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경향 사설] 끝내 참회·사죄 없이 부끄럽게 생 마친 ‘학살자’ 전두환

대한민국 5번째(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가 23일 사망했다. 지난 8월 혈액암 진단을 받은 전씨는 쇠약해진 몸으로 투병하다 이날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향년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이로써 전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며 집권하고도 끝내 속죄하지 않은 군인 대통령으로 헌정사에 쓰이게 됐다. 일말의 동정조차 느낄 수 없는 부끄러운 죽음이다.

전씨의 집권 8년(1980~1988)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압살한 암흑기였다. 그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보안사령관)으로 10·26사태를 수사하다 신군부를 이끌고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했다. 집권 후 계엄령·휴교령을 내려 ‘서울의 봄’으로 불린 민주화 바람을 짓밟았고, 광주 민주항쟁에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며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러곤 정당을 해산하고 두차례 간접선거로 대통령직에 올라 5공화국 독재를 시작했다. 무고한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냈고, 집회·시위를 봉쇄했다. 고문·간첩조작 수사와 녹화사업(학생 강제징집)을 자행했고, 신문·방송은 검열한 기사만 내보내게 했다. 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대 통치자금을 받아 부정축재도 했다. 1987년에는 개헌 요구에 ‘4·13 호헌 조치’로 맞서다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자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고 물러났다. 그의 집권기엔 3저(저유가·저환율·저금리) 호황과 서울 올림픽 유치, 첫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성취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질식시킨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피로 시작해 시민의 저항으로 무너진 철권·폭압의 시대였다.

전씨는 1996년 내란·내란목적살인죄·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복역하다 1997년 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럼에도 전씨는 “5·18은 폭동”이라 하고, 회고록에선 헬기사격을 봤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했다. 치매라면서도 골프를 쳤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버텨 지금도 추징금 2205억원 중 956억원이 미수금으로 남았다. 참회와 사죄는 없이 국민들의 부아만 돋운 안하무인의 삶이었다.

‘전두환 시대’의 그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은 중단되겠지만, 5·18 진상규명은 발포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사격·성폭력·암매장의 진실은 다 풀지 못했다. 중단 없이 진행해야 할 일이다. 정호용 5·18 당시 특전사령관은 “전씨가 진상규명과 사과를 하지 않으면 내가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바란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들도 국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착수했다. 전씨를 단죄하고 억울한 피해자의 한을 푸는 것은 여전히 산 자의 몫이 됐다.

전씨는 “죽으면 화장해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족들은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임에도 내란죄로 실형을 받은 전씨는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다. 정부도 5·18을 간접 사과한 노태우씨와 달리 전씨는 국가장을 하지 않기로 했고, 청와대와 여야 대선 주자들도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군내 불법 사조직을 이용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을 학살한 두 정치군인이 28일 간격으로 세상을 떴다. 오명을 벗지 못한 두 사람의 쓸쓸한 죽음이 결코 되풀이되어선 안 될 역사의 교훈으로 새겨지길 바란다.


[경향 사설] 갈피 못 잡는 민주당, 열린민주 합당 넘어 전면 쇄신해야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열린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키로 했다. 당 쇄신을 요구하는 초선들의 쓴소리가 이어지고, 정치제도를 개혁할 혁신위원회도 구성키로 했다. 대선 후보와 당 지지율 모두 야당에 밀리고, 국정에서도 굼뜨고 무기력한 ‘공룡여당’ 행태에 급기야 당내에서 경고음과 몸부림이 터져나온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변화를 모색하는 당에 진정성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단순히 정치세력 간 통합을 넘어 집권여당 전면 쇄신의 계기가 돼야 한다.

열린민주당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친문재인 성향의 여당 공천 탈락자들과 각계 전문가들이 급조한 의석 3석의 비례정당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지원하고 검찰·언론 개혁을 추동하겠다는 기치를 앞세웠지만, 개정 선거법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허점을 파고든 또 하나의 ‘위성·기생 정당’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정치적 가치와 지향이 대동소이한 양당의 통합은 대선 앞 범여권 정치세력 간 재결합일 수 있다. 그러나 선거법을 희화화한 자성이 전제돼야 하며, 여당은 또 다른 위성정당이 출현하지 않도록 선거개혁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집권여당의 변화와 각성은 보다 근본적일 필요가 있다. 초선인 이탄희 의원은 169명 의원 전원이 포진한 선대위가 의사결정과 소통의 역동성을 잃었다며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았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이렇게 유유자적 여유 있는 분위기는 참패한 2007년 (대선) 때 보고 처음”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대선 후보만 죽어라 뛰고, 의원들은 지방선거나 챙기며 절박함이 없는 당이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질 때는 의원들이 여의도에 있었고, 2017년 이길 때는 다 현장에 가 있었다”며 지금은 모두 여의도에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세 사람 모두 코로나19 방역 위기나 요소수 사태까지 덮친 국정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고 대선 경고등도 켜진 집권당의 현주소를 냉정히 짚었다.

‘지리멸렬’은 조직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웰빙’은 역사적 소명 의식이나 당·국가의 현실을 망각하고 각자의 살길과 편안함만 도모하는 정치를 비유한다. 경선 후유증이 한 달을 넘도록 무사안일하고 국정주도력마저 약해진 집권여당은 ‘지리멸렬·웰빙’ 정당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무력하고 민심에 둔감한 집권당은 민생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은 안팎의 쓴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역사 앞에 겸허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쇄신과 정풍(整風)의 고삐를 당기길 바란다.


[경향 사설] 회담 194분 동안 맞서면서도 협력 다짐한 바이든과 시진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화상을 통해 첫 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194분 동안 양국 간 현안과 글로벌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 두 정상은 이날 대만 문제 등 주요 쟁점에서 첨예하게 맞섰다. 그러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의 경쟁이 직접적인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미·중 지도자로서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고, 시 주석은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했다. 지구촌의 지도국가인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회담을 갖고 양국 간 전략 경쟁의 상황 관리 및 대화·협력 필요성에 공감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양국은 이를 계기로 지구촌의 안정과 현안 해결을 위해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의 파고가 날로 높아지는 터라 이날 회담에는 전 세계의 눈길이 쏠렸다. 양국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쳐온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이견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해협에서 현상을 변경하는 중국의 행동에 반대한다고 하자 시 주석은 대만 독립 세력이 도발한다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맞섰다. 바이든은 이밖에 홍콩과 신장의 인권 상황,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경제 관행, 중국의 항행의 자유 위협 등도 쟁점화했다. 시 주석도 “양국 무역·경제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두 정상은 이러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은 충돌로 번지는 것은 막자는 데 공감했다. 과거 냉전 때와 달리 양국이 경제와 산업으로 얽혀 있는 데 따른 귀결이지만 대결 자제를 다짐한 것은 다행스럽다.

G2인 미·중이 협력해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에 책임이 있다”(바이든)거나 “기후변화, 코로나19를 포함한 지구적인 도전은 모두 건전하고 안정적인 중·미관계를 필요로 한다”(시 주석)는 인식은 당연하다. 두 정상은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에 대해서도 견해를 교환했다고 했다. 북핵 문제를 뒤로 제쳐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심도 있고 전향적인 논의가 있었기를 기대한다. 두 정상이 건설적인 회담을 했다면서도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을 내지 못한 것은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양국 간 협력은 너무나 절실하다. 양국은 회담을 계기로 더욱 소통을 강화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당심 업고 승리한 윤석열, 수권능력·확장력 시험대 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뽑혔다. 1~4일 당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 50%씩 반영한 경선에서 47.85%를 얻어 홍준표 후보(41.50%)를 6.35%포인트 차로 눌렀다. 윤 후보는 36만3569명(63.89%)이 참여한 당원투표에서 57.77%를 받아 홍 후보(34.80%)에 압승을 거뒀고, 여론조사에선 48.21%를 점한 홍 후보에 밀려 37.94%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투표율을 보인 ‘당심’의 압도적 지지로 10.27%포인트나 밀린 ‘민심’을 뒤엎은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 3월 검찰총장직을 끝으로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감하고 6월29일 정치에 뛰어든 지 4개월 만에 제1 야당의 대선 후보 자리에 올라섰다.

윤 후보는 수락 연설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 분열과 분노의 정치, 부패와 약탈의 정치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또 “이번 대선은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의 싸움이자 합리주의자와 포퓰리스트의 싸움”이라며 경청·소통하고 법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내로남불’이 없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잇단 실언과 오도된 역사·노동관으로 공격받은 ‘윤석열의 정치’ 지향점을 상식·공정·법치·합리주의로 잡고, ‘정권 심판’을 대선 승부수로 띄웠다.

윤 후보로선 “처음 하는 일에 부족함도 많았다”고 했듯 채우고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의 화학적 융합과 ‘원팀’ 구축부터 시급해졌다. 경선 패자들의 “깨끗한 승복”으로 부담은 덜었지만, 세대·남녀·지역별로 갈라진 당심을 치유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경선 막판 여론조사에서 ‘398 지지율(20대 3%, 30대 9%, 40대 8%)’을 받기도 한 2040세대의 거부감, 스스로 키운 호남과의 불화, 홍 후보에 밀려 37%대에 그친 차가운 민심도 그가 넘어야 할 벽이다.

국민의힘 경선은 실언과 ‘지식배틀’과 ‘이재명 공격’밖에 없었다는 혹평을 받았다. 비전과 정책은 뒷전이었다. 그 책임에서 윤 후보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주 120시간 노동’ ‘후쿠시마 원전은 방사능 누출 없다’ ‘손바닥 왕(王)자’와 ‘전두환 옹호’ 논란을 일으킨 것은 윤 후보였고, 부적절한 ‘개 사과’에서 보듯 위기 대처 능력도 도마에 올랐다. 윤 후보는 자신이 지휘하던 검찰의 선거개입 문제가 불거진 ‘고발 사주’ 사건과 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부인·장모의 여러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해야 한다. 약속한 경선 후 ‘광주 사과’ 방문에도 세간의 눈이 쏠릴 것이다. 윤 후보의 수권능력과 본선 확장력이 시험대에 섰다.

이제 125일의 대선 레이스는 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윤석열·정의당 심상정·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1~4번을 다는 다자구도로 출발한다. 벌써부터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라는 비판 여론이 높다. 대한민국의 미래 설계도가 보이지 않는 대선은 정치혐오와 무관심만 키울 뿐이다. 대선까지 4개월이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여야의 비전·정책 대결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사죄에는 시한 없음’ 확인한 노태우 국가장·파주 안장 결정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가 오는 30일까지 닷새간의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장례위원장을 맡고 정부가 영결식과 안장식, 빈소 설치·운영과 운구를 주관한다. 장례기간 공공청사에는 조기를 걸고 분향소도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장지는 국립묘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정했다. 유족 측은 파주 통일동산을 원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심의·결정한 국가장과 달리 금고 이상 실형이 확정된 자의 안장을 금지한 국립묘지법이 적용된 것이다.

고인의 빈소에는 여야 대선 주자와 지도부, 사회 각계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광주시는 조기나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5·18단체와 광주시민들은 이런 예우도 과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다.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보내 간접 조문했다. 이처럼 엇갈린 예우는 ‘직선 대통령’의 공적을 평가하면서도 ‘내란·수뢰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는 시민들의 뜻을 반영한 결과다.

현행 국가장법은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 추앙을 받는 사람’(1조)을 대상자로 하고, 전·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가 서거하면 적용하도록 정했다. ‘중대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어 노 전 대통령이 국민 추앙을 받는 사람이냐는 반론이 나왔다. 이런 시비는 전두환·이명박·박근혜씨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가장법은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국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김구 주석 등 14명이 치른 ‘국민장’을 2011년 통합한 것이다. 국회에는 지금 국립묘지법처럼 국가장도 ‘유공자 예우 기준’에 따르자는 ‘전두환 국가장 배제법’이 제출돼 있다. 차제에 국민적 공론을 모아 모호한 관련 규정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하기로 결정한 데는 “용서를 빈다”는 그의 유언장과 아들 재헌씨의 5·18 대리 사과, 추징금 완납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작용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들은 국가장 시비를 계기로 역사적 사죄엔 시한이 없음을 새겨야 한다. 특히 5·18 진실에 대한 고백도 추징금 납부도 거부하는 전두환씨는 더더욱 각성하기 바란다.


