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자료 모음


조국통일연구원 상보/《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낸 반인권적범죄의 진상은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남조선에서《세월》호대참사가 있은 때로부터 200일이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시신들은 침몰된 배와 함께 차디찬 바다밑에 내버려져있으며 《세월》호진상규명과 관련자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다.
괴뢰패당에 대한 유가족들의 원한은 구천에 사무치고 각계층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있다.
《세월》호참사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괴뢰패당에 의해 감행된 고의적인 대학살이고 특대형반인권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패당은 오히려《세월》호에만 계속 발목이 묶여있을수 없다느니,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리용하려 해서는 안된다느니 뭐니 하며 대참사의 진상을 어물쩍 덮어버리려 하고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낸 괴뢰패당의 반인륜적, 반인권적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기 위해 이 상보를 발표한다.

세계를 경악시킨 대학살만행

력사에는 배침몰사고에 의한 참변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세월》호침몰사건과 같이 세상사람들의 커다란 경악을 자아낸 대참사는 일찌기 없었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침몰당시《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려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하여 476명의 승객들이 타고있었다.
그중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은 172명이고 나머지 304명은 침몰된 배와 함께 바다밑에 수장되였다.

어떻게 되여 이런 끔찍한 참사가 빚어지게 되였는가.
《세월》호가 침몰된 곳은 바다기슭에서 눈으로 빤히 보이는 3km 떨어진 수역이였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배에서《쾅》하는 소리가 나고 그로부터 한시간이 지나서 배가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는 6시간이라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배에는 구명조끼와 구명뽀트도 어느정도 갖추어져있었다.
하지만《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수백명의 생명을 내버려둔채 저들만 살겠다고 배에서 먼저 내뺐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승객들부터 구원하고 맨 마지막에 탈출하든가 아니면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것이 법도이고 상례이다.

그런데《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방송으로 승객들에게《가만히 있으라.》,《이동하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객들에게 발각될가봐 선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적고양이처럼 몰래 배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되여 얼마든지 살수 있었던 수백명의 승객들이 마지막 탈출기회마저 잃고 배에 갇힌채 고스란히 생죽음을 당했다.

괴뢰당국의 구조실태는 또 어떠하였는가.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여 구조활동을 벌려야 하는것이 바로 괴뢰해양경찰이다.
하지만 당시 사고현장에 먼저 나타난 목포해양경찰서소속 경비정 123호는 승객들을 구원할 대신 배를 버리고 탈출해나온 선장과 선원들만 처싣고 사라졌다.

그런가하면 사고발생직후 전라남도 119구조대 등에 소속되여있는 직승기들이 현장에 날아왔지만《해양경찰의 소관》이라고 하면서 가로막음으로써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시각에 아무런 구조활동도 할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사전에 저들과 뒤돈을 대고 계약한 민간구조업체《언딘》소속 인원들만 배에 접근시키고 민간인잠수부들이 선체에 진입하여 승객들을 구원하겠다고 하는것마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구조흉내나 내고 조명탄만 쏘아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구조에 동원된 괴뢰군부놈들 역시 물속이 어둡고 물살이 빠르다느니 뭐니 하면서 고의적으로 구조를 태공하였다.

이렇게 되여 침몰후 생존자들을 구출할수 있는 기회를 다 잃게 되였다. 그후 시신들을 건져내는데만도 몇달이나 걸리였으며 아직도 일부 시신은 찾지도 못한 상태에 있다.
대양한복판도 아닌 륙지가까이의 수역에서 37m깊이에 침몰한 배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여 수백명이 졸지에 수장되는 대참사를 빚어낸 21세기의 비극은 바로 이렇게 되여 일어난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세상, 태공과 무책임, 안일해이와 불법무법, 고의 등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무참하게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는 참혹한 인권페허지대가 바로 오늘의 남조선이다.

죽어서도 우롱당하는 인권

304명의 승객들이 배와 함께 한꺼번에 바다에 수장된 끔찍한 참변은 삽시에 온 남조선땅을 초상집으로 만들었다.
침몰수역이 바라보이는 전라남도 진도의 팽목항은 생때같은 자식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유가족들의 가슴터지는 통곡소리로 차고넘쳤다.

남조선각지의 곳곳에 수백개의 분향소들이 생겨나고 추모행렬이 끊길줄 몰랐다.
당시 악몽의 침몰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조차 죄의식속에 살아야 했던 비애의 나날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 괴뢰패당은 희생자들을 우롱, 모독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망동들을 거리낌없이 저질러 만사람을 경악케 하였다.

피해자가족들의 눈물과 곡성이 하늘땅에 차넘치고있을 때 실종자명단을 배경으로《기념사진》을 찍고 유가족들이 통곡하는 한복판에서 제 배를 채우려고 태평스럽게 음식을 먹어대는가 하면 식당에 몰려가 술판, 먹자판을 펼쳐놓고 희희락락거리면서《<세월>호자작시》까지 읊어대는 추태들이 벌어졌다.

당시《KBS》방송사 보도국장을 비롯한 보수패거리들은《<세월>호사고는 한꺼번에 300여명이 죽어 많아 보이지만 년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그리 많은것도 아니다.》,《꼭 불행인것만은 아니며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것》이라는 잡소리를 줴치다 못해 나중에는《<세월>호문제에 진저리가 난다.》,《생존가능성이 없으니 이젠 그만하라.》,《다 죽었을게 뻔한데 보험금이나 타갈것이지.》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악담으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심히 모독하였다.

그런가하면 괴뢰검찰과 경찰은 DNA확인이니 뭐니 하면서 시신을 유가족들에게 제때에 넘겨주지 않아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하였다.
현 집권자는 초상집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미국상전을 끌어들여 그앞에서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꼬리치며 아양을 떨었는가 하면 가짜《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는 광대극을 연출하여 각계층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냈다.

《새누리당》패거리들은 《세월》호대참사의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자면 야당과 유가족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넘겨야 한다는 각계층의 요구를 끝끝내 거절하였으며 《국회》를 찾아와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마구 내쫓았다.
뿐만아니라《세월》호침몰사고를 무작정《북의 소행》이라고 몰아대면서《단호한 보복》이니 뭐니 하고 악담질을 해댔는가 하면 북이《남남갈등》을 부추긴다고 하면서《북풍설》을 조작하기에 급급하였다.

나중에는 우익보수단체들과 작당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 대해 《선동군》,《시체장사군》등으로 심히 모독하고 지어 단식투쟁을 벌리는 유가족들앞에서 음식냄새를 피우고 먹자판을 벌리면서 괴롭히는것도 모자라《제대로 단식했으면 이미 죽었어야 하는데 왜 살아있는가.》,《보상금을 타먹기 위한 연극이다.》고 조롱하였다.

극우보수단체패거리들은 괴뢰당국의 비인간적이며 무책임한 처사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제2의 광주폭동》,《빨갱이는 죽어도 된다.》고 참을수 없이 모욕하였다.

이에 유가족들과 각계층은《실종자와 가족을 두번 죽이는 행위》,《인간의 초보적인 도덕도 모르는 패륜의 무리》,《추악함과 비렬함의 극치》,《한을 품고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령혼들을 모독하고 유가족들의 상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있다.》고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그야말로 패륜패덕과 사회악이 판을 치고 조상전래의 풍속과 인륜이 무참히 말살되여가는 야수화된 사회, 최악의 인권불모지인 남조선에서만이 볼수 있는 말세기적참경이였다.

《세월》호참사는 반인권적, 반인민적정치의 필연적산물

《세월》호대참사는 결코 악덕업주나 몇몇 해운관계자들에 의해 빚어진 비행의 산물이 아니라 철두철미 괴뢰당국의 반인권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치가 빚어낸 필연적결과이다.
원래《세월》호는 수명이 훨씬 지나 파철이나 다름없는 중고품을 사들여온데다가 제멋대로 구조를 변경시키고 수리정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항당시 정량의 3배나 초과된 화물을 실었다.

그러나 괴뢰당국은 실태를 뻔히 알면서도 안전검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합격판정을 내리였으며 선장과 선원들이 자격미달자들이였지만 승선을 눈감아주었다. 항행도중 선장이 휴식하면 항해사자격이 있는 일반선원이 조타를 잡아도 된다고《선원법》을 뜯어고친 놀음을 벌린것도 괴뢰당국이다. 뿐아니라 이미전부터 려객선들의 잦은 고장과 상습적인 정원초과 등으로 사고위험이 높아가는데 대한 우려와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나 괴뢰패당은 그것을 외면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뢰당국은《세월》호침몰사고가 일어나자 그것이 돈에 환장한 려객선의 소유주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때문인듯이 여론을 내돌리였다.
그리고 유병언의 도주와 수색놀음을 연출하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시체만 찾아놓고는 모든 책임을 죽은자에게 떠넘겨버리였으며 선장을 비롯한 몇몇 송사리들을 재판에 걸어 처벌하는 놀음으로 사건을 무마해버리려 하였다.

괴뢰당국것들은 《세월》호침몰후 수백명의 승객들이 바다물속에서 숨져가며 살려달라고 피타게 호소하고있을 때 구조대책은커녕 책임회피에만 급급하였다.
당시 청와대 안보실 실장이였던 김장수는 안보실은 재난구조를 지휘하는 사령탑이 아니라고 하면서 구조에 낯도 돌리지 않았으며 안전행정부 장관은 한 경찰학교졸업식참가도중 사고관련보고를 받고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외면하였는가 하면 괴뢰정보원은 침몰사고를 맨 먼저 알고서도 모르는척 하였다.

구조현장에 내려간 괴뢰국무총리라는자는 고급호텔의 온돌방에 자빠져 태평스레 잠을 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지어 청와대 안방주인은《세월》호침몰사고를 통보받고도 생사를 다투는 그 시각에 7시간동안이나 자리를 비워놓고 딴장을 보아 비난, 조소거리로 되였다.
그런가하면 선장과《오래동안 묵인하고 쌓여온 잘못된 관행》에 사고의 책임을 넘겨씌우면서 민심을 기만해보려 하였다.

뿐만아니라 청와대에 대한 각계의 비난이 비발치자 수십일이 지나서 마지못해《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속에 없는《사과》놀음을 벌리고 그것이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자 괴뢰국무총리를 제물로 내던지는 기만극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였으면 《월 스트리트 져널》, 《뉴욕 타임스》, 《가디언》을 비롯한 미국과 서방언론들까지 《최악의 참사》, 《전세계를 경악시킨 대참극》, 《사고가 아닌 인재》 등으로 대서특필하면서 이번 참사는 전적으로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의해 일어난것》이라고 신랄히 비난, 규탄하였겠는가.

《세월》호대참사가 일어난 후에도 남조선에서는 괴뢰패당의 반인민적통치로 서울지하철도 전동차충돌사고,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병원과 경기도 고양시의 주차장에서의 화재사고와 경기도 성남시에서의 야외공연장 붕괴사고 등 각종 참사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남조선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전체 주민세대의 45%에 달하는 700여만세대가 제 집이 없어 뜨내기살이를 하고 완전실업자는 450여만명, 반실업자는 1 000만명에 이르고있다.
극도의 생활고에 몰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오늘 남조선은 《자살왕국》으로 악명을 떨치고있다. 하나의 거대한 인간생지옥으로 전락된 남조선에서의 여론조사에서는 60%이상이《만일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다면 다른 나라에서 태여나고싶다.》고 개탄하였다.

괴뢰패당의 반인권적이며 반인민적인 정치를 그대로 두고서는 제2, 제3의《세월》호참사가 계속 일어날수밖에 없다는것이 남조선 각계층의 민심이다. 괴뢰패당이 남조선사회를 이처럼 참혹한 인권페허지대,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어놓고도 그 누구의《인권》에 대해 떠들고있는것이야말로 철면피의 극치이며 인권에 대한 참을수 없는 우롱이다.

남조선괴뢰당국은 입이 열개라도《세월》호대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으며 전대미문의 반인권적, 반인민적범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심판대에 나서야 한다.
만일 괴뢰패당이《세월》호대참사의 진상을 덮어버리려고 계속 교활하게 놀아댄다면 남조선 각계층의 더 큰 분노와 규탄을 불러일으키게 될것이며 광범한 대중적항거의 폭발에 의해 수치스러운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다.

주체103(2014)년 11월 11일
평 양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공동구호

31일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공동구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늘처럼 믿고따르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너무도 뜻밖에,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잃은 대국상의 해를 보내고 주체101(2012)년을 맞이하게 된다.

피눈물의 언덕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거룩한 존함으로 빛나는 우리 민족의 100년사를 크나큰 격정속에 돌이켜보고있으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실현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철석의 신념과 의지에 넘쳐있다.

지난 100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민족의 사상과 정신, 우리 조국의 면모와 국력, 지위에서 천지개벽이 이룩되고 조선민족의 5천년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륭성번영의 대전성기가 펼쳐진 위대한 승리와 영광의 100년이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인 주체1(1912)년 4월 15일 만경대의 수수한 초가집에서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로 탄생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그 누구도 지닌적이 없는 천재적예지와 탁월한 령도력, 숭고한 인덕을 한몸에 체현하시고 심오한 사상리론과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주체조선의 새 기원을 열어놓으시였으며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사와 인류해방투쟁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우리 인민에게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불굴의 정신력을 안겨주신 걸출한 사상리론가, 위대한 스승이시며 두 제국주의강적을 타승하시여 생사존망의 기로에 놓였던 우리 민족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주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두단계의 사회혁명과 두차례의 복구건설, 여러 단계의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빈터우에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혁명과 건설의 영재이신 김일성동지의 혁명업적은 주체조선의 100년사와 더불어 찬연히 빛을 뿌리고있다.

김일성동지는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실뿐아니라 조국통일의 3대헌장과 주체적력량을 마련하시고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민족의 태양이시였으며 주체의 광휘로운 빛발로 자주의 새시대를 개척하시고 혁명과 건설의 세계적모범을 창조하시여 진보적인류에게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세계사회주의운동의 걸출한 령도자, 인류해방의 구성이시였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김일성민족의 100년사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계승하여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을 백전백승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성스러운 혁명력사가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다.

조국해방의 서광이 비쳐오던 주체31(1942)년 2월 16일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는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내세우시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가장 친근한 동지, 가장 충직한 전우가 되시여 혁명과 건설을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줄기차게 전진시켜오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온 사회 주체사상화의 기치높이 우리 당과 군대, 국가를 김일성동지의 당과 군대, 국가로 강화발전시키시고 인류정치사가 알지 못하는 혁명적도덕의리로 수령영생위업실현의 숭고한 귀감을 창조하시였으며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로동당시대의 일대 전성기를 펼치시고 민족의 존엄과 국력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시였다.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민족의 대국상,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포위압살공세와 혹심한 자연재해속에서 선군정치로 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였으며 우리 조국을 일심단결된 불패의 정치사상강국으로, 그 어떤 원쑤도 건드릴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신것은 김정일동지께서 이룩하신 최대의 업적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강성국가건설의 웅대한 목표를 제시하시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초강도의 현지지도강행군길을 정력적으로 이어가시며 전인민적인 대고조진군을 진두에서 이끄시여 강선의 봉화에 이어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과 함남의 불길이 온 나라에 타오르게 하시고 경제강국건설의 밝은 전망을 열어놓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을 구현하여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신 민족의 어버이,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온 겨레의 다함없는 흠모와 신뢰를 받으시였으며 반제자주의 기치높이 세계사회주의운동과 인류자주위업수행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사회주의와 정의의 위대한 수호자로 높은 국제적권위를 지니고계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혁명의 최전방에 최고사령부를 두시고 조국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한평생을 야전일과로 수놓으시며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 우리 민족사와 인류력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절세의 애국자, 현시대의 가장 걸출한 정치원로이시였다.

동서고금이 알지 못하는 대성인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앞에 그토록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시고서도 자신의 동상하나 세우지 못하게 하시였지만 장군님의 거룩한 위인상과 크나큰 업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속에 불멸의 대기념비로 높이 솟아있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김정일동지와 같은 인류의 영재, 불세출의 전설적위인들을 낳은것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자랑이며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여 우리 당은 자주시대를 선도하는 로숙하고 권위있는 당으로, 우리 혁명무력은 무적필승의 백두산혁명강군으로 위용떨칠수 있었고 우리 인민은 전인미답의 사회주의길을 앞장에서 개척해나가는 혁명적인민으로 존엄떨칠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력사에는 김일성시대, 김정일시대처럼 주체성과 민족성이 강하고 민족의 존엄과 국력이 만방에 높이 떨쳐진 시대는 일찌기 없었으며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승리와 영광으로 수놓아온 주체조선의 100년사가 있어 우리 민족의 5천년력사가 빛나고 끝없이 찬란한 천만년 미래가 확고히 담보되여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가는것은 수령님의 후손들이고 장군님의 전사, 제자들인 우리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의무이며 숭고한 도덕의리이다.

우리는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진군길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70돐을 맞이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70돐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천추만대에 빛내이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절대불변의 혁명적신념과 숭고한 도덕의리를 만천하에 시위하는 력사적인 계기이다.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후손답게,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전사, 제자답게 수령님의 탄생 100돐과 장군님의 탄생 70돐을 가장 뜻깊게 기념하며 장군님의 유훈을 받들어 주체101(2012)년에 강성국가의 대문을 기어이 열어제끼고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나가야 한다.

우리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우리앞에 나선 과업은 방대하지만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평생의 로고와 심혈을 바쳐 마련하여주신 고귀한 혁명유산인 백전백승 강철의 조선로동당과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친 군민대단결, 천하무적의 백두산혁명강군과 자립경제의 막강한 토대가 있는 한 우리 혁명은 필승불패이며 우리에게는 극복 못할 난국,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당, 전군, 전민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따라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나라의 정치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며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을 더욱 거세차게 지펴올림으로써 뜻깊은 주체101(2012)년을 우리 혁명의 확고부동한 계승성과 불패성을 만방에 떨치는 위대한 승리의 해, 강성국가의 대문을 열어제끼는 자랑찬 부흥의 해로 빛내이자는것을 열렬히 호소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에 즈음한 공동구호를 발표한다.

위대한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강성번영을 위하여 총공격 앞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70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자!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후손답게,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전사, 제자답게 투쟁하며 창조해나가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투쟁강령으로 틀어쥐고 빛나게 실현해나가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선군태양으로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성스러운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천추만대에 빛내여나가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필생의 뜻과 유훈을 받들어 강성국가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자!
모든것을 위대한 김정일동지식으로!
위대한 주체사상, 선군사상 만세!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적인 원칙과 로선, 정책을 한치의 양보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철저히 관철하자!

위대한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게 하라!
위대한 장군님의 령전에서 다진 피눈물의 맹세를 철저히 실천해나가자!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위대한 김일성조국, 김정일장군님의 나라를 김정은동지따라 만방에 빛내이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는 조국과 혁명, 인민의 운명이며 백전백승의 기치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전당이 단결하고 전군이 단결하며 전민이 단결하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와 함께라면 기쁨도 슬픔도 시련도 영광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따라 백두의 행군길을 꿋꿋이 이어가자!
백두의 공격정신으로 폭풍쳐 내달리자!
단숨에!

조선로동당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치적향도자이며 당의 전투력과 령도적역할을 높이는것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위업, 김정일동지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기 위한 선결조건이며 근본담보이다.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중대한 력사적시기의 요구에 맞게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전당과 온 사회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자!
당대표자회정신을 당사업에 철저히 구현하자!
전당을 혁명의 수뇌부결사옹위의 사상적순결체, 조직적전일체로 만들자!
당조직들의 혁명성과 조직성, 전투력을 높이라!
당세포를 전당의 억센 주추돌로, 강력한 기층조직으로 만들자!

어버이수령님탄생 100돐과 위대한 장군님탄생 70돐을 향하여 전당이 떨쳐나서고 전국, 전민이 산악같이 일떠서게 하자!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관철에 당사업의 화력을 총집중하자!
행정경제사업을 당적으로 적극 떠밀어주자!
당조직들은 대고조진군의 송풍기, 가속기가 되라!
우리 당의 혁명적군중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자!

당과 혁명대오의 위력은 정치사상적위력이며 대고조의 불길은 사상의 불길, 정신력의 불길이다.

사상론의 기치높이 정치사상총공세를 벌려 일심단결의 위력을 총폭발시키자!
대고조진군에서 선전선동의 위력을 높이 떨치자!
사상사업의 형식과 방법을 대담하게 혁신하자!
모든 선전선동사업을 항일유격대식으로!
경제선동의 북소리를 높이 울리며 대중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키자!
혁명적군인문화를 따라배워 군중문화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펼치자!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로선은 우리 당의 총로선이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힘있게 벌려 대고조전투장마다에 세폭의 붉은기가 펄펄 휘날리게 하자!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다!
인민군대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총대로 굳건히 수호하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야 할 선군혁명의 기수, 선군정치의 주도적력량이다.

전체 인민군장병들이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의 불멸의 선군혁명력사와 업적을 총대로 끝없이 빛내여나가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선군정치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혁명의 기둥, 주력군이 되라!
전군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오늘의 7련대가 되자!
전군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군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라!
위대한 수령님탄생 100돐과 위대한 장군님탄생 70돐, 조선인민군창건 80돐을 전투력강화의 자랑찬 성과로 맞이하라!
혁명화, 사회주의애국주의화를 다그쳐 혁명군대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철저히 갖추라!
전군이 하나의 동지가 되자!
관병일치, 군민일치, 군정배합을 철저히 실현하라!
병사들을 위하여 복무함!
중대를 정예화된 불패의 전투대오로 만들라!
중대를 병사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라!
인민을 돕자!
오늘의 훈련은 래일의 전투영웅을 낳는 용광로이다!
전군에 강철같은 군기를 확립하라!
만단의 결전진입태세를 견지하라!

적들의 무모한 도발에는 무자비한 섬멸적타격으로, 《대결》에는 전면대결로 대응하는것은 백두산혁명강군의 배짱이며 기질이다.

분별없이 날뛰는 침략자들에게 백두산혁명강군의 총대맛, 진짜 전쟁맛을 똑똑히 보여주라!
적들이 감히 불질을 한다면 청와대와 침략의 본거지를 불바다로 만들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자!
영웅적조선인민군의 돌격속도, 일당백의 공격정신으로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의 주요전구들에서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라!
안전보위, 인민보안, 사법검찰기관들은 수령보위, 제도보위, 정책보위, 인민보위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라!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분쇄하라!
사회주의를 좀먹는 현상들을 짓뭉개버리라!
전체 로농적위대원들과 붉은청년근위대원들이여!
투철한 대적관념을 가지고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라!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를 새로운 높이에서 완벽하게 실현하자!
인민군대를 친혈육처럼 사랑하며 적극 원호하라!

