만, 그 적폐의 본산인 정당이 선거 와중에 다시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다. 홍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홍준표가 되면 박근혜가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 공정하게 재판하면 무죄가 된다”고 노골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편들고 나섰다. 친박근혜 세력, 탄핵 반대세력의 부활은 설사 집권까진 하지 못하더라도 대선 이후 우리 정치에 심각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 추종 세력이 강력한 야당으로 자리잡으면, 많은 국민이 바라는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후보의 부상과 바른정당 탈당파의 백기투항은 한국 보수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박근혜 정부의 파탄을 보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보수 정치세력의 천박함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한겨레 사설] ‘사드 장단’에 놀아난 정부, 책임 규명해야

사드 비용을 내라는 미국의 밀어붙이기가 거세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사드 비용 재협상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맥매스터와 통화한 뒤 내놓은 공식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뒤통수를 맞고도 미국에 코가 꿰인 듯 제대로 대처도 못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마치 허수아비가 추는 춤을 보는 것 같다. 청와대는 ‘한-미 간 기존 합의는 유효하다’고 했지만 이런 판국에 청와대 말을 순수히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미국에 약점 잡힌 게 아니라면 이렇게 끌려다닐 수는 없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어쩌다가 우리 정부가 이렇게 우습고 한심한 모양새가 된 것인지 분통이 터진다. 임기를 며칠 남겨두지도 않은 황교안 총리 정부가 대선이 끝나기 전에 ‘사드 대못 박기’를 하려고 서두르다가 이 꼴이 된 것이라면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4월16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은 ‘대선 전에 사드 배치는 어렵다’는 입장을 비쳤다. 그러나 그 뒤 열흘도 안 돼 사드 장비가 전격적으로 배치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직후 잇달아 ‘한국이 사드 비용 1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윽박지르듯 말했다. 황 총리 정부가 미국에 사드 배치를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드 조기 배치에 대한 보답으로 상응하는 부담을 지겠다는 얘기가 한-미 간에 오갔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드 배치에 목을 매다시피 한 국내 보수세력과 황 총리 정부의 저자세가 ‘사드 전격 배치’에 더해 ‘사드 비용 재협상’이라는 외교적 참사를 불러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려는 의도 아래 사드 비용 재협상 전략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드 비용을 직접 걷어가든 방위비 분담금 형태로 우회적으로 가져가든 미국에 휘둘리면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빠져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이상 국정조사를 통해 사드 배치 전 과정을 철저히 파헤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드 핵심 장비가 들어왔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닌 만큼 사드 배치 원점 재검토를 포함한 전면적인 대안 찾기가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협상의 문’ 연 미국, 우리도 북한과 대화 준비해야

북핵 위기를 포함한 한반도 상황이 기로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상원의원 전원을 상대로 비공개 대북정책 설명회를 열었다. 뒤이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3부 장관이 합동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긴급한 국가안보 위협이며,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밝혔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대북정책 발표에 함께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 기조는 ‘최고의 압박과 관여’로 요약된다. 북핵 프로그램 해체를 목표로, 최대한 북한을 압박해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북 군사적 압박도 이를 위한 수단이란 게 미 행정부의 설명이다. 성명에서 ‘평화로운 방식’을 강조하고,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 시비를 불렀던 ‘모든 옵션’이라는 표현이 빠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따라 칼빈슨호의 한반도 해역 재진입과 북한의 핵공격 엄포 등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군사적 대립 국면은 어느 순간 ‘대화 국면’으로 급격하게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 많다. 그러나 정권이양기에 있는 한국으로선 우려되는 점 또한 적지 않다.

‘대화’를 목표로 한다고는 하나 ‘압박’ 과정에서 군사적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또 미·중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듯 보이지만,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중국이 대북 압박에 어디까지 얼마나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미국이 군사행동을 일단 배제하고 ‘협상’ 카드를 빼든 이상, 지금의 위기 단계는 삽시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한반도 정세가 과거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무엇보다 당사국인 우리 정부의 역할과 의지가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도록 하고, 남북대화를 통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조정자 구실을 해야 한다.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런데 2주 남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과도정부와 미국 국방부가 기습적인 ‘사드 알박기’를 강행했다. 또한 곧바로 실전 운용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건 차기 정부의 선택지를 좁히는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26일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실전 운용’ 방침을 밝힌 뒤에야 우리 국방부가 뒤늦게 이를 확인해준 것도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미국의 뒤만 따라가는 식으로는 설령 ‘협상 국면’이 열리더라도 한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나름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발표를 계기로 우리도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낼 구체적인 준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겨레 사설] 또다시 ‘북풍’으로 대선을 어지럽힐 셈인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참여정부의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논란과 관련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송 전 장관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불거졌던 논란이 선거를 보름 남짓 앞두고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주적 논란에 이어 대통령선거전이 소모적이고 과거 회귀적인 ‘북한 이슈’로 덮이는 건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논란의 핵심은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한국이 찬성하느냐 기권하느냐 하는 논의를 둘러싼 해석 차이다. 송 전 장관이 제시한 문건은 11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이 건넸다는 것인데, 남한 정부가 결의안에 찬성할 경우 ‘위태로운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고 북한이 경고하는 내용이다. 결국 북한 의사를 타진한 뒤 그날 우리 정부가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문 후보는 “11월16일 기권 방침이 정해진 후 이를 북한에 통보했고 북으로부터 연락받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며 “제2의 북풍으로 선거를 좌우하려는 비열한 색깔론”이라고 맞받아쳤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문건이 공개되자 문 후보를 겨냥해 “거짓말하는 분”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본다”고 비난했다.

