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자강’과 ‘극일’의 길 제시한 문 대통령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74돌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책임있는 경제강국’ 건설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 상생의 길을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악화된 상황에서 광복절을 맞아 문 대통령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강’의 길을 걷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또 일본에 우호와 협력의 길로 나오라고 촉구한 것도 합리적이다. 이날 연설은 ‘반일’을 넘어 대승적 ‘극일’의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를 계기로 일본과 화해·협력의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일본을 직접 비난하는 대신 우회적으로 충고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함으로써 과거사 문제에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이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우회적으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함으로써 내년 도쿄 여름올림픽에 적극 협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해 외교적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광복절을 맞아 성숙하고 세련된 자세로 일본에 자세 전환을 촉구한 것인데, 일본도 문 대통령의 고언을 새겨듣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짐하면서 책임있는 경제강국,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과 통일을 목표로 제시했다. 대·중소기업과 노사의 상생,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의 비전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의 비전이 실현돼 한-일 경제전쟁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겠다”고 통일 비전을 구체화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평화경제’를 넘어 통일까지 제시한 것은 ‘온전한 광복’을 위한 장기 비전인 셈이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여러 문제점을 완곡하게 짚은 것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몇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이라고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또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갖췄음을 분명히 했다. “불만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서 제기하라”고도 했다. 수차례 미사일을 쏘며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모욕해온 북한에 차분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조언을 받아들여 더 이상 긴장을 격화시키지 말고 대화에 성실히 응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한-일 갈등 와중에 잇속만 차리려는 미국

미국이 얼마 전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압박하더니 이번엔 사실상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요구하고 중거리미사일 배치 문제를 넌지시 거론했다. 한-일 무역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은 안중에 없이, 오로지 미국의 이해관계만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몹시 유감스럽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4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기로 제약이 없어진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를 거론하며 “동맹과 파트너들과 협의해 배치하겠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에 중거리미사일이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실제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의 반발을 불러 ‘제2의 사드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동아시아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3국의 중거리미사일이 서로를 겨누며 경쟁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릴 게 분명하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안전을 담당하는 ‘호위 연합체’ 구성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처럼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들이 자국 경제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국과 일본을 콕 집어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이 한국 원유 수입량의 약 80%가 지나는 생명선이어서, 이곳의 안전한 항해에 한국 경제의 핵심 이해가 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 호르무즈해협에 긴장이 높아진 건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 파기 때문이라 다른 나라에 파병을 요구하는 건 명분이 약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런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협의한 사실은 인정했다. 미국이 한-일 무역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고가의 방위비 청구서만 내미는 형국이다.

중거리미사일의 아시아 배치나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안전 문제는 한-일 갈등과 관계없이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동맹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겠다는 것으로 비쳐 개운치가 않다. 특히 지금 시점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건 너무 일방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게 동맹이 할 일 아닌가.


[한겨레 사설] 끝내 ‘파국’ 택한 아베, ‘국가 역량’ 총결집해 맞서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끝내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2일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했다. 일본이 한국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들의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사실상의 ‘경제전쟁’ 도발이라 부를 만하다.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고 이웃나라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하겠다는 뜻이다. 국제 분업·협업 체계에 균열을 일으켜 한·일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근시안적인 아베 정부의 ‘자해행위’를 엄중하게 규탄한다. 아베 총리가 도발한 무역전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일본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했고,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각의 의결을 “외교적 노력을 거부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대단히 무모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단합해 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 연설은 일본 결정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단호한 맞대응을 천명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국민 단합과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이다. 일본이 7월 초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내렸을 때처럼, 한-일 무역전쟁의 발발 책임을 아베 아닌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리는 일부 야당과 보수 언론의 무분별한 행동이 더는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피해자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무너뜨린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한국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비판이 일본 극우정권의 패권적 행동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지금은 정치권을 비롯해 모든 부문이 일본 정부의 무도한 행태를 비판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한 공론 통합의 중심엔 대통령과 정부가 서야 한다. 일본 대신 한국을 비판하는 데 골몰하는 일부 세력의 태도는 국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싸움에서 국내 모든 역량을 끌어모을 수 있도록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실천하길 바란다. 작은 정치적 차이를 넘어서, 한-일 관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대의에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정부 부처들의 치밀한 대책 수립과 실행도 중요하다. 아베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로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불가피해졌다. 이미 수출 규제를 받고 있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더해 이달 28일부터는 식품·목재를 제외한 산업 전반의 1100여개 품목을 수입할 때 건건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긴밀한 협조를 통해 재고물량 확보와 수입처 다변화 등 가용 대책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위험을 부풀려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요한 건, 한국 경제가 지나친 대일 의존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일본에 견줘 취약한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과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 조성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은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아베 정부의 무역 보복에서 발화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냉전 시절 한국의 군부독재 정권과 일본이 체결한 1965년 한-일 협정 체제를 더 이상 낡은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상징적인 신호와 같다. ‘경제에 타격이 크니 어떻게든 화해하자’는 식으로 손쉽게 갈등을 봉합하려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부는 ‘65년 체제’의 유산 중 책임질 건 책임지더라도, 시대적 가치 변화를 반영하는 쪽으로 당당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그래야 한·일 두 나라의 바람직한 미래를 여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아베 정부, 정녕 ‘파국’으로 가려 하는가

