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곧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하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후보자로 공식 지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 의원이 그동안 보여온 행보가 ‘촛불 민심’을 계승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종교투명성센터는 지난달 27일 ‘김진표의 총리 지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김 의원은 종교인 과세법을 누더기로 만든 장본인이고 그 공으로 개신교계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표창장까지 받았다”고 지적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의원은 2017년 8월 종교인 과세의 2018년 시행을 코앞에 두고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기획재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에서 종교인 과세 범위를 대폭 축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재부 출신인 김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신교단체는 2018년 5월 “종교인 과세가 비교적 무난하게 정착하는 데 많은 애를 썼다”며 김 의원에게 감사패를 줬다.

앞서 경실련은 26일 ‘차기 국무총리는 경제구조 개혁과 국민 통합에 적합한 인사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경실련은 “차기 총리는 우선적으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구조 개혁과 민생경제 회복에 나설 수 있는 인사라야 한다”며 “지금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김진표 의원 등 후보자들이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매우 강한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또 약탈경제반대행동은 ‘론스타 사건 관련자 김진표의 국무총리 임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성소수자 차별을 선동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통’인 김 의원이 “총리 적임자”라는 의견도 우리 사회엔 물론 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정책 경험이 많은 것은 맞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을 통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는 마당에 그가 지금도 내각의 사령탑으로 적임자인지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그의 총리 기용은 개혁을 중단하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청와대는 4선인 김 의원을 인사청문회에서 야당도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안전한 카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가 총리 자질의 최우선 조건일 수는 없다. 이번 개각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후임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를 이어가면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바람직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진표 의원의 국무총리 임명을 많은 국민이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문 대통령은 김 의원의 총리 기용에 왜 비판과 반대가 많은지 다시 한번 숙고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 국민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일 사이 최대 쟁점이었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조건부 연기’로 결정났다. 청와대는 22일 지소미아를 곧바로 종료하지 않고 ‘종료 결정 통보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8월22일 일본에 통보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일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정지하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셈이다. 그러나 기존의 정부 입장에 비춰보면 뜻밖의 결정이라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지소미아 문제가 조건부 연기로 결정난 만큼,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 간 대화는 더욱 중요해졌다.

정부가 조건부 연기 결정을 한 이유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대화 의지가 있어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수출 관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한-일 과장급 협의 및 국장급 정책 대화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그동안 완강하게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분리하며 대화를 거부해온 데서 선회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내용이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해온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에게 이번 결정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앞으로 국민의 요구 수준에 맞는 협상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이 타협점을 모색하는 데는 미국의 압력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한국 정부를 일방적으로 압박해온 데 대해선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지소미아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보다도 오히려 한국에만 연장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료 시한 하루를 앞두고 미국 상원은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정부가 마지막 순간에 조건부 연기로 돌아선 데엔 미국의 이런 압력도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 국민이 느낀 불쾌감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이 났지만, 해결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지소미아 갈등’의 원인을 일본 정부가 제공했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정부는 이번 지소미아 논란 과정을 냉정하게 성찰하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미국, ‘지소미아 문제’ 해결책 일본에서 찾아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의 연장 압박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13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방한한다. 이튿날 열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전시작전권 전환과 연합방위태세 점검을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소미아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미국의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은 전방위적이다. 지난주에는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이번주엔 밀리 합참의장이 일본과 한국 순방길에 지소미아가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한-미-일의 결속’을 강조했다. 밀리 의장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직접 만나 지소미아 문제를 논의한 뒤 ‘지소미아 종료 전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도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주변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거들고 나섰다. 국무부 고위인사에 이어 미군 수뇌부까지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총출동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지소미아 종료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가장 중요한 안보사항을 제공받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따른 합당한 조처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의 원인 제공엔 입을 닫은 채 한국만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동맹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이 부당한 수출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뜻을 깊이 헤아리는 게 필요하다. 지소미아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한국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쥐고 있다. 일본을 놔두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부정적 여론만 키울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건 미국 압력에 굴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꼴이 될 뿐이다.


