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외압’ 면죄부 주고 끝난 세월호 검찰 수사

검찰이 2019년 11월 구성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이 19일 임무를 마치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더 이상의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를 하겠다’며 검찰총장 직속으로 설치됐지만, 1년2개월여의 활동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특수단 수사에서 풀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참사 이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느냐는 의혹이었다. 법무부가 검찰에 해경 123정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빼도록 지시했다는 구체적 증언들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특수단은 이런 지시를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관련자 진술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또 혐의 인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과잉수사라며 황 전 장관과 우 전 수석을 서면조사하는 데 그쳤다.

특수단은 123정장 수사에 대해 법무부가 지시가 아닌 의견 제시를 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검찰청이 먼저 보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법무부 장관의 공식 수사지휘 이외에는 법무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셈이다. 또 대검이 법무부에 수사 내용을 보고한 행위가 위법한지 여부에 대해선 법무부와 대검이 발표해야 할 문제라고 피해 갔다.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암암리에 법무부가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넘어가자는 식이다.

특수단은 구조 책임을 물어 해경 지휘부 11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특조위 활동 방해 혐의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국정원·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등 나머지 의혹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수사 외압 의혹마저 2017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이어 두번째 면죄부를 줬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사설] 여당 대표의 새해 첫 메시지 ‘이, 박 사면론’, 부적절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을 거론한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집권여당 대표가 국민에게 내놓은 새해 첫 메시지로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코로나 극복과 경제 회복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의 삶과는 별 상관도 없는 사면론을 꺼내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대표는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당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여당 대표로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제 말을 꺼낸 상황이다. 건의가 실제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의 사면론은 민주당 안에서도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의 독자적인 결심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등 부정적 반응이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유로 ‘국민 통합’을 든 것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두 전직 대통령은 중대 범죄를 저질러 죗값을 치르는 중이다. 사면을 받으려면 최소한 뼈아픈 반성과 진솔한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한번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은,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달 14일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한다”며 감옥에서 현실 정치에 개입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서 풀어주면 국민 통합이 된다는 논리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생각이다. 국민들의 상식과 법감정에도 어긋난다.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론 분열을 부를 수 있다. 지금 국민 통합이 절실한 분야는 따로 있다. 코로나로 인한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가 사회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면 새해 첫 메시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구상과 계획을 밝혔어야 했다.

정의당은 물론 보수야당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전혀 옳지 않을 뿐더러 불의한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12월15일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탄핵에 대해 ‘수위 높은’ 대국민 사과를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번(12월30일)에 (이 대표와)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지난 20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태극기부대를 대표하는 우리공화당만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불법 탄핵의 잘못을 시인하고 지금이라도 즉시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최근 자신과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할 수 있다. 하지만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라면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하지 말고 크게 보면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일부만 돌려받은 용산기지, ‘완전한 반환’ 속도 내야

주한미군 기지 12곳이 추가로 한국에 반환된다. 용산기지 안의 체육시설 2곳도 포함됐다. 2002년 한·미가 주한미군 기지 80곳에 대한 반환 작업을 시작한 뒤 용산 미군기지를 일부나마 돌려받기로 한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2개 체육시설의 면적은 5만3418㎡로 용산기지 전체 면적(203만㎡) 중 2.6%밖에 안 된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뗀 것으로 갈 길이 멀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비용 문제 협의도 진전이 없었다. 미국의 신속한 기지 반환과 비용 부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적극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11일 미국과 201차 소파(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를 열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포항, 강원 태백 등에 있는 11개의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을 반환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2년 한·미가 반환에 합의한 전체 80개 기지 가운데 이제 12곳이 남아 있다. 이 수치로만 보면 많이 반환된 것 같지만, 최대 현안인 용산기지 반환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핵심 시설인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의 평택 이전 일정이 여전히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미국이 연합사의 일부 잔류도 원하고 있다. 용산기지가 완전히 반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용산기지가 반환되면 국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용산 국가공원이 하루속히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협상을 해나가기 바란다.

정부는 이번에도 반환받는 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책임 문제를 추후 협의로 미뤘다. 정부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협의가 길어지면 기지 반환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최대한 기지 반환 작업을 완료하기 위해 ‘선 반환-후 비용 청구’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해외주둔 미군이 미군기지를 돌려준 뒤 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화 비용을 부담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대책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녹색연합은 “그동안 정부는 오염 비용 청구, 미군기지 환경관리 강화, 소파 개정 등 어떠한 것도 미국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이 없다”고 비판한다. 수십년간 토지를 사용하면서 심각하게 오염시켰다면 사용 주체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정부가 더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핵 협력·동맹 복원’ 확인한 한·미 정상 첫 통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2일 첫 정상 간 통화에서 북핵 문제, 한-미 동맹, 코로나19 대처, 기후변화 대응 등 네가지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북핵 문제 해결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첫 통화에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 등 핵심 현안에 공감대를 이룬 것은 의미가 크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멈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11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바이든 당선자는 전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정상과 한 통화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훼손한 글로벌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로 간주하고 상식을 넘는 규모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바이든 시대에는 한-미 관계를 훼손하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반면 미-중 관계에선 바이든 당선자 역시 중국 압박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자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서 핵심축(린치핀)”이라고 말했다. 일본·오스트레일리아 정상과의 통화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 문제를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전략을 면밀히 살펴 치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 두 나라 정부는 정상 간 통화에서 확인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요 현안의 구체적 해법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맹의 바탕은 믿음이고 믿음은 상호존중에서 나온다’는 점을 바이든 정부에 각별히 당부한다.


[한겨레 사설] 극심한 분열과 갈등 드러낸 대혼란의 미국 대선

전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본 미국 대선이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개표가 한참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주장하면서 개표를 중단시키기 위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새벽(현지시각) 백악관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이 선거를 이겼다”고 주장하면서, 선거일 이후의 모든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부를 가를 6개 경합주 중 5곳에서 자신이 앞서자,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한 우편투표 개표를 아예 막으려는 의도다. 유권자들이 합법적으로 행사한 투표의 개표를 대통령이 중단시키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초법적 행위여서 국민들의 거센 저항이 예상된다. 앞서 바이든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선거 승리로 가는 길 위에 있다”며 끝까지 개표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승리를 위해서는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해야 하는데, <시엔엔>(CNN) 방송은 4일 밤(한국시각) 트럼프 대통령 213명, 바이든 후보 224명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급증한 우편투표는 이번 선거에서 승부를 가를 결정적 변수다.

전세계 민주주의 모범 국가라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우편투표를 문제 삼아 실제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당선자 확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혼란은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크다.
이번 선거는 극심하게 분열된 미국 사회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극우 음모론에 의존했다. 지지자들은 무장을 한 채 민주당 주지사를 납치하려 모의했고 바이든 후보 유세차량을 공격하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 선거일 하루 전까지도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빚어져 백악관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울타리가 설치됐다. 당선자 확정이 계속 늦어지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개표 결과에 불복한다면 양쪽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윤 총장-언론사주 만남’ 진상 규명 필요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이뤄진 언론사 사주들과의 회동과 옵티머스 사건 무혐의 처분에 대해 감찰 등을 통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지난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들 사안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윤 총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중앙일보> 사주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을 만난 데 대해 ‘상대방 동의가 없으면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직답을 피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사건과 관련 있는 언론사 사주들을 만난 것은 이해충돌 문제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사주 일가가 연루된 고 장자연씨 사건을 비롯해 여러 고발 사건의 당사자였고, 홍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피의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친척 관계다. 검사윤리강령은 “검사는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우려가 있는 자와 교류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 장관이 “검사윤리강령 위배의 여지가 있다”며 “감찰이 진행 중”이라고 한 만큼 만남의 성격과 적절성 여부를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

2018년 한국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한 옵티머스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서 무혐의 처리된 것에 대해서도 윤 총장은 ‘부장검사 전결 사항이라 보고받지 못했다’며 별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옵티머스 투자 사기의 피해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이날 국감에서는 전결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부장검사와 옵티머스 변호인 등이 윤 총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중대한 사건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감찰 등을 통해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를 확인해야 한다.

추 장관은 또 “고액의 향응을 받은 검사가 (라임) 사건 수사팀장으로 투입돼 깜짝 놀랐다는 김봉현씨의 진술이 감찰 결과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이 사안 역시 보고 누락·은폐 의혹에 대해 감찰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검찰을 둘러싸고 감찰 필요성이 제기되는 사안이 여럿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의 산물로 보는 일부 시선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검찰의 신뢰와 공정성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신속하고 엄정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위원장 사과, 후속조처로 진정성 입증해야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공식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공무원의 피살 사건과 관련한 정부 발표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직접 신속하게 사과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가 이것으로 다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발표 내용과 북한이 밝힌 사건 경위가 크게 차이가 난다.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줄 후속 조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는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북-미 대화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는 지난 8일과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코로나와 집중호우, 태풍 피해를 위로하며 주고받은 친서도 공개했다. 그동안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물밑에서 이어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사건 경위 설명에서 북한군의 행위가 불가피한 대응이었음을 강변했다. 북한은 숨진 공무원이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했고, 총격 뒤 해상에서 소각한 것은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이라고 했다. 총격은 인정했지만 주검 훼손 행위는 부인한 것이다. 우리 공무원이 월북 의사를 밝혔고 주검이 불태워졌다는 정부의 발표와 배치된다. 특히 북한은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남북 당국의 설명이 엇갈리는 만큼,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남북한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북한이 주검을 불태우지 않았다면 주검이 바다 위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주검 수습을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공동수색을 서둘러야 한다. 이 또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비극적 사건은 지난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함께 남북 통신선이 끊기는 등 대화 채널이 단절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화 채널 복원을 위한 남북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한겨레 사설] 또 합의 뒤엎겠다는 전공의들, 고립 자초할 뿐이다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우여곡절 끝에 4일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치’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의협은 산하단체들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전임의협의회 등과 함께 만든 단일 협상안을 들고 협상에 나섰다. 그런데도 대전협이 “최대집 의협 회장의 독단적 결정”이라며 합의문 서명을 저지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날 합의는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위기 상황에서 더는 의료 공백 사태를 방치하기 어려워 의사단체들의 핵심 요구를 받아들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공공의료 강화 논의가 자칫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부·여당이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고 공공의료 확대를 포기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합의안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 논의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의 ‘철회’와 ‘원점 재논의’는 그동안 의사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다. ‘철회’ 대신 ‘중단’이라고 했지만 핵심 요구가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그런데도 대전협은 ‘철회’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반발하고 있다. 박지현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에스엔에스(SNS)에서 “저희 제안에는 ‘철회’가 있었고, 아무리 그 뜻이 ‘원점 재논의’와 같다고 한들 우리가 주장해온 명분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뜻이 같더라도 철자 하나 바꿀 수 없다니, 이건 말 그대로 생떼다. 박 위원장은 합의안에 ‘단체행동 중단’이 적시된 것에 대해 “단체행동 중단은 저희가 결정한다”고도 했다. 의협 산하단체로 직접 합의안을 만들어 최대집 회장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도 보이지 않는 막무가내식 행태로,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대전협은 이번 집단행동을 주도해왔다. 지난 7월 말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발표하자 의사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또 지난달 21일에는 정부와 의협이 마련한 잠정합의안에 반발하며 판을 깼다. 특히 지난달 30일엔 집단휴진 연장을 부결한 1차 투표 결과를 뒤집으면서까지 휴진을 밀어붙였다.

