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정세- 견해와 의견


(편주: 여기에 모은 글들은 범민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한겨레 사설] 한마디 사죄도 없이 떠난 ‘국민 학살자’ 전두환

5·18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이 23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마지막까지 단 한마디 반성과 사죄도 없었다.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한 것이 우리의 정서이자 관습이지만,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국민을 총칼로 학살한 내란 수괴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애도의 감정도 가질 수 없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으로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았고, 광주 5·18 민주항쟁을 총칼로 압살했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했다.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무자비한 폭압정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해 국민들이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또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등 정경유착을 일삼았다.

그는 생전에 여러차례 참회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죄과에 대해 뻔뻔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했다. 단 한번 미안한 기색조차 보인 적이 없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내란과 5·18 책임자로 법정에 섰을 때도 ‘광주 항쟁’을 ‘좌파 세력의 준동’이라고,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선 “폭동”이라 강변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한달 전 세상을 떠난 노태우씨와도 비교된다. 그래도 노씨는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유족을 통해서나마 사과를 했다.

전두환은 노태우씨와 달리 추징금도 25년째 내지 않았다. 검찰이 1249억원을 강제 집행했으나 여전히 체납액이 956억원에 이른다. 전두환의 가족들은 검찰이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염치없게도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부인 이순자씨는 2017년 자서전에서 전두환의 5·18 책임에 대해 “정략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2019년 재판 출석을 앞두고는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궤변을 늘어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전두환은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고 떠났다. 국가장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정부와 정치권이 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거나 애도를 표명한다면 매우 부적절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진정성 있는 사죄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조문과 조화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국민 학살자’에게 어울리는 논평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전두환으로부터 한마디 사죄도 받지 못한 5·18 영령들과 유족들이다.

최근 일부에서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되돌리려는 퇴행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뒤늦게 사과를 하긴 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발언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1987년 시민항쟁 이후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 여론과 강성 극우 지지층 사이에서 눈치보기를 하는 것 같은데, 비겁한 침묵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자신의 지지층만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국민의 안위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보수 정당의 참모습이다. 지금과 같은 태도라면 국민의힘은 수구 정당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노태우씨와 전두환의 연이은 사망으로 군사독재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온전히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5월 광주의 진상 규명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1980년 5월20일 밤 10시30분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첫 집단발포를 누가 명령했는지 밝히고, 생사도 확인되지 못한 행방불명자 신원을 찾아내고,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과 수습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진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5·18 영령들 앞에, 박종철·이한열 열사 앞에,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의 법정에 공소시효는 없다.


[한겨레 사설] 기대보다 걱정 앞서는 대선, 후보들 ‘착잡한 민심’ 직시해야

모든 후보 ‘비호감도’ 전례 없이 높아
증오와 진영 갈등 넘어야 희망 있다
안팎 위기 극복할 비전으로 승부를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출되면서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인 본선 무대로 올라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와 윤 전 총장 외에도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까지 전체적인 대선 윤곽이 완성됐다. 넉달 뒤(2022년 3월9일), 국민들은 이들 중 한명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 중 한명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의 5년을 책임진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의 마음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현재까진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보다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지난달 19~2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선 대선 후보로 나선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에 대해 모두 “호감 가지 않는다”는 답변이 “호감 간다”는 답변을 크게 앞섰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에게 “호감 간다”는 답변은 각각 32%, 28%에 불과한데, “호감 가지 않는다”는 답변은 60%, 62%로 배를 넘었다. 이처럼 후보들에 대한 지지 열기는 낮고, 비호감도는 높은 대선은 처음이다.

원인은 우선 후보들에게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이 국정을 운영할 만한 자질, 품격,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각 당 경선전이 네거티브 진흙탕 싸움으로 일관해, 후보 간 정책 비교는 뒷전으로 밀리고 막말 경쟁과 실언·망언만 난무했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각각 ‘대장동 개발’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으로 검찰과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후보들의 막무가내식 변명과 억지도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를 더욱 높였다.

후보들이 여태껏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증오와 사생결단식 비장함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힘을 거친 용어로 공격했고, 윤석열 후보는 오로지 ‘반문재인’만 부르짖었다. 경선 과정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선 비전이나 정책을 내세우는 것보다 지지층의 분노나 복수심을 촉발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력 후보들의 정책을 봐도 오랫동안 검토하면서 부작용까지 고려했다기보다는, 선거전에서 당장 표를 얻기 위한 인기 위주의 즉흥적 부분이 많다는 점이 국민들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그래서 각 당 대통령 후보들이 결정된 지금도 국민들 상당수가 마음 둘 데를 못 찾고 있다. 또 지지 후보를 결정한 국민들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보다 ‘더 암담해질 세상’을 피하려는 선택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후보들에게 바란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후보가 되어달라. 진영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얄팍한 수를 버리고,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들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해달라. 무엇보다 더 이상 증오와 보복의 정치에만 호소하지 말기 바란다. ‘증오’만 부르짖는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맡길 순 없다.

아울러 두 유력 후보는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 직선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국회의원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은 없었다. 양당이 ‘0선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큰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0선 후보’를 바라보며 대화와 타협보다는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에만 의존하진 않을지, 그래서 늘 정국이 흔들리고 위태로운 상황을 5년 내내 지켜보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강성 일변도’를 추진력이라 착각하지 말고, 건전한 양식과 균형 감각의 묘를 살려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전에서 국민들 앞에 ‘과거’가 아닌 ‘미래’로 승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 수 있을지, 국민들이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를 좀 더 분명히 제시할 것을 당부한다.

이번 대선이 이런 형태로 진행되는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이를 용납한 유권자들의 책임도 전혀 없다 할 순 없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로지 ‘사이다’, ‘응징’에만 박수를 보냈다. 그것만으로는 절대 내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의 폐해가 극도로 심각해져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수준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은 전방위적이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온 국민을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빈부·세대·젠더·노사·지역 등 곳곳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다. 이런 사회를 우리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순 없다. 남북관계와 미-중 갈등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격변,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그 대응 등 외부적 요인도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궤멸적 진영 다툼으로 날을 지새울 여유가 없다.
대선은 아직 넉달 남았다. 미래를 위해 어떤 이유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정치권을 움직이는 건 민심이고, 어떤 정치인도 민심을 거스르진 못한다.


[한겨레 사설] ‘지금도 늦은’ 탄소중립, ‘더 늦추자’는 무책임한 주장들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2030년까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국제사회에 공식 발표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이번 감축 목표를 두고 국내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다른 주요 국가들이 감축 목표에서 후퇴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 과도하게 감축을 서두르는 발표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일 <조선일보>가 “탄소 중립 폭주” “정부의 무모한 친환경 드라이브”라고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여론몰이는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값싼 전기’를 최대한 더 사용하려는 재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 재앙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탈탄소 경제’로 나아가고 있는 흐름에 역행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다.

한국은 애초 너무 낮게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은 뒤 이번에 감축 목표를 14% 올린 수정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이행하려면 연평균 4.17%씩 감축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2.81%)이나 유럽연합(1.98%)에 비해 빠른 속도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오랫동안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온 것의 역설적 결과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후 유럽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은 꾸준히 탄소 배출를 줄여왔지만, 한국은 2013년까지도 초대형 석탄화력발전소 7기 신설 계획을 확정하는 등 정반대로 갔다. 그 결과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면서 탄소 배출 규모는 세계 7위로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밀린 숙제를 뒤늦게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주요 온실가스 배출 국가들의 반대 등으로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탄소 중립 달성 시점을 2050년으로 확정하지 못했다.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도 세계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구체적 이행 규칙에 합의하기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시적 움직임 때문에 ‘탈탄소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되돌려서도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 홍수, 대형 산불 등으로 인명 피해, 농·어업 손실, 기후 난민 확산 등이 현실이 되고 있다. 또 경제적 논리로만 보더라도, 이미 미국과 유럽은 탈탄소를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탄소세와 탄소국경세 등도 도입하고 있다. 산업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화석연료를 좀 더 오래 써서 기업 이윤을 남기겠다는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 무역체제 변화와 첨단기술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고, 자연 재해와 식량난 등으로 더 큰 손실를 입게 될 것이다.

탄소중립의 큰 방향과 원칙 위에서 탈탄소 정책으로 타격을 받게 될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등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의 혼선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또 미루자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한겨레 사설]‘윤석열 징계 정당’ 판결, 이래도 ‘정치적 탄압’ 말할 건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재직 당시 받았던 정직 2개월 징계가 정당하고, 오히려 징계 사유가 중대해 면직도 가능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14일 윤 전 총장이 낸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판사 사찰’ 문건 작성·배포, ‘채널에이(A) 사건’ 감찰·수사 방해 등의 징계 사유를 인정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윤 전 총장 쪽은 항소할 뜻을 밝혔지만, 이번 판결 내용을 고려하면 사상 최초의 ‘징계받은 검찰총장’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재판부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작성한 ‘법관 분석 문건’에 위법하게 수집된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는데도 이를 보고받은 윤 전 총장이 삭제·수정 조처하지 않고 오히려 배포하도록 지시한 것은 국가공무원법 등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관련된 채널에이 사건에 대한 감찰을 중단시키고, 수사지휘권을 대검 부장회의에 넘긴 뒤에도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지시하는 등 감찰·수사를 방해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런 행위들이 “검찰 사무의 적법성과 공정성을 해하는 중대한 비위”라며 “정직 2개월은 양정 기준에서 정한 범위의 하한보다 가볍고 면직 이상 징계가 가능하다” 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검찰총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는 질타다.

