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자료 모음

<조선중앙통신사> 일제의 조선민족말살 죄행록

조선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강점과 통치는 천추만대
용납못할 특대형의 국가조직적 범죄이다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강행한 때로부터 105년의 세월이 흘렀다.
조선강점기간 일제는 제국주의식민지통치력사상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들씌웠다.

조선사람 100여만명을 학살하였으며 1938년이후에만도 840만여명을 랍치, 련행하였다.
우리 말과 글, 지어 조선사람의 성까지 없애기 위해 비렬하게 책동하였으며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부들을 닥치는대로 파괴략탈하였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일제가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기간 감행한 만행을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전대미문의 특대형범죄로 락인하고 그것을 폭로단죄하는 죄행록을 발표한다.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대학살만행

일제가 우리 나라에 대한 군사적강점기간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조선사람들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한 것이다.
일제는 극악한 무단통치,《문화통치》, 파쑈테로통치를 실시하면서 수많은 조선사람을 죽이는 천추에 용납못할 반인륜적 범죄를 감행하였다.

《조선인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조선사람들은 혹가이도 아이누족처럼 멸족시키면 족하다.》는 것이 조선사람들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살인통치의 기본방식이였다.

일제는 이에 기초하여 민족자주정신, 반일의식을 지닌 조선의 애국자들과 군중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학살하였다.
일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떠선 조선인민의 반일의병투쟁을 압살하기 위해 방대한 침략무력을 투입하고 《토벌》작전을 벌리였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06년 여름부터 1911년까지 2 800여회에 걸쳐 의병《토벌》을 감행하였으며 그 과정에 15만명이상의 조선애국자들을 학살하였다.
《토벌》지역을 초토화하고 일반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의병들의 근거지로 지목된 부락들에 대한 초토화작전과 의병참가자들의 가문, 가족을 모조리 없애기 위한 멸종멸족정책에 의하여 헤아릴수 없이 많은 무고한 조선인 남녀로소들이 목숨을 잃었다.
1919년 3.1인민봉기 때에는 전국적 범위에서 10여만명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봉기진압을 위해《조선총독》과 조선강점군 사령관은 룡산과 라남의 2개 사단무력과 헌병, 경찰을 총동원하였으며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일본본토에서 6개 대대병력과 헌병 400명을 더 끌어들이였다.
시위대렬에 총포사격을 가하여 시민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도처에 싸다니면서《조선사람사냥》에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1920년에 조선강점군, 함경남북도경찰, 만철수비대 등을 동원하여 간도조선인들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간도대《토벌》로 세상에 알려진 이 참극사건에서 일제는 가장 가혹하고 악착한 방법으로 3만여명의 조선사람을 죽였으며 온 간도땅을 피바다에 잠그었다.
이러한 살인만행을 감행하고서도 일제는 그것을《토벌》작전의《승리》로 떠들면서 라남19사단을《표창》하는 추태를 부리였다.

1926년 6.10만세운동과 원산부두로동자들의 총파업, 광주학생사건 등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면서 로동자, 농민, 학생들을 닥치는대로 체포 투옥하였다.

일제는 1930년대에 들어와 《조선사람 100명을 죽이면 그가운데 적어도 공산주의자가 한명은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라.》는 폭언과《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빼앗으라.》는 《3광정책》을 떠들면서 조선인《토벌》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1931년 가을과 1932년 봄에 동만《토벌》을 벌려놓고 조선사람에 대한 살륙만행을 감행하여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일제는 또한 각종 폭압기구들을 내오고 악법들을 조작공포하여 조선인민의 초보적인 인권과 자유의 마지막흔적까지 짓밟았으며 죄없는 사람들에게 생트집을 걸어 체포투옥, 고문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1911년부터 제국주의 침략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무도한 악법인《범죄즉결령》을 시행하였으며 경찰서장이나 헌병분견대장에게 일정한 법적수속이나 재판도 없이 조선사람들을 마음대로 처형할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1912년 3월에는《조선감옥령》을 발포함으로써 가장 야수적인 감옥제도를 조선에 세웠다.
1925년에《치안유지법》, 1928년에 《신치안유지법》, 1936년에《사상범보호관찰령》을 조작발포한 일제는 1940년대에 들어와서도《사상범예방구금법》, 《국가보안법》, 《조선림시보안법》등 수많은 파쑈살인악법들을 만들어냈다.

일제는 조선민족대학살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식민지통치의 직접적담당자이며 현지집행자인 《조선총독》들을 일본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파쑈분자들로 골라보냈다.
일제의 침략군과 헌병, 경찰 등 폭압기구들 그리고 모든 악법들이 례외 없이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 고문 학살하는데 동원되였음은 더 말할것도 없다.

일제는《치안유지법》을 휘둘러 조선애국자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두는 일대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1922년 검거건수가 13만 8 539건이였다면 1925년에는 그것이 19만 1 203건으로, 1926년에는 26만 1 558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일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24년부터 1929년까지 검거건수는 87만 5 522건, 검거된 조선사람은 수백만명에 달하였다.

1934년에는 《사상범》의 혐의를 들씌워 6만 655명, 1938년에는 16만 5 300명의 조선사람들을 검거투옥하였다.
일제가 조선민족의 자주정신과 반일의식을 거세말살하기 위해 감행한 만행들은 그 야수성과 악랄성에 있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반인륜적범죄이며 극악한 민족배타주의에 기초한 인간살륙전, 민족말살행위이다.

조선민족에 대한 일제의 대학살만행은 1938년이후 더욱 로골화되였다.
일제는 이 시기에 무려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랍치, 련행하였으며 그중 41만 7 000여명을 전쟁대포밥으로, 778만 4 800여명을 죽음의 고역장으로, 20만명의 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내몰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하였다.

일제는 《지하대본영》과 비밀군사기지건설에 동원되였던 수만명의 조선사람을 《비밀보장》의 구실로 집단학살하거나 세균무기생체실험대상으로 삼는 극악한 살인범죄를 저질렀다.
일제에 의해 랍치, 련행되여 끌려갔던 징병자들과 징용자들중 70여만명, 일본군위안부중 14만 3 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강점군 헌병사령부에서 발행한 도서 《폭도토벌지》, 공안조사청의 비밀자료 《재일조선인의 개황》,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행한 도서 《조선경찰개요》 등에 의하면 일제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기간 도합 100여만명의 조선사람을 학살하였다. 이것은 당시 우리 나라 인구 20명당 1명이 일제에 의해 학살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일제가 감행한 전대미문의 대탄압, 대학살은 아시아와 세계제패를 위해 한 민족, 한 나라를 희생시킬것을 획책한 일본당국의 조선민족말살정책과 침략야망에 기인된것이다.
《조선총독》이였던 사이또는《조선통치방침》에서 조선의 독립과 자치를 허용하지 않을것이라고 공공연히 선포하였으며 해외조선인들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단속을 하고 그 소굴을 소탕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편으로는 … 황국신민화할 필요가 있다.》고 떠벌였다.

1942년에《조선총독》으로 군림한 고이소는 《시정방침은 변함이 없다.》, 《믿을수 없는 무리들에 대하여서는 … 관리나 민간인을 막론하고 단호히 탄압하겠다.》고 공공연히 줴치면서 파쑈적폭압을 강화하는데로 나아갔다.

이러한 망발들은 조선사람들속에서 나타나는 반일감정이나 애국적운동이 그 어떤 형태로 발현되든지 무자비하게 탄압할것이라는 강권정치, 폭압정치를 선포한것으로서 사실상에 있어서 조선민족전멸론이였다.
참으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그 규모와 잔인성에 있어서 동서고금의 침략사와 전쟁사에서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악독하고 야만적인 인권유린행위이다.

조선민족의 얼을 유린말살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죄행에서 엄중한것은 우리 민족을《야마도민족화》하기 위해 가장 교활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민족동화정책을 강행 실시한 것이다.
일제는 조선통치의 궁극적 목적을《첫째도 동화, 둘째도 동화》로 규정하였으며 조선의 력사와 문화전통을 없애고 민족성을 거세하는것을 그 실현방도로 내놓았다.

일제의 군경들은《먼저 조선사람들이 자기의 것, 력사전통에 대해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의 혼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자기 선조들을 경시하고 멸시》하게 한 다음 《일본의 서적과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것이다.》고 떠벌였으며 어용학자들도 《…조선력사를 진멸하여버림으로써 그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는것이 좋다.》는 강도적론리를 들고나왔다.

일제는 조선강점초시기부터 조선인민을 철저히 노예화하며 민족성을 말살하는것을 국가시책으로 삼고 통치기구들을 총동원하였다.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과《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등 허울 좋은 간판 밑에 각종 악법과 략탈기구들을 만들어냈다.

헌병, 경찰 등을 동원하여 우리 나라의 곳곳에 있는 문화유적들을 닥치는대로 파괴, 소각하였으며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훔쳐가는 강도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24대왕 원종의 소릉과 비를 비롯한 고려시기의 고분들이 전부 도굴략탈당하였으며 지어 조선왕궁에까지 일제의 마수가 뻗쳤다.

일본에서 발간된 《고적조사보고》가 조선의 시조릉인 단군릉 그리고 고려태조릉 등 고려의 력대 왕릉들이 1910년대에 이르러 일제에 의해 단 1기도 남지 않고 모조리 도굴되였다고 서술한것은 결코 우연치 않다.
일제는 강점후 10년간에 대동강류역과 룡연일대에서 무려 1 400여기에 달하는 고분을 파헤치고 유물들을 수탈하였다.

략탈해간 문화유물은 도꾜국립박물관에 진렬된 4만여점을 비롯하여 수십만점에 달한다.
초대《통감》이였던 이또 히로부미를 비롯한 력대《통감》과 《총독》들, 권력을 등에 업은 단체들과 깡패들이 략탈에 뛰여들었다. 데라우찌는 조선의 고서적만 해도 무려 2만 3 000여권이나 략탈사취하였으며 조선왕궁건물까지 헐어다 야마구찌현에 《조선관》을 설치하였다.

지금까지 력사유적유물에 대한 외래침략자들의 파괴략탈행위와 관련한 적지 않은 비화들이 전해지고있지만 조선문화유적유물을 파괴략탈한 일제의 만행과 같은 날강도적인 범죄행위는 일찌기 없었다.

일제는 자기 나라보다 3 000년이상 앞선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없애버리기 위해 단군조선을 비롯한 고조선의 력사를 잘라버린 《조선사》를 조작하였다.
조선력사와 관련한 서적들을 《불온도서》라고 하면서 20만부이상 불태워 버림으로써 히틀러의 분서란동을 초월한 희세의 만행을 감행하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고들을 손에 넣고 세계적인 문화재보인 오대산본 《리조실록》 1 800여권과 규장각에 소장되여있던 수많은 귀중한 도서들을 일본으로 빼돌렸으며 강화도사고를 백주에 도끼로 까고 고서적들을 무더기로 훔쳐냈다.
강점기간 무려 5차례에 걸쳐 우리의 민족고전에 대한 수색작전을 벌리고 수백명의 《학자》들을 방방곡곡에 들이밀어 수많은 고서적들을 략탈하였다.

일제는《리조실록》을 비롯한 우리의 민족고전들과 력사를 기록한 귀중한 국보들을 외국에 팔아버렸으며 일본땅에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일제는 또한 조선사람에게서 민족성과 얼을 뿌리뽑기 위해 사상문화분야에서의 악랄한 파쑈화책동의 일환인 《황국신민화》정책을 로골적으로 실시하였다.

《황국신민화》책동은 1937년 중일전쟁도발을 계기로 하여 더욱 발광적으로 벌어졌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도발이후에는 최절정에 이르렀다.
일제가 조선민족을《황국신민화》하는데서 중요하게 노린것은 조선사람들속에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와 《일본족과 조선민족은 하나의 조상을 이룬다.》는 《동조동근》사상을 강제로 불어넣어 우리 인민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는것이였다.

일제는《내선일체》를 들고 나오면서 일본과 조선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예로부터 《하나의 나라》, 《하나의 령토》를 이루었으며 《일본사람과 조선사람은 하나의 령토안에서 산 한 민족》이라고 떠들어댔다.

일제는 《내선일체》와 함께《동조동근》론을 동시에 강요하였다.
《동조동근》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력사적사실까지 날조하였으며 저들의 어용사가들을 동원하여 그것을 《론증》하는 자료를 《리론》적으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책동하였다.

일제는 반만년의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을 몇십년동안에 《일본화》하기 위해 《황국신민의 무사도정신》을 강제주입시키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국민학교 입학생들에게 선참으로 일장기에 대한 노래를 배워주었으며 노기와 같은 광신적인 군국주의두목을 《충군충효》의 표본으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교재에 포함시키였다.

《황국신민의 서사》나 《황국신민체조》,《정오묵도》 역시 조선사람을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내리먹이였다.
특히 일제는 조선민족을 이 세상에서 영영 없애기 위해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말을 쓰도록 강요하였다.
《내선일체는 국어상용으로부터》라는 구호를 내걸고 관청, 회사, 학교, 공장에서는 물론 가정과 교회, 목욕탕안에서까지 일본말을 사용하라고 하였다.

일본어를《국어》로 책정하고 일본말을 쓰지 않으면 벌금을 받아내거나 육체적제재를 가하였다.
지어 일본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차표도 팔아주지 않았다.
조선작가들에게 일본말로 작품을 쓸것을 강요하였으며 일본말로 된 《국민문학》잡지까지 발간하였다.

일제는 1940년부터는《창씨개명》의 미명하에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강제로 빼앗는 천추에 용납못할 죄행을 범하였다.
민족의 넋과 정신이 반영되고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는 조선의 지명들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짓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일제의 민족동화정책에 의하여 조선민족은 1940년대 전반기에 이르러 민족으로서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못하는가, 유린당한 민족성을 부활시키는가 부활시키지 못하는가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고《신사참배》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으며 조선말대신 일본말을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강요된 운명이였다.

이 모든것은 일제의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이 조선사람의 민족성과 얼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리고 철저히 《일본화》, 식민지 노예화함으로써 조선민족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 감행된 천추에 용납못할 전대미문의 범죄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조선민족의 삶의 터전을 파괴략탈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죄행에서 용납될수 없는 것은 우리 인민을 질식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물적자원 략탈행위를 감행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인구의 80%이상이 농민이였으며 그들의 기본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은 토지였다.
일제는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 지배초시기 벌써 토지강탈에 매여달렸으며《한일합병》후 보다 로골화하였다.
《토지소유권의 조사확인》이라는 명목으로 《토지조사령》을 선포하고《수속위반》, 《증거불명》 등의 구실을 붙여 100여만정보에 달하는 막대한 토지를 비법적으로 강탈하였다.

한편《산미증식계획》, 《공출》 등의 간판으로 3 900만t의 쌀을 략탈해갔다.
이에 대해 도서 《일본인의 해외활동에 관한 력사적조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2,600만명의 조선사람들에게 가장 나쁜 감정을 품게 한것은 쌀의 공출과 사람의 공출이다. …1937년 지나사변을 일으켰을 때 관민들은 다같이 쌀은 문제없다고 말하고있었다. 왜냐하면 … 이 일본내지의 4개 섬과 조선과 대만을 합치면 가장 적을 때에는 800만석, 많을 때에는 1 500만석을 가져왔다. 이것을 조선은행권, 대만은행권이라는 종이장으로 샀다. 특히 금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일본의 수탈자들이 지불담보가 없는 관리화페인 《조선은행권》으로 쌀을 샀다는것은 그들자신이 말한바와 같이 조선의 쌀을 공짜로 빼앗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쌀수탈의 강도적성격은 쌀《공출》제도를 실시하던 시기에 더욱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그 시기 일본수탈자들은 조선농민들에게서 생산비의 9%도 안되는 헐값으로 쌀을 앗아갔다. 그 관리화페마저도 《전시저금》,《애국공채》의 명목으로 걷어들이였다.

조선농민들이 자기 살붙이처럼 중히 여기던 소를 194만 3 000여마리나 끌고가 도살해버렸다.
일제의 농촌략탈행위로 말미암아 조선의 농촌들은 만성적인 기아지대로 되였으며 춘궁기는 《년례행사》처럼 들이닥쳤다.이렇게 되여 우리 나라에서 《보리고개》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조선사람들은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다 못해 정든 고향을 버리고 살곳을 찾아 이국땅에로 류랑의 길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는 1918년 5월 1일 《림야조사령》을 조작공포하고 우리 나라의 림야면적 1 600만정보가운데서 1 300만정보를 《국유림》의 명목으로 빼앗았으며 나머지는 일본지주들과 친일주구들의 소유로 넘겼다.

1902년부터 1945년 7월까지의 기간에 7억 6 940만 2 347㎥에 달하는 막대한 량의 목재를 략탈하였다.
《조선총독부》에 직속된 4개의 영림창과 26개의 벌목사업소, 100여개의 벌목작업장을 통해 압록강과 두만강연안에 울창하였던 200여만정보의 대원시림을 파괴하였으며 13개 도청산하에 조직된 영림서와 미쯔이물산, 스미또모재벌 등 일본의 대재벌들과 기업체들을 내세워 조선의 방방곡곡에서 산림자원을 략탈해갔다.

《조선광업령》, 《어업령》을 비롯한 식민지략탈법들을 조작공포하여 우리 나라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산자원들을 가장 악착한 방법으로 긁어갔다.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강탈해간 물적자원은 액상으로 볼 때 천문학적수자이다.
금, 은, 동, 아연, 철광석 등 략탈하여간 58종에 달하는 각종 광물의 금액은 1945년 8월 우리 나라에서의 각종 광물시세에 기초하여 볼 때 20억¥에 달하였다.

1910년부터 1942년사이에 빼앗아간 수산물 1 432만t(양식생산물은 제외)의 금액도 당시 액상으로 11억 260여만¥이였다.
재정 및 금융을 통한 수탈액도 막대하다.
그중 일부 지표별 액상만 보아도 세금 153억 1 152만 5 000¥, 군사비(1937-1945년) 16억 1 090만 9 896¥, 사업공채(1911-1944년) 139억 610만¥, 전시강제저금(1938-1944년) 54억 9 616만 8 000¥, 국채, 저축채권, 보국채권, 특별보국채권 2억 6 023만¥, 조선내의 금융기관들의 유가증권을 통한 총액 72억 3 362만 1 000¥이다.
이것만 보아도 일제가 감행한 각종 자원의 략탈규모가 얼마나 방대한것이였는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인민이 일본의 식민지통치로 하여 당한 정신적, 인적, 물적피해는 그 형태와 내용, 규모에 있어서 참으로 인류력사에 전무후무한 최대최악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과거를 청산할 대신 패망후 시종일관 또다시 우리 나라를 타고앉으려는 야망을 추구하고있다.

일본의 대조선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민족을 저들에게 순종하는 노예로, 우리 나라를 일본령토의 일부로 만들려는것이다.
지난 세기 중엽 일본은 미제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자 곧 공업의 전반적인 생산체계를 전시체제로 개편하고 미국에 군수품들을 전적으로 생산보장하였다. 뿐만아니라 군사기지들과 군사시설들을 설치하도록 전령토를 미국에 맡기였다.

조선전쟁에 침략무력을 들이밀어 무고한 조선인민을 살해하고 삼천리강토를 페허로 만드는데 직접 가담하였다.
1950년 7월 27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7월에 벌써 일본군의 조선전쟁참가자수는 2만 5 000여명에 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일본의 조선침략전쟁가담은 철두철미 저들의 대조선정책인 조선민족말살을 노린 극악한 범죄행위이다.

일본은 패망이후 65년간 우리 나라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정치군사적위협공갈과 경제적제재를 끊임없이 감행하였을뿐아니라 일제의 식민지통치후과로 일본에서 살고있는 조선사람들과 그 후대들에 대해 가혹한 민족적차별과 탄압을 계속하여왔다.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명백히 구일본제국이 감행한 조선민족말살책동의 연장이다.

제반 사실은 일본이야말로 조선민족에게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을수 없는 범죄를 감행한 백년숙적임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일본의 죄악을 총결산할 의지에 차있다.
일본은 우리 군대와 인민을 똑똑히 알고 분별있게 처신하여야 하며 과거죄행에 대해 조선민족앞에 성근하게 사죄, 배상하여야 할것이다.

조선중앙통신사
주체99(2010)년 11월 16일
평 양



조국통일연구원 고발장

북남관계를 전면차단의 위기에 몰아넣은 남조선당국의 반민족적 죄행을 폭로 단죄 한다

지금 남조선의 리명박패당은 북남관계를 전면차단의 위기에 몰아넣은 범죄적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온갖 기만술책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상생, 공영》이니,《대화》니,《진정성》이니 뭐니 하면서 여론을 어지럽히는가 하면 지어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적이 없다고 하며 마치도 북과 남이 마주 앉으면 그 무엇도 다할 것처럼 요사스럽게 떠들고 있다.
이것이 날로 높아가는 내외의 비난과《대북정책》수정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철면피한 궤변이라는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북남관계가 파국에 처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리명박패당의 사대매국과 반공화국 대결책동 때문이다.
조국통일연구원은 북남관계를 오늘의 험악한 지경으로 끌고온 장본인이 누구이며 북남관계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폭로단죄하기 위해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1. 선언 존중인가 부정인가

력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북과 남의 수뇌분들이 채택하고 온 겨레와 전 세계가 한결같이 지지 환영한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이며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실천강령이다.
력사적인 선언들에는 지금까지 년대를 거치며 각급에서 이룩된 북남합의들이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여있으며 그것은 북남관계의 근본원칙과 기초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립장과 태도는 통일과 분렬을 가르는 시금석이며 선언들을 부정하는것은 곧 통일을 부정하고 북남관계를 부정하는것으로 된다.

지금 남조선의 리명박패당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유린한 저들의 죄행이 내외의 비발치는 비난과 규탄을 받게 되자 선언들을《부정한적이 없다》느니, 《존중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차스러운 발뺌을 하고있다.

그러면 사실은 어떠한가.
남조선당국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무효화,백지화하였다.
리명박《정권》은《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고 하면서 이전《정권》이 북과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무효이며 리행할 의무가 없다고 공언하였다. (《련합뉴스》 2008.2.2)

리명박패당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원론적》이니,《추상적》이니 하며 시비중상하던끝에《북핵문제》의 해결과《북방한계선》을 포기한 선언, 경제협력으로 위장한《대북퍼주기》,《북의 대남적화공작》에 리용된《용공리적문서》라고 모독하면서 반대하였다.(《문화일보》 2007.10.5,《중앙일보》 2008.6.7,《뉴시스》 2008.1.14,《경향신문》 2007.10.6)

리명박은 취임직전 기자회견에서 10.4선언과 관련하여《정치인들이 평양에 가서 수표하고 왔다고 하여 후임자가 리행하는 것은 아니다.》,《북핵문제의 진전과 경제적타당성,재정적부담능력,국민적합의가 있어야 할수 있다.》고 하면서 리행의무를 회피하였다.(《련합뉴스》2008.2.2)

리명박은《대통령후보》시기에도《10.4선언의 재검토》를 공언하였으며《핵이 있는 상태에서 협상하면 핵을 인정하는 것으로 된다.》고 하면서 애당초 북남수뇌상봉자체를 반대하였다. (《MBC》 2007.8.23,《뉴시스》 2007.11.27,《KBS》2007.12.28)

리명박은 3월 1일 그 무슨 《기념사》라는데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본핵인《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배타적민족주의》니,《편협한 민족주의》니 뭐니 하고 심히 모독하면서 《배타적민족주의로는 남북관계를 해결할수 없다.》고 떠벌였는가 하면 4월 3일에는《남북문제는 <우리 민족끼리>구호만 가지고 되는것이 아니》라고 줴쳤다.(《련합뉴스》 2008.3.1,《국민일보》 2008.4.3)

《대통령》특별보좌관 김덕룡은 9월 9일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강연회에서《<우리 민족끼리>라는 페쇄적인 민족주의가 지난 10년간 우리끼리 다투게 만들었다.》,《<우리 민족끼리>는 시대착오적인 리념》이라고 망발하였다.(《통일뉴스》 2008.9.9)

《통일부》 장관 김하중은 1월 26일《국회》에서 현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부의 방침을 바꾸는것으로 되기때문에 존중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실토하였다.
그는 또한 여러 기회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채택한것은 《대북상호주의기본원칙》을 어긴것이라고 하면서 선언을 리행하라는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떠벌였다.(《한겨레》 2008.11.27,《오마이뉴스》 2008.11.5,《통일뉴스》 2008.9.9)

《통일부》대변인 김호년은 9월 23일 기자회견에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할데 대한 6.15공동선언 제1항에 대해 민족자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정면으로 부정하였다.(《뉴시스》 2008.9.23)
《국무총리》 한승수는 11월 3일 《국회》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예 답변하기를 거절하였다. (《오마이뉴스》 2008.11.5)
리명박《정권》의 《대북정책》작성을 담당하고있는 《통일연구원》과 《정보원》산하 《안보전략연구소》의 요직에 틀고앉아있는 서재진,남성욱을 비롯한 극우대결분자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대남공작문서》니,《사상루각》이니 하고 악의에 차서 헐뜯으면서 《전면재검토》할것이라고 줴쳤다.(《통일뉴스》 2008.8.23,《파이낸셜뉴스》2007.12.23,《뉴스메이커》2008.6.19)

《한나라당》은 10월 6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10.4선언에 대해 여러가지 구실을 붙이면서 그대로 리행할수 없다는 립장을 명백히 하였다.(《뉴시스》2008.10.6)

남조선당국은 북남선언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무시하였다.
리명박패당은 집권후《안전보장회의》,《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안보관계장관회의》 등을 수차례 벌려놓고 《대북정책》과 북남관계문제를 론의하였지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리행문제는 일절 회피하였다.
《통일부》의 올해《대북업무보고》에도 선언문제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통일부》장관 김하중은 10월 29일 《핵문제해결정도를 보아가며 10.4선언에 포함된 내용중 일부를 검토해보겠다.》고 하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뉴시스》 2008.10.29)

남조선당국은 6.15공동선언발표 8돐,10.4선언발표 1돐과 관련한 민간단체들의 기념행사를 도외시하였을뿐아니라 《청와대》는 6.15기념행사에 《통일부》관계자가 명색상 참가하여 하게 된 연설문에서 6.15이후 이룩된 북남관계성과들을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여 삭제시켰다. 그리고 《통일부》장관이라는 자는 10.4선언발표 1돐때 기념행사에는 보이코트하고 북침전쟁연습장을 찾아가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한겨레》2008.6.13,《KBS》2008.10.1)

남조선언론들은 현《정권》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악의적으로 무시》하고있다고 보도하고있다.(《한겨레》 2008.11.26)
남조선당국은 력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난시기의 북남합의들과 혼탕시키는 방법으로 선언들의 의의를 약화시키고 부인하고 있다.
리명박은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새 정부가 출범한 것만큼 남북관계의 기본정신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한 선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것》이라고 뇌까렸다.
그는 이미 지난해《대통령선거》때에《재향군인회》,《성우회》 등 극우보수단체들로부터 북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들고나오지 못하도록 이전의 북남기본합의서같은것을 대치시켜 들고나가야 한다는 훈시를 받았다. (《뉴시스》2008.3.26,《련합뉴스》2007.8.6)

《통일부》장관 김하중은 4월 29일《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지난시기 합의들을 렬거하면서 이들과 선언들의 리행을 다같이《협의》하자고 하였으며 이에 대해 《통일부》 대변인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정신만 존중한다는것이 아니라 모든 합의의 정신을 존중한다는것》이라고 해명함으로써 사실상 이것도 저것도 아닌 범벅탕을 만들어놓았다. (《노컷뉴스》 2008.5.2,《뉴시스》 2008.9.23)

남조선언론들은《리명박정부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보다는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더 중시하고있다.》,《선언들을 기존합의들과 뒤섞어 사실상 선언리행을 외면하고있다.》고 폭로하고있다. (《뉴스메이커》 2008.6.19)

남조선당국은 사대매국과 반공화국대결을 정책화하는 것으로 선언에 도전해 나섰다.
리명박패당은《한미관계우선론》을 정책구호로 들고 나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본정신을 유린하고 그 기초를 허물어버리려 하고있다.
리명박《정권》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줴버리고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으로 선포하였으며 그에 대한 비난이 높아가자 기만적인 《상생,공영》의 보자기를 씌워 동족대결을 더욱 악랄하게 추구하고있다.
《통일연구원》 원장 서재진은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에 모자를 씌운것》이라고 스스로 실토하였다.(《통일뉴스》 2008.8.25)

《통일교육원》이 발간하는 교육책자들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모두 삭제되고 반면에 선언들이 《북의 대남전략의 핵심》이며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기본질서에 위반》된다고 하면서 동족대결을 고취하였다.
남조선당국은 국제무대들에서 선언들을 반대하는 모략책동도 서슴지 않고있다.
리명박패당은 지난 7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아세안지역연단 상회의 의장성명에 10.4선언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들어간데 대해 앙탈을 부려 뽑아버리도록 하였다.(《련합뉴스》2008.7.25)

역적패당은 지난 11월 미국에 추종하여 유엔총회에 그 무슨 《북인권결의안》이라는것을 《공동제안》하면서 초안에 있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지하는 문구를 삭제하게 하는 망동을 부리였다.(《련합뉴스》 2008.11.6)

사실들은 남조선당국이 선언들을 부정한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지만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것을 보여준다.
리명박패당은 입이 열개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깡그리 유린한 반통일적죄행을 결코 부인할수 없다.
남조선당국은 여러 말을 하지 말고 선언 존중인가 부정인가,리행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하는 분명한 립장표시를 하여야 할것이다.