송 전 장관이 공개한 자료는 그간 논란의 방향을 틀 정도로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북한 입장을 확인했다는 정황증거 정도지 이를 토대로 기권 결정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송 장관이 기권 방침에 반발하자 노 대통령이 이를 무마하려 북한 입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자료를 공개한 건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의 처신으론 부적절하다. 대선 때마다 대북정책의 방향이 아닌, 진위 확인이 어려운 과거의 세부 사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건 불행한 일이다.
2012년 대선 때의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얼마나 정략적으로 끝났는지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더욱이 참여정부 인사들끼리의 진위 논란은 창피한 일이다. 수구세력이 색깔론을 제기하고 안보장사를 할 빌미를 제공한다. 북핵 위기가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이다. 논쟁을 하려면 지금의 북핵 위기와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놓고 싸우는 게 훨씬 건설적이고 중요하다. 10년 전의 일을 갖고 한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건 이제 끝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반성커녕 책임 돌리기 급급한 박근혜와 참모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곧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치소로 찾아가 두번째 출장조사를 벌인 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공판도 열렸다. 박 전 대통령과 참모들은 검찰과 법원에서 혐의를 일제히 부인하면서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추태를 보였다. 말로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실제로는 법적 책임을 모면하려 상관이던 당시 대통령이나 부하였던 옛 참모들에게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니 권력무상의 ‘막장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2차에 걸친 검찰의 출장조사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억지 주장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변호인 교체설과 함께 혐의를 시인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여전히 증거가 드러난 혐의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자신의 말을 낱낱이 받아 적은 수첩 내용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듣고 적은 것’이라거나 ‘내 지시를 확대해석한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당사자인 안 전 수석은 물론 수첩에 등장하는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의 진술을 통해 대부분 혐의에 대한 증언과 증거가 수집됐음에도 사실상 참모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갖추지 못한 파렴치의 극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판단을 못하는 것은 물론, 법적·정치적 조언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참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쪽은 자신을 “여론재판과 표적수사의 희생양”이라며 “대통령의 의사와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거나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겼다고 한다. 우병우 전 수석도 박 전 대통령의 심부름 역할에 불과했다는 종전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고 참담한 심정”이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오만함이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을 구속하기로 방침을 세웠으나 ‘박근혜 청와대’의 검찰 농단을 충분히 수사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재수사나 재특검을 부르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통합’과 ‘적폐 청산’ 동시에 떠안은 문재인 후보

문재인 전 대표가 3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이날 열린 수도권·강원·제주 경선까지 4연승을 거둔 문 후보는 전체 합산 57%의 득표율로 원내 제1당의 대선후보에 올랐다. 2012년에 이은 두번째 도전이다. 문 후보가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고 결선투표 없이 승리한 것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준다.
문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대립과 갈등, 분열의 이분법을 쓰레기통에 보내자.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그가 ‘통합’을 첫손가락에 꼽은 건 의미심장하다. 특정인을 반대하는 연대란 아무 명분이 없는데도, 정치권에선 ‘반문재인 연대’를 꾀하는 움직임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이는 문 후보에 대한 보수층의 거부 정서가 여전히 상당하다는 걸 시사한다. 문 후보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의원이 말했듯이,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과한 행동이 오히려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문 후보가 ‘통합’을 내세운 건 앞으로 이런 부분을 뛰어넘어 더욱 많은 국민을 끌어안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는 누가 뭐래도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통령후보다. 그런 만큼 그를 향한 후보 검증의 칼날은 앞으로 더욱 날카로워질 게 분명하다. 검증의 파도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문 후보 아들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 채용 의혹은 이미 10년 전에 불거진 사안이고 딱히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것도 아니니 문 후보로선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와 관련해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일수록 더욱 분명하게 밝히고 자세하게 설명해서 국민 이해를 구하는 게 대통령후보의 자세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는 곧 후보 검증의 실패였다고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다는 점을 문재인 후보와 캠프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국민이 문 후보에게 ‘정권 교체’의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전반에서 개혁과 혁신을 분명하게 추구해 나가라는 뜻일 것이다. 전국의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리라 본다. 문 후보가 이 기대를 충족하려면, 대선 본선에서 정권교체 당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어떤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 것인지, 그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나갈 방책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내보여야 한다. ‘통합’과 ‘적폐 청산’, 이 두 가지 임무를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줄 수 있느냐에 문재인 후보의 정치적 앞날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단죄’로 박정희-박근혜 시대를 매듭짓자

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세번째 구속영장 청구다. 정치적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드러난 국정농단의 파렴치한 사례들과 박 전 대통령이 취해온 오만불손한 태도에 비춰보면, 법리적으론 매우 당연한 귀결이자 ‘사필귀정’이요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 헌정사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적 말로는 유별날 것도 없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기괴하고도 황당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수사로 드러난 사실만 봐도 그는 겉으로는 청렴하고 원칙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듯이 행세했으나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다. 뒤로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재벌의 돈을 뜯어내서 측근과 공유하는 정경유착의 가장 추악한 범죄자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온 국민이 언론의 발굴취재와 세차례의 수사를 통해서 박 전 대통령의 죄악과 위선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혼자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적용한 혐의의 가장 중요한 고발자이자 증인은 바로 그가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 칙어 받아적듯 깨알같이 메모한 업무수첩,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녹음한 녹취파일이 그를 옭아맨 결정적 물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스스로 국정농단의 물증을 간직하라고 독촉한 꼴이니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구속영장은 ‘인과응보’

검찰은 이날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에서 금품을 받도록 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중요한 공무상 비밀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새로 확인한 5개 등 모두 13개의 혐의사실은 대부분 완벽한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측근과 참모들이 여럿 구속돼 있는데도 끝까지 책임을 이들에게 돌리며 자기만 빠져나가려 발뺌한 것은, 대통령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패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인사들은 “사익은 추구하지 않았다”거나 “옷 한벌 얻어입은 것밖에 없다”(홍준표)며 그를 옹호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울 삼성동 집값을 최씨 쪽에서 지불하는 등 경제활동을 함께 해온 증거가 여럿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최순실씨 회사 광고물량을 챙겨주고, 기업과 은행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것은 경제적 동기가 아니라면 납득이 가질 않는다. 최씨 일가가 보유한 수천억원대 재산과 해외 재산 등의 실소유주 의혹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밝혔듯이, 박 전 대통령은 사건 초기부터 진정한 참회와 반성을 하기는커녕 꼬리자르기와 은폐·조작으로 일관했다. 물증으로 드러난 혐의를 “엮었다”고 발뺌하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특권을 박탈당한 뒤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나오면서도 끝까지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70% 이상의 압도적 여론이 그를 구속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이유다. 일부에서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불구속 등 선처를 주장하지만 어디에도 정상을 참작해줄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과 은폐로 일관, ‘선처’ 여지 없어

