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홍콩 시위’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한다

‘범죄인 인도 조례’ 제정을 둘러싼 홍콩 시위 사태가 심상치 않다. 9일 홍콩 시민의 ‘100만 행진’에 불을 지핀 범죄인 인도 조례를 둘러싼 갈등은 12일엔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로 비화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례안에 대한 입법회(국회)의 심의가 시민의 저항에 막혀 연기됐지만, 시민들은 다시 16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홍콩 당국도 조례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충돌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국이 ‘시위 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서고 중국도 ‘내정간섭 말라’고 발끈하면서, 이미 무역전쟁 중인 두 나라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발단은 단순하다. 지난해 홍콩의 한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사건에서 비롯했다.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이 남성을 대만에 넘겨줄 수 없게 되자, 이를 계기로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조례안 추진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이 조례가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시민들의 우려는 중국의 법 집행 관행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점에 비춰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홍콩 당국은 조례 제정을 무작정 밀어붙일 게 아니라, 먼저 조례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부터 얻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이 13일 “정부는 대중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존중해야 하며, 대중과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촉구한 대목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시위대 해산 과정에선 홍콩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는 물론 타박상을 입힐 수 있는 고무탄과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등을 마구 발포해 수십명이 다쳤다. 이런 강경 진압은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중단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지한 걸 문제 삼긴 어렵지만, 이것을 최근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도 냉정하게 대처해 더이상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5·18 진상규명’,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1980년 신군부의 내란 및 군사반란에 맞섰던 광주 시민의 용기와 희생을 돌아본다. 80년 광주는 6월항쟁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동력이었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자양분이다. 1997년엔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폄훼와 망언은 여전하다. 제1야당 의원이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하고, 가짜 유공자들이 2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거짓 선동과 “언제까지 진상규명이냐”는 비아냥도 공공연하다.

광주항쟁 38년 만인 지난해 5월 계엄군의 시민 성폭행 증언이 나와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 1년 동안 새로운 증언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신군부가 학살의 책임을 시민군에 돌리며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를 부풀렸다는 당시 주검 검안 의사의 첫 증언이 나왔다. 전두환은 발포 명령을 부인하지만, 그가 헬기를 타고 광주에 온 뒤 학살이 시작됐다는 증언, 유혈진압 작전 계획을 “굿 아이디어”라고 칭찬했다는 문건, 정권장악이 물거품 될 것을 우려해 5월27일 광주로 재진입해 유혈진압을 했다는 미국 국무부 비밀 문건도 나왔다. 암매장 의혹이 여전한 가운데 계엄군이 공군 헬기로 주검을 운반했다는 기록도 공개됐다.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 있는 한 진상규명 노력을 절대 멈춰선 안 된다. 권력 찬탈을 위해 시민을 학살한 자들의 만행을 낱낱이 밝혀 역사에 기록하고, 반면교사로 삼는 건 살아남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다.

정치권도 연례행사처럼 5·18 기념식만 기릴 게 아니라, 진상규명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특히 이중적 행태를 보여온 자유한국당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촉구한다. 여야 합의로 지난해 2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추천 지연, 무자격 위원 추천 등으로 조사위 출범을 가로막고 있다. 5·18 망언자 징계라도 매듭짓고 5·18 기념식에 오라는 요구에 황교안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가는 게 도리”라며 “광주 시민의 질타가 있으면 가서 듣겠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인정한 것은 자유한국당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의 도리, ‘김영삼 정신 계승’은 갈등을 조장하는 ‘광주행 정치’보다 조사위 출범과 망언자 징계 마무리로 구현된다는 걸 자유한국당은 깨닫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판문점 선언 1돌, 다시 시험대 선 ‘한반도 평화'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 1돌을 맞았다.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남북 정상은 이날 채택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겨레와 전세계에 천명했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도 확인했다. 10여년의 단절을 끝내고 남북이 만들어낸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여정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난 1년은 남북이 이루어낸 것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보여주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는 대결의 장에서 대화의 장으로 대전환을 시작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포함해 한해 세차례나 만나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다. 판문점 선언에서 다짐한 ‘남북간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는 9·19 남북군사합의라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이 합의에 따라 휴전선 일대의 육·해·공에서 남북간 적대행위가 모두 사라졌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설치돼 남북이 상시 소통하는 시대도 열렸다.

더 중요한 것은 북-미 대화가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판문점 선언 한달여 뒤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으로 만나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 잔재 해체를 시작했다.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 정상은 다시 한번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공식 확인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남북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조성된 새로운 교착 국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도가 어그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해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나아가던 남북 대화와 교류는 올해 들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1돌을 하루 앞두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대북 제재 틀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가 답답한 형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을 정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해법’을 고집하는 북한 사이에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북-미 협상이 순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북-미 사이 대치가 길어지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력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북-미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북한에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대신에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뜻을 더 분명히 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한반도 시계가 판문점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관건은 하노이 결렬 이후 사라진 북-미 대화 테이블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은 북한이 문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회담 제안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야 북-미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계기가 마련된다. 조성된 난국을 헤쳐나갈 길을 시급히 찾지 못한다면, 판문점 선언의 뜻깊은 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4월11~12일 워싱턴에서 열린다고 청와대와 백악관이 동시에 발표했다. 이번 회담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 이뤄지는 한-미 정상의 만남이다. 대화와 타협의 ‘촉진자’임을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불씨를 반드시 되살려내야 한다. 두 나라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게 할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4월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직후 귀국길에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비핵화 협상의 조기 성과를 위해 오찬을 겸해서 북한 견인 방법을 논의하자”며 방미를 요청했다고 한다.
두 정상의 만남은 북-미 간 대화 단절이 한달째 이어지고 있는 엄중한 국면임을 고려할 때 시의적절하다 말할 수 있다. 또 북한이 중대한 대외 메시지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는 최고인민회의 소집일(11일)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각별하다.