2. 대화와 협력을 진짜로 바라기나 하는가

북남대화와 협력사업을 확대발전시키는것은 북남관계발전과 통일번영의 필수적요구이고 절실한 과제이다.
6.15이후 온 겨레와 내외의 기대와 관심속에 줄기차게 확대발전하여온 북남대화와 협력사업은 리명박《정권》에 의해 하루아침에 중단사태에 처하게 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명박패당은 파렴치하게도 그 무슨 《조건없는 대화》니,《검토》니 뭐니 하면서 말끝마다 《대화》와 《협력》의 넉두리를 늘어놓고있다.
이것이 저들의 대결적정체를 위장하고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서푼짜리 기만극이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남조선당국은 북남대화를 고의적으로 깨버렸다.
리명박패당은 그 무슨《길들이기》니,《기싸움》이니 하면서 북을 남쪽의 새《정권》에《순응》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조정기》,《숨고르기》가 불가피하다고 력설하고 있다.(《문화일보》2008.3.31,《아시아경제》 2008.4.13,《서울경제》 2008.3.27)


리명박은 취임후 첫《통일부》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와 4월 13일《대국민기자회견》에서 북에 끌려다니는《대북협상자세》를 바꾸고《새로운 남북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원칙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망발을 늘어놓았다.(《서울신문》2008.3.27,《아시아경제》 2008.4.13)

그는 또한 10월 18일《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협상을 위한 협상을 하지 않겠다.》,《남북관계는 적당히 시작해 끝이 나쁜 것보다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원칙없이 북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떠벌이다못해 《남북대화를 5년간 안하는한이 있더라도 북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망발까지 서슴없이 내뱉았다. (《민족통신》 2008.11.13,《뉴시스》 2008.12.5,《동아일보》 2008.10.23)

남조선언론들은《대화를 기피하는 리명박정부의 사고가 오늘의 남북관계악화를 가져왔다.》는 등으로 폭로하고있다.(《한겨레》 2008.11.3,《미디어오늘》 2008.l2.16)

남조선당국은 불순한 전제조건을 내세워 북남대화의 문을 닫아매고있다.
리명박《정권》은《핵포기》와《개혁,개방》을 북남관계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대화를 거부하고있다.
리명박은 11월 12일과 17일 그리고 23일 련이어 《임기중 목표가 북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나오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자기의 《대북전략》이라고 하면서 《북이 자세를 바꾸기를 기다리고있다.》,《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줴쳤다.(《중앙일보》 2008.11.13,《련합뉴스》2008.11.17,《민중의 소리》 2008.11.23)

《통일부》장관 김하중도 9월 9일과 10월 22일 《우리가 원칙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속 기다릴것》이라고 떠벌였다.(《뉴시스》 2008.9.9, 《련합뉴스》2008.10.22)

리명박패당은 《북과 아무리 대화해보아야 소용없다.》,《남쪽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대화무용론》을 제창하고 있다.(《파이낸셜뉴스》2008.9.24,《서울신문》 2008.11.25)

남조선당국의 대화부정자세는 내적인 비밀문서에 의해 더욱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폭로된 리명박패당의 내부회람용《대북전략비밀문건》에는《지난 10년동안 남측은 북에 실컷 퍼주고 얼리우면서 뒤통수만 얻어맞았다.》,《북과 대화하다가는 지난 10년을 다시 되풀이할수 있다.》,《 <대북무시, 외면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분위기가 남쪽에 유리하게 조성될 때까지 대화의 문을 닫아매고 군사연습, 삐라살포 등으로 북을 압박해나가야 한다.》 등으로 북남대화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민족통신》 2008.11.13)

남조선당국은 북남협력사업에도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있다.
리명박패당은 10.4선언에 지적된 북남협력사업에 대해《경제적타당성》이니,《국민적합의》니 뭐니 하는 구실을 붙여 그 리행을 거부하고있다.
리명박은 10월 18일 《청와대》에서 있은《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라는데서《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긴장이 고조된다고 하여 남쪽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줴쳤는가 하면 11월 1일에는 《북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북남협력사업을 방해하고 대결적목적에 악용하려는 속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겨레》 2008.11.3,《련합뉴스》 2008.11.3)

리명박과《통일부》장관 김하중은 2월 5일과 3월 19일 번갈아 나서서 《북핵문제가 해결되기전에는 개성공단을 현 상태에서 더이상 확대하지 않겠다.》고 로골적으로 지껄여댔다.(《노컷뉴스》 2008.2.11,《오마이뉴스》 2008.3.29)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와 《통일부》장관 김하중은 11월 24일과 11월 27일《개성공단은 우리에게 경제적의미가 없으니 중단해도 무방하다.》,《우리에게는 개성공단과 같은것이 수백개나 된다.》,《우리는 개성공단페쇄와 군사적충돌 등 최악의 경우까지 다 예견하고있다.》고 망발하였다.(《노컷뉴스》 2008.11.25,《파이낸셜뉴스》 2008.11.27)

리명박《정권》은 북남협력사업에 관여한 단체들과 기업들에 대한 조사와 자금압박 등으로 그들이 스스로 협력사업에서 물러나게 하고있다.
리명박패당은 통일운동단체들을 비롯한 각계층 민간단체들의 공화국방문을 선별적으로 차단,제한하고 탄압함으로써 민간급접촉과 래왕을 방해하고있다.
역적도당은 지난 7월 금강산관광객사건을 구실로 내외의 관심속에 10년간이나 이어져오던 금강산관광을 일방적으로 중지시켰다.

리명박패당은 우리 체제에 대한 용납할수 없는 도발적 망동에 매달려 북남관계분위기를 극도로 해침으로써 개성관광과 개성공업지구건설을 비롯한 협력사업을 전면중단의 위기에 몰아넣었다.
《통일부》장관 김하중은《국회》에서 《삐라살포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서 극우분자들과 어중이떠중이 인간쓰레기들의 반통일모략소동을 공공연히 비호두둔하였다.(《통일뉴스》 2008.12.3)
리명박패당은 그 누구의 있지도 않는《인권》문제를 유엔에까지 들고나가 소란을 피움으로써 1970년대 초부터 수십년동안 유지되여온 판문점적십자련락대표부가 페쇄되고 북남사이의 련락수단으로 리용되여오던 직통전화들이 전부 단절되게 하였을뿐아니라 흩어진 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협력사업마저 할수 없게 만들었다.

보는바와 같이 북남대화와 협력사업에 대한 남조선당국의 본심이 이러할진대 그들이《대화》요,《협력》이요 하는것을 과연 누가 곧이듣겠는가.
리명박《정권》이 대결정책에 계속 매달리는한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그것이 대결의 마당으로 될 것밖에 없다는 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이런 대화는 백해무익한 것이다.
남조선당국이 진짜로 대화와 협력을 바란다면 자세와 립장부터 바로 가져야 할것이다.


3.《상생,공영》과 《진정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평화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통일의 전제이며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북과 남 온겨레는 외세의 침략을 배격하고 전쟁이 없는 푸른 하늘아래에서 평화롭게 살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리명박《정권》의 반공화국대결책동과 북침전쟁광란으로 말미암아 북남관계는 대결과 전쟁의 길로 치닫고 있다.

지금 리명박《정권》은 이러한 현실에 연막을 치면서 입만 벌리면 그 무슨 《상생,공영》과 《진정성》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다.
리명박패당이 떠드는《상생, 공영》과 《진정성》이란 동족에 대한 우롱으로서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는 흉심을 가리우기 위한 뻔뻔스러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남조선당국은《핵문제》와《인권문제》를 코에 걸고 동족을 모함하고 압살하기 위한 반공화국소동에 악랄하게 매달리고 있다.

리명박은 집권하자부터 미국과 일본을 행각하면서《핵을 이고 통일로 갈수 없고 남북관계도 힘들다.》고 망발함으로써 대결자세를 드러냈다.
그는 11월 16일 워싱톤에서 특파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도 《핵을 가진 상대와는 통일할수 없다.》고 줴쳤는가 하면 4월 16일과 8월 26일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총회 의장을 만나 우리를 반대하는《인권압박공조》를 청탁하는 놀음까지 벌리였다.(《KBS》2008.4.17,《련합뉴스》 2008.8.26,11.17)
《통일연구원》 원장 서재진은 《국제적핵압박공조》실현이 《새 정부의 대외관계의 총적목표가 될것》이라고 내놓고 줴쳤다.(《련합뉴스》2007.12.23)

리명박패당은 우리에 대한 미국의《테로지원국》해제조치에 대해 《찬성할수 없다.》고 반기를 들면서 대결자세를 강화하였다.
특히 리명박은 10월 18일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미행정부가 북을 테로지원국명단에서 삭제한 것은 북의 위협에 굴복한 잘못된 대응》이라고 떠벌였다.(《조선일보》2008.11.3)

역적패당은 6자회담과 관련하여 그 무슨《완전하고 정확한 핵신고》와 《시료채취》를 떠들면서 뒤다리를 잡아당기고있다.
그들은 얼마전에 있은 6자회담 단장회의에서도 그 무슨 《검증》을 걸고 미국,일본상전과 작당하여 누구보다 못되게 놀아댔다.(《련합TV뉴스》 2008.10.22,《련합뉴스》 2008.12.12)

리명박은 10월 18일 《청와대》에서 있은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라는데서 《6자회담에서 진전이 없는한 경제, 에네르기실무그룹을 가동하지 말라.》고 줴쳤다. (《한겨레》 2008.11.3)

역적패당은 지난 11월 유엔총회 제63차회의에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과 함께《북인권결의안》이라는 것을《공동제안》해나서고 그 조작에 앞장서 날뛰였다.(《동아일보》2008.11.5)
리명박패당은《국회》에서《북인권법》을 조작하려고 획책하고 있으며《북인권》관련예산을 올해보다 훨씬 늘여 다음해에 반공화국《인권》소동을 더욱 미친듯이 벌릴 흉계를 꾸미고있다. (《련합뉴스》 2008.6.28,10.9)

남조선당국은 북남체제대결을 로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리명박은 11월 16일 미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적 목표》라고 떠벌였으며 《통일부》장관 김하중은 11월 26일 리명박의 망발에 대해 《정확히 말한것》이라고 공식확인하였다. (《련합뉴스》 2008.11.17,11.26)

《통일부》는 북을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대결상대》로 규정하고《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의 통일》을 주장하는《통일교육지침서》와《통일정책해설서》를 발간하여 남조선전지역의 일반학교들에 배포하였다.(《통일뉴스》2008.5.21,《련합뉴스》 2008.8.2 )
리명박《정권》의 극우대결분자들은 《양보할수 없는 분명한 원칙은 보안법수호와 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통일하는것》이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고있다.(《뉴시스》 2008.6.5)

괴뢰군부는 북을《주적》으로 보는 관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주적관념》과 《안보의식》을 높이는 방향에서 괴뢰군장병들에 대한《리념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떠벌이고 있다.(《한겨레》 2008.12.9)

남조선당국의 반공화국 대결적 정체는《급변사태》와《선제타격》을 떠들면서 동족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책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서 더욱 여실히 나타나고있다.
괴뢰합동참모본부 의장이라는자는 3월 26일과 10월 8일 그 무슨《북핵기지선제타격》과《북의 핵보유상황에 대비한 무력화대응책》이라는것을 떠들어댔는가 하면 괴뢰해군참모총장이라는자는 4월 4일《북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호전적 폭언을 마구 줴쳤다.(《통일뉴스》 2008.3.27,《노컷뉴스》 2008.4.4,10.8)
괴뢰군 륙군특수전사령부는 10월 13일 기존의《작전계획 5027-04》를 《북의 핵 및 미싸일기지에 특수부대를 은밀히 침투시켜 해군과 공군의 초정밀타격을 유도》하는 독자적인 계획으로 수정한다는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였다.(《련합뉴스》 2008.10.13)
남조선괴뢰군은 군사교리를 이전의《대북억제력확보》로부터《대북선제공격》으로 바꾸었으며 그에 따라 《북핵시설을 기습선제타격》하는것을 기본으로 하는 괴뢰군단독의 북침《작전계획》을 수립해놓고있다. (《통일뉴스》 2008.3.10)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김태효는 지난 9월 미국에 날아가 그 무슨《급변사태에 대비》한다는 구실밑에 극히 도발적인《작전계획 5029》와 관련한 모의를 벌린데 이어 10월 17일 제40차남조선미국《년례안보협의회》에서그것을 완성할데 대해 합의하였다.(《동아일보》2008.9.13,《문화일보》2008.10.29)

리명박패당은 그 무슨《유사시에 대비》한다고 하면서 극히 불순한 《충무 3300계획》이니,《충무 9000계획》이니 하는것을 정비완성하는 놀음을 벌리고있다.(《동아일보》 2008.10.17)

역적패당은 괴뢰군을《선제공격》위주로 확대개편하고《F-15K》전투기,조기경보통제기,무인정찰기,지하관통용합동정밀유도탄 등 최신 전쟁장비들을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있다.(《동아일보》 2008.4.29)

괴뢰군은 올해 북의 핵 및 미싸일기지를 《선제타격》하기 위한 정밀타격훈련을 훈련항목에 정식 포함시켰다.(《통일뉴스》 2008.5.22)
《키 리졸브》합동군사연습과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을 강화하고 각종 전쟁장비들을 총동원한《합동화력시범》훈련과 일본 오끼나와의 미해병대까지 끌어들여 전례없는 대규모적인 련합상륙훈련을 벌리는 등 북침전쟁연습에 광분하고 있다.(《동아일보》2008.9.27,《통일뉴스》 2008.11.6)

리명박은 8월 18일《청와대》에서 열린《을지국무회의》에서《남북간에 국지분쟁가능성이 있으므로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떠들었으며 9월 11일《긴급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할수도 있는 것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줴쳤다. 그리고 9월 26일에는 화약내 풍기는《합동화력시범》훈련에 참가하여 《북과 싸워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고아댔다. (《련합뉴스》 2008.8.18,《련합TV뉴스》2008.9.11,《뉴시스》 2008.9.26)

리명박패당이 떠드는 《상생, 공영》과《진정성》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앞에서는 《상생, 공영》과《진정성》을 운운하고 뒤에서는 미국의 호전세력과 결탁하여 동족을 치기 위한 칼을 벼리고 있는 자들이 바로 리명박패당이다.

제반 사실들은 북남관계를 파국에 몰아넣은 장본인이 다름아닌 리명박패당이며 북남관계악화의 책임이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에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리명박《정권》이 력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고 대화와 협력을 가로막으며 대결과 전쟁책동에 계속 매달리는한 북남관계가 더 악화될것이라는것은 자명하다.
남조선당국이 지금처럼 나가다가는 이제 어떤 극단적사태가 또 터질지 알수 없다.

지금 온 겨레는 날이 갈수록 북남관계를 더욱 험악한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리명박패당의 범죄적책동에 우려와 격분을 금치 못하고있다.
리명박은 더이상 구차한 변명에 매달리지 말고 민족의 지향에 배치되고 자신에게도 백해무익한 반공화국대결정책을 버려야 한다.
남조선당국이 동족대결에 미쳐날뛰다가 수치스러운 종말을 고한 선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거든 북남관계에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주체97(2008)년 12월 24일
평 양



[기획글]미국의 신전쟁전략을 해부한다

1. 부시 행정부 2기 새로운 대북전쟁전략 : 방치전략(default strategy)

부시 정부의 출현은 한반도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2000년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북한과의 수교를 서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북미공동코뮤니케의 발표로 핵, 미사일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고 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했으면 미합중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방북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지향하는 페리공정(ferry process)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쯤 북한과 미국은 수교를 마쳤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남북은 통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북미수교와 남북통일은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 뿐 만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지각변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90년대 초 동구사회주의의 붕괴가 냉전해체의 전주곡이었다면 북미수교는 냉전해체의 마지막 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독점자본, 특히 군수독점자본은 북한과의 수교나 화해를 결코 받아드릴 수 없었다. 1961년 1월에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이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군사시설과 대규모의 무기산업의 결합이란 미국인에게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는 정신적인 면 등에 대한 전체적인 영향은 모든 도시, 모든 국가기관 및 연방정부의 전 사무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행정관청 내에서 우리는 ‘군산복합체’에 의한 유형무형의 부당한 압력을 막아내야 합니다. 부당한 권력의 출현이 부당한 결과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상존 하고 있고, 또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아이젠하워의 고백처럼 군산복합체와 군수독점자본은 사실상 미국의 정치, 경제는 물론 미국인들의 일상생활과 사고방식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자이며,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은 거의 대다수가 군산복합체와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미국의 모든 제도정치세력들은 군산복합체와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며, 독점자본의 이해관계는 미 정치인들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최우선적 고려해야할 문제이다.

북미수교와 한반도 냉전의 해체는 1. 미국의 대외영향력 축소, 2. 군산복합체의 수익감소, 3. 세계자주화 경향의 확산 등의 파급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 같은 변화는 분쟁과 전쟁을 먹고사는 군산복합체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미 독점자본은 북미수교를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들의 미국의 이익이 아닌 군수독점자본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2000년 대선에서 온갖 사기적 방법을 동원하여 북미수교라는 위험한 정치도박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 정권을 그들에게 충실한 네오콘정권으로 교체하였다. 부시의 집권은 미국의 기이한 선거제도가 빚어낸 우연한 정치희극이 아니라 치밀한 각본에 따라 준비된 독점자본의 정권교체전략이었으며, 그것은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는 고도의 정치사기극이었다.

그러나, 미 독점자본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는 부시정권의 일방주의적 정책은 초기부터 대내외적으로 저항에 부딪쳤다. 이들에게는 사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절실히 필요했고 9.11사건은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9.11사건은 신보수주의 정책의 대내외적 반발을 진압하고 침략정책을 전면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9.11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핵)선제공격독트린을 채택하고 세계 패권의 주요한 위협인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한다. 부시 행정부는 예정된 각본에 따라 소위‘고농축우라늄’ 개발설을 들고 나와 2002년 북미제네바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 하고 북침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드디어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였고 이때부터‘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2003년 2월에는 노무현 정부에 ‘제한적 북폭’통보하기까지 하였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속전속결로 끝낸 후 미 제국의 최대 위협인 북한을 침공하여 새로운 세계지배전략을 완성하려 하였다.

이라크전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던 2003년 여름, 미국은 대북선제공격을 단행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개전을 눈앞에 두고 부시 행정부는 최종 결정을 위해 두 차례의 전략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첫 번째 전략시뮬레이션은 5월 30일 워싱턴의 국제전략연구소에서, 두 번째 시뮬레이션은 7월 중순 펜타곤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최첨단 슈퍼컴퓨터는 매우 참담하고 치욕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첫 번째 시뮬레이션을 입회한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톰 젠틀 기자는 2003년 8월 18일 영국 비비씨(BBC)와의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이 ‘아무런 유효한 군사적 선택지가 없는데 대하여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2003년 8월1일 뉴욕타임스는 현역장성, 고급장교들이 모여 7월 중순께 펜타곤에서 진행한 전략시뮬레이션 참가자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참가자의 말을 인용해 “우리(미국)가 참패한다(We're going to be fucked)”는 결과를 보도하였다.

부시는 선제공격을 간절히 원했지만 미국의 슈퍼컴퓨터는 놀랍게도 미국의 참배를 예언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악하였다. 북침의 야망은 아직까지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였다. 북한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였다. 때문에 당장 대북선제공격이 어렵다고 느낀 부시 행정부는 속전속결, 선제공격전략에서‘악의적 무시’, ‘방치전략’으로 선회한다. 한마디로 전쟁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자는 것이 소위 ‘악의적 무시전략’, ‘방치전략’이다. 2003년 이후 미국은 고의적으로 6자 회담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군사적, 비군사적 방법을 총체적으로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면서 전쟁조건을 성숙시켜 나가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존 페퍼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진지하게 협상하지도 않은 채, 서서히 북한에 대해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가하’면서 ‘다음 번 (한국) 대선에서 야당(한나라당)이 승리’하고 ‘북한정권이 붕괴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주장하였다.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서 2007년 대선에서 친미보수세력이 승리하면 북한과 한판 붙어 보자는 것이 현재 미국의 생각이다.

미국은 결코 전쟁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전쟁개시의 때를 무르익혀 가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지금도 대북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8년 이후에는 북한의 핵능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그전에 대북선제공격의 조건을 마련하여 그들의 영원한 숙제인 북한 문제를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방치전략은 단지 시간끌기가 아니라 미국의 새로운 전쟁전략이다.

2. 해상봉쇄 + 미사일방어체제 = 핵선제공격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미국은 거의 쉼 없이 대북전쟁훈련을 진행하였다. 3월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 6월 용감한 방패, 6·7월 림팩훈련, 8월 을지포커스렌스훈련에 이르기까지 연일 대북군사훈련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 중에 주목되는 점은‘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6월19일-23일까지 괌 인근해역에서 항공모함 3개 전단을 동원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인 ‘용감한 방패2006’훈련을 진행했다. 한국전쟁이 개시된 6월25일부터 7월28일까지는 하와이 인근에서 미 해군 주최로 아시아 태평양 연안 8개국의 함정 등이 참가한 ‘림팩 2006’이 진행되었다. 이 훈련들은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훈련이며, 북한을 가상적국으로 설정한 노골적인 대북전쟁훈련이다. ‘용감한 방패’ 훈련에는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라함 링컨, 키티호크 등 3개 항모전단과 소속 함정 28척 275대 이상의 항공기를 비롯해 병력 2만 2000명이 참가하였으며, 림팩 훈련에는 미 해군 1만1500명과 핵 항공모함 에이브러함 링컨호를 중심으로 총1만9000명의 병력과 전투함 35척, 잠수함 6척, 전투기 160대 등이 동원되었다.

인터넷 신문 민중의 소리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한국이 참가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던 올해 초 이번 림팩이 PSI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논란”이었으며 따라서 ‘방어적 측면보다는 해상권 재패에 대한 구상을 갖고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 이른바 괴선박에 대한 해상 추격전을 포함해, 상륙전 등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림팩2006’은 사실상 PSI훈련 즉 대북해상봉쇄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태평양 해군력이 총동원된 ‘용감한 방패훈련’ 역시 대북해상봉쇄가 주목적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선언 이후 해상봉쇄훈련의 강도를 크게 높여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방치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방치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 미사일 기술 확산을 막아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기술을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시간을 끌고 싶어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해상봉쇄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전까지 북한이 핵, 미사일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핵과 미사일 수출을 저지한다는 명분 하에 대북해상봉쇄에 들어간다면 한반도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제제는 곧 선전포고’라고 주장해 왔다. 만일 미국이 해상봉쇄를 단행하면 북한도 그에 상응한 물리적 행동으로 맞서게 될 것이며, 한반도에는 제2의 쿠바 위기와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해상봉쇄는 곧 전쟁이다. 따라서 올해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전쟁을 부르는 위험천만한 도박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9월2일 미국은 알래스카에서 북한을 장거리탄도미사일을 겨냥한 요격미사일시험을 단행하였다. 미국의 이날 시험은 북한의 소위 대포동2호와 같은 제원의 미사일을 대상으로 비행궤도도 북한이 미국 서부 해안을 향해 발사할 경우와 일치했다. 이날 시험에는 85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미 국방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요격을 목표로 한 또 다른 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 말 오키나와 카데나 미 공군기지의 한 관계자는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3(PAC-3)가 곧 기지 안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일 미군기지에 PAC-3가 배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9월29일 미 국방부는 한국의 요청에 따라 패트리어트 미사일 제조사인 레이션사가 한국에 15억 달러 규모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을 판매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국방부도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도입되면 이르면 2008년께 패트리어트 1개 대대를 실전배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내년에 독일로부터 중고 패트리어트 발사대를 들여오기 위해 이미 내년 예산안에 100여억 원을 반영했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7월13일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 한국의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미사일방어체제는 대북선제공격을 위한 핵심수단이다.
북한은 이미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선제공격을 결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미 본토가 공격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방어체제를 통해 핵보복공격의 공포를 벗어나고자 하고 있다. 만약 미사일방어체제가 완성된다면 미국은 대북(핵)선제공격준비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은 대북선제공격을 위한 군사적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 북한 목조르기 : 금융제재와 대북압박

미국은 4차 6자 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5년 9월16일 북한이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를 통해 불법자금을 세탁했다면서 이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금융기관들이 이 은행과 일체의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10월8일에는 북아일랜드 노동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아일랜드공화군(IRA) 최고위 지도자,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인 션 갈렌드를 100달러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유통시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려 한 북한의 음모에 연루된 협의로 체포하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갈렌드가 북한 기관원들과 접촉했으며 영국에 위폐를 유통하려고 사람들을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갈렌드는 북한에서 제조된 위조지폐를 유통시켰다는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자 거짓말'이라며 부인했다. 10월21일에는 조선광성무역 등 8개 북한 기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등 6자 합의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5차 6자 회담 1단계 회의에서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제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제재 해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6자 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은 '그 문제(위조지폐)는 범죄에 관한 사항으로 6자 회담 의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결국 금융제재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격렬한 이견으로 1단계 회의는 이행절차에 대한 진전된 합의 없이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1단계 회담 폐막 직후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관련해 북미 양자접촉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1단계 회의가 결실 없이 막을 내렸지만 금융제재와 관련한 북미 양자접촉이 합의됨으로써 5차 6자 회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회담 이후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해 11월16일 미일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폭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쏟아 놓았으며, 라이스도 같은 날 부산에서 '6자 회담에서 북한은 우리가 기대했던 종류의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였다.
부시와 라이스의 대북강경발언 직전인 11월15일에는 북한을 '범죄국가'로 규정한 데이비드 애셔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선임자문관의 강연록이 '노틸러스 연구소'의 웹사이트에 공개되었다.
애셔는 5차 6자 회담이 열리기 전인 10월 말 한 강연회에서 북한이 미국 달러화뿐 아니라 유로화 등 다른 화폐도 위조해 유통하고 있으며, 이는 해당국들에 대한 '경제 전쟁 행위'(act of economic war)라며 북한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우선 한국·중국에 특수 검색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애셔의 이 강연은 애초 '비보도'를 요청했다가 11월15일 갑작스럽게 공개되었다. 그는 '북한 범죄국가, 조직 범죄단과 관계 및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에서 북한을 '범죄를 적극 지휘하는 세계 유일의 정부'라면서 '북한의 위조지폐와 담배 등을 통한 수입이 북한 총 수출액의 35∼40%를 차지하며, 이 돈으로 사회·경제 개혁을 하지 않고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일정상회담에서 부시의 발언과 애셔의 강연록 공개가 단 하루 차이였다는 점은 이후 미국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부분이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12월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이 위험한 무기를 수출하고 마약밀매를 하는 상황에서 정치 제스처로써 제재를 풀 수는 없다'며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목은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고위관료가 공식석상에 북한을 '범죄국가'로 지칭한 것은 버시바우가 처음이었다. 버시바우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도 '북한의 심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시기가 왔다'며 반북공세의 고삐를 더욱 당겼다.