[경향 사설] 꼬리에 꼬리 무는 ‘대장동·법조 커넥션’ 낱낱이 밝혀야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법조계 유착 의혹이 커지고 있다. 다수의 전관 법조인이 거명되는 가운데,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권순일 전 대법관이 의혹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박 전 특검은 사업 초기부터 시행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연을 맺고 관련 사건 변호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그는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고, 딸이 화천대유에서 일하다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먼 친척인 분양업자에게 100억원이 흘러들어간 사실도 파악됐다. 국정농단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그의 추락이 유감스럽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박 전 특검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대장동 사업에 1100억원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부산저축은행 관계자 A씨의 변호사로 선임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를 연결해 준 이가 김만배씨다. 박 전 특검은 A씨의 사건 내용을 확인하고 수임료를 낮춰 같은 법무법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고 한다.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 수사에서 대장동 PF 건은 제외됐다. A씨는 다른 건의 참고인으로만 조사받았다. 주임검사는 중수2과장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었다. A씨는 2015년 검찰의 대장동 사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수부 수사의 부실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 전 특검은 “정당하게 변호활동을 했다”는 입장이고, 윤 전 총장 측도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권 전 대법관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해 무죄 쪽에 섰는데,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다 김만배씨가 권 전 대법관 퇴임 전 8차례 방문한 기록이 나오면서 의혹이 커졌다. 결국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권 전 대법관 등을 포함한 퇴직 법관의 취업제한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법원 조직과 판결에 대한 불신이 재연돼 안타깝다.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은 말했다. “부족 시대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날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정의 실현의 도구가 돼야 할 법을, 사익을 위해 악용한 법률가가 있다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화천대유와 법조인들 사이의 커넥션을 밝혀야 하는 까닭이다.


[경향 사설] 한·일관계 외면한 채 납치자 문제만 언급한 기시다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또 중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에 대해서는 중국이 CPTPP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1년여 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을 언급하면서도 한국은 쏙 뺐다.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메시지가 없어 유감스럽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 전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터라 한국 무시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기시다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비판한 것은 물론 2019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강경 입장을 보였다. 이번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도 아베 전 총리가 임명한 외무상·방위상을 유임시키고, 관방장관에는 2012년 일제하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내용의 의견 광고를 아베 전 총리와 공동으로 미국의 지역신문에 낸 인물을 앉혔다. 게다가 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북한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협조만 구했을 뿐 한·일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당분간 관심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에 맞춰 축사를 보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한국 내 일본기업의 자산매각과 수출 규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현안을 푸는 방법은 대화 외에는 없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온건파로 통한다.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오로지 한국 정부에 돌릴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태도로 접근한다면 문제를 풀지 못할 것도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이날 첫 기자회견에서 “이웃 나라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중국, 한국 등과 고위급 의사소통을 계속해 왔다”고 소개했다. 양국 정부 모두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오는 31일 앞당겨 실시되는 일본 총선 이후 기시다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북한도 주목한 종전선언, 한반도 교착 푸는 마중물 되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4일 한반도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이고, 남측이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관계 회복을 논의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전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 것이다. 남북과 당사국들의 종전선언 논의가 한반도의 대화 물꼬를 열지 주목된다.

김 부부장은 이날 오후 1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지금 때가 적절한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종전선언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전제하고, 그 선결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이중기준’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한·미 연합훈련이나 SLBM 시험발사는 ‘억지력 강화’라고 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걸로 해석된다.

김 부부장 담화는 형식과 시점 모두 눈길을 끈다. 북한은 앞서 이날 오전 6시 외무성 부상 명의로 종전선언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이 발표가 있은 지 7시간 뒤 김 부부장이 한발 더 유화적인 담화를 내놓았다. 같은 사안에 대해 하루에 두 번이나 메시지를 내보낸 것이다. 나아가 김 부부장은 “앞으로의 언동에서 매사 숙고하며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얼마든지 북남 사이에 관계 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남측에 공을 넘기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도 비쳤다고 볼 수 있다. 한·미의 대화 손짓에 어깃장을 놓거나 무반응하던 북한이 “앞으로의 언동”을 기준 삼겠다고 한 것은 유의미한 변화일 수 있다. 남한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한 셈이다.

남북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남북공동선언에서 이미 3자·4자 틀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귀국길에 “종전선언은 평화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며 이 ‘정치적 선언’에 관련국들도 공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도화된 북핵 문제와 연계된 협의가 불가피하지만, 북한도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는 미 바이든 정부와 대화하는 게 유리한 시점이 됐기에 제안했다고 했다. 북한이 다시 주목한 종전선언은 한반도 교착을 푸는 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북·미도 종전선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고리 삼아 핵과 대북 제재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임기를 8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는 마지막까지 중재자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초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두가 평화를 향해 전진하려는 때에 유력 대선 주자들이 앞장서 전술핵 재배치를 외치며 ‘냉전의 섬’에 갇히는 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경향 사설] 한·미·일 협의·왕이 방한 중 탄도미사일 발사한 북한

북한이 15일 낮 평안남도 양덕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다. 지난 11·12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지 이틀 만이다. 더구나 이날 발사한 것은 유엔이 결의해 금지한 탄도미사일로 순항미사일과도 성격이 다르다. 북한이 올 들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유엔이 금지한 미사일을 포함해 연속으로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강한 유감을 표한다.

이번 북의 군사 도발은 그 시점이 매우 미묘하다. 한·미 북핵 협상대표는 전날 비핵화와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을 밝혔다. 또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기간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는 왕이 부장 방한의 최대 의제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용 외교장관은 이날 왕이 부장을 만나 북한의 대화 복귀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협조와 지지를 당부했고, 왕이 부장도 화답하던 터였다. 이 점에서 북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이런 한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이틀 전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화를 재개하는 방향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밝힌 왕이 부장으로서도 무척 곤혹스럽게 됐다.

북한이 민감한 상황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유는 몇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무기체계 고도화 목표를 달성하려는 북한의 시간표에 따른 것이다. 마침 이날 국방부는 문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했다. 세계 7번째로 SLBM을 개발한 한국을 향해 북한도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향한 대화 촉구 메시지이기도 하다. 북한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 시한을 앞둔 지난 3월25일 첫 탄도미사일을 쏜 바 있다.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러시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압박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유엔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용한 대화 촉구 메시지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미국 내 여론을 악화시켜 아프간 철수로 궁지에 몰린 바이든을 압박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신형 SLBM을 발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북한이 진정 대화를 원한다면 더 이상의 도발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한국과 미국이 대화 카드를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을 북한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경향 사설] 관계 개선 의지 드러낸 미·중 정상의 전화 회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전화 회담을 했다. 지난 2월 첫 통화 이후 7개월 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이 경쟁으로 인해 충돌에 빠질 이유는 없다”면서 “미·중관계를 정상 궤도로 회복시키기를 원한다”고 했다. 시 주석도 “한동안 중·미관계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과 세계 각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양국 협력을 강조했다. 두 정상 모두 양국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두 정상의 통화는 바이든이 대외정책의 중심을 중국으로 전환하면서 미·중 갈등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져 향후 양국 관계 변화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두 정상 간 통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2월 전화 회담 때와 내용이나 분위기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당시 두 정상은 홍콩, 대만, 신장 등 두 나라 간 현안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바이든이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지고, 향후 양국 관계에 암운을 예고했다. 실제로 두 정상 간 첫 통화 이후 미·중은 지난 3월 알래스카에서 고위급회담을 했지만 공동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후 7월, 8월 말~9월 초 두 차례 만나 현안을 논의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소통·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전화 회담이 바이든 제안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든은 지난달 31일 대국민연설에서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보내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중국을 자극해 미·중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바이든은 예상을 깨고 중국과의 갈등 악화에 제동을 걸며 적극적 관여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중국의 우려를 해소하려는 의도이거나, 정상 간 채널을 유지하는 차원이라 하더라도 결코 나쁜 신호는 아니다.

11일은 9·11 테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시달려온 국제사회는 안전한 세계를 갈구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해선 안 된다. 미·중 정상이 조속히 만나 양국 관계뿐 아니라 코로나19 사태, 기후변화, 경제 등 지구촌의 당면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위원장 구속에 민주노총 총파업, 노·정 관계 파탄 안 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구속 수감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두 번째다. 노동계 현안이 많은데 국내 제1노조인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유감스럽다. 갈수록 악화되는 노·정 관계가 파탄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찰은 이날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 경찰관들을 투입해 양 위원장을 강제로 구인했다. 양 위원장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시작되던 지난 7월3일 서울 도심의 전국노동자대회를 비롯한 여러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아왔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서 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것은 여러모로 불행한 일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때 철도노조 파업 집행부를 체포할 때와 같은 폭력적 진압은 없었지만 위원장을 본부 사무실에서 강제로 잡아간 것은 처음이다. 또한 불법집회에 대한 무관용 대응에 예외는 없어야겠지만, 혐의를 다 인정한 양 위원장에 대한 영장 집행이 그렇게 시급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두 명은 모두 불법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전임자인 김명환 위원장은 2019년 10월 불법집회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당시 노동존중 사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임기 내 최저임금 시급 1만원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 등은 물 건너갔다. 노동자의 산재 예방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도 누더기가 됐다.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마저 가석방됐다. 민주노총이 현 정부의 노동존중과 개혁 의지를 의심하며 코로나19 상황에도 대정부 강경 투쟁을 고집한 이유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20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향후 노·정 관계에서 또 다른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양 위원장의 구속으로 노동계가 자극받아 노·정 관계는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국가적 위기는 노·정 모두에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민주노총이 내세우고 있는 코로나19에 따른 불평등 해소 등은 무시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다. 그러나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명분도 실리도 얻기 힘들다. 집회에 대한 공동체의 우려가 크다면 민감한 시기를 피하는 게 옳다. 정부 또한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노동자의 기본권을 훼손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정 모두 파국을 피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경향 사설] 북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북·미협상 개시만이 해결책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징후가 있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연례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인데, IAEA는 보고서에서 영변 핵시설 내 5㎿ 원자로에 대해 “2021년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원자로 가동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원전 재가동이 대미 압박용으로 분석되는데 이를 방치할 경우 추가 무력시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의 핵 개발을 상징하는 곳으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반년 후인 그해 12월부터 북한은 가동을 중단했다. 국정원은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하게 공조해 (재가동 여부를) 추적 중”이라고 했다. 핵시설 재가동 자체가 특별히 위험한 행동은 아닐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영변 이외에 최소 5곳의 핵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다고 해서 핵 능력이 획기적으로 제고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제스처로 보는 게 타당하다. 미국이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추가 무력시위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터다.

하지만 북한이 현시점에 무력시위 등으로 대미 압박 수위를 높여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식량난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곤경에 처해 있다. 자칫 북한이 오판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한·미도 북한의 움직임을 내내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중동과 서아시아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 것은 맞지만, 지금 미국은 북한 문제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한 문제를 방치했다 핵 능력 고도화를 허용했다.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된다면 미국의 외교적 짐은 더 커진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IAEA 보고서를 두고 “우리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대화와 외교의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했는데, 외교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도 북한을 끌어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경향 사설] 또 다른 국제분쟁 촉발한 IS의 비인도적 카불 공항 테러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인근에서 지난 26일 연쇄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을 포함해 100명 가까이 사망했다. 탈레반 폭정을 피하기 위한 아프간인들의 필사의 탈출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민간인과 이들을 도와주는 미군을 겨냥한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비열한 행위다. 비인도적인 만행을 저지른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강력히 규탄한다.