강력한 국방공업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물려주신 선군혁명의 가장 고귀한 유산이며 강성국가의 제일보루이다.

국방공업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더욱 힘있게 다그치라!
백두산혁명강군의 병기창을 더욱 튼튼히 다지라!
국방공업부문이 인민생활향상에 적극 이바지하라!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서 결정적전환을 일으키는것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초강도의 현지지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야전렬차에서 순직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필생의 념원을 꽃피우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다.

함남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펴주신 함남의 불길이 더욱 거세차게 타오르게 하라!
전국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여!
함남의 불길따라 2012년의 위대한 승리를 위하여 총공격 앞으로!
당이 제시한 경제발전목표를 결사관철하자!
당의 령도업적단위들이 대고조의 앞장에 서라!
경공업은 인민생활향상의 주공전선이다!
경공업부문 근로자들이여!
2012년을 경공업이 용을 쓰는 해, 인민들이 경공업의 덕을 보는 해로 되게 하라!
인민들의 호평을 받는 인기상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제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라!
경공업원료의 국산화비중을 결정적으로 높이라!
경공업공장들의 현대화를 힘있게 추진하라!
식료가공품의 가지수를 늘이고 질을 높이라!
창성련석회의 50돐이 되는 2012년을 창성이 소리치는 해, 지방공업발전에서 변이 나는 해로 되게 하자!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을 힘있게 벌리라!
상업, 급양, 편의봉사사업을 개선하라!
단천지구의 광부들과 로동계급이여!

경공업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의 열쇠는 당신들이 쥐고있다.

연, 아연, 마그네사이트광물증산으로 인민생활향상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라!
내화물공업의 주체화를 더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여 세계내화물시장의 패권을 쥐라!
쌀독이 넘쳐나야 나라가 흥한다!
2012년을 만풍년의 해로 빛내이자!
전체 농업근로자들이여!
농사는 강성국가건설의 천하지대본이다!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주체농법을 철저히 관철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농업혁명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으라!
농업전선에 모든 력량을 총집중, 총동원하자!
알곡정보당수확고를 높이기 위한 경쟁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라!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의 사과바다와 같은 사회주의백과락원을 도처에 펼치라!
유기농법을 적극 받아들이라!
거름더미는 쌀더미다. 더 많은 거름을 생산하여 모든 논밭을 옥토로 만들라!
농산과 축산, 과수와 축산의 순환식생산체계를 세워 알곡과 축산물, 과일생산을 늘이라!
축산기지들과 고기가공공장들의 생산을 정상화하여 인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라!
남새생산에 힘을 넣어 인민들에게 더 많은 남새를 공급하라!
룡매도, 능금도, 곽산간석지건설을 다그쳐 조국의 대지를 넓히라!
황해남도물길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라!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는 인민경제의 선행관이며 대고조진군의 기관차이다.

모든 힘을 전력증산을 위하여!
희천발전소,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 어랑천발전소, 원산군민발전소조업을 최대한 앞당기라!
발전설비들의 효률을 최대한으로 높여 전력생산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라!
발전기의 동음은 약동하는 조국의 맥박이다!
송배전체계를 개선완비하고 교차생산조직과 급전지휘를 짜고들어 전력을 효과적으로 쓰게 하라!
전기절약투쟁을 전군중적으로 힘있게 벌리자!
석탄공업부문 로동계급이여!
우리 당은 탄부들을 경제강국건설의 척후병으로 굳게 믿고있다.
생산돌격전에서 석탄전선이 선봉에 서라!
탐사와 굴진을 앞세우라!
매장량이 많고 채굴조건이 좋은 탄광들에 투자를 집중하라!
생산된 석탄을 전력, 금속, 화학공업과 경공업부문들에 우선적으로, 집중적으로 보내주라!
석탄생산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 전력을 최우선 보장하라!
금속공업부문 로동계급이여!

강성대국건설의 전초병, 밑뿌리가 되라!
강선의 정신력으로 철강재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자!
비콕스화는 야금공업발전의 생명선이다!
주체철생산체계를 더욱 완비하라!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고온공기연소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라!
중량레루생산은 당이 황철로동계급에게 준 전투명령이다!
더 많은 철광석을 금속공장들에 보내주라!
철도의 수송능력을 높여 더 많은 짐을 더 빨리 실어나르라!
수송조직과 지휘를 짜고들며 강철같은 규률을 세우라!
나라의 철길을 결정적으로 개명하자!
철도의 중량화, 현대화를 실현하자!
북부철길개건보수공사를 힘있게 다그치라!
철도역들과 기본철길주변을 일신시키라!
기술혁명은 곧 기계혁명, 공구혁명이다!
중요대상설비를 비롯한 현대적인 기계설비들을 더 많이 생산하라!
현대적인 공구들을 대량생산하라!
흥남가스화2계렬공정건설과 남흥석유화학계통공사를 최단기간에 끝내라!
비료는 곧 쌀이고 쌀은 곧 강성국가이다!
주체비료를 꽝꽝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라!
비날론과 염화비닐을 비롯한 경공업원료들을 원만히 생산보장하라!
땅속의 보물을 더 많이 찾아내라!
유색금속과 비금속광물생산을 부쩍 늘이라!
통나무생산에서 앙양을 일으키라!
질좋은 목재가공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라!
과학적인 어로전을 벌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내라!
바다가양식과 바다양어, 재배어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수산물생산을 늘이라!
양어를 주체화, 과학화, 집약화하여 바다에도 산촌에도 물고기떼가 욱실거리게 하라!
대외무역을 확대발전시켜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원만히 보장하라!
어버이수령님탄생 100돐대상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라!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하자!
평양시를 혁명적수령관이 선 세계적인 도시로 전변시키자!
만수대지구를 후세에 길이 빛날 대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세우라!
건설에서 조형화, 예술화를 철저히 실현하라!
뜻깊은 태양절에 단천항에서 승리의 배고동소리가 높이 울리게 하라!
건설의 첫 공정인 설계부문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라!
중요대상건설장들에 더 많은 세멘트와 건설자재들을 보내주라!
돌광산들과 돌가공공장들을 세계적인 천연석재생산기지로 전변시키라!
아름답고 질좋은 돌가공품들을 대량생산하라!
국토환경보호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 국토의 면모를 일신시키자!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하자!
나무모생산을 과학화, 공업화, 집약화하라!
도로를 현대화, 중량화, 고속화하라!
도시경영사업에서 혁명적전환을 일으키라!
도시와 마을을 백화만발하고 인민의 웃음이 꽃펴나는 사회주의선경으로 변모시키라!

경제관리운영을 개선하는것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관건적고리이다.

경제조직사업과 지휘를 박력있게 하라!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원칙을 지키며 실리를 보장하라!
경제관리운영을 구체적인 계산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하라!
사회주의분배원칙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하라!
행정경제사업의 정치화를 실현하라!
계획규률, 재정규률, 로동행정규률을 엄격히 세우라!

오늘 우리 당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련하기계에 지펴주신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따라 나라의 경제면모를 근본적으로 혁신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
새 세기 산업혁명은 최첨단돌파전으로 우리 식의 지식경제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거창한 투쟁이며 위대한 장군님의 간곡한 유훈이고 경제강국건설의 전략적로선이다.

련하기계개발자들이여!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새 세기 산업혁명의 앞장에서 지식경제강국건설을 힘차게 주도하라!
고속화, 정밀화, 지능화된 고성능 CNC설비를 더 많이 개발생산하라!
전체 과학자,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이여!
련하기계개발자들의 투쟁정신과 기풍을 따라배워 새 세기 산업혁명을 힘있게 다그치자!
최첨단을 돌파하라!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인민경제의 기술장비수준을 련하기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라!
첨단기술산업분야들을 적극 개척하고 발전시키자!
핵심기초기술과 첨단과학기술발전에서 대비약을 일으키라!
과학자, 기술자들과 생산자들의 창조적협조를 강화하라!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하라!
주체화, 국산화의 성공탑을 더 많이 쌓아올리라!
현대화, 과학화된 본보기공장들을 도처에 일떠세우라!
지식경제시대, 정보시대의 요구에 맞게 체신의 현대화를 힘있게 추진하라!
전자공업발전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라!

오늘의 대고조전투는 제국주의반동들과의 첨예한 대결전이며 이 대결전에서 승리하자면 전체 인민이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

대고조의 승리로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자!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영원한 조선의 정신이다!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자!
련하기계와 함남의 본때로 당의 로선과 정책을 결사관철해나가자!
적들의 제재사슬을 자력갱생의 마치로 마스라!
영웅조선의 대고조승전가에 원쑤들이 전률케하라!
패배주의, 보수주의를 불사르고 제힘으로 솟구치라!

우리의 강성대국은 발전된 문화를 가진 문명한 나라이며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은 문화전선에서도 더욱 세차게 타번져야 한다.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교육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라!
숭고한 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겸비한 선군혁명의 믿음직한 골간들을 키워내라!
교육의 질도, 교육수단과 환경도 최상의 수준으로!
인민보건사업에서 혁명적전환을 일으키라!
의약품과 의료기구생산을 늘이라!
뜨거운 인간애와 지극한 정성을 지닌 인간생명의 기사가 되라!
의학과학기술을 세계적수준으로 끌어올리라!
우리 나라를 축구강국, 체육강국으로 만들자!
체육을 대중화, 생활화하여 로동과 국방에 튼튼히 준비하라!
은하수관현악단의 창작태도와 창조기풍을 따라배워 선군시대 문학예술의 대전성기를 펼치라!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와 같은 걸작들로 주체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라!
기자, 언론인들은 붓대로 당을 옹위하는 사상적근위병이 되고 대고조진군의 나팔수가 되라!
정권기관들은 인민생활을 책임지고 돌보는 호주가 되라!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하여 온 사회에 혁명적인 제도와 질서를 확립하자!
근로단체조직들은 대고조전투에서 당의 인전대, 방조자의 역할을 다하라!
근로단체조직들은 동맹원들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키며 사회주의경쟁운동과 대중운동을 힘있게 조직전개하라!

전체 일군들이여!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강성국가건설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총진군의 성과여부는 혁명의 지휘성원들인 일군들에게 달려있다.
지금이야말로 일군들이 자기의 당성, 혁명성, 인민성을 당과 혁명, 인민앞에 검증받아야 할 때이다.

폭풍이 사납다해도 혁명의 한길에서 당과 운명을 끝까지 같이하는 미더운 지휘성원이 되라!
1970년대 당의 기초축성시기 일군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대고조전역의 최전방지휘관이 되라!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의 주인공처럼 살며 일하고있는가!
위대한 김정일동지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이민위천사상을 심장으로 받드는 인민의 충복이 되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적으로 보장하라!
영광과 행복은 인민들에게, 일감과 고생은 우리 일군들이!
현대과학기술과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지식경제시대의 유능한 일군이 되라!

전체 당원들이여!

어버이장군님께서 절절히 소원하시던 강성국가건설의 승리를 위한 총돌격전의 맨 앞장에는 장군님의 품속에서 가장 값높은 정치적생명을 받아안고 혁명의 선봉투사로 자라난 로동당원들이 서야 한다.

당원들은 수령결사옹위의 전위투사, 결사관철의 기수가 되라!
당원들은 2012년의 위대한 승리를 위한 총돌격전에서 선봉적역할을 하라!
당원들은 힘있는 정치사업과 이신작칙으로 대중의 심장에 비약과 혁신의 불을 달라!

청년들이여!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은 강성국가건설의 주역이며 미래의 주인공인 당신들이 앞장에서 추켜들고나가야 할 청춘의 불길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대고조진군에서 조선청년의 본때를 보여주라!
《조선청년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며 대고조의 선봉에서 용감하게, 씩씩하게 전진하라!
선군령장의 발걸음따라 청년들 앞으로!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청춘들이 다 맡자!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과 북부철길개건보수공사에서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떨치라!

직맹원들과 농근맹원들, 녀맹원들이여!

조국의 강성번영을 위한 대고조전투에서 모두가 위훈의 창조자가 되라!

전체 공민들이여!

오늘의 대고조진군은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의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인민적진군이며 대고조의 승리를 안아오는 기적의 원천은 당신들의 심장속에 높뛰고있는 공민적자각의 힘, 애국의 힘이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선군시대 애국자대렬에 보폭을 맞추라!
나의 애국심을 알려거든 나의 창조물을 보라!
자기 도, 자기 단위만이 아니라 온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애국자가 되라!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강성국가의 억센 뿌리가 되자!
신념과 의지의 오늘을 승리와 번영의 래일에 떳떳이 추억하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조국통일3대원칙발표 40돐, 10.4선언발표 5돐이 되는 2012년에 자주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자!
내외반통일세력들의 대결과 전쟁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자!
동족대결에 미쳐날뛰는 극악한 매국역적의 무리를 쓸어버리자!
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새 아침을 앞당겨오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대외활동업적을 끝없이 빛내여나가자!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선린우호관계를 확대발전시키자!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여!

위대한 김정일장군님따라 피눈물의 바다에서 산악같이 일떠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킨 영웅적고난의 행군사가 우리를 고무하고있으며 장군님께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높이 울려가신 야전렬차의 기적소리가 우리모두를 계속혁명의 길, 애국의 길로 힘차게 부르고있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혁명의 진두에서 높이 울리신 야전렬차의 기적소리가 대고조의 승전포성으로 온 강산에 메아리치게 하자!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지펴주신 대고조불길이 강성부흥의 장엄한 축포로 터져오르게 하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100돐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70돐을 맞는 2012년을 성스러운 계승의 해, 자랑찬 강성부흥의 해로 빛내이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체100(2011)년 12월 31일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 -김 정 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동신문》에 발표한 담화 1995년 12월 25일

우리나라에서 주체혁명의 시원이 열린 때로부터 70년의 력사가 흘렀습니다. 이 성스러운 혁명의 길에서 인민의 자유와 조국의 자주독립,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여러 세대가 고귀한 피와 땀을 바쳤으며 수많은 혁명가들이 위훈을 세우고 빛나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우리 인민은 앞선 세대 혁명가들을 혁명선배로 존대하며 그들의 혁명정신과 투쟁업적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있으며 선배들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켜나가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는 숭고한 도덕의리이며 우리 혁명이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끄떡없이 승승장구하고있는 근본요인의 하나입니다.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력사는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그들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갈 때 혁명이 승리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혁명선배들을 저버리고 그들의 업적을 부정할 때에는 혁명이 중도반단되고 좌절되게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습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적지위를 차지한 기회주의자들에 의하여 혁명선배들을 모독하고 그들의 업적을 말살하는 배신행위가 감행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사회주의의 영상이 흐려졌으며 끝내는 사회주의제도자체가 허물어지게 되였습니다.

혁명선배들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바로 세우는것은 사회주의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혁명선렬들이 추켜든 혁명의 붉은기를 대를 이어 높이 들고 나아갈 때에만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이 승리를 이룩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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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선배를 존대하는것은 혁명의 요구이며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숭고한 도덕의리입니다.

사회주의위업은 세대에 세대를 이어 선배들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후대들이 계승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전진하며 완성되게 됩니다. 혁명선배에 대한 태도는 혁명에 대한 태도문제이며 그것은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혁명선배를 존대한다는것은 혁명위업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한 혁명가들을 적극 내세우고 그들의 혁명사상과 혁명업적을 옹호고수하며 계승발전시켜나간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선배들의 숭고한 혁명사상과 그들이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이룩한 업적은 혁명의 전취물이며 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고귀한 밑천으로 됩니다. 혁명의 계주봉을 넘겨받는 모든 세대들이 혁명선배들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혁명위업이 대를 이어 전진하며 빛나게 완성될수 있습니다. 혁명선배들의 투쟁과 업적을 허무주의적으로 대하며 부정하는것은 혁명의 길에서 물러서며 혁명을 배반하는것으로 됩니다. 혁명선배들을 헐뜯고 그들의 사상과 업적을 모독하는것은 혁명을 모독하는것이며 혁명의 원쑤들앞에 아부굴종하는것입니다. 로동계급의 당은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혁명선렬들이 개척하고 전진시켜온 사회주의위업을 변함없이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하며 혁명선배들을 내세우고 그들의 사상과 업적으로 인민들을 교양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혁명선배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것은 혁명에 대한 태도문제인 동시에 혁명가들의 도덕의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도덕의리는 혁명가의 품격을 규정하는 기본징표의 하나입니다. 혁명가는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할뿐아니라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닌 참다운 인간적풍모의 소유자로 되여야 합니다. 량심과 의리는 인간의 고유한 미덕이며 사람들을 자각적이고 아름다운 행동에로 추동하는 정신적힘의 원천입니다. 선진적인 사상을 가지고있다 하더라도 량심이 없고 도덕의리를 지킬줄 모르는 사람은 고상한 인간적풍모를 갖출수 없으며 참다운 혁명가로 될수 없습니다.

낡은 사회에서도 량심있는 사람들은 도덕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으로 사람의 인격적가치를 평가하였으며 도덕의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사람답지 못한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착취사회에서는 참다운 도덕이 발전할수 없고 지배할수 없습니다. 착취사회의 기초로 되고있는 개인주의는 진실한 도덕의리와 량립될수 없으며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사이에는 도덕의리적관계가 이루어질수 없습니다. 도덕적위선은 착취계급의 본색이며 도덕적부패는 부르죠아사회의 필연적산물입니다.

가장 고결한 인간적풍모의 소유자는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참다운 인간관계, 인간도덕의 기초이며 자기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것은 인간의 고상한 도덕의리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인민을 사랑하며 개인의 리익보다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기때문에 사리와 공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는것입니다. 숭고한 인간애를 지니고 동지들과 인민들을 끝없이 사랑하며 혁명적량심과 고상한 도덕의리심을 가지고 오직 인민을 위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혁명가들입니다. 인민을 사랑할줄 모르고 인민의 리익을 외면하며 량심과 의리가 없고 인정미도 없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도, 혁명가로도 될수 없습니다.

혁명선배를 존대하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어길수 없는 혁명적의리입니다. 혁명의 선배와 후배사이의 관계는 혁명을 먼저 하고 후에 하는 차이가 있지만 혁명의 한길에서 싸워나가는 혁명가들사이의 동지적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주로 육체적생명을 주고받는 혈육의 관계라면 혁명가들사이의 관계는 혁명의 한길에서 뜻을 같이하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며 육체적생명보다 더 귀중한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여나가는 혁명동지들사이의 관계입니다. 혁명가들사이의 관계는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에 기초한 참다운 공산주의적인간관계로 됩니다. 혁명동지를 가장 열렬히 사랑하며 동지들사이의 혁명적의리를 지키는것을 숭고한 의무로, 영예로 여기는것이 공산주의혁명가의 도덕관이며 도덕적풍모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혁명가들은 혁명동지를 배반하고 동지들과의 관계에서 량심과 의리를 저버리는것을 가장 치욕스러운 배신행위로 여기는것입니다.

혁명의 선구자들이며 혁명위업을 위하여 생을 바치고 공적을 남긴 혁명선배들을 후대들이 존대하는것은 혁명가들사이의 도덕의리에서도 더 숭고한 도덕의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혁명선렬들은 자기 개인의 리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후대들의 행복을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싸웠으며 고귀한 혁명업적을 쌓았습니다. 혁명투사들이 생사를 가르는 결전장이나 단두대에서 최후를 마치면서도 《미래를 사랑하라!》고 웨친것은 바로 후대들을 사랑하였기때문입니다. 혁명선렬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혁명의 길이 열리고 혁명의 전취물이 마련되였으며 인민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새 생활이 꽃펴날수 있었습니다. 후대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한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것은 후세대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혁명적의리이며 숭고한 도덕적의무로 됩니다.

혁명선배의 최고대표자는 수령이며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의리의 최고표현입니다.

로동계급의 수령은 혁명의 최고뇌수이며 령도자입니다. 인민대중은 력사의 주체이지만 탁월한 수령의 령도를 받을 때에만 자기 운명의 참다운 주인, 력사의 자주적인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수 있습니다. 수령은 과학적인 혁명사상과 전략전술을 제시하고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혁명투쟁을 승리에로 령도하며 사람들에게 고귀한 사회정치적생명을 안겨주고 그들을 혁명의 한길에서 값높은 삶을 빛내여나가도록 이끌어줍니다. 수령의 령도에 의하여 수천, 수만의 혁명가들이 자라나고 인민들이 혁명투쟁에 떨쳐나서게 됩니다. 수령의 령도밑에 사회주의위업이 개척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하며 수령의 숭고한 사상과 탁월한 령도로 하여 위대한 혁명업적이 이룩되고 혁명적세대들의 영예와 존엄이 빛나는것입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은 곧 수령의 위업의 계승이며 혁명선배들의 사상과 업적의 계승은 수령의 혁명사상과 령도업적의 계승입니다. 혁명선배들에 대한 존대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위대한 수령에게 대를 이어 충성다하는것은 혁명가들의 본분이며 최고의 혁명적의리입니다. 혁명가들은 수령의 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수령의 혁명위업을 충직하게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력사적으로 제국주의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은 사회주의위업을 반대하면서 공격의 예봉을 로동계급의 수령들과 전 세대 혁명가들에게 돌리였습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위업이 수령의 령도와 전 세대 혁명가들의 희생적인 투쟁에 의하여 개척되고 승리하여왔으며 사회주의의 존엄이 바로 그들의 명예와 련결되여있기때문입니다. 현대수정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은 수령과 혁명선배들을 모독하고 그들의 업적을 말살함으로써 사회주의를 변질과 붕괴에로 이끌어갔습니다. 사회주의의 변질과 붕괴과정은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하여 수령과 혁명선배들을 헐뜯고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외곡변질시키면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사회주의는 현대수정주의자들에 의하여 자기 궤도에서 탈선되고 내부로부터 와해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주의의 력사적업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말살한 사회주의배신자들의 《개혁》, 《개편》정책에 의하여 붕괴되였습니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은 로동계급의 수령을 헐뜯고 혁명선배들의 성스러운 혁명투쟁과 위대한 혁명업적을 모독하였으며 사회주의를 허물고 자본주의를 복귀시켰습니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압력에 굴복하여 혁명을 배반한 가장 비렬한 반혁명적죄행이며 혁명적의리를 저버리고 초보적인 인간도덕마저 짓밟은 가장 비도덕적인 배신행위입니다. 혁명의 배신자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혁명선배들을 헐뜯고 모독함으로써 사람들속에서 사상적동요와 혼란을 조성하였으며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에게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위업을 더욱 악랄하게 비방할수 있는 구실을 주었습니다.