대형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면서 생명을 다투는 수술이 필요하거나 응급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이기적인 행동 탓에 의사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여기서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물론 국민도 더는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민생이 안보, 국방예산 줄여 코로나 극복에 쓸 때다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555조8천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3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중 국방예산은 52조9174억원이다. 국방부는 국방예산 증가율 5.5%가 전체 예산안 증가율 8.5%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올해 증가율 7.4%보다도 1.9%포인트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예산 증가율 4.2%보다 높다.

물론 우리의 분단 현실을 고려하면 튼튼한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정부가 9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년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다. ‘민생이 안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국방예산 중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 코로나 대응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존 ‘군사 안보’ 위주의 관점을 넘어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튼튼한 국방’을 강조하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40조3347억원이던 국방예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연평균 7%의 증가율을 보여, 4년 만에 12조원 넘게 급증했다. 내년 국방비 증가율이 예년에 견줘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방비 누계’에 주목해야 한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총 국방비가 727조원인데, 지난 3년 동안 140조원가량 사용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첨단무기를 증강하는 방위력 개선비 평균 증가율이 11%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평균 증가율인 5.3%에 견줘 2배가 넘는다. 국방부가 지난달 9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을 보면, 앞으로 5년간 국방예산이 약 301조원이다. 이 추세라면 2026년 국방비는 70조원을 넘게 된다. 중국과 일본의 위협까지 상정한 ‘전방위 안보 위협’ 대비를 내세워 추진하는 경함모, 핵잠수함 도입 사업이 동북아 평화를 흔들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유럽에서는 국방비와 복지 가운데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 이 둘 사이의 적정 분기점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대포 버터’(guns or butter) 논쟁이 치열했다. 안보를 최우선시해온 국내에선 국방비가 성역 취급을 받아왔다.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 때다. 예산 심의를 앞두고 있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방예산 규모가 적정한지, 꼭 필요한 곳에 배정됐는지, 더 아낄 방법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심의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종교자유 목숨과 바꿀 수 없다”, 지금 할 말인가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이 27일 대면 예배 금지 조처와 관련해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교회는 정부 방역에 적극 협조하겠지만 예배를 지키는 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교회 지도자들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교회가 집단감염의 연결 고리라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예배를 금지한 것도 아니고 비대면 방식으로 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종교의 자유” 운운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상당수 성당과 사찰은 온라인으로 미사와 예불을 진행하고 있다. 또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 교회도 적지 않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6일 발표한 개신교 신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7%가 “종교 집회 자제 권고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계 지도자라면 신자들에게 온라인 예배를 적극적으로 당부하는 게 마땅한 일인데, 되레 거꾸로 가고 있다.

김태영 회장은 “정부가 종교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또한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일부터 수도권에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피시방, 노래방, 뷔페 등 12개 업종이 문을 닫았다.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지금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교회가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얘기를 하는 건 상식 밖이다.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한 모든 초·중·고 학생들이 등교 수업 대신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하객 참여를 제한하며 결혼식을 치르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모두 코로나19 확산이 공동체 붕괴라는 최악으로 치닫는 걸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예배도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광복절 ‘친일 청산’ 다짐조차 트집 잡는 통합당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행적을 비판하며 “친일 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한 데 대해, 미래통합당 정치인들이 격한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찬란한 우리 민족의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이라며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고,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친일·친나치 활동을 했다는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21대 국회에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의 묘를 이장하도록 하는 ‘국민묘지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며 “우리 역사는 친일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김 회장이 “편향된 이념으로 국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반일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김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주말 내내 거센 비난 공세에 나섰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을 이름만으로 부르고,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하고, 현충원의 무덤까지 파내자는 무도한 주장을 했다”며 “대한민국 독립운동 정신의 본산을 사유화하는 김 회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제주도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김 회장의 기념사가 대독된 직후 원희룡 제주지사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편향된 역사만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 “국민을 다시 편 가르기 하는 시각”이라고 반발했고, 이에 일부 참석자들이 고성을 지르고 퇴장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복회장이 광복절을 맞아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청산을 촉구한 것이 이토록 거센 공격을 받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통합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친일 청산은 정파나 이념과 무관한 우리 사회의 역사적 과제다. 통합당을 비롯한 보수·극우 세력이 이번 기념사를 빌미 삼아 진영 논리를 강화해 친일 역사 바로잡기에 대한 역공에 나서려고 한다면 거센 역풍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김 회장이 과거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처신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만큼, 김 회장 스스로 명확히 사과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전하는 이른바 ‘파묘’를 주장했고 국회에도 이런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국민의 여론을 충실히 수렴하면서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친일 청산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길이라고 본다.


[한겨레 사설] 어려워도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 꼭 이뤄내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마무리 짓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오는 16~28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규모가 축소되면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미래연합군사령부 완전운용능력 검증 일부가 내년으로 미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내년으로 예정된 마지막 단계인 완전임무수행능력 검증도 미뤄지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인 2022년 5월 이전에 전작권 전환은 불투명해진다. 전작권 전환이 차기 정부로 미뤄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치밀하게 준비해서 현 정부 임기 안에 전작권 전환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작권은 ‘군사주권’이기에 전작권 전환은 빠를수록 좋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가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전작권 전환이 지금까지 늦춰진 데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핵개발과 천안함 사태를 이유로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일정(2012년 4월)을 2015년 12월로 미뤘다. 박근혜 정부는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한국군의 연합작전능력과 주변 안보환경 등 ‘조건’이 충족돼야 전환하기로 했다. 사실상 무기 연기인 셈인데, 이제 와서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침이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작권 전환을) 미군의 승인에 해당하는 ‘검증’에 맡긴 건, 신호등을 여러 개 설치해 놓고 파란불 켜는 권한을 사실상 미국에 준 것과 다르지 않다”(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 검증 일부를 내년으로 미룬 건, 미-중 신냉전으로 미국이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인 태도로 바뀐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연합훈련 협의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전작권 전환에 초점을 맞추자는 한국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펴면서, 한반도를 대중 전초기지로 삼으려면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계속 손에 쥐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과거 미국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물꼬가 터졌던 사안이다. 지금 와서 이런저런 검증의 이유를 달며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미국 주장에 끌려갈 게 아니라 강하게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전작권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군이 독자적 작전계획을 세우거나 작전지휘능력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아베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계획 당장 멈춰야

국제사회 관심이 코로나19에 쏠린 사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기 위한 준비를 강행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지난 3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바다에 흘려보내는 구상을 담은 초안을 발표한 뒤 4~7월 넉달 동안 다섯번의 공청회를 열었고 올 10월 안에 최종 방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베 정부는 현지 주민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를 무시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양 오염을 초래할 조처를 밀어붙이는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후쿠시마 주민과 어민들은 바다에 방사성 물질을 뿌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원전 사고 이후 오염된 빗물과 지하수를 저장한 탱크가 2022년 여름이면 꽉 차게 돼 방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지만, 시민단체들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 광대한 땅의 용도를 변경해 탱크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이 안전한데도 정부가 비용이 가장 저렴한 방류를 강행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방사성 물질을 걸러낸 탱크 속 오염수에는 삼중수소만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나라든 원전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를 바다나 대기에 방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하지만 도쿄전력이 ‘처리’했다고 주장하는 약 120만톤의 오염수에는 인체에 유전자 변이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허용치보다 최소 100배에서 2만배 넘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밝혔다.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1년 안에 해류를 타고 한국 동해로 유입된다고 분석했다. 30년 동안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을 담은 오염수가 동해로 흘러든다면 해양 생태계와 우리 국민의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지난 6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 계획을 가속화한다는 보고가 있다”며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일본 정부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지만,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리려는 노력을 더욱 강력하게 펼쳐야 한다. 한국은 바로 이웃나라인 만큼, 일본 정부에 문제를 제기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동아시아 미래를 위한 문제 제기와 외교에 적극 나설 때다.


[한겨레 사설] 북미대화 불씨 남긴 김여정의 협상 조건 제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10일 담화를 내어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앞으로도 조-미 수뇌(북-미 정상) 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담화 전체 내용을 보면, 북-미 정상회담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이 담화는 “도움이 된다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언과 “북한과 계속 대화하기를 매우 희망한다”는 지난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 뒤에 나왔다.

먼저 김여정 부부장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할을 나눠 설명한 담화 방식이 눈길을 끈다. 김 부부장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조-미 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이어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부정적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 분담은 최근 남북관계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에 초점을 두겠다는 대미 협상 기조를 밝히고 “미국과는 당장 마주 앉을 필요가 없으며 미국의 중대한 태도 변화를 먼저 보고 결심해도 될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대표적 적대시 정책으로 꼽아왔다.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 여건을 만들기 위해 8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나 취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담화 말미에서 김 부부장은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디브이디(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고 한다’는 뜻을 밝혔다. 뜬금없이 들리지만, 디브이디 전달을 내세운 북-미 접촉 제안이다. 지금은 이런 대화의 작은 불씨라도 살려야 한다.


[한겨레 사설] 비건 방한, 말 아닌 행동으로 북미대화 빗장 풀기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를 발표해 “조미(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최 부상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 있는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담화를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이 미국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고 분석하나,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최 부상 담화를 뜯어보면, 미국이 판을 새롭게 짜거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대화의 조건’이 담겨 있다. 빈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면 미국과 마주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 부상 담화는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3차 북-미 정상회담 중재 노력 발언과 외교안보팀 교체, 북한과 비핵화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이번주 방한(7~9일)에 맞춰 나왔다. 지난해 11월 비건 부장관은 비핵화 협상의 카운터파트로 최 부상을 지목한 바 있다. 방한 기간 중 비건 부장관이 내놓을 대북 메시지가 북-미 대화 재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한반도 정세 악화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를 치밀하게 하고 교착 상태인 남북, 북-미 대화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다. 먼저 미국의 협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오는 8월 한-미 연합훈련 조정을 검토할 만하다. 북한이 이 훈련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문제 삼아왔고, 올해는 코로나19로 한국과 미국 모두 훈련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양국 정부가 이 훈련을 조정해 북한에 믿음을 보여주고 창의적인 협상안을 마련해 막힌 대화의 물꼬를 트길 기대한다.

우리 정부가 능동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북-미 관계도 추동해 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발탁한 배경에는 ‘남북이 적극적으로 속도를 내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테니 미국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방한 기간 비건 부장관이 서훈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등 새 외교안보팀과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부는 비건 부장관에게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미국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장관 지휘권’ 자초한 윤석열 총장의 ‘측근 수사’ 개입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전문수사자문단(자문단) 절차를 중단하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이 사건에서 손을 떼고 수사 결과만 보고받을 것도 지시했다. 윤 총장이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안팎의 비판과 추 장관의 잇따른 경고 메시지에도 자문단 소집을 강행하려 하자 장관으로서 법적인 권한 행사에 나선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2005년 이후 15년 만의 일로 이례적인 조처지만, 윤 총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의 근거로 든 내용들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것이다. 한동훈 검사장이 소환조사와 휴대전화 포렌식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문단이 수사 타당성을 심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자문단 소집 결정과 단원 선정 과정의 불공정성 등을 고려하면 자문단 소집은 더욱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사건 초기부터 윤 총장의 부당한 간섭이 쌓이면서 급기야 서울중앙지검이 지난달 30일 항명에 가까운 이의제기를 했고, 이런 충돌 상황에 대해 추 장관이 1일 국회에서 사과 발언까지 했다. 이 정도면 윤 총장이 스스로 자문단 소집을 거둬들였어야 옳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찰은 치욕으로 받아들인다. 2005년 천정배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던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을 때 김종빈 검찰총장이 항의 뜻으로 사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여러모로 당시와 구별된다. 이번에 지휘 대상이 된 것은 일반 사건이 아니라 검찰 내부의 비위 혐의 수사다. 검찰총장이 측근 관련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한다고 의심받는 상황에서 장관의 지휘 말고는 견제장치가 없다. 또 지난번에는 수사팀의 의지를 꺾는 지휘권 행사였다면 이번에는 일선 수사팀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이다.

