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통화스와프 연장, ‘한-중 관계’ 회복의 계기 되길

우리나라와 중국이 지난 10일 만료된 56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다시 체결하기로 12일 합의했다. 협정 공백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 협정을 다시 맺기로 한 사실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는 미국 워싱턴에서 발표된 것도 잘된 일이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크게 악화된 양국 관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호전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2008년 12월에 300억달러 규모로 처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2011년에 560억달러로 규모를 확대했고, 2014년 10월엔 협정을 3년 연장했다. 한-중 통화스와프 규모는 현재 우리나라가 맺고 있는 전체 협정 액수의 46%를 차지한다. 중국 쪽에서 봐도 우리나라와 맺은 협정이 홍콩 다음으로 액수가 크다. 두나라 경제협력 관계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큰 것이다.

이번에 중국과 협정을 다시 체결한 것은 일본과 맺은 통화스와프 협정이 파탄난 것과 대비된다. 일본과는 2001년 처음 협정을 맺어 2011년 700억달러까지 규모를 키웠으나,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관계가 나빠지면서 2015년 2월 협정이 종료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협상마저 중단해버렸다. 일본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마치 우리나라에 베푸는 시혜처럼 여기고 신경질을 내듯 거둬들였다. 이와 달리 중국은 협정에 신중하게 접근함으로써,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외교 상대임을 보여줬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처를 아직 거두지 않고 있다.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통제하고 있고, 한국상품 불매를 부추겨온 언행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유통업체와 자동차업체, 국내 관광업계가 입은 손실이 매우 크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불만을 진지하게 경청하되, 한국 내 ‘반중 심리’를 키울 경제보복 조처를 거두도록 설득해야 한다.
국가 간 경제 교류와 협력은 양쪽 모두한테 이익이 되기에 하는 것이다. 경제보복 조처는 중국에도 손실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중국 정부도 양국 관계의 앞날을 해칠 경제보복을 거둬들이고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두나라가 정상회담을 서둘러 열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전시작전권 환수’ 빠를수록 좋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 의지를 다시 밝혔다. 문 대통령은 28일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정부는 전작권 조기 환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고, 국민은 군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은 한 나라의 최고 주권 사항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에 우리가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하루라도 빨리 환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작권 환수는 애초 노무현 정부 시절에 2012년까지 완료하기로 미국과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이 합의를 뒤집어 2015년으로 미뤘다. 박근혜 정부는 이 합의를 다시 바꾸어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보수정부가 주권을 스스로 팽개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시기에 전작권을 임기 안에 환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전작권 환수가 조속히 가능하도록 협력한다고 합의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국군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들어 전작권 조기 환수에 반대하고 있으나,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 군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것도 우리 국방 역량을 스스로 비하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전시 작전 지휘를 미군이 주도할 경우 작전 우선순위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게 된다. 한국의 의사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 한국의 뜻과 무관하게 북한과 전쟁을 벌일 개연성도 없지 않다. 한반도 안보 위기가 커지는 때일수록 전시 작전을 통제할 권한을 한국이 쥐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 의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 평화를 지켜가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전작권 환수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10월 말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부터 전작권 조기 환수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임기 안에 전작권 환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언제까지 외국군에 주권국가의 작전권을 맡겨둘 수는 없다.