[한겨레 사설] ‘반환점’ 문재인 정부, 깊은 성찰로 성공 발판 마련해야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 임기가 9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광장에서 분출한 국민적 요구를 받들어 ‘나라다운 나라’, ‘공정과 정의’, ‘평화의 한반도’를 내건 정부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라 안팎의 녹록잖은 상황과 정부의 실책이 맞물리면서 국민적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아픈 건 경제·민생 분야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기조로 삼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소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과거 성장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성격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아동수당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무상교육 확대와 ‘문재인 케어’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정책은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폭과 속도를 두고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자영업의 위축세와 맞물리면서 빛이 바랬다. 국회 기능의 마비 탓이긴 했지만, 공정경제와 직결되는 재벌 개혁 관련 법안들이 답보 상태인 점도 아쉽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올라 주거 안정성이 떨어지고 서민층과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은 특히 큰 숙제다.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대외 여건 악화와 경기 위축세 속에서도 긴축 재정으로 일관해 경기 하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대목은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되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고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 공세에 가까운 무차별적 비판에 흔들려 초심을 잃었다가는 개혁과 성장 모두 놓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낡은 방식의 성장 모델로 돌아가선 안 된다.

외교·안보 분야는 안타깝고 아쉬운 지점이다. 임기 첫해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긴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고,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의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교착 국면을 이어가면서 벅찬 감동은 빛이 바랬다. 남북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돼 발이 묶인데다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논란 등 최근에는 뒷걸음질 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정부는 집권 초기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북-미 협상의 촉진자·중재자 구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남북관계도 과감한 발상과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시켜 돌파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은 부족함이 많았다.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 추진 등 선택적 여야 협치가 성사됐지만, 전반적으로 대결의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하려는 자유한국당의 발목잡기 탓이 크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게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잇단 인사 실패, 특히 ‘조국 사태’로 촛불 정부의 공정성·정의에 회의를 부르고, 탄핵당한 보수세력의 재결집 명분을 준 점은 끊임없이 곱씹고 성찰해야 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정권 출범 초반 검찰개혁·경제개혁 과제를 힘있게 밀어붙이지 못한 채 실기했다는 것이다. 수긍할 대목이 많은 지적이나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냉정하고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때다. 원칙을 지키며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 주도면밀한 전략으로 2년 6개월 임기 후반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금강산 관광 문제’, 남북이 만나 돌파구 찾아야

북한이 25일 남쪽 당국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문제를 협의하자고 공식 요청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설 철거’ 지시를 내린 지 이틀 만이다. 북한의 행동에서 무언가 서두르는 듯한 태도가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에서 ‘금강산 시설 철거가 국민 정서에 배치될 수 있고 남북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힌 대로, 아무 대안 없이 실제로 시설 철거가 이루어진다면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정부는 북한의 통지에 대해 ‘달라진 환경을 충분히 검토하면서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남쪽 정부가 더 노력하라는 취지로 ‘철거 통지’라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기회를 관광 재개 돌파구로 삼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동안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실효를 거둔 것은 별로 없다. 정부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든 지혜를 짜 모아야 한다.

대책을 찾으려면 남북이 만나 머리를 맞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북한은 ‘문서 교환 방식’의 협의를 제안했다. 이런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고 남북 양쪽에 이익이 되는 제3의 방안을 찾기도 어렵다. 정부는 ‘직접 대면 방식의 협의’를 관철해야 한다.