검찰의 독립성은 지켜야 할 가치이고, 구체적 사건에 대한 장관의 지휘는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다. 하지만 장관의 지휘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이 정도를 벗어날 때 민주적 통제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독립성을 이유로 검찰이 제한 없는 권한을 누린다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될 위험이 있다.

윤 총장은 일단 3일로 예정됐던 자문단 소집 절차를 중단하고,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어 수사지휘 수용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의 성격에 비춰 검찰 조직이 동요하거나 반발할 이유는 없다. 과거 사례처럼 총장의 거취 문제로까지 확대시킬 일도 아니다. 윤 총장은 장관의 지휘대로 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공정한 처분을 하기 바란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 내부의 비위 의혹이 불거질 때 대처하는 방식도 재정비해 규범화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사설] 검-언유착 수사팀의 ‘항명’ 부른 윤석열 총장의 ‘독단’

<채널에이(A)>와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둘러싼 검찰 지휘부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사팀의 이의 제기에도 수사의 적절성을 따지는 전문수사자문단(자문단) 소집을 강행하자 서울중앙지검이 30일 소집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공문을 대검찰청에 보냈다. 수사팀에 ‘특임검사에 준하는 독립성’을 달라는 요구도 했다. 건의 형식을 띠었지만 항명에 가까운 강한 문제 제기다.

서울중앙지검은 “사실관계와 실체 진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지금 단계에서 자문단을 소집할 경우 시기와 수사 보안 등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에 대검은 “(채널에이 기자) 구속영장 청구 방침까지 대검에 보고하였으면서 이제 와서 실체 진실과 사실관계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핵심 피의자인 한 검사장 소환 조사는 대검의 제동으로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의 핵심 길목을 막아놓은 채 수사의 적절성을 따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문단은 대검과 수사팀이 각각 자문단원 후보자를 추천해야 하는데, 수사팀의 참여 거부로 대검 추천 인사만으로 구성된 상태다.

윤 총장은 유난히 이 사건 수사에 방어막을 쳐왔다. 대검 감찰부 배제, 채널에이 압수수색 당시 수사팀 공개 질책, 구속영장·소환조사 제지, 자문단 회부 독단 결정, 자문단 구성 강행 등이 모두 그렇다. 자신의 최측근이 연루된 사건이면 뒤로 물러서 있는 게 합당한 태도인데, 주요 국면마다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의 종합판을 보는 듯하다. 이래서는 수사의 공정성이라는 외양조차 갖출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임검사에 준하는 직무의 독립성을 원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타당하다. 특임검사는 검사의 중대한 범죄 혐의를 수사할 때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최종 수사 결과만 총장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검사 비위 사건에 여러 차례 적용된 바 있다. 검찰 고위직이 관련된데다 총장의 ‘측근 감싸기’ 비판이 제기되는 이번 사건이야말로 특임검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내부 갈등만 불거지는 검찰의 모습은 지켜보는 국민들이 지칠 지경이다. 검-언 유착 수사팀에 독립성을 보장한 뒤 결과를 갖고 평가받게 하는 게 옳다.


[한겨레 사설] ‘끝나지 않은 전쟁’ 70년에 다짐하는 ‘한반도 평화’

70년 전 오늘 한반도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으로 빠져들었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으면서, 미-소 양대 강대국의 갈등에 뿌리를 둔 냉전이 한반도에서 폭발했다. 강대국 간의 대립과 개입의 희생양이 된 이 땅에서 당시 남북한 인구 10%에 해당하는 300만명 이상이 희생되고 한반도는 잿더미가 됐다.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아닌 전투를 일단 중지하는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맺어졌다. 서로에 대한 증오, 이산가족의 아픔, 분단구조가 70년 동안 누적되면서 6·25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한반도를 옥죄어왔다.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우리는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고, 이젠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에 설레었다. 그해 9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시민들 앞에서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연설했다.

그러나 오늘 한반도는 다시 반목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이 ‘하노이 노딜’로 멈춰선 뒤, 남북관계도 얼어붙었다. 이달 들어 북한은 남북의 모든 직통 연락선을 차단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말폭탄을 퍼부었다. 남쪽을 향해 군사행동,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에 군 재배치, 삐라 살포 등을 예고했다. 지난 2년간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켜본 우리의 실망은 그래서 더욱 깊다. 힘겹게 바위를 굴려 언덕을 오르다 다시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은 것 아닌가, 가슴이 먹먹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열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긴장 국면이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북한은 남쪽과 미국을 향해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 만큼 상황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봤을 것이다. 최근 전면에 나서지 않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 적대 행동을 멈추는 역할을 맡은 것도 주목된다. 하지만 북한이 계획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보류’한 것이어서,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고 대화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니다.

이번에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을 보면서 70년 동안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정전체제를 이어온 현실을 다시금 뼈아프게 절감한다. 정전체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의 군사적 대치, 북한 핵 문제, 외세의 개입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볼턴 회고록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의 강경파는 대화를 통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반대한다. 더이상 미국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인 남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170여개 종교·시민단체들이 24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시민사회와 국제 여론의 힘으로 정전체제 극복의 견인차가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는 발등의 위기를 현명하게 관리하면서, 남북이 함께 냉전체제의 굴레를 벗어나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위기에 처하고 미-중 신냉전이 격화돼 군사적 충돌의 우려마저 커진 지금, 남북이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공동 번영의 미래를 만들 필요가 더욱 절실해졌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코로나발 경제위기의 중요한 해법이자, 신냉전에 휩쓸려 한반도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막는 길이다.

북-미 관계가 풀려야 남북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는 ‘주술’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이 먼저 움직일 때다. 한반도 평화의 염원이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북 합의를 단단히 붙잡고 다시 언덕을 올라야 한다.


[한겨레 사설] 남북 전단 살포 모두 백해무익하고 시대착오적이다

남북이 전단 살포를 놓고 연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은 대규모 ‘보복 삐라’ 살포 준비에 나섰다.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오는 25일을 전후해 대북전단 100만장을 보낼 계획이다. 남북 모두 백해무익하고 시대착오적인 ‘삐라전’을 즉각 멈춰야 한다.
지난 20일 통일부가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 계획 중단을 촉구했으나, 21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는 대남전단 살포 뜻을 재확인했다. 이미 다 깨어져나간 남북관계를 놓고 계획을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고, 역지사지 입장에서 똑같이 당해봐야 북한이 느끼는 혐오감과 불쾌감을 알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탈북자 단체인 큰샘이 지난 19일 대북 쌀 페트병 살포 계획을 보류한 배경에는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여론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하게 단속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북전단 금지법을 만들려고 한다.
북한 처지에선 남한의 뒤늦은 대처가 못마땅할 수 있지만, 대남전단 살포로 맞대응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더욱 소모적 대립으로 몰고 갈 우려가 크다. 자유북한운동연합도 남북 충돌의 불쏘시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여론을 고려해,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취소하는 게 마땅하다.

대북전단과 대남전단 모두 남북관계에 백해무익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이 공개한 대남전단의 내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내용을 보면 남한 내부 사정에 대해 오판하는 듯하다. 이런 전단은 남북 화해 협력을 지지하는 남한 국민마저 북한에 등을 돌리게 할 위험성이 크다.
북한 당국이 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것도 문제다. 대북전단은 일부 탈북민 단체가 뿌렸다. 대남전단은 “격노한 민심에 부응한” 조치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북한 사회 전체가 공개적인 방식으로 대규모 살포에 나서고 있다.

최근 한·미 보수 쪽에서 대북 군사강경책이 덩달아 나오는 것도 걱정스럽다. 미국 전략폭격기가 동해에 출격했고, 한반도 주변 미국 전략무기 배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미국 미사일방어(MD)계획 참여, 국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주장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고 있다. 남북한 전단이 이들에게 한반도 군사긴장을 높이는 빌미가 되어선 안 된다. 남북한 전단 모두 한반도 평화와 남북 주민 일상을 위협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한겨레 사설] ‘합의·신뢰’ 무너뜨린 북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북한이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지난 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져내리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지 사흘 만에 실행에 옮겼다.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토대로 문을 연 ‘남북 상시 소통의 상징’이 21개월 만에 무너져내린 것이다. 참으로 충격적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 국민 세금 114억여원이 들어간 연락사무소를 북한이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폭파한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날 무너진 것은 연락사무소 건물만이 아니다. 북한 당국의 신뢰도 크게 훼손돼, 애써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국내 여론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 폭파를 통해 ‘대남사업의 대적사업 전환’ 선언이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남북 합의를 무너뜨린 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과의 합의는 믿을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킬 것이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한의 대외 신뢰도에도 큰 해악을 끼치게 될 전략적 오판이다.

폭파에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남북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을 다시 요새화하고 대남전단 살포에 나설 가능성을 예고했다. 우선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시범 철거한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를 복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북한이 개성공단을 영구 폐쇄하고 공단 건설 당시 북쪽으로 이동시켰던 군 부대를 다시 배치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금강산 관광 시설을 철거하고 군 부대를 재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이곳을 다시 ‘요새화’한다면 남북관계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갈 위기에 빠진다.

북한은 남쪽을 압박해 판세를 바꾸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북-미 대화가 진전되지 않고, 한국이 미국 눈치만 보면서 남북협력을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불만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 구도를 조금씩 녹이면서 남북이 평화와 번영을 향해 전진해왔던 성과를 허무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예고대로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면 통제 불능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더 이상의 조처를 당장 멈춰야 한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유감을 표하고,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북한에 특사 파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북 당국은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대화를 통한 돌파구 마련에 최선을 다할 때다.


[한겨레 사설] 일본, 수출규제·강제동원 문제 ‘결자해지’해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해 현금화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시작됐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최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해 채권압류명령결정 등을 수령해 가라는 공시송달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일본 기업들이 계속 거부하자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에 나섰다. 일본 기업들은 관련 서류 접수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끌어왔지만,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로 현금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가 실행되면 보복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4일 “압류 자산 현금화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며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 기업 자산 압류나 한국산 제품 관세 인상 등을 보복 조처로 거론한다. 일본이 끝내 배상을 거부해 실제로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 관계는 다시 격랑 속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먼저 일본 정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처를 조속히 철회해야 한다. 일본은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해 7월 수출규제를 강행했고,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으로 맞대응했다. 그러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11월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발표하면서 일본 정부도 수출규제 조처를 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먼저 내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수출규제 철회를 계속 미뤘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고 보고 지난 2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재개했다.

이번 공시송달 결정의 효력은 올해 8월4일 발생하고 연말에는 일본 기업 자산 매각 절차가 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코로나19와 미-중 신냉전으로 세계적 혼란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상호 보복에 나선다면 양국 모두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두 나라 정부는 공동의 위기의식을 갖고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 특히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버리고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한겨레 사설] 우려되는 홍콩 보안법 통과와 미-중 ‘신냉전’ 격화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국제사회와 홍콩 시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28일 결국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을 때 약속한 ‘일국양제’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이날 통과한 보안법 권고안 초안은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 공안기관을 세워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할 수 있게 했다. 조만간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입법을 완료해 시행할 예정이다. 전인대 심의에서 ‘국가 안전을 위해하는 행위’까지 예방·금지·처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단순 시위자나 정부에 대한 비판까지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 전 범죄인을 중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송환법 추진에 반대해 홍콩 시민 200만명이 시위에 나서 법안을 철회시켰다. 중국 당국은 이런 홍콩의 민심을 외면하고 송환법보다 훨씬 강력한 보안법을 통해 홍콩에 대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통제에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는 27일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며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과 대중국 제재를 예고했다. 이런 조처가 취해지면 ‘아시아의 금융 허브’ 격인 홍콩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이날 미국 하원은 중국 당국이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 100만명 이상을 ‘재교육 캠프’란 명목으로 수용소에 수감하는 인권 탄압을 저질렀다며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위구르 인권정책 법안’도 통과시켰다.

