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자료 모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20돌 기념대회 자료집

[대 회 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 이 규 재

범민련 결성 20돌을 맞아 전국각지에서 오신 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평생을 조국통일에 헌신하신 장기수 선생님과 원로 통일운동 선배님, 이역만리 해외에서 참가해 주신 해외본부 선생님들, 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각계각층을 아우르고 있는 6.15남측위원회 김상근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중단없는 탄압속에서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3자연대의 기치를 꿋꿋이 견지하며 통일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지난 20년 역사는 우리의 긍지 그 자체입니다. 범민련이 고수, 실천해 온 3자연대 운동은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더욱 폭넓게 발전하고 있으며, 6.15공동위원회라는 더 광범한 조직속에서 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범민련 남측본부에게는 부족함이 많았던 지난 날이고, 앞으로 더욱 분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 남북해외, 방방곡곡에서 범민련 운동을 빛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모든 동지들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동지여러분.

기쁨 속에서 맞이해야 할 범민련 결성 20돌이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조국의 참혹한 현실은 더 큰 결의와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해상에서 처참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 애꿎은 민중들이 희생당한 것도 모자라, 안팎의 호전세력들은 전면전을 부추기는 한심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념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미국 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와 대규모 한미합동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쟁의 불바람이 조국강토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싸움은 남북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 나락을 거둔 농촌 들녘, 4대강 공사 현장 등 곳곳에서 민중들은 이명박 정권의 생존권 압살 정책에 맞서 사생결단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중들의 민주, 민생에 대한 요구를 철저히 탄압할 태세입니다.
남북관계의 악화가 민생파탄, 민주파괴로 이어지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동지여러분!

이명박 정권 집권 3년을 맞아 나라 안팎이 아수라장이 되고, 급기야 전면전 단계의 위기가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더욱 큰 분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현실은 공동선언 이행이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를 우리에게 명확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을 그대로 두고서는 단 한순간도 평화로울 수 없다는 본질을 냉정하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합니다.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세력이 굳게 단결하여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을 몰아내야 합니다.
기어이 이 땅에 전쟁의 불바람을 몰고 오는 호전세력들의 준동을 단호히 저지하고 평화수호, 민족단합을 위한 실천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민족자주와 대단결의 선봉장, 우리 범민련 성원들이 앞장에서 열심히 투쟁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자리가 굳센 단결, 굳센 실천을 함께 결심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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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영 사

7·4남북공동성명의 민족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기치 높이 들고 남, 북, 해외동포들이 한마음 모아 창립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스무 돌 성년식을 맞았습니다. 내외의 온갖 장애와 반대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을 이행 실천하며 고난의 언덕을 돌파해 오신 내외 동포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와 계신 대표 여러분,

정세가 엄중한 가운데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모든 성원의 통일염원을 한데 모아 앞장에서 전진하시는 김상근 상임대표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3자연대 범민련의 창립정신 한마음으로 700만 해외 동포를 대표하여 미주의 유태영 노길남 대표님, 구주의 이지숙 이한경 김성수 최영숙 김진향 대표님이 수만 리 이역 땅에서 하늘과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오셨습니다.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고맙고 장하십니다.
대회 추진위원 모든 성원들이 존경과 사랑 가득한 인사를 한 아름 전해 드립니다.

동지 여러분,

범민련 창립 스무돌 기념대회를 함께 결의하기위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애국동포여러분,

조국반도는 오늘 전쟁의 먹구름에 덮였습니다. MB정부 들어서 6·15와 10·4선언에 반대하는 비핵·개방·3천 정책을 비롯한 대북 대결정책이 날로 심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몰아붙이면서 한미공조 군사훈련으로 대북 봉쇄압박을 강화하다가 급기야 팀스리피트 훈련의 변형인 호국훈련 현장에서 연평교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희생된 동포와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사태의 원인과 사후 대책 그리고 전쟁 아닌 화해와 협력 방책은 없고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오지와싱턴호와 이지스함 등을 서해로 진입시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벌입니다
. 한 순간 삐끗 잘못하면 국지전을 넘어 전면전으로, 그리하여 조국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일대가 살육과 파괴의 불바다로 될 수 있습니다. 현대전의 피해는 강약을 가리지 않습니다. 민족전멸의 위험 앞에 우리는 벌거벗고 서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사람 모두 당장 일어나서 온갖 수단방법을 다하여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촉구해야겠습니다.
태초부터 우리 민족은 이 강역에 따로 나라를 세우면 반드시 전쟁을 하였습니다. 통일이 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통일보다 전멸이 먼저 오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화통일을 이뤄야합니다. 그러자니 화해와 협력정신 위에서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이루는 평화통일, 연합과 연방의 공통성을 찾아 이루는 연합연방통일의 이정표이자 대장전은 바로 615공동선언 아니겠습니까.

군사 및 정치사회적 제약과 장애를 거두고 광범한 남북합작 경제특구를 건설코자 하는 10·4선언을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삼각경제특구의 복판에 있는 연평도는 지상 최대의 축복받는 진주섬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원통합니다.
이제 걱정이나 하고 자빠져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들 자기 삶의 현장에서 반전평화 민생민주를 실현하기 위해 일어서야합니다.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살리고자 하는 자주통일 전사여러분,

우리 모두 대중의 바다로 달려갑시다. 애달픈 민생의 현장으로 달려갑시다. 민생민주에 전력을 다 합시다. 그러나 분단의 장벽 안에 갇혀서는 천년을 가도 근로대중의 민생복지는 쳇바퀴 도는 다람쥐와 같습니다. 민생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분단을 무느고 평화로운 자주통일로 나갑시다.

대중의 언어로 대중과 더불어 생각하며 대중으로 하여금 흩어진 모래알 아닌, 강력한 결합체가 되도록 힘을 다합시다.
우리는 2012년 정치적 격변기에서 반통일 호전세력의 집권을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작은 의견차이가 있더라도 크게 힘을 합쳐나가야 합니다. 거대한 단결된 힘으로 2012년에 통일을 지향하는 민주정부를 수립합시다.

대표자 여러분,

범민련 창립 정신으로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를 강화하고 남북해외 3자연대의 위대한 통일과업 수행에 힘을 부읍시다. 저희 추진위원도 모두 일심단결하여 여러분을 따라 615와 104선언을 실현하는 데에 쓸모 있는 도구가 되겠습니다.

동포여러분,

여러분의 정성은 전쟁을 막아낼 것입니다. 자주적 평화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생복지 평등평화사회는 반드시 우리 앞에 열릴 것입니다.
모두 다 여러분의 공덕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28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스무 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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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통일광장 임 방 규

범민련 결성 20돌을 축하합니다

조국분단 65년을 생각하면 분노가 끌어 오릅니다.
외세가 갈라놓은 조국. 지금도 외세가 남쪽 땅에 둥지를 틀고 있고, 분단조국의 65년은 인민의 피와 눈물로 점철되었습니다. 조국통일은 우리민족의 최대최고의 과제이며 이를 완수하기 위하여 수백만이 조국강산에 피를 뿌렸습니다.

선열들의 고결한 뜻을 이어받아 어떠한 희생이 있을지라도 조국통일을 실현하겠다는 대의와 결의에 찬 남?북?해외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범민련을 결성했습니다.
어언 20년, 외세와 반통일 집단은 통일운동의 구심인 범민련을 파괴하기 위해서 언론공격은 물론 협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범민련은 흔들림 없이 범민련 깃발을 꽂고 3대헌장과 6?15, 10?4선언을 관철하기위하여 전선의 선두에서 온갖 장애물을 격파하며 전진했습니다. 범민련의 견결한 투쟁은 반통일 집단에게 일정한 타격을 주었고 그들의 반민족적 본성을 민족 앞에 더욱 드러냈으며 민중을 통일의 길로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애국역량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범민련 결성 20돌을 맞이하여 충실한 민중의 아들딸인 범민련 일꾼들에게 경의와 격려를 보냅니다. 범민련을 사랑하고 지원하는 모든 분들께 찬사를 보냅니다.

오늘의 정세는 험악합니다만 우리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돌파할 것이며 외세를 몰아내고 평화적이며 자주적인 통일을 쟁취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희망찬 미래를 전망하면서 힘을 하나로 모아냅시다! 힘차게 전진합시다!
범민련은 우리 민족사의 한 페이지를 빛나게 장식할 것입니다.
범민련 결성 20돌을 거듭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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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선구자의 길, 함께 가는 길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김 상 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이후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베를린 3자회담과 이후 범민련의 결성, 범민족대회 과정을 뜨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때가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한데 벌써 스무 해가 흘렀다니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의 매듭을 비로소 실감하게 됩니다.

범민련을 만들고 범민족대회 소집운동을 통해 엄혹한 시기 통일운동의 새로운 물꼬를 터온 많은 선구자들의 노고에 먼저 깊이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범민련의 역사는 장구한 민족사, 민족통일운동사에서 큰 족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범민련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앞선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새로운 민족화해시대, 통일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교류와 접촉, 공동행사를 통해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변화시켰고 분단 이후 서로의 마음에 큰 벽을 만들어온 냉전체제도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낙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에 겨울 한풍이 몰아치고 동북아시아에는 냉전시대를 능가하는 적대와 대결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단 60년 세월 속에서 인내하고 싸우며 통일의 길을 열어온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통일은 이미 됐어’ 일 것입니다.

잠시 역행하는 듯 보이는 현상이 밑바닥에는 끝내 정해진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통일의 대세, 단합과 평화, 공동번영의 역사적 순리가 관찰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제 그 믿음은 일부 선각자들의 신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분단선을 지워가며 함께 만들어 가는 화해와 신뢰를 체험한 수십만 남북 민족의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온몸을 밀어 선구자들이 개척해온 길은 이제 민족화해와 공동번영, 평화통일의 대로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즐겁고 편안하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뜻하지 않은 재해를 만나 잠시 무너진 다리를 다시 잇고, 큰 길을 다지는 일에 우리가 나섭시다. 우리가 먼저 땀을 흘리고 헌신하되 발걸음을 맞추어 대중과 함께 걸어갑시다. 우리부터 넓고 크게 통일의 미래를 먼저 실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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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결성 20돐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범민련은 민족의 통일열망이 뜨겁게 분출하던 지난 세기 90년대에 온 겨레의 사랑속에 태어나 민족의 크나큰 믿음과 지지 성원 속에 전진해온 자랑스러운 통일애국대오입니다.

범민련의 20년간의 력사를 돌이켜볼수록 더더욱 명백해지는 것은 범민련운동은 명실공히 시대와 력사와 민족의 절박한 부름이고 요구였으며 바로 이것이 범민련운동의 합법성의 기초이며 정당성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가 통일운동에서 3자련대를 실현하여 온 민족의 대단합을 추동하고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에로 앙양시킨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범민련의 력사적 공적이고 자랑입니다.

더욱이 6.15통일시대가 위기에 직면하고 전쟁위험이 극도에 달한 오늘의 엄혹한 정세는 스무해전 범민련이 추켜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합의 기치와 정신이 열백번 정당하고 옳았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범민련의 통일애국운동은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순간도 멈출 수 없으며 더욱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조직을 고수하고 확대하며 합법화하기 위한 범민련 남측본부의 투쟁에 전적인 지지 성원을 보내면서 범민련결성 20돐을 맞는 여러분들을 충심으로 축하합니다.

주체99(2010)년 11월 20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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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범민련 결성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대회를 치루는 범민련 남측본부 동지들께 뜨거운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범민련 20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각인될 위대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분단 이후 통일역량을 총 결집하여 남북해외 연대체로 결성된 범민련은 그 탄생 자체가 전면적이고 본격적인 통일운동을 알리는 일대 사변 이었으며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거대한 함성이었습니다. 범민련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반통일세력들은 온갖 악랄한 탄압과 방해책동으로 범민련을 무력화 시키려고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죽음도 감옥도 불사하며 불타는 신념과 뜨거운 동지애로 굳게 뭉쳐 강철로 단련되어 가던 범민련 이었습니다. 불패의 범민련은 역사의 고비 마다 선봉에선 실천투쟁으로 민족자주, 평화통일의 강령을 뿌리내렸고 민족대단결에 입각한 간고한 투쟁 노선은 오늘의 6.15통일시대를 맞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그 동안 범민련의 조직 발전을 위해 땀과 열정을 다 바쳐 오신 범민련 지도부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특히 반통일세력들의 비열한 탄압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범민련을 강성조직으로 거듭나게 해온 남측본부 동지들의 숭고한 희생과 투쟁에 경의의 인사들 드립니다. 동지들의 그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에 3자연대의 완결체로서 범민련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범민련 결성 20주년을 맞이하는 감격스러운 오늘, 남, 북, 해외가 함께 어울려 통일조국의 청사진을 그리며 축배의 잔을 높이 들어야 할 오늘, 우리는 탐욕스러운 외세와 그에 기생한 사대 반통일세력들에 의해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6.15선언, 10.4선언은 무참히 짓밟히고 예속과 대립으로 민족과 조국의 운명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과 술수는 진실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민족자존과 민족단결의 숨결이 살아 있는 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머잖은 날 반역의 무리들은 혹독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헤쳐 온 불패의 범민련, 통일운동의 사령부로서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범민련이 있어, 우리들은 동지들의 손을 굳게 잡고 눈보라, 불바람도 웃으며 당당히 맞서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범민련 결성 20주년 기념대회가 범민련의 단결과 역할을 더욱 높여 우리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6.15통일시대를 활짝 꽃피우게 하는 자리가 될 것을 확신하며 긍지 높은 범민련의 전사답게 3자연대 범민련의 깃발을 펄럭이며 통일조국의 여명을 맞으려 힘차게 달려갑시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만세!
조국통일만세!

