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끝내 ‘강제노역 인정’ 약속 뒤집은 철면피 아베 정부

일본이 최근 유네스코에 제출한 메이지 시대의 산업 유적지에 대한 두번째 후속 조치 이행보고서에도 ‘한국인의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처 사항’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가 1940년대 전시 물자의 공급을 위해 한국인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사실마저 끝내 감추려는 의도로 읽힌다. 일본은 더는 불리한 역사라고 은폐하고 왜곡할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은 지난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메이지 시대의 제철소와 조선소, 탄광 등 산업 유적지 23곳을 세계유산으로 올렸는데, 이 중 군함도 탄광 등 7곳이 한국인이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악명높은 곳이다. 일본은 당시 한국이 이들의 등재를 강력히 반대하자, 한국인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정보센터 등을 설치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일본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은 2년 뒤인 2017년 12월 제출한 이행보고서에서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빼고 ‘일본의 산업을 지원한 한반도 출신자들이 있었다’고 표현했고, 정보센터도 희생자 추모와 무관한 싱크탱크 형태로 도쿄에 설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가 이듬해 6월 다시 ‘2015년 결정문’의 충실한 이행을 요구하며 업데이트된 추가 이행보고서 제출을 요청했으나, 이번에도 일본은 사실상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다시 제출한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철면피한 일본의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다.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가 당사국 간 대화를 권고했음에도 우리 정부의 대화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이런 경직된 자세에는, 이 문제가 최근 한-일 간 첨예하게 맞붙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 같다. 역사적 진실 앞에서 책임감은 없고 유불리의 주판알만 튕기는 모습에서 실망감을 넘어 비애를 느낀다.
한·일은 이달 말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 정상회담을 열어 관계 개선을 모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본이 끝까지 역사적 책임을 방기한다면, 이번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일 갈등은 풀리기 쉽지 않다는 걸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회담 자제” 나경원, 어느 나라 의원인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내년 4월 총선 전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익은 물론 한반도 미래와 관련된 중대한 외교·안보 사안을 선거 유불리로 재단해 가로막고 나선 건 매우 부적절하다.

나 원내대표는 27일 “지난 7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방한 때 총선 직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건 맞다”고 밝혔다. 최근 3당 원내대표 미국 방문 때 나 원내대표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열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논란이 일자, 이를 부인하며 한 해명이다. 지난 7월에, 그것도 북-미 정상회담 ‘자제’가 아닌 ‘우려’를 표명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나 원내대표는 말하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북-미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에 중차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관계 개선에도 돌파구를 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당파적 이해나 여야를 떠나 국익을 우선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 원내대표는 28일 “문재인 정권에 속아 엉뚱한 시점에 정상회담을 열지 말라고 미국 당국자에게 진실을 말해준 것”이라며 “제가 틀린 말 했냐”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언행을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태도는 몹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나 원내대표 발언은 선거 승리를 위해 북한을 끌어들인 ‘총풍’ ‘북풍’ 등 과거 보수 정권의 악행을 떠올리게 한다. ‘평화 방해자’를 자처하고 나선 그에게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묻고 싶다. 미국에 이런 요청을 하는 것 자체가 사대주의의 표현 아니겠는가. 나 원내대표는 부끄러움을 알고, 국민에게 당장 사과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주한미군 감축’까지 거론하는 도 넘은 미국 압박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19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것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문제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얼마 전엔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이 “보통의 미국인은 주한·주일미군이 왜 거기에 있는지 묻는다”고 하더니, 이젠 드러내 놓고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 흔들어대는 모양새다. 아무리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이 절실하다 해도, 주한미군 감축까지 들먹이는 행태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최근 며칠 사이에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마크 밀리 합참의장, 에스퍼 장관 등이 잇따라 한국에 와서 “한국이 더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50억달러(약 5조8천억원)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스무번쯤 반복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수십년간 많은 미국 대사를 만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사가 주재국 의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이런 식의 외교적 결례를 할 수 있는 건지, 그 무례함이 놀라울 정도다. 20일 열린 한-미 당국 간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선 미국 쪽이 “한국 제안은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는 게 아니다”라며 80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 어젠다여서, 관료들이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동맹’ 사이라면,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 오직 ‘돈’을 위해서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한-미 동맹 근간인 주한미군 문제까지 끄집어내는 건 한참 도를 넘은 것이다. 더욱이 에스퍼 장관은 지난 15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하여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지 않은가.

미국이 ‘주한미군 서비스를 돈 주고 사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렇게 되면 공동의 안보이익과 가치를 나누는 ‘동맹’은 설 자리가 사라진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 동맹의 모토는 ‘같이 갑시다’이지, ‘돈을 충분히 받으면 같이 간다’가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진정 무엇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한반도에도 ‘탈냉전’을

1989년 11월9일,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독은 통일의 기쁨을 만끽했고, 동구권 공산체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잇따라 붕괴했다. 2년 뒤엔 소련마저 무너지며 냉전은 역사의 유물이 됐다. 이렇게 탈냉전의 세기적 전환이 일어난 지 30년이 됐다. 그럼에도 한반도만 아직 탈냉전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현실을 보면 착잡하다. 남북이 냉전적 대결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길을 닦기 위해 함께 노력하길 기대한다.

외신을 보면, 30년 전 당시 현장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를 겪은 인사들은 한결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놀랍고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독한 서독 출신 빔 벤더스는 처음에는 “장벽이 무너졌다고? 소련 탱크가 침공했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 베를린 장벽 붕괴는 서독이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천명 이후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초당적으로 동-서독 간 화해와 교류·협력을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진보 정권이냐 보수 정권이냐에 따라 대북정책이 ‘화해’와 ‘대결’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국내 정치권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독일 통일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건 아니다. <한겨레>의 슈테펜 마우 훔볼트대 교수 인터뷰를 보면, 동·서독이 분열과 격차를 극복하고 통합에 이르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서독의 정치·경제적 우위는 분명한 반면 동독엔 실업과 저소득·박탈감이 만연해 있다고 한다. 제도 통일이 사회 통합을 보장하지 못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새로운 어려움의 시작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독일 통일의 사례를 교훈 삼아, 어떻게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을 이뤄나갈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사회 통합을 해나갈지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밑그림을 그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한·일 정상 ‘깜짝 환담’, 꽉 막힌 ‘대화의 문’ 열기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린 방콕에서 단독으로 만나 11분간 ‘깜짝’ 환담했다. 두 정상이 따로 만난 것은 지난해 9월 정상회담 이후 13개월 만이다. 두 정상은 회동에서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며 양국 관계의 현안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에 공감한 것은 지금의 양국 관계에 비춰볼 때 의미가 크다. 한·일 두 나라는 이제 강제징용 문제에서 비롯해 무역, 군사협력 문제로까지 확대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고위급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

두 정상은 이날 환담에서 “양국 외교부의 공식 채널로 진행되고 있는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관계 진전 방안이 도출되기를 희망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고위급 협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의했고 이에 아베 총리도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하자”고 화답했다고 한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악수만 하고 헤어졌던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청와대는 이번 환담이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 문 대통령이 정상회의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뒤늦게 도착한 아베 총리를 옆자리로 인도해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 아베 총리의 손을 이끌어 대화의 단초를 마련한 것은 바람직했다. 지난달 말 일왕 즉위식 때 이낙연 총리와 아베 총리가 만나 ‘대화 재개’ 필요성에 공감했는데, 이번에 두 나라 정상이 이를 확인했으니 곧바로 외교당국 간의 실효성 있는 협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일본이 이번 환담과 관련해 “아베 총리가 원칙적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고 밝힌 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원칙적 입장이란 “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다 해결됐다”는 것이어서, 이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극은 여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화 말고는 달리 해법이 없다는 건 분명하다. 역사 문제에서 인식 격차를 좁히기 어려우면, 우선 일본은 무역보복 조처를,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두 나라 정부는 즉각 갈등 해소를 위한 실천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한겨레 사설] ‘조국 이후’ 상황 엄중함 깨닫고 ‘쇄신’ 고민해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으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28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당의 혁신과 쇄신을 건의했다. 이날 만남은 두 의원이 불출마의 변으로 ‘조국 사태’ 와중의 무력감, 자괴감을 토로하면서 인적 책임론과 쇄신론을 제기한 뒤여서 주목받았다. 이해찬 대표는 두 사람 의견에 원칙적으로 공감을 표했지만, 구체적인 쇄신안이 논의된 건 아니라고 한다. 이후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두 의원의 소신이 여권 전반의 쇄신과 혁신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조국 정국’ 이후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 등 여권 전반에선 몇몇 소장파의 문제제기만 있을 뿐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한 것이 거의 전부다. 또 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국회에서 야당 의원 질의에 떠밀리듯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번 사태로 분출한 ‘공정’과 ‘정의’의 요구를 수렴하고 검찰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온 나라를 뒤흔들고 두달여간 국정 난맥을 초래한 점에 대해 집권여당으로서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심기일전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철희 의원이 “당이 대통령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었다”며 이해찬 대표 책임론을 거론했고, 표창원 의원이 “인적 쇄신을 가열차게 함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또 김해영 최고위원이 “집권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고, 정성호 의원이 “책임 통감하는 자가 한명도 없다”고 비판한 정도다.

