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15만 평양 시민 앞 ‘비핵화’ 역설한 문재인 대통령

방북 마지막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백두산에 올랐다. 20일 오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천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맞잡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남북 정상이 겨레의 정기가 서린 백두산 정상에 함께 오른 것은 남북 화해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이라고 할 만하다. 두 정상 부부는 수행원들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 함께 산책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한라산에서 가져온 물을 천지에 붓고 다시 천지의 물을 한라산 물이 담긴 병에 옮겨 담았다. 말 그대로 ‘백두와 한라의 합수’다. 두 정상 부부가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함께 산책한 것은 4·27 판문점선언의 도보다리 산책에 이은 또 하나의 뜻깊은 족적으로 기억될 일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19일 평양 시민들 앞에서 행한 연설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남쪽의 대통령으로서 북쪽 동포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것은 분단 이래 처음이다. 평양 5·1경기장을 꽉 메운 평양 시민 15만명의 뜨거운 박수와 함성 속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방북과 정상회담 성과를 알리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 물려주자고 (김 위원장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남쪽의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남북 정상의 비핵화 의지’를 공개 천명하고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냄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에 또 다른 차원의 공식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북한 주민들과 공유됐음을 미국과 전 세계에 알렸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며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북녘 동포들이 겪은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쏟은 노력을 평가한 것은 멀어졌던 남북이 더 가까워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남북의 화해와 번영을 위한 노력에 큰 힘이 됐으리라 믿는다.

남북 정상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함께 만들어낸 ‘비핵화 합의’가 미국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해 ‘엄청난 진전’이 있다며 김 위원장을 곧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 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고, 북한이 국제 사찰단의 참관 아래 동창리 미사일시험장과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뜻을 밝힌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북-미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평양 합의가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없다고 깎아내리지만 미국의 공식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주에 열릴 북-미 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 기대를 품게 된다.

문 대통령의 2박3일 평양 방문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과를 냈다. 김 위원장이 약속대로 남한을 방문하면, 남북 관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질적인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의 평양 만남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에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문 연 남북연락사무소, ‘한반도 평화·번영’ 초석 돼야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4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지 140일 만이다. 개성공단 안 옛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건물을 정비해 개소한 남북연락사무소는 남북 당국자가 365일 24시간 상주하며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상시 협의하는 남북 공동의 소통 공간으로 쓰인다. 개소식에서 남쪽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과 북이 함께 만든 평화의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북쪽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민족끼리 거두어들인 알찬 열매’라고 말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을 연 공동연락사무소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동연락사무소는 개소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남북은 지난 8월 중에 개소식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마뜩잖아하는 미국의 견제로 몇 차례 미뤄졌다가 근 한달 만에야 문을 열었다. 이런 우여곡절은 남북관계 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려면 북-미 관계 진전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발전이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의 우호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고 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이뤄낸 남북 공동의 노력은 그것 자체로 평가받을 일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는 남북관계 발전에 새 역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뜻깊은 일이다. 통일부는 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한 상시적 협의·소통 채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등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들의 실무 논의를 하고, 향후 남북경협이 본격화할 경우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협의도 여기서 진행한다. 말 그대로 ‘남북 공동 번영의 산실’이 되는 것이다.

이날 개소식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도 참석했다. 이들을 초청한 것은 연락사무소 개소가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정부의 뜻이 담긴 조처일 것이다.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중단 이후 2년7개월째 멈춰 서 있다. 남북은 개성공단이 하루빨리 재가동돼 남북 경제협력의 불꽃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장애물 제거에 힘을 모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풀려야 하고, 그러려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돼야 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남북 상호 대표부 설치를 위한 첫 단계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남북연합 제도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도 있다. 남북연합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한 통일 과정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공동연락사무소가 내실 있게 운영돼 남북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 나아가 ‘하나 된 한반도’로 가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동북아 번영’ 비전 담은 문 대통령 ‘철도공동체’ 제안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73돌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안보체제 등을 포괄하는 큰 틀의 외교안보 구상을 밝혔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촉진,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제안 등 굵직굵직한 방안들이 담겼다. 다음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 발전의 중장기 비전을 망라한 것으로,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내놓은 베를린선언에 견줄 만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 효과는 최소 170조원이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연결, 일부 지하자원 개발을 더한 효과라고 적시했다. 문 대통령이 비록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가 정착된 이후”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이들 사업을 본격화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기·강원 접경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됐는데, 잘 다듬으면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남북, 중·일·러·몽골 등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했는데, 의미심장한 구상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유럽연합의 모체가 된 것을 언급하면서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 지평을 북방 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철도 협력은 남·북·중·러가 우선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망 분야이고, 이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대북 제재 완화로 가는 길을 닦을 수도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맞춰 동북아 외교의 주요 축으로 추진해볼 만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북핵과 남북관계를 연동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 주목된다. 비핵화 협상에 남북관계가 발이 묶일 경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남북관계 진전과 북-미 협상이 선순환을 이뤄야 하는 만큼 남북관계에도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평양 정상회담과 관련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 진전의 시간표도 열거했다.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며칠 후면 설치되고,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비전을 보다 명확히 하고 로드맵도 구체화했다. 올가을 한반도 정세의 중대 기로를 앞두고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하고 실현 방안을 가다듬는 일은 중요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나아감으로써 문 대통령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 정세의 새 국면을 개척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우발충돌 방지, 신뢰구축 기반 마련한 남북 장성급회담

남북이 31일 판문점에서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와 유해 공동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적대행위 중단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소장)은 회담 후 “(이들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구체적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은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중장도 “회담이 무척 생산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록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를 거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남북이 공감한 4가지 조치는 상호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우발충돌 방지와 신뢰구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특히 DMZ 내 GP를 시범적으로나마 철수하는 것은 JSA 내 비무장과 더불어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줄이는 가시적인 첫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동안 DMZ는 말만 비무장지대였을 뿐 남북이 서로 중무장한 병력을 앞세워 첨예하게 맞서온 대결의 현장이었다. 여기에 서해상에서 포격훈련 중지 및 해안포 폐쇄 등 적대 행위까지 중단한다면 지상과 해상 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문을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회담 분위기로 볼 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확언한 터라 후속 논의 과정에 큰 난관은 없어 보인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초석을 놓은 동시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북·미 간 핵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때마침 북한이 넘긴 6·25 전사 미군 유해가 1일 하와이로 송환됐다. 북·미 양국이 합의한 DMZ 내 유해 발굴에 남측까지 가세하면 상호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다. 북측 안 수석대표는 군사 분야가 남북대화를 선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대북 경제제재와 달리 합의에 제약이 없다. 다음달 개최되는 서울 안보대화에 북측이 대표단을 보내는 것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역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후속 회담을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급회담에서 마련한 공감대를 토대로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담긴 ‘민심’ 잘 새겨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6·13 지방선거 이후 5주째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19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1.7%로, 지난주에 비해 6.4%포인트 떨어졌다. 취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지난 1월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 등으로 60.8%를 기록한 이래 최저치다. 이런 추세라면 60%대 지지율도 위협받을 수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3.8%포인트 떨어진 41.8% 지지율로, 5주째 내림세가 계속됐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최저임금 논란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경제 상황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소득 주도 성장’ 효과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파문이 겹친 것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선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대로 내려앉았는데, 부정 평가 이유 가운데선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45%로 가장 많았다.

이런 추세는 집권 2년차 대통령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이제 지지율이 ‘정상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70%대의 높은 지지율은 남북관계 진전 등 외교 성과와 함께, 문 대통령의 개인적 면모에 기반한 측면이 컸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집권 2년차 1분기 지지율은 75%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았다. 집권기간 내내 이런 이례적인 지지율 추이가 계속되리라 기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를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지율이 문 대통령의 개인 역량에 주로 의존했다면, 이제는 집권세력의 실력으로 냉정히 평가받는 시점이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예측불허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6·13 지방선거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총력을 다해 밀어준 지지층은 이제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정책 성과를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어느 정도 그 기대에 답했지만, 국민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선 미지수라는 게 최근 기류라고 할 수 있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의 하락 추세의 의미를 정부여당은 심각하게 되새겨봐야 한다. 이제 지방선거 승리 분위기는 완전히 털어내고, 심기일전해서 민심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 ‘비핵화 이후 구상’의 실현 조건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방문 마지막날인 13일 한 ‘싱가포르 렉처’에서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과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독일에서 밝힌 ‘베를린 평화 구상’에 이은 제2의 평화 구상이라 할 만하다. 한달 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에서 남북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 구상을 이야기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렉처’는 여러모로 1년 전의 베를린 구상 발표와 대비된다. 베를린 구상이 최악의 북-미 대치 속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노력에 집중했다면, 싱가포르 연설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상황을 반영해 ‘비핵화 이후’ 비전을 제시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남북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돋우려는 뜻이 분명하게 읽힌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구상에 적극 호응해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함께할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남북이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며 경제공동체 건설로 나아가려면 먼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이 제재 해제의 조건이라 할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강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밝힌 대로 북한이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자 한다면 비핵화 이행방안을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상응하는 포괄적 조처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역할을 주문한 것도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안아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면서 한국과 아세안 간 협력과 교류의 틀 안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게 중요함을 역설했다. 북한은 다자안보 협의체로는 유일하게 아세안지역포럼(ARF)에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기 전까지 아세안과 경제협력도 했다.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 발전기초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아세안이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연설 후 질의응답에서 “국제사회 앞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북한과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을 약속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두 나라에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압박성 발언이다. 평소의 문 대통령답지 않은 강한 어조이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 지금 국면에선 필요한 발언이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평화 구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북-미 협상 촉진에 모든 힘을 쏟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한-러 공동성명, ‘동북아 평화·번영’ 앞당기는 계기로