2010년 11월 25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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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일본지역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주년 기념대회에 보내는 연대사

그리운 이규재 의장님을 비롯한 범민련 남측본부 동지 여러분!
20돌 기념 대회를 함께 축하하기 위하여 모이신 내빈 여러분! 벗 여러분!

범민련일본지역본부는 고난의 가시밭길이었기에 더욱 영광에 찬 조국통일의 길을 한결 같이 전진하여 마침내6.15공동선언을 쟁취하여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실천해온 범민련의 성과를 온몸으로 확인하며 범민련 결성 20돌을 축하하면서 대회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동포애로 불타는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3월에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태를 악용한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긴장격화 책동은 한국전쟁 정전 후 처음으로 서해지역에서 남북쌍방이 상대의 육지를 향하여 대규모 포격을 한다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동포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고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서로의 가슴에 불신감을 안게 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슬픔과 아픔 속에서 다시 한 번「바다의 화약고」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10.4선언의 숭고한「서해평화특별협력지대 창설 구상」을 떠올립니다.
우리들은 분명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번의 불행한 사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실천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불행을 초래한 최대의 책임자는 이 선언을 무시한 이명박 정부라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아니 앞으로 몇 번 이라도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긴장격화,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반통일세력의 책동과 탄압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결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결성 이후 20년간 한결같이「우리민족끼리」힘을 합쳐 자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서 투쟁해온 범민련 정신입니다.

범민련 일본지역본부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고수?실천하는 투쟁의 영광스러운 선봉대의 대열에서 함께 어깨를 걸고 분투할 결의를 다짐합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만세!

2010년 11월 28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일본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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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본부 이지숙

조국통일범민족연합 20돌 축하문

조국과 민족 앞에 한없이 자랑스러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6,15통일시대의 굳건한 반석이 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범민련 결성 20돌을 순정한 동지애로 축하합니다.

1990년 11월 20일, 갈라진 조국의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눈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남북해외 대표들이 한 다름에 달려와서 조국과 민족 앞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결성을 선포했던 그날의 감동이 어제 일 같습니다.

그날, 20살 되던 님들, 어느새 40살이 되었습니다.
그날, 40살이었던 님들, 60살이 되었습니다.
그날, 60살이었던 어르신들, 이제 80평생이 되었습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사수해온 20년의 피눈물, 그래서 마침내 꽃 피운 6.15자주통일 시대의 이름으로 맞이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통일애국의 길에 떨쳐나선 존경하는 동지여러분!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서 평화를 위해 한 평생 목숨걸어온 동지여러분.
우리는 이겼습니다. 보란 듯이 승리하고 있습니다.

조국 분단의 원흉인 외세의 지배아래, 반북, 반민족, 반통일에 명줄을 걸고 사는 숭미사대 매국 세력들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법 아닌 법을 앞세워 온갖 탄압과 협박을 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20년을 하루 같이 선봉에 서서 투쟁해온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 전사들과 통일애국 단체들, 그리고 각 계층 통일 애국인사들의 순결한 헌신적 투쟁은 해외동포들은 물론,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고무가 되고 있습니다.

범민련은 6.15자주통일시대를 선봉에서 열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누구도, 그 어떤 물리력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6.15자주통일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이 발휘하는 영원한 생명력 앞에 현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대결정책의 종말을 보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범민련 남측본부 동지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하는 통일애국단체와 각 계층 동포 여러분!

하나 뿐인 조국을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바치는 3자 연대 유기체는 우리 민족사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뿐입니다.
범민련 20돌의 피 어린 투쟁사는 통일조국의 창창한 역사와 찬란한 미래의 함축이며, 통일애국만이 꽃 피우는 영원한 금강석입니다.

우리민족끼리 최후 승리를 위하여!
사대매국 식민지 정권을 심판하기 위하여!
통일의 그 날을 향해 힘차게 진군해 나갑시다.

2010년 11월 28일
20돌 기념대회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본부 이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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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고문 유태영

조국통일범민족연합 20돌 축하문

친애하는 조국의 남녘동포 여러분, 오늘 이 놀라운, 역사적인, 뜻 깊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창건 20돐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대한 기념대회를 개최한 데 대하여 범민련 재미본부 양은식 박사를 비롯하여 여러 성원들을 대표하여 심심한 감사와 감격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친히 초청하여 주신 범민련 남측본부의 이규재 의장님과 오종렬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조국통일의 성업을 위하여 싸워 나아가는 데 있어서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의 3자연대는 필수적인 세 개의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0년 8월 13일에 백두산 정상에서 저 밑에 있는 천지의 푸른 물결을 내려다보면서 <조국통일범민족대회>의 막을 올렸습니다.
그때 우리 해외동포들은 100여명이 참가했는데, 본인도 해외동포단의 한 대표로서 참가했던 기억이 오늘 더욱 새롭습니다.

그 후 1990년 11월 19일-21일 사이에 3일 동안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회의에 참가하여 실무회담을 진행하였으며, 이 회의에서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로 구성된 3자연대 조직이 공식으로 창립되었습니다.
그 후에 <범민련 해외본부>는 1990년 12월 16일에 베를린에서 결성되었고, <범민련 북측본부>는 평양에서 1991년 1월 25일에 각각 결성되였습니다.

하지만 <범민련 남측본부>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반통일적 독재정권이 범민련 통일운동을 한사코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범민련 결성 5년이 지난 후인 1995년 2월 25일에 가서야 드디어 남녘의 <범민련 본부>가 결성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서 범민련 <창건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조국의 남녘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범민련을 사수하기 위하여 눈물겹게 투쟁해 오신 발자취가 너무나도 고귀하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남녘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운동을 힘차게 싸워 나가시는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범민련의 고귀한 정신과 실천의 과업에 대하여 간략하게 두 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범민련 운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제는 전민족적 통일운동의 역량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데 있습니다.
제가 20년 전 <백두산 범민족대회 개막식>에 처음 참가하였을 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구호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것은 <조국은 하나다>라는 구호였습니다. 이 짧은 구호는 제가 생전 처음 들어보고, 생전 처음 웨쳐 보는 구호였습니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이 짧은 구호는 그 때부터 나의 삶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이 짧은 구호는 나의 <민족관>과 나의 <신앙관>과 나의 <인생관>을 변화시킨 놀라운 구호였습니다.

<조국은 하나다>라고 하는 이 구호는 제가 그 때 6일동안 북녘에서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동안, 줄곧 들려오는 구호이였으며, 또 미국에 돌아와서도 줄곧 계속하여 나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이였습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도대체 언제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세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여러분과 나의 질문인 동시에 또 오늘 특별히 이 2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단 한마디로 여러분과 나의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생존하여 통치하고 있을 때 북녘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과 함께 만나서 합의하고 전민족앞에 제시한 <연방연합 통일방안>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는 60년 동안 <하나 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따로 없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범민련 창건 20돐을 기념하고 있는 우리들의 큰 과제이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범민련 운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제는 남과 북 해외로 분산되여 있는 통일역량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제 개인의 예를 말하자면, 저는 범민련 운동에 가담함으로 인하여
1. 북녘에 있는 이산가족(직계가족) 20여명을 20년 동안 수십 차 만났습니다. 종교인, 문학활동가, 지방관리들, 농민, 노동자, 학생을 만났습니다.
2. 또 범민련 운동에 가담함으로 인하여 저는 미국에서, 또 남녘에서 통일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하시고 있는
a. 오종렬 선생님을 비롯하여 백기완 선생, 이규재, 이종린, 한완상 등 여러 유명한 통일의 선구자들
b. 광주 희생자, 노근리 희생자 대표들, 평택 투쟁자들, 인혁당에 관련된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c. 또 박해전, 이창기 등 통일 언론인들을 비롯한 언론인들을 지난 20년 동안 수백명을 이 범민련 운동을 통하여 만날 수 있었습니다.
d. 한상렬 목사는 뉴욕에서 3번이나 만날 수 있었으며, 민주노동당 일꾼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통일운동에서 <도중하차하지 아니하고> 계속 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은 이 범민련 운동을 통하여 북녘에 20년 동안 30여차 가서 그들을 만나는 데 있었으며, 또한 남녘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과 오늘 또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만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범민련의 기본 관계는 서로 남과 북 해외가 만나는 데 있습니다. 이 만남은 통일을 앞당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셋째, 끝으로 말씀드릴 것은 우리 범민련의 기본이 되는 과제는 <조국은 하나다>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과업을 실천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민족끼리>의 길 밖에는 통일의 길이 없습니다.

미국이 한반도 우리 땅에서 좌지우지 하고 있는 한 통일은 될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미국을 종주국으로 삼고 있는 한 통일은 불가능 합니다. 무건리에 있는 미국 군사훈련기지를 철폐하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 합니다.

저는 어제 말만 듣던 무건리 군사훈련 장소와 효순미선 추모탑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미국의 지배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함께 <우리민족끼리>의 길을 따라 반드시 <조국이 하나>되는 날을 이룹시다.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28일
기념대회장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고문 유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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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범민련 결성 20돌 기념대회에 보내는 연대사

존경하는 범민련 조국통일 투사들,
만나고 싶은 범민련 동지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돌이켜 보면 범민련은 분단된 우리 민족사의 필연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마침내 전 민족대단결을 위한 남북해외 3자 연대?연합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을 보는 거울입니다.
조국통일운동에서 범민련이 걸어온 지난 20년간의 자랑찬 노정은 통일을 지향하는 해내외 모든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세웠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국통일의 주체를 강화하고 통일애국운동을 전 민족적 범위에로 강화 발전시켜 민족대단결의 긍지로운 역사를 아로새겨온 투쟁의 길이었습니다.

당면하여 조국통일의 필수적 전제이며 6.15자주통일시대의 절박한 요구인 민족적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적극 옹호하고 성실히 이행하여 왔습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은 민족주체성확립의 기치입니다. 해내외의 온 민족은 외세의존, 외세와의 공조를 철저히 배격하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범민련은 6.15자주통일시대의 푸른 희망을 정성껏 가꾸어 오는데 선두에 서 왔으며 민족공동선언들을 실천하는 운동에도 계속 앞장서야 합니다.

범민련은 이미 거둔 성과의 토대를 공고히 다지면서 자주와 애국, 통일을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동포들을 더욱 조국통일 운동대오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합니다.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정신적 추동력으로 됩니다.
하여 우리민족끼리 이념의 요구는 조국통일의 주인인 우리 겨레가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민족자체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끼리>이념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의 탄압으로 조성된 6.15자주통일시대의 난관을 반드시 이겨내고 통일조국의 그 날을 앞당겨오기 위해 범민련은 자기 사명을 관철할 것을 이번 결성 20돌을 기념하면서 다시 한번 다짐합시다.

민족대단결 사상과 <우리민족끼리>이념을 실천하는 범민련은 필승 불패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우리 범민련의 신념입니다. 우리의 위업은 정의의 위업이며 정의의 위업은 반드시 승리합시다.

동지들,

어려움이 많으시죠. 어려우실 때는 우리는 세계의 초강국이라고 자칭하는 오만불손한 미제와 맞대결하여 투쟁하고 있는 반제 투사들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외세의 침략적 도전을 물리치고 자기의 안전과 나라의 평화를 지키려는 공통된 지향이 있으며 그 길에서 대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지들, 보고 싶습니다.
동지들, 빨리 만나기 위해서 우리 계속 투쟁합시다.
하루 빨리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임민식
2010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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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이 강 실

범민련 20주년을 축하합니다

남과 북, 해외를 하나로 묶는 3자연대의 민족적인 단결된 힘을 가지고 민족자주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20년 동안 힘차게 달려온 범민련20년의 역사는 바로 통일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의 역사입니다. 결성과정부터 탄압과 억압을 받았으며 범민족대회를 치루기 위해서는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산을 넘는 긴 행군을 하면서 최루탄과 곤봉에 맞서 싸워야 했던 그 엄혹한 시절, 범민련은 그 어떠한 희생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통일의 구심체로서 굳건하고 당당하게 달려왔습니다.