남북은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로 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재개’를 천명했다. 그런데도 관광 재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국제 제재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려면 제재 위반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거나 제재 자체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북한은 ‘김계관 담화’에 이어 27일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담화를 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철거 지시’는 북-미 협상이 막힌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국면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뤄진다면 북-미 협상 진전에 윤활유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발상으로 ‘북한발 금강산 문제’를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대전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 금강산 남쪽 시설 ‘일방적 철거’는 안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쪽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지시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단은 지난해 남북이 합의한 금강산관광 재개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 예상치 못한 철거 지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산관광은 남북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사업이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남쪽에 재개 촉구 메시지를 냈으나 소득이 없자 이번에 시설 철거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금강산 시설들을 철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히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은 결정을 즉각 철회하길 바란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쪽 시설들” 같은 거친 언사를 동원했다. 남쪽에 쌓인 불만과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듯한 과도한 언사는 남쪽 여론을 악화시키고 남북관계를 더욱 궁지로 몰아갈 뿐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는 선대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예사롭지 않다. 금강산관광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에 따라 이루어진 남북 경협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사업을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한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남쪽을 내세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단독으로 해나가겠다는 뜻이자,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결정한 사업도 물릴 수 있다는 결심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태도 변화가 앞으로 개성공단에까지 미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다만 김 위원장이 철거 지시를 내리면서 ‘남쪽 관계 부문과 협의하여’라고 단서를 달아 일방적으로 철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비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시설 철거를 명분으로 내세워 남쪽과 협의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북한이 협의하겠다고 한 이상, 정부는 이 협의를 관광 재개의 출구를 찾는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대응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금강산 시설 철거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결국 관광 재개를 막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우회적 압박작전으로 볼 여지도 있다. 금강산관광을 고리로 삼아 남쪽 정부가 미국에 더 적극적으로 촉진자 구실을 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김 위원장의 현지 시찰에 북-미 비핵화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한 것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해 실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최악으로 치닫는 국면을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시키는 현명한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윤석열 총장 ‘개혁’ 약속,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대검찰청이 1일 전국의 지방검찰청 특수부 4곳 폐지 등을 뼈대로 하는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포토라인,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 검찰수사 관행을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권 행사 방식, 수사 관행 등을 개혁하라”며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과도한 특수수사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비판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점에서 검찰이 직접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대통령 지시 하루 만에 내놓은 개혁 방안에 어느 정도 진정성과 무게가 실린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검은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하고 전국 검찰청의 특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서울·부산·대구지검 정도만 남길 것으로 보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별개로 특수부 축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잖았고 법무부도 이를 검토해왔다. 전날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1호 권고안으로 특수부에서 형사·공판부로의 중심 이동을 요구했다. 다만 이름만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바꾼 채 인지수사를 허용하는 식의 ‘꼼수’를 막을 수 있도록 시행령에 분명한 제한 규정을 둬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개 소환, 포토라인,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실태 전반을 점검해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법무부 과거사위가 올 5월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고치라고 권고하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 시절 피의사실 공보준칙 개정안까지 마련했으나 최근의 ‘조국 장관 수사’까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경청하고 소통해 개선하겠다고 했으니 법무부와 함께 실효성 있는 ‘인권 수사’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인권 수사보다 실적주의에 쏠린 특수수사 중심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마침 ‘조국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비공개 소환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오비이락’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겠으나 그간 ‘11시간 압수수색’ 등 수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장관 부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겠으나 거꾸로 역차별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수사팀이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바란다.
대검의 ‘개혁’ 약속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검찰·국회, 100만 촛불 ‘검찰개혁’ 외침 직시해야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일대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거대한 촛불이 타올랐다. 규모로 보면 3년 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적 촛불시위에 버금갈 정도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물론이고 정치권도 이 촛불에 담긴 민심을 제대로 직시하길 바란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국민주권 원칙을 훼손한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아닌지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또 수사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행태와 부당한 인권침해는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사회 정의’를 명분으로 내건 어떤 방식의 수사도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원칙을 넘어서려는 순간 검찰의 기득권 보호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닫길 바란다.