‘조국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 역시 14일 사과 이후에 국회 시정연설과 청와대 기자단 간담회 등 몇몇 기회가 있었지만 국민에게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국정 보좌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점검하고 반성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없다. 민주당에선 상당수 의원들이 속으론 부글부글 끓는다는데 정작 책임있게 발언하는 이는 극소수다. 민주당이 총선 6개월을 앞두고 관례대로 이번주 총선기획단을 발족하겠다는 것은 ‘인식의 안이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지금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건 곤란하다. 공정과 정의, 검찰개혁에 매진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번 사태가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떻게 수습하고 새롭게 혁신하는 모습을 보일지 숙고해야 한다. 국정 혼선을 초래한 데 대해 국민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야 한다. 최소한 이번 사태로 표출된 다양한 민심을 경청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조건 책임지고 물러나는 일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놓고 있는 건 더욱 문제다. 여권 전체가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성찰과 쇄신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실무협상 결렬, 북-미 접점 찾는 노력 계속해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5일 열린 북-미 실무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7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안타까움도 크다.

협상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북한 측 단장인 김명길 수석대표가 미국의 “구태의연한 태도”를 비판하며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미국은 ‘새로운 방법’을 언급하며 양쪽이 장기 교착 상태인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북핵 폐기를 포함한 포괄적 합의를 주장해온 미국과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주장해온 북한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북한이 불쾌감을 드러낸 채 결렬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북핵 협상에 적극성을 보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 위기를 맞았고, 내년 대선까지 앞둔 상황에서 어렵게 마련된 북-미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런데도 북-미 양쪽이 대화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 북한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를 위한 본격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며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볼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 이후 자신들의 조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처를 압박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도 “2주 이내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의 초청을 미국 대표단은 수락했다”고 말해, 조속히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북한은 체제 보장과 비핵화 상응 조처에 대해 미국을 신뢰하지 못하고, 미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면서 대북 제재 등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한 비핵화 과정을 고려할 때 양쪽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 없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역시 북한에 일방적 무장해제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판문점 회동 등으로 이어온 북핵 협상 자체를 미궁에 빠뜨려선 안 된다. 북-미 모두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접점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검찰, 수사관행 개혁하라는 ‘촛불 요구’에 답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며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밝혔다. 27일에 이어 3일 만에 다시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28일 100만이 넘는 촛불시민이 검찰청사를 에워싸고 검찰의 ‘조국 의혹’ 수사를 질타하며 검찰개혁을 요구한 데 화답한 셈이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뒤 국회의 입법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검찰개혁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검찰 수사에 절제를 요구한 것으로 읽힌다. 27일에 이어 29일엔 윤석열 검찰총장이 실명으로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밝혔으나 서로 다른 ‘국민’과 ‘개혁’을 염두에 두고 겉도는 인상이 짙다. ‘윤석열 검찰’은 촛불시민들의 개혁 요구를 좀더 진정성을 갖고 성찰하길 바란다.

법무부는 이날 보고에서 형사부·공판부 강화와 피의사실 공보준칙 개정 등을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개혁을 위해 필요한 법안들”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돼 진행 중인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와 이 과정에서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과 무관하지 않은 사안들이다. 윤 총장이 27일 ‘인권 존중 바탕에서 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다시 검찰이 ‘11시간 논란’에 반박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와 법무부는 ‘인권’ ‘겸손’과는 거리가 먼 태도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과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을 한 데 대해서는 사실상 윤 총장의 ‘항명’으로 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윤 총장과의 협의 없이 대검 감찰부장 등의 인사를 강행하기로 한 것도 이런 연장선으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검찰권 행사 방식이나 수사 관행,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검찰총장을 콕 집어 “국민에게서 신뢰받는 방안을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3일 전 ‘절제된 검찰권 행사’ 발언에 이은 지시가 압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굳이 문 대통령 말이 아니더라도 특수부 중심의 ‘표적수사’ ‘먼지털기 수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개혁의 요체도 바로 그 대목이다.

조국 장관 수사도 권력형 비리에 집중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사모펀드 수사는 조 장관 5촌조카와 주가 조작 등 공범 혐의를 받는 100억원 안팎의 물주 등의 범죄는 덮은 채 장관 가족 표적수사에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적잖다. 이제라도 비례와 균형의 헌법정신까지 고려하는 ‘정도 수사’로 돌아오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국정원의 ‘민간 사찰’, 감찰만으론 근절 안된다

‘프락치’를 활용한 사찰·공작 폭로로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국가정보원이 이달 초 감찰실장을 외부 인사로 다시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는 양심선언이 있던 터여서 국정원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 스스로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감찰해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법 위반 가능성도 커서 검찰 등의 적극적인 수사도 필요해 보인다.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송규종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추석 연휴 직전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부임했다. 국정원 쪽은 “지속적인 국정원 개혁의 일환으로 업무 감찰에 객관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라고 밝혔다. 시기적으로 보아 지난달 27일 <한겨레> 등의 보도로 알려진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 폭로가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조사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24일 국정원이 서울의 한 대학 단과대 학생회장 출신 ㄱ씨에게 억대 금품을 제공하며 시민단체 인사들의 동향을 캐내고 대화를 녹음해 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시민단체 ‘통일경제포럼’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5년간 민간인 50여명과 나눈 대화를 녹음해 넘기면서 국정원 요청에 따라 거짓 진술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회원들의 중국 단둥 기행 등을 ‘북한 공작원 접선 목적’이라고 거짓 진술서를 쓰게 하면서 “불법이지만 네가 진술하면 합법이 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본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조직을 먼저 신고해온 것”이라며 “적법한 내사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ㄱ씨 주장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과거 수십년간 보아왔던 ‘사건 조작’ 시도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은 현 정부 출범 직후 개혁발전위원회를 통해 댓글조작과 정치공작 등 불법 사실을 확인해 검찰에 넘기고, 국내 정치와 대공수사에서 손을 떼는 조직 개편 방안도 선도적으로 내놓았다. 정부기구와 민간기관을 무상출입해온 연락관을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사이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법과 제도로 확실하게 뜯어고치지 않는 한 뿌리 깊이 심어진 조직문화와 생리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국회는 이제라도 국정원 개혁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한겨레 사설] 국제사회 흐름과 거꾸로 가는 기후위기 대응

21일 서울 대학로를 비롯해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시민사회가 20~27일을 ‘기후위기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엔 총회 기간인 23일 미국 뉴욕에서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소집한 이 회의는 세계기후회의 사상 처음으로 이름에 ‘행동’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전세계가 기후 문제로 전례 없는 동시 행동에 나서는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할 것 없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들어 국가 차원의 대응이 도드라진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18개 국가가 앞다퉈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내놨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목표를 법에 명문화하거나,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경고음은 쉼 없이 울려왔지만, 각국 정부는 ‘말 따로 행동 따로’ 식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1.5도 보고서’가 큰 변곡점이 됐다. 과학자들이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의 1.5도 안쪽으로 유지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10년 이내에 45% 줄이고 2050년에는 0%를 달성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보내자, 상황의 심각성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국제사회 흐름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말로는 ‘에너지 전환’을 한다면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외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4년 빼고는 해마다 늘었다. 지난해에는 세계 7위였고, 올해는 6위가 될 거라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배출증가율은 2위다. 2020년까지 잡은 감축 목표는 폐기됐고, 2030년까지 목표는 아이피시시 권고의 18.5%에 그치고 있다.