박 전 대통령이 혐의 부인을 넘어 공작정치로 여론을 호도하려 한 것은 매우 악질적이기까지 하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무수석실을 통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극단세력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걷은 돈을 쥐여주며 돌격대로 동원했다. 검찰은 그 진상 역시 철저히 밝혀 엄히 처벌해야 한다. ‘마마’를 입에 올리며 ‘야구방망이’로 민주 절차를 위협하는 세력은 보수도 시민단체도 아니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 통합이니 화합·포용을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박근혜 단죄’를 계기로 극단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수구의 껍질을 벗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마침 세월호가 수면으로 올라온 다음날 그 생때같은 생명들을 방치한 책임자가 법적 처단의 기로에 선 것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결정문 보충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당일 오전 10시에 집무실에 나와 정상근무를 했다면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도 절체절명의 7시간을 허비한 지도자가 제 한 몸 살겠다고 자기 조서는 7시간이나 밤새워 꼼꼼히 읽었다니 국민과 유족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탄핵으로 파면한 박 전 대통령을 법적으로 엄히 단죄함으로써 그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고 ‘박정희-박근혜 시대’를 매듭짓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검찰 조사’, 만인평등의 법치 보여줘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의 전직 대통령 조사는 이번이 네번째다. 대통령의 범죄가 이제 다시 없도록 하려면, 저질러진 잘못을 분명하게 규명하고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훼손된 헌정 질서가 회복될 수 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한 수사로 주어진 소명을 다해야 한다.

13개에 이르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선 검찰과 특별검사팀 수사를 거치면서 숱한 증거와 증언이 확보된 상태다. 부인하더라도 본인 진술만 더하면 당장 기소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관련자 대부분이 이미 기소된 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조사가 피의자 신문조서를 갖추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은 그동안 혐의를 전면 부인해온 박 전 대통령의 억지와 허위를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이권 챙기기에 나선 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이 대통령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을 리는 만무하다. 수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되레 권력을 동원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주도했다. 기업을 압박하거나 편의를 약속해 돈을 받아내는 수법도 ‘선의’나 ‘통치행위’, ‘국정 수행’ 따위로 포장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인 ‘정경유착’일 뿐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턱없는 변명을 그저 들어주고 있지는 말아야 한다.

조사의 핵심은 뇌물죄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는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과 박 전 대통령, 최씨 사이에 오간 부정한 청탁과 대가 관계를 따져 물어야 한다. 법리도 분명하다. 국정 수행에서 대통령이 지닌 포괄적 지위와 권한에 비춰보면 기업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제공한 금품은 명백한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갖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강요나 협박으로 뇌물이 오간 것 역시 뇌물 수수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기도 하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박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성싶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성찰하고 뉘우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이 국민의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이번 검찰 조사에서까지 또다시 뻔한 거짓말과 억지를 계속한다면 구속과 중벌을 피하기 어렵다. 그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은 더 커진 터다.


[한겨레 사설] 대화·협상 비중 키워야 할 ‘새 대북 접근’

한·중·일을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북 전략적 인내는 이제 끝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제까지보다 강경한 쪽으로 가려는 듯하다. 하지만 세부 정책을 어떻게 조합하든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접근법은 실패했다’는 틸러슨 장관의 판단은 타당한 점이 있다. 북한이 다섯 차례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할 정도로 핵 역량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접근법들을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며, 과거와 전혀 다른 접근법이 얼마나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정부 안에서 거론되는 내용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실패한 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북 선제타격 등 전혀 현실성이 없는 군사조처 정도가 추가로 제기됐을 뿐이다.

과거 경험을 보면 대북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적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가 억제됐다.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니라 대화를 지속적이고 깊이있게 추진하지 않은 데 있다. 과거보다 북한 태도가 더 경색된 건 사실이지만 대화는 여전히 유용하다. 지금 한·미의 주된 정책 기조인 대북 제재·압박 강화와 중국 역할론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대중국 대결을 강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주한미군 배치와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려면 한·미·일과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관련국의 접근 방식이 잘 조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타협과 우리 정부의 의지다.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는 대결을 멈추고 협력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면서 핵 해법 동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최근 최대 현안이 된 사드 갈등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시야가 좁고 무리한 대북 정책을 추구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악화시켰다. 지금의 대행 정부는 이런 정책에서 손을 떼고 정세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중국 등과 협력해 실질적 대북 대화·협상이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곧 출범할 다음 정부의 몫이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대선 날짜 확정 미적대는 모습 꼴사납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지만 대선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자치부 등 선거 실무 부처들이 사실상 5월9일로 대선 날짜를 정했는데도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황 총리가 본인의 대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느라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마땅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개인 문제로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호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선 날짜 확정은 한시가 급한 과제다. 조기 대선 실시로 시일이 촉박해진 상황에서 선거일 확정이 지연될수록 정치적 불확실성과 혼란만 커진다. 대선 후보 검증도 그만큼 소홀해져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도 방해받게 된다. 중앙선관위도 “대선일이 빨리 확정돼야 선거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운동경기의 심판을 맡을 사람이 선수로 뛸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난센스지만, 황 총리가 대선 출마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박근혜 정권 아래서 승승장구한 그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과 동반 퇴진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는 두드러기라는 터무니없는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병역기피 의혹자’다. 그런 인물이 국군통수권자가 될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수치다.