이러한 3자연대의 강렬한 투쟁과 열정은 2000년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내는 귀중한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6.15공동위원회라는 보다 광범위한 3자연대 통일조직을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6.15공동선언으로 열렸던 통일대로가 막히고 통일문이 닫히는 듯한 안타까움 속에서 온몸을 던져 6.15와 10.4선언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금강산피살사건을 핑계로 금강산, 개성 문을 차단하고 하늘길, 땅길, 바다길을 막더니만 이제는 천안함사건으로 전쟁연습에 열을 올리면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는 이 정부의 반통일 반북대결정책은 우리 민족의 앞날에 검은 구름을 몰아오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리는 반역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통일의 거센 파도를 거스를 수 없으며 통일로 향하는 우리의 행진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정부는 통일만이 자주와 민주와 민족번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지름길임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해주었으며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민주개혁진보세력을 더 크고 강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범민련의 확고한 신념과 열정과 연대의 힘이 이러한 난관을 뚫고 나가는 화살촉이 되어 통일의 과녁에 힘차게 꽂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20년 후 범민련은 통일국가에서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 전환되어 있거나, 통일역사의 큰 획을 그은 조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 날을 기쁨으로 바라보며 더욱 굳건하게 단결하여 더욱 힘차게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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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 광 석

어렵고 힘든 조국통일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20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벌써 20년입니다.
조국통일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한지 벌써 20년입니다.
이렇듯 기나긴 나날들을 함께 보내온 동지들과 함께 투쟁과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나온 20년 우리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굽이굽이 어려움의 길이였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조국통일이라는 제 길을 걸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있었기에 힘겨운 길을 지혜롭게 헤쳐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긴 역사속에 수많은 동지들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으며 또한 시련도 많았습니다.하지만 우리의 투쟁이 6.15공동선언이라는 조국통일의 이정표도 만들어내었지 않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이후 통일로 다가가던 우리의 한걸음 한걸음이 자꾸만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민족에게 평화를, 농민에게 희망을 주던 대북 쌀지원사업도 자꾸만 가로막고 있습니다.
남북의 각계각층의 민간교류도 자꾸만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로막는다면 우리의 통일은 더 어려워져만 갑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만나고 또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기에 평화통일을 위해 교류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반북대결정책은 조국통일의 소중한 약속인 남북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긴장만을 고조하고 있습니다.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해 수많은 통일인사들이 흘린 피와 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20주년,

우리 앞에 더 많은 투쟁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조국통일이라는 역사의 정방향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농민들 또한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의 정방향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실천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더 힘찬 연대와 통일의 염원으로 늘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20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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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통일위원장 황 수 영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20돌을 축하드립니다.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조국통일의 최선봉에서 굽힘없이 달려온 범민련은 우리민족 모두의 자랑이며 노동형제들의 모범이었습니다.
분단의 치욕과 외세의 굴욕 속에서, 우리 민중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국통일의 그날을 염원하여왔습니다.
엄혹한 시절, 조국의 자주와 민주, 통일의 깃발을 나부끼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결성에 한 마음으로 기뻐하던 순간이 어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범민련 20년은, 올곧이 조국통일투쟁의 20년이었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탄생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7천만 겨레의 뜨거운 염원이 없었다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남과 북, 해외 동포들의 굳센 단결과 투쟁이 없었다면 통일의 진로를 개척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중심에 범민련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가장 반민족적이고 가장 반통일적인 이명박 정권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조차 전면부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모진 탄압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범민련 20돌을 맞아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상징인 범민련이 투쟁의 선봉에 서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 길에 1천6백만 노동형제들과 80만 민주노총은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범민련 20돌을 축하드리며, 조국통일 그날까지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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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 축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민족대단결의 자랑찬 역사를 가장 선두에서 계승하고 발전시켜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도 6.15공동선언?10.4선언 고수 이행을 위해 노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투쟁의 현장을 지키고 계시는 이규재 의장님과 여러 어르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 어떤 개선의 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민간단체의 줄기찬 노력으로 열린 대북지원사업으로 남북관계의 희망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세는 또다시 파국으로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시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험난해지는 정세 속에서 통일운동도 함께 움츠러드는 듯 합니다. 전체 통일운동진영의 강고한 연대와 실천으로 정세를 돌파하고, 6.15공동선언?10.4선언을 지켜내자던 결의를 돌아볼 때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시금 서로를 추스르고 격려하며 6.15공동선언?10.4선언을 중심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개최되는 범민련 20돌 기념행사가 전체 통일운동진영의 등대가 되길 바랍니다. 망망대해를 환히 비추는 등대와 같이, 가야할 길 일러주는 나침반과 같이, 6.15공동선언?10.4선언이 위기에 처한 작금의 시점에서 전체 통일운동진영의 신념과 의지를 다시금 일떠세워주는 표대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20년의 시간동안 그러했듯, 남북해외 3자연대의 구심 범민련이 건재한 이상 민족대단결운동의 내일은 밝습니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전체 노동자 통일운동은 범민련의 민족대단결 기치에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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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범민련 20년의 역사는 조국통일을 위한 역사입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 배 행 국

범민련 동지 여러분! 결성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범민련 20년의 역사는 우리 조국통일에 역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탄압과 억압 속에서 조국통일의 한 길만을 달려온 범민련의 자취에 저희 민주노련은 진정한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이명박 정권 집권이후 3년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집권 후 가장 많은 탄압을 받는 조직은 역시 범민련이었습니다. 범민련이야말로 이 정권에 맞서 가장 강고하게 투쟁을 전개해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겁니다. 뿐만 아니라 범민련은 잘 못된 빈민운동의 현실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으로 빈민운동의 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특히 저희 민주노련의 결성에 많은 격려와 힘을 실어주신 바 있습니다.

범민련 동지여러분!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암울할 뿐입니다. 그동안 소수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며 반민중 정책으로 일관한 바 있던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얼마 전 개혁중도보수정권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G20정상회의를 보더라도 과거 권위적인 정권의 통치방식보다 더 노골적이고 일방적인 공안 통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개혁 중도보수’ 는 실질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저항을 짓누르는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강행하고 정치적으로는 개헌논의 주도를 통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노점상과 도시빈민은 이명박 정권의 청계천 복원 사업과 노점관리 통제정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 전역의 노점상은 2005년 13,715개에서 2009년까지 10, 345개로 단속과 노점관리 대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는 전역의 29개 지역에 특화 거리를 추진하면서 그중 상반기 14개 자치구 가운데 11개 자치구에서 1,222개를 단속한 성과를 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로지역이 전체 647개가 정리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저들의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정권 들어 노점상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도시빈민의 실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내년 기초생활수급자의 규모는 163만 2000명, 비수급 빈곤층은 10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비수급 빈곤층이 400만 명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2010년 최저생계비 인상률은 작년 대비 2.75%에 불과합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후로 가장 낮은 인상률입니다. 그럼에도 ‘빈곤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운운하며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희 민주노련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단체로서, 앞으로도 범민련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강고한 연대투쟁을 벌여나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범민련 출범 20주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범민련 투쟁 또한 승리의 역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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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결성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청년연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을 지키고 민족의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3자연대의 기치아래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통일역량들이 오로지 조국통일의 순수한 열망으로 정권에 탄압 속에 피땀을 흘렸고, 심지어는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지켜왔던 범민련의 3자연대운동은 통일운동의 큰 궤적을 그렸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겨레의 염원인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현 정권은 민족의 화해와 번영, 평화와 통일을 향한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결성 20년! 범민련이 크고 넓어진 투쟁으로 정권의 반통일 행각을 막아내고 온 겨레의 여망인 통일을 이루는데 더 큰 한걸음을 내딛기를 바라며, 그 걸음에 한국청년연대도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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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공동대표 : 문규현, 배종열, 홍근수)

이명박 정권에 맞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한 길로 나아갑시다.

6.15공동선언 발표 10돌이 되는 올해 범민련 결성 2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통일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1990년 11월 남, 북, 해외 3자연대조직으로 결성된 범민련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과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통일운동을 전개해왔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평화통일의 한 길을 달려오신 범민련 동지들의 노고와 헌신에 평통사 전체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깊은 동지적 애정을 보냅니다.

시대사적으로 지구는 탈냉전을, 민족사는 통일시대라는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취임 직후부터 침략적 한미동맹을 추진 강화하는 한편, 대북압박 전쟁유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한반도를 새로운 냉전지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평통사와 범민련 동지들은 이명박 정권의 침략적 한미동맹 강화를 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굳건히 연대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왔습니다. 투쟁 속에서 우리는 더욱 견결하게 동지애를 키워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권이 북의 정권이양 과도기에 편승하여 2015년 이전에 무력흡수통일을 꾀하고 있는 엄중한 정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이명박 정권의 전쟁불사론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전쟁불사론이 가속화될수록 천문학적 국방비 증액과 민생파탄은 불가피하고, 집회시위의 자유 등 국민 기본권은 극도로 제약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이명박 정권은 장기집권으로 자신의 위기탈출을 도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 평통사와 범민련 동지들 나아가 전체 진보민중진영이 하나로 단결하여 이명박 정권과 침략적 한미동맹에 맞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한 길로 나아가는 데 모든 지혜와 힘을 모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범민련 결성 20돌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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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민주민생평화통일 주권연대 명예의장 윤 한 탁

범민련 창립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반민족세력의 집요한 탄압을 뚫고, 오늘 범민련의 깃발을 지켜온 것이 스무 성상이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범민련 정신을 지키며 이어온 수많은 통일인사들에게도 경의를 드립니다.

범민련 정신은 민족대단결 정신입니다.
더는 갈라진 채로 이대로 참혹하게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한 요구는 오늘 각계각층 민족대단결 정신으로 뜨겁게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남, 북, 해외 어디에 있건, 어떤 처지에 있건, 민족의 피가 흐르는 자라면 자기의 힘과 지혜를 모두 다 모아서 온 민족이 떨쳐나서야 할 때입니다.

민족대단결, 우리민족끼리 정신으로 모두 단결하여 투쟁하자!
조국통일 성스러운 투쟁은 민족사의 지상 과제요 시대의 요구입니다. 통일을 위한 민족대단결은 우리 시대 최고의 가치입니다. 민족의 대 단결로 사대매국 분단대결세력을 척결하여 미군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고,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을 이룩해 나갑시다. 6.15, 10.4선언, 우리민족끼리 단결하는 이 정신으로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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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상임의장 조 순 덕

조국통일범민족연합 20돌을 진심 모아 축하드립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통일운동의 구심.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오직 통일의 한길로,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범민련 역사를 만들어낸 20년. 범민련 깃발아래 소중히 가꾸어온 범민련 20돌을 진심모아 축하드립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남과 북, 해외의 모든 민족 성원들을 하나로 모아 만들어온 3자연대 운동의 역사, 모진 탄압과 시련에도 전 민족적인 통일운동의 역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범민련이 있었기에, 범민련의 깃발아래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90년대 정권의 극심한 탄압과 이적 단체라는 굴레 속에서도 통일에 대한 신념과 낙관,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범민족대회’는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장이었으며, 통일운동의 열의를 모아내는 장이었습니다. 통일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자랑찬 유산입니다.

1990년대 투쟁과 실천의 성과를 이어 받아, 전 국민적인 통일 의지와 시대적 요구 속에서 꽃 피어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 지금의 정권과 보수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6.15선언과 10.4선언을 외면하고 남북 관계를 훼손하고 파탄으로 몰고 가려고 해도 통일조국으로 가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민족의 염원이자 미래인 하나된 조국.
자랑찬 통일운동의 역사에서 하루 빨리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그 길에 범민련과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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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배 은 심

범민련 결성 20주년을 맞아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횃불을 더욱 높이 듭시다.

범민련의 지난 20년은 조국통일운동의 전환적, 대중적 계기를 마련하기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외세에 의해 민족이 갈라진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온 조국통일운동은 범민련의 결성과 함께 남, 북, 해외가 함께하는 전 민족적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지난 2000년에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통일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결과 조국통일운동이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대중운동으로 발돋움 하게 되었습니다.

범민련의 조국통일운동 20년은 그야 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결성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범민련 성원들이 수배, 체포, 투옥되었습니까! 범민련은 그 이름만으로도 반통일세력들에게는 가장 위협적 존재였고,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조국통일운동의 구심점이었습니다.

범민련 20년은 조국통일이 기필코 이루어 질 것이라는 신념을 안겨주었습니다.
범민련의 헌신적인 투쟁은 6.15남북공동선언으로 결실을 맺었고 국민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국가보안법을 사실상 무력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일찍이 있어 본적 없는 조국통일의 사변적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분단된 남북의 장벽에 물길, 하늘길, 땅길이 열려 금강산, 개성, 백두산, 서울, 광주, 제주도를 오가며 민족통일행사가 진행되는 감격적인 모습, 남북이산가족이 감격의 상봉을 하는 모습 등 상상속의 모습이 이제 감격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자리 잡게 된 감격적인 이 기억들은 통일이 멀지 않고 눈앞에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었으며 이는 탄압한다고 해서 흔들리거나 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하여 미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 세력과 남측의 수구냉전세력들은 남북간의 관계를 긴장시켜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보다 공세적인 조국통일운동, 반제자주투쟁을 통해 이 엄중한 전쟁정세를 평화통일정세로 뒤바꾸어야 합니다. 이 투쟁의 길을 범민련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범민련 결성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함께할 결의를 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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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이 축하는 범민련이 우리민족의 염원인 민족자주통일의 기치아래 모든 반통일세력들과 맞서서, 그들의 어떤 탄압과 방해공작에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강고하게 통일운동 일선을 지켜왔기 때문에 더욱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이명박 정권은 남북 영구 분단을 획책하는 미제의 전쟁책동 속에 놀아나는 망국적 대북압박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자본권력의 유지를 위해 인민대중을 볼모로 미제국주의의 더러운 손아래 민중의 고혈을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범민련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몰아내고 오로지 우리민족끼리 통일조국을 이루어내겠다는 결의로 똘똘 뭉쳐 통일운동의 선두에서 세찬 비바람을 뚫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계층을 민족대단결의 장으로 이끌어내어 강력한 연대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남북 교류와 협력을 통해 통일기운을 무르익게 하는 데에도 기여해 오고 있습니다.

범민련은 무엇보다도 인민대중과 괴리됨 없이, 인민대중의 한복판에서 올곧은 실천적 통일운동에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높은 긍지를 심어주었습니다.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기치아래 7천만겨레의 하나됨을 위하여 범민련 깃발을 앞장세워 오직 전진 또 전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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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대중과 함께 하는 범민련 되길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범민련은 지난 20년동안 수구반통일세력의 탄압과 방해 책동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희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온갖 박해에도 의연히 버텨온 범민련 일꾼들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범민련 20년의 역사는 우리 통일운동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범민련은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남북 해외 3자연대를 고수하며 우리민족끼리 기치를 힘있게 웅켜쥐고 통일투쟁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모두 범민련 성원들의 살신성인의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성년을 맞은 범민련은 국민들 속에 더 깊이 뿌리 내리고 국민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민련처럼 운동에 선구자적인 모습도 필요하지만 늘 대중과 함께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사람이 열 걸음 보다 열사람이 한 걸음을 가는 것이 더 빠르니까요.