19년 만에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모두 32개항에 이르는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에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두 나라가 공동성명에 담긴 협력과 공조의 정신을 잘 키워나가는 것은 양국 발전에 긴요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가져온 성과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서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확인한 데 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러시아의 높은 관심은 문 대통령의 전날 하원 연설에서도 드러났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고 세계에 약속한 사실을 강조하자, 이날 연설 중 가장 큰 기립박수가 나온 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이런 관심과 호응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하는 동력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공동 관심사는 경제협력이다. 경제협력 문제가 공동성명의 과반을 차지한 데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북한을 공란으로 비워두고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두 정상이 철도·가스·전기 분야에서 ‘남-북-러의 3각 경제협력’을 강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남-북-러 3각 협력이 현실화하려면 먼저 북한의 비핵화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공조함과 동시에, 대북 제재 해제 이후에 대비해 지금부터 3국 경제협력에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한-러 경제협력은 궁극적으로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과 함께 평화안보공동체 건설로 나아갈 때 꽃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 동력을 되찾는 데도 남-북-러를 기축으로 한 경제협력은 필수적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더욱 긴밀히 협력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앞당기고 유라시아 공동번영 시대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70년 적대관계 끝낼 ‘통큰 합의’ 기대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12일 손을 잡는다. 세계의 눈과 귀는 북-미 두 정상이 만나는 싱가포르로 쏠려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동안 적대관계에 놓여 있던 두 나라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마주앉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서방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북-미 관계는 남북관계와 연동되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우리에게도 4·27 남북정상회담을 뛰어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막판 통화를 한 것은 회담의 성과에 ‘한반도 운명’이 걸려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회담의 두 주역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회담 결과를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 전망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도착한 다음날 ‘흥분된 분위기’를 트위터에 올리는가 하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만나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매우 흥미롭고 잘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도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회담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상회담 전날까지 두 나라 실무자들이 합의문 초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난 것을 보면,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 정상의 마지막 결심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두 정상이 과연 공동선언을 낼 수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의미 있는 공동선언이 나오려면 핵심 쟁점인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놓고 양쪽이 극적인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미국은 회담 직전까지도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명문화를 요구했고, 북한은 여기에 맞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두 나라가 이 문제에서 판문점 선언의 약속인 ‘완전한 비핵화’와 9·19 공동성명에 명기된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종합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 수준에 합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에 얼마나 폐기·반출하느냐도 관심사다. 북한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일부라도 수개월 안에 폐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비핵화 시간은 급속히 빨라질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런 양보를 단행하려면 미국도 체제보장의 확실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불가침 약속,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제재의 단계별 해제에 더해 평화협정 체결과 국교 수립까지 체제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의 시간표가 대략적으로라도 나와야 한다. 두 정상의 결단이 거듭 필요한 대목이다.

완전한 핵폐기라는 미국의 관심사와 완전한 체제보장이라는 북한의 관심사는 서로 충돌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협상이 어긋날 수 있다. 북-미가 지난 몇달 동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두 나라가 회담 성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역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전쟁과 대결의 과거와 결별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여는 ‘통큰 담판’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회담’ 이어 ‘남·북·미 종전선언’을 기대한다

지난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면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오는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실해졌다. 그동안 북-미 정상회담이 정말 열릴지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회담을 기정사실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김영철 부위원장 방미는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신뢰가 협상을 가능케 하지만 때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실무 접촉과 김영철의 미국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 전달 등을 통해서 조금은 더 ‘비핵화 협상’ 성공을 위한 신뢰를 쌓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런 분위기가 싱가포르 정상회담뿐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부위원장과 만난 뒤 발언한 내용을 보면, 정상회담 개최 확인 외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나는 (김정은과의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그 과정(프로세스)은 싱가포르에서 12일에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일괄타결 일괄이행’ 방식에서 벗어나, 핵·미사일 폐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의 이견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좀더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전쟁) 종전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건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서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미 종전선언’이 가시화할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것에 부정적인 기류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론했으니 상황은 달라진 셈이다.

‘종전선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식됐고, 평화와 화해·공존을 향한 거대한 물결이 시작됐음을 온 누리에 알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또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교환’의 시간상 불일치로 인해 북한이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도 긴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나 현실적 접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이 줄 수 있는 ‘체제 안전보장’은 북한이 핵을 온전히 폐기한 뒤에나 가능하다. 북한으로선 ‘비핵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라도 좀더 분명한 보장을 원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띠지만, 남·북·미 정상이 전세계를 향해서 함께 ‘한반도 평화’를 선언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 논의를 언급한 이상, 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종전선언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어디까지나 ‘북한 비핵화’가 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에 집중하느라 실무적인 여유가 없다면, 굳이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도 있다. 어떤 형식이든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미 정상의 ‘종전선언’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정상회담 복원’ 위한 북-미 노력 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로 북-미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낸 담화에 대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트위터로 밝혔다. 전날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한 데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취소 사태 이전 국면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두 나라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난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다. 지난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 이어 최 부상이 ‘정상회담 재고’를 거론하고 ‘핵 대 핵 대결’ 운운한 것은 상대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경솔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수사적인 담화가 회담 철회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이견에 근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식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해법’ 사이에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회담 취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더 적극적인 대화로 풀어야지 취소 통보로 판을 흔들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김계관 부상을 통해 내놓은 담화는 회담의 불씨를 되살려내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 부상은 회담 취소 편지가 나온 지 8시간여 만에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부상의 담화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나왔다는 점,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을 ‘내심 높이 평가했다’고 의중을 밝힌 점 등은 북한이 회담 취소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특히 김 부상의 담화가 ‘위임’을 받아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한 만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담긴, 김 위원장의 담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편지에 대한 간접적인 형식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재개 가능성을 아예 접지는 않았음을 내비쳤다. 회담 취소를 통보하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달라’고 한 것은 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회담 취소 발표 뒤에도 ‘김 위원장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참여하길 선택한다면 기다리겠다’며 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회담 취소 통보까지 했지만, 언제든 다시 대화로 나올 뜻은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뜻은 하루 뒤에 나온 김계관 부상의 담화에 대한 트위터 응대와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밝힌 발언에서 한층 더 뚜렷해졌다.

어쨌든 지금 국면은 북한과 미국 모두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미 양국 정상이 직접 소통하는 역발상의 해법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없이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한 것을 의례적인 인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북-미가 정부 간 대화의 창을 닫지 말고 계속 대화를 해나가는 게 지금 시점에선 절실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정부에 떨어진 과제가 더욱 커졌다.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남-북-미 채널을 한층 더 긴밀하게 가동해야 한다. 특히 설치 후 한 번도 쓰지 않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 대전환 시기 ‘중국 역할론’ 고려해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일부터 이틀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으로 펼쳐지고 있는 한반도 대전환의 국면에 중국이 적극적 대응을 하겠다는 뜻이 담긴 행보로 이해된다. 이 전환의 시기에 중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왕이 부장 방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대목이다. 북-중 관계는 지난 3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으로 과거의 서먹함을 털어버리고 완전히 정상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사이 한반도 정세가 워낙 급속히 바뀌다 보니 중국으로서는 다시 한 번 북-중 관계를 다잡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도 중국이라는 뒷배가 받쳐줄 때 더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왕이 부장 방북은 특히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밝힌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서 중국이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깃든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사실 종전선언 문제는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정치적 선언인 만큼 남·북·미 3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미국과 수교해 적대관계를 일찍이 청산했기 때문에 종전선언에 반드시 함께할 필요는 없다. 반면에 평화협정 체결은 종전 이후 새 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인 만큼 교전 당사국인 남·북·미·중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쌓으면서까지 문을 닫아둘 이유는 없다. 정부가 오는 9일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지지 특별성명 채택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 회의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 정상이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인 셈이다. 한·중·일 3국 특별성명이 이 선언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하는 형식은 갖춰진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취임식에서 “우리는 한반도 역사의 진로를 바꿀 전례없는 기회를 잡았다”며 회담 성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송환이 임박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미 관계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전환의 국면에서 우리 정부는 한반도 주변국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관련국들이 모두 ‘윈윈’하는 균형점을 마련해야만 우리의 행동 공간도 넓어지고 남북 관계도 속도감 있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가시권 들어온 역사적인 남-북-미 ‘종전 선언’

북한과 미국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미국 언론은 17일(현지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가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8일 트위터를 통해 언론 보도 내용을 확인하면서 “면담은 매우 부드럽게 진행됐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실 있는 개최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이라 할 폼페이오 지명자가 평양으로 날아가 김 위원장과 직접 면담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는지 가늠케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언가 확실한 결말을 보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6월 초, 또는 그보다 일찍’이라고 한번 더 분명하게 밝힌 것도 기대감을 키운다.

폼페이오 지명자는 김 위원장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인 지난 12일 국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도 ‘큰 진전을 이뤘다’며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놓고 두 나라 사이의 조율이 상당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일괄 타결’을,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두 주장이 충돌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합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북-미는 최종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서로 진지하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 폼페이오 방북에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라인이 가동됐다는 보도도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정부의 중재 노력이 여기서도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의 종전 문제 논의를 축복한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전 문제가 논의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지지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이 논의에 임할 수 있게 됐다.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종전에 대한 추상적인 선언을 내놓은 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를 확인하고 다시 남-북-미가 함께하는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벽을 허무는 상징성 큰 사건이 될 것이다. 논의 진전 속도를 볼 때 7월27일 정전협정 65돌을 맞아 관련국 정상들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이 꿈을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함께 꾸기를 기대한다.

북한과 미국이 급속히 접근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다 제거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낙관적인 전망을 밝히면서도 회담 불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았다. 정상회담 개최지 결정도 그런 불확실성을 키우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상황을 보면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아직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회담 개최지에 미국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미 사이에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된다면, 북-미 대화의 길잡이로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적극 중재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사설]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 끼얹는 보수 일각의 몽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정상회담을 앞두고 5일 의전·경호·보도와 관련한 남북 실무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이 판문점 남쪽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만큼, 김 위원장이 어떤 방식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느냐를 비롯한 주요 관심사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을 생중계하는지, 두 정상이 하루 동안 몇 차례 만날 것인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부부 동반으로 나타날지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 부부가 군사분계선을 함께 걸어서 넘고,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이들을 맞는다면 남북 화해에 이보다 더 좋은 상징은 없을 것이다. 정상회담은 하루 열리지만 합의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몇 번이라도 더 만나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봄’이 무르익고 있다. 남쪽 예술단의 평양 공연으로 남북 사이에 정서적 친밀감도 깊어졌다. 북쪽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도 적극적인 태도로 남쪽 예술단을 맞았다. 문화 교류가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냉전의 벽을 허무는 큰 힘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화해 분위기가 퍼져 나가는 것이 못마땅한 듯 찬물 끼얹기에 여념이 없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남북 합동공연을 두고 자유한국당이 4일 낸 논평은 공당의 논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품위가 떨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반도의 봄이 온다고 난리지만, 아편으로 백일몽을 꿈꾸는 아편장수의 봄일 뿐”이라니, 논평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한반도의 봄을 어떻게든 거꾸로 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인 억지와 몽니만 느껴진다.