[한겨레 사설] 또 ‘미사일 발사’ 북한, 폭주의 끝을 보겠다는 건가

북한이 15일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제재 결의(2375호)를 채택한 지 불과 3일 만이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나오든 ‘핵무력 완성’이란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 무모함과 광폭함에 아연할 따름이다.
북한이 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실제 비행거리는 3700여㎞였다고 한다. 미군 전략기지가 밀집한 괌을 실제로 타격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이에 대응해 우리 군은 현무-2 탄도미사일 2발(순항거리 250㎞)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는데, 그중 1발이 추락했다. 북한이 계속 중장거리미사일 시험에 성공하는 상황에서 우리 군이 단거리미사일 발사에 실패한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 데엔,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택하기 쉽지 않고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더 이상의 제재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이날 발 빠르게 북한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전면적이고 엄격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의회도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도발”이라며 “아주 위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도발을 계속할수록 북한은 점점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15일(현지시각) 소집되는 유엔 안보리에선 대북 추가 제재 문제를 또다시 논의한다. 김정은 정권은 국내외적 환경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위기 타개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통일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바른 결정이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하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옳지 않다. 이번 지원 대상은 영유아·임산부·노약자들이다. 품목도 시리얼과 전염병 예방 백신 등으로 제한돼 있다. 또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미국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은 국제 정세나 북한 도발 여부에 따라 중단 또는 재개하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도적 측면만 보고 이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릴 대화와 협상의 단초는 그런 꾸준한 행동을 통해 열릴 수도 있다.


[한겨레 사설] 미·중, ‘남 탓’ 말고 북핵 문제 책임있게 나서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비판하면서 “내가 한국에 말했듯,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트위트 글을 남겼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당일,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를 향해 ‘거봐, 내가 뭐랬나’ 수준의 말을 한 셈이다. 황당하다. 중차대한 위기 상황에서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미국 대통령이 이전에도 있었던가 싶다.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거칠게 북한을 위협했고 북한도 구체적인 ‘괌 포위사격 검토’ 발언으로 맞대응해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했다. 상황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자 ‘김정은이 현명하다’고 칭찬하고, 미사일을 발사하자 다시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면서 갈팡질팡 행보를 보인 게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북핵 사태 대처법이었다. 혼선을 부채질하면서 일관된 대북 대응을 흐트러뜨린 게 누구였는지 묻고 싶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전에 모호한 언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검토’ 발언까지 했다. 한-미 동맹을 대하는 정상적인 태도라 할 수 있는가. 미국 언론들도 이 점을 일제히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 발언’ 트위트와 관련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대북 한-미 공조에도 장애”라는 전문가들 우려를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시사 발언과 관련해 “최악의 시기에 한-미 관계를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 “한국과 미국의 유대가 틀어지기를 바라는 김정은에게 선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는 사태까지 이른 데에는 이 문제를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라는 관점에서 합심해 해결하지 못하고 서로 상대방을 탓하며 갈등한 미국과 중국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을 향해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압박하지만 중국은 그럴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중국) 국가이익 관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중국 반응을 보면, 북핵 개발보다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하는 등 철저히 자국 중심 사고와 전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와중에 동북아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세계의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국내 지지층이나 자국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행동해선 안 된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과 중국이 함께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원세훈 ‘대선개입’ 유죄, 이젠 몸통 밝혀낼 차례다

법원이 댓글공작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국정원법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30일 이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선거와 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해 박근혜 후보를 위해 뛴 사실이 법적으로 확인됐으니 당선의 정당성까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재판 지연도 그렇거니와 당사자가 쫓겨나 구속된 다음에야 이런 판결이 내려진 것은 사필귀정이라 하기에도 낯뜨겁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던지는 교훈과 과제는 무겁다. 지난 2012년 12월11일 댓글공작을 실행해온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이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각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4년8개월 넘게 끌어오면서 권력기관들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원세훈 국정원’은 총선·지방선거를 앞두고 ‘SNS 장악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을 뿐 아니라 “후보들 교통정리를 챙기고”(2011년 11월18일 부서장회의 속기록) “후보를 검증”(2009년 6월19일)하는 일까지 맡았다. 민간인 3500명을 동원해 30개의 여론조작팀을 운영하는 등 대선 공작에도 발벗고 나섰다. ‘김대중의 조국은 북한’ ‘저세상 와서 보니 큰죄가 많았군요’ 등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글도 이들이 달았다. 고문을 못 하게 되자 여론조작이란 새 정치공작 기법을 창조한 셈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김기춘-황교안-조영곤을 앞세워 대선개입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채동욱을 쫓아내고 윤석열을 좌천시켰다. 갖은 방해 속에 절반의 진실은 은폐되고 조작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은 그 절반마저 제대로 단죄하지 않았다. ‘국정원법 위반이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이른바 ‘지록위마’ 판결에 이어 대법원까지 핵심 증거인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석연찮은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다. 정권이 바뀌고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TF)가 속기록 전문을 건네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지 아찔하다.
이 사건의 그간 전개 과정은 국정원·검찰·경찰·법원 등 곳곳에 쌓인 적폐를 왜 청산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까지 포함해 정치공작의 몸통과 배후를 제대로 밝혀내야 할 차례다.