28일 저녁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규모가 수십만인지, 100만인지 또는 200만을 훌쩍 넘는지를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건 애초 10만명 정도라던 주최쪽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이튿날인 29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에 관한 입장문’을 내어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겠다”고 밝혔다. 조국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집회 참여 인원이 예상을 크게 웃돈 것은, 그만큼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고 과도하다’는 인식이 많은 국민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넘어,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장관 인준 절차를 무력화하고 상관인 법무부 장관 적격 여부를 판단하려 한 ‘오만과 월권’에 있다 할 것이다. 검찰은 여야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합의한 무렵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고, 인사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후보자 부인을 단 한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조국 후보자에게 ‘더이상 버티지 말고 자진 사퇴하라’는 강한 압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검찰에 법무부 장관 임명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주었는가. 만약 혐의가 있다면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국민 평가가 내려진 이후에 수사에 들어가는 게 맞았을 것이다. 서초동 촛불은 검찰의 무소불위 행태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비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조국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 지 벌써 한달 넘게 지났다. 검찰 공식 발표가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조 장관 부인의 사모펀드 실소유 의혹과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 아들·딸의 인턴 증명서 의혹 등이 지금까지 나타난 주요 혐의로 보인다. 이들 하나하나가 사실이라면, 그 책임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번 수사가 조국 장관이나 부인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한달 넘게 수사한 내용이 부인과 아들·딸 등 가족 관련 사안이라면, 그것이 과연 장관 임명의 결격 사유로 볼 수 있는지, 또 그런 식으로 공직 후보자 가족을 탈탈 털어 ‘혐의’를 밝혀내는 걸 용인하면 검찰총장을 포함해 어느 고위 공직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많은 국민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국민적 비판과 수사에 대한 불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권도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입법으로써 답을 해야 한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 중 하나가 ‘공수처 설치’였다는 점을 국회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들 법안은 10월27일 이후에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상된다. 비대한 검찰 권한을 제어하기 위해선 제도적 입법이 필수적이며, 여기엔 여야 정치권의 이해가 다를 수 없다고 본다. 국회는 올해 안에 검찰개혁법안 입법을 마무리함으로써 국민의 강렬한 검찰개혁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충격적인’ 초유의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

검찰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아들과 딸이 지원했던 연세대 등 4개 대학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에 나섰다.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조 장관 부인과 아들·딸 명의로 투자한 사모펀드를 둘러싼 횡령 또는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 대학 인턴활동 증명서나 표창장 발급 과정에서의 사문서 위조 또는 업무방해 혐의, 개인용 컴퓨터(PC) 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여부 등으로 요약된다. 이번 압수수색은 이런 혐의들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를 통해 여러 의혹이 규명되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검찰은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의 실소유주가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라는 전제 아래, 5촌조카 조아무개씨의 아내나 정 교수 동생 명의 주식도 모두 차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 교수는 조씨 횡령 혐의의 공범이고 재산을 허위신고했으니 공직자윤리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언론 매체는 코링크 설립 주체가 ‘익성’이란 기업이고,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조씨가 대여금을 상환하는 등 정상적인 금전 거래의 근거가 남아 있으니 차명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정 교수가 펀드 투자회사 더블유에프엠(WFM) 회의에 참석하고, 동생 집에서 그 회사의 실물주권이 발견되는 등 석연찮은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실이라 해도 정 교수를 법적인 운용자로 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부정적 견해가 적지 않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 발급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조국 장관은 “악의적 보도”라며 “법적 조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밝혔다.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도 ‘과도한 억측이 진실을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인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정경심 교수는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줄곧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면, ‘블라인드 펀드’라는 애초 해명은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잇따르는 의혹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검찰 역시 더이상 피의사실 공표 논란 등이 벌어지지 않도록 ‘권력형 비리’에 집중해 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주력해주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미 ‘9월 실무협상’ 가시화, 비핵화 돌파구 찾아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9월 하순에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즉각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이로써 6월30일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서 합의된 ‘비핵화 실무협상’이 이달 안에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 협상 교착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최선희 부상의 제안은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들의 대화 촉구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사흘 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앞으로 1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조속한 협상 재개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 비핵화가 완료될 경우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를 전략적으로 재검토할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의 관심사인 자위권을 적극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발언들이 북한의 의구심을 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최 부상의 담화 직후 발사체 두 발을 쏘아 올리는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북한의 이런 ‘이중 행동’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한번 더 압박하는 것이자, ‘안보 우려 해소’가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남북 간 군사경쟁은 계속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의 무력시위에 단호히 대응하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방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

실무협상이 성사된다면, ‘하노이 결렬’을 가져온 북-미 입장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부상이 말한 ‘새로운 계산법’이 협상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그간 행동으로 볼 때 최 부상이 ‘미국 쪽이 낡은 각본을 만지작거린다면 거래는 막을 내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엄포라고만 보긴 어렵다.