혁명의 배신자들은 음모적방법으로 당과 국가의 지도적지위를 차지하고 혁명선배들의 명예를 훼손시킴으로써 저들의 인기를 올리고 인민들의 지지를 받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과 국가의 최고지위를 차지한다고 하여 지도자가 되고 인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게 되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권력이나 기만으로는 인민들의 믿음을 얻을수 없습니다. 지도자로 되고 인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자면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자질을 갖추고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여야 합니다.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복무자가 되여야 합니다. 인민에 대한 사랑과 혁명선배들에 대한 존경은 하나로 통일되여있습니다.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에게 충실한 사람은 인민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한 혁명선배들을 더없이 존대하지만 인민을 멸시하고 자기를 인민의 머리우에 군림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혁명선배들을 모독하는 비렬한 행동도 서슴없이 감행합니다. 사회주의배신자들은 교활한 수법으로 혁명의 수령들과 전 세대 혁명가들을 헐뜯고 자기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지만 오히려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로서의 본색과 비인간적면모를 드러내놓았습니다. 인민들을 기만하고 혁명을 배반한 자들은 인민들의 버림을 받기 마련입니다.

인민을 위하여,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진정한 혁명가라면 누구나 혁명선배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혁명가로서의 영예와 존엄을 지키고 혁명위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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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선배들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키는것은 우리 혁명의 전통이며 우리 사회의 고상한 도덕기풍입니다.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의 독창적인 길을 열어온 우리 혁명은 공산주의도덕건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일찍부터 숭고하고 아름다운 도덕의리의 모범을 창조하고 빛내여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공산주의적도덕의리의 전통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마련되였으며 그것은 새 사회건설을 위한 투쟁을 통하여 계승발전되고 빛나게 구현되였습니다.

오늘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아래에서 공산주의적도덕기풍은 더욱 높이 발양되고있습니다. 수령과 전사, 당과 인민이 일심단결되고 사람들이 친혈육과 같이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하나의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신도덕분야에서의 주체사상의 빛나는 승리를 보여주는것이며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는것입니다.

우리 인민이 지닌 공산주의적도덕의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끝없이 숭배하고 따르며 충성으로 받들어모시는데서 가장 높이 발현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이 반만년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이시였으며 위인이 지닐수 있는 모든 풍모와 자질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습니다.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굳게 믿으시였으며 한평생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면서 오로지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습니다. 우리 혁명의 자랑찬 력사와 사회주의조선의 존엄과 영예, 우리 인민이 누리고있는 모든 행복이 수령님의 존함과 결부되여있으며 수령님의 위대한 령도의 빛나는 결과입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세계정치의 원로로서 자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진보적인민들에게 힘과 신심을 주시고 인류의 자주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의 위대한 스승이시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으며 우리 인민모두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이고 제자이며 어버이수령님의 아들딸들입니다. 우리 혁명의 1세대로부터 오늘의 새 세대에 이르는 모든 세대들이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나고 수령님의 손길아래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이며 보람찬 삶을 누려왔습니다. 우리 인민은 일찍부터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전설적영웅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위대한 수령, 위대한 어버이로 높이 받들어모시였으며 어버이수령님께 일편단심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것을 최상의 영예로,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로 간직하여왔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는 우리 인민의 충성심은 수령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신 후 더욱 높이 발현되고있습니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피눈물속에 어버이수령님과 영결하였으며 가셔질줄 모르는 비통한 마음으로 수령님을 끝없이 추모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어버이수령님을 더욱 그리워하고있으며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수령님의 영생을 기원하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나 서거하신 이후에나 변함없이 위대한 수령님을 마음의 기둥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 인민의 끝없는 충성과 효성은 세계를 감동시키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수령님을 생존시와 다름없이 잘 모시고 수령님의 위업을 드팀없이 계승해나가는것이였습니다.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모시며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혁명위업을 계승발전시켜나가는 성스러운 사업에 모든 힘을 집중하였으며 여기에 전당, 전군, 전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숭엄하게 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생전의 모습으로 정중히 모시였으며 수령님의 위대한 존함과 불멸의 업적을 빛내이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고있습니다.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그대로 계승하고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힘있게 조직동원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을 변함없이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을 충직하게 이어나가는 우리 당의 령도는 우리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념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하였으며 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 불굴의 혁명정신과 의지를 굳게 하여주었습니다. 우리 인민은 우리 당이 있는 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신뢰하며 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힘차게 싸워나가고있습니다. 투철한 수령관과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고 당과 수령을 대를 이어 충성으로 받들어나가는 우리 인민, 이 훌륭한 인민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당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을 위하여 투쟁한 혁명가들을 높이 존대하고있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들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사리나 공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광복된 조국에서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게 될 그날을 위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혈전의 길에 나섰습니다. 항일혁명은 력사에 류례없는 준엄하고 시련에 찬 혁명이였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가장 엄혹한 조건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투쟁함으로써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였으며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는데 빛나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 당은 항일혁명투사들을 우리 혁명의 제일선배로, 혁명가의 귀감으로 내세우고 존대하며 그들의 혁명정신과 투쟁업적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있습니다. 우리 당은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를 내놓고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항일투사들의 혁명정신과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워 사업과 생활에 구현하도록 하고있으며 항일투사들의 투쟁업적을 빛내여나가고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참가자들은 항일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여 인민의 조국을 지켜싸운 영웅전사들입니다.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들은 나라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가렬한 싸움에서 미제의 무력침공을 격파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지켜냈습니다. 우리 당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이 세운 불멸의 업적을 긍지높이 자랑하고있으며 그들이 발휘한 대중적영웅주의와 애국주의정신으로 새 세대 청년들과 인민들을 교양하고있습니다.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의 영웅들과 로력혁신자들, 천리마운동선구자들은 우리 혁명이 부닥친 난국을 뚫고 사회주의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킨 긍지높은 세대들입니다. 우리는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전후 재더미우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하여 짧은 력사적기간에 우리 나라를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로 일떠세운 천리마시대의 영웅들과 혁신자들, 선구자들을 자력갱생의 귀감으로 내세우고있습니다.

우리 당은 우리 혁명의 각이한 년대에 빛나는 위훈을 세운 혁명렬사들과 애국렬사들, 영웅전사들의 사회정치적생명을 끝없이 빛내여주며 그들의 위훈을 력사에 길이 전하고있습니다. 우리는 혁명렬사들과 애국렬사들, 영웅전사들을 위하여 혁명렬사릉과 애국렬사릉을 훌륭히 건립하였으며 혁명렬사들과 애국렬사들, 영웅전사들이 나서자라고 배우며 일한 고향과 학교, 공장과 농장, 인민군부대들을 그들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그들의 업적을 널리 소개선전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혁명렬사들과 애국렬사들, 영웅전사들의 유자녀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과 배려가 돌려지고있습니다. 우리는 혁명가유자녀학원을 여러곳에 내오고 국가의 부담으로 유자녀들을 훌륭한 혁명인재로 키우고있으며 유자녀들을 당과 국가, 군대의 중요한 초소에 배치하고 그들이 일을 잘하도록 보살펴주고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이렇게 하는것을 혁명선렬들앞에 지켜야 할 응당한 도덕의리로 여기고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로혁명가들과 전쟁로병들, 영예군인들과 공로자들, 이름있는 지식인들과 문화인들이 당의 크나큰 사랑과 배려속에서, 사회적인 관심과 존경속에서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며 값높고 보람찬 삶을 누리고있습니다.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한 혁명가들과 공로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적극 내세우는것은 우리 당의 정치이며 우리 사회의 고상한 기풍입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우리 민족사에 이름을 남긴 력사적인물들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들의 업적을 길이 전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원시조인 단군의 묘를 발굴하고 단군릉을 웅장하게 개건하였으며 강성대국이였던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릉과 고려의 태조 왕건의 릉도 훌륭히 개건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는 로동당시대에 와서 더욱 빛나고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은 민족적위업인 동시에 국제적위업입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진정한 국제주의자로서 나라와 민족에 관계없이 세계 모든 나라 혁명가들과 반제, 반파쑈투사들, 진보적인사들과 혁명적인민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투쟁업적을 응당하게 평가하고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맑스와 엥겔스, 레닌, 쓰딸린을 로동계급의 수령으로 존대하며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로동계급의 첫 수령들인 맑스와 엥겔스는 로동계급의 계급적요구와 지향을 반영하여 사회주의를 공상으로부터 과학으로 전환시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운동의 시원을 열어놓았습니다. 레닌은 맑스주의를 변천된 시대의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키고 로동계급을 조직동원하여 사회주의10월혁명의 승리를 이룩하였으며 쓰딸린은 레닌의 위업을 이어 청소한 첫 사회주의국가를 세계의 강국으로 건설하고 군대와 인민을 령도하여 파시즘의 침략으로부터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였습니다. 맑스와 엥겔스, 레닌, 쓰딸린은 당대에 있어서 피압박근로대중의 지향과 요구의 대표자였으며 사회주의위업은 그들의 이름과 뗄수없이 련결되여있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이 로동계급의 수령들을 악랄하게 헐뜯고 수령의 령도에 대하여 《독재》니, 《인권침해》니 하면서 중상비방하는것은 바로 로동계급의 수령들이 인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인민의 리익의 철저한 옹호자였으며 혁명의 원쑤들과 타협하지 않고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는 견결한 공산주의혁명가였다는것을 증명할따름입니다.

우리 당은 로동계급의 수령들의 사상리론적공적에 대해서도 언제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온갖 기회주의적외곡으로부터 맑스ㅡ레닌주의의 혁명적원칙을 고수하였으며 그것을 혁명의 리익과 현실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왔습니다. 로동계급의 혁명사상과 리론은 력사적환경과 매개 나라의 실정에 맞게 구현되여야 합니다. 혁명의 조건과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것만큼 기성리론을 교조주의적으로 대하면 로선과 정책을 바로 세울수 없고 혁명과 건설에서 곡절을 면할수 없습니다. 우리 당은 맑스ㅡ레닌주의의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면서 그 력사적제한성을 옳게 분석한데 기초하여 자기의 지도사상, 지도리론을 확립하였으며 그것을 무기로 하여 사회주의위업을 수행하여왔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맑스ㅡ레닌주의를 조선혁명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우리 혁명의 자주적발전의 길을 개척하시였습니다. 주체사상은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새로운 력사적환경과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킨 독창적인 사상입니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선행리론의 력사적제한성이 극복되고 로동계급의 혁명사상과 리론은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되게 되였습니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은 맑스ㅡ레닌주의를 외곡하고 헐뜯으면서 그 창시자들을 모독하였습니다.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맑스ㅡ레닌주의의 혁명적원칙을 거세함으로써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제국주의자들의 비위에 맞게 외곡변질시켰으며 사회주의배신자들은 사회주의리념자체가 잘못된것이라고 떠벌이면서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하여나섰습니다.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부정하고나오는 사상이란 부르죠아사상밖의 다른 사상으로 될수 없습니다. 혁명의 배신자들이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을 부정하면서 《민주주의》와 《경제적복리》를 위하여 《개혁》, 《개편》을 한다고 떠들어댔지만 그들의 《리론》이 다름아닌 사회주의를 허물고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반동적리론이였다는것이 현실에 의하여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리 인민은 로동계급의 수령들뿐아니라 사회주의위업을 위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한 모든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들을 존경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기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여러 나라 인민들의 위대한 혁명투쟁을 잊지 않고있으며 그들의 력사적공적을 높이 평가하고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사회주의위업에 공헌한 혁명선배들의 투쟁과 업적을 모독하고 훼손시키는 온갖 반혁명적책동과 배신행위를 반대배격합니다.

기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이 로동계급의 수령들과 혁명선배들의 명예를 모독하였지만 결코 그들의 이름과 고귀한 업적을 력사에서 지워버릴수는 없습니다. 오늘 사회주의가 일시 곡절을 겪고있지만 인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새로운 승리의 길을 열어나가고있는것처럼 로동계급의 수령들과 혁명선배들의 명예와 업적은 사회주의운동의 전진과 함께 인민들의 존대속에서 영원히 빛날것입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과 련대성을 귀중히 여기고 사회주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인민들, 반제자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여왔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나라들과의 당, 국가관계에서나 친선적인 모든 나라, 모든 인민들과의 관계에서 일관하게 국제주의적원칙과 혁명적의리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외활동을 벌리시면서 친분관계를 맺으신 세계 여러 나라 당, 국가지도자들, 정계, 사회계, 학계, 언론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벗들을 변함없이 존경하며 우리 혁명의 시련의 시기에 우리 인민을 사심없이 도와준 혁명전우들과 형제적인민들, 우리 인민의 정의의 위업을 지지성원해주고있는 모든 나라 인민들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인민들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는 당과 수령의 옳바른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동지적단결과 협조가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그 본성에 맞는 새로운 도덕이 형성발전될수 있는 사회경제적조건이 지어집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제도가 섰다고 하여 사람들의 정신도덕적풍모가 저절로 숭고한 높이에 이르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당과 수령의 옳은 령도를 받을 때에만 인민들이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지닐수 있습니다.

인민들의 정신도덕적풍모는 수령의 풍모를 닮아가며 당의 정치를 따라가게 됩니다.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이 위대한 인민을 낳습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가장 숭고한 인간애,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습니다.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사상과 덕성을 따라 사랑과 믿음의 정치,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진정한 어머니당입니다. 우리 인민의 아름다운 정신도덕적풍모는 어버이수령님과 어머니당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형성발전되였으며 오늘과 같은 숭고한 높이에 이르게 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풍모와 어머니당의 인덕정치로 하여 우리 인민은 동지를 사랑하고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며 당과 혁명에 충실하고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 고상한 도덕의리심을 지니게 되였으며 우리 사회에서 동지적단결과 협조,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참다운 공산주의적인간관계가 꽃펴나게 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의 정신도덕적풍모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세계를 정치사상적으로, 정신도덕적으로 압도하고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습니다.

3

혁명선배를 존대하는 도덕기풍을 세우며 사람들속에서 고상한 도덕의리적관계를 발전시키는것은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나서는 중요한 과업입니다.

혁명이 전진하고 사회가 발전하는데 따라 도덕도 끊임없이 발전되고 완성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의 완성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주인인 인간자체의 완성이며 인간의 완성에서 도덕적완성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인류의 도덕발전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도덕은 공산주의도덕입니다. 공산주의도덕은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에 기초한 집단주의도덕이며 사람의 본성적요구에 맞는 가장 우월한 도덕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사람들속에 남아있는 낡은 도덕의 잔재를 극복하고 공산주의도덕을 전면적으로 확립하는 과정을 통하여서만 사람들을 공산주의적인간으로 개조할수 있으며 사회주의를 완성해나갈수 있습니다.

혁명의 선행세대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것은 혁명의 대를 이어가는 후대들의 혁명적의무이며 숭고한 도덕의리입니다.

혁명선렬들의 혁명사상과 혁명정신, 고귀한 투쟁업적과 경험, 그들의 혁명가적풍모는 대를 이어 계승하고 따라배워야 할 혁명전통의 중요한 내용을 이룹니다. 혁명전통은 혁명의 명맥을 이어주는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보입니다. 사회주의위업이 대를 이어 승리적으로 전진하는가 아니면 세대가 바뀌면서 중도반단되는가 하는것은 혁명전통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혁명전통을 거부하는것은 혁명사상과 혁명정신을 버리고 혁명투쟁을 포기하는것이며 결국은 혁명을 좌절에로 이끄는 길입니다. 사회주의운동의 경험과 교훈은 혁명전통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말살할 때에는 오랜 력사와 투쟁경험을 자랑하던 로동계급의 당도 변질과 파멸을 면할수 없으며 아무리 사회주의의 력사가 길고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도 사회주의를 지켜낼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로동계급의 당을 변함없이 혁명적당으로 강화발전시키며 사회주의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하기 위하여서는 당건설과 당활동,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옳게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항일혁명선렬들이 이룩한 주체의 혁명전통입니다. 영광스러운 주체의 혁명전통은 우리 당의 력사적뿌리이며 우리 혁명의 만년초석입니다. 혁명선렬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것, 이것이 우리 당을 영원히 주체의 혁명적당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길이며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키고 주체혁명위업을 확고히 계승완성해나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혁명선렬들의 숭고한 혁명사상과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혁명적원칙, 로동계급적원칙을 견결히 고수하며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혁명의 한길로만 꿋꿋이 걸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여 언제나 혁명적으로 일하며 생활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선렬들의 모범을 따라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신념과 의리로 간직하며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항일혁명선렬들에 의하여 마련되고 우리 당에 의하여 계승발전되여온 주체의 혁명전통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야 하며 혁명적원칙과 혁명적의리를 더없이 귀중히 여기는 공산주의혁명가의 영예와 존엄을 고수하고 빛내여야 합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도덕교양을 강화하여 온 사회에 공산주의적도덕기풍을 확립해나가야 합니다.

도덕은 량심에 의하여 자각적으로 준수되는 사회적행동규범인것만큼 사람들이 깨끗한 량심을 지니고 사업과 생활의 모든 면에서 고상한 도덕적풍모를 갖추어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게 진실로 충실한 혁명가로, 참다운 공산주의적인간으로 될수 있으며 온 사회에 공산주의적도덕기풍을 확립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자기의 부모형제들을 사랑하고 동지들을 사랑하며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것으로부터 집단과 조직을 귀중히 여기고 국가와 사회재산을 애호관리하며 공중도덕을 자각적으로 지키는데 이르기까지 사회관계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공산주의적도덕규범을 잘 지켜나가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혁명의 계승자들이며 미래의 주인공들인 새 세대들을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도록 교양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어떻게 교양하고 준비시키는가 하는데 나라와 민족의 흥망, 사회주의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새 세대들의 정신도덕적풍모를 보면 그 나라, 그 민족의 전도를 알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사회라고 하여도 새 세대들을 옳게 교양하지 않으면 그들이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자라날수 없고 사회주의를 지켜내지 못하게 된다는것이 력사의 교훈입니다. 청소년들은 사상정신적으로 성숙과정에 있으며 혁명투쟁의 시련도 겪어보지 못하고 고이 자랐으므로 잘 교양하지 않으면 나쁜 사상과 도덕, 생활풍조에 쉽게 물들수 있는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정신도덕적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새 세대들에 대한 교양을 소홀히 하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모두가 다 당과 수령을 충성으로 받들고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하며 아름답고 건전한 정신도덕적품성을 지닌 훌륭한 혁명가로, 공산주의적인간으로 자라나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후대들을 잘 교양하는것은 전 세대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입니다. 혁명의 전 세대가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값높은 유산은 정신도덕적유산입니다. 전 세대는 후대들에게 유족한 생활을 위한 물질적재부도 물려주어야 하지만 그보다도 후대들이 혁명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갈수 있도록 그들에게 고귀한 정신도덕적재부를 물려주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에게 혁명의 1세, 2세들이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어려운 시기에 당과 수령을 어떻게 받들었으며 혁명의 난국을 뚫고나가는 길에서 어떻게 살며 투쟁하였는가 하는것을 똑바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청소년들이 혁명의 1세, 2세들이 발휘한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혁명위업에 대한 헌신성, 불굴의 투쟁정신을 적극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을 교양하는데서 청년조직들의 역할을 높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견실하고 고상한 도덕품성을 지닌 혁명의 계승자로 키우기 위한 교양사업을 잘하는것은 사로청의 기본임무입니다. 사로청조직들은 청소년들의 특성에 맞게 교양사업을 힘있게 벌려 모든 청소년들이 혁명적인 새 세대로, 앞날의 믿음직한 주인공으로 자라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을 옳게 교양하려면 학교교육과 사회교육, 가정교육이 배합되여야 합니다. 각급 학교들과 사회교양기관들, 가정들에서 청소년교양에 깊은 관심을 돌려 모든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나 건전하고 혁명적인 생활환경에서 훌륭한 교양을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특히 호기심이 많고 감수성이 빠른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보고듣고 느끼는 모든것이 그들의 정서와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것만큼 문학예술, 출판보도물을 비롯한 대중적문화, 선전수단들을 통한 교양사업에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도덕교양은 공산주의도덕의 본질적특성과 사회주의사회발전의 요구에 맞게 진행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도덕교양을 사상교양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여기고 사상교양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여야 합니다. 사상과 도덕은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으며 사상을 떠난 도덕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에 기초한 도덕이 집단주의도덕, 공산주의도덕이며 부르죠아반동사상에 기초한 도덕이 극단한 개인주의도덕, 반동적부르죠아도덕입니다. 사상이 건전해야 고상한 도덕적품성을 지닐수 있으며 사상은 량심화, 도덕화되여야 진실하고 공고한것으로 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도덕교양을 주체사상교양의 중요한 일환으로 폭넓고 깊이있게 하여야 합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주체사상원리교양을 심화발전시키는 기초우에서 공산주의도덕교양을 강화하여 그들이 주체의 혁명적도덕관을 튼튼히 세우고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로서의 정신도덕적풍모를 훌륭히 갖추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혁명적조직생활과 혁명실천을 통하여 사람들이 공산주의적도덕품성을 키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속에서 집단생활을 통하여 사회적인간으로서의 풍모를 갖추어나가며 사회적집단생활의 가장 높은 형태가 혁명적조직생활입니다. 혁명적조직생활은 사람들을 사상적으로뿐아니라 도덕적으로 단련하고 교양하여 공산주의적풍모를 갖추어나가게 하는 훌륭한 학교입니다. 우리 인민이 건전하고 혁명적인 정신도덕적풍모를 지니게 된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모든 사람이 일정한 정치조직에 망라되여 조직생활을 하고있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적조직생활을 강화하고 자각적인 조직생활기풍을 더욱 튼튼히 세움으로써 사람들속에서 집단주의정신을 높이며 온갖 자유주의적이고 불건전한 풍조들을 배격하고 고상한 도덕품성을 키워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량심과 도덕의리심은 실천행동에서 표현되며 검증됩니다. 낡은 도덕관념과 비도덕적인 현상은 주로 낡은 관습에 뿌리박고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사업과 생활에서 량심과 의리를 지키며 낡은 도덕관념과 인습을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주의적생활양식과 생활기풍을 세워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도덕교양은 긍정감화교양방법으로, 사회적운동으로 벌리는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도덕교양을 긍정감화교양방법으로, 사회적운동으로 벌리는것은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에 맞는 위력한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 인민들속에는 혁명동지를 위하여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치며 누가 보건말건 당과 혁명을 위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좋은 일을 찾아하며 한생을 충신과 효자의 자세로 성실하게 살아나가는 훌륭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깨끗한 량심과 숭고한 도덕의리의 체현자들이며 우리 시대 인간의 전형입니다. 우리는 인민들속에서 발양되는 공산주의적미풍을 적극 내세우고 널리 소개선전하며 그 모범을 따라배우는 사업을 전사회적인 운동으로 힘있게 벌려나가야 합니다.