테러 배후로는 IS의 아프간 지부인 호라산(IS-K)이 지목되고 있다. IS는 전 세계 비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성전을 기치로 내건 테러조직이다. 2010년대 중반 이라크·시리아에서의 참수 동영상 공개 등으로 악명이 높다. IS-K는 그중에서도 과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올해 1~4월에 IS-K가 77건의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많은 것이다. 탈레반과는 동맹관계였지만 탈레반이 미국과 아프간의 평화협상을 중재했다는 등의 이유로 2017년부터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미국과 탈레반 모두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이유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장악 후 ‘탈레반과의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번 테러가 그 신호탄이 될까 우려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4일 “IS-K가 미국인과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테러 공격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주아프간 미 대사관은 잠재적 보안 위협을 이유로 공항으로의 이동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미국이 사전에 IS-K의 테러 공격 가능성을 감지했음에도 막지 못한 것이다. IS-K의 추가 테러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탈레반의 협조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탈레반이 이번 테러로 최소 28명이 숨졌다며 오히려 이달 말 철수시한 연장 불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IS-K의 재부상으로 아프간 상황은 악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탈레반이나 미국 모두 부담스러운 일이다. 새 국가 건설에 매진해야 할 탈레반은 IS-K와의 전쟁까지 치러야 한다. 이미 아프간 철군 결정으로 곤경에 빠진 바이든은 IS에 대한 ‘보복 공격’을 천명했다. 향후 탈레반과의 관계 악화는 말할 것 없고 또다시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IS-K는 더 이상 비인도적인 테러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탈레반도 최소한 미국의 대피 작전이 끝날 때까지 치안 유지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경향 사설] 탈레반의 여성 인권 보호 약속, 국제사회가 주시한다

아프가니스탄을 20년 만에 재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7일 밤(현지시간) 대변인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반탈레반 세력과 화해를 약속했다. 반대자에 대한 보복 금지, 여성 권리 보장, 언론자유 허용, 외국과 평화적 관계 유지 등이 내용이다. 탈레반이 아프간 시민들과 국제사회를 향해 내놓은 첫 공식 메시지여서 주목된다. 약속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아프간에 긍정적 변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에는 ‘이슬람 율법’과 ‘국가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는 조건이 있어 과거 탈레반이 보여준 극단적 이슬람 율법 정치가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탈레반 재집권에 가장 불안을 느끼는 이는 여성들이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집권하면서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앞세워 여성의 권리를 짓밟았다.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일터에서 남성과의 접촉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이기도 했다. 만약 이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을 다시 편다면 탈레반 정권은 결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용인될 수 없다.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탈레반은 새로 출범할 정권이 과거 집권 때와 분명히 달라질 것임을 강조했다. 탈레반은 전신을 덮는 부르카 대신 히잡을 쓴 국내 여기자에게 탈레반을 상대로 한 취재활동을 허용하고, ‘여성에게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인 여성 두 명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벌써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이 총살되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과거 미군과 연합군에 협조한 시민들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소셜미디어에 남겨진 탈레반 비판 기록들을 지우는 데 안간힘을 쓰는 것은 다 탈레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계속 집권하려면 정상국가가 되는 길밖에 없다. 탈레반의 공동설립자이자 2인자로 카타르에서 평화협정 협상에 나섰던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아프간으로 귀국한 것은 탈레반 새 정권의 공식 출범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탈레반은 새 정부 구성과 함께 신속하게 약속을 이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탈레반이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속 이행의 의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은 새 정부 구성에 여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의 엄격 적용을 완화하는 조치를 할 필요도 있다. 전 세계가 탈레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향 사설] 북에 ‘공존’, 일에 ‘대화’ 언급한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을 향해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동독과 서독이 신의를 쌓으면서 보편주의·다원주의·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 모델’을 만들고 45년 분단을 끝낸 것처럼, 남북도 공존·비핵화·평화 등을 골자로 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자고 한 것이다. 일본을 향해선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다만 대북·대일 메시지는 이전 광복절 경축사와 비교할 때 분량도 줄고 원론적이었다. 꽉 막힌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모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 큰 이익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전과 달리 평화협정·종전선언 등은 언급하지 않고, 구체적 남북협력 제안도 내놓지 않았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 2주 만에 끊는 등 남북관계가 꼬인 상황에서 섣부른 제안을 할 경우 대내외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 만큼, 남은 임기 9개월 동안 반전 계기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제안했던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언급하며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한·미 훈련 등을 빌미로 군사적 긴장을 강화할 생각을 접고, 방역·보건을 매개로 한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과거사와 미래협력을 ‘투트랙’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양국은 분업과 협력으로 경제성장을 함께 이뤘다”고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첨예한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한 점이 주목된다. 취임 후 다섯 차례의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가장 유화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날도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고, 일부 각료들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납득하기 힘든 행태를 보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일본의 성찰과 반성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경향 사설] 북 대화 의지 확인, 한·미는 군사훈련 조정 서두르라

한국과 미국이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진행 여부를 두고 막판 협의를 벌이고 있다. 청와대는 4일 “여러 상황을 고려해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했고, 미 국방부도 3일(현지시간) “훈련과 태세에 관한 모든 결정은 동맹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담화에서 “군사연습이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상황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보수야당이 ‘하명’ 논란을 제기하는 가운데 여당 내에서도 훈련 실시에 대한 의견이 갈린다. 남북 통신선 복원 이후 남북 및 미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훈련 일정은 조정하는 것이 옳다.

이번 훈련 조정의 가장 큰 변수인 북한의 대화 의지는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전날 국회 보고에서 “북한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에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식량난 등이 심각한 북한이 남측과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한 신호로 본 것이다.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살리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군사훈련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도 이번 훈련은 실시하기 어렵다. 한·미 군당국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부터 연합훈련을 대규모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는 실기동훈련이 아닌 전투지휘소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진행해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실내에서 진행되는 전투지휘소 연습은 야외 기동훈련보다 집단감염에 더 취약할 수 있다. 미국 본토에서 장병들이 국내로 들어와야 하는데 델타 변이가 확산하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한 선택이다.

문제는 국내 여론이다. 보수야당과 여당 일각에서는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사대비 태세를 점검하는 것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이양받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사훈련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절대 포기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수시로 훈련을 조정해왔고, 김영삼 정부 때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폐지한 바도 있다. 미국의 기본방침도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위해 군사적 조치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당국은 대화 동력을 살리기 위해 연기 등 훈련을 둘러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폐지가 아니라 연기나 유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 된다. 남북 및 북·미 간 대화 성사에는 언제나 분위기와 시기가 중요했다.


[경향 사설] 민주주의 흔든 여론 조작에 책임 물은 김경수 유죄 확정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와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지사는 도지사직을 잃고 재수감되며, 형기를 마친 뒤에도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21일 김 지사의 상고심에서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은 2017년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 4년여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김 지사가 김동원씨 등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에서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 ‘킹크랩’ 시연을 참관하고 조작을 공모했는지 여부였다. 김 지사는 이 같은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경공모가 ‘선플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을 뿐, 킹크랩에 대해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며 허익범 특별검사의 공소사실을 반박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김 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심의 업무방해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김동원씨 측근을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제안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무죄를 확정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작은 시민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공동체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의 여론조작은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 할 수 있다. 물론 드루킹 사건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댓글조작 사건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불법적 여론조작에 가담했다면 응당한 책임을 져야 옳다.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여론조작 시도는 드루킹 사건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김 지사는 상고심 선고 직후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는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며 “제가 감내해야 할 몫은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면서도 “집권여당으로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대변인 논평을 내놓았다. 다만 당 일부에선 “통탄할 일”(김두관 의원)이라는 등의 격렬한 반응도 나온다. 친문재인계 적자라는 김 지사의 정치적 위상과 이에 따른 충격파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집권당이 최고법원 판결을 비판하며 사법불신을 초래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국민의힘 역시 과도한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경향 사설] “군함도 강제노역 명시” 유네스코 결정, 일본 즉시 이행해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군함도(하시마)’를 둘러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따끔한 일침을 놨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조선인 등의 강제노역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충실한 약속 이행을 촉구한 것이다. 스스로도 인정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은 유네스코의 지적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제적 약속까지 깬 것을 부끄러운 줄 알고 즉각 약속대로 왜곡된 역사 기술을 바로잡아야 한다.

유네스코가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 개막에 앞서 12일 공개한 군함도 관련 의제 결정문의 내용은 명확하다. 일본이 군함도의 등재 이후 WHC의 거듭된 권고와 일본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공식 확인하고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군함도 등 메이지시대의 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며 “일본 정부의 징용정책 시행 사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이 군함도 등 자국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오히려 강제징용 역사를 왜곡해 한국은 물론 일본 시민단체들까지도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공식 조사기록을 보면 1943~1945년 사이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군함도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지옥섬’ ‘감옥섬’으로 불릴 만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징용자 전체의 20%가 죽어나갔다. 유네스코는 사토 대사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각 시설에 전체 역사와 강제노역을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일본과 달리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알리고 있는 독일 등 국제적 모범 사례도 거론했다.

일본은 유네스코의 이번 결정문 공개를 반성의 계기로 삼고 군함도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유네스코의 결정문은 그동안 외교부와 문화재청,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국제 사회와의 연대 등을 통해 일본의 약속 이행을 면밀하게 점검, 국제적으로 역사적 사실이 올바로 알려지도록 해야 한다.


[경향 사설] 여가부 폐지하겠다는 국민의힘, 분열의 정치 멈춰라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론화에 나섰다.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 등 대선 주자들이 총대를 메고, 이준석 대표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새로운 보수 지지층으로 부상한 20~30대 남성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점령군’ 논쟁으로 이념 갈라치기를 하더니 이젠 성별 갈라치기인가.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기는커녕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유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정부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건강은 보건복지부가, 취업은 고용노동부가, 성범죄는 법무부와 검경이 담당하면 된다는 논리다. 둘째,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주는 전리품”이라고 했다. 유 전 의원은 “어느 여가부 장관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국민들이 성인지를 집단 학습하는 기회’라고 했다”며 이정옥 전 장관을 예로 들었다.

그의 논리는 허점투성이다. 첫째, 모든 부처가 나눠 맡게 되면, 어느 부처도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여성정책 국가기구가 정무제2장관실로 출발해 대통령 소속 여성특별위원회로 격상되고, 부처별로 분산된 업무를 총괄할 여성부(현 여가부)로 변화해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둘째, 수많은 부처에서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가 장관에 올랐는데, 왜 여가부 장관만 ‘전리품’으로 취급하나. 또한 특정 장관이 잘못했다고 그 부처를 폐지하면 남아날 부처가 없을 것이다. 유 전 의원은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은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청년의 고통과 절망은 이런 평면적·대증적 처방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경제·노동·복지 정책을 망라하는 총체적 처방이 필요하다.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던 이준석 대표는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폐지할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는 게 해법 아닌가. 지금 국민의힘은 엄존하는 성차별 구조를 외면하고, 젠더 갈등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꼼수에 넘어갈 주권자는 많지 않다. 국민의힘은 시민과 시민을 갈라치는 ‘분열의 정치’를 당장 멈춰야 한다.


[경향 사설] 글로벌 조세정의 강조한 130개국 법인세율 최저 15% 합의

법인세율 인하는 최근 국제적인 추세다.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명분인데, 일부 국가는 세율을 10%까지 내려 외자 유치에 나섰다. 실제로 글로벌 다국적 대기업은 세율이 낮은 조세회피처를 찾아 본사를 옮겼다. 법인세율 인하 경쟁은 주요국 법인세수 감소를 초래했고, 사회복지 수요 증가를 감당하려면 소비세와 소득세 등 세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에 경감시켜준 부담을 시민이 떠안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조세 환경을 악화시켰다. 디지털 거래 활성화로 정보기술(IT) 기업은 이익이 폭증했다. 반면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은 소득이 급감했다. 각국은 실업대책과 경기부양에 돈을 쏟아붓느라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대한 130개국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최저세율은 15%로 하고, 글로벌 대기업 이익 일부를 매출발생국이 과세(디지털세)하도록 한 규정이다. 지난 100년간 유지돼온 국제조세 원칙을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법인세를 피하려고 낮은 세율 국가를 전전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꼼수를 차단하면서 국가 소비자를 상대로 돈을 벌고도 본사가 다른 국가에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는 횡포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하다. OECD는 최저 법인세율로 약 170조원, 매출발생국 과세로 약 113조원 증세 효과를 예상했다.