일본 정부가 오는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인 안보상 신뢰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는 각료회의 결정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 수출령’ 개정안에 대한 국내외 의견을 정리해, 각의 결정 하루 전날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가 한-일 무역갈등의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을 하면 8월 하순부터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하는데, 이미 시행 중인 3대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다. 식품,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포괄 허가’에서 ‘개별 허가’ 방식으로 바뀌어, 한국 관련 업체들이 주요 소재 수입 때마다 건건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전면적인 무역전쟁’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부의 이런 조처는 두 나라 업체들 사이의 무역 거래에 막대한 지장을 끼치는 행위임은 물론, 전반적인 양국 관계에도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곧 한국을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로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 75명이 수출규제 철회 서명운동을 전개하면서 내놓은 성명서 제목을 ‘한국은 적인가’라고 붙인 까닭이기도 하다.

이미 시행 중인 수출규제가 국제통상 규범을 어기는 반칙 행위인 터에, 규제 대상 품목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두 나라 관계를 사실상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 역사·인권 문제를 경제 문제로 연계해 아베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내 언론은 물론, 주요 외신이나 미국의 반도체 업계, 일본의 지식인 사회까지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대열에 나서고 있는 현실이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비판적 목소리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아 국제 여론전에서 옹색한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이라도 수출규제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하든지, 부당한 조처를 되물리는 게 옳다.

전면적인 수출 제한은 물론 3대 품목 수출규제가 국제통상 규범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29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일본 경제산업성 고시 내용은 한 예일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4개 국가·지역에 불화수소를 비롯한 3개 소재 수출의 포괄허가제를 3년간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정작 ‘전략물자 통제 체제’에 들어 있는 한국을 개별허가제로 묶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어서, 통상질서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위반의 범위를 이보다 한층 더 넓히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 수출규제는 자유무역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한국은 물론 일본 경제에도 큰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베 정부는 두 나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을 뿐 실익은 없는 무모한 무역전쟁의 칼을 집어넣는 게 마땅하다.


[한겨레 사설] 러시아의 ‘영공 침범’과 이를 틈탄 일본의 ‘독도 망언’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독도 인근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경고사격까지 했다고 한다. 외국 군용기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온 적은 종종 있었지만, 영공을 침범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영공은 방공식별구역과 달리 국제법적으로 우리 주권의 배타적 관할권이 인정되는 불가침의 공간이다. 러시아는 당장 영공 침범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일본은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영토에서 이런 행위는 안 된다”고 한국과 러시아에 항의했다고 한다. 한-러 간 분쟁을 틈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뻔뻔한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개입하는 일본의 태도는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정부는 러시아의 영공 침공뿐 아니라 일본의 행동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직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즉각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에게 전화해 “이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외교부도 주한 러시아·중국 대사 등을 불러 항의했다. 당연한 처사다.

합동참모본부 설명을 들어보면, 오전 동해 상공에서 중국 폭격기 2대와 러시아 폭격기 2대가 함께 비행하며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다가 빠져나갔는데, 그 직후 러시아의 ‘A-50 조기경보통제기’ 1대가 동쪽에서 접근해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다. 이에 우리 공군 전투기가 미사일 회피용 플레어 20여발과 기총 360여발로 경고사격을 했다고 한다. 자칫 두 나라 항공기 간에 물리적 충돌이라도 벌어졌다면 어쩔 뻔했을지 가슴이 서늘하다. 이런 위기를 조장한 책임이 남의 나라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쪽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전투기의 경고사격에 물러났다가 다시 진입하는 등 2차례에 걸쳐 7분 동안 영공을 침범했다는데, 의도적인 게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최근 동북아에선 미·일과 중·러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한-일 갈등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우발적인 사소한 충돌이 군사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동북아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역시 쓸데없이 갈등을 부추겨선 안 된다.