물론 대화 재개 방안 마련은 만만찮은 과제다. 무엇보다 비핵화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크다.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트위트를 통해 “추가 대북제재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히고 북한도 상황을 악화시킬 도발을 자제하고 있어, 한국과 미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데 좀더 유연성을 보이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 주장대로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먼저 합의한 뒤, 북한 주장대로 이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절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방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미국과 의견 조율을 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언급한 ‘스냅백’, 즉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하는 방안도 더해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대화 재개를 이끌어내고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협상 중단 고려’ 경고한 북한, 지금은 자제할 때다

북한이 15일 미국과 협상을 중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유지할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성명 내용에 따라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최 부상이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가 상황을 위기에 빠뜨렸다”며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경 선회의 배경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노이 회담 뒤 김 위원장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기차 여행을 다시 하겠는가’라고 했다는 최 부상의 말에서 북한이 느낀 실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마저 ‘전부 아니면 전무’ 식 빅딜 해법을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북한에 사실상 굴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의 빅딜 압박이 지나친 면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이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고 핵실험 유예까지 재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이런 식의 대치가 격화하다가 돌발적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질 수 있다. 북한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며,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 만에 하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된다면 지난 1년 남짓 어렵게 만들어온 북-미 대화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질 것이 뻔하다.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최 부상이 “최고지도자 간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도 완벽하다”고 말한 것은 북한도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좋은데 참모들이 협상을 방해한다는 판단을 내비친 것으로 보아, 협상 재개를 위해 한국이나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빨리 북한의 의도를 확인해 북-미 대치가 격화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힘들게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겨레 사설] 협상 여지 좁히는 미국식 ‘빅딜 해법’을 우려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 북한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점진적으로 하지 않겠다”며 ‘일괄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미국 행정부가 완전하게 일치를 보고 있다”는 말도 했다. 미국이 북-미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일괄타결식 빅딜’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나선 셈이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과 간극이 커 북-미 대치가 장기화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비건 대표는 이날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핵연료 사이클과 핵무기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협상파마저 ‘빅딜 해법’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빅딜 원칙에 미국 행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협상파의 이런 축소는 북-미 담판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직은 북-미 간 타협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일괄타결 방안이 비핵화 전체 로드맵을 확정한 뒤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여지는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시설·핵물질·핵무기 동시 폐기 후 제재 해제를 뜻한다면, 타결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이 일괄타결 쪽으로 선회한 뒤에도 북한의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들은 12일에도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대화로 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비건 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빅딜 수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앞으로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괄타결론으로 돌아선 데는 미국 조야의 압박이 상당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밀어붙이기 전략은 북-미 신뢰가 허약한 상황에서 역효과만 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지키되 북-미 간극을 좁힐 현실적인 방도를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 완수’라는 목표는 오히려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에 ‘대화와 협상’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새벽, 9박10일간의 열차 대장정을 끝내고 평양에 도착했다. <노동신문>이 김 위원장 귀국을 보도하면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성과적”이었다는 한마디 외엔 말을 아낀 대목에서, 북-미 합의 불발에 따른 실망감이 느껴진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 건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합의 무산에도 기회의 창은 열려 있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4일 “몇 주 내로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협상 재개 의사를 재확인했다. 잠시 협상 결렬의 후유증을 추스른 뒤 다시 절충에 나서길 기대한다.

이제 북-미 협상에서 정부가 ‘중재자’로 적극 나설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우리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졌다”며 “북-미의 입장 차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장 ‘북-미 간 대화 궤도이탈 방지’를 급선무로 해야 할 일로 제시한 뒤 “대화 교착상태가 오래가지 않도록 북-미 실무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해, 우리 정부의 ‘촉진자’ 구실을 강조했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베트남 정상회담 결과 북-미 간 입장 차가 크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는 대신 그 대가로 민수 분야에 대한 유엔 제재 해제를 원한 반면,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과 무기,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의 폐기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간극이 커서 절충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미 전쟁의 참화를 겪은 바 있는 한반도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말고 다른 길이란 없다. 정부는 대북, 대미 채널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북-미 협상의 전말을 정확히 복기하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북-미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서로 만족할 만한 중재안을 도출해야 한다. 북-미 두 나라도 협상 상대의 요구와 우려를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국도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만큼, 이후 북한의 ‘안전보장’ 우려를 어떻게 해소해줄지 현실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합의 실패에도 대화 지속 의지 밝힌 북-미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엔 실패했지만 두 나라 모두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는 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북한의 <노동신문>은 1일 북-미가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북-미가 다음 일정을 잡진 않았지만, 서로 비난을 자제하고 앞으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평가할 만하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합의 무산은 충격이다. 당장 혼란을 털어내고 대화 재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이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 위원장이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대목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대화 재개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한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그러나 냉각기가 너무 길어지면 자칫 대화 동력 자체가 약화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빨리 고삐를 다잡아 잠시 어긋난 대화 노선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회담을 온전히 실패라고만 단정할 일도 아니다. 제재 완화와 비핵화를 둘러싼 이견을 서로 확인한 것은 오히려 소득이라 할 수도 있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등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도 이뤘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1986년 10월 레이캬비크에서 합의를 못했지만, 대화를 지속해 이듬해 12월 워싱턴에선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구실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합의 불발 뒤 문 대통령에게 전화해 “적극적인 중재를 해달라”고 했다. 김 위원장 및 트럼프 대통령과 적극 소통하면서 균형잡힌 절충안을 유도해내는 창조적인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한다. 정부로선 당분간 북-미 대화가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그 추동력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애초 이르면 3월말~4월초로 예상됐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대화 동력 확보 차원에서 추진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충격적인 북-미 회담 결렬, 정부가 나서 ‘불씨’ 살려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됐다. 아침까지만 해도 성공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정상회담은 오후 들어 결국 암초를 만났다. 북-미 두 정상은 아무런 합의 없이 예정됐던 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했다. 커다란 주목과 관심 속에 열린 정상회담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렬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협상 결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하노이에 왔다고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먼저 회담장을 떠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미국 쪽의 원칙 고수가 김 위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분위기와 관련해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악수하면서 끝냈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언제 다시 협상이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