버시바우는 소련이 무너질 때 미 국무부 소련과장을 지냈고 그 뒤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러시아 대사에서 한국 대사로 전보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 '거물 대사'(?)이다. 버시바우 내정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비중 있는 대사가 부임 직후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지칭한 것은 미국의 전술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2월16일에는 한국, 중국, 일본, 호주, 유럽 등 40 여 개 국이 참여한 가운데 북한의 위조지폐와 관련한 비공개 브리핑을 진행되었다. 또한 라이스 장관은 지난해 12월20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북한의 불법 위폐 문제와 관련해 법집행 차원에서 조사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정치적 흥정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부시는 2006년 1월2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우리 돈을 위조할 경우 이를 중단시키려 하는 게 당연하다'며 '우리(미국)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2월1일 국정연설에서는 북한을 '자유가 필요한 국가'로 지목하였다.
5차 6자 회담 1단계 회의 이후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범죄국가'론과 위폐 문제가 단지 전술적 차원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소위 북한의 위폐 문제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여름이다.
당시 이를 주도한 기구는 국무부 내에 설치된 '북한실무그룹'(NKWG)이다. 이 그룹은 소위 IAI(Illicit Activities Initiative), 즉 불법활동 방지구상으로 알려진 행동방안을 마련하고 북한을 비롯해 이란, 시리아 등 국제적인 마약 밀거래와 불법 위폐, 불법 상표 조작 등에 나서는 나라들을 집중 추적 감시하고 제 대책을 마련하는 임무를 맡았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내 관련 내용을 훤히 파악하고 있는 래리 윌커슨은 '이 구상은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국무부 주도로 만들어졌다'면서 '주 대상은 북한의 불법 외화 획득원을 원천 봉쇄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이 그룹을 주도한 인물이 지난 해 10월말 '범죄국가' 강연을 한 데이비드 애셔였다.
지난 해 7월9일 북한과 미국은 4자 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7월25일부터 8월7일까지 4차 6자 회담 1단계 회의가 진행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에서 7월 중 6자 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은 6월17일 이었고, 북한 측 6자 회담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현지시간으로 30일 뉴욕을 방문해 조셉 디트러니 대북 특사와 비밀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해 여름 내내 북미 양국은 6자 회담의 재개와 협상의 진전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대화의 막 뒤에서 새로운 대북 공격수단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었다. 북한은 터무니없는 꼬투리로 시간을 끌려고 하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은 2006년 3월 7일 뉴욕접촉에서 ‘위폐정보 교환을 위한 북미 비상설협의체’를 제안하였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위폐문제에 대한 정보교환 및 불법 활동 대응조치 마련 등을 위한 합동협의기구 설치’,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해제’, ‘미국 은행시스템을 통한 북한의 거래 허용’, ‘위조지폐 감식을 위한 미국의 기술 지원’ 등 네 가지 요구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북한의 리근 외무성 북미국장은 ‘금융범죄에 대한 북미 간의 정보교환, 미국은행에 북한 계좌 개설’ 등의 제안을 통해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줬다. 리근 국장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쪽에 ‘우리나라(북한)에 들어오는 모든 관광객, 항만이나 철도를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든 비용이 다 현금’이며 ‘그 안에 뭐가 섞여 있는지 우린 모’르고 때문에 ‘결국 우리도 희생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은행에 북한 계좌 하나 개설’하면 ‘의심이 없어질 거 아니냐’라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또 리근 북미국장은 “비상설협의체가 열리면 금융범죄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대책 마련을 할 수 있다. 가령 (북한에서) 누가 (위폐를) 찍어낸다고 하면 그 사람을 잡고 기계나 종이, 잉크 등을 압수하고 이런 걸 미 재무부에 통보할 수 있다. 그런 정보교환을 할 수 있다”며 미국이 제시하는 의혹을 정확히 밝혀내며 나아가 금융범죄의 예방대책까지 마련하자는 의견을 제출했으며 북한에서는 제도적으로 금융범죄나 마약사범을 강력하게 엄단하고 있다는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렇듯 북한 측은 위조지폐 문제와 관련해 매우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았지만 미국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미국 금융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사법적 조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규제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의 제안을 일축했다. 이어 <뉴욕타임스>에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대한 규제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며 북한의 불법행위에 ‘사법조치’를 능가하는 조치, ‘북한을 화나게 할만한’ 법적, 재정적 조치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또 한 번 ‘악의 축’, ‘폭정국가’로 규정하면서 국가안보의 핵심전략으로 ‘선제공격’ 방침을 재확인하는 새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발표하였고 미 의회에서는 북한 지도부에 대한 ‘기소’까지 언급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 9월13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조사를 종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9월20일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헨리 폴슨은 방코델타아시아 조사와 관련 "정해진 (조사)시간의 틀은 없다"며 "이는 법 집행 문제이며 적절하게 해결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9.19공동성명 발표 1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호주가 대북금융제재에 동참하는 등 대북금융제제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9.19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들을 준비해왔다. 그것이 소위 ‘범죄국가론’이며, 위조지폐, 인권, 마약 등등의 문제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처럼 북한을 침공하기 위해 조작된 명분일 뿐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국제적인 대북포위망을 형성하려 하고 있으며, 북한을 고립시켜 경제적 타격을 가하고 내부동요와 경제력 약화를 통해 전쟁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기획글 2] 한미동맹의 재편과 한국의 정권교체 : 대리전쟁전략

미국은 올해 들어 급작스럽게 한미동맹의 중요한 현안들을 서둘러 처리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재편, ▶한미FTA 체결, ▶친미보수세력의 재집권을 통해 대북선제공격의 충분조건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군사동맹의 재편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한국을 구조적으로 식민화하고 다음 대선에서 친미전쟁정권을 수립하여 북침전쟁계획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즉 전쟁목적에 맞게 한국의 정치, 군사, 경제를 완전히 재편한 후 한국의 친미세력을 앞세워 제2의 한국전쟁을 조작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미끼로 노무현 정부를 현혹하여 2007년 대선 전에 한미동맹 재편과 한미FTA를 합의하고 대선에서 한미동맹을 쟁점화 하여 친미정권 수립한 후 2008, 2009년까지 대대적인 군비증강을 통해 한국이 독자적인 전쟁수행능력을 갖추게 되면 작전지휘권을 반환하고 마치 한국의 독자적 또는 북한의 선제공격에 의한 전쟁처럼 위장하여 2010년을 전후 시점에 대북전쟁을 개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국전쟁 직전의 한반도 정세를 보는 듯하다.
한국 단독 정부 수립 1년 후인 1949년, 미국은 600명 규모의 군사고문단을 제외하고 모든 미군을 철수했다. 1950년 1월 12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출판협회에서 한 연설을 통해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 된다”며 소위 ‘애치슨라인’을 발표하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5개월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에치슨라인’의 발표로 미국은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치슨의 선언과 실제 미국의 정책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은 ‘애치슨라인’ 발표 이후 오히려 한국과 대만의 군사력을 증강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전쟁에 개입했다. 백악관의 결정사항에 따라 모든 미군은 ‘유엔군’의 자격으로 참전하였으나 실제 유엔군의 구성을 보면 육, 해, 공군의 90% 이상이 미군이었다.

때문에 작통권 환수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매우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 7월 14일 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미국은 전시작통권을 2009년 쯤 넘겨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과 미군의 한반도 안보공약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이뤄질 것’이라며 작통권 반환에 지지입장을 밝혔다.
논의의 시작은 한국 정부가 했지만 실질적 진행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환수시기로 2012년을 제안했는데 오히려 미국 쪽에서 2009년에 내주겠다며 서두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동맹 재편 과정을 살펴보면 ‘애치슨라인’ 발표 당시와 상당히 유사하다.

미국이 전시작통권 환수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유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의 성격을 해, 공군 위주의 첨단 기동군으로 전환하고 그 활동범위를 한국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미동맹 재편이 진행되면 2010년을 전후한 시점까지 주한미군은 1,000여 명 규모로 대폭 축소되며 전시작통권이 반환되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된다.

겉으로 보기엔 미국의 안보 책임이 줄어들고 미국이 일정하게 한국에서 발을 빼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실질적인 통제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우선 주한미군 중 육군을 대폭 감축하는 대신 해, 공군 중심의 첨단 기동군과 최첨단 무기를 통해 실제로는 전력이 증강될 것이다. 또한 전시작통권 환수를 계기로 ‘전, 평시작전협조본부’가 들어서게 되는데 이 기구는 ‘정보 및 위기관리, 공동작전계획 작성, 연습 및 훈련, 전시 작전수행’의 분야에서 한미 간의 긴밀한 협력임무를 수행하는 등 사실상 한미연합사 기능을 그대로 수행한다. 게다가 한미연합사를 대신해 일본군, 한국군, 미군을 포괄하여 총괄 지휘하는 동북아 사령부가 새롭게 편성될 것이다. 즉 한미군사동맹의 외형적 변화는 ‘보이는’ 통제권은 돌려주고 ‘안 보이는’ 통제 구조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한미동맹의 외형상 변화는 전쟁 시 미국이 자동개입이 아닌 선택개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한미연합사 체계에서는 한반도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은 자동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되어있다. 한미연합사 체계를 유지한다면 전쟁이 날 경우 미국은 북한의 직접적인 핵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미군사동맹의 형태가 위의 내용처럼 바뀌게 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미국은 의무적 전쟁 개입이 아니라 상황 판단에 따른 선택적 개입이 가능해진다. 전시작통권이 한국에 있음으로 해서 외형상 북미 간 전쟁이 아닌 남북 간 전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명분이 약화되어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전시작통권을 한국에 넘겨줌으로써 그간 북미 간 군사적 대결의 양상을 남북 간의 대결로 유도하여 전쟁세력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동북아 사령부와 유엔 사령부를 장악, 지휘하고 ‘전, 평시작전협조본부’라는 새로운 구조 하에 한국군을 통제함으로써 북한을 제압하고 동북아 패권을 장악한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주한미군 감축과 전시작통권 환수, 그리고 한미연합사 해체라는 한미군사동맹의 외형적 변화는 마치 한국전쟁 전야의 ‘애치슨라인’처럼 미국에 면죄부를 줌과 동시에 북한의 미 본토 공격을 차단하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전시작통권 환수 논란은 친미보수 진영의 안보장사에 활용되어 한국 국민들에게 안보불안을 조성하면서 사회 전반의 흐름을 친미와 한미동맹 강화로 몰고 가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교활한 음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 대선에서 친미전쟁정권을 수립해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미국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대북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친미정권-한나라당정권-이 수립되어야 이들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을 회피하면서 목표한 임의의 시각에 예정대로 전쟁을 단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근 미국은 친미보수세력들을 더욱 노골적으로 지원하면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경향을 차단하고 이들을 재집권시켜 6.15공동선언을 파기하고 남북대립을 통해 6자 합의의 이행을 늦추거나 백지화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대북모략선전을 통한 반북대결의식의 확산, 좌파이념공세에 의한 진보개혁세력 흔들기, 신보수세력의 육성을 의한 중간층의 포섭, 신보수대연합 등은 친미정권의 수립을 위한 미국과 친미보수세력의 기본전술이다.

이러한 미국의 책동은 2007년 가까워 올수록 더욱 전면화 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해 9월19일 6자 공동성명 합의 이후 소위 인권, 위조지폐문제 등을 들고 나와 고의적으로 6자 회담을 회피하며 반북심리를 조장하고 이를 통해 친미보수세력에 유리한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책동하고 있다. 특히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민족적 사업을 악의적으로 방해하면서 현 정부를 압박하고 대북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를 유포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남북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한 미국은 소위 뉴라이트 등 신보수세력을 집중 육성하여 중간층을 보수로 견인하는 등 친미보수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막후에서 치밀한 작업을 전개하였다.

미국은 지난 해 말 신보수세력들이 개최한 소위 '북한인권국제대회'에 2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다. 신보수세력들은 국제대회를 계기로 수 십 억 원의 자금을 마구 뿌려대며 국내에 반북여론을 조성하고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친미적 이념을 확산하고 친미보수세력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활용하였다.

뿐 만 아니라 미국은 지방선거 직전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통합을 막후에서 거중조정하여 진보개혁세력으로 기울고 있는 충청권의 민심을 한나라당으로 돌려 세웠으며, 향후 대선에서 신보수대연합을 추진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자민련과의 통합으로 애초 한나라당에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충정지역의 민심이 동요하고 그 결과 한나라당이 5.31선거에서 이 지역을 독식할 수 있는 수 있는 정치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번 지방선거는 한마디로 미국과 친미보수세력의 2007년 재집권전략을 시험하는 정치무대였다. 미국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친미보수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매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냈다.
미국은 한국의 대대적인 군비증강과 친미전쟁정권의 수립을 통해 방치전략을 전쟁전략으로 완성하려 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미국의 새로운 전쟁전략은 본격적인 실행단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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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올해 북침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부터 2007년까지 미국은 자신들의 신전쟁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발악적으로 책동할 것이며, 이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앞으로 1년은 한반도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시기이다. 미국의 신전쟁전략이 성공한다면 한반도는 또다시 전쟁터로 변하게 될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생사존망의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한반도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침략적 의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전면적인 대응으로 전쟁음모를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현 정국을 엄중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반미반전, 미군철수투쟁에 화력을 집중하여 미국의 전쟁책동을 저지, 파탄시켜야 한다. 특히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전쟁국면을 평화통일국면으로 확고히 전환시켜야 한다.<끝>


조국통일연구원 진상공개장/
미국의 비호 묵인 밑에 감행된 남조선핵무기개발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여야 한다

   최근 남조선의 핵연구기지들에서 비밀리에 감행된 우라니움농축과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핵물질실험사건들이 폭로되여 내외를 경악시키고있다.
남조선당국과 관계자들은 저들이 뒤골방에서 핵물질실험을 하면서 딴 장난질을 한 것이 들통나자 《단순한 과학실험이였다》느니,《량이 극히 적다》느니,《자진신고하였다》느니 하면서 핵무기개발과는 무관한듯이 발뺌을 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철면피한 거짓말이다.
남조선은 이미 수십년전부터 미국의 비호묵인밑에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다그쳐왔으며 이번에 드러난 핵물질실험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조국통일연구원은 남조선비밀핵물질실험사건의 진상과 핵무기개발실태 그리고 배후에서 그것을 적극 조장,비호,묵인한 미국의 정체를 내외에 알리기 위해 이 진상공개장을 발표한다.

1. 비밀핵물질실험사건의 진상

지난 9월 2일 미국의 전자우편정보지인《넬슨 리포트》가 남조선이 2000년초 비밀리에 우라니움농축실험을 하였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 같은 날 남조선《과학기술부》는 2000년 1월부터 2월까지《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농축우라니움 0.2g을 분리해 냈다는 것을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하였다는 것과 그에 따라 8월말부터 기구의 사찰을 받고있다는것을 서둘러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문제의 우라니움 농축실험은 소수 과학자들이《호기심차원》에서 진행한 것으로서《정부》는 올해 6월에야 신고대상을 조사하는 과정에 알게 되였다고 천연스럽게 거짓말을 해댔는가 하면 《핵연료국산화》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우라니움 농축실험이 포함되였을 뿐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니움 생산이 아니며 관련장비 모두를 페기하였다고 변명하여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도 통할 수 없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실험사건에 커다란 우려를 표시하면서 핵무기개발의혹을 제기하고 엄중히 규탄하였다.
바빠난 남조선당국은 비밀핵물질실험내막이 드러난지 이틀만에《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고 우라니움농축실험은 핵무기개발과 무관하다는 립장을《재확인》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남조선《국회》에서는《과학기술부》장관과《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을 내세워 이 실험이 《정부》의 승인 없이 연구소의《자체결심》과《연구사들의 호기심차원》에서 진행되였다고 증언》하게 하는 연극도 꾸미였다.

그로부터 한주일도 못되여 이번에는 미국의 AP통신에 의해 미국고위관리가 남조선이 이미 20여년전에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비밀실험을 진행하였다는 것을 실토한 사실이 또 보도되였다.일본의 《아사히신붕》도 1980년대 초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였던 전직 미국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남조선이 1982년부터 1983년에 플루토니움을 리용한 핵개발계획을 극비밀리에 추진했었다는 것, 계획은《정부》의 지시 밑에 연구기관에서 이루어졌으며 추출된 플루토니움의 량과 순도는 비밀로 취급되였다는것, 1983년 미국대통령 레간의 남조선행각시 레간과 전두환사이에 이 문제가 심중히 론의되였다는것 등을 폭로하였다. (남조선《MBC》방송 2004.9.9)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추출내막이 련속 드러난 것과 관련하여 광범한 세계의 여론은 커다란 분노를 표시하면서 《완벽한 진상조사를 촉구》하여 나섰다. 지어 《주요 8개국 군비담당고위급협의회》라는데서까지 남조선의 우라니움농축과 플루토니움추출실험에 대해 《엄정대처》하기로 하는데 이르렀다. (남조선《KBS》방송 2004.9.11)

궁지에 몰린 남조선 《과학기술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의 공릉동에 있는 연구용원자로에서 비밀리에 플루토니움 추출실험을 감행한 사실과 이미 국제원자력기구가 1998년에 남조선의 플루토니움 추출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적하여 확인하였으며 그동안 기구측과 내적으로 조용히 협상하던 중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남조선《KBS》방송 2004.9.9)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이번에도 플루토니움 추출은 과학자 몇명이 순수 연구목적으로 진행하였으며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통보를 받기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아닌보살하고 나앉았다.

더우기 핵연료가 얼마나 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라니움을 원자로에 넣었더니 극소량의 플루토니움으로 바뀌였다느니, 당시 연구를 지휘하였던 책임자 2명은 이미 사망하여 없다느니, 안전조치협정상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되였어야 했는데 신고과정에 플루토니움 추출실험부분이《실수》로 루락되였다느니, 추출한 플루토니움 량이 극소량이여서 핵무기개발과는 인연이 없다느니 하는 등 궤변을 또다시 늘어놓았다. 남조선 《과학기술부》 장관 오명은 9월 13일 간담회라는데서《1982년의 플루토니움추출실험과 2000년 우라니움농축실험 이외에 추가로 의혹을 살만한 사례는 없다》고 강짜로 뻗쳐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실만 보아도 남조선은 1980년대에 3개의 핵시설에서 우라니움금속 150kg을 비밀리에 생산하였으며 그가운데서 2.5kg을 사용하여 2000년에 농축실험을 하였다. 또한 생산된 우라니움금속중 12.5kg이나 행방불명된 상태이지만 이를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더우기 남조선은 1990년대에도 레이자농축실험의 전단계가 되는 실험을 2번이상 진행하였다.(남조선《KBS》방송 2004.9.13,남조선《MBC》방송 2004.9.11, 14)

저들의 꼬리가 련속 드러나는데 극도로 당황한 남조선당국은 《핵연료국산화차원》에서 연구를 하던 중 우라니움 금속을 만들었다느니, 천연우라니움의 국제시세가 너무 비쌌기때문에 린광석을 수입해 천연우라니움을 추출하는 연구를 했다느니,우라니움금속의 활용도를 연구하기 위한 고온실험과정에 12.5kg이 녹아 없어졌다느니 등의 변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비발치는 내외여론을 눅잦혀보려고 핵무기개발의사가 없으며《핵투명성》을 보장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과 조선반도비핵화선언을 준수하겠다는것과 《핵의 평화적리용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핵과 관련한 4대원칙》이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사찰을 받는 놀음도 벌리였다. 이것이 내외여론을 기만하고 핵무기개발 비밀을 숨기기 위한 오그랑수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 핵무기개발의 정책화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력대《정권》들에 의하여 근 40년가까이 극비《정책》으로 추진되여왔다. 1960년대초《5.16군사쿠데타》이후 남조선군사《정권》은《안보》를 위한《최종수단은 핵무기보유의 길밖에 없다》,《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핵무기를 개발할것》이라고 공언하면서 핵무기개발을 정책화하는데로 나갔다. 군사《정권》의 총지휘아래 《원자력연구개발장기리용계획서》,《원자핵연료개발계획》,《원자핵무기개발계획》 등 각종 핵무기개발계획들이 수립되고 《청와대》직속으로 핵무기개발을 위한 비밀특별위원회인《병기개발위원회》와 《국방과학연구소》가 조직되였으며 해외로부터 핵개발 두뇌진과 기술설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세계일보》2004.8.2,《월간조선》1990.4,《신동아》1989.4)

당시 군사《정권》은 1981년의 《국군의 날》에 맞추어 핵무기보유를 선포할 계획까지 짜놓고있었으며 1979년 《정권》말기에는 핵무기개발이 사실상 마지막단계에 이르렀다.이것은 1990년대초 《국회의원》 강창성이 1978년에 남조선집권자로부터 《핵무기개발이 5%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사실과 1979년 1월 남조선집권자가 《국회의원》 선우련을 부산 해운대로 불러 1981년 상반기에 핵폭탄이 완성된다는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의 보고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자체개발한 핵무기를 공개하면서 발표할 성명문을 작성할데 대한 비밀지령을 준 사실에서도 확인되고있다.

현《한나라당》대표 박근혜도《핵무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있었다》고 고백한바 있다.(《월간조선》 1992.4, 1993.3,11)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은《10.26사건》이후 전두환,로태우 군사《정권》에 의해 계속되였을뿐아니라 《대체에네르기개발》이라는 외피를 쓰고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전두환《정권》은 1981년 5월에《청와대》회의에서 핵무기개발을 계속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관련기관 및 기업책임자들을 군부출신들로 새로 꾸린데 이어《원자력발전》 또는《산업용》이라는 이름밑에 선행《정권》때부터 건설하여 온《조사후 시험시설》을 1985년에 완공하여 페연료재처리를 위한 공업적토대를 마련하였으며《핵연료 및 원자로국산화》라는 미명하에 원자탄설계 및 제조에도용할 수 있는 핵연료설계 및 원자로제작기술 등을 외국의 원자로 전문업체들로부터 본격적으로 끌어들이였다.

로태우《정권》은 《독자적인 핵무장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남조선군《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핵연료순환완성, 혼합핵연료개발, 방사성페기물처리기술개발, 레이자분광기술개발 등 플루토니움추출 및 우라니움농축을 위한 분야별 중점추진사업계획들을 새로 세우고 그 실현에 힘을 기울이였다.
특히 미국과 함께 《북의 핵무기개발의혹》 을 떠들면서 그 막뒤에서 북남사이에 채택된 《비핵화공동선언》의 잉크도 마르기전에 영국과 재처리공동비밀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외국으로부터 플루토니움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고《원자증기레이자농축법》을 비롯한 수십가지의 첨단핵기술들을 도입하여 핵개발속도를 더욱 높이였다.

전 《안기부》(현《정보원》의 전신)부장의 비서실장이였던 서수종은 로태우《정권》이《핵을 가져야겠다는 판단으로 준비를 해왔던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대덕원자력연구소에 전문요원을 상주》시켰다고 실토하였다.(《월간조선》 1991.10,《동아년감》 1991,《중앙일보》1994.3.29)
당시 로태우《정권》이 핵무기개발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하는 것은 일본잡지《세까이》(1993.1)가 남조선이《5년이내에 핵병기를 개발하여 조선반도에 배치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였다고 보도한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군사《정권》의 바통을 이은 김영삼역도의《문민정권》은《이제는 우리도 핵능력을 가져야 할 때가 되였다》고 하면서 핵기술개발에《국가적총력》을 기울인다는《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세우고 《핵연구개발인력의 질적향상》,《핵연료주기기술 완성》,《원자력외교의 강화》 등을 추구하였으며《국민의 정부》역시《제2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신형원자로, 고속증식로 및 핵융합로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개발, 페연료처리장건설계획 등 첨단기술개발을 통하여 핵무기개발능력을 부단히 키워나갔다.(《한겨레》 1996.1.20,《전기년감》 2004)
이러한 사실들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이 개별적인 연구단체나 과학자들에 의한것이 아니라 력대《정권》들에 의해 《정책》적으로,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추진되여왔음을 보여준다.

