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북핵 문제 해결에 긴요한 ‘한국 역할론’

문재인 대통령이 19~20일 <워싱턴 포스트>, <시비에스>(CBS) 등 미국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하고 북한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대략적인 기조를 밝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을 먼저 이행하고, 그다음 ‘핵 폐기’로 나아가는 2단계 비핵화 방침도 제안했다.

내용을 보면, 오는 29~3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안심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건이 갖춰진다면” 방북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히는 등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오토 웜비어 사망으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시점이지만, ‘압박’의 목적도 ‘대화’라는 점을 강조한 건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북핵 해결 과정에서의 ‘한국 역할론’이다. 한반도 문제의 해법을 미국·중국 등 강대국 손에 맡기면, 강대국의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국제 위상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역할론’을 강조한 건 오히려 늦은 감마저 든다. 문 대통령 말대로,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북 관계를 풀어나갈 때 남북 관계도 훨씬 평화로웠고 미국과 북한 관계도 상대적으로 좋았다. 국익 차원에서나 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나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한국 역할론’ 강화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을 다양한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또한 문 대통령의 이런 대북 기조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서 한-미 간 이견 없는 대북 정책 추진으로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과 관련해선 “주권국가로서 적절한 시점에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수 의지 표명은 당연하며, 새 정부는 이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배치를 연기하거나 결정을 뒤집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 문제는 한-미 사이의 대표적 쟁점인 만큼 정상회담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전향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 역시 미국 또는 중국의 군사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국익 관점에서 결정이 내려지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취임 다섯달 만에 ‘탄핵 위기’ 몰린 트럼프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 요구에 휘말려 ‘식물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을 앞에 두게 됐다.

코미 전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앞서 공개한 ‘모두발언문’ 내용은 트럼프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코미는 2월14일 독대에서 트럼프가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고 확인했다. 플린은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사이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사람이다. 또 코미는 트럼프가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충성을 보여라’고 한 사실도 폭로했다. 마피아 보스나 할 법한 저열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사태는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코미 압박이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인 만큼 탄핵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미국 내부의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최근 34%까지 추락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이반도 커지고 있다. 상황은 특별검사 해임으로 몰락을 자초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경우와 유사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안으로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안하무인 태도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키웠다. 지난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보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으로 유럽의 격분을 샀다.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라는 지탄을 받았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오만에 넌더리를 내면서, 세계와 미국을 위해 트럼프가 없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에겐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트럼프 위기는 우리에게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궁지를 모면하려고 대외적으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해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회담, 한반도 위기 해소의 돌파구 열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다음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기로 양쪽이 합의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한·미 새 정부가 조기 정상회담에 합의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여파로 우리나라는 6개월 이상 정상외교의 공백 상태에 있었고 ‘코리아 패싱’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 현안 대응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 단장과 매슈 포틴저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면담 결과를 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두 나라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등의 공통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론 ‘제재’에 방점을 찍었지만, ‘대화’의 문을 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상회담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새 외교안보라인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사드 배치는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쟁점이다. 포틴저 보좌관은 “계속 대화하겠다”면서도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문제를 놓고 벌이게 될 미국과의 협의가 만만찮음을 예고한다.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56.1%가 ‘배치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배치 재검토’에 대한 국민 기대감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국내의 요구와 미국의 완강함, 중국의 기대감 등 상반된 요구를 조율하는 과제를 새 정부로선 피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10억달러 비용 분담’과 같은 무리한 요구엔 당당하고 분명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중·일·러 등 주요국에 보낼 특사단과 만나 “정치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됐음을 (각국에) 강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임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가 ‘시민혁명’의 연장선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 말처럼 외교안보 사안에서도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


[한겨레 사설] ‘촛불의 꿈’ 담은 소중한 한 표로 세상을 바꾸자

어디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19대 대통령선거야말로 어느 선거보다 각별하고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대선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돼 구속수감된 상태에서 그를 대신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유례없는 선거다. 추운 겨울날 언 손 비벼가며 촛불을 켰던 수많은 시민의 뜻을 받들어 치러지는 ‘촛불 대선’이다. 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권력을 쫓아낸 ‘시민혁명’의 마지막 매듭을 짓는 절차인 것이다.
‘촛불의 염원’은 아직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촛불의 바람이 아무리 절실해도 그 자체로는 잘못 박힌 대못 하나 빼내질 못한다. 오로지 투표를 통해 현실 권력으로 전환된 힘만이 부조리한 상황을 바꾸고 촛불이 꿈꾼 세상을 가꿔낼 수 있다. 이제 19대 대선의 날이 밝았다. 마음속에 촛불 한 자루씩 켜 들고 투표장으로 향할 시간이다.

민심의 심판대 맨 앞자리에 올려야 할 항목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정권의 부패와 무능, 정경유착과 권력 사유화를 빼놓고 이번 대선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국정농단을 방조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이랄 수 있는 자유한국당 역시 심판의 과녁을 피할 수는 없다. ‘친박 세력’은 국정농단을 방조하거나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 규명을 방해하거나 은폐하는 데 앞장섰다.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선거를 틈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활개를 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친박 핵심 인사 7명에 대한 징계를 직권으로 해제한 건, 이번 대선이 결국 국민과 탄핵 반대 세력의 또다른 대결임을 일깨워준다.

이번 대선은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총체적 평가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참담한 성적표는 희망을 빼앗긴 청년들, 불안에 빠진 중·장년층, 빈곤에 시달리는 노년층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헬조선’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각종 지표는 차고 넘친다. 민생뿐 아니라 외교·안보도 낙제점이다. 주변 강대국이 우리를 배제한 채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코리아 패싱’은 보수정권 10년이 남긴 불행한 유산이다. 안보·외교에서 드러난 무능을 색깔론으로도 덮을 수 없다는 걸 이번 선거 과정은 똑똑히 보여줬다.

촛불이 요구한 수많은 개혁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힘있게 추진할 ‘혁신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잘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잘못을 바로잡고 낡은 시스템을 고치려는 강한 의지와 실천력은 새 대통령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겸손한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국회 의석 분포로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무수한 개혁과제를 제대로 실현해내려면 ‘통합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란 더럽고 비루한 것’이라고 쉽게 손가락질하지만 그래도 정치의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야 비로소 현실은 바뀔 수가 있다. 냉소하고 팔짱만 낀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는 무기력할 뿐이다. 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세상을 뒤집고 현실을 바꿔나갈 때다. 촛불의 완성이 바로 우리의 한 표에 달렸음을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한겨레 사설] 사드 기습배치에 ‘1조원 폭탄’까지 던진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한국에 내라고 요구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한국민이 원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미군기지 방어를 위해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성주에 배치해 놓고선 그 돈을 다 우리에게 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사드가 본격 가동되면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에 전가하리란 우려가 많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그리고 훨씬 큰 규모로 우려가 현실화한 셈이다. 그런데도 “사드는 미군 무기체계이므로 우리는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된다”고 국민을 속인 박근혜-황교안 정부는 뭐라고 변명할 셈인가.

난데없는 ‘10억달러’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내는 사례일 수 있다. 사드 1개 포대를 고스란히 한국이 사라는 얘긴데, 이미 미군이 운용중인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우리 국방부는 즉각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한 이상, 구입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 전가가 이뤄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우리는 수도권 방어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드 때문에 중국과 외교·경제 마찰을 겪고 돈은 돈대로 미국에 내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우리 돈이 들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7월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사드 배치 및 운용 비용 1조5천억원은) 미군 부담이다. 우리는 부지 조성 비용 정도만 담당한다”고 답변했다. 그래도 나중엔 우리에게 비용 분담을 요구할 거라는 걱정에 국방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국민을 속인 셈이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함보다 한국 정부의 안이함과 무책임한 태도가 국민을 더 분노케 한다. 도대체 이 정부는 한국민의 뜻을 우선시하는 정부인지 아니면 미국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정부는 이제라도 사드 배치를 전면 보류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회에서 배치 여부를 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청구한 이상, 국회 승인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은 사라졌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문제점도 다시 조사해야 한다. 10개월간 나라 전체를 논란과 갈등에 빠뜨린 결과가 ‘10억달러 청구서’란 건 너무 뼈아픈 일이다.


[한겨레 사설] 정권이양기에 ‘사드 알박기’한 미국의 횡포

주한미군이 26일 새벽,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골프장에 발사대와 레이더 등 핵심 장비를 기습적으로 배치했다. 사실상 사드 배치가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주민 동의와 설득 과정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 등 최소한의 행정적 절차도 무시했다. 최근까지 한-미 당국이 잇따라 ‘사드 배치는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듯한 말을 해 다소 안심했는데 군사작전처럼 야음을 틈타 전격 배치를 완료하다니 우리 국민의 뒤통수를 때린 셈이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불과 13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이번 행동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알박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적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대표적 사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논의를 거치고, 미국·중국과도 추가 협의하는 과정을 밟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기습 배치를 통해서 미국은 이런 움직임 자체를 아예 원천봉쇄해 버렸다. 동맹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역주민은 물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한국민의 반감도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 국방부는 “환경영향평가와 시설 공사 등 관련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사드 배치가 거의 완료된 단계에서 진행하는 환경영향평가 등이 과연 변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지난 16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백악관 외교정책 참모가 ‘사드 배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불과 며칠 만에 이 발언을 뒤집었거나 그때 의도적으로 배치 강행 움직임을 숨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항공모함 칼빈슨호 항로 변경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이어,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신을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 키우고 있다.

이번에 배치된 사드 장비의 사격통제 레이더는 중국 정부가 가장 문제시하는 ‘엑스밴드 레이더’다. 중국은 곧바로 “(한반도) 긴장 정세를 한층 자극할 것”이라며 “관련 시설의 철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4월 위기설’ 등으로 높아진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중국은 핵실험 자제를 강력 촉구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번 사드 장비 반입으로 한반도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미-중 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사드 배치를 중단하고, 5·9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 추가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 대통령후보들도 사드 배치를 대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접근해선 안 된다. 한반도 정세 안정이란 큰 틀에서 국민에게 뚜렷한 대안과 입장을 제시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4월 위기설’과 안이한 정부 대응

최근 ‘4월 한반도 위기설’이 급속히 퍼졌다. ‘김정은 망명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에 이어 ‘외국계 기업 철수 준비설’ 등이 꼬리를 물었다. 발단은 사설 정보지라는데,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이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연일 보도하고,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미-중 정상 간에 모든 옵션이 논의됐다”고 말한 게 이런 상황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북한의 연례행사가 집중되는 4월엔 한반도 위기설이 반복되곤 했다. 최근엔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를 떠난 지 보름여 만에 이례적으로 한국으로 재출동하면서 긴장 지수를 높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가시적 성과물이 보이지 않는데다, 미국의 시리아 폭격 등이 겹치면서 불안감은 더해졌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은 양쪽 모두 과거 어느 정권보다 예측불가능성이 높다.

여기엔 우리 정부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11일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차분하고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치 남 일 이야기하는 듯하다. 외교부는 “(위기설의) 근거가 없다”며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설’ 등을 부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등 미 고위 정책당국자들의 한반도 관련 발언을 보면, 이들이 한국 정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협의를 하고 한국 입장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걱정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미국과 북한 양쪽에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에겐 ‘위기설’이 나도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뿐 아니라, 당장 금융·경제 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동맹이라면, 동맹국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언행을 자제하라고 우리 정부가 말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로켓 발사를 여러 차례 해왔고, 올해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긴장을 높이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통해 정권의 안위를 도모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한반도 평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문재인·안철수, ‘촛불 대선’ 의미 무겁게 새겨야

5·9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 간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된 이번 선거는 과거 대선과는 여러모로 양상이 다르다.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 기간이 부쩍 짧아지면서 이른바 ‘광속 대선’으로 치러지고 있다. 그만큼 밀도 있고 압축적인 경쟁이 필요하다. 특히 보수 진영이 몰락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되면서 야권 후보들이 1, 2위를 다투는 ‘야-야 대결’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여론조사 추이를 좀더 봐야겠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강을 형성하고,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김종인 등 나머지 후보들이 추격하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문재인 후보는 지지율 정체 현상을 겪으며 대세론을 위협받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후보는 중도·보수층이 몰려들어 지지율이 오르며 문 후보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향한 비난 공세도 거칠어진다. 문 후보 쪽은 안 후보를 “적폐세력 후보, 정권연장 후보”로, 안 후보 쪽은 문 후보를 “자기만 옳다고 하는 계파 패권주의”로 몰아붙이며 ‘낙인찍기’ 경쟁을 벌인다. 상대 당 경선의 동원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소재를 확대재생산한다. 이러다간 지지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이고 후보들은 큰 상처를 입는 ‘진흙탕 대선’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두 후보는 한달간의 선거전을 앞두고 ‘조기 대선’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뤄서 밀어붙인 게 여기까지 왔다. ‘촛불 민심’은 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 정권을 교체하고, 해묵은 악습을 청산하고, 각종 개혁 입법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5·9 대선은 결국 촛불에 담긴 민심을 누가 어떻게 차기 정부에서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가를 가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고 헐뜯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내가 촛불 민심의 체현자임을 증명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달 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정권 이양기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유념해야 한다. 헛된 공약을 제시하고 네거티브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금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이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간 한달 뒤 큰코다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되살려 나라를 수렁에서 건진 국민들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선거운동에 임해야 할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대선 이후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선 함께하겠다는 최소한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선거란 게 결코 평화로울 수 없고, 검증은 날카로워야 한다. 그래도 촛불의 시대적 과제를 중심에 놓고 깨끗하게 경쟁하고 치열하게 토론한다는 자세만은 두 후보가 버리지 말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구속, ‘정의와 상식의 시대’ 출발점 돼야

결국 구속됐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선언한 지 21일 만이다. 개인적으로는 참담한 일이겠으나 법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요, 정치적으로는 한 시대를 매듭짓는 역사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국회의 탄핵 소추와 특별검사 수사,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이어 구속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끊임없이 견인해온 것이 광장의 ‘촛불시민’이었다는 점에서 민주시민의 승리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31일 새벽 3시께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등 혐의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옮겨진 박 전 대통령은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작은 독방에서 ‘미결 수용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440원짜리 식단과 세면도구 등 최소한의 생활용품으로 생활해야 한다.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자괴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지나온 몇달만 돌이켜본다면, 이 모든 게 부인과 억지 주장으로 일관한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그곳에서의 나날을 성찰의 시간으로 삼기 바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장 발부는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행위에 대해 일차적인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강 판사가 ‘증거인멸의 염려’를 구속 사유로 꼽은 것은 박 전 대통령 쪽의 그간 주장과 변명을 거짓으로 판단하고,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조처한 것으로 평가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두차례 수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확보된데다 관련자들도 구속된 상태여서 영장 발부는 일찍이 예상돼왔다. 더구나 그 증거의 원천이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참모들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참모에게 책임 돌려 구속 자초

박 전 대통령 쪽은 검찰에서뿐 아니라 영장 심사 과정에서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통장에 돈 한푼 들어온 적 없다”는 식의 논리로 반론을 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설립·운영·인사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상의하며 ‘공모’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대기업들로부터 뜯어낸 돈이 자기 계좌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해서 죄가 안 되는 게 아님은 당연한 법리다.