협상 결렬의 원인이 비핵화 실행조처와 상응조처의 조합을 찾아내지 못한 데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해주어야만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쪽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또는 동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두 사안을 놓고 마지막까지 절충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북-미 양쪽 다 물러서지 않은 것이 협상 결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협상이 재개된다면 북-미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깊이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역지사지의 자세로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진행 양상에 대한 미국 의회의 부정적인 기류도 협상 결렬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일부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는 했지만, 워싱턴 정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이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스몰딜’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했고, 과감한 타협을 본다 해도 북한에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난이 날아들 판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실행만 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제재 완화를 해내지 못한다면, 내부의 압박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핵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제안보의 핵심인 핵을 당장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협상 결렬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면,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앞으로 몇 주 내에 합의를 이뤄내길 기대한다”고 밝힌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협상을 재개할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협상을 되살리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여기서 북-미가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감정적 균열을 키운다면 사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

북-미 합의를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우리 정부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 상황에 개입해야 한다. 협상 결렬의 여파가 길어져선 안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결렬로 협상의 판 자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취소된 회담을 되살려낸 바 있다. 그 경험을 살려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 밝게 한 비건의 방북 협의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주 2박3일간 방북해, 북한 쪽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를 마치고 귀환했다.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비건 대표를 만난 당국자들이 한결같이 “북-미 간 생산적인 협의가 이뤄졌다” “북한이 전례없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고 전하는 걸 보면, 북-미 간 적잖은 진전이 있었음이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 도시로 베트남 하노이를 공개한 뒤 “평화의 진전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달 말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북-미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조처와 이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처’를 어떻게 교환할지 등을 놓고 협의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 조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상응 조처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인도지원 확대 등을 우선 검토하고, 비핵화 완료 이후 대북제재 해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지도력 아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다시 한번 북한의 ‘경제 우선’ 노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비건 대표가 북-미 실무협상을 마친 뒤 곧바로 서울로 돌아와 청와대와 외교부 등 한국 외교당국자는 물론 여야 정치인들과도 협상 결과를 공유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한-미 간 실질적인 협조와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몇몇 보수언론이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미 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으나 근거 없는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한-미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길 기대한다.

미국 국무부가 북-미 2차 정상회담 이전에 다시 한번 추가 실무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 협의로 북-미 간 이견이 모두 해소되진 않은 것 같다. 해묵은 북핵 문제가 한번 만남으로 해결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지도자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게 확인된 만큼, 추가 협의로 접점을 찾아 성공적인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비건의 ‘트럼프 종전 준비’ 발언에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다음주 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번 더 날짜와 장소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4일부터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쪽 카운터파트가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북-미 실무협상이 어떤 의제로 얼마나 심도 있게 이루어지느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건 대표의 31일 강연 내용은 주목을 요한다. 비건 대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임을 시사했다. 영변 핵시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부터 ‘조건부’ 폐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비건 대표가 ‘상응조처’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협상 전망을 밝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비건 대표의 발언 중에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며 ‘종전 논의’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종전선언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여전히 북-미 협상에서 중요한 안건이고,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북한 체제 안전보장에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비건 대표의 발언만 놓고 보면 곧바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한 만큼,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비건 대표가 “포괄적인 신고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전체 범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고 한 것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대목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선 핵신고’를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샀는데, 이번에는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에’라고 시기를 뒤로 미뤄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타협 가능한 방안을 들고나온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건 대표가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에는 ‘대북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북한의 요구와 상충하는 것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문제에서 미국이 완고하게 원칙만 고집하다간 협상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제재 유지’ 기조를 지키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회로를 확보해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양승태 구속, 뒤늦은 ‘사법정의’ 국민 신뢰로 이어지길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꼽혀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새벽 구속됐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할 뿐 아니라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격적으로 영장을 발부했다. 주요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밝힌 대로 뒤늦게나마 법원이 조직보호 논리를 벗고 사법정의를 선택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제부터라도 사법부 전체가 ‘양승태 대법원’의 폐해를 스스로 도려내고, 공정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로 나서기 바란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성사를 위해 일제 강제노역 손배소송이나 원세훈 댓글사건 등의 재판에 개입하는 등 사실상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에 직접 나선 사실을 영장에 적시했다고 한다. 또 자신에게 반대하는 법관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려 하고 헌법재판소의 내부 정보를 불법 수집하도록 한 혐의 등도 포함시켰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게 된 데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의 업무수첩이나 김앤장 문건, ‘물의 야기 법관’ 문건 등의 물증과 관련자 진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대법원 앞 담벼락 회견으로 법원 안팎의 반감을 불러온데다 영장심사 과정에서도 사과나 반성은커녕 후배 법관들의 ‘모함’ 또는 ‘조작’이라는 등 설득력 없는 부인으로 일관한 것도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2년간 ‘꼬리 자르기’ 자체 조사에 이어 자료제출 거부와 잇따른 압수수색 영장 및 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의 대원칙에 일부나마 부응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재판의 공정성은 아직 미지수다. ‘부적절하나 죄가 되지 않는다’던 특별조사단의 보고서, ‘대법관이 심의관 보고서를 보고 재판할 리 없다’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 ‘재판거래는 없다’던 대법관 일동의 입장문은 여전히 국민 뇌리에 사법 불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음을 사법부 구성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일부 수구보수 언론과 야당은 최근까지도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사법농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검찰의 ‘청와대 하명 수사’라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사법부가 거듭나는 걸 방해하는 가짜뉴스일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재판거래·개입의 대상이 된 사건들의 결자해지 책임도 법원에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협조사례’로 거론된 과거사 사건이나 케이티엑스(KTX) 해고무효소송을 비롯한 민생·노동 사건 등 공정성을 의심받는 재판은 법원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 사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개혁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지막으로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오랜 시간 분투해온 이탄희 판사를 비롯한 많은 법관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한겨레 사설] 일본 ‘초계기 영상 공개’ 지시한 아베의 정략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에 우리 군함이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28일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군 활동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것 자체가 신뢰를 해치는 일인데, 영상 공개가 아베 신조 총리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를 어디까지 악화시킬 생각인지 묻고 싶다. 국내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접국과의 외교 갈등을 활용하는 행태를 당장 그만두는 게 옳다.