일부 보수언론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사과 발언을 비난한 것도 어이없다. 김 부위원장이 방북 예술단 첫날 공연에서 남쪽 언론의 취재를 방해한 일에 대해 ‘사죄’한 것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태도다. 그런데도 김 부위원장이 본인을 ‘남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고 한 김영철’이라고 소개한 것을 꼬투리로 잡아서 ‘천안함을 농락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남북정상회담은 우리의 안위가 걸린 역사적인 만남이다. 한반도 냉전구도를 극복하고 평화를 불러오는 일에는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지 않다. 건전하고 대안 있는 비판이 아닌 발목잡기식 비난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한겨레 사설] ‘남북정상회담’ 착실한 준비로 담대한 성과 내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가 16일 첫 전체회의를 열어, 4월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이달말 남북 고위급회담 추진도 북쪽에 제안하기로 했다. 준비위가 첫 회의에서 초점을 잘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사전 회담’ 성격이 짙다. 그런 만큼 청와대가 정상회담 준비위를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위주로 짠 것은 합리적이다. 남북의 경제협력 문제는 안보와 관련된 핵심 의제의 큰 틀이 잡히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진전이 이루어진 뒤에 다시 논의할 수 있다.

4월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이 만나 당일 합의를 도출하는 ‘하루 회담’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루 회담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준비만 잘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과거 1, 2차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2박3일간 열렸지만, 이번에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회담 장소의 성격상 복잡한 의전과 절차를 털어버리고 곧바로 핵심 의제로 들어가 결론을 끌어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4월 남북정상회담은 지난달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이미 간접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특사 방북과 방미로 비핵화와 북-미 대화를 포함해 가장 중요한 의제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따라서 하루 회담으로도 정상들이 뜻만 맞춘다면 얼마든지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남북 양쪽에서 의제를 집약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준비위가 해야 할 일이다.

4월 남북정상회담의 방식을 두고 등장한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에 대한 우려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우려할 일만은 아니다. 북한 핵무력이 고도화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상 간 회의를 통해 핵심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식일 수 있다. 지루한 논의 끝에 합의를 보더라도 정상들 간의 직접 담판이 빠진 탓에 합의가 무너져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5년 9·19공동성명도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 방안까지 합의했지만 북-미 사이 불신이 해소되지 않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사이에 이미 ‘비핵화’ 문제가 핵심 의제로 등장한 상태에서 열린다. 북한의 비핵화와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 제공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돼야 할 문제이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와 관련한 중대한 진전을 끌어낼 수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남북 정상이 합의를 본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에도 큰 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선순환을 이루면서 역사적인 대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정상회담 준비위는 이런 사안들을 꼼꼼히 검토해 남북 정상의 만남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위한 담대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정상 만날 때까지 ‘위험 관리’ 주력해야

지난주 남북, 한-미 연쇄 접촉으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는 데 이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처음으로 열리게 됐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면서 한반도 정세는 대전환을 향해 요동치고 있다. 양대 정상회담의 진전에 따라서는 비핵화 의제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까지 논의가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여러 위험 요소들이 깔린 길을 거쳐야 한다. 우리 정부는 잠복한 위험 요소들이 만에 하나라도 대사를 그르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관리해야 한다.

큰 성과를 안고 미국에서 돌아온 특사단은 12일부터 중국·일본·러시아를 방문해 회담 결과를 설명한다. 중국과 일본은 겉으로는 북-미 합의를 환영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과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의장국이었던 중국에서는 전광석화 같은 사태 진전에 영향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 북-미 사이 중대 합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크다. 정부는 두 나라가 이 국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합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상황 진전에 우군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와 지지를 구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합의는 최고 지도자 사이에서 워낙 갑작스럽게 결정됐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지루한 탐색과 조율의 과정이 생략됐다. 6자회담과 같은 주변국들의 연대보증이라는 안전장치가 동원될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로 열린다고 해도 이후 비핵화 조처를 이행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까지 다루어 나가려면, 이 나라들의 지지와 보증은 필수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는 눈앞의 북-미 정상회담 성공 여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정상회담 이후까지 고려하는 시야에서 중·일·러가 한반도 평화의 지원군이 될 수 있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미국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전격적인 북-미 합의’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이 30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북-미 회담이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고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반면에 행정부와 의회, 언론에서는 ‘고위험 도박’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주장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트럼프 개인의 기질로 보나 대외 성과로 악재를 돌파해야 하는 정치적 사정으로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우려를 물리치고 정상회담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들이 세를 얻으면 회담 전망이 나빠질 수도 있다. 일부 관리들은 회담이 실제로 열릴 가능성을 50% 미만으로 본다는 보도도 있다. 상황이 만만하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알려 미국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마침 이번주 중에 강경화 외교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난다. 틸러슨은 미국 행정부 안에서 대표적인 협상파다. 이들이 힘을 얻어 스스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이다. 우리 정부는 모든 채널을 가동해 북-미 대화에 따르는 변수를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의 파격적인 대화 제안, 이젠 미국이 답할 때다

북한이 대북 특사단에 밝힌 ‘비핵화 의지’는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특사단 앞에서 직접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며,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대화 상대자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소회까지 드러냈다. 비핵화 의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아가 북한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엔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사실상 핵 개발 프로그램의 잠정 중단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미국이 북한의 뜻에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답할 차례다.

특사단은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앞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입장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메시지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밝힌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제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추가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북한이 북-미 대화에 거는 기대가 확인된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이 특사단이 방북 결과를 발표한 뒤에도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언급’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비핵화 문제가 북한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임을 방증한다. 이런 사실은 역으로 이번 남북 합의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미국과의 대화가 틀어질 경우 또다시 핵 대결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국의 반응이 일단 긍정적인 것은 다행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사단의 귀환 발표가 나온 뒤 ‘북한이 진지하다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혼선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점은 일말의 걱정을 남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특사단 발표 뒤 대북 성명을 내 ‘북한에 최대 압력을 가하는 데 전념하고 있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엇나가는 듯한 말을 했다. 이런 불일치가 향후 북-미 대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워싱턴을 방문하는 특사단의 임무는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데 외교 역량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무역 전쟁’ 방아쇠 당긴 트럼프의 ‘철강 관세’ 무리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미 철강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수입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주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할 예정이다. 미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3가지 옵션 중 한국 등 12개 국가에만 53%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채택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다만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감안하면 서명 단계에서 또다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의 근거로 냉전시대인 1962년 제정돼 지금은 사문화한 ‘무역 확장법’을 동원했다.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이 탱크와 비행기 제작에 사용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외국 업체들이 우리 공장과 일자리를 파괴했다”고 말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미 철강산업의 퇴조는 자체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 크다.

이런 까닭에 미국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대부분 관세 부과에 반대했고,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 몇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수차례 회의를 하며 ‘신중한 결정’을 조언했다고 한다. 미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소수의 몇개 기업에는 잠시 유익할 수 있겠지만 더 많은 기업을 해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가 임기 중 최대 정책 실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철강·알루미늄을 원료로 하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철강·알루미늄 산업에서 나타날 고용 증가 효과가 다른 산업의 고용 감소로 상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 의원 3분의 1을 선출하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빼앗기면 그렇잖아도 ‘러시아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최악의 경우 탄핵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수입 규제를 통한 일자리 확대를 성과로 내세워 자신의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 노동자 지지를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다. 국내 정치를 위해 국제무역 규범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보복 관세는 ‘무역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지켜야 할 국익은 미국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주요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처”라며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무시하고 중국 기업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미국의 잘못된 방식에 대해 필요한 조처로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하겠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면서 그에 비례하는 대응을 하겠다”며 보복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보호무역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무역 규범에 근거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통상 문제는 오직 국익이라는 잣대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세계무역기구 제소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미국이 받아들지 않으면 사실상 강제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만만하게 보여 계속 당한다. 추가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국제기구를 통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의 무역 보복으로 피해를 보는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공동 대응에도 나서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수출 시장 다변화 등 수출 산업의 체질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미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여야 우리 경제가 무리한 통상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다.


[한겨레 사설] 자유한국당의 ‘막가파식’ 김영철 방남 반대, 도 넘었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막무가내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김 부위원장 일행의 평창행을 막겠다며 1박2일 밤샘 농성을 하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이적행위” “연방제 통일 추진” 등등 마구잡이 색깔론을 서슴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김무성 의원 등은 24일 오후부터 경기 파주 통일대교 들머리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25일 오전에는 홍준표 대표 등 의원 수십명이 가세해 차량을 동원한 ‘육탄 저지’에 나섰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통일대교 동쪽 우회로를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자유한국당은 26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규탄대회까지 계획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 부위원장 방남을 비판하는 것은 과거 입장을 뒤집는 ‘내로남불’에 해당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판 행태가 제1야당의 수준을 의심하게 할 정도라는 점이다.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는 종북 주사파 참모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반대한민국적 이적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북한이 보낸 대표단을 맞은 게 ‘이적행위’이고 ‘주사파의 농단’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남북연방제 통일을 시험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결한 의제가 될 것이고, 국가보안법은 폐지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펴는 수준이다. 자유한국당 처지가 옹색해서 어떻게든 정부 여당과 각을 세워보겠다는 것일 테지만,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다.
제1야당이 국가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사안을 이렇게 무책임하고 가벼운 언동으로 다뤄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언제까지 극우의 길로만 빠져들 것인가. 몰락한 보수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울 따름이다.