박 전 대통령 쪽은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도 편 모양이다. 그러나 안종범 수석을 통해 이승철 전경련 당시 부회장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은 여럿이다. 무엇보다 그가 명백한 증거와 증언이 있는데도 모든 책임을 참모와 측근에게 돌리며 “몰랐다”고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 법원에서도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여러 면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재벌 수사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 등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최씨 일가 재산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추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 전 수석이 검찰을 농단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검찰 스스로 자기 살을 도려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도 남아 있다. 검찰 수뇌부를 포함해 성역을 두지 말고 제대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국민에게 사죄하고 극단세력 자제시켜야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한번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수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사실상 탄핵과 수사에 ‘불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국민저항본부’가 31일 구속 비난 성명과 함께 1일 태극기 집회를 예고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구속은 법률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으로 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극단세력을 자제시켜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결자해지의 자세로 모든 진실을 고백하고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그것이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분열과 갈등을 씻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과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기도 하다.

그를 따르는 친박 세력 역시 이제는 억지 주장을 버리고 극단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그것만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심판과 함께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시대도 역사에서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구속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와 상식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구속’, 망설일 필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22일 귀가했다. 이제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과 관련 기록, 증거 등을 토대로 구속 여부를 포함한 수사 방향을 정하게 된다. 오로지 법과 원칙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사실과 법률 관계로 보면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건의 실체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1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범죄를 충분히 소명할 만큼의 물증과 증언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공범이나 관련자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박 전 대통령의 혐의 대부분은 중형이 예상된다. 삼성에서 받았다는 수백억원의 뇌물이 법정에서 인정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공범 대부분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혐의가 이렇게 중대하면 대부분 구속 수사를 하기 마련이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구속의 필요성을 높이는 것이다. 물증이 확실하고 관련자들의 흔들림 없는 진술이 있는데도 범죄의 고의성을 반복해 부인하는 것 자체가 증거인멸의 우려를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거가 분명한데도 한사코 아니라면 언제든 수사를 방해하리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쪽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범’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 등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된 마당에 모든 혐의의 중심인물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의 어느 기준과 원칙으로도 박 전 대통령 구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은 큰 사건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수사를 위해, 법 집행의 원칙상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판단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된다. 앞으로 치를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유리하고 불리할지, 어느 쪽이 얼마나 반발할지, 어떤 상황이 검찰에 유리한지 따위의 정치적 고려를 하다가는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법과 원칙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결정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 가뜩이나 국민 불신을 받아온 검찰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판단이 섰다면 미뤄서도 안 된다. 결정이 지연되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영장 청구 여부는 이번주 안에 결단하는 게 옳다.


[한겨레 사설] 미·중에 ‘한반도 운명’ 전적으로 내맡겨선 안 된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부터 19일까지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세 나라에서 모두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정상도 예방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번 방문의 성격을 ‘경청 투어’라고 말했지만, 위기가 최고조 상태에 있는 한반도 상황과 유동적인 미-중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로선 운명을 가를 중요한 순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에서는 아시아에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과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강화를 강조하고, 한국에선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군사적 옵션까지 포함하는 대북 강경정책을 내놨다. 이와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 중국도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대북·대중 강경 메시지를 날렸다.

틸러슨 장관은 마지막 순방지인 중국에서는 일본, 한국에서와는 달리 다소 완화된 목소리를 내놨다. 18일 열린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경로를 바꾸기 위한 설득에 공감’했고, 19일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에서도 미-중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이 한·중·일 3국을 순방하면서 내놓은 북한과 관련한 메시지는 전반적으로 강경책에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는 4월 초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공개적인 이견 표출을 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순방에 유일하게 동행한 미국의 인터넷 언론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와 한 기내 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면 “오늘 서 있는 지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런 점에서 4월 초의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운명을 ‘전쟁과 평화’ 중 한쪽으로 가르게 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더 강한 대북 압박을 요구하는 미국과 북-미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한반도엔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
정부 당국과 여야 정치권은 한반도의 운명이 다른 나라의 손에 의해 불행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지금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기지수가 높은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한겨레 사설] ‘피의자 박근혜’ 소환, 압수수색도 서둘러야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1일 오전 검찰청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도 “그날 출석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수사 시작 다섯달 만에야 비로소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늦어진 만큼 한 치의 허술함도 없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소환에 응하겠다지만 아직 긴가민가한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몇 차례나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하고도 정작 대면조사가 닥치면 그때마다 이런저런 핑계와 트집으로 조사를 무산시켰다. 이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검찰도 체포나 구속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나와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는 이미 대부분의 혐의를 다 부인한 터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검찰과 특검이 몇달간의 수사를 통해 증거와 증언, 자료를 축적하고 다져놓은 상태다. 관련자들도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했다. ‘아니다’, ‘몰랐다’, ‘선의였다’고 무턱대고 부인한다고 해서 통할 상황은 이미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또다시 검찰을 비난하고 정당한 수사를 배척하면 진실 규명은 더욱 멀어진다. 혹여 소환조사를 불씨 삼아 소수 지지층을 향해 정치적 선동을 하려 한다면 진작에 포기하는 게 옳다. 더는 분열과 대결을 빚지 않는 것, 지금이라도 법치에 협력하는 것이 그나마 국민에 대한 도리다.

검찰도 당당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조사가 처음도 아니고, 구속한 전례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을 부당하게 압박할 필요도 없지만, 정치적 고려 따위로 좌고우면할 이유도 없다. 검찰은 ‘법 앞의 평등’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 구속과 기소도 사안의 중대성, 구속기소된 다른 관련자들과의 형평성, 증거인멸 우려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혐의가 확인됐다면 법적 처리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신속·엄정한 법 집행이 이번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당장 서둘러야 할 일은 청와대 압수수색이다. 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청와대에서 작성된 각종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그리되면 혐의를 입증할 전자기록, 통화기록, 업무수첩 등 온갖 증거도 다 ‘봉인’돼 진실의 온전한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증거물을 숨기거나 폐기해도 감시할 수단도 없다고 한다. 검찰은 더 늦기 전에 압수수색에 나서야 한다.


[한겨레 사설] “진실 밝혀질 것” 원한다니 검찰도 머뭇댈 이유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청와대 퇴거로 검찰 수사에는 물리적 장애가 없어졌다. 현직 대통령일 때는 불소추 특권 말고도 대면조사나 강제수사도 어려웠지만 ‘자연인 박근혜’에겐 그렇게 숨을 데가 없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대통령이 있던 때와 없을 때가 판이할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가 박 전 대통령 앞에서 가로막혀 미완인 채로 검찰로 넘겨졌으니,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검찰로선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의 태도를 봐도 고삐를 늦출 일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12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뒤 처음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성이나 사과, 나라 걱정을 앞세우는 지도자의 품격은 찾을 수 없다. 헌재 결정을 부정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악에 받친 결기만 있을 뿐이다. 그가 끝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다. 진실 규명은 그뿐 아니라 온 국민이 다 원하는 바다. 박 전 대통령은 억울하다면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에 응해 진실을 소명하면 된다. 검찰도 입건된 혐의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면 된다. 좌고우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한 의지와 현명한 결단이다. 검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선을 다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검찰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한때 대통령이었다고 봐줄 여유는 없다. 헌재도 박 전 대통령이 여러 차례 거듭한 약속과 달리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거부하고 압수수색에도 응하지 않은 것을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터다. ‘피의자 박근혜’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소환을 거부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 원칙대로 체포하고 강제수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박 전 대통령 쪽의 그간 태도로 볼 때 수사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수사 방해나 증거인멸을 예사로 벌일 수 있다. 검찰도 세심한 검토와 주도면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또 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본격화하면 선거에 끼칠 영향 때문에 수사가 제약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대선 이후로 수사를 미루다간 진실 규명이 영영 어려워질 수 있다. 검찰의 수사 역량을 집중해 압축적인 수사로 이른 시일 안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최선이다. 그것이 법 집행의 원칙이기도 하다.


[한겨레 사설] 민주주의 이정표 새로 세운 시민혁명의 승리

어리석고 무도한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사필귀정. 국민을 업신여기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든 죄업에 대한 당연한 인과응보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썩고 병든 가지는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의 외적 형식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지만, 실제적 내용은 상식과 순리의 승리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이념과 계급의 문제도 아니다. 겨우내 광장에 타오른 촛불은 ‘법치와 민주’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었고, 헌재는 ‘전원일치 찬성 파면’으로 이에 응답했다.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는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며 “대통령 파면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헌재의 결정은 간결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촛불이 흘린 눈물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했고, 불꽃에 깃든 생명력은 나라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 힘차게 꿈틀대고 있다.

법치주의는 통치자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하는 데서 시작한다. 헌법의 헌(憲)은 누구도 사회 구성원에게 해로운 일(害)을 하지 못하도록 눈(目)과 마음(心)으로 철저히 감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합리적 법의 지배 대신 권력자의 제멋대로 지배가 횡행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방약무인한 자의적 통치에 쐐기를 박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 최고권력자를 엄히 징치함으로써 법치주의의 대의를 다시 우뚝 세웠다.

‘법치와 민주’ 가치 확인한 헌재 결정

대통령의 파면은 국민에게 수치이자 자랑이다. 조작된 신화와 허상에 속아 오만무도한 자격미달자를 국가 최고지도자로 뽑은 것은 돌이키기 힘든 실수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잘못을 스스로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위대한 저력을 발휘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 선현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켰다. 2017년 3월10일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혁명의 값진 승리의 날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 ‘실낙원’의 슬픔을 되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4년의 세월 그에게 청와대는 마음껏 활개 치고 즐기는 낙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지옥이었다. 경제는 바닥으로 주저앉았고, 민생은 파탄 나고, 한국은 국제사회의 동네북 신세가 됐다. 온 나라를 둘러봐도 어디 한군데 온전한 곳이 없다. 무능한 권력자가 쫓겨나며 남긴 갖가지 불행한 유산은 고스란히 국민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반성과 참회를 하지 않는다.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온 뒤에도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이 침묵으로 버티고 있다. 그사이 헌재 앞 거리에서 벌어진 탄핵 반대자들의 집회는 폭력·과격으로 치달았고 두 명이 숨지는 불행한 사태가 빚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헌재 결정 직후에 곧바로 겸허히 승복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어야 옳았다. 그래서 공황 상태에 빠진 탄핵 반대자들을 달래고 이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끝까지 방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 불상사를 자신의 입지 강화에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좌에서 쫓겨난 그 앞에는 검찰 수사 등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탄핵 반대자들의 극렬시위는 자신을 보호할 좋은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고 여길 법도 하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행보를 보면 나라야 결딴나든 말든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몰염치와 꼼수의 연속이었다. ‘헌재 결정 승복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쯤은 쉽게 걷어찰 수 있는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꼼수를 쓴다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헌재 결정에 침묵으로 버티는 의도 뭔가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제 광기의 탁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는 불빛을 향해 부질없이 달려가는 여름 벌레에 불과했음이 헌재 결정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헛된 미망과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태극기를 욕보이는 행위는 나라의 불행이자 본인들의 불행이다.

헌재는 단지 박 대통령의 탄핵 여부만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그 안에는 담겨 있다. 헌재 결정은 탄핵 열차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도전을 향한 출발역이다. 나라의 근간을 새롭게 세우는 일은 단지 법치주의의 확립, 최고권력자의 절제 등에 그치지 않는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는 반칙과 특권,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 체계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적폐 청산이 그것이다.
헌재 결정으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5월 ‘벚꽃 대선’의 역사적 의미 역시 자명하다. 봄의 밝은 기운을 맞아 낡고 병든 가지를 모두 쳐내고 새로운 싹을 움트게 하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그 새로운 싹이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겨레 사설] 탄핵 이후 국민 통합, 박 대통령의 태도에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탄핵심판 선고가 10일 오전 내려진다. 헌재 선고를 앞두고 정치권은 폭풍 전야의 긴장 속에 빠져들었다. 긴장과 걱정이 더해지는 건,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해 극단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일부 극우 단체·인사의 발언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의 한복판엔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더는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다.
전직 아나운서 정미홍씨는 9일 페이스북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제가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고 주장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은 10일 오전 10시에 헌법재판소 앞에 총집결해서 ‘마지막 전투’를 하자고 촉구했다. 헌재가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 전면적인 불복 투쟁을 벌이자고 선동하고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이들의 행동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극단적인 행동에 힘을 실어준 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란 사실에 많은 국민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박사모에 “고맙고,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탄핵 반대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해달라는 노골적인 부추김에 불과하다. 설령 국회의 탄핵소추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분열과 갈등만은 피하자고 호소하는 게 국가 지도자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지지자의 광적인 행동을 오히려 부추기다니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다. 더 이상의 분열을 막기 위해선 박 대통령이 먼저 극단적 태도를 보이는 일부 지지자를 자제시켜야 한다. 그게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18대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 대한 소명이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대통령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착각하는 박사모와 같은 단체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호소문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주교회의는 “우리 국민은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과 갈등에 직면했다”며 “한국 천주교회는 헌법재판소가 공정한 판결로 법치주의 실현과 민주주의 도약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했으며, 이 사태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4년 전 국민 앞에 했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는 취임선서를 되새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직무는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을 분열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국민이 대통령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모든 범죄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특검 발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6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밝혔다. 대통령의 혐의는 이것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삼성을 돕기 위해 여러 부처에 부당한 지시를 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하고 공모했다. 공무원들을 쳐내고 민간기업 인사에 관여한 것도 대통령이고, 국가기밀문서 유출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국정농단으로 벌어진 모든 범죄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뇌물수수의 핵심 피의자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최씨는 삼각 고리를 이뤄 청탁과 대가, 지원을 주고받았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부당 거래’다. 특검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이 대통령과 최씨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공동 소유물이라고 판단했다. 영재센터나 정유라씨 승마훈련 지원도 기업에서 돈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과 최씨는 공모해, 당시 경영권 승계가 절실했던 삼성으로부터 승마훈련 지원, 재단 출연 등 여러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 433억여원을 주고받기로 약속했고, 실제 건네진 돈도 300억원 가깝다. 대신 삼성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 등을 통해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을 도와달라고 온갖 청탁을 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조정,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때 의결권 손실 최소화, 금융지주회사 전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입법,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지원,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등 단계별로 현안이 여럿이다.

