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오미크론 변이’ 전세계 비상, 초기 대응 빈틈없어야

전염성이 강한 새로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25일 처음 확인된 이 변이 바이러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미 급격히 확산된 상태였고 26일 이스라엘과 벨기에, 27일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감염자가 나타났다. 급히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27일 밤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남아공 등 아프리카 8개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입국 제한과 내국인 시설격리 등 조처를 발표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까지 등장해 방역의 부담이 커졌다.

‘오미크론’으로 명명된 이 변이 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26일 긴급회의를 열어 ‘우려 변이’로 지정했다. 앞서 우려 변이로 지정됐던 델타 변이보다 전파력이 훨씬 높은데다 기존 백신을 무력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치명률 등 종합적인 위험도는 더 시간을 갖고 엄밀히 평가해야 한다지만 이미 전세계가 비상 상황에 돌입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유럽, 일본 등이 입국 통제와 여행 제한에 들어갔고 이스라엘 등 전면적인 봉쇄 조처에 나선 나라들도 있다. 완화했던 국내 방역 수위를 다시 높이는 나라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내에서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출입국이 많은 유럽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만큼 경각심을 늦출 수 없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8일 아프리카 8개국 외에 홍콩, 영국 등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입국 제한 조처를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제적인 검역 강화 조처가 때를 놓쳐선 안 된다.

가뜩이나 국내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위기를 맞고 있는 터에 ‘오미크론 변수’마저 더해져 국민들의 우려와 불안이 크다. 28일에도 일요일 발표 기준으로 가장 많은 3928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자도 전날에 이어 50명대를 기록했다. 전국 코로나19 중환자 전담병상 가동률도 ‘비상계획’ 발동을 검토하는 긴급평가 실시 기준인 75%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정부는 2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열어 종합대책을 내놓는다. 비상한 인식으로 국내 방역 상황은 물론 변이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까지 고려한 명실상부한 종합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시진핑 장기집권’ 연 중국 역사결의와 한국 외교의 길

중국공산당이 100년 역사에서 3번째 ‘역사 결의’를 내놓았다. 11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통과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다.

그동안 중국공산당은 역사결의를 통해 당의 노선을 정하고 최고 지도자의 권력을 확립해왔다. 1945년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소련 노선을 추종한 전임 지도부의 오류를 비판하고, ‘중국식 사회주의’를 주장한 마오쩌둥이 종신집권하는 기반이 되었다. 1981년 역사결의는 “인민공화국 창설 이래 가장 심각한 퇴보와 손실을 초래한” 문화대혁명을 비판하고, 개혁·개방을 주장한 덩샤오핑의 권력을 확고히 했다. 이번 역사결의는 반성과 노선 재정립이 아닌,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의 ‘성취’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년 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하고 장기집권으로 나아가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번 역사결의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요약해 발표된 공보는 시 주석의 업적에 대한 칭송으로 가득하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중화 문화와 중국 정신의 시대적 정수”라고 치켜올렸다. 7400여자 분량의 공보 가운데 시 주석의 업적과 관련된 분량이 2500자 정도로 마오쩌둥부터 후진타오까지 다른 4명 지도자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도 ‘마오쩌둥 시기’ ‘덩샤오핑과 그 후계자인 장쩌민·후진타오 시기’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의 3단계로 구분해,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중국 공산당의 3대 지도자 반열에 올렸다. 시진핑 시대의 지난 9년에 대해서는 “역사의 주동 정신, 거대한 정치적 용기, 강렬한 책임과 담당을 가지고… 오랜 기간 해결하려 했지만 못했던 많은 난제를 해결하고, 과거에 이루지 못한 큰 일을 이룩했으며, 당과 국가 사업에 역사성 성취를 추동했고 역사성 변혁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시 주석을 핵심으로 일치단결해야만 ‘공동 부유’를 이뤄내고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 명분을 부각시켰다. 과도한 개인숭배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집단지도체제’는 지워지고, 최고지도자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집중통일영도’ 체제가 확고해졌다.