황 총리가 대선 출마를 결심하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기상천외한 상황까지 벌어진다. 누가 봐도 황 총리의 책무는 안정적인 국정 관리와 공정한 대선 관리에 힘을 쏟는 일이며, 그것이 그나마 그동안의 잘못을 씻고 나라에 봉사하는 길이다. 보수세력 안에서 아무리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다고 해도 황 총리를 거론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황 총리가 한광옥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의 사표를 모두 반려한 것도 온당치 않다. 백보를 양보해 경제나 외교·안보 분야 참모 등은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그냥 유임시킨다 해도, 정무·민정 등은 청와대에 남아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총리실과의 업무 중복 등을 고려하면 청와대 참모들이 황 총리를 보좌해야 한다는 것도 한낱 구실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파면된 이상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 정치적 도의에도 합당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한광옥 비서실장은 도대체 누구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며, 박흥렬 경호실장은 누구를 경호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일하지 않고 빈둥대면서 월급이나 타겠다는 속셈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염치없는 행동이다. 청와대 참모진은 사표 제출-반려라는 보여주기 쇼를 걷어치우고 한시바삐 청와대를 떠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승복과 통합’ 대신 ‘갈등과 대결’ 택한 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사흘째인 12일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삼성동 옛집으로 돌아갔다. 탄핵이 결정된 3월10일 이후 그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었으니 즉시 청와대 관저에서 나왔어야 했다. 뒤늦게라도 청와대를 비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난 이날까지도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았다. 그는 옛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과 친박 정치인들에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악수를 했다. 탄핵 결정을 존중하고 승복한다거나 국민 통합을 당부하는 말은 전혀 없었다. 대변인을 통해 대신 발표한 입장에선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지만 “믿고 성원해준 국민께 감사한다”고 말해, 온 국민이 아니라 지지층을 향해서만 호소했다. 승복과 통합 대신 갈등과 분열의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불길한 메시지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매우 실망스럽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한때 국가 지도자였다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승복과 통합을 밝혀야 했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시위가 폭력화해 사람이 죽고 다치는데도 ‘불복’의 메시지로 반발을 ‘선동’하고 지지자들을 계속 끌어모으려 하고 있다.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헌법 수호의 의지는커녕, 헌정 체제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반헌법적 행위다. 헌정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는지 짐작 못할 바 아니다. 정치적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혹은 당장 눈앞에 닥친 검찰 수사와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지지세력을 ‘방파제’로 삼으려는 것이겠다. 나라야 어찌 되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는 몰염치가 가증스럽다. 그런 시도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 쪽은 ‘불복’을 거론하지만, 헌재 결정에 불복할 방법은 전혀 없다. 헌재는 단심이고 최종심이어서, 그 결정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종국적 결정이다. 재심 사유가 있을 수도 없거니와, 파면 결정의 중대성과 파장 때문에라도 재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박근혜씨와 그 주변은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만의 억지가 과연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한겨레 사설] 민주주의 이정표 새로 세운 시민혁명의 승리

어리석고 무도한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사필귀정. 국민을 업신여기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든 죄업에 대한 당연한 인과응보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썩고 병든 가지는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의 외적 형식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지만, 실제적 내용은 상식과 순리의 승리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이념과 계급의 문제도 아니다. 겨우내 광장에 타오른 촛불은 ‘법치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었고, 헌재는 ‘전원일치 찬성 파면’으로 이에 응답했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며 “대통령 파면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헌재의 결정은 간결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촛불이 흘린 눈물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했고, 불꽃에 깃든 생명력은 나라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힘차게 꿈틀대고 있다.

법치주의는 통치자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는 데서 시작한다. 헌법의 헌(憲)은 누구도 사회 구성원에게 해로운 일(害)을 하지 못하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철저히 감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합리적 법의 지배 대신 권력자의 제멋대로 지배가 횡행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방약무인한 자의적 통치에 쐐기를 박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 최고권력자를 엄히 징치함으로써 법치주의의 대의를 다시 우뚝 세웠다.

‘법치와 민주’ 가치 확인한 헌재 결정

대통령의 파면은 국민에게 수치이자 자랑이다. 조작된 신화와 허상에 속아 오만무도한 자격미달자를 국가 최고지도자로 뽑은 것은 돌이키기 힘든 실수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잘못을 스스로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위대한 저력을 발휘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 선현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2017년 3월10일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혁명의 값진 승리의 날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실낙원’의 슬픔을 되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4년의 세월 그에게 청와대는 마음껏 활개 치고 즐기는 낙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지옥이었다. 경제는 바닥으로 주저앉았고, 민생은 파탄 나고, 한국은 국제사회의 동네북 신세가 됐다. 온 나라를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온전한 곳이 없다. 무능한 권력자가 쫓겨나며 남긴 갖가지 불행한 유산은 고스란히 국민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반성과 참회를 하지 않는다.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온 뒤에도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이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그사이 헌재 앞 거리에서 벌어진 탄핵 반대자들의 집회는 폭력·과격으로 치달았고 두 명이 숨지는 불행한 사태가 빚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헌재 결정 직후에 곧바로 겸허히 승복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어야 옳았다. 그래서 공황 상태에 빠진 탄핵 반대자들을 달래고 이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끝까지 방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 불상사를 자신의 입지 강화에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좌에서 쫓겨난 그 앞에는 검찰 수사 등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탄핵 반대자들의 극렬시위는 자신을 보호할 좋은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여길 법도 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행보를 보면 나라야 결딴나든 말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몰염치와 꼼수의 연속이었다. ‘헌재 결정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쯤은 쉽게 걷어찰 수 있는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꼼수를 쓴다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헌재 결정에 침묵으로 버티는 의도 뭔가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제 광기의 탁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는 불빛을 향해 부질없이 달려가는 여름 벌레에 불과했음이 헌재 결정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헛된 미망과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태극기를 욕보이는 행위는 나라의 불행이자 본인들의 불행이다.
헌재는 단지 박 대통령의 탄핵 여부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그 안에는 담겨 있다. 헌재 결정은 탄핵 열차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도전을 향한 출발역이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단지 법치주의의 확립, 최고권력자의 절제 등에 그치지 않는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는 반칙과 특권,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 체계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적폐 청산이 그것이다.
헌재 결정으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5월 ‘벚꽃 대선’의 역사적 의미 역시 자명하다. 봄의 밝은 기운을 맞아 낡고 병든 가지를 모두 쳐내고 새로운 싹을 움트게 하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그 새로운 싹이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부의 무책임한 ‘사드 대못 박기’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고 7일 밝혔다. 부지가 조성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비부터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섣부르고 무책임한 밀어붙이기다. 사드 배치 재검토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야권과 대한국 제재를 본격화한 중국 등을 힘으로 억누르겠다는 권위적 행태이기도 하다. 곧 있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대선 국면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도 엿보인다. 두 나라는 당장 사드 배치를 중단하기 바란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합리적 논의 과정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여서 더 부도덕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르면 4월 안에 사드 포대가 경북 성주에 배치될 것이라고 말한다. 속전속결을 시도하는 의도가 ‘다음 정부 출범 전 대못 박기’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용과 절차에서 문제가 많은 사드 배치 결정을 재검토하지 못하도록 선수를 치겠다는 반국민적 발상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을 이유로 들었지만 몇 달 사이에 상황이 별로 달라질 건 없다. 사드와 핵·미사일 위협 저지를 바로 연결하는 것도 근거가 취약한 ‘사드 만능론’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도 동북아 안보 질서를 뒤흔들고 북한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해왔다. 미사일방어(엠디) 통합을 통해 한국을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확실하게 편입시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핵심 아시아 전략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번 사드 대못 박기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사실상 첫 해외 군사 조처다. 외교·안보 정책 기조가 채 정리되기도 전에 이뤄진 이 조처는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사드 대못 박기의 파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중국의 강한 반발은 분명하다. 경제·외교·군사적 대응이 모두 뒤따를 것이다. 한·미 정부가 사드 문제와 관련해 진지한 대중국 협의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미국은 오히려 중국이 주장하는 전략적 이익의 침해를 자신의 전략적 이익 증가로 해석하는 듯하며,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와 중국은 무관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관점이 타협을 이루지 못하는 한 한국은 계속 보복 대상이 되기 쉽다. 지금의 경제제재는 시작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대중 관계에서도, 핵 문제에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태도다.