미-중 신냉전의 불길이 기술 패권, 코로나 책임론에서 인권 분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전환을 선언했고, 중국도 이에 정면 대결로 대응하면서 이전과 다른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구축하자며 미국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중국 역시 경제 보복 카드 등을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판을 잠재우려 한다. 미·중의 이러한 ‘무리한 편가르기’ 속에서 우리 정부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사안별로 분명한 원칙을 정해 어느 쪽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면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민주화 노력과 소수자에 대한 탄압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겨레 사설]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 윤미향 당선자가 답해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두번째 기자회견을 열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를 향해서다.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서 시작된 윤미향 당선자와의 30년 인연을 회고하면서, 윤 당선자와 정대협이 피해자들을 “이용했고” 모금한 기부금도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대협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먹고, 묘지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가짜 눈물”이라고까지 말했다. 윤 당선자가 “사리사욕을 챙겨서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7일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 이후 이날까지, 윤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회계처리 부실, 안성 힐링센터 고가 매입, 윤 당선자의 개인계좌로 모금된 기부금 사용 문제 등이 거의 매일 터져나왔다. 위안부 인권운동 30년의 역사가 큰 상처를 입었고 시민들의 신뢰가 흔들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의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윤 당선자에 대한 국정조사를 언급하며 공세 수위를 높여온 미래통합당은 이날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이 외부 회계법인의 검증을 받기로 했지만,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이상 이제 진상 규명의 열쇠는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검찰은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별개로 윤 당선자와 정의연은 할머니가 던진 질문에 진솔하게 답을 해야 한다. 격한 감정에서 나온 할머니의 주장 가운데 일방적인 내용이 있더라도, 윤 당선자와 정의연이 침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안부 인권운동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고, 이런 상황을 틈타 한국과 일본의 극우세력이 ‘역사 뒤집기’를 시도하는 상황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윤 당선자는 할머니의 주장에 대해 직접 책임있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

이번 사태를 30년 위안부 인권운동 과정에서 미흡했던 점을 성찰하고 개선해 더욱 의미있는 운동으로 발전시킬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할머니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지, (운동을) 끝내는 건 아니다”라며 “일본은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위안부 문제에 사죄하고 배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별도로 공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앞으로 운동이 시민 주도 방식, 지난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라는 세가지 원칙을 지키며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활동가, 피해자, 시민들의 뜻을 모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겨레 사설] ‘송환법 사태’ 재연 우려되는 중국의 ‘홍콩 보안법’ 추진

22일 개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홍콩 보안법’ 초안이 발의됐다. 이 법의 제정 방식과 내용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매우 이례적으로 중국 전인대가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건너뛰고 보안법 제정에 직접 나섰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50년간 중국이 외교·국방 주권을 갖고, 홍콩은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홍콩의 야권은 전인대의 보안법 제정 직접 추진을 두고 “일국양제의 죽음과 같다”고 반발했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 제정에 직접 나선 것은 홍콩 정부가 자체적으로 이 법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3년 홍콩 정부가 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으나, 50만명이 반대 거리시위를 벌여 무산됐다. 지난해 ‘송환법 사태’ 이후 홍콩 내 반중국 정서가 커져 홍콩 정부가 보안법을 만들 동력을 잃었다.

중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지난해 자치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홍콩 민심과 어긋난다. 지난해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진 배경에는 집값 폭등 등 경제 문제와 반환 이후 심해진 중국 정부의 간섭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외부세력의 부추김에 의한 분열 책동”이라고 규정했다.

이날 전인대에 제출된 홍콩 보안법 초안에도 이런 중국 정부의 인식이 담겨 있다. 이 법은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전복 선동, 외부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테러리스트의 파괴 행위 등을 금지한다. 이 법이 실행되면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했던 행동들은 대부분 처벌 대상이 된다. 당시 시위대는 중국 국기 불태우기, 중국 국가 휘장 훼손, 반중국 구호 제창 등을 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같은 ‘혼란’을 원천봉쇄하려고 한다. 홍콩 야권과 시민사회는 다음달 6일 송환법 반대 시위 1주년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 민심을 헤아리지 않고 강경으로만 치달을 경우 지난해와 같은 격렬한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만들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여파로 22일 중국 본토,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증시 주요 지수가 급락했다. 코로나19 책임 논란에 홍콩 보안법 대립까지 더해져 미-중 신냉전이 더욱더 격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겨레 사설] ‘가해자’ 일본이 무슨 염치로 끼어드나

일본의 한 신문이 20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를 둘러싼 논란을 거론하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와 수요시위 중단을 요구했다. ‘위안부’ 문제의 가해자인 일본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다니 어처구니없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사설 격인 ‘주장’ 난에 ‘반일 집회를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를’이란 글을 실었다. 이 신문은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소녀상)을 빨리 철거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를 ‘반일 집회’라고 묘사하고 “반일 집회를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고도 했다. 한-일 관계에서 도둑이 매를 드는 일이 가끔 일어났지만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반일 증오’가 아니라 ‘전쟁범죄’다.

산케이신문은 ‘위안부 단체 의혹, 문씨(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라는 제목의 외부 기고자의 칼럼도 실었다. 칼럼은 “정의라는 미명하에 ‘반일’을 표방해서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기부금을 모으고 이를 가지고 생계를 잇고 정계 진출을 꾀한 단체와 개인이 있다는 실태를 모른다고 할 것인가. 이러한 단체를 지지 기반으로 삼은 문씨는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주장했다. 줄곧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해온 이 신문이 ‘정의연 논란’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산케이신문> 보도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의연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외부 회계감사, 행정안전부 등 정부 차원의 조사, 검찰 수사 등이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질 것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입증된 개방성, 민주성, 투명성 등 우리 사회의 역량은 일본의 그것을 앞선다. 일본은 당찮은 훈수를 둘 처지가 아니다. 일본 극우세력은 위안부 인권 운동의 30년 활동을 훼손하려는 도발을 멈춰야 한다.


[한겨레 사설] 수요시위, ‘초심’ 기억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1439번째 수요시위가 13일 무거운 분위기 속에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주 기자회견 이후,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보고 부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의 딸 학비 문제 등을 거론하며 논란을 키우는 가운데 처음 열린 수요시위다.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 방한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위안부 전쟁범죄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는 지난 28년간 비바람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왔다. 그 세월 동안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220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일 양국의 우익들은 지금도 위안부 피해자들을 공격하고 모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은 헛되지 않았다. 수요시위 현장에선 피해자와 활동가, 학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만나 잊힌 진실을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피해자인 할머니들은 평화인권운동가로 우뚝 섰고, 학생과 청년·시민들은 역사를 배웠다. 국경을 넘어 전세계 시민들이 찾아와, 다시는 전쟁터에서 성폭력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연대의 장이 되었다. 수요시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인권과 평화 운동의 역사를 써왔다.

이날 시위에서도 시민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초심’을 강조했다. 대학생 이태희씨는 “5년 동안 저는 이 장소에서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이 무엇인지 배웠다. 연대란 무엇인지 배웠다”고 했다. 자원활동가 이판수씨도 “작은 불화가 28년간 함께 일궈온 우리 평화 공동체에 큰 상처를 줬지만, 아무도 탓하지 말고 부디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시위를 지켜본 시민들은 “할머니들과 함께한 30년의 세월은 기사 몇 줄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바위처럼 지켜내자 수요시위” 등의 댓글로 응원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한일 학생들 간의 교류와 공동 행동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30년간의 투쟁 과정에서 오류나 잘못은 극복해야 한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뜻이리라 믿는다. 논란에 흔들리지 말고, 수요시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와 평화와 인권의 현장이라는 ‘초심’을 되살리며 다시 앞으로 나가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혁신’ 없인 ‘당 재건’도 없다

21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을 이끌 새 원내대표에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이 8일 선출됐다. 주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 84명의 당선자 가운데 59명의 지지를 얻어, 25표에 그친 권영세 후보(서울 용산)를 이겼다. 주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우리 당은 바닥까지 왔다. 최선을 다해 당을 재건해서 ‘수권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절박함이 담겨 있는 다짐이다. 그러나 수권 정당이 되기 위해선 철 지난 보수 정당인 미래통합당을 뿌리부터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말이 아닌 ‘변화와 혁신의 실천’이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바란다.

주 원내대표는 대구경북(티케이) 출신임에도 2016년 12월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지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인사로, 정치권에선 ‘합리적 보수’란 평을 듣는다. 그런 만큼 총선에서 통합당이 왜 국민한테 철저히 외면을 받았는지 잘 헤아릴 것이라 생각한다. 20대 국회처럼 당리당략을 위해 국민을 뒷전으로 물리고, 무조건 정부 여당 발목을 잡으면서 이것이 ‘선명 야당’의 징표인 것처럼 행동해선 곤란하다.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되, 항상 국민을 중심에 두고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당장,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통합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급선무이다. ‘국회 원구성 협상 등을 위해선 위성정당을 존속시키는 게 낫다’는 의견이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내부에선 나온다던데,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저버려선 국민 신뢰를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주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얻은 표(59표)는 총선 당선자 84명 중 영남지역 당선자 수(56명)와 거의 일치한다. 영남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통합당의 지형을 반영한 것이긴 하나, 이런 구도는 ‘영남 보수’ 또는 ‘티케이 자민련’이란 소리를 듣는 통합당엔 매우 좋지 않은 신호다. 전국 정당, 특히 수도권에서 젊은층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해야 한다. 주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 날, 공교롭게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미래통합당 지지율이 창당 이래 최저치(17%)로 떨어졌다. ‘건강한 야당’의 존재는 정부 여당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21대 국회가 ‘국민을 위한 국회’로 한 단계 발전하는 데 주 원내대표가 한 축을 담당하길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아베 이제 와서 “한국과 코로나 협력”, 염치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9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과의 협력”을 언급했다.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계 의원의 질의에 “한국과 계속 코로나 감염증 대응에 협력하고 싶다” “한국은 이웃나라이고 중요한 나라다”라고 답변했다.

아베 정부는 그동안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무시하면서 한국을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사태 초기에 자국의 대응을 자화자찬하면서 한국이 ‘의료 붕괴’ 상황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5일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과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등 ‘입국 거부’ 조처를 취했다. 도쿄올림픽 연기 발표 뒤 일본 내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요청하면 의료용품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려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까지도 “한국산 진단키트는 성능이 구체적으로 파악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위기 때마다 ‘혐한 카드’로 지지율을 높여온 아베 총리는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경우 보수 지지층이 반발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해 7월 수출규제에 나선 아베 정부가 한국의 지원을 받으면 이 문제에서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행태가 염치없기는 하지만, 양국 모두 지난 일에 너무 얽매여 있을 때가 아니다.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해 국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아베 정부는 이제라도 이웃나라의 성과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가 공식적인 요청을 해오면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국제 공조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일의 코로나19 공동 대응은 양국 관계를 다시 복원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판문점 선언’ 2주년, 방역·철도 남북협력 재개를

27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는다. 2018년 4월27일 오전 9시30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이날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내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밝혔다. 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 대화와 협상이 이어졌고, 그해 9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마침내 ‘한반도의 봄’이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70년 넘게 굳어진 냉전과 분단의 벽은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못 낸 뒤 북-미는 비핵화와 상응조처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북-미 대화가 헛돌면서 남북관계도 식었다. 남북이 모두 북-미 대화 성공을 남북관계보다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부는 “북-미 대화가 성공하면 남북관계 문이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이 북-미 대화 성공만을 바라며 팔짱 끼고 관망한다’는 비판이 국내외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에서 계속 나왔다. 정부는 올해 초 “북미 대화만 바라볼 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협력 관계를 최대한 넓히겠다”(1월14일 문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고 태도를 바꿨다.