지난 20일 우리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에서 일본 초계기에 공격 신호로 간주할 수 있는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했다는 논란에 대해선 한-일 군 당국의 설명이 엇갈린다. 그러나 내용이 어찌 됐든 양쪽의 오해 또는 실수에서 비롯된 일임이 당시 상황을 보면 분명해 보인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조난한 북한 선박을 구조하던 중이었고, 적군이 아닌 일본 자위대 초계기에 사격통제레이더를 가동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우리 군은 밝혔다. 만약 일본 초계기가 공격 신호를 감지했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된 건지 양쪽 군 당국이 차분히 사실관계를 따져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미 27일에 한-일 국방 당국 사이엔 실무급 화상회의가 열려 ‘레이더 논란’을 해소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실무협의 바로 이튿날 갑자기 일본 초계기가 찍은 영상 편집본을 공개하며 한국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 건, 갈등을 의도적으로 키우겠다는 뜻으로밖엔 보이질 않는다. 더구나 방위성의 반대에도 아베 총리가 영상 공개를 밀어붙였다고 하니, 지지율이 떨어지는 그가 정치적 입지를 위해 한-일 갈등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가뜩이나 두 나라 사이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과 불신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렇게 일상 현안마저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반인간적 행동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는 한-일 두 나라가 시간을 갖고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에서 폭넓게 논의하면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 작업이 지난하다고 해서 다른 현안과 연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아베 총리와 일본 군 당국은 과격하고 일방적인 행동을 자제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의 ‘45% 지지율’이 말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취임 후 최저치인 45%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14일 밝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지난주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3%포인트 상승해 44%를 기록했다. 긍정과 부정 평가가 단 1%포인트 차이로 근접한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역시 36%로, 집권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문 대통령 집권 1년7개월 만의 최저 지지율은 민심의 분명한 경고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 지지율 추이는 민심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책 성과가 부진한 탓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최대 과제로 내세웠던 일자리 확대나 격차 해소에서 올 한해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표로만 보면 개선되기보다 악화됐다. ‘경제 투톱’으로 불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갈등을 1년 가까이 방치한 건 잘못한 일이었다. 몇몇 정책이 현실과 유리되는 등 정합성이 떨어졌고 정책 주체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성과를 내긴 어려웠다.

문 대통령이 14일 차관급 16명을 교체하는 등 인사 폭을 넓힌 것은 행정부에 정책적 성과를 독려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정책에서 성과를 내는 것에 정권의 명운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와 정책 등 모든 면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집권 중반기를 맞으며 문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최근 국외 순방 중 기내 회견에서 기자 질문을 제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며 업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한 말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집권 초반 여러 행사에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국민 감동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정책 성과’를 통해서 국민의 믿음을 얻어야 할 시기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 자세히 설명하고, 때론 국정의 어려움도 털어놓는 소탈하고 진솔한 소통을 고민해야 한다. 청와대가 특별감찰반 사건 대책으로 부서 명칭에서 ‘특별’을 빼고, 파견 부처를 다양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미봉책으로 보인다. 최근 청와대 내의 여러 기강해이 사건에 대해 청와대는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국민에게 머리 숙이는 게 옳다.