[한겨레 사설] ‘북 김영철 사살하라’는 야당, 무책임의 극치

자유한국당이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맹렬히 비판하며 극언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 대표단 단장인 그를 ‘천안함 피격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해서다. ‘한국땅을 밟는 즉시 사살하라’거나 ‘연쇄살인범 긴급체포하라’는 험악한 발언과 ‘육탄저지’ 얘기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선 ‘반역행위’ ‘이적행위’ ‘북한과 공범’이란 표현까지 사용했다. 야당이 남북관계 현안에서 정부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곤란하다. 감정에 치우친 극단적 대응이 살얼음판 같은 한반도 정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 폐막식 ‘손님’ 자격이라지만 김영철의 방문을 언짢아하는 국민도 제법 있을 것이다. 김영철이 천안함 피격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분명치 않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어떤 기관, 어느 인물이 주도했는지 특정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국정원도 23일 국회 정보위에서 “(배후로)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김영철이 지시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그를 독자 제재 대상에 올릴 때도 천안함 사건과 직접 연계하진 않았다. 그에 대한 제재는 금융제재일 뿐 여행 금지는 아니어서, 이번 방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남북 군사회담 당시 북쪽 수석대표이던 그를 거부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터이다. 새누리당 역시 당시엔 그를 천안함 사건과 연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대화 진전을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자유한국당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이중잣대를 거둬야 한다. 북한 의도가 ‘남남갈등 조장’에 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더욱 냉정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게 공당의 자세일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 문제와 무관한 국회 사법개혁특위까지 멈춰 세웠는데, 이런 태도야말로 북한 의도에 말려든 것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현재 북한에서 남북관계 최고 책임자다. 한반도 문제와 남북관계 진전을 놓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인물이란 얘기다. 자유한국당 요구대로 확실하지 않은 과거 행적을 문제삼기 시작하면 북한과 대화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 된다면 어떤 인물과도 얼굴 맞대는 일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한겨레 사설] 트럼프 행정부 무역압박 막말, 이게 동맹인가

미국 상무부가 16일(현지시각)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조사를 통해, 미 철강산업을 살리기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할 대상으로 지목한 12개 국가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미 상무부는 국가 핵심 기반시설 유지에 필요한 철강을 자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과도한 철강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3가지 수입규제 방안 중에 중국, 한국 등 12개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 관세 부과를 제시했다.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인 캐나다, 일본, 독일 등은 제외됐다. 미국이 선정 기준을 밝히지 않아, 산업통상자원부가 “대미 수출이 많으면서 (값싼) 중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 포함된 것 같다”고 자체 분석할 뿐이다.

최근 미국이 보여주는 ‘무역 압박’ 행태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을 진정 ‘동맹’으로 여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최고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일종의 보복 관세인 호혜세 부과 방침을 언급하면서 한국·중국·일본을 지목해 “이들 나라는 25년간 미국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13일 백악관 공정무역 간담회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지엠(GM)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는 “지엠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온다”는 확인도 안 된 말을 내뱉으며 환영하는 목소리까지 냈다. 지엠의 공장 폐쇄로 시름에 빠진 동맹국 정부와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입장은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틈날 때마다 제조업 중심의 한-미 무역역조 공격에 열을 올리지만, 서비스수지 부문에서 미국의 흑자가 훨씬 크다는 점은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대국 입장은 안중에도 없이 막말을 내뱉는 오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쟁을 함께 치른 한국과 미국은 때때로 ‘혈맹’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미 관계는 절대적이다. 양국은 안보·경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백번을 양보해 한-미 무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할 일이다. 이를 원색적 용어를 써가며 대놓고 떠드는 건 도대체 무엇을 원하기 때문인가. 이러고도 ‘동맹’이라 하는가.


[한겨레 사설] 김여정 통한 ‘남북정상 간접 대화’에 거는 기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9일 전용기편으로 남한을 찾았다. 이들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고, 10일엔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한다. 두 사람,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위급 실세 메신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는 자리는 사실상 ‘간접 정상회담’에 가깝다. 이들이 들고 온 북한 최고지도자의 친서 또는 구두 메시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건군절 열병식 수위 조절에서,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열의와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남한 정부도 외교적 부담 속에 국제사회의 ‘제재 예외’를 얻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사리 마련된 자리이니만큼, 의례적 인사말이나 원론적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툭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진전을 이뤄낼 수도 있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간접 대화’ 성격을 띠는 10일 오찬 회동이 한반도 문제의 국면 전환을 이루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폭넓은 수준으로 무게감 있는 대화를 하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중요하다. 남북 모두 과감하고 전향적인 ‘통 큰 대화’를 머뭇거려선 안 된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하지 못할 의제가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대북특사 파견 문제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남북관계의 한 단계 높은 진전을 조성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한반도 위기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를 피하고 갈 수는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만남이 어떤 형식이든 북-미 간 접촉의 단초를 여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한다.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단박에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유난히 춥고 칼바람 불던 이 겨울이 끝나간다. 차갑게 얼어붙은 한반도에도 봄이 오길 온 겨레가 소망한다. 남북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평창 올림픽 이후에 더욱 따스해질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김여정 파격적 방남, 솔직한 대화·신뢰의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평창 겨울올림픽 고위급 대표단 단원으로 남한을 방문하기로 했다. 형식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실질적인 ‘북한 2인자’로 꼽히는 김여정의 방남은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남한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돌아보면, 지난달 초 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뒤 북한은 대규모 응원단과 예술단 파견,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서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을 이어왔다. 특히 김여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직계가족으로서 누구보다 김 위원장과 가감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로 꼽힌다. 김정은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여동생을 남쪽에 보내기로 한 건, 평창 올림픽에 임하는 북한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쪽과 여과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깔려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여정을 통해 북한 정권의 속내를 들을 수 있고, 우리 정부의 의사도 훨씬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북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 소통에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신뢰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서 ‘평창 이후’까지 남북대화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김여정의 방문은 궁극적으로 핵·미사일 문제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그동안의 ‘강한 제재’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평창을 발판으로 한 ‘북-미 대화’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제재’는 ‘평화’를 향한 수단이지, 제재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제재 지속 여부와 상관없이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는 건 피할 일이 아니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탈북자를 만나는 것보다 북한 대표단을 만나는 게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에 다가서는 현실적인 길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서, 올림픽을 계기로 모처럼 형성된 한반도 평화 기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상황 관리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무모하기 그지없는 ‘코피 전략’, 거론조차 말아야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지명 철회를 계기로 제한적 대북 예방타격을 뜻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코피 전략’이란 소규모 외과수술적 타격으로, 북한이 맞대응하지 않을 수준에서 핵 관련 시설 등 북한 핵심기지를 제한적으로 타격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군사옵션 가운데 하나다. 이 전략이 백악관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됐는지는 알 수 없다. 빅터 차 내정자의 지명 철회 이유가 이 전략에 대한 반대 때문인지, 개인적 이유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30일 그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보면, 인선 진행과정에서 ‘코피 전략’을 두고 강온 논쟁이 벌어진 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 상황을 심각하고 우려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미국)가 공격해도, 북한이 감히 반격 못 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나 한심하고 위험스럽다. ‘북한 반격=체제 붕괴’라는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에 따른 판단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강경파들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군사적 판단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는지 의문이다. 수백만명 목숨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짓이다.
코피 전략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강경파 군 출신이거나 군사·안보 분야 문외한들이고, 특히 한반도나 북한에 대한 이해는 제로에 가까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인사들이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오만하고 경솔하기까지 하다. 빅터 차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보면, 일부 초강경론자들은 ‘코피 전략’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남한 거주 미국인 23만명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장기적 이익’과 ‘본토 거주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한 일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한국인 5천여만명의 생존은 아예 논외다.

최근 백악관 내 대북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이유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접촉이 가시화한 것과 관련이 깊다. 한반도가 화해 분위기로 접어드는 것에 제동을 걸려 한다는 분석이다. ‘비핵화’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에, 제재 강화 시점에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면 북핵이 ‘고착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로 재선은 고사하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자칫 이른 ‘레임덕’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내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북 타격까지 고려해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실제로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최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비공개 모임에서 ‘제한적 대북 타격이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비상한 상황이다.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서, ‘코피 전략’과 같은 무모한 대안은 아예 테이블에서 제외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 당시 남북이 약속한 군사당국 회담도 이른 시간 안에 열어 한반도 군사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게 필요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불씨를 살려나가는 게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됐다.


[한겨레 사설] ‘위안부’, 국제 기준에 맞는 해결을 일본에 촉구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했다고 우리 정부가 9일 선언했다.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증 결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당연한 결정이다. 당시 합의 때 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란 표현은 참으로 오만했다. 피해자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압박한 것은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일본이란 국가가 전시에 여성 인권을 유린한 사실에 대한 인정, 마음을 담은 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배상, 이를 거쳐 피해자들의 용서가 이뤄지지 않는 한 누구도 ‘최종적 해결’을 입에 담을 권리가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자 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 성폭력에 관한 보편적 인권 문제”라며 “인류 역사의 교훈이자 여성인권 증진 운동의 국제적 이정표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눈앞의 요구에 매달려 잘못된 위안부 합의를 대충 얼버무리고 간다면, 우리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리고 인류 역사에 죄를 짓게 된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을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일본에 해결을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5년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받아들이고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협상을 다시 시작해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낮다. 재협상은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기만 할 뿐이다. 그보다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정부가 일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반환 요구가 있음에도 일본 출연금 10억엔의 처리 방안을 일본 정부와 협의하기로 한 것 또한 양국 관계의 앞날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본다.

2015년 말 엉터리 합의가 이뤄질 때 47명이던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지금 31명으로 줄었다. 다들 고령자다. 일본이 국제 보편 기준에 맞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역사는 위안부 강제동원뿐 아니라, 일본이 그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분명히 기록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2년만의 연락채널 복원, 남북관계 개선 출발점으로

남북 간의 판문점 연락채널이 3일 오후 3시30분 다시 개통됐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함께 북한이 일방적으로 연락채널을 끊은 뒤 23개월 만에 복원된 것이다.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 표명을 시작으로 2일 남한 정부의 고위급 회담 제안, 3일 판문점 연락채널 재가동 등 남북이 연이어 서로에게 화답하는 모양새다.

연락채널 정상화는 남북관계 복원의 첫걸음으로,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남북이 매일 하루 두차례씩 전화통화를 이어가던 판문점 연락채널은 남북 대화 통로가 상시적으로 열려 있다는 상징성 외에도, 소통 부재로 인해 오해가 불거지는 걸 미연에 막고 긴급 상황을 공유하는 실질적인 숨구멍 구실을 해왔다.

연락채널 정상화에 따라 남북 당국회담도 어떤 형태로든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남북 연락채널 재개통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우리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걸로 미뤄, 북쪽은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회담으로 성격을 제한하려는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남북 사이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남쪽 제안대로 고위급 회담으로 여는 게 더욱 좋을 것이다. 설령 실무회담으로 국한된다 하더라도, 남북 접촉만으로도 관계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미국은 남북 대화 움직임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로켓맨(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처음 한국과의 대화를 원한다. 좋은 소식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남북이 회담을 열기로 결정한다면 그건 그들의 선택”이라며 “김정은이 진지하게 테이블에 앉아 회담할지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신년사에 비핵화 언급이 전혀 없고, 남쪽에는 우호적 손짓을 보내면서 미국을 향해선 “핵 단추가 책상 위에 있다”고 협박한 북한 태도에 불만과 우려를 드러낸 듯하다. 하지만 이날 국무부 대변인이 언급한 것처럼 한-미 동맹은 북한이 이간질한다고 멀어질 그런 관계가 아니다. 물론 북한 태도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북한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하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이제 막 물꼬를 트는 남북 대화가 곧바로 비핵화 논의로 이어지는 선이 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북-미 대화의 문을 여는 연결고리로 작용할 여지는 분명히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남북 대화를 적극 지지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도 일치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노력을 한·미가 함께 해나가기를 촉구한다.