삼성의 청탁을 들어주기 위해 청와대는 물론 보건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환경부, 한국거래소 등 여러 부처와 기관이 움직였다. 그렇게 동원할 수 있는 힘은 대통령뿐이겠다. 실제로 공정위가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처분 주식을 절반으로 줄여준 것은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공단이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수천억원의 손해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합병에 찬성한 것 역시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위해 거래소와 환경부가 관련 규정과 환경규제를 폐지한 데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안 될 일을 되게 한’ 배경은 청탁과 대가의 뇌물관계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블랙리스트 역시 대통령에서 비롯됐다.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는 박 대통령의 말이 바로 지시였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최씨 등과 차례로 공모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비판적 단체와 개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런 일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문체부 간부들을 사직시키는 데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한다. 세월호 추모, 혹은 그저 야당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따위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한 것은 정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봉쇄한 반헌법적 중대범죄다. 이것만으로도 탄핵 대상이다.

국정농단과 헌정 유린의 주범이 박 대통령임을 분명히 드러낸 특검의 성과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진상을 다 밝혀내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대통령의 직무 유기 의혹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그즈음 불법 미용시술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은 더 커졌지만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무산되면서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2730억원에 이른다는 최씨 일가의 재산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박 대통령은 관여하지 않았는지도 여러 제약으로 의혹을 풀지 못했다. 국정농단이 횡행할 수 있도록 ‘채찍’과 ‘방패막이’ 구실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조사도 미완이다.
이제 남은 의혹의 규명은 검찰에 넘어갔다. 눈치 보고 머뭇거릴 계제는 이미 아니다. 특검 못지않게 거침없이 수사해 진상을 밝혀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거세지는 중국의 ‘사드 보복’, 치졸하고 위험하다

중국의 대한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도를 넘고 있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각종 보복 조처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대국을 자처하는 나라로서 치졸하고, 한-중 관계의 근본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관광과 여행을 총괄하는 국가여유국이 2~3일 전국의 주요 여행사 간부들을 불러 한국행 관광객 송출 금지 방침을 통보한 것은 중국 정부의 뒤틀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물증을 남기지 않으려고 구두로 지시한 모습에선 교활함마저 느껴진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이미 불매운동과 상품 철수 등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문화상품·화장품·면세점 등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이런 행동은 2012년 센카쿠열도(중국이름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충돌한 일본을 상대로 2년 이상 취했던 여행 제한 조처를 연상시킨다. 이 조처로 이후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과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10%가량 줄었다.

중국의 행태는 합법적인 민간 경제활동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국제규범에 어긋난다. 사드 배치의 주역인 미국은 제쳐놓고 중간에 낀 한국을 겨냥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보복이 문제를 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국민의 정서가 나빠진다면 다른 대화도 영향을 받게 된다. 경제적으로도 중국 역시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수교 25돌을 맞는 한-중 관계가 이렇게 큰 벽에 부닥치는 것은 중국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섣부르고 무력한 모습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다. 이제라도 배치 과정을 보류하고 다음 정부가 재검토하도록 하는 게 옳다. 중국의 반발이 빤히 예상됐는데도 그냥 방치한 외교력도 한심하다. 나아가 여권이 사드 문제를 반대 세력에 대한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기가 막힌다. 여권 일부에선 중국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정부가 자리를 잡기 전에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알박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중국은 자신이 강조하는 ‘신형대국’답게 품격 있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두 나라의 국가전략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적을 대하듯이 행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서로 소통을 강화해 공존공영을 꾀하려는 시도는 중단 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드 문제, 나아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법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사설] 대통령의 ‘망상과 기만’, 인내의 한계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처음 입을 연 것은 지난해 10월25일 제1차 대국민담화다. 그로부터 넉달이 지난 27일 오후,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최후진술서를 ‘대독’시켰다. 그런데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자화자찬, 책임 떠넘기기, 시치미 떼기, 셀프 면죄부 주기…. 이것은 단순히 무책임이나 뻔뻔함 따위의 말로 비판할 수준을 넘어섰다. 앞뒤 분별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사고 체계가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린 ‘미성숙 인간’이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해왔음을 확인하는 비감이 몰려온다.

박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는 최후진술서에서 ‘약속’이란 단어를 13차례나 쓴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검찰·특검 조사를 받겠다는 약속을 세 차례나 하고서도 이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다른 단어는 몰라도 ‘약속’이란 단어는 피했어야 마땅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재임 4년은 ‘약속 위반의 역사’였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기는커녕 나라를 ‘국민불행시대’ ‘국민분열시대’에 빠뜨렸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취임 선서부터 철저히 어겼다.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를 수렁에 빠뜨리고 대통령의 직책을 비선 실세에게 넘겼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약속’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대통령 앞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박 대통령의 최후진술서 마지막 대목은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의 ‘망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탄핵심판이 기각될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만에 하나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일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길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앞으로의 국정운영 다짐이나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자기기만 속에서 사는 것은 자유지만 그럴수록 국가와 국민은 불행해진다. 혹시라도 박 대통령이 헌재 결정 전에 자진사퇴라는 꼼수를 쓸 경우 대통령의 증세를 치유할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제 박 대통령의 망상과 착각에 경종을 울릴 때가 됐다. 헌재는 조속히 헌법과 민심의 이름으로 박 대통령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리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아바타’ 확인한 황 총리의 특검 연장 거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특검법의 목적과 취지가 달성됐고, 특검을 종료하는 게 국정 안정에 바람직하다”는 것 등이 그 이유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궤변이다. 전례 없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가로막으면서까지 황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임을 확인한 것이라고밖엔 달리 할 말이 없다. 국민에게 정면도전한 황 총리는 그에 대한 엄정한 역사적·정치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황 총리가 특검 연장 거부의 명분으로 든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사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최순실씨 등 핵심 당사자를 기소할 정도로 수사가 진행됐으니 남은 부분은 검찰에서 계속하면 될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피의자인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는 아직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아직 덴마크에 체류 중이고, 삼성 이외의 다른 재벌기업 수사는 본격 착수조차 못 했다. 그런데도 ‘수사가 충분하다’고 강변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일 뿐이다. ‘필요하면 검찰에서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말 자체가 거꾸로 특검 수사의 연장 필요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정 안정’을 반대 이유로 든 건 더더욱 말이 되질 않는다. 국정 혼란의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최순실씨가 정부 조직을 무력화하며 사적으로 국정을 농단한 데 있다. 그런 국정농단을 철저히 수사하자는 게 어찌 국정 혼란일 수 있는가. 오히려 수사를 가로막고 박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황 총리의 태도가 바로 정의에 반하고 국정 혼란을 지속하는 일이다.

황 총리의 특검 연장 거부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터다. 그렇다면 특검법을 의결한 국회에선 황 총리의 거부에 대비해서 수사를 지속하기 위한 사전 조처를 미리 취했어야 옳다. 황 총리를 비난하는 민심이 들끓자 뒤늦게 ‘국무총리 탄핵안’까지 야당에선 거론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새로운 입법을 통해서 박영수 특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국회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황교안 총리의 특검 연장 거부 결정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엔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는 수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국민 협박하는 친박세력의 ‘내란 선동’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탄핵 반대 세력의 선동과 협박이 갈수록 극성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22일 헌재 심판정에서 내란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하더니, 이튿날부터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탄핵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을 공언하고 나섰다.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일 것” 따위의 말들이 섬뜩하다. 헌재 재판관 등에 대한 테러 위협도 공공연하다. 한 보수언론은 금방이라도 내전이 벌어질 것처럼 으름장을 놓는다.

선동과 협박이 가리키는 방향은 ‘헌재 심판 중단’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전날 대통령 대리인단의 논리를 되풀이하며 ‘탄핵소추와 탄핵심판 절차에 문제가 있으니 헌재 심판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24일 국회에서도 비슷하게 황당한 주장이 이어졌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친박 의원들은 저마다 “최순실을 몰랐다”고 손사래를 치며 구석으로 숨기 바빴다. 국회 표결 때도 새누리당은 자유투표를 앞세웠을 뿐 절차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탄핵소추부터 잘못됐다고 태도가 돌변했다. ‘헌재 심판 불복’ 등 헌정 체제와 법치를 무시하는 말도 예사로 한다. 헌재 결정을 뒤집으려 지지층 결집과 극한적 반발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러는 것이겠다.

애초 대통령 대리인단의 ‘막말’부터 계산된 전략이었던 듯하다. 과격한 피고인의 법정 난동은 더러 있었지만, 변호인이 법관 이름까지 불러가며 비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지 세력에게 공격 대상을 지목하는 모양새 같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아니라 방청석을 향해 “내전” “시가전” 따위의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변호인의 변론이 아니라, 노골적인 정치 선동이다. ‘도발’로 심판을 중단시키거나, 아예 판을 엎어 ‘봉기’를 이끌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지금 ‘내란’을 부추기고 협박하는 쪽은 탄핵 반대 세력이다. 탄핵 찬반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탄핵 결정을 저지하려는 쪽이 대놓고 ‘깽판을 치려고’ 덤비고 있다. 탄핵 찬반 의견이 비슷한 것도 아니다.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은 국회의 탄핵소추 때부터 80% 안팎으로 절대다수다. 그러니 혼란 획책의 책임을 물어야 할 쪽은 분명하다. 친박 세력은 당장 선동과 협박을 멈춰야 한다.


[한겨레 사설] 우병우 수사 제대로 하고, 특검 시한도 연장해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청구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이 22일 새벽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을 방조·비호한 주역인데다 청문회 불출석으로 시민들로부터 현상수배를 당하는 등 ‘법꾸라지’로 지탄받아온 인물이다. 구속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기각은 국민 법감정과는 괴리가 크다. 정유라 답안지 고쳐준 교수들까지 줄줄이 구속된 것과 비교해봐도 형평성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특검은 특검법에 명시된 국정농단 방조·비호 및 특별감찰 방해·해체 혐의에다 문체부·공정거래위 공무원들 강제해직 등 혐의를 추가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법원은 ‘소명 부족’과 ‘법률적 평가에 다툼의 여지’를 기각 이유로 들었다. 민정수석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한 것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다 수사도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실제 특검은 특별감찰 방해·해체에 가담한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은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못 한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을 법하다. 우 전 수석은 내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가교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법원이 우 전 수석의 손을 들어준 꼴이 됐다.
특검은 “입증의 난이도를 고려”했다지만 세월호 수사 외압 등 유독 검찰 관련 대목만 빼놓은 것은 선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박영수 특검 등과의 개인적 친분이나 ‘검찰 가족’ 논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앞으로가 문제다. 특검은 불구속 기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래선 안 된다. 기존 혐의뿐 아니라 개인비리 의혹도 여럿이다. 엉성하다는 판단을 받았는데도 그대로 기소하면 ‘무죄’ 때려도 좋다는 것밖에 안 되고 다른 기관의 추가 수사 여지조차 봉쇄하게 된다. 특검은 일단 기한까지 최대한 보강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현직 검찰 간부들도 조사해야 한다. 청와대 압수수색은 시도하면서 법무부·검찰청은 왜 수색 못 하나. 그것이 특검을 만든 국민의 뜻에도 부응하는 길이다. 적극 수사로 화룡점정을 찍기 바란다.
물론 특검 수사기한은 당연히 연장돼야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연장을 거부하는 것은 범죄 은폐의 공범이 되고 역사에도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이마저 안 되면 국회라도 나서서 촛불 시민의 뜻에 화답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은 ‘탄핵 지연책’ 그만 포기하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쪽의 탄핵심판 지연책에 단호하게 제동을 걸었다. 박 대통령이 출석한다고 해도 심판을 더는 늦출 수 없음을 분명히 했고, 불필요한 추가 증인 신청도 거부했다. 지금 대통령 쪽은 어떻게든 변론 종결을 늦춰 아예 선고 자체를 막겠다는 속셈이겠다. 그대로 뒀다가는 헌정 정상화와 정의 실현이 한없이 지체된다. 헌재의 단호한 태도는 지극히 당연하고 옳다.
이쯤 됐으면 박 대통령 쪽도 더는 탄핵심판 지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20일 변론기일에서 헌재는 대통령 쪽의 지연책을 하나하나 깼다. 대통령의 헌재 출석을 빌미로 변론을 재개하거나 변론 종결이 늦춰질 가능성에 대해선, ‘설령 대통령이 출석하더라도 재판부가 정한 기일에 출석해야 하며, 변론 종결 뒤 변론을 재개하거나 따로 기일을 잡지는 않겠다’고 못박았다. 대통령 출석이 지연의 빌미가 될 여지를 없앤 셈이다. 변론 종결을 2월24일에서 3월2~3일로 늦춰달라는 대통령 대리인단 요구에 대해서도 “대통령 출석 여부 등에 따라 22일 결정하겠다”고 밝혀, 이유 없는 지연 시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시간 끌기’로 볼 수밖에 없는 대통령 쪽의 거듭된 증인 신청도 기각했다. 헌재는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증인신청이나 이른바 ‘고영태 녹음파일’ 검증 신청은 “탄핵심판의 핵심과 관련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듭 불출석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증인 채택도 취소했다. 이미 탄핵심판 사유에 관해서는 관련 증거와 증언이 충분히 쌓였고, 반대 신문도 다 한 터다. 대통령 쪽의 이런저런 불필요한 신청은 진작에 제지했어야 했다.

이제 대통령 대리인단엔 ‘떼쓰기’ 말고 다른 지연책이 더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혹여 헌재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려 한다면 당장 포기하는 게 옳다. 헌재는 대통령 쪽의 증인 신청 등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핵심과 무관한 내용 없는 증언이나 심판 불출석 등으로 시간만 허송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 쪽 책임이다. 이제 와서 헌재가 불공정하다고 시비를 건다면, 가능하지도 않은 대통령의 정치적 구명을 위해 헌법기관인 헌재를 공격하고 헌정 체제를 훼손하는 ‘반헌법적 만행’이 될 뿐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품격을 찾아야 한다. 정말로 헌재에 출석하겠다면 정해진 변론기일에 나와 법대로 최후 진술과 함께 신문에 당당히 응하는 게 옳다. ‘꼼수’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한겨레 사설] 우병우 ‘국정농단 방조’에 검찰 책임은 없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9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하고 특별감찰관실의 감찰까지 방해했다는 등의 혐의다. 사정업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그런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저질렀으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금껏 모면했던 게 오히려 의아하다.

우 전 수석은 이번 사태에서 다른 누구 못잖게 책임이 큰 사람이다. 그는 2014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이었다. 그 기간은 최씨가 온갖 방법으로 국정을 농단해 극성스럽게 이익을 챙기던 때였다. 국정 정보가 집결되는 민정수석실에서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 안팎을 넘나들며 벌어진 최씨 등의 비위를 감찰하지 않았다. 되레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불법모금 의혹을 내사하던 이석수 특별감찰관 해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까지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직무유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 전 수석이 국정농단에 적극 관여한 의혹은 여럿이다. 최씨가 미얀마 대사 임명과 공적개발원조에 손을 뻗쳐 이권을 챙기려던 과정에서 느닷없는 대사 교체의 근거가 된 인사지침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됐다. 블랙리스트에 소극적인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의 좌천 인사와 씨제이이앤엠 표적 조사를 거부한 공정거래위 국장의 강제 퇴직에도 우 전 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우 전 수석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의혹이 불거지자 수사 대응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파괴는 물론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데도 가담한 셈이다.