북한도 미국도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은 민생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 제재의 해제가 시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비핵화 협상의 구체적 성과가 절실하다.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려면, 실무협상에서 양쪽이 접점을 찾아야 한다. 북·미 모두 이번엔 끝을 보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다음주 워싱턴 방문을 검토한다고 하니, 정부도 북-미 협상이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일본은 보복 아니고 한국은 보복”이라는 아베 정부의 억지

우리 정부가 일본을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간소화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아베 정부가 “자의적 보복 조치”라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달 14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3일까지 의견수렴을 했는데,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이런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다.

앞서 경산성은 지난달 28일 우리 정부의 거듭된 수출규제 철회와 대화 요구를 거부한 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을 강행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 정부는 “안보상 수출관리제도를 적절히 실시하는 데 필요한 운용 재검토일 뿐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자신들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은 보복이 아니고 우리 정부가 맞대응 차원에서 나선 것은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내로남불’이고, 이런 억지가 따로 없다.
그러면서 아베 정부는 다른 한편에선 딴소리를 하고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4일 <블룸버그> 통신에 실린 기고문에서, 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한-일 관계가 경색됐으며 문제의 핵심은 국교 정상화 때 양국이 했던 약속의 준수 여부라고 주장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떠넘기려 국제사회를 향한 여론전에 나선 것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산업부는 4일 경산성의 의견서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은 국제수출통제체제 원칙에 어긋나게 수출통제제도를 운용해 국제 공조가 어려운 나라를 대상으로 수출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이라는 반박 입장을 내놨다. 아베 정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대응이라고 본다.

아베 정부가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약 2주 뒤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앞으로 일본과 대등한 조건에서 협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무역기구(WTO) 승소 전략과 우리 중소기업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면밀히 따져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자강’과 ‘극일’의 길 제시한 문 대통령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74돌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책임있는 경제강국’ 건설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 상생의 길을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악화된 상황에서 광복절을 맞아 문 대통령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강’의 길을 걷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또 일본에 우호와 협력의 길로 나오라고 촉구한 것도 합리적이다. 이날 연설은 ‘반일’을 넘어 대승적 ‘극일’의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를 계기로 일본과 화해·협력의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일본을 직접 비난하는 대신 우회적으로 충고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함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이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우회적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함으로써 내년 도쿄 여름올림픽에 적극 협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해 외교적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광복절을 맞아 성숙하고 세련된 자세로 일본에 자세 전환을 촉구한 것인데, 일본도 문 대통령의 고언을 새겨듣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짐하면서 책임있는 경제강국,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과 통일을 목표로 제시했다. 대·중소기업과 노사의 상생,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의 비전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비전이 실현돼 한-일 경제전쟁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겠다”고 통일 비전을 구체화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평화경제’를 넘어 통일까지 제시한 것은 ‘온전한 광복’을 위한 장기 비전인 셈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완곡하게 짚은 것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몇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이라고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또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갖췄음을 분명히 했다. “불만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서 제기하라”고도 했다. 수차례 미사일을 쏘며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모욕해온 북한에 차분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조언을 받아들여 더 이상 긴장을 격화시키지 말고 대화에 성실히 응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한-일 갈등 와중에 잇속만 차리려는 미국

미국이 얼마 전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압박하더니 이번엔 사실상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요구하고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를 넌지시 거론했다. 한-일 무역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은 안중에 없이, 오로지 미국의 이해관계만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몹시 유감스럽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4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로 제약이 없어진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를 거론하며 “동맹과 파트너들과 협의해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에 중거리미사일이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실제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의 반발을 불러 ‘제2의 사드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동아시아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3국의 중거리미사일이 서로를 겨누며 경쟁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게 분명하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안전을 담당하는 ‘호위 연합체’ 구성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처럼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들이 자국 경제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국과 일본을 콕 집어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이 한국 원유 수입량의 약 80%가 지나는 생명선이어서, 이곳의 안전한 항해에 한국 경제의 핵심 이해가 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 호르무즈해협에 긴장이 높아진 건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 파기 때문이라 다른 나라에 파병을 요구하는 건 명분이 약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런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협의한 사실은 인정했다. 미국이 한-일 무역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고가의 방위비 청구서만 내미는 형국이다.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나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안전 문제는 한-일 갈등과 관계없이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동맹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겠다는 것으로 비쳐 개운치가 않다. 특히 지금 시점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건 너무 일방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게 동맹이 할 일 아닌가.