중국이 역사적 전환을 통해 보여주는 거대한 변화는 한국에도 큰 질문을 던진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애국주의를 강화하면서 힘으로 주변국을 굴복시키려 하는 반면 배려나 포용성은 잃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조처와 한한령, 중국의 강경한 애국주의 강화 속에서 벌어지는 한-중 ‘문화 종주국’ 논쟁 등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내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 인한 긴장 고조 등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중국 모델’을 강조하고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황에서, 미-중 패권 경쟁은 장기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중국의 변화를 직시하면서 중국과 협력을 지속하면서도 한국의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 한국 외교의 길은 한-중 관계의 미래와 미-중 갈등을 아우르는 중장기적이면서도 치밀한 전략 위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자질과 정책 역량 증명해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선출됐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 8개월, 대선 도전을 선언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 3개월 만이다. 홍준표 의원이 급상승한 국민여론조사 지지율을 발판 삼아 막판 역전을 노렸지만, 윤 후보는 압도적 당원 조직표에 힘입어 홍 의원을 6.3%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후보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제20대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의 다자 구도로 본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윤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연설에서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이 정치 신인인 저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며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자,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아픔인 저의 경선 승리를 정권은 매우 두려워하고 뼈아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검찰총장에서 야당 대선 주자로 변신한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온전히 정권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의 말대로 ‘검사 윤석열’을 제1야당 대선 후보로까지 키운 책임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적폐 수사’를 위해 파격 발탁된 검찰총장이 정권 핵심 인물들을 상대로 무리한 수사를 벌이다 권력 수뇌부와 갈등을 빚고, 법무부 장관과 볼썽사나운 힘겨루기 끝에 옷을 벗고 정치권으로 직행한 것은 검찰 역사에 크나큰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정권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온 데 대해 윤 후보 스스로도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정상이다.

정부 여당의 ‘내로남불’과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에 편승해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됐지만, 경선 기간 동안 대선 주자에게 걸맞은 자질과 역량을 보여줬는지도 윤 후보는 겸허히 돌아봐야 한다. 손바닥 ‘왕’자 소동과 ‘주 120시간 노동’ 발언, ‘전두환 미화’ 망언과 ‘개 사과’ 파동 등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국민에게 충격과 상처를 안긴 게 한두번인가.

윤 후보는 선거일까지 남은 넉달 동안 대선 후보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정책과 비전, 달라진 품행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검찰총장 재임 시절 자신의 직속 참모가 연루된 ‘고발 사주’ 의혹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권의 ‘정치 공작’으로 몰아 의혹의 실체를 부정하기엔 드러난 정황들이 너무 많다. 대선 일정과는 별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에 윤 후보도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노태우 국가장’ 결정, 옳지 않다

정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는데도, 정부가 국가장이라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기로 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27일 국무회의에서 “고인께서는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행정안전부는 “노 전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지만,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북방정책으로 공헌했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며 26~30일 닷새간 국가장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등에서 큰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소련·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죄과가 이런 업적으로는 가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크다는 점에서 국가장 결정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는 ‘신군부’의 핵심으로 전두환씨와 함께 12·12 군사반란 사건을 주도하고 우리 헌정 질서를 유린한 공범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염원을 짓밟은 5·17 계엄령 확대와 5·18 광주 시민 학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대법원은 1997년 군사반란과 내란 등 혐의로 전씨에게 무기징역, 그에게는 징역 17년 형을 확정 판결했다. 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평가가 확정됐다. 아들을 통해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나, 생전에 5·18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직접 사죄하지 않았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다.