공산주의도덕과 배치되는 낡고 반동적인 도덕과 생활풍조를 반대하여 투쟁하며 그러한것이 우리 내부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공산주의도덕을 확립하는 사업은 낡고 반동적인 도덕과 온갖 패륜패덕을 반대하는 투쟁속에서 진행됩니다. 부르죠아도덕은 사람들을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로 부추기며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초보적인 량심과 의리마저 저버리는 황금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부르죠아도덕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온갖 사회악이 판을 치고 부패타락한 생활풍조가 범람하며 그것은 반동적통치배들에 의하여 더욱 조장되고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국내에서뿐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썩어빠진 부르죠아도덕과 생활양식을 대대적으로 퍼뜨리고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하며 그것을 철저히 짓부셔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혁명선배들을 헐뜯고 공산주의도덕을 모독한 기회주의자들의 배신행위의 반동성과 해독성을 똑똑히 알고 그것을 철저히 반대배격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을 비방하고 공산주의도덕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책동하면 할수록 공산주의혁명가들의 혁명적기상과 고상한 공산주의적도덕기풍을 더욱 높이 떨쳐나가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주체사상의 기치따라 전진하여온 우리 혁명의 력사는 혁명적동지애와 숭고한 도덕의리로 수놓아지고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승리의 길을 열어온 영광스러운 력사입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우리 혁명의 자랑찬 력사와 전통을 고수하며 끝없이 빛내여나갈것입니다.


조선중앙통신사 고발장/ 세계최대의 랍치국 일본의《위안부》범죄를 단죄한다

지난 세기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 군사통치를 실시하면서 수백만명의 조선녀성들과 청장년들을 랍치, 련행해간 일본이 지금《랍치문제》에 대하여 계속 떠들어대고 있다.
수상 후꾸다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과거 일본의 랍치범죄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에 붙이고《랍치문제》가《해결》되지 않고서는 일조관계개선과 조선에 대한 에네르기 지원을 할수 없다는 립장을 공식 표명하고 있다. 지어 핵문제와 함께《랍치문제》의 일괄타결을 력설하면서 이를 위해《협력》해줄 것을 여러 나라에 구걸하는 놀음까지 벌리고 있다.

일본반동들이 관권과 군권에 의해 조직적으로 감행한 랍치범죄에 대해 배상할 대신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우리 인민과 세계 량심에 대한 우롱이며 도전이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일본이 감행한 모든 랍치행위를 추호도 용납못할 반인륜적 죄행으로 락인하면서 일본군《위안부》범죄의 진상을 폭로한다.

1

일본군《위안부》범죄는 일본국가가 조직한 랍치행위의 산물이다.
일본왕과 그의 명령, 비준밑에 움직인 정부와 군부가 랍치행위의 주범이다.
1918년 씨비리 침략전쟁후 일본당국은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성적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변태적인 군사론리에 기초하여 군대안에《위안부》제도를 내올 것을 획책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대부터 다른 나라 녀성들에 대한 랍치가 시행되였으며 대륙침략과 태평양전쟁 전 기간 그것이 지속되였다.

《위안부》확보와 관리에 대한 통제권은 일본제국의 헌법에 따라 사법, 행정, 립법 등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한 일본왕에게 있었다.
1942년 3월 30일 일본왕은《위안부》와 관련한 문제처리를《은상과》(《인사국》에 속한 부서)가 맡아하도록 륙군성의 기구를 수정할데 대한 문건에 《칙령》300호로 비준 날인하였다.
일본군 각《해외파견군》에 대한 지휘권을 틀어쥔 왕은 다른 나라 녀성들에 대한 랍치를 파견군의 참모부가 담당하게 하고 필요에 따라 륙군성이 지시를 내려 집행하도록 하였다.
륙군성은 왕의 승인, 지령밑에 일본군《위안부》제도를 내오고 관리하였다.
륙군성은《위안부》확보와《위안소》설치를 직접 추진하였다.
군부가 세운 목표에 따라 조선과 아시아지역 녀성들에 대한 랍치가 감행되였다.

일본에서 발행된 출판물《왕의 군대와 조선인<위안부>》에 의하면 정부와 군부는《황군》 29명당《위안부》1명이 차례지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각종 법령과 문건을 발표하였다.
1938년에《위안소규정》이, 1944년 2월에《조선녀자청년련성소규정》이, 8월에 《녀자정신근로령》이 조작된 것을 비롯하여 1938년부터 1945년 사이에 병력과 로동력,《위안부》확보를 위한 13건의 법령과 문건들이 발표되였다.
녀성들에 대한 랍치가 군의 명령에 따라 감행되였다는 것이 일본군의《전시전보》들과 문건들에 의해 립증되고 있다.
1942년 3월 12일 대만주둔 일본군 사령관이 도죠에게 보낸 《전시전보》에는《남방의 군본부로부터 50명의 <위안부>를 브루네이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과 관련하여 헌병에 의해 선발된 다음의 3명의 인물을 <위안소>관리인으로 파견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당신에게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씌여져 있다.
1938년 일본 륙군성이 중국주둔군에 보낸《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에는 륙군차관 우메즈의 결재인장이 찍혀있다.
륙군성은 1941년 12월말 태평양 전 전선에《위안소》개설을 명령하고 녀성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일 것을 지시하였다.

이런 명령은 일제의 패망직전인 1945년 7월까지 군부대들에 하달되였다.
일제는 점령지들에서 군사령관의 지휘 밑에 녀성들을《위안부》로 끌어갔으며 전쟁환경이 극히 불리할 때나 침략속도가 빠를 때나 가림 없이《위안소》들을 설치하군하였다.
일본군 제12사단, 제35사단, 제38사단, 제59사단 등 침략전쟁에 나섰던 모든 부대들이 전략이동할 때면 의례히 사령부가《위안부》들을 끌고다니였다.
일본군 각 부대 사령부에 의해 《위안부》관리규정과 규칙들이 따로 작성되였다.

1944년 중국에 있던 일본수비대가 발표한 《<위안소>리용에 관한 병사구락부규정》, 1944년 5월 중국남부의 경비대가 정한《군인구락부리용규정》, 오끼나와주둔 제3475부대의《<내무규정>부록 제4의 <군인구락부에 관한 규정>》등 문건들에는《위안부》확보와 관리, 감독, 재정유지와 관련한 문제들이 상세히 밝혀져 있다.
륙군성은 일본군《위안부》의 해외이동도 관할하였다.

일제의《위안부》정책은 조선에서부터 실행되였다.
라남 제19사단장, 헌병대장, 도지사들의 모의에 의해 1928년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풍곡동에 30여동의 군전용《위안소》가 설치되였으며 그 운영을 위해 조선반도 각지에서 녀성들을 끌어들이였다.
풍곡동《위안소》는 근 20년간 존속한 세계에 류례없는 장기《위안소》이다.
《위안부》들은《위안소》들이 있던 방진, 회령, 혜산, 함흥, 창원 등 여러 지역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녀성들에 대한 랍치행위는 일제의 식민지통치기구였던 조선총독부가 집행하였다.
총독부는 조선녀성들의《전쟁참전태세》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전국각지에서《비상시국과 부인들의 각오》,《군국어머니들의 결의좌담회》,《전승황군을 위문하여》등 대회, 결의모임을 조직하고 녀성들을 전시총동원에로 내몰았다.

조선총독부 제7대 총독이였던 미나미 지로는《반도사람은 모든 것을 일본에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또 바칠 각오를 하지 않아도 안된다.》고 력설하였으며 조선녀성들에게《황군》의 전쟁수행에 적극 《협력》할것을 강요하였다.
1941년《관동군특별연습》으로 불리운 쏘련에 대한 침공준비를 위한 군사연습시 일제는 30만명의 보충병력과 함께《위안부》2만명을 조선총독부에 의뢰하고 1차로 근 1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을 끌어갔다.

일제의 랍치행위는 야만성과 악랄성에 있어서 참으로 잔학하였다.
조선에서 중세기적《노예사냥》을 방불케 하는 녀성랍치가 공공연히 감행되였다.
깊은 밤 농가를 습격하여 녀인들을 잡아갔으며 대낮에 자동차를 끌고가 논밭에서 일하거나 길가던 녀성,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녀성들을 짐짝처럼 걷어싣고 달아나군하였다.
20살 안팎의 녀성은 물론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어있거나 뜨락에서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소녀들, 애기어머니와 결혼식을 앞둔 약혼녀까지 랍치, 강제련행하였다.
말그대로 조선은 《녀성공출, 녀성랍치》의 생지옥이였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도발후 일제는 조선녀성들에 대한 랍치를 더욱 대대적으로 강행하여 그들을 아시아의 광범한 지역으로 끌고갔다.
1940년《관동군사령부》 조선후방부대에서 군무한 이전 일본군 군의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관동군 녀자특수군속복무규정>에는 <위안부>의 취급에 대해 상세히 규정되여있다.
녀자특수군속이란 조선인<위안부>를 말한다.

철도로 녀자들을 운송했다. 보통 렬차 한칸에 200명씩 2,000명을 한번에 운송했다.》
1944년 만주에서 군무한 이전 통신교육대원은《조선인녀성들을 경성역에서 2,000명씩 모아 렬차에 싣고 만주의 신경에 와서 20~30명씩 각 지역으로 운송했다.》고 말하였다.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이 중국,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네이, 타이, 먄마 그리고 중부뉴기니아지구, 오끼나와, 오가사와라, 혹가이도, 꾸릴렬도, 싸할린, 트릭크섬, 고도르섬, 사이빤섬, 괌도, 니고바르지역의 섬 등 일제의 점령지들과 일본군이 주둔해있던 곳으로 끌려갔으며 14만 6,000명이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고 무주고혼이 되었다.
제반 사실은 일본군《위안부》범죄가 왕의 명령, 지시에 따라 정부와 군부, 조선총독부와 그 산하 경찰 등이 총동원되여 감행되였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2

일제의 조선녀성들에 대한 랍치문제는 이미 지난 세기에 해결되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일본반동들은 새 세기에 들어선지 여러해가 지난 오늘까지도《위안부》범죄에 대해 인정도 사죄도 하지 않고 있으며 력사적 사실자체를 전면부정, 전면 외곡하고 있다.
일본은 관권과 군권에 의한 《위안부》범죄의 강제성을 부인하는데 모를 박고있다.
《본인의 의사와 어긋나는 업자의 강제련행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군대와 관리에 의한 강제련행은 없었다.》는 것이 일본당국의 시종일관한 주장이다.

극우익세력은 구일본정부와 구일본군에 의해 녀성랍치가 강행되지 않았음을《증명》하자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 수상 아베는 2007년 3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위안부》범죄의《강제성을 뒤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 일제의 추악한 랍치만행을 공공연히 비호하였다.
3월 7일에는 자민당의 《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이 일본군《위안부》를 강제련행한 사실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정부의 공식견해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3월 16일 일본정부는 내각회의에서 결정한《답변서》에서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이나 경찰에 의한 《위안부》의 강제련행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6월에는 자민당과 민주당, 무소속 의원 45명과 교수, 정치평론가, 언론인 등 60명이 미국신문《워싱톤 포스트》에 낸 광고에서 《일본군이나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동원에 개입했다는 문서는 찾을수 없다.》고 하였다. 지어 그들은《<위안부>생존자들의 증언은 일관성이 없다.》,《<위안부>들이 허가를 받고 매춘행위를 하였으며 이런 매춘은 당시 <범세계적현상>》이였다고 떠들면서 력사적사실을 오도하였다.

《산께이신붕》의 매문가들은《일본군이 노예사냥과 같은 강제련행을 직접 한 일은 없다. 이것은 가장 큰 오해이다.》라고 허튼소리를 하였다.
당국의 승인하에 력사교과서들에서는 일본군《위안부》범죄력사가 외곡, 삭제되고 있으며 오히려 범죄자들이 찬미되고 있다.
최근에는 문부과학성이 력사, 지리 등 205종의 고등학교 2, 3학년 교과서를 검정하면서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련행사실을 완전히 삭제한 교과서들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일본정부와 군에 의해 감행된 조선녀성들에 대한 랍치행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극히 철면피하고 파렴치한 정치적 망동이다.

일제가 조선녀성들을 랍치하여 전쟁마당에 끌고다니였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수많은 피해자들과 증견자들의 증언, 당시의 문서들,《위안소》에 드나들던 군인들의 자백에 의해 밝혀진 진실이다.
1992년 8월 7일 유엔소수민족차별방지 및 보호에 관한 소위원회 제44차 회의에서 국제교육개발협회 대표가《〈위안부〉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기간 일본〈황군〉에 유괴, 강제련행되여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20만의 조선소녀들과 녀성들에 대한 문제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배상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막아보려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은 랍치범죄를 전면 부정하는 비렬한 행위이다.
1997년이래 미국회 하원에는 여러차례에 걸쳐 일본군《위안부》관련 결의안이 제출되였다. 그러나 일본당국의 집요한 책동에 의해 그것은 2006년까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였다.
지난해에 일본반동들은 미국과 카나다, 네데를란드국회와 유럽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범죄를 단죄하고 일본정부의 공식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들이 채택되자 그것이《사실과 어긋나는 잘못된 정보자료에 기초하고 있다》느니,《일본의 신용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결의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느니 뭐니하며 망동을 부리였다.
1991년에 개관된 오사까국제평화쎈터의 전시내용에 대해서도 일본반동들은《일본군을 극악무도한 존재로 단정한데다가 그 근거로서 전시되여 있는 사진과 자료의 사실관계에 날조가 포함되여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범죄를 부정, 미화하는 방향에서 거듭 수정하였다.

《위안부》문제가 국제무대에 상정된지 근 20년이 되여오고 유엔에서 계속 론의되지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수많은 관련문건들을 감추고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립문서고에 아시아녀성들에 대한 범죄관련문건들을 비롯하여 43만여건의 문건과 자료들이 있지만 35%만 공개된 것이 이를 실증해주고 있다.
일본반동들이《위안부》범죄를 한사코 부정하는 것은 그 어떤 편견이나 몰리해에서가 아니다.
일본이 《위안부》범죄의 강제성을 부정하는데는 세계최대의 랍치국으로서의 일본의 추악한 영상을 가리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일본은 력사적으로 랍치전과를 안고 있는 죄많은 나라이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과 략탈, 랍치를 일삼으면서 바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존재해왔다는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00여년전 임진조국 전쟁때에 일본사무라이들은 조선을 침략하고 백주에 수많은 기술자, 전문가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랍치해갔다.

임진조국전쟁 후 1만명안팎의 조선사람이 송환된 사실은 당시 사무라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랍치해갔는 가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랍치에 이골이 난 일제는 리왕조의 왕족들을 일본으로 끌어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문명의 세기로 불리운 20세기에는 녀성들만 아니라 조선청장년들에 대한 랍치를 공공연히 감행하여 무려 840만여명을 끌어갔다.
지금도 일본은 우리 인민에 대한 랍치행위를 끊임없이 벌리고있다.
2003년에는 당국의 묵인하에《북조선난민구원기금》이라는 반공화국모략단체가 조중국경지역에서 우리 공화국 공민 20여명을 비밀리에 일본으로 끌어갔다.

력사적 사실은 일본은 랍치문제에서 언제나 우리에게 가해자로 되였으며 우리는 피해자로 되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간과할수 없는 것은 현 일본집권세력이 20세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랍치범죄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에 붙이고 이미 해결된 랍치문제를 또다시 들고나오고있는 것이다.
수상 후꾸다가 미국 CNN TV방송과의 회견에서 우리가《일본의 재정적지원을 받으려면 <랍치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력설한 것이나 외상이 기자회견에서 《<랍치문제>를 착실히 해결》해나가는것이 현 내각의 방침이라고 한것이 그 일단이다.
초당파의원들로 구성된《랍치의원련맹》은 지금이 조선에 압력을 가하는것이 제일 필요할 때라고 하면서 다른 나라들에 《협력》을 구걸하고 있으며 극우익보수세력은《랍치문제》에서 진전이 없는한《북조선을 <테로지원국>명단에서 삭제하는 것을 보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현 집권자와 이전 정치인들이《일, 미, 남조선련대강화》로 핵문제와 함께《랍치문제》를 일괄 타결하겠다고 하면서《동맹국》들을 찾아다니였다.
일본당국이 기를 쓰고 그 누구의 《랍치문제》를 떠드는 것은 수백년동안 계속된 저들의 랍치범죄를 가리우려는 어리석은 기도이다.

정권은 교체되였으나 현 일본당국이 선임《랍치내각》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그들도 여전히 우리 인민에게 가한 랍치범죄에 대해 배상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랍치문제》에 명줄을 걸고있는한 조일관계개선에서 진전이란 있을수 없다.
일본반동들이《위안부》범죄의 강제성을 부정하고《랍치문제》를 떠드는 리면에는 간악한 가해자가 억울한《피해자》로 둔갑하여 자기의 죄과를 덮어버리고 과거청산을 영영 회피하려는 어두운 속심이 깔려있다.
일본군《위안부》범죄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다고 해도 절대로 지워버릴수 없는 반인륜적만행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씻는 것은 오늘 하나의 국제적 추세로 되고 있다. 지난날 잘못을 저지른 여러 나라가 과거청산을 하였거나 하고있다.
지금 공정한 국제사회여론은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가적배상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인권기구는 일본정부가《위안부》범죄의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보상하며 범죄와 관련한 모든 문서와 자료들을 공개하고 범죄자들을 철저히 처벌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국제로동기구전문가위원회도 여러 차례의 년차보고들에서《위안부》범죄를 국제법위반으로 규정하고 일본정부가 시급히 대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일본이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피해에 대해 배상하는 것이 그 무엇으로써도 회피할수 없는 국제법적 의무라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청산도 하지 않고 랍치국의 오명도 벗지 못한 일본이《랍치문제》를 떠들어대는 것은 철면피한들만이 할수 있는 참으로 가소로운 행동이다.

* * *

일본이 우리 인민에게 력사적으로 감행한 모든 랍치행위는 천추만대를 두고도 영원히 씻을수 없는 특대형범죄이다.
랍치국, 인권유린국의 오명은 일본의 국치이다.
이 국치를 씻지 않는 한 일본은 언제가도 력사와 인류 앞에 인륜도덕도 정의도 없는 파렴치한 나라로 남아있게 될것이다.
우리는 세계최대의 랍치국 일본이 조선인민에게 세기와 세대를 이어오며 저지른 범죄를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반드시 결산하고야 말 것이다.

주체97(2008)년 1월 31일
평 양



민족화해협의회 백서

지금 남조선에서는 과거 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범죄의 진상들이 련속 드러나 커다란 사회적분노와 규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조선인민들은 장장 수십년 동안 중세기적인 파쑈통치 밑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이하의 모진 박해와 고초를 받아왔다. 그 피에 사무친 원한과 절규는 오늘도 남녘땅에 차넘치고 있다.
신성한 인권이 파쑈깡패들의《정권》강탈과 권력유지의 희생물로 되어온 것은 이미 공개된《비밀》이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남조선 파쑈도당이 력대적으로 저지른 인권유린행위의 진상을 단죄하고 몸서리치는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이 백서를 발표한다.

《용공》조작에 의한 인권탄압

남조선의 력대 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무엇보다《용공》조작으로 통일애국인사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잔악무도하게 탄압하고 학살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북과 남으로 갈라져 살고있는 것은 참을수 없는 비극이다. 더우기 분렬을 구실로 파쑈통치를 정당화하면서 인권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것은 민족의 비극우에 비극을 덧쌓는 행위로 된다.
북과 남에 비록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적대와 대결의 근거로는 되지 않으며 더우기 인권탄압의 구실로는 절대로 될수 없다.

그러나 남조선의 력대 위정자들은 우리 민족이 겪는 분렬의 고통을 파쑈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였다. 그것이 바로 《용공》조작이다.
남조선에서《용공》조작의 피비린 막을 올린것은 리승만《정권》때부터였다.
파쑈통치배들은 미국의 배후조종 밑에 정치적 적수들을《용공》의 모자를 씌워 제거하기 위해 여러모로 책동하던 끝에 1947년 7월에 인민당 당수 려운형을, 1949년 6월에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 것을 비롯하여 애국적 인사들에 대한 테로를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친미분렬《정권》을 조작한 후에는 그를《법》적으로 뒤받침하기 위해 1948년 12월 희세의 파쑈악법인《보안법》을 만들어냈으며 이 악법을 휘둘러 친미사대매국과 독재통치에 장애로 되는 세력들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은 바로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파쑈도당은 1948년 9월 남조선《국회》에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통과된데 이어 반민족행위자, 친일파들에 대한 조사장악을 목적으로 하는《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자 이 위원회의 활동을 가로막기 위해 1949년 2월 이른바《반민법》개정안이라는 것을 내들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한결같은 반대에 부딪쳐《국회》에서 페기 처리되고 말았다. 이에 당황한 파쑈도당은 1949년 5월《보안법》페지를 주장하며 《특별조사위원회》활동에 참가하였던《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이들에게 《남로당》관계자들과 만나 《남로당프락치》를 결성하고 외국군대철수와 남북통일협상,남북정당단체대표 정치회의구성 등을 주장하였다는《혐의》를 들씌워 중형을 선고하였으며《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중단시키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리승만 파쑈도당은 1950년대 말 남조선에서 평화통일기운이 높아가고 정치적위기가 심화되여 저들의 영구집권음모가 파탄되게 되자 《진보당사건》을 조작하였다.
당시 평화통일을 주장한 진보당과 당수 조봉암에 대한 대중적지지가 높아가는데 커다란 불안을 느낀 파쑈도당은 1957년 진보당기관지《중앙정치》10월호에《평화통일에로의 길》이 발표된 것을 기화로《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맡길수 없다》고 하면서 이 당 핵심성원들을《보안법》위반에 걸어 기소하였으며 1959년 7월에는 조봉암을《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리승만역도가《정권》의 자리에서 쫓겨난 후 미국의 각본에 따라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강탈한 박정희 군사파쑈도당은 식민지통치와 독재《정권》유지를 위해《용공》조작에 더욱 매달렸다.
이 군사깡패들은《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비롯한 진보적 인사들을《북을 찬양, 고무, 동조》하고 《용공사상》을 부식하였다는 구실로 체포하고 사형과 중형에 처하였으며 련이어《사회당사건》,《혁신당사건》,《사회대중당사건》,《민주청년동맹사건》 등을 날조하여 불과 몇 달 사이에 23개의 정당과 238개의 사회단체를 강제해산시키고 28만 3,000여명의 각계층 인민들을 체포, 투옥, 처형하였다.
널리 알려진《인민혁명당사건》과《전국민주청년학생총련맹사건》(민청학련사건)은《유신》독재시기의 대표적인 반공모략사건들이다.