[한겨레 사설] 5·18 특별조사, 온전한 ‘진상 규명’ 계기 되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광주 출격 대기 여부와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사격 등 2건에 대해 국방부에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5·18과 관련해 대통령이 사건을 특정해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 등으로 5·18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통령 특별지시까지 나온 만큼, 온전한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5·18 당시 전투기에 광주 출격 대기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은 최근 <제이티비시>(JTBC)가 전투기 조종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했다. 시민군이 진압군을 밀어내고 도청을 장악하던 1980년 5월21~22일 경기 수원 제10전투비행단에 출격 대기명령이 내려졌고, 광주로 출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게 증언 내용이다. 당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한 공대지 폭탄으로 무장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신군부가 전투기로 시민군을 폭격하려는 준비까지 한 게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입안 과정과 책임자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전일빌딩 헬기 기총사격은 올해 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흔적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계엄군이 공중에서 시민들에게 사격했다는 구체적 정황인 셈이다. 군 당국은 이전까지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부인해왔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 3월 이곳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온 5·18 진상 규명 의지를 더욱 명확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5·18 37돌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뒤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군 당국은 속도감 있게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별조사를 계기로 더욱 폭넓고 근본적인 5·18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문 대통령 공약사항인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문제를 비롯해 5·18 진상규명특별법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등의 제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5·18이 우리 현대사에 제대로 자리매김하도록 모든 이들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 위기, ‘대북 특사’로 돌파구 열어야