기후위기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더구나 현재의 위기는 사회적 약자들이, 가까운 미래의 재앙은 다음 세대가 오롯이 겪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는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안이한 대응은 다른 나라들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르는 국제사회 비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엔으로 향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당국자들은 깊이 새기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강경 우익’ 중용한 아베, 한-일 관계 우려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두번째 집권 이후 최대 규모의 개각을 단행했다. 그동안 일제 침략전쟁 등을 부인하는 망언을 일삼아온 강경 우익 인사들이 대거 발탁됐다. 아베 총리의 숙원사업인 평화헌법 개정과 과거사 미화 등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요인이 더 늘어나면서,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까 우려된다.

이번 개각에선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과 에토 세이이치 영토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등 일제의 과거 침략을 옹호해온 인사가 대거 각료로 중용됐다. 특히 하기우다 문부상은 8·15 패전일에 아베 총리를 대신해 공물을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주장한 대표적인 극우 성향 인사다. 이런 인물을 교육 담당 각료로 앉힌 것을 보면, 앞으로 대놓고 역사교과서 왜곡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7월에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무례하다”고 호통치고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억지를 부린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번에 방위상으로 자리를 옮겨, 안보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하게 됐다. 대한 수출규제 책임자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교체됐지만, 후임인 스가와라 잇슈 자민당 국회대책 수석부위원장도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정기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강경 우익 인사다. 그러니 한-일 무역갈등의 해소를 기대할 상황은 아닌 듯싶다.

아베 총리는 개각 발표 직후 “새로운 체제에서 우리 당의 오랜 세월 비원인 헌법 개정을 당이 한 덩어리가 되어 강력히 추진하고 싶다”며 ‘전쟁할 수 있는 일본’ 만들기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아베 총리는 개헌 추진 과정에서 과거 침략전쟁을 적극 옹호하며, 이를 비판하는 한국과 맞대결도 마다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꽁꽁 얼어붙은 양국 관계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반응과 적반하장 일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뒤 미국이 ‘실망’과 ‘우려’가 담긴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22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따로 한국 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내놨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도 정경두 국방장관과 한 통화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강하게 희망해온 만큼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이제 와서 우리 정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실망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삼아 경제보복 조처를 내놨을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한국이 대항 조처를 취하자 흥분하는 것은 동맹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은 이제라도 일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비판할 것은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일본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적반하장식으로 무례하게 나서는 데 대해서도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자 한밤중에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것도 상례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고노 다로 외상이 “한국이 극히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항의한 것도 적반하장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고노 외상의 주장이야말로 그대로 일본에 돌려주어야 할 말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 것도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성찰의 태도를 찾아볼 수 없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은 이런 적반하장식 태도가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한국 국민의 반감만 키울 뿐임을 알아야 한다.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안보위기를 과장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한의 김정은은 만세를 부르고 중국과 러시아는 축배를 들며 반길 것”이라며 정부가 안보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가 정말로 국익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앞뒤 안 맞는 부풀리기식 발언부터 삼가야 한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일 간의 정보 교환이 줄어드는 것일 뿐이지 한-미 동맹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님은 보수 정치권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이 반발하고 미국이 항의하는 상황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국민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일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며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다. 정부는 원칙을 지켜가면서 한-일 관계가 상호 존중과 호혜 속에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7년째 ‘가해 책임’ 실종된 아베 총리 ‘종전 기념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올해 전몰자 추도식에서도 ‘가해 책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1993년 이후 ‘패전일’인 8월15일마다 해오던 총리들의 ‘반성’과 ‘애도’가 2012년 아베 총리 재집권 이후 7년째 끊겼다. 그는 이날 1급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이 또한 7년째다. 극우 성향 의원 50명은 직접 참배까지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종전 기념사’에서 가해 책임 대신 2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일본의 피해를 유난히 강조했다. “역사의 교훈을 깊이 가슴에 새겨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힘을 다해왔다”는 말도 했다. 일본 정부의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는 ‘위안부’ 등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거듭 모욕하는 발언이다.

하루 전인 14일 한국에서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중요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중국 연구자들은 전시 성범죄와 관련해 일본군 전범들이 직접 쓴 ‘자백서’ 등을 공개했다. 사단장급 전범들이 쓴 자백서에는 “위안소를 만들라고 명령을 내렸다”거나 “중국과 조선의 여성을 유괴하거나 속여서 끌고 오라고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고 한다. ‘위안부’ 강제 동원과 위안소 운영에 일본군이 직접 개입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증거들인 셈이다.

아베 정부는 2015년 말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제출한 공식 답변서 등을 통해 ‘위안부’ 강제 연행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자신들의 조사 범위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문서까지 아울렀다고도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기 나라 장성들이 직접 작성한 서류를 조사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2015년 발표한 ‘아베 담화’에서 “후손들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명백한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것만이 그 뜻을 이루는 길임을 더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 저장된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110만t이 태평양에 방류되면 1년 안에 동해로 유입될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독일사무소의 수석 원자력전문가 숀 버니가 14일 국내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문제는 방사성 오염수 방출이 막연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대안이라는 데 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장이 오염수를 희석해 방류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방사성 물질이 완벽하게 정화되기 전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일본 국민뿐 아니라 인접 국가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다국적 사안을 일본 정부가 독단으로 결정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도한 처사다.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동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가 난 2011년 일시적으로 태평양에 오염수를 방류했을 때도 동해의 방사성 물질 오염도가 5년에 걸쳐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일본 정부가 방사성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은 2011년 참사 이후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방사성 오염수를 물탱크에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추세로는 2021년 3월이면 가득 찰 거라고 한다. 물탱크를 계속해서 새로 짓느니 오염수를 방류해 비용을 아끼겠다는 건 또 다른 재앙을 부르는 최악의 선택이다. 숀 버니의 지적대로, 물탱크를 증설해가면서 방사성 물질의 정화 기술 개발에 진력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

도쿄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극복했다고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선수에게 급식을 하겠다더니, 사고 원전에서 20㎞ 떨어진 곳을 성화 봉송 출발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외국 유력 언론뿐 아니라 일본 언론조차 후쿠시마 지역이 방사성 물질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올림픽 출전 선수와 관광객의 안전을 담보로 한 무모한 마케팅을 중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를 두고 한-일 간의 ‘경제 전쟁’에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둘은 별개 문제다. 정부는 일관된 태도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격랑 속 한-일 외교회담, ‘사태 전환’ 계기 돼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1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다. 일본이 7월4일 수출규제 조치를 발동한 이후 첫 양국 외교수장 간 만남이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일본 각의 결정을 하루 앞둔 시점에 열리는 것이라, 그 의미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번 회담에서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양국 관계 복원과 개선의 토대를 마련하길 바란다. 최소한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 조처’를 취하지 않도록 한다는 데엔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한-일 외교 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한·일에 심각한 외교적 갈등에 대해 ‘분쟁 중지협정’ 체결을 촉구했다는 외신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 협정이 두 나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 악화를 막고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 수는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본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지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하면 한-일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무겁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 원칙을 무시한 일본의 무역 도발로 촉발된 지금의 갈등 여파는 만만치 않다. 한국 국민의 자발적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맥주와 의류 등 소비재에서 자동차 등으로 확대되고 일본을 찾는 관광객도 급감했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서도 “한국의 불매운동이 이례적으로 장기화하고 있다”고 주목하는 실정이다. 그대로 뒀다간 한-일 경제가 모두 적지 않은 타격을 입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에선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잇따르자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한 축인 한-일 간 갈등으로 삐거덕거리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번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해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적극적 중재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읽힌다. 미국의 중재에 의해서라도 한-일 관계 악화를 막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결국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한·일 양국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두 나라가 의지를 갖고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고노 다로 외무상을 만나면 “양국 관계에 파국이 와서는 절대 안 된다고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2일로 예정된 일본 각의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방침부터 철회해야 한다는 점을 두 나라 외교장관이 공감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 신중히 결정해야