국가장법은 2조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국가장의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1조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 이 서거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번 국가장 결정이 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당장 광주시는 국가장법에 나와 있는 분향소 설치와 조기 게양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일각의 정서와 주장을 의식해 국가장을 결정한 것으로 보이나, 우리 사회가 어렵사리 정립해온 역사의식을 흩뜨리는 잘못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차제에 국가장 기준을 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국립묘지법은 내란·외환죄로 금고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나 국고 손실 등으로 금고 1년 이상 실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국립 현충원 안장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국가장도 국립묘지 안장 기준과 맞추는 법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국민 의견 수렴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김여정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 실질적 협상으로 이어져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내놓은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4일 “좋은 발상”이라며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남북 대화 재개의 뜻을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조선반도(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밝혔다. ”얼마든지 북남 사이에 다시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관계 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적대시 정책과 불공평한 이중기준(이중잣대)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는 조건을 함께 내걸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와이티엔>(YTN)에 출연해 “지금 분석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대응이나 정부 입장을 말하기는 너무 빠르다”면서도 “굉장히 의미 있고 무게 있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중단’된 상태인 6·25 전쟁을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당사국들이 끝낸다고 선포해 종지부를 찍자는 ‘정치적 선언’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동력을 잃은 종전선언을 문 대통령이 이번 유엔 총회에서 다시 제안하고 북한이 조건부로 호응하면서 남북, 북-미 협상 재개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문 대통령은 23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군 1호기 안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관련국들이 소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 제기하는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면서,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한 평화협상과 비핵화 협상의 ‘투트랙 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도 종전선언에 대해 원칙적 지지 의사를 밝혔고 한반도 긴장 고조를 막을 대화 재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한다”는 대북 정책 원칙을 재확인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재개를 원하고 있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중국도 한반도에서 ‘중국 역할론’을 활용하려고 한다. 미-중 전략 경쟁은 치열하지만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서는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가 제안한 인도적 지원에는 응답하지 않으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진정으로 제재 문제를 풀기 원한다면 우선 핵 활동 재개 움직임을 멈추고 조건 없이 대화와 외교의 길로 나와야 한다. 정부는 ‘임기 내 종전선언’에 얽매이지 말고,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판단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외교를 추진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나선 공수처, 명운 걸고 진상 규명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검찰의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 등에 대한 ‘고발 사주’ 의혹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공수처는 9일 윤 전 총장과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한 데 이어 10일 손 검사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지난 6일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윤 전 총장 등을 고발한 지 사흘 만이다. 공수처는 검찰 등 권력기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바란다.

이번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은 두가지다. 검찰의 선거 개입과 검찰권 사유화 의혹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이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 결탁해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발장에 윤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씨 등이 피해자로 적시돼 있다는 점에서, 이 고발장을 검찰이 작성한 게 맞다면 ‘총장 보위’를 위해 검찰권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번 의혹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 김 의원은 그동안 수차례의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에서 말 바꾸기와 논점 흐리기로 일관해 오히려 혼란만 증폭시켜왔다. 김 의원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 등을 전달한 인물로 지목된 손 검사는 지난 6일 관련 사실을 부인한 이후엔 언론 접촉 등을 피하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의혹을 ‘여권의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며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 진실을 규명하려면 공수처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동안 민감한 사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공수처가 이번에 비교적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 것은 이런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국민의힘이 “야당 탄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현직 야당 의원에 대한 무자비하고 불법적인 압수수색도 모자라 제1야당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해 가정과 추측에 근거한 속전속결 입건을 밀어붙였다”며 “이름을 ‘정권 보위처’로 바꾸라”고 주장했다. 수사 대상자들이 수사와 형사법에 밝은 전·현직 검사여서 증거를 확보하는 일부터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공수처보다 먼저 조사에 나선 대검과의 유기적 협조가 필요한 이유다. 공수처와 검찰은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다는 각오로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철저히 진상 규명해야

윤석열 검찰총장 재직 시절인 지난해 4월 검찰이 언론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와 윤 총장 부인 관련 의혹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여권 인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지난해 4·15 총선 직전인 4월3일 대검찰청이 검사 출신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강욱·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등의 혐의가 적힌 고발장을 전달했다고 2일 밝혔다.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김 의원에게 전달한 고발장은 ‘고발인란’이 비어 있고 윤 전 총장과 부인 김건희씨, 한동훈 검사장이 피해자로 적시돼 있었다고 한다. 고발장엔 또 유 이사장과 최강욱·황희석 후보 등이 총선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문화방송>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와 <뉴스타파>의 김건희씨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보도에 개입했다는 혐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직 의혹 단계여서 예단은 금물이지만, 공명정대하게 법을 집행해야 할 검찰이 야당에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보도 내용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나온 관련자들의 해명이 분명하지 않은 점도 의구심을 키운다.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은 손준성 검사는 “고발장 전달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으나,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김웅 의원은 “당시 의원실에는 수많은 제보가 있었고, 제보받은 자료는 당연히 당 법률지원단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건지 아닌지 핵심을 피해 가는 해명이다. 김 의원은 또 “정당과 국회의원은 공익신고의 대상으로, 이에 대한 공익제보를 마치 청부 고발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공익제보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심히 유감”이라고도 했는데, 지금 의혹의 대상은 공익제보가 아니라 검찰의 고발 사주라는 점에서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김 의원은 당시 의원도 아니고 후보였다.