1964년 3월 서울대학교에서부터 시작된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한일회담》반대투쟁이 삽시에 남조선 전지역에 파급되여 6.3인민봉기로 확대되자 이에 극도로 당황망조한 군사파쑈도당은 그해 8월 그 무슨《북의 지령》이니,《국가변란 획책》이니 하면서《인민혁명당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하고 사건관련자들에 대한 일대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그후 남조선에서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유신체제》철페를 요구하는 대중투쟁이 더욱 고조되는데 따라 19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이라는 것을 또다시 조작하여 이 조직이《민청학련》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혐의》를 들씌워 사건관련자들을《보안법》,《반공법》,《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 《죄》목으로 극형과 중형에 처하였으며 도례종을 비롯한 8명은 사형판결을 내린후 몇시간안에 전격집행하는 포악무도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용공》조작의 마수는 해외동포들에게도 뻗쳤다. 1967년 7월 도이췰란드에 가있는 류학생,예술인,지식인들이《동부도이췰란드주재 북대사관과의 련계》밑에《적화공작》을 진행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지하리념조직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지도하면서 학생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날조하여 작곡가 윤이상 등 도이췰란드지역 교포들과 남조선의 진보적지식인 194명을《간첩》으로 몰아 랍치구속하고 사형을 비롯한 중형을 들씌운것은 그 한 실례이다.
군사파쑈도당은《유신정변》후《용공》조작놀음에 더욱 환장이 되여 1974년 한해 동안에만도《울릉도간첩단사건》,《서해사건》,《추자도사건》,《동해사건》 등 10여건의《용공사건》들을 날조하였으며 1979년 9월에는《통일혁명당재건사건》을, 10월에는《남민전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 대부분을 사형과 무기징역 등 극형과 중형에 처하였다.

《유신》파쑈독재자의 비참한 종말과 더불어 총칼부림으로《정권》의 자리에 올라앉은 전두환, 로태우 군사파쑈도당은 파쑈의 칼을 더욱 사납게 휘둘러댔다. 그들이 집권한 몇 년 사이에만도《광민사사건》,《부림사건》,《제2광주사태획책사건》,《통일혁명당고려대학교사건》,《남파부부간첩사건》,《사로맹사건》등 수많은 각종《용공사건》들이 조작되여 숱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김영삼파쑈도당은《문민》의 간판 밑에 군사깡패들을 찜쪄먹을 정도로《용공》조작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남한조선로동당사건》이라는 어마어마한《간첩단사건》을 날조하여 그것을 디디고 《정권》의 자리에 들어앉은 문민파쑈도당은 1993년에는《김삼석, 김은주간첩단사건》을, 1994년에는《리화춘간첩사건》을, 1995년에는《박충렬간첩사건》,《박창희교수간첩사건》을, 1996년에는《김동식간첩사건》,《신규영간첩사건》등을 날조하여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 모든 《용공사건》들이 어떻게 조작된것인가 하는것은 1994년 10월 《한겨레영화제작소》의 한 직원이 도이췰란드 베를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자기가 1992년부터 《안기부》의 밀정으로 매수되여 활동해왔으며 《안기부》의 지령을 받고 《간첩단사건》조작에 직접 가담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안기부》요원들과의 대화내용이 들어있는 록화테프와 사건조작, 밀정공작실태 등에 대한 자료들을 공개한데서도 잘 나타나고있다.

력대 파쑈통치배들은 이러한 모략적 방법으로 수많은《용공사건》들을 조작하였다.
지난해 남조선의 과거사진상규명단체들이 각계로부터 재조사요구로 접수한《용공사건》만 해도 2,80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인민혁명당사건》,《민청학련사건》,《동부베를린사건》 등 수십건은 진상해명이 이루어져 완전한 조작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관련자들이《무죄》로 인정되였다.
실로 분렬의 비극을 악용하여《용공》조작으로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한 남조선파쑈도당의 극악무도한 범죄는 천추를 두고 온 민족의 저주와 규탄을 받을것이다.

초보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적자유의 말살

남조선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다음으로 가장 야만적인 철권통치로 남조선인민들의 초보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적 자유마저 깡그리 말살한 것이다.
말하고 듣고 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초보적인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다. 그러나 력대 파쑈도당은 남조선인민들이 자기의 의사에 따라 말하고 보고 듣는 권리마저 여지없이 유린하였다.
그들은 정치적 야욕을 위해 정치인으로부터 학자,언론인,경제인,종교인,청년학생,시민,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일거일동을 감시통제하면서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마구 잡아가두고 박해하였으며 고문하고 학살하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은 입이 있어도 말할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들을수 없는 인간생지옥으로 되었다.

남조선에서의 인권유린행위는 어느 한 시기나 어느 한두 사건에 국한된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력대파쑈 폭군들이 대물림을 해오면서《법》화하고 정책》화하여 감행하여온 것이라는 점에서 류례 없는 것이다.
리승만역도가《보안법》을 조작하고 휘둘러 인권을 가혹하게 말살하였다면 박정희군사깡패는 이 악법을 보다 파쑈적으로 개악하고 전문살인폭압기구들을 만들어내여 남조선을 최악의 인권불모지 민주의 페허지대로 전변시켰다.
특히 군사파쑈도당은 미국의 비호밑에《정권》을 가로채자마자 불과 10개월동안에《반공법》과《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한 무려 2,000여건의 각종 악법들을 무더기로 조작하고《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각종 파쑈폭압기구들을 설치하여 온 남조선 땅을《정보망》으로 뒤덮고 인민들의 눈과 귀,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또한 일체 정당, 사회단체의 정치활동과《옥내외 집회》를 엄금하며 언론, 출판, 보도의《사전검열》등을 내용으로 하는《포고》제1호, 제4호, 제11호를 련이어 발표하고 그것을 휘둘러 한달도 되나마나한 기간에 260여개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76개의 일간신문, 305개의 언론사,453개의 주간지를 포함한 수많은 출판, 보도기관들을 강제 페간시켰다. 1964년 8월에는《언론륜리위원회법》을 조작하여 1966년까지 불과 2년동안에 659개의 언론출판기관들을 강제로 페쇄시켰다.

파쑈도당의 반민주적 인권탄압만행은 1970년대에 들어와 더욱 극심해졌다. 《유신》독재자는 1972년 10월 《유신체제수립에 관한 특별선언》과 그해 12월에 조작한 《유신헌법》을 통하여 형식상 존재하던 《3권분립원칙》마저 무시하고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립법권》까지 모두 거머쥐였으며 《긴급조치》 1호,2호,4호,6호 등 폭압령을 련달아 내리고 《사회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파쑈악법들을 새로 조작하여 폭압에 한층 미쳐날뛰였다.
파쑈교형리들은 1973년 10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최종길이 학원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의 투쟁을 지지해나섰다고 하여 그를 《중앙정보부》에 끌고가 갖은 고문을 다 들이대여 신체를 만신창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감옥의 높은 층에서 내려뜨려 학살하고는 《투신자살》한 것처럼 꾸미였으며 재일교포 류학생 서승형제를 잡아가두고 중세기적인 살인고문을 들이대다 못해 서승을 불고문으로 얼굴도 알아볼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1974년 2월에는 연세대학교 학생 100여명을《긴급조치》위반에 걸어 강제 련행하여 중형을 들씌우거나 전기고문으로 살해하였으며 같은 해 4월《긴급조치4호》의 공포를 반대하여 시위투쟁에 나선 리화녀자대학교의 25살난 녀학생을 고문실로 끌고가 발가벗기고 고문을 가하여 실신상태에 빠뜨린후 그를 집단릉욕한 다음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군사깡패들은 저들의 파쑈통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가 팔순에 난 전직《대통령》이건, 야당 《대통령》후보이건, 심복부하이건 관계없이 처형과 테로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 《대통령》 윤보선이 자주와 민주를 지향하는 청년학생들과 종교인들을 두둔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여 박해를 가하던 끝에 1974년 7월《군사재판》에 끌어내여 징역 15년의 형벌을 들씌운 사실과 《대통령선거》후보로 나섰던 야당인사 김대중을 해외에서 랍치하여 자루속에 걷어넣고 연덩어리까지 매달아 바다에 처넣어 죽이려하다가 들통이 나게 되자 서울의 그의 집에 내동댕이친《김대중랍치사건》,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미국에 망명하여 《유신체제》를 비난하였다고 하여 그를 랍치하여 처참하게 살해한 사건 등은 세상에 너무도 잘 알려져있다.

전두환역도는 인권말살행위에서 선임자들을 훨씬 릉가하였다.
군사파쑈도당은 《12.12숙군쿠데타》이후 남조선에서 신군부의 등장을 반대하여 반독재민주화투쟁이 세차게 벌어지자 1980년 5월 주요 도시를 비롯한 전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으며 대학과 언론기관, 지어《국회의사당》과 정당본부들에까지《계엄군》을 투입하여 남조선의 애국적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 야당정객들과 재야인사들을 무리로 잡아가두고 처형하였다. 당시 한 재야인사는 《내란음모죄》에 걸려 지하독감방에서 2개월동안이나 발가벗긴채 야수적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강요당하였다.
특히 새로운 파쑈독재권력기구인《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내오고 《정치풍토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개정안》,《정당법》 등 무려 100여가지의 파쑈악법들을 조작하거나 개악하여 정당, 단체들을 강제로 페쇄하고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언론사들을 통페합하는 등으로 집회,시위,결사 등 초보적인 정치활동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권리마저 철저히 말살하였다.
1986년 한해 동안에만도 전두환일당에 의하여 각종 악법에 걸려 무고하게 감옥에 끌려간 사람은 무려 78만 3,000여명이나 되며 강제해산된 재야단체는 40여개에 이른다.

한편 전두환도당은 《전국민주학생련맹사건》,《전국민주로동자련맹사건》,《광민사사건》 등 모략사건들을 조작하여 애국적인 청년학생들과 로동자, 언론인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고 야수적으로 처형하였다. 경상남도 창원에《삼청교육대》라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놓고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청장년들을 끌어다《순화교육》을 시킨다는 구실밑에 고역에 내몰고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학대를 가하여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1986년 10월《반공국시》를 반대하고 《통일국시》를 주장한 《신민당》출신 《국회》의원 유성환에 대한 탄압사건,1987년 1월 서울대학교 박종철학생을 고문으로 숨지게 한 사건,1987년 12월 경찰과 《백골단》 500여명을 내몰아 구로구청 앞에서 13대 《대통령선거》를 반대하는 로동자들을 비롯한 각계층 시민들을 각목과 쇠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지하실에 몰아넣어 최루탄가스로 질식시켜 죽인 사건 등도 전두환파쑈도당에 의해 빚어진 반인권적참극의 일단이다.

로태우도당 역시 1989년 4월 《안기부》,《보안사》,검찰, 경찰로 이른바《공안합동수사본부》를 조작하고 류례없는 《공안정국》을 조성하여 18개의 재야단체를 포함한 220여개의 애국적인 단체들을 탄압하고 수십명의 애국인사들과 신부 등을 잡아가두거나 《출국금지령》을 내리는 등으로 박해하였으며 그해 5월에는 광주의 조선대학교 교지 《민주조선》창간호에 공화국을 소개하는 론문을 발표한 리철규학생을 《용공분자》로 몰아 지명수배하던 끝에 그를 무참히 학살하여 수원지에 처넣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로태우일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을 겨냥하여 1990년 10월과 1991년 6월 이른바《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5만명의 경찰과 《안기부》,검찰은 물론 남조선군 정규병력과 460여만명의 예비군까지 동원하여 남조선전역에서 검문검색과 수사소동을 벌려놓고 광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한편《중앙정보부》를 보다 파쑈적으로 개편하고 권능을 대폭 강화한《안기부》도 부족하여《보안사령부》까지 끌어들여 미행, 도청, 우편물검열 등을 가혹하게 실시하였으며《사찰기록부》를 만들어놓고 정계, 언론계, 로동계 등 각계 인사들에 대한 정치사찰을 집중적으로 벌렸다.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령부》로 바꾼 후에는 재야인사들과 운동권학생들을《위험인물》,《요시찰대상자》로 등록하여놓고 그들의 동태와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더욱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군사파쑈《정권》의 피줄을 그대로 이어받은 김영삼역도 또한 인권탄압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하는것은 그가《문민파쑈》로 불리운 사실 한가지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역도가 집권한후 최루탄소비량은 1993년의 3만여발로부터 1996년에는 15만발이상으로 늘어났으며 다련발최루탄소비량은 1996년에 근 1,000상자에 이르렀다. 최루탄사용에 쓰인 돈은 1993년의 5억 1,100만원으로부터 1996년에는 그의 5배가 넘는 근 30억원으로 불어났다.
《문민》파쑈시기 남조선의 감옥들도 최고로 차고넘쳐나 당시 관계당국이 발표한 공식자료에 의하더라도 총 수용능력 5만 3,000명보다 무려 1만명이나 더 많은 6만 3,000명이 교도소와 구치소에 갇혀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였다.
오죽했으면 외신들까지 극악한 인권실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남조선은 땅덩어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고 평하였겠는가.
참으로 력대파쑈통치배들의 인권유린만행은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수 없다.

치떨리는 집단대학살만행

남조선파쑈도당이 저지른 반인권죄악은 또한 무고한 인민들을 상대로 집단적인 대학살만행을 무차별적으로 감행한 것이다.
집단대학살만행은 반인권범죄가운데서도 특별히 엄중시되는 대범죄이다. 력사에는 침략자들이 다른 나라를 강점하고 강점지 민족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감행한 기록은 있어도 남조선의 력대 파쑈통치배들처럼 자기 인민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대학살만행을 감행한 그런 야만적인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파쑈도당이 외세와 한짝이 되여 해방직후부터 감행한 인민대학살만행은 그 하나하나가 가장 수치스러운 대범죄의 기록으로 되고있다.
1946년 10월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이《미군정반대》,《인민위원회 활동보장》,《민주개혁실시》 등의 구호를 웨치며 대중적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을 때 미제침략군과 함께 중무장한 병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2만 5,000여명을 야수적으로 살륙하고 1만 5,000여명을 잡아가둔 《10월인민항쟁참가자들에 대한 대학살사건》, 1948년초 단독《정부》수립반대 등을 요구하여 일떠선 각계층 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여 8,500여명을 검거투옥한《2.7구국투쟁참가자들에 대한 학살사건》,1948년 4월 미군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방대한 군병력을 동원하여 《소탕전》을 벌려 제주도 전지역을 초토화하고 제주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려 7만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제주도인민들의 4.3봉기참가자들에 대한 대학살사건》 그리고 이해 10월 려수군인폭동에 떨쳐나선 각계층 주민들과 군인들을 무참히 살륙한 《려수대학살사건》 등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인민들에 대한 집단대학살사건은 특히 전쟁시기에 집중적으로 감행되였다.
파쑈도당은《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탄압할 목적으로 《보도련맹사건》을 조작하여 재판도 없이 무려 1만 7,700여명이나 학살하였으며 그 가족들까지 《련좌죄》에 묶어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전쟁시기에 있은 세칭 《량민학살사건》은 파쑈도당의 살인마적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집단대학살만행이다.
그들은 저들의 범죄적인 집단대학살만행을 가리우기 위해 살인부대를《인민군대》로 가장시키는 비렬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1950년 7월~10월 라주경찰서가 이른바《라주부대》를 조직한 다음 그들에게 《인민군대》복장을 입히고 전라남도 남부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무고한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총살하게 한것은 그 비근한 실례이다.
1950년말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남조선군 1개 대대가 《유격대와 내통했다》는 구실밑에 북상면일대에서 1,200여호의 집을 불사르고 그곳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였으며 다음해 2월에는 신원면 대현리,와룡리를 비롯한 6개 리에서 700여호의 집을 불사르고 100여명의 청장년들을 죽였으며 그후 부락에 남아있던 늙은이와 부녀자, 어린이 등 500여명을 박산골짜기에 끌고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죽였다. 경상남도 함양, 산청, 령산, 진영, 전라북도 전주 등에서도 이러한 끔찍한 학살만행이 감행되였다.
파쑈도당의 집단적인 인민대학살만행은 전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파쑈도당은 새 정치, 새 제도, 새 생활을 요구하여 일떠선 인민들을 전시에 군사작전을 하듯 중무장한 대병력을 내몰아 마구 짓뭉개버렸으며 민주를 갈망하여 투쟁의 광장에 떨쳐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땅크와 장갑차, 비행대와 미싸일까지 동원하고 《계엄군》에 환각제까지 먹여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960년 4월인민봉기 때만도 200여명이 학살되고 부상자는 1,280여명에 달하였다.
1980년 5월의 광주학살사건은 파쑈도당의 야만적인 인민대학살만행을 집중적으로 고발하는 특대형 반인류적 범죄이다.
파쑈도당은 민주를 목터지게 웨치는 시민들에게 기관총과 포사격을 들이대여 무리로 죽이다 못해 땅크를 내몰아 깔아죽이고 팔순로인을 총탁판으로 내리쳐 죽이였는가 하면 녀대학생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만삭이된 녀성에게 달려들어 대검으로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 죽였다.
군사파쑈깡패들의 몸서리치는 살륙만행에 의하여 광주 한개 도시에서만도 수천명이 무참히 학살되고 1만 4,0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목포, 화순, 라주, 려수, 순천 등지에서도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평화적 주민들을 상대로 이처럼 대살륙전을 벌려 온 도시, 온 남조선을 피의 바다에 잠근 류혈적 만행은 동서고금 그 어느 폭군의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것이다.
실로 력대 남조선 파쑈도당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권범죄에 대해 렬거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남조선에서 과거사재조사, 재평가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억울한 죽음과 고초를 당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그 원한을 어떻게 다 풀수 있겠는가.
남조선에서 반인권범죄는 결코 지나간 일이 아니다. 과거 인권탄압에 리용되였던 《보안법》과 같은 파쑈악법이 오늘까지 존재하여 독을 쓰고 있고 파쑈도당의 후예들과 잔당들도 아직 살아남아 옛 세상을 복구해보려고 획책하고있다.
반인권범죄의 직접적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은 저들족속들이 저지른 죄행에 대해 사죄한마디 하지 않고 있을 뿐아니라 뻔뻔스럽게도 감히 다음 기《정권》을 넘겨다보면서《인권》이요,《국민》이요 하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 대한 모독이고 력사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다.《한나라당》은 과거 파쑈도당의 후예들로서 반민족,반인권 범죄집단이다.
《한나라당》안팎에는 악명 높은 《유신》독재자의 딸,《5,6공》시절의 파쑈관료배, 법관, 교형리, 고문기술자, 학살범 등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들은 6.15세력에 대한 적의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피비린내나는 숙청흉계를 꾸미고 있으며《살생부》까지 작성해놓고 복수의 칼을 갈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의 자주적 존엄과 통일에 대한 지향을 부정하고 동족을 알 권리,동족과 악수할 권리마저 빼앗아보려고 발광하고 있는 것도《한나라당》이고 현대판 《용공》조작의 능수도 《한나라당》이며 외세와 야합하여 남조선인민들의 생존권을 유린하다 못해 성폭행과 성추행으로 녀성들의 인권을 밑바닥까지 처참하게 짓밟는 것도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다.
이런 자들이 앞으로 집권하게 되면 남조선에 또 어떤 피비린내 나는 광풍이 불어치고 남조선인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피로 얼룩진《한나라당》은 입이 열개라도 《인권》에 대해 말할 체면이 없으며 애당초 더이상 존재해서도 안될 화근거리이다.
남조선각계층은 과거사청산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야 하며 반인권범죄의 소굴인《한나라당》을 력사의 심판대에 기어이 올려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보안법》을 비롯한 파쑈통치의 낡은 잔재를 하루빨리 쓸어버림으로써 다시는 암흑의 과거사가 되풀이되지 말게 하여야 할것이다.

주체96(2007)년 5월 2일
평 양



《한나라당》의 9년 죄악을 고발 한다

남조선에서《한나라당》이 조작된 때로부터 9년 세월이 흘렀다.
자주와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의해 파멸의 위기에 직면한《신한국당》은 1997년 11월 21일 당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꾸는 정치사기극을 벌렸다.
그러나 사대매국당, 파쑈독재당, 반통일당으로서의 체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독초의 뿌리에서 독초가 돋아나기 마련이라고 《한나라당》은 지난 9년간 자기 조상들의 전철을 이어 나라와 민족앞에 죄악만을 덧쌓아왔다.
숭미사대와 외세굴종의식이 뼈속까지 들어찬 《한나라당》족속들은 외세를 할애비처럼 여기면서 나라와 민족도 서슴없이 배반하는 민족반역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여왔다.

《한나라당》의 상층에 들어앉은 자들만 보더라도 모두가 숭미광신자들이고 친미사대를 체질화한 매국노들이다. 《한나라당》의 이전《총재》였던 리회창은 미국에 찾아가 상전들 앞에서《대통령》권좌를 차지하게 해달라고 구걸하면서《통일후에도 미군의 남조선주둔이 필요》하다고 떠들다 못해 자기가 《집권》하면《북의 병력후퇴배치, 재래식무기감축》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망발까지 늘어놓았다.

이전《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도 누구에게 짝지지 않을 친미주구이다. 그는《한나라당 대표》직을 차지하자마자 서울주재 미국대사부터 찾아가 부임인사를 하고 상전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적극 합세해 나섰다. 뿐만 아니라 2002년 6월 미군의 녀중학생들에 대한 살인만행을 계기로 각계에서 미군철수의 목소리가 높아가자 미군의 행위에 대해《눈감고 참아야 한다》느니 뭐니하고 돌아쳤으며 미국과의 동맹이 조선반도《평화의 버팀목》과《성장에 중요한 기반》이였다는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면서 미군의 남조선강점사를 극구 찬양하는 추태까지 부렸다.

지금까지 극우보수정당의 요직을 맡아온 현《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을 비롯한 고위당직자들도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인 오늘날에 구시대적인 《〈한〉미동맹강화》와 《〈한〉미공조》나발을 불어대고 있는 철저한 숭미사대 분자들이다.
미국을 《우방》, 《은인》이라고 하는 매국노들만이 들어찬 《한나라당》이기에 하는 짓 역시 사대매국행위뿐이다. 이들은 조선전쟁도발의 원흉이며 극악한 특급범죄자인 맥아더동상철거투쟁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아나섰을 뿐만아니라 대구에 미제살인광 워커의 동상까지 세우려고 발광하고 있다.

또한 6.15공동선언발표를 계기로 힘있게 벌어지는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에 대해서도 《반미감정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느니《〈한〉미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느니 하면서《미국을 노엽히지 말아야 한다》,《미국을 섭섭하게 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떠들어대며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해나섰다.