[한겨레 사설] 끝내 ‘파국’ 택한 아베, ‘국가 역량’ 총결집해 맞서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끝내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2일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했다. 일본이 한국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들의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사실상의 ‘경제전쟁’ 도발이라 부를 만하다.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고 이웃나라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하겠다는 뜻이다. 국제 분업·협업 체계에 균열을 일으켜 한·일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근시안적인 아베 정부의 ‘자해행위’를 엄중하게 규탄한다. 아베 총리가 도발한 무역전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일본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했고,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각의 의결을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단합해 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 연설은 일본 결정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단호한 맞대응을 천명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국민 단합과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이다. 일본이 7월 초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내렸을 때처럼, 한-일 무역전쟁의 발발 책임을 아베 아닌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는 일부 야당과 보수 언론의 무분별한 행동이 더는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피해자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무너뜨린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비판이 일본 극우정권의 패권적 행동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지금은 정치권을 비롯해 모든 부문이 일본 정부의 무도한 행태를 비판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한 공론 통합의 중심엔 대통령과 정부가 서야 한다. 일본 대신 한국을 비판하는 데 골몰하는 일부 세력의 태도는 국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싸움에서 국내 모든 역량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실천하길 바란다. 작은 정치적 차이를 넘어서, 한-일 관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대의에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정부 부처들의 치밀한 대책 수립과 실행도 중요하다. 아베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로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불가피해졌다. 이미 수출 규제를 받고 있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더해 이달 28일부터는 식품·목재를 제외한 산업 전반의 1100여개 품목을 수입할 때 건건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재고물량 확보와 수입처 다변화 등 가용 대책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위험을 부풀려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요한 건, 한국 경제가 지나친 대일 의존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일본에 견줘 취약한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과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 조성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은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아베 정부의 무역 보복에서 발화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냉전 시절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과 일본이 체결한 1965년 한-일 협정 체제를 더 이상 낡은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상징적인 신호와 같다. ‘경제에 타격이 크니 어떻게든 화해하자’는 식으로 손쉽게 갈등을 봉합하려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는 ‘65년 체제’의 유산 중 책임질 건 책임지더라도, 시대적 가치 변화를 반영하는 쪽으로 당당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그래야 한·일 두 나라의 바람직한 미래를 여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아베 정부, 정녕 ‘파국’으로 가려 하는가

일본 정부가 오는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인 안보상 신뢰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는 각료회의 결정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 수출령’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 의견을 정리해, 각의 결정 하루 전날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가 한-일 무역갈등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을 하면 8월 하순부터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하는데, 이미 시행 중인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다. 식품,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포괄 허가’에서 ‘개별 허가’ 방식으로 바뀌어, 한국 관련 업체들이 주요 소재 수입 때마다 건건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전면적인 무역전쟁’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부의 이런 조처는 두 나라 업체들 사이의 무역 거래에 막대한 지장을 끼치는 행위임은 물론, 전반적인 양국 관계에도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곧 한국을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로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 75명이 수출규제 철회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놓은 성명서 제목을 ‘한국은 적인가’라고 붙인 까닭이기도 하다.

이미 시행 중인 수출규제가 국제통상 규범을 어기는 반칙 행위인 터에, 규제 대상 품목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두 나라 관계를 사실상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 역사·인권 문제를 경제 문제로 연계해 아베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내 언론은 물론, 주요 외신이나 미국의 반도체 업계, 일본의 지식인 사회까지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대열에 나서고 있는 현실이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비판적 목소리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아 국제 여론전에서 옹색한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이라도 수출규제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하든지, 부당한 조처를 되물리는 게 옳다.