3.남조선의 핵무기개발실태

오늘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실태는 핵기술력량으로 보나 핵물질보유량으로 보나 핵탄설계 및 제조기술과 설비,핵무기운반장비로 보나 실로 엄중한 단계에 있다. 남조선의 핵개발기술력량은 잠재적인 핵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핵기술력량보다 더 많다.남조선은 이미 1990년대초에 벌써 방대한 핵연구개발기지에 큰 규모의 연구소를 20여개나 가지고 있었으며 박사급 1,500여명을 포함하여 1만 5,000여명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핵대국들인 프랑스의 2만명,영국의 1만 6,000명과 거의 맞먹었으며 일본의 핵국립연구소의 핵전문가 8,500여명보다 훨씬 많은것이였다.(《월간조선》1990.4, 1991.10)

《한국원자력연구소》와《국방과학연구소》,《한전원자력연료》는 남조선핵개발의 3대기지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플루토니움추출을 위한 재처리기술연구와 우라니움농축기술개발 등을 기본임무로 하는 중추적연구기지로서 40만 1,000평의 부지에 핵연료성형가공시설, 다목적연구로인 《하나로》,《조사재시험시설》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핵연구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1970년에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는《핵미싸일개발팀》과《로케트추진제, 탄두, 전자사업단》등을 중심으로 핵무기개발과 함께 상용무기개발을 진행해오다가 1991년부터는 일반상용무기개발을 민간업체에 넘기고 지금은 중장거리미싸일 및 정밀유도탄 등 핵운반수단개발에 연구를 집중하고있다.

《한전원자력연료》는 1976년 당시 집권자가 직접 설립한《한국핵연료개발공단》의 후신으로서 원자탄제조에 필수적인 핵연료순환기술을 완성하는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있다.(《신동아》1989.4,《월간조선》1990.4,《한겨레》1991.9.18,《전기년감》2004)
오늘 남조선의 대전에 자리잡 고있는 840만평의《대덕연구단지》는 바로 이러한 연구소들을 포함하여 무려 77개의 연구기관 및 교육시설들과 2만여명의 연구직원들로 이루어진 사실상 종합적인 핵연구기지로서 핵무기개발의《총본산》으로 불리우고 있다.(《한국경제》2003.9.25)

이외에도 《한국화학연구소》는 원자탄의 기폭제로 쓰이는 《특수폭약》에 대한 연구를,《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핵전쟁수행을 위한 지휘, 통제, 통신체계개발연구를,《한국항공우주연구소》는 각종 전투기, 우주발사체 및 첩보위성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월간조선》1992.4,《월간군사비젼》 1989.11, 12)
《두산중공업》,《한진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종합기계》,《풍산》등 20여개의 군수업체들도 핵운반수단들로 리용할수 있는 각종 포탄과 폭탄, 야포, 전투기, 함선, 미싸일 등의 연구개발 및 부분품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남조선은 핵분렬성물질인 플루토니움과 농축우라니움 보유량에서 일본의 뺨을 칠 정도이다. 력대 남조선당국자들은 원자로들에 대한 연료공급의 명분으로 해마다 수많은 량의 농축우라니움을 수입해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니움과 플루토니움을 얻는데 필요한 핵물질예비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왔다.
1990년대초 남조선은 2기의 연구로를 포함하여 11기의 원자로들에 필요한 핵연료를 한해 평균 200여t정도 반입하였으며 2003년에는 19기의 원자로들에 필요한 핵연료를 3,500t이나 반입하였다. 이것은 같은 기간 원자로설비용량은 1.7배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핵연료수입량은 무려 17.5배로 늘어난것으로서 남조선이 얼마나 많은 핵연료를 예비로 차게 되였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남조선당국은 원자로들에서 타고남은 페연료를 체계적으로 수중저장고에 저축해오고있는데 2002년 12월 현재 그 루적량은 무려 5,982t에 달하고 있다. 이 페연료에서는 36t이나 되는 플루토니움을 얻을수 있다. 즉 남조선은 41t의 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과 맞먹는 잠재적 플루토니움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량으로는 일본의 나가사끼에 투하된것과 같은 원자탄 3,000여개를 만들수 있다.(《전기년감》 2004)

남조선은 많은 량의 페연료와 농축우라니움을 저축하고있을 뿐 아니라 핵연료에서 마음만 먹으면 핵분렬성 플루토니움 및 고농축우라니움을 추출해낼 수 있는 재처리 및 농축기술과 설비들을 가지고있다.남조선의 대표적인 재처리시설로는 1989년에 로태우《정권》이 확장개건한《조사재시험시설》로서 그 구조 및 작업공정은 재처리시설과 거의 같아 사실상 준재처리공장으로 인정되고있다.(《월간조선》 1990.4)
남조선에 있는《캔두》형 중수로의 경우 거기에서 나오는 페연료를 재처리하면 경수로에서보다 더 많은 량의 플루토니움을 얻을수 있는 동시에 플루토니움을 빼돌리기가 쉽고 그에 대한 감시도 매우 어렵다.《한국원자력연구소》가 1995년부터 운영하고있는 다목적연구로인《하나로》는 중수로와 경수로의 혼합구조를 가지고있는것으로서 20%의 농축우라니움을 사용하지만 시험통로들에 천연우라니움을 넣어 플루토니움을 뽑아낼수 있게 되어있다.
더우기 일반 발전용원자로에 비해 10배나 높은 밀도의 중성자묶음을 내보내기때문에 핵연료의 연소시간을 10분의 1이하로 줄이고 90%이상의 고순도핵분렬성플루토니움을 짧은 시간내에 얻을수 있게 한다.(《신동아》1989.4,《동아일보》1995.4.4,《월간조선》1990.4,《한국경제》1989.3.25)

또한 남조선은 1984년부터 레이자에 의한 농축기술개발에 달라붙어 1986년에 레이자를 리용한 핵연료원격가공기술을 개발하였으며 1991년에는《구리증기레이자》를,1995년에는 《자유전자레이자》를 연구하여《원자증기레이자》농축기술개발을 완료하였다.(《월간조선》1991.10,《련합년감》1992,《동아일보》1995.1.11)
현재 남조선에서는 다목적연구로인《하나로》와 함께 4기의 가압중수로,15기의 가압경수로 등 총 20기의 원자로들이 가동되고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무기용 핵물질들이 쏟아져나오겠는가 하는것은 짐작키 어렵지 않다.

남조선의 원자탄설계 및 제조기술도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 원자탄기초설계는 이미 1975년에 완성되였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가 완성한 기초설계는 20kt급 플루토니움탄(공중투하형)이였다. (《세계일보》2004.8.2)
1980년대에 들어와 핵무기개발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내외의 비난이 높아가자 남조선당국은 핵발전연료 및 원자로에 대한 설계 및 제조기술을 개발한다는 구실로 핵탄관련기술개발을 계속하였다. 결과 남조선은 해외기술도입을 통해 이미 중수로 및 경수로의 설계기술을 확보하였을뿐아니라 1999년부터 년간 경수로 및 중수로용 핵연료를 각각 400t씩 직접 생산하는 등 핵연료설계 및 제조기술도 확보한 상태이다.(《전기년감》2004년)

한편 남조선은 원자탄의 기폭제인 특수폭약 《HMX》도 자체로 생산하고 있는데 1990년대에 《한화그룹》의 한 회사에서 그와 성분이 같은 폭약이 생산된 사실이 폭로되여 문제가 된바 있다.이밖에도 원자탄제작에 필요한 부분품들과 기계장비들은 군수 및 민간업체들에서 일반제품으로 위장되거나 부호가 달린 제품으로 비밀리에 분산 제작되고있다.
남조선은 원자탄제작에 필수적인 기폭실험도 정기적으로 진행하여왔다. 이미 1990년대초에 폭발순간을 맞추는데 요구되는 100만분의 1초까지 찍을 수 있는 고속촬영기를 구입하여 기폭실험에 리용하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와《국방과학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 기폭실험을 위한《비밀지하핵기지》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남조선잡지 《말》(1992.6)은 이에 대해 《대전시 덕진동의 원자력연구소, 자운동의 금병산기폭실험기지, 신도안리의 계룡산대규모지하기지는 하나로 련결된 핵탄제작기지로 되고있다.이 대규모지하기지는 륙,해,공군본부 위수구역에 의해 봉쇄되여있으며 여기에서 핵무기가 조립되고있다는 의혹이 나돌고있다.》고 보도하였다.

남조선당국은 핵무기개발과 함께 핵운반수단의 도입과 개발도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현재 야포, 미싸일, 핵적재기, 함선 등 각종 핵운반수단들까지 다 갖추게 되였다.1990년대초 남조선군은 대표적인 핵포탄발사기로서 203mm《M-110》과 40개 대대력량의 155mm《M-109》 등의 미국제야포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98년에는 155mm 자행포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다.(남조선잡지《말》1991.3,《국방과 기술》2000.8,《월간군사비젼》1989.6)

미싸일의 경우 1978년에 미국제《나이크 허큘레스》를 모방하여 180km의 사거리를 가진 지대지미싸일 《백곰》을 개발한데 이어 1987년에는 그 개량형으로서 사거리가 250km에 이르고 정밀도와 탄두중량이 훨씬 늘어난 2단형 미싸일인 《현무》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으며 미국으로부터 《오네스트죤》과 《나이크 허큘레스》미싸일까지 넘겨받아 1989년에 벌써 552기의 각종 미싸일들을 보유하였다.(《월간조선》1991.4,《월간군사비젼》1989.9,《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 1989.10) 2001년에 와서는 지대지미싸일《현무》의 개량형으로 알려진 사거리 300km,탄두중량 500kg의 신형미싸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으며 지금은 북의 종심을 타격하자면 사거리가 적어도 500㎞이상은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보다 사거리가 긴《천룡》미싸일개발에 달라붙고있다.(남조선《KBS》방송 2001.11.22,《중앙일보》2001.11.24,《시사져널》1998.9.17)

한편 《우주과학기술연구》 등을 위한 과학로케트를 개발한다는 미명하에 1993년에는 1단 로케트 《KSR-Ⅰ》1,2호기를,1998년에는 2단 로케트《KSR-Ⅱ》2호기를 발사하였다.이것들은 말이 《과학로케트》이지 여기에 장진된 고체연료들은 군사용으로 리용될수 있는 것들이며 중량도 1.2t, 2t씩 나가는것들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핵탄을 적재할수 있게 되여있다.
남조선은 핵적재전투폭격기도 많이 보유하고있는데 1980년대말에 벌써《F-4펜톰》,《F-16》전투기를 비롯하여 그 수는 수백대에 이르렀다.(남조선잡지《말》1991.3,《국방백서》1988)
이상의 사실들은 오늘 남조선이 핵물질의 추출로부터 핵탄제조기술 및 핵운반수단에 이르기까지 핵무기개발과 관련하여 필요한 것들은 다 가지고 있으며 남조선핵문제는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극히 엄중한 현실로 되고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4.남조선핵문제의 주범은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마치도 《핵무기전파방지》를 위한《국제검열관》,《세계헌병》처럼 행세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미국은 저들에게 고분고분하는 손아래 《동맹국》이나 친미적인 나라와 주구들의 핵무기개발은 비호묵인하면서도 반미적인 나라에 대해서는 일부러 《핵개발의혹》을 조작하거나 부당한 《핵무기개발》소동을 벌리면서 위협공갈을 일삼고있다.
남조선핵문제는 미국의 파렴치한 량면성과 2중기준의 전형적인 례이다. 미국은 저들이 마치도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을 엄격히 통제해왔으며 이번 우라니움농축실험과 플루토니움추출사실도 몰랐던것처럼 시치미를 떼고있으나 이것이야말로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미국의 철저한 식민지이고 일거일동이 빠짐없이 미국의 통제와 감시속에 들어있는 남조선에서의 핵개발을 미국이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더구나 미국은 1956년에 남조선미국《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남조선에서의 핵개발연구에 깊이 관여하여왔으며 년례적으로 남조선미국《합동원자력에네르기협력위원회》라는것을 통하여 남조선의 핵개발실태를 구체적으로 장악해왔다.
미국이 남조선에서의 핵무기개발을 묵인 조장하다가 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핵무기개발에 참가하였던 남조선계 미국인 핵물리박사 리휘소를《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이고 나중에는 집권자까지 제거한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개된 비밀이다. 이것은 미국이 핵무기개발을 처음부터 알고있었으며 그에 깊숙이 관여하여 왔다는 것을 반증해주고있다.

전두환《정권》이 선임자가 추진하던 핵무기개발을《대체에네르기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계속하게 된것도 미국의 비호와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시 전두환을 워싱톤에 불러 여론앞에서는《핵비확산정책준수》를 훈시하고는 내적으로는 핵무기개발연구를 계속 추진하되 철저히 미국의 기술지원과 협력에 의거할것을 요구하였다.(《신동아》 2004.8)
미국이 오래전부터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1987년 미륙군 국방대학 전략문제연구소가 발간한《서기 2010년의 세계》라는 보고서에 남조선이《2010년까지 핵무기 500개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된 사실과 1993년 미국의 핵기술전문가들이 동원되여 미의회의 기술평가처 명의로 작성된《대량살상무기확산위험평가》라는 보고서에 남조선이 오스트랄리아,카나다,벨지끄 등과 함께 레이자동위원소 분리기술을 보유한 대상으로 지적된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미국은 또한 1992년에 핵무기나 핵물질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이른바《2중사용품목》 65개를 선정하였는데 바로 이번에 폭로된 남조선의 우라니움농축실험에 사용된 장비와 시설은 그 통제품목에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1985년에 남조선이 연구용원자로에서 천연우라니움 700kg을 핵연료로 리용한 사실이 국제원자력기구에 통보되고 1998년과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가 남조선의 원자로들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플루토니움추출흔적을 발견한 사실도 있었다.(《월간조선》1991.10,《시사져널》2004.9.23,《경향신문》2004.9.15)

그러나 이것역시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하여 알고도 모르는 척 덮어두었다. 미국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을 묵인해주었을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 도와주고 뒷받침해주었다. 사실 미국의 기술과 장비의 지원이 없이는 남조선에서의 핵물질실험과 핵무기제조를 생각할 수 없다. 남조선이 1982년에 플루토니움추출실험을 한 연구로《트리가마크 2》와《트리가마크 3》 도 모두 미국이 기술지원을 하고 설치까지 해준것이다. 미국은 1982년에 저들의 기술용역회사《번즈 앤드 로》를 내세워 남조선과 고속증식로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그를 도와주도록 하였으며 1985년 5월에는 남조선《에네르기연구소》(현《한국원자력연구소》)가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조사후시험시설》(현《조사재시험시설》)에 가져다 플루토니움추출시험을 할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회사년감》 1997,《월간조선》1990.4)

심지어 미국의《콤버스천 엔지니어링》회사는 남조선 령광원자력발전소 3,4호기에 대한 공동설계작업을 진행하면서 원자탄설계 및 모의시험,제작 등에 리용되는 무려 201건의 기술자료들을 넘겨주었다.(《월간조선》 1990.4) 미국은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에 전용될수 있는 민감한 기술들을 남조선과의《과학기술협정》을 통하여서도 체계적으로 이전해왔다. 1988년 10월에는 이 협정의 유효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남조선당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저들이 넘겨준 100건의 핵관련기술을 포함한 미국군사특허비밀이 새여나가지 않도록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현재 남조선에서 가동중인 원자로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제이며 연료인 농축우라니움의 31%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있다.(《세계일보》2004.9.22) 미국은 남조선의 핵과학기술자들을 미국에 데려다가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습시켰다. 남조선미국 《원자력협정》에 따라 많은 연구인원들이 미국 알곤국립연구소에서 훈련을 받은것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의 핵기술진 30여명이 미국의 《콤버스천 엔지니어링》회사와 GE사에서 원자력발전소건설관련 기술전습을 받는다는 미명하에 핵무기개발과 관련한 기술을 익힌것 등은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중앙일보》1994.8.23,《월간조선》1995.4)
남조선의 핵분야에서 주도적역할을 하는 14명의 핵심과학자들을 비롯한 1,000여명의 학자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였거나 미국과의 공동연구에 참가한 적이 있다.(《한국인명록》1992,《한겨레》1992.5.28,《월간조선》1990.4)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이 남조선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정책적후원뿐 아니라 물질기술적, 인적지원도 직접 다 맡아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남조선이 핵무기운반수단을 보유하는 것도 도와주었다. 1950년대에 핵무기를 탑재할수 있는《오네스트죤》미싸일을 반입하여 남조선군에 넘겨준것도 미국이며 1960년대에 핵전쟁연습에 동원되였던《나이크 허큘레스》,《마타돌》,《호크》미싸일을 비롯한 원자탄 및 유도무기들을 남조선에 그대로 넘겨준것도 미국이다.(남조선잡지《말》 1991.3)
또한 1970년대초에는《록키드 마틴》회사를 내세워 남조선에 미싸일추진제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해주었으며 1979년에는 남조선미국《미싸일협정》이라는 허울을 씌워 남조선이 180km의 사거리를 가진 미싸일을 자체로 개발할수 있도록 공식 승인해주고《나이크 허큘레스》미싸일의 남조선판매를 허용해주어 남조선이 미싸일개발에 나설수 있도록 적극 밀어주었다. (남조선도서《군》1994.11.17)

1990년 미국은 남조선과 미싸일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과 부분품을 적극 지원해준다는 내용의 《보장서한》을 체결하였으며 2001년에는 남조선에 300km,500km의 사거리를 가진 미싸일의 개발을 허락하고 실전에 배치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경향신문》1996.6.12,《시사져널》2002.12.19)
제반 사실들은 미국이 남조선당국의 핵무기개발책동을 오래전부터 손금 보듯 알고있으면서도 그것을 비호묵인하였을뿐아니라 적극 조장하고 협력하였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 미국은 이번에 터진 남조선의 비밀핵물질실험사건과 관련해서도 엄중히 문제시할 대신 저들이 묵인해준 정체가 드러나게 될가바 꺼려하면서 극력 비호 두둔하고 있다. 미국무성대변인은 남조선의 농축우라니움이 극소량이여서 핵무기제조는 생각할 수 없으며 남조선당국이 농축실험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히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있다고 하면서 《크게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미국무장관 포웰, 국방장관 람스펠드 등도 련달아 나서서 《우라니움농축실험과 플루토니움추출실험은 학술실험목적에 불과한것이 명백하다》,《핵무기개발과 무관하다》고 떠벌이면서 남조선핵문제를 감싸주고있다. 더우기 미국은 남조선이《국제원자력기구조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고 자발적으로 실험내용을 신고한 점은 모범적인 사례》라는 등으로 낯간지러운 소리까지 줴치고있으며 남조선핵연구기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질질 끌면서 투명성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외여론을 우롱하고있다.

미국의 조종을 받은 국제원자력기구 역시 남조선핵기지에 대한 기만적인 사찰놀음을 벌려놓으면서 아직 최종사찰결과가 나오기도 전에《불법적인것은 아니》라느니,《단순한 소규모의 과학적인 실험에 불과한것》이라느니,《핵무기개발의도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미국에 발라 맞추고있다. 그러나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수 없듯이 남조선핵문제의 진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드러나고있다. 지금 국제사회는 미국의 비호묵인하에 감행된 남조선핵무기개발의 진상과 배후에 숨겨진 미국의 정체를 명백히 가려낼것을 요구해나서고있다.

남조선핵문제는 조선반도정세와 북남관계에 엄중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건이다. 지금까지 핵문제에서 저들은 깨끗한척 하면서 미국상전과 함께 입만 떨어지면 《북핵문제》를 떠들어온 남조선이 지난 수십년동안 뒤골방에서 비밀리에 핵무기개발을 위한 딴 장난을 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철면피하고 속이 검은가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과《동맹관계》에 있는 남조선의 핵무기가 누구를 겨냥하겠는가 하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과 남조선은 그로 하여 빚어지게 될 위험천만한 후과에 대하여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남조선핵문제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여야 한다. 남조선당국은 그 누구의 핵문제를 떠들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핵문제부터 똑똑히 밝혀야 하며 미국의 비호 묵인밑에 범죄적인 핵무기개발을 숨기고있은데 대하여 사죄하고 모든 핵무기개발계획을 백지화해야 할것이다.

주체93(2004)년 10월 21일
평 양


조국통일연구원 고발장/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지배는 더 이상 허용될수 없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자주적인 새정치,새생활을 지향하는 기운이 급격히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지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울려 나오고 있다.
미국은 반세기도 훨씬 넘는 근 60년동안 남조선을 강점하고 자주와 민주,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하였으며 인민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지배는 그 장기성과 악랄성, 횡포성에 있어서 류례가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남조선에서 감행한 인권유린행위는 이라크포로학대행위에 비교조차 할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잔악한것이다.
조국통일연구원은 미국이 남조선을 강점하고 자주, 민주, 통일을 악랄하게 가로막아왔으며 썩은 정치를 부식시키고 온갖 범죄적만행을 감행해온 사실을 력사적으로 폭로하여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자주권의 횡포한 유린과 썩은 정치의 부식

자주권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 우리 겨레는 누구보다도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귀중히 여기는 자존심 높은 민족이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지배로 하여 지금까지 단 하루도 외국군대가 없는 세상에서 자주적인 정권과 진정한 민족군대를 가지고 존엄있는 삶을 누려보지 못하였다.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식민지지배는 일본제국주의의 악착성에 미제국주의의 교활성과 횡포성을 더한 전대미문의 것이다.

미국의 남조선강점은 애당초 국제법적근거가 없는 완전히 불법, 비법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유린이다. 미국은 남조선을 강점하자마자 군정》을 선포하고 일제의 총독정치를 무색케 하는 가혹한 《군정》통치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저들의 손때묻은 주구들을 내세워 친미괴뢰정권을 조작하여 미국식의 식민지지배체계를 구축하였으며 그를 통해 남조선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철저하게 예속시켰다. 남조선인민들은 광복의 기쁨을 미처 맛볼사이도 없이 미국의 군화발에 짓밟히게 되였으며 남조선은 자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미국의 식민지로, 세습령지로 화하였다.

남조선에서는 지금까지《대통령》선거가 16차례,《국회의원 》선거가 17차례 있었지만 미국의 간섭으로 하여 남조선인민들은 언제한번 진정한 주권행사를 해본적이 없다. 미국은 식민지통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주구를 바꾸어가면서 지배와 예속의 올가미를 더욱 조여맸다. 남조선에서의 《5.16군사쿠데타》와《12.12숙군쿠데타》,《6.29무혈쿠데타》 등은 그 대표적인 실례들이다. 이전 미중앙정보국장 알렌이 《내가 재임중 미중앙정보국의 대외활동에서 가장 성공한것은 남조선에서의 군사쿠데타였다》고 실토한 사실을 사람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남조선에서 쿠데타는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이번 제17대 《총선》과 관련해서도 친미수구보수세력들이 밀리게 되자 그들을 부추겨 《국회》에서 민심을 거역한 《탄핵》반란까지 일으켰다가 참패당하였다. 인민들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낸 이번 《의회쿠데타》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간섭과 지배책동의 진면모를 드러낸것으로서 미국이야말로 남조선인민들의 자주적지향을 가로막는 기본암초라는것을 다시한번 똑똑히 보여주었다.
남조선《정권》은 미국의 승인이 없이 주요정책결정은 물론 말한마디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요구에 《아니》라고 말할수 없는 식민지하수인으로서의 노예적굴종을 강요당하고있다.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면 시장을 열어주고 대포밥을 내라면 대포밥을 바쳐야 하며 강점비를 내라면 그것도 섬겨바쳐야 하는것이 오늘 자주권을 상실한 남조선의 비참한 현실이다. 미국은 남조선통치자들을 머슴군처럼 부려먹다가는 저들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비위에 거슬리면 《대통령》이건 뭐건 불러다 마구 호통을 치고 지어 목을 떼고 죽이는것도 서슴지 않았다.1979년 10월의《박정희사살사건》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남조선당국자가 미국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 평양을 방문하여 6.15공동선언에 수표하였다고 하여 워싱톤에 불러다 야단친 사건도 그 후임자가 《해볕정책계승》과《대북평화번영정책》을 들고나왔다고 하여 미국에 호출하여 《대북강경조치》를 강박하고 그것을 《정상회담》 공동문건에 박아넣은 사건도 그 한 례이다. 지금까지 미국남조선사이에 《정상회담》이 33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남조선당국자의 미국행각이 20차례,미국대통령의 남조선행각이 9차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미국의 식민지지배를 강화하고 침략적,략탈적요구를 내리먹이기 위한것이였다.

미국은 남조선을 강점한후 오늘에 이르기까지《과도기간 잠정적군사 및 안전에 관한 협정》,《통수권이양에 관한 협정》,남조선미국《호상방위조약》,남조선주둔 미군지위에 관한 《행정협정》,남조선미국《경제원조협정》을 비롯하여 숱한 예속적인 조약과 협정들을 조작하여 남조선을 저들의 지배에 꽁꽁 얽어매놓았다. 이 조약들에 의해 남조선의 군사주권이 미국에 《양도》되고 미제침략군의 남조선영구강점과 《유사시》 조선전쟁자동개입이 《합법화》되였다. 또한 남조선강점미군에 기지사용,기지이전,주둔비부담과 각종 조세납부 등에서 무제한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였다.

미국은 남조선의 좁은 땅덩어리에 무려 100여개의 군사기지를 전개하고 있으며 남조선강점 미군 1명이 차지하는 기지면적은 남조선주민 1인당 차지하는 거주면적의 8배이상이다. 남조선인민들이 매해 미군강점비용으로 바치는 혈세는 수십억US$에 달한다. 미국은 서울룡산기지이전을 떠들면서 그에 필요되는 백수십억US$에 달하는 기지이전비용도 전부 남조선인민들에게 들씌우고있다. 이 지구상에 미국의 주요해외군사기지만도 700여개나 되지만 남조선처럼 강점군에 자기의 땅과 바다, 하늘을 송두리채 제공하고 강점비용과 기지이전비용까지 섬겨바치는 굴욕을 당하고있는곳은 없다. 남조선은 말그대로 미국의 속국, 《식민1번지》,《51번째주》로 전락된지 이미 오래다. 남조선의 대미예속은 미국인 고문에 의해 중세기적인 섭정을 받던 그때나 오늘이나 달라진것이 없다.

남조선정치가 오늘처럼 썩게 된것도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식민지지배의 후과이다. 미국은 남조선에 썩은 정치를 부식시킨 장본인이다. 미국이 근 60년동안이나 남조선을 타고앉아 배워주고 류포시킨것이란 폭력과 부정부패,사기협잡과 패륜패덕,살인,강도,강간 등 사회악과 양키문화와 같은 썩은것밖에 없다.《마피아당》,《차떼기당 》으로 악명을 떨친 《한나라당》도 다름아닌 미국이 키워낸 족속들이다.
남조선은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언어도 썩을대로 썩어 제것은 거의나 없는 남의것,미국의것으로 되여버렸다. 미국의 군사적강점은 수십만명의《양공주》와 혼혈아를 산생시켜 민족의 피줄마저 흐려놓고있다. 인류력사는 침략과 강점, 식민지지배와 관련한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미국의 남조선강점처럼 점령지역의 모든것을 빼앗고 초토화한 실례는 일찍이 알지 못한다.