[한겨레 사설] 북한에 전략물자 반출한 일본의 적반하장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11일 “일본에서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의 대북 밀수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며칠 전 일본이 근거도 없이 ‘한국이 일본산 불화수소의 수출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북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억지 주장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전략물자의 대북 밀반출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본의 수출 통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하 의원이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의 ‘부정수출사건 개요’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996년부터 2013년까지 17년 동안 일본에서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이 있었으며 이 중에는 핵개발·생화학무기에 활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가 포함돼 있다. 불화수소가 옴진리교에서 사용했던 치명적인 ‘사린가스’와 김정남 암살에 쓰인 ‘브이엑스(VX) 신경작용제’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공포감을 조성하며 한국을 몰아붙인 일본의 철면피한 행동에 말문이 막힌다. 하 의원은 “뭐 묻은 개가 아무것도 안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베 정부는 수출 통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안보상의 우려’ 때문이라고 말을 바꿔가며 억지를 부렸는데, 그 허구성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설명을 들어보면,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 및 관리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더 투명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해마다 연례보고서를 내어 적발 건수와 조처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반면, 일본은 적발 사례만 경제산업성 누리집에 공개하고 연례보고서는 내지 않고 있다. 바세나르 협약 참가국 중에 적발 건수를 집계하지 않는 나라는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가 일본보다 허술하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도 전략물자 수출 국가별 심사기준(5단계)에서 한국을 일본과 똑같이 최상위(A)급으로 대우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이 금방 드러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그만큼 보복 조치를 변호할 근거가 옹색하다는 방증이다. <조선일보>의 근거 없는 보도를 일본 정부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도 한심할 따름이다. 아베 정부는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수출 통제의 부당함을 자인하고 철회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40여년 만의 ‘간첩 조작’ 사과, 이제 국가가 법적조처 나설 때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과거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현장에 있던 사건 피해자들과 마침 소송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이 발언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사건이 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에 있었으니 무려 40여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국가의 사과를 받고 싶다던 피해자들도 ‘국가를 대표한’ 문 대통령의 사과에 적잖은 의미를 부여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게다가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비율이 전체의 20~30%뿐인 실정이라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문 대통령이 재일동포 370여명을 초청해 연 만찬장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관계자뿐 아니라 이철 재일 한국인 양심수동우회 대표, 형제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서승씨 등도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문 대통령은 “군부독재 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며 “독재권력의 폭력에 깊이 상처 입은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해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 적잖다. 참여정부 때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는 일본 출신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를 130여명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27일 무죄를 받은 정승연씨를 포함해 30여명에 그친다. 애초 우리 사법체제를 불신해 재심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진실화해위 활동을 계기로 법적인 명예회복에 나섰으나 개인이 나서야 하는 탓에 아직도 숫자가 적다. 문 대통령도 밝혔듯이 간첩조작 사건들은 독재정권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한 게 대부분이다. 조국의 군사독재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학생·시민들이 그 희생양이 됐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뜨거나 아직도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이므로 국가가 특별법 등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게 맞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처럼 반독재 민주화 운동 때문에 반국가단체로 묶인 경우도 이제는 정부가 나서 풀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G20 일정 찼다’는 아베, 한-일 관계 방치할 셈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국 의장이므로 매우 일정이 차 있다”며 “시간이 제한되는 가운데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번 주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중에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최악인 한-일 관계 개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혀 매우 유감스럽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통상 개최국 정상은 참가국 정상들과 연쇄 양자회담을 한다. 특히 한-일 정상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양자 회담을 해온 관례가 있다. 이런 전례를 송두리째 무시하겠다는 건 외교적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아베 총리가 직접 겨냥하는 것이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 손해배상’ 판결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날도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문제이니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게 일본 주장이다.