그런데도 윤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징계 당시 ‘권력 수사에 대한 보복’ ‘수사 저지 목적’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검사들도 집단 반발에 나섰다. 법원은 일부 징계 사유를 인정하면서도 징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효력을 중지하도록 결정했다. 이는 임시적 성격의 결정이었음에도 징계가 부당하다는 뜻으로 포장되면서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윤 전 총장과 검찰의 막무가내식 여론전이 일시적 성공을 거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징계의 정당성이 사법적 확인을 받았다.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는 윤 전 총장의 주장은 근거를 잃은 셈이다. 오히려 법치주의와 검찰의 공정성을 해친 총장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더구나 당시 징계 사유가 됐던 행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고발 사주’와 ‘장모 사건 대응 문건’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검찰총장이란 직위를 발판으로 대선에 뛰어든 만큼, 총장 재직 시절의 불법·비위에 대해선 철저한 검증과 엄중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동아시아 ‘신냉전’ 군비경쟁, 냉철하게 대응해야

지난 15일은 동아시아 정세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북한은 기차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같은 날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정상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3국 안보협력체인 ‘오커스’ 결성을 발표했다. 미-중 신냉전과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는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조선노동당 당대회를 통해 초대형 핵탄두, 전술핵 등의 개발 방침을 밝혔고, 최근에는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며 무력시위 수위를 높여왔다. 한국도 국방 예산을 크게 늘리며 첨단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2026년 국방중기계획에는 스텔스전투기(F-35) 도입 완료, 6000t급 차기 구축함(KDDX) 개발, 3만t급 경항모 확보 등 대규모 군비 증강 계획이 담겼고, 국방비는 2024년 60조원대, 2026년엔 70조원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미-중 대립이 가속화하고 북한 핵개발과 일본 재무장이 이뤄지는 마당에, 한국도 ‘전시작전권 전환’과 병행해서 군비를 증강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자주국방’과 ‘군비 증강’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저마다 군비 경쟁에 나서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는 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도 훨씬 힘들어지는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미국은 동맹국들이 ‘중국의 위협’에 맞서 자체 역할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5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커스’ 창설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영국 외에는 공유하지 않던 핵잠수함 추진 기술을 오스트레일리아에 지원하기로 한 것은 그런 상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앞으로 일본을 비롯한 미 동맹국들의 군비 강화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한국은 이런 국제정세 변화를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전력 강화가 무분별한 국방비 확대로 이어지거나 남북관계 악화의 악순환에 휘말리지 않도록 냉철하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혼란만 키운 김웅 기자회견, ‘고발 사주 의혹’ 수사 착수해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핵심 고리인 중간 전달자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8일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뉴스버스>의 첫 의혹 보도 이후 엿새 만의 공식 회견이었지만, 시종일관 모호한 답변으로 해명은커녕 혼란만 키웠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5 총선 직전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게서 4월3일과 8일 두차례에 걸쳐 여권 인사 3명과 언론 관계자 등 모두 13명에 대한 고발장과 증거자료를 넘겨받아 당에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고발장 등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고 밝혔다. 불과 1년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일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당시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에게 ‘(윤석열) 총장님을 잘 보필하라’고 보냈던 문자는 기억이 난다고 했다.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참으로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김 의원은 또 지난해 4월8일 두번째로 전달됐다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 대한 고발장에 대해서는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윤석열 캠프 쪽에서는 김 의원이 <뉴스버스>에 최 대표 고발장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말한 녹취록을 공개하고, 윤 전 총장과 검찰의 ‘고발 사주’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녹취 당시 기자의 질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해 나온 답변일 뿐이라고 다시 정정함에 따라, 이 고발장 또한 검찰이 만들어 전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지난해 8월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검찰에 낸 최 대표에 대한 고발장 내용이 4월8일 전달된 고발장과 토씨까지 거의 같은 판박이라는 점이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검찰의 고발 사주가 실제 당 차원의 고발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하는 정황이다.

김 의원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만한 대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 의혹을 처음 알린 ‘제보자’에 대해서는 “공익제보자 신분이어서 더 말 못 하지만, 신원이 밝혀지면 이 일이 벌어지게 된 경위도 이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제보자는 윤 전 총장, 유승민 전 의원을 모두 잡으려 하는 것”이라고 말해, 당내 대선 경쟁 캠프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검찰이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고 특정 정당과 결탁해 고발을 사주했느냐는 것이다. 국민들도 캠프 간 다툼 여부를 떠나 이 본질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할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문제의 고발장에 대해 “출처와 작성자가 없는 소위 괴문서”라고 깎아내리고 제보자에 대해서도 “과거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여의도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저도 들었다”고 비난했다. 이렇다 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의혹 제기를 ‘정치 공작’으로 계속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핵심 당사자인 김웅 의원이 진실에 다가갈 기회를 차버린 이상 이제 의혹 규명은 검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검 감찰부가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감찰은 한계가 뚜렷하다. 증거 인멸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강제 수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적용 법리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면 검찰이, 직권 남용이면 공수처가 담당인 만큼 두 기관의 신속한 조율이 필요하다. 윤 전 총장도 떳떳하다면 수사에 당당히 임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OECD 최악의 남녀 임금 격차, 경력단절 대책 시급하다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 노동자 평균임금이 남성 노동자보다 35.9%나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가 2149개 상장기업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지난해 남녀 임금 격차를 분석한 결과다. 출산·육아 등에 따른 경력 단절과 여전히 공고한 ‘유리천장’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하는 여성의 고용 유지를 위한 노력과 함께 ‘성평등 공시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고 본다.

여성가족부가 1일 내놓은 ‘2020년 성별 임금 격차’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은 7980만원, 여성은 5110만원으로 임금 격차가 35.9%에 이르렀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4만1천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2019년(36.7%)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3월 발표한 ‘유리천장지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중위값 기준)는 32.5%로 오이시디 임금 격차 평균(12.8%)의 2.5배나 됐다.

여가부는 남녀 임금 격차의 주된 요인으로 ‘근속연수’를 꼽았다. 여가부 조사에서 남성의 평균 근속연수는 12.2년인 반면, 여성은 8.2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근속연수 격차가 32.6%로 임금 격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남녀 근속연수 격차가 큰 기업일수록 임금 격차도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일하는 여성의 고용 유지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 관리자 비중을 늘려 기업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일도 필요하다.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은 것은 관리자로 승진한 여성 비율이 낮은 데서 비롯된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여가부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상장법인의 여성 임원 비율은 5.2%에 그쳤다. 오이시디 평균(25.6%)의 5분의 1 수준이다. 남녀 임금 격차와 임원 비율 등을 평가하는 <이코노미스트> ‘유리천장지수’ 조사에서 9년째 꼴찌를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남녀 임금 격차의 주된 요인인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으려면 육아휴직의 실질적 보장을 비롯해 모성·부성 보호 제도를 확대하는 등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아울러 임금은 물론 직무, 승진, 고용 형태 등 ‘성별 격차’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는 ‘성평등 공시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겨레 사설] 아프간 난민 수용 논란, 정부가 ‘성숙한 공론’ 이끌길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들을 한국을 비롯한 미군 해외기지에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국내에서도 아프간 난민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기지의 난민 수용 문제는 한-미 동맹과도 관련된 사안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항공기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카불공항의 비극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확고한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절박한 메시지다.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간인 30여명이 한국 정부와 국제기구, 기업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도록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1인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의 주장처럼 지금 아프간에서 생명의 위협 등 심각한 정치적 박해 위험에 놓인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기업 등을 도와 자국의 경제 발전과 인권 증진을 위해 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외면하는 건 비인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극단적 주장이 나오고 있는 건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2일 ‘난민을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청원인은 불경기와 코로나19 장기화로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 난민을 받는 것이 타당한가 묻는 한편 “난민을 받는 순간 우리는 테러에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난민과 테러를 곧바로 연결시키다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 청원은 비공개 상태인데도 하루 만에 6000명 넘게 동의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2018년 여름 예멘 난민 500여명이 입국했을 때 비슷한 주장을 접한 바 있다. 그들이 한국에서 성폭행을 비롯한 온갖 강력범죄와 테러를 저지를 것이고,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혐오 주장이 가짜뉴스와 뒤섞여 난무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다수가 인도적 체류를 인정받았으나, 범죄 등 사회문제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없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운 제주지역 어업에 이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유엔난민기구(UNHCR)의 ‘한국인의 난민 인식 보고서'를 보면 난민 수용 의견이 33%로, 2018년 예멘 난민 논란 당시 조사보다 9%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는 인도주의적 공론을 정부가 이끌어내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대화의 문’ 강조한 문 대통령, ‘가해 책임’ 외면한 스가 총리