집권당인 민주당 역시 잇따른 선거 승리에 취했던 게 아닌지 살펴야 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론’은 국민에게 오만한 모습으로 비친 게 사실이다. 이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약을 뒤집고 야3당과의 연대를 깨트린 것이나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여권 내부의 논란도 지지층의 이완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민심에 귀 기울이라’는 국민의 따끔한 충고다. 청와대와 여당 모두 겸허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금 나오는 위기의 징조에 무겁게 반응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지지율’이 말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 조결과가 나오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란 취지다. 문 대통령의 언급이 조 수석에 대한 신뢰 표명에만 그친 것은 아쉽다. 청와대에 최근 특감반 사건 이외에도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경호처 5급 직원의 음주 폭행 등 기강 해이와 도덕적 이완을 보여주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는 집권 중반기 청와대의 ‘이상기류’를 보여주는 징표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런우려에 대한 분명한 언급 없이 단지 ‘공직기강 확립’만 강조한 건, 청와대가 서둘러 사안을 봉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특별감찰반 사건의 책임을 지고 조국 수석에게 사퇴하라는 야당 요구는 성급하고, 정치 공세적인 측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조 수석에게 책임을 물을 정도로 직접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민정수석실 책임자로서 조 수석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제가 된 김아무개 수사관의 행적이 석연찮은 게 한둘이 아니고, 다른 특감반원들 중 일부는 골프 접대 의혹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최근 일련의 내부 ‘기강 해이’ 사안들에 대처하면서 먼저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정치적 책임론 공세에 대응하는 데만 급급한 것처럼 국민들 눈에 비쳐선 곤란하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지난 시기를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최근의 일들을 집권 중반기로 넘어가는 길목의 ‘뼈아픈 교훈’으로 새기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기적 울린 ‘남북 철도 연결’, 한반도 번영의 길 열길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안은 열차가 서울역을 출발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지역으로 들어섰다. 정부는 30일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단을 태운 열차를 환송하는 행사를 도라산역에서 열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쪽의 열차가 북쪽 끝 두만강까지 달린다. 남과 북은 12월17일까지 경의선과 동해선의 1200㎞ 철도 구간을 공동조사한다. 열차가 달리는 거리를 모두 계산하면 2600㎞에 이른다. 북쪽의 기관차가 남쪽의 객차를 끌고 북녘 땅을 종횡으로 달리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한반도 종단철도 구축도 멀지 않은 장래에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실행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동해선 및 경의선 연결·현대화’에 합의한 뒤 7월 말부터 공동조사에 착수하려 했으나 대북 제재 문제로 거듭 연기됐다. 8월에도 유엔군사령부가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용하지 않아 한차례 무산됐다. 최근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두 나라 사이 이견이 해소되면서 넉달이나 지체된 끝에 공동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철도 공동조사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지 않은 중에도 남북이 관계발전을 위한 공동 행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과 진전에 긍정적인 구실을 할 것으로 본다.

철도 공동조사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핵심 인프라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실현이라는 큰 구상의 첫발을 뗐다는 의미도 있다. 철도를 기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경제·안보 공동체를 건설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현실로 다가오려면 ‘비핵화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남북 철도 공동조사는 북-미 협상의 촉진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임무도 띠고 있다.

공동조사를 시작한 만큼 다음 과제는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올해 안에 여는 것이다. 물리적 시간이 촉박하지만 정상 간 합의사항인 만큼 예정대로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 철도·도로를 실제로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도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한다.


[한겨레 사설] 퇴행적인 일본의 ‘강제징용 판결’ 대응, 우려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 중의원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 정부도 해당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니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일 간 켜켜이 쌓인 과거사 문제를 50여년 전 체결한 협정문 한장을 방패 삼아 피해가려는 태도에서 한치도 바뀐 게 없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베 총리는 한술 더 떠서 그동안 사용하던 ‘징용공’ 표현 대신 앞으로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징용’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강제동원의 불법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속 보이는 노림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반성과 성찰은커녕 사태를 호도하는 퇴행적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증언과 연구 성과가 쌓이고 있다. 이런 변화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는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일본 정부가 처음부터 “청구권협정으로 다 해결됐다”는 입장이었던 것도 아니다. 1990년대까지도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야나이 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1991년 8월 참의원에 출석해 청구권협정을 두고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이며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의식은 1990년대 초 냉전 종식과 함께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면서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이런 시대 흐름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일본 정부가 ‘이미 다 끝난 문제’라며 무조건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한국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 정부의 일이지만, 어쨌든 청구권협정의 한쪽 서명 당사자다. 또 오랫동안 피해자 권리구제 노력을 소홀히 했다. 우선 ‘65년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와 원폭 피해, 사할린 동포 문제 등 세가지를 빼곤 모두 해결됐다’는 기존 정부 입장을 이번 대법원 판결에 맞게 재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한-일 간 외교적 해법 모색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피해자의 동의 없는 섣부른 합의는 오히려 사태를 꼬이게 한다는 ‘2015년 위안부 합의’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15만 평양 시민 앞 ‘비핵화’ 역설한 문재인 대통령

방북 마지막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백두산에 올랐다. 20일 오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천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맞잡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남북 정상이 겨레의 정기가 서린 백두산 정상에 함께 오른 것은 남북 화해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이라고 할 만하다. 두 정상 부부는 수행원들과 함께 천지로 내려가 함께 산책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한라산에서 가져온 물을 천지에 붓고 다시 천지의 물을 한라산 물이 담긴 병에 옮겨 담았다. 말 그대로 ‘백두와 한라의 합수’다. 두 정상 부부가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함께 산책한 것은 4·27 판문점선언의 도보다리 산책에 이은 또 하나의 뜻깊은 족적으로 기억될 일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19일 평양 시민들 앞에서 행한 연설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남쪽의 대통령으로서 북쪽 동포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것은 분단 이래 처음이다. 평양 5·1경기장을 꽉 메운 평양 시민 15만명의 뜨거운 박수와 함성 속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방북과 정상회담 성과를 알리며 겨레의 평화와 번영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 물려주자고 (김 위원장과) 확약했다”고 밝혔다. 남쪽의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 앞에서 ‘남북 정상의 비핵화 의지’를 공개 천명하고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냄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에 또 다른 차원의 공식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북한 주민들과 공유됐음을 미국과 전 세계에 알렸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며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북녘 동포들이 겪은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쏟은 노력을 평가한 것은 멀어졌던 남북이 더 가까워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남북의 화해와 번영을 위한 노력에 큰 힘이 됐으리라 믿는다.