그러나 주권국가의 사법적 판단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억지에 가깝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민주국가에서 행정부가 어떻게 사법부의 판결에 개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징용 수혜자였던 일본 기업들은 배상은커녕 공식 사과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일본 정부는 며칠 전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한국 정부 제안도 거부했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베 총리는 강경론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서, 새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보수층의 결집을 의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무리 국내 정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안보·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깊게 얽혀 있는 이웃나라와의 의사소통마저 거부하는 게 과연 적절한 행동인지 아베 총리에게 묻고 싶다.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만난다고 당장 합의를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지 신중히 숙고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홍콩 시위’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한다

‘범죄인 인도 조례’ 제정을 둘러싼 홍콩 시위 사태가 심상치 않다. 9일 홍콩 시민의 ‘100만 행진’에 불을 지핀 범죄인 인도 조례를 둘러싼 갈등은 12일엔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로 비화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례안에 대한 입법회(국회)의 심의가 시민의 저항에 막혀 연기됐지만, 시민들은 다시 16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홍콩 당국도 조례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충돌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국이 ‘시위 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서고 중국도 ‘내정간섭 말라’고 발끈하면서, 이미 무역전쟁 중인 두 나라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발단은 단순하다. 지난해 홍콩의 한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사건에서 비롯했다. 홍콩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아 이 남성을 대만에 넘겨줄 수 없게 되자, 이를 계기로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조례안 추진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이 조례가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통로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시민들의 우려는 중국의 법 집행 관행이 불투명하고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점에 비춰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홍콩 당국은 조례 제정을 무작정 밀어붙일 게 아니라, 먼저 조례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부터 얻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이 13일 “정부는 대중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존중해야 하며, 대중과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촉구한 대목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시위대 해산 과정에선 홍콩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는 물론 타박상을 입힐 수 있는 고무탄과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등을 마구 발포해 수십명이 다쳤다. 이런 강경 진압은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중단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정부가 제안한 개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지한 걸 문제 삼긴 어렵지만, 이것을 최근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도 냉정하게 대처해 더이상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게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5·18 진상규명’,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1980년 신군부의 내란 및 군사반란에 맞섰던 광주 시민의 용기와 희생을 돌아본다. 80년 광주는 6월항쟁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동력이었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자양분이다. 1997년엔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폄훼와 망언은 여전하다. 제1야당 의원이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하고, 가짜 유공자들이 2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거짓 선동과 “언제까지 진상규명이냐”는 비아냥도 공공연하다.

광주항쟁 38년 만인 지난해 5월 계엄군의 시민 성폭행 증언이 나와 공분을 자아냈다. 지난 1년 동안 새로운 증언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신군부가 학살의 책임을 시민군에 돌리며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자를 부풀렸다는 당시 주검 검안 의사의 첫 증언이 나왔다. 전두환은 발포 명령을 부인하지만, 그가 헬기를 타고 광주에 온 뒤 학살이 시작됐다는 증언, 유혈진압 작전 계획을 “굿 아이디어”라고 칭찬했다는 문건, 정권장악이 물거품 될 것을 우려해 5월27일 광주로 재진입해 유혈진압을 했다는 미국 국무부 비밀 문건도 나왔다. 암매장 의혹이 여전한 가운데 계엄군이 공군 헬기로 주검을 운반했다는 기록도 공개됐다. 밝혀지지 않은 의혹이 있는 한 진상규명 노력을 절대 멈춰선 안 된다. 권력 찬탈을 위해 시민을 학살한 자들의 만행을 낱낱이 밝혀 역사에 기록하고, 반면교사로 삼는 건 살아남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다.

정치권도 연례행사처럼 5·18 기념식만 기릴 게 아니라, 진상규명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특히 이중적 행태를 보여온 자유한국당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촉구한다. 여야 합의로 지난해 2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조사위원 추천 지연, 무자격 위원 추천 등으로 조사위 출범을 가로막고 있다. 5·18 망언자 징계라도 매듭짓고 5·18 기념식에 오라는 요구에 황교안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서 가는 게 도리”라며 “광주 시민의 질타가 있으면 가서 듣겠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인정한 것은 자유한국당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의 도리, ‘김영삼 정신 계승’은 갈등을 조장하는 ‘광주행 정치’보다 조사위 출범과 망언자 징계 마무리로 구현된다는 걸 자유한국당은 깨닫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판문점 선언 1돌, 다시 시험대 선 ‘한반도 평화'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 1돌을 맞았다. 지난해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남북 정상은 이날 채택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겨레와 전세계에 천명했다.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도 확인했다. 10여년의 단절을 끝내고 남북이 만들어낸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여정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난 1년은 남북이 이루어낸 것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보여주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는 대결의 장에서 대화의 장으로 대전환을 시작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포함해 한해 세차례나 만나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다. 판문점 선언에서 다짐한 ‘남북간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는 9·19 남북군사합의라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이 합의에 따라 휴전선 일대의 육·해·공에서 남북간 적대행위가 모두 사라졌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설치돼 남북이 상시 소통하는 시대도 열렸다.