[한겨레 사설] 개성공단 폐쇄도 ‘박근혜 독단 결정’이었다니

지난해 2월 이루어진 개성공단 철수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결정됐다고 28일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밝혔다. 한반도 정세의 안전판이었던 개성공단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폐쇄되고 만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이 대통령 개인의 생각에 따라 멋대로 뒤바뀌면서 한반도 위기가 증폭되는 결과를 빚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혁신위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보면,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의 즉흥성을 감추기 위해 국민을 속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폐쇄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의 2016년 2월8일 지시로 이미 결정됐으며 이틀 뒤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는 이 지시에 사후적 정당성만 부여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고 발표했다. 중대한 외교·안보 사안을 놓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는 절차도 생략했다. 박 전 대통령이 마치 유신시대의 ‘통치행위’처럼 매우 자의적으로 남북문제를 다루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이유로 ‘임금의 핵개발 전용’을 들었는데 이 또한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주장은 북한 정권의 내부 사정을 깊숙이 알 길 없는 탈북자들 전언이나 정황에 기댄 것이어서 당시에도 객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박근혜 청와대’는 이런 신빙성 없는 주장을 폐쇄 근거로 들이밀었으니, 대북정책이 얼마나 졸속적으로 결정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남한 기업의 손해는 한해 5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상 우리 기업을 제재한 셈이다. 정부는 혁신위 권고대로 경협 사업자에 대한 손실보상 법률을 마땅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2004년 출범 이후 꾸준히 발전해 남북관계의 보루 구실을 했다. 북한이 공단 폐쇄 뒤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한 사실은 전임 정부의 결정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남북관계만 악화시켰음을 확인해준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이루어진 개성공단 폐쇄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남북 경협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유엔 ‘협박’하다 거꾸로 ‘왕따’당한 미국

유엔은 21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찬성 128, 반대 9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 국가엔 원조를 끊겠다고 ‘협박’하고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미국은 (유엔에) 기여하라고 요청받을 때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흐름을 돌리진 못했다.

이번 일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 추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엔의 리더였던 미국이 어느새 국제 질서의 ‘수호자’에서 ‘파괴자’로 바뀌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별개 국가로 간주하는 ‘2국가 해법’과, 점령지를 수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 오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스라엘의 갖은 요구와 로비에도 미국은 이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다분히 국내정치적 목적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 혼란을 무시한 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했다.

게다가 유엔총회 표결을 앞두고선 마치 ‘깡패’처럼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를 협박했다. 세계가 알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에 ‘원조를 중단하겠다’며 찬성표를 강요했다. 치졸한 짓이다. 또 ‘유엔 분담금’을 언급했다. 올해 유엔 예산의 22%를 미국이 부담했다. 미국 없이 유엔은 운영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원조’와 ‘유엔 분담금’을 온전히 이타적인 자선사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은 초강대국이자 경제대국인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18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미 국가안보전략의 근간으로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principled realism)를 제시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벌이는 행동엔 ‘원칙’도 ‘현실’도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 사설] 한·중 정상의 ‘한반도 평화 4원칙’, 실천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4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4대 원칙은 △한반도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확고히 견지 △북한 비핵화 등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 해결 △남북한 관계 개선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이다.

한반도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4대 원칙 합의는 뜻깊은 일이다. 두 정상의 합의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뿐 아니라, 한·중 양국의 국익이 온전히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시험발사로 인해 ‘군사적 옵션’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한반도 문제가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나온 이번 한·중 정상의 합의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절대원칙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을 향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분명히 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갈등으로 극도로 악화됐던 한-중 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게 된 것도 고무적이다. 양국 간에 ‘사드’와 관련한 이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시 주석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지금 모두가 아는 이유로 중-한 관계는 후퇴를 경험했다”는 정도로 에둘러 말했을 뿐, ‘사드’나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등 한국 쪽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문 대통령도 방중 첫날임에도, 노영민 주중대사를 난징대학살 추모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시키는 등 성의를 보여 이날 시 주석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양국 정상의 이처럼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는 모습은 관계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본다.

한·중 양국은 북핵 문제를 해소하고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려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증진해야 하는 공통의 숙제를 안고 있다. 두 나라는 한반도 해법의 전략적 차이를 인정하되, 이번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처럼 ‘평화적 해결’이라는 공통 목표를 확대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구동존이’(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역지사지’(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사소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해 서로를 자극하는 일을 피하는 게 옳다.
올해는 한-중 수교 25주년이기도 하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그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요청한 것처럼 내년 2월 평창올림픽에 시 주석이 방한해 우의를 다시 한번 다져나가는 모습도 보고 싶다.


[한겨레 사설] ‘전쟁’ 언급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미 공군이 4일 미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6대를 포함한 230여대의 항공기로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를 시작했다. F-22 6대를 한꺼번에 한반도에 전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략무기인 장거리전략폭격기 B-1B ‘랜서’ 편대도 폭격 연습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규모 훈련은 11월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연례 훈련이라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분위기는 초강경 일변도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현지시각)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김정은은 자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군사력 전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3일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대북 선제공격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에 주한미군의 가족 동반 중단을 요구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에서 ‘군사적 옵션’, ‘선제타격’ 등의 단어가 지금처럼 자주 오르내린 적이 없다. 북한 핵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워싱턴까지 이르렀다는 점이 미국 정부를 매우 예민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원인 제공자가 북한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처럼 ‘전쟁’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처지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한반도 상황 관리에 최우선을 두고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번 훈련이야 예정대로 할 수밖에 없더라도, 2월 평창겨울올림픽과 맞물린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엔 차원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를 한 마당에 개최국이 연례 훈련이라는 이유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는 건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미국이 주도하는 강경 일변도 분위기에 끌려가기만 하면, 긴장 완화를 위한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중심을 잡는 게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한심하고 위태로운 송영무 장관의 ‘해상봉쇄’ 발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1일 국회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대응해 거론되는 미국의 대북 해상봉쇄 조처에 대해 “미국 쪽으로부터 요청이 오면 결정할 일인데, 거부할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해상봉쇄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더구나 송 장관은 이런 방향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결론’이라는 식으로까지 언급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해상봉쇄를 논의한 적 없고, 앞으로도 해당 계획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는 청와대 공식 설명과 배치된다. 청와대는 “송 장관 개인 의견으로 보인다”고 해명했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다. 해상봉쇄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경솔한 발언은 정부 정책의 신뢰를 추락시킬 위험이 크다. 또 대북 해상봉쇄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혼란을 빚을 우려가 있다.

일체의 무기나 물자의 출입을 금지할 뿐 아니라 선박의 나포·격침까지 포함하는 ‘해상봉쇄’는 군사적 충돌 위험성을 전제로 한다. 우리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처다. 북한 해상을 봉쇄하려면 동해와 서해를 완전히 둘러싸야 하는데,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북한은 해상보다 북-중 국경을 통한 운송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실질적 압박 효과도 떨어진다.

미국은 북한의 ‘화성-15’형 시험발사를 계기로, 북핵이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본토를 실질적으로 겨냥할 수 있다고 여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하고, 한국·일본 등과 함께 대북 해상수송로 검색을 검토하는 등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려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긴 하지만, 해상봉쇄 또는 북한 선박 검색작전 참여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자칫 한반도 연안에서 우발적인 군사 충돌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뿐 아니라 한반도 위기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때에 국방부 장관이 핵심 사안에서 정부 기조와 완전히 상반된 사견을 일방적으로 노출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난맥상을 다시 드러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송영무 장관의 ‘말실수’를 위태롭게 지켜봐야 하는가.


[한겨레 사설] 촛불 1년,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보루다

1년 전 이맘때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에는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촛불이 켜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화문 일대는 촛불의 바다로 뒤덮였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외침이 온 나라에 울려퍼졌다. 주말인 28일에는 촛불 1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촛불혁명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적 명제를 시민들 스스로 확인해냄으로써 민주주의의 폭과 깊이가 크게 확대됐다. 국민을 배신한 불의한 국가권력을 심판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이던 박정희 이데올로기, 극우 보수주의를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시민의 집단지성이 머뭇거리는 정치권을 이끌어 한걸음씩 나아가도록 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5·9 대선을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시민들은 비폭력 평화적 수단으로 일관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유례없는 찬사를 받았다.

촛불의 요구는 “이게 나라냐”는 구호로 압축된다. 시민들의 외침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정유라 특혜입학에서 보듯 부정부패와 비리를 없애고, 금수저 흙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대물림과 기회의 차별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외침이었다.

뒤돌아보면 지난 1년 성과도 있었지만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부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확대, 탈원전 숙의민주주의 도입 등 가시적 조처들이 있었지만, 더 중요한 법·제도·정책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정농단의 온상인 비민주적·탈법적 잔재들을 일소하고 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국정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검찰 개혁과 재벌 개혁, 정경유착·갑질 근절, 방송 정상화 등을 위한 과제들을 착실히 추진해야 한다. 실의에 빠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선거법과 헌법 개정을 서둘러 촛불의 나라에 걸맞은 정치 제도를 갖춰야 한다. 촛불로 지킨 국가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북핵 문제도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촛불의 요구는 미완이며 촛불혁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촛불의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를 중심으로 강고한 개혁 블록을 구축해야 한다. 개혁과 청산, 미래를 위한 협치와 연대의 폭을 넓혀야 한다. 촛불 1년을 지나며 움츠렸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 정당과 언론을 앞세워 반격에 나서고 있다.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며 자신들이 10년 세월 쌓아온 적폐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힘있고 질서있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정 전반의 적폐 청산은 정상국가, 선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경로다. 블랙리스트, 국정원 댓글, 세월호 7시간,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덮을 수 없다. 미래로 가기 위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적폐 청산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처벌보다는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 등 제도적 청산도 중요하다.
촛불혁명 완수를 위해선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와 감시가 필요하다. 촛불의 요구를 정치권에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시민 집단지성이 촛불을 이끌었듯 정치가 제대로 길을 잡도록 시민이 견인해야 한다. 시민이 들어올린 촛불을 정치가 꺼뜨리도록 놔둬선 안 된다. 항상 마음속에 촛불을 간직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한겨레 사설] 통화스와프 연장, ‘한-중 관계’ 회복의 계기 되길

우리나라와 중국이 지난 10일 만료된 56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다시 체결하기로 12일 합의했다. 협정 공백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 협정을 다시 맺기로 한 사실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는 미국 워싱턴에서 발표된 것도 잘된 일이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크게 악화된 양국 관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호전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2008년 12월에 300억달러 규모로 처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2011년에 560억달러로 규모를 확대했고, 2014년 10월엔 협정을 3년 연장했다. 한-중 통화스와프 규모는 현재 우리나라가 맺고 있는 전체 협정 액수의 46%를 차지한다. 중국 쪽에서 봐도 우리나라와 맺은 협정이 홍콩 다음으로 액수가 크다. 두나라 경제협력 관계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큰 것이다.