방한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를 꺼냈다. 청와대는 24일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이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각국 외교관들을 불러 호르무즈 해협의 ‘민간선박 공동호위 연합체’ 결성에 참여하도록 설명회를 연 바 있다. 볼턴 보좌관이 방한 전 일본을 방문한 것도 이 문제를 협의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분위기를 보면, 호르무즈 파병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호르무즈 해협이 한국행 원유의 70%가 통과하는 길목이어서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르무즈 긴장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이란의 ‘핵 갈등’에서 시작된 문제다. 섣불리 미국 쪽에 섰다가 이란과 관계가 악화할 수도 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더해 발등의 불로 떨어진 한-일 갈등이라는 외교적 난제가 있다. 이런 문제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특히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을 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의 면담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지기는 했지만, 얼마나 깊이 있게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는 이미 일본이 추가적 보복 조처를 감행할 경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파기될 경우 한-미-일 안보공조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은 이 협정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한-일 갈등에 여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갈등이 계속되고 이 문제가 군사문제로까지 깊어지면 미국에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점들을 지속적으로 설명해 미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냉정한 계산 아래 이런 사안들과 연계해가며 풀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아베 정부, ‘일본 제품 불매운동’ 확산 의미 직시하기를

일본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가 촉발한 시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과거 불매운동과 비교해 차분하게 전개되면서도 파급력은 훨씬 강해 보인다. 아베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일본 제품과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한국 상품의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인 ‘노노재팬’은 18일 하루 동안 17만명이 찾아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노노재팬은 누구나 새로운 정보를 올릴 수 있도록 설계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노재팬 사이트를 개설한 김병규씨는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표시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회원수가 133만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일본 여행 카페인 ‘네일동’은 17일 활동을 중단했다. 네일동 관리자는 일본 참의원 선거(21일)를 앞두고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본 정부에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일본 관광국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수는 754만명으로 전체 일본 방문객 3119만명 중 24%를 차지했다. 중국의 838만명(27%)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오프라인에서도 불매운동의 파급 효과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국내 최대 편의점업체인 씨유(CU) 집계를 보면, 아베 정부가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전체 맥주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증가했는데 유독 일본 맥주 판매만 40% 이상 감소했다. 편의점업계는 솔직히 이 정도까지 판매가 줄어들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매운동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이 54.6%로 전주보다 6.6%포인트 늘었다. 또 <서울신문>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불매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72%에 이른다. 특히 30대 여성(92.4%)과 40대 여성(90.6%) 비율이 높았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18일 ‘우리 가게는 일본 제품 안 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사회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현장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처럼 이번 불매운동이 국민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은 과거 독도 문제 등 단일 사안과 달리 국가경제 전체에 충격을 주는 경제 보복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 배상’이라는 역사 문제를 놓고 수출 규제라는 치졸한 대응을 한 탓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불매운동을 현실을 모르는 ‘감정적 행동’으로 폄하하고 있는데, 옳지 않다. 알량한 지식으로 시민들을 가르치려 드는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아베 정부는 일부 한국 신문의 일본어판이 전하는 왜곡 보도에 현혹되지 말고 한국인들의 ‘진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일본 ‘보복’에 맞대응, 단기 처방에 그쳐선 안 된다

일본의 무역보복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부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휴일인 7일 현대자동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대기업 그룹의 총수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설 대응책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그룹 대표들의 간담회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민관 공동 대응을 통한 충격의 완화를 기대하며 근본적으로는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편중된 경제 구조를 바꾸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무역보복 조처 시행 나흘째인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국가와 국가의 약속(한-일 청구권 협정)이 지켜지지 않는데, (대북 제재 관련) 무역관리 규정 역시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이행할지도 불투명하다는 의혹까지 제기한 것이다. 파장이 확산될 것이란 예고다.

무역보복은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약점을 실감케 하는 계기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뒤 지난해까지 한국은 한번도 흑자를 거둔 적이 없고, 누적 적자가 6046억달러(약 708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99억달러 적자였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특히 많아 전체의 3분의 2 정도인 67억달러(약 7조8천억원)에 이르렀다. 제조업 중간재의 일본산 비율은 2010년 1분기 25.5%에서 올해 1분기 15.9%로 많이 줄었지만, 핵심 소재 분야에서는 여전히 일본에 기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외교당국의 물밑 협상,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국제 여론전, 금융당국의 일본계 자금 흐름 점검 따위의 단기 대응에 그쳐선 안 되고,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중장기 근본책 마련으로 이어가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이며 곧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추가경정예산에 연내 추진할 수 있는 소재·부품 개발 사업을 반영할 방침이기도 하다. 소재·부품을 국산화하고, 수입 통로를 다변화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기업 쪽에서 꾸준히 추진해나가야 할 절실한 숙제다. 수출 규제 같은 보복전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의 공동 노력 여하에 따라선 이번 무역분쟁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고 취약한 구조를 개선하는 ‘각성제’가 될 수도 있다.


[한겨레 사설] 주목되는 문 대통령의 ‘3차 북-미 정상회담’ 발언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과 구상을 상세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26일 연합뉴스와 세계 6대 통신사의 공동 서면 인터뷰에서 ‘북-미 양국 간 3차 정상회담을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북-미가 비핵화 협상 교착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진전을 이뤄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놓고 두 나라 사이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대목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사이 의미 있는 소통으로 주목받은 것은 정상 간 친서 교환이 전부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북-미 사이에 3차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대화가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할 수 있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검증을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규정한 것도 관심을 끈다. 문 대통령이 ‘비핵화의 불가역적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어서 이 발언의 의미는 더욱 크다. 이와 함께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기와 제재 완화의 맞교환 카드를 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와 민생 분야 제재 해제’ 제안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의 구상이 미국의 입장과 얼마나 합치하느냐가 관건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과 사전에 조율된 것이라면, 3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릴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우리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임을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일각에선 북-중 정상회담으로 비핵화 협상이 복잡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와의 소통 속에 이뤄졌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이 밝힌 구상이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는 것이다. 30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과 제3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협상 통한 비핵화 해결’ 의지 밝힌 북-중 정상회담

1박2일로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북·중 정상은 20일 정상회담과 이어진 만남에서 한반도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북한은 북-미 비핵화 협상의 든든한 뒷배를 확보했다. 중국도 북한 후원국이라는 지위를 한층 탄탄히 다졌다. 북-미 교착 국면에서 이뤄진 북·중 정상의 이번 만남이 비핵화 협상 재개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를 기대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북·중 정상이 ‘협상을 통한 비핵화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혔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인내심을 갖고 미국과 대화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협상 중단이 장기화하고 있는 때에, 비핵화 협상을 계속해 합의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은 긍정적이다. 속단하긴 어렵지만,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 주석이 북한의 체제보장과 경제발전에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중국이 이 문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북한의 ‘운신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 이와 함께 시 주석이 비핵화 문제의 타결을 위해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체제안전·경제발전’을 돕겠다는 약속을 주면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서도록 설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역할이 여기에 집중된다면 앞으로 북-미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중국의 확실한 지원을 얻어냈고, 시 주석은 미-중 무역갈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협상 카드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낼 ‘비핵화 관련 메시지’를 시 주석에게 주었다면, 시 주석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으로 남-북-미 3자 중심으로 이뤄져오던 비핵화 협상 국면이 남-북-미-중 4자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만 보면 중국은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촉구하는 쪽에 가깝지만, 4자 틀로 바뀜으로써 협상이 오히려 복잡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중국과 긴밀히 협의해 중국이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북한은 북-중 정상회담 성과를 쥐고 비핵화 협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앞서 미국은 북-미 협상에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기존 태도를 바꿀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먼저 방한할 예정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북-미 실무접촉이 이뤄진다면 비핵화 협상 전망은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여하도록 정부의 외교력을 집중할 때다.


[한겨레 사설] 조선일보, 아니면 말고 식 ‘북한 보도’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조선일보>가 ‘숙청당했다’고 대서특필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매체는 3일 김 부위원장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수행해 공연을 관람했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내보냈다. 조선일보 보도가 명백한 오보로 밝혀진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무책임한 보도가 계속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치 1면에 ‘북-미 정상회담을 총괄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해임된 뒤 강제노역 중’이라고 보도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맡았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파장이 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익명의 ‘대북 소식통’이 전부였다.