남북 정상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함께 만들어낸 ‘비핵화 합의’가 미국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해 ‘엄청난 진전’이 있다며 김 위원장을 곧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 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고, 북한이 국제 사찰단의 참관 아래 동창리 미사일시험장과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뜻을 밝힌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북-미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각 참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평양 합의가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없다고 깎아내리지만 미국의 공식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주에 열릴 북-미 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 기대를 품게 된다.

문 대통령의 2박3일 평양 방문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성과를 냈다. 김 위원장이 약속대로 남한을 방문하면, 남북 관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질적인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의 평양 만남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에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문 연 남북연락사무소, ‘한반도 평화·번영’ 초석 돼야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4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지 140일 만이다. 개성공단 안 옛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건물을 정비해 개소한 남북연락사무소는 남북 당국자가 365일 24시간 상주하며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상시 협의하는 남북 공동의 소통 공간으로 쓰인다. 개소식에서 남쪽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과 북이 함께 만든 평화의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북쪽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민족끼리 거두어들인 알찬 열매’라고 말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을 연 공동연락사무소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동연락사무소는 개소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남북은 지난 8월 중에 개소식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마뜩잖아하는 미국의 견제로 몇 차례 미뤄졌다가 근 한달 만에야 문을 열었다. 이런 우여곡절은 남북관계 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뤄지려면 북-미 관계 진전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동시에, 남북관계의 발전이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의 우호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고 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이뤄낸 남북 공동의 노력은 그것 자체로 평가받을 일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는 남북관계 발전에 새 역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뜻깊은 일이다. 통일부는 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한 상시적 협의·소통 채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등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들의 실무 논의를 하고, 향후 남북경협이 본격화할 경우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협의도 여기서 진행한다. 말 그대로 ‘남북 공동 번영의 산실’이 되는 것이다.

이날 개소식에는 개성공단 기업인들도 참석했다. 이들을 초청한 것은 연락사무소 개소가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정부의 뜻이 담긴 조처일 것이다.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 중단 이후 2년7개월째 멈춰 서 있다. 남북은 개성공단이 하루빨리 재가동돼 남북 경제협력의 불꽃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장애물 제거에 힘을 모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풀려야 하고, 그러려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돼야 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남북 상호 대표부 설치를 위한 첫 단계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남북연합 제도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도 있다. 남북연합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한 통일 과정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공동연락사무소가 내실 있게 운영돼 남북의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 나아가 ‘하나 된 한반도’로 가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동북아 번영’ 비전 담은 문 대통령 ‘철도공동체’ 제안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73돌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안보체제 등을 포괄하는 큰 틀의 외교안보 구상을 밝혔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촉진,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제안 등 굵직굵직한 방안들이 담겼다. 다음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 발전의 중장기 비전을 망라한 것으로,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내놓은 베를린선언에 견줄 만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 효과는 최소 170조원이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연결, 일부 지하자원 개발을 더한 효과라고 적시했다. 문 대통령이 비록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가 정착된 이후”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이들 사업을 본격화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기·강원 접경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됐는데, 잘 다듬으면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남북, 중·일·러·몽골 등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했는데, 의미심장한 구상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유럽 석탄철강공동체’가 유럽연합의 모체가 된 것을 언급하면서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 지평을 북방 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철도 협력은 남·북·중·러가 우선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망 분야이고, 이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대북 제재 완화로 가는 길을 닦을 수도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 정도에 맞춰 동북아 외교의 주요 축으로 추진해볼 만하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북핵과 남북관계를 연동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 주목된다. 비핵화 협상에 남북관계가 발이 묶일 경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인 셈이다. 남북관계 진전과 북-미 협상이 선순환을 이뤄야 하는 만큼 남북관계에도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평양 정상회담과 관련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 진전의 시간표도 열거했다.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며칠 후면 설치되고,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비전을 보다 명확히 하고 로드맵도 구체화했다. 올가을 한반도 정세의 중대 기로를 앞두고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하고 실현 방안을 가다듬는 일은 중요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단력 있게 나아감으로써 문 대통령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 정세의 새 국면을 개척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우발충돌 방지, 신뢰구축 기반 마련한 남북 장성급회담