이번에 중국과 협정을 다시 체결한 것은 일본과 맺은 통화스와프 협정이 파탄난 것과 대비된다. 일본과는 2001년 처음 협정을 맺어 2011년 700억달러까지 규모를 키웠으나,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관계가 나빠지면서 2015년 2월 협정이 종료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협상마저 중단해버렸다. 일본은 통화스와프 협정을 마치 우리나라에 베푸는 시혜처럼 여기고 신경질을 내듯 거둬들였다. 이와 달리 중국은 협정에 신중하게 접근함으로써,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외교 상대임을 보여줬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처를 아직 거두지 않고 있다.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통제하고 있고, 한국상품 불매를 부추겨온 언행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유통업체와 자동차업체, 국내 관광업계가 입은 손실이 매우 크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불만을 진지하게 경청하되, 한국 내 ‘반중 심리’를 키울 경제보복 조처를 거두도록 설득해야 한다.
국가 간 경제 교류와 협력은 양쪽 모두한테 이익이 되기에 하는 것이다. 경제보복 조처는 중국에도 손실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중국 정부도 양국 관계의 앞날을 해칠 경제보복을 거둬들이고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두나라가 정상회담을 서둘러 열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전시작전권 환수’ 빠를수록 좋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 의지를 다시 밝혔다. 문 대통령은 28일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정부는 전작권 조기 환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고, 국민은 군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은 한 나라의 최고 주권 사항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에 우리가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비정상이다. 하루라도 빨리 환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작권 환수는 애초 노무현 정부 시절에 2012년까지 완료하기로 미국과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이 합의를 뒤집어 2015년으로 미뤘다. 박근혜 정부는 이 합의를 다시 바꾸어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보수정부가 주권을 스스로 팽개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시기에 전작권을 임기 안에 환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전작권 환수가 조속히 가능하도록 협력한다고 합의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국군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들어 전작권 조기 환수에 반대하고 있으나,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 군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것도 우리 국방 역량을 스스로 비하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전시 작전 지휘를 미군이 주도할 경우 작전 우선순위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게 된다. 한국의 의사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 한국의 뜻과 무관하게 북한과 전쟁을 벌일 개연성도 없지 않다. 한반도 안보 위기가 커지는 때일수록 전시 작전을 통제할 권한을 한국이 쥐는 것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면책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 의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 평화를 지켜가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전작권 환수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10월 말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부터 전작권 조기 환수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임기 안에 전작권 환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언제까지 외국군에 주권국가의 작전권을 맡겨둘 수는 없다.


[한겨레 사설] 또 ‘미사일 발사’ 북한, 폭주의 끝을 보겠다는 건가

북한이 15일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 대북제재 결의(2375호)를 채택한 지 불과 3일 만이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를 비웃는 듯한 모습이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나오든 ‘핵무력 완성’이란 전략적 목표를 향해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 무모함과 광폭함에 아연할 따름이다.
북한이 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실제 비행거리는 3700여㎞였다고 한다. 미군 전략기지가 밀집한 괌을 실제로 타격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이에 대응해 우리 군은 현무-2 탄도미사일 2발(순항거리 250㎞)을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실사격 훈련을 실시했는데, 그중 1발이 추락했다. 북한이 계속 중장거리미사일 시험에 성공하는 상황에서 우리 군이 단거리미사일 발사에 실패한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는 데엔,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택하기 쉽지 않고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더 이상의 제재 역시 쉽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이날 발 빠르게 북한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전면적이고 엄격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의회도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도발”이라며 “아주 위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도발을 계속할수록 북한은 점점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15일(현지시각) 소집되는 유엔 안보리에선 대북 추가 제재 문제를 또다시 논의한다. 김정은 정권은 국내외적 환경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위기 타개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통일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바른 결정이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하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옳지 않다. 이번 지원 대상은 영유아·임산부·노약자들이다. 품목도 시리얼과 전염병 예방 백신 등으로 제한돼 있다. 또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미국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은 국제 정세나 북한 도발 여부에 따라 중단 또는 재개하는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도적 측면만 보고 이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릴 대화와 협상의 단초는 그런 꾸준한 행동을 통해 열릴 수도 있다.


[한겨레 사설] 미·중, ‘남 탓’ 말고 북핵 문제 책임있게 나서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비판하면서 “내가 한국에 말했듯,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트위트 글을 남겼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당일,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를 향해 ‘거봐, 내가 뭐랬나’ 수준의 말을 한 셈이다. 황당하다. 중차대한 위기 상황에서 ‘남 탓’부터 하고 보는 미국 대통령이 이전에도 있었던가 싶다.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발언으로 거칠게 북한을 위협했고 북한도 구체적인 ‘괌 포위사격 검토’ 발언으로 맞대응해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했다. 상황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자 ‘김정은이 현명하다’고 칭찬하고, 미사일을 발사하자 다시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면서 갈팡질팡 행보를 보인 게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북핵 사태 대처법이었다. 혼선을 부채질하면서 일관된 대북 대응을 흐트러뜨린 게 누구였는지 묻고 싶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전에 모호한 언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검토’ 발언까지 했다. 한-미 동맹을 대하는 정상적인 태도라 할 수 있는가. 미국 언론들도 이 점을 일제히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 발언’ 트위트와 관련해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대북 한-미 공조에도 장애”라는 전문가들 우려를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시사 발언과 관련해 “최악의 시기에 한-미 관계를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 “한국과 미국의 유대가 틀어지기를 바라는 김정은에게 선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는 사태까지 이른 데에는 이 문제를 아시아태평양지역 평화라는 관점에서 합심해 해결하지 못하고 서로 상대방을 탓하며 갈등한 미국과 중국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미국은 중국을 향해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압박하지만 중국은 그럴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중국) 국가이익 관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지 알 수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중국 반응을 보면, 북핵 개발보다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하는 등 철저히 자국 중심 사고와 전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와중에 동북아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세계의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국내 지지층이나 자국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행동해선 안 된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과 중국이 함께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원세훈 ‘대선개입’ 유죄, 이젠 몸통 밝혀낼 차례다

법원이 댓글공작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국정원법은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인정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30일 이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선거와 정치에 개입해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조직적으로 개입해 박근혜 후보를 위해 뛴 사실이 법적으로 확인됐으니 당선의 정당성까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재판 지연도 그렇거니와 당사자가 쫓겨나 구속된 다음에야 이런 판결이 내려진 것은 사필귀정이라 하기에도 낯뜨겁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이 던지는 교훈과 과제는 무겁다. 지난 2012년 12월11일 댓글공작을 실행해온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이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각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4년8개월 넘게 끌어오면서 권력기관들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원세훈 국정원’은 총선·지방선거를 앞두고 ‘SNS 장악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을 뿐 아니라 “후보들 교통정리를 챙기고”(2011년 11월18일 부서장회의 속기록) “후보를 검증”(2009년 6월19일)하는 일까지 맡았다. 민간인 3500명을 동원해 30개의 여론조작팀을 운영하는 등 대선 공작에도 발벗고 나섰다. ‘김대중의 조국은 북한’ ‘저세상 와서 보니 큰죄가 많았군요’ 등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글도 이들이 달았다. 고문을 못 하게 되자 여론조작이란 새 정치공작 기법을 창조한 셈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김기춘-황교안-조영곤을 앞세워 대선개입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채동욱을 쫓아내고 윤석열을 좌천시켰다. 갖은 방해 속에 절반의 진실은 은폐되고 조작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은 그 절반마저 제대로 단죄하지 않았다. ‘국정원법 위반이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이른바 ‘지록위마’ 판결에 이어 대법원까지 핵심 증거인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석연찮은 전원일치 판결을 내렸다. 정권이 바뀌고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TF)가 속기록 전문을 건네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지 아찔하다.
이 사건의 그간 전개 과정은 국정원·검찰·경찰·법원 등 곳곳에 쌓인 적폐를 왜 청산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이제는 박근혜 정부 국정원까지 포함해 정치공작의 몸통과 배후를 제대로 밝혀내야 할 차례다.


[한겨레 사설] 5·18 특별조사, 온전한 ‘진상 규명’ 계기 되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광주 출격 대기 여부와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사격 등 2건에 대해 국방부에 특별조사를 지시했다. 5·18과 관련해 대통령이 사건을 특정해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 등으로 5·18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통령 특별지시까지 나온 만큼, 온전한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5·18 당시 전투기에 광주 출격 대기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은 최근 <제이티비시>(JTBC)가 전투기 조종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했다. 시민군이 진압군을 밀어내고 도청을 장악하던 1980년 5월21~22일 경기 수원 제10전투비행단에 출격 대기명령이 내려졌고, 광주로 출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게 증언 내용이다. 당시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한 공대지 폭탄으로 무장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신군부가 전투기로 시민군을 폭격하려는 준비까지 한 게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입안 과정과 책임자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전일빌딩 헬기 기총사격은 올해 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흔적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계엄군이 공중에서 시민들에게 사격했다는 구체적 정황인 셈이다. 군 당국은 이전까지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부인해왔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 3월 이곳을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혀온 5·18 진상 규명 의지를 더욱 명확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5·18 37돌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를 본 뒤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국민 속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군 당국은 속도감 있게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별조사를 계기로 더욱 폭넓고 근본적인 5·18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문 대통령 공약사항인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문제를 비롯해 5·18 진상규명특별법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등의 제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5·18이 우리 현대사에 제대로 자리매김하도록 모든 이들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 위기, ‘대북 특사’로 돌파구 열어야