김 부위원장의 건재가 확인된 이상, 김혁철 특별대표의 처형설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미 협상을 총괄하는 김 부위원장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그 수하의 실무책임자를 처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도 ‘숙청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3월에 처형됐다는 김 특별대표의 모습이 4월13일에 목격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대북 관련 오보를 낸 바 있다. 2013년에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음란물 제작’ 혐의로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보도했지만 오보로 밝혀졌고, 1980년대에는 ‘김일성 피살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런 근거 없는 북한 관련 보도는 사실 여부를 즉각 확인하기 어렵고, 오보로 확인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끊이지 않고 나온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소비하는 국내 보수층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도 오보 양산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한 오보는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선입견을 강화함으로써 대북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빚는다. ‘협상 대표를 처형하는 나라인데 이런 나라와 협상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보수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 보도가 이런 정치적 노림수를 밑에 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보수언론은 이제라도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잘못된 보도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신뢰 상실로 이어져 국민과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압박 넘어 대화’ 필요 확인시킨 북한의 ‘무력시위’

북한이 4일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를 포함한 발사체 여러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저강도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 국면의 판을 흔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이번 무력시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북 압박 공조’를 강조한 직후에 이뤄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빅딜’ 전략을 고수하며 제재 압박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느끼는 답답함이 무력시위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불만스럽다 해도 북한의 행동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전방위 제재와 협상 교착이 줄 압박감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무력시위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한반도 평화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이번 무력시위에 동원한 발사체는 고도가 높지 않고 사거리가 짧은 것들이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쏘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지만, 북한 나름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북한의 행동에 한국과 미국 모두 자제력을 발휘한 것은 다행스럽다. 청와대는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우려를 표명하면서 ‘긴장 고조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선에서 차분하게 대응했다. 한-미 외교장관들도 ‘신중히 대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절제된 반응을 내보인 것도 북-미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북-미가 강 대 강으로 나가는 것은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북-미 협상을 진척시키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하지만 대응을 자제한다고 해서 조성된 긴장 국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행보다. 북-미 협상 교착 상황을 풀어가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 한, 한반도 긴장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북한은 최근 10년 사이 최악의 식량난으로 내부 결속이 절실한 상황이다. ‘제재 압박’만 앞세우다가는 북한이 외부를 향해 더욱 강한 반발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유엔 식량기구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올해 곡물 부족량은 136만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기온 탓도 있지만 대북 제재로 비료나 연료, 농기계가 턱없이 부족해 발생한 인위적 재난에 가깝다. 같은 동포로서 우리 정부가 대북 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할 상황이다. 국제사회도 바라만 보고 있어선 안 된다.

마침 이번주 중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방한해 한-미 워킹그룹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서 대북 식량 지원을 포함해 인도적 지원에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 대북 인도 지원은 남북,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고리’ 구실도 할 수 있다. 이번 워킹그룹회의에서 제재 압박을 넘어 북-미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전향적인 결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북한도 이 상황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제안한 4차 남북정상회담에 조속히 응해야 한다. 일단 만나야 해법도 찾을 수 있다.


[한겨레 사설] 점거·감금까지, 국회 거꾸로 돌린 한국당의 ‘폭력’

물리적 충돌을 막고 평화적 의사진행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이 25일 자유한국당의 집단행동에 사실상 무력화됐다. 자유한국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선거법 개정안의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회의실을 점거·봉쇄했다. 국회법이 보장한 표결을 막으려 회의장 봉쇄와 의원 감금, 욕설이 난무하는 육탄전까지 벌인 건 매우 유감스럽다.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가장 폭력적인 국회 무력화 시도로 기록될 것이다. 여당의 ‘날치기’와 야당의 ‘육탄 저지’가 꼬리를 무는 난장판 국회를 더는 용인해선 안 된다는 여론에 따라 여야가 제정한 게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에 따라 소관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최장 330일 이후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물리적 충돌은 거의 사라졌고, 표결 자체를 막지 않고 퇴장 등의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게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사회적 참사법’과 ‘유치원 3법’ 등이 패스트트랙에 올랐지만 이번처럼 극한 충돌은 없었다.

이번에 자유한국당이 보여준 ‘폭력적 행태’는 그동안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린, 과거로 되돌아가는 퇴행이고 폭거라 아니할 수 없다. 바른미래당이 사보임을 통해 공수처법 반대 의원을 2명이나 교체해 논란을 불렀지만, 새로 투입된 채이배 의원을 6시간 이상 의원회관에 감금한 건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채 의원이 112에 신고해 경찰과 소방대원까지 출동했다니, 낯 뜨겁고 부끄럽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도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등 최장 330일 동안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의 본회의 처리에 평균 282일 걸린 점을 고려하면, 패스트트랙에 올린 뒤에도 자유한국당은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좌파 독재’라며 국회를 거꾸로 되돌리는 건 당파적 이익만 생각하는 몽니일 뿐이다.
2013년 8월 신설된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조항엔 회의방해죄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엄단하도록 규정했다. 국회선진화법에 맞춰 민주적인 표결을 최대한 보장하라는 뜻이다. 진정 국회법을 어긴 건 자유한국당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포괄 합의·단계적 비핵화’ 방안 추진해볼 만하다

청와대가 17일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북-미 대치를 풀어낼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전체 과정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이룸과 동시에 그 틀 안에서 단계적 비핵화를 해 나가자는 제안이다. 비핵화 해법을 놓고 북-미 기싸움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하는 청와대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대안은 북-미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현실을 인정한 가운데 가능한 해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 작지 않다. 이 관계자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일시에 달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전부 아니면 전무’ 식 비핵화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 유연한 대응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강경론 득세가 협상 여지를 오히려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말을 한 것이라고 본다.

북-미 대치의 핵심은 비핵화 방법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하노이 결렬’ 이후 앞다퉈 ‘일괄타결식 빅딜 해법’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방식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둘 사이 간극이 큰 상황이다. 결국 양쪽의 요구를 수용해 제3의 방식으로 절충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비핵화의 최종 목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합의’를 하되, 단계를 최소화해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하면 미국의 빅딜 해법이 목표로 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이 추구하는 ‘체제 불안정 해소’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미는 기싸움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은 접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치가 길어지면 협상 동력이 유실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접점을 찾고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북-미가 모두 먼저 나서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정교한 대안을 마련해 돌파구를 마련할 시점이다. 우선은 북한의 의중을 파악해 절충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 특사 파견을 포함해 다각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비핵화 해법만 놓고 집중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일본기업 자산 압류하면 보복하겠다’는 아소의 협박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12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에 대응한 보복 조치로 “한국상품 관세 인상과 송금 및 비자 발급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법원의 배상 명령을 거부한 신일철주금 등에 대한 자산압류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입장을 묻는 일본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총리까지 지낸 일본 고위인사가 한국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에 경제 보복까지 거론한 건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적반하장의 태도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최종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법원의 판단은 당시 강제징용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일철주금 등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처음부터 변론에 참여했다가 패소했다. 그래 놓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승복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아소 부총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만2천여명을 강제노역으로 부린 악명 높은 ‘아소 탄광’ 사장의 아들이다. 개인사로 보더라도 자숙해도 모자랄 사람이 태연히 ‘보복’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얼마 전엔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100여가지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일본이 경제력을 앞세워 한국에 ‘과거사 굴종’을 강요하겠다는 것으로 비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여기에 부총리란 사람이 의회에서 구체적인 ‘경제 보복’까지 공식 거론하는 건 지금의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까지 보인다. 일본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한-일 관계의 추락을 방치하고 부추길 셈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한겨레 사설] 해외주둔 미군을 ‘돈벌이 용병’ 삼겠다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국외주둔 미군의 주둔비용을 모두 물리는 것도 모자라, 여기에 50%의 금액을 더 요구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은 지금보다 3배 정도 늘어난 3조원가량이 된다.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 끝에 지난달 전년도보다 크게 늘어난 1조389억원에 합의됐다. 하지만 이 합의는 올해만 유효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번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애초 3~5년이던 합의안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해 관철했다. 당시 “1년 단위로 매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는데, <워싱턴 포스트> 보도로 그런 의구심이 단순한 억측이 아님이 드러난 셈이다. 60년 넘게 유지해온 한-미 동맹의 가치를 단지 금전적 이해관계로만 환원하는 트럼프의 ‘장삿속’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동맹국의 미군 주둔비용 지원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호혜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는 비중은 우리 쪽 계산으론 주둔비의 60~70% 이상이고, 미국 쪽 계산으로도 40~50% 수준이다. 이를 3배나 더 내라는 건 해외주둔 미군을 돈벌이 ‘용병’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리 ‘협상용 엄포’라고 해도 트럼프의 태도는 나라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의 ‘키리졸브·독수리훈련’ 종료 환영한다