애국애족단체로서의 범민련 활동은 보장돼야 마땅합니다.
범민련에 대한 이적규정 철회하고 공안탄압 중단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만 하겠습니다.
범민련 20돌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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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20살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20년 전, 우리는 1990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남과 북, 해외의 각계 사회운동단체들이 모여 만든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이는 그동안 분산적으로 진행되었던 통일운동을 하나의 조직적 기반 위에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서 요구되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과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성 10년 후 남·북 정상에 의해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6.15공동위원회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까지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낙인찍고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이 땅에서는 반민족 반통일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한 통일의 주체세력이 튼튼하게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자주화가 평화통일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3자연대의 선행조직인 범민련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천안함사건을 내세워 북에 대한 침략전쟁을 노골화하고 있는 미국과 이에 적극 협조하는 이명박 정권의 반민족적 행태에 맞서는 민족자주적 통일세력의 확대, 강화는 우리에게 매우 절박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범민련 20주년은 우리에게는 축제의 장이자 앞으로 우리 민족과 민중의 과제를 결의하는 결단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한줌밖에 안 되는 지배세력을 위해 민중을 착취하고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을 죽이고도 분단을 내세워 국가권력을 정당화했던 잔인한 정권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민중들의 한결같은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비참한 죽음이 없는 사회를 꿈꾸며 그 길에서 범민련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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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범민련 20주년 축사 -평화재향군인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창립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한민족이라면 누가 들어도 가슴 뛰는 소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분단 65년, 이제야 20살 청년이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합니다. 이렇게 멋지고 속이 후련한 단어로 단체명을 사용하지도 못한 그 가슴 저린 세월의 아픔이 전해옵니다.

온 겨레가 가슴 속 깊이 사랑하는 범민련이 출범 이래 지금껏 탄압의 연속이라는 것은 이 시대가 진정 한민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여 정부를 맞아 이제는 저 야만의 상징 ‘국가보안법’이 폐기되고, 범민련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듯 했지만 이마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수구냉전, 반민족, 민족분열 고착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저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하필 경사스러운 날을 맞아서 흥겨움이 반감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범민련에게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 자신의 20회 생일이겠습니까?
그날, 조국이 하나 되는 그날, 오늘 부족한 흥겨움까지 더하는 그날이 아니겠습니까?

반통일 세력들이 활개를 치면 칠수록 그들의 거짓과 위선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저들의 기세가 부쩍 위태로워 보이는 요즘입니다.
늘 변함없이 조국이 하나 되는 일에 모범이 되었듯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범민련의 힘찬 깃발을 기대하며, 저희 평화재향군인회도 늘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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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 범민련 창립 20주년에 -이 기 형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범민련이 벌써 성년 나이라니
세월은 정말 여류하구나
수고하신 빛나는 의장님 그 이름
문익환 강희남 이종린 나창순 이규재
험한 길 가시밭길을 잘도 헤쳐왔다
형제가 갈라졌다고 조상이 울고 천지가 운다
범민련은
민주주의를 위해 통일을 위해
굽히지 않고 싸워왔다
분단 아! 65년
일제 36년을 합치면 민족 고난은 백년도 넘어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세계 으뜸 한글을 창제해낸 문화 민족이
허송세월 웬 말이냐
양가슴이 찢어진다
어쩌다가 이런 분단 수렁에 빠졌다냐
친일
친미
반역 배족자들 탓이다
저들이 없었더라면
민족 전진 문화 발전은
훈풍을 타고 승리의 피안에 낳았다
춤추는 앞잡이
이놈들을 왕창 짓부수자
우직끈 꺾어 눕히자
범민련은
눈도 귀도 맑았고
모택동은 일찍이 1927년 정강산에서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명언했다
우리의 김일성은 1932년 백두에서
독립은 총탄에서 나온다고 갈파했다
우리들은 오늘 투쟁은 투쟁
오직투쟁에서만 나온다고 확신한다
통일을 앞당기고자 저마다 가슴에서 통일 활화산을 뿜어내자
미국 자본주의는 내리막길에서
국내 배족자들은 종말의 길에서 허덕인다
더 알차게 더 억세게
앞으로 앞으로 내닿아 나가자
우리 투쟁은 역사의 순리에 따라
기필코 승리한다
(2010.11.2 서울 상서로운 풀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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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 전민중이 단결하여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전쟁대결책동을 저지하고 승리의 영마루로 총진군하자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초긴장 정세는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데서 남북공동선언 이행이 얼마나 절체절명의 지상과제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지난 10년간에도 긴장과 충돌은 있었으나 평화국면과 대화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의 약속인 ‘남북공동선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대북정대정책으로 남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실종되고 말았다.

그 결과로 벌어진 ‘연평도 사태’는 전쟁참화를 만드는 재앙의 불씨가 아니라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대화와 공동번영의 국면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교훈의 시작이다.
94년 이래 몇 차례 전쟁위기가 있었지만 남과 북, 북미 간에 대화를 통해 극복되었던 사실을 정부는 되새겨 보아야 한다. 남북관계가 막히고 꼬일수록 대결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통일은 서로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공영의 원칙에서 민족공동의 번영을 도모하며 극복해 나가야 할 민족사적 과제이다. 우리 민족의 분단문제는 북미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휴전상태를 해소하고 전쟁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일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또한 동포를 적이라 규정하고 통일애국단체를 이적단체로 낙인찍어 정권안보의 제물로 삼는 냉전정치는 청산되어야 한다. 더구나 남북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빌미로 또다시 남북화해세력 진보세력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자행한다면 이는 스스로 자멸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정세가 준엄할수록 단결은 더욱 절실해지고, 민중을 믿고 굳세게 투쟁해 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2012년에 진보진영의 총단결과 6.15세력의 대연합으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반통일세력을 결정적으로 패퇴시켜 진보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6.15, 10.4공동선언의 실질적인 이행을 통해 새로운 민족통일 역사를 열어 나가자.
또한, 남북해외 3자연대의 기치를 고수하고 민족의 역량을 한데 모아 자주와 평화와 통일과 번영으로 <우리민족끼리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더 굳세게 단결해 나가자.

범민련을 더욱 강화하고, 6.15시대 전민족적 통일운동기구인 <6.15민족공동위원회>를 올려 세워 단 한순간도 이 땅에서 공동선언을 부정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반시대적 준동이 발을 못 붙이도록 억세게 투쟁해 나가자.

범민련 결성 20주년 기념대회에 모인 우리 참가자들은 오늘 벌어지고 있는 민족의 첨예한 전쟁정세 속에서 공동선언이행 조국통일실현을 바라는 모든 세력의 뜻을 담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할 것을 결의한다.
전민중이 총단결하여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전쟁책동을 파탄내고 2012년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길 것을 결의한다.
범민련과 6.15민족공동위원회의 3자연대를 지지 강화하고 전민족의 대단결을 드높게 실현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2010년 11월 28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 기념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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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 20돌 기념 공동결의문

오늘 우리는 남북공동선언의 기치 밑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자주통일과 평화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요구가 날로 높아가고 있는 시기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결성 20돌을 뜻 깊게 맞이하고 있다.

범민련의 결성은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겨레의 장구하고도 간고한 투쟁이 안아 온 귀중한 결실로서 조국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민족자주통일운동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커다란 사변으로 된다.
범민련이 결성됨으로써 해내외의 온 겨레를 통일애국의 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울 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가 마련되었으며 조국통일운동은 남과 북, 해외의 전 민족적 범위에로 급속히 확대 강화되고 조직적인 3자연대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지난 세기 90년대 자주통일의 혈로를 앞장에서 헤쳐 온 범민련운동은 6. 15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새로운 역사적 발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6.15시대에 범민련이 추켜든 민족자주의 기치는 ‘우리민족끼리’의 민족정신으로 겨레의 가슴속에 뿌리내리고, 민족대단결의 구호는 현실로 꽃펴나게 되었으며 범민련이 피로써 수호해 온 평화의 터전위에 화해협력의 물결이 굽이치게 되었다.
그러나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도전으로 오늘날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에 대한 겨레의 지향과 요구는 짓밟히고 있으며 이 땅위에는 여전히 동족대결과 전쟁기운이 무겁게 감돌고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는 애국의 더운 피와 고귀한 생을 바치며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을 앞장에서 추동해 온 지난 20년간의 노정을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돌이켜 보면서 새로운 신심과 각오를 안고 6. 15자주통일시대를 계속 전진시켜나가려는 드팀없는 의지를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을 철저히 고수하고 실천해나갈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는 범민련운동의 사상과 정신, 목표와 방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범민련은 남북공동선언들을 고수하고 이행해나가는 것을 기본운동방향으로 정하고 투쟁해나갈 것이다.
6.15시대에 마련된 귀중한 성과들을 더욱 빛내어 나가며 남북선언의 모든 조항들과 그 이행을 위한 합의들이 실천에 옮겨지도록 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다.

남북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그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며 외세에 추종하고 민족문제를 외세와의 관계 속에 종속시키려는 사대매국적이며 반민족적인 대결책동을 단호히 반대 배격할 것이다.

2.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와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적극 추동해나갈 것이다.

대화와 협력이 없는 남북관계는 반목과 불신을 낳고 대결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은 민족분열의 역사적 총화이다.
범민련은 남북공동선언들의 이행을 위한 남북 사이의 내왕과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을 적극 장려하고 보다 활성화하기 위하여 앞장에서 노력할 것이다.

당면하여 인도주의협력사업과 금강산, 개성관광재개를 위한 남북대화가 관계개선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는 계기로 되도록 하기 위하여 각방으로 노력할 것이다.
범민련은 부당한 ‘전제 조건’과 ‘원칙 고수’를 운운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외면하고 폭넓은 대화와 협력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는 행위를 저지시켜 나갈 것이다.

3. 해내외 모든 통일애국역량과의 폭넓은 연대를 실현하고 민족의 대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동족대결과 전쟁책동을 막아내고 자주통일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 길은 모든 통일애국역량의 연대단합을 실현하는데 있다.
범민련은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며 나라의 평화와 조국통일을 바라는 해내외의 모든 정당, 단체, 인사들과 굳게 손잡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대문을 함께 열어나갈 것이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은 물론 지식인, 언론인, 경제인,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한 각계 각층과의 다양한 연대운동과 공동활동을 통하여 단결의 폭을 넓히고 더욱 공고히 해나갈 것이다.

동족을 적대시하고 민족적 단합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법적, 제도적 장벽들을 허물고 통일논의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부당하게 구속된 통일애국인사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다.

4. 반통일세력의 체제대결과 전쟁 책동을 반대하고 나라의 평화를 굳건히 수호해나갈 것이다.

남과 북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초위에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주통일과 공동번영을 이룩해나가는 것은 남북선언들의 기본정신이며 범민련의 투쟁강령이다.

범민련은 온 겨레의 강력한 반대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체제대결과 전쟁을 몰아오는 온갖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이며 반평화적인 행위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해나갈 것이다.

범민련은 동족에 대한 ‘제재’와 ‘선제타격’을 떠들며 감행되는 반북모략과 온갖 적대행위를 배격하고 외세와 함께 벌여놓는 광란적인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계속 앞장에서 투쟁할 것이다.

우리민족의 자주통일을 한사코 가로막고 남북 사이의 대결과 전쟁을 부추기는 미군을 이 땅에서 철수시키고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다.

5. 범민련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그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다.

범민련은 민족대단합의 기수이며 통일애국운동의 선봉조직이다.
우리는 범민련조직을 각계층 속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며 그들의 지향과 요구를 앞장에서 실현해나가는 대중적인 조직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우리는 남북선언 이행을 위한 실천투쟁 속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부단히 강화하고 대오를 계속 늘여나가며 범민련 남측본부의 합법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줄기차게 벌여나갈 것이다.

범민련 결성 20돌을 계기로 지역본부들을 튼튼히 꾸리고 남과 북, 해외 범민련조직들 사이의 3자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민족자주통일운동에서 범민련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백방으로 높여나갈 것이다.