북한과 미국이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고 있다. 북한의 제2차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한반도 정세가 최악의 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북한이 미국령 괌을 포위사격 하겠다고 위협한 데 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연일 거칠고 위험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강 대 강 대결이 한반도에 파국적 상황을 불러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가 확고한 중심을 잡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북-미의 대결이 격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변화를 모색하는 듯한 흐름도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북한에 대해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놓으면서도 이와 함께 “(북한과 협상할) 때가 됐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 눈길을 끈다. 워낙 럭비공 같은 발언을 해온 터라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심중에 ‘대결과 협상’ 둘 다 들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초강경 발언도 표면의 강도만 볼 것이 아니라 이면의 의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 방안을 8월 중순까지 완성하겠다고 일정을 제시하고 미사일 비행경로와 탄착지점까지 밝힌 것은 위협을 과시하려는 면도 있겠지만, 미국에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을 그만큼 더 절박하게 촉구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의 능동적인 개입이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야 한다. 그런 방안 가운데 하나로 ‘대북 특사’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직접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힐 수도 있고, 미국이 대북 특사를 보내 북-미 대화를 시도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북핵 위기가 극에 달해 북폭이 논의되던 때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해 북-미 대결 국면을 일거에 대화 국면으로 바꾼 것이 단적인 사례다. 당시 카터 방북을 제안한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 국면은 북-미 간 ‘치킨 게임’이 직접 충돌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라고 할 수 있다.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까지 앞두고 있어서 이 위기 국면을 바꾸지 않으면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파국적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때야말로 전환의 극적인 기회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담대하고 용기 있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촛불 정신’ 담은 국정운영 청사진, 문제는 실행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 공개됐다.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운영 5개년 계획’(보고서)을 발표하고, 국가비전과 5대 국정목표,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 입법 계획도 담았다. 짧은 선거 기간, 충분치 않은 수권 준비 절차 등의 여건에도 촛불 시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국정운영 로드맵으로 적극 수렴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각성과 촛불의 힘에 의해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실질적인 대개혁을 이뤄내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짊어지고 있다.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5대 국정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내세운 것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 과제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487개 세부 실천과제 가운데 66%인 321개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상황은 여소야대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협치와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하고,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 국정목표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행정부 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회부처도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제시된 국정과제엔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아동수당 신설,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 창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미있는 정책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잖다. 이른바 제이(J)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는 대선 공약보다 외려 후퇴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정책과제는 입법으로 실행의 근거를 갖추고, 재원을 통해 현실화된다. 보고서는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선 공약집에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조6천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위해선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도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출 구조조정을 내세워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은 피해갔다. 부실한 재원 대책을 보강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중국, ‘사드 경제보복’ 이젠 풀어야 한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8일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시작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더는 감내하기 힘든 수준까지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50% 이상 급감해 올해 상반기에만 5조원 안팎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현대·기아차 중국 공장에 납품을 하는 중소협력업체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자동차부품 중국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나 감소했다. 롯데마트는 중국 내 점포 99곳 중 74곳이 3~5월 ‘소방 점검’ 등의 사유로 영업정지를 맞아 길게는 넉달째 문을 닫고 있다. 롯데마트는 피해액을 5천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중국인 단체관광이 급감하면서 면세점 손님이 지난해 5월 184만명에서 올해 5월 102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화갤러리아가 3일 제주공항 면세점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했고, 지난해 말 면세점사업권을 새로 취득한 업체 5곳은 아직 개장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식품, 게임, 전기차 배터리 등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와 관련해 “협의도 요청도 결정도 없었다”며 ‘3 노(No)’ 입장을 취해오다 돌연 태도를 바꾼 탓에, 중국으로선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보복으로는 사드 문제를 풀 수 없다. 무엇보다 사드는 미국이 당사자여서 우리 정부의 결정만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중국 정부가 경제 보복을 지속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처사다. 우리 국민의 여론만 악화시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사태 확산을 경계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여온 국내 경제계가 최근 중국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 사드를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중국이 자국 산업의 보호·육성을 위해 사드를 핑계로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음달 24일이면 한-중 수교 25주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다. 사드 보복은 이런 역사적 흐름에 역행한다. 긴 안목에서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한겨레 사설] 동맹 우의 굳혔으나, 큰 숙제도 떠안은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대외적으로는 동맹의 우의와 친분을 재확인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숙제를 남겼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쪽이 북핵 문제 해결 의지를 굳히고, 방식에서도 큰 틀의 동의를 이뤄낸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연 한-미 공동언론발표에서 “우리 두 정상은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실패했다”며 “북핵에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강조하면서, 자신의 ’단계적 접근’을 공동발표문에 명시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압박 강화에 방점을 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북핵 해결에 대한 기본원칙과 접근방식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성과라 할만하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장진호 기념비 헌화로 방문 공식일정을 시작하고, 참전용사를 만나 감사를 표하고, 특히 흥남철수와 개인의 인연을 연결시켜 감사를 표한 점 등은 인상적이다. 한·미 동맹의 우의를 다지는 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민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에는 많은 이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나, 이러한 정서적 접근 등을 통해 테이블 협상에서의 긴장을 풀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한-미 에프티에이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정상회담에 앞서 한 모두발언에서도 “우리는 지금부터 무역 협상을 재협상하고 있다. 희망컨대 공평한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에프티에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발빠른 공세로 나섬에 따라 우리 통상당국은 이제 최대한 방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부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한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까지 시사했다. 두 사안 모두,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두 협상 모두,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양쪽이 모두 수혜를 얻는 윈윈의 묘책을 세우는 데 한·미 양쪽 모두 머리를 맞댈 때다. 또 어떠한 경우라도 ’국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이날 공동언론발표문에서는 빠졌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또다른 숙제로 쌓여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에 환경영향평가라는 한국의 절차적 문제를 이해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간의 상황을 보면, 미 행정부와 의회는 ’절차적 상황을 끝내고 나면, 사드를 배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미국의 비용으로 주한미군과 한국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방어하는 것만 주목하고 있지만, 한국이 사드로 인해 대중국 관계에서 어떤 피해를 받고 있는지 그 이해도는 다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향후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보여진다.


[한겨레 사설] 북핵 문제 해결에 긴요한 ‘한국 역할론’

문재인 대통령이 19~20일 <워싱턴 포스트>, <시비에스>(CBS) 등 미국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대략적인 기조를 밝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을 먼저 이행하고, 그다음 ‘핵 폐기’로 나아가는 2단계 비핵화 방침도 제안했다.

내용을 보면, 오는 29~3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안심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건이 갖춰진다면” 방북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히는 등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토 웜비어 사망으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시점이지만, ‘압박’의 목적도 ‘대화’라는 점을 강조한 건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의 ‘한국 역할론’이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미국·중국 등 강대국 손에 맡기면, 강대국의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제 위상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역할론’을 강조한 건 오히려 늦은 감마저 든다. 문 대통령 말대로,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북 관계를 풀어나갈 때 남북 관계도 훨씬 평화로웠고 미국과 북한 관계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국익 차원에서나 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나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한국 역할론’ 강화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을 다양한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또한 문 대통령의 이런 대북 기조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서 한-미 간 이견 없는 대북 정책 추진으로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해선 “주권국가로서 적절한 시점에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수 의지 표명은 당연하며, 새 정부는 이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배치를 연기하거나 결정을 뒤집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 문제는 한-미 사이의 대표적 쟁점인 만큼 정상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전향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 역시 미국 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 관점에서 결정이 내려지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취임 다섯달 만에 ‘탄핵 위기’ 몰린 트럼프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 요구에 휘말려 ‘식물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을 앞에 두게 됐다.

코미 전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앞서 공개한 ‘모두발언문’ 내용은 트럼프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코미는 2월14일 독대에서 트럼프가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고 확인했다. 플린은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사이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사람이다. 또 코미는 트럼프가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충성을 보여라’고 한 사실도 폭로했다. 마피아 보스나 할 법한 저열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사태는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코미 압박이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인 만큼 탄핵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미국 내부의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최근 34%까지 추락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이반도 커지고 있다. 상황은 특별검사 해임으로 몰락을 자초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경우와 유사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안으로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안하무인 태도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키웠다. 지난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보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으로 유럽의 격분을 샀다.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라는 지탄을 받았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오만에 넌더리를 내면서, 세계와 미국을 위해 트럼프가 없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에겐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트럼프 위기는 우리에게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궁지를 모면하려고 대외적으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해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다음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기로 양쪽이 합의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미 새 정부가 조기 정상회담에 합의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여파로 우리나라는 6개월 이상 정상외교의 공백 상태에 있었고 ‘코리아 패싱’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 현안 대응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과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면담 결과를 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두 나라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등의 공통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론 ‘제재’에 방점을 찍었지만, ‘대화’의 문을 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상회담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새 외교안보라인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는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쟁점이다. 포틴저 보좌관은 “계속 대화하겠다”면서도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이게 될 미국과의 협의가 만만찮음을 예고한다.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56.1%가 ‘배치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배치 재검토’에 대한 국민 기대감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국내의 요구와 미국의 완강함, 중국의 기대감 등 상반된 요구를 조율하는 과제를 새 정부로선 피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10억달러 비용 분담’과 같은 무리한 요구엔 당당하고 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중·일·러 등 주요국에 보낼 특사단과 만나 “정치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됐음을 (각국에) 강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임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가 ‘시민혁명’의 연장선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 말처럼 외교안보 사안에서도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촛불의 꿈’ 담은 소중한 한 표로 세상을 바꾸자

어디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19대 대통령선거야말로 어느 선거보다 각별하고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대선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구속수감된 상태에서 그를 대신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유례없는 선거다. 추운 겨울날 언 손 비벼가며 촛불을 켰던 수많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치러지는 ‘촛불 대선’이다. 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쫓아낸 ‘시민혁명’의 마지막 매듭을 짓는 절차인 것이다.
‘촛불의 염원’은 아직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촛불의 바람이 아무리 절실해도 그 자체로는 잘못 박힌 대못 하나 빼내질 못한다. 오로지 투표를 통해 현실 권력으로 전환된 힘만이 부조리한 상황을 바꾸고 촛불이 꿈꾼 세상을 가꿔낼 수 있다. 이제 19대 대선의 날이 밝았다. 마음속에 촛불 한 자루씩 켜 들고 투표장으로 향할 시간이다.