더 중요한 것은 북-미 대화가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판문점 선언 한달여 뒤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사상 처음으로 만나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 잔재 해체를 시작했다. 판문점 선언에 이어 북-미 정상은 다시 한번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공식 확인하면서 비핵화 협상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남북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조성된 새로운 교착 국면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노이 결렬’ 이후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 관계 개선의 선순환 구도가 어그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해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나아가던 남북 대화와 교류는 올해 들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1돌을 하루 앞두고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미국의 대북 제재 틀에 갇혀 있는 한 남북관계가 답답한 형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을 정부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해법’을 고집하는 북한 사이에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북-미 협상이 순항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북-미 사이 대치가 길어지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력도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북-미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북한에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대신에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뜻을 더 분명히 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한반도 시계가 판문점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관건은 하노이 결렬 이후 사라진 북-미 대화 테이블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은 북한이 문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회담 제안을 받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야 북-미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계기가 마련된다. 조성된 난국을 헤쳐나갈 길을 시급히 찾지 못한다면, 판문점 선언의 뜻깊은 의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겨레 사설] 한-미 정상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4월11~12일 워싱턴에서 열린다고 청와대와 백악관이 동시에 발표했다. 이번 회담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 이뤄지는 한-미 정상의 만남이다. 대화와 타협의 ‘촉진자’임을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불씨를 반드시 되살려내야 한다. 두 나라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오게 할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4월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직후 귀국길에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비핵화 협상의 조기 성과를 위해 오찬을 겸해서 북한 견인 방법을 논의하자”며 방미를 요청했다고 한다.
두 정상의 만남은 북-미 간 대화 단절이 한달째 이어지고 있는 엄중한 국면임을 고려할 때 시의적절하다 말할 수 있다. 또 북한이 중대한 대외 메시지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는 최고인민회의 소집일(11일)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각별하다.

물론 대화 재개 방안 마련은 만만찮은 과제다. 무엇보다 비핵화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크다.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해법을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트위트를 통해 “추가 대북제재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히고 북한도 상황을 악화시킬 도발을 자제하고 있어, 한국과 미국의 노력 여하에 따라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데 좀더 유연성을 보이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 주장대로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먼저 합의한 뒤, 북한 주장대로 이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절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방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미국과 의견 조율을 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언급한 ‘스냅백’, 즉 비핵화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하는 방안도 더해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대화 재개를 이끌어내고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협상 중단 고려’ 경고한 북한, 지금은 자제할 때다