문재인 대통령이 76돌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임기 중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을 향한 새로운 제안은 없었지만,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담겼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에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은 것은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와 수출 규제 등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한-일 관계의 교착 상태를 임기 안에 풀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 문제의 해법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이 해방 다음날 일본과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선언한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 선생의 연설을 인용하며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역사 문제는 원칙에 따라 풀어가되 한-일 관계를 개선해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날도 일본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종전(패전) 76주년 전몰자(전사자) 추도식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책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등 일본의 피해 사실만을 강조했고, 한반도 식민 지배와 주변국 침략 등 가해 역사에 대해선 역대 총리들이 언급해온 “깊은 반성”과 “애도의 뜻”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위해 아베 전 총리가 제창한 “적극적 평화주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스가 총리는 또 이날 태평양전쟁의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고, 기시 노부오 방위상 등 현직 관료 5명이 13~15일 직접 참배를 했다.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미-중 갈등을 비롯해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계속 반성을 거부하고 퇴행적인 태도를 고집한다면, 일본은 더 이상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말할 자격이 없다.


[한겨레 사설] ‘통일부 폐지’ 고집하는 이준석 대표의 설익은 인식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에 이어 통일부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 대표는 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보수 쪽 진영은 원래 작은 정부론을 다룬다. 현재 정부 부처가 17~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많다”면서 “여성가족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자”고 말했다. 10일에는 “대만에 통일부와 같은 조직이 있는가. 대륙위원회다. 북한에서 통일부를 상대하는 조직이 ‘부’인가. (노동당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라며 거듭 통일부 폐지론을 폈다.

통일부 설치의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 현실적 과업 등을 도외시한 단견이라고 본다. 사회 일각의 ‘반북 정서’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거두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앞서 2030 남성 일부의 반페미니즘 정서에 기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것과 판박이다. 이런 얄팍한 정략적 계산만으로 국가 운영의 방향성이 담긴 부처 존폐를 거론하는 포퓰리즘 행태가 대선 시기 국민들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이 대표의 섣부른 현실 인식에 대한 의구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대표가 ‘작은 정부가 선’이라는 단순 논리에 근거해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것은 특히 실망스럽다. 통일부는 남북 분단의 특수성 위에서 무력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맡은 부처다. 단지 “외교와 통일 업무가 분리된 게 비효율일 수 있다”는 한마디로 폐지를 주장하는 건,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 현실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낼 뿐이다.

대만과 북한에 통일부와 같은 정부 부처가 없다는 점을 폐지 근거로 든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두 나라 모두 부처 형태가 아니더라도 분단 상황을 관리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기구를 두고 있다. 노동당이 내각보다 우위에 있는 북한을 예로 든 것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옛 서독의 경우 통일부에 해당하는 부처인 내독관계성을 설치해 운영했다는 사실 또한 외면해선 안 된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안에서도 “우리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서독 정부의 행태가 최적의 모델이 될 것”(권영세 의원)이라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겠나.
이 대표는 더 이상 원외 ‘정치 평론가’가 아니다. 소신을 표출하더라도, 제1야당 대표로서 국정 운영과 관련한 발언엔 한층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지지층만을 겨냥해 불필요한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은 자제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홀로 법망 빠져나갔던 윤석열 장모의 법정구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2일 의료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사기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의료인이 아닌데도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이 병원을 통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천만원을 부정 수급한 혐의다. 전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건강보험 재원을 편취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 또 유력 대선주자의 장모가 이런 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법원은 통상 검찰 구형보다는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구형대로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했다. 그만큼 혐의가 무겁고 입증이 충분히 됐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다른 요양급여 부정 수급 사건에서는 편취금이 대부분 환수됐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러지 않았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을 악화시켜 국민 전체에 피해를 준 점 등 책임이 무겁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사건은 2015년 경찰 수사가 진행돼 최씨의 동업자 3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의료재단의 공동 이사장까지 지낸 최씨는 법적 효력도 없는 ‘책임면제각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열린민주당 의원 등의 고발로 재수사가 이뤄지자, 윤 전 총장의 동서가 이 병원에서 행정원장을 지낸 점 등 최씨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이번 재판 결과에 비춰 보면 앞선 수사·기소는 최씨에 대한 명백한 봐주기였던 셈이다. 이처럼 불공정한 수사 결과가 나온 배경에 특혜나 부정은 없었는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선고 뒤 “그간 누누이 강조해왔듯이 법 적용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장모 문제와는 선을 그으려는 모습이다. 최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법 집행을 책임지는 검찰총장 출신이자 ‘정의와 공정’을 내세우는 대선 후보라면, 가족의 비리에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은 윤 전 총장이 결혼한 이후에 벌어진 일인 만큼 장모의 불법행위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사건 처리에 개입하지는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29일 대선 출마 선언으로 윤 전 총장은 본격적인 검증대에 올랐다. 본인과 관련한 것뿐 아니라 부인·장모를 둘러싼 의혹도 여럿이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들도 있고, 인사청문회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도 있다. 근거가 희박한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장모가 법정구속된 사건을 비롯해 구체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윤 전 총장 스스로 국민 앞에 소상히 해명하는 게 당당한 태도다.


[한겨레 사설] “대화” 언급한 북…한-미, 협상 이끌 메시지 내놓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한 데 이어 21일 서울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열린다. 대화와 대결 사이 갈림길에 서 있는 북한을 협상 쪽으로 이끌 한-미의 조율된 대북 메시지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방한 중인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21일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 이어, 22일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면담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과 만나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한·미가 지난달 정상회담의 후속 조처를 어떻게 진전시켜나갈지, 미국이 성 김 대표를 통해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따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주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성 김 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대외 정책과 관련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4월 말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완료를 발표한 이후 북한의 첫 공식 반응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대화를 비중 있게 언급한 것은 2019년 4월 시정연설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대화로 나오겠다는 분명한 신호는 아니었지만, 김 위원장이 대미 비난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한 것 등을 고려하면, 경제·민생을 우선으로 하면서 대화를 모색해 나가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의 백신 협력을 언급했다. 이번 한-미 협의에선 남북 관계 진전의 걸림돌로 지목되어온 ‘한-미 워킹그룹’의 개선 방안, 오는 8월 예정인 한-미 연합훈련의 방식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방역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단시일 안에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는 어렵다는 회의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가 아닌, 외교를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진전시킬 실질적 방안들을 내놓는다면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정세가 긴장이 아닌, 대화로 향할 수 있도록 외교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미-중 ‘신냉전’에 휘말려 좌초하지 않도록 창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겨레 사설] 대법원 판례 무시하며 ‘황당 논리’ 편 강제징용 판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7일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2018년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다 황당한 논리로 점철된 이례적인 판결이다.

재판부는 1965년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자금 지원을 대가로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 한-일 청구권협정의 문언과 체결 경위 등을 볼 때 강제징용 피해자도 협정의 적용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청구권협정문이나 체결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는 만큼 강제징용이라는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는 한-일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번 재판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마저도 “국내법적 해석”일 뿐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부는 또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 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거나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큰 기여를 했다”는 등 일방적인 ‘정치·외교적’ 가치 판단을 판결에 개입시켰다. 피해자 승소 판결로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역효과 등까지 고려하여 보면 국가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한다”는 논리 비약을 보이기도 했다.

법리적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소수 의견의 재탕에 불과하다. 대법원이 불과 3년 전 확립한 법리를 하급심이 새로울 것도 없는 논리로 부정한 셈이다. 이는 법적 혼란을 일으키고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지연시킬 뿐이다.
3년 전 대법원 판결도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8개월 만에야 나온 것이어서 만시지탄을 부른 바 있다. 이 사건을 두고 박근혜 정부가 양승태 대법원과 재판 거래를 한 것은 사법농단의 상징적 사건이 되기도 했다. 사법부가 이처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주고도 또다시 법정에서 좌절을 안기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다.

재판부는 오는 10일로 예정했던 선고 날짜를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이날로 갑자기 변경하기도 했다. 재판 당사자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조속히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중국 보복’ 과도한 우려보다 차분한 ‘한-중 외교’를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가 언급된 것을 두고 중국 외교부가 “내정 간섭”이라며 우려를 밝힌 뒤,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며 “중국은 공동성명 내용에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언행을 신중하게 하고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한·미 정상이 지난 21일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언급한 데 대한 반응이다.