한국은 법인세율이 25%여서 최저 법인세율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 매출 27조원 이상·영업이익률 10% 이상’에 해당돼 매출발생국 과세 적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국내에서 거액을 벌어가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으로부터는 법인세 일부를 징수할 수 있다. 2023년 시행을 목표로 하는 이 제도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우선’ 압박이 거세질 수 있는 만큼 불이익이 없도록 정부는 대비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세부담이 늘거나, 한국의 세수가 줄어들 우려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경향 사설] 인도주의 협력 논의·워킹그룹 폐지, 대화로 이어져야

방한 중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문재인 대통령,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김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남북 간 의미 있는 대화·관여·협력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을 만나서도 “우리는 남북 간 의미 있는 대화와 협력, 관여를 지지한다”고 했다. 한·미는 전날 대북 문제 실무협의체인 한·미 워킹그룹 폐지에 전격 합의했다. 이 같은 조치가 남북을 거쳐 북·미 대화 재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미 워킹그룹을 폐지하는 것은 작지 않은 변화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비핵화, 남북 협력, 대북 제재 현안 등을 조율할 목적으로 2018년 11월 출범했다. 하지만 대북 제재 문제 창구를 하나로 통일시켰다는 의미보다는 그동안 남북 교류의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6월 워킹그룹을 남북관계 파탄 배경의 하나로 지목했다. 물론 워킹그룹을 폐지한다고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대북 제재 기조가 그대로인 한 남북 교류·협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대북 제재 관련 6건의 행정명령을 1년간 연장시켰다. 당분간 대북 제재를 완화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도 이날 최근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신호로 읽었다면 이는 ‘잘못된 기대’라고 밝혔다. 북한이 쉬 대화 테이블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김 부부장의 미국을 향한 비난의 강도가 높지 않은 데다 북 주민들과는 무관한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부정적인 신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의 잇따른 대화 제의에도 북한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미는 이번 김 대표 방한을 통해 만든 대화 동력을 지속적으로 살려나가야 한다. 긴밀한 협력으로 북한이 조기에 대화 테이블로 복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 통일연구원은 이날 북한 당국의 식량가격 조정 시도가 이미 한계에 부닥쳤을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해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이 코로나19와 식량 등 민생 분야를 중심으로 시급히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려는 정부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경향 사설] “대화·대결 다 준비하라” 한 김정은, 미는 대화 카드 내놔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하면서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18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회의에서 “국가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면서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되는 상황에 기민하게 반응·대응하며 조선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내놓은 첫 공식 반응으로, 한국과 미국을 향한 비난을 절제하고 대결과 더불어 대화를 언급한 점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당대회 때 미국을 최대 주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남측에 대해서도 한·미 군사훈련 등으로 남북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거세게 비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날 대화와 대결을 동시에 말한 것은 한층 유연해진 메시지로 대화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고 볼 수 있다. 여전히 대결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대화를 언급한 것은, 당분간 상황 관리를 하면서 대화 여건이 마련되면 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언급한 점도 당분간은 도발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미 및 남북관계에 변화의 모멘텀이 생길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날 북한의 발표를 살펴보면, 북한은 당장 대화에 나서기보다 핵무력 증강 등 전략적 지위와 유리한 환경 조성 노력을 계속하면서 향후 상황에 따라 강온 양면으로 대응할 공산이 크다. 한·미 당국은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올해 식량난이 예상된다고 밝히고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도 주문했다. 식량난과 방역은 인도적 문제에 해당하는 만큼 대북 제재와 무관하게 한·미가 지원할 수 있다. 더불어 주목되는 것이 8월로 예정된 한·미 훈련의 조정 여부다.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전날 “한·미 훈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의 대화 복귀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당장 한·미 군 당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훈련을 유예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9일 방한해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한다.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카드가 나오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한국 외교의 도전과 기회가 될 G7 정상회의

문재인 대통령이 11일부터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G7 정상들이 대면하는 이번 회의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이 인류 공통의 문제 해결을 주도할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과 함께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한다.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G7 정상회의는 우선 코로나19 사태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관심의 초점은 서구 주요국들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 어떤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느냐에 쏠린다. 한국을 비롯한 초청국도 참가하는 G7 확대회의 제2세션 ‘열린사회·경제’에서 이 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G7 국가들만 참여하지만 한국 등 초청국까지 포함된 세션 성명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백악관이 지난 8일 반도체·배터리·희토류·제약 등 4대 분야 공급망 구축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중국에 대응하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체계를 G7 정상회의에서 협의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회원국들 간 견해 차이가 있어 미국의 구상대로 대중국 견제 대오가 꾸려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사회 주도권 회복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그에 부합하는 결과물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으로서는 G7 정상회의가 도전인 동시에 기회이다.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의제 논의에 참가함으로써 동북아로 한정돼 있던 외교지평을 글로벌 차원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다. 반면 이번 회의가 서구의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하는 기점으로 자리매김된다면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선 도전이 된다.

한국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담았지만,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한반도 특수한 상황, 지리적 인접성 등을 고려할 때 중국과의 협력관계 유지는 한국 외교의 기본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활용하면 한국이 미·중 경쟁의 완충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이번 회의가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한국의 입지에 대한 국제적인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경향 사설] 이해할 수 없는 일본과 IOC의 올림픽 개최 우격다짐

다음달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 개최 불가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언론은 각국 정상 등이 참석하는 도쿄 올림픽 폐막식 리셉션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4일 전했다. 앞서 도쿄도 고가네이시 의회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취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일주일 하루 평균 2926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일본 인구는 한국의 2배지만 확진자는 5배가량 많다.

도쿄 올림픽은 정치를 초월한 인류의 축전이라는 취지에 어긋나고 있다. 일본은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어기고 도쿄 올림픽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가 자기네 땅인 양 표기했다.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한국의 항의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독도를 표시한 한반도기에 일본이 반발하자 IOC는 독도 삭제를 권고했고, 한국은 받아들였다. 일본의 일부 대표팀 유니폼에 욱일승천기 디자인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화합의 장이 돼야 할 올림픽에서 욱일기를 맞닥뜨리는 것은 일제에 침탈당했던 아시아인에 대한 모독이다. 일본 정부와 IOC는 우격다짐식 올림픽 강행을 접고 한국과 아시아국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4일 독도의 일본 영토 표기와 관련해 “도쿄 올림픽 보이콧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독도 수호 의지의 표명이지만 올림픽을 준비해온 선수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보이콧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고 시민들의 뜻을 모아 신중히 결정할 사안이다. 독도와 욱일기 문제도 먼저 IOC를 설득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풀어야 한다.

올림픽 개회가 50일이 채 안 남았다. 현실적으로 올림픽이 열릴 경우에 대해서도 관련 당국이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한국 선수단 규모는 최대 1300명으로 추산된다. 27개 종목 출전 선수는 240명뿐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코칭스태프와 지원인력, 취재기자단이 동행한다. 대한체육회는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 의사 2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도 역학조사관 1명을 파견한다. 코로나19가 성행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올림픽에 이 의료인력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선수촌과 주요 호텔에 공급한다는 일본의 방침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책무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경향 사설] ‘싱가포르·판문점 선언’ 계승한 한·미 정상, 북한 화답하길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문제와 코로나19 백신, 반도체·배터리 협력 등 다방면의 현안에 대해 밀도 있게 협의했다. 양 정상은 마스크를 벗은 채 단독·확대 회담을 열었으며, 예정시간을 1시간 넘긴 2시간51분에 걸쳐 마라톤 대화를 나눴다.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양국이 상호존중 기조하에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 데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문제에서 양 정상이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선언과 6월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해 외교를 통한 대북 접근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부인하지 않고 계승키로 한 것은 북·미 협상의 연속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타당한 대북 접근임을 확인한 의미도 있다.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간의 대화, 협력, 관여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별도로 명기돼 한국 정부의 남북대화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성 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했다고 전격 공개했다. 한반도 상황과 북·미 협상에 정통하고 북한과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인사를 대북특별대표로 기용한 것은 북한의 대화 부담을 낮출 뿐 아니라 한·미 간 정책조율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정식 국호인 ‘DPRK’를 언급하고,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공동성명에 명기해 북한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구미에 꼭 맞는 유인책은 없었지만, 대북정책을 외교 우선순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는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화의지를 제대로 평가하고, 호응하기를 기대한다.

공동성명에는 쿼드,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방안도 담겼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사안들이어서 한국이 미·중 균형외교에서 미국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를 800㎞로 제약해온 한·미 미사일지침이 42년 만에 종료된 것도 로켓개발 주권을 확보하고 우주개발 산업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보다 ‘대중국 견제’ 가능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반응이 주목되지만, 중국 문제에서 원론적 언급을 벗어나지 않은 만큼 정부는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 그간 한·중관계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정상회담에 앞서 삼성·현대차·SK·LG도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분야에서 4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양국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데 요긴한 투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안보와 경제는 물론이고 백신, 반도체, 원자력, 우주탐사, 기후변화, 녹색협력, 여성·아동 인권 등 다방면에서 한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한·미가 글로벌 현안에서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한 회담으로 평가될 만하다. 한국이 동북아의 좁은 틀을 넘어 국제사회에서 다각도로 국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시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의 외교지평을 확장하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만 ‘글로벌 역할’과 ‘한반도 평화’ 간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경향 사설] 우려스러운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의 ‘미군 역외 투입’ 발언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미국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주한미군의 운용과 관련해 우려할 만한 발언을 했다. 라캐머러 지명자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 답변 자료에서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사령관에게 역외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우발계획과 작전계획에 주한미군의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 했다. 지명자가 말하는 역외, 즉 한반도 밖에서의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은 중국과의 무력 충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 경우 주한미군도 투입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주한미군을 중국에 대응하는 데 활용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발진기지로 해 전력을 중국과의 분쟁에 투입할 경우 한국이 미·중 갈등에 휘말릴 위험성이 커지게 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구상은 조지 부시 행정부 때 구체화됐다. 이에 한·미 양국은 2006년 ‘미국은 주한미군을 역외 분쟁에 투입할 수 있으나,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어정쩡한 절충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라캐머러 지명자는 또 청문회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중요하다는 여야 의원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미 모하비사막에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병력을 모아놓고 함께 훈련하는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또 “탄도미사일방어 분야의 신기술은 유망한 억지 효과를 제공하며 나는 그런 능력을 한반도에 처음 배치하는 데 대해 확고한 지지자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 신기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모두 중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하는 내용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어 우려스럽다. 이런 민감한 발언을 과연 한국과 협의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기지를 제공하고 매년 1조원이 넘는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때문에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휩싸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올 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주한미군의 운용을 연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라캐머러 지명자 발언의 진위를 따지고 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


[경향 사설] 희생자 절반이 어린이·여성, 이스라엘 폭격은 전쟁범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8일째 이어지면서 민간인 사망 등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는 이미 최소 197명이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92명이 여성이나 어린이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외신들이 16일 보도했다. 사망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2명이 어린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인명 피해는 작다. 비무장한 민간인 다수를 숨지게 한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폭격은 반인도적 전쟁범죄로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이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강점한 동예루살렘 인근에서 국제법상 금지된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는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억압정책을 계속해왔다. 이번 무력충돌을 부른 하마스의 지난 10일 로켓공격도, 이스라엘 경찰이 7일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에 난입해 물리력을 행사한 것에 대한 반격에서 비롯됐다. 부패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대 아랍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치적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일부러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먼저 로켓포 공격을 한 하마스의 행동도 문제이지만,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의 보복공습은 정당방위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이스라엘군은 무장한 하마스의 기지로 추정된다며 무차별적으로 팔레스타인 측 민간인 거주지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지난 16일에는 미국의 AP통신과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방송 등 외국 언론사들이 입주해있던 건물을 공습해 붕괴시켰다. 가자지구 참상을 보도하는 언론 보도를 막으려는 반인권적·반문명적 행태로 강력히 규탄받아 마땅하다. 가자지구의 병원은 이미 아비규환으로 의료 환경이 취약한 현지에서 부상자 치료가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된다.