민주와 인권에 대한 야만적인 교살

민주와 인권은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초보적이고도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류례없는 군사적강점정책과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사람으로서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깡그리 빼앗기고 생명까지 무참하게 잃고있다.
남조선에 군사적강점의 첫발을 들여놓은 미국이 먼저 시작한 일도 8.15광복후 세워진 인민위원회들을 강제해산하고 애국적인 민주주의정당들과 단체들을 강압적으로 해체하며 통일적인 민주주의정부수립을 요구하는 인민들의 투쟁을 총칼로 탄압하는것이였다. 이 과정에 수많은 애국적인민들이 학살되였다.

미국은 1948년 4월 제주도에서만도 《군정》을 반대하는 인민항쟁참가자들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칼로 찔러죽이고 목매달아 죽이고 생매장해 죽이는 등으로 주민의 4분의 1이상을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10월인민항쟁과 9월총파업을 비롯한 로동운동탄압 등으로만도 수십만명이나 학살하였다. 또한 인민당 당수 려운형과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를 비롯하여 많은 애국적민주인사들을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테로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을 강점한후 조선전쟁전까지 5년간에만도 무려 100여만명의 애국적인민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국이 조선전쟁시기 감행한 피비린내나는 대학살만행은 이 땅의 산천초목도분노에 떨게 하는 천추에 용납못할 가장 야만적인것이였다. 미국은 군사적공격대상도 아닌 무고한 인민들을 남녀로소 할것없이 비행기와 대포까지 동원하여 무차별 학살하였다. 로근리민간인대학살만행은 그 일단이다. 미국은 서울에서 13만 6,000여명,경기도와 전라남북도에서 55만여명,충청남북도에서 16만 7,000여명,경상남북도에서 18만 9,500여명,남조선강원도에서 19만 7,000여명 등으로 전쟁 3년기간 남조선각지에서 무려 124만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살륙하였다.

전후 미국은 더욱 가혹한 식민지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남조선을 민주주의의 페허지대,인권생지옥으로 전락시켰다. 남조선인민들은 친미파쑈독재의 학정밑에서 보고 듣고 말할 권리마저 박탈당하였다. 미국은 앞에서는《민주주의와 박애,인권》을 부르짖었지만 뒤에서는 자유와 민주의 교형리로,인권의 교살자로,가장 야만적인 살인자로 행동하였다.
파쑈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4.19봉기를 쿠데타로 짓누른 주범도 미국이고 5.18광주봉기를 피묻은 군화발로 짓밟은 주모자도 미국이다. 미국은 광주봉기참가자들에 대해 괴뢰군공수특전대를 내몰아 총과 수류탄, 땅크와 장갑차,직승기까지 동원하여 살륙하다못해 나어린 중학생들을 철퇴로 때려죽이고 대검으로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 내동댕이치고 녀대학생들의 젖가슴을 도려내여 죽이게 하였다. 미국이 광주대학살에 자기 관할하에 있는 괴뢰군병력을 동원하도록 지시하였다는것은 당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글레이스틴이 미국무성에 보낸 전문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있다. 광주는 온 도시가 피의 목욕탕,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화하였다.

광주의 《피의 5월》은 미국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고발하는 산 증거로 력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한페지를 기록하였다. 미국은 총격과 폭행, 강도와 강간, 방화, 고의적인 교통사고, 군사연습 등으로도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나물캐는 소녀를《꿩》이라고 쏘아죽이고 송유관부근에서 놀고있던 3살난 어린이를《휘발유도적》이라고 총으로 쏴죽인 1957년의《군산소녀총격사건》과《인천 송유관어린이사살사건》,구두닦이 고아소년을 도적으로 몰아 칼로 란도질하고 뻬찌로 두 발톱과 머리칼을 잡아뜯은 후 전신에 골탄칠을 하여 나무상자에 처넣고 못을 쳐 직승기로 실어 내던진 1958년의 《부평소년직승기궤짝사건》,녀인을 강제로 병영에 끌고가 옷을 발가벗기고 집단릉욕한후 가죽채찍으로 마구 때리고 온몸에 뼁끼칠을 하여 거리에 내쫓은 1959년의《동두천녀인 뼁기칠사건》,나무하는 농부를《노루》라고 쏴죽인 1962년의《파주나무군사살사건》,《M -16》소총성능시험을 한다고 하면서 여러명의 주민들을 과녁으로 세워놓고 조준사격하여 학살한 1981년의 《총기란사사건》등 미국의 각양각색의 야만행위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특히 미제침략군놈이 동두천기지촌의 녀종업원을 릉욕한뒤 그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쳐 실신케 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녀성의 자궁에 병을 틀어박고 홍문에 우산대를 꽂아넣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지른 1992년의 《윤금이살해사건 》과 길가던 나어린 녀중학생들을 장갑차로 뒤쫓아가며 갈지자로 깔아뭉개 죽인 2002년 6월의 《신효순, 심미선학살사건》은 잔인성과 흉악무도성의 최악의 기록이다.
미국살인귀들에게 있어서 남조선인민들은 애당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꿩이나 오리,들쥐와 같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고 기껏해서 인디안과 같은《미개한 토착원주민》이거나《식민지렬등민》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였다. 미제침략군이 남조선에서 감행한 민주와 인권에 대한 유린과 야만적인 학살만행은 개별적인 소행이 아니라 미국지배층의 지시와 명령에 따른 조직적인 범죄이다.

1945년 9월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침략군 사령관 하지가《포고문》제1호를 통해《반항하는 행동을 하거나 또는 질서와 보안을 교란하는 자는 용서없이 엄벌에 처할것》이라고 명령한 사실,지난 조선전쟁때 미8군사령관 워커가 미군사병들에게《닥치는대로 죽이라,설사 그대들앞에 나타난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고 할지라도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고 살인명령을 내린 사실 그리고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였던 워커가 광주인민항쟁자들을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들》이라고 모독한 사실과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사령관이였던 윅캄이 광주학살만행후 《남조선인들은 들쥐와 같다. 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알맞지 않는다》고 줴친 사실들은 더없이 치떨리는것이였다.미국지배층의 관점과 사고방식이 이러할진대 여기에서 어떻게 남조선인민들의 민주주의적권리와 인권에 대해 기대할수 있겠는가.

미국의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남조선에서는 전쟁시기도 아닌 전후시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8만 3,0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인민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미국이 남조선을 강점한후 지난 근 60년간 남조선에서 감행한 만행은 총 30여만건에 이르며 그에 의한 희생자는 무려 2백수십만명에 달한다.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이후 민간인학살자수로서는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전쟁시기 인명피해를 제외하고는 세계최고기록이다.

이라크에서는 미군의 강점 1년과 포로학대행위에 인민들이 들고일어나고 세계가 벅적 떠들고있는데 근 60년에 걸치는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그 기간에 감행된 구천에 사무치는 그 무수한 야수적만행에 대하여 어찌 참을수 있겠는가.
이라크에서 미군이 포로들에게 성적수치를 강요한 비인간적학대행위가 크게 문제시되고있지만 도대체 그것이 남조선녀성들에게 가한 미제침략군의 귀축같은 만행들에 비할수 있으며 이라크에서 미군이 포로들을 벌거벗겨 개처럼 목에 바줄을 매여 끌고다닌 학대행위가 규탄을 받고있지만 남조선에서 포로도 아닌 무고한 주민을 군견이 물어뜯어 죽게 한 미제침략군의 천인공노할 살인만행에 비길수 있는것이겠는가.

실로 남조선에서는 미국강점군에 의하여 그 어느 하루도 인민들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날이란 없었다. 남조선의 거리와 마을, 산과 들, 골짜기와 강 그 어디에나 인간백정 미국살인귀들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민들의 령혼이 파묻혀있지않는고장이란 없다. 남조선에 미국야수들에 의해 희생된 애국인사들과 민주화의 용사들, 무고한 인민들의 묘비를 아무리 세우고 도처에서 미국을 규탄하는 초불시위를 아무리 벌려도 무참히 쓰러진 동포형제들의 미국에 대한 사무친 저주와 원한을 어찌 다 풀어줄수 있겠는가. 미국은 남조선에서 민주와 인권을 교살하고 수백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그 조직적 범죄만으로도 가장 야만적인 전범자의 치욕을 면할수 없다.

통일의 장애물, 전쟁의 화근

분렬된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은 민족최대의 숙원이다. 미국은 우리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일뿐아니라 통일의 기본장애이고 대결과 전쟁의 화근이다. 력사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전패국도 아닌 우리 나라가 북과 남으로 분렬되게 된것은 전적으로 미국때문이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말기에 조성된 정세를 리용하여 조선반도 남쪽절반이라도 먹어보려고 《분할점령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와 38°선이남을 강점하였다. 5천년의 력사국이고 통일국가였던 우리 나라가 국제협정도 아닌 단 두명의 미군 대좌에 의해 그어진 《선》에 따라 허리가 잘리우게 되고 일개 미군사령관에 불과한 맥아더의《일반명령 1호》에 따라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함으로써 하루아침에 분렬국으로 된것은 참으로 통분할 일이다.

미국은 남조선을 강점한후 우리 나라를 영구분렬시키기 위해 합법적인 통일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남조선에 친미단독《정부》를 세웠으며 공화국북반부까지 집어삼켜보려고 조선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조선전쟁에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한 미국은 여기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전후에 들어와 분렬과 대결,전쟁책동에 더욱더 매달리였다.

미국은 1960년대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밑에 남조선에서 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자 《5.16군사쿠데타》를 조작하여 그에 찬서리를 내렸으며 1970년대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이 천명된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여 온 겨레가 통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끓어번지자 분렬주의적인 《두개 조선》정책과 《유신》독재《정권》을 조작하는것으로 그에 차단봉을 내렸다. 1980년대에 북과 남사이에서 처음으로 여러 갈래의 대화가 시작되고 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이 오가게 되자 범죄적인《교차승인론》과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확대로 그에 재를 뿌렸으며 1990년대에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제시되고 북남사이에 《화해와 협력,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여 북과 남, 해외의 전민족적범위에서 조국통일운동이 힘차게 벌어졌을 때에는《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와 반공화국핵소동으로 그것을 가로막아나섰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온 겨례와 전세계를 격동시킨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였을 때에도 이에 전면적으로 도전해나섰다.당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보즈워스는 북남수뇌상봉과 관련한 합의가 처음 공개되자 《놀라운 결정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것은 우방간에 있을수 없는 일》,《 4.8합의서에 7.4공동성명의 3대원칙을 재확인한것은 미군철수를 의미하는것》이라고 하면서 당장 철회하라고 고아댔으며 지어《미국으로서는 기분 나쁜 일》이라고까지 행패질을 하였다.
지어 미국은 남조선당국자를 워싱톤에까지 불러다 저들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다고 마구 욕질을 해댔으며 선언의 자주적립장이 반영된 조항들을 문제시하면서 백지화할것을 강박하였다.

지난해에는 극우보수세력들을 추동하여 6.15공동선언발표를《국치》로 헐뜯으면서 악랄하게 모독하였으며 그것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게 되자 나중에는 미재무성산하 외국자산통계국의 반공화국모략자료까지 그들에게 쥐여주면서《대북송금사건》을 조작하여 6.15관련자들을 《특검》에 걸어 줄줄이 잡아가두게 하는 횡포를 감행하였다.
한편 미국은 6.15공동선언발표후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에 제동을 걸어보려고 반공화국핵소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리면서 《핵문제와의 련계》니,《병행추진》이니,《속도조절》이니 하고 떠들어댔다.

미국은 북남경제협력사업이 활발해지자 그에도 개입하여《퍼주기》니,《투명성》이니,《군사전용》이니 하면서 돈 한푼, 전기 한KW도 제공하지 못하게 엄격히 통제하였는가 하면 북남철도,도로련결에 대해서는《유엔군사령부》허가를 구실로 비틀어대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은 《조사》요 뭐요 하며 늦잡게 하고 경제인들을 위협하여 투자를 못하게 뒤다리를 잡아당겼다. 미국의 반통일책동이 얼마나 우심하였으면 남조선언론들이《될만 하면 꼬이는 남북관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미국은 남북이 평화와 통일문제를 스스로 결정할가봐 눈을 부라리고있다.》고까지 보도하였겠는가.
미국의 북침전쟁책동은 위험계선에 이르고있다.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서의 참패를 만회하며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을 어떻게하나 실현해보려고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전쟁책동을 계단식으로 확대해왔다. 특히 미국의 부쉬행정부는 우리 공화국을《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대상에 포함시켰으며《이라크 다음은 북조선》이라고 공공연히 떠벌이면서 북침전쟁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 고발장미국의 최신전쟁장비들이 남조선과 그 주변에 집결되고《련합전시증원연습》,《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지 포커스 렌즈》합동군사연습,《대테로련합훈련》등 대규모의 북침전쟁연습이 더욱 빈번히 벌어지고있다.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이 새로운 군사작전교범과 전술교리에 따라 재배치되고 조선동해에 전쟁전야에만 전개되는 미국의 《이지스》구축함 배치계획이 발표되였다.이라크전쟁경험에 기초한 북침전쟁계획인 《신작전계획 5026》이 작성되였으며 공화국북반부 지하군사시설들을 타격할수 있는 신형소형핵무기의 개발이 다그쳐지고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곤경에 몰리게 되자 최근 남조선에서 미군병력의 일부를 이라크에 빼내가는척하는 놀음을 벌리고있으나 전쟁장비는 그대로 남겨두고 오히려 130억US$분의 막대한 최신전쟁장비를 새로 들이밀려하고있다. 결국 미군의 이라크이동배치는 병력감축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최신전쟁장비반입을 통한 무력증강을 노린것이며 새로운 첨단무기전법에 의한 북침전쟁계획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것이다.미국은 지난시기에도 웨남전쟁 등 기회에 여러차례에 걸쳐 남조선강점 미군감축놀음을 벌렸으나 그때마다 그것을 구실로 남조선에 더 많은 최신전쟁장비들을 반입하고 전쟁책동을 한층 로골화하였다.

한편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려세울수 없는 핵페기》(CVID) 를 고집하고 《핵무기목격설》과 《우라니움수출설》까지 들고나와 반공화국소동에 더욱더 매달리고있다.이것이 북침전쟁의 구실을 얻기 위한것이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제반사실은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이야말로 분렬과 대결의 원흉이고 통일의 원쑤이며 평화의 적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실로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지배의 력사는 자주를 유린하고 썩은 정치를 부식시킨 력사이고 민주와 인권을 교살한 력사이며 통일을 방해하고 전쟁위험을 몰아온 력사이다. 미국이 근 60년동안 남조선을 강점하여 인민들에게 끼친 인적물적피해는 무려 43조US$를 넘는다. 이것은 미국의 년간국내총생산액의 4배이상에 달하는 천문학적액수이다. 더구나 미국이 남조선인민들에게 끼친 정신적피해를 어찌 수자로 다 계산할수 있겠는가.

남조선인민들은 일제식민지통치 40여년에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지배 근 60년으로 하여 100년세월 외세의 압제에 시달리고있다. 랭전이 종식된지도 10여년세월이 흐르고 분렬되였던 다른 나라들이 통일을 이룩한지도 오래되였지만 유독 우리 민족만이 아직까지 지난 세기의 낡은 랭전대결과 분렬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있다. 이 얼마나 분통하고 수치스러운 사태인가. 남조선인민들은 너무도 오랜 미국의 군사적강점에 이제는 신물이 났다.

조선속담에 3일묵어 반가운 손님이 없다고 하물며 불청객이 3년도 아니고 수십년동안이나 남의 집에 와있으니 어찌 진절머리가 나지 않겠는가. 태여나서 60환갑 나이에 이르도록 외국군대에 짓밟히고 그의 군사적강점과 지배밑에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하는것이 결코 남조선인민들의 숙명이 아니다.

이제는 온 민족이 떨쳐나서 미국의 죄악을 총결산하고 쌓이고 쌓인 천추의 한을 풀 때가 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이 지난 2002년《대선》과 얼마전의 제17대《총선》,《탄핵》사태를 통하여 낡은 친미수구보수세력들에게 가한 심대한 타격은 새것을 위한 첫 걸음으로 된다. 이제는 이 승리의 첫걸음을 남조선에서 낡고 썩은 모든것의 총본산이며 아성인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지배를 종식시키는데로 당당히 이어나가야 한다.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층 인민들은 민족자주의식을 가지고 지난세기의 낡은 유물인 미국의 군사적강점과 식민지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에 더욱 과감히 떨쳐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남조선에 미국군대가 없는 자주의 깨끗한 세상, 미국의 지배가 없는 참다운 새 세상,새 정치를 펼쳐야 한다.

남조선에서 미국군대가 나간다고 결코 《안보불안》이 오거나 《안보공백》이 생길것은 없다.민족의 안전과 조선반도의 평화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 겨레 자체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공조로 지켜야 한다.우리의 위대한 선군정치는 그에 대한 확고한 담보로 된다. 미국은 남조선에서 침략의 검은 손을 떼고 물러가야 한다.미군이 남조선에 더 이상 남아있어야 할 리유란 없다. 미국이 지금까지 구실로 내들었던 그 무슨《남하》니, 《남침》이니 하는것들은 랭전종식과 북남공동선언으로 하여 날아난지 오래다. 미국은 《이라크이동배치》니,《감축》이니 하는 놀음으로 여론을 기만할것이 아니라 모든 미군과 전쟁장비까지 다 싸가지고 완전하고도 영구적으로,되돌릴수 없게 남조선에서 무조건 철수하여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은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민족자주와 민족제일주의정신을 가지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공조로 미군을 남조선에서 하루빨리 철수시킴으로써 미국의 오랜 군사적강점과 지배에종지부를 찍어야 할것이다.

주체93(2004)년 6월 2일
평 양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국통일연구원 비 망 록

미제가 남조선인민들에게 저지른 전대미문의 대범죄를 결산한다


올해는 미제침략군의 남조선강점을 영구화한 매국적인 남조선미국《호상방위조약》이 조작된지 반세기가 되며 2005년에 가면 미제가 남조선에 강점의 첫발을 들여놓은지 60년이 된다.
인류력사에는 침략과 략탈에 대한 기록들이 많지만 미제의 남조선강점처럼 점령지역을 철저히 식민지화하고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그러한 례를 아직 알지 못한다.
미제가 1945년 9월 8일 남조선을 강점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2만 1,200여일동안 그 어느 하루도 남조선에서는 미제야수들에 의해 인간살륙만행의 피가 흐르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파괴와 략탈의 재난이 그친 날이 없었다. 남조선에서 미제가 저지른 범죄는 그 규모와 지속성,포악성과 악랄성에 있어서 실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전대미문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는 《해방자》,《원조자》로 자처하면서 오늘도 남조선인민들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온갖 전횡과 횡포를 일삼고있으며 우리 민족에게 핵전쟁의 참화까지 들씌우려 하고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조국통일연구원은 공동으로 미제가 남조선에서 저지른 전대미문의 대범죄를 결산하기 위해 그들이 남조선인민들에게 끼친 인적,물적피해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피해액을 총체적으로 종합계산하여 이 비망록을 발표한다.

1. 인 명 피 해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고 저지른 범죄중에서 가장 큰 범죄는 인간살륙만행이다.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미제의 학살만행은 침략적인 세계제패전략과 식민지지배정책에 따른 조직적이며 국가적인 범죄였다.
미제는 남조선강점직후와 조선침략전쟁시기에 인구의 10프로에 해당하는 많은 민간인들과 애국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만행을감행하였으며 전후에도 총격과 폭행 및 테로,강도와 강간,방화,고의적인 교통사고,전염병류포와 고엽제살포 등으로 무고한 주민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갔다.

** 인명피해자수
**강점직후 학살자수(1945.9-1950.5)
화순탄광로동자들의 투쟁을 비롯한 로동운동탄압에 의한 학살 1만 1,000여명
제주도4.3인민항쟁탄압에 의한 학살 7만여명
지리산인민유격대탄압에 의한 학살 15만여명
10월인민항쟁탄압에 의한 학살 1만여명
려순항쟁탄압에 의한 학살 3,500여명
《보도련맹사건》탄압에 의한 학살 50여만명
기타 학살 25만 5,500여명
계 100만여명

**조선전쟁시기 남조선에서의 학살자수 (1950.6-1953.7)

서울 13만 6,000여명
경기도 16만 2,500여명
충청남북도 16만 7,000여명
전라남북도 38만 8,000여명
경상남북도 18만 9,500여명
남조선강원도 19만 7,000여명
제주도 400여명
계 124만여명(군인 제외)

**전후 학살자수(1953.8-현재)

총격과 폭행 및 테로,강도와 강간,방화,고의적인 교통사고 등에 의한 사망자 5만 7,500여명
류행성출혈열류포로 인한 사망자 2만여명
고엽제살포로 인한 사망자 500여명
웨남전쟁파병과 그 후과로 인한 사망자 5,000여명
계 8만 3,000여명
이상의 자료를 종합하면 총 인명피해자수는 사망자가 232만 3,000여명,부상자는 652만여명에 이른다.

이것은 남조선령토의 크기로 보나 인구수에 비해 볼 때 인류력사상 강점군에 의한 가장 큰 민간인인명피해로 된다. 미제는 남조선에서 감행한 학살만행에 대해 언제한번 죄의식을 가지고 사죄한적이 없으며 자국민이 다른 나라에 의해 입은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엄청난 보상을 요구하면서도 남조선인민들에게 입힌 인명피해에 대해서는 완전히 외면해왔다.
미제에 의해 남조선인민들이 입은 인명피해액을 국제관례에 따른 계산방법대로 그들이 생존하여 더 일할수 있는 기간과 얻을수 있는 소득,리자와 US$가치변화 등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사망자피해액 9조 3,430억 2,005만US$
부상자피해액 13조 1,057억 2,812만US$
총 인명피해액 22조 4,487억 4,817만 US$

** 리자는 미련방준비제도리사회가 최근 50년동안 발표한 기준금리의 평균수치 5프로를 적용(리자률적용은 아래에서도 같음)
미제는 남조선에서 감행한 이 엄청난 전대미문의 인간살륙만행만으로도 인류와 력사앞에 1급전범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할수 없다.

(자료출처;《대한민국통계년감》,《한국통계년감》, 남조선단행본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주한미군 30년사》,《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쏴라》,《로근리에서 매향리까지》, 남조선 신문,잡지,통신,방송,AP통신,교도통신,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외신 등)

2. 물질경제적피해

미제가 남조선에서 감행한 또 하나의 범죄는 남조선에 막대한 물질경제적피해를 가져다준것이다.
제국주의적침략과 군사적강점에는 파괴와 략탈이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미제침략군이 남조선을 강점하고 저지른 파괴와 강탈은 그 수법과 내용,규모에서 동서고금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가장 횡포하고 교활하며 악착한것이였다.

** 강제수탈에 의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군정》통치를 실시하여 일제가 소유하고있던 재산들을 《적산》의 이름밑에 강탈하여 본국으로 빼돌리거나 남조선에서 새로운 친미매판자본을 육성하며 식민지통치기반을 축성하는데 리용하였다.
또한 일제시기보다 더 가혹한 세금제도를 들씌워 남조선인민들의 고혈을 짜냈을뿐아니라 일제의 공출제도를 본딴 《미곡수집령》 등을 내리먹여 수많은 량곡과 광물자원을 략탈하였다.

-《적산》에 의한 략탈
공장 및 광산 1만여개
가옥 10만여채
농경지 32만 4,404정보 등
당시가격으로 148억 6,400만US$
이것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한 피해액
2조 5,438억 6,964만US$(리자적용기간 44년)

**《적산》에 의한 략탈은 강점직후부터 1958년까지 진행 -세금징수에 의한 수탈
수탈액은 당시가격으로 61억 6,800만US$
현재가격으로 환산된 피해액 1조 7,194억 7,755만US$(리자적용기간 54년)

** 세금징수에 의한 수탈은 《군정》통치기간인 1948년까지 진행 -량곡 및 광물략탈
량곡수탈 169만 6,160톤(당시가격 1,866만US$)
광물략탈 70만 2,530톤(당시가격 1억 351만US$)
이것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하면
량곡수탈로 인한 피해액 52억 192만US$(리자적용기간 54년)
광물략탈로 인한 피해액 131억 1,677만US$(리자적용기간 40년)
계 183억 1,869만US$

** 량곡수탈은 1948년까지,광물략탈은 1960년대초까지를 기본으로 계산
이상의 통계를 종합하면
강제수탈에 의한 총피해액 4조 2,816억 6,588만US$

** 파괴에 의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이후 조선전쟁전까지 제주도와 지리산,태백산,마산,부산,대구,려수,통영,의령 등 남조선전지역에서 인민들의 반미애국투쟁을 탄압하는 과정에 많은 가옥과 산림들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였다.
조선전쟁시기에는 태평양전쟁때보다 더 많은 폭탄과 포탄을 조선반도에 집중적으로 퍼부어 공화국북반부는 물론 남조선전지역의 도시와 마을을 재더미로 만들고 온 강토를 초토화하였다.

-전쟁전피해
가옥파괴 61만여채 (당시가격 6억1,000만US$)
산림파괴 10만여정보(당시가격 9억 8,500만US$)
이것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한 피해액 계
4,033억 558만US$(리자적용기간 52년)

-전쟁시기피해
가옥,공공건물파괴 487만 8,920여동(당시가격 82억 5,763만US$)
기업,금융기관파괴 1만 8,160여개(당시가격 30억 2,517만US$)
철도,도로파괴 1,850여키로메터(당시가격 4억 5,321만US$)
주요항만파괴 15개(당시가격 1억 2,846만US$)
농경지파괴 97만 6,910여정보(당시가격 35억 4,383만US$)
산림파괴 62만 660여정보(당시가격 61억 1,350만US$)
가축피해 292만 8,180여마리(당시가격 1억 8,842만 8,500US$) 등

이것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한 피해액 계
4조 7,420억 9,276만US$(리자적용기간 49년)

** 전후시기의것은 군사적강점과 전쟁연습으로 인한 피해에서 계산 이상의 통계를 종합하면
파괴에 의한 총피해액 5조 1,453억 9,834만US$

** 《원조》에 의한 피해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원조》는 경제명맥을 틀어쥐고 남조선을 저들의 정치,군사적 및 경제적예속물로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였다.
미제는 《원조》의 미명하에 되로 주고 말로 빼앗아가는 식의 교활한 제국주의적략탈정책을 실시하였다.
미제가 남조선에 준 《원조》의 81프로가 침략무력증강에 탕진되였고 나머지 경제분야에 돌려졌다는것도 매판자본육성 등 식민지통치기반을 확립하기 위한것이였다.
오히려 미제의 략탈적인 《원조》를 공간으로 남조선에 미국상품과 잉여농산물이 쓸어들어오면서 중소기업들이 무리로 파산되고 농촌이 황페화되였으며 민족경제기반이 여지없이 몰락되였다.
미제는 《원조》를 통하여 남조선예산편성과 운영을 좌지우지하였으며 《대충자금》융자,《유엔군대여금》리용,부등가교환 등으로 막대한 리익을 얻었다.
미제가 《원조》에 의한 략탈정책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던 1945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간 남조선에 31억 3,900만US$의 《원조》를 주었다고 하지만 같은 기간 남조선이 《원조》의 대가로 략탈당하고 손실당한 피해액은 그보다 무려 5배가 넘는 158억 3,789만US$였다.
《원조》에 의한 피해를 현재가격으로 환산하면 총 2조 3,414억 6,990만US$(리자적용기간 41년)에 달한다.