한국과 미국이 해마다 실시해온 연합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을 올해 종료하기로 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2일 전화통화를 하고 두 훈련을 종료한 뒤 새 이름으로 축소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국방부가 3일 밝혔다. 지난달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양국이 신속히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매우 고무적이다. 북-미 간 기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의 외교 노력이 지속될 것이란 점을 명확히 표명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이 미묘한 정세 속에서 주도적으로 나서 공세적·대결적 군사훈련을 자제하기로 한 건 의미가 매우 크다. 키리졸브는 1976년 시작된 ‘팀스피릿 훈련’이 시초로 그동안 독수리훈련과 통합돼 실시해왔는데, 매번 북한의 반발을 샀다. 양국은 키리졸브는 ‘동맹’이란 이름으로 대체해 일정을 대폭 줄였고, 독수리 훈련은 명칭 없이 대대급 규모로 연중 실시하기로 했다. 미군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도 계속 중단될 전망이라고 한다. 군사적 대비 태세를 유지하면서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적절한 조처로 평가된다. 다만, 한-미 연합방위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할 필요는 있다.

이번 결정은 미국이 하노이 회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영구 중단 용의를 밝혔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군사훈련 재개에 대해 “오래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대화 유지의 기본 토대라는 두 정상의 인식이 이번 조처로 거듭 확인된 셈이다.

남북한과 미국은 앞으로 대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하노이 회담은 실패가 아니라며 “우리는 지난 며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고, 북한 <노동신문>은 “서로 지혜와 인내를 발휘한다면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김 위원장 말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하노이 회담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남북한과 미국이 하노이의 실패를 교훈 삼아 좀더 밀도있는 협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폼페이오 ‘제재 완화’ 카드, 후속 협상서 결실 맺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제재 완화’를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3일(현지시각) 언론 인터뷰에서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며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두고 미국 행정부 고위인사가 공개적으로 ‘제재 완화’ 의향을 내비친 것이어서 북-미 협상 전망에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동안 미국의 원칙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완화나 해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제재와 관계 개선은 양립할 수 없다’며 제재 완화를 촉구해왔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제재 완화라는 상응조처 없이는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인 ‘비핵화 실행조처와 상응조처’를 놓고 계속돼온 북-미 간 힘겨루기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관건은 어느 선에서 비핵화 조처와 상응조처가 교환될 수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8일 평양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의 실무협상에서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요구사항을 모두 펼쳐놓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대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대가로 미국에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미국 쪽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더해 ‘추가적 조처’를 할 경우 제재 완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미국의 뜻을 좀 더 분명히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와 제재 완화가 교환된다면 그것만으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작지 않은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비핵화-상응조처 시간표’ 작성에 합의한다면 결과는 더욱 알찬 것이 될 수 있다.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어내겠다는 북-미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의 ‘제재 완화’ 발언은 이 의지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음주 2차 실무회담이 열리는 만큼, 이 자리에서 북-미 사이 ‘통 큰 주고받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비핵화-관계개선’ 분명한 진전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밝혔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의 1차 정상회담에 이어 260일 만에 열리는 2차 회담에 쏠리는 관심은 각별하다. 역사적인 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뚜렷한 이정표를 세우길 기대한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합의에 그쳤던 점에 비춰보면, 2차 정상회담에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전세계에 내보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협상을 통한 비핵화’에 대한 일부의 강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에 북한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이 중지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엔진발사장을 폐쇄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비핵화 진전은 이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제한적 조처에 상응하는 미국의 의미 있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베트남 2차 정상회담에선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뛰어넘는 북한의 주요 핵시설 폐기·검증 약속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과감한 관계 개선 노력을 서로 주고받는 게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에 맞춰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실무협상에 나선 건 눈여겨볼 만하다. 2차 정상회담 합의문의 기조를 평양에서 직접 조율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응하는 미국 조처로는 연락사무소 개설이나 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이 거론되는데, 이 중 핵심은 경제제재 완화로 보인다. 북한은 비핵화 완료 전이라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 미국도 최근 이 문제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만큼, 비건 대표의 방북 기간에 대략적인 의견 조율을 이루길 바란다.

2차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의 의지는 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정상회담 날짜를 공개한 점과 회담 장소가 베트남인 점은 그런 징표로 읽힌다. 새해 국정연설에서 정상회담 날짜와 개최국을 공개한 건,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대외정책의 핵심 현안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번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려 노력할 것으로 보여 긍정적이다.

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것도 상징적이다. 두 나라가 증오를 딛고 국교 정상화를 했듯이, 한국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 역시 ‘화해와 평화공존’으로 나갈 것이란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진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의 비전을 사회주의 베트남에서 직접 받을 수도 있을 터이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여정은 이미 역사의 레일 위에 올라섰다. 이 열차가 빨리 달릴 수 있게 2차 정상회담에선 가시적이고 뚜렷한 성과를 내길 간절히 바란다.


[한겨레 사설] ‘악화일로’ 한-일 관계,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을

일본 해상초계기의 초근접 위협비행으로 촉발한 갈등 국면이 이어지며 한-일 관계가 전례없는 냉각기로 접어들고 있다. 국방부는 24일 오후 우리 해군 구축함에서 촬영한 일본 초계기의 근접비행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25일엔 “(일본이 근접비행을 부인하는데) 그에 걸맞은 자료를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증거 자료를 내놓지는 못하면서도 한국이 공개한 초계기의 비행고도 수치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의 오랜 과거사 갈등이 요즘 들어선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인데,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초계기 근접비행 논란은 누가 봐도 일본의 의도적 도발 측면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그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는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의 한-일 갈등을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게 필요하리라 본다.

최근의 한-일 관계 악화의 요인은 단순하지가 않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논란과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로 촉발됐지만, 여기엔 동북아 지역의 구조적인 안보환경 변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선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면서 최근 한반도 정세는 대결에서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일본은 그동안 중국 부상과 북한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3각 안보협력과 재무장화에 적극 나섰는데, 이제 이런 프레임이 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 역시 남북관계 복원으로 한반도 상황이 안정되면서, 국민 정서를 거스르면서까지 일본에 군사정보 등 협력의 손을 내밀 필요는 없게 됐다.

이렇듯 최근 상황이 동북아 정세 변화와 연결된 중층적인 것이라, 단기적으로 해법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우선은,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한·일 두 나라 정부 모두 좀더 냉정해져야 한다. 서로를 자극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 초계기 사건만 하더라도 한·일 정부는 의사소통 창구를 가동해 일본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방위비분담금 1700억원 더 내라는 트럼프의 ‘억지’

미국이 올해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으로 10억달러(1조1335억원)를 내라고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분담금 유효기간도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해 낸 방위비분담금 9602억원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례 없는 과도한 증액 요구다.

방위비분담금은 1991년 도입 이래 매년 한자릿수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한-미는 5년 전인 2014년 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도 전년보다 5.8% 증액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분담금은 매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하되 증액은 4% 이내로 제한됐다. 갑작스럽게 대폭 증액된 액수를 요구하는 건 이제까지의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다. 이에 한국 정부는 ‘분담금 1조원 이상’도 검토하는 대신 협정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역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주한미군의 주둔비가 크게 증가할 사유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터무니없는 증액을 요구하는 건 동맹의 신뢰를 해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미는 지난해 10차례나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진행했지만 타결에 실패했다. 한-미 협상팀이 이견을 좁히는 와중이었는데 막판에 미국 쪽이 돌연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평소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해 12월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증액을 압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경화 장관이 직접 국회를 찾아 설명회를 연 데서 정부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엿보인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기여하는 몫은 실제 겉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5월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2%를 부담한다’고 밝히지만, 한국이 무상 제공하는 서울 용산 노른자위 땅의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실제 부담은 80%까지 올라간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지나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 돼선 안 된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역시 동맹의 의미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과도한 요구로 한-미 관계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트럼프 ‘고립주의’, 한반도 영향 잘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시리아 파병 미군의 전면 철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시리아 내전을 이유로 지상군을 파견한 이후 3년여 만의 철군이다. 현재 미군은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2천여 병력을 파병해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현지 반군세력 ‘시리아민주군’(SDF)을 지원해왔다.