문제는 중재에 나서야 할 유엔 등 국제사회가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공동성명 채택을 무산시켰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진정성을 입증하고 싶다면 당장 외교적으로 개입해 이스라엘의 비인도적인 보복 공습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경향 사설] 부동산 반성, 사면 신중, 북 대화 촉구로 5년차 연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특별연설 및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고, 4·7 재·보선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거듭 심각성을 인정한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11월 집단면역 달성 목표를 앞당길 것”이라고 했고, 올해 4% 이상 성장과 일자리를 위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전했다. 30분간 진행된 특별연설에서는 경제를 48회, 코로나 26회, 회복 21회, 일자리를 15회 언급했다. 임기 마지막 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둔 것은 바람직하다. 민생 부문 성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문 대통령은 당·정·청이 논의 중인 부동산정책에 대해 ‘보완하되 투기 차단, 실수요자 보호, 공급 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정책의 큰 방향과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분적인 보완책을 마련토록 지시한 것이다. 부동산당국은 집값 급등으로 커진 1주택·실거주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되 종부세 강화 기조를 건드리면 부동산 가격은 더 폭등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늦어진 점을 아쉬워하면서도 “우리의 방역 상황에 맞춰 계획대로 차질없이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K방역’의 성과를 깎아내리거나 근거 없는 불안감을 선동할 이유가 없다고 경계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두고 사법 정의와 형평성, 국민 공감대와 의견을 보며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신년회견 당시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보다는 한발 더 숙고해나갈 뜻을 비쳤으나, 여전히 신중히 판단할 문제로 짚었다.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이미 잡힌 방향을 안착시켜나가면서 완전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원전수사 등을 보면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중립성이 진척돼있음을 상기시키고, 여권 강경파들이 추진하는 2차 검찰개혁(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제도적으로 연착륙된 뒤 보자고 교통정리한 것이다.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에 대해서는 “거칠고 무례하면 오히려 지지를 더 갉아먹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을 ‘양념’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이 예의와 자제를 부탁한 것은 정치의 생산적 소통과 민주주의 확장을 위해 시의적절한 조치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방향과 거의 부합하고, 북한도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갈 기회가 온다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유인책을 더 많이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북한도 문 대통령 임기 내 미국과 대화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 이롭다는 점을 알고 남북·북미 대화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며 “그 1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첩첩이 쌓여있는 난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 대통령이 겸허한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고, 민생과 코로나19와 한반도 외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접경지서 또 날린 대북전단, 법도 관용의 선도 넘었다

탈북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25~29일 사이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강원 지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 소책자 500권, 1달러짜리 5000장을 대형풍선 10개에 실어 북한으로 보냈다고 30일 밝혔다. 3월30일부터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을 위반한 첫 사례다. 이 단체는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며 북한 인권을 위해 전단 살포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접경지 주민들도 반대하는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을 자극해 긴장만 고조시키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법에 따라 이 단체를 엄단해야 한다.

진보정부는 물론 보수정부 사례를 봐도, 대북전단 살포의 실익은 없었다. 북한은 대북전단을 체제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고 군사적으로도 민감하게 대응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 대북전단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지난해 6월엔 대북전단을 문제 삼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코로나19 사태 후 남북 대화까지 단절된 와중에 이번 전단 살포가 북한의 무력도발 빌미가 될까 우려스럽다. 이 단체는 북한 인권을 위해 전단을 뿌렸다고 했지만, 북한 당국의 단속 강화로 그 실효성은 적고 주민 통제도 심화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탈북단체들이 미국 인권단체 등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전단을 뿌린다는 비판이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대북전단 살포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계기로 삼으려는 정부 구상에도 암초가 될 수 있다. 지난 15일 미 의회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청문회에서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북한 인권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지만,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 압박으로 쏠린다면 한반도 정세는 ‘강 대 강’으로 맞선 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외교당국은 대북전단이 북한의 인권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한·미 간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바란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전단 살포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 위반을 자랑스럽게 공개한 탈북단체 행태는 결코 묵과되어선 안 된다. 어설프게 대처한다면 다른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법을 어기고 관용의 선도 넘은 대북전단을 엄벌해야 한다.


[경향 사설] 대화 끊긴 판문점 회담 3주년, 정부와 국회가 할 일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선언 3년을 맞은 27일 국무회의에서 “오랜 숙고를 끝내고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진통을 겪으면서 얻은 고통을 바탕으로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다음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하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멈춰선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3년이 됐지만 남북 현실은 냉엄하기만 하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의지 등을 담은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그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졌지만 이듬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는 얼어붙었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천명하지만 환경은 여의치 않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측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 북한이 대화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분히 상황을 관리하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길밖에 없다. 이 점에서 다음달 하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은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현시점에서 전략적 인내는 북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단계적 비핵화만이 현실적 해법이라는 점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더불어 추진할 것이 판문점선언이 역행하지 않도록 남측 내부에서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평화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는 2018년 9월 야당 반대로 좌초된 바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약속과 합의들이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에 의해 뒤집히고 남북관계 악화로 이어진 전례를 감안하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해결방안을 포괄해 ‘한반도 평화보고서’로 평가받은 판문점선언의 가치를 생각해도 국회 비준은 당연하다. 야당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경향 사설] 갈수록 강화되는 미·일 밀착, 커지는 한국의 우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첫 대면 정상회담인 이번 회담은 한마디로 미·일의 중국 견제를 위한 공동 대응 의지를 다짐한 자리였다. 양 정상은 “국제법에 기반을 둔 질서와 부합하지 않는 중국의 활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한편 홍콩과 신장위구르 자치지역 인권상황을 우려하는 등 다방면으로 중국을 견제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성명에 명기했다. 1972년 중·일 수교 이후 미·일의 공동성명에서 대만에 대한 언급을 피해온 관행을 깬 것이다. 일본이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평이 나온다. 미국은 대신 중·일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국의 일본 방위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임을 재확인했다.

이번 회담의 최대 의미는 일본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미국과 대중국 전선에 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상으로 중국 견제에 나선 바이든 행정부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판 삼아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본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미국은 앞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해서도 일본을 지지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전략적 지위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감안해도 미국의 일본 지지는 노골적이다.

중국이 회담 결과에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한 것은 예상한 대로이다. 우려되는 것은 미·일과 중국의 대치에 따른 동북아 긴장 격화와 그로 인한 여파가 한반도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긴장을 지렛대로 일본은 방위력을 한층 강화하고, 군사활동 범위 확대를 꾀할 것이다. 양국이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면서 한·미·일 3국 협력이 공동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한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취해온 한국을 향해 미·일 쪽에 서라는 압박으로 비친다.

미국은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해 올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일본과 엄연히 다르다. 미국도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한국외교의 목표라는 데 이의가 없다. 외교당국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익을 최대한 지켜내기 위한 최적의 시나리오를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 조만간 개각, 폭넓은 인선으로 정·청 쇄신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교체를 단행할 것이라고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홍남기 부총리와 상당수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의 교체가 거론된다. 중폭 이상의 개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정무수석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 일부도 교체될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국정을 쇄신할 수 있는 개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현 상황에서 개각의 필요성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4·7 재·보선 참패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면서 흐트러진 국정을 다잡기 위해서는 개각이 불가피하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3.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62.9%로 최고치였다.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평가로, 어떻게든 당·정·청 분위기를 일신할 개각으로 집권 후반기의 국정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이 될 이번 개각이 그 기회이다.

개각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폐해진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서민들을 옥죄는 부동산 문제 해결에도 확고한 의지와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 개혁과 공정의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는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추진해나가되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야당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야 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180석의 의석을 얻고도 시민·야당과 소통하지 않은 채 독주해 민심과의 괴리를 가져온 만큼 이를 개선해야 한다. 통합의 의미를 대폭 가미한 내각을 꾸릴 필요가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은 내각 인선이나 청와대 참모 기용에서 인재 풀이 매우 작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람들을 뽑아썼을 뿐 아니라 회전문 인사로 정·청을 채워온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그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만 기용하지 말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을 뽑아야 한다. 젊고 참신한 인물들의 파격적인 기용도 기대하고 싶다. 청와대 참모진으로는 최재성 정무수석의 교체와 함께 후임자도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소통할 수 있는 정무수석이 필요하다.

1년여를 남겨둔 정부에서 레임덕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직면해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 다짐을 실천하는 개각이 되어야 한다.


[경향 사설] 달라진 외교 환경 확인한 3국 회의, 한·중 회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3국은 북·미 협상의 조기 재개 노력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북한 비핵화를 위한 3국 간 협력을 다짐했다. 같은 날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위해 공동노력하는 한편 한·중 ‘2+2(외교·안보) 대화’를 복원하는 등 양국관계 발전을 위한 대화와 협력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거의 동시간대에 열린 두 개의 외교 일정은 한국이 처한 외교현실을 부각시켰다. 최소한 바이든 행정부 4년간은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한반도 평화를 이룩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3국 안보실장 회의를 통해 미국은 북핵 외교에서 일본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중시 기조로 존재감이 상승한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서도 목소리를 키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미관계 촉진 등 한국의 독자적 외교공간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 그 결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회의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에서 유엔 대북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이 “북한에 대한 관여의 중요성, 한·미 간 조율된 전략의 마련, 남북관계와 비핵화 협상의 선순환적 기능” 등을 강조했다고 하지만 그 입장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불투명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지가 줄어드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미국과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2+2(외교·안보) 대화의 복원이다. 2013년 신설됐다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중단된 ‘2+2 대화’를 재개하기로 한 것은 중국의 뜻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이는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음을 방증한다. 한국으로서는 양국 간 북핵 협력을 강화하는 채널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하지만, 미·중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이번에 도드라진 것은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방식이다. 대만을 지척에 둔 샤먼으로 정의용 장관을 급거 초청한 것은 미·중 경쟁에서 중국 편에 서라는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면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는 외교를 해야 한다. 정부도 대중 외교에서 좀 더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경향 사설] 영토·역사 왜곡 한층 강화된 일본 교과서 검정결과 규탄한다

내년부터 사용될 일본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 주장이 대폭 강화됐다. 또 과거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등 일본의 영토·역사 왜곡이 한층 노골화됐다. 미래 세대에 영토·과거사에 대한 억지 주장을 노골적으로 주입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행태를 강력 규탄한다.

30일 일본 문부과학성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통과한 고교 역사총합(종합), 지리총합, 공공 등 3개 사회과목 교과서 대부분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등 일본 정부의 일방적 주장이 실렸다. 5년 전인 2016년에 검정을 통과한 고교 교과서(4개 사회과목, 35종) 중 27종(77.1%)에 독도영유권 주장이 포함된 것에 비해 왜곡교육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8년 학습지도요령에서 2022년부터 개편되는 고교 사회과목에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로 중국과 영유권 갈등 중) 열도가 일본 영토임을 가르치도록 했다.

우려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을 심판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교과서,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을 다루면서 ‘대동아공영권’을 소개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 민족이 서구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다. 일본 ‘역사수정주의’의 핵심적 주장이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통용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기술은 대체로 축소됐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위안소 운영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및 폭력을 모호하게 기술한 교과서는 늘어났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도 어긋난다. 한·일관계에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사료로 뒷받침된다.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 고교 교과서 검정결과에 대해 즉각 시정을 촉구하는 한편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강력 항의했다. 그러나 관례적인 항의와 규탄에 머물러선 안 된다.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한국 영토임을 뒷받침할 추가 사료 발굴과 홍보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침략의 과거사를 긍정하는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통용되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와 연대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신냉전 예고 속 ‘북한 협력’ 비친 미·중, 정부 역할 모색해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이 파열음을 내며 마무리됐다.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이번 고위급회담은 양국 대표가 모두발언에서만 1시간 넘게 상대국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이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신장·홍콩·대만에 대한 강압적 행동을 비판했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미국이 자국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이틀간 세차례 회담에서 인권, 무역, 기술 등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현안에서 번번이 충돌했고, 결국 공동발표문도 생략한 채 회담장을 떠났다. 향후 미·중 갈등이 과거 미국과 소련 간 냉전과 같은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기 막바지 한반도 문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모색에도 부담이 커지게 됐다.