제정신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없이 숭미사대에 환장이 된《한나라당》역적들은 지어 남조선야구팀이 미국팀을 이긴 것에 대해서까지《매우 우려되는 일》이라느니《미국을 자극하였다》느니 하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지어 《한나라당》정책위원회 의장인 리방호라는 자는《세계 모든 국민들은 모국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를 가지고 있다》는 망발까지도 서슴지 않아 항의와 규탄이 비발치듯하게 하였다. 도대체 《한나라당》역적들의 국적이 어딘지 묻지 않을수 없다.

숭미사대는 친미굴종을 낳기 마련이다.
2001년 미국에서 부쉬정권이 출현하자《한나라당》패거리들은 구세주를 만난듯이 환성을 올리면서 《부쉬행정부의 주의주장과 정책이〈한나라당〉과 똑같다》고 환성을 지르면서 친미사냥개로 되여 미쳐날뛰였다.
《당대표》라는 자까지 직접 나서서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반미초불시위를《미국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모독하며 반미투쟁말살에 날뛰였고 각계층의 미군철수운동에는《주〈한〉미군철수반대모임》을 조작하여 맞서고 《국회》사상 류례없는 《미군철수반대결의안》조작에 열을 올리였다.

친미사대를 타고난 체질로 한《한나라당》은 미국이 반공화국 핵나발을 불면 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외우고 미국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라크파병은 물론 땅이면 땅, 돈이면 돈 가리지 않고 섬겨바치며 극성을 부리였다. 지금 미국이 남조선에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북침전쟁광기를 부리고 군사적대결과 긴장을 고조시키고있는것은《한나라당》의 반민족적 책동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 9년간 남조선사회의 진보와 개혁도 각방으로 막아나섰다.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밝혀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아래 온 겨레가 자주통일운동에 적극 떨쳐나서고 이 거창한 민족사적흐름에 합세하여 남조선에서도 사회정치적 개혁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였다.
사회각계에서《보안법》페지의 목소리가 비발치듯 울려나오는 가운데 여당인《열린우리당》도 《보안법》페지를 당론으로 결정하였다. 악법페지는 더는 막을수 없는 대세로 되였다. 그러나 극악한 반민족, 반민주집단인《한나라당》은《보안법》에 운명을 걸고 이 파쑈악법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발악적 책동을 다하였다.

《보안법》을 수단으로 하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고 파쑈독재 시대를 재현시키며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자는 것이《한나라당》의 속심이다.
《한나라당》패거리들은 남조선사회각계에서《보안법》페지여론이 높아지자 《현시점에서 〈보안법〉은 단 한줄도 고칠수 없다》,《〈보안법〉페지요구는 친북세력이 〈한국〉을 간첩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헛나발을 불어대면서《〈보안법〉수호에 총매진하겠다》고 광기를 부리였다.

《한나라당》의 극우보수세력들은 남조선의 《인민위원회》가 《보안법》페지권고안을《국회》와 《법무부》에 제출하자 이를 월권행위로 몰아대고 정치계의 페지움직임에 대해서는 《제2의 탄핵감》이라느니 《안보현실을 망각한 것》이라느니 하면서 이에 정면도전해나섰다.
지어 《한나라당 대표》라는 자는《〈한나라당〉의 운명과〈보안법〉은 하나》,《〈보안법〉이 페지되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법석 고아댔다.

지금 《한나라당》의 악질보수분자들은《보안법》이 저들의《존재리유》라고 하면서 악법유지에 더욱더 기를 쓰고 매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보안법》유지책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통일운동단체들과 통일인사들의 애국적인 활동을 트집잡아 《보안법》의 칼로 란도질하며 공안세력을 부추겨 탄압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한총련》의 핵심성원들을 비롯한 통일애국인사들이 체포되여 감옥에 끌려가게 되였다.
《한나라당》은 남조선에서 시대적요구와 민심이 어린 《개혁법안》들도 악랄하게 헐뜯으면서 그 실현을 한사코 반대해나섰다.

남조선에서 급속히 추진되는 사회정치적 개혁의 움직임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한나라당》은 그 무슨《정체성》과《근본》이 흔들린다느니, 《안보불안》이 조성된다느니 하고 아우성을 치면서 《4대개혁법안》을 비롯한 각 분야의 《개혁법안》들이 추진되는것을 악랄하게 가로막아나섰다. 그러던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추진해오던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한나라당》패거리들은 이 《법안》이 《반미, 친북교육》을 하자는것이라고 했는가 하면 《친북좌경세력》을 침투시켜 사립학교들을 《혁명투쟁집단》으로 만들기 위한 《사회주의빨갱이법안》이라고 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법안》의 무효화를 떠들며 《국회》업무도 다 집어치우고 지방들을 싸다니면서 《장외투쟁》을 련일 벌려 남조선정국을 혼란과 파국에로 몰아갔다.

《한나라당》은 《국회》를 권력야욕과 반역행위의 거점으로 삼고 깡패짓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97년《대통령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은 《국회》를 장악하여 《정권》을 빼앗기 위해 집권여당시기 비법적으로 가로챈 《정치자금》으로 여야《의원》들을 매수하여 과반수의석을 차지하였으며 《국회》구성을 40여일 간이나 지연시키면서 《국회의장》직을 비롯한 《국회기구》의 요직을 강탈하였다.

《국회》를 장악한《한나라당》은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총리임명동의안》처리를 무려 8개월이나 끌어《행정공백》상태를 조성하였으며 눈에 거슬리는《장관》들에 대해서는 《국민의 정부》시기에만도 12차례의《해임안》을 제출하여《국회작두날》로 사정없이 목을 떼버렸다.
《국회》를 리용한 《한나라당》의 독선과 전횡은《참여정부》첫 시기에 더욱 광기를 띠였다. 《한나라당》패들은《국회》거수기를 발동하여 4차례의 각종《특검법안》을 통과시켜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것을 비롯하여 16대《국회》전기간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강행소집한 림시《국회》는 8회,《국회》중단은 10여회,《법안날치기통과》와 검찰조사에서 자기 족속들을 빼돌리기 위한 《방탄국회》소집은 7회에 달한다.
《국회》를 장악하고 갖은 전횡과 독선을 부리는《한나라당》의 횡포는 최근의 사실이 보여주는것처럼 17대《국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9년간 민족의 통일지향과 요구를 부정하고 동족대결과 6.15말살 등 반통일적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여왔다. 《한나라당》의 반통일적책동가운데서도 가장 큰 죄악은 6.15공동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그 리행을 한사코 가로막아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7천만겨레는 물론 전 세계가 지지하는 6.15공동선언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의 지지표시도 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지어 공동선언을 전면부정하고 그것을 백지화하기 위해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그리고 공동선언의 리행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방해하여왔다. 《한나라당》은《남에서 지원한 돈이 북의 최신무기개발에 들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악담을 해댔는가 하면 북남협력교류에 대해《상호주의》와《투명성》이라는 차단봉을 내들고 반대해나섰다.
또한 북남사이의 대화와 접촉에 대해서는《북에 끌려다닌다》면서 뒤다리를 잡아당기고 경제협력에 대해서는《퍼주기》,《조공바치기》라고 비난하였으며 인도주의물자제공은 《군사전용가능성》이니 뭐니 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민족의 지맥과 혈맥을 잇는 철도와 도로련결사업도《남침통로개설》이니《북을 강화해주는 것》이니 하면서 반대해나섰다. 2002년 5월 금강산에서 제4차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 진행되였을 때에도 유독《한나라당》것들만은 이에 등을 돌려대고《금강산입산료》라는 것을 꾸며내여 북이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돈벌이에 리용》한다는 터무니없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한나라당》은 금강산관광문제에도 코를 들이밀고 그의 중단을 제창하다 못해《대북송금의혹》이라는 것을 조작해내고《특검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으며 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정상회담은 돈을 주고 산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고 나중에는 공동선언이 발표된 2000년 6월 15일을 《경진국치일》로 기록할 것이라는 참을수 없는 망발까지 거리낌 없이 내뱉았다. 최근에도《한나라당》은 미국의 반공화국제재책동에 적극 편승해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업지구건설의 중단을 요구하며 북남사이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파탄시키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족공조가 아니라 외세와의 《공조》를, 민족단합이 아니라 북남대결을 추구하였다. 이들은 사회의 전체 흐름이《반미, 친북쪽으로 가고있는 것이 정말 걱정스럽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동족대결을 고취해 나섰다.《한나라당》은《국방백서》의《주적》개념삭제문제에 대해서도 《주적개념삭제를 원하는 사람들은 북에 동조하는 세력임이 분명》하다며《색갈론》공세로 진보개혁세력의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지어 그들은 2003년 8.15를 계기로 그 무슨《국민대회》라는 것을 벌려놓고 극우보수분자들을 부추겨 우리의 신성한 국기를 찢고 불태우면서 존엄높은 우리의 체제까지 모독하는 란동을 부리였다. 《한나라당》의 6.15부정, 통일부정행위는 반공화국대결책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북대결광증이야말로 민족반역당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불치의 악성질환이다. 통일을 반대하고 동족대결을 추구하는 《한나라당》의 책동은 조상들의 행위를 훨씬 릉가하고 있다.

서해무장충돌사건때 있은 일이다.
2002년 6월에 발생한 북남해군함정들의 무장충돌사건은 미군의 지휘하에 감행된 남조선군부의 계획적인 군사적 도발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나라당》은 북의《무력도발》이니 뭐니하면서 사건의 책임이 북에 있는 것처럼 여론을 퍼뜨렸는가 하면《북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북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폭언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사태를 격화시켰다.

《한나라당》의 반공화국대결책동은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대한 절대적인 추종과 공조》로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였다. 《한나라당》은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의 압살책동에 적극 합세해서 미국이《군사적 선택》을 떠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웨쳐대고《제재》를 운운하면 앵무새처럼 받아외우며 돌격대노릇을 하고있다.
지어 이들은《평화적이고 외교적이라는 말을 가지고는 절대 해결이 안된다.》,《튼튼한 〈한〉미공조로 북을 압박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한나라당》의 반공화국대결광증은 미국의《인권소동》에 발벗고 적극 추종해나선데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듯 반북대결에 환장한《한나라당》의 무리들이기에 지금 공화국의 자위적전쟁억제력을《평화에 대한 도전》으로 걸고들며 《북위협론》과《안보불안론》을 떠들다 못해《국지전의 감수》, 《원산상륙》 등 호전적인 망언까지 늘어놓으며 반공화국대결소동을 미친듯이 벌리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한나라당》이야말로 지난 9년간 나라와 민족 앞에 씻을수 없는 죄악만을 저질러온 민족 반역당이다.

이 땅에 정당이 출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대소 정당들이 존재하여왔지만 남조선의 《한나라당》처럼 극악한 민족반역당은 없었다. 하기에 남조선인민들은《한나라당》을《딴나라당》,《무반당》,《갈구리당》,《차떼기당》,《분렬당》,《전쟁당》이라고 한결 같이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역체질을 가진《당 아닌 당》이 존재하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고 수치이다.
지금 《한나라당》패거리들은 재집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정권》강탈행위에 더욱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다.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금강산관광길이 끊기우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날아나는 것은 물론 북남관계가 대결에로 치닫고 전쟁의 불집이 터지게 될 것이다.

우리 겨레는 이 력사의 후퇴를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화근은 제때에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민족을 반역하고 조국강토에 불행만을 몰아오는 악의 무리《한나라당》을 매장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나가야 할 것이다.


반인권, 반민족, 반통일 범죄로 얼룩진《한나라당》의 추악한 과거죄악사를 고발한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고발장

지금 남조선에서는《한나라당》패거리들이 미국과 한짝이 되여 반공화국인권소동에 악랄하게 매달리는 한편 《정체성》이니,《시효》니 하면서 저들의 추악한 과거죄악사를 덮어버리고 재집권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미친듯이 날뛰고 있다.
나라와 민족 앞에 저지른 죄악으로 하여 이미 력사의 심판을 받고 매장되였어야 할《한나라당》이 뻔뻔스럽게도 머리를 쳐들고 감히 있지도 않는 그 누구의《인권》을 거들며 남조선의 진보개혁세력들을 공격하고 재집권까지 꿈꾸는 것은 정의와 량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한나라당》의 뿌리이며 원조상인 력대 파쑈독재《정권》들이 감행한 반인권, 반민족, 반통일범죄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낱낱이 폭로하며《한나라당》의 추악한 정체를 바로 알리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남조선을 민주와 인권의 페허지대로 만든 극악한 파쑈깡패

《한나라당》의 선조인 남조선의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죄악중의 죄악은 가장 야만적인 파쑈통치로 남조선을 민주와 인권의 참혹한 페허지대로, 인간생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남조선인민들은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지배가 시작된 첫날부터 자주적인간이 향유할수 있는 응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줄기차게 투쟁하여왔다. 그러나 그들의 참다운 지향과 념원은 미국과 그 주구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무참히 짓밟혔다.
1960년의 4월인민봉기는 그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미국은 식민지위기수습을 위해 박정희군사도당을 내몰아《5.16군사쿠데타》를 단행하게 하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열매를 하루아침에 가로채고 가장 악독한 파쑈통치를 실시하도록 막후 조종하였다.

박정희군사도당은 미국의 비호밑에 권력의 자리에 들어앉자마자 수많은 각종 악법들과 폭력기구들을 조작하여 잔인하고 무지막지한 폭압정치를 실시함으로써 남조선인민들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깡그리 말살하였다.
군사깡패들은《5.16군사쿠데타》이후 불과 10개월 동안에 《반공법》,《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비롯한 무려 2,000여건의 악법들을 무더기로 조작하였으며 악명 높은 파쑈폭압기구인《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각종《정보망》으로 온 남조선땅을 뒤덮어 인민들의 눈과 귀,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특히 1961년 7월에 조작된《반공법》은 군사독재를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조국통일을 바라는 애국적인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층 인민들을《용공》으로 몰아 탄압하는 전대미문의 반인권적인 악법이였다. 이 파쑈악법에 의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흘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한 군사도당은《일체 정당,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엄금》하며《옥내외 집회의 금지》와 《언론, 출판, 보도의 사전검열》 등을 내용으로 하는《포고》 제1호, 제4호, 제11호를 련이어 내고 그것을 휘둘러 한달도 되나마나한 기간에 260여개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강제로 해산하고 76개의 일간신문, 305개의 언론사, 453개의 주간지를 포함한 수많은 출판, 보도기관들을 강제 페간시켰다.
1964년 8월에는《언론륜리위원회법》을 조작하여 1966년까지 불과 2년 동안에 659개의 언론출판기관들을 강제로 페쇄시켰다.
파쑈깡패들은 학문과 사회활동의 자유, 학원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고 학생들이 운영하는 사회과학 써클은 물론 체육문화 써클 지어는 전통적인 교내행사까지도 강제로 해산시켰으며 진보적인 청년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고 불법 처형하였다.
이 무지한 행위에 의하여 1965년 8월이후 1년 동안에만 하여도 무려 1만 1,700여명의 진보적인 청년학생들이 퇴학 또는 정학처분을 받았으며 많은 교수들이《정치교수》라는 감투를 쓰고 교단에서 쫓겨났다.

군사도당의 중세기적인 총칼통치, 폭압 통치는 1972년《10월유신》을 계기로 극도에 이르렀다.
박정희역도는 1972년 10월에 발표한 유신체제》수립에 관한《특별선언》과 그해 12월에 조작한《유신헌법》을 통하여 형식상 존재하던 《3권분립 원칙》마저 무시하고 행정권은 물론 사법권, 립법권을 비롯하여 모든 권력을 한손에 거머쥐였으며《대통령》선출도 인민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가 아니라 저들의 거수기인《통일주체국민회의》를 발동하여 간접적으로 조작하도록 하고 임기연장과 류임한계 페지 등으로 종신《대통령》을 해먹을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남조선에서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유신》철페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이 격렬해지자 파쑈도당은《비상사태》우에《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고 1974년 한해에만도《긴급조치》 1호, 2호, 4호, 6호 등 폭압령을 련달아 내리였으며 《사회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파쑈악법들을 새로 조작하여 폭압에 더욱 미쳐날뛰였다.
《유신》도당은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을 탄압하고 정치적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무슨《간첩단사건》이니,《남조선적화공작단사건》이니 하는 수많은 모략극도 날조하였다.
1974년 4월에는 《민청학련사건》에《인민혁명당사건관련자》들까지 거들어 1,000여명의 애국적인사들과 청년학생들을 령장도 없이 잡아가두고 250여명을《군사법정》에 내세웠으며 8명을《사형판결》하고 18시간만에 전격집행하는 파쑈적 폭거를 감행하였다.
1967년에는《남조선적화공작단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하여 도이췰란드, 프랑스, 이딸리아 등지에서 학술연구와 학업에 종사하고있던 남조선출신 학계, 문화계 인사들과 류학생 329명을 체포하고 처형하여 세상 사람들을 격분시켰다.

파쑈도당은 지어 야당인사를 백주에 랍치하여 테로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망명중에 있던 김대중을 도꾜의 한복판에서 대낮에 불법랍치하여 공해상에서 살해하려 했던 1973년의 《김대중랍치사건》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군사깡패들은 저들의 독재통치에 방해가 되면 그가 팔순에 난《대통령》이건,《국회의원》이건, 심복부하이건 사정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전《대통령》 윤보선이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은 젊은 학생들과 그리스도교도들을 두둔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여 박해를 가하던 끝에 1974년 7월《군사재판》에 끌어내여 징역 15년의 형벌을 들씌운 사실, 1971년 10월 저들 족속인《민주공화당》소속《국회의원》들이 야당이 제출한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 투표하였다고 하여 그들에게 온갖 박해와 탄압을 가한 일명 《10.2항명파동》, 이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미국에 망명하여《유신체제》를 비난하였다고 하여 그를 랍치하여 처참하게 암살한 사실 등은 그것을 보여준다.

극악무도한 파쑈통치로 남조선을《폭압왕국》, 인권불모지, 인간생지옥으로 만든《유신》독재자는 1979년 10월 응당한 징벌을 받았으며 18년간에 걸치는 박정희군사독재《정권》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새로 등장한 전두환 군사파쑈도당에 의하여 또다시 자기의 모든 권리를 짓밟히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 밑에 1979년《12.12숙군쿠데타》를 감행한 전두환도당은 신군부의 등장을 반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민들의 투쟁이 고조되자 1980년 5월 17일 남조선전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실시하였으며 모든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시키고 대학과 언론기관, 지어《국회의사당》과 정당본부들에까지《계엄군》을 투입하여 민주세력과 애국 력량에 대한 전면적인 파쑈공세를 감행해나섰다.
군사깡패도당의 폭거에 의하여 민주를 갈망한 남조선의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 야당정객들과 재야인사들까지 무리로 체포, 처형되였다.

전두환일당은 재야인사 김대중을《내란음모죄》에 걸어 지하독감방에 가두어놓고 매일 15시간이상 2개월 동안 발가벗긴채 야수적 고문을 들이대여 허위자백까지 받아냈다.
전두환일당의 파쑈적 폭압은 광주봉기자들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대학살만행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살인악마 전두환역도는《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모조리 죽이라》는《특별명령》을 내리고 수만명의 공정부대와 기갑사단무력을 내몰아 시위자들을 마구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땅크와 장갑차로 깔아죽여 온 광주시가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전두환역도는 그 피바다우에 새로운 파쑈독재권력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내오고 권력을 틀어쥔 다음 현직《대통령》을 내쫓고 제가《대통령》벙거지를 빼앗아썼다.
그리고 《정치풍토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개정안》,《정당법》등 무려 100여 가지의 파쑈악법들을 조작개악하여 정당, 단체들을 강제로 페쇄하거나 그들의 활동을 가로막고 언론사들을 통페합시켰으며 집회, 시위, 결사 등 초보적인 정치활동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권리마저 철저히 말살하였다.
1986년 한해 동안에만도 전두환일당에 의하여 각종 악법에 걸려 무고하게 감옥에 끌려간 사람은 무려 78만 3,000여명이나 되며 강제해산된 재야단체는 40여개에 이른다.

한편 전두환 도당은《전국민주학생련맹사건》,《전국민주로동자련맹사건》,《광민사사건》 등 수많은 모략사건들을 조작하여 애국적인 청년학생들과 로동자, 언론인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고 야수적으로 처형하였다. 지어 경상남도 창원에는《삼청교육대》라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놓고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청장년들을 끌어다《순화교육》이라는 구실 밑에 고역에 내몰고 야수적인 고문과 비인간적학대를 가하여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1986년 10월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여야 한다고 주장한《신민당》출신《국회의원》유성환에 대한 탄압사건,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에 대한 고문치사사건 등 전두환도당의 살인만행을 실례들자면 끝이 없다.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전횡과 횡포는 로태우군사《정권》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태우 파쑈도당은 1989년 4월《안기부》,《보안사》,검찰, 경찰로 이른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조직하고 류례 없는《공안정국》을 조성하여 18개의 재야단체를 포함한 220여개의 애국적인 단체들에 대한 수색소동을 벌렸으며 수십명의 애국인사들과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가두거나 출국금지령》을 내려 박해하였다.
또한 1990년 4월 임금인상과 로동3권을 요구해나선 울산현대중공업 로동자들의 롱성현장에 1만 5,000여명의 전투경찰과 직승기, 초계경비정, 대형불도젤과 같은 중장비들을 출동시켜 지상과 해상, 공중으로부터 립체적인《진압작전》을 벌리고 단꺼번에 600여명의 로동자들을 체포련행하는 폭거를 감행하였다.

로태우일당은 특히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을 탄압할 목적에서 1990년 10월과 1991년 6월 이른바《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15만명의 경찰과《안기부》,검찰은 물론 남조선군 정규 병력과 460여 만명의 예비군까지 동원하여 남조선전역에서 매일같이 검문검색과 수사소동을 벌려놓고 지명수배자들과 운동권청년학생들에 대한 광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켰다.
한편으로는《중앙정보부》의 후신인《안기부》의 권능을 대폭 강화하여 미행, 도청, 우편물검열 등 온갖 불법수단을 다 동원하고《사찰기록부》라는 것까지 만들어 각 계층의 일거일동을 감시하였다.
1989년 남조선의 한 방송은《안기부》의 검은 명부에《감시대상자》로 고정등록된 사람이 5만 3,000여명에 달하였으며 540여개 단체의 핵심간부 1,400여명이 체계적으로《안기부》의 추적감시를 받았다고 폭로하였다.
《안기부》와 함께《보안사령부》도 당시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을 비롯하여 정계, 언론계, 로동계 등 사회각계 인사 1,300여명을 대상으로 정치사찰을 집중적으로 벌렸으며《기무사》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재야인사들과 운동권학생들을《위험인물》,《요시찰대상자》로 등록하여놓고 그들의 동태와 동향을 탐지하는 놀음을 계속하였다.