한·미와 중국의 갈등이 심해지면 북한 핵 문제도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드 갈등은 이미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조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중국이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유인이 줄어든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한다는 사드 배치가 결국 핵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셈이다.
사드 밀어붙이기는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실패의 결정판이다. 사드 포대를 빨리 설치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부작용이 너무 크다. 이제라도 다음 정부에 결정권을 넘기는 게 순리다.


[한겨레 사설] 중국 보복의 피해, 박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박근혜 정부는 끝까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졸속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을 내릴 줄만 알았지 중국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조처에 나섰는데도 고작 “유감” “대책을 검토 중” 따위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세월호,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등 박근혜 정부 내내 계속된 우왕좌왕과 무책임이 마지막까지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보복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상태였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몇 차례씩 밝힌 이상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도 이 정부 사람들은 “중국이 쉽게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황교안 국무총리)라는 따위의 근거 없는 낙관론만 늘어놨다. 정부는 이제 와서 중국과 대화를 하겠다느니,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느니 하며 뒷북을 치고 있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도 중재 결정이 나오기까지는 1~2년씩 걸리기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 뾰족한 수도 없이 한숨만 쉬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일부 보수신문들도 한몫 거들었다. 중국의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몰아붙이며 비난하기 바빴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기업 몇곳이 망하더라도 국가 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늘어놨다. 합리적인 상황 분석과 충고로 정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판단착오를 부추겼다. 그러다가 중국의 보복 움직임이 나타나자 “이러고도 대국이냐” “치졸하고 오만한 횡포”라느니 하는 볼멘소리만 하고 있다.

사드 배치가 자국의 안보에 중대한 해를 끼친다고 굳게 인식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사실 사드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북핵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무능과 무식함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했다. 그리고 중국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기업과 수많은 영세자영업자를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물러난다고 해도 그 짐은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한다. 잘못 뽑은 대통령 한 명이 끼친 해악이 정말 크고도 깊다.


[한겨레 사설] 극단으로 치닫는 트럼프의 ‘일방주의 통상정책’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국제 무역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정을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2017 무역정책 어젠다와 2016 연례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가 미국의 혜택과 권리를 약화시키려 시도한다면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과 상충된다면 세계무역기구의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 등 무역 상대국에 보복을 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무역분쟁을 조정한다는 명분으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주도했다.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의 상징인 셈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를 흔드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미국우선주의’가 있다. 무역대표부는 “미국 노동자와 농부, 기업을 해하는 그 어떤 불공정 무역 행위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면서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양자 무역협정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통행식 통상정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 규정과 같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인 보복 조처를 취한다면 상대국들이 반발해 ‘무역전쟁’을 부를 수 있다. 또 보호무역 장벽은 미국 소비자들이 질 좋은 수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미국 소비자단체들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무역대표부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무역대표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행된 최대 무역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핵심 타깃이 중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라고는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경제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장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재판관 집 주소까지 공개하는 비열한 ‘테러 선동’

극우단체 대표가 인터넷 방송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와 단골 미용실까지 공개했다. 사생활 침해일뿐더러 비열한 테러 선동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경찰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타인에 대한 테러를 부추기는 이런 사람, 단체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장기정씨는 지난 27일 인터넷 라디오방송(팟캐스트)에 출연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은 강남 ○○구 △△아파트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미용실과 슈퍼에도 자주 출몰한다. 무장경찰이 서 있다니 우리 그 아파트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고 오자. 정확히 △△아파트다”라고 말했다. 직접적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정미 대행에 대한 ‘협박’이나 ‘행동’을 방송 청취자들에게 부추기는 것이다. 장씨는 24일엔 박영수 특검의 집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항의시위를 주도하며 “이제 말로 하면 안 된다. 응징할 때가 왔다”고 연설한 적이 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이정미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하고 “방문하자”고 한 건 그런 행동의 연장선에 있다. 이건 집회 발언보다도 훨씬 위험하고 저열하다. 그 방송을 들은 누군가가 실제로 극단적 행동을 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씨를 포함한 일부 극우 인사들의 언행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협박·공갈이다.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사회적 범죄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 때론 집회나 시위를 통해 그런 요구를 사회를 향해 드러낼 수 있다. 지금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촛불집회나 보수단체들의 탄핵 반대 집회가 그런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폭력을 부추겨선 안 된다. 미국이나 독일에선 ‘일부 주민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촉구하는 행위’도 ‘증오범죄’로 간주해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장씨 등의 언행은 ‘표현의 자유’와는 전혀 관계없는,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반민주적 범죄일 뿐이다. 사법당국은 이런 행동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적 민감함을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 그래야 광장의 ‘자유’가 오롯이 살아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변론 마친 탄핵심판, 추태와 억지로 일관한 대통령

헌법재판소가 2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마쳤다. 헌재는 국회의 심판 청구 뒤 81일 동안 모두 20차례 심판정을 열어 증거를 조사하고 변론을 들었다. 이제 평의 끝에 내려질 헌재 결정을 온 국민이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번 심판은 현직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 선, 헌정사의 일대 사건이다. 헌법과 법률을 어긴 대통령을 탄핵 심판정에 세운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헌정 유린의 전말은 물론, 탄핵심판의 처음과 끝은 다시 온전히 역사의 심판에 맡겨질 것이다. 헌정과 법치가 어떻게 위협당했는지, 이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는 우리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탄핵 사유는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비선인 최순실씨 등에게 함부로 넘기고, 심지어 최씨의 사익 추구에 협조한 일은 관여한 이들의 증언과 제출된 증거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헌법상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훼손이 분명하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국민 안전을 지켜야 할 헌법 의무 위반이다. 공무원들을 함부로 인사 조처한 임명권 남용도 분명하다. 재단 출연금이나 정유라씨 지원 등을 이유로 기업에서 돈을 거둔 것에 대해선 직권남용과 강요에 더해 뇌물 혐의까지 드러난 터다. 법 위반이 대통령직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최종변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을 다 부인했다. 지난 몇 달간의 수사와 재판, 심판을 통해 자신의 범죄 혐의와 헌정 유린의 잘못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대함이 명백해졌는데도, 처음처럼 그저 “모른다” “억울하다”뿐이다. 관련자들의 자백과 증언도 아예 모른 체다. 잘못을 부끄러워하지도 못하니, 과오에 대한 성찰과 나라를 위한 결단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다.
대통령 대리인단도 가관이다. 변론의 대부분을 터무니없는 억지와 정치적 선동으로 채웠다. 소추 사유의 본질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커녕 온갖 수법으로 심판을 지연시키고 핵심을 흐리는 데만 골몰했다. 재판관들까지 공격하더니, 이제는 국회의 탄핵소추 과정이나 헌재 재판부의 결원을 뒤늦게 시비 걸어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을러댄다. 참으로 비열한 추태다.