우 전 수석 혼자서 이런 일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조였던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엉뚱하게 청와대 문건유출 논란으로 변질된 데는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런 ‘외압’에 동조한 당시 검찰 지휘부의 책임도 마땅히 규명해야 한다.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검찰 수사에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 역시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 직전 케이스포츠재단이 롯데에 지원금 70억원을 돌려준 것도 수사정보 유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병우 개인만이 아니라 검찰까지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특검은 ‘우병우 수사’를 적당히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대통령은 특검 조사에 당당히 응하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기소도 시간문제가 됐다. 당장 특검의 대면조사를 피할 명분이 없다. 법원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박 대통령-최순실씨의 뇌물수수 혐의도 어느 정도 소명됐다는 것을 뜻한다. 최씨 일가에 대한 삼성의 지원이 박 대통령의 삼성 특혜 지시의 대가라고 볼 만한 정황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특검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이 최씨 일가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433억원이라는 거액을 지원한 데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넘어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완성’이라는 더 큰 대가가 있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합병 이후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할 수 있도록 매각할 주식 수를 크게 줄여주고,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추진한 것 등이 삼성의 필요에 맞춘 대가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세 차례의 대통령 단독 면담에서 도움을 부탁하고, 박 대통령이 관련 지시를 한 정황 등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 39권 등에 나와 있다. 도움의 대가로 삼성이 무리하게 최씨 일가를 지원한 정황도 한층 분명해졌다. 박 대통령-이 부회장-최순실씨로 이어지는 ‘삼각 대가관계’다.

이제 대통령 대면조사는 불가피하고 시급한 일이 됐다. 특검은 박 대통령 조사 없이도 대가성을 상당 부분 입증해낸 터다.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았는지, 도움의 대가로 삼성 쪽에 최씨 등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는지 등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하고 주도한 공범으로도 지목돼 있다. 특검 조사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다 직접 밝혀야 할 혐의들이다. 피한다고 해서 모면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박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겠다는 공언을 이미 여러 차례 어겼다. 지난 9일에는 조사 일정이 보도됐다는 터무니없는 핑계로 특검의 대면조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품격이나 염치와는 거리가 먼 ‘떼쓰기’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구차한 조건을 달지 말고 특검의 대면조사에 당당하게 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탄핵심판, 이제 결론 내릴 때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24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소추인단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23일까지 최종 입장을 문서로 정리해 제출하면 24일 최종 변론을 듣는다는 일정이다. 일정대로면 평의와 결정문 작성 등을 거쳐 3월13일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전에는 헌재 결정이 선고될 수 있다. 큰 방해가 없다면 3월 초 선고도 가능하다. 국정 공백과 국가 리더십의 불안이 언제 끝날지 이제는 조금 분명해졌다. 그나마 다행이다.

대통령 쪽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시간 여유가 없다며 최종변론 연기를 주장했지만, 탄핵 소추 뒤 두 달 넘는 동안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변론 종결을 무한정 늦출 수도 없는 일이다. 탄핵 당사자인 박 대통령의 직접 출석을 핑계 삼아 심판을 늦춰볼 생각이라면 진작에 포기하는 게 옳다. 박 대통령은 당사자 출석이 가능했던 첫 변론기일부터 출석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뒤늦게 직접 출석하겠으니 느지막이 따로 기일을 잡자고 주장한다면 ‘시간 끌기’라는 비난만 받게 된다. 대통령이 최후진술을 하겠다면 국회 소추인단의 신문에도 응하는 게 당당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라도 기일을 더 늦출 일은 아니다. 대국민 담화의 반복일 뿐인 최후진술만 고집한다면 따로 기일을 잡을 것도 없이 최종 변론기일 때 하도록 하면 된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대통령 쪽의 의도적인 지연전략으로 이미 큰 지장을 받은 터다. 이번 주 예정된 증인 8명 가운데 출석한 증인은 2명뿐이다. 다음 주 15·16차 변론기일에도 5명의 증인이 예정돼 있지만 몇 명이나 나올지 알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대통령 쪽이 신청한 증인이다. 2주 넘게 부르기만 하다 시간을 허송한 셈이다. 출석한 증인들도 탄핵 사유에 직접 연결된 새로운 증언은 딱히 없다. 불륜설이나 고영태씨의 재단 장악 음모설 등 탄핵심판의 핵심과 거리가 먼 엉뚱한 ‘막장드라마’로 본질을 흐리는 신문만 이어졌다.

헌재가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은 당연하다. 헌재는 고씨의 음성이 담긴 2000여개의 녹음파일을 심판정에서 일일이 다 들어보자는 대통령 쪽의 무제한 검증 신청을 거부했다. 불출석한 증인들의 증인채택도 직권 취소했다. 대놓고 시간만 끌려는 대통령 쪽의 ‘어깃장’을 다 받아들이다간 한두 달을 또 허송할 판이니 마땅한 결정이다. 헌재는 이미 충분히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결단할 때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정당’ 자처할 거면 당 이름은 왜 바꾸나

새누리당이 13일 상임전국위를 열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지 5년 만이다. 예전엔 이름을 바꾸면 과거와 절연하는 듯한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번엔 아예 그것도 없다. 당 이름을 바꾼 바로 그날, 여당 지도부는 탄핵 반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조속한 복귀를 공공연히 촉구했다. 그럴 거면 5년 전 박 대통령 자신이 만든 ‘새누리당’이란 이름을 왜 바꾼 건지 궁금하다. 변화의 몸짓은 거부하면서 개명만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려는 행태는 가증스러울 뿐이다.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꾸면서 “14일부터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국민의 쓴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 ‘반성·미래·책임’이 버스 투어의 슬로건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반성하고, 보수의 미래를 설득하며, 집권여당의 막중한 책임을 국민에게 설명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도부 발언을 보면, 반성과 미래와 책임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문수 비상대책위원은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보니 애국심에 굉장히 감명받아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폭로한) 고영태씨를 당장 구속하라”고 주장했다. 반성은커녕 국정농단의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옹호하는 데 급급하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 절차를 중단하고 ‘4월 대통령 퇴진-6월 대선’의 타협책을 정치권에서 찾자고 주장했다. 초기에 이런 정치적 해법을 모색했지만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 때문에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어떻게든 대통령 탄핵을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려는 정치적 술수만 엿보인다. 이런 정당이 당명을 백번 천번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유한국당은 1990년 이후 27년간 4번이나 이름을 바꿨다. 당 이름 바꾼다고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과거엔 변신의 흉내라도 냈다.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이름 바꾼 건, 이명박 대통령 흔적을 지우겠다는 의도였다. 이번엔 박근혜 흔적을 지우겠다는 말조차 하질 않고 당명만 바꿔 국민을 현혹하려 한다. 뻔뻔함이 역대 보수정당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한겨레 사설] 대통령의 수사 훼방에 불가피해진 ‘특검 연장’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월28일 1차 수사 기간 만료를 앞두고 어려움에 빠졌다.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는데, 핵심 피의자인 박근혜 대통령 쪽은 온갖 ‘꼼수’로 특검 수사를 훼방 놓고 있다. 이대로 가면 수사를 하다 만 채, 혹은 어떤 의혹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특검을 접게 될 수 있다.
수사해야 할 의혹은 여전히 많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최순실-정유라 모녀 사이의 뇌물죄 의혹도 더 분명히 규명해야 하거니와, 다른 재벌과의 정경유착 의혹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최순실 국정농단을 방조·비호한 의혹도 이제 막 본격 수사를 시작했을 뿐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그 일각이 드러난 청와대의 전방위적 사찰·통제 의혹도 파헤칠 게 한둘이 아니다.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 대상은 이보다 더 많다. 꼭 해야 할 일을 하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 의혹에서 확인된 증거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은 ‘주범’이자 ‘몸통’인 듯하다. 그러니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없다면 특검 수사는 하다 만 것이 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약속했던 대면조사마저 거부하는 등 ‘시간 끌기’에만 급급하다. 어떻게든 특검의 수사와 기소를 늦추고 피하려는 꼼수다. 대통령 수사를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특검 연장은 불가피하다.
가장 좋은 방안은 특검법에 따라 활동 기간을 30일 연장하는 것이겠다. 하지만 연장을 승인해야 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태도가 수상쩍다. 그는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허용 요청도 묵살했다. 특검이 연장을 신청해도 결국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황 총리는 지금이라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특검 연장을 거부한다면 국정농단을 비호하고 진실규명을 가로막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국회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검의 운명을 황 총리에게 맡길 게 아니라, 특검법을 개정해서라도 특검의 충분한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미 개정안도 발의돼 있으니 야당들이 의지를 모아 추진하면 될 일이다. 일각에선 특검을 연장하면 헌법재판소 심판도 늦춰져야 한다는 말도 하는 모양이지만, 얼토당토않다. 특검과 헌재 심판은 별개다. 특검 수사가 탄핵 심리의 전제일 수도 없다. 그런 주장은 탄핵 인용으로 특검의 강제수사와 기소를 받는 상황만은 한사코 피하려는 박 대통령 쪽의 억지 그대로다. 대통령의 수사와 재판 방해를 더는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촛불 저항 ‘조직적 움직임’, 방관해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특검 수사에 훼방을 놓으면서 촛불과 맞서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석 달 넘게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친 국민은 당혹스러워하면서 탄핵이 무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도 정치권, 특히 야당들은 대통령선거전에만 눈이 멀어, 탄핵 국면을 확실하게 마무리 짓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래선 천만 국민이 밝힌 촛불의 성과를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다. 탄핵을 완성하고 특검 수사에서 뚜렷한 성과가 날 때까지 야당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2월 임시국회에선 촛불의 요구를 담은 제도 개혁을 이뤄내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현 상황은 ‘2월 말~3월 초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을 내리고 4월 말쯤 조기 대선을 실시할 것’이란 예상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모든 게 유동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증인 및 추가증거 신청을 통해 탄핵 절차를 늦추려 애쓰고, 청와대는 특검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 조사에 응할지도 지켜봐야 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엔 극우보수 성향의 <정규재티브이>에 출연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지지층 결속을 꾀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특검에 비협조적이긴 마찬가지다. 이달 말로 끝나는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을 황 총리가 승인할지도 지금으로선 불투명하다. 여기에 극우 세력의 탄핵반대 집회엔 ‘친박’ 정치인들의 참여가 점점 늘어나고, 집회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말처럼 “천만 촛불에 뿔뿔이 흩어졌던 세력이 총결집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막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대선에만 관심을 둔 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촛불의 성과가 사라질까 봐 국민이 가슴 졸이는 게 아니겠는가.

야4당은 ‘탄핵 공조’를 다시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황교안 국무총리 승인 없이도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특검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들의 주말 집회에 야당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조속한 탄핵 결정이 이뤄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또한 2월 임시국회에선 재벌 규제를 위한 법안과 검찰 개혁법안 등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게 촛불 민심이 바라는 정치권의 임무다.


[한겨레 사설] ‘사드 강행’ 위해 방한한 듯한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 3일 서울에서 열렸다. 미국의 새 정부에서도 한-미 동맹이 굳게 유지·강화될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한 실질적 논의는 없었으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 강행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이 국방장관의 첫 방문지로 한국과 일본을 택한 것은 한-미-일 삼각협력 강화와 대북한 대응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임스 매티스 장관은 “동맹국 방어와 확장억제력 유지는 철통과 같이 굳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올해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 언급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가 오는 3월 실시되는 키리졸브 연합훈련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그런 취지다. 하지만 전략무기를 대거 동원해 공격적 훈련을 펼칠 경우 한반도의 긴장만 높아지고 핵 문제 접근은 더 어려워지기 쉽다.

매티스 장관은 24시간가량의 짧은 방한 기간 여러 차례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방한 목적이 ‘사드 배치 못박기’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접근은 중국·러시아를 자극해 한반도·동북아 안보환경을 악화시키고 핵 문제 해법 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 러시아 대사는 3일 “사드 배치가 이뤄지면 자국 안전을 위해 일정한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의 사드 반대 강도도 더 높아지는 양상이다.

매티스 장관의 이번 순방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해온 대중국 압박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한-미-일 협력 체제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 요구로 구체화할 이런 움직임에 균형감을 갖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동북아 평화구조 구축 가능성을 높이는 게 우리의 기본원칙이 돼야 한다. 한-미 사이에는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증액과 전시작전권 환수 등 동맹의 운용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곧 제기될 이들 사안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이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 그 이전에 해결돼야 할 것은 사드 문제다. 머잖아 구성될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 사설] ‘반기문 불출마 선언'이 주는 교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1월12일 귀국하면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필요하다”며 당차게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지 3주 만의 조기 퇴장이다.
인기가 좀 있다고 대통령 자리를 노리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금세 주저앉는 그를 보면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선 출마가 무슨 어린애 놀이도 아니고, 이런 사람이 어떻게 유엔 사무총장을 10년이나 지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분명한 비전과 소명의식 없이 권력만 탐하는 ‘제2, 제3의 반기문’들에게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반 전 총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불출마 이유를 보면, 그의 현실 인식과 의지가 얼마나 박약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반 전 총장은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됐고 오히려 제 개인과 가족,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겼다”고 밝혔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 결국 이들과 같이 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불출마의 책임을 스스로 지기보다 외부에 돌리고 있다.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흔히 정치를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과정에 비유한다. ‘공공의 이익’이란 대의를 추구하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숱한 어려움과 비난 공세를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고난을 헤쳐나갈 의지가 없다면, 또 그 무게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아예 대통령직에 도전하지 않는 게 옳다. 누가 나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실패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니,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삼겠다고 나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야당의 일부 인사들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을 모셔오려 구애 경쟁을 벌였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오히려 ‘이기주의적 정치인들’로 낙인찍혔으니 어찌할 것인가. 반 전 총장을 한 축으로 ‘개헌 빅텐트’를 치겠다며 이리저리 합종연횡을 모색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일부 인사들 역시 국민의 뜻과 무관한 인위적 개편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아야 한다. 중요한 건 자기 정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대통령 후보를 내서 정정당당하게 심판을 받는 일이다.

반 전 총장의 실패는 불분명한 노선과 비전이 불러온 자가당착의 결과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정체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형용모순으로 감추려 했다. 진정성 없이 궤변만으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보겠다는 생각이 통할 리가 없다. 다가오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정치인은 우선 정치 노선과 정책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받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요즘 지지율이 오른다고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황교안 국무총리 같은 이들은 반기문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국민 가슴에 불지른 박 대통령의 ‘적반하장 인터뷰’

박근혜라는 이름 뒤에 계속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여줘야 옳은가. 이제는 그냥 박근혜씨로 부르든가, 아니면 아예 씨라는 호칭도 빼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박 대통령이 25일 <정규재 티브이>에 나와 한 인터뷰 내용을 접하고 밀려드는 회의다. 그것은 한마디로 정신 나간 사람의 넋두리요, 혼이 비정상인 사람의 패악질이었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음모론을 제기하며 한 이 말은 그 자신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그리고 ‘거짓말의 거대한 산’ 앞에서 국민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박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인터뷰를 하고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양파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자신의 헌법 유린,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실상에 분노한 민심을 달래보려는 안간힘이다. ‘심판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초조해진 나머지 자신을 어떻게든 피해자로 꾸며 동정심을 자극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음모론을 부추겨 극우보수세력의 봉기를 선동하려는 얄팍한 의도다.