북한과 미국이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고 있다. 북한의 제2차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한반도 정세가 최악의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북한이 미국령 괌을 포위사격 하겠다고 위협한 데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연일 거칠고 위험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강 대 강 대결이 한반도에 파국적 상황을 불러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가 확고한 중심을 잡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북-미의 대결이 격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변화를 모색하는 듯한 흐름도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북한에 대해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놓으면서도 이와 함께 “(북한과 협상할) 때가 됐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 눈길을 끈다. 워낙 럭비공 같은 발언을 해온 터라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심중에 ‘대결과 협상’ 둘 다 들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초강경 발언도 표면의 강도만 볼 것이 아니라 이면의 의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 방안을 8월 중순까지 완성하겠다고 일정을 제시하고 미사일 비행경로와 탄착지점까지 밝힌 것은 위협을 과시하려는 면도 있겠지만, 미국에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을 그만큼 더 절박하게 촉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의 능동적인 개입이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야 한다. 그런 방안 가운데 하나로 ‘대북 특사’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직접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힐 수도 있고, 미국이 대북 특사를 보내 북-미 대화를 시도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북핵 위기가 극에 달해 북폭이 논의되던 때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해 북-미 대결 국면을 일거에 대화 국면으로 바꾼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당시 카터 방북을 제안한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 국면은 북-미 간 ‘치킨 게임’이 직접 충돌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라고 할 수 있다.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까지 앞두고 있어서 이 위기 국면을 바꾸지 않으면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파국적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때야말로 전환의 극적인 기회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담대하고 용기 있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촛불 정신’ 담은 국정운영 청사진, 문제는 실행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 공개됐다.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운영 5개년 계획’(보고서)을 발표하고, 국가비전과 5대 국정목표,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 입법 계획도 담았다. 짧은 선거 기간, 충분치 않은 수권 준비 절차 등의 여건에도 촛불 시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국정운영 로드맵으로 적극 수렴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각성과 촛불의 힘에 의해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실질적인 대개혁을 이뤄내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짊어지고 있다.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5대 국정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내세운 것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 과제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487개 세부 실천과제 가운데 66%인 321개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상황은 여소야대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협치와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하고,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 국정목표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행정부 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회부처도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제시된 국정과제엔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아동수당 신설,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 창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미있는 정책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잖다. 이른바 제이(J)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는 대선 공약보다 외려 후퇴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정책과제는 입법으로 실행의 근거를 갖추고, 재원을 통해 현실화된다. 보고서는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선 공약집에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조6천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위해선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도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출 구조조정을 내세워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은 피해갔다. 부실한 재원 대책을 보강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중국, ‘사드 경제보복’ 이젠 풀어야 한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8일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시작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더는 감내하기 힘든 수준까지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50% 이상 급감해 올해 상반기에만 5조원 안팎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현대·기아차 중국 공장에 납품을 하는 중소협력업체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자동차부품 중국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나 감소했다. 롯데마트는 중국 내 점포 99곳 중 74곳이 3~5월 ‘소방 점검’ 등의 사유로 영업정지를 맞아 길게는 넉달째 문을 닫고 있다. 롯데마트는 피해액을 5천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중국인 단체관광이 급감하면서 면세점 손님이 지난해 5월 184만명에서 올해 5월 102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화갤러리아가 3일 제주공항 면세점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했고, 지난해 말 면세점사업권을 새로 취득한 업체 5곳은 아직 개장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식품, 게임, 전기차 배터리 등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협의도 요청도 결정도 없었다”며 ‘3 노(No)’ 입장을 취해오다 돌연 태도를 바꾼 탓에, 중국으로선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보복으로는 사드 문제를 풀 수 없다. 무엇보다 사드는 미국이 당사자여서 우리 정부의 결정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중국 정부가 경제 보복을 지속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처사다. 우리 국민의 여론만 악화시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사태 확산을 경계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여온 국내 경제계가 최근 중국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 사드를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중국이 자국 산업의 보호·육성을 위해 사드를 핑계로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음달 24일이면 한-중 수교 25주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사드 보복은 이런 역사적 흐름에 역행한다. 긴 안목에서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한겨레 사설] 동맹 우의 굳혔으나, 큰 숙제도 떠안은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대외적으로는 동맹의 우의와 친분을 재확인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숙제를 남겼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쪽이 북핵 문제 해결 의지를 굳히고, 방식에서도 큰 틀의 동의를 이뤄낸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연 한-미 공동언론발표에서 “우리 두 정상은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실패했다”며 “북핵에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강조하면서, 자신의 ’단계적 접근’을 공동발표문에 명시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압박 강화에 방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북핵 해결에 대한 기본원칙과 접근방식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성과라 할만하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장진호 기념비 헌화로 방문 공식일정을 시작하고, 참전용사를 만나 감사를 표하고, 특히 흥남철수와 개인의 인연을 연결시켜 감사를 표한 점 등은 인상적이다. 한·미 동맹의 우의를 다지는 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민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에는 많은 이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나, 이러한 정서적 접근 등을 통해 테이블 협상에서의 긴장을 풀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한-미 에프티에이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정상회담에 앞서 한 모두발언에서도 “우리는 지금부터 무역 협상을 재협상하고 있다. 희망컨대 공평한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에프티에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발빠른 공세로 나섬에 따라 우리 통상당국은 이제 최대한 방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부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까지 시사했다. 두 사안 모두,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두 협상 모두,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양쪽이 모두 수혜를 얻는 윈윈의 묘책을 세우는 데 한·미 양쪽 모두 머리를 맞댈 때다. 또 어떠한 경우라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이날 공동언론발표문에서는 빠졌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또다른 숙제로 쌓여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에 환경영향평가라는 한국의 절차적 문제를 이해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간의 상황을 보면, 미 행정부와 의회는 ’절차적 상황을 끝내고 나면, 사드를 배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미국의 비용으로 주한미군과 한국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방어하는 것만 주목하고 있지만, 한국이 사드로 인해 대중국 관계에서 어떤 피해를 받고 있는지 그 이해도는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향후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보여진다.