남북이 31일 판문점에서 9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철수와 유해 공동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상 적대행위 중단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소장)은 회담 후 “(이들 내용에 대해) 큰 틀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며 “구체적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은 계속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중장도 “회담이 무척 생산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록 합의문은 도출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를 거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남북이 공감한 4가지 조치는 상호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를 금지한 정전협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우발충돌 방지와 신뢰구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특히 DMZ 내 GP를 시범적으로나마 철수하는 것은 JSA 내 비무장과 더불어 남북 간 적대행위를 줄이는 가시적인 첫 조치가 될 수 있다. 그동안 DMZ는 말만 비무장지대였을 뿐 남북이 서로 중무장한 병력을 앞세워 첨예하게 맞서온 대결의 현장이었다. 여기에 서해상에서 포격훈련 중지 및 해안포 폐쇄 등 적대 행위까지 중단한다면 지상과 해상 전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한반도에서 포성이 멎은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평화가 구현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문을 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회담 분위기로 볼 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확언한 터라 후속 논의 과정에 큰 난관은 없어 보인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초석을 놓은 동시에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판문점선언 이행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북·미 간 핵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때마침 북한이 넘긴 6·25 전사 미군 유해가 1일 하와이로 송환됐다. 북·미 양국이 합의한 DMZ 내 유해 발굴에 남측까지 가세하면 상호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다. 북측 안 수석대표는 군사 분야가 남북대화를 선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대북 경제제재와 달리 합의에 제약이 없다. 다음달 개최되는 서울 안보대화에 북측이 대표단을 보내는 것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북방한계선 일대 해역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후속 회담을 면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급회담에서 마련한 공감대를 토대로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견고히 유지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담긴 ‘민심’ 잘 새겨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6·13 지방선거 이후 5주째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19일 발표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1.7%로, 지난주에 비해 6.4%포인트 떨어졌다. 취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지난 1월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 등으로 60.8%를 기록한 이래 최저치다. 이런 추세라면 60%대 지지율도 위협받을 수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3.8%포인트 떨어진 41.8% 지지율로, 5주째 내림세가 계속됐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최저임금 논란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경제 상황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소득 주도 성장’ 효과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파문이 겹친 것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선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대로 내려앉았는데, 부정 평가 이유 가운데선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45%로 가장 많았다.

이런 추세는 집권 2년차 대통령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이제 지지율이 ‘정상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70%대의 높은 지지율은 남북관계 진전 등 외교 성과와 함께, 문 대통령의 개인적 면모에 기반한 측면이 컸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집권 2년차 1분기 지지율은 75%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았다. 집권기간 내내 이런 이례적인 지지율 추이가 계속되리라 기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최근의 지지율 하락세를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지율이 문 대통령의 개인 역량에 주로 의존했다면, 이제는 집권세력의 실력으로 냉정히 평가받는 시점이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예측불허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6·13 지방선거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총력을 다해 밀어준 지지층은 이제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정책 성과를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어느 정도 그 기대에 답했지만, 국민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선 미지수라는 게 최근 기류라고 할 수 있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의 하락 추세의 의미를 정부여당은 심각하게 되새겨봐야 한다. 이제 지방선거 승리 분위기는 완전히 털어내고, 심기일전해서 민심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 ‘비핵화 이후 구상’의 실현 조건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방문 마지막날인 13일 한 ‘싱가포르 렉처’에서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과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독일에서 밝힌 ‘베를린 평화 구상’에 이은 제2의 평화 구상이라 할 만하다. 한달 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에서 남북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 구상을 이야기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렉처’는 여러모로 1년 전의 베를린 구상 발표와 대비된다. 베를린 구상이 최악의 북-미 대치 속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노력에 집중했다면, 싱가포르 연설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상황을 반영해 ‘비핵화 이후’ 비전을 제시하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남북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돋우려는 뜻이 분명하게 읽힌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구상에 적극 호응해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함께할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바란다.

남북이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리며 경제공동체 건설로 나아가려면 먼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이 제재 해제의 조건이라 할 ‘북한의 비핵화 이행’을 강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밝힌 대로 북한이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고자 한다면 비핵화 이행방안을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상응하는 포괄적 조처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역할을 주문한 것도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안아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게 도와달라고 호소하면서 한국과 아세안 간 협력과 교류의 틀 안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게 중요함을 역설했다. 북한은 다자안보 협의체로는 유일하게 아세안지역포럼(ARF)에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기 전까지 아세안과 경제협력도 했다. 북한과 아세안의 관계 발전기초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아세안이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도울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연설 후 질의응답에서 “국제사회 앞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북한과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을 약속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두 나라에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압박성 발언이다. 평소의 문 대통령답지 않은 강한 어조이지만, 북-미 정상회담 이후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 지금 국면에선 필요한 발언이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평화 구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북-미 협상 촉진에 모든 힘을 쏟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한-러 공동성명, ‘동북아 평화·번영’ 앞당기는 계기로

19년 만에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모두 32개항에 이르는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에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두 나라가 공동성명에 담긴 협력과 공조의 정신을 잘 키워나가는 것은 양국 발전에 긴요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이 가져온 성과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서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력 의사를 확인한 데 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러시아의 높은 관심은 문 대통령의 전날 하원 연설에서도 드러났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고 세계에 약속한 사실을 강조하자, 이날 연설 중 가장 큰 기립박수가 나온 것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이런 관심과 호응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하는 동력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확인된 또 하나의 공동 관심사는 경제협력이다. 경제협력 문제가 공동성명의 과반을 차지한 데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북한을 공란으로 비워두고서는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두 정상이 철도·가스·전기 분야에서 ‘남-북-러의 3각 경제협력’을 강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남-북-러 3각 협력이 현실화하려면 먼저 북한의 비핵화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공조함과 동시에, 대북 제재 해제 이후에 대비해 지금부터 3국 경제협력에 필요한 사전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한-러 경제협력은 궁극적으로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과 함께 평화안보공동체 건설로 나아갈 때 꽃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 동력을 되찾는 데도 남-북-러를 기축으로 한 경제협력은 필수적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더욱 긴밀히 협력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앞당기고 유라시아 공동번영 시대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70년 적대관계 끝낼 ‘통큰 합의’ 기대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12일 손을 잡는다. 세계의 눈과 귀는 북-미 두 정상이 만나는 싱가포르로 쏠려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동안 적대관계에 놓여 있던 두 나라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마주앉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서방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북-미 관계는 남북관계와 연동되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우리에게도 4·27 남북정상회담을 뛰어넘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막판 통화를 한 것은 회담의 성과에 ‘한반도 운명’이 걸려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회담의 두 주역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둘러싼 분위기는 회담 결과를 조심스럽지만 긍정적으로 전망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도착한 다음날 ‘흥분된 분위기’를 트위터에 올리는가 하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만나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매우 흥미롭고 잘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도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회담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상회담 전날까지 두 나라 실무자들이 합의문 초안을 조율하기 위해 만난 것을 보면,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 정상의 마지막 결심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두 정상이 과연 공동선언을 낼 수 있느냐’라고 할 수 있다. 의미 있는 공동선언이 나오려면 핵심 쟁점인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놓고 양쪽이 극적인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미국은 회담 직전까지도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명문화를 요구했고, 북한은 여기에 맞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두 나라가 이 문제에서 판문점 선언의 약속인 ‘완전한 비핵화’와 9·19 공동성명에 명기된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종합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 수준에 합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되는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에 얼마나 폐기·반출하느냐도 관심사다. 북한이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일부라도 수개월 안에 폐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비핵화 시간은 급속히 빨라질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런 양보를 단행하려면 미국도 체제보장의 확실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불가침 약속,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제재의 단계별 해제에 더해 평화협정 체결과 국교 수립까지 체제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의 시간표가 대략적으로라도 나와야 한다. 두 정상의 결단이 거듭 필요한 대목이다.