특히 미·중이 한국의 의중을 놓고 기싸움을 벌인 장면은 예사롭지 않다. 블링컨 장관이 한·일 방문 결과를 언급하면서 “미국이 돌아왔고, 동맹 및 파트너와 다시 관여한다는 점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동맹국으로부터) 전해듣고 있다”고 하자 중국은 “미국만의 시각 아니냐”고 반박했다. 양국이 이처럼 한국의 입장을 각기 유리하게 해석한 것은 블링컨 국무장관 방한 기간 한국이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 결과이다.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양국 간 줄다리기가 가열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한국이 미·중 갈등의 격랑 속에서 중심을 단단히 잡아야 할 이유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미·중이 북한을 비롯해 이란, 아프가니스탄, 기후변화 등 일부 의제에서 협력할 의향을 비친 점이다. 블링컨 장관은 방한 기간 회견에서도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은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등 미·중의 접근법이 다른 만큼 협력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 격화로 북·중 밀착이 가속화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질 수 있다.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전장이 되고, 한반도에 신냉전의 전선이 그어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미·중의 전략경쟁에서 한반도 문제를 분리해 내고, 한반도에서 미·중의 협력 공간을 마련하는 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향 사설] 흘려넘길 수 없는 주한미군의 ‘미사일 방어 역량 개발’ 발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의 미사일방어청(MDA)이 한국에 세 가지의 특정한 역량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미사일방어 태세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고 “하나는 이미 여기(한국)에 배치됐으며 다른 두 개는 올해 전개돼 탄도미사일 방어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정한 역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시스템의 성능 개량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한미군 대변인은 파장이 일자 12일 “새로운 장비나 부대의 배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역량은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고 굳건한 연합방위태세 제공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도 “한·미 당국이 한반도 내 추가적인 미사일 방어자산의 배치를 협의한 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미사일방어체계(MD)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에서 불거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수십조원을 들여 동아시아에 미사일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한국으로선 예사로 넘길 수 없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은 중국과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정부가 2017년 10월 사드를 추가 도입하지 않고,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급한 불은 껐지만 한·중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중국은 한국이 대중국 미사일방어체계의 최전방 기지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개발 역량 개선이 무엇이냐에 따라 한·중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사드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소통도 우려된다. 지난해 5월 성주 사드기지에 장비와 물자가 반입됐을 당시 국방부는 “노후장비 교체”라고 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이번 발언으로 볼 때 당시 모종의 성능 개량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 미군기지라고 하지만 한국 땅에서 이뤄지고 있는 움직임에 정부가 통제력은커녕,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사드와 관련한 정보의 공개를 미국에 분명하게 요구하는 한편 한·중관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판단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경향 사설] 정치행보·조직 이기주의 논란 남기며 중도사퇴한 윤 총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추진에 반발하며 4일 사퇴했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면서 “검찰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상식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하는 데 온 힘 다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총수가 임기를 4개월 남겨두고 중도 사퇴한 것은 유감스럽다. 검찰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윤 총장은 강골 특수부 검사로 박근혜 국정농단과 삼성 등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을 단죄하는 데 기여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 원전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벌였다. 권력에 약했던 검찰의 과거를 생각하면 ‘윤석열 검찰’의 도전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윤 총장은 과도하게 정치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도 받았다. 중수청에 반대하는 과정에서는 노골적으로 대국민 여론전을 펼쳤다. 대구의 검찰청을 찾아가 “고향에 온 듯하다”며 검사들에게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했다. 중립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조직의 총수답지 않은 정치색 짙은 언동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 굵직한 개혁안 속에서도 검찰의 생리는 변하지 않았다. 또 윤 총장이 검사들 비리 의혹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오점이다. 검찰 지상주의자라는 비판과 함께 검찰조직의 이익만 앞세우는 데 급급해 국민 편익을 앞세우는 진짜 개혁에는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하지만 사태가 오늘에 이르게 된 데는 여권의 책임도 무겁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여권은 지난해부터 수사지휘권 발동과 징계로 윤 총장을 연이어 압박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절차를 가벼이 한 유감스러운 조치였다. 살아있는 권력은 수사하지 말라는 신호로 비치기 충분했다. 여권이 두고두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한 시간 만에 수용했다. 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안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한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이로써 정부·여권과 윤 총장 간의 갈등은 일단락됐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 후임으로 검찰조직을 잘 추스르면서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여권·야권에 기울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인사여야 함은 물론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를 안착시키고 중수청 신설 논의도 차분히 해나가야 한다.


[경향 사설] 실체 드러낸 MB·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사찰 전모 밝혀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제 조건으로는 정보위 재적위원 3분의 2의 의결과 비공개를 내걸었다. ‘직무범위를 일탈해 작성됐지만 제3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기록’으로 규정하고, 지난해 12월 개정된 국정원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박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불법사찰도) 중단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고,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MB 정부의 불법사찰 기록물이 국정원에 있다고 공식 인정하고, 그 사찰의 뿌리가 박근혜 정부까지 뻗어있을 가능성도 시사한 것과 다름없다. 보수정부의 국정원이 ‘빅 브러더’로 암약했다는 실토는 충격적이다.

사찰의 얼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사찰 기록물에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과 법조인·언론인·연예인·시민단체 인사까지 1000여명의 신상정보가 들어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앞서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국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문건에는 그 지시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적시됐다. 청와대가 부동산 거래나 비리·언행 등을 담은 신상정보를 검찰·경찰·국세청에서 모아 국정원에서 보관토록 했다는 것이다. 4대강사업에 반대한 5개 환경단체와 대학교수들도 지난달 초 2018년 환경부 요청으로 알려진 ‘1장짜리 사찰 문서’의 추가정보 공개를 국정원에 청구했다. 이 사찰 자료를 보고받은 ‘청와대 인사들의 직함’엔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당시 직책(홍보기획관·정무수석)도 포함돼 있다. 2016년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뒷조사를 한 권해효·김미화·김여진씨 등이 올라 있다. 하나같이 오랜 시간 보수정권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사찰의 축이 국정원임을 보여준다.

사찰은 기본권을 짓밟는 반헌법적 악습이자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국가폭력이다. 여당은 “중대범죄”라고, 야당은 “정치공작”이라고 장외설전을 시작했다. 오는 4월 치러질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기싸움이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사실관계 규명이 급선무가 됐다. 국정원 스스로 ‘흑역사’임을 반성하고 사찰 자료도 현존하는 상황에서 덮을 수 없는 적폐가 된 것이다.

국정원은 ‘사찰 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도청·미행 여부도 미확인 상태라고 밝혔다. 국회는 실체가 드러난 국정원 사찰의 진상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없이 국민 앞에 진상을 밝힐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국정원이 요구한 ‘사찰자료 폐기 특별법’과 재발방지책도 만들어야 한다.


[경향 사설] 군부에 짓밟힌 미얀마 민주주의, 국제사회가 지켜내야

미얀마에서 지난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집권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입법·사법·행정권은 군부 최고실력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장악했으며 이날 예정된 국회 개원도 연기했다. 헌정질서가 중단된 것이다.

미얀마는 1962년 네윈 총사령관이 쿠데타로 정권을 쥐면서 군부가 반세기 넘게 철권통치를 휘둘러왔다. 저항하는 시민들이 1988년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3000여명이 숨지는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NLD가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53년에 걸친 군부의 지배를 끝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온전한 문민통제를 하지 못한 채 군부와 불편한 동거를 해오다 군부의 총칼에 다시 민주주의를 유린당했다.

군은 지난해 11월 총선 후부터 집권 NLD가 유권자 중복 등록 등 선거부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쿠데타의 명분도 선거부정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설혹 선거부정 의혹이 사실이라도 총칼로 헌정을 중단시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NLD의 총선 압승으로 군부의 영향력이 쇠퇴할 것을 우려한 민 아웅 흘라잉이 권력장악에 나선 것이 사태의 본질임은 가려질 수 없다.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 전환과 법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며 군부의 권력포기, 구금인사 석방을 촉구했다. 영국,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도 비판에 나섰다. 정부도 2일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며 아웅산 수지 고문의 즉각 석방과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런데 미얀마 군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중국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매우 유감스럽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응이 자칫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밀착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군사 쿠데타와 철권통치를 경험한 한국의 시민들에게 미얀마의 고난은 남의 일이 아니다. 50여년의 시련 끝에 피워 올린 민주주의의 꽃을 5년 만에 시들게 방치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 힘을 모을 것을 당부한다. 미·중 갈등이 국제사회의 협력에 장애가 돼선 안 된다.


[경향 사설] 막 오른 바이든 시대, ‘돌아온 미국’의 역할 기대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사에서 “동맹을 복구하고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해서는 힘이 아닌 모범으로써 이끌 것이라고 했다. 동맹 복원을 통한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최우선 대외정책 과제로 제시하되, 대결보다는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분열과 혼돈을 가져온 ‘트럼프 시대’를 치유하고 협력의 국제질서 회복을 갈망하는 국제사회 기대에 부합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시대 출범의 의미는 각별하다. 트럼프가 파괴한 국제질서 회복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바이든은 취임 후 5시간 만에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그의 약속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번주 열리는 WHO 이사회 화상회의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미국 대표로 직접 참석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취임 100일 안에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밝힘으로써 민주주의 종주국으로서의 리더십 회복 의지도 드러냈다. 모두 국제사회에 신뢰와 희망을 주는 조치들이다. WHO와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가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바이든 앞에는 국내외적으로 만만찮은 도전 과제들도 놓여 있다. 바이든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와 통합, 코로나19 극복을 최대 국내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이미 엎질러진 ‘괴물 트럼프’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게 지난한 과제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 터이다. 트럼프가 실추시킨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도 쉽잖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그의 대외정책 성패를 좌우할 최대 난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 압박을 강화할 경우 무역전쟁뿐 아니라 남중국해에서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돌아온 미국’의 리더십을 강조했지만 말만으론 성취할 수 없다. 그의 취임사와 취임 첫날 행동이 희망을 줬지만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을 보장하진 않는다. 스스로 밝힌 대로 “시험의 시간”에 들어갔을 뿐이다. 국제사회가 이구동성으로 기대하는 것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의 역할이다. 그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취임사에서 밝힌 것보다 더 많은 조치가 따라야 한다. 패권을 추구하거나 국익을 앞세우면 세계는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고, 미국에 대한 신뢰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경향 사설] 바이든의 새 북한통 외교팀, 유연하게 대북 첫 단추 끼우길

오는 20일(현지시간) 취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5일 국무부 부장관에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명했다. 그는 1999~2001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을 맡고 오랫동안 북핵 문제를 다뤄왔다. 지난해 11월23일 지명된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지명자는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부장관으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에 관여했다. 국무부 1·2인자를 ‘북한통’으로 임명한 바이든 당선자가 새 정부 출범 후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로 다룰 것을 기대한다.

셔먼 지명자는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북한 관리 중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만났을 때 배석했으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 동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블링컨 지명자는 대북 제재 필요성을 강조하고 종전선언에 반대했지만 그간 군사적 해결책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백악관 내 신설된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아시아 차르’로 불린다. 그 자리에 내정된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지난달 한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조기 결정하고 대북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바이든 당선자가 복귀 의사를 밝힌 이란 핵 합의에 관여했으며, 중국 문제도 잘 안다. 대북정책이 이란·중국 문제와 함께 비중 있게 다뤄질 것임을 보여준 인선으로 해석된다.

마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일 폐막한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강 대 강, 선 대 선’ 원칙을 언급했다. 전술핵 등 군사력 강화를 부각시켰지만 노골적 도발 위협을 하지는 않았다. 14일 노동당대회 기념 심야 열병식에서도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선보였지만,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공개하지 않았다. 도발을 시사하되, 대화와 타협 여지를 열어놓은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서둘러 북한을 향한 메시지를 내놓고 막후 접촉을 시도해 첫 단추부터 잘 끼우길 바란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초래했던 전례도 상기해야 한다. 오는 3월에 잡힌 한·미 연합훈련부터 첫 고비가 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전략적 판단과 협의를 시작해 유연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 북한은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경향 사설] 반성 없는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 명분도 통합효과도 없다진력해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 이명박, 박근혜씨에 대한 사면론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 등과 인터뷰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이 “국민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10월29일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을 확정받았고, 박씨는 오는 14일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를 받는다. 박씨에 대한 판결이 나오면 외형적으로는 사면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춰졌다고 볼 수도 있다.

여당 대표의 발언인 데다 청와대와 교감한 끝에 나온 사면론 제기라 무게가 가볍지 않다.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겠다는 말에서 실행 의지가 보인다. 이 대표는 그간 두 사람에 대해 “법률적으로 형이 확정돼야 사면할 수 있다”고 해왔다. 이씨는 지난해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면론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그 엄청난 국기문란을 저지르고도 지금껏 반성 한번 한 적 없다.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사리사욕을 채운 이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17년형을 확정받은 뒤 반성은커녕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는 옥중서신까지 냈다. 이런 전직 대통령들을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용서하자는 것은 법치가 아니다. 이 대표가 기대하는 국민통합의 효과도 부정적이다. 지금 한국 사회와 정치가 분열하는 것은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어서가 아니다. 진정 통합의 효과가 있으려면 시민들이 이들의 사면에 동의해야 한다.

이 대표의 사면론 제기에 저의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거용 사면이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이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을 대표해 총대를 멨다는 말도 나온다.

섣부른 사면론 제기로 국민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경향신문 신년기획 ‘흑백 민주주의’에 응한 정치학자 등 60여명은 그 이유로 정치권에서 양극단의 목소리가 득세하고, 모든 문제가 정치적 승패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이 진정 통합을 원한다면 할 일은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 제기가 아니다. 집권여당으로서 그동안 통합의 정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보고 진정한 협치의 길을 찾는 것이다.