이후 정부는 금강산 관광의 창의적 해법으로 개별 관광을 꺼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남북 모두 코로나19 대응에 온 힘을 쏟느라 남북관계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마저 나돌고 있다. 북-미 대화도 미국 대통령 선거 일정 때문에 11월까지는 속도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반도 정세가 불확실하고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가 주인 의식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북관계가 북-미 대화의 종속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판문점 선언 2주년을 맞아 27일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여는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은 의미가 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북한의 처지에서 보면 남한에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코로나19 방역,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차원의 협력에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2년 전 남북 정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8천만 겨레와 전세계에 천명했다.


[한겨레 사설] 심판받은 통합당, ‘정부 발목잡기’로는 미래 없다

4·15 총선에서 103석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든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6일 참회와 쇄신, 혁신과 재건을 거듭 다짐했다. 그러나 백마디 다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총선에서 야당을 심판한 민심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통합당 안에서 참패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엔(n)번방 호기심’ 등 황교안 대표의 실언, 세월호 망언과 세대 비하 막말 등을 주요한 패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정권 심판’을 요구한 미래통합당의 외침에 ‘야당 심판’으로 응답한 민심을 선거 전술의 패착으로 돌리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민심은 말로만 참회와 쇄신을 외칠 뿐 시대 변화를 외면한 채 반대만 거듭해온 ‘구태의연한 보수’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

2016년 20대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까지 연거푸 졌지만 통합당은 변화를 거부했다. 홍준표, 김병준, 황교안으로 당의 얼굴을 바꿨지만 진정한 혁신은 없었다. 탄핵 총리인 황교안 대표는 공안검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에 몰두했다.

통합당은 남북 화해 움직임에 ‘친북 좌파’ ‘중국 눈치보기’ 프레임을 덧씌우며 훼방을 놓았다. 집값 폭등, 최저임금 인상, 조국 사태엔 부동산 규제 완화, 소득주도성장 폐기, 윤석열 지키기로 맞불을 놓았을 뿐 공감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4+1 협의체’의 검찰 개혁 입법과 선거법 개정엔 ‘국회 폭력’으로 맞섰다. 전세계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할 때도 ‘중국 봉쇄론’을 되뇌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한 긴급 재난지원 예산조차 ‘총선용 현금 살포’라고 공격했다.

통합당의 이런 행태는 “모든 게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조중동’의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면서 퇴행적 모습을 반복해온 당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국민들의 눈에는 미래통합당이 유령과 싸우는 뒤처진 집단으로 비쳤을 것이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심재철, 민경욱, 김진태, 이언주 의원 등이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건 국민들의 판단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통합당은 깊은 성찰과 뼈를 깎는 쇄신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조중동의 낡은 프레임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따뜻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 발목잡기로는 절대 민심을 얻을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세계가 ‘코로나 선거 모델’로 주목한 4·15 총선

세계 언론들이 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집중 조명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무엇이 가능한지, 한국이 다시 한번 입증하려 한다”고 전했고,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는 “한국은 현 사태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 방역의 모범 국가로 꼽혀온 한국이 전국 단위의 선거까지 성공적으로 실시하자 높은 평가를 내린 것이다.

방역과 투표는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방역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반면, 투표는 감염 확산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 탓에 줄줄이 선거나 투표일을 미룬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미국 <시엔엔>(CNN) 보도를 보면, 최소 47개국이 코로나19로 선거를 연기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가 방역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선거를 순조롭게 진행하는 모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방역 절차와 물리적 거리두기 등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참정권 행사에 나선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빚어낸 결과다. <비비시>는 투표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짧은 지연을 행복하게 참아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투표 과정에서 일부 감염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방역 당국의 후속 대응 역시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이번 주말 ‘코로나 중대 고비’,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자

빼앗긴 봄에 다들 힘들고 지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지 3주가 지났다. 아직 희미하지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발표한 9일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7명, 지난 2월20일 16명 발생 이후 가장 적다. 이번주는 8일 하루를 제외하면 내내 확진자가 50명 아래로 줄었다. 대구는 9일 신규 확진자가 한명도 없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52일 만에 처음이다. 의료진의 헌신, 방역당국의 노력, 시민들의 협조가 함께 이뤄낸 성과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절대 아니다. 특히 이번 주말이 코로나19 확산 차단의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 핀 봄꽃은 ‘갇힌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나들이의 강한 유혹을 일으킨다. 4·15 총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 선거 유세도 곳곳에서 열린다.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 최대 축일인 부활절이 12일이다.
김강립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은 10일 “여기저기 흩어져 숨어 있는 감염 요인이 어느 순간 결집하면 대규모 집단감염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위험이 폭발되는 것을 막고 남아 있는 잔불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끈기를 갖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구 절반이 밀집한 수도권에서 집단감염이 계속 확인되고, 외국에서 입국한 확진자의 가족과 지인의 감염도 잇따르고 있다.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희망의 희미한 신호를 진짜 희망으로 바꾸려면 우리 모두 이번 주말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무르익은 봄기운에 야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조금만 더 참자. 상춘객이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축구장 10배 넓이의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 주민들의 뜻을 헤아려봤으면 한다. 11일까지 이어지는 사전투표와 주말 선거 유세 현장은 방역 또한 빈틈없어야 할 것이다. 천주교와 많은 개신교 교회들이 부활절 예배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한 가운데 일부 교회들은 여전히 현장 예배를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부활절 현장 예배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한겨레 사설] ‘가짜 뉴스’까지 동원해 지역감정 자극한 황교안 대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난하면서 ‘가짜 뉴스’까지 동원해 정부와 교회의 대립을 부추기고 지역 갈등을 조장했다. 야당이 선거 때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라고는 하지만, 황 대표의 공격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황 대표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정부의 대구 봉쇄 조치가 무안할 정도로 대구시민들 스스로 자발적 격리 운동을 했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방침이 무색할 정도로 시민들이 모임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적었다. 정부는 대구를 봉쇄한 적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봉쇄 조치” 발언이 나왔지만 ‘실언’이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정부는 여러 차례 대구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황 대표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황 대표는 “중국이 먼저를 외친 무능한 문재인 정권이 대구시민들을 폄훼하고 조롱하고 코로나로 야기된 사회적 분노를 이용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며 “정권의 무능과 야바위 정치꾼을 징비할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가 총선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제1야당 대표로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또 황 대표는 “마치 교회에 집단감염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신천지 여론을 악용해 종교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며 “교회 내에서 감염이 발생한 사실도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가짜 뉴스다. 성남 은혜의 강 교회 관련자 73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을 비롯해 부산 온천교회, 수원 생명샘교회, 종로 명륜교회, 구로 만민중앙교회 등에서도 확진자가 잇따르고 있다. 종교 전문매체인 <뉴스앤조이>는 지난 25일까지 9137명의 확진자를 분석한 결과, 신천지를 뺀 집단발병자 2452명 중 192명(7.7%)이 교회 관련 감염이라고 보도했다.

정부가 교회들에 현장 예배 자제를 권유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이다. 대다수 교회들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 현장 예배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시민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진영 논리에 봉쇄된 정치꾼과 그 광신도”라고 주장했다. 황 대표 스스로 진영논리에 봉쇄돼 있는 게 아닌지 겸허히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방위비 협상,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부터 해결해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미는 17일부터 사흘간 미국에서 제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7차 회의를 열었지만 양쪽의 간극만 확인한 채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한국에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미국의 강압적 협상 태도 탓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미국이 요구하는 분담금 액수가 터무니없이 높다. 미국이 기존의 50억달러에서 후퇴해 4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한국의 분담금 증액안과는 차이가 크다. 한국은 지난해 분담금(1조389억원)에서 10%가량을 인상한 액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만 해도 물가상승률 등을 따져보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미국이 분담금 액수를 상식에 맞게 낮추지 않는 한, 타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한국은 이번 7차 회의에서 주한미군의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를 먼저 타결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타결한 분담금 내에서 일단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를 먼저 지원하고 이후 협상이 최종 타결되면 새 내용을 반영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미국은 ‘포괄적인 분담금 협정을 맺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국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4월1일부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을 강행하겠다는 압박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인 근로자를 볼모로 삼겠다는 뜻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조는 20일 미국의 무급휴직 조처는 “한-미 동맹의 정신을 훼손하는 역사의 오점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무급휴직을 강행하면 출근투쟁으로 맞서겠다는 다짐도 했다. 미국이 한-미 동맹의 가치를 진실로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면 한국인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분담금 협상이 이렇게 길어지고 무급휴직까지 눈앞에 두게 된 것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요구 탓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해 협상이 어려움에 빠졌다며 한국에 책임을 돌렸다. 이런 책임 떠넘기기는 협상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미국은 분담금 협정이 당장 어렵다면 ‘근로자 인건비 우선 타결’에라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정부는 미국이 합리적인 자세로 협상에 나오도록, ‘국익 최우선’ 원칙 위에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윤 총장 장모 사건, 검찰 제대로 수사하고 있나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 최아무개씨의 사문서 위조 진정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국정감사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도 질문이 있었으나 윤 총장의 강력한 부인으로 그냥 넘어갔던 사안이다. 최근 <문화방송>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최씨를 만나는 등 이 사건을 추가 취재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검찰이 윤 총장을 의식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거나 윤 총장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섣불리 예단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을 보면 검찰이 그동안 관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왔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현직 검찰총장의 가족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한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와 <한겨레> 취재를 종합해보면 최씨와 관련한 분쟁은 한두건이 아니다. 잔고증명서·약정서·주주명부 등 문서 위조 논란이 빚어진 사건만 줄잡아 4건이다. 이 가운데 의정부지검이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 사건 수사에 들어가 18일 최씨를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2013년 동업자 안아무개씨와 이익을 나누기로 약속하고 경기 성남시 도촌동 땅을 공동매입하는 과정에서 350억원대 통장잔고증명서를 위조했다고 한다. 증명서가 위조된 사실은 법정 증언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위조한 김아무개씨가 증명서의 발행처로 돼 있는 ㅅ금융사 관계사의 이사 출신으로, 윤 총장 부인 김아무개씨 회사의 임원이란 점이다. 부인 김씨도 위조 정황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9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진정서가 접수돼 10월 대검을 통해 의정부지검에 배당됐으나 검찰은 적극 수사를 하지 않다가 문화방송 보도가 나오자 뒤늦게 관련자를 부르는 등 조사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세간에선 검사 수십명을 투입해 강도 높게 조사를 벌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비교하기도 한다. 사문서 위조 혐의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오는 4월1일까지 불과 2주 남짓 남아 있다. 과연 이런 수사 의지로 현직 검찰총장 가족 관련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검찰 스스로 잘 판단해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팬데믹’ 현실화, 국제공조·중장기 대책 갖춰야

코로나19 감염병의 팬데믹(대유행) 위험이 매우 현실화되고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9일 경고했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 감염병의 유행은 그동안 몇몇 나라와 지역에 국한됐으나, 이제 지역적 한계를 넘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타나는 광범위한 현상으로 전환하고 있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확진자가 11만명을 넘어섰고 4천여명이 숨졌다. 이탈리아에선 확진자가 급증해 7천명을 넘어서자 전국 모든 지역에서 이동을 제한하는 극단 조처를 취했다.