[한겨레 사설] ‘헌재 불출석’에 ‘특검 대면조사 거부’하면서 무죄라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변론이 27일 오후 열린다. 헌재는 최종변론을 끝으로 심리를 마치고 평의와 평결을 거쳐 늦어도 새달 13일까지는 탄핵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탄핵열차가 이제 종착역에 다다를 시점이 가까워졌다.
박 대통령은 헌재에 출석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26일 오후 늦게야 박 대통령이 변론에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헌재에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자유의사이므로 불출석을 탓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기자간담회며 인터뷰 등으로 장외에서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더니 막상 헌재에 직접 나와 무죄를 당당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올 뿐이다. 박 대통령이 헌재 불출석을 결심한 것은 헌재 재판관들의 신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할 것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온 특검 수사 결과 등을 볼 때 박 대통령은 입이 열개가 있어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힘들게 돼 있다. 박 대통령이 결국 헌재에 나오지도 않을 것이면서 뜸을 들이는 바람에 헌재 심리에 혼선만 초래했다. 거기다 박 대통령은 애초 약속과는 달리 특검의 대면조사도 거부하고 넘어갈 태세다. 참으로 염치없고 비겁한 대통령이다.

헌재 최종변론은 탄핵 인용과 기각을 놓고 국회 쪽과 대통령 쪽이 최후의 논쟁을 벌이는 자리다. 그런데 최후변론 자리가 정상적인 법리논쟁 대신 박 대통령 대리인들의 억지 논리 설파장으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일원인 김평우 변호사는 25일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 나와 탄핵심판을 “사기”라고 공언하며 “조선시대도 아닌데 헌재의 결정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을 공부한 변호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저질 발언이다. 이런 억지 논리로 무장해 헌재의 최후변론에 임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처사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최후변론에서도 “헌재가 9인 체제가 될 때까지 심판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탄핵심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재판 일정을 늦추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국가적 혼란사태와 대통령 궐위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려면 ‘현실적으로 최대다수의 재판관들이 확보된 상태’에서 심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 전에 탄핵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 있는 법조인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 대리인들은 탄핵 결정을 늦춰야 한다는 따위의 상식 이하의 주장을 접고 왜 박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하는지나 제대로 설명해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탄핵 불복 자진사퇴’ 용납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예 판을 깨버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특검의 대면 수사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탄핵심판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박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 이후 꼼수로 일관해온 박 대통령이 ‘마지막 꼼수’를 꺼내 들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특검의 수사 결과나 헌재의 심리 과정을 살펴볼 때,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박 대통령 쪽도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박 대통령 변호인들이 막가파식 행동으로 헌재 탄핵심판정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는 ‘불공정 프레임’을 내세워 판을 엎어버리려는 정치적 노림수로 보인다. 바둑을 두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아예 바둑판을 엎어버리려는 못된 심보다.

사실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청와대도 자진사퇴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일단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파렴치한 행보를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믿을 바가 못 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탄핵을 당한 첫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통령직 파면 뒤 자칫 구속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꼼수로 떠오른 것이 탄핵 결정 전 자진사퇴 카드다. 자신이 물러났으니 탄핵 결정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식의 법리 논쟁으로 탄핵을 피해 보겠다는 얕은꾀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자진사퇴를 한다고 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억울하다. 하지만 헌재 심리가 불공정해서 물러간다”는 따위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공산이 크다. 국론분열 방지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 따위의 명분도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는 국가적 혼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국론분열과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나라를 더 큰 혼돈에 빠뜨릴 게 분명하다.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가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될 이유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한쪽에서 “대통령이 사임하고 정치권은 사법처리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식의 제안을 내놓는 것도 어이가 없다. 애초 야권이 내놓은 대통령의 조기사퇴를 통한 정치적 해법 제안을 걷어찬 것은 바로 박 대통령 쪽이었다. 그리고 ‘탄핵소추안 발의를 할 수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배짱을 부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탄핵을 당할 것이 확실시되자 정치적 해법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다. “강력범이 도주하다가 포위망에 갇혀 붙잡힐 수밖에 없게 되자 자수하면 그것을 자수로 봐야 하느냐”는 등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이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헌법과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다. 자신이 애초 주장한 대로 탄핵심판대에 올려졌으니 이제는 헌재의 심판에 승복하는 길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을 무산시키고 계속 무죄 주장을 펼치려는 박 대통령의 의도는 단호히 저지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는 박 대통령의 몽니와 꼼수에 끌려다닐 수 없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총리, 끝내 ‘역사의 반동’에 서려는가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여부를 21일까지 분명하게 밝혀달라는 야 4당 요구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거부했다. 황교안 총리는 20일에 이어 21일에도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서를 승인할지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특검 연장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모는 아직 절반도 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검 활동을 종료하려는 건 특검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폭거이자 국민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황 총리는 자칫 역사의 반동으로 낙인찍히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미 ‘특검 연장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황교안 총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봐도 수사를 계속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고, 이화여대 비리의 중심인 정유라씨는 아직 덴마크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를 끝내라는 건, 황 총리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비호자임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이다.

총리실은 “통상 수사기간 만료(28일) 하루 전에 연장 여부를 결정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비비케이(BBK)나 삼성 특검 등을 보면, 수사 만료 5~7일 전에 연장을 승인한 전례가 적지 않다. 괜히 시간만 끌며 특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황 총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황 총리가 야 4당의 요구를 거부한 이상, 이젠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특검 수사를 지속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4당 대표들은 21일 회동을 하고, 특검법 개정안을 23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하지만 ‘노력을 기울인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법안 의결이 쉽지가 않다.