[경향 사설] 새 법무장관·초대 공수처장, 새 수사체계 안착에 진력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또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김진욱 전 헌법재판소 선임헌법연구관을 낙점했다. 내년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되고 다음달 공수처가 출범하면 70여년 형사사법 체계가 커다란 변화를 맞는데, 두 사람이 새 제도를 안착시킬 중책을 맡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친문 성향 3선 의원으로 검찰개혁을 강조해온 박 내정자를 지명한 것은 검찰개혁 기조를 지속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박 내정자의 당면 과제는 검찰과 경찰의 조정된 수사권이 현실에 원활히 뿌리내리도록 검찰을 지휘·감독하는 것이다. 당장 다음달 1일부터 맞닥뜨릴 새로운 환경에 대비해 검찰 내부 정비 등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으로 법무부와 검찰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 중단 없는 검찰개혁도 필요하다. 검찰개혁 양대 가치인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의 조화·균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도 윤 총장과의 생산적 관계 정립은 필요하다. 강성 지지층 여론에 편승해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민주적 통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추 장관은 여실히 보여줬다. 박 내정자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이다. 검찰총장 지휘·감독권자 위상을 분명히 정립하되 검찰개혁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고 윤 총장과 소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 25일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인 협조관계를 통해 검찰개혁과 수사권 개혁 등의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각별히 당부한 뜻도 거기에 있을 터다. 다음달 있을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장 내정자는 판사 출신이다. 수사 경험은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특검’에서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한 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그를 지명한 것은 검찰 견제기구인 공수처 초대 수장은 비검찰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공수처의 안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정치적 중립이다. 보수야당이 원인을 제공했다고는 하지만 여당이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해 공수처는 출발부터 중립성 시비에 휘말렸다.

야당의 거부권을 보장하는 제도 보완과 별개로 공수처를 중립적으로 운영하려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 고위공직자 범죄 전담 기구에 걸맞은 수사력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에서 보듯 권력형 범죄는 경제범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가 대개 경제범죄에서 출발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공수처는 경제범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 검찰을 견제하면서 권력형 비리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할 책임도 공수처에 있다. 수사·기소의 실무를 담당할 공수처 차장, 검사·수사관에 실력과 경험,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인사를 발탁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경향 사설] ‘윤 징계·추 교체’로 추·윤 정국 매듭짓겠다는 문 대통령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 징계를 제청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재가했다. 윤 총장 직무는 즉시 정지됐다. 현직 검찰총장이 법무부 감찰을 받아 중징계를 받은 선례가 생긴 건 책임 소재를 떠나 불행한 일이다.

징계위는 6가지 징계청구 사유 중 특정 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작성·배포, 검·언 유착 의혹 감찰·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는 부적절한 언행이 중대 비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윤 총장의 정치적 언행 등이 검찰 수장으로서 부적절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놓고는 이견이 적지 않았다. 징계위 결정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처분은 부적당하다”고 한 법무부 감찰위의 판단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배제 조치를 정지하고 업무에 복귀시키는 결정을 하자 징계위의 공정한 운영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차례 열린 징계위는 절차적 흠결 논란을 말끔히 씻지 못했다. 윤 총장 측은 추 장관이 지명한 징계위원 5명 전원에 대해 중립적 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피 신청을 했지만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만 자진 회피해 징계위에서 빠졌을 뿐 나머지는 모두 기각됐다.

여권은 윤 총장의 국정감사 발언과 대전지검의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 착수를 계기로 윤 총장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윤 총장이 사퇴를 거부했고,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를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검찰총장 해임 관련 법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무부 감찰·징계라는 우회로를 밟았을 뿐 이 처분의 본질은 명확하다. 법률적 징계라기보다 정치적 징계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윤 총장 징계를 재가하면서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임명권자로서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고 했다. 또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 출발을 기대한다”고 했다. 추 장관도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추 장관 본인의 사의 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숙고해 수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윤 총장 징계와 추 장관 교체로 추·윤 정국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 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 부당한 조치”라며 징계처분 효력정지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한 데 대한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문 대통령은 추·윤 정국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여론을 수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 징계에 대한 진솔한 입장을 시민들에게 직접 밝히면서 이해를 구하는 게 옳다.


[경향 사설] 2기 진실화해위 출범, 인권침해 밝혀 국민통합 초석 다지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0일 재출범했다. 2005년 시작한 1기 위원회가 2010년 말 해산한 지 10년 만이다. 2기 진실·화해위는 이날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로 접수하며 활동을 개시했다. 향후 형제복지원뿐 아니라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 일제강점기 이후 권위주의 정권 때까지 벌어진 인권침해·조작의혹·의문사 사건들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선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과 사실 은폐·왜곡을 낱낱이 밝혀 진실을 규명할 길이 열린 것이다. 5년여간의 1기 때 활동을 거울 삼아 더욱 면밀한 조사로 피해자 명예회복에 기여하기 바란다.

1기 위원회는 1만1175건을 조사해 8650건의 진실 규명을 결정하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는 등 성과를 냈다. 국가기관이 과거사를 공식 확인해 피해자들에게 명예를 되찾고 원을 풀 기회를 준 점도 의미 있었다. 하지만 방대한 사건을 정리·분석할 시일이 부족했고 강제소환이나 조사 권한에도 제약이 있어 미해결 과제를 남긴 채 종료됐다. 이명박 정부가 무책임하게 법에 보장된 위원회의 활동 연장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2기 위원회는 1기 때 미흡한 부분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기 진실·화해위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1기 때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사건들을 처리하고 당시 권고사항의 이행 여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지난 10년간 진실·화해위 재가동을 요구했던 형제복지원 등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교화를 명목으로 무자비한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의 억울한 삶이 더 이상 묻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갈 길이 먼 화해위 구성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 4명이 정해지지 않아 늦춰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즉각 상임위원을 추천해야 한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위원회 활동에 대해 “과거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래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과거 문제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을 앞세워 시민 생명권을 빼앗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국가범죄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과거사 청산의 요체이자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2기 진실·화해위가 진정한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는 주춧돌이 되기 바란다.


[경향 사설] 일본의 “김정은 도쿄 올림픽 초청 의향” 주목한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내년 7월 도쿄 올림픽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도쿄로 초청할 의향을 밝혔다”고 말했다. 지난 12~14일 방일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을 만난 김진표 의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할 의향이 있다면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통해 정식으로 초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답변을 피하면서도 스가 총리가 김 위원장의 방일을 “기회”라고 언급한 점을 환기시켰다. 지난 5일 참의원에서 김 위원장이 도쿄 올림픽 때 방일할 경우 회담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스가 총리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을 가리킨다.

김 의원 발언의 맥락, 일본의 반응 등을 종합하면 도쿄 올림픽을 한반도·동북아 평화의 모멘텀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에 양국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로서는 2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 일본도 국제행사의 성공적 개최와 북·일관계의 진전을 위해 김 위원장의 방일을 기대할 것이다. 한·일 양국이 실로 오랜만에 의기투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도쿄 올림픽 협력을 위해 한·일관계가 조기 복원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듯한 모습이다. 갈등의 핵심인 강제징용 배상에 일본은 꿈적도 하지 않는 반면, 한국 정부만 조바심을 내는 듯한 인상이 짙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후 한·일 양국 기금으로 충당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김 의원은 징용배상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도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봉합하는 방안을 일본 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징용배상 문제와 한반도 평화를 연계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풀어나갈 사안인지 의문이다. 코로나19의 재확산 기세를 감안하면 도쿄 올림픽의 개최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 방일’은 너무 앞서가는 얘기다. 북한이 초청에 응할지도 두고 봐야 한다.

연내 징용배상 문제를 매듭짓고 싶어하는 정부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하에서 풀지 않으면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한·일관계 복원 노력 와중에 이런 원칙이 약화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향 사설] 잇단 한·일 고위급 접촉,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져야

일본을 방문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했다. 스가 총리 취임 이후 한국 정부 고위인사와 처음 만난 것이다.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여야 의원 7명도 12일 방일한다. 장기간 경색돼 있는 양국 간 모처럼 대화의 온기가 돌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박지원 원장은 스가 총리를 만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 한·일 현안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 원장은 특히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본뜬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했다고 한다. 난마처럼 꼬인 한·일 관계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통 크게 풀어가자는 취지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담은 제안인 만큼 문 대통령의 관계복원 의지가 질감있게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박 원장이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될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소기의 성과도 기대해봄 직하다. 박 원장은 자민당 실세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도 만났다. 두 사람은 의형제로 지낼 만큼 허물없는 사이여서 징용 배상 문제, 연말 서울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의, 내년 도쿄 올림픽 협력 등이 두루 논의됐을 것이다. 부디 박 원장의 방일이 관계복원의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관건은 역시 징용배상 문제의 해법 도출 여부다.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을 위해 법원에서 진행한 심문서 공시송달절차 효력이 10일부터 발생해 법원은 다음달 30일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한·중·일 정상회의나 도쿄 올림픽 협력 등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 일본은 한·일 기업과 국민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문희상 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대법원 판결의 명분을 살리면서 실질적인 배상이 이뤄지도록 보완하는 방향으로 절충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대외협상에서 100%를 얻어낼 수는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유감인 것은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니 한국이 해결책을 내라’는 식의 태도를 일본이 풀지않고 있다는 점이다. 달라진 법 해석과 삼권분립은 무시한 채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태도에 이제 넌더리가 난다. 이 문제가 애초 어디서 비롯됐는지 성찰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양국 간 ‘마음의 화해’가 이뤄지려면 이런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경향 사설] 미 정권 교체 등 정세 전환기, 남북은 신뢰회복 서둘러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예상된다. 외교전문가이자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비쳤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기회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세 전환기를 남북의 시간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바이든의 진지한 대북 태도가 트럼프 행정부의 즉흥적 접근에 비해 안정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기대를 걸게 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긴밀히 공조하며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온 전례로 볼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주도성이 커질 수도 있다. 청와대 구상대로 내년 도쿄 올림픽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다면 상당한 ‘평화 모멘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관계가 쉽게 진전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과제나 외교안보진 구성 등을 감안하면 북·미 협상 재개는 빨라야 내년 상반기 이후가 될 수 있다. 대북 협상이 미국의 우선순위 높은 외교과제가 될지도 의문이다. 북핵 등 대북정책 점검을 이유로 보폭을 조절할 수도 있다. 하노이 ‘노딜’ 후 북·미 대화에 기대를 낮춘 북한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볼 때 도쿄 올림픽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 간 신뢰를 복원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신뢰회복 없이 정부가 대북정책의 주도성을 회복할 수는 없다. 우선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내년 봄 한·미 연합훈련 재개가 북한에 군사행동 명분을 제공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인영 장관은 “북한이 현명하고 유연하게 전환의 시기에 대처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런 때에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등 도발적 행동을 강행한다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다. 정세 전환기에 남북이 뜻을 모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향 사설] 승리와 화합 외친 바이든, ‘탈트럼프’ 시대 닻 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제46대 미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 언론들은 7일 밤(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네바다주에서 이긴 바이든 후보가 279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승리를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도 곧바로 대선 승리를 선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쐐기를 박고, 바야흐로 ‘바이든 시대’가 시작됐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트럼프 집권 4년간 편가르고 군림하려고만 한 미국은 다시 정상화돼야 한다. 국제사회의 오랜 바람을 바이든 당선자가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날 승리 연설에서 “분열이 아닌 화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가 미국을 지구의 등대라고 믿는다”며 “미국이 전 세계에서 존경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도 9일 임명할 거라고 예고했다. 미국의 화합과 국제사회의 존경 회복, 코로나19 대처를 향후 최우선 국정과제로 밝힌 것이다. 트럼프 4년이 후행시킨 유산들로,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다. 트럼프 집권 4년의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는 미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려 미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았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대응 등 현안에서도 신뢰의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고립을 자초해 국가적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다. 바이든의 승리는 이에 대한 반작용이다.

트럼프 4년 청산은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다. 바이든은 쪼개진 미국을 치유하기 위해 화합을 강조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조지아·위스콘신 등 일부 경합주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는 미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8년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도 화합을 강조했지만 그 후 인종주의와 흑백 갈등이 심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소송전은 오히려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 있다. 당선자 확정 지연과 정권인수 작업 방해가 현실화한다면 국정 혼선이 길어지고 미 사회는 더욱 심한 분열과 갈등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적극 대응키로 선회하는 게 다행스럽지만 이 또한 처방·봉쇄 강도에 따라 새로운 갈등을 부를 수 있는 불씨를 품고 있다.