그동안 미-중 신냉전 속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입장을 보여온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 쪽으로 좀 더 나아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 등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강조했고 한-미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강화하겠다는 방향성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배려한 부분도 적지 않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5일 이번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를 반영하지 않은 데 대해 “한-중 간 특수 관계에 비춰 우리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계속 자제해왔다”고 설명했다. 신장위구르, 홍콩과 관련한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공동성명에 명시되지 않은 것은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는 얘기다.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선 대만 문제에 더해 홍콩과 신장위구르, 티베트 문제까지 거론했고, 중국 외교부는 “난폭한 내정간섭” “패거리를 만들어 대결을 선동한다”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웃 국가이자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나가야 하겠지만, 중국의 보복에 대한 과도한 우려 때문에 한국이 스스로 외교적 선택지를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 국제 정세 속에서 독자적 입장과 원칙에 따라 외교정책을 펼치면서 이견이 있다면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한-중 관계를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2016년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때 중국이 한국 기업과 문화계 등에 강경한 보복 조처를 해 한-중 관계가 크게 악화됐고, 우리 국민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중국도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국제 정세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과도한 대응을 하지 않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백신과 평화’ 과제 안고 워싱턴 향한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떠났다. 문 대통령은 21일 오후(현지시각, 한국시각 22일 새벽)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코로나 백신 협력과 북핵 해법 등 현안을 논의한다. 지금 한국이 처한 국내외 상황으로 볼 때,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이번 방미가 한-미 간 백신 협력으로 이어지고,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다시 틔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회의에서 “이번 방미를 백신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이) 백신 생산의 글로벌 허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다른 외교·경제 이슈보다, 코로나 극복에 필수적인 백신의 원활한 확보를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11월 집단면역을 목표로 충분한 백신을 확보했다고 말하지만, 도입 시기가 대부분 하반기에 집중돼 국민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진 못하고 있다. 미국의 백신 개발 기술과 한국의 첨단 생산시설을 결합하는 백신 파트너십을 이번에 구축하면, 정치적 논란과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그 점에서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코로나19와 싸우는 한국을 지원할 방법을 논의할 거라 확신한다”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 첨단 생명과학 시설·기술을 보유한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은 국제적인 코로나 지원에 나서는 미국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백신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장에 북한을 끌어내는 일이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 어느 한쪽의 의지나 노력만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한-미가 함께 공조하며 노력할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캠벨 조정관은 “우리는 실용적인 조처를 강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의 노력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및 다른 합의 위에서 구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한국 정부와 폭넓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건 바람직하고 다행스럽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실제로 나오도록 하는 일이다. 이번 회담에선 이를 위한 두 나라 정상의 분명하고 실질적인 의지 표현이 있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증유의 팬데믹과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는 시점에 열린다는 점에서 안팎의 관심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백신과 평화’라는 과제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는 첫 만남이 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한 고사포 불러 접경주민 생명 위협하는 대북전단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전단을 살포한 직후인 지난달 말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인근 고사포를 좀 더 남쪽으로 전진 배치했다고 한다. 탈북민 단체가 전단을 담은 풍선을 북쪽으로 날려 보낼 경우 북한으로 넘어오지 않게 고사포를 쏘아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만약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상공의 풍선을 겨냥해 고사포를 쏠 경우 포탄 파편이 남쪽인 경기도, 강원도 접경지역에 떨어진다. ‘삐라를 뿌리면 포탄으로 돌아온다’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선 남북 간 무력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접경지역 주민 생존을 위협하고 분쟁 확대의 불씨를 키우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대북전단을 뿌리는 쪽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반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권 보호’를 호소한다. 대북전단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최종환 파주시장은 지난 10일 성명을 내어 “대북전단이 살포될 때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군사적 충돌에 대한 불안감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바람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 최문순 강원지사도 같은 주장을 했다. 접경지역 주민 안전 보장을 위한 휴전선 일대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제한으로 보기 어렵다. 대북전단을 뿌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탈북민 등이 지난 13일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형법상 여적죄(적국과 합세해 한국에 맞서는 죄)로 검찰에 고발한 일은 한국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어느 수준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대북전단을 둘러싼 남북 간의 우발적 군사 충돌은 한반도 평화를 송두리째 태우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군사분계선 부근은 군사 대치가 너무나 첨예해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남북은 2014년 10월 대북전단 문제로 고사총과 기관총을 쏘며 충돌한 바 있다. 당시 온 국민이 전면전으로 번질까봐 공포감에 며칠 밤잠을 설쳐야 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군의 고사포 전진 배치도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큰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고,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남북합의와 현행법을 위반하면서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로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북한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언행을 자제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미국은 ‘부자 증세’ 하는데, 우리는 ‘부자 감세’라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소득자에 초점을 맞춘 ‘부자 증세’를 공식화했다. 우리도 코로나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와 양극화 심화를 고려할 때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부자증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종합부동산세를 줄여주는 등 ‘부자 감세’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각) 취임 이후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1조8천억달러(약 1993조원) 규모의 ‘미국 가족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보육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면서 미국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투자계획이다. 3∼4살 프리스쿨과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공교육에 포함하겠다고 약속했다. 최대 12주의 유급 육아휴직과 병가를 보장하고, 어린이 보육 가정에 대한 3천달러(약 332만원) 이상의 직접 세액공제도 신설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자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소득 상위 1%인 ‘슈퍼 부자’의 연방 소득세율을 37%에서 39.6%로 인상하기로 했다. 또 주식 등의 투자 수익에 매기는 자본이득세의 세율을 수익이 연 100만달러 이상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20%에서 39.6%로 올리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계와 1% 최상위 부자들이 공정한 몫을 부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국가채무가 늘어났고, 사회 양극화도 심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은 코로나 대응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부자증세를 권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몇몇 의원들과 정의당이 증세론을 제기하고 부자증세 성격의 사회연대특별세 신설을 제안했지만 진전되지 않고 있다.

보수언론은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놓고 이제 와서 부자증세 타령”이라고 공격하지만, 터무니없는 억지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은 비단 우리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의 공통된 선택이다. 더구나 우리는 선진국보다 국가채무가 적고, 증가폭도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정부와 국회가 증세 논의를 피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세계적 흐름에도 반한다. 선거에 미칠 유불리만 따지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장기 재정 수요와 불평등 심화에 대한 냉철한 고민을 바탕으로 지금이라도 증세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당·정·청 개편, ‘재보선 민심’ 반영한 국정운영을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총리 교체를 포함한 전면 개각과 함께 청와대 참모진 일부도 바꿨다. 새 국무총리에 ‘화합형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에 ‘비문’으로 분류되는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기용한 게 눈에 띈다. 민주당도 이날 비대면 의원총회를 열어 정책위의장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4선의 윤호중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당·정·청이 같은 날 인적 개편을 단행한 것은 국정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새 진용을 구축하고 4·7 재보궐선거에서 분출된 민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는 민의에 부응하려는 문 대통령의 깊은 고민이 읽힌다. 4·7 재보선은 집권세력이 보여온 불통과 독주에 대해 국민이 내린 준엄한 경고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국정을 통할하는 국무총리에 대구 출신으로 야당과의 관계가 원만한 김부겸 전 장관을 내정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제외한 4개 부처(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해양수산부) 장관에는 해당 부처에서 전문성을 키운 관료 출신을 승진 발탁했다. 임기 말 국정기조를 ‘통합’과 ‘안정적 정책 관리’에 두겠다는 의지 표명인 셈이다.

청와대 인사도 ‘소통’과 ‘쇄신’에 무게를 실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이른바 ‘친문’계가 도맡아온 정무수석에 이철희 전 의원을 기용한 것은 생각이 다른 야당의 의견도 경청하겠다는 메시지이자, 당·청 관계 역시 청와대가 주도하기보다 여당 목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풀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새 원내 사령탑에 윤호중 의원을 선택한 데는 여야 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어가면서 가시적 입법 성과를 내려면 당 정책위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지내며 검찰개혁 입법을 관철시킨 경륜과 돌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윤호중 새 원내대표는 15일 원내대표 경선 토론회에서 개혁과 협치의 우선순위와 관련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개혁이다. 협치는 우리가 선택할 대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서 드러난 화합·소통의 국정운영 기조와, 집권여당의 입법 방향이 엇박자를 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4·7 재보선의 민심을 이미 확인한 만큼, 당·정·청은 정책 조율과 추진에서 국민 기대에 분명하게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청와대와 민주당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쇄신과 유연한 태도를 촉구하고 있다. 16일 나온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3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새 원내지도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과 양극화 해소 등 ‘민생 개혁’에 힘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검찰개혁 등 개혁 과제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유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겨레 사설] 한인 대상 인종차별 공격, 혐오가 바이러스다