트럼프의 이번 결정은 핵심 외교·안보 참모들의 반대를 누르고 이뤄졌다고 한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이 결정에 항의해 곧바로 사의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마저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세계의 경찰’ 구실을 포기하고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한-미 동맹을 한반도 안정의 축으로 삼고 있는 우리로선 트럼프식 고립주의가 동북아에 어떤 파장을 끼칠지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시리아에서의 갑작스러운 미군 철수로 미국-러시아 간, 정부군과 반군 간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무너져 중동 정세 전반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럼에도 미군의 시리아 철군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본격화는 우리에겐 꼭 불리한 쪽으로 작용하리라 단정하긴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남북 간 군비통제 노력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당장은 ‘경제적 이익’을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 태도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 외교의 변화 흐름을 잘 읽고 대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중동에서의 미군 철수가 곧바로 동북아 주한미군의 재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입장에선 북-미 비핵화 협상이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에 새 변수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가시화할수록,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 논의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가 마냥 지속되긴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 한-미 간 연합훈련, 방위비 분담금 조정 문제 등에서 훨씬 세심하고 전향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터무니없는 트럼프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부터 적용될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현재의 1.5~2배로 올리길 바라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했다. 올 한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부담한 방위비분담금은 9602억원이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한국에 한해 방위비분담금을 1조4400억~1조9200억원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터무니없이 지나친 요구다.

한-미는 2014년 1월 제9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전년보다 5.8% 증액된 금액에 합의했다. 그런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5년 만에 갑작스레 50~100%나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이 계획대로 2020년 완료되면, 추가적인 군사 건설비용 소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올해 들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크게 감소하면서, 주한미군이 긴급 상황을 상정한 군사 운용을 할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주둔 비용이 늘어나기보다 줄어들 요인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이런 점을 적극 설명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지금까지 부담해온 방위비분담금도 사실 적은 게 아니다. 미국은 한국의 분담금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남짓 된다고 평가하지만, 국내 시민단체들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이외에 토지와 시설, 각종 수수료 감면과 세제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65% 이상을 부담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주일미군 지원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분담금은 일본보다 총액에서는 적지만, 미군 1인당 지원액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원액으로 보면 1.5~2.6배나 더 많다. 연초부터 진행중인 10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협상팀은 자국 대통령이 직접 대폭 증액을 지시했기 때문인지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대북 억제만을 위한 군사력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 더는 ‘붙박이군’도 아니다.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 안정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도 크게 기여한다.

대북 억제력의 많은 부분을 미군에 의존한다는 걸 지렛대로 한국에 과도한 증액을 요구하는 건,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답방·북-미 정상회담 ‘선순환’을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내가 이뤄주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당부까지 했다. 두 정상이 김 위원장의 답방 추진에 인식을 같이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통해 몇달째 제자리걸음인 북-미 협상에 돌파구가 열리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다.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올해 안”이라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성사를 위해 줄곧 노력해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연내에 서울을 찾는 결단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애초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뒤 서울 답방’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북-미 협상을 통해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교환한 뒤 이를 토대로 남북 교류·협력에 시동을 건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북-미 고위급회담이 거듭 연기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약속도 유동적인 상황으로 변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에 우선순위를 두는 건 이해 못할 게 아니다.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 교류와 협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도 몇차례 연기한 끝에 유엔이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해진 게 현실이다. 북한으로선 미국과 담판해서 대북 제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서울에 가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만난 직후 “1월이나 2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다”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그럼에도 북-미 협상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와 북한의 ‘상응 조치’ 요구가 맞서 한 치도 못 나가고 있다. 이번에도 한-미 두 정상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제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중요한 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 구도’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특히 북한 지도자의 첫 서울 방문은 전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비핵화 협상 전체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답방은 그 자체로 “세계에 보내는 평화 메시지이자 비핵화 의지, 남북관계 발전 의지”를 담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서울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 국제여론이 움직일 수 있고, 이것은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현실화해 내년 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공적으로 추동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연내 답방으로 ‘북-미 교착’ 뚫어야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을 거론했다. 조 장관은 15일(현지시각) ‘한반도 국제포럼’에 참석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 답방이 북-미 고위급 회담 연기 이후 길어지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 상황을 돌파할 의미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 장관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은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뜻을 모은 사안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와 연동돼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워온 것이 사실이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날짜가 확정된 뒤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미 협상 진전만 마냥 기다리다가는 김 위원장 답방이 해를 넘기거나 더 늦어질 수도 있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김 위원장 답방과 4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협상을 촉진한다는 역발상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번 고위급회담 연기 이후 북-미 사이엔 회담 조건을 놓고 기싸움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한 뒤 내년 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의 사찰과 폐기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하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다. 이에 맞서듯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의 공식적인 무기개발 현지지도는 지난해 11월 이후 1년 만이다. 미국이 압박만 계속한다면 북한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다. 북-미의 이런 기싸움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까지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남북은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차례 정상회담을 열어 신뢰를 쌓고 돌파구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지금의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 답방이 약속대로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 발전의 도약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을 적극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한겨레 사설] DMZ 감시초소 철수, 군사적 신뢰 높이는 계기로

남북이 26일 판문점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어 ‘9월 평양공동선언’ 부속 합의서인 ‘군사분야 합의서’의 차질없는 진행과 철저한 이행을 재확인했다. 남북은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 유해발굴 작업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했다. 또 이미 합의한 대로 새달 1일부터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남북 군 당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긴장완화 방안의 이행 과정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점검한 것이어서, 군사적 상호 신뢰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11곳의 시범 철수를 상호 검증을 통해 직접 확인하기로 한 대목은 특히 눈에 띈다. 11월까지 철수하고 연말까지 서로 검증하기로 구체적 일정을 확정한 건 그만큼 합의 이행의 신뢰성을 높이는 조처다. 남북은 시범 철수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북쪽 160여곳, 남쪽 60여곳 등 나머지 초소도 모두 철수시킨다는 목표를 확인했다.
이와 함께 11월 초 한강 하구의 수로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하기로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사전 조처이면서 장기적으로는 남북 공동개발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이번에 출범시키지 못하고 ‘조속히 구성한다’는 선에 그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간 긴장 완화와 무력충돌 방지 임무를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 위임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군사공동위를 구성하지 못한 건, 공동위원장의 격을 어떻게 맞출지 등 구체적인 방법에서 이견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군사공동위 구성과 관련해선, 1992년에 차관급 인사를 공동위원장으로 부위원장 1명, 위원 5명씩으로 구성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 양쪽은 남북 군통신선을 이용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향후 협의를 계속해 군사공동위 구성을 마무리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1992년의 전례에 따라서 작은 이견을 뛰어넘길 바란다. 그래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의 평화수역 설정 등 추가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협력이 가속화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추석의 ‘한-미 정상회담’, 북-미 협상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초미의 관심사는 24일(현지시각)로 예정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비핵화 문제,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주요 의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북 설명을 듣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다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은 급진전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조속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밝힌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 등이 미국이 요구해온 불가역적 핵 폐기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등 대북 적대관계 종식으로 나가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20일 평양 정상회담 귀국 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며 “미국이 북한의 이런 의지를 역지사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조기에 재개할 것을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2차 북-미 정상회담→연내 종전선언→영변 핵시설 영구폐기와 추가 핵 폐기 및 한·미의 추가 상응 조치’를 비핵화 프로세스로 제시한 셈이다.