박 대통령 쪽의 반격은 동시다발적이다. 같은 날 오전 최순실씨는 특검에 체포돼 출석하면서 “억울하다”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역시 끝까지 ‘한 몸’이다. 최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 역시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박영수 특검팀이 최씨에게 폭언을 가하는 등 인권침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날 민심을 겨냥해 치밀하게 짜놓은 각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 역시 언론인이 아니라 박 대통령 진영의 주요 공격수라 불러야 옳다. 그의 극우 편향 성향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언론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인터뷰의 기본 상식마저 깡그리 무시했다. “4대 세력이 동맹군을 만들어 대통령을 포위하고 침몰시키는 듯한 양상이다” 따위의 말은 하나같이 인터뷰 질문이 아니라 미리 짜놓은 각본의 대사에 불과했다. ‘말 배우는 어린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사전달을 제대로 못 하는 박 대통령이 비교적 횡설수설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도 사전 각본 덕택일 것이다. 정씨가 깔아준 멍석 위에서 박 대통령은 정신 나간 춤을 마음껏 췄다.

그런데 인터뷰를 접한 민심의 흐름은 박 대통령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동정심 대신 경멸이, 음모론에 대한 의혹 대신 분노가 분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여론전을 펼칠 때마다 상황은 더욱 악화해 왔는데 이번 인터뷰는 결정판이다. 최순실씨의 난동 모습을 지켜본 청소 아주머니가 일갈한 “염병하네”란 꾸짖음은 박 대통령에게도 고스란히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더는 뒤에 숨어서 여론 장난질을 하지 말고 헌법재판소와 특검에 나가서 말하라. 그곳에서도 ‘염병할 거짓말’이 통할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 사설] 반기문 전 총장, ‘조카 병역기피’ 왜 침묵하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카 반주현씨가 장기간 병역기피자로 지명수배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친인척이 망국적 병역기피 당사자라는 점에서 놀랍고도 개탄스럽다. 비록 조카라고는 하지만 병역 문제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반 전 총장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은 조카의 병역기피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주현씨의 아버지인 반기상씨는 <한겨레>에 “형님(반 전 총장)도 아들이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으로도 조카가 병역기피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지명수배까지 받았는데 고위공직자였던 반 전 총장이 몰랐을 리 없다.

문제는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이 조카에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질책하거나 귀국을 종용한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카 주현씨가 징집 상한 연령을 넘길 무렵은 공교롭게도 반 전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던 때다. 조카의 귀국을 종용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마땅한 의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 시절이던 2012년 4월 뉴욕에서 열린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는 ‘가족애’만 발휘했을 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반 전 총장은 조카의 병역기피에 대해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단지 한 측근 인사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논하고 애국심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그것은 병역기피 당사자는 물론 부모·형제, 가까운 친척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 조카의 병역기피 사실을 눈감아주고 방관했다면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카의 병역기피 문제에 대한 반 전 총장의 명쾌한 입장 표명을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정점’ 향해 치닫는 특검, 법과 원칙만 보고 가라

지난달 21일 본격 활동을 시작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의 기대 속에 국정농단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쉼없이 달려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제2의 태블릿피시를 입수해 ‘박근혜-최순실’ 사이에 진행된 국정농단 전모를 재확인하고,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집행 과정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현직 대통령과 국내 최대 재벌 오너를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처리 방침도 곧 공개할 예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를 앞두고 일부에서 ‘권력이 뇌물을 강요했다면 구속할 사안이냐’는 등 부정적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 기업 인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제논리도 거론한다. 삼성 오너라고 해서 봐줘서도 안 되지만 억지로 옭아매서도 안 된다는 논리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특검은 이미 뇌물공여죄로 볼 만한 여러 증거를 확보했다고 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전인 2015년 6월 박원오 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한 지원 문건이나 정유라를 콕 집어 지원하라고 한 대통령의 지시 등도 수사를 통해 확인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수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로만 판단하고,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이런저런 상황 논리에 휘둘려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그것이 박영수 특검을 탄생시킨 국민들의 뜻이기도 하다.

반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 농단과 검찰 농단에 대해선 특검 수사에 아직 진척이 없다. 우 전 수석과 관련한 의혹은 한둘이 아니지만 ‘정윤회 게이트’를 문건 유출로 뒤집은 사건은 검찰 농단의 대표적 사례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강압과 회유로 관련 경찰이 자살까지 했고 다른 경찰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는데 수사에 진전이 없다. 특검법 제2조 9호는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비호·방조한 우 전 수석의 직무유기 등을 수사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파헤쳐 오늘의 불행을 예방하기는커녕 거꾸로 이를 비호하고 엉뚱한 사람을 처벌한 것은 국기문란의 큰 죄다.

박영수 특검팀과 우 전 수석의 개인적 친분 또는 현 검찰 수뇌부 등 검찰 조직에 미칠 파장 등을 우려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면 당장 적극 수사에 나서기 바란다. 대통령과 삼성 오너를 처벌하겠다는 특검이 아는 검사라고 봐줄 리는 없지 않은가.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할 말 있으면 헌재와 특검에서 해라

박근혜 대통령이 1일 기자간담회에 이어 설 연휴 전에 또 기자회견이나 기자간담회를 열려 한다고 한다. 쏟아져 나오는 혐의와 의혹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당찮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 차례의 대국민 담화와 한 차례의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해명이라고 내놓은 일방적 주장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뻔한 사실도 모르쇠로 부인하거나 억지 논리로 죄 아니라고 우기기만 했다. 말 바꾸기도 예사였다. 대통령의 그런 행동에 국민은 크게 실망했고 그나마 남은 신뢰도 거둬들였다. 지금의 탄핵 상황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또다시 일방적인 해명 자리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탄핵심판을 어떻게든 모면하려는 것이겠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에 한발 다가섰다. 블랙리스트 의혹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곧 불려오면 대통령이 바로 다음 조사 대상이다. 헌법재판소 재판부는 대통령 쪽 증인들의 잠적과 증언 거부 등 거듭되는 탄핵심판 방해에 분명한 경고를 발하면서, 공개변론을 일주일 2차례에서 3차례로 늘리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이대로면 뇌물죄 등 소추와 조기 탄핵 결정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 쪽은 장외 여론전을 통해 이런 상황을 뒤집어보려는 듯하다. 아귀 안 맞는 일방적인 억지까지 통할 만한 골수 지지층을 그러모아 헌재 심판과 특검 수사를 장외에서 압박하려는 계산이겠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증인 출석 요구를 피해 잠적한 것도 헌재 심판을 마비시키려는 조직적인 기획에서 나온 것 아닌지 의심된다.

이런 짓은 당장 멈춰야 한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탄핵 소추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헌법기관과 수사기관의 심판과 수사를 방해하고 공격한다면 잘못과 책임은 더 커진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이 대통령비서실을 동원해 기자들을 만나는 것부터 헌법 위반이다. 일방적인 변명으로 국민을 또다시 불쾌하게 하는 게 도리일 수도 없다. 할 말이 있으면 박 대통령 스스로 당당하게 헌재 심판정과 특검 수사에 나서는 게 옳다.


[한겨레 사설] 범죄 증거, 뻗대고 우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추가로 입수한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를 11일 공개했다.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최씨 집에서 가져왔다’며 특검에 제출한 것인데다, 잠금해제 패턴이나 이메일 계정, 사용자 이름, 연락처 등이 최씨의 다른 휴대전화와 같아 최씨 것임을 의심할 수 없다. 앞서 검찰에 제출된 최씨의 태블릿피시와 함께 범죄 입증에 주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최씨의 태블릿피시가 새로 드러남에 따라 “태블릿피시를 쓸 줄도 모른다”던 최씨의 주장이 거짓임이 한층 분명해졌다. 최씨 쪽은 11일 국정농단 사건 2차 재판에서도 기존 태블릿피시의 입수 경위 등에 문제가 있다며, 엉뚱하게도 컴퓨터 전문가도 아닌 보수단체 인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을 국정농단 대신 태블릿피시를 둘러싼 정략적 논란으로 몰고 가려는 듯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쪽도 자신이 직접 작성했던 업무수첩의 증거 채택에 느닷없이 반대했다.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훼손해 재판을 흐트러뜨리려는 소송 전략으로 보인다.

최씨 등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기존 태블릿피시가 최씨 소유임은 검찰이 통신기록 등 여러 증거를 들어 확인했고 특검도 동의했다. 최씨 것으로 확인된 새 태블릿피시까지 드러난 마당에 억지는 더 통할 수 없다. 최씨 등이 핵심 증거를 문제 삼는 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가 법정과 탄핵 심판정에 제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착각이다. 그런 식의 형사소송 전략이 헌법재판인 탄핵심판에서 통할 수도 없거니와, 피고인이 반대한다고 해서 증거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장시호 제출 태블릿피시’로 최씨의 국정농단과 뇌물죄 등에 분명한 증거가 더해졌다. 새 태블릿피시에는 박 대통령 취임 초도 아닌 2015년 10월의 ‘대통령 말씀자료’가 최씨에 의해 수정된 흔적이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에까지 개입했다는 증거다. 태블릿피시 속 최씨의 이메일에는 삼성에서 최씨 모녀 지원금이 전달되는 과정, 독일 내 부동산 매입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뇌물죄의 증거일 수 있다.
최씨의 이메일에는 증거인멸 정황도 있다. 최씨 등이 측근을 시켜 증거인멸과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도 재판에서 공개됐다. 그렇게 부인하고 없애려 들어도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한겨레 사설] 세월호 1000일, 진실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9일로 1000일이다. 열여덟살 꽃 같은 아이들이 선실에 갇혀 물로 빠져 들어가던 모습을 손 하나 못 쓴 채 지켜봐야 했던 2014년 4월16일 그날의 경악과 충격이 선연하다. 그렇게 떠나보낸 넋 삼백넷 가운데 아홉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의 진실도 인양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날 제대로만 했다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기에 세월호는 결코 ‘사고’일 수 없다. 세월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참사다. ‘학살’이란 말도 과하지 않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은 7일 촛불집회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살아남은 아이들은 구조된 게 아니라 스스로 탈출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 부재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 못다 핀 꿈들과 함께 우리가 기억하고 거듭 물어야 할 것은 그래서 ‘그날 국가는, 대통령은,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이다.

먼저 답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은 해야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권한도 많은 자리다. 군을 비롯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구조에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7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도 지금껏 입을 닫고 있다. 대통령의 행적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잠적했거나 수사·증언에 응하지 않았고, 그나마 증언에 나서더라도 모르쇠만 거듭했다. 헌법재판소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시간대별로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대통령 쪽은 여태껏 차일피일 답변서 제출을 미루고 있다.

그러고도 박 대통령은 1일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뻔뻔하다. 참사 당일 대통령 곁에 있었던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의 증언으로도, 당일 대통령은 보고와 지시는 물론 텔레비전의 참사 중계조차 제대로 보지 않은 듯하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보고하러 왔다는 오전 10시께부터 미용사가 들어온 오후 3시께까지 대통령이 뭘 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드러난 것만 보면, 허망하게도 그날 대통령은 일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 책임은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분명히 밝혀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일은 그 밖에도 많다. 세월호 선체의 침몰 과정과 원인은 어느 정도 추정되지만, 배가 처음에 어떻게 기울기 시작했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진상을 정확히 알려면 세월호 인양이 우선이다. 미수습자 때문에라도 더 미룰 일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방해로 좌초했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정보접근권과 강제조사권을 보강해 다시 띄워야 한다. 진실은 영원히 침몰하진 않는다. 우리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한겨레 사설]‘천만 촛불’의 열망을 ‘새해 희망’으로 이어가자

올 한해 우리 국민은 5천년 역사의 그 어느 순간보다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촛불 시민들은 양과 질, 그 어느 면에서도 세계가 입을 모아 찬탄하는 시민혁명의 진수를 선보였다. 올해 마지막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10차 촛불집회는 그 성과를 축하하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10월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국민을 속인 무능·부패한 권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단죄의 제단에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눈치 보며 우왕좌왕하는 제도정치 세력을 견인해내며 헌법 1조의 정신 ‘국민이 주인’임을 확인한 것은 역사의 굽이마다 떨쳐 일어선 ‘민’의 위대함을 드러낸 쾌거였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아직 미완성이다. 반촛불 세력은 여전히 반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어정쩡하게 미봉한 국정교과서 정책이 보여주듯이 시간을 끌며 촛불 열기가 사그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안보 논리를 고리로 거대 야권의 분열을 획책하고, 경제와 민생을 들먹이며 적폐 청산에 딴죽을 걸려 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특검과 탄핵 심판 등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일파와 그 부역세력의 범죄와 실체를 신속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늦출 수 없다.
촛불혁명은 국정농단 세력의 단죄를 넘어 이를 가능케 한 부패한 기득권 체제와 구조를 바꿔냄으로써만 완성될 수 있다. 박정희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50년 적폐를 깨끗이 쓸어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최 게이트 추적 과정에서, 그리고 김영한 업무일지 등을 통해서 반공과 냉전 논리,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념으로 똘똘 뭉친 박근혜-김기춘류 수구·부패세력의 참모습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났다. 김기춘-우병우와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그 부역자들을 행동대로 부리며 지탱해온 ‘박근혜 체제’는 나라를 40년, 50년 전으로 후퇴시켜 놓았다. 이런 극단세력과 체제를 그대로 두고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들을 법과 역사의 이름으로 엄히 단죄함으로써만이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두 날개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촛불 정신을 충실히 받들어 제도화하는 큰 책임이 정치권으로 넘겨졌다. 30년 전 국민의 힘으로 형식적 민주주의, 정치 민주화의 첫발을 떼었다면 이제는 실질적 민주주의, 경제·사회 민주화의 완성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내야 한다. 지역 벽을 허물고, 흙수저의 의사도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정치제도의 개혁이 필요하고, 빈부 격차 해소·민생 우선의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정비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수구보수 일변도로 기울어진 언론지형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모든 개혁이 불가능함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혁명의 완성을 독려하는 촛불은 새해에도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한겨레 사설] 개헌은 ‘촛불 혁명의 완성’이어야 한다

국민의당은 23일 정당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즉각적인 개헌 추진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여야가 합의한 국회 개헌특위도 새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전망이다.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주장은 다양하게 엇갈리지만, 큰 흐름으로는 개헌 논의가 점차 급물살을 타는 모습이다. 다만 이런 개헌 추진에는 몇 가지 원칙과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본다.