이번 팬데믹 경고는 중국에서 신규 확진자가 100명 아래로 떨어지는 등 진정세가 뚜렷한 시점에 나왔다. 중국 상황의 호전과 무관하게 유럽과 미국 등에서 감염병이 본격 확산하면서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의 더 많은 지역에서 창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라, 매우 우려스럽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감염병의 지역사회 전파를 최소화하고 안정화하는 데 최우선 순위에 놓고 방역대책을 집행했다. 입국 검역은 중국인 등에 대해서만 강화된 절차를 적용했고, 최근엔 하루 확진자를 200명 아래로 떨어뜨리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제 팬데믹 위험이 현실화함에 따라, 이에 대비한 별도의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대책 수립이 시급해졌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팬데믹이 현실화한다고 해서 글로벌 시대에 효과가 불분명한 입국 제한을 무조건 확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모든 나라가 이런 방식의 대응에 나서면 세계경제 충격을 가속화하면서 상황을 나쁘게 할 수 있다. 오히려 국제 협력과 공조체제 구축을 통해 감염병의 유입 차단과 국가 간 교류·교역의 지속을 보장할 균형점을 찾는 게 시급하다. 예컨대 출국 전과 도착 후 검사 시스템을 공유하고 임상시험 정보와 진단키트 및 장비 등을 교환하는 국제협력 체계 구축에 나서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할 만하다.


[한겨레 사설] 박근혜, ‘국정농단’ 참회 없이 ‘옥중정치’ 할 때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4일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힘을 합쳐줄 것을 호소한다”는 내용의 옥중 메시지를 내놨다. 박 전 대통령 대리인 격인 유영하 변호사가 자필 서한을 대독한 것인데, 보수 야권의 기존 거대 정당인 미래통합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전직 대통령이 반성은 하지 못할망정 옥중에서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박 전 대통령은 “나라 장래가 염려되어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의 한숨과 눈물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며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분열하지 말고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태극기 부대를 향한 노골적인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분열적 행동을 하지 말고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단합하라는 취지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극우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미래통합당 등 기존 정치권에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전직 대통령의 현실정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국정농단 등으로 탄핵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이 무슨 낯으로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력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은 2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상 뇌물 혐의 분리선고 원칙에 따라 파기환송돼 재판 진행 중인 상태에 있다. 법리상 2심 형량이 감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이런 옥중정치는 현실정치에 영향을 미쳐 자신을 구명해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구속으로 저의 정치여정은 멈추었지만 북한 핵 위협과 우방국들과의 관계 악화는 나라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에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마치 자신의 ‘탄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뉘앙스다. 국정농단과 뇌물수수 등으로 점철된 과거 행적에 대한 참회는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언급하면서 “대구·경북에서 4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해 가슴이 아프다”고 한 대목도 교묘한 ‘지역정서 자극’이란 의심이 든다. 반성은커녕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전직 대통령 모습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한겨레 사설] 권력기관 개혁, ‘20대 국회’ 아직 할 일 남았다

정부가 31일 국무총리 직속으로 공수처설립준비단을 설치하는 등 검찰개혁 입법 후속조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담화문을 내어 공수처준비단과 검경수사권조정 후속추진단,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설치, 국가정보원 개혁 구상 등을 발표했다.
실제로 검찰개혁 관련 입법은 됐으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고 수사권 조정을 위한 세부 규정을 다듬으려면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다. 또 경찰 개혁은 검찰 개혁과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공룡 경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국회가 경찰 및 국정원 개혁을 위한 추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했으나 일선에서 적용하려면 절차와 요건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비해 놓아야 한다. 검찰의 인지수사 범위도 ‘부패’ ‘경제’ 범죄 등의 추상적 표현을 구체적 죄목으로 특정해 놓지 않으면 혼선이 생길 수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검찰개혁 법안은 검찰과 공수처, 경찰 사이의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는 기본개념 아래 설계됐다. 공수처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공수처장 추천위원 인선과 청문회 등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제때 출범이 어려울 수도 있다. 유권자인 국민이 계속 감시의 끈을 놓아선 안 되는 이유다.

수사종결권을 갖게 될 경찰은 수사경찰-행정경찰로 분리하고, 중앙경찰과 지방경찰도 나눈다는 게 애초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구상이었다. 국정원도 대공수사 기능을 없애고 해외·대공정보 수집만 하도록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임의로 국내정보 수집 부서만 없앤 채 개혁입법 논의가 실종된 상태다. 검찰 개혁과 경찰·국정원 개혁은 서로 맞물려 있어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20대 국회가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


[한겨레 사설] 신종 코로나 공포 부추기는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을 우려한다

28일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4500명, 사망자는 100명을 넘어섰다. 독일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오는 등 감염병의 전세계 확산 범위가 넓어지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불안과 경계는 자연스럽고, 그걸 지나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왜곡된 정보가 범람하고, 심지어 중국인 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는 모양새는 우려스럽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신종 코로나의 확산 저지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세번째 확진자가 서울 강남과 경기 일산 일대를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 카페와 에스엔에스(SNS)엔 그가 고양 스타필드에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급속하게 번져 질병관리본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거나 확인되지 않은 거주 지역을 특정하는 등의 거짓정보나, 정보를 가장해 클릭을 유도하는 스미싱메시지까지 퍼지고 있다. 정부는 현장 확인과 소독작업 시간이 필요해 병원 이름 등 구체적인 장소를 처음에 밝히지 못했다고 하는데, 막연한 지역명이 불안감을 키우는 것은 사실이다. 필수 작업이 끝나면 정규 브리핑 시간이 아니더라도 접촉자와 확진자 동선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밝혀, 왜곡된 정보의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는 게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발병지로 지목된 우한, 나아가 중국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일부 양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에서 거리에 쓰러지는 사람의 영상이 신종 코로나 탓인 것처럼 확산되는가 하면, 야생동물 식용 습관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과 혐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엔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 서명자가 5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중국인 차별이나 출입국 금지 같은 조처들이 오히려 증상신고를 꺼리게 하거나 검역의 사각지대를 키워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우한 폐렴’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사대주의’라 비난하는데, 차별을 부추길 단어를 피하는 건 상식이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감염병은 인류의 문제다. 중국 정부는 잠복기에도 전염성이 있다면서도 근거를 밝히지 않았는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각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3천명이 넘는 우한 입국자 전수조사에 들어간 우리 정부는 신속한 정보공개가 불안을 줄이는 유일한 길임을 잊어선 안 된다. 시민들의 자각과 협조 또한 절실하다.


[한겨레 사설] 호르무즈 파병, 국회 동의 구하는 게 ‘정도’다

정부가 21일 미국-이란 간 긴장이 높은 호르무즈해협에 우리 군을 보내기로 했다. 동맹국 미국의 파병 요구를 피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으로 읽힌다. 그 대신 정부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군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엔 참가하지 않고 ‘독자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절충안은 이미 독자 파병 하기로 한 일본 선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파병에 대해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해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설명대로, 호르무즈해협은 우리 원유 수송량의 70%가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다. 미국-이란 사이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원유 수송 선박의 안전을 한국군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이 위험에 처한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미군 증파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였던 지난해 5~6월에 몇몇 외국 선박이 피격된 적은 있었으나, 그 이후 제3국 선박의 피해 소식은 없는 상태다. 당장 자유 항해에 대한 위협이 임박한 상황이라 보긴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한국군이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진출함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이란군의 어뢰 공격 등을 받을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파병 결정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기로 한 건 유감스럽다. 정부는 이미 아덴만에 파병한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페르시아만까지 넓히는 것이라, 별도의 국회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해부대의 임무는 아덴만 일대의 해적들로부터 우리 선박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간 충돌 위험이 높은 호르무즈해협 부근에서의 활동은, 단순한 작전범위 확대라기보다는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별도의 파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정부의 독자 파병 결정이 이란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한-미 관계와 남북관계까지 고려한 ‘다목적 포석’임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호르무즈 안전이 위협받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에 있다는 게 국제사회 평가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파병을 하는 것은 미군의 명분 없는 ‘이란 압박과 봉쇄’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국회 동의와 같은 절차를 통해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한겨레 사설] 미국이 부른 ‘이란 보복’, 미국이 풀 책임 있다

이란이 8일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 사령관 피살 닷새 만에 예고한 대로 ‘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갈등이 보복과 재보복의 악순환에 빠지는 모양새인데, 정면충돌로 번지는 건 막아야 한다.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이 ‘제3국을 활용해 이란 사령관을 공격한’ 미국에 있는 만큼, 미국은 더 이상의 군사적 행동을 멈추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게 옳다.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인에 대해 임박하고 사악한 공격을 꾸미고 있었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제거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임박한 공격 위험’에 관한 뚜렷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제3국인 이라크에서 군사력을 동원해 이란 고위 인사를 무단으로 암살한 행위는 국제법 위반일 뿐 아니라 이라크 주권을 침해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애초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높아진 것도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한 데서 비롯했음은 전 세계가 알고 있는 바다.

물론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응해 이란이 미사일 공격으로 보복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상황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쪽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하다. 현실적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열쇠를 쥔 쪽도 이란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임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란에 ‘비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반격할 것을 예고하며 힘으로 이란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은 더 이상의 유혈 보복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7일에도 <한국방송>(KBS) 인터뷰를 통해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강하게 파병을 압박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면전 가능성까지 감도는 상황에서 우리 군 병력을 보낼 경우 원치 않는 희생만 강요당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미국 편에 서서 병력을 파견하는 건 국제사회에서 정당성과 명분을 얻기도 힘들다. 이란이 “미국의 우방이 가담하면 그들도 표적으로 삼겠다”고 경고한 것을 한쪽 귀로 흘려들어선 안 된다. 파병 문제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겨레 신년 사설] 대립과 반목 넘어 ‘민의 기반한 정치’의 해 되길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위태로운 상황은 가시질 않는다. 검찰 권력을 견제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 23년 만에 입법됐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총사퇴’ 결의로 지난해의 극한 대립은 고스란히 새해로 넘겨졌다. 북한은 31일까지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나흘째 이어가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이후 ‘새로운 길’의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만 일시적일 뿐, 두 패권국가의 갈등 속에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올해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어려움을 슬기롭게 뛰어넘으려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극한적인 대립과 반목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활력이 넘치는 경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물론,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덮을 수는 없다. 때론 치열한 토론과 격렬한 싸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대결은 제도와 상식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항상 국민을 중심에 두고 그 뜻에 따라 방향을 정하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극한 대결은 우리 사회가 한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특히 올해 4월엔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린다. 모든 선거가 그렇듯이, 이번 총선은 대북 정책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받고, 공수처법 등 ‘개혁입법’의 지지 여부를 묻는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민심은 선거의 투표함을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여야 정당은 첨예한 쟁점에서 의원직 사퇴와 같은 극한적 방식이 아니라, 호소와 설득을 통해 총선에서 국민 지지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타당했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 정치권 모두 선거 결과에 담긴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국민이 요구하는 바를 정책화하고 입법으로 부응해야 한다.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해 국회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격렬한 충돌과 오랜 대립은 국민의 정치 불신, 정당 불신을 더욱 심하게 했다. 4월 총선은 불완전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접목한 선거제도로 치르는 첫 선거다. 작은 정당들의 의회 진출 문이 좀더 넓어짐에 따라 우리 사회 다양한 의견이 국회에 반영될 여지가 커졌다. 그렇게 구성되는 새 국회는 거대 정당의 타협 없는 대치라는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 타협의 정치가 살아 숨쉬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통합과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야당에 손을 내밀고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했듯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삼아 수시로 만나고, 지지 여부에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는” 게 절실한 시점이라고 본다.