국제사회의 존경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 첫걸음이 비정상의 트럼프 4년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약속대로 파리기후변화협정과 세계보건기구(WHO) 복귀를 조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트럼프의 반기후변화·반환경·반이민 정책도 되돌려야 한다. 경제·통상 정책에서도 일방적인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을 보이고 있는 미·중관계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인과 국제사회가 바이든에 거는 기대는 크지만 희망과 불안도 교차하고 있다. 바이든의 공약이 제대로 이행될지 불투명하고, 트럼프의 불복으로 승자가 미확정된 미 정국의 불확실성도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36년부터 부통령 8년까지 약 반세기를 공직에 투신해온 경륜 있는 정치가다. 바이든이 국제사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 ‘몽니’를 부리는 트럼프의 대선 승복과 그 지지자들의 협조는 바이든 시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트럼프 정부의 원활한 정권 이양도 절실하다. 바이든 당선자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새로운 번영과 화합을 가져오는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경향 사설] 세계를 불안하게 하는 초유의 미 대선 혼돈상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가 사기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주 등 경합지역에서 역전당하자 개표중단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위스콘신주에 대해서는 재검표를 요구한 것이다. 우편투표 개표를 중단하지 않으면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주주의의 선도국으로 자부하는 미국답지 않은 혼란상이다.

2000년 조지 부시와 앨 고어 후보가 맞붙었을 때처럼 투표 후 바로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일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후보자가 노골적으로 선거제도와 개표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며 불복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불확실한 상황이 언제 해소될지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우편투표에 대한 불만 제기는 근거가 없다고 보도했다. 소송전으로 시간을 끌며 승자 결정을 대법원 판단에 맡기겠다는 심산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과 대의민주주의 정신에도 배치되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미국 대선의 혼돈상은 그 피해가 자국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경찰 국가인 미국이 흔들리면 지구촌의 안보와 경제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당선자가 확정돼도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양쪽 지지자들 간 폭력사태가 빚어져 주방위군이 배치됐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미국을 분열로 몰아넣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전 미국 사회가 힘을 모아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혼란상이 조기에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한다.


[경향 사설] 불확실성의 미 대선, 정부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3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냐에 따라 미국의 운명은 물론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크게 달라진다. 선거 결과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당선자의 정책기조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선거 결과 예측부터 대선 불복 가능성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전국 단위 지지율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선 승패를 좌우할 일부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막판 맹추격으로 지지율 격차를 좁혀가고 있어 어느 쪽도 승자를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2016년 대선 전체 투표자의 40%가 넘는 우편투표라는 변수까지 추가돼 대선 당일 밤에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개표 지연과 대선 불복으로 당선자 확정이 상당 기간 늦춰지는 것이다. 현실화할 경우 미국과 세계는 엄청난 혼란과 불확실성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한 언론은 트럼프가 대선 당일 밤 초기 개표에서 자신이 앞서게 되면 승리가 최종 확정되지 않더라도 조기에 ‘승리 선언’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핵심 경합주 펜실베이니아의 우편투표는 대선 사흘 뒤인 6일 도착분까지 인정돼 오래전부터 ‘우편투표=사기’를 주장한 트럼프 측은 이를 선거 불복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대선 불복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어 누가 이기든 극렬한 거리 투쟁이나 법정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선 결과가 북·미, 한·미 관계 등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불문가지다. 북·미관계의 경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집권 1기의 톱다운식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한반도 정세의 급변과 함께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누가 당선되든 미·중 갈등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그 사이에 끼인 한국의 입장은 어려워질 게 뻔하다. 방위금 분담금 협상이나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 등 한·미 간 풀어야 할 난제도 많다. 대선 불복 장기화에 따른 경제 혼란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대선 후 미 대선발 불확실성에 철저히 대비하길 바란다.


[경향 사설] 전작권 반환, 미 ‘방위비 증액·대중 포위전략’ 연계 안 된다

한·미 국방장관이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놓고 입장차를 드러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욱 국방장관은 전작권 문제에 대해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일정을 잡는 데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이날 회의는 전작권 전환을 놓고 계획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올해 2단계(FOC) 검증 평가, 내년 3단계(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 평가를 거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21년 말까지 전작권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한·미 연합훈련이 축소되면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평가 일정도 잇따라 늦춰지게 됐다. 이에 정부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전환을 추진했지만 미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권 전환은 과거 보수정권 때부터 한·미 간에 이미 약속된 것이다. 그동안 북핵 위기 등으로 여러 차례 미뤄져온 만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행되어야 한다. 주권국가의 작전권이 타국에 70년이나 양도돼 있는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한·미 동맹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의 ‘딴전 피우기’식 태도는 유감스럽다. 한국이 조건을 충족해 전작권이 원활하게 반환될 수 있도록 미국은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미국은 회의에서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언급하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했다. 에스퍼 장관은 “양국은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고도 했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과 ‘대중국 포위전략’ 동참을 전작권 전환의 조건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전작권 전환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인도·태평양 전략 한국 참여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연계할 사안이 아니다.

양국 장관의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라는 문구가 빠지고, 양국 장관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최근 양국 간 어수선한 관계를 반영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동맹국 간이라도 국익을 둘러싸고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상례인 만큼 이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방미 중인 서훈 안보실장은 전작권 전환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이 보름 만에 다시 종전선언 언급한 까닭

문재인 대통령이 8일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화상 연례만찬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은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보름 만이다. 또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이어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리대사의 입국이 공개되는 등 남북관계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시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다소 이례적으로 비친다.

문 대통령이 보름 간격으로 종전선언을 언급한 데는 북·미 대화가 장기 교착된 상황에서 ‘제도화된 평화의 기반’을 어떻게든 만들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종전선언은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최근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7월10일 담화에서 “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 협상의 기본 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 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했다. 종전선언이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는 뚜렷한 증빙이자 북·미 협상 재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을 고리 삼아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려고 외교라인이 움직인 정황도 감지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교환했고, 지난 3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위문전문’을 공개한 것은 남·북·미 간에 모종의 교감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한 무산으로 이 과정은 일단 멈춰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은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물밑 노력이 동반된 제안이다. 또 다음달 미국 대선 후 북·미 협상을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도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한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원칙을 견지할 것임을 미국 조야에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고 한 데서도 엿보인다.

문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야당은 “대통령의 끝없는 집착”이고, 서해 피격사건이 발생한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은 연설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은 온당치 않다. 서해 피격사건과 같은 일이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이 절실해진 것 아닌가.


[경향 사설] “한국 사회 불공정하다”는 60% 응답에 담긴 뜻

경향신문이 창간 74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묻는 질문에 ‘공정하지 않다’(59%)는 응답이 ‘공정하다’(32%)는 응답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불공정 개선 여부에 대해선 ‘공정해졌다’(35%)는 답변이 ‘불공정해졌다’(29%)보다 많았다. 현 정부 들어 불공정이 다소 개선됐으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시민 다수가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시민이 체감하는 불공정은 사회 전 분야에 뻗어 있다. 부의 분배가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65%, 법 집행이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71%, 대·중소기업 관계가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65%, 취업이 불공정하다는 응답은 50%에 달했다. 입시·진학과 군입대를 비롯한 병역에 대해선 공정하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시민들이 공정의 최후 보루로 여기는 입시와 병역에서 비교적 공정이 실현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이 논란이 된 것은 이런 믿음과 배치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상·성공을 결정하는 데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변한 결과는 암울하다. ‘본인 노력·능력’을 꼽은 비율은 27%에 그친 반면, ‘부모 등 배경이나 외부 압력’(33%),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19%), ‘윗사람의 편견·감정’(11%) 등 외적 요인을 꼽은 비율이 63%에 달했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창의성과 역동성이 꽃필 리 만무하다. 공정은 정의 실현의 문제이자 공동체의 활력·번영과 직결된 문제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공정 문제를 앞장서 해소해야 할 정치권은 정파적 태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유불리에 따라 공정 이슈에 정략적으로 접근한다면 공정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추진력 형성은 어려워진다. 적어도 공정 앞에서는 내 편, 네 편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결의가 있어야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정경제 3법과 같은 제도개혁도 속도를 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출발선에 아예 서보지도 못하는 계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기회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건 국가의 복지정책과 맞물린다. 여러모로 공정 문제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경향 사설] 북 ‘통지문 사과’,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로 이어져야

북한이 25일 서해 북단 북측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남측 민간인을 사살한 사건에 대해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북측은 통일전선부 명의로 보내온 통지문에서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지도부는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건 공개 하루 만에 북측이 유감의 메시지를 보내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측이 2008년 금강산관광을 갔던 박왕자씨 피살 사건 때도 ‘미안’이란 사과 표현을 쓰지 않았던 데 비하면 이례적이다. 하지만 민간인 사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도적 범죄다. 북한의 일방적 해명과 사과만으로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북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북측은 정체불명 침입자가 신분 확인 요구에 답변을 거부하고 도주하려 했다고 말했다. 월북하려고 했다는 정부의 설명과 배치된다. 북측은 사격 후 부유물 위에 ‘침입자’는 없었다며 시신을 훼손했다는 국방부 주장을 부인했다. 또 북측 해군사령부 계통의 지시가 있었다는 국방부의 설명과 달리 “정장의 결심 밑에서 사격했다”고 밝혔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비난이 커지는 걸 피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해명이다. 정부는 남북 공동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진상부터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걸맞은 북측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남북 군사 핫라인 재가동 등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도 요구해야 한다. 남북관계만을 고려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

이번 사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김 위원장에게, 김 위원장은 나흘 뒤 문 대통령에게 각각 친서를 보냈다고 정부는 밝혔다. 김 위원장 역시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보면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는 등 남북관계를 단절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과도한 대응일 수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북측은 이번 사건에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며 김 위원장의 사과가 진심임을 입증해야 한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정부 공격의 기회로 삼으려는 정략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측 영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고, 군 연락망마저 끊긴 남북 현실에서 정치권의 과도한 비판은 자제돼야 한다.


[경향 사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동북아 방역 협력체’가 실현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화상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질서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성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은 북·미 협상과 남북 대화가 교착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동력을 찾으려는 의지의 표출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도록 마침표를 찍지 못한 한반도 현실을 환기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에 국제사회가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의미도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남북,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을 마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를 보면 문 대통령의 연설에 무게가 실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비핵화 문제를 두고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데다 남북 대화가 끊겨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당장 현실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문 대통령은 이런 교착을 뚫고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시계의 분침, 초침이라도 움직이게 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을 실현하려면 11월 미 대선 이후 상황에 대한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외교·안보 정책, 남북 합의들을 면밀히 재점검하고 새로운 제안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과 문재인 정부의 군비증강 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에서 양측 간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했음에도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지 않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남북 대화 복원을 위해서는 이런 점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오는 11월 대선 이후 펼쳐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시즌 2’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지혜와 창의력을 발휘해 향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치밀한 설계도를 짜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외교안보라인이 가장 바빠야 할 시기이다.


[경향 사설] 북한 납치 문제 언급하면서 한국만 쏙 뺀 스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스가 총리는 이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한 정권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삼겠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가까운 여러 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화를 강조하면서 한국만 쏙 뺀 것이다. 새 총리 취임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우리로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꽉 막힌 한·일관계가 당분간 개선될 여지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스가 총리의 ‘한국 패싱’은 충분히 예견됐다. 그는 취임 전부터 외교정책의 계속성을 강조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밝혀왔다. 특히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아베 정권의 입장을 지지했다. 향후 외교정책에서 아베 전 총리의 조언을 구하겠다고까지 했다. 이날 발표된 스가 내각도 각료 20명 중 11명이 아베 정권 인물들로 채워졌다. 첫 기자회견은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 자리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베의 계승자’를 자처한 그의 한계를 보여준 셈이다. 동시에 스가 총리가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한·일관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축하서한에서 “스가 총리의 재임 기간 중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대화를 제안했다. 대화만이 해법임을 다시 강조하며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스가 총리의 호응을 기대한다. 연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를 개선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스가 총리의 취임이 두 나라 관계개선의 실마리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한·일 국민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전임 총리 아베보다 실용적인 면모를 지닌 스가 총리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가 바탕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 정부 또한 대화 제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