윤석열 캠프는 “윤 후보는 전혀 모르는 일이며 그런 사실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준석 대표는 “청부 고발의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 실제 고발이 이뤄진 바도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의혹은 실제 고발 여부를 떠나 검찰이 고발을 사주했느냐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 대표의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이번 의혹은 사안의 성격상 법무부 감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국민의힘도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부동산 의혹’ 국민의힘의 권익위 공격, 적반하장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국회의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힘의 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이 제기된 의원 12명 가운데 6명에게 ‘면죄부’를 준 것도 모자라, 권익위 조사 자체에 대해 ‘불공정’ ‘야당 탄압’ 프레임을 덧씌우며 흠집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을 받는 의원들에 대한 지도부의 처분을 두고 ‘용두사미’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조사 주체인 권익위에 비난의 화살을 돌려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의원이 25일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권익위 때리기’에 나섰다. “권익위가 조사 자체를 희화화했다”(이준석 대표), “권익위가 엉터리 조사, 터무니없는 결정을 했다”(김기현 원내대표)고 포문을 열더니, 급기야는 “야당 의원을 어떻게든 엮어 망신을 주려는 것”(권성동 의원)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권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권익위의 직권남용을 끝까지 추궁하자”고 했다. 한마디로 권익위의 조사를 못 믿겠으니 징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권익위가 통보한 12명의 의원 가운데 6명에 대해 당사자의 소명만 듣고 반나절 만에 무혐의로 판단해 ‘셀프 면죄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동안 ‘민주당보다 더 엄격한 처리’를 강조해왔던 것과 견주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과도한 ‘엄호’도 볼썽사납다. 이준석 대표가 윤 의원의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권익위가 연좌 형태로 의혹을 제기했다. 참 야만적”이라며 “윤 의원이 책임질 일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윤 의원 스스로 부친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권익위에 제출했는데 이제 와서 연좌제라니, 연좌제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윤 의원 부친의 농지 매입을 둘러싼 의혹은 충분히 제기할 만한 정황이 있다. 고령의 부친이 연고도 없는 세종시에 1만㎡가 넘는 농지를 사들인 점, 해당 농지가 국가산업단지 예정지 인근이라는 점, 주소지를 여러 차례 옮긴 점 등이다.

물론 권익위에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는데 그냥 덮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권익위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권익위가 의혹 규명을 위해 조사 자료를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넘겼으니, 수사 결과를 차분히 지켜보는 게 공당의 책임 있는 자세다.


[한겨레 사설] ‘아프간 미군 철수’ 둘러싼 무책임한 아전인수 주장들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친미 정부를 세웠던 미군이 20년 만에 철수하고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벌어진 혼란과 그 후폭풍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비판에 휩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철수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국익이 걸려 있지 않은 전쟁에서 무한정 싸우지 않겠다”는 ‘바이든 독트린’을 선언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으로, 미국 외교전략의 근본적 방향 전환 신호라는 의미가 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식 질서를 전세계에 무리하게 이식하려다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미국이 중동과 유럽 등에서 역할을 축소해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현실주의의 요소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새 전략에서 한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위상은 훨씬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엉뚱하게 세계 6위 군사력과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을 무너진 아프간 정부군에 비교하면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한미동맹에 더욱 밀착해야 한다는 아전인수식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관리 출신의 보수 논객이 “한국도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프간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을 한 데 이어, 18일 <조선일보>는 ‘아프간 떠나는 미국 보며 한국 처지를 생각한다’는 사설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쿼드 전략 등에 협력하지는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만 막아달라는 한국의 애매한 입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아프간 사태가 한·미 동맹 중요성 보여줬다’는 사설에서 “정부와 군은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 동맹 강화와 강군 유지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아프간처럼 되지 않으려면, 한미동맹을 강화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밀착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들이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려를 잠재우려 애쓰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방송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 나토 등 동맹과 대만은 아프간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면서, 동맹이 침략당하면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전날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가능성을 일축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국 국익 중심의 외교전략 변화가 시사하는 의미를 면밀히 주시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하고 비용 분담도 늘려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한국은 원칙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되, 미국의 요구를 무작정 수용해 중국과 군사적 긴장과 대결로 나아가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상당 기간 한미동맹은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한국의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자, 아프간 사태가 주는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한미동맹을 잘 관리하면서도 자주국방을 강화해야 하고 전시작전권 환수도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일본 ‘평화의 소녀상’ 전시, 폭력에 굴복 말아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이 9일,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를 시민 안전을 이유로 불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전날 나고야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 중단된 데 이어 오사카 전시회 또한 무산될 듯싶었는데, 법원 결정으로 전시회가 열릴 수 있게 된 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일본 법원 결정을 환영하며, 다시는 폭력에 의해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언론 보도를 보면, 재판부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회를 취소한 데 대해 “(시설관리인 쪽이) 시설 이용을 거부하는 건 경찰 경비 등을 통해서도 혼란을 막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며 예정대로 전시회를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시민 안전을 명분으로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매우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하고 적절한 결정이라고 본다. 우익의 협박에 번번이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됐던 전례에 비춰보면, 이번 결정이 평화와 연대를 위해선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일본 사회에 남기길 기대한다.