해내외의 온 겨레가 범민련을 지켜보고 있으며 시대와 민족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 모두 범민련의 결성을 선포하던 그때의 각오와 정신, 지난 20년간의 자랑스러운 투쟁전통을 이어 불굴의 정신력과 뜨거운 애국의 열정으로 자주통일의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 나가자!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남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해외본부
2010년 11월 20일



이명박 정부의 대결정책이 부른 한국경제의 손실-백남주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남북관계가 이렇게 까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보수적인 정치적 이념을 가진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후보시절 줄곧 내세웠던 ‘실용(?)’이라는 단어에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남북간의 경제교류 만큼은 정치적 논리, 이념적 성향을 떠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을까 하는 조그마한 기대를 가져본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월 24일 국내 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며 새 정부 출범후의 남북경협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48.7%) 혹은 다소 확대(30.7%)될 것이라는 응답(79.4%)이 위축될 것이라는 응답(17.7%)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을 바로잡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실용의 정치적 철학(?)’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전 정권과는 무조건 반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아주 ‘이념적’,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해 나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충남 천안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에 숙소를 지어달라’는 기업인의 요청에 대해 “수만명이 입주하는 기숙사를 지을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근로자들의 집단화로 노사갈등과 체제간(남북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일촉즉발의 남북관계와 경제적 비용

최근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이다. 요즘같아서는 ‘정말 우리가 분단국가, 정전 상태에서 살고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남북을 평화, 통일의 길로 이끌고 가던 6.15/10.4 선언은 ‘비핵개방 3000’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파탄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대북삐라’ 문제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비핵개방 3000’의 입안자인 현인택 교수를 통일부 장관으로 까지 기용하며 6.15/10.4 선언의 이행 의사를 끝끝내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서해상에 충돌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는 가운데 ‘키-리졸브’라는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었다. 군 관계자들의 발언도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 달 국회에서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에서 선제공격해 올 경우 타격지점을 공격하겠다"고 하는 등 국방장관으로서는 적절치 않은 북한과의 전쟁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고, 지난 해 3월 말 김태영 합참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며 선제공격 발언까지 했다. 이에 대응해 북에서는 기간 남북간의 긴장해소를 위해 합의했던 조약들을 폐기한다며 강경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 파탄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임은 당연하다.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내달리면서 경협사업들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1998년 11월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지 오래고 8년의 연륜이 쌓인 개성공단마저 위기에 빠져있다. 남북간의 교역도 줄어들고 있다. 남북관계가 위기국면으로 치닫자 지난해 남북교역은 전년대비 3천만 달러(1.2%)증가에 머무른 18억 2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2007년 남북교역액이 17억 9천만 달러로 전년대비 33%증가한 것에 비하면 저조한 기록으로 최근 4년간 증가율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는 남북교역의 28%가 감소했으며, 올해는 30~40%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2009.1.15 ‘남북포럼’ 보도자료)

그동안 남북경제협력은 우리에게 유?무형의 많은 이득을 안겨주고 있었다. 비단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가치 뿐만이 아니라 해외로 향하는 발걸음을 금강산으로 돌리게도 했고 국가신인도를 높여줘 여타의 투자사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는 ‘경제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를 앞세워 남북경협 사업을 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남북경협의 이득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관계가 경색됨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얼마만큼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경협중단으로 인한 직접적 손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남북경협으로 인해 기간 투자했던 돈들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고스란히 비용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남북경협시민연대(대표 김규철)에 따르면 남북경협이 전면 차단될 경우 정부의 대북 지원액을 포함해 총 7조4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남북경협이 전면 차단되면 민간의 대북기업 투자와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지원 등 총투자손실은 3조7천억원, 총 영업손실도 3조7천억원에 달한다"며 "여기에 남북경협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남한에서만 최소 8천800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한다.(2009.1.12. 연합뉴스) 이 가운데 철도ㆍ도로 복원 사업 지원 8000억원, 입주기업 손실보조 약정액 3082억원, 남북협력기금 사용 1200억원 등 정부지원 손실액만 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아산의 경우 작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지난달 말까지 발생한 매출 손실만 999억6천만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결국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서 경협이 중단되게 되면 위와 같은 손실을 보게 된다.

남북경협의 상징 - 개성공단의 손실

남북경제협력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 사업 역시 중단되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2008년 기준 개성공단에 투입된 돈은 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구축 6천600억원, 공단부지 조성 등에 3천100억원, 입주기업 투자금액 4천500억원 등으로 만약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1조4천여억원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2008.12.1 아이뉴스24) 현재 건립중인 공장 완공시 발생할 2조4900억원의 경제효과까지 고려하면 손실은 실로 막대하다.

또한 입주업체들이 도산하게 되면 협력업체 도산을 포함한 손실액은 예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윤기관 충남대 교수에 따르면 입주업체가 시장에서 퇴출 된다면 3천 100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상당히 큰 손실을 볼 것이라고 한다. 실제 개성공단은 공단운영과 관련된 식자재, 원자재 등이 남한에서 100% 들어가므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뿐만 아니라 남측의 많은 기업들이 연관되어 있다. 결국 개성공단 사업이라는 것이 남한의 내수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인데 개성공단이 삐걱거리게 되면 지금같은 불경기 상황에서 내수를 부양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기간 개성공단이 경제적으로 기여했던 부분도 포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성공단 가동기업수와 생산액만 따져도 개성공단 사업의 경제적 효과는 상당히 크다. 2005년 가동기업수 11개업체, 연간 1,491만 달러였던 생산액은 각각 2008년 88개 업체, 연간 18,648만 달러로 늘었고, 특히 2008년 생산액은 전년대비 49%나 증가했다. 지난 2004년 12월 첫 가동 이후 4년 동안 4억6천만달러어치를 생산했다. 2008년 기준으로 개성공단 사업은 연 2.5억 달러의 매출은 물론, 8.8억 달러의 생산유발 효과와 7,500명의 남측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2009.3.13. 현대경제연구원 ‘북한 미사일 발사의 영향과 과제’)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된다면 이러한 경제적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경제리스크와 대외신인도

남북관계의 발전, 진전은 한반도의 위험을 낮추면서 대외신인도, 신용도 개선에도 상당히 크게 기여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만약의 하나 국지적인 충돌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자본이 다 빠져나가 우리나라 경제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데, 위험도를 낮추는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국내적으로는 사람들이 집안 혹은 기업에만 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려하지 않을 것이고, 국외적으로도 우리나라에 투자하려는 국가나 사람들은 극히 적어질 것이다. 만약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이자(위험요소에 대한 비용)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헌데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커다란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 불확실성과 위험요소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기에 국민들이 위와 같은 우려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남북간에 약간의 충돌이 생겼을 때 우리나라 경제에 그렇게 큰 파장을 주지는 않았다. 이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악화한다고 해서 긴장이 고조돼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오판이다. 지금까지 남북간의 긴장국면이 조성되어도 우리나라 경제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남북이 서로 신뢰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위해 꾸준히 교류와 대화를 해왔던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평가절하했던 정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는 엄연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고, 남북간의 긴장이 지속된다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악화된다고 해서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안이한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전 정권의 상황과는 달리 남북관계가 이명박정부에 의해 파탄남에 따라 위험요소를 관리할 수 없는 현황에서 사소한 불씨가 확대되어 우리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이러한 한반도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이라는 극단적인 가정이 아니더라도 남북관계가 계속 경색되고 남북간의 교류, 협력이 없어져 간다면 한반도의 리스크는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고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된다.

지금과 같은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리스크까지 가중되게 되어 국가신용등급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자금조달이나 부채상환에 있어서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2008.9.5. ‘남북경협 20년의 성과와 과제)에 따르면 남북경협을 통해 대외신인도가 개선된 효과를 계산해보면 77억8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연구원은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가산금리가 올라갈수록 우리나라가 돈을 빌리는데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는 2000년 6월 말 2.23%포인트에서 올해(2008년) 3월 말 0.60%포인트로 1.63%포인트 하락했다"며 "이는 국제금리 인하,한국경제의 발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3분의 1 정도인 0.5%포인트를 남북경협 효과로 볼 경우 외채 이자상환 부담이 약 77억8000만달러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남북관계가 단절된다면 위와 같은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도 목을 매고 있는 외자유치도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외자를 끌어오기 위해서도 더 많은 비용(이자)을 지불할 수밖에 없어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반도에 위험이 증가해 가산금리가 오르면 외국 등으로부터 빚을 지고 있는 돈에도 추가로 이자부담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개성공단은 계약이 취소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기업들의 실직적인 손해도 늘어날 것이다.

국방비 증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당연히 국방비 증액의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단 단편적인 국방비가 증대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살리기, 국민복지 향상 등 유용하게 써야 할 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고, 기술 개발 등 사회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며 일할 수 있는 인력이 비생산적인 국방부문에 일하게 됨으로써 가져다주는 경제적 손실도 있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2008.9.5. ‘남북경협 20년의 성과와 과제’)에 따르면 남북경협을 통해 국방 부문에서도 군축에 따른 예산 절감, 군 병력의 생산 인력 전환 등으로 약 181억6000만달러의 비용이 절감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미국으로 부터의 무기구입 압박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고, 이미 세계 5위의 무기수입국인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비용부담을 강요당할 것이다. 남북간의 긴장이 격해질수록 국방부문에 대한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한미동맹’에 우선순위를 두는 현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분담금 증액 이라든지 PSI참여, 파병 등의 요구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미국 퍼주기’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갈 곳 없는 중소기업

또한 개성공단의 경우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활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개성공단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상당수는 북한의 저임금을 활용한 섬유 분야 등의 기업들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출했다. 1단계 1차 분양기업들은 남북협력기금으로 투자비용의 50%까지 대출 받았으며, 2차 업체들에는 신용보증기금 특례 조항을 통해 신설된 자금 100억원까지 보증해주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소기업으로, 남북간의 대화 단절은 개성공단 기업들에게 자금줄을 끊고 수주마저 끊기게 해 기업들의 사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개성공단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그곳의 중소기업들은 더 이상 활로를 찾기 힘든 형편이다. 안그래도 경제가 어려운 판국에 개성공단 마저 흔들린다면 중소기업들은 더욱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하기에 정부의 남북대결 정책은 개성공단의 중소기업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이는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다.

지금은 중소기업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윤증현 장관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수출만으로는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기는 힘든 형편이 되었고, 내수의 비중을 더욱 높여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고용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문제는 남한 경제의 활로를 여는 절실한 문제 중 하나이다. 개성공단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남한의 중소기업들에게 커다란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미래이익의 포기

실제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남북경협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며 남북경협이 잘되지 못하더라도 우리경제에 큰 손실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남북경협은 미래 한반도 경제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하기에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영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개성공단 1단계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2010년에 입주계약업체 260개가 본격 가동될 경우 생산 유발효과는 지난해의 7.1배인 36억~47억2천만달러,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1억9천만~15억6천만달러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공단이 폐쇄되면 투입자금 회수가 불가능해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그보다 향후 폭발하는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를 놓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당장의 이러한 수치상의 경제적 이득뿐만이 아니라 남북경협의 발전은 이후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기에 그것의 포기로 인한 비용은 돈의 액수로만 표시하기 힘든 막대한 것이다.

일례로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의 기운이 한창 높아갈 때 우리는 대륙간 횡단 열차와 같은 동북아시아의 물류기지로서 한반도의 위상을 직접 그려보곤 했다. 남북의 철도가 연결되고 각종 회담이 진전 될수록 더 이상 이러한 것이 꿈이 아니라 실현될 수도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비단 대륙간 횡단열차 뿐만 아니라 북의 광물자원, 서해 유전 공동 탐사 등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들은 무궁무진하다. 지금 당장에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통일된 한반도를 그려 가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크나큰 이득이 되는 사업들이다. 이러한 꿈을 꾸어 본다면 실로 남북경협이 가져다주는 미래 이득은 단순 수치로만 계산할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다고 분주하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동북아 금융허브론’이 등장했고, 현 정권에서는 ‘녹색(?)성장’이란 것이 등장했다. 기존의 산업만을 가지고는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기 힘드니 새로운 동력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북의 광물자원, 대륙간 철도 등 남북간의 경협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남북 대결 정책은 이러한 이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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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국가브랜드 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18일 첫 회의를 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의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는 현상)의 10% 정도만 개선되면 약 130억 달러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브랜드라는 말이 아직 좀 어색하기도 하고 그 방도를 지켜봐야 겠지만(국가신인도를 위해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 등의 논리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 국가의 대외 신인도를 높인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최근 주한 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낮은 이유 중 1위(48.4%-복수응답)로 남북간의 대치 상황을 꼽았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위기관리와 협력은 필수적이다.

비단 진보진영 뿐만이 아니라 ‘비핵개방 3000’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 정부의 모습을 봐서는 향후 정책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남북관계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남한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반도의 긴장국면 까지 겹쳐지면 ‘경제 살리기’는 더욱 요원해진다. 남북경협의 경제적 손익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설문에서도 확인되듯이 남북관계의 파탄은 대외신인도를 추락시키고 남한 경제에 악재로 작용해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그렇게 자신하던 경제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남북관계까지 파탄의 지경으로 내 몰아 우리 경제에 더 큰 부담을 가중시킨다면 현 정권에게는 더 이상 등 돌릴 민심도 남게 되지 않을 것이다.

하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 남북관계를 파탄의 지경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하던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라도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 첫 출발은 6.15/10.4 선언 이행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핵개방3000’으로 대변되는 지금까지의 대결적 대북정책을 폐기하고, 6.15/10.4 선언을 지지 이행한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경제살리기’의 지름길이다.<끝>
* 원문출처 : ./view.php?&bbs_id=bbs3&doc_num=161


<조선중앙통신사 비망록 > 일본의 추악한 력사외곡책동을 단죄한다

(평양 5월 10일발 조선중앙통신) 지난 세기 야만적인 살륙전쟁과 군사적 강점통치로 조선과 아시아 나라들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애하고 인민들에게 커다란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 일본에서 오늘 피로 얼룩진 과거사를 부정하는 반력사적행위가 로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아베내각 출현후 국제사회의 보편적 력사인식에 정면도전한 일본의 력사외곡 책동은 정부당국자들이 직접 나서서 조직적으로 감행하는 것으로 하여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수상과 외상 등 정계가 공식적으로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 사실을 부정하고 사회계, 언론계, 교육계가 한동아리가 되여 력사 외곡에 가담함으로써 전 일본사회가 국수주의, 복수주의의 탁류에 휘말리고 있다.
일본의 력사 외곡책동은 침략과 략탈의 과거사를 재현하려는 21세기의 위험천만한 반인류적 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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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력사 외곡책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과거침략사에 대한 전면 외곡이다.
일본반동들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 강점통치와 침략행위를《합리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제의 조선강점 진상을 악랄하게 외곡하고 있다.
2003년 10월 28일 도꾜도 지사 이시하라는 1910년의 《한일합병》에 대해 언급하면서《결코 무력으로 침공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조선반도가 분렬되여 안정되여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들(조선인)의 총의로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일본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합병이 이루어졌다.》고 력설하였다. 10월 31일에는 1920년대에 창설된 국제련맹을 꺼들면서《그때 국제련맹도 있었지만 누구도 일본을 비방하지는 않았다.》는 상식밖의 망언을 하였다.