첫째, 개헌이 촛불 사태에서 확인된 우리 사회의 개혁 요구를 희석시키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을 손질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도 없애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대통령제의 폐해나 권력구조의 문제만으로 좁게 봐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 누적된 모순과 부조리를 없애 대한민국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자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당면한 모든 개혁과제들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정국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섣부른 개헌 논의로 개혁 동력이 소진될 가능성은 크게 경계할 대목이다.

둘째, 시간 부족으로 ‘졸속 개헌’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권력구조 개편만 해도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지고 있어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데 개헌의 대상은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만이 아니다. 기본권 강화, 통일과 영토 조항 수정, 소수자 보호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미래 가치를 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큰 틀을 바꾸는 중차대한 작업은 두어 달 동안에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대선 전 개헌’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개헌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시작해도 결국 개헌은 차기 정권의 과제로 넘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셋째,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현행 헌법상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가 발의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개헌이 정치인 ‘그들만의 작업’이 돼서는 안 된다. 지역과 계층, 나이와 성별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시민이 개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이 제시해야 한다. 정치인들끼리 결론을 낸 뒤 국민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식의 위로부터의 개헌은 더는 용납될 수 없다.

넷째, 개헌이 정계 개편 등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당리당략을 위한 도구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지금 정치권에는 벌써 개헌이 가져올 이해득실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런 식의 개헌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개헌은 촛불에서 드러난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국민의 열망 구현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 개헌은 ‘촛불 혁명의 완성’이어야 한다. 정치권이 이 명제를 결코 잊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박-최의 조직적 궤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하더니 19일 법정에 선 최순실씨도 검찰 공소사실 11가지를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국회 청문회에 앞서 친박 의원들과 최씨 측근들이 태블릿피시가 최씨 것이 아니라고 위증하도록 입을 맞췄다는 의혹에 이어 최씨 변호인 역시 같은 주장을 펴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구했다. 그동안 언론의 추적 보도와 검찰 수사로 확인돼 온 국민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마저 뒤집으며, 재판 절차라도 지연시켜 보겠다는 저의가 읽힌다. 국민에게 사과 회견을 하고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물론 법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다. 그러나 국민이 참아줄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정도가 되면 스스로 죄를 버는 일이 될 뿐이다. 헌법과 법률을 제멋대로 뭉개놓고 이제 와서 법의 보호를 요청하는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최순실을 잘못 믿은 것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책임을 최씨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전혀 몰랐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문서를 유출한 것도 단순한 자문에 불과하다며 미국식 은어 ‘키친 캐비닛’까지 동원했다.

최씨와 변호인이 이날 박 대통령과의 공모 등 일체의 혐의를 부인한 것도 헌재 답변서의 기조를 충실히 따른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과의 면담은 꺼리면서 최씨의 국정농단을 ‘키친 캐비닛’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궤변이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 일가가 40년이나 일심동체로 지내며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해왔다고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는 것과도 동떨어진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최씨와 변호인은 법정에서 “독일에서 어떤 벌이든 받겠다고 돌아왔는데, 들어오는 날부터 새벽까지 많은 취조를 받았다”며 “수사관을 구치소로 보내 불법체포하는 등 인권침해적 수사가 있었다”는 주장까지 폈다. 최씨 공소사실도 아닌 태블릿피시에 대해 양형에 결정적인 증거라며 감정을 요구한 것도 탄핵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공소사실 전체를 음모론으로 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태블릿피시 등을 통한 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이미 대통령과의 ‘공범’임을 자백한 마당에 최씨 쪽 주장은 정치공방을 노린 게 아니라면 명분이 약하다.

박영수 특검팀이 21일 현판식을 열어 공식 수사를 시작한다.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와 김기춘·우병우 등의 직권남용 혐의 등 수사할 대목이 많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가 40년 동안 쌓아온 재산 등 유착관계를 꼭 파헤쳐 이들의 실체를 온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낼 책임도 막중함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최순실 국정농단이 ‘국정 1%’라는 후안무치한 궤변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가 18일 공개됐다. 예상대로 온갖 궤변과 황당한 논리를 총동원해 박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게 없다고 우겼다. 반성이나 성찰은 없이 ‘끝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욕심과 오기만이 넘쳐난다.
박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최순실씨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 국정 수행 총량의 1% 미만”이라고 ‘최순실 국정농단’을 합리화한 대목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최씨가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각종 국정에 개입하고 사익을 챙긴 것은 수치로 따지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국가 기본질서 와해 행위다. 그것을 ‘1% 미만’의 ‘사소한 문제’라고 잡아뗀 것 자체가 헌법질서 수호 책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무개념과 무책임을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도대체 비선 실세들이 얼마나 국정을 농단해야 20%, 30%라고 인정할 것인가. 이런 답변 하나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을 시켜 현대차 그룹이 최순실씨 일당이 운영하는 케이디코퍼레이션에서 납품을 받도록 강요한 것을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한 것은 궤변의 극치다.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은 우리나라에 350만개가 넘는다. 그런데 유독 최씨 회사를 콕 찍어 지원을 지시해놓고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좋은 취지’라고 둘러대니 참으로 뻔뻔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도 “청와대에서 정상근무하면서 신속하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했다”고 주장했다. 관저에서 ‘올림머리’나 하면서 ‘비정상 근무’를 하고, 사건이 일어난 뒤 7시간이 지나서야 중대본에 도착한 그가 ‘정상근무’ ‘신속’ 따위의 표현을 쓴 것은 파렴치의 극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책임, 생명 경시, 비인간적 태도에 다시금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에서 ‘선의’ ‘주변 관리 잘못’ ‘사익 추구는 없었다’는 따위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이미 대기업 총수들이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에 대해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는데도 여전히 “자발적 모금”이라고 강변할 정도니 할 말을 잃는다.

답변서를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 쪽의 전략은 매우 분명하다. 치열한 법리 공방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최대한 늦추면서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헌재가 특검과 검찰에 최순실 게이트 수사 기록을 요청한 것에 대해 대리인 쪽이 “헌재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이의신청을 낸 것도 이런 속셈을 잘 보여준다. 헌재의 빠른 결정을 통해 국정운영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민심의 요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도 국민에 대한 책무와 예의를 내팽개치고 있다.


[한겨레 사설] 추악한 욕심에 패악질 일삼는 ‘친박 도당’

새누리당 친박계의 막무가내 역주행이 눈을 뜨고는 못 볼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성과 도덕, 염치와 체면 따위는 완전히 집어던졌다. 오직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당을 계속 장악하겠다는 추악한 욕심만 꿈틀거린다.
새누리당 친박계 수뇌부는 12일 최고위원회에서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추가 임명했다. 윤리위는 오는 2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흐름대로라면 제명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자, 친박계가 경기를 앞두고 심판진을 바꿔버리는 꼼수를 쓴 것이다. 윤리위를 점령하기 위한 일종의 기습 쿠데타다.

친박계의 이런 파렴치한 행동에 이진곤 윤리위원장은 발끈해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했고, 기존 윤리위원 6명도 모두 동반 사퇴했다. 이로써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친박 윤리위’로 전락했다. 게다가 새로 선임된 윤리위원 중에는 성 추문에 휩싸여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 등도 포함돼 있다. 위원회의 구성 경위나 위원들의 면면으로 볼 때 윤리위가 아니라 완벽한 ‘비윤리위원회’가 되고 말았다.
친박계의 이런 꼼수는 박 대통령 사수는 물론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를 ‘해당분자’로 몰아 쫓아내기 위한 포석의 의미도 지닌다. 이런 속셈은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 의원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서 의원은 13일 친박계 인사들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창립총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치보복이자 배신의 정치”라고 비박계를 비난하면서 “배신의 정치를 타파하고 재창당 수준의 완전히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비박계를 축출하고 자신들이 당을 완전히 장악해 아예 ‘친박당’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골수 지지세력을 다시 끌어모으면 상황이 반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른 역풍도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민심은 이미 박 대통령과 친박한테서 떠나간 지 오래다. 뒷골목 주먹패들을 연상시키는 친박계의 추악한 행태는 국민의 환멸만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나라와 당이 망가지더라도 자신들만 살아남겠다며 온갖 패악질을 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할 만큼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한겨레 사설] 촛불이 이뤄낸 탄핵, 사회 개혁의 출발점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국민을 배신한 통치자를 국회, 곧 국민이 불신임한 것이다. 국회의 역사적 결정을 끌어낸 주역은 광장에 켜진 수백만의 촛불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장 1조를 새삼 확인케 해준 민심이 경외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탄핵 의결이 시민혁명의 끝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맞서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언제 내려질지 모른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회의 탄핵 의결은 광장에 울려 퍼진 시민의 목소리가 우리 정치·사회 전반의 큰 변화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회의 탄핵 의결까지 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특정 정당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의 ‘집단지성’이 역사적인 무혈혁명을 선도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권이 자진 사퇴와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 여러 해법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때, 흔들리는 여야 정치인을 다잡으며 탄핵 의결까지 몰고 온 건 오로지 시민의 힘이었다. 그래서 광장의 목소리가 평화적으로 국회를 압박해서 대통령 탄핵을 끌어낸,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값진 성과를 이뤘다. 이 경험이 우리 정치를 상식의 정치, 정상의 정치로 복귀시키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일군 명예혁명

광장의 외침은 국회의 탄핵 의결에 머물지 말라고 말한다. 두 달 가까이 지속된 광화문 촛불집회의 구호는 ‘박근혜 하야’만이 아니었다.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정의의 실종과 부의 대물림에 대한 분노가 오랜 기간 전국에서 수백만 촛불을 밝힌 밑불이었다. 정치·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를 외면하고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을 탄핵하는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하려 해선 안 된다.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 탄핵 이후, 여야 정당이 차기 대통령선거라는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을 위해 달려가선 지금보다 훨씬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우리 사회 보수의 기반이었던 ‘박정희 모델’의 종언을 뜻한다.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이었다.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1970년대 아버지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검찰·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에 의존한 통치, 재벌의 돈을 걷어 사익을 취하고 그 대가를 제공하는 정경유착, 노동자와 시민의 기본권 부정, 반공 제일주의 등 박정희 패러다임의 온갖 패악을 답습한 게 바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극우 파시즘을 ‘보수의 가치’로 치장해온 새누리당과 족벌 언론, 우익 세력은 이제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사태가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촛불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1960년 4월 혁명이나 87년 6월 항쟁처럼 시민의 뜨거운 열망이 정치제도의 부분적 개선에서 멈추는 일이 이번에도 반복돼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퇴진하는 게 절실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국민과 국회의 불신임이 분명하게 확인된 이상, 헌법재판소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이 깨끗하게 사퇴하는 게 옳다. 끝까지 법적 다툼을 벌이며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국정 공백과 혼란을 방치하는 건, 자신을 믿고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박정희 모델’ 철저히 청산해야

황교안 국무총리는 물론 그가 이끄는 내각도 이번에 함께 ‘정치적 탄핵’을 받았음을 준엄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 내각은 새누리당과 함께 국민 신뢰를 상실한 지 오래다. 친박을 제외한 여야 정치세력은 지금 당장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대체하는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 바란다. 그런 인사에게 불과 몇 개월이라도 대한민국호의 키를 맡기는 것은, 한시라도 빨리 국정 동력을 회복해서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촛불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대담하고 도도하게 선회하는 일이다. 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는 출발점이 바로 탄핵안 가결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방임하고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준 재벌,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언론 등 각 부문의 개혁을 실질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치권은 그런 작업을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을 권력을 향한 대선 레이스의 시작으로만 생각해선, 국회와 정치권 모두 국민의 거대한 분노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을 탄핵한 주역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탄핵 뒤에도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탄핵이 가결되면 받아들여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되,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털끝만큼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모금 등은 정상적 국정의 일환이며, 최순실씨 비리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이제는 헌재 심판을 통해 승부를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직 복귀를 위해 끈질기고 악착같이 갈 각오가 돼 있다”는 다짐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박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진퇴를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3차 대국민 담화 내용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국회가 오는 9일 내릴 결정은 외적 형식은 탄핵소추안 가결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대통령 사퇴 결의다. 박 대통령이 진정 국회의 뜻을 존중한다면 헌재의 심판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사퇴를 선언하는 것이 온당하다. 헌재 결정까지 이어질 국정혼란의 장기화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탄핵소추안 통과 후 자진사퇴가 가능한지를 둘러싼 법리적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게 많은 법률전문가의 견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박 대통령이 4차 대국민 담화를 건너뛰고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난 것은 탄핵이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로 보인다. 촛불에 화들짝 놀란 새누리당 비박계가 박 대통령의 퇴진 시점 발표와 관계없이 탄핵안 표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고, 친박계 인사 중에도 ‘탄핵 열차’ 탑승자들이 나오면서 대세를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매번 꼼수와 뒷북으로 일관해온 박 대통령이 끝까지 ‘막판 뒤집기’의 헛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의 거듭된 판단착오에서 조금이라도 교훈을 얻었다면 박 대통령은 “헌재까지 모든 노력” 운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 대통령 자리에 대한 멈출 줄 모르는 미련과 집착이 박 대통령 자신은 물론 나라를 끝없는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겨레 사설] 촛불을 믿고 가라

주말마다 전국에서 타오르는 200만개의 촛불, 잇따른 대국민 담화에도 여전히 4%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75%에 이르는 탄핵 찬성 여론조사 결과…. 이 정도면 사태가 이미 오래전에 일단락됐어야 옳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상식과 순리가 여전히 물구나무서 있다. 그리고 국민은 엄동설한에 또다시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나라냐’는 분노에 가득 찬 질문은 이제 청와대를 넘어 여의도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야3당은 2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오는 9일 표결처리하기로 했다. 전날 탄핵안 발의 불발에 분노한 민심에 화들짝 놀란 결과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까지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탄핵 반대 움직임에 더해 야당 역시 좌고우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촛불 민심에 대한 과소평가는 청와대나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탄핵 가도의 첫번째 걸림돌은 박 대통령의 대응이다. 다급해진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또다시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런 약속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매우 회의적이다. ‘도대체 왜 4월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이 지금 국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박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 밀려 한 걸음씩 후퇴하지만 ‘나는 무죄다’라는 믿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즉각적인 2선 후퇴’를 약속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약속이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음을 국민은 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를 통해 처절히 깨달았다.

애초 ‘질서있는 퇴진’이니 ‘국정 공백의 최소화’니 하는 말이 중요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교활한 꼼수로 그런 말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오염된 단어가 돼버렸다. ‘명예’는 피의자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을 막는 연명책의 미화이며, ‘질서’는 반격을 위한 시간 벌기를 의미하는 단어에 불과해졌다. 이제는 탄핵안을 가결하지 못하고 국정을 표류시키는 것이 무질서이고 국력 낭비다. 박 대통령은 헌법 위반, 뇌물죄,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에 더해 ‘모국어 모욕죄’까지 저질렀다.