[한겨레 사설] 북핵 문제 해결에 긴요한 ‘한국 역할론’

문재인 대통령이 19~20일 <워싱턴 포스트>, <시비에스>(CBS) 등 미국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대략적인 기조를 밝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을 먼저 이행하고, 그다음 ‘핵 폐기’로 나아가는 2단계 비핵화 방침도 제안했다.

내용을 보면, 오는 29~3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안심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건이 갖춰진다면” 방북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히는 등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토 웜비어 사망으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시점이지만, ‘압박’의 목적도 ‘대화’라는 점을 강조한 건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의 ‘한국 역할론’이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미국·중국 등 강대국 손에 맡기면, 강대국의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제 위상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역할론’을 강조한 건 오히려 늦은 감마저 든다. 문 대통령 말대로,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북 관계를 풀어나갈 때 남북 관계도 훨씬 평화로웠고 미국과 북한 관계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국익 차원에서나 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나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한국 역할론’ 강화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을 다양한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또한 문 대통령의 이런 대북 기조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서 한-미 간 이견 없는 대북 정책 추진으로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해선 “주권국가로서 적절한 시점에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수 의지 표명은 당연하며, 새 정부는 이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배치를 연기하거나 결정을 뒤집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 문제는 한-미 사이의 대표적 쟁점인 만큼 정상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전향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 역시 미국 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 관점에서 결정이 내려지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취임 다섯달 만에 ‘탄핵 위기’ 몰린 트럼프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 요구에 휘말려 ‘식물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을 앞에 두게 됐다.

코미 전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앞서 공개한 ‘모두발언문’ 내용은 트럼프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코미는 2월14일 독대에서 트럼프가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고 확인했다. 플린은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사이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사람이다. 또 코미는 트럼프가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충성을 보여라’고 한 사실도 폭로했다. 마피아 보스나 할 법한 저열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사태는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코미 압박이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인 만큼 탄핵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미국 내부의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최근 34%까지 추락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이반도 커지고 있다. 상황은 특별검사 해임으로 몰락을 자초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경우와 유사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안으로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안하무인 태도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키웠다. 지난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보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으로 유럽의 격분을 샀다.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라는 지탄을 받았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오만에 넌더리를 내면서, 세계와 미국을 위해 트럼프가 없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에겐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트럼프 위기는 우리에게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궁지를 모면하려고 대외적으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해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다음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기로 양쪽이 합의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미 새 정부가 조기 정상회담에 합의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여파로 우리나라는 6개월 이상 정상외교의 공백 상태에 있었고 ‘코리아 패싱’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 현안 대응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과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면담 결과를 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두 나라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등의 공통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론 ‘제재’에 방점을 찍었지만, ‘대화’의 문을 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상회담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새 외교안보라인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는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쟁점이다. 포틴저 보좌관은 “계속 대화하겠다”면서도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이게 될 미국과의 협의가 만만찮음을 예고한다.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56.1%가 ‘배치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배치 재검토’에 대한 국민 기대감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국내의 요구와 미국의 완강함, 중국의 기대감 등 상반된 요구를 조율하는 과제를 새 정부로선 피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10억달러 비용 분담’과 같은 무리한 요구엔 당당하고 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중·일·러 등 주요국에 보낼 특사단과 만나 “정치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됐음을 (각국에) 강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임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가 ‘시민혁명’의 연장선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 말처럼 외교안보 사안에서도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촛불의 꿈’ 담은 소중한 한 표로 세상을 바꾸자