전두환, 로태우군사《정권》의 사생아인 김영삼《정권》역시《문민》의 간판 밑에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에 대한 파쑈적 탄압을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김영삼역도가 집권한 이후 인민탄압에 사용한 최루탄만 보아도 일반최루탄의 경우 1993년에 3만 100여발, 1994년에는 6만 5,000여발, 1996년에는 15만발이상으로 늘어났으며 다련발최루탄은 1993년의 160상자로부터 1994년에 177상자, 1995년에 330상자, 1996년에는 근 1,000상자에 이르렀다. 최루탄사용에 쓰인 돈은 1993년의 5억 1,100만원으로부터 1996년에는 그의 5배가 넘는 근 30억원으로 불어났다.

《문민》파쑈도당의 무분별한 탄압으로 말미암아 남조선의 감옥들은 차고 넘쳐날 정도였다. 당시 남조선《법무부》가 발표한 공식자료에 의하더라도 1996년 6월 현재 남조선 전지역에 만들어놓은 교도소와 구치소에는 총 수용능력 5만 3,000명보다 무려 1만명이나 더 많은 6만 3,000명이 갇혀있었다.
김영삼역도가 얼마나 폭압에 미쳐날뛰였으면 남조선언론들과 외신들이《문민파시스트》,《문민파쑈》라고 규탄할 정도였겠는가.
참으로 력대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남조선은 세계최악의 민주와 인권의 페허지대, 인간생지옥으로 전락되였다.
《한나라당》의 조상은 바로 이런 파쑈깡패 집단이다.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팔아먹은 추악한 사대매국노

《한나라당》의 뿌리이고 원조상인 력대 독재《정권》이 저지른 용서할수 없는 죄악의 또하나는 비렬하고 추악한 사대매국행위로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외세에 송두리채 팔아먹은것이다.
남조선의 력대 독재자들은 모두 친미,친일이 골수에 찬 특등역적들이고 희세의 사대매국노들이다.
《유신》독재자 박정희만 보아도 일제통치시기 일본《황군》에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하였으며 《신경군관학교》와 《일본륙군사관학교》까지 졸업하고 일본군의 중대장으로서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에서 피묻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애국자들에 대한 토벌과 학살에 앞장서 날뛴자이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는 미국의 품에 안겨 친미충견으로 되였으며 미국제땅크를 타고《5.16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마침내는《정권》의 자리까지 가로챘다. 그러한 자이기에 그가 집권하여 한 일이란 미일상전을 할애비처럼 섬기고 남조선을 미일상전에게 통채로 내맡긴 것밖에 없다.
박정희역도가 1961년 11월 부임인사차로 미국을 처음 행각하여《타국에 와있다는 기분을 전혀 느낄수 없다》,《귀국이 우리를 령도한다는데 대하여 신에 감사를 드린다》는 역겨운 망발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은 사실은 아직도 사람들을 수치와 모멸감으로 얼굴 뜨겁게 하고 있다.
박정희역도는 미국과 굴욕적이고 매국 배족적인《조약》과 협정》들을 수많이 체결하여 남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로 깊숙이 굴러떨어지게 하였다.
역도는 미국이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면 경제가 어떻게 되고 인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든 남조선시장을 통채로 내맡겼으며 미국이 전쟁대포밥을 대라고 하면 동족의 청장년들이 죽건말건 아랑곳없이 섬겨바쳤다.

미국의 웬남침략전쟁터에 연 32만여명에 달하는 남조선청장년들을 내몰아 무리죽음을 당하게 하였으며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단 몇푼의 돈에 팔아먹은 매국문서인 남조선일본《협정》에도 서슴없이 도장을 찍은 자도 박정희역도이다.
박정희역도는 온 민족이 한결 같이 요구하는 미군철수를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남조선을 미국의 영구군사기지로 내맡겼으며 남조선강점 미군에 치외법권적 지위를 주고 미국과 한짝이 되여 동족을 해치는 북침전쟁준비에 미쳐날뛰였다.
남조선강점 미군에게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 1966년 7월의 남조선미국《행정협정》을 체결한 것도 그리고 남조선미국《국방각료회담》(1968년 5월)과 그 확대판인 남조선미국《년례안보협의회》와 같은 전쟁모의판을 내오고 북침전쟁에서의 공동작전을 위한 남조선미국《련합군사령부》(1978년 11월)를 설치한 것도 박정희역도이다.
또한 미국본토에서 미제침략군무력을 끌어들여 남조선에서 세계최대규모의 《팀 스피리트》핵전쟁연습과《을지 포커스 렌즈》합동군사연습판을 벌려놓은것(1976년)도 다름아닌《유신》도배들이다.
박정희역도는 이러한 추악한 매국 배족 행위로 하여《제2의 을사오적》,《정치창녀》로 악명을 떨치였다.

전두환역도 또한 미국이 오래전부터 손때묻혀 키운 친미분자이다.
역도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8군사령관으로 있던 밴프리트의 주선으로 남조선에 처음으로 세워진《륙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숭미사대주의와 사람잡이기질을 키우고 장교로 되였으며 그후 미중앙정보국에 발탁되여 1959년과 1960년 두차례에 걸쳐 미국에 가서《게릴라소탕전》과《심리전》에 관한 특수교육을 받고 남조선에서 최초의 특수전교육장교로 되였다. 1970년에는《백마부대》련대장으로 웬남전쟁마당에 파견되여《토벌작전》에서 악명을 떨친 대가로 미국《동성무공훈장》까지 받았다.
일본의 한 잡지는 《전두환은 웬남전쟁 당시 오랜 벗인 윅캄장성의 강력한 뒤받침을 받으면서 권력의 길을 줄달음쳐왔다》고 썼다.
전두환역도는 늘《미국의 리익이 곧 한국의 리익》이라고 떠들며 다니였는가 하면 심지어《나는 미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짢은 소리를 하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라고 지껄여 주변사람들을 아연케 하기도 하였다.
1981년 1월 미국에 가서는 《백골이 되여도 미국의 은덕을 잊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애걸하였으며 미국회 상하량원의원들을 만나서는 미군이 철수되지 않도록 노력해준데 대해 《감사》하다느니 뭐니 하고 아양을 떨기도 하였다. 역도는 특히 남조선과 미국사이의《공동성명》발표후 워싱톤의《내슈널 프레스》구락부에서 한 연설에서 남조선은《미국과 일본의 방호벽》이라는 망발을 줴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일본잡지《세까이》는《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공식석상에서 자기 나라를 다른 나라의 방호벽이라고 규정한것은 이례적이다. 이 말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두환 정권은 한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 미국과 일본을 위해서 봉사하고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말이다》(1981년 5월호)라고 조소하였다.

이런 추악한 친미매국노였기에 전두환역도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미투쟁에 대하여 상전보다 더 신경을 쓰면서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1980년 12월에 있은 광주《미국문화원》방화사건과 1982년 3월의 부산《미국문화원》방화사건, 1985년 5월 서울《미국문화원》점거사건 때 역도가 앞장에 서서《용공리적》이니,《북의 선동》이니 하면서《수사본부》요,《수사전담반》이요 하는 것들을 설치하고 경찰과 검찰, 군대까지 총동원하여 애국적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과 종교인들까지 체포하는 광란을 벌리고 그들에게 극형을 들씌운 것은 그 한 실례에 불과하다.

전두환역도의 뒤를 이어《정권》의 자리를 가로타고 앉은 로태우역도는 남조선 전체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섬겨바친 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1989년 7월 남조선강점 미군의《방위비분담금》을 늘일데 대한 상전의 요구에 따라 인민들로부터 걷어들인 혈세를 강점비용으로 섬겨바칠 것을 확약하였으며 1990년 9월에는 미국이 벌려놓은 침략적인 만전쟁의 비용을 부담하는 매국협약에도 도장을 찍었다. 또한 1991년 11월에는 굴욕적인 남조선미국《전시지원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선반도유사시 남조선의 항구들과 비행장 등을 미군이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도록 《법적담보》를 마련하였다.

《문민》의 감투를 쓰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 김영삼역도의 사대매국행위는 더욱 구역질나는것이였다.
김영삼역도는《대통령》감투를 쓰자마자 선참으로 미국상전을 찾아가《동맹관계》니,《21세기를 향한 우호관계》니 하면서 그것을《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공약하였다.
이자는 남조선에 반환하게 되였던 미군사기지와 시설, 부지를 그대로 사용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무려 30억US$이상의 유지비를 부담하면서까지 미군의 남조선영구강점을 애걸하였다.
또한 미국상전과 함께 동족을 모해하고 압살하기 위하여《핵의혹》이요,《응징》이요,《제재》요 하면서 기승을 부리였다.
특히 김영삼역도는《세계화》를 떠들면서 외국독점자본에 남조선시장을 내맡기다 못해 1993년 12월 남조선농민들의 명줄이 걸려있는 쌀시장마저 미국에 개방하고 경제를 파국에로 몰아넣음으로써 1997년에는 남조선경제가《국제통화기금》의《신탁통치》쇠고랑을 차게 만들었다.
이로 하여 남조선은 경제주권까지 외국독점자본에 송두리채 빼앗기는 치욕를 당하게 되였다.
남조선각계층은 이를 1905년 을사년에 이은《제2의 국치》로 통탄하면서 김영삼역도를 규탄하였다.
참으로 남조선의 력대 파쑈통치배들이 저지른 반민족적범죄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이러한 매국배족의 치욕스러운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분렬과 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한 반통일집단

《한나라당》의 뿌리이고 원조상인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또 하나의 죄악은 분렬주의적인 《두개 조선》정책과 대결책동으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고 겨레의 자주통일 념원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력대 파쑈독재자들은 례외 없이 모두가 분렬과 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하고 통일을 방해한 반통일분자들이였다.
그들은 8.15후 나라의 분렬을 막고 전조선적인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공화국의 노력과 온 겨레의 한결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등에 업고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조작하여 이 땅에 분렬의 비극을 몰아왔으며 1950년대초에는《북진통일》을 웨치면서 미제와 함께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불을 질러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참화와 재난을 들씌웠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들어와 박정희《정권》은《승공통일》의 구호 밑에 미국의 범죄적인《두개 조선》로선을《정책화》하고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는 길로 나갔다.
반통일분자들은《공산주의자들이 북을 통치하고 있는 한 통일은 없다》,《통일은 시기상조》,《실력배양》을 떠들면서 련방제통일방안을 비롯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통일방안들과 평화발기들을 모두 외면하였으며 통일을 주장해나선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을 뿐아니라 일체 통일론의를 금지시키고《통일》이라는 말만 해도 마구 잡아가두었다.

더우기 우리의 주동적인 조치와 노력에 의하여 북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열리고 조국통일3대원칙이 천명된 7.4공동성명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전 민족적 범위에서 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자 박정희군사《정권》은 파쑈적인《유신체제》를 조작하여 그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1973년 6월에는 미국이 짜준 각본에 따라 분렬주의적인《6.23특별성명》을 발표하여 민족의 영구분렬을 공식선언하였다.
이로 하여 수십년 만에 처음 열린 북남대화들이 모두 단절되고 북남관계는 불신과 대결상태로 되돌아가는 비극적사태가 초래되였다. 게다가《유신정권》은 1977년부터 군사분계선 전구간에 콩크리트장벽을 구축함으로써 하나의 지맥으로 잇닿은 조국강토를 뭉텅 두동강내는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전두환, 로태우《정권》은《멸공통일》의 구호 밑에 분렬과 대결정책을 더욱 악랄하게 추구하였다.
전두환역도는 1980년 9월 이른바《대통령취임식》이라는데서《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북과 대결할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제5공화국의 기본정치목표》라고 떠벌이면서《힘의 대결》을 대북 정책로선으로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군사도당은 대내적으로는《반공법》의 독소조항을 포함시켜 보다 파쑈적으로 개악한《보안법》(1980년 12월)을 조작하여 인민탄압에 더욱 광분하는 한편 북침전쟁책동에 더욱 열을 올리면서 미국과 함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규모를 대폭 늘이고 그에 최신핵전쟁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전쟁훈련의 침략적이며 도발적인 성격을 일층 강화하였다.
전두환일당의 이러한 반공화국대결정책과 전쟁책동으로 하여 1980년대 중반기에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우리의 구호물자제공을 계기로 좋은 분위기속에서 열렸던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대화들이 모두 결렬되였다.

전두환 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87년 5월에는 7.4공동성명에 배치되게 대화와 통일을 전면 부정하는《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공식 제창함으로써 북남관계를 파국적위기에로 몰아넣었다.
전두환《정권》의 뒤를 이어 로태우《정권》은《북방정책》과《<두개 조선>의 국제적합법화》를 들고 다니면서 분렬영구고착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였으며 한편으로는《창구일원화》간판을 내걸고 북남민간단체들의 접촉과 래왕을 야수적으로 탄압해나섰다.
로태우일당이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목사와《전대협》대표 림수경을 돌아가자마자 잡아가두고 박해를 가한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대초에 이르러 북남사이에는 고위급회담 등이 개최되여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가 다시 감돌기 시작하였으나 김영삼역도의《문민정권》출현으로 그것은 다시 좌절되였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편승하여《흡수통일》의 간판을 내건《문민정권》의 반통일책동, 대결과 전쟁소동은 선행 군사《정권》의 뺨을 칠 정도였다.
《문민》역도는《취임식》때《민족을 우선시하겠다》고 하였지만돌아앉기 바쁘게 《북을 단순히 동족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동족과의 전면대결을 선언해나섰다.
역도는 집권한지 얼마안되는 1993년 6월과 12월 전투복차림으로 전후방부대들과 군사분계선철조망밑을 싸다니면서《북과 싸울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라 》고 전쟁열을 고취하였는가 하면 1994년 9월에는 현직《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조선에 기여든 미국항공모함 《키티호크》호에까지 올라가 전쟁광기를 부리였다.

김영삼역도가 집권한후 북침전쟁연습도 급격히 늘어났다.
공식적으로 보도된 대규모전쟁연습만 보더라도 1993년의 16건으로부터 1994년에 32건, 1995년에 37건,1996년에 88건,1997년에는 120건으로 5년사이에 무려 7.5배나 증가되였다.
우리 민족이 대국상을 입었을 때 김영삼역도가 저지른 천추에 용납못할 죄행은 오늘도 온 민족을 분노의 피로 끓어번지게 하고 있다.
온 겨레가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비통감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지어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까지도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있을때 김영삼역도는 동족으로서 응당 하여야 할 초보적인 조의표시마저 줴버리고 초상집에 대포를 들이대는 격으로 전군에《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가게 하는 불한당 짓을 하였다.
그리고 남조선인민들이 조문을 표시하는 것을 가차 없이 탄압하였으며 지어 평양을 향해 판문점으로 달려가는 조문행렬을 중도에서 가로막는 망동도 거리낌 없이 감행하였다.

김영삼역도가 저지른 반인륜적 망동은 역도야말로 동족의 피는 고사하고 한쪼각의 도덕의리도 모르는 천하 망종이며 무지막지한 반통일분자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김영삼역도의 반민족적 죄행으로 말미암아 최고위급회담 날자까지 받아놓았던 북남관계는 또다시 파탄되였으며 북남대화는 수년간이나 공백상태에 놓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영삼역도는 우리 민족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하고 겨레의 통일념원을 짓밟았으며 북남관계를 최악의 상태에 몰아넣은 것으로 하여 통일의 가장 악랄한 적으로서의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나라가 갈라져 60년이 넘도록 아직 통일이 이룩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들이 남조선의 력대《정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외세와 한짝이 되여 분렬과 대결책동을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실로《한나라당》의 원조세력인 남조선의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범죄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남조선인민들과 우리 민족은 파쑈통치배들에 의하여 자기 발전에서 수십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렸으며 그로 인해 숱한 고통과 불행, 희생과 손실을 당하였다.
《한나라당》의 조상인 력대 독재《정권》들이 저지른 죄악은 천추만대를 두고 저주를 받아야 하며 민족과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나라당》이《시효》니 뭐니 하며 과거죄악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어리석은 수작이다.
《한나라당》의 몸통에는 파쑈독재와 민족반역, 반통일의 검은 피가 가득 차있다.
추악한 피줄을 이은 한나라당》이기에 오늘 파쑈독재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그것을 복귀해보려고 날치고 있으며 그 더러운 피를 흘리면서 잔명을 부지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한나라당》을 어찌 그대로 둘수 있겠는가.

력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미 죽음이 선고된《한나라당》은 당장 해체되여야 하며 그 족속들은 엄중히 처벌되여야 한다.
《유신》파쑈독재자의 후예인《한나라당》 대표는 제 애비의 비극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한나라당》의 치욕스러운 과거죄악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고 철저히 계산하여야 하며 파쑈통치배들의 저주로운 바통을 이어 오늘도 범죄우에 범죄를 덧쌓고 있는《한나라당》을 민족의 원한과 분노를 담아 기어이 폭파해버려야 할 것이다.

주체95(2006)년 1월 16일
평 양


고구려무덤벽화는 세계에 자랑할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평양 6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 발표한《고구려무덤벽화는 세계에 자랑할 조선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 》이라는 제목의 글이 6월 27일부《민주조선》에 실렸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민족사에서 고구려는 동방의 천년강국, 선진문명국으로 그 이름을 세상에 떨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옛날 고구려무덤벽화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뛰여난 미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벽화들은 그 묘사의 생동성과 다양한 생활세부, 변하지 않는 색갈로 하여 세계적으로 관심을 크게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우리나라 력사에 존재하였던 고구려는 발전된 경제력과 넓은 령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강국이였으며 중세초기 동방문화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하고 우리 민족문화의 개화기를 열어놓은 발전된 나라였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발전수준을 실물 그대로 생동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당시의 벽화무덤이다. 우수한 회화술과 건축술의 종합체라고 할수 있는 고구려벽화무덤들은 다양하고 풍부한 벽화내용들과 건축구조적완벽성으로 하여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전해가며 자랑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고유하고 풍부한 내용과 높은 예술성,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 힘 있고 우아한 화풍으로 이름 높은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나라 중세 회화미술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민족의 재보인 동시에 세계문화사를 찬연히 빛내인 인류공동의 고귀한 재부로 된다.

1.고구려무덤벽화는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귀중한 문화재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조선민족은 오랜 세월 이 땅에서 우수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세계문화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재능 있는 민족이다. 단군을 민족의 원시조로 하여 B.C.30세기초에 세워졌던 고대국가 고조선(단군조선)의 후손들이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들을 계승하여 B.C. 277년에 우리나라에서의 첫 봉건국가 고구려를 세웠다. 고구려 사람들은 높은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대담하고 진취적인 투쟁정신과 랑만적인 성격, 통이 크고 담차며 패기와 정열에 넘치는 밝고 명랑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탐구심과 정의감이 강하였으며 근면하고 고상한 도덕품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지닌 민족적인 성격과 기질, 감정과 정서는 당대 회화미술작품들에 그대로 반영되여 고구려 특유의 담대하고 생기발랄하며 진취적인 기상이 넘치는 우수한 무덤벽화를 창조해 낼 수 있게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벽화무덤들은 100여기에 달하고 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들에서 사용해오던 돌무지무덤, 고인돌무덤, 돌관무덤들이 발전하여 돌칸흙무덤이 출현하면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무덤내부를 지상건물처럼 꾸리려는 고구려 사람들의 욕망을 실현하는데서 가장 효과적인 방도는 무덤칸의 벽면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였다. 고구려의 왕과 왕족들, 상층귀족들의 무덤을 호화스럽게 꾸리는데 리용된 무덤벽화에는 고구려인민들의 창조적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당시의 높은 회화발전수준이 그대로 반영되여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의 내부벽면에 주인공의 화상과 함께 생전생활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그림으로 재현해놓았고 천정에는 해와 달을 비롯한 천체들과 구름 그리고 신앙과 관련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려 무덤안을 하나의 축소된 지상세계, 천상세계로 형상하였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들을 보면 초시기에는 회를 바른 벽면에 나무꼬챙이나 굳은 물체들로 선을 긋는 방법으로 어떤 대상을 형상하다가 점차 색갈을 칠하는 채색화로 발전하였는데 채색화인 경우 초기에는 검은색, 누런색 등으로 색깔이 단순하고 그림형상수준도 그리 높지 못하였다. 평양시 승호구역 금옥리벽화무덤, 평안남도 남포시 우산리2호무덤, 집안 만보정1368호무덤들은 무덤벽화발생시기의 대표적인 유적들이다.
이 무덤들에는 벽면에 회미장을 하고 굳은 물체로 그어서 인물의 얼굴모습을 새겨 그린 선각화도 있으며 검은색 하나만으로 건물의 기둥과 들보를 그려놓은 벽화와 구름무늬를 형상한 그림들도 있다. 이것들은 묘사수법이나 기교, 그림내용으로 볼 때 고구려 무덤벽화발생 초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무덤내부를 지상건물처럼 꾸리려는 당시 사람들의 지향에 의하여 벽면에 기둥과 들보, 두공을 그리는 단계를 거쳐 점차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그림, 위풍넘치는 대행렬그림,사냥그림,씨름그림,부엌생활그림, 환상적인 동물그림, 장식무늬그림을 비롯한 다양하고 풍부한 주제의 그림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이와 달리 다른 나라의 무덤벽화는 발생초기에 무덤주인공이 죽은 후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나 천상세계에서의 전설적인 옛이야기를 묘사한 그림들이 간단하게 그려지다가 점차 현실세계에서의 생활과 환상적인 동물들을 그리는 방향으로 변천되였다. 발생초기 무덤벽화주제내용에서의 이러한 차이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들의 지역적 차이, 생활풍습에서의 차이, 신앙의식과 《래세관》에서의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서 고구려무덤벽화와 이웃나라 무덤벽화가 서로 다른 주민집단들에 의하여 각기 독자적으로 창조되고 발전하였음을 말하여준다.