적지 않은 사람이 탄핵안의 부결을 우려한다. 자칫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맞다. 그런 사태는 결코 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멈칫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거대한 민심의 쓰나미 속에서 자질구레한 전략이나 시나리오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확실한 것은 박 대통령은 하루빨리 물러나야 하며, 새누리당은 그 대목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 엄중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정치세력의 앞날은 없다.

이제 국민은 또다시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교활한 꼼수를 불태우고, 정치권의 착각과 판단착오를 불살라버릴 촛불이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세력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촛불이다. 그리고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이 땅에 벌어질 엄중한 사태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촛불이다. 촛불은 그 안에 이미 ‘무질서의 질서’를 내포한 채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한겨레 사설] 예상대로 ‘박정희 미화’ 교과서, 즉각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가 결국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시안인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했다. 교육부는 12월23일까지 여론을 수렴해 국·검정 혼용이나 시범 적용 등도 검토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초기부터 지적했듯이 국정교과서 제도 자체가 세계적으로 극소수 미개한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진적인 정책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국민적 신뢰를 잃은 국정교과서를 붙잡고 아직도 ‘혼용’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꼼수에 불과하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탄핵당한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국정교과서가 지속성을 가질 리도 없고, 전국 시도교육감과 현장의 교사·학생들 반발로 배포 자체도 힘들 것이다. 공연히 혼선만 초래할 뿐이고 그 책임은 박 대통령은 물론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교육관료들이 함께 져야 한다.

예상대로 검토본 내용은 박정희 독재를 합리화하고 친일 부분을 축소하는 등 ‘박정희 미화’에 치중했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박정희 정권 설명에 무려 9쪽이나 할애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 등을 부각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은 “기본권은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고 짤막하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5·16 쿠데타 세력의 6개 ‘혁명공약’을 별도 상자에 상세히 소개하는가 하면 새마을운동도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실까지 포함해 자세히 담았다. 독립운동 관련 대목을 줄였을 뿐 아니라 ‘친일파’의 친일 행적 서술을 대폭 줄인 것도 박정희의 친일 행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미화 기조는 중학교 <역사1> <역사2>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대못질하듯이 임기 내 배포를 목표로 ‘복면 집필’을 밀어붙이더니 예상대로 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족 교과서’가 탄생한 것이다.

뒤늦게 공개된 집필진을 보면 편향성과 편협성이 두드러진다. 일본 강점기가 ‘근대화에는 도움이 됐다’는 뉴라이트적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근현대사의 대부분을 집필했다니 어떤 교과서일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의 촛불 민심은 친일·독재에 기생해온 반민족·반민주적 부패 기득권세력이 쌓아온 적폐를 쓸어내자는 목소리로 점점 진화 중이다. 그 기득권 구조를 깨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후퇴할 수 있다. 40년 만에 다시 등장한 박정희 미화 교과서는 그것이 기우만은 아님을 잘 보여준다.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은 국정교과서 추진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들도 불복종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더는 추진력을 갖기도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는 꼼수 부리지 말고 ‘박정희 미화’ 교과서를 즉각 폐기해야 마땅하다.


[한겨레 사설] 5천만의 열망을 모아 ‘시민혁명의 촛불’을 밝히자

26일 다시 온 국민이 촛불을 든다.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될 제5차 범국민행동에는 서울 광화문에만 150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인원까지 합하면 200만명은 족히 넘을 듯하다. 남녘의 농민들은 갑오년의 농민군처럼 ‘전봉준 투쟁단’을 꾸려 함께 광화문에 집결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1000여대의 트랙터는 시인 안도현이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노래한 대로 ‘깊은 땅속에 잔뿌리 내린 이름 없는 들꽃들’이 일어나 외치는 함성이다.

촛불은 5천만 주권자의 간절한 염원이고 단호한 명령이다. 국론은 통일됐고 국민은 하나가 됐다. 갤럽 여론조사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졌다고 알렸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3%까지 곤두박질쳤다. 국민의 마음속에서 대통령은 벌써 끌려 내려와 탄핵당했다. 박 대통령과 보좌진에게 단 한 줌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범죄 소굴이 된 청와대에 틀어박혀 버티면 버틸수록 이미 만신창이가 된 국정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경제는 골병들어 기초까지 흔들리고 있다.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은 언제 폭탄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런데도 반신불수가 된 대통령과 정부는 오기를 부리듯 나라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체결로 군사대국화를 노리는 일본에 먹잇감을 던져주는가 하면, 사드 배치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잖아도 대중국 수출은 16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사드 파동으로 중국 내 한류마저 말라붙었다. 나라 경제가 이대로 가면 언제 어떻게 주저앉을지 알 수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국정의 폭주를 저지할 힘은 촛불 든 국민의 직접행동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계는 나라가 한파에 꽁꽁 얼어붙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날이 추워진다고 위축될 촛불이 아니다. 26일 촛불은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23개 나라 67곳에서도 동시에 타오를 예정이다. 촛불의 네트워크가 지구촌을 휘감고 있다. 법원은 26일 집회에서 청와대 앞 200m까지 행진을 허용했다.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 절차를 밟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광장의 촛불은 탄핵과는 별도로 타올라야 한다. 국민이 지금 바라는 것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탄핵은 나라의 정상화를 위한 하나의 절차일 뿐이며 그 절차조차도 촛불이라는 동력이 있어야만 힘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새벽이 밝아오기 직전이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간절하고도 담대한 마음으로 촛불을 켜자. 수백만, 수천만 개의 촛불로 어둠을 몰아내고 새날을 불러들이자.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고 새판을 짜는 시민혁명의 함성을 함께 올리자.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결단 압박하는 ‘법무장관·민정수석 사퇴’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2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 쪽은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이 검찰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결과 발표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씨 사건의 공범으로 적시한 데 대해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으리란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일면만을 드러내는 주장일 뿐이다.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은 검찰에 맞서 더 이상 ‘피의자 박근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고백인 동시에, 박근혜 정권이 안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박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어느 정권이든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동시에 사표를 냈다는 건 유례없는 일로, 그만큼 현 상황이 위태롭고 급박하다는 뜻이다. 특히 민정수석에 임명된 지 20여일밖에 되지 않은 최재경 수석의 사의 표명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 수석은 “청와대가 ‘불타는 수레’라서 사의를 표명한 건 아니다. 사정을 총괄하고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필하는 (민정수석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찰과 맞서는 데 무력감과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검찰 내부에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유야 어떻든 ‘피의자 대통령’을 방어하기에 힘이 부쳤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의 동반 사표는 권력의 두 축이 한꺼번에 빠진다는 의미이고, 정권 핵심부의 동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 방어의 최전선이 무너졌는데 앞으로 누가 ‘비리 대통령’을 앞장서 지키겠냐는 전망이 나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선 이미 탈당 행렬과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김현웅·최재경 두 사람의 사표는 정부와 청와대 내부에서도 ‘피의자 박근혜’를 지키려는 노력이 소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장차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불법적 행동과 비리를 옹호하는 데만 신경 쓴다면, 이미 공직자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의 사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정권 핵심부에서 이반은 시작됐고 ‘박근혜 정권’은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그나마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모두가 등을 돌리는 볼썽사나운 상황에 몰리기 전에, 박 대통령은 국민 뜻에 따라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한겨레 사설] 국민 대신 ‘범죄 피의자’에게 봉사하는 장관·수석들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모든 국무위원과 청와대 주요 참모들은 헌정 문란의 방조자이자 방관자들이다. 나라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데는 그들의 책임 또한 크다.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국민 앞에 엎드려 사과해야만 할 처지다. 하지만 이들의 언행을 보면 부끄러움이나 자괴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피의자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비틀린 충성심과 헛된 의리감으로 나라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2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격렬한 항의와 비난이었다.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사퇴를 논의하는 게 정당하냐”(이기권 노동부 장관) 따위의 힐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촛불 민심도, 국민의 분노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국무위원 면면을 볼 때 사실 자발적인 내각 총사퇴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후보자 지명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탈세, 위장전입 등 갖가지 도덕성 흠결자들로 채워진 게 지금의 내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은 국무위원들이 최소한의 양식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당장 법무장관은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옳은지 그른지, 박 대통령의 검찰 수사 거부가 정당한지 아닌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것은 법치주의를 책임진 장관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김현웅 법무장관은 엉뚱하게도 ‘최순실 특검법’에 대해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지면 정치적 편향성이 있을 수 있다”는 따위의 지적이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으로 낯뜨거운 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박 대통령 개인을 위한 ‘변론 지원 기관’으로 전락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 중간수사결과 반박 자료를 만드는 데 민정수석실이 지원해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를 지원하는 공조직인지, 아니면 피의자를 변호하는 사설 변호사 사무실인지 도무지 분간할 길이 없다.
헌법 제7조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공무원은 대통령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그리고 지금 국민은 한결같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국무위원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그런 국민의 뜻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직언과 진언을 마지막이라도 해야 옳다. 그리고 자신들도 자리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국무위원들은 거꾸로 박 대통령의 ‘청와대 농성’에 가담해 ‘동조농성’이나 벌이기 시작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한국사 국정 교과서 강행 등 때아닌 국정 폭주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피의자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키느라 국민을 배신하고 스스로 공범의 길로 접어들었다. 과연 지금의 내각을 촛불 민심이 그대로 용인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 사설] 자기 살려고 나라 결딴내기로 작정한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5천만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불행히도 맞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식 반격에 나섰다. 국민의 사퇴 요구는 “헌정 중단은 안 된다”며 일축해버렸고, 검찰 수사에는 시간 끌기 작전으로 맞섰다. 박 대통령의 막가파식 버티기로 대한민국은 더욱 어둡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16일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자들을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상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대통령이 다른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니 엄단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코미디다. 아무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나 홀로 대통령’ 노릇을 하는 모습도 목불인견이다. 그런가 하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과 관련한 언론의 각종 의혹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예전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야기” 운운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말했던 ‘그때 그 오만한 자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민감한 국정 현안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도 본격화했다.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에 속도를 내는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내부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새 정권 출범과 관련한 ‘속도 조절’ 건의도 나왔으나 묵살됐다고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국정교과서 발행 강행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이런 몰아붙이기는 ‘내가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각해 국민의 사퇴 요구를 희석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갈등 사안에 대한 찬반양론을 부추겨 자신의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려는 의도도 묻어난다. 박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생존을 위해 중대한 국정 현안을 갖고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청와대가 일대 반격에 나선 것은 어떻게든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길만이 검찰 수사 및 앞으로 이어질 특검 수사에서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를 통해서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임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떠나는 순간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물론 제삼자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것은 ‘헌정 중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살길’을 찾기 위해서인 셈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버티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나라의 골병은 더욱 깊어만 간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 상태가 계속되면 경제는 더욱 비틀거리고 외교·안보 등 모든 국가 업무는 끝없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질서 있는 퇴진’의 용단을 내려야 옳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오히려 ‘내가 살 수만 있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몰염치한 태도로 배짱을 부리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막장 드라마’의 집필자 겸 연출자인 박 대통령은 드라마의 결말을 더욱 비극적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촛불 시민혁명’ 보고서야 물러날 셈인가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며 비선 실세에게 정부를 헌납한 대통령은 이제 자기 한 몸 지키려 청와대를 ‘벙커’ 삼아 버티고 있다. 더는 나라가 망가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모인다. 역사의 분수령이 될 2016년 11월12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두 차례의 사과에도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는 5%에 그쳤고, 부정평가는 90%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12일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헌법과 법률을 짓밟아온 대통령을 준열하게 꾸짖고 헌법 제1조에 따라 엄숙하게 퇴장을 명령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통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박 대통령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을 두 사람이 공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러야 마땅함은 물론이다.
무자격 비선 실세에게 정부 문서를 통째로 넘겨 정책·인사에 관여하게 한 것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속인 명백한 국기문란이요 헌법유린 행위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따로 불러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돈을 내도록 압박하기 전에 사면 등 각 기업의 희망 사항까지 따로 접수하였다니 이 역시 대가성이 분명한 뇌물죄가 아닐 수 없다. 두 재단을 이용한 비선 실세의 이권 사업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와 청와대 참모들을 앞장세운 것도 모자라, 갈취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조리 갈아치웠다니 정부 공조직을 사익 앞에 무릎 꿇린 죄 또한 엄히 따져 물어야 한다.

헌법과 법률 위반 사실이 들통나 민심에 의해 이미 탄핵당한 대통령이 여전히 버티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란 직책에 기대어 사법처리를 피해 보겠다는 잔꾀로 볼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 등 일부에서 내치는 총리에게 위임하고 외치는 대통령이 맡는 방안을 수습책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 청와대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열었지만 이미 국내외 언론을 통해 만신창이가 된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에 나선들 누가 신뢰하겠는가. 세계인의 조롱거리로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혹시나 여론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어보려는 한 줌도 안 되는 친박이나 ‘박-최 부역세력’들의 꼼수에 불과하다.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동영상 속 대구 여고생의 질타가 말해주듯 박 대통령 사퇴 요구는 지금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 점점 커지고 있다. 계속 버티다가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불행한 말로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박 대통령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40년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쌓여온 적폐를 드러내고 도려내어 새살을 돋게 해야 하는 과제 또한 국민 앞에 놓여 있다. 12일 촛불집회는 그 명예혁명의 길로 나서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모호한 양보로 ‘역풍’ 노리자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국회가 추천한 분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새 총리에겐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국회 방문 과정부터 발언 내용까지, 진실성 없고 모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진정으로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어떻게든 현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인상을 준다. 국민이 박 대통령을 불신하고 그의 본심을 여전히 의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심으로 국민에게 무릎 꿇을 생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국회 방문을 여야 정당에 통보한 건 당일 아침이었다고 한다. 야당 대표들을 만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없었던 셈이다. 더구나 정세균 국회의장과도 13분간 만나 단 세 문장만 말하고 돌아갔다. 항상 그래 왔듯이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정치권 목소리엔 귀를 기울일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그러니 내용을 떠나 박 대통령 말에 과연 진심이 담긴 것인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국회가 좋은 분을 추천하면 총리로 임명하겠다”면서 핵심인 총리 권한에 대해선 명쾌한 생각을 밝히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게 하겠다’는 말은 헌법에 규정된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조항의 반복이다. 결국 최종 권력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하야’는 최소한 박 대통령이 모든 국정에선 완전히 손을 떼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 조항을 반복하며 언제든지 총리에게 준 권력을 거둬들일 여지를 남기는 이런 꼼수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마치 소시지를 얇게 썰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쓰듯 아주 조금씩 양보를 하고 있다. 지지율 붕괴와 촛불의 확산에 뒤로 물러서는 척하지만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반격을 하려는 모습이다. 촛불을 든 시민이나 야당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걸 계기로 역풍을 기대해 보려는 심산이란 생각마저 든다.

박 대통령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하지 말라. 국민을 현혹해 현 상황을 모면하려 해선 안 된다. 정 의장 말대로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권한 부여 문제로 논란이 일지 않게 깔끔하게 먼저 정리”한 뒤 국회 협조를 요청하는 게 순서다. 언제까지 얕은수로 국민을 기망할 건가.