민심의 심판대 맨 앞자리에 올려야 할 항목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정권의 부패와 무능, 정경유착과 권력 사유화를 빼놓고 이번 대선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국정농단을 방조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이랄 수 있는 자유한국당 역시 심판의 과녁을 피할 수는 없다. ‘친박 세력’은 국정농단을 방조하거나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 규명을 방해하거나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선거를 틈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친박 핵심 인사 7명에 대한 징계를 직권으로 해제한 건, 이번 대선이 결국 국민과 탄핵 반대 세력의 또다른 대결임을 일깨워준다.

이번 대선은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총체적 평가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참담한 성적표는 희망을 빼앗긴 청년들, 불안에 빠진 중·장년층, 빈곤에 시달리는 노년층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헬조선’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각종 지표는 차고 넘친다. 민생뿐 아니라 외교·안보도 낙제점이다. 주변 강대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코리아 패싱’은 보수정권 10년이 남긴 불행한 유산이다. 안보·외교에서 드러난 무능을 색깔론으로도 덮을 수 없다는 걸 이번 선거 과정은 똑똑히 보여줬다.

촛불이 요구한 수많은 개혁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힘있게 추진할 ‘혁신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잘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잘못을 바로잡고 낡은 시스템을 고치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력은 새 대통령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겸손한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국회 의석 분포로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무수한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해내려면 ‘통합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란 더럽고 비루한 것’이라고 쉽게 손가락질하지만 그래도 정치의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야 비로소 현실은 바뀔 수가 있다. 냉소하고 팔짱만 낀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무기력할 뿐이다.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세상을 뒤집고 현실을 바꿔나갈 때다. 촛불의 완성이 바로 우리의 한 표에 달렸음을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한겨레 사설] 사드 기습배치에 ‘1조원 폭탄’까지 던진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한국에 내라고 요구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한국민이 원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미군기지 방어를 위해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성주에 배치해 놓고선 그 돈을 다 우리에게 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사드가 본격 가동되면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에 전가하리란 우려가 많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훨씬 큰 규모로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다. 그런데도 “사드는 미군 무기체계이므로 우리는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된다”고 국민을 속인 박근혜-황교안 정부는 뭐라고 변명할 셈인가.

난데없는 ‘10억달러’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내는 사례일 수 있다. 사드 1개 포대를 고스란히 한국이 사라는 얘긴데, 이미 미군이 운용중인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우리 국방부는 즉각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한 이상, 구입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 전가가 이뤄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수도권 방어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드 때문에 중국과 외교·경제 마찰을 겪고 돈은 돈대로 미국에 내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우리 돈이 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7월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 1조5천억원은) 미군 부담이다. 우리는 부지 조성 비용 정도만 담당한다”고 답변했다. 그래도 나중엔 우리에게 비용 분담을 요구할 거라는 걱정에 국방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국민을 속인 셈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함보다 한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책임한 태도가 국민을 더 분노케 한다. 도대체 이 정부는 한국민의 뜻을 우선시하는 정부인지 아니면 미국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정부는 이제라도 사드 배치를 전면 보류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회에서 배치 여부를 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청구한 이상, 국회 승인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은 사라졌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문제점도 다시 조사해야 한다. 10개월간 나라 전체를 논란과 갈등에 빠뜨린 결과가 ‘10억달러 청구서’란 건 너무 뼈아픈 일이다.


[한겨레 사설] 정권이양기에 ‘사드 알박기’한 미국의 횡포

주한미군이 26일 새벽,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에 발사대와 레이더 등 핵심 장비를 기습적으로 배치했다. 사실상 사드 배치가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주민 동의와 설득 과정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행정적 절차도 무시했다. 최근까지 한-미 당국이 잇따라 ‘사드 배치는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듯한 말을 해 다소 안심했는데 군사작전처럼 야음을 틈타 전격 배치를 완료하다니 우리 국민의 뒤통수를 때린 셈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불과 13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번 행동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알박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대표적 사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고, 미국·중국과도 추가 협의하는 과정을 밟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기습 배치를 통해서 미국은 이런 움직임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해 버렸다. 동맹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역주민은 물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한국민의 반감도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와 시설 공사 등 관련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드 배치가 거의 완료된 단계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 등이 과연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지난 16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백악관 외교정책 참모가 ‘사드 배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불과 며칠 만에 이 발언을 뒤집었거나 그때 의도적으로 배치 강행 움직임을 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항공모함 칼빈슨호 항로 변경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이어,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신을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키우고 있다.

이번에 배치된 사드 장비의 사격통제 레이더는 중국 정부가 가장 문제시하는 ‘엑스밴드 레이더’다. 중국은 곧바로 “(한반도) 긴장 정세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며 “관련 시설의 철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4월 위기설’ 등으로 높아진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중국은 핵실험 자제를 강력 촉구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번 사드 장비 반입으로 한반도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미-중 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5·9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 추가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대통령후보들도 사드 배치를 대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접근해선 안 된다. 한반도 정세 안정이란 큰 틀에서 국민에게 뚜렷한 대안과 입장을 제시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4월 위기설’과 안이한 정부 대응

최근 ‘4월 한반도 위기설’이 급속히 퍼졌다. ‘김정은 망명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에 이어 ‘외국계 기업 철수 준비설’ 등이 꼬리를 물었다. 발단은 사설 정보지라는데,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이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연일 보도하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미-중 정상 간에 모든 옵션이 논의됐다”고 말한 게 이런 상황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북한의 연례행사가 집중되는 4월엔 한반도 위기설이 반복되곤 했다. 최근엔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를 떠난 지 보름여 만에 이례적으로 한국으로 재출동하면서 긴장 지수를 높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가시적 성과물이 보이지 않는데다, 미국의 시리아 폭격 등이 겹치면서 불안감은 더해졌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은 양쪽 모두 과거 어느 정권보다 예측불가능성이 높다.

여기엔 우리 정부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1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차분하고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남 일 이야기하는 듯하다. 외교부는 “(위기설의) 근거가 없다”며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 등을 부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등 미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한반도 관련 발언을 보면, 이들이 한국 정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협의를 하고 한국 입장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걱정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미국과 북한 양쪽에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위기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뿐 아니라, 당장 금융·경제 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동맹이라면, 동맹국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언행을 자제하라고 우리 정부가 말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로켓 발사를 여러 차례 해왔고, 올해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긴장을 높이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통해 정권의 안위를 도모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한반도 평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문재인·안철수, ‘촛불 대선’ 의미 무겁게 새겨야

5·9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된 이번 선거는 과거 대선과는 여러모로 양상이 다르다.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 기간이 부쩍 짧아지면서 이른바 ‘광속 대선’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만큼 밀도 있고 압축적인 경쟁이 필요하다. 특히 보수 진영이 몰락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되면서 야권 후보들이 1, 2위를 다투는 ‘야-야 대결’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여론조사 추이를 좀더 봐야겠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강을 형성하고,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김종인 등 나머지 후보들이 추격하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정체 현상을 겪으며 대세론을 위협받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중도·보수층이 몰려들어 지지율이 오르며 문 후보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향한 비난 공세도 거칠어진다. 문 후보 쪽은 안 후보를 “적폐세력 후보, 정권연장 후보”로, 안 후보 쪽은 문 후보를 “자기만 옳다고 하는 계파 패권주의”로 몰아붙이며 ‘낙인찍기’ 경쟁을 벌인다. 상대 당 경선의 동원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소재를 확대재생산한다. 이러다간 지지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이고 후보들은 큰 상처를 입는 ‘진흙탕 대선’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두 후보는 한달간의 선거전을 앞두고 ‘조기 대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뤄서 밀어붙인 게 여기까지 왔다. ‘촛불 민심’은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권을 교체하고, 해묵은 악습을 청산하고, 각종 개혁 입법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5·9 대선은 결국 촛불에 담긴 민심을 누가 어떻게 차기 정부에서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고 헐뜯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내가 촛불 민심의 체현자임을 증명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달 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정권 이양기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유념해야 한다. 헛된 공약을 제시하고 네거티브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금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이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간 한달 뒤 큰코다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되살려 나라를 수렁에서 건진 국민들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선거운동에 임해야 할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대선 이후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선 함께하겠다는 최소한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선거란 게 결코 평화로울 수 없고, 검증은 날카로워야 한다. 그래도 촛불의 시대적 과제를 중심에 놓고 깨끗하게 경쟁하고 치열하게 토론한다는 자세만은 두 후보가 버리지 말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구속, ‘정의와 상식의 시대’ 출발점 돼야

결국 구속됐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선언한 지 21일 만이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한 일이겠으나 법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요, 정치적으로는 한 시대를 매듭짓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회의 탄핵 소추와 특별검사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이어 구속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끊임없이 견인해온 것이 광장의 ‘촛불시민’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시민의 승리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31일 새벽 3시께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등 혐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박 전 대통령은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독방에서 ‘미결 수용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440원짜리 식단과 세면도구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으로 생활해야 한다.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자괴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지나온 몇달만 돌이켜본다면, 이 모든 게 부인과 억지 주장으로 일관한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곳에서의 나날을 성찰의 시간으로 삼기 바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장 발부는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행위에 대해 일차적인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 판사가 ‘증거인멸의 염려’를 구속 사유로 꼽은 것은 박 전 대통령 쪽의 그간 주장과 변명을 거짓으로 판단하고,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조처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두차례 수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확보된데다 관련자들도 구속된 상태여서 영장 발부는 일찍이 예상돼왔다. 더구나 그 증거의 원천이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참모에게 책임 돌려 구속 자초

박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서뿐 아니라 영장 심사 과정에서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통장에 돈 한푼 들어온 적 없다”는 식의 논리로 반론을 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운영·인사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상의하며 ‘공모’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이 자기 계좌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죄가 안 되는 게 아님은 당연한 법리다.

박 전 대통령 쪽은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편 모양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을 통해 이승철 전경련 당시 부회장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은 여럿이다. 무엇보다 그가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있는데도 모든 책임을 참모와 측근에게 돌리며 “몰랐다”고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 법원에서도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여러 면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재벌 수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등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최씨 일가 재산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 전 수석이 검찰을 농단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검찰 스스로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도 남아 있다. 검찰 수뇌부를 포함해 성역을 두지 말고 제대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극단세력 자제시켜야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한번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수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사실상 탄핵과 수사에 ‘불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국민저항본부’가 31일 구속 비난 성명과 함께 1일 태극기 집회를 예고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으로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극단세력을 자제시켜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결자해지의 자세로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그것이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분열과 갈등을 씻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기도 하다.

그를 따르는 친박 세력 역시 이제는 억지 주장을 버리고 극단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심판과 함께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시대도 역사에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구속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와 상식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