2003년 자민당의 가메이파 회장 에또 다까미는 유엔이 1945년에 발족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일합병》은 《량국이 조인하였으며 유엔이 이를 무조건적으로 승인하였다.그때로부터 90년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식민지지배로 된다는것인가.》고 떠들었다.
일제의 죄악중에서 가장 큰 죄악은 국권강탈이다.
1868년《명치유신》후《일본의 번영과 <천황>국가를 위하여 무력으로 조선을 정복하여야 한다》는 《정한론》을 정책화한 일제는 1905년 11월 17일 수많은 헌병들로 조선왕궁을 포위하고 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하여 강도적인 《을사5조약》을 날조해냈다.
일본반동들은 《을사5조약》을 비롯한 구《조약》들이 구조선정부의 동의밑에 《합법》적으로 체결되여 당시 유효하게 실시되였다고 주장하고있으며 일부 어용학자들은 그것들이 국제법적으로는 《적법》성을 띠고있다고 맞장구를 치고있다.

2001년 당국이 검정통과시킨 중학교력사 교과서는 수세기에 걸쳐 감행한 일본의 조선침략과 군사적강점을 심히 외곡 서술하고 있다.
력사교과서는 조선침략과 지배를 력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미 허위성이 드러난 《미마나미야께》설을 되풀이하였다.
일본이 4세기이후 수백년동안 조선의 남부지역에 성립된 가야(임나-미마나)에 《일본부(미야께)》를 설치하고 지배하였다는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한개 지방정권에 불과하였던 기내 야마또정권을 통일정권으로 묘사하였으며 이 정권이 조선에 출병하여 남부지역을 지배한듯이 외곡하였다. 일본력사의 《우수성》을 인위적으로 강조하고 그 비교,방증대상으로 조선력사를 꺼들면서 조선력사는 예속의 력사이고 조선민족은 력사적으로 《속국》의 운명에 놓여있은듯이 서술하였다.
교과서는 또한 《임진왜란》개시를 《조선에로의 출병》,《대군을 조선에 보냈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씀으로써 침략을 분식하였다.지어 일제의 군사적강점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면서 식민지지배의 《합리성》을 주장하였다.

일본각지에 건설된 《평화박물관》들에는 당국의 지시에 의해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자료들만 전시되여있다.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감행한 전대미문의 범죄행위들에 대한 미화분식은 과거침략사를 가리우기 위한 력사외곡 행위이다.
일제는 군사적 강점통치기간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랍치,강제련행하고 100여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였으며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어갔다. 그리고 근 400t에 달하는 금을 비롯하여 1,798만t의 철과 3,000만㎥의 목재,3,900만t의 쌀 등 귀중한 부원을 닥치는대로 강탈하였다.
그러나 지금 일본에서 이 모든 범죄가 미화분식되고있다.
1995년 총무청장관 에또는 일본이 조선에서 《좋은 일도 하였다》는 파렴치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력사교과서들에서는 조선인강제련행을 《조선인들의 자발성에 의한것》으로 오도하고있다.
정부가 최근에 발표한 《아시아태평양전쟁시에 〈치시마〉에로의 조선인련행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서》에서는 《다이헤이마루》사건의 희생자수를 극력 줄여 집단학살만행을 가리우려 하였다.
력사교과서들은 반일의병과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학살, 1919년 3.1인민봉기와 1926년 6.10만세운동, 1920년 《경신년대토벌》, 1923년 간또대지진시 감행된 조선인 대학살만행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있다.
일제는 강점기간 《조선력사가 남아 있게 되는 경우 일본이 조선력사를 수용하였다는것이 남아 있게 되므로 조선력사를 진멸하여 버림으로써 그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는것이 좋다》는 강도적론리에 기초하여 우리의 민족성을 말살하려하였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고전에 대한 수색작전을 벌리고 수백명의 일본《학자》들을 조선의 방방곡곡에 들이밀어 헤아릴수 없이 많은 고서적들을 빼앗아갔으며 조선력사를 기록한 력사문헌들을 《불온도서》라고 하면서 20여만권이나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략탈해간 문화재는 도꾜국립박물관에 진렬된 조선문화재 4만여점을 비롯하여 고려자기, 민족고전 등 수십만점이 된다.
일본에서 발간된 《고적조사보고》는 조선의 시조릉인 단군릉을 비롯하여 고려태조릉 등 고려의 력대 왕릉들이 1910년대에 이르러 일제에 의하여 단 1기도 남지 않고 모조리 도굴되였다고 서술하였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와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하여 감행해온 모든 죄행을 분식하고있다.

2002년부터 사용되고있는 중학교력사교과서를 비롯한 력사교과서들에서 우리의 민족고전을 소각하고 략탈하여 조선을 문헌의 참화지대로 만든 죄행에 대하여 언급조차 하지 않고있다.
2003년 5월 31일 당시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였던 아소는 《조선사람들이 이름자를 달라고 한것이 <창씨개명>의 첫 시작으로 되였다.》, 《한글문자는 일본인이 가르쳤다.력사적사실을 옳게 인식하는것이 좋다.》고 망발하였다.
부과학성에 제기되였던 2005년도 중학교력사교과서 신청본에서도《창씨개명》이 마치 조선사람들의 《희망》에 의해 이루어진것으로 서술하였.
2005년 문부과학상 나까야마는 교육에서 기본은 령토위치에 대해 가르치는것이라고 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령토》임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최근에는 정부가 2007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교과서들에 독도를 《일본령토》로 서술할것을 지시하였다.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기한 《독도우표》가 발행되였으며 교과서들과 책들도 출판되여 나돌고있다.
일본은 대륙침략행위를 미화분식하는 력사외곡행위를 감행하고있다.
2001년 검정통과된 력사교과서와 2005년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행한 개정판교과서에서는 청일전쟁과 로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자위전쟁》,《해방전쟁》으로 미화하였으며 태평양전쟁의 《최대피해자》가 일본인것처럼 꾸미였다.
2002년 10월에 발행된 《자습용문제집》은 《일본의 전쟁리념》이 《각국의 자주독립》과 《인종차별철페》에 있었다고 서술하여 일본인에 의한 세계통치의 정당성을 합리화하였다.

2001년 2월 18일 이전 방위청장관 노로따는 일본이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벌린 《군사깜빠니야는 아시아를 식민주의에서 해방하는데 기여한것으로 여전히 평가받고있다.》고 망발하였다.
집권자민당이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한 《전후 60년 국회결의안》에서는 일제의 아시아나라들에 대한 《식민지지배》와 《침략행위》라는 표현을 모두 빼버렸다.
《국민의 력사》와 같이 침략사를 찬양한 위험한 책들이 출판보급되고 있으며 《자존-운명의 순간》과 같이 전범자들을 극구 찬미하는 영화,록화물들이 제작방영되고있다.
1950년대중엽 은페, 축소로부터 시작되여 계단식으로 전면외곡,부정,찬양,확대에로 이어지고있는 일본의 력사외곡책동은 단순히 학술상 오유나 력사인식의 부족에 기인된것이 아니라 당국과 집권세력의 조장,묵인하에 감행되는 일대 정치사기행위이다.

2001년 4월 3일과 2005년 4월 5일, 2006년 3월에 문부과학성은 과거침략사를 외곡,미화분식한 력사교과서들에 《합격》도장을 눌러 발행하도록 하였으며 2007년 3월 30일에는 고등학교들에서 사용할 력사교과서들에서 반인륜적범죄들을 삭제하거나 외곡하여 서술할것을 지시하였다.
력사외곡책동과 관련한 다른 나라의 항의와 규탄을 《내정간섭》으로,《헌법침해》로 걸고있으며 외무성을 비롯한 당국이 외곡된 력사교과서의 재수정을 반대한다는 립장을 표명하고있다.
여야정치인들과 재계, 언론계 등 광범한 배후세력이 력사외곡책동을 정신물질적으로,재정적으로 적극 성원하고있다.
최대후원세력은 력사외곡을 목적으로 1997년에 조직된 극우익단체인《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이다.

자민당은 1993년 8월 105명의 《유명인》들로 구성된 《력사검토위원회》를,1996년 10월에는 교과서들에서 반일적색채를 없앨 목적으로《교육문제에 관한 기획팀》을 공식 발족시켰다.
국회의원 240여명이 망라된 《일본회의》가 외곡된 력사교과서편찬사업에 거액의 자금을 대주고있으며 100여개의 기업체와 《산께이신붕》을 비롯한 언론기관들이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고있다.
일본에서의 력사외곡의 본격화는 국민들속에 군국주의적력사관과 복수주의적 감정을 주입하고 재침을 위한 국내의 사상정신적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있다.

2

일본의 력사외곡책동에서 간과할수 없는것은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에 대한 전면부정이다.
1996년 6월 4일 자민당소속 중의원의원 오꾸노는 제2차세계대전시기 정부가 일부 아시아나라 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모집한것은 《결코 정부의 강압적인 처사가 아닌 상적행위》라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망발을 꺼리낌없이 늘어놓았다.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리사 사까모또는 《〈위안부〉력사는 화장실력사》라고 줴치면서 녀성을 성노예, 성도구로 삼았던 일제의 녀성멸시의식을 공공연히 드러내였다.(남조선통신《련합뉴스》, 2001년 4월 13일)
1996년 4월 6일 일본당국은 유엔인권에 관한 위원회 제52차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범죄를 합리화하는 《녀성폭행에 관한 특별보고자의 보고서에 대한 일본정부의 견해》라는 문건을 제출하였다.
문건은 국제법을 꺼들어 《성문화된 것이 없다》고 하면서《위안부》범죄가 국제법위반이 아니며 따라서 일본정부에 범죄자적발, 기소, 처벌과 관련한 법적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2005년 8월 외무성은 일본군성노예문제는 관계국들과의 일괄처리협정에 의해 법적으로 다 해결되였다는 립장을 다시 드러내였다.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범죄에 대한 부정은 아베내각하에서 더욱 집요하고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
올해 3월 1일 수상 아베는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강제동원사실을 립증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였으며 5일 국회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미국회에 제출된 성노예범죄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다해도 절대로 사죄하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외상 아소는 2월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일본정부가 《위안부》문제에 관해 명확히 사죄할것을 요구한 결의안이 미하원에 제출된것과 관련하여 《객관적사실에 기초한것이 전혀 아니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하면서 불만을 표시하였다.
3월 25일 내각관방부장관 시모무라는 종군간호부나 종군기자는 있었지만 《위안부》는 없었다, 일본군이 《위안부》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력설하였으며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위안부》범죄를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한 고노내각관방장관의 담화가 명백하지 않고 오해를 초래하는 등 잘못된것이라고 하였다.

《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은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정부의 공식견해로 채택할것을 당국에 요구하였으며 일본군《위안부》범죄와 관련하여 1993년 고노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담화》는 일본군《위안부》범죄가 구일본정부와 군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반인륜죄행이라는것을 부정해오던 정부가 저들의 책임을 립증하는 증거자료들이 발견되고 국제사회의 비난과 추궁이 높아지자 마지못해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표명하면서 군부의 관여와 강제성을 공식 인정한것이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오늘 현 집권세력이 불충분하게나마 인정하였던 《담화》에 대한 《재검토》를 떠들고있다.
《재검토》를 맨 앞장에서 들고나온 현 내각관방부장관 시모무라와 《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 회장 나까야마는 력사교과서에서 〈위안부〉나 강제련행소리가 줄어들어 좋다》,《〈위안부〉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등의 망언을 한 극우익정치인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주도하는 《재검토》가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을 전면부정하고 그 반인륜성을 약화시키거나 백지화하리라는것은 명백하다.
3월 16일 정부는 내각회의에서 결정한 그 무슨 답변서라는데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일본군이나 경찰에 의한 《위안부》 강제련행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산께이신붕》 4월 8일부는 일본군이 《위안소》의 성병검사 등에 관여한 일은 있어도 노예사냥과 같은 강제련행을 직접 감행한 일은 없었다고 하면서 당국의 력사외곡에 합세하였다.

일본반동들은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범죄의 실상을 가리우려고 비렬하게 책동하고있다.
그 하나가 2001년 1월 NHK TV방송이 만든 《녀성국제전범법정》을 다룬 련속편집물 《전쟁을 어떻게 재판하겠는가》의 속편《따져지는 전시성폭력》의 내용이 방영직전에 우익보수정객들의 압력에 의해 일본의 전쟁책임을 가리우는 방향에서 대폭수정된것이다.
아베를 비롯한 정부당국자들에 의해 편집물은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이전 일본군인의 가해증언과 피해자들의 증언은 물론《천황》 히로히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일본의 국가적책임을 선언한 장면까지 빼버리고 《법정》을 비난하는 우익반동들의 발언을 첨가한 얼뜨기작품으로 되고말았다.
그러나 범죄의 력사는 절대로 덮을수 없다.