어디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19대 대통령선거야말로 어느 선거보다 각별하고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대선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구속수감된 상태에서 그를 대신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유례없는 선거다. 추운 겨울날 언 손 비벼가며 촛불을 켰던 수많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치러지는 ‘촛불 대선’이다. 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쫓아낸 ‘시민혁명’의 마지막 매듭을 짓는 절차인 것이다.
‘촛불의 염원’은 아직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촛불의 바람이 아무리 절실해도 그 자체로는 잘못 박힌 대못 하나 빼내질 못한다. 오로지 투표를 통해 현실 권력으로 전환된 힘만이 부조리한 상황을 바꾸고 촛불이 꿈꾼 세상을 가꿔낼 수 있다. 이제 19대 대선의 날이 밝았다. 마음속에 촛불 한 자루씩 켜 들고 투표장으로 향할 시간이다.

민심의 심판대 맨 앞자리에 올려야 할 항목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정권의 부패와 무능, 정경유착과 권력 사유화를 빼놓고 이번 대선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국정농단을 방조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이랄 수 있는 자유한국당 역시 심판의 과녁을 피할 수는 없다. ‘친박 세력’은 국정농단을 방조하거나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 규명을 방해하거나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선거를 틈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친박 핵심 인사 7명에 대한 징계를 직권으로 해제한 건, 이번 대선이 결국 국민과 탄핵 반대 세력의 또다른 대결임을 일깨워준다.

이번 대선은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총체적 평가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참담한 성적표는 희망을 빼앗긴 청년들, 불안에 빠진 중·장년층, 빈곤에 시달리는 노년층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헬조선’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각종 지표는 차고 넘친다. 민생뿐 아니라 외교·안보도 낙제점이다. 주변 강대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코리아 패싱’은 보수정권 10년이 남긴 불행한 유산이다. 안보·외교에서 드러난 무능을 색깔론으로도 덮을 수 없다는 걸 이번 선거 과정은 똑똑히 보여줬다.

촛불이 요구한 수많은 개혁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힘있게 추진할 ‘혁신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잘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잘못을 바로잡고 낡은 시스템을 고치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력은 새 대통령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겸손한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국회 의석 분포로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무수한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해내려면 ‘통합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란 더럽고 비루한 것’이라고 쉽게 손가락질하지만 그래도 정치의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야 비로소 현실은 바뀔 수가 있다. 냉소하고 팔짱만 낀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무기력할 뿐이다.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세상을 뒤집고 현실을 바꿔나갈 때다. 촛불의 완성이 바로 우리의 한 표에 달렸음을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한겨레 사설] 사드 기습배치에 ‘1조원 폭탄’까지 던진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한국에 내라고 요구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한국민이 원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미군기지 방어를 위해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성주에 배치해 놓고선 그 돈을 다 우리에게 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사드가 본격 가동되면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에 전가하리란 우려가 많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훨씬 큰 규모로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다. 그런데도 “사드는 미군 무기체계이므로 우리는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된다”고 국민을 속인 박근혜-황교안 정부는 뭐라고 변명할 셈인가.

난데없는 ‘10억달러’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내는 사례일 수 있다. 사드 1개 포대를 고스란히 한국이 사라는 얘긴데, 이미 미군이 운용중인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우리 국방부는 즉각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한 이상, 구입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 전가가 이뤄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수도권 방어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드 때문에 중국과 외교·경제 마찰을 겪고 돈은 돈대로 미국에 내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우리 돈이 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7월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 1조5천억원은) 미군 부담이다. 우리는 부지 조성 비용 정도만 담당한다”고 답변했다. 그래도 나중엔 우리에게 비용 분담을 요구할 거라는 걱정에 국방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국민을 속인 셈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함보다 한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책임한 태도가 국민을 더 분노케 한다. 도대체 이 정부는 한국민의 뜻을 우선시하는 정부인지 아니면 미국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정부는 이제라도 사드 배치를 전면 보류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회에서 배치 여부를 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청구한 이상, 국회 승인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은 사라졌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문제점도 다시 조사해야 한다. 10개월간 나라 전체를 논란과 갈등에 빠뜨린 결과가 ‘10억달러 청구서’란 건 너무 뼈아픈 일이다.