북한이 15일 미국과 협상을 중단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지속할지,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유지할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성명 내용에 따라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엿보인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최 부상이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가 상황을 위기에 빠뜨렸다”며 “우리는 미국의 요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경 선회의 배경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노이 회담 뒤 김 위원장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기차 여행을 다시 하겠는가’라고 했다는 최 부상의 말에서 북한이 느낀 실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마저 ‘전부 아니면 전무’ 식 빅딜 해법을 공식화하고 나선 것은 북한에 사실상 굴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의 빅딜 압박이 지나친 면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이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하고 핵실험 유예까지 재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 이래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이런 식의 대치가 격화하다가 돌발적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질 수 있다. 북한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며,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 만에 하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된다면 지난 1년 남짓 어렵게 만들어온 북-미 대화 분위기는 일거에 사라질 것이 뻔하다.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최 부상이 “최고지도자 간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도 완벽하다”고 말한 것은 북한도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좋은데 참모들이 협상을 방해한다는 판단을 내비친 것으로 보아, 협상 재개를 위해 한국이나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최대한 빨리 북한의 의도를 확인해 북-미 대치가 격화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힘들게 쌓아올린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겨레 사설] 협상 여지 좁히는 미국식 ‘빅딜 해법’을 우려한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 북한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점진적으로 하지 않겠다”며 ‘일괄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미국 행정부가 완전하게 일치를 보고 있다”는 말도 했다. 미국이 북-미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일괄타결식 빅딜’을 사실상 공식화하고 나선 셈이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과 간극이 커 북-미 대치가 장기화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비건 대표는 이날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핵연료 사이클과 핵무기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협상파마저 ‘빅딜 해법’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빅딜 원칙에 미국 행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협상파의 이런 축소는 북-미 담판을 더욱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아직은 북-미 간 타협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일괄타결 방안이 비핵화 전체 로드맵을 확정한 뒤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여지는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시설·핵물질·핵무기 동시 폐기 후 제재 해제를 뜻한다면, 타결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미국이 일괄타결 쪽으로 선회한 뒤에도 북한의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들은 12일에도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대화로 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비건 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빅딜 수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앞으로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괄타결론으로 돌아선 데는 미국 조야의 압박이 상당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밀어붙이기 전략은 북-미 신뢰가 허약한 상황에서 역효과만 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지키되 북-미 간극을 좁힐 현실적인 방도를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 완수’라는 목표는 오히려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 사설] 한반도에 ‘대화와 협상’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새벽, 9박10일간의 열차 대장정을 끝내고 평양에 도착했다. <노동신문>이 김 위원장 귀국을 보도하면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성과적”이었다는 한마디 외엔 말을 아낀 대목에서, 북-미 합의 불발에 따른 실망감이 느껴진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 건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합의 무산에도 기회의 창은 열려 있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4일 “몇 주 내로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협상 재개 의사를 재확인했다. 잠시 협상 결렬의 후유증을 추스른 뒤 다시 절충에 나서길 기대한다.

이제 북-미 협상에서 정부가 ‘중재자’로 적극 나설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우리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졌다”며 “북-미의 입장 차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한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장 ‘북-미 간 대화 궤도이탈 방지’를 급선무로 해야 할 일로 제시한 뒤 “대화 교착상태가 오래가지 않도록 북-미 실무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해, 우리 정부의 ‘촉진자’ 구실을 강조했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베트남 정상회담 결과 북-미 간 입장 차가 크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는 대신 그 대가로 민수 분야에 대한 유엔 제재 해제를 원한 반면,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과 무기,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의 폐기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간극이 커서 절충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미 전쟁의 참화를 겪은 바 있는 한반도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말고 다른 길이란 없다. 정부는 대북, 대미 채널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북-미 협상의 전말을 정확히 복기하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북-미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서로 만족할 만한 중재안을 도출해야 한다. 북-미 두 나라도 협상 상대의 요구와 우려를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국도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만큼, 이후 북한의 ‘안전보장’ 우려를 어떻게 해소해줄지 현실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합의 실패에도 대화 지속 의지 밝힌 북-미

기대를 모았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엔 실패했지만 두 나라 모두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는 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북한의 <노동신문>은 1일 북-미가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화답했다. 북-미가 다음 일정을 잡진 않았지만, 서로 비난을 자제하고 앞으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평가할 만하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합의 무산은 충격이다. 당장 혼란을 털어내고 대화 재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이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 위원장이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대목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대화 재개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한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그러나 냉각기가 너무 길어지면 자칫 대화 동력 자체가 약화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빨리 고삐를 다잡아 잠시 어긋난 대화 노선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회담을 온전히 실패라고만 단정할 일도 아니다. 제재 완화와 비핵화를 둘러싼 이견을 서로 확인한 것은 오히려 소득이라 할 수도 있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등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도 이뤘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1986년 10월 레이캬비크에서 합의를 못했지만, 대화를 지속해 이듬해 12월 워싱턴에선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촉진자’ 구실이 더욱 긴요해졌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합의 불발 뒤 문 대통령에게 전화해 “적극적인 중재를 해달라”고 했다. 김 위원장 및 트럼프 대통령과 적극 소통하면서 균형잡힌 절충안을 유도해내는 창조적인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한다. 정부로선 당분간 북-미 대화가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그 추동력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애초 이르면 3월말~4월초로 예상됐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대화 동력 확보 차원에서 추진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충격적인 북-미 회담 결렬, 정부가 나서 ‘불씨’ 살려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렬됐다. 아침까지만 해도 성공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정상회담은 오후 들어 결국 암초를 만났다. 북-미 두 정상은 아무런 합의 없이 예정됐던 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했다. 커다란 주목과 관심 속에 열린 정상회담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렬된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협상 결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하노이에 왔다고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먼저 회담장을 떠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지만, 미국 쪽의 원칙 고수가 김 위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분위기와 관련해 ‘박차고 나간 것이 아니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악수하면서 끝냈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언제 다시 협상이 재개될지는 알 수 없다.