일제가 관권과 군권을 동원하여 여러 나라 녀성들을 침략전쟁터에 강제로 끌고가 비인간적인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사실은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피해자들과 증견자들의 증언, 당시의 관헌문서들,《위안소》에 드나들던 구일본군 군인들의 자백에 의해 명백히 밝혀지고있다.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풍곡동에서 발견된 《위안소》건물은 구일본군 조선주둔 라남 제19사단이 편성초기부터《위안부》강제련행에 가입하였음을 보여주고있다.
1992년 11월 17일 영국주간잡지 《에코노미스트》는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에 당시 내각 수상이며 륙군상이였던 도죠가 관계한 자료를 밝히는 1942년 3월 12일부로 된 전시전보를 공개하였다. 전보는 대만주둔 《황군》사령관이 도죠에게 보낸 것으로서 거기에는 《남방의 군본부로부터 50명의 <위안부>들을 브루네이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것과 관련하여 나는 헌병에 의해 선발된 다음의 3명의 인물들을 <위안소>관리인으로 파견하도록 허락해줄것을 당신에게 요청하는바이다.》라고 씌여있었다.

구일본군에 의한 일본군《위안부》의 조직적인 관리가 정부가 발표한 1936년보다 3년 앞선 1933년부터 시작되였음을 밝히는 새문서도 일본문서관에서 확인되였다. (남조선《MBC》방송, 1992년 12월 6일)
문서는 구일본군 혼성 제14려단사령부가 만주에 진출했을 때 작성한 위생업무기록 34편과《위안부》건강관리기록 등 모두 48편 1,000여페지에 이르는 상세한 자료이다.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에 직접 관여하였으며 그 지시로 아시아각지에 《위안소》가 조직되였다는것을 밝힌 당시 륙군성간부의 업무일지가《일본의 전쟁책임에 관한 자료쎈터》대표인 아라이교수에 의해 공표되였다. (《마이니찌신붕》, 1993년 7월 27일)
중국에 있던 일본수비대가 1944년에 발표한 《위안소》리용에 관한 《병사구락부규정》에는 군부가 위생관리 및 재정유지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여있었다. (UPI통신, 1992년 6월 25일)
제2차세계대전종결당시 구일본군 제117사단장이였던 스즈끼는《위안소》설치를 3차례에 걸쳐 명령하고 조선과 중국녀성 총 140명을 《위안부》로 강제련행한 사실을 진술하였다.

일본군《위안부》강제련행책임자의 한 사람이였던 요시다 세이지는 《명백히 할것은 일본군〈위안부〉들을 모집한것이 아니라 강제로 랍치하였다는 점이다.〈위안부〉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고 증언하였다.(《도꾜신붕》, 1998년 4월 5일)
일본의 간또가꾸잉대학 교수 하야시 히로후미는 올해 4월 17일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한 새자료 7점을 발표하였다.
자료들은 일본군점령지에서의 잔인한 행위에 관해 각국 검찰당국의 노력으로 방대한 량의 증거서류들이 준비되고 제출된데 대하여 밝히고있다.
구일본군병사들인 고야마와 사까꾸라가 4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제2차세계대전시기에 감행된 성노예범죄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치되는 부대마다 《위안소》가 있었다고 하면서《위안소》설치는 군부의 명령없이는 실현될수 없는것이였다고 고백하였다. 지어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는 군수품을 수송하는 마차를 리용한 이동식《위안소》까지 설치되였다고 하면서 후에 《위안부》들이 강제련행되여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고 증언하였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강제동원을 립증하는 네데를란드정부 비밀문서가 얼마전에 공개되였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인도네시아에 파견되였던 네데를란드장교가 본국에 보고한 문서에 반영된 자료들은 일본군이 《위안부》강제동원에서부터 《위안소》운영에까지 전면개입하였음을 보여주고있다.
여러 나라의 국가문서들과 피해생존자들,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일제의 천인공노할 죄악이 계속 드러나고 그에 대한 법적책임이 론의되고있지만 일본의 현 집권세력은 력사외곡책동에 더욱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 *

일본의 력사외곡책동은 과거청산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고 일본사회의 사상정신적반동화를 추동하여 침략의 력사를 재현하려는 엄중한 범죄행위이다.
지금 일본은 력사를 망각한 정치인들과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들뜬 우익반동세력에 의해 해외침략정책수행의 길로 거침없이 나가고있다.
전쟁방지를 규제한 《평화헌법》은 이미 사멸되고 《자위대》가 공격형무력으로 전환되였으며 국가체제가 전시체제로 개편되여가고있다.
날을 따라 일본에 의한 전쟁위험이 커가고있으며 조선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은 엄중히 위협당하고있다.
20세기를 침략전쟁과 대학살만행, 최대의 집단강간행위로 더럽히고도 그것을 력사의 흑막속에 묻어버리려는 일본반동들의 력사외곡책동에 세계는 각성을 높여야 한다.
일본이 추악한 력사외곡행위에서 끝끝내 손을 떼지 못한다면 21세기 인류사에 또다시 수치스러운 죄악을 남길것이며 국제적고립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주체96(2007)년 5월 10일
평 양



한국 반미운동사 조명해 본다

- 1946년 첫 반미항전 -

한국민의 반미투쟁은 미국의 한국강점 첫날부터 벌어졌다.
당시의 세대였던 한양대 김승복교수는 말했다.
『8·15광복이라고 하지만 미군이 일본을 대신하여 식민지통치를 했거든요. 그래서 앉아서 죽는 것보다 일어서서 싸우자고 외치면서 반미항전에 분기해 나선 겁니다.』
1946년 6월 19일 미군정은 교육행정기관들을 완전히 거머쥐고 교육을 더욱 식민지예속화할 목적 밑에 「국립서울대학교안」 (국대안)을 조작했다.
「국대안」은 발표되자마자 청년학생들과 교사들을 비롯한 광범위한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청년학생들은 서울을 비롯한 곳곳에서 『「국대안」을 반대한다!』, 『학원을 민주화하라!』,『미국인총장 물러가라!』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 동맹휴학 등 각종 투쟁을 벌였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대안」내용을 일부 뜯어고치고 대학총장과 이사직에 들어앉았던 미국인을 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 노동자들의 투쟁도 줄기차게 벌어졌다.
그 대표적 투쟁이 1946년 8월 광주화순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이해 8월15일 새벽 3시 1천여명의 화순탄광노동자들은 광주에서 열리는 8·15해방 1돌기념행사 참가를 위해 광주로 떠났다.
미군정은 노동자대열을 해산시키기 위해 군용비행기와 탱크를 앞세운 미군기동부대까지 동원했다.
노동자들이 굴하지 않고 계속 행진하자 폭격기 6대의 엄호밑에 미군과 경찰대는 노동자들을 총칼로 탄압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조직되고 단결된 역량으로 미국놈들의 야수적 탄압과 폭행을 물리치고 광주에서 열린 8·15해방한돌기념행사에 참가했으며 광주시민들과 강력한 반미시위를 벌였다.
미군정은 비열하게도 시위를 끝마치고 귀환하는 노동자들을 매복습격하여 30여명을 학살하고 5백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감행했다.
이것은 더 큰 반미투쟁의 폭발을 가져오게 했다.

1946년 8월 하의도 농민들은 미군정에 맞서 빼앗긴 토지를 반환할 것과 소작료납부, 「하곡수집」을 반대해 투쟁에 나섰다.
그들은 돌맹이와 곡괭이를 들고 집단적으로 무장경찰에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이렇듯 각 계층 애국민중은 미국의 한국강점 첫시기부터 그들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웠다. 침략자들에게 자주권을 빼앗긴 민중은 싸워야 한다는 것, 싸우는 것이 민족이 사는 길이라는 것,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교훈인 것이다.

제주도 4.3 봉기

『경애하는 부모, 형제 여러분! 4월 3일 오늘 여러분의 아들딸 형제들은 무기를 손에 들고 일어섰습니다. …우리 함께 조국과 민중이 이끄는 길로 결연히 떨쳐 일어서 행진합시다.』
1948년 4월 3일 애국적인 제주도민들을 망국적인 5·10단선을 반대하는 투쟁에로 부른 호소문 내용이다.
당시 미국은 이남에서 군정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나라의 분열을 영구화하고 이 땅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 목적밑에 오래 전부터 키워낸 이승만일당으로 단독정부를 조작하려고 했다.

4월 3일 새벽 2시 5·10단선을 반대하여 제주도민들이 분기했다.
봉기자들은 『이승만 단독선거 결사반대』,『주권을 인민위원회에 넘기라』, 『미군은 즉시 철수하라』고 외치며 한라산을 무대로 하여 과감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경찰에게서 빼앗은 무기로 토벌에 나선 경찰과 맞서 싸웠고 밤마다 경찰서와 선거사무소를 습격하여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선거등록서류와 투표함, 투표용지를 불태워 버렸다.
무장봉기에는 제주도주둔 국방경비대의 애국적 장병들까지 합세하여 전체 도민의 86%가 참여했다.
결국 제주도에서 5·10단선은 실현될 수 없었다.

이에 놀란 미국은 미군고문을 제주도에 파견하고 수많은 군대와 경찰, 군함, 비행기까지 동원해 제주도 봉기자들에 대한 무차별살육을 감행했다.
이 살육만행으로 당시 도민의 3분의 1이나 되는 7만여명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굴함없이 투쟁하였다.

제주도민중봉기는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찾으며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영웅적 항전이었다.
저 서귀포 바닷가에서, 한라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들려오는듯 싶은 메아리 『미국의 지배와 식민지독재정치를 반대하여 승리할 때까지 싸우라!』 오늘의 우리 민중을 각성시키며 투쟁에로 부르는 그날의 절규이다.

반미구국투쟁 10월민중항쟁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 반대!』,『정권을 인민위원회로!』,『미군정을 타도하라!』,『북조선과 같은 민주개혁을 실시하라!』
1946년 10월민중항쟁의 그날에 우리 민중이 외쳤던 구호들이다.
우리 민중의 반미항전사에 뚜렷한 자국을 남긴 영웅적인 10월민중항쟁은 대구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에 대한 무장경찰들의 무차별적인 발포를 계기로 발단되었다.

10월1일 대구시민 1만여명이 시청으로 모여들어 『쌀을 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무장경찰은 시위군중을 향해 마구 발포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0월2일 분노한 대구시민들은 총탄에 맞아 쓰러진 희생자들의 시체를 메고 시위투쟁에 나섰다.
대구시민들의 격렬한 시위투쟁에 질겁한 미군정청과 친미주구배들은 탱크까지 내몰아 무차별 총포사격으로 수많은 시위군중들을 또다시 사살했다.

시위군중의 분노는 극도에 달했다.
그들은 대구경찰서와 파출소들을 기습, 점거하고 폭동에로 넘어갔다.
급해맞은 미군정청은「계엄령」을 선포하고 유혈탄압소동을 벌였으나 항쟁의 불길은 삽시에 경향 각지로 확산되었다.

영남과 호남, 중부지방과 제주도 등 전역에 확대된 10월민중항쟁은 11월에도 힘차게 벌어졌다.
항쟁자들은 경찰서를 습격, 파괴하고 무기와 탄약을 빼앗아 무장을 갖추고 구금된 애국자들을 구출하고 친미주구들을 처단했다.
11월1일 나주에서는 1만여명의 항쟁자들이 10여개의 경찰파출소들을 습격했고 11월7일에는 보성일대의 항쟁군중들이 악질관리를 처단한 것을 비롯해 각지에서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10월민중항쟁은 대구와 서울, 부산과 목포를 비롯한 73개 시, 군들에서 벌어졌고 여기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과 시민 등 무려 2백30만명에 달하는 각 계층 민중이 참여했다.
참으로 10월민중항쟁은 미국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파쇼폭압을 반대한 반미구국항전이었으며 다시는 식민지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우리 민족의 기개를 과시한 애국적 장거였다.

2.7 구국투쟁

미국은 1947년 10월 유엔에서 한국문제를 비법적으로 토의결정한데 이어 1948년 1월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을 이 땅에 끌어들여 그 감시하에 단독선거를 강행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분열시키려고 꾀했다.
미국의 이러한 분열주의적 책동에 맞서 각 계층 애국민중은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입국과 망국단선을 반대배격하고 나라의 통일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구국투쟁에 과감히 분기해 나섰다.

1948년 1월 8일「유엔임시한국위원단」이 서울에 도착하자 이날 서울의 여러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며 1월 19일에는 경성전기회사 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의 입국을 반대하는 애국민중의 투쟁은 마침내 경향 각지로 확대됐다.
2월 7일 서울, 인천, 대전, 목포, 부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철도노동자들은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은 물러가라!』,『미군은 즉시 철수하라』, 『이남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다』 등의 구호밑에 총파업에 돌입했다.
투쟁은 삽시에 40여개의 도시를 포함한 경향 각지를 휩쓸었고 철도, 체신을 비롯한 각부문에 걸쳐 수백개의 공장, 업체 노동자들의 참가하에 대규모적인 동맹파업으로 확대되었다.
같은 날 전라북도 완주군 농민들도 투쟁에 나섰으며 경찰의 탄압만행에 격분하여 경찰지서를 들이쳤다. 합천, 김제를 비롯한 각지의 농민들은 시위와 횃불투쟁 등을 벌였다.

2월 13일 청년학생들은 서울 탑골공원 앞과 종로 네거리, 남대문 거리들에서 『「유엔임시한국위원단」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2월 7일부터 10일까지의 사이에만도 투쟁참가자들은 33개소의 경찰기관을 습격하고 47명의 악질경관들을 살상했으며 68개소의 전선을 끊어버리고 39대의 기관차와 5개소의 철길과 도로를 파괴해 버렸다.
이 투쟁으로 이남 전역에서는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었고 대부분의 공장, 기업체들에서 생산이 정지상태에 들어갔다.