일본렬도에서도 벽화무덤들이 일부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내용이 단순하고 화풍이 고졸한 초기형식의 무덤벽화가 없이 비교적 발전수준이 높은 무덤벽화들이 돌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벽화의 주제내용과 형상수법이 고구려의것과 비슷하기는 하나 같은 주제의 고구려벽화무덤들과 대비하여볼 때 시기적으로도 훨씬 뒤떨어진다. 이것은 사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일본렬도의 무덤벽화가 독자적으로 발생 발전한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임을 보여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에 따라 인물풍속을 그린 것, 동, 서, 남, 북의 네 방위를 지키는 환상적동물들인 사신을 그린 것, 인물풍속과 사신을 함께 그린 것, 장식무늬를 그린 것으로 나뉘여진다. 벽화의 주제내용은 무덤축조시기와 주인공의 요구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나타내는데 초기에는 인물풍속도가 다수를 차지하다가 점차 인물풍속도 와 사신도가 주류를 이루며 고구려 말기에는 사신도일색으로 바뀌여졌다. 인물풍속을 그린 벽화무덤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고국원왕무덤, 덕흥리벽화무덤, 수산리벽화무덤, 씨름무덤, 련꽃무덤 등이다.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자리잡고 있는 고국원왕무덤(안악3호무덤)은 4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서 방대한 규모와 풍만한 내용의 벽화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고국원왕무덤의 인물풍속도에는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그림, 대행렬그림, 춤그림, 수박희그림을 비롯하여 생전생활모습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생동하게 묘사되여 있으며 심지어 우물과 부엌, 방아간, 외양간, 마구간,푸 주간 등 경리생활그림까지 그려져있다. 이 그림들은 권세 있고 호화로웠던 생전의 생활을 죽어서도 계속 누리려는 주인공의 요구와 신앙관념을 반영하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인물풍속도와 함께 동, 서, 남, 북 네 방위의 수호신들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무덤속의《령혼》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점차 무덤벽면에 사신도를 그리였다. 사신도는 처음에 인물풍속도와 함께 그려지면서 무덤의 천정구석에 자그마하게 나타나다가 당시 사람들의 사신에 대한 관념이 깊어지면서 벽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게 되였다. 사신도무덤들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은 강서세무덤,호남리사신무덤,집안사신무덤,집안다섯무덤의 4호,5호무덤들이다. 사신도의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비록 환상적인 동물들을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정신문화의 일면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고구려무덤벽화는 그 하나하나에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폭넓게 담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 민족고유의 생활세부들이 진실하고 생동하게 형상되여있다.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사람들의 옷차림들은 민족적 특성을 뚜렷이 표현하고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우에 허리띠를 띠였으며 곧은 깃을 달고 소매끝, 깃, 도련에 선을 두른 민족옷차림을 하고 다니였다. 특히 쌍기둥무덤벽화,감신무덤벽화,수산리무덤벽화,덕흥리무덤벽화들에서 보이는 녀인들의 색동저고리와 여러 가지 색갈의 무지개색주름치마, 머리꾸밈새는 다른 나라의 것과 완전히 구별되는 고구려고유의 것이다.

이웃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거의다 도포를 입은 모습으로 형상되여있고 저고리소매가 넓은것이 고구려 사람들의 옷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또한 소매 끝에 여러 가지 색의 끝동을 단 색동저고리나 무지개색의 주름치마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구들을 놓은 방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을 전통적인 풍습으로 여겨왔다. 고국원왕무덤, 사냥무덤, 쌍기둥무덤의 벽화들에는 방밖에 신발을 벗어놓고 구들에 편안히 앉아 생활하는 고구려사람들의 민족적인 방안생활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그러나 이웃나라에서는 난방시설이 방안 한쪽구석에 있으며 구들고래가 높아 걸터앉게 되여있는 《캉》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써오는 구들과는 다른것이다. 고구려의 구들에 대하여 중국력사기록에《…겨울이면 방안에 긴 온돌을 놓고 그 밑에 불을 때서 난방을 삼았다.》고 씌여져있다.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와 방바닥에 편안히 앉아서 생활하는 조선민족의 생활풍습에 맞는 구들에는 민족적색채가 짙은 우리 민족고유의 생활모습이 비껴있으며 이러한 구들이 무덤벽화에 생동하게 그려진 것은 바로 무덤벽화의 고구려적 성격을 뚜렷이 강조해준다.

씨름무덤, 고국원왕무덤을 비롯하여 많은 무덤의 벽화들에는 씨름과 수박희장면들도 그려져있다. 씨름과 수박은 고구려의 전통적인 무도로서 고구려는 물론 그 이후에도 널리 보급되여 조선민족의 전 력사에서 련련히 이어져왔다. 리조시기에 출판된 책《무에도보통지》의 수박-권법을 설명한 그림은 고구려무덤벽화의 수박희그림과 신통하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체육경기들인 씨름이나 수박-권법이 고구려시기에 널리 진행되였고 력사적으로 계승되여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구려는 상무정신이 강한 나라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군사를 배우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어려서부터 체력단련과 무술련마에 힘썼으며 민간오락과경기들도 모두 무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약수리벽화무덤, 덕흥리벽화무덤, 장천1호무덤, 춤무덤, 사냥무덤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고구려벽화무덤들 내부벽면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사냥을 하는 장면들이 빠짐없이 그려져있다. 덕흥리무덤벽화에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승부를 겨루는 경기장면이 있고 씨름무덤의 벽화에는 주인공이 방안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칼과 활을 몸가까이에 두고있는 모습이 있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에서 무술을 숭상하는 기풍이 전 사회적인 풍조로 생활화되여있었음을 말하여준다.

이처럼 무덤벽화는 고구려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진실하고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고구려문화의 개성과 특유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 인민의 민족적 특징이 뚜렷이 반영되여 있는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바로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조선민족고유의 귀중한 문화적 재부인 것이다.

2.고구려무덤벽화는 중세동방회화미술의 최고정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의 다양성과 형상에서의 비반복성, 풍부한 예술적환상과 현실에 기초한 묘사의 생동성,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색갈로 하여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으로, 세계적인 보물로 되고있다. 일반적으로 회화미술의 우수성은 크게 주제내용과 미술적인 형상수준 두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높은 형상수준도 물론 중요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와 같이 어느 한 력사적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그림인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내용이 중시되여야 한다. 그것은 력사적인 회화미술작품의 가치-우수성은 그 그림이 당대 사람들의 생활을 얼마나 폭넓고 진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구려무덤벽화는 우선 주제가 다양하고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 하여 중세동방회화미술의 대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구려무덤벽화 외에도 동방의 여러 나라들에 여러 가지의 조각상이나 벽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대 사람들의 생활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무덤벽화에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신앙 등 모든 분야의 생활이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되여있다. 특히 고국원왕무덤, 덕흥리벽화무덤, 약수리벽화무덤, 장천1호무덤을 비롯한 많은 벽화무덤들에는 다양한 주제의 벽화들이 종합적으로 그려져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진실하게 보여준다.

정치생활주제의 벽화에는 무덤주인공이 정사를 보는 장면과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아가는 대행렬장면을 형상한 그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덕흥리무덤벽화의 정사도를 보면 무덤앞 칸에는 주인공인 고구려의 유주자사 진이 자기 관할하의 13개 군 태수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지시를 주며 정사를 토의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위엄있는 자세로 틀지게 앉아있는 무덤주인공의 눈길과 몸가짐에서는 대강국 고구려의 서북방 넓은 령역을 지배한 지방행정장관의 위풍과 담대한 기상이 한껏 풍기고 있다. 무덤주인공의 앞에 경건한 자세로 서서 어떤 일을 보고하거나 축하하는 13군 태수들의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다. 13명의 태수들중에는 만족한 자세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서있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송구스러운듯 한 표정을 짓고있다. 13군태수들의 앞에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을 맞잡고 유주자사 진에게 태수들이 찾아왔음을 아뢰는 관리의 모습도 보인다. 고구려의 유주진출과 이 지역을 통치하던 당시의 사실을 생동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고국원왕무덤의 안쪽《ㄱ》형으로 된 회랑의 벽에는 250여명이 등장하는 대행렬이 그려져있다. 고취악대의 장중한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황제의 행차임을 알리는《성상번》기발을 휘날리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개마무사들과 기마병들,활과 창,칼과 도끼를 든 무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위풍 당당히 나아가는 고국원왕의 웅건한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이 그림은 고국원왕의 황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력사적인 화폭이다.

고구려무덤벽화들은 경제생활을 반영한 그림, 군사물주제의 그림, 체육 및 예술활동을 반영한 그림, 신앙관계를 반영한 그림 등 주제령역이 다양하다. 세칸무덤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쇠갑옷으로 무장한 개마무사들이 창을 휘두르면서 성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통구12호무덤의 전투하는 그림에는 중무장한 고구려무사가 긴 칼로 적병의 목을 내리쳐 베여버리는 모습이 형상되여 있다. 고구려 사람들의 씩씩하면서도 용맹스럽고 담찬 기상이 어려있는 그림이다. 이밖에도 군사물주제의 그림에는 개마무사, 문지기장수, 호위무관들과 의장대렬의 모습들이 있는데 여기에 그려진 무기, 무장만으로도 고구려의 군사적 위력을 잘 알 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신앙관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에는 단군관계 전설과 견우직녀전설을 반영한 그림, 신선과 비천그림, 불교의 칠보행사, 불공 드리는 모습을 형상한 장면들이 있다. 집안다섯무덤의 5호무덤천정에는 해를 머리우에 떠이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듯 한 선인의 모습이 그려져있고 씨름무덤의 벽화에는 큰나무아래 곰과 범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있다. 장천1호무덤의 벽화를 보면 큰 나무아래 굴속에 곰 한마리가 웅크리고 앉아있고 굴밖에서 범 한마리가 서성거리고있다. 이 그림들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오래전부터 숭앙되여오던 선인 왕검-단군에 대한 신화를 련상시킨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속에 민족의 원시조 단군을 숭상하는 단군숭배의식이 지배하고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중세 우리 민족문화의 보물고라고 말할수 있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의 다양성과 내용의 풍부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그 류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류문화의 귀중한 재부이다.

고구려무덤벽화는 당대 사람들의 사상감정과 정서를 우수한 회화기법으로 높은 수준에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다. 억센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세련된 선, 선명한 색채, 째인 구도로 특징지어진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 선과 색채, 밝고 어두움, 구도 등 회화미술의 기본형상수단들을 훌륭히 구현하였다. 고구려화가들은 선을 매우 중시하였으며 대상의 형태와 양상에 맞게 다양하고 기발하게 리용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단숨에 그어내린 굵고 힘있는 선과 가늘고 부드러운 선 등 여러가지 선으로 묘사대상의 특징과 성격,운동감까지도 잘 살리였다. 춤무덤의 살림집그림과 쌍기둥무덤의 련꽃무늬장식그림, 세칸무덤의 힘장사그림들만 보아도 대범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선,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선,유연하면서도 탄력 있는 선 등으로 대상의 형태를 방불하게 묘사하고있다.
청룡이나 백호의 부릅뜬 눈, 휘여든 잔등, 억센 발과 같이 힘을 넣어 강조할 부분들은 굵고 진한 선으로 단숨에 그려내였고 날개, 털, 수염과 같이 가볍고 휘날려야 할 부분들은 가늘고 연한 선으로 재치있게 처리함으로써 대상의 성격과 운동감을 잘 표현하였다. 특히 현무그림에서는 뱀이 거부기를 감으면서 몸을 비틀 때 비늘이 꼬이는것까지도 가는 선으로 생동하게 형상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는 색이 또한 기본형상수단의 하나로 중요시되였다. 고구려무덤벽화에는 검은색, 흰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과 함께 밤색, 풀색, 회색 등 여러가지 색들이 효과적으로 쓰이였다. 같은 색에서도 진하고 연한 정도가 다른 여러가지 색들을 풍부하게 리용하였는데 붉은색만 하더라도 다섯 가지 이상에 달하였다. 그런가하면 고구려화가들은 금분, 은분과 같은 현란한 색감을 써서 무덤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짐승의 눈에 구슬을 박아 진실하고 생동한 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안악2호무덤의 비천그림에서는 몸을 휘감은 얇은 날개옷의 가벼운 흐름까지도 연한 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부드러운 률동과 하르르한 맛을 강조해준다. 강서세무덤과 집안다섯무덤의 4호무덤, 5호무덤에 그려진 사신그림과 황룡그림들은 색감의 풍부성과 진실성, 선과 색의 일치, 화면이 물기를 받았을 때 나타날수 있는 동물들의 미끄럽고 윤기있는 피부색의 질감까지 능숙하게 표현해냄으로써 고구려무덤벽화형상에서 절정을 이루고있다.

고구려화가들은 대상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색채에서 허구를 적용하는 높은 기교도 발휘하였다. 고국원왕무덤벽화의 외양간과 마구간그림에는 소와 말이 각각 세 마리씩 그려져있는데 검은빛소와 누런빛소사이에 초록빛소가 있고 흰빛말과 검은빛말사이에 분홍빛말이 끼여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초록빛소와 분홍빛말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소와 말의 실지색을 그대로 그린다면 소와 말들이 어둑컴컴한 외양간과 마구간속에 잠겨버릴수 있다는것을 고려하여 색채의 허구를 리용한것이다. 그리하여 그림전반의 양상을 밝게 하면서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처리하였다.

기발한 화면구성은 화가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징표로 된다. 고구려화가들은 무덤벽화에서 화면의 전반적 구도를 조화롭게 맞추면서도 대상의 특성에 맞게 함축과 집중, 생략수법들을 능숙하게 리용하였다. 고국원왕무덤의 회랑에 그려진 대행렬도에는 왕이 탄 수레를 중심으로 하는 행렬의 앞부분만이 그려져 있다. 물론 화가는 높이 2m,길이 10m이상의 긴 회랑벽에 고국원왕의 장엄한 행렬전모를 빼곡이 그려넣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왕이 탄 수레는 벽면의 가운데가 아니라 무덤칸에 들어서면서 인차 한눈에 바라보이는 회랑의 어구에, 그것도 웃 부분에 그려져있다. 화가는 자연스러운 눈높이에서 행렬의 중심부에 있는 무덤주인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뒤 부분을 대담하게 생략하고 아래부분에는 공간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넓은 들판을 지나는듯 한 행렬에 스스로 끌려들게 하였고 행렬의 앞부분을 감상하면서 뒤 공간에 그와 같은 규모의 위엄있게 꾸려진 행렬이 계속 뒤따르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 화가는 집약된 행렬의 한부분만을 그려 이와 관련된 다른 많은 부분을 련상케 하는 회화에서의 함축과 집중,생략의 수법들을 높은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던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벽화에서 부감법, 원근법과 같은 회화기법들도 적용하여 대상의 특징을 더욱 강조해주기도 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천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자기의 선명한 색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일반적으로 동양화에서는 좋은 종이에 그림을 그렸을 때 그 수명은 천년, 명주에 그린것은 500년이라고 한다. 고구려무덤벽화가 천 오백년이 지나도록 변색 없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의 구조와 무덤안의 습도, 겨울철과 여름철의 기온차이, 무덤칸을 덮은 흙의 두께, 외부와의 온도차이로 인한 이슬맺힘까지 다 고려하여 그속에서도 견딜수 있는 안료와 점착제, 접착기법을 창안하였다. 고구려무덤벽화는 회를 바르고 그것이 채 마르기전에 그린것과 완전히 마른 다음에 그린것, 매끈하게 다듬은 돌우에 직접 그린것이 있다. 회가 굳기전에 그리는 방법은 오늘날의 후레스코법과 같은것인데 회벽의 누기가 적절할 때 일정한 시간안에 빨리 그려야 하며 일단 그리면 고치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그림이 견고하고 회벽면이 마르면서 이루어지는 특유한 빛갈도 얻을수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돌벽우에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대체로 화강암판돌로 된 벽면을 리용하였다. 화강암은 매끈거리는 대리석과는 달리 면을 수평으로 맞추었다 하더라도 표면이 토들토들하여 그림의 우아함과 립체감을 나타내는데 아주 효과적이였다. 색감에 못지 않게 바탕면에 주의를 돌려 그림을 보다 생동하게 묘사하려고 한 여기에 고구려화가들의 높은 기교와 창조적재능이 어려있는것이다. 특히 습기가 찬 무덤안에서 벽화의 손상을 막으면서도 오히려 물기를 머금었을 때 나타낼수 있는 오묘한 립체감과 령롱한 빛갈까지 고려하여 그림을 그린것은 당시 고구려회화미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그대로 과시하고있다.

천 수백년이 지났지만 금방 붓을 뗀듯이 선명하게 안겨오는 고구려무덤벽화는 주제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다양하며 묘사 또한 생동하고 진실한데다가 오늘까지도 그 모습을 훌륭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조선민족의 귀중한 재부로 되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찬탄을 자아내고있다. 조선민족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고구려무덤벽화는 동방회화미술의 최고정화, 세계회화사에서 손꼽히는 대걸작으로서 전 인류적 가치를 가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3. 평양은 고구려무덤벽화의 발상지, 중심지

평양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곳이고 민족문화의 중심지이다. 인류려명기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수가 수려하고 기후가 온화하며 생업에 유리한 평양일대에서 자기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왔다. 고구려사람들은 앞선 시기의 발전된 문화를 토대로 하여 평양일대에서 높은 예술성과 풍부한 내용을 가진 무덤벽화를 독자적으로 창조하였다.

고구려 벽화무덤들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의것으로 인정되고있는 무덤들이 바로 평양일대에서 알려지고 있는데 금옥리벽화무덤은 A. D. 1~2세기경에 해당하며 우산리 2호무덤은 A.D. 2세기이전에 축조된것이다. 집안일대에서 벽화무덤의 시초형으로 알려진 만보정 1368호무덤은 그 구조와 벽화내용으로 보아 A.D.3세기 전반기의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이것은 고구려무덤벽화가 평양일대에서 먼저 발생하여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여갔음을 력사적사실로 보여주고있다.

평양일대에서 일찌기 발생한 무덤벽화는 3세기에 만들어진 대성구역 고산동 20호무덤, 강서군 태성리 2호무덤,남포시 우산리 1호무덤에 이어 4세기 전반기의 평양역전벽화무덤, 감신무덤에도 그려지면서 련련히 계승되여갔다. 이러한 무덤벽화는 4세기 중엽에 축조된 고국원왕무덤과 4세기말~5세기초의 약수리벽화무덤, 5세기초의 덕흥리벽화무덤에 이르러 비할바없이 풍부한 내용으로 무덤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고구려말기에는 강서세무덤으로 하여 고구려무덤벽화발전의 최절정을 이루었다. 이처럼 고구려무덤벽화는 평양일대에서 먼저 발생하여 고구려 전기간 평양을 중심으로 높이 발전하여갔다. 100여기에 달하는 무덤벽화들은 고구려의 수도들이였던 환인, 집안, 평양일대에 분포되여있는데 그가운데서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재령강류역에 가장 많이 집중되여있다. 환인일대에서는 미창구1호무덤 1기만이 알려졌고 집안일대에서는 통구12호무덤, 통구사신무덤, 세칸무덤, 거북잔등무늬무덤, 미인무덤을 비롯하여 20여기의 벽화무덤들이 발견되였다. 이에 비하여 평양일대에서는 동명왕릉, 쌍기둥무덤, 호남리사신무덤, 동암리벽화무덤, 개마무덤 등 근 80기에 달하는 벽화무덤들이 조사 발굴되였다. 이것은 평양일대에 환인, 집안일대보다 훨씬 많은 고구려벽화무덤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평양일대에 분포되여있는 고구려벽화무덤들은 그 수가 많을뿐아니라 벽화의 내용이 풍부하고 형상수준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고있다. 환인, 집안일대 벽화무덤들도 고구려 사람들이 창조한 것이고 이지역이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던만큼 다양한 주제내용과 생동한 형상으로 높은 발전면모를 보여주고있다. 그러나 무덤주인공의 초상과 관리들을 만나는 장면, 위풍넘치는 대행렬장면들이 그려진 고국원왕무덤과 덕흥리벽화무덤, 사냥경기장면의 규모와 생동한 묘사에서 으뜸이라고 할수 있는 약수리벽화무덤, 높은 예술적기교로 여러 가지 교예장면을 펼쳐보이는 수산리벽화무덤을 비롯하여 주제별 내용과 형상에서 걸작이라고 할만한 벽화무덤들의 대부분이 평양일대에 집중되여있다.

사신도를 보아도 집안다섯무덤의 4호. 5호무덤들은 무덤칸의 벽면전체를 화려한 장식무늬로 가득 채우고 각종 채색은 물론 금분과 보석으로 청룡, 백호를 비롯한 사신과 황룡을 현란하게 장식하였지만 평양일대의 강서세무덤에 그려진 사신도에는 이르지 못하고있다. 강서세무덤의 청룡과 백호는 균형잡힌 몸자세, 기운차게 추켜올린 앞발과 예리한 발톱,불날개가 달린 앞가슴, 마디마디에 힘이 맺혀있는 구불구불한 꼬리들로 하여 맹수의 특성을 생동하게 보여준다.

여의주를 물고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는 주작은 금시 하늘로 나래쳐오르려는 봉황을 형상하고있으며 현무는 거부기와 뱀이 얽혀있는 모습을 그린것이지만 생신한 기운과 약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들은 억세고도 힘찬 기상과 자유분방하고 박력있는 운동감, 우아하고 부드러운 률동으로 하여 고구려무덤벽화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듯 평양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높이 발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회화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백제의 벽화무덤들에서 알려진 사신도와 련꽃무늬, 구름무늬그림들은 고구려무덤벽화에 그려진것들과 류사하며 신라, 가야의 무덤벽화들에 형상된 주작, 련꽃그림들과 달리는 말의 모습에도 고구려적화풍이 짙게 어려있다. 일본의 다까마쯔무덤에 그려진 인물들의 저고리와 무지개색의 주름치마, 머리꾸밈새 등은 고구려벽화무덤들에 형상된 사람들의 차림새를 그대로 닮고있다. 기도라무덤벽화에서 보이는 사신그림은 삼석구역 내리 1호무덤과 력포구역 룡산리 9호무덤의 사신도를 방불케 하며 특히 무덤의 천정에 있는 별자리 그림은 평양의 밤하늘을 그린 것으로서 고구려문화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이후시기 발해와 고려의 무덤벽화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발해의 정효공주무덤에는 문지기와 여러명의 인물들이 무기와 악기를 들고 걸어가는듯 한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그림들은 고국원왕무덤의 문지기장수와 장천 1호무덤, 세칸무덤, 강서세무덤에 보이는 인물들을 련상시킨다. 정효공주무덤벽화에 묘사된 인물들은 시대변천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으나 중심대상을 뚜렷이 하면서 률동감을 강조하여 그린 수법은 고구려말기 무덤벽화의 것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며 동시에 발해회화의 사실주의적 특징과 고구려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고려태조 왕건왕의 무덤과 공민왕무덤의 벽화에도 고구려적성격이 잘 나타나고있다. 왕건왕릉의 무덤칸에 그려진 소나무는 고구려의 룡산리 1무덤에 있는 소나무의 형상과 비슷하다. 고려 수락동 1호무덤 사신도는 고구려 사신도의 풍격을 이어받으면서도 고려말기 사람들의 미적정서와 신앙관념에 맞게 묘사되여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발생 발전한 고구려무덤벽화는 당대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여 백제, 신라,가야를 비롯한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회화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중세 우리 나라 무덤벽화의 시원으로, 원형으로 되였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자랑높은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 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여온 고구려무덤벽화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선민족의 재보로, 인류공동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세계문화사에 찬연한 빛을 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