국회의장이나 법사위원장이 법안을 본회의 또는 상임위에 직권상정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여야 합의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특검 활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건 황교안 총리 탓인데, 자칫하면 야당 내부의 책임 공방과 비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야 4당은 특검 활동 연장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 황 총리를 더 거세게 압박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국민 뜻을 최우선에 두고 특검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게 옳다. 야당의 단일한 행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레 사설] 확인된 ‘외교·안보 난국’, 핵 해법에 집중해야

주요 20개국 외교장관 회의와 뮌헨 안보회의를 계기로 16~18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열린 여러 회담에서 한반도 관련국들 사이의 이견과 갈등이 불거졌다. 특히 우리나라가 당면한 총체적 외교·안보 난국이 재확인됐다. 현안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동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18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예상대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문제가 이슈가 됐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중국의 보복성 조처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고, 왕이 외교부장은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며 반대 뜻을 다시 밝혔다. 같은 날 한-러 회담에서 러시아 쪽은 다음달 한-미 연합훈련 때 미국 전략자산(무기) 투입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17일 한-일 회담에서는 소녀상 문제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중-일 회담에서는 센카쿠열도 문제가 부각됐다. 동북아 전체가 갖가지 갈등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그 한가운데에 북한 핵 문제가 있다. 16일 한-미 및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선 대북 제재·압박 강화를 결의했지만, 중국·러시아는 대화를 주장했다. 17일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미국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안정을 저해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시킬 것”을 중국에 촉구하는 등 대립 양상을 보였다. 북한 핵 문제에서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면 다른 갈등이 증폭될 수도 있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이런 구도의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적잖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태도가 주목된다. 왕이 부장은 17일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국이므로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정치적 결단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중국은 19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역할론을 강조하는 한·미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한반도 관련국 모두 합의할 수 있는 핵 해법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핵 해법에 대한 이견과 미-중 갈등이 상승작용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외교·안보 난국은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드 배치, 군대위안부 문제, 남북 관계와 관련한 섣부른 결정 등이 바로 그렇다. 그러면서 핵 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난국을 극복하려면 전반적 흐름을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핵 해법 모색이다.


[한겨레 사설] ‘사상 첫 총수 구속’ 삼성이 직시해야 할 것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삼성을 사실상 이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뇌물 제공 등 혐의로 구속됐다. 삼성상회 창업으로 시작된 삼성의 79년 역사에서 총수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삼성은 2015년 59개 계열사 매출액이 271조9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집단이다. 그러나 그림자 또한 매우 짙다. 성장의 밑바탕엔 권력과 깊은 유착이 있었고, 막강한 경제력은 다시 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동안 그에 얽힌 비리가 드러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계 순위 1위 삼성’의 총수들만은 구속을 면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 부회장 구속은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 비리를 더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성은 정경 유착에서도 재계의 리더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 세력이 곧바로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구속했을 때,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그는 40일 만에 입국해 한국경제인협회 창립을 이끌었다. 그렇게 정경 유착의 고리를 만들어 처벌을 면했다. 그 단체가 얼마 전까지 상성이 가장 많은 회비를 내서 지탱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도 그는 무사했다.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제공 사건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7년 말 불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의 결말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범죄 혐의가 명백한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현장에 크게 울려 퍼진 “재벌도 공범이다”란 분노의 목소리를 특검과 법원이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와 횡령, 재산 국외도피, 국회 청문회 위증 등 5가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승마 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했다. 보강수사를 거쳐 특검이 두 번째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도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했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무리하게 동원하고,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몰래 거액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건의 핵심은 이미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삼성은 ‘권력의 강요에 따른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삼성 쪽은 여전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인간의 정리로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깝다.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듯 ‘총수 구속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설파하다가 마지막엔 또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할 텐가.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도 시대의 대전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특검이 아직 수사를 못 했을 뿐 롯데, 에스케이 등의 행태도 삼성과 비슷한 범죄 혐의가 짙다. 이제라도 권력과 재벌 간 결탁으로 점철된 낡은 시대의 문을 닫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경 유착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전경련을 해체하고, 강요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강력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특검 탓’이 아니라 ‘삼성 탓’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두고 삼성이 “최순실 특검이 아니라 삼성 특검으로 변질됐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보수언론은 “특검이 촛불을 등에 업고 먼지떨이 수사를 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특검은 법원이 지난달 19일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자, 추가 수사를 거쳐 26일 만에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이번에 특검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모녀에게 433억원을 건넨 대가의 범위를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뿐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와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등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 과정 전반으로 넓혀서 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삼성에 특혜를 주도록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파악했다. 합병은 승계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다. 특히 지주회사 전환은 합병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로,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합병 직후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안가 독대’를 앞두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준비한 ‘대통령 말씀자료’에 “우리 정부 임기 안에 삼성의 후계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 “삼성도 문화재단 후원에 적극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부회장의 후계 승계 문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거액을 요구한 것이다. 또 이 부회장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해 9월 말 독일에서 최씨를 만난 뒤 작성한 “검찰 수사 개시되면 삼성 폭발적”이란 내용의 메모도 확인됐다. 이런 게 ‘먼지’라면 세상에 구속될 피의자가 누가 있겠는가.

삼성과 보수언론은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경영 공백은 물론 쇄신 작업도 물 건너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길래 왜 진작 쇄신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다. 2008년 ‘삼성 특검’을 비롯해 그동안 여러 차례 쇄신의 기회가 있었지만 총수 일가가 내팽개쳤다. ‘총수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는 한 ‘삼성의 위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재벌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희생양이 아니다. 공범이다. 태생부터 문제가 많았던 정권이지만 그 정권을 돈으로 더욱더 오염시켰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계속 피해자 행세를 한다면 돈을 앞세워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관변단체의 탄핵반대 집회 동원, 헌정 유린이다