새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은 살림살이가 지난해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까 하는 점일 터이다. 경제 활력을 되찾고 민생 안정을 꾀할 1차적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지만,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에서만큼은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하리라 본다.
우선 우리 경제가 정상적인 성장 궤도로 진입하는 일이 과제다. 잠재성장률을 한참 밑도는 2% 안팎(2019년 추정치)의 저성장 기조가 오래 이어질 경우, 국민의 삶은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 방향으로 투자 활성화를 통한 성장률 반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식 성장 틀로 회귀해 경기 반등에만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 체질 개선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민생 안정을 위해선 특히 집값 안정이 필수다. 집값 급등은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칠 뿐 아니라 불로소득 증가로 이어져 경제의 건강성을 해친다. 집값 불안을 막을 추가 대책을 마련하고,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통해 전월세 시장 안정에 각별히 신경쓰길 바란다. 경기 진작, 개혁 조처, 부동산 대책 같은 경제 정책은 대개 입법으로 뒷받침돼야 추진력을 얻는다. 적어도 민생 문제에서만큼은 여야 대립을 넘어서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그래야만 미-중 무역갈등 완화, 반도체 경기 반등세로 대표되는 대내외 여건의 호조를 기회로 살릴 수 있다.


[한겨레 사설] 주목되는 미 상원 중진들의 ‘대북 강경책 반대’ 서한

척 슈머 원내대표 등 미국 민주당 상원 지도부 8명이 18일(현지시각) 대북 정책과 관련해 “‘화염과 분노’ 위협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북한이 협상 시한으로 설정한 연말이 다가오면서 위협 수위를 높여가며 북-미 간 긴장이 높아지자, 군사 옵션 등 대북 강경책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실행 가능한 외교적 해법 마련을 촉구한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고빗사위에서 미 상원 중진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화’를 촉구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이고 북한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고 즉각 협상에 나서길 바란다.

민주당 상원 중진들은 서한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린 지 2년이 다 돼 가도록 실행 가능한 외교적 과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점을 걱정한다”며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진지한 외교적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화염과 분노’ 위협이나 그 외 파멸적인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북한에 대한 ‘핵 강압’ 시도를 재개하는 게 협상 테이블보다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심각한 오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하하는 ‘로켓맨’을 다시 입에 올리고 “북한에 무력을 써야 한다면 쓸 수 있다”고 군사 옵션을 열어놓은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 중진들이 서한을 보낸 상대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그 내용은 실상 북한에도 적용할 만한 것이다. 북한은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 “중대 시험” 등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시험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최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겸 부장관이 서울에서 북한에 공개적인 대화 제의를 했음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연말 시한’이 지난 뒤 한반도 정세가 다시 2년 전의 위험천만한 군사 대결로 퇴행해선 결코 안 된다. 그러려면 북한은 미국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여야 한다. 미국은 상원 중진들이 권고했듯이 ‘실행 가능한 외교적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 일부 해제’ 제안을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유연성을 갖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겨레 사설] 비건 방한,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오는 15일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대 기로에 선 시점에 이루어지는 방한인 만큼, 특별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 관심은 비건 대표가 방한 기간 중에 과연 북한 쪽과 만날 수 있을 것이냐로 모인다. 북한이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힌데다 ‘연말 시한’을 코앞에 둔 터여서, 이번 방한이 북-미 사이 의미 있는 만남의 마지막 기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건 대표 방한을 앞두고 미국은 강온 양면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각)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미국은 북한이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기회를 날리는 것이 된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과 병행적으로 행동하고 동시적으로 조처를 취하며 유연하게 접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미국의 태도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북한을 향해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데 좀 더 강조점이 찍혀 있어 눈길을 끈다. 애초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려던 것을 미국의 요청으로 회의 의제를 바꾼 것에서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유화 제스처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가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긴요하다’며 ‘제재 완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 서 있음을 고려하면,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제재 완화’임을 읽을 수 있다. 지난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도 미국이 제재 완화를 후순위로 밀어놓은 데 북한이 반발하면서 협상이 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재 완화가 중심 의제로 올라서지 않고는 북-미 대치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과 미국의 요구 사항은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관건은 ‘북-미가 서로의 입장에 얼마나 다가서느냐’다. 이번 방한 때 비건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거나 새 협상안을 가져온다면 북-미의 진지한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 없이 올 경우 이번 방한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위로 끝날 수 있다. 북한도 미국의 양보만 기다리며 강경 태도로 일관하다간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결과를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북-미는 이번 기회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미, ‘극한 대치’ 끝내고 파국 막아야

북한이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발표한 뒤로 북-미 대치가 한층 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내놓자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맞받아치며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북한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소집까지 요구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 국면이 어디까지 악화할지 알 수 없다.

안보리 회의는 애초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려던 것을 미국의 요구로 하루 미뤄 11일 열리게 됐다. 미국은 의제를 바꿔 북한의 최근 잇단 미사일 발사와 향후 도발 확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안보리 소집은 북한에 경고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대응이 북한의 더 큰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상황 전개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이 시점에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동향을 눈여겨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국제사회의 압박은 더욱 커지고 북한의 고립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력한 경고를 내놨고, 북한도 즉각 강도 높은 반격을 가했다. 물론 막판 타협의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격돌의 초침을 멈춰 세우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한 것은 북한이 타협을 원하고 있다는 심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도 상황 악화를 원치 않는 것은 분명하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과 협상하고 싶다’고 밝힌 것도 상황 반전을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국이냐 타협이냐’의 갈림길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은 외교로 사태를 풀어낼 시간은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예정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 방한 중에 북-미 접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더 긴밀히 소통해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능하다면 특사를 보내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도 알아봐야 한다. 북-미의 벼랑 끝 대치가 파국적 결말로 끝나면 한반도 긴장은 전례 없이 높아질 것이고 최대 피해자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


[한겨레 사설]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곧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하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후보자로 공식 지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김 의원이 그동안 보여온 행보가 ‘촛불 민심’을 계승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종교투명성센터는 지난달 27일 ‘김진표의 총리 지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김 의원은 종교인 과세법을 누더기로 만든 장본인이고 그 공으로 개신교계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표창장까지 받았다”고 지적했다.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의원은 2017년 8월 종교인 과세의 2018년 시행을 코앞에 두고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기획재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에서 종교인 과세 범위를 대폭 축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재부 출신인 김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신교단체는 2018년 5월 “종교인 과세가 비교적 무난하게 정착하는 데 많은 애를 썼다”며 김 의원에게 감사패를 줬다.

앞서 경실련은 26일 ‘차기 국무총리는 경제구조 개혁과 국민 통합에 적합한 인사가 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경실련은 “차기 총리는 우선적으로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구조 개혁과 민생경제 회복에 나설 수 있는 인사라야 한다”며 “지금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김진표 의원 등 후보자들이 이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매우 강한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또 약탈경제반대행동은 ‘론스타 사건 관련자 김진표의 국무총리 임명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성소수자 차별을 선동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통’인 김 의원이 “총리 적임자”라는 의견도 우리 사회엔 물론 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정책 경험이 많은 것은 맞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을 통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하는 마당에 그가 지금도 내각의 사령탑으로 적임자인지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그의 총리 기용은 개혁을 중단하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청와대는 4선인 김 의원을 인사청문회에서 야당도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안전한 카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가 총리 자질의 최우선 조건일 수는 없다. 이번 개각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후임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를 이어가면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바람직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진표 의원의 국무총리 임명을 많은 국민이 반대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문 대통령은 김 의원의 총리 기용에 왜 비판과 반대가 많은지 다시 한번 숙고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 국민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일 사이 최대 쟁점이었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조건부 연기’로 결정났다. 청와대는 22일 지소미아를 곧바로 종료하지 않고 ‘종료 결정 통보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8월22일 일본에 통보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일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정지하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셈이다. 그러나 기존의 정부 입장에 비춰보면 뜻밖의 결정이라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지소미아 문제가 조건부 연기로 결정난 만큼,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 간 대화는 더욱 중요해졌다.

정부가 조건부 연기 결정을 한 이유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대화 의지가 있어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수출 관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한-일 과장급 협의 및 국장급 정책 대화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그동안 완강하게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분리하며 대화를 거부해온 데서 선회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내용이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해온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민에게 이번 결정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앞으로 국민의 요구 수준에 맞는 협상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이 타협점을 모색하는 데는 미국의 압력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한국 정부를 일방적으로 압박해온 데 대해선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지소미아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보다도 오히려 한국에만 연장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료 시한 하루를 앞두고 미국 상원은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정부가 마지막 순간에 조건부 연기로 돌아선 데엔 미국의 이런 압력도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 국민이 느낀 불쾌감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이 났지만, 해결된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지소미아 갈등’의 원인을 일본 정부가 제공했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정부는 이번 지소미아 논란 과정을 냉정하게 성찰하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이른 시일 안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미국, ‘지소미아 문제’ 해결책 일본에서 찾아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미국의 연장 압박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13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방한한다. 이튿날 열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전시작전권 전환과 연합방위태세 점검을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소미아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미국의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은 전방위적이다. 지난주에는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해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이번주엔 밀리 합참의장이 일본과 한국 순방길에 지소미아가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한-미-일의 결속’을 강조했다. 밀리 의장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직접 만나 지소미아 문제를 논의한 뒤 ‘지소미아 종료 전에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도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주변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거들고 나섰다. 국무부 고위인사에 이어 미군 수뇌부까지 지소미아 연장 압박에 총출동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지소미아 종료의 원인을 제공한 쪽이 일본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유를 들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가장 중요한 안보사항을 제공받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에 따른 합당한 조처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의 원인 제공엔 입을 닫은 채 한국만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동맹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일본이 부당한 수출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국민의 뜻을 깊이 헤아리는 게 필요하다. 지소미아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한국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쥐고 있다. 일본을 놔두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부정적 여론만 키울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건 미국 압력에 굴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꼴이 될 뿐이다.


[한겨레 사설] ‘반환점’ 문재인 정부, 깊은 성찰로 성공 발판 마련해야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 임기가 9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광장에서 분출한 국민적 요구를 받들어 ‘나라다운 나라’, ‘공정과 정의’, ‘평화의 한반도’를 내건 정부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라 안팎의 녹록잖은 상황과 정부의 실책이 맞물리면서 국민적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아픈 건 경제·민생 분야일 것이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기조로 삼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소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과거 성장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성격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기초연금, 아동수당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무상교육 확대와 ‘문재인 케어’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정책은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폭과 속도를 두고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커지고 자영업의 위축세와 맞물리면서 빛이 바랬다. 국회 기능의 마비 탓이긴 했지만, 공정경제와 직결되는 재벌 개혁 관련 법안들이 답보 상태인 점도 아쉽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올라 주거 안정성이 떨어지고 서민층과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은 특히 큰 숙제다.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대외 여건 악화와 경기 위축세 속에서도 긴축 재정으로 일관해 경기 하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대목은 처절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되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고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 공세에 가까운 무차별적 비판에 흔들려 초심을 잃었다가는 개혁과 성장 모두 놓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낡은 방식의 성장 모델로 돌아가선 안 된다.