** 무역과 시장개방에 의한 피해

미제는 무역공간을 통하여서도 일방적인 수입강요와 수출규제,보호무역주의 등의 방법으로 남조선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그것은 불공정거래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시장에서의 평균리윤의 범위를 훨씬 벗어날뿐아니라 봉건적인 착취를 넘어 노예적략탈을 방불케 하였다.
미제는 《국제화》,《세계화》의 미명하에 전면적인 시장개방을 강요하여 남조선을 미국독점자본의 상품시장으로,로동집약적인 상품수출생산기지로 전락시켜 미국상품은 비싸게 팔아먹고 남조선상품은 눅거리로 가져갔다. 무역과 시장개방으로 인한 피해액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대미무역피해 7,559억 200만US$
시장개방으로 인한 기업파산 3,950억 8,839만US$
잉여농산물강매로 인한 농가피해 2,629억 1,337만US$
계 1조 4,139억 376만US$

** 자본침투를 통한 략탈

미제는 기만적인 《원조》와 무역뿐아니라 자본침투를 중요한 략탈공간으로 리용하면서 남조선에 자본을 침투시키는 대가로 각종 정치적부대조건과 경제적특혜를 강요하여 많은 부당리득을 보았다.
또한 차관을 주는 경우 상환기간을 짧게 하고 리자률을 높게 적용하였으며 최근에는 남조선대기업을 직접 먹어치우거나 남조선의 신용등급을 다른 나라에 비해 5분의 1-10분의 1까지 낮게 평가하는 등 략탈적목적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미제의 이러한 책동으로 하여 남조선은 빚더미우에 올라앉게 되였으며 1997년에는 사상 류례없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신탁통치의 쇠고랑까지 차게 되였다.
미국독점자본의 자본침투로 인한 피해액을 리자를 고려하여 현재가격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차관 등 융자성자금에 의한 피해 3조 4,100억 1,821만US$
기업리윤송금을 통한 피해 8,232억 5,195만US$
계 4조 2,332억 7,016만US$
결국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후 오늘까지 강제수탈과 파괴,《원조》와 무역,시장개방과 자본침투 등을 통하여 무려 17조 4,157억 804만US$의물질경제적피해를 주었다.
지금 미국은 저들이 남조선경제를 일쿼세운것처럼 떠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먹이감을 기른것에 불과할뿐이며 그 공간을 통하여 미국경제가 더 살찌게 되였다는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미제는 강점기간 남조선인민들에게 입힌 막대한 물질경제적피해에 대해서도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자료출처;《대한민국통계년감》,《한국통계년감》,《련합년감》,《한국경제총람》,《경제통계년보》,《농업년감》,《한국은행조사월보》,남조선단행본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지배와 항거》,《미군정기의 경제구조》,《한국경제의 전개과정》, 남조선 신문,잡지,통신,방송,미국,일본을 비롯한 외신 등)

3.군사적강점과 전쟁연습으로 인한 피해

미제는 세계 여러 나라들에 침략군대를 주둔시키고있지만 남조선에서처럼 전횡을 부리며 인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 군사기지에 의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후 전 지역을 북침전쟁을 위한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오늘도 남조선에는 90여개의 미군사기지가 있으며 그것들이 차지하는 부지는 총 8,020여만평에 달한다.
미제침략군의 군사기지에 의해 많은 토지를 강탈당하여 경제문화적활동에 리용할수 없게 된것은 물론 숱한 살림집들이 철거되고 농어장과 산림들이 파괴되였으며 환경침해와 교통불편 등으로 남조선인민들이 당하는 피해와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다.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1명이 차지하는 기지면적은 남조선주민 1인당 차지하는 거주면적의 8배이상에 달하는 7,022평방메터에 이른다.
서울시만 해도 한복판에 미군사령부가 둥지를 틀고있는것으로 하여 교통상,생활상불편은 말할수 없고 도시개발에 큰 지장을 주고있으며 환경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되고있다.
미군기지에 의한 피해액은 리자를 고려하여 현재가격으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살림집철거 및 파괴 180억 6,115만US$
농경지략탈 59억 1,678만US$
산림자원피해 7억 4,090만US$
생활상불편으로 인한 피해 160억 8,082만US$
도시개발저애로 인한 피해 869억 9,252만US$
계 1,277억 9,217만US$

** 미군유지비부담으로 인한 피해

미제는 다른 나라에서는 대체로 기지사용료의 100프로 또는 절반이상을 지불하면서 군대를 주둔시키고있다. 그러나 남조선에서는 기지사용료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미군유지비전액을 인민들의 혈세로 충당하고있다. 미군유지를 위한 직접비는 매해 4억-5억US$이며 간접비는 그보다 엄청나게 더 많다.1989년 한해에만도 미군이 부동산임대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략탈한 비용은 무려 790억US$에 달하였다.
최근 미제는 서울 룡산미군기지이전문제가 제기되자 그보다 4배이상이나 더 넓은 부지와 남조선돈으로 110조원(약 916억 7,000만US$)에 달하는 이전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들고 나오고있다.
미군유지비부담으로 남조선이 입은 피해는 현재가격으로 다음과 같다.

직접비에 의한 피해 1,040억 8,783만US$
간접비에 의한 피해 6,013억 793만US$
계 7,053억 9,576만US$

** 전쟁장비강매에 의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의 군사작전권을 빼앗았을뿐아니라 작전전술체계와 무기체계도 전적으로 미국에 종속시킴으로써 보총 한자루,총알 하나도 미국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마음대로 사올수 없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낡은 미국제무기를 비싸게 팔아 폭리를 얻었다.
미국은 1946년부터 남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무기강매를 시작하여 매해 1970년부터는 2억US$이상,1978년부터는 5억US$이상,1990년부터는 35억US$이상의 무기를 팔아먹었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사이에만도 남조선군당국이 벌린 《률곡사업》(무력증강계획의 암호명)을 공간으로 무려 230억US$어치의 각종 군사장비를 팔아먹었으며 전투기인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2-3배나 비싸게 강매하였다. 이러한 강압적인 방법으로 미국이 남조선에 팔아먹은 무기값은 총 320억US$에 달하며 이로 인하여 남조선이 입은 피해액은 리자와 US$가치변화를 고려하면 총 1조 836억 3,358만US$에 이른다.

** 전쟁연습으로 인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하늘과 땅,바다에서 각종 전쟁연습소동을 그칠사이없이 벌려왔다. 미제가 지금까지 남조선에서 벌린 각종 전쟁연습과 군사훈련은 공개된것만 해도 총 1만 3,700여차나 되며 그가운데 《팀스피리트》,《련합전시증원연습》,《을지 포커스 렌즈》,《독수리》 등의 대규모적인 남조선미국합동군사연습은 900여차,군종별,병종별미군단독전쟁연습은 2,400여차나 된다.

미제의 전쟁연습책동으로 하여 살림집과 농경지,산림,어장,명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앞바다에 있는 바위섬은 미국전투폭격기들의 폭탄투하연습으로 형체도 없이 날아나 지도상에서 아예 없어졌다.
미군기지와 폭격장,사격장주변에서 생활하는 443만명에 달하는 현지주민들은 국제허용수치보다 2배이상이나 높은 100-110db의 소음공해로 수명감소,청각장애,신경쇠약,암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있다.
전쟁연습으로 인한 피해는 다음과 같다.

소음피해 5,578억 3,246만US$
가옥파괴로 인한 피해 125억 995만US$
농경지파괴로 인한 피해 34억 2,000만US$
산림파괴로 인한 피해 18억 4,291만US$
어장파괴로 인한 피해 21억 3,759만US$
계 5,777억 4,291만US$
** 인적피해는 앞에서 계산되였으므로 제외

** 환경오염과 파괴에 의한 피해

미제는 남조선에 공해산업을 들여온 장본인이다.특히 미제가 남조선에 배치한 1,000여개의 핵무기와 렬화우라니움탄에 의해 땅과 바다,강하천이 심히 오염되고 황페화되고있다.
서울,포항,대전 등 미군이 차지하고있던 일부 지역에서 조사결과 일반지역에 비해 납은 24배,카드미움은 7배나 검출되였으며 특히 평택지역은 혹심한 환경오염으로 하여 수십년이 가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불모지로 변하였다.
또한 미제가 국제적으로 그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고엽제를 1960년대에 군사분계선일대에 7,000여도람통이나 살포한 결과 오늘도 이 지역에는 동식물이 자라지 못하는것은 물론 고엽제살포에 참가하였던 군인들과 그 주변의 민간인들이 죽음의 병마에 시달리고있다.
미제침략군은 남조선의 곳곳에 독성물질을 마구 내버려 인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있다.
환경오염 및 파괴로 인한 토지,산림,강하천 피해액을 원상복구비용에 기초하여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방사능오염에 의한 피해 6,000억US$
고엽제에 의한 피해 800억US$
페유 등에 의한 피해 1,000억US$
계 7,800억US$

결국 미제가 남조선에 입힌 군사적피해는 총 3조 2,745억 6,442만US$로 집계되고있다.
이것은 미제침략군의 남조선주둔과 전쟁연습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자료출처;《대한민국통계년감》,《한국통계년감》,《한국경제년감》,《련합년감》, 남조선단행본《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쏴라》,《로근리에서 매향리까지》,《식민지아들에게》,《주한미군 30년사》,남조선 신문,잡지,통신,방송, 미의회조사국보고서,미국,일본을 비롯한 외신 등)

4.사회문화적피해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후 오늘까지 파괴 및 략탈한 문화재는 총 3만 8,100여점으로서 그 가치는 수천억US$로 추산되고있다. 그 문화재가운데에는 우리 민족의 국보인 규장각도서들과 덕수궁박물관 미술품,신라의 금관,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일부와 중세기 화가들의 그림,고대불상들,조각품,고려청자와 리조백자를 비롯한 도자기들과 공예품들이 들어있다.
전쟁시기에는 폭격과 포격으로 서울 종로의 종각,덕수궁,광화문,민속박물관,창경원박물관 등과 문경의 봉암사를 비롯한 많은 절간들이 파괴되였다. 미제가 파괴하고 략탈한 문화재는 품종의 다양성과 높은 고고학적가치로 하여 그 가격을 일률적으로 다 환산하기 어렵다.
미제는 《미국문화원》을 비롯한 현지사상문화침투기구와 남조선강점 미군을 통해 남조선에 썩어빠진 양키문화를 대대적으로 전파하고 강점기간 총 120억US$분에 해당하는 마약을 남조선에 들이밀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정신육체적으로 병들어 죽게 만들었다.
또한 수많은 남조선녀성들을 야수적으로 릉욕하고 성노리개로 만들어 수십만명의 《양공주》와 혼혈아를 산생시킴으로써 수천년동안 이어온 민족의 피줄을 흐리게 하고 민족의 순수성을 더럽혀 놓으려고하였다.
미제침략군에 의한 성피해는 일본군성노예 보상기준에 준하여 그 피해액을 산출한다 해도 무려 1,000여억US$나 된다.

그밖에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여 식민지정책을 실시하면서 퍼뜨린 숭미사대사상과 퇴페적인 양키문화로 인한 남조선인민들의 사상의식,정신문화분야에 미친 해독적후과와 과학,교육,문학예술분야에 끼친 피해는 수량이나 액수로 다 계산할수 없다.
(자료출처;《대한민국통계년감》,《한국통계년감》,남조선단행본《미제침략사》,《식민지 아들에게》,《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남조선신문,잡지,통신,방송,미국,일본을 비롯한 외신 등) 제반 사실들은 미제가 결코 해방자나 원조자,보호자가 아니라 남조선인민들에게 막대한 불행과 고통,피해만을 가져다 준 가장 파렴치한 침략자,략탈자이며 살인자,파괴자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이상의 피해집계자료들은 남조선당국이 공식 발표한 각종 통계년감들과 남조선과 해외에서 출판된 단행본들,개별적인물들의 증언자료들,남조선 정계,재계,학계,언론계를 비롯한 사회각계에서 낸 자료들,미국,일본 등 외신들이 발표한 자료들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계산한것이다.

피해조사방법은 국제적관례와 남조선의 구체적실태를 고려하였으며 피해액계산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있는 공식에 기초하였다.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60년동안 남조선인민들에게 입힌 인적물적피해를 총 집계하면 무려 43조 1,390억 2,063만US$에 달한다.
이것은 지난 50년동안의 남조선총생산액의 무려 7배에 달하고 미국의 년간 국내총생산의 4배가 넘는 천문학적수자로서 미제가 남조선인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여기에는 피해액에 대한 산술적계산이 어려운 정신문화적령역의 피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더우기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여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정상적인 사회정치적발전을 가로 막고 북남사이에 분렬과 대결을 조장하여 민족의 통일적인 발전을 저해한 범죄들은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끼친 피해는 제외하고 남조선인민들에게 입힌 피해에 한해서만 현재까지 발굴되고 공개된 자료에 기초하여 잠정집계하였다.
그러므로 미제가 우리 민족전체에게 저지른 대범죄를 다 계산하면 그 피해액은 더욱 엄청나게 늘어나게 될것이다. 앞으로 미제에 의한 피해조사는 계속 심화될것이며 공화국북반부에 입힌 피해도 철저하게 조사하여 전민족적범위에서 미제의 죄행을 총결산하게 될것이다.

우리 민족이 약소민족의 슬픔을 안고 피해만 입던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미국은 위대한 선군으로 존엄높고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뜻과 힘을 합쳐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오늘의 조선민족을 똑바로 보고 분별있게 처신하여야 하며 우리 민족에게 력사적으로 헤아릴수 없는 커다란 피해를 입힌데 대해 속죄하는 의미에서도 침략적이며 략탈적인 대조선정책을 바로 잡는 길로 나가야 한다.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가지지 말아야 하며 민족자주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리익을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
특히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밝혀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따라 민족공조로 나라의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에 련대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줄것을 내외에 호소한다.

주체92(2003)년 11월 28일
평 양


미국의 범죄행위에관한 평양국제법정 판결문

(평양 7월25일발 조선중앙통신)국제민주단체들과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조선위원회의 주최하에24일에 열린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이 25일 끝났다.
법정에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에 의해 커다란 불행과 고통을 강요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우리 나라 해당 부문 일군들의 증언이 있었다.
피해자들인 송기숙,홍언년,리옥희는 증언에서 지난 전쟁시기에 미군이 감행한 만행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폭로하면서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두발가진 승냥이,살인귀들이라고 규탄하였다. 그들은 미제침략군의 야수적폭행에 의하여 자기들의 가족,친척들뿐아니라 무고한 인민들이 수없이 살해된데 대하여 지적하고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한다 해도 우리 인민은 철천지원쑤 미제의 죄행을 절대로 잊지 않고 천백배로 복수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사회과학원 연구사 부교수,학사 오일선,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 박영철,인권연구협회상무위원 박사 한영심이 증언하였다.
그들은 광복후 지난 58년간 미제가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정치군사적압력과 함께 경제제재와 봉쇄책동을 끊임없이 감행하여 온데 대하여 구체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증언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경제제재와 봉쇄는 우리 나라의 사회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헤아릴수 없는 막대한 후과를 미쳤으며 오늘 이것은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행위는 우리 나라의 자주권과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국제법적범죄행위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유구한 세월 찬란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 온 우리 민족이 20세기 중반기에 들어 와 미국에 의해 강토가 둘로 갈라 져 반세기 이상이나 분렬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대하여 지적하면서 현 미행정부가 조선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조선인민의 노력을 악랄하게 방해하고 있는데 대하여 폭로단죄하였다.
그들은 부쉬행정부가 조국통일의 력사적인 리정표인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로골적으로방해하고 조선반도에 핵전쟁위험을 몰아 오면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평화와 통일,안정과 번영을 가로 막고 있는데 대하여 준렬히 규탄하였다.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한 미군이 지난 기간 남조선인민들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는 범죄를 감행한데 대하여 그들은 폭로하였다. 그들은 남조선강점 미군이 감행하고 있는 인권유린행위는 미국정부에 의해 제도적으로,법적으로 묵인,비호,조장되고 있으며 미군의 인권유린행위는 인륜도덕상으로뿐아니라 국제법적으로도절대로 용납될수 없는 가장 엄중한 범죄로 된다고 하면서 미군은 남조선에서 당장 철수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일본 미군세균전피해실태조사단 단장 모리 마사다까,조선과의 친선을 위한 영국협회 대표 크리스티언 로버트 카터,미국평화를 위한 로병조직대표단 단장 제이.개리 캠벨,조선민주법률가협회 김진범부위원장,아랍변호사동맹 대표인 요르단변호사협회 위원장 후쎄인 무잘리가 발언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남조선강점은 조선문제에 관한 국제회의 결의를 무시한 파렴치한 행위이라고 하면서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는것은 화해와 협력,통일에로 나가는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요구이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이 이룩되기를 바라는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고지적하였다.

그들은 미국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도시와 마을들을 야수적으로 파괴하고 무고한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으며 악랄한세균전을 감행한데 대한 자료들을 공개하였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파괴한 책임에서 벗어 날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은 미국정부는국제사회앞에 자신을 정당화할 정치적,법률적명분도 없으며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한다면 무자비한 징벌을 받으리라는것을 똑똑히 알고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은 그 어떤 리유로도 정당화될수 없는 국제법상 주권침해범죄이며 평화교란범죄이라고 강조하고 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과 반인륜적범죄에 대해 공식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장인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위원장 지뗀드라 샤르마가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판결문을 랑독하였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판결문


국제민주단체들,세계 각국의 진보적인 반전평화단체들과 인사들,법률가들은 평양에서 미국이 1945년∼2003년사이에 조선에서 정의와 진리,평화와 안전에 대한 인류의 지향에 역행하여 국제법과 그 원칙의 구현인 유엔헌장을 란폭하게 유린한 온갖 범죄행위들에 대한 국제공동검사단의 기소를 심리하였다.

국제공동검사단은 미국이 감행한 범죄행위들에 대하여 전면적으로,구체적으로 조사확인한데 기초하여 트루맨행정부시기로부터 현 부쉬행정부시기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통령들,국무장관들,국방장관들,합동참모본부 의장들,륙해공군장관들,미중앙정보국 장관들,국가안전보장국의 실권자들,대통령국가안전보좌관들,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들과 그 하수인들이 유엔헌장과 국제적인 전쟁법규들,인도주의 및 인권법규들,군축과 관련한 법규들을 비롯한 국제협약들과 국제관습법규범들,미국의 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유관국가들의 법을 위반하면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여 조선민족의 통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가로 막고 조선인민에게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온갖 범죄들을 13가지의 주요범죄조항들로 구분하여 기소하였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국제공동재판부는 제기된 기소를 접수하고 미국의 만행진상을 보여 주는 현지참관과 피해자,목격자들의 진술과 증언을 청취하고,지난 시기 발표된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 보고서,국제녀맹조사단 보고서,국제과학자조사단 보고서,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보고서,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문건들과 북남조선의 각 민주단체들이 발표한 고발장,백서,진상보고서들을 료해하고,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에서 기밀해제된 회의록,면담록 및 기타 서류들,전쟁관련문건들과 사진,영화필림들을 분석하고,미군만행을 폭로한 2001년 뉴욕국제전범법정을 통하여 이미 객관적사실로 확인된 자료들에 근거하여 미국이 조선에서 다음과 같은 범죄를 범하였다고인정한다.

제2차세계대전후 미국은 조선인민의 의사에 배치되게 남조선을 강점하고 조선을 분렬시켰으며남조선의 애국적인 민주세력들을 탄압하면서 100만명이상에 달하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하였다.
조선전쟁을 도발한 미국은 전쟁기간에 근 60만t의 폭탄과 나팜탄을 퍼 부어 도시와 마을들을 재더미로 만들고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각종 살륙무기로 북조선에서 300만여명,남조선에서 120만여명에 달하는 평화적주민들을 대량학살하였다.
미국은 조선정전협정체결이후에도 정전협정과 국제법에 어긋나게 핵무기를 비롯한 방대한 침략무력을 남조선에 계속 주둔시키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반대하는 범죄행위들을 끊임없이 감행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의 민주주의적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유린하였다.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상과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적대감에서부터 출발하여 정치군사적압력과 경제적제재 및 봉쇄,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집요하게 감행함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자결권과 생존권,발전권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본인권들을 란폭하게 침해하였다.

미국의 모든 범죄행위들은 미국공민이나 단체,조직들의 개별적인 의사나 우발적인 사유,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력대 미국정부의 국가적의사에 따라 계획되고 조직되였으며 감행되였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국제공동재판부는 미국이 감행한 이상의 행위들이 유엔헌장,세계인권선언,뉴른베르그재판소규정과 재판에서 인정된 국제법의 원칙,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에 관한 법전,1949년 제네바협약들을 비롯한 국제법규범들과 원칙들에 대한 엄중한 위반이며 따라서 미국정부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1.본 법정에 검사들이 제출한 기소장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미국정부와 상기 기소된 자들의 행위는 유죄로 된다.
2.미국정부는 조선에서 감행한 모든 범죄행위에 대하여 공식사죄하며 조선인민에게 끼친 모든 정신적불행과 물질적손해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할것.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조선인민에게끼친 피해에 대하여 배상할것.
3.미국은 조선인민을 반대하는 범죄를 계획,준비,조직,명령,집행한 자들과 공모한 자들을모두 찾아 법정에 끌어 내여 형사적처벌을 가할것.
4.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저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며 국회와 행정부에 이 문제를 조사처리할수 있는 권능을 가진 특별기구를 내올것.
5.미국정부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당장 철회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군사적위협을중지하고 조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조선반도에서의 평화보장에 관한 문제를 조미회담을 통한평화적방법으로 해결할것.이렇게 하여 조선인민을 반대하는 이러한 범죄가 앞으로 다시는 감행되지 않도록 할것.
6.미군은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를 걷어 가지고 당장 물러 가며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모든 정치적압력과 경제제재 및 봉쇄,심리모략전을 즉시 중지할것.
7.미국정부는 6.15북남공동선언에 따라 자기 민족끼리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조선민족의의사에 역행하여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할것.

상기 판결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법정구성원칙과 재판절차에 준하여 내린 최종판결로서미국정부는 이와 관련한 실천적조치들을 취하여야 할 국제법적 및 도덕적의무를 지닌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국제공동재판부
재판장:지뗀드라 샤르마
성 원:아타나시오스 파필리스
       누리 아브델 라자끄 후쎄인
       미겔 마데이라
       마르씨아 데 깜뽀스 뻬레이라
       발렌띤 빠쵸
       뽈레뜨 삐에르쏭

   2003년 7월 25일
   평 양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 진행, 기소장 제출

(평양 7월24일발 조선중앙통신)국제민주단체들과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조선위원회의 주최로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이 24일에 열렸다.
법정에서는 미국이 지난 한세기이상 조선반도에서 가장 야수적이며 인류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침략과 략탈,살륙과 파괴 등 온갖 범죄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조선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해 온데 대하여 폭로기소하고 해당한 판결을 내리게 된다.
법정에는 조선반도에서의 평화보장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가 하고 있는 국제민주단체들,반전평화단체들,조선인민과의 친선 및 련대성단체 대표단,대표들과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조선위원회대표단,조선민주법률가협회대표단,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대표단,조선아시아아프리카단결위원회대표단이 참가하였다.

우리 나라 력사학자들과 법률가들,관계부문 일군들이 방청으로 여기에 참가하였다.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대표단,대표들은 먼저 평양국제법정운영을 위한 국제공동재판부와 국제공동검사단을 구성하였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위원장 지뗀드라 샤르마를 재판장으로,세계평화리사회 집행비서 아타나시오스 파필리스,세계민주청년련맹 위원장 미겔 마데이라,국제민주녀성련맹 위원장 마르씨아 데 깜뽀스 뻬레이라,조선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국제련락위원회 명예위원장 뽈레뜨 삐에르쏭,세계직업련맹 부총서기 발렌띤 빠쵸를 판사들로 하고 기타 25명을 재판부성원으로 하는 국제공동재판부를 구성하였다.
유엔주재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상주부대표 베스 수잔 리온스를 수석검사로,미국<평화의 섬>재단 총재 죠지 카치아피카스와 카나다인민전선조직 대표 론 거슈니,조선민주법률가협회 부위원장 임완식,에스빠냐조선과의 친선협회 위원장 알레한드로 까오 데 베노스,동유럽지역 미군만행진상조사단 성원 알렉싼드르 브레쥬네브를 검사들로 하는 국제공동검사단을 구성하였다.

법정에서는 먼저 아랍변호사동맹 대표인 후쎄인 무잘리가 평양국제법정 설립경위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그는 평양국제법정의 설립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국의 대량학살만행과 파괴행위,전후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범죄성을 확인하고 그를 재판하기 위한 조선인민과 국제민주세력의 노력의 결과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조선인민은 지난 반세기이상 미국이 저지른 만행과 위법행위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여 국제사회에 폭로하여 왔으며 진보적국제기구들과 반전평화단체들이 조사단,촬영단들을 보내여 이를 전면적으로 조사하여 온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2001년 6월 미국의 뉴욕에서 있은 조선전쟁시기 미군의 민간인학살만행을재판하는 국제전범법정에서 미국정부의 유죄를 확인하고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할데 대해 판결한데 언급하였다.

그는 미국은 오늘도 남조선강점 미군을 증강하고 조선의 통일과 자주적발전의 길을 가로 막으며 조선인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엄중히 침해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번 평양국제법정이 력사적으로 조선인민을 반대하여 저지른 미국의 모든 정책들과 행위들을 까밝히고 정의의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제사회의 기대에 보답하리라는것을 믿는다고 말하였다.

다음으로 재판장인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위원장 지뗀드라 샤르마가 법정운영절차에 대하여 발언하였다. 그는 미국이 지난 조선전쟁에서뿐아니라 전후 조선인민을 반대하여 저지른 모든 행위들을 조사하고 그 범죄성을 확인한데 기초하여 미국정부에 해당한 법적추궁을 가할 목적으로 설립된평양국제법정은 단순한 법정이 아니라 철저히 새롭게 정의된 인민법정이라고 강조하였다.

법정에서는 검사단을 대표하여 베스 수잔 리온스수석검사와 죠지 카치아피카스,론 거슈니,임완식검사들이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기소장을 제출하였다. 그들은 기소장에서 미국이 저지른 범죄는 국제법과 그를 구현한 유엔헌장에 대한 란폭한 유린이라고 준렬히 단죄규탄하였다.법정운영은 계속된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기소장


미국은 1866년 <셔먼>호의 침입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반도에서 침략과 략탈,살륙과 파괴 등 온갖 범죄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조선인민에게 참을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웠다.
<조선에서 감행된 미국의 범죄행위에 관한 평양국제법정>(아래부터는 법정이라고 한다) 국제공동검사단은 국제민주단체들,세계 각국의 진보적인 반전평화단체들과 인사들,법률가들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미행정부와 그 지시하에 미군과 그밖의 범죄자(아래부터는 미국이라고 한다)들이 조선반도에서 감행한 범죄에 대하여 법적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다음의 자들을 본 법정에 기소한다.