한국자유총연맹(자총) 등 보수우익단체들이 오는 3월1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한다. 전국 각 지부에 공문까지 내려보낸 사실이 공개되자 자총은 10일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태극기 국민운동’ 행사”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맞서기 위한 사실상의 탄핵반대 집회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탄핵반대를 외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은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난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인하는 등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언급 대상으로 삼기조차 민망하다. 이들의 움직임을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최근 청와대와 새누리당, 보수우익단체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반촛불’과 ‘탄핵반대’ 활동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재 티브이’ 방송을 계기로 새누리당 인사들의 태극기 집회 참석 등 국정농단 및 부화뇌동 세력들이 노골적으로 탄핵반대 궐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보수우익단체들이 청와대 지휘 아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자금을 지원받으며 관제시위에 나선 사실은 특검 수사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나 세력 및 야당을 제압하려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까지 만들어 우익단체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것은 단순한 관제시위를 넘어서는 전형적인 ‘정치공작’이다. 청와대가 삼성 등 재벌들로부터 거둔 수십억원을 지원받아온 우익단체들이 탄핵반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공작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자총처럼 국고지원을 받는 법정단체가 정파성 짙은 행사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심각한 위법 행위다. 공직선거법은 자총 등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공명선거 운동조차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고 특별법으로 보호받는 단체가 헌법상의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기둥뿌리부터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을 규탄하지는 못할망정 감싸고도는 것은 조직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국민 세금을 받는 조직이 반헌법 집회에 참석한다면 즉각 해체해야 마땅하다.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공작은 헌정 유린의 위험한 불장난이다.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통령의 특검 수사 방해

박근혜 대통령이 9일로 정해졌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조사 일정이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다. 9~10일 대통령을 조사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던 터다. 그 일정이 특정돼 공개된 것이 합의된 조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괜한 트집을 잡아 핑계로 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은 당연하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4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한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고 말했지만, 검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 직후인 11월20일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 수사가 불리할 듯하자 약속을 뒤집은 꼴이다.

그때는 물론 그 뒤에도 박 대통령은 “특검 조사에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정작 대면조사가 코앞에 닥치자 ‘특검을 신뢰할 수 없다’며 또다시 조사를 거부했다. 특검 쪽에서 조사 일정을 흘렸다는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뇌물죄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피의자로 본 특검의 조사가 부담스럽기 때문이겠다.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를 최대한 늦추거나 아예 무산시키려 한다는 의심은 그래서 나온다.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대통령의 행태는 진작에 도를 넘었다. 청와대는 검찰과 특검의 압수수색을 모두 거부했다. 수사를 앞두고 청와대가 주요 피의자나 참고인들의 거짓 진술을 요구한 흔적도 있다. 증거인멸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대로 아무 죄가 없다면 당당히 수사에 응해 무고함을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러기는커녕 가까스로 성사된 대면조사마저 비상식적인 핑계로 거부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도 대통령 쪽은 큰 필요가 없거나 되레 자신에게 불리한 증인까지 무더기로 신청하는 등 심판을 늦추는 데 안간힘이다. 애초 출석하지 않기로 했던 박 대통령이 변론 일정이 끝날 즈음에 뒤늦게 출석을 자청해 심판 일정을 크게 지연시키려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실제 그럴 생각이라면 참으로 비루하고 치졸하다.

대통령은 더는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임명한 특검의 조사에 당당히 응하고, 헌법기관인 헌재의 심판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이미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품격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한겨레 사설] ‘박근혜 호위무사' 본색 드러내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기로 하고 새로운 당명 후보를 3개로 압축했다고 한다. ‘보수의 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이 최종 후보라는데, 과연 당명만 바꾼다고 국민 인식이 달라질까 궁금하다. 지난 주말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당명만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가 뭐래도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이다. 철저하게 반성·사과하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한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걸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인명진)는 5일 회의에서 새로운 당명 후보를 ‘보수의 힘’ 등 3개로 정하고 9일 전국위원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당의 로고도 태극기가 들어간 문양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인명진 위원장은 “이인제 전 의원, 원유철·안상수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새누리당이 불임 정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했다. 표면적으로는 얼굴 화장을 좀 고치고 대선 후보들도 난립하면서 당이 침체기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11차 탄핵 기각 총궐기 국민대회’엔 이인제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윤상현·조원진·김진태·전희경 의원 등 새누리당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나타냈다. 심지어 김문수 전 지사는 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기각돼야 한다. 박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당당하게 임해달라”고까지 주장했다. 혁신은커녕 대통령의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을 옹호하는 ‘박근혜-최순실 지킴이’로 거듭나려는 모양새다. 민심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고 로고를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국민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새누리당은 ‘보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아무리 정치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파괴하는 걸 방임한 정당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다시 국민 지지를 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우선 박 대통령과의 관계부터 분명하게 단절해야 한다. 박 대통령을 당원으로 남겨두고 그의 열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재도약을 모색하겠다는 건 ‘국민 기만’이다.


[한겨레 사설] ‘범죄 현장’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는 ‘중대 범죄'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청와대의 거부와 저지로 무산됐다. 이달 말까지 거듭 시도할 수 있다지만 청와대 쪽이 완강하게 막으면 도리없이 갈등과 충돌만 이어지게 된다.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을 국가기관인 대통령이 거부한 것은 그 자체로 삼권분립과 영장주의 등 헌법 원칙의 훼손이다. 헌법 위반의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쪽은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 혹은 ‘공무상 비밀에 관한 것’에 대한 압수수색에는 책임자의 승낙이 필요하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규정 바로 뒤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대한 국익이 침해될 일이 아니라면 압수수색을 승낙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검이 압수수색을 하려는 청와대의 여러 사무실이 얼마나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필요로 하는 장소인지는 의문이다. 설령 중대한 비밀이 있더라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협의해 선별하면 될 일이지, 청와대 진입부터 아예 막을 일은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엔 국정농단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는 것 이상으로 중대한 일은 없다. 특검의 압수수색을 저지해 국정농단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중대한 국익 침해’다.

압수수색 대상인 청와대 사무실들은 하나같이 국정농단 사건의 ‘범죄 현장’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비서실장실에서 지시가 내려와 정무수석실 등에서 만들어졌고,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은 부속실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경제수석실과 정책조정수석실을 통해 실행됐다. 민정수석실은 이를 모른체하거나 되레 장애물을 치워주는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 관저와 의무실 등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헌법상 직무를 유기하고 방치한 현장이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이들 범죄의 현장 확인뿐 아니라 곧 있을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앞둔 물증 확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수사 절차다. 이를 막는 것은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다. 압수수색을 통해 대통령기록물 등 증거가 훼손된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 역시 엄하게 처벌할 일이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압수수색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어깃장을 놓고 시간을 끌다가는 국민의 분노와 저항만 키우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는 특검의 협조 요청에 응해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게 그나마 파문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