2.7구국투쟁은 미국과 그 추종자들의 가혹한 폭압 속에서도 3개월 가까이 줄기차게 벌어졌다.
이 투쟁에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등 무려 2백여만에 달하는 각 계층 애국민중이 참여했다.
참으로 2.7구국투쟁은 민족의 분열을 막고 통일독립된 조국에서 살려는 우리 민중의 굳센 의지를 내외에 널리 과시한 애국적 반미구국투쟁이었다.

<자료를 통해 본 한국침략사>

갑신정변과 미국
1884년 12월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은 붕괴에 직면한 봉건제도를 뒤집어엎고 부르조아적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혁신세력인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이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에 의해 지도된 개화파운동은 당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우리 나라에 침략의 마수를 깊숙이 뻗치고 있던 미국의 중대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것은 개화파들이 선진자본주의열강을 동경하면서 「원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개화파들을 이용하여 저들의 침략목적을 실현해보려고 당시 동남제도개척사 겸 관포경사로 일본에 가서 운동자금획득에 분망하고 있던 김옥균을 포용하려고 획책했다. 일본주재 미국공사가 김옥균을 만나 3백만원의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우리 나라의 전체 광물자원을 장악하려고 꾀한 사실이라든가, 일본의 요코하마에 있는 모르스의 「미국무역회사」가 김옥균과의 3차에 걸치는 차관교섭을 통해 을릉도에서 50만달러에 해당하는 목재를 벌목하려고 책동한 것은 그러한 사례의 하나이다.

한편 미국은 일본과 결탁해 개화파정권의 수립을 통해 저들의 침략을 확대강화해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기 시작했다.
1884년에 들어서면서 청, 불전쟁이 터지고 내외의 사정이 청국과 수구파에 불리하게 조성된 것을 본 미국은 일본과 공모해 개화파들로 하여금 정변을 일으키도록 추동했다.
동년 10월이후 미국공사관 당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화파들에게 정변준비를 촉구하면서 그에 대한 「지원」을 보증했다.
역사기록에는 당시 개화파들은 『정변에 앞서 모든 거사계획을 미국공사 푸트와 상담했다』고 씌어져있다.

그러나 「갑신정변」은 수구파와 청군의 반격으로 「3일천하」로 실패하게 되었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미국의 파렴치한 배신행위 때문이었다.
청일양군의 교전에서 개화파에게 정세가 불리하게 되자 미국공사는 약속을 배반하고 애당초 아무러한 원조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공사는 자기들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개화파와 미국간에 아무런 연계도 가진 일이 없는 듯이 꾸며댔다.

그후 일본침략자들은 적반하장격으로 구실을 붙여 「갑신정변」으로 받은 피해에 대한 「사죄」와 「배상」지불을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한성조약」을 강요했다. 그런데 이 조약설계자중의 한사람이 바로 일본정부고문으로서 일본대표의 수원으로 온 미국인 스티븐스였고 「중개조정」이라는 명색하에 우리 정부에 조약의 접수를 강요한 자가 바로 미국공사 푸트였다.

이처럼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온갖 교활한 책동을 다해온 흉악한 침략자이며 「갑신정변」을 파탄시키고 나라의 근대적 발전을 방해한 간악한 원수이다.

신미양요
역사에「신미양요」라고 기록된 1871년 미국의 무력침공은 우리나라에 예속적 불평등조약을 강요할 목적밑에 감행되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의 조약체결에 대한 전권을 북경주재 미국공사 로우에게 주었다.
로우는 미국아시아함대사령관 로저스와 함께 「코로라도」호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기어들었다.

미국함대는 5척의 군함과 포 80여문을 가진 1천2백30명의 침략군으로 구성되었다.
5월 30일 강화도 남방의 물치도에 정박한 미국함대는 경기도 연안 일대의 해역에 대한 측량을 비법적으로 진행했다.
6월 1일에는 우리 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을 위한 군사적 도발사건을 조작했다.
이날 침략군은 「모노카시」호, 「팔로스」호와 4척의 소정으로 소위 「측량함대」를 조직하고 강화해협과 한강을 「측량」하려고 했다.
이것은 전쟁을 일으킬 목적밑에 진행된 고의적인 도발이었다.

물치도 근거지를 출발한 「측량」함대는 강화해협을 지나 북상하면서 우리의 주요한 요새지인 손돌목을 향해 전진했다.
손돌목은 내외 공사선을 막론하고 통행증이 없는 선박은 일체 통과를 불허하는 지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대를 만재한 6척의 미국함선의 손돌목침입을 저지시킬 목적으로 발포했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던 미국함대는 우리 포대를 향해 대응 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우리 군의 대타격을 받은 미국함선들은 우리 포대를 진압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도망쳤다.
손돌목전투 이후 정부에서는 미국함대의 대규모적 무력침공을 예견하고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한편 본격적인 무력침공준비를 완료한 미국함대는 6월 10일 군사행동을 재개했다.
이날 침략군 7백59명은 강화도 초지진 남방에 상륙해 그 일대를 점령했으나 어둠이 깃들자 일시 후퇴했던 우리 군의 야습으로 쓰디쓴 참패를 당했다.

초지진 부근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은 미군은 11일에는 광성진을 점령하려고 했다.
미군은 광성진을 수륙양면으로 포위하고 기술적, 양적 우세를 이용해 공격을 감행했다.
광성진수비대는 무장에 있어서 뿐 아니라 숫적으로도 우세한 미군과 맞서 용감히 싸웠다.
미군은 광성진수비대의 영웅적 항거에 부딪쳐 황급히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강화도전투는 미군의 결정적 참패로 끝나게 되었다.
미군은 광성진전투에서 「모노카시」호와 「팔로스」호를 크게 파괴당했고 수십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는 등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강화도패전 이후에도 침략목적을 포기하지 않고 달성하지 못한 목적을 새로운 회유와 위협공갈로 이루어보려고 우리 정부에 수차에 걸쳐 서신을 보냈다.
놈들은『귀정부는 속히 현명한 방책을 세움으로써 금후의 분쟁을 면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뻔뻔스러운 경고를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우리 민중은 이것을 단호히 일축해 버렸다.
결국 미국함대는 7월 3일 물치도 근거지를 떠나 도주했다.
참으로 1871년 「신미양요」는 우리 나라에 대한 미국의 파렴치성을 드러내보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한일합병」과 미국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중에게 많은 원한을 남겼으며 죄악의 산을 높이도 쌓았다.
그 많은 죄악들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나라를 강제합병하기 위한 일본의 침략책동을 적극 지지하고 비호해준 것이다.
미국은 자기들의 언론매체를 동원해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합리화」하는 선전활동을 광범위하게 벌여 일본을 우리나라 강제합병에로 적극 부추겨주는 범죄적 책동을 감행했다.

당시 미국신문「아트루크」는 우리 민중이 일본의 통치밑에 들어가는 데서「행복」을 찾고 있다고 했다. 「뉴욕 헤랄드 트리뷴」은 「기뻐하면서 소위 독립에 영원한 이별을 고하라」라는 제목 아래 『…우리는 일본의 보호하에 있는 한국에 대해 기뻐하면서 그의 소위 독립에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바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우리 민족을 모독하였다.

이 시기 한국봉건정부의 「외부고문」으로 있었던 스티븐스도『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게 되면서부터 한국에 유익한 것이 많아졌다』고 하면서 일본의 침략정책을 정당화하였다.
심지어 미국은 1907년 9월 미육군장관 타프트를 일본에 파견해 일본 수상 사이온지와 우리나라의 종국적 처리에 대해 자기들의 견해가 서로 일치하며 미국은 종전처럼 『일본의 벗으로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며 『선행자들 (가츠라와 타프트)에 의해 표명된 의견을 확고하게 시인』한다는데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

이처럼 미국은 사이온지-타프트 비밀합의로 지난날 「가츠라-타프트협정」으로 강도적인 「을사보호조약」의 조작을 담보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일본의 우리나라 강제합병을 담보해 주었다.
이러한 비밀합의에 기초해 미국은「한일합병조약」초안에 대해 그것이 세상에 발표되기도 전에 전적인 동의를 표시하면서 『한국의 합병에 대하여서는 각국이 모두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담보를 받은 일본은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침략적인 「한일합병조약」을 강요했으며 우리 민중의 반항이 두려워 「합병조약」체결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있다가 8월 29일에야 공포했다.
그후 일본의 「강제합병」소식에 접하자 미국은 『한국은 금후 일본통치하에서 급속히 진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사람의 행복인 동시에 또한 열강의 행복』이라고 하면서 일본이 우리 민중을 식민지노예로 만드는 것을 극력 찬양했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우리 민중을 노예화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악랄하게 책동하여 온 우리 민족의 극악한 원수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200년 동안 세계를 향해 저지른 테러, 전쟁!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기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스페인령 서부 플로리다 강탈 (1812∼1814),
말카스제도 누크 히버섬 상륙, 침공 (1813),
알제리 전쟁 (1816∼1818)
옐로우스톤 원정 (1819∼1829),
쿠바, 푸에토리코, 산토도밍고, 멕시코의 유가탄 반도 침공 (1819∼1825),
하와이 제도 침공 (1826),
그리스 미코노스섬, 앤드로스섬 침공 (1827),
포클랜드 군도 침공 (1831∼1832),
수마트라섬 쿠알라토르 침공 (183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33),
사모아 제도 침공 (1835),
수마트라섬 침공 (1838),
피지 군도 침공 (1840),
길버트 군도의 드래몬드 제도 침공 (1841),
리베리아 침공 (1843)
멕시코와 전쟁(1847∼1848),
아이티의 사마나만 점령(1847),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1852∼1853),
니카라과 침공 (1853∼1854),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
피지 군도 침공 (1858)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55∼1858),
뉴 그레네이더 하나마 침공 (1858)
니카라과 침공 (1857),
유이하 제도 침공 (1858),
파라과이 침공 (1858∼1859)
중국 상해 침공 (1857),
판 데트카 해협의 산판섬 침공 (1859),
멕시코 침공 (1859),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 키센보 침공 (1860),
일본 시모노세키 침공 (1863∼1864),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65),
중국 침공 (1863∼1964),
멕시코 침략(1866),
대만 침공 (1867),
조선 침공 (1867∼1872),
우르과이 몬테비데오 침공 (1868),
일본 침공 (1868),
콜롬비아 침공 (1868),
멕시코 침공 (1870∼1873),
콜롬비아 파나마 침공 (1870),
하와이 군도 호눌룰루 침공 (1874),
멕시코 침공 (1876),
이집트 침공 (1882),
파나마 침공 (1885),
아이티 침공 (1888),
조선 상륙(1888),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상륙 (1890),
아이티 침공 (1891),
칠레 침공 (1891),
호눌룰루 상륙, 하와이 제도 점령 (1893)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침공 (1894),
니카라과 상륙 (1894),
조선과 중국 상륙 (1984∼1896),
콜롬비아 상륙 (1895),
니카라과 상륙 (1896),
하와이 제도 병탄 (1898),
니카라과 상륙 (1898),
미서전쟁, 쿠바, 필리핀, 괌, 푸에토리코 점령 (1898∼1899)
니카라과 상륙 (1899),
피지 제도 군사원정 (1899),
사모아 침공, 추추라이섬 점령 (1899),
필리핀과 전쟁 (1899∼1902),
중국 의화단 진압 군사원정 (1900∼1901),
파나마, 콜롬비아 상륙 (1900∼1902),
사마르섬, 필리핀 레에테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전 (1903∼1904)
파나마 운하 영구점령 (1903),
산토도밍고 침공 (1903∼1904),
파나마 상륙 (1904),
조선 상륙 (1904),
쿠바 점령 (1906∼1909),
니카라과 침공 (1910),
온두라스 침공 (1910-1911)
중국 상륙, 베이징 침공 (1911∼1912),
파나마 침공 (1912),
쿠바 상륙 (1912)
터키 상륙 (1912),
니카라과 침공 (1912∼1915),
멕시코 상륙 (1913),
아이티 상륙 (1914),
멕시코 침공 (1915∼1916),
산토도밍고 점령 (1916∼1925),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17∼1918),
파나마 치리키 점령 (1918∼1920),
신생국 소련 침공 (1918∼1920),
온두라스 상륙 (1919),
코스타리카 침공 (1919),
과테말라 침공 (1920),
파나마, 코스타리카 침공 (1921),
중국에 무력개입 (1922∼1941),
온두라스 침공 (1924∼1925),
파나마 침공 (1925),
니카라과 침공 (1926∼1933),
온두라스 침공 (1931),
쿠바 연안 정찰 (1933),
중국 양자강 연안 점령 (1937),
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938),
그린랜드 항구 점령 (1941),
아이슬랜드 점령(1941),
코리아 전쟁 (1950∼1953),
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
과테말라 군사개입 (1954),
중동 위기 선동 (1958),
케모이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
유-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찰 (1960),
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960),
피그만 침공 (1961),
베를린 위기 선동(1961),
통킹만 무력도발 (1964),
베트남 전쟁 (1964∼1972),
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
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
라오스, 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
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
케냐의 무왕기 카리우기 암살 (1975),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
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카다피 암살계획 (1981),
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
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
잠비아 대통령 암살계획 (1981),
폴란드 내정간섭 (1980∼1984),
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
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
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
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
그레나다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