미국에서 반아시안 정서의 확산으로 재미동포가 운영하는 가게가 습격당하고 산책하다 폭행당하는 등 피해가 늘고 있다. 지난달 3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는 20대 남성이 한국계 부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쇠막대를 휘둘러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렸다. 이 남성은 한국계 부부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이 중국 ××”라고 욕설을 했다. 지난해 11월 워싱턴 주택가에서 50대 한국계 미국인이 길을 걷다 10대 청소년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다. 미국 정부는 인종차별 혐오범죄를 엄단하고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선 코로나19 대확산이 벌어진 지난해부터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3월 이후 1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아시안 폭력 사건이 확인된 것만 11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5년간 통계보다 2~3배 많다. 이 중 절반 가까운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너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중국으로 돌아가라” “바이러스를 여기 가져온 건 너다” 등의 혐오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이 바이러스가 아니라 증오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는 나이, 지역, 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는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스노보드 미국 대표 선수로 금메달을 딴 재미동포 클로이 김(21)은 집 밖을 나설 때는 호신용 무기를 챙겨야 한다고 고발했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된 데는 미국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해 ‘차이나 바이러스’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혐오범죄를 부추겼다. 이후 중국계, 한국계, 일본계, 동남아계 등을 가리지 않고 폭행, 언어폭력, 기물파손 등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가 늘었다. 지난달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에서도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미-중 갈등이 심해지고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백악관에 ‘아시아계 증오범죄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민사회에서도 ‘아시안 증오를 멈춰라’ 시위와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내에서도 인종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인종차별 해소를 위한 전방위적 대책을 실행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위안부 강제동원’ 뺀 교과서, 약속 팽개친 일본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단 하나만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정을 통과한 12종 교과서 가운데 ‘위안부’를 언급한 것은 8종인데, 대부분 ‘위안부가 있었다’는 식의 간단한 서술만 마지못해 넣었다. 이런 교과서로는 일본의 미래세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전시 성폭력’이란 역사적 사실조차 배울 수가 없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정면으로 무시한 매우 유감스러운 처사다.

이번 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가 중요한 것은 내년부터 세계사와 일본사를 합친 ‘역사총합’이 일본 고등학생 필수과목이 되기 때문이다. 검정을 통과한 12종 가운데 야마카와 출판사가 만든 교과서 1종만이 유일하게 ‘위안부’의 강제성을 언급했는데, 그나마 본문이 아닌 각주에서 설명했다. 나머지 교과서들은 실태만 짧게 서술하거나 실태 설명도 없이 전후 보상 문제만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약속을 한국이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이번 교과서 검정을 통해 누가 정말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분명해졌다. 1993년 4월 고노 요헤이 당시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는 ‘위안부’의 동원과 생활에서 강제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 없이” “역사 교육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역사 교과서에서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 여성에게 가해졌던 씻을 수 없는 전쟁 범죄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그 역사적 진실을 미래 세대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

일부 역사 교과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서술했다. 1982년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사건 때 한국 ‘침략’을 ‘진출’로, 외교권 박탈을 ‘접수’ 등으로 비틀었던 사례를 연상시켜 경악스럽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 ‘한국의 (불법) 점거’라는 일본 정부 주장도 대다수 교과서에 실렸다.
미래 세대의 올바른 역사 인식이 없다면 한-일 관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를 가지길 충고한다. 교과서의 잘못된 기술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의미있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한겨레 사설] ‘사법농단’ 판사들 첫 유죄 판결, 사필귀정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 농단’으로 기소된 고위 법관들에 대한 재판에서 처음으로 유죄 선고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3일 재판 개입 등 혐의를 받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7년 초 불거진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4년 만에야 처음 이뤄진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의 부적절한 유착과 재판 거래 등 사법부의 일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고위 법관 14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이제까지 선고가 이뤄진 6명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행위조차 “헌법 위반이지만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급기야 국회가 나서 임 부장판사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했다.

이처럼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로 재판을 통한 사법농단 단죄는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절망감마저 느껴지던 터라 이날 유죄 선고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이 국회의원 재판과 관련해 담당 법관의 심증을 파악하거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한 행위 등이 재판권 방해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 사무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판결과는 다른 태도다. 또 법원행정처가 법원 수뇌부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행위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범행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2명의 법관에게는 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집행유예 이유로 해당 행위를 주도한 게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차장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이들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최고위층 연루자들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의 재판은 물론 이미 1·2심에서 무죄가 나온 법관들의 향후 재판에서 법원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야 한다.

법원 수뇌부가 정치권력과 유착해 재판을 의도대로 주무르고 일선 법관들을 사찰한 사법농단은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법원의 신뢰 기반을 허물어버린 중차대한 사건이다. 법원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세로 엄단해야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도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 헌법적 단죄를 내려야 할 것이다.


[한겨레 사설] ‘모든 인종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외침 절실한 미국

한인 여성 4명을 비롯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틀랜타 총격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고 인종차별과 증오 범죄에 맞서려는 움직임이 미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내외의 미 연방 관공서와 군에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19일(현지시각) 애틀랜타를 방문해 아시아계 미국인 지도자들과 만난다. 이번 비극이 미국 사회 전체가 피부색을 문제 삼는 차별을 멈추고 ‘모든 인종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공감대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애틀랜타 경찰은 용의자를 “증오 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18일 밝혔다. 전날 용의자의 ‘성 중독’을 언급하며 “증오 범죄로 판단하기 이르다”고 했다가,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를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가 심각한 상황에서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차별을 법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흑인, 유대인, 성 소수자에 대한 증오 범죄를 입증할 표본은 그나마 마련돼 있지만, 아시아계 혐오에 대해서는 법체계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절실한 외침으로 등장할 정도로 아시아계를 비롯한 소수계 미국인들의 삶은 심각한 위협을 받아왔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를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선동한 증오의 정치로 아시아계의 삶은 더욱 위험에 빠졌다.

이 사건 뒤 미국 곳곳에서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 “아시아인의 생명은 소중하고, 흑인 생명도 소중하고, 백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펼침막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희망의 신호다. 지난해 백인 경찰에게 짓눌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 등장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LivesMatter)의 문제의식이 한 단계 더 나아가, 미국 사회가 소수계에 대한 차별과 증오 범죄에 맞서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가 피부색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는 반인권적 국내 현실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겨레 사설] 유엔 전문가들도 경고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유엔 전문가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에 경고를 보냈다. ‘인권과 건강권’ 등을 관할하는 유엔 특별보고관 5명은 11일 성명을 내어 “후쿠시마 제1원전에 남아 있는 오염수는 환경과 인권에 중대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며 “원전 오염수 태평양 방류는 수용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을 담은 편지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홈페이지에 공개한 성명에서 이들은 “핵연료가 용융된 원자로 내부로 유입되는 지하수가 계속해서 오염되고 있다”며 “오염수가 초래할 위험과 그 폐기의 영향을 둘러싼 불투명성, 결정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 부족은 이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을 실망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안팎의 원전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지적해온 바와 다르지 않다. 또 이들은 “피폭을 방지해야 할 지속적인 의무가 일본에 있다”며 “무엇보다 어린이와 취약계층의 방사능 노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내 고준위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뒤 방류하겠다고 했지만, 도쿄전력 자료를 보면 처리된 오염수 가운데 기준치를 통과한 건 30%에 불과했다. 저준위 방사성물질이지만 위험성 논란이 있는 삼중수소뿐 아니라 극소량만으로도 치명적인 세슘, 스트론튬 등 고준위 방사성물질까지 검출됐다. 이런 오염수가 방류되면 해양 생태계를 넘어 인간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국제사회의 이런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정부는 11일 한국, 중국 등을 겨냥해 일본 식품 수입 규제를 철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세슘이 검출됐지만, 일본 정부는 “특이한 사례”라고 둘러댔다. 방사능 피폭 문제는 모른 척하면서 자국 식품에 대한 개방 압력을 노골화하려는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국제사회의 공분만 더 높일 뿐이다.