미국 트루맨행정부시기로부터 현 부쉬행정부시기에 이르기까지의 미국대통령들,모든 국무장관들과 국방장관들,합동참모본부 의장들,륙해공군장관들,미중앙정보국 장관들과 국가안전보장국의 실권자들,대통령국가안전보좌관들,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들,이 기소장에 서술된 범죄들을 계획,준비,조직,명령,집행한 자들과 공모자들 특히 조선인민에 대한 대량살륙을 감행한 자들,조직한자들,명령한 자들과 현지집행자들,공모자들.

-상기 기소된 자들이 위반한 기본 법규들

1.미국은 유엔헌장에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목적과 관련된 제1장,안전보장리사회운영과관련된 제5장,분쟁의 평화적해결과 관련된 제6장 그리고 평화에 대한 위협,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행동과 관련된 제7장의 조항들을 위반하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2.미국은 전후조정에 관한 선언들인 <까히라선언>,<포츠담선언>에 배치되게 남조선을 강점하고 민주주의적발전을 가로 막았다.
3.미국은 전쟁포기에 관한 조약,침략의 정의에 관한 조약 그리고 침략에 관한 정의,침략행위에 관한 유엔총회결의 3314(XXIX)호에 배치되게 조선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지금도 새 전쟁도발책동을 끊임없이 벌리고 있다.
4.미국은 국제군사재판소규정(뉴른베르그),극동국제군사재판소규정,뉴른베르그재판소규정과 재판에서 인정된 국제법의 원칙,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에 관한 법전을 위반하고 조선반도에서 평화를 반대하는 범죄와 전쟁범죄,인류를 반대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5.미국은 조선전쟁에서 륙전법규와 관례에 관한 조약 및 규칙,독가스사용금지에 관한 헤그선언,잠수함 및 독가스에 관한 조약 그리고 질식성,독성 또는 기타의 가스 및 세균학적전쟁방법을 전쟁에 사용함을 금지하는 의정서 등을 위반하였다.
6.미국은 조선전쟁에서 전시에 있어서의 사민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부 제네바협약,전쟁포로대우에 관한 1949년 8월 12일부 제네바협약을 비롯한 여러 협약들과 보충의정서들을 위반하였다.
7.미국은 조선반도에서 세계인권선언,집단살해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온갖 형태의 인종차별을 청산할데 대한 협약과 민사,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그리고 경제,사회적 및 문화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전쟁범죄와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에 시효를 적용하지 말데 대한 협약,인종격리범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하였다.
8.미국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테로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부분적인 마약생산제한에 관한 협정,마약의 비법적인 제조와 보급을 금지할데 대한 제네바협약 등 마약금지와 관련한 여러 협약들과 유엔결의안들을 위반하였다.
9.미국은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강행법규와 국제관습법규범들을 위반하였다.
10.미국은 조선정전협정과 조미공동성명,조미기본합의문을 파기시키고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무효화시켰으며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방해하였다.
11.미국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중화인민공화국,일본,미국 및 기타 다른 국가들의 법을 위반했다.

-만행의 구체적사실과 범죄성

1.미국의 침략과 조선의 분렬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자 국제적으로 공인된 군사점령에 관한 제도와 국제공약을 위반하고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여 조선을 둘로 갈라 놓았다. 1945년 8월 10일-15일사이에 미국은 조선 북위 38선 이남에 있는 일본군은 미군에 의하여 그 무장이 해제된다고 규정한 <일반명령 제1호>라는것을 조작하고 남조선을 강점하였다.

조선은 제2차세계대전시기까지 일본에 의하여 강점당하여 있었으며 항일무장투쟁을 통하여 광복을 이룩함으로써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상으로 보아도 결코 군사점령의 대상국으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이며 자주적으로 발전되여야 할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은 저들의 강도적인 침략야욕으로부터 공인된 국제법적원칙과 규범들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군사점령대상으로 될수도 없는 남조선을 일본군을 무장해제한다는 구실밑에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걌군정걎을 실시하는 범죄적인 침략행위를 감행하였다.

2.전쟁전 미국의 학살만행

미국은 1945년 9월 8일 인천항에 상륙한 첫날부터 <해방자>,<보호자>가 아니라 가장 흉악한 침략자,살인자로 행동하였다. <륙전법규와 관례에 관한 규칙> 제43조,제46조,제47조에는 점령자의 경우라 하여도 점령지의 현행법들을 존중하고 될수록 공중질서와 생활을 회복,보장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며 개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략탈을 금지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여 있다. 그러나 미군은 남조선에 발을 들여 놓은 때로부터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시키였으며 1946년 10월 미<군정>을 반대하여 일어 난 남조선인민들의 항쟁때에만도 비행기와 땅크,화학무기로 무장한 수만명의 군대와 괴뢰경찰,테로단까지 동원하여 항쟁자들과 각계각층 인민들 2만 5,000여명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남조선에서 저들의 식민지군사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학살만행은 1948년 5.10단선을 계기로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여 1948년 5월 7일부터 <선거>당일까지의 기간에만도 무려 5만여명의 인민들이 체포,투옥,학살되였으며 <선거>당일에는 수백명의애국자들을 학살하면서 <단독선거>를 강행하였다.
1949년 6월까지 계속된 5.10단선을 반대하는 제주도4.3인민봉기시기에는 섬 전체 주민 30만명중 7만여명이 학살되였고 1만여채의 살림집이 불 타버렸다. 1948년 10월 밤 려수에서 미<군정>의 민간인학살을 반대하는 려수군인폭동이 일어 나자 미군은 비행기,땅크,군함,장갑차,각종 포를 동원하여 6,0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학살하였으며 1949년 12월부터 1950년 1월기간에 지리산,태백산,오대산 등 5개 지구에서는 약 4만명이 학살되고 수만명이 부상당하였다. 반미반파쑈항쟁에 떨쳐 나선 애국적인민들을 학살하는데 피눈이 되여 날뛴 미군은 남조선을 강점한 5년동안에 100만명이상에 달하는 무고한 주민들을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학살하였다.

3.조선전쟁도발

남조선강점 첫날부터 조선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다그쳐 온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선전포고도 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원래 미국은 <북으로부터의 남침위협>이라는 허위선전을 류포시켜 침략전쟁준비를 <정당화>하며 장차 도발할 전쟁의 책임을 <북조선에 전가>시키기 위하여 1947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무장도발을 끊임없이 감행하여 왔다.그 회수는 무려 전쟁전까지 5,150여회에 이르렀다. 미국은 조선에서 전면적인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남조선강점 첫날부터 남조선은 물론 일본과 그 주변일대에서 군사무력을 대대적으로 늘였다.

한편 미국은 조선전쟁도발기도를 은페하면서 1950년 5월 15일부터 일본에서 <륙해공군합동훈련>을 진행한다는 구실밑에 4월부터 대무력을 일본에 집결시켰다. 도화선에 불 지르는 일만을 남긴 미국은 1950년 6월에 미대통령의 특사 덜레스를 파견하여 조선전쟁도발을 위한 최종지시를 내리게 하였다. 제반 사실은 미국이 조선전쟁도발과 진행을 위해 면밀한 준비를 하여 왔다는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1907년 전쟁개시에 관한 헤그협약과 1933년 침략의 정의에 관한 조약,인류의 평화와안전에 대한 범죄에 관한 법전들에서는 침략전쟁의 도발을 가장 엄중한 국제법적범죄로,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유엔헌장 제2조 4항에는 유엔의 모든 성원국들은 그의 국제관계에서 임의의 나라의 령토완정 및 정치적독립을 반대하여 또는유엔의 목적과 량립할수 없는 다른 어떠한 방법에 의하여서도 힘으로 위협하거나 또는 힘을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규제되여 있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남조선과 일본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범죄적인 전쟁준비를 다그쳤고 선전포고도 없이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4.조선전쟁에 유엔기발의 도용

조선에서 전쟁을 도발한 미국은 자기들의 범죄를 가리우기 위하여 전쟁이 북의 <침공>에 의해 일어 난것으로 유엔결의를 조작하고 저들의 침략군에게 <유엔군>의 모자를 씌움으로써 유엔의 이름을 범죄적책동을 합리화하는데 도용하였다. 미국은 저들의 거수기들을 통하여 1950년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전쟁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비법적인 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였으며 뒤이어 6월27일과 7월 7일에는 안전보장리사회에서 미국과 그 추종국가들이 조선에 대한 무력간섭을허용하는 <결의>들을 강압통과시키도록 하였다. 이 <결의>들은 유엔안보리사회의 표결제도의 요구도 준수하지 못한 비법적인것이였다. 유엔헌장에는 안전보장리사회에서 토의대책하는 모든 결의는 상임리사국들의 동의표결을 포함한9개 리사국(당시에는 7개 리사국)의 찬성으로 가결된다고 규정되여 있다.이것은 안전보장리사회의 모든 결의가 5개 상임리사국의 동의표결을 받지 못하면 가결되지 못한다는것이다. 조선전쟁발발에 관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결의>는 상임리사국들인 쏘련과 새 중국의 참가없이 조작되였다.
유엔을 침략도구로 리용하여 조선침략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구실을 마련한 미국은 자기 나라 륙군의 3분의 1과 공군의 5분의 1,태평양함대의 대부분을 조선전선에 끌어 들였으며 유엔기구의 활동원칙에 어긋나는 강권행위를 하여 <유엔군>이라는것을 조작하고 이어 맥아더를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남조선군과 추종국가군대들을 통솔하게 하였다.

미국에 의해 1950년 7월에 강압적으로 채택된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권고안>S/1588에는 미군이 관할하는 군사령부를 설치한다는 내용밖에 없었으나 미국은 이 <권고안>을 근거로 <유엔군>을 조작리용하였던것이다. 이것은 유엔기구의 사명과 활동원칙에 전적으로 위반되는것이며 국제기구의 조직과 활동원칙과관련하여 규제되고 공인된 국제법적규범들을 란폭하게 유린한 범죄이다.

5.도시와 마을의 초토화

미국은 전쟁 3년간에 걸쳐 공군비행대는 80만회,해병대와 해군비행기는 25만회이상 출격시켜 그 85프로가 평화적대상들에 대한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게 하였다.투하된 폭탄량은56만 4,436톤,나팜탄은 3만 2,357톤,로케트탄은 58만 7,789발,연막탄은 5만 5,797발이였다. 도시는 페허로 되고 농촌은 황페화되였으며 주민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 졌다.

륙전법규와 관례에 관한 규칙 제25조에는 평화적도시,촌락,주택 또는 건물은 어떤 수단에의하여서도 공격 또는 포격할수 없다고 되여 있으며 제27조에서는 공격 및 포격을 진행함에 있어서 종교,예술,학술,자선용에 제공되는 건물,력사적인 기념건조물,병원과 병자 및 부상자의 수용소는 군사적목적에 사용되지 않는 한 될수록 피해를 면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선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의 모든 도시와 농촌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포격하여 무고한 평화적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민간대상물들을 수없이 파괴하였다.

6.전시 민간인대학살만행

조선전쟁에서 미국은 <전시에 있어서의 사민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부 제네바협약>을 비롯한 국제법들과 공인된 전쟁법규들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민간인대량학살을 감행하였다. 1950년 6월 28일∼7월 4일까지의 사이에 미군의 조직적인 살륙명령에 따라 경기도 수원의 형무소,류치장 등에서는 1,146명에 달하는 애국자들과 평화적주민들이 학살되였다. 1950년 7월 초에는 충주에서 2,060여명,공주에서 6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지상과 공중에서 폭탄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죽였으며 대전형무소에 감금되여 있던 <보도련맹>사건과 <4.3인민봉기>사건,<려수군인폭동> 등의 참가자 1,800여명을 모조리 죽였다. 미국은 1950년 7월 말부터 <보도련맹사건>관계자들을 대대적으로 처형하게 하였다. 현재 <보도련맹사건>으로 학살된 사람들의 수는 모두 30만명∼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거창,함양,산청군들에서 미군은 수천명을 집합시켜 학살하고는 집들을 모두 불 태워 버리는 만행도 례사롭게 감행하였다. 미군은 서울에서 2차로 패주할 때에도 의심되는 대상들에 대하여 모조리 즉결 처분하였는데그때 고문학살된 애국자들과 평화적주민들의 수는 7만 2,390명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미군은 전쟁이 일어 나서 1년 남짓한 기간에만도 남조선에서 100만여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에 들어 와 일시적으로 강점한 지역들에서 당,정권기관,근로단체 일군들,로동자,농민,사무원,청소년들,지어는 종교인 등 각계각층을 성별과 년령에 관계없이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특히 신천군에서의 대중적학살만행은 그 야수성과 잔인성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의 일부 지역들에 대한 일시적강점시기 조선인민을 학살한 수자는 전시에초보적으로 집계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평양에서 1만 5,000여명,신천에서 3만 5,380여명,안악에서 1만 9,072명,은률에서 1만 3,000여명,해주에서 6,000여명,벽성에서 5,998명,송화에서 5,545명,은천에서 5,131명,안주에서 5,000여명 등을 학살하였다.

7.화학전 및 세균전만행

미군은 1950년 말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던 북반부지역에서 쫓겨 가면서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균들을 음흉한 방법으로 퍼뜨려 전염병을 돌연히 폭발적으로 발생시켰다. 1951년 4월에 이르러 그 수는 급격히 증가되여 3,500건 이상으로 되였다. 미국은 북조선측 전쟁포로들을 세균전과 <전쟁의학연구>의 시험재료로 삼고 세균무기시험으로살륙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3월 31일에 이르는 2개월사이에만도 400여개소이상의 북반부 각 지역에 세균탄과 살인용미생물이 들어 있는 각종 물체를 700회이상이나 퍼 부었다. 투하된 세균탄에는 파리,벼룩,거미,빈대,모기,이,딱장벌레,귀뚜라미 등 유해곤충이 무수히들어 있었으며 그것들에는 악성,급성,전염성세균들인 페스트,콜레라,천연두,류행성출혈열을 비롯하여 비탈저,장티브스,파라티브스(ABC),적리,발진티브스,재귀열 등 20여종의 가장무서운 전염병균들이 보유되여 있었다. 1952년 5월에 들어 서면서 미군은 매일 수백대의 비행기를 조선에 들여 보냈는데 그 4분의 1이 세균탄을 투하하였고 어떤 날에는 그 수가 무려 480대나 되였다.

미국은 또한 국제협약에 의하여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미군은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만 하여도 강원도,황해도,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시,군들과 전선지구들에 수많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조선전쟁에서 미군의 유독성가스의 대량적인 사용은 1951년 5월 6일 남포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때부터였다. 그때 남포시에서는 미군이 떨어 뜨린 독가스탄으로 1,379명의주민들이 살해되였다. 미국은 1929년과 1949년에 체결된 전쟁포로대우에 관한 국제협약들도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북측 포로들을 독해물의 실험대상으로 삼아 무참히 학살하였다. 전쟁에서 세균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은 공인된 국제법과 전쟁법규들에서 엄격히 금지되여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에서 화학 및 세균무기를 쓰지 못하도록 규정한 국제법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조선인민을 대량학살하였다.

8.조선정전협정파괴행위와 새 전쟁도발책동

미국은 3년간의 조선전쟁에서 당한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대신 조선정전협정을 계획적으로 란폭하게 유린하면서 새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각종 형태의 군사적적대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여 왔다. 미국은 우선 1953년 8월 8일 남조선과 <한미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정전협정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정치회의소집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종당에는 그의 파탄을선언하였다. 정전협정 제4조 제60항에는 협정체결후 3개월만에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여 외국군대의 철거문제,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여러가지 조치를취할것을 제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정전직후 체결한 <한미호상방위조약>에서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과 남조선군 통수권행사를 공식 규정하여 놓음으로써 정치회의에서 론의하게 될 남조선강점 미군철거를 거부하고 조선의 내정에 대한 저들의 간섭을 <합법화>하였다.

미국은 1956년 6월 7일 정전협정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시찰소조의 활동을 정지시키고 1957년 6월 21일에는 정전협정 제13항 항목을 일방적으로 페지하였다. 미국은 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항목을 무시하고 핵무기를 비롯하여 각종 최신형군사장비들을 대량적으로 끌어 들였다. 올해에만 하여도 미국은 지난 5월 31일 남조선강점 미군의 <전력증강계획>을 발표하고 110억딸라분의 새로운 첨단무장장비들을 새로 증강배치하며 최첨단장비로 무장한 신속기동려단을 끌어 들이려 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정전협정 제2조 제12항을 위반하는 적대행위를 계속 감행하고 있다. 미국은 조선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금지한 정전협정 제2조 제15항을 위반하고 선박과 비행기들에 대한 단속을 통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해상과 공중봉쇄행위를 벌리려 하고 있다. 더우기 미국은 새로운 조선전쟁씨나리오인 <작전계획 5027>을 만들었으며 그후 <선제공격>형의 조선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98>과 <작전계획 5030>을 작성하였다. 미국이 감행하고 있는 이 모든 행위들은 침략전쟁의 계획,준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국제법적규범을 란폭하게 위반한 가장 엄중한 범죄행위들이다.

9.남조선에서의 인권유린행위

미군은 전후에도 남조선에 계속 틀고 앉아 인간의 리성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각종 범죄를 수많이 저질렀다. 대표적인 실례로 1958년 2월 미8군 항공수리소 소장은 부하들과 함께 14살난 남조선의 구두닦이소년을 아무 리유없이 감금하고 5-6시간에 걸쳐 곤봉과 가죽채찍으로 잔인한 고문을 들이대고 칼로 마구 찔렀으며 뻬ㄴ찌로 두 발톱과 머리칼을 잡아 뜯고 전기리발기로그의 머리를 깎은후 머리와 얼굴에 골탄칠을 하여 나무상자에 넣어 못을 치고 직승기에 실어다 버리였다. 미군범죄는 1966년 7월 미군의 <법적지위>를 규정한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이 체결된이후 더욱 우심해 져 그전보다 근 6배나 늘어 났다. 특히 남조선녀성들을 상대로 한 미제침략군야수들의 살인과 강간,폭행은 그칠 날이 없다.

남조선에서 미제가 저지른 만행건수는 8.15광복후 1999년까지 세상에 알려 진것만 하여도 27만여건에 이르고 있다. 남조선에서 미군의 살인행위는 1980년 5월 광주인민봉기때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였다. 미국의 살인지령에 따라 전두환일당은 광주에서 인민봉기가 일어 난지 불과 며칠사이에 각계각층 주민 5,700여명을 학살하고 1만 4,000여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와 제5조에는 모든 사람들이 생존,자유 그리고 인신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누구도 고문 또는 참혹하고도 비인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규정되여 있으며 유엔헌장과 온갖 형태의 인종차별을 청산할데 대한 협약,전쟁범죄와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에 시효를 적용하지 말데 대한 협약 등 여러 국제법규들에서도 인권을 란폭하게 침해,유린하는 행위들은 범죄로 규정하고 엄하게 처벌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조선에서 미군은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일반적존중과 준수를 강조하고 있는국제인권조약들의 근본요구를 위반하고 조선인민을 마구 학살하면서 점령군으로서의 주인행세를하여 왔다.

10.경제적침략과 경제봉쇄 및 사상문화적침략

제2차세계대전후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한 미국은 지난 기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경제적제재와 봉쇄를 끊임없이 감행하여 왔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봉쇄는 광복후 미군정시기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중단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어떤 개별적분야가 아니라 무역,금융,투자,부동산,보험,수송,우편통신,주민래왕 등모든 분야에서의 경제거래를 전면적으로 포괄하는것이다. 미국은 전쟁시기부터 조선을 적국으로 규정한 기초우에서 1980년대에는 있지도 않은 사건들을 날조하여 조선을 <테로지원국>으로 그리고 1990년대에는 핵문제,미싸일문제,인권문제 등을 걸고 들면서 경제적제재와 차별조치들을 강행하였다. 1933년 <침략의 정의에 관한 조약>을 비롯한 일련의 조약과 협정,결의들에서는 타국의자주권과 그의 경제적독립을 침해하며 나라의 경제명맥의 기초를 위협하는 경제적압력의 조치를 취하는것,타국에 경제적봉쇄를 하는것 등을 국제법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에서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경제적침략과 봉쇄를 여러가지 형태와 방법으로악랄하게 감행하였다.

미국은 또한 조선반도에서 사상문화적침략도 감행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기운을 무마시키고 <북진>전쟁의 사상적바탕을 마련하며 북반부인민들에게까지 제국주의사상독소를 침습시켜 보려는데로부터 반공선전체계를 만들어 놓고 반공선전을 대대적으로 벌렸다. 미국은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상적진지를 허물어 버리기 위한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악랄하게 감행하여 왔다. 미국은 저들의 <가치관>을 퍼뜨리기 위하여 추종세력까지 동원하여 조선에 형형색색의 반동적출판물들을 들여 보내고 군사분계선과 국경연선지역에서 삐라,적지물들을 살포함으로써 조선인민과 청년들속에 황금만능사상,살인,강탈,사기협잡,인간증오사상을 주입시키려고 책동하였다.

미국은 <자유아시아> 조선말방송을 24시간 운영하면서 고정주파수를 맞춘 수많은 소형라지오를 고무풍선 또는 기타 방법으로 비법적으로 들이밀고 있다.방송은 미국의 반공화국제재와봉쇄책동,군사적위협공갈 그리고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조선이 일시적으로 겪고 있는 난관을 놓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도자체에 <큰 결함>과 <문제>가 있는것처럼 떠들며 조선의<인권문제>,<종교문제>에 대해 외곡날조된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 미국이 감행하고 있는 이러한 사상문화적침략책동은 다른 나라 인민들의 문화를 충분히 존중하고 이 분야에서 내정간섭을 금지한 유엔헌장 제73조와 국제적문화협조원칙에 대한 선언 제11조,그 어떤 리득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사를 강요하는것을 금지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에 관한 법전 제2조 그리고 반동적사상고취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도록 한 기타국제법적규범들을 란폭하게 유린위반한 범죄들이다.

11.핵범죄

미국은 조선에서 핵범죄를 력사적으로 가장 악랄하게 감행하여 왔다. 조선반도에서의 핵문제는 미국이 1950년대 후반기 남조선에 핵미싸일 <오네스트 죤>을 반입한것으로 하여 발단되였고 1980년대 전반기에 <20세기 악마의 무기> 중성자탄의 반입으로 하여 그 엄중성이 한층 부각되였다. 미국은 1997년 2월 세계적으로 그 사용이 금지된 수많은 렬화우라니움탄까지 남조선에 끌어 들여 실전배비하였다. 오늘 10만여평방키로메터정도 되는 남조선은 핵폭탄과 핵탄두,핵지뢰와 핵운반수단,핵기지와핵저장고들로 차넘치는 옹근 하나의 종합적인 핵공격기지로,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극동최대의 핵전초기지로 전변되였다.

미국은 1992년에 조선의 북과 남사이에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발표된직후 이를 체계적으로 전면파괴하는것을 정책화하고 비핵화실현을 각방으로 방해해 나섰다. 미국은 또한 조선반도의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고 조미관계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법적기틀인 1993년 6월부 조미공동성명과 1994년 10월부 조미기본합의문도 백지화하였다. 미국은 2002년 10월 대통령특사를 조선에 보내여 그 무슨 <우려사항>에 대한 최후통첩식의 무례한 협박을 들이대고 국제원자력기구와 공모하여 조선에 대한 국제적핵압박과 무장해제공세를 펴는 한편 조미기본합의문의 동시행동조치에 따르는 대조선 중유제공마저 일방적으로 중지하였다.

이로써 조미기본합의문이 깨여 지고 조선의 최고리익이 극도로 위협 당하게 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자위적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의 자위적조치를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대한 <위반>으로,<국제적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문제시하면서 그것을 유엔에까지 끌고 가는 등 국제적인 대조선핵압박공세를더욱 악랄하게 벌리는 길로 나아갔다.

미국은 <독수리>훈련과 <련합전시증원연습>을 통하여 조선의 핵시설타격작전을 시험하였으며<우발계획>의 실천적가능성을 검토확인하였다. 최근에 있은 미국과 일본,미국과 남조선<회담>들에서는 <군사적선택>을 포함한 <추가적인조치>,<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조미공동성명과 조미기본합의문을 파기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기본정신에 배치되게 비핵국가인 조선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정책화한 미국의 행위는 국가자주권존중의 원칙,령토존중의 원칙,힘의 위협 또는 힘의 사용을 금지하고 모든 분쟁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데 대한 원칙,조약상 의무를 성실히 리행할데 대한 원칙 등 국제법의 기본원칙들에 완전히 어긋나는 엄중한 국제법적범죄이다.

12.테로 및 마약범죄

제2차세계대전후 미국은 남조선에서 진보적인사들에 대한 테로를 수많이 감행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는 기운이 높아 지자 1947년 7월 인민당 당수 려운형을 백주에 암살하고 뒤이어 8월 한달동안에 1만 3,769명의 반미적인 인물들과 애국자들을 검거처형하였다. 미국은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진보당 당수 조봉암,민주당<대통령>후보들이였던 신익희,조병옥을 살해하게 하였다. 미국이 금지된 테로를 조선침략의 수단으로,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의 수단으로 리용하면서 조선반도에서 반미적인 인물이나 세력을 제거하고 민주력량을 탄압한것은 테로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롯한 국제법규범들에 대한 위반으로 된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금지된 환각제를 제조하여 남조선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국제법적범죄도 감행하였다. 미국은 1980년 5월 남조선에서 광주인민봉기가 일어 나자 저들의 작전지휘권안에 있던 남조선군에 환각제를 사용하게 하고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장하여 민족사에 류례 없는 동족살륙만행을 감행케 하였으며 비밀리에 류포시키던 마약 및 환각제사용을 로골화하였다. 미국이 비밀리에 끌어 들여 류포시킨 마약은 오늘 남조선에서 공공연히 사용되여 사람들을 정신적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국제법에서는 마약과 환각제의 생산과 보급,그 사용 등을 전쟁범죄와 같은 엄중한 국제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도록 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에서 마약 및 환각제를 생산류포시킴으로써 마약,환각제의 비법적인 제조 및 보관,수출,수입,구입,판매행위들을 마약범죄로 규정하고 그를 금지하도록 한 국제적인 협약,협정들을 란폭하게 위반하였다.

13.반통일범죄

미국은 조선의 북과 남이 통일되는것도 한사코 방해하여 왔다. 미국은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강압적인 단독선거로 친미주구 리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조작하여 조선의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제도가 존재하도록 함으로써 조선의 분렬을 고착시키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미국은 그후 평화통일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지향이 높아 지자 커다란 위구를 느끼고 1960년대 말부터 조선의 분렬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새로운 대조선정책으로서 <두개 조선>정책을 들고 나왔다.미국은 1972년 7월 4일 조선의 통일을 자주적으로,평화적으로,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실현할데 대한 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유엔군은 외세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남조선영구강점을 합리화해 나섰으며 남조선당국을 막후조종하여 1973년 6월 23일에 북남공동성명을 전면부정한 이른바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게 하였다.