[한겨레 사설] 정권이양기에 ‘사드 알박기’한 미국의 횡포

주한미군이 26일 새벽,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에 발사대와 레이더 등 핵심 장비를 기습적으로 배치했다. 사실상 사드 배치가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주민 동의와 설득 과정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행정적 절차도 무시했다. 최근까지 한-미 당국이 잇따라 ‘사드 배치는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듯한 말을 해 다소 안심했는데 군사작전처럼 야음을 틈타 전격 배치를 완료하다니 우리 국민의 뒤통수를 때린 셈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불과 13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번 행동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알박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대표적 사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고, 미국·중국과도 추가 협의하는 과정을 밟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기습 배치를 통해서 미국은 이런 움직임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해 버렸다. 동맹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역주민은 물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한국민의 반감도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와 시설 공사 등 관련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드 배치가 거의 완료된 단계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 등이 과연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지난 16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백악관 외교정책 참모가 ‘사드 배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불과 며칠 만에 이 발언을 뒤집었거나 그때 의도적으로 배치 강행 움직임을 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항공모함 칼빈슨호 항로 변경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이어,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신을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키우고 있다.

이번에 배치된 사드 장비의 사격통제 레이더는 중국 정부가 가장 문제시하는 ‘엑스밴드 레이더’다. 중국은 곧바로 “(한반도) 긴장 정세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며 “관련 시설의 철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4월 위기설’ 등으로 높아진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중국은 핵실험 자제를 강력 촉구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번 사드 장비 반입으로 한반도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미-중 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5·9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 추가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대통령후보들도 사드 배치를 대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접근해선 안 된다. 한반도 정세 안정이란 큰 틀에서 국민에게 뚜렷한 대안과 입장을 제시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4월 위기설’과 안이한 정부 대응

최근 ‘4월 한반도 위기설’이 급속히 퍼졌다. ‘김정은 망명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에 이어 ‘외국계 기업 철수 준비설’ 등이 꼬리를 물었다. 발단은 사설 정보지라는데,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이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연일 보도하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미-중 정상 간에 모든 옵션이 논의됐다”고 말한 게 이런 상황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북한의 연례행사가 집중되는 4월엔 한반도 위기설이 반복되곤 했다. 최근엔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를 떠난 지 보름여 만에 이례적으로 한국으로 재출동하면서 긴장 지수를 높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가시적 성과물이 보이지 않는데다, 미국의 시리아 폭격 등이 겹치면서 불안감은 더해졌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은 양쪽 모두 과거 어느 정권보다 예측불가능성이 높다.

여기엔 우리 정부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1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차분하고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남 일 이야기하는 듯하다. 외교부는 “(위기설의) 근거가 없다”며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 등을 부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등 미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한반도 관련 발언을 보면, 이들이 한국 정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협의를 하고 한국 입장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걱정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미국과 북한 양쪽에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위기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뿐 아니라, 당장 금융·경제 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동맹이라면, 동맹국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언행을 자제하라고 우리 정부가 말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로켓 발사를 여러 차례 해왔고, 올해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긴장을 높이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통해 정권의 안위를 도모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한반도 평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문재인·안철수, ‘촛불 대선’ 의미 무겁게 새겨야