지난 6일 후쿠시마를 방문한 스가 총리는 “적절한 시기에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처분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 문제를 자국민과 인접 국가뿐 아니라 전세계가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책임감 있는 방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한겨레 사설] 사퇴한 윤석열, 정치권 진출은 ‘검찰 중립’ 부정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검찰 인사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도 수리했다. 여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윤 총장의 사퇴 이유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 총장의 이런 인식은 실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사퇴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벌써부터 윤 총장의 대통령선거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검찰의 중립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우리 사회에 누적돼왔고, 궁극적으로 권한 분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윤 총장 자신도 동의한 바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할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부가 정할 몫이다. 더구나 수사·기소권 분리는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검찰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입장을 표명하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여권도 검찰의 의견까지 들어 충분한 검토를 거치겠다고 한 상황에서 총장이 사퇴까지 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총장의 사퇴를 보면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윤 총장은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명시적인 언급은 없지만 사실상의 정치활동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으로선 이례적인 언론 인터뷰로 주목을 끈 뒤 이틀 만에 공개적인 사퇴 선언을 했다. 전날에는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인 대구를 방문했다. 노회한 정치인을 뺨치는 행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사·기소권 분리를 쟁점으로 한껏 부각시킨 뒤 사퇴 명분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윤 총장은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임기 도중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다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현직 때의 권한 행사가 정치적 고려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고, 향후 검찰의 행보에도 정치적 불신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검찰의 신뢰성에 치명타다. 수사·기소 분리를 떠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대대적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여권도 그동안 정교하지 못한 방식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윤 총장에게 사퇴의 빌미를 주고 국민들의 피로감을 키운 점을 겸허히 되돌아봐야 한다. 검찰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개혁에 대한 저항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국민적 지지를 넓히는 데도 더욱 힘써야 한다. 청와대는 검찰 안팎에서 두루 신망받는 인사를 후임 총장으로 신속히 임명해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위안부 인권’ 침묵 강요하는 일본의 ‘안하무인’

일본 정부가 ‘12·28 합의’를 내세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한국 정부 대표의 발언을 가로막고 나섰다. 지극히 당연한 발언까지 문제 삼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안하무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은 지난 23일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현재와 미래 세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위안부’의 비극은 보편적 인권 문제로서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 차관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90대 고령이고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하나 틀린 대목이 없다. 최 차관은 한-일 관계를 고려해 일본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24일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일-한 합의에 비춰볼 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제네바 주재 일본 대표부도 인권이사회에서 “일본은 12·28 합의에 따라 10억엔 지급을 포함해 약속한 모든 조처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한 지난달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매우 유감스럽고 수용할 수 없다. 명백하게 국제법과 양국 합의에 반한다”고 했다. 제네바 주재 한국 대표부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분쟁 속에서 자행된 성폭력이라는 인권 침해로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수 없다”며 한국 재판부 역시 심각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는 ‘국가 면제’를 인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리 정부는 12·28 합의에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적이 없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발뺌하려 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쟁 중 여성에게 가해졌던 씻을 수 없는 전쟁 범죄이며, 일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역사적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맞지만, 동시에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해결해야 할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계속해서 널리 알려나가야 하는 것 또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한겨레 사설] 법무장관-민정수석 ‘검찰 인사’ 갈등, 볼썽사납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근 검사장급 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을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사의를 밝혔다. 문 대통령이 거듭 만류했지만 물러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보기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신 수석의 사의 표명은 검찰 쪽 의견을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박 장관이 검찰 인사를 밀어붙인 데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7일 “법무부 장관이 (신 수석과)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게) 인사안이 보고되고 발표된 것”이라며 “박 장관이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대로 절차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장관이 검찰 인사안을 마련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민정수석과 충분히 조율하고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 재가를 구하는 것 또한 관행이다. 문 대통령이 ‘추-윤 갈등’에 대해 사실상 국민에게 사과하고 검찰 출신인 신 수석을 발탁한 건 그에게 법무부와 검찰의 이견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 장관은 신 수석의 반대를 우려해 문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고 인사를 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처리 방식이다.

문 대통령의 위신도 손상을 입게 됐다. 여권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이 신 수석과 조율을 거쳤을 것이라고 생각해 박 장관의 인사안 발표에 동의했다고 설명한다. 이번 일이 문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해명인데, 청와대의 업무 처리 관행에 비춰볼 때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와 내각을 제대로 통할하고 있는지,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국민들은 새로 임명된 박 장관과 신 수석이 1년 이상 이어져온 ‘추-윤 갈등’을 수습하고 법무부와 검찰 모두 심기일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신 수석의 사의 파동을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재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청와대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신 수석도 신중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신 수석은 여권과 법조계 인사들에게 “자존심이 상한다. 창피해서 더는 못 하겠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고 한다. 법무부와 검찰 간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겠지만, 수석비서관은 참모일 뿐이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아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면 사의를 철회하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MB 국정원’의 전방위 사찰 문건, 철저히 규명해야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국회의원과 연예인, 언론인을 광범하게 사찰한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이 논란에 휩싸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찰 자료 공개결의안 처리를 공언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 시절 사찰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사찰 문건 작성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꺼내든 정치공세용 카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정치인뿐 아니라 민간인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찰을 했다는 건, 이전 정부의 일이라도 덮고 가기엔 사안이 너무 중차대하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언론 보도와 민주당, 익명의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8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을 비롯해 언론인, 연예인 등 최소 900명에 이르는 인물의 동향을 파악한 자료가 현재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 자료에는 돈 씀씀이 등 사생활까지 담겨 있어 사찰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에 참여한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 등에게 국정원이 공개한 사찰 문건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시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회도 견제하기 위해 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 자료 관리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나왔는데, 그 실체가 확인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은 민간인, 국회의원, 연예인, 언론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자행됐다”고 규정한 민주당은 16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찰성 정보 공개 촉구 특별결의안’ 의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정원도 “당사자 청구나 정보위 재적위원 3분의 2의 의결이 있을 경우, 비공개를 전제로 정보위에 보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도 감출 이유가 없다고 밝힌 만큼, 여야는 신속하게 사찰 문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만 국정원이 수집한 불확실한 풍문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될 경우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당사자가 먼저 열람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두운 과거는 진실을 드러내고, 당사자의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때 극복될 수 있다는 걸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에 국제사회 힘 보태야

미얀마 군부가 지난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문민정부 지도자, 시민사회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6년부터 문민정부와 군부의 이중권력 속에 위태롭게 진전됐던 미얀마 민주주의가 다시 암흑시대로 후퇴할 위기를 맞은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고 군부 쪽 정당이 참패한 이후 “선거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해오다가 이를 빌미로 쿠데타에 나섰다. 실제로는 군부가 국제사회의 제재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민정부와 권력을 분점했지만, 문민정부의 영향력과 인기가 높아지자 총칼을 동원해 권력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017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 사건의 책임자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올해 퇴임 예정이었으나 권력 유지 야심을 드러내왔다.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진압으로 수천명이 희생된 1988년 ‘8888항쟁’을 비롯해 여러차례 민주화 투쟁이 이어졌지만, 군부는 폭압적 탄압으로 반세기 넘게 권력을 장악했다. 군부 통치에 맞서며 15년의 가택연금을 버텨낸 수치 고문은 민주화의 상징이었지만, 국가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을 옹호하는 등 한계도 드러냈다. 그럼에도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군이 짓밟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국제사회가 이번 쿠데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국제질서의 향방을 보여줄 중요한 시금석이다. 민주주의와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취임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할지,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현실론 때문에 쿠데타를 용인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 규정하고 제재 복원 가능성을 경고하며 군부에 즉각적인 권력 포기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면서도, ‘쿠데타’라고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한국 시민사회단체 71곳도 2일 긴급성명에서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즉각 종료하고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라”며 우리 정부와 유엔, 각국 정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룬 한국 정부도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힘을 보태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북한 원전 이적행위’ 주장, 무책임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이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는 정쟁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9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및 공문서 불법파기 사건’의 공소장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며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비난했다. 그 뒤 국민의힘은 연일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 위원장은 31일 비밀리에 추진한 이유를 밝히라고 촉구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특검과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원전 북한 상납 사건’이라 규정하며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야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검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정황과 심증만으로 ‘이적행위’로 규정해 이념 대립을 부추기고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특히 제1야당 대표인 김 위원장이 “이런 엄청난 사안은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검토했다는 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권 차원의 보답으로 북한 원전을 추진한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힘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성명에서도 “공소장에 나타난 문건들은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등으로, 파일 이름만 봐도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검토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국익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남북관계처럼 민감한 사안에선 더욱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하고 합당한 근거를 갖춰 의혹을 제기해야 마땅한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의혹 해소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거짓 주장을 깨기 위해선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게 필요하다. 야당 공세를 “북풍 공작”으로 비난하는 건 정쟁을 조기에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 자료 삭제로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문서는 6쪽 분량으로 서문에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명시했고, 북한뿐 아니라 남한 내 지역에서 원전 건설 후 북으로 송전하는 방안을 언급하는 등 아이디어 차원의 다양한 가능성을 기술하고 있다’고 밝힌 건 다행이다. 더 적극적인 정보공개로 불필요한 정쟁을 하루빨리 종식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힘겨운 마당에 정치권은 근거도 불확실한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는 언행을 삼가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황교안 외압’ 면죄부 주고 끝난 세월호 검찰 수사

검찰이 2019년 11월 구성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이 19일 임무를 마치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더 이상의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를 하겠다’며 검찰총장 직속으로 설치됐지만, 1년2개월여의 활동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특수단 수사에서 풀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참사 이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느냐는 의혹이었다. 법무부가 검찰에 해경 123정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빼도록 지시했다는 구체적 증언들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특수단은 이런 지시를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관련자 진술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또 혐의 인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과잉수사라며 황 전 장관과 우 전 수석을 서면조사하는 데 그쳤다.