회담의 성패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중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핵 리스트 신고’나 ‘사찰 수용’에 대해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상당히 전향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만큼 미국도 평양 공동선언과 김 위원장 메시지를 긍정 평가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여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다고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서 미국과 협의한 메시지를 전하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선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잘 설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다시 적극 나서는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평양공동선언, ‘되돌릴 수 없는 평화’ 이정표 세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둘째 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 선언의 의미를 밝혔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도 함께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의 ‘종전선언’이라 할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해 항구적 평화의 새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평양공동선언의 의의는 배가됐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기 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이나 성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상회담 결과는 지난번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 평화에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에 비핵화 의지를 육성으로 밝힌 것은 이번 공동선언의 의의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내에 서울을 답방하기로 한 것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대한 결심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군사분야 합의다.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국방 수장이 서명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종식에 결정적인 한발을 내디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가기로 했다. 두 정상이 보증한 부속합의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이어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여러 층위에서 심화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부속합의서에서 남북이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이 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한걸음 더 전진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남북이 한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번에 남북이 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험 방지의 제도화를 위해 중요한 진전이다. 군사공동위원회를 띄우게 되면 상시적으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실태를 점검할 수 있고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방지를 위한 긴밀한 소통과 협의를 할 수 있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비핵화’ 문제다. 이 분야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뛰어넘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비핵화 초기 조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언급했다. 정상선언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이고 조속한 진전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아래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명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그동안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해체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관련국 전문가들의 참관이 없다는 이유로 ‘보여주기식 폐기’라는 말이 많았다. 이번 합의는 국제사회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쪽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처를 계속 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 조처는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조처를 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한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함과 동시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응답할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의 이런 제안에 미국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적은 여러 차례지만,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를 했다”고 말한 데 주목한다. 어쨌든 발표된 내용만 보면 애초 미국이 기대했던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공동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점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5일 미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문 대통령의 방미 전에 특사나 외교 당국자를 보내 정상회담 내용을 상세히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선언은 여러 면에서 판문점선언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을 뛰어넘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마지막날인 20일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찾기로 했다. 두 정상이 함께 남북 모두의 상징과도 같은 백두산을 오르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더 깊고 신실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미 교착’ 돌파구 찾아내야 할 대북특사

문재인 대통령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특사단을 5일 평양에 보내기로 했다. 북한도 문 대통령의 제안을 즉각 수용해 특사단이 평양으로 갈 것이 확실해졌다. 북-미 협상 교착상태 지속으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진 상태인 만큼, 특사단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집중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청와대는 이번 특사 파견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정세가 지난 일주일 사이에 급변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는지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시점이다. 따라서 특사단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9월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다. 또 가능하면 정상회담을 앞당기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정부가 북-미 사이 중재자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애초 기대했던 대로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3차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경협을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이 최대의 의제가 될 참이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비중이 급속히 커진 상태다. 이렇게 된 이상, 3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북-미 협상 공전 국면을 돌파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사단은 이 문제에서 교착상태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경제건설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중재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북-미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3차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9월 말 유엔총회에서 남-북-미-중이 함께 종전선언을 한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이 완전히 무산됐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이 비핵화 조처에 앞서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협상이란 게 상대가 있고 미국이 ‘선 비핵화 조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 부분에서 일부 양보하는 안을 제시해 미국과 타협을 이루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특사단이 이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한다면, 북-미가 종전선언에 타협할 중재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방북할 특사단은 3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교착을 뚫는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신속한 후속협의 필요한 ‘9월 남북정상회담’ 합의

남북이 13일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9월 안에 평양에서 3차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장소는 평양으로 고정됐지만, 날짜는 ‘9월 안’이라고만 두루뭉술하게 잡았다. 애초 남쪽은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을 고려해 이르면 8월 말, 늦어도 9월 초에는 정상회담이 열리기를 희망했고, 전날까지만 해도 이 시기에 정상회담을 여는 데 남북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절반의 확정’에 그친 느낌이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한 ‘가을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게 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일정이 예상보다 미뤄진 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상회담 날짜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은 것이 단순히 북쪽의 내부 사정 때문인지, 지금의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와의 연관성 때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 정부수립 70돌인 9월9일을 앞두고 또다른 큰 행사를 벌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면 향후 외교 일정상 북-미 관계의 교착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협상 진전에 동력을 제공하려면 9월18일 시작되는 유엔 총회 전에 열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9월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함께하는 종전선언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유엔 총회 이후로 미뤄진다면, 현재의 교착 국면을 선도적으로 뚫고 나가는 돌파구로서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북은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9월 안’이라고만 돼 있는 정상회담 일정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확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 의제에는 남북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정하는 것 말고도 판문점선언 이행 점검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남북은 공동보도문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동안 북쪽에서는 북-미 관계 진척과는 별도로 남북관계 발전, 특히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을 요구해왔는데, 이 부분에서 남북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북쪽 회담 대표인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남북 회담 등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정에 오른 의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한 것이 걸린다.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협력 의제들에 진척을 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와 관련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부는 좀더 소상하게 설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9월 중순 이후로 미뤄진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도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상회담이 한달 이상 남은 상황이어서 정상회담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정상회담대로 준비하되, 현재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따로 찾아내 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미 교착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남-북-미 어느 쪽에도 좋을 것이 없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일정과는 별도로 북-미 사이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 종전선언 디딤돌 되길

정전협정 65돌인 27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이날 오전 미군 수송기가 북한 원산에 들어가 미군 유해 55구를 싣고 경기 평택 오산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2007년 이래 11년 만의 미군 유해 송환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인 유해 송환이 이뤄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동창리 위성발사장의 일부 시설 해체와 함께 6·12 공동성명 이행을 본격화하는 행보로 읽힌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공동성명 4항에 미군 유해 송환을 명시했다. 유해 송환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본안은 아니지만, 북한이 성의있는 조처를 함으로써 신뢰구축을 통한 분위기 개선에는 상당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정전협정일에 맞춰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은 최근 거듭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직후인 지난 7일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을 외면하는 미국에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일을 맞아 한국전쟁 중 전사한 마오쩌둥 장남의 묘를 찾은 것은 중국까지를 포함한 종전선언에 무게를 둔 행보로 읽힌다.
백악관은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지만, 미국이 이를 계기로 곧바로 북-미 관계에 어떤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최근 이례적으로 대북제재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25일 대북 주무부처 장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통화한 것이나, 26일 마크 램버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서울에서 남북경협 관계자들을 만난 것은 모두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개선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이 채찍을 드는 모양새인 셈이다.

최근 북-미 간 기류는 제대로 된 협상은 못하면서 서로 엇박자만 내는 형국이다. 폼페이오 방북 이후 북한이 강경 목소리를 내다가 최근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북한 반발에 자극받아 북한을 옥죄는 행보를 하고 있다. 북한이 동창리 시설 일부를 자진 해체하고 미군 유해를 송환했지만, 실질 협상을 통해 나온 조처들이 아니다. 미국 역시 종전선언 문제 등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제재 고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북-미가 지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하려면 진지한 자세로 실질 협상을 벌여야 한다. 무엇보다 공식·비공식 협상 테이블을 최대한 원활히 가동해야 한다. 북한은 협상의 진전을 위해 상호 확인 가능한 비핵화 조처들을 내놓고, 미국도 안전보장에 대한 북한의 요구를 성의있게 경청해야 한다. 그렇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65년간이나 지속된 한반도의 정전 상태에 마침표를 찍는 종전선언을 하루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국정원’ 탈북공작을 현 정부가 왜 감싸나

중국 저장성에 있던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이 과연 자의에 의해 탈북한 것인가. 지난 10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밝힌 데 이어 15일 식당 지배인이던 허아무개씨가 다시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나섰다. 지난 2016년 4월 사건 직후부터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란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데다 최근 당사자들까지 비슷한 주장을 하고 나서 더는 진상을 덮어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발 사건을 맡은 검찰은 더이상 의혹이 남지 않도록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힐 책임이 있다.

허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원래 나는 국정원 협력자였고 정보도 가져다줬다”며 “그 사람들이 종업원들을 데리고 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한 뒤 동남아에 국정원 아지트로 쓸 수 있는 식당을 차려주겠다고 꼬셨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종업원들에 대해 “대다수가 동남아에 가서 식당을 영업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허씨는 애초 자신의 국정원 협조 사실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우리 쪽에 먼저 귀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를 부인하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여종업원들의 ‘자의 탈북’ 여부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여전히 자의에 의한 탈북이란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제이티비시> 인터뷰에 응한 일부 여종업원들은 당시 상하이를 떠나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뒤 한국 대사관에 들어서기 직전에야 한국행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대사관 앞에서 머뭇거리자 허씨가 ‘(북으로 돌아가겠다면) 한국 드라마 본 것을 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대사관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이들을 이틀 만에 입국시킨 뒤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공개했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 이후 북한 식당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4·13 총선 5일 전 일인데다 여러 정황상 총선용 기획으로 보인다. 사기극에 가까운 기획 탈북으로 여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진실을 다시 덮는다면 새 적폐를 쌓는 일이다. 북송 여부는 차후에 따지더라도 우선 진실부터 투명하게 밝혀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