외교·안보 분야는 안타깝고 아쉬운 지점이다. 임기 첫해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긴장은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함으로써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고,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의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교착 국면을 이어가면서 벅찬 감동은 빛이 바랬다. 남북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돼 발이 묶인데다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논란 등 최근에는 뒷걸음질 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정부는 집권 초기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북-미 협상의 촉진자·중재자 구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남북관계도 과감한 발상과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시켜 돌파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은 부족함이 많았다.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 추진 등 선택적 여야 협치가 성사됐지만, 전반적으로 대결의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하려는 자유한국당의 발목잡기 탓이 크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게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잇단 인사 실패, 특히 ‘조국 사태’로 촛불 정부의 공정성·정의에 회의를 부르고, 탄핵당한 보수세력의 재결집 명분을 준 점은 끊임없이 곱씹고 성찰해야 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정권 출범 초반 검찰개혁·경제개혁 과제를 힘있게 밀어붙이지 못한 채 실기했다는 것이다. 수긍할 대목이 많은 지적이나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냉정하고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때다. 원칙을 지키며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 주도면밀한 전략으로 2년 6개월 임기 후반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금강산 관광 문제’, 남북이 만나 돌파구 찾아야

북한이 25일 남쪽 당국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문제를 협의하자고 공식 요청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설 철거’ 지시를 내린 지 이틀 만이다. 북한의 행동에서 무언가 서두르는 듯한 태도가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에서 ‘금강산 시설 철거가 국민 정서에 배치될 수 있고 남북관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힌 대로, 아무 대안 없이 실제로 시설 철거가 이루어진다면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정부는 북한의 통지에 대해 ‘달라진 환경을 충분히 검토하면서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남쪽 정부가 더 노력하라는 취지로 ‘철거 통지’라는 강수를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기회를 관광 재개 돌파구로 삼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동안 정부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실효를 거둔 것은 별로 없다. 정부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든 지혜를 짜 모아야 한다.

대책을 찾으려면 남북이 만나 머리를 맞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북한은 ‘문서 교환 방식’의 협의를 제안했다. 이런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고 남북 양쪽에 이익이 되는 제3의 방안을 찾기도 어렵다. 정부는 ‘직접 대면 방식의 협의’를 관철해야 한다.

남북은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로 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재개’를 천명했다. 그런데도 관광 재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 국제 제재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려면 제재 위반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거나 제재 자체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북한은 ‘김계관 담화’에 이어 27일에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담화를 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철거 지시’는 북-미 협상이 막힌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국면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뤄진다면 북-미 협상 진전에 윤활유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정부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발상으로 ‘북한발 금강산 문제’를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대전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한, 금강산 남쪽 시설 ‘일방적 철거’는 안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쪽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지시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단은 지난해 남북이 합의한 금강산관광 재개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 예상치 못한 철거 지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금강산관광은 남북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사업이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남쪽에 재개 촉구 메시지를 냈으나 소득이 없자 이번에 시설 철거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금강산 시설들을 철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밝히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은 결정을 즉각 철회하길 바란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쪽 시설들” 같은 거친 언사를 동원했다. 남쪽에 쌓인 불만과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듯한 과도한 언사는 남쪽 여론을 악화시키고 남북관계를 더욱 궁지로 몰아갈 뿐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는 선대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예사롭지 않다. 금강산관광은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에 따라 이루어진 남북 경협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사업을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한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남쪽을 내세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을 단독으로 해나가겠다는 뜻이자,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결정한 사업도 물릴 수 있다는 결심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태도 변화가 앞으로 개성공단에까지 미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우려는 더욱 커진다.

다만 김 위원장이 철거 지시를 내리면서 ‘남쪽 관계 부문과 협의하여’라고 단서를 달아 일방적으로 철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비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시설 철거를 명분으로 내세워 남쪽과 협의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북한이 협의하겠다고 한 이상, 정부는 이 협의를 관광 재개의 출구를 찾는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대응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금강산 시설 철거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은 결국 관광 재개를 막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우회적 압박작전으로 볼 여지도 있다. 금강산관광을 고리로 삼아 남쪽 정부가 미국에 더 적극적으로 촉진자 구실을 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김 위원장의 현지 시찰에 북-미 비핵화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동행한 것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해 실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최악으로 치닫는 국면을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시키는 현명한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겨레 사설] 윤석열 총장 ‘개혁’ 약속,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대검찰청이 1일 전국의 지방검찰청 특수부 4곳 폐지 등을 뼈대로 하는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포토라인,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 검찰수사 관행을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권 행사 방식, 수사 관행 등을 개혁하라”며 “방안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과도한 특수수사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비판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점에서 검찰이 직접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대통령 지시 하루 만에 내놓은 개혁 방안에 어느 정도 진정성과 무게가 실린 것인지는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검은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하고 전국 검찰청의 특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서울·부산·대구지검 정도만 남길 것으로 보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별개로 특수부 축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잖았고 법무부도 이를 검토해왔다. 전날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1호 권고안으로 특수부에서 형사·공판부로의 중심 이동을 요구했다. 다만 이름만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바꾼 채 인지수사를 허용하는 식의 ‘꼼수’를 막을 수 있도록 시행령에 분명한 제한 규정을 둬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개 소환, 포토라인,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실태 전반을 점검해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법무부 과거사위가 올 5월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고치라고 권고하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 시절 피의사실 공보준칙 개정안까지 마련했으나 최근의 ‘조국 장관 수사’까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경청하고 소통해 개선하겠다고 했으니 법무부와 함께 실효성 있는 ‘인권 수사’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인권 수사보다 실적주의에 쏠린 특수수사 중심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마침 ‘조국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비공개 소환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오비이락’이란 지적이 나올 수 있겠으나 그간 ‘11시간 압수수색’ 등 수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장관 부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겠으나 거꾸로 역차별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수사팀이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바란다.
대검의 ‘개혁’ 약속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검찰·국회, 100만 촛불 ‘검찰개혁’ 외침 직시해야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일대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거대한 촛불이 타올랐다. 규모로 보면 3년 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적 촛불시위에 버금갈 정도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물론이고 정치권도 이 촛불에 담긴 민심을 제대로 직시하길 바란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국민주권 원칙을 훼손한 과도한 검찰권 행사가 아닌지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또 수사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행태와 부당한 인권침해는 없었는지 살펴야 한다. ‘사회 정의’를 명분으로 내건 어떤 방식의 수사도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원칙을 넘어서려는 순간 검찰의 기득권 보호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닫길 바란다.

28일 저녁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규모가 수십만인지, 100만인지 또는 200만을 훌쩍 넘는지를 두고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건 애초 10만명 정도라던 주최쪽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이튿날인 29일 오후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에 관한 입장문’을 내어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겠다”고 밝혔다. 조국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집회 참여 인원이 예상을 크게 웃돈 것은, 그만큼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고 과도하다’는 인식이 많은 국민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주어진 권한을 넘어,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장관 인준 절차를 무력화하고 상관인 법무부 장관 적격 여부를 판단하려 한 ‘오만과 월권’에 있다 할 것이다. 검찰은 여야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합의한 무렵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고, 인사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후보자 부인을 단 한차례의 소환조사도 없이 불구속 기소했다. 조국 후보자에게 ‘더이상 버티지 말고 자진 사퇴하라’는 강한 압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검찰에 법무부 장관 임명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주었는가. 만약 혐의가 있다면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국민 평가가 내려진 이후에 수사에 들어가는 게 맞았을 것이다. 서초동 촛불은 검찰의 무소불위 행태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비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조국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 지 벌써 한달 넘게 지났다. 검찰 공식 발표가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조 장관 부인의 사모펀드 실소유 의혹과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 아들·딸의 인턴 증명서 의혹 등이 지금까지 나타난 주요 혐의로 보인다. 이들 하나하나가 사실이라면, 그 책임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번 수사가 조국 장관이나 부인의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조국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한달 넘게 수사한 내용이 부인과 아들·딸 등 가족 관련 사안이라면, 그것이 과연 장관 임명의 결격 사유로 볼 수 있는지, 또 그런 식으로 공직 후보자 가족을 탈탈 털어 ‘혐의’를 밝혀내는 걸 용인하면 검찰총장을 포함해 어느 고위 공직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많은 국민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국민적 비판과 수사에 대한 불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권도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입법으로써 답을 해야 한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구호 중 하나가 ‘공수처 설치’였다는 점을 국회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이들 법안은 10월27일 이후에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상된다. 비대한 검찰 권한을 제어하기 위해선 제도적 입법이 필수적이며, 여기엔 여야 정치권의 이해가 다를 수 없다고 본다. 국회는 올해 안에 검찰개혁법안 입법을 마무리함으로써 국민의 강렬한 검찰개혁 요구에 응답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충격적인’ 초유의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

검찰이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아들과 딸이 지원했던 연세대 등 4개 대학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에 나섰다.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조 장관 부인과 아들·딸 명의로 투자한 사모펀드를 둘러싼 횡령 또는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 대학 인턴활동 증명서나 표창장 발급 과정에서의 사문서 위조 또는 업무방해 혐의, 개인용 컴퓨터(PC) 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여부 등으로 요약된다. 이번 압수수색은 이런 혐의들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를 통해 여러 의혹이 규명되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검찰은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PE)의 실소유주가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라는 전제 아래, 5촌조카 조아무개씨의 아내나 정 교수 동생 명의 주식도 모두 차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정 교수는 조씨 횡령 혐의의 공범이고 재산을 허위신고했으니 공직자윤리법 위반에도 해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언론 매체는 코링크 설립 주체가 ‘익성’이란 기업이고,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조씨가 대여금을 상환하는 등 정상적인 금전 거래의 근거가 남아 있으니 차명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정 교수가 펀드 투자회사 더블유에프엠(WFM) 회의에 참석하고, 동생 집에서 그 회사의 실물주권이 발견되는 등 석연찮은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실이라 해도 정 교수를 법적인 운용자로 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부정적 견해가 적지 않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 발급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조국 장관은 “악의적 보도”라며 “법적 조처를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밝혔다.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도 ‘과도한 억측이 진실을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인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정경심 교수는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줄곧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면, ‘블라인드 펀드’라는 애초 해명은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의 잇따르는 의혹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검찰 역시 더이상 피의사실 공표 논란 등이 벌어지지 않도록 ‘권력형 비리’에 집중해 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주력해주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미 ‘9월 실무협상’ 가시화, 비핵화 돌파구 찾아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9월 하순에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즉각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이로써 6월30일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서 합의된 ‘비핵화 실무협상’이 이달 안에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 협상 교착에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최선희 부상의 제안은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들의 대화 촉구에 대한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사흘 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앞으로 1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조속한 협상 재개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북한 비핵화가 완료될 경우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를 전략적으로 재검토할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의 관심사인 자위권을 적극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런 발언들이 북한의 의구심을 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최 부상의 담화 직후 발사체 두 발을 쏘아 올리는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북한의 이런 ‘이중 행동’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한번 더 압박하는 것이자, ‘안보 우려 해소’가 실무협상의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남북 간 군사경쟁은 계속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의 무력시위에 단호히 대응하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방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

실무협상이 성사된다면, ‘하노이 결렬’을 가져온 북-미 입장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부상이 말한 ‘새로운 계산법’이 협상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그간 행동으로 볼 때 최 부상이 ‘미국 쪽이 낡은 각본을 만지작거린다면 거래는 막을 내릴 수 있다’고 한 말을 엄포라고만 보긴 어렵다.

북한도 미국도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은 민생경제의 목을 죄고 있는 제재의 해제가 시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비핵화 협상의 구체적 성과가 절실하다.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려면, 실무협상에서 양쪽이 접점을 찾아야 한다. 북·미 모두 이번엔 끝을 보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다음주 워싱턴 방문을 검토한다고 하니, 정부도 북-미 협상이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