전면적인 수출 제한은 물론 3대 품목 수출규제가 국제통상 규범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29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일본 경제산업성 고시 내용은 한 예일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4개 국가·지역에 불화수소를 비롯한 3개 소재 수출의 포괄허가제를 3년간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정작 ‘전략물자 통제 체제’에 들어 있는 한국을 개별허가제로 묶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어서, 통상질서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위반의 범위를 이보다 한층 더 넓히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 수출규제는 자유무역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한국은 물론 일본 경제에도 큰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베 정부는 두 나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을 뿐 실익은 없는 무모한 무역전쟁의 칼을 집어넣는 게 마땅하다.


[한겨레 사설] 러시아의 ‘영공 침범’과 이를 틈탄 일본의 ‘독도 망언’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독도 인근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경고사격까지 했다고 한다. 외국 군용기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온 적은 종종 있었지만, 영공을 침범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영공은 방공식별구역과 달리 국제법적으로 우리 주권의 배타적 관할권이 인정되는 불가침의 공간이다. 러시아는 당장 영공 침범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일본은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영토에서 이런 행위는 안 된다”고 한국과 러시아에 항의했다고 한다. 한-러 간 분쟁을 틈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뻔뻔한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개입하는 일본의 태도는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정부는 러시아의 영공 침공뿐 아니라 일본의 행동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직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즉각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에게 전화해 “이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외교부도 주한 러시아·중국 대사 등을 불러 항의했다. 당연한 처사다.

합동참모본부 설명을 들어보면, 오전 동해 상공에서 중국 폭격기 2대와 러시아 폭격기 2대가 함께 비행하며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직후 러시아의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가 동쪽에서 접근해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다. 이에 우리 공군 전투기가 미사일 회피용 플레어 20여발과 기총 360여발로 경고사격을 했다고 한다. 자칫 두 나라 항공기 간에 물리적 충돌이라도 벌어졌다면 어쩔 뻔했을지 가슴이 서늘하다. 이런 위기를 조장한 책임이 남의 나라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쪽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전투기의 경고사격에 물러났다가 다시 진입하는 등 2차례에 걸쳐 7분 동안 영공을 침범했다는데, 의도적인 게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최근 동북아에선 미·일과 중·러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한-일 갈등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우발적인 사소한 충돌이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동북아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역시 쓸데없이 갈등을 부추겨선 안 된다.