특수단은 123정장 수사에 대해 법무부가 지시가 아닌 의견 제시를 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검찰청이 먼저 보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결론 냈다. 법무부 장관의 공식 수사지휘 이외에는 법무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셈이다. 또 대검이 법무부에 수사 내용을 보고한 행위가 위법한지 여부에 대해선 법무부와 대검이 발표해야 할 문제라고 피해 갔다.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암암리에 법무부가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넘어가자는 식이다.

특수단은 구조 책임을 물어 해경 지휘부 11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특조위 활동 방해 혐의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국정원·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등 나머지 의혹은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수사 외압 의혹마저 2017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이어 두번째 면죄부를 줬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사설] 여당 대표의 새해 첫 메시지 ‘이, 박 사면론’, 부적절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을 거론한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집권여당 대표가 국민에게 내놓은 새해 첫 메시지로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코로나 극복과 경제 회복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의 삶과는 별 상관도 없는 사면론을 꺼내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대표는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당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여당 대표로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제 말을 꺼낸 상황이다. 건의가 실제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의 사면론은 민주당 안에서도 공식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표의 독자적인 결심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등 부정적 반응이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이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 이유로 ‘국민 통합’을 든 것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두 전직 대통령은 중대 범죄를 저질러 죗값을 치르는 중이다. 사면을 받으려면 최소한 뼈아픈 반성과 진솔한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한번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뇌물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은, “법치가 무너졌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달 14일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한다”며 감옥에서 현실 정치에 개입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서 풀어주면 국민 통합이 된다는 논리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생각이다. 국민들의 상식과 법감정에도 어긋난다.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론 분열을 부를 수 있다. 지금 국민 통합이 절실한 분야는 따로 있다. 코로나로 인한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가 사회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면 새해 첫 메시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구상과 계획을 밝혔어야 했다.

정의당은 물론 보수야당들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전혀 옳지 않을 뿐더러 불의한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지난 12월15일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탄핵에 대해 ‘수위 높은’ 대국민 사과를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번(12월30일)에 (이 대표와)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지난 20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태극기부대를 대표하는 우리공화당만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불법 탄핵의 잘못을 시인하고 지금이라도 즉시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최근 자신과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할 수 있다. 하지만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라면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하지 말고 크게 보면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일부만 돌려받은 용산기지, ‘완전한 반환’ 속도 내야

주한미군 기지 12곳이 추가로 한국에 반환된다. 용산기지 안의 체육시설 2곳도 포함됐다. 2002년 한·미가 주한미군 기지 80곳에 대한 반환 작업을 시작한 뒤 용산 미군기지를 일부나마 돌려받기로 한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2개 체육시설의 면적은 5만3418㎡로 용산기지 전체 면적(203만㎡) 중 2.6%밖에 안 된다. 이제 겨우 첫발을 뗀 것으로 갈 길이 멀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비용 문제 협의도 진전이 없었다. 미국의 신속한 기지 반환과 비용 부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적극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는 11일 미국과 201차 소파(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를 열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포항, 강원 태백 등에 있는 11개의 미군기지와 용산기지 2개 구역을 반환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2년 한·미가 반환에 합의한 전체 80개 기지 가운데 이제 12곳이 남아 있다. 이 수치로만 보면 많이 반환된 것 같지만, 최대 현안인 용산기지 반환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핵심 시설인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의 평택 이전 일정이 여전히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미국이 연합사의 일부 잔류도 원하고 있다. 용산기지가 완전히 반환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용산기지가 반환되면 국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용산 국가공원이 하루속히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협상을 해나가기 바란다.

정부는 이번에도 반환받는 기지의 환경오염 정화 책임 문제를 추후 협의로 미뤘다. 정부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협의가 길어지면 기지 반환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최대한 기지 반환 작업을 완료하기 위해 ‘선 반환-후 비용 청구’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해외주둔 미군이 미군기지를 돌려준 뒤 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화 비용을 부담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대책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녹색연합은 “그동안 정부는 오염 비용 청구, 미군기지 환경관리 강화, 소파 개정 등 어떠한 것도 미국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이 없다”고 비판한다. 수십년간 토지를 사용하면서 심각하게 오염시켰다면 사용 주체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정부가 더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북핵 협력·동맹 복원’ 확인한 한·미 정상 첫 통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2일 첫 정상 간 통화에서 북핵 문제, 한-미 동맹, 코로나19 대처, 기후변화 대응 등 네가지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북핵 문제 해결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첫 통화에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 등 핵심 현안에 공감대를 이룬 것은 의미가 크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멈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11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바이든 당선자는 전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정상과 한 통화에서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훼손한 글로벌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로 간주하고 상식을 넘는 규모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바이든 시대에는 한-미 관계를 훼손하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반면 미-중 관계에선 바이든 당선자 역시 중국 압박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자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서 핵심축(린치핀)”이라고 말했다. 일본·오스트레일리아 정상과의 통화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전 문제를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전략을 면밀히 살펴 치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 두 나라 정부는 정상 간 통화에서 확인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요 현안의 구체적 해법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동맹의 바탕은 믿음이고 믿음은 상호존중에서 나온다’는 점을 바이든 정부에 각별히 당부한다.


[한겨레 사설] 극심한 분열과 갈등 드러낸 대혼란의 미국 대선

전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본 미국 대선이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개표가 한참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주장하면서 개표를 중단시키기 위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새벽(현지시각) 백악관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이 선거를 이겼다”고 주장하면서, 선거일 이후의 모든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부를 가를 6개 경합주 중 5곳에서 자신이 앞서자,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한 우편투표 개표를 아예 막으려는 의도다. 유권자들이 합법적으로 행사한 투표의 개표를 대통령이 중단시키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초법적 행위여서 국민들의 거센 저항이 예상된다. 앞서 바이든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선거 승리로 가는 길 위에 있다”며 끝까지 개표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승리를 위해서는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해야 하는데, <시엔엔>(CNN) 방송은 4일 밤(한국시각) 트럼프 대통령 213명, 바이든 후보 224명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급증한 우편투표는 이번 선거에서 승부를 가를 결정적 변수다.

전세계 민주주의 모범 국가라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우편투표를 문제 삼아 실제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당선자 확정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혼란은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크다.
이번 선거는 극심하게 분열된 미국 사회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극우 음모론에 의존했다. 지지자들은 무장을 한 채 민주당 주지사를 납치하려 모의했고 바이든 후보 유세차량을 공격하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 선거일 하루 전까지도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빚어져 백악관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울타리가 설치됐다. 당선자 확정이 계속 늦어지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개표 결과에 불복한다면 양쪽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겨레 사설] ‘윤 총장-언론사주 만남’ 진상 규명 필요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이뤄진 언론사 사주들과의 회동과 옵티머스 사건 무혐의 처분에 대해 감찰 등을 통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지난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들 사안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윤 총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중앙일보> 사주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을 만난 데 대해 ‘상대방 동의가 없으면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직답을 피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사건과 관련 있는 언론사 사주들을 만난 것은 이해충돌 문제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사주 일가가 연루된 고 장자연씨 사건을 비롯해 여러 고발 사건의 당사자였고, 홍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피의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친척 관계다. 검사윤리강령은 “검사는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우려가 있는 자와 교류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 장관이 “검사윤리강령 위배의 여지가 있다”며 “감찰이 진행 중”이라고 한 만큼 만남의 성격과 적절성 여부를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

2018년 한국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한 옵티머스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서 무혐의 처리된 것에 대해서도 윤 총장은 ‘부장검사 전결 사항이라 보고받지 못했다’며 별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옵티머스 투자 사기의 피해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이날 국감에서는 전결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과 함께 당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부장검사와 옵티머스 변호인 등이 윤 총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중대한 사건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감찰 등을 통해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를 확인해야 한다.