일제의 뼈아픈 역사를 덮으려 전시회마저 협박하는 일본 우익의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9년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표현의 부자유전’이 개최됐을 때도 우익의 항의와 테러 위협으로 3일 만에 전시를 중단했다. 2년 만에 나고야에서 같은 전시회를 열었지만, 이번엔 폭죽이 든 우편물이 배달되어 8일 시 당국이 ‘안전상 이유’로 또다시 전시를 중단했다. 도쿄에선 아예 전시 시설을 구하지 못했다는데, 그나마 오사카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다.

전시 중단의 직접 원인은 일본 우익의 협박과 폭력이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전시 중단을 수수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일본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훨씬 큰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사카 법원 결정에 대해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는 “(전시) 시설 내에는 보육 시설도 있다. 안전한 시설 관리, 운영 관점에서 이용 승인을 취소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어디 오사카 당국만의 생각이겠는가. 일본 정부 역시 과거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기 위해 우익의 협박에 강력하게 맞서지 않는 게 지금 일본의 현실일 것이다. 법원 결정을 일본 사회 전체가 평화의 소녀상 전시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한겨레 사설] 이재명 ‘미 점령군’ 발언에 ‘색깔론’ 공세 중단해야

보수 야권과 언론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두고 대대적 ‘이념 공세’에 나섰다. 이 지사의 말을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유승민), “충격적 역사관”(오세훈)이라고 공격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에 이어, 4일엔 범야권 선두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까지 가세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이 지사의 발언은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정부 수립 단계와는 좀 달라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사실 그 지배체제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느냐”는 대목이다. 지난 1일 이 지사가 경북 안동에 있는 항일시인 이육사 기념관을 찾았을 때 친일 청산이 미흡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발언 직후엔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하루 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점령군’ 표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윤 전 총장은 한술 더 떠 노골적으로 색깔론을 펼쳤다. 그는 페이스북에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세력의 유력 후보가 이어받았다”며 “이에 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라고 했다. 논리의 비약일 뿐 아니라 집권세력 전체에 ‘국체 부정’이란 딱지를 붙이려는 저열한 의도다.

그러나 ‘점령군’은 1945년 일본 패망 뒤 38선 이남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가 포고문에서 스스로를 규정한 ‘Occupying Forces’를 옮긴 것으로, 역사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최근 사례를 봐도 <동아일보> 회장을 지낸 보수 정치학자 김학준이 지난해 <신동아>에 한국 현대사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일관되게 ‘미·소 점령군’이란 표현을 썼다. 승전국 미국이 패전국 일본의 지배 아래 있던 한반도 남쪽을 군사적으로 점령했다는 뜻이다.