[한겨레 사설] 북한에 전략물자 반출한 일본의 적반하장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11일 “일본에서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의 대북 밀수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며칠 전 일본이 근거도 없이 ‘한국이 일본산 불화수소의 수출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북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억지 주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전략물자의 대북 밀반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본의 수출 통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하 의원이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의 ‘부정수출사건 개요’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996년부터 2013년까지 17년 동안 일본에서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이 있었으며 이 중에는 핵개발·생화학무기에 활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가 포함돼 있다. 불화수소가 옴진리교에서 사용했던 치명적인 ‘사린가스’와 김정남 암살에 쓰인 ‘브이엑스(VX) 신경작용제’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공포감을 조성하며 한국을 몰아붙인 일본의 철면피한 행동에 말문이 막힌다. 하 의원은 “뭐 묻은 개가 아무것도 안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베 정부는 수출 통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안보상의 우려’ 때문이라고 말을 바꿔가며 억지를 부렸는데, 그 허구성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을 들어보면,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 및 관리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더 투명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해마다 연례보고서를 내어 적발 건수와 조처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반면, 일본은 적발 사례만 경제산업성 누리집에 공개하고 연례보고서는 내지 않고 있다. 바세나르 협약 참가국 중에 적발 건수를 집계하지 않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가 일본보다 허술하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도 전략물자 수출 국가별 심사기준(5단계)에서 한국을 일본과 똑같이 최상위(A)급으로 대우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이 금방 드러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그만큼 보복 조치를 변호할 근거가 옹색하다는 방증이다. <조선일보>의 근거 없는 보도를 일본 정부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도 한심할 따름이다. 아베 정부는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수출 통제의 부당함을 자인하고 철회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40여년 만의 ‘간첩 조작’ 사과, 이제 국가가 법적조처 나설 때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과거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현장에 있던 사건 피해자들과 마침 소송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이 발언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사건이 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에 있었으니 무려 40여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국가의 사과를 받고 싶다던 피해자들도 ‘국가를 대표한’ 문 대통령의 사과에 적잖은 의미를 부여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게다가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비율이 전체의 20~30%뿐인 실정이라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문 대통령이 재일동포 370여명을 초청해 연 만찬장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관계자뿐 아니라 이철 재일 한국인 양심수동우회 대표, 형제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서승씨 등도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문 대통령은 “군부독재 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며 “독재권력의 폭력에 깊이 상처 입은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 적잖다. 참여정부 때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는 일본 출신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를 130여명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27일 무죄를 받은 정승연씨를 포함해 30여명에 그친다. 애초 우리 사법체제를 불신해 재심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진실화해위 활동을 계기로 법적인 명예회복에 나섰으나 개인이 나서야 하는 탓에 아직도 숫자가 적다. 문 대통령도 밝혔듯이 간첩조작 사건들은 독재정권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한 게 대부분이다. 조국의 군사독재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학생·시민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거나 아직도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이므로 국가가 특별법 등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게 맞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처럼 반독재 민주화 운동 때문에 반국가단체로 묶인 경우도 이제는 정부가 나서 풀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G20 일정 찼다’는 아베, 한-일 관계 방치할 셈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국 의장이므로 매우 일정이 차 있다”며 “시간이 제한되는 가운데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번 주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중에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최악인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혀 매우 유감스럽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통상 개최국 정상은 참가국 정상들과 연쇄 양자회담을 한다. 특히 한-일 정상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양자 회담을 해온 관례가 있다. 이런 전례를 송두리째 무시하겠다는 건 외교적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겨냥하는 것이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 손해배상’ 판결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날도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문제이니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게 일본 주장이다.

그러나 주권국가의 사법적 판단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억지에 가깝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민주국가에서 행정부가 어떻게 사법부의 판결에 개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징용 수혜자였던 일본 기업들은 배상은커녕 공식 사과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일본 정부는 며칠 전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한국 정부 제안도 거부했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베 총리는 강경론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서, 새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보수층의 결집을 의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무리 국내 정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안보·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깊게 얽혀 있는 이웃나라와의 의사소통마저 거부하는 게 과연 적절한 행동인지 아베 총리에게 묻고 싶다.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만난다고 당장 합의를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신중히 숙고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홍콩 시위’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한다

‘범죄인 인도 조례’ 제정을 둘러싼 홍콩 시위 사태가 심상치 않다. 9일 홍콩 시민의 ‘100만 행진’에 불을 지핀 범죄인 인도 조례를 둘러싼 갈등은 12일엔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로 비화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례안에 대한 입법회(국회)의 심의가 시민의 저항에 막혀 연기됐지만, 시민들은 다시 16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홍콩 당국도 조례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충돌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국이 ‘시위 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서고 중국도 ‘내정간섭 말라’고 발끈하면서, 이미 무역전쟁 중인 두 나라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발단은 단순하다. 지난해 홍콩의 한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사건에서 비롯했다.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이 남성을 대만에 넘겨줄 수 없게 되자, 이를 계기로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조례안 추진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이 조례가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시민들의 우려는 중국의 법 집행 관행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점에 비춰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홍콩 당국은 조례 제정을 무작정 밀어붙일 게 아니라, 먼저 조례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부터 얻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이 13일 “정부는 대중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존중해야 하며, 대중과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촉구한 대목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시위대 해산 과정에선 홍콩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는 물론 타박상을 입힐 수 있는 고무탄과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등을 마구 발포해 수십명이 다쳤다. 이런 강경 진압은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중단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지한 걸 문제 삼긴 어렵지만, 이것을 최근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도 냉정하게 대처해 더이상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