추 장관은 또 “고액의 향응을 받은 검사가 (라임) 사건 수사팀장으로 투입돼 깜짝 놀랐다는 김봉현씨의 진술이 감찰 결과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이 사안 역시 보고 누락·은폐 의혹에 대해 감찰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최근 검찰을 둘러싸고 감찰 필요성이 제기되는 사안이 여럿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의 산물로 보는 일부 시선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검찰의 신뢰와 공정성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신속하고 엄정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한겨레 사설] 김정은 위원장 사과, 후속조처로 진정성 입증해야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공식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서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공무원의 피살 사건과 관련한 정부 발표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직접 신속하게 사과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가 이것으로 다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발표 내용과 북한이 밝힌 사건 경위가 크게 차이가 난다.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등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줄 후속 조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는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북-미 대화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는 지난 8일과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코로나와 집중호우, 태풍 피해를 위로하며 주고받은 친서도 공개했다. 그동안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물밑에서 이어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사건 경위 설명에서 북한군의 행위가 불가피한 대응이었음을 강변했다. 북한은 숨진 공무원이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했고, 총격 뒤 해상에서 소각한 것은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이라고 했다. 총격은 인정했지만 주검 훼손 행위는 부인한 것이다. 우리 공무원이 월북 의사를 밝혔고 주검이 불태워졌다는 정부의 발표와 배치된다. 특히 북한은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남북 당국의 설명이 엇갈리는 만큼,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남북한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북한이 주검을 불태우지 않았다면 주검이 바다 위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주검 수습을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공동수색을 서둘러야 한다. 이 또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비극적 사건은 지난 6월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함께 남북 통신선이 끊기는 등 대화 채널이 단절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화 채널 복원을 위한 남북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한겨레 사설] 또 합의 뒤엎겠다는 전공의들, 고립 자초할 뿐이다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우여곡절 끝에 4일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치’를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의협은 산하단체들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전임의협의회 등과 함께 만든 단일 협상안을 들고 협상에 나섰다. 그런데도 대전협이 “최대집 의협 회장의 독단적 결정”이라며 합의문 서명을 저지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날 합의는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위기 상황에서 더는 의료 공백 사태를 방치하기 어려워 의사단체들의 핵심 요구를 받아들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공공의료 강화 논의가 자칫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부·여당이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고 공공의료 확대를 포기했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합의안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 논의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의 ‘철회’와 ‘원점 재논의’는 그동안 의사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다. ‘철회’ 대신 ‘중단’이라고 했지만 핵심 요구가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그런데도 대전협은 ‘철회’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반발하고 있다. 박지현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에스엔에스(SNS)에서 “저희 제안에는 ‘철회’가 있었고, 아무리 그 뜻이 ‘원점 재논의’와 같다고 한들 우리가 주장해온 명분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뜻이 같더라도 철자 하나 바꿀 수 없다니, 이건 말 그대로 생떼다. 박 위원장은 합의안에 ‘단체행동 중단’이 적시된 것에 대해 “단체행동 중단은 저희가 결정한다”고도 했다. 의협 산하단체로 직접 합의안을 만들어 최대집 회장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도 보이지 않는 막무가내식 행태로, 더 이상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대전협은 이번 집단행동을 주도해왔다. 지난 7월 말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 방안을 발표하자 의사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또 지난달 21일에는 정부와 의협이 마련한 잠정합의안에 반발하며 판을 깼다. 특히 지난달 30일엔 집단휴진 연장을 부결한 1차 투표 결과를 뒤집으면서까지 휴진을 밀어붙였다.

대형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면서 생명을 다투는 수술이 필요하거나 응급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이기적인 행동 탓에 의사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여기서 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물론 국민도 더는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민생이 안보, 국방예산 줄여 코로나 극복에 쓸 때다

정부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555조8천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3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중 국방예산은 52조9174억원이다. 국방부는 국방예산 증가율 5.5%가 전체 예산안 증가율 8.5%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올해 증가율 7.4%보다도 1.9%포인트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예산 증가율 4.2%보다 높다.

물론 우리의 분단 현실을 고려하면 튼튼한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정부가 9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년 예산을 대폭 늘린 것은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다. ‘민생이 안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국방예산 중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 코로나 대응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기존 ‘군사 안보’ 위주의 관점을 넘어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튼튼한 국방’을 강조하며 국방비를 크게 늘려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40조3347억원이던 국방예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연평균 7%의 증가율을 보여, 4년 만에 12조원 넘게 급증했다. 내년 국방비 증가율이 예년에 견줘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방비 누계’에 주목해야 한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총 국방비가 727조원인데, 지난 3년 동안 140조원가량 사용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첨단무기를 증강하는 방위력 개선비 평균 증가율이 11%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평균 증가율인 5.3%에 견줘 2배가 넘는다. 국방부가 지난달 9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을 보면, 앞으로 5년간 국방예산이 약 301조원이다. 이 추세라면 2026년 국방비는 70조원을 넘게 된다. 중국과 일본의 위협까지 상정한 ‘전방위 안보 위협’ 대비를 내세워 추진하는 경함모, 핵잠수함 도입 사업이 동북아 평화를 흔들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유럽에서는 국방비와 복지 가운데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 이 둘 사이의 적정 분기점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대포 버터’(guns or butter) 논쟁이 치열했다. 안보를 최우선시해온 국내에선 국방비가 성역 취급을 받아왔다.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 때다. 예산 심의를 앞두고 있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방예산 규모가 적정한지, 꼭 필요한 곳에 배정됐는지, 더 아낄 방법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심의하길 바란다.


[한겨레 사설] “종교자유 목숨과 바꿀 수 없다”, 지금 할 말인가

김태영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이 27일 대면 예배 금지 조처와 관련해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교회는 정부 방역에 적극 협조하겠지만 예배를 지키는 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교회 지도자들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코로나19가 대유행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교회가 집단감염의 연결 고리라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예배를 금지한 것도 아니고 비대면 방식으로 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종교의 자유” 운운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상당수 성당과 사찰은 온라인으로 미사와 예불을 진행하고 있다. 또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 교회도 적지 않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26일 발표한 개신교 신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7%가 “종교 집회 자제 권고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계 지도자라면 신자들에게 온라인 예배를 적극적으로 당부하는 게 마땅한 일인데, 되레 거꾸로 가고 있다.

김태영 회장은 “정부가 종교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또한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일부터 수도권에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피시방, 노래방, 뷔페 등 12개 업종이 문을 닫았다.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지금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교회가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얘기를 하는 건 상식 밖이다.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한 모든 초·중·고 학생들이 등교 수업 대신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하객 참여를 제한하며 결혼식을 치르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모두 코로나19 확산이 공동체 붕괴라는 최악으로 치닫는 걸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예배도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한겨레 사설] 광복절 ‘친일 청산’ 다짐조차 트집 잡는 통합당

김원웅 광복회 회장이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행적을 비판하며 “친일 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한 데 대해, 미래통합당 정치인들이 격한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찬란한 우리 민족의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이라며 “이승만은 반민특위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고,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친일·친나치 활동을 했다는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21대 국회에서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의 묘를 이장하도록 하는 ‘국민묘지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며 “우리 역사는 친일이 아니라 독립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김 회장이 “편향된 이념으로 국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반일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김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주말 내내 거센 비난 공세에 나섰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초대 임시정부 대통령을 이름만으로 부르고,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하고, 현충원의 무덤까지 파내자는 무도한 주장을 했다”며 “대한민국 독립운동 정신의 본산을 사유화하는 김 회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제주도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김 회장의 기념사가 대독된 직후 원희룡 제주지사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편향된 역사만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 “국민을 다시 편 가르기 하는 시각”이라고 반발했고, 이에 일부 참석자들이 고성을 지르고 퇴장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복회장이 광복절을 맞아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역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청산을 촉구한 것이 이토록 거센 공격을 받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통합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친일 청산은 정파나 이념과 무관한 우리 사회의 역사적 과제다. 통합당을 비롯한 보수·극우 세력이 이번 기념사를 빌미 삼아 진영 논리를 강화해 친일 역사 바로잡기에 대한 역공에 나서려고 한다면 거센 역풍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김 회장이 과거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처신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만큼, 김 회장 스스로 명확히 사과하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김 회장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 인사의 묘를 이전하는 이른바 ‘파묘’를 주장했고 국회에도 이런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국민의 여론을 충실히 수렴하면서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친일 청산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길이라고 본다.


[한겨레 사설] 어려워도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 꼭 이뤄내야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마무리 짓기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오는 16~28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규모가 축소되면서, 전작권 전환을 위한 미래연합군사령부 완전운용능력 검증 일부가 내년으로 미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내년으로 예정된 마지막 단계인 완전임무수행능력 검증도 미뤄지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인 2022년 5월 이전에 전작권 전환은 불투명해진다. 전작권 전환이 차기 정부로 미뤄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치밀하게 준비해서 현 정부 임기 안에 전작권 전환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작권은 ‘군사주권’이기에 전작권 전환은 빠를수록 좋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가 원칙적으로 합의했던 전작권 전환이 지금까지 늦춰진 데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핵개발과 천안함 사태를 이유로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일정(2012년 4월)을 2015년 12월로 미뤘다. 박근혜 정부는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한국군의 연합작전능력과 주변 안보환경 등 ‘조건’이 충족돼야 전환하기로 했다. 사실상 무기 연기인 셈인데, 이제 와서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침이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작권 전환을) 미군의 승인에 해당하는 ‘검증’에 맡긴 건, 신호등을 여러 개 설치해 놓고 파란불 켜는 권한을 사실상 미국에 준 것과 다르지 않다”(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 검증 일부를 내년으로 미룬 건, 미-중 신냉전으로 미국이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인 태도로 바뀐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연합훈련 협의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전작권 전환에 초점을 맞추자는 한국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펴면서, 한반도를 대중 전초기지로 삼으려면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계속 손에 쥐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음 직하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과거 미국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물꼬가 터졌던 사안이다. 지금 와서 이런저런 검증의 이유를 달며 전작권 전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미국 주장에 끌려갈 게 아니라 강하게 전시작전권의 조속한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전작권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군이 독자적 작전계획을 세우거나 작전지휘능력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