5·9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된 이번 선거는 과거 대선과는 여러모로 양상이 다르다.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 기간이 부쩍 짧아지면서 이른바 ‘광속 대선’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만큼 밀도 있고 압축적인 경쟁이 필요하다. 특히 보수 진영이 몰락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되면서 야권 후보들이 1, 2위를 다투는 ‘야-야 대결’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여론조사 추이를 좀더 봐야겠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강을 형성하고,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김종인 등 나머지 후보들이 추격하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정체 현상을 겪으며 대세론을 위협받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중도·보수층이 몰려들어 지지율이 오르며 문 후보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향한 비난 공세도 거칠어진다. 문 후보 쪽은 안 후보를 “적폐세력 후보, 정권연장 후보”로, 안 후보 쪽은 문 후보를 “자기만 옳다고 하는 계파 패권주의”로 몰아붙이며 ‘낙인찍기’ 경쟁을 벌인다. 상대 당 경선의 동원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소재를 확대재생산한다. 이러다간 지지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이고 후보들은 큰 상처를 입는 ‘진흙탕 대선’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두 후보는 한달간의 선거전을 앞두고 ‘조기 대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뤄서 밀어붙인 게 여기까지 왔다. ‘촛불 민심’은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권을 교체하고, 해묵은 악습을 청산하고, 각종 개혁 입법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5·9 대선은 결국 촛불에 담긴 민심을 누가 어떻게 차기 정부에서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고 헐뜯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내가 촛불 민심의 체현자임을 증명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달 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정권 이양기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유념해야 한다. 헛된 공약을 제시하고 네거티브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금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이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간 한달 뒤 큰코다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되살려 나라를 수렁에서 건진 국민들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선거운동에 임해야 할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대선 이후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선 함께하겠다는 최소한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선거란 게 결코 평화로울 수 없고, 검증은 날카로워야 한다. 그래도 촛불의 시대적 과제를 중심에 놓고 깨끗하게 경쟁하고 치열하게 토론한다는 자세만은 두 후보가 버리지 말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구속, ‘정의와 상식의 시대’ 출발점 돼야

결국 구속됐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선언한 지 21일 만이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한 일이겠으나 법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요, 정치적으로는 한 시대를 매듭짓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회의 탄핵 소추와 특별검사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이어 구속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끊임없이 견인해온 것이 광장의 ‘촛불시민’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시민의 승리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31일 새벽 3시께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등 혐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박 전 대통령은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독방에서 ‘미결 수용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440원짜리 식단과 세면도구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으로 생활해야 한다.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자괴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지나온 몇달만 돌이켜본다면, 이 모든 게 부인과 억지 주장으로 일관한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곳에서의 나날을 성찰의 시간으로 삼기 바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장 발부는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행위에 대해 일차적인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 판사가 ‘증거인멸의 염려’를 구속 사유로 꼽은 것은 박 전 대통령 쪽의 그간 주장과 변명을 거짓으로 판단하고,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조처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두차례 수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확보된데다 관련자들도 구속된 상태여서 영장 발부는 일찍이 예상돼왔다. 더구나 그 증거의 원천이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참모에게 책임 돌려 구속 자초

박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서뿐 아니라 영장 심사 과정에서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통장에 돈 한푼 들어온 적 없다”는 식의 논리로 반론을 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운영·인사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상의하며 ‘공모’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이 자기 계좌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죄가 안 되는 게 아님은 당연한 법리다.

박 전 대통령 쪽은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편 모양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을 통해 이승철 전경련 당시 부회장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은 여럿이다. 무엇보다 그가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있는데도 모든 책임을 참모와 측근에게 돌리며 “몰랐다”고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 법원에서도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여러 면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재벌 수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등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최씨 일가 재산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 전 수석이 검찰을 농단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검찰 스스로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도 남아 있다. 검찰 수뇌부를 포함해 성역을 두지 말고 제대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극단세력 자제시켜야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한번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수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사실상 탄핵과 수사에 ‘불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국민저항본부’가 31일 구속 비난 성명과 함께 1일 태극기 집회를 예고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으로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극단세력을 자제시켜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결자해지의 자세로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그것이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분열과 갈등을 씻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기도 하다.

그를 따르는 친박 세력 역시 이제는 억지 주장을 버리고 극단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심판과 함께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시대도 역사에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구속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와 상식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