완전한 핵폐기라는 미국의 관심사와 완전한 체제보장이라는 북한의 관심사는 서로 충돌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협상이 어긋날 수 있다. 북-미가 지난 몇달 동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두 나라가 회담 성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역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전쟁과 대결의 과거와 결별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여는 ‘통큰 담판’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회담’ 이어 ‘남·북·미 종전선언’을 기대한다

지난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면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오는 12일 예정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실해졌다. 그동안 북-미 정상회담이 정말 열릴지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던 점에 비춰보면, 회담을 기정사실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김영철 부위원장 방미는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신뢰가 협상을 가능케 하지만 때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실무 접촉과 김영철의 미국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친서 전달 등을 통해서 조금은 더 ‘비핵화 협상’ 성공을 위한 신뢰를 쌓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런 분위기가 싱가포르 정상회담뿐 아니라 그 이후 과정에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부위원장과 만난 뒤 발언한 내용을 보면, 정상회담 개최 확인 외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나는 (김정은과의 회담이) 한 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그 과정(프로세스)은 싱가포르에서 12일에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일괄타결 일괄이행’ 방식에서 벗어나, 핵·미사일 폐기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의 이견이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좀더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국전쟁) 종전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건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서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미 종전선언’이 가시화할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에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먼저 하는 것에 부정적인 기류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론했으니 상황은 달라진 셈이다.

‘종전선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식됐고, 평화와 화해·공존을 향한 거대한 물결이 시작됐음을 온 누리에 알린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또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 교환’의 시간상 불일치로 인해 북한이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도 긴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나 현실적 접근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교 정상화나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이 줄 수 있는 ‘체제 안전보장’은 북한이 핵을 온전히 폐기한 뒤에나 가능하다. 북한으로선 ‘비핵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라도 좀더 분명한 보장을 원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띠지만, 남·북·미 정상이 전세계를 향해서 함께 ‘한반도 평화’를 선언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 논의를 언급한 이상, 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싱가포르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종전선언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어디까지나 ‘북한 비핵화’가 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에 집중하느라 실무적인 여유가 없다면, 굳이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서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도 있다. 어떤 형식이든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미 정상의 ‘종전선언’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정상회담 복원’ 위한 북-미 노력 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로 북-미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낸 담화에 대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트위터로 밝혔다. 전날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취소한 데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렵지만 상황이 취소 사태 이전 국면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두 나라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난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다. 지난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 이어 최 부상이 ‘정상회담 재고’를 거론하고 ‘핵 대 핵 대결’ 운운한 것은 상대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경솔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수사적인 담화가 회담 철회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이견에 근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식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해법’ 사이에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회담 취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더 적극적인 대화로 풀어야지 취소 통보로 판을 흔들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김계관 부상을 통해 내놓은 담화는 회담의 불씨를 되살려내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 부상은 회담 취소 편지가 나온 지 8시간여 만에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부상의 담화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나왔다는 점,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을 ‘내심 높이 평가했다’고 의중을 밝힌 점 등은 북한이 회담 취소를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특히 김 부상의 담화가 ‘위임’을 받아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한 만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담긴, 김 위원장의 담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소 편지에 대한 간접적인 형식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재개 가능성을 아예 접지는 않았음을 내비쳤다. 회담 취소를 통보하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달라’고 한 것은 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회담 취소 발표 뒤에도 ‘김 위원장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에 참여하길 선택한다면 기다리겠다’며 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회담 취소 통보까지 했지만, 언제든 다시 대화로 나올 뜻은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뜻은 하루 뒤에 나온 김계관 부상의 담화에 대한 트위터 응대와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을 밝힌 발언에서 한층 더 뚜렷해졌다.

어쨌든 지금 국면은 북한과 미국 모두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미 양국 정상이 직접 소통하는 역발상의 해법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없이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한 것을 의례적인 인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북-미가 정부 간 대화의 창을 닫지 말고 계속 대화를 해나가는 게 지금 시점에선 절실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정부에 떨어진 과제가 더욱 커졌다.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남-북-미 채널을 한층 더 긴밀하게 가동해야 한다. 특히 설치 후 한 번도 쓰지 않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직통전화)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