미국은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4자회담>을 들고 나오면서 <두개 조선>을 국제적으로인정시켜 보려고 책동하였다. 미국의 책동에 의해 유엔에서 조선문제가 일방적으로 론의되고 공정치 못하게 처리될수 있는우려가 조성된 조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부득불 조성된 난관을 극복하고 조국통일문제해결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유엔에 주동적으로 가입하게 되였다. 그후 미국은 조선의 북과 남의 유엔가입으로 마치 <두개 조선>이 다 된것처럼 대외적으로선전하였다.

2000년 6월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자 미국은 공동선언을 전면부정하고 북과 남이 손을 잡지 못하도록 각방으로 책동하였다.  미국은 북남사이에 론의되는 협력사업전반에 사사건건 생트집을 걸면서 그것을 가로 막아 나섰다. 이 모든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안전과 번영을 가로 막고 있는 장본인이며 주되는 장애물이라는것을 확증하여 준다.

-판결과 관련한 요구

미국이 지난 시기 조선반도에서 감행한 모든 범죄들은 그 구성요건으로 보나 내용의 엄중성으로 보나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범죄들이다. 국제공동검사단은 상기 기소된 자들이 조선을 분렬시키고 조선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 날수 없다고 간주하고 본 국제공동재판부가 미국이 국제법에서규제하고 있는 책임형태인 정치도덕적책임,형사적책임 및 물질적책임을 지도록 판결하고 선언할것을 요구한다.
[조선민주법률가협회 고발장]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은 국제법적 범죄

조선민주법률가협회는 미제가 지난 시기 력사적으로 감행한 조선인민학살만행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법률적책임을 묻기 위하여 5월31일 다음과 같은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은 극악한 국제법적범죄
조선민주법률가협회 고발장


지난해 6월 13일 남조선강점 미군이 백주에 길 가던 나어린 2명의 녀중학생을 장갑차로 무참히 깔아 살해한 때로부터 1년이 가까와 온다. 그러나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한 기만적인 공판놀음을 벌려 놓고 살인자들에게 <무죄>를 선포하였으며 이에 항의하는 우리 민족과 국제사회계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아직도 공식적인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 백수십년간 수백만의 우리 인민을 학살하였으며 그때마다 언제나 이렇게 행동하였다.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가 없다고 하는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 민족의 존엄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며 세계 정의와 량심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이다. 조선민주법률가협회는 미제가 지난 시기 력사적으로 감행한 조선인민학살만행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그에 대한 미국의 법률적책임을 묻기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1.조선인민에 대한 미제의 야수적학살만행의 진상

미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인된 국제법과 전쟁규범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우리 인민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살행위를 수없이 감행함으로써 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미제는 1866년 8월 침략선 <셔먼>호를 타고 우리 나라에 침략의 첫 발을 들여 놓은 때에 벌써 평양에까지 침입하여 인민들의 재물을 강탈하고 부녀자들을 릉욕하였으며 대포와 총을 마구 쏘아 10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후 미제는 <챠이나>호,<쉐난도아>호 등 함선들을 련이어 침입시켜 우리 나라를 정복해 보려고 날뛰면서 온갖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0세기 초부터 미제는 일제의 조선강점과 조선인민탄압행위를 적극 부추기는 한편 장차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척후병들을 들이 밀어 음으로 양으로 책동하면서 우리 인민을 학살하였다.

미제는 갑산광산,수안광산,운산광산 등 굴지의 광산개발권,서울-인천간 철도부설권,서울의 전차,전화,수도시설경영권 등을 모두 장악하고 저들의 경제적리권을 위하여 조선사람들을 악랄하게 착취하였다. 미제는 운산광산의 한 갱에서 화재가 일어 나자 갱안에 있던 미국인들만 구원하고 조선인광부 8명을 불에 타죽게 하였으며 수안광산에서는 광부 10여명을 붕락직전의 갱안에 채찍으로 몰아 넣어 그들모두가 파묻혀 죽게 하였다. 창성군에서만도 미제는 마을의 집짐승들을 로략질하고 녀성들을 랍치하여 지하실에서 릉욕,모욕하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독살하였으며 산에서 나무하던 로인에게 사냥개를 내 몰아 죽이고 어린 소년을 <도적>으로 몰아 사냥개에 물려 죽게 하는 등 극악한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교육가,자선가,선교사,의사 등의 탈을 쓰고 우리 나라에 기여든 미제는 <박애>와 <자선>을 떠벌이면서 뒤에서는 조선사람들을 멸시하고 마구 살해하였다. 개성에서 <병원>을 경영하던 선교사는 소아마비에 걸린 어린이를 약물실험대상으로 삼아 죽이고 선천 <마동병원>의 선교사는 곱사등이어린이의 등뼈를 마구 꺾어 즉사시켰다. 재령 <제중병원>의 미국선교사는 한 농민이 한해동안 장만한 곡식을 전부 팔아 입원비를 마련하게 한 후 그의 아이를 입원시켜 실험대상으로 삼아 죽여 버렸으며 어린 소년을 <도적>으로 몰아 <병원>지하실에 가두어 넣고 피를 뽑아 죽이였다.
해주 <구세병원>의 미국선교사는 임신한 녀성을 입원시켜 놓고 심심풀이로 배를 갈라 숨지게 하였으며 환자들이 치료비를 물지 못하면 피를 뽑아 죽게 하였다.그리고 몇몇 간호원이 이 사실을 알고 또 자기가 경영하던 학교학생들이 악랄한 종교교육과 노예교육을 반대하여 투쟁에 일떠서자 룡당포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함대의 사령관과 짜고 그들 250여명을 <참관>의 구실밑에 배에 태워 가지고 나가 전부 바다에 빠뜨려 죽이였다.

제2차세계대전후 미제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군사점령에 관한 제도와 국제공약을 란폭하게 유린하였으며 더우기 세계대전의 결과로 해방된 과거의 식민지나라들을 민주주의적으로 발전시킬데 대하여 결정한 국제공약(<까히라선언>,<포츠담선언>)들을 위반하고 군사점령대상으로 될수도 없는 남조선에 침략무력을 들이밀어 비법적으로 강점하였으며 <군정>을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을 대량학살하였다.

미제는 1946년 10월인민항쟁때에만도 비행기와 땅크,화학무기로 무장한 수만명의 군대와 경찰,테로단까지 동원하여 항쟁자들과 각계각층 인민들 2만 5,000여명을 학살하였으며 1948년 4월 제주도인민봉기때에는 주민들을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바줄로 목 매달아 죽이고 생매장하거나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악착한 방법으로 섬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명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미제는 1949년 12월부터 1950년 1월 기간에 지리산,태백산,오대산 등 5개 지구에 대한 <토벌>공세를 벌리고 이 지역의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주민 약 4만명을 학살하였다.

국제법에는 점령자의 경우에조차 점령지의 현행법들을 존중하며 될 수록 공중질서와 생활을 회복,보장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고 개인의 생명을 존중하며 략탈을 금지(<륙전법규와 관례에 관한 규칙> 제43조,제46조,제47조)하게 되여 있으나 미제는 남조선강점 첫날부터 조선사람들의 목숨은 파리목숨만치도 여기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죽이였다.
1947년 1월 부산의 어느 한 식당에 달려 든 여러명의 미군병사들은 자기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고 하여 주인을 의자로 마구 때려 즉사시켰으며 1948년 5월 미제578가스공급중대소속 미군병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카빈총이 정상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나가던 사람에게 2발의 총탄을 발사하여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였다.
1948년 6월 미군용기들은 독도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남조선어선들을 목표로 삼아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11척의 선박을 침몰시키고 200여명의 어민들을 살해하였으며 1949년 1월 미제54헌병중대소속 사병은 급수탑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로동자를 아무 리유없이 권총을 쏘아 즉사시켰다.

이렇게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5년동안에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수는 무려 100만명이상에 달한다. 조선전쟁시기 미제가 감행한 학살만행은 조선인멸살을 노린 전대미문의 가장 야수적인 범죄행위로서 조선인민학살만행의 절정을 이루었다. 국제적무장충돌시 피해자보호에 관한 1949년 8월 12일부 제네바협약에 대한 보충의정서(1)의 제48조에는 기본규범으로 충돌측들이 항상 민간주민과 전투원들,민간대상물들과 군사대상물들에 대하여 차이를 두고 전투원들과 군사대상물들에 대하여서만 자기의 행동을 취하여야 한다고 규제되여 있다.
그러나 국제법적규범 특히 전쟁과 관련한 법규준수는 안중에도 없는 미제는 남으로 패주하면서 인천,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목포,부산에 이르는 남조선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야수적인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미제는 인천에서 남자들을 기관총을 란사하여 죽인 후 바다에 처넣고 녀자들은 모두 옷을 벗겨 칼로 토막내여 죽였을뿐아니라 그것도 부족하여 녀성들의 다리를 톱으로 자르고 젖가슴을 칼로 도려 내는 등 귀축 같은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지어 젖먹이어린이들까지 사지를 찢어 죽이였다. 그리하여 인천에서 5,000여명,충주에서 2,060여명,부여와 청주에서 각각 2,000여명,대전에서 8,644명,전주에서 4,000여명을 학살한것을 비롯하여 미제는 남조선의 크고작은 도시와 마을들에서 수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미제는 이러한 학살만행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집단생매장하고 수장하거나 찔러 죽이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적용하였고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남조선의 50여개 도시들과 1만 2,400여개의 농촌부락들에 대한 살육과 초토화작전을 감행하였으며 미처 죽이지 못한 애국적인민들은 부산에까지 끌고 가서 학살하였다.
미제는 1950년 9월 16일 인천에 상륙하면서 하루동안에만도 1,300여명의 주민을 사살하고 서울에서는 7만5,000여명의애국자들을 검거투옥하고 고문학살하였으며 2차로 패주할 때에는 또다시 7만2,390명의 애국자들과 평화적주민들을 고문학살하였다. 미제침략군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상리의 곡계굴,영동군 로근리를 비롯한 남조선의 수많은 지역들에서 전쟁개시후 1951년 여름까지만도 무려 100만여명의 평화적주민들을 학살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에 들어 와 일시적으로 강점한 지역들에서 <닥치는대로 죽이라>는 살인적인 구호밑에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신천군에서만도 군안의 1만 6,200여명의 어린이와 로인,부녀자들을 포함하여 3만 5,380여명이 학살되였다.
미제가 공화국북반부의 일부 지역들에 대한 일시적강점시기 우리 인민을 학살한 수는 전시에 초보적으로 집계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평양에서 1만5,000여명,안악에서 1만 9,072명,은률에서 1만3,000여명,해주에서 6,000여명,벽성에서 5,998명,송화에서5,545명,은천에서 5,131명,태탄에서 3,429명,사리원에서 950여명,안주에서 5,000여명,봉천에서 3,040명,연안에서 2,450명,재령에서 1,400여명,장연에서 1,199명,락연에서 802명,평산에서 5,290여명,토산에서 1,385명,봉산에서1,293명,송림에서 1,000여명,양양에서 2만5,300여명,강서에서 1,561명,남포에서 1,511명,개천에서 1,342명,순천에서 1,200여명,박천에서 1,400여명,정주에서 800여명,철원에서 1,560여명,원산에서 630명,함주에서648명,단천에서 532명,선천에서 1,400여명,초산에서 900여명을 헤아린다.
이외에도 미제는 원자탄을 떨군다고 위협하면서 남으로 강제로 끌고 가던 인민들을 대동강의 가설다리우에서 4,000여명,해주도로에서 3만여명 학살하였다.

미제는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살인만행을 감행함에 있어서 총살,타살,교살,생매장,화형을 비롯한 실로 짐승도 낯을 붉힐 정도로 잔인한 방법을 다 적용하였다. 고문하는 경우에도 심리적고통을 주는 방법과 비행기고문,전기고문,물고문,맹수고문,신체의 여러 부분 절단고문 등 헤아릴수 없는 육체적고통을 주기 위한 수십가지의 고문방법을 리용하였다.

미제는 공화국의 모든 도시와 농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여 모조리 파괴하고 평화적인민들을 대량적으로 학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전쟁 전 기간 공화국북반부의 1평방키로메터의 땅에 평균 18개의 폭탄을 떨구었고 평양시에는 인구수에 맞먹는 수의 폭탄을 투하하였다. 1952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미제는 공화국북반부 전 지역에 20여만개의 대,중형폭탄과 약 40만개의 로케트탄,1,500여만개의 나팜탄,5억여발의 기총탄을 투하 또는 발사하였다.초보적인 상식으로 보아도 여기에서 살아 남을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미제는 또한 인륜도덕과 국제법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전대미문의 비도덕적이며 야만적인 화학무기,생물무기로 조선인민을 전면학살하려 하였다.
이미 미제는 남조선에서 1946년과 1949년에 주민들을 상대로 콜레라와 일본뇌염을 퍼뜨리는 세균무기실험을 여러차례 진행한데 기초하여 조선전쟁이 일어 나자 이를 실천에 옮겼다.

미제는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던 공화국북반부지역에 천연두병균을 살포하여 3,500여명의 환자를 발생시키고 10프로에 달하는 350여명이 죽게 하였으며 류행성출혈열과 매개성티브스를 류포시키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미합동참모본부의 명령에 따라 1952년 1월 28일부터 3월 31일까지 공화국북반부의 400개소이상 지역에 700여차례에 걸쳐 강한 살인용세균탄들이 투하되였고 1952년 5월에 들어 서면서부터는 세균전범위가 더욱 확대되였다.

세균무기와 함께 화학무기도 수많이 사용되였다.
미제는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만도 강원도,황해남북도,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24개 시,군들과 전선지구들에 화학무기를 사용하였으며 전라남도 광주시를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지역에도 독해물을 살포하여 수만명의 조선인민을 학살하였다. 1951년 5월 6일 남포시에서는 미제의 질식성독가스무기로 하여 1,379명의 주민들이 한꺼번에 살해되였다. 이처럼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은 본질에 있어서 조선민족멸살을 노린 대량살륙만행이였으며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였다.

미제는 전후에도 계속 남조선에 틀고 앉아 각종 방법으로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미군은 밭에서 일하던 농민과 산에서 도토리를 줏던 로인을 <꿩>이라고 쏴 죽이고 집마당에서 놀던 어린이와 길 가던 사람을 땅크와 자동차로 깔아 죽였으며 민가에 달려 들어 무고한 주민들을 아무 리유없이 때려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찔러 죽였다. 미제군함들은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어부들에게 리유없이 함포사격을 퍼부었고 미제군용기들은 보리파종을 하던 농민들과 해변가에서 굴을 따던 녀성을 공격목표로 폭탄을 투하하여 살해하였다.

미군이 감행한 각종 범죄행위는 1966년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이 체결된 이후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6배로 늘어났으며 달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욱 우심해 졌다. 1980년 5월 광주인민봉기자들에 대한 대량살륙만행은 민주주의도살자,인간백정으로서의 미제의 야수적본성을 다시한번 만천하에 드러내놓았다.
미제의 적극적인 비호와 살인지령에 따라 전두환일당은 광주에서 인민봉기가 일어 난지 불과 며칠사이에 애국적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을 포함한 각계각층 주민 5,000여명을 학살하고 1만 4,000여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총살로도 성차지 않아 사람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까고 땅크와 장갑차로 깔아 죽이고 가스탄을 쏘아 질식시켜 죽였으며 집단적생매장까지 하는 중세기적방법도 적용하였다.지어 살인악마들은 녀성들의 유방을 칼로 도려 내여 죽이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 죽이기까지 하였다.

오늘도 남조선에서는 미제의 폭행과 살인만행이 때와 장소,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공공연히 감행되고 있다.1992년 10월 경기도 동두천에서 미군사병은 윤금이녀성을 강간한 다음 빈병으로 이마를 여러차례 까서 죽이고 국부와 홍문에 빈병과 우산을 틀어 박았으며 1995년 1월 경기도 련천군에서 미군사병은 땅크로 승용차를 들이받아 운전사와 그의 동생을 즉사시켰다.1998년 8월 미군사병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박경옥(66살)녀성을 겁탈하려다가 반항한다고 하여 그의 팔,목,가슴 등을 칼로 찔러 죽인 다음 장농에 처 넣었으며 2001년 11월 경기도 포천군의 한 도로에서는 미군 장갑차가 중앙선을 넘어 가 맞은편에서 오던 자동차와 승용차 3대를 짓뭉개여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였다.
살인만행을 비롯한 미군의 범죄행위가 끝없이 늘어나고 있지만 범죄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있으며 불평등한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의 보호밑에 미제는 오히려 머리를 뻣뻣이 쳐들고 오만하게 날치며 또 다른 범죄행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이와 같이 미제가 조선인민을 반대하여 력사적으로 감행하여 온 온갖 학살만행은 그 범죄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특대형살인범죄이다.

2.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의 국제법적책임

미제는 세기를 이어 조선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감행해 오면서 우리 인민에 대한 귀축 같은 살인만행을 수없이 감행한데 대하여 응당한 국제법적책임을지고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제법은 모든 사람은 자주적인 권리를 가진다는것과 매 개인은 생존,자유 그리고 인신불가침의 권리를 가지며 누구도 고문 또는 참혹하고도 비인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규정하였다.(<세계인권선언> 제1조,제3조,제5조)

국제군사재판소 규정과 극동국제군사재판소 규정에는 평화를 파괴하면서 무고한 인민들을 대중적으로 학살하는 살인만행이 가장 엄중한 국제법적범죄의 하나인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로 된다는것이 밝혀 져 있으며 이러한 범죄를 감행하려는 공동계획 또는 공동모의의 수립과 그 수행에 참가한 주모자 및 공범자는 이러한 계획의 수행으로 초래된 모든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그 누구에 의하여 감행되였거나에 관계없이 책임진다는것이 규제되여 있다. 또한 집단살해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은 집단살해가 평시에 수행되였거나 혹은 전시에 수행되였거나를 불문하고 국제법상의 범죄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를 방지 및 처벌하며(제1조) 집단살해행위들을 감행한 자는 그가 헌법상 책임 있는 통치자,공무원 및 개인이거나를 불문하고 처벌할뿐아니라(제4조) 집단살해행위와 관련하여 기소된자는 행위수행지 국가의 재판소,국제형사재판소 등에서 심리한다(제6조)는 것을 규제하였다.
또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에 관한 법전에는 한 나라 당국 또는 개인에 의하여 진행된 민족적 또는 종교적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할 것을 기도한 행위,한 나라 당국에 의하여 또는 이러한 당국의 선동이나 방임에 의하여 행동한 개인이 사회적,정치적,인종적,종교적 또는 문화적리유로 어떤 주민에게 가한 살해,전멸,예속,추방 또는 박해와 같은 비인간적행위를 엄중한 국제법적범죄인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책임 있는 개인을 처벌한다고 지적되여 있다.(제1조,제2조)독가스사용금지에 관한 헤그선언(1899.7.29),질식성,독성 또는 기타의 가스 및 세균학적전쟁방법을 전쟁에 사용함을 금지하는 의정서(1925.6.17),륙전법규와 관례에 관한 조약 및 규칙(1907.10.18)을 비롯한 일련의 국제법규와 관례들에는 독가스(유독성물질),세균무기,유독성화학무기 등 인민들을 대량살륙하기 위한 잔인한 무기들의 사용을 금지하며 그 사용자들을 엄중한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형사적책임을 추궁하게 되여 있다.

전쟁범죄와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에 시효를 적용하지 말데 대한 협약은 전시 또는 평화시기에 수행되였는가에 관계없이 인류를 반대하는 범죄,무장공격과 점령결과에 생긴 추방,인종격리정책으로 인한 비인도적행위들,집단학살행위 등에 대하여서는 시효를 두지 않는다(제1조)는것을 규정하면서 처벌은 그러한 범죄행위의 집행자,공범자,선동자 그리고 범죄의 수행정도에 관계없이 그의 수행을 위한 음모에 가담한 국가당국자와 자연인,이와 같은 범죄수행을 허용한 국가당국자에게도 적용된다(제2조)는것을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미제가 조선에서 백수십년의 력사적기간에 감행한 범죄에는 어떠한 시효도 적용되지 않으며 천추만대를 두고 엄중한 법적처벌을 받아야 한다.

국제법적책임을 지는데 있어서 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자체가 범한 범죄는 물론 미국당국에 소속되여 있는 조직체,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범한 범죄행위까지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미제는 자기의 립법,행정,사법기관들이 그에 부여된 권능내에서 범죄행위를 하였건,권능을 초월하여 범죄행위를 감행하였건 관계없이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은 그 범죄구성요건으로 보나,내용과 엄중성으로 보나 국제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책임형태인 정치도덕적책임,형사적책임 및 물질적책임 모두에 해당되는것이며 그것도 현재까지 국제법적책임의 리행에서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가장 크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범죄들이다. 위법행위로 하여 국가가 지게 되는 정치도덕적책임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면에서 피해국가의 요구에 만족을 주는 사죄,범죄자처벌,유감의 표시 및 실제적인 조치의 실시 등으로 죄를 씻는것이다.
미제는 력사적으로 조선에서 감행한 가장 악랄하고 야수적이며 인류력사에서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침략과 전쟁,살인만행의 엄중성과 범죄성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조선인민과 세계인민앞에 사죄하여야 하며 죄를 씻기 위하여 조선인민의 요구에 만족을 주는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19세기 60년대에 조선침략과 조선인민학살을 조직명령한자들과 그 집행자들 그리고 일제의 조선강점시기 조선에 기여 들어 와 온갖 살육만행과 폭행을 감행한 미제국주의자들모두가 형사적처벌을 받아야 한다. 제2차세계대전이후 조선강점야망밑에 남조선에서 <군정>을 실시하고 야수적인 만행을 감행한자들,조선전쟁시기 전쟁법규와 관례에 위반되는 전쟁방법,수단의 적용과 조선인민에 대한 대량학살을 계획,준비,조직,명령한자들,그 집행자들모두는 직위여하를 불문하고 엄중성정도에 따라 해당한 형사적제재를 받아야 한다.

또한 오늘도 남조선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고 조선에서 새 전쟁을 도발하려고 책동하면서 전대미문의 인권유린행위들과 살인,폭행을 감행한자들,그의 공모자들모두 역시 형사적제재를 받아야 한다. 형사적제재를 가하는데는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을 적용할수 있다. 미제는 자국내에서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한 형사적처벌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진행하여야 한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미국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을 력사적으로,전면적으로 조사공개하고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할데 대한 목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세계의 정의와 량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조선인민학살만행을 조사처리할수 있는 법을 제정하고 해당한 권능을 가진 기구 또는 자문위원회를 국회,행정부 등에 내오는것과 같은 여러 가지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며 범죄를 직접 조직감행하였거나 그에 공모한 범죄자들을 찾아 내여 응당한 법적추궁을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지난 기간 저지른 범죄에 대한 자기들의 사죄와 반성의 의지를 조선인민앞에 현실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한편 조선인민은 언제든지 미제국주의범죄자들에게 우리 공화국법에 의하여 형사적책임을 추궁할 합법적권리를 가지고 있다. 미제범죄자들이 우리 주권의 관할하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 우리는 가차없이 우리 나라 형법에 의하여 그 경중에 따라 해당한 형사적제재를 가할것이다.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은 세계 정의와 평화,인류의 량심과 도덕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런것으로 하여 국제공동체도 해당한 국제재판소를 구성할수 있으며 세계인민들의 감시속에 국제재판소의 판결로 형사적책임을 추궁할수 있다. 이런 경우 조선인민은 국제법정이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게 불행과 고통,참화를 들씌웠던 도이췰란드와 일본군국주의전범자들에게 세계인민들의 한결 같은 요구에 따라 형사적책임을 추궁하고 교수형,무기징역을 비롯한 강한 처벌을 가하였던것처럼 국제재판에서 미제의 범죄행위를 낵낵이 까밝히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도록 강력히 요구하며 시행할 합법적권리를 가진다.

지금 세계도처에서는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을 규탄하는 국제전범법정을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2001년 6월 미국 뉴욕에서는 세계 700여명의 반전평화인사들과 진보적인 법률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의 민간인학살만행을 규탄하는 시민단체들의 국제전범법정이 열렸다. 법정에서는 조선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량살륙한 범죄에 책임 있는 미국의 력대 대통령들과 국무장관,국방장관 등 고위관리들과 현지주둔 사령관들 그리고 범죄행위의 직접적집행자들과 공모자들,추종자들에 대한 결석재판을 진행하고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앞으로 미제의 조선인민학살만행을 규탄하는 국제시민법정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계속 있게 될것이며 종당에 가서는 미국을 법적구속력을 가진 국제재판소의 피고석에 끌어 내여 력사와 인류의 이름으로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야 말것이다.

미제는 지난 날 조선인민에 대하여 감행한 모든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할뿐아니라 그 성실성을 보여 주기 위한것으로서 우리 인민에게 만족을 주는 실천적조치들을 시급히 강구하여야 한다. 미제는 남조선에 있는 1,000여개의 핵무기들과 군사작전장비들을 당장 끌어 내가고 자기들의 군대를 철수시켜야 하며 대외관계분야에서 조선통일위업실현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하여 각 방면으로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 피를 즐기는 미제살인마들에 의해 너무도 많은 우리 인민이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무참히 폭행 당하고 치욕에 몸부림쳤다.

미제는 1945년 남조선에 발을 들여 놓은 때로부터 조선전쟁발발직전까지만 하여도 100만명이상의 조선인민을 학살하였으며 조선전쟁기간에는 남조선에서 120만여명,공화국북반부에서 300만여명을 학살하였고 북남의 150만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결국 미제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기간에만 하여도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6분의 1을 학살한 셈이다. 정전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제는 남조선에서 해마다 2,000건이상의 살인행위를 비롯하여 각종 범죄를 감행하면서 10만명이상의 조선인민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

미제는 우리의 이러한 인명피해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을 하여야 한다. 미제는 백수십년에 걸쳐 우리 인민을 학살해 온 엄중한 범죄행위로 하여 국제법적으로 공인되고 적용되고 있는 정치도덕적책임과 형사적책임,물질적보상의 법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 날수 없다. 조선인민은 미제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언제나 법적추궁과 제재를 가할 합법적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를 이어 가면서 이 권리를 행사할것이다.

오늘 미제는 세기를 두고 감행해 온 저들의 조선인민학살만행에 대한 사죄는커녕 오히려 핵문제를 걸고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을 일으켜 우리 인민을 대량학살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 있다. 우리는 인권을 존중하고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법률가들과 정치인들,민주인사들,평화애호인민들이 세기를 두고 조선인민을 학살해 온 미제를 국제전범재판의 피고석에 끌어 내기 위한 국제적운동에 합류하며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와 인류를 반대하는 미제의 새로운 범죄적기도에 대하여서도 응당한 주의를 돌리고 제때에 저지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주체92(2003)년 5월 31일
평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