협상 결렬의 원인이 비핵화 실행조처와 상응조처의 조합을 찾아내지 못한 데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해주어야만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힌 데서도 이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쪽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또는 동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두 사안을 놓고 마지막까지 절충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북-미 양쪽 다 물러서지 않은 것이 협상 결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다. 앞으로 협상이 재개된다면 북-미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깊이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역지사지의 자세로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진행 양상에 대한 미국 의회의 부정적인 기류도 협상 결렬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일부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는 했지만, 워싱턴 정가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이 미흡하면 미흡한 대로 ‘스몰딜’에 머물렀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했고, 과감한 타협을 본다 해도 북한에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난이 날아들 판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으로서는 비핵화 실행만 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제재 완화를 해내지 못한다면, 내부의 압박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핵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제안보의 핵심인 핵을 당장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협상 결렬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발언을 보면,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앞으로 몇 주 내에 합의를 이뤄내길 기대한다”고 밝힌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협상을 재개할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협상을 되살리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여기서 북-미가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며 감정적 균열을 키운다면 사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

북-미 합의를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우리 정부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충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 상황에 개입해야 한다. 협상 결렬의 여파가 길어져선 안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결렬로 협상의 판 자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취소된 회담을 되살려낸 바 있다. 그 경험을 살려 협상을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2차 북-미 정상회담 전망 밝게 한 비건의 방북 협의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주 2박3일간 방북해, 북한 쪽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의를 마치고 귀환했다.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비건 대표를 만난 당국자들이 한결같이 “북-미 간 생산적인 협의가 이뤄졌다” “북한이 전례없이 적극적이었다고 한다”고 전하는 걸 보면, 북-미 간 적잖은 진전이 있었음이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 도시로 베트남 하노이를 공개한 뒤 “평화의 진전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달 말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북-미는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 조처와 이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처’를 어떻게 교환할지 등을 놓고 협의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 조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상응 조처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 인도지원 확대 등을 우선 검토하고, 비핵화 완료 이후 대북제재 해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지도력 아래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다시 한번 북한의 ‘경제 우선’ 노선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비건 대표가 북-미 실무협상을 마친 뒤 곧바로 서울로 돌아와 청와대와 외교부 등 한국 외교당국자는 물론 여야 정치인들과도 협상 결과를 공유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한-미 간 실질적인 협조와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몇몇 보수언론이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미 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으나 근거 없는 기우였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한-미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길 기대한다.

미국 국무부가 북-미 2차 정상회담 이전에 다시 한번 추가 실무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이번 협의로 북-미 간 이견이 모두 해소되진 않은 것 같다. 해묵은 북핵 문제가 한번 만남으로 해결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지도자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게 확인된 만큼, 추가 협의로 접점을 찾아 성공적인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비건의 ‘트럼프 종전 준비’ 발언에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다음주 초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번 더 날짜와 장소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4일부터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쪽 카운터파트가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북-미 실무협상이 어떤 의제로 얼마나 심도 있게 이루어지느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건 대표의 31일 강연 내용은 주목을 요한다. 비건 대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임을 시사했다. 영변 핵시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부터 ‘조건부’ 폐기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비건 대표가 ‘상응조처’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협상 전망을 밝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비건 대표의 발언 중에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며 ‘종전 논의’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종전선언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여전히 북-미 협상에서 중요한 안건이고,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북한 체제 안전보장에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비건 대표의 발언만 놓고 보면 곧바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한 만큼, 실무협상에서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비건 대표가 “포괄적인 신고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전체 범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고 한 것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대목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선 핵신고’를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샀는데, 이번에는 ‘비핵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되기 전에’라고 시기를 뒤로 미뤄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타협 가능한 방안을 들고나온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건 대표가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에는 ‘대북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북한의 요구와 상충하는 것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 문제에서 미국이 완고하게 원칙만 고집하다간 협상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제재 유지’ 기조를 지키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회로를 확보해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비핵화 촉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