대선 경쟁에 뛰어든 이가 상대 후보의 발언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에게 당부한다. 사실 왜곡과 과격한 선동으로 점철된 구시대적 색깔 공세를 중단하기 바란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민생 해법을 두고 경쟁하기에도 대선까지 남은 8개월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겨레 사설] 궤변으로 가득한 최재형 감사원장 ‘사임의 변’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감사원장을 그만둔 뒤의 거취와 관련해선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그의 최근 발언과 주변 인사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내년 3월 치르는 대통령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일단 중도 사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번 뒤 대선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대선에 도전한다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정치권에 직행하는 첫번째 감사원장이 된다.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이 명시한 4년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도 사퇴한 감사원장은 최 원장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중간에 그만둔 감사원장이 곧바로 정치권에 직행하거나 대선에 도전한 전례는 없다. 세 차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전 원장, 서울시장에 도전한 김황식 전 원장은 국무총리를 거쳐 정치권에 들어간 경우다. 최 원장 스스로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랬으니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답변을 흐렸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참여 발표를 좀 늦춘다고 해서 그 부적절성이 희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임기 종료를 불과 6개월 앞둔 최 원장이 밝힌 ‘사임의 변’은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중도 사퇴를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 탓으로 돌린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논란을 빚어낸 당사자가 할 소리는 더욱 아니다. 현직 감사원장을 대선 후보로 집요하게 거론하는 야당에 대해 그가 한번이라도 명확하게 선을 긋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가. 그랬다면 그를 둘러싼 ‘거취 논란’은 신속하게 정리됐을 것이고, 일련의 감사들에 대한 중립성 시비도 잦아들었을 것이다.
최 원장은 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도 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했는데, 직전 원장의 대선 참여야말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그가 자신의 말처럼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중시한다면 자중자애하는 게 마땅하다.

최 원장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직무상 독립된 헌법기관인 감사원장 자리마저 거침없이 내던지는 이가 국가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남은 임기 동안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다하는 것이었다. 임기제인 검찰총장이 중도 사퇴하고 정치의 길로 들어선 데 이어, 감사원장마저 임기 도중 사퇴하는 걸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그가 공직자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대선 출마의 뜻을 접는 게 도리일 것이다.


[한겨레 사설] ‘한미 워킹그룹’ 종료, 남북·북미 선순환 틀 만들어야

대북 정책을 조율할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 워킹그룹’이 폐지된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21일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 워킹그룹은 2018년 11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 대북 제재 이행 등에 관해 양국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북 제재 문제를 미국의 여러 관련 부처와 일일이 논의할 필요 없이 한 협의체에서 원할하게 다룬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유엔 제재를 명분으로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행사에 동행한 취재진의 노트북 반출을 막고,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북한 지원 사업을 무산시키고,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을 막은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 남북관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국내에서 확산됐을 뿐 아니라 북한의 거센 반발도 불렀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친미 사대의 올가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한-미가 워킹그룹을 폐지하고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만들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밝힌 것을 진전시킨 것으로, 북한을 향해 대화 복귀를 설득하는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대화 재개를 둘러싸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대화에도 대결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하자,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흥미 있는 신호’라고 했다. 하지만 김여정 부부장은 22일 “꿈보다 해몽”이라며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담화를 냈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먼저 움직이라’며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중요한 국면에선 한·미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협력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성김 대북특별대표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과 이를 위한 금강산 방문을 한-미가 공동으로 추진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가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창의적인 조율을 해야 할 때다.


[한겨레 사설] 인권 무시한 판결로는 한일관계 미래로 갈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7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편향된 외교·안보 논리를 앞세워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조악한 판결 내용에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급심에 불과한 이번 판결이 마치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뒤집은 것인 양 견강부회하는 보수 언론들의 태도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번 판결의 논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문제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근거로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징용(강제동원)의 불법성은 모두 국내법적 해석”이라며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침략국이 불법성을 부정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가해국 중심 국제정치 논리를 답습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외화 덕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고,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한미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엉뚱한 근거를 들기도 했다. 엄정한 법리에 근거해 인권 침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사법부가 외교와 국제적 힘의 논리를 내세워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것은 극히 유감이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여전히 우리 사법부의 권위가 실린 판례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항소심에서 이번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도 일부 보수언론들은 “1심이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조선일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법원 판결이 뒤집혔으니 이제 ‘외교의 시간’이 왔다”(중앙일보)며 이번 판결에 과도한 무게를 실어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얄팍한 술수다.

한-일 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개인들의 인권을 무시해서는 한-일 관계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국가주의적이고 비법률적인 논리로 점철된 이번 판결은 오히려 걸림돌만 될 뿐이다. 법적 판단은 법리에 따라 엄정히 하되, 외교적 노력도 병행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만 내세워 피해자들이 실제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욱 적극적인 외교로 해법 마련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계속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