[한겨레 사설] ‘하야론’에 기름 부은 박 대통령의 독단적 총리 지명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새 국무총리에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전격 지명했다. 지난 30일 저녁 청와대 비서실을 깜짝 개편한 데 이은 두번째 일방적인 ‘인적 개편’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상황의 위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꼼수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대통령 모습에 절망감과 심한 분노를 느낀다. 대통령 스스로 전면적인 국민 저항을 불러들이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김병준 총리 지명은 현 사태를 보는 박 대통령 인식이 얼마나 안이하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드러낸다. 박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씨를 총리로 지명하고 ‘대폭 권한을 주겠다’고 하면 야당이 크게 반발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듯하다. 검찰이 최순실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으니 최씨와 일부 인사를 구속하고 나면 국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듯하다. 오판도 이런 오판이 있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이 문제 삼는 건 최순실씨가 아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방치한 대통령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국민은 생각한다.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한테선 1년에 한 번도 대면 보고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수십년 전 사술로 접근했던 최태민씨의 딸 순실씨와는 수시로 국정을 협의하는 대통령이 과연 정상적인가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기에 야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고 2선으로 물러나는 방식’의 거국내각을 주장했다.

그나마 정치권이니까 이 정도 얘기라도 하는 것이다. 거리의 민심은 훨씬 험악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 다수는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론을 수렴하기는커녕 여야 지도자들과 단 한 번 협의도 없이 덜컥 ‘김병준 총리’를 지명하다니, 국민의 뜻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87년 온 국민의 개헌 열망을 ‘호헌 선언’으로 누르려다 6월 민주항쟁을 불러온 전두환 정권처럼, 가뜩이나 분노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와대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참여정부 인사를 총리로 지명했으니 사실상의 거국중립내각”이라고 주장하는데 소가 웃을 노릇이다. 민심을 거스르며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는 없다. 김병준씨는 무슨 생각으로 총리직을 수락했는지 모르나, 이런 총리는 박 대통령의 일시적인 방탄조끼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민심의 이반과 분노만 커질 뿐이다. 지금이라도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여야 정치권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항거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당신들은 아직도 국민이 우스운가

국민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은 상상 그 이상이다. 비선 실세의 위세 앞에 국가의 공조직은 참으로 비루하고 허약하기만 했다. 명색이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사람들이 최씨 앞에 굽실거리는 모습이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비선 실세의 권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 행정관들뿐이겠는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해 이 정권의 난다 긴다 하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도 최씨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탱해온 힘의 원천은 비선 실세와 문고리 권력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박 대통령의 수족이었는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이들의 아바타 노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비선 실세 국정농단을 조장·비호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인사 추천 보고서가 공직자 인사검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최씨에게 전달되고, 우리 군과 북한군의 비밀접촉 등 일급 안보 기밀 사항까지 최씨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던 게 과연 박 대통령 뜻과 무관한 것인가. 박 대통령이 그토록 애지중지해온 문고리 측근 정호성 비서관이 매일 최씨에게 30㎝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서’를 전달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고 잡아뗄 것인가.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숨만 쉬고 있을 뿐 모든 기능이 마비된 식물정권이다. 그것은 단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거대한 민심의 분노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선 실세는 박 대통령의 뇌였다. 입는 옷가지와 장신구에서부터 연설문 문안 하나까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 뇌였다. 그런데 그 뇌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게 됐다. 비선 실세가 곁에 없는 박 대통령은 머리카락 없는 삼손에 불과하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한 셈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국가 운영이 총체적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이미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면한 국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총사퇴, 거국내각 수립,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등 온갖 처방전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처지를 착각하는 한 백약 처방이 무효다. 실제로 청와대의 인식은 아직도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들 분석을 해보면 아닌 쪽으로 되는 것 같다”는 엉뚱한 답변으로 더욱 국민의 화를 돋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박 대통령은 10·26을 기해 사실상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권력 내부의 문제로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군림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정치적 부활의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뭉개기와 꼼수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인식이 그나마 박 대통령이 살고 나라가 사는 출발선이다.


[한겨레 사설] 유아적 대북 접근이 빚은 ‘미국 전략무기 소동’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이 늦어지는 가운데 19·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와 외교·국방장관(2+2)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군사협력과 대북 압박 강화라는 기존 정책 기조를 되풀이했을 뿐 핵 문제를 풀기 위한 실질적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특히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소동’은 대북 접근 방식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두 회의의 결론은 대북 압박을 강화해 북한의 굴복을 추구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본토와 같은 수준으로 핵 억제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다.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새로 설치하기로 했으나 결정권이 있는 기구가 아니어서 유사시 실효성은 떨어진다. 두 나라 정부 차원의 북한인권협의체 발족과 대북 심리전 강화 등 대북 인권압력 수준을 높이기로 한 것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추구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안보협의회의 직전까지도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에 합의할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으나, 공동성명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의 요청을 미국 쪽이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을 보면, 정부가 핵 문제 해법과 동북아 안보구조는 도외시한 채 자기중심적 사고에 매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략무기란 말 그대로 미국의 전략적 상대인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무기를 말한다. 핵 공격력이 주된 내용임은 물론이다. 이런 무기를 한반도에 상시 배치한다면 동아시아의 안보구조 전체가 바뀌고 북한 핵 문제도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도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전략무기 상시 순환배치 요청과 이와 관련한 ‘언론 플레이’는 우리의 자체 핵무장까지 주장하는 국내 강경세력의 움직임에 편승한 측면이 강하다. 이런 정치적 접근은 북한 핵 문제 해법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안보협의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해 앞으로 (추가 조치가) 검토될 것’이라고 했다. 무책임한 태도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비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중심이 돼선 안 된다.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왜 이렇게 악화했는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꼼수’와 ‘우기기’로 깔아뭉개겠다는 건가

박근혜 정권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는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 얘기해서,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할당해서 (모금)한 거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공개한 녹취록에 나오는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의 증언이다.
이 녹취록 내용은 사실 크게 놀랄 만한 것도 아니다. 힘센 재벌들이 그처럼 일사불란하게 기금을 낸 것이 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논의를 해서 기금을 모았다”는 전경련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녹취록 내용은 전경련의 허위 주장을 일거에 허물며 안종범 수석이 기금 모금 과정의 핵심인물임을 폭로하는 중요한 증언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해당 기업들도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여기는가. 기어이 정상적인 기부라고 우기고 싶으면 기부 문제를 논의한 이사회 기록이라도 공개하면서 주장하는 것이 옳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에 대한 기금 출연이 타당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한 채 이뤄졌다면 배임이나 횡령 등 민형사상 문제로 비화할 수 있음은 전경련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나마 타격을 줄이려면 지금이라도 한 점 거짓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녹취록이 공개된 뒤에도 청와대가 여전히 “일방적인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깔아뭉개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녹취록 내용은 ‘일방적인 의혹 제기’가 아니라 미르 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관계자가 육성으로 밝힌 ‘당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외면’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과거 정권은 이런 사안이 터지면 최소한 당사자를 상대로 내부 진상조사라도 벌였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권은 진상조사 시늉조차 내지 않고 ‘안 수석이 아니라면 아니다’라며 막무가내로 우기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밑에서 일하던 특별감찰관보 등 특별감찰관실 별정직 6명에게 ‘자동퇴직’을 통보한 것은 더욱 치사한 꼼수다. ‘별정직 직원은 특별감찰관의 임기만료와 함께 퇴직한다’는 특별감찰관법 시행령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완전히 엉터리 법해석이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임기만료’를 한 게 아니라 ‘중도하차’했다. 특별감찰관의 부재 시에는 특별감찰관보 등이 업무 공백을 임시로 메우도록 하는 게 상식인데 오히려 잘라버렸다. 이런 비상식적인 ‘인사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자명하다. 이 전 특감에 이어 이들도 국회 국정감사에 ‘기관증인’으로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꼼수다. 우리 국민은 지금 염치도 상식도 없이 오직 꼼수 부리기에서만 달인의 경지에 오른 최악의 ‘막무가내 정권’과 마주하고 있다.


[한겨레 사설] 헌정 사상 최초로 해임건의안 묵살한 ‘오기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수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가결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묵살한 헌정 사상 첫 대통령이 됐다. 입법부 결정에 대한 존중이나, 과거 관례에 대한 고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와 고집만이 번뜩인다.
박 대통령은 24일 장차관 워크숍을 주재한 자리에서 “이런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며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의혹 등을 가리기 위해 끌어댔던 비상시국 타령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사실 경제와 안보, 국민 안전 등 국정운영 전반에서 나라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겸허한 자세로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가적 난제들을 타개해나가는 게 마땅한데도 오히려 끊임없이 남 탓만 하는 박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과연 비상시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이 “상생의 국회가 요원하다”며 야당을 공격한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이런 비난을 하기에 앞서 상생과 협치를 위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김재수 장관 문제의 경우도 애초 박 대통령이 국회의 부적격 판정을 받아들여 임명을 포기했다면 이런 사태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해임건의안 통과는 박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이 빚은 업보인데도 또다시 국회를 무시하며 상생을 들먹이니 혀를 찰 노릇이다.

새누리당이 해임건의안 통과를 핑계로 국회 일정을 거부하겠다고 나선 것은 더욱 어이없는 난센스다. 자격 미달 장관을 지키겠다고 민생을 내팽개치는 것이 과연 집권당이 취할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권은 국정감사를 중단시키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 등에 대한 국회 추궁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하는 듯하다. 참으로 치사한 꼼수다. 그렇다고 정권의 치부가 가려질 리도 만무하다. 박 대통령의 ‘김재수 지키기’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뜩이나 비틀거리는 국정운영은 더욱 큰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헛된 고집과 오기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


[한겨레 사설]‘아전인수’와‘무조건 강경’으론 핵 문제 못 푼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정부의 대응 기조가 ‘출구 없는 무조건 강경’ 쪽으로 가고 있다. 북한 핵 문제 해법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아전인수식의 태도마저 강해지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23일(한국시각)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박근혜 대통령의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윤 장관은 핵 문제 외에 북한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연설 직전 한국 기자들과 만나 “엄청난 돈을 낭비하면서 주민들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를 성토했다. 하지만 정부 역시 전형적인 인도적 사안인 북한 함경도 홍수 피해 지원을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정부는 나아가 민간의 대북 지원 움직임마저 비난하며 ‘지원을 어떻게 하건 독재자(김정은)에게 공이 돌아간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한다. 윤 장관은 연설에서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두고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 또한 지나치다.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북한 스스로 유엔에서 탈퇴하더라도 핵 문제는 더 나빠지기가 쉽다.

박 대통령이 “북한은 더 이상 핵 포기를 위한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핵 문제 핵심 당사국의 정상으로서 무책임하다. 박근혜 정부는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를 시도해본 적이 없으며, 그사이 핵 문제는 극도로 나빠졌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대북 정책 실패를 호도하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미국 등 한반도 관련국들의 대북 대화 시도까지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대화를 위해 줬던 돈이 북한의 핵 개발 자금이 됐다”며 자신의 강경노선을 옹호한 것은 아전인수의 극치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할 때도 이런 주장을 했다. 남북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와 북한 핵 문제가 급속히 악화한 것은 박근혜·이명박 정부 8년 반 동안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경북 성주 배치를 결정해 핵 문제 해결 노력을 더 어렵게 만들고 동북아 정세를 악화시킨 것도 박근혜 정부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상 추가 제재는 불가피하다. 북한 체제에 문제가 많은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전쟁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상 핵 문제는 결국 대화로 풀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빨리 독단과 아집에서 벗어나야 핵 해법이 나온다.


[한겨레 사설] 위험한 선동 벌이는 안보장사꾼들

새누리당 핵심 인사들이 중심이 돼 핵무장론과 전술핵무기 배치론을 공론화하고 있다. 군 당국은 유사시 평양의 일정 구역을 완전하게 사라지게 하는 ‘대량 응징보복’ 작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나타나는 위험한 움직임이다.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을 호도하고 안보 위기를 틈타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행태다.
북한에 맞서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핵무장론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는 등 사실상 지구촌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 고립된 지금의 북한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미 동맹도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천신만고 끝에 핵무기를 가지더라도 안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일본을 포함해 한반도 관련국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 돼 ‘치킨 게임’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완전히 철수한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들여오자는 전술핵 재배치론 또한 비현실적인 선동이다. 미국이 ‘확장억제’를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것은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하지 않더라도 전투기와 잠수함, 탄도미사일 등을 통해 핵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도 없는 핵무기를 배치해달라고 미국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안보 무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군 당국이 대량 응징보복 작전이라는 전쟁계획을 흘리는 것은 내용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 부적절한 행태다. 핵 문제의 초점을 흐릴 뿐만 아니라, 긴장을 고조시켜 군비 확장을 꾀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원유철 의원 등 우리 현실을 알 만한 이들이 핵무장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하도록 만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실패를 덮고 싶을 것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이들의 행태는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안보장사’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 관련국이 모두 얽힌 난제다. 기존 정책에 대한 반성 아래 효과적인 전략과 일관성 있는 실천이 뒤따라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책임한 선동은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정세 불안을 고조시킬 뿐이다.


[한겨레 사설] ‘역사전쟁’ 획책하는 집권세력

집권세력의 역사도발이 도를 넘었다. 역사학회와 광복회가 건국절 법제화 움직임을 강력 비판하는데도 새누리당과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세력은 오히려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25일에는 국회 부의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건국절 법제화 추진을 비판하는 광복회의 성명에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광복회는 24일 낸 성명에서 건국절 법제화 추진에 대해 “항일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선열을 모독하는 반역사적인 망론”이며 “1948년 건국절 제정은 과거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친일 행적을 지우는 구실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7000여명의 독립유공자와 유족으로 구성된 정통성 있는 단체가 낸 성명이라면 마땅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심 의원은 자중하기는커녕 광복회의 성명 내용이 “말이 안 되는 견강부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이 국민과 독립운동가들을 적으로 삼아 ‘역사전쟁’을 벌이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건국절 논란의 불을 지핀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광복절에도 ‘건국’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렸다. 며칠 전 대통령 앞에서 원로 독립지사가 ‘건국’ 주장을 비판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발언에 맞장구치며 논란을 더 확산시켰다. 이정현 대표가 17일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고 불을 지르더니 22일에는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이들이 건국절 논란을 키우는 것은 이 논란이 득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보수 집권세력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건국절 논란을 끌어들여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데 활용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총체적인 국정난맥 상황을 이념논쟁으로 호도하고 싶을 것이다. 더 근본으로 들어가보면 건국절 법제화 움직임은 집권세력의 뿌리인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으로 탈바꿈시키는 ‘역사 세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당장의 필요를 위해, 또 치욕으로 얼룩진 뿌리를 감추기 위해 역사도발을 감행한다고 해서 역사적 진실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4월 세워진 임시정